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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풍문으로 들었소 환타지 금기를 깬 또다른 환타지 풍문으로 들었소 작가 정성주 안판석의 도전

 

풍문으로 들었소는 이뤄질수 없는 을의 환타지를 깨는 드라마 이지만

 

을의 환타지를 깨우는 드라마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을 고아성이 운이 좋게 갑의 이준을 만났고 임신을 한 후 결혼을 한다.

 

여기 까지 신데렐라 콤프렉스를 자극하는 드라마다. 그런데 풍문으로 들었소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간다.

 

풍문으로 들었소 고아성은 갑이 되자 을의 입장이 되어 갑의 횡포에 반항을 하고 갑의 부조리에 대항을 한다.

 

이에 시청자들 중 일부는 고아성에 반감을 가지게 된다. 왜 을이 갑이 되었는데 어찌해서 갑에 순응하지 못하고 적반하장으로 갑에게 반항을 하느냐는 것이다.

 

이를 지지하는 어머니 윤복인(김진애)에 감정이입을 하여 왜 말리지는 못하고 냅두냐고 말한다.

 

사실 현실에서는 어머니가 딸의 편에서 반란을 꿈꾸는 고아성을 지지하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아버지들이 현실을 망각하고 고아성의 편에서 명분을 중요시 하고 묵묵히 고아성을 지지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어머니들은 현실에 안주하고 딸이 풍지풍파에 휩싸이는 것에 반대한다. 그런데 만약 현실에서 고아성이 갑질을 당한다면 그 어떤 누구보다도 앞서 투사가 된다.

 

민주화 투쟁시기 민주화에 나선 사람들의 대부분은 어머니로부터 반대에 직면한다. 너가 아니더라도 민주화 투쟁할 사람은 많다.

 

너는 그저 현실에 순응해서 몸만 성하면 된다고 말이다. 그런데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아들이 다치거나 감방에 간다면 어찌 대응할까?

 

아버지들은 묵묵히 지켜보지만 어머니들은 그때부터 열열한 투쟁에 앞장서서 민주화 투사가 된 사람들이 많다.

 

 그 만큼 어머니들은 사회의 정의에는 상관없다. 사실 사회정의에 관심이 없는 것 보다는 사회보다는 자식의 안위가 우선한다. 살아남는게 이긴다는 극히 평범한 진리처럼 생물학적으로 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자식의 안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인 투사가 되는 것이다. 이는 극히 모성이 가지는 특징이다.

 

풍문으로 들었소 고아성에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고 고아성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일에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반대하는 면도 있지만,

 

고아성으로 인해서 갑인 준상 유호정이 당하는 재미까지는 용서가 되지만 유준상 유호정이 망하는 것 까지는 용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한계는 골탕먹는 갑이지 갑의 몰락은 아니다. 왜냐하면 유준상 유호정으로부터 대리만족을 느끼고 고아성으로부터 대리만족까지는 용서가 되지만, 을이 반란으로 갑을 이기는 것은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풍문으로 들었소는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을의 반란을 기획했고 일반적인 어머니와 다른 김진애(윤복인)이 고아성을 지지하고

 

반대로 나쁘게 말해서 속물근성인 아버지 장현성을 등장시켜 일반인의 전형적인 시각을 투영시킨 것이다.

 

여기까지 풍문으로 들었소 작가 정성주가 시청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보고 각자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문제는 고아성이 밉상이 된 이유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리만족을 넘어선 선을 넘었다고 생각을 하는 순간 스스로 을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을이 반란을 일으킬 때 오히려 을의 반란에 반기를 드는 경우는 을인 경우가 많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있는 것 처럼 또는 노동자 관계에서 노조를 비판하는 사람은 의외로 노조가 없는 또는 노조가 있더라도 또다른 노조를 비난하는 것은 같은 노동자인 경우가 많다.

 

귀족노조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귀족노조라는 이유만으로 비난하거나 자신들의 밥그릇만 챙긴다고 생각하고 비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더불어 시위를 하면 가장 먼저 싫다고 하는 사람들 또한 을들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들이 을이 되어 시위에 나섰을 때 또다른 을로부터 비난을 받는 경우가 반복된다. 그게 가장 일반적인 대한 민국의 사회현상이다.

 

타조직에서 내부고발을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되지만, 자신의 조직에서 내부고발을 하면 내부고발자는 죽일놈으로 몰아세우는 것처럼 유사하다.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김권은 유준상이 권력남용과 세금장난으로 이준에게 오천억 상당의 비밀 비자금을 숨겼다며 전국민의 주머니에서 만원씩 빼앗은 것이라고 말하고 분노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호일는 그게 대한 민국의 수준이라고 말한다.

 

자신들의 주머니에서 빼앗은 돈이 있는 지 조차 감을 잡지 못하고 흥분할 줄도 모른다고 말이다. 실제 시장에서 1,000원 깍는게 대단한 일이고 알뜰 주부라고 생각하지만,

 

백화점에서는 비싸지 않으면 상품 취급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깍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거나 무뢰한이나 비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 처럼 말이다.

 

세일 기간에 산 상품이 전혀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고 운이 좋아 땡을 잡은 것처럼 무용담을 말하는 사람들 처럼 말이다.

 

살제 깍아야 할 곳은 백화점의 폭리이지만, 폭리를 당연시 하고 을인 상점에서 천원 깎는데 목숨을 거는 것 같이 영웅담이나 깍지 않는 행위를 이상하게 보며 당연시 행동하는 것처럼 거대 비리에는 무감각한 것이 현실이다.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작가가 비서들의 반란에 동조하거나 오히려 앞장서는 고아성을 만드는 환타지를 만들었지만, 이를 거부하는 시청자가 있는 것처럼 반대로 현실에서는 이뤄지지 않는 환타지를 만드는 작가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을이 상류층에 결혼을 매계로 신분상승하거나 상류층에 진입하는 경우는 없다.

 

한마디로 이미 풍문으로 들었소는 현실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환타지 소설인 것이다. 물론 좋게 말하면 어른들의 동화라고 할 수가 있지만 말이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기존 한 환타지에 한발 더 나아가 을의 반란을 기획하였을 때 반발을 예상했을 것이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기존 환타지 드라마의 금기를 깨고 한발 더 나아간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짜피 환타지라면 한발 더 나아가 을의 반란의 금기가 성공한다고 어찌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개연성 없기는 신데렐라 컴플렉스만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 신데렐라 조차도 왕궁 만찬에 초대받을 만한 신분의 귀족자제였다는 사실은 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차라리 신데렐라 보다는 한국의 심청전이 개연성은 더 있어 보이는 것은 글쓴이 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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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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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김영수 2015.05.19 0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지만 그러기 힘든것 또한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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