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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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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세종대왕 한글(훈민정음) 창제일 바꿔야 하는 이유

 

 한글날 한글을 망치는 한글학자들 남미 부족 한글 개발 한글 망친 세계화 이유는?

 

한글날 법정 공휴일인가?

 

왜 한글날 법정 공휴일 여부가 궁금한지 모르겠다.

 

사실 국군의날 한글날이나 어버이날은 법정공휴일 이었는데 어버이날은 휴일에서 사라지고 한글날도 사라졌다가 다시 법정공휴일로 바뀌었다.

 

문제는 법정공휴일 되어도 휴일에 걸린다면 대체휴일제가 없는 관계로 쉴수가 없다는 점이다.

 

어쨌든 한글은 말글이고 상형문자다. 말글은 언문이라고 한다.

 

한글을 상형문자라고 하니 이상한 소리를 한다.

 

하지만, 훈민정음 혜례본에 분명히 발음시 나오는 입의 모양을 따서 만든 글이라고 나와있다.

 

그 동안 언문은 훈민정음을 비아냥 되고 한글을 비하하기 위해서 일본인이나 양반 사대부가 만들어 낸  말이라며 얼토당토 않는 말이 진실처럼 퍼졌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후 한글 보급을 위해서서 언문청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고 언문청을 만들어서 훈민정음을 비하했다는 말이 되는데 논리적 모순이다.

 

아직도 백과사전에 언문에 대한 기술을 보면 한심할 지경이다.

 

하지만, 언문은 훈민정음과 같이 세종대왕이 처음 만든 아름다운 글이란 뜻에서 출발한 단어이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 세종 25년, 1443년 12월 30일

 

 

 

 

사전에  세종과 훈민정음을 제작한 학자를 제외하고 는 모두 언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역사와 무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종이 만든 것이 한글이고 훈민정음을 제작한 학자는 없다.

 

성삼문 신숙주 등은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으로 중국어 사전을 만들었을 뿐이다.

 

또한 언문이란 말은 세종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임금이 말하기를,

“전번에 김문(金汶)이 아뢰기를, 언문을 제작함에 불가할 것은 없습니다.’ 하였는데, 지금은 도리어 불가하다 하고, 정창손(鄭昌孫)은 말하기를,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반포한 후에 충신·효자·열녀의 무리가 나옴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질(資質) 여하(如何)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꼭 언문으로 번역한 후에야 사람이 모두 본받을 것입니까.’ 하였으니, 이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용속(庸俗)한 선비이다.

하였다. 먼젓번에 임금이 정창손에게 하교하기를,

“내가 만일 언문으로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번역하여 민간에 반포하면 어리석은 남녀가 모두 쉽게 깨달아서 충신·효자·열녀가 반드시 무리로 나올 것이다.

하였는데, 창손이 이 말로 계달한 때문에 이제 이러한 하교가 있은 것이었다.

- 세종 103, 26(1444 갑자 / 명 정통(正統) 9) 2 20(경자)

 

 

위에서 언급했지만,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든 후 보급을 위해서 언문청을 만든다.

 

드디어 언문청(諺文廳)을 설치하여 사적(事迹)을 상고해서 용비시(龍飛詩)를 첨입(添入)하게 하니,

언문청(諺文廳)은 얕아서 드러나게 되고 외인(外人)의 출입이 무상(無常)하니, 신 등은 매우 옳지 못하였다고 여깁니다.

세종 114, 28(1446 병인 / 명 정통(正統) 11) 11 8(임신)

 

한글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글을 만드는 과정이 기록되었고 모음과 자음의 생성과정을 기록한 최초의 문자.

 

더군다나 훈민정음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목적성을 가진 글자다.

 

 

 

그런데 한글을 부정하면서 한글을 세계화 했다는 기사들이 한글날을 즈음하면 꼭 나타난다.

 

최근 서울대 언어학과 권재일 교수가 이끈 언구단이 남미 아이마라 부족에게 필요한 한글 표기법을 3년 간의 연구 끝에 아이마라어 표기에 적합한 한글 자모체계를 완성했다고 한다.

 

재일이 만든 남미 아이마라 부족에 적합하게 만든 자모가 한글일까?

 

한글하고는 하등 상관이 없다. 오히려 권재일은 자신들이 무능을 감추기 위해서 한글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새로운 글자를 창조하고 있다.

 

 

한글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는 소리글이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을 수 없다고 권재일은 새로운 한글 자모를 3년 동안 개발했다는 것이다.

 

한글 수출 1호라고 자랑했던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에도 한글이 아닌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보급하겠다고 나섰지만 알고보니 경제적 지원으로 단 1년간만에 흐지부지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도 한글이 아닌 새로 창제한 글자가 한글로 포장되었을 뿐이다.

 

 

 

 

위에 남미 부족 한글이라고 한 것에 한글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서울대 연구단은 아이마라 현지인에 대한 국적 불명의 권재일 글을 보급하지 않게로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연구비를 들여서 한글의 문제점이 있다며 연구하고 돈질을 한 후 포기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눈먼 국가의 돈을 들여서 연구자의 새로운 글자개발에 동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글의 우수성이 아닌 한글의 문제점만 드러낸 꼴이다.

 

사실 한글을 망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한글 언어학자들인 경우가 많다. 

 

훈민정음(언문, 한글)은 세종대왕 스스로 만든 글자이다. 그것도 음운학에 조예가 깊었던 세종대왕이 말이다.

 

실록을 비롯한 고전들이 모두 세종(世宗)어제(御製) 세종임금이 만든 이라고 하는데 무슨 배짱으로 극히 일부 학자와 소설가들은 이를 부정하는지 알수가 없다.


대한민국은 한글날을 10월 9일로 되어 있지만, 세종대왕이 한글(훈민정음)을 창제한 1443년 12월 30일(음)을 기준으로 양력으로 환산해서 1월 15일로 복원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현재 한글날은 1443년 12월 30일(음) 훈민정음 창제일도 아니고, 1446년 9월 29일(음) 훈민정음 반포일도 아닌 훈민정음 혜례본에 책을 발간한 9월 10일(음)에 맞춘 정체불명의 양력 10월 9일 한글날은 뜸금 없다고 하겠다.


한글날을 정상적으로 복원하자는데 북한(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조선글날 1월 15일로 했다고 빨갱이 따라하는 거냐며 너 빨갱이지라는 초딩 같은 소리는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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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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