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갓쉰동 꿈꾸는 삶

조선일보 호외 김일성장군 만세 천황폐하 만세도 있는데 그까이거

 

조선일보 호외가 이슈화 되고 있다. 조선일보 호외의 내용은 1950년 6월 28 북한 김일성이 남침하고 서울을 점령한 때 일어난 사건이다. 조선일보 호외에는 김일성 만세 인민군 서울입성이라면 환영하는 호외였다.

 

그런데 조선일보 호외를 보는 시각은 조선일보다운 행위를 했다는 것 뿐이다. 조선일보는 처음부터 친일 신문으로 시작했다가 잠시 독립운동를 하는 세력으로 조선일보가 넘어갔고,  조선일보는 그 후 경영난이 심각해져 다시 친일파에 넘어갔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자신의 친일행적을 지우고 조선일보는 민족신문이라고 거짓말로 일관 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증거로 내세운 것이 손기정의 일장기 훼손사건을 들고 있지만, 미안하게도 당시 일장기 훼손한 기자들은 조선일보에서 축출되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손기정 일장기 훼손 사건은 조선일보사 기자들이 개인적인 이탈행위였고 조선일보사는 해당 기자들을 처벌한 것이다. 그러니 조선일보는 독립 민족신문이 아닌 독립운동을 한 민족기자들을 처벌한 반민족 신문일 뿐이다.

 

 

조선일보는 일본 천왕의 생일날 천황폐만세를 외치고 내선일체를 외친 그렇고 그런 반민족 신문일 뿐이다. 그런 조선일보가 김일성이 남침한 후 서울에 진주하자 호외를 발행한 것은 당연한 조선일보식 살기의 전형일 뿐이다.

 

조선일보는 박정희가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도 찬성한 신문이고 전두환이 정권을 찬탈했을 때에도 호외를 발행하고 전두환을 미화하는데 앞장을 섰을 뿐만 아니라 국민 탄압의 선두에 섰다.

 

독립신문의 주동자가 반민족 행위자 중 가장 선두에 있던 이완용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들물다. 그리고 서대문 독립문을 주동적으로 만든 이가 이완용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도 극히 드물지만 말이다.

 

조선일보 역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조선일보 역사를 알려주고자 한다. 얼마나 조선일보가 자사의 역사를 지랄같이 썼는지 말이다.

 

   

 

 
신조선 창간일이 1927년 2월인데 너의 방응모 황제님은 1933년에 조선일보를 날치기? 하듯히 인수하지 않았던가? 그전년도는 물주역활을 하고 (전무였을걸)
 
이번에 조선창간 84주년이람서 조선 창간 84주년인건 맞는데 좃선은 아니거던 어찌했던 인수했으닌깐 지령은 계속되야한다고 그럼 계속되야 하지. 좃선이 된 이후 계속되게 천황폐하를 위한 신문이였고 해방정국에선 친미신문에. 이승만 정권하에서는 국부칭송하기 바뼜음을 알고 있지요. 박정희가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박정희에 충성했다면서 하긴 너희 황제와 동류인간 이긴하다. 박정희와 방응모도 친일하지 않았지 자기조국에 충성한것은 당연한 것이지 천황폐하의 안위를 위해서 친일부역/ 기득권옹호해 왔는데 앞으로도 쭈~욱 그렇게 살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
 
"천황폐하께옵서 육군관병식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시는 길에 앵전문앞에   이르렀을 때 사고가 발생하였다.... 천황의 마차에는 이상이 없어 오전   11시 50분에 무사히 궁성으로 돌아오시었다.... 범인은 조선 경성생 이봉창(32)"....
       - (1932년 1월 10일자 기사 <천황 폐하 환행도중 돌연 폭탄을 투척>) -

가) 조선일보  권병하-유문환(1920.8.15~1921.4.8)

- 1차 정간 / 사설 '자연의 화'(1920.8.27) 
- 2차 정간 / 논설 '총독부 당국은.... 우리 일보를 정간시켰나뇨'(1920.9.5) 

나) 좃선 일보 친일 민족반역자  송병준 (1921~1924) 2차 정간후 넘어감.
 (정간 없음 )
이기간 동안 니들이 자랑하는 조선의 역사에도 기술이 없더구만. 이유는 니들이 더 잘알고 있겠지. 쪽팔린것은 알고 있는가 보다.
그리고 나서 이상재 선생께서 1924년 9월 13일에 사장으로 취임했어용.
 
