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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IN드라마/선덕여왕

선덕여왕, 위천제 미실 일식은 정말 있었나?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이 사다함의 매화(가야의 역법)과 수나라 사신단을 따라온 장대인으로 부터 많은 황금을 주고 산 대명력으로 일식을 예측하고 일식을 맞춥니다. 위천제를 하면서 미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게시를 받았다는 미실이  위천제를 하자 일식 있습니다. 일식이 되는 때를 기다려 위천제를 올리는 상황입니다. 당시 신라에 일식을 예측할 만한 천문학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일식을 맞춘때는 조선의 세종때이니 말입니다. 어찌되었던  일식이 나타나자 신라인들은 사색이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미실은 날씨도 잘 맞춘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서로는 기후(날씨)를 맞출수는 없습니다. 천문의 위치를 알 수 있을 뿐이지요. 기후학도 천문에서 갈라진 한 지파에 불과하니 기후를 예측할만 내용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니 하늘을 뜻을 아는 미실은 신이고, 인간으로 화한 현인신이 됩니다.

사실 왕은 그당시 현인신이기도 합니다. 불교가 수입되고 이를 고구려, 백제가 공인하는 이유도 부처가 곳 왕인 왕즉불사상으로 부터 나옵니다. 초기 불교를 수입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불상의 모습은 불상을 조성한 왕의 모습을 하고 있는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렇다면 신도를 따르는 미실이 예측하고, 맞춘 일식은 진평왕 시기에 있을까요?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19년(572)에 사신을 북제(北齊)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초하루 경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39년(592) 가을 7월 임신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원성왕

3년(787) 봄 2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몸소 신궁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다. 여름 5월에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가을 7월에 누리가 곡식을 해쳤다. 8월 초하루 신사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기록상으로는 미실이 맞춘 일식은 없습니다. 또한, 어느때에 해당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미실시대에 가장 가까운 때의 일식은 572년, 592년, 787년 입니다. 그것도 신라에서 기록한 것은 원성왕시기(787년)이고, 나머지는 백제 위덕왕시기에 백제 사비(?)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꼭 사비(부여)하늘에서 만 관찰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일식의 정확한 주기를 모르는 관계로 알 수는 없지만, 대략 일식 기록을 보면 약 20년의 주기로 관찰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612년경에 일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일식이 있다고 해도 . 비가 온다거나, 구름이 끼었다거나 해서 기후에 따라 관찰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과거 하늘의 흐름을 알고자 하는 것은 제왕의 기본적인 형태입니다. 그래야 미실처럼 제사장의 위치를 점하고, 하늘의 자식임이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왕의도에는 천문을 관찰,관측,예측하는데 온힘을 씀니다.

그렇지 않고 예측된 일식이나 월식이 있지 않는다면, 그것은 왕의 부덕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조선 세종때에도 일식을 예측하는데  10여분의 오차를 보이자 천문을 담당하는 관리가 죄를 받고, 세종은 무능한 인물로 백성들 사이에 찍히게 됩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도 <첨성대>를 만들게 되는 이유는 덕만이 사막에서 역서를 가지고 오면서 만들게 되었다는 인과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사전작업으로 미실이 사다함의 매화(역서)를 받아 신처럼 군림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한것 입니다. (물론, 글쓴이는 첨성대를 별자리 보기용 천문기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는 따로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어찌되었던 진평왕시기에 일식에 관한 기록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천문의 위치를 알 수 있는 skymap이란 소프트웨어가 있는데 이를 확인 하지는 못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스카이맵으로 확인해보시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글은 오류가 있습니다. 선덕여왕에서 일식이 아닌 월식이였군요.. 어찌되었던  월식에 관한 기록은 잠시 찾아 보았지만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