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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이성계 요동정벌 중 3차 요동정벌 위화도 회군 계획적 반란 이유 이성계 최영장권 격돌 전초전

육룡이 나르샤 이성계 요동정벌 중 3차 요동정벌 위화도 회군 계획적 반란

 

이성계 최영장권 격돌 전초전 위화도 회군 이유는   

 

위화도 회군 포함 요동정벌은 3차 요동정벌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위화도 회군한 때를 고려가 처음이자 마지막 요동정벌 인줄 안다.

 

하지만, 고려시기 요동정벌은 모두 3번 있었다.

 

육룔이 나르샤에서 1388 4최영은 명나라의 철령위 이북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하지 않고 역으로 요동을 경략한 계획을 세운다.

 

육룡의 나르샤의 시대적 배경은 1382~1383년 이였다.

 

그런데 어느덧 육룡의 나르샤는 이인겸, 홍인방, 길태미를 축출하는 1388 1월로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해 버린다.

 

육룡의 나르샤는 지멋대로 시대를 이동한다. 육룡이 나르샤에서 시대를 따라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리저리 왔다리 갔다리 육룡이 나르샤 작가 김영현의 입맛에 띠라 지좃대로 옮겨가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육룡이 나르샤는 1388년 길태미 홍인방 이인겸이 출출된 1388 2월경이 되었다.

 

육룡이 나르샤에서 명나라는 철령위 이북에 대한 지배를 하겠다며 고려를 협박한다.

 

자신의 땅을 달라는 명나라에 반대하여 최영은 고려시기와 빼앗겼던 철령위를 얼마전에 회복했는데 다시금 명나라가 고려의 땅을 가지려는 강도와 같은 행위에 공석에 가까운 요동지역을 회복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성계를 비롯한 친명파의 반대에 직면한다.

 

친명파의 대다수는 유교를 바탕으로 한 신진사대부였고 대국에 대한 사대가 극에 달했다.

 

고려시대 요동정벌은 3차에 걸쳐 있었다. 1~3차 모두 이셩계가 선두에 섰다.

 

마지막 고려시대 요동정별은 무위로 돌아 갔는데 이때가 위화도 회군으로 이어졌다.

 

위화도 회군의 명분으로 내세운 4가지 이유의 첫머리를 장식한 것은 작은 나라가 대국을 칠수 없다. 라는 이유다.

 

나머지 이유는 위화도 회군 명분의 첫번째 이유를 합리화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이성계를 비롯한 위화도 회군파들은 명과의 싸움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도전을 비롯한 이성계는 조선이 건국된 후 요동정벌의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왕자의 난으로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이미 명도 요동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고 있는데 조선의 요동정벌이 성공할 가능성은 고려 3차 요동정벌보다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육룡이 나르샤 요동정벌 위화도 회군를 그린 위의 사진을 보면 눈발이 날린다. 

 

사실 육룡이 나르샤에서 고증을 찾는다는 것은 배부른 투정이다. 한국 드라마가 특히 사극에서 고증이 있었던 적은 극히 드물다. 더불어 계절과 맞지 않는 경우는 비일 비재하다. 

 

이성계 요동정벌은  음 4월에서 음 5월 양력으로 5월에서 7월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위화도 회군을 하는 명분으로 내세운 여름이라서 비가 오니 활의 아교가 물러저 활을 쏠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여름에 눈이 오는 요동정벌신이라니 이성계 요동정벌 위화도 회군만큼 허술함 투성이다.

 

더군다나 요동성을 점령하고 보급품을 받겠다고 말하는 김영현의 시나리오는 형편이 없다.

 

압록강에서 요동성까지의 거리는 압록강에서 평양성 보다 길다.

 

요동정벌 1차전은 고려 공민왕 1370 1이성계를 필두로 보병1만 기병 5천으로 성공적인 요동정벌이 완수 되지만, 군량미가 타는 바람에 퇴각하고 만다.

 

2차 요동정벌은 1차 요동정벌과 같은해 공민왕 1370 11월에 이성계 친위대 1600명 기병 3천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후속부대가 같이 한다.

 

 

 

 

3차 요동정벌은 1,2차 요동정벌이 있은 후 18년 명나라와 충돌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강했다.

 

그래서 1388 3~4월에 계획을 세우고 1388년 5월 26일 출전했지만, 6월 11일 위화도에 진주한 요동정벌군은 6월 26일까지 위화도에서 한발도 나가지 않고 밍기적 거린다.

 

그리고 이성계는 정벌군의 일원인 조민수 장군을 꾀어 개경을 친다.

 

이성계의 선발대가 이성계의 계획하에 요동을 치는 대신에 고려 조정을 향해 칼부리를 돌려 쿠데타를 한 것이다.

 

추후 조민수  장군도 이성계에게 축출된다.  

 

위화도 회군의 명분이였던 첫번째 소국이 대국을 칠수 없다는 이유는 이미 1~2차 요동정벌로 명분이 없다.

 

당시에도 원은 대국이고 고려는 소국이니 말이다. 당시에도 왜구들은 남쪽바다를 수시로 침범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조선이 건국되고 난 후 이성계와 정도전 요동정벌 계획를 세웠다는 사실은 고려 3차 요동정벌의 명분을 스스로 없애 버렸다.

 

이성계가 처음부터 요동정벌에 관심이 없었는지를 알수 있다. 3차 요동정벌 군은 처음 1388년 5월 24일 평양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1388년 6월 11일 위화도에 도착한다.

 

6월 26일까지 위화도에 밥을 축낸 요동정벌군은 회군하고 1388년 7월 4일 개경에 도착하는데 9일만에 개경까지 전광석화처럼 회군하여 최영을 축출한다.

 

 

평양에서 위화도 까지 17일, 위화도에서 개경까지 회군 9일 이들 군이 처음부터 요동정벌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들어나는 것이다.

 

이성계와 그 일파는 이미 이때 반란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다.

 

육룡이 나르샤에서도 이성계는 1383년 즈음부터 쿠데타를 꿈꾸고 있었다고 이야기를 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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