다) 이상재-신석우-안재홍-조만식  (1924~1933)

- 3차 정간 / 사설 '조선과 노국의 정치적 관계'(1925.9.8)
- 4차 정간 / 사설 '제남사건의 벽상관'(1928.5.9)

 
라) 좃선일보 방응모 (1933~50년)
 
이기간으로 봐도 너희는 조선을 승계한것이 아니고 송병준을 승계했다면 맞다. 니들이 주장하는 친일하지 않고 그 당시 상황으로써는 어쩔수 없다고 했는데 어쩔수 없이 한것은 맞는것 같기도 하다.
 
이봉창의거를 천황폐하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겠니? 하긴 3.1운동당시  33인 중에 변절하지 않은 자가 몇명이나 있겠냐만. 민족지도자라는 조만식선생하에서도 천황폐하의 안위를 걱정하는것을 보면 말이다. 이렇게 이야기 할줄 알았지. 그런데 조만식 선생이 사장으로 취임한것은 1932년 11월이더라고 그럼 이봉창의거와 조만식선생과는 계연성이 없겠지. 웃기는것은 그전년도 1932년에 조선의 물주였더구만. 그리고 1933년 3월에 정식으로 방응모가 주식회사 사장으로 취임하고 아~~ 니들이 그리도 민족신문이라고 주장하는 조만식선생의 사장님께서는 단지 4개월을 했더라고 웃기지 않니. 난 조만식 선생있을때 천황폐하 만세한줄 알았다. 믿을넘 정말 없구만 하고 생각했더란다. 아주 잠시동안에 .. ㅠㅠ
 
방응모가 승계? 시에는 자발적으로 찬양하지 않았던가? 찬양한것이 아니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니들은 조선을 조국으로 생각한적이 없으니까? 당연히 니들 조국인 일본을 위했을 뿐이거던.
 
- 황국의 위무선양(威武宣揚)과 동양평화를 위해 싸우는 장병들을 위해 총후    (후방)에 선 일반 조선국민의 정신적.물질적 후원이 절대로 필요하다"
              - (1937.8.12.사설 <총후의 임무-조선군사후원연맹의 목적>) -

- "조선에 육군특별지원병제도를 실시해 주신 미나미제독의 일대 영단을 반도   민중들은 감격해마지 않는다....장래 국가의 간성으로 황국에 대하여 갈충   진성(竭忠盡誠)을 하고, 국방상 완전히, 신민의 의무를 다할 것이다"....  
                                                    - (조선, 1938.6.15) -

  
  
 그런데, 왜 내조국 내나라에서는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는거야. 국방의 의무좀  지면서 살아요.. 미안 너의 조국은 여기가 아니지. 미국이나 일본이지 앞으로는 어딜까? 중국?
 
 
 
추신)
 
1. 왜 니들이 반공을 부르짓는지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이번기회에 알게 됐는데 방응모가 납북되었더라고 6/25 당시에 니들이 그럴 넘들이 아닌데. 어쩐지 했다.
 

 

2. 조선일보 역사를 기록할려면 제대로 하면 않될까? 니들 사장 1대부터 현재까지 몇대째 내려온거야 알려줘 고조선역사도 단군세기에는 40여명이 나열되여 있는데 쪽팔리게 몇년 되지도 않는 좃선역사에 사장이름도 없는 곳이 너무 많아요. 니들 생각에도 쪽팔리기는 하겠더라만. 그런데 지울라면 1935년 "조광"창간 했다는것도 없애라

 

 

 

단지 조선일보 자사의 이익에 반대한다면 우리회장님을 엄호하는 집단으로 변하고 언론탄압이라고 목소리를 외쳤을 뿐이다. 조선일보가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한 때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언론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전세계가 인정한 때 였다는 아이러니가 있었지만 말이다.

 

조선일보가 사는 법은 그때 그때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사는 법에는 일관성이 있다. 당시 권력의 개가 되는 데는 철저했다는 점이다. 지금 가장 종북으로 먹고사는 집단은 조선일보다 얼마나 일관성이 있는 기회주의자의 삶인가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한국인 2015.03.05 1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폐간 0순위 쓰레기 신문을 고르라면?

블로그 이미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 시사 사회 문화 스포츠 평론
갓쉰동
10-18 22:08
Yesterday50
Today51
Total12,304,999

최근에 달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