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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서말구 한국기록 보유자 심장마비 사망

 

서말구 31년간 100미터 기록 보유 이유는

 

서말구 김국영 기록깨기 까지

 

서말구는 1979년 한국 100미터 기록보유자였다.

 

2010 6김국영 10 31, 10 23까지 단축 시킬때가지 31년 간 한국 기록보유자로 기록되었다.

 

사실 서말구가 한국 기록을 세우기 전 1966년 정기선은 수동계시 1966년 10초 3을 기록했다.

 

서말구는 수동계시로 1979년 10초3의 동타임을 기록했지만, 한국기록이 아닌 타이 기록이 되었다.

 

서말구가 100미터 기록을 세운 곳은 1979년 9월 멕시코 유니버시아드였다.

 

멕시코는 해발고도가 높아서 공기저항이 적다.

 

서말구가 100미터 한국기록을 세운 1979년 세계 100미터 기록은 1968년 미국 짐하인스가 세웠던 9초 95였다.

 

짐하인스가 세웠던 곳도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때였다.

 

1983년 7월  미국 콜로라도에서 캘빈 스미스가 9초 93를 세웠다.

 

멕시코나 콜로라도는 해발고도 높았다. 그러니 당연히 15년 동안 세계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벤존슨은 1987년 9초 83을 기록했지만, 벤존슨은 1988년 한국 올림픽에서 도핑으로 메달과 기록이 취소되었다.

 

1988년 9월 한국 서울 올림픽에서 칼루이스가 9초 92를 세우기 까지  9초 93은 불멸의 기록이었다.

 

 

진정한 100미터 기록은 서말구가 아닌 정기선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 서말구가 한국기록을 세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고 이를 평지에서 한국기록을 깬다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한국 스포츠에서 육상은 기초종목이라고 하지만, 세계의 벽과 차이가 있었다.

 

더불어 한국에서 인기가 있는 스포츠는 축구, 농구, 배구, 야구 등이었기 때문에 어릴적부터 싹이 보인다 싶으면 육상보다는 축구를 시키고 야구를 시켰다.

 

키가 조금 좋다 싶으면 농구나 배구를 시켰다.

 

육상을 해서는 대학은 갈 수 있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실직을 하거나 근근히 체육교사를 할 수준에 있었고 실업팀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세계의 벽이 높다보니 아시아에서 조차 어려움을 자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선수나 선수를 가르치는 코치나 싹이 보인다 싶으면 빠져나가는 선수를 잡을 수도 막을수도 없었다.

 

당연히 육상선수들은 목표의식 조차 없었다. 한국기록을 세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들은 단지 대학을 가는 수단으로 육상을 했고 아시아 선수를 넘겠다는 의지와 꿈도 없었다.

 

오히려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비아냥하기 일수 였다.

 

피겨스케이팅을 예로 들면 한국에서 피겨는 단지 상급학교를 진학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세계와 경쟁하려는 의지조차 없었다.

 

이들의 목표는 단지 대학 특기장학생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목표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해도 한국은 안된다는 패배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마찬가지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는 한국 육상에서 기록을 세운다는 것은 당연히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서말구가 한국기록 10 34를 세우고 나서 31년 동안 깨지 않는 영원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대학을 가기위해서나 실업팀이나 행정부 소속 시청이나 도청 소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담합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 서말구 기록은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가장 커다란 이유는 서말구가 세웠던 장소에 기인하지만 말이다.

 

최근 100미터 기록이 급박하게 10 34에서 2015년 7월 9일 김국영이 10 16까지 당겨진 이유는 대구세계육상선수권이나 한국에서 유니버시아드 때문에 전략적인 투자에 기인하고 외국인 코치를 영입해서 동기 부여를 한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처음 외국인 코치가 한국 선수들을 보는 입장은 명확했다. 한국선수는 동기나 목표의식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 축구가 중국 내에서 욕을 먹어도 동기 부여나 목표의식과 패배의식에 빠졌던 것 처럼 말이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피겨에서 세계대회를 목표로 메달이나 세계 1위나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싸운 사람은 김연아가 유일했다.

 

그 전에는  여타 종목처럼 단지 대학가는 방편 뿐이었을 뿐이다.

 

세계를 목표로 한다면 보다 많은 시간과 열정을 피겨에 쏟아 부어야 했다. 하지만, 인프라도 없었다.

 

피겨에서 천재적인 김연아가 나왔고 이는 한국 피겨에 충격을 주었다.

 

세계에서는 김연아는 세계 피겨의 기준이 될것이라고 말했고 1000년 100년만도 나오지 못할 천재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김연아는 피겨역사에서 역대 최고의 선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찌 되었던 김연아 이후 김연아가 투자한 김연아 키드들이 한국이 아닌 세계를 목표로 피겨를 한다. 그만큼 더 많은 노력과 돈이 들어가고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

 

최근 축구나 야구의 경우 세계 최고 무대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축구의 경우 차범근 허정무를 목표로 노력을 하고 박지성 안정환  손흥민 기성용 이청용을 목표로 한다.

 

당연히 예전보다는 목표의식과 목표가 다르다.

 

야구의 경우 한국에서 활약을 목표였다면 선동열 일본으로 진출을 목표하거나 메이저리그를 목표로 한다.

 

처음 박찬호 추신수를 목표로 하였듯이 이제는 한국내에서 최고이면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준 강정호를 목표로 한다.

 

박세리 김미현으로 한국 골프가 세계를 목표로 무수히 많은 골퍼를 만들어 박세리 키드를 만들어 냈던 이유는 나도 될 수 있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박세리 김미현이 나올 수 있는 골프 인프라고 갖춰져 가고 있었다는 점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니 축구선수나 야구선수의 경우 한국에서 잘하는 것이 아닌 세계에서 뛰려는 목표로 연습을 하고 가르친다.

 

마찬가지로 서말구 이후 한국 육상 100미터 기록을 갱신한 김국영김국영을 라이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기록은 조금씩 단축이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기록 갱신으로 인한 아주 작은 당근이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오랜 시간 100미터 보유자로 기록된 서말구는 심장마비로 사망을 하였다. 육상선수 출신인 사림이 심장마비라니 하는 의구심이 들만 하다. 

 

하지만 오히려 육상을 하거나 인텔리 체육선수들이 장수하는 경향은 없다. 일반인 보다 몸의 한계를 실험한 사람들일 수록 장수와는 거리가 많다. 

 

투기종목이나 체중조절을 해야하는 선수의 경우는 수명이 다른 종목선수보다 적은 이유는 끊임없는 체중조절 때문이기도 하다. 그만큼 인간의 몸의 한계를 실험한 사람들이 가지는 숙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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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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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2.02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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