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IN드라마/선덕여왕

선덕여왕은 사극판 트루먼쇼

덕만의 뿌리찾기에 이은 비담의 뿌리찾기

선덕여왕 31회에서 문노와 소화의 대화를 들은 비담은 자신이 덕만과 결혼할 수 있었던 사실을 엿듣게 된다. 공주와 결혼할 수 있는 신분이라면, 비담은 자신의 출신성분이 낮은 천민이나 평민계급이 아니라는 사실을 감각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32회에서 비담은 문노를 찾아가 두번째 문제는 무엇을 낼것인지 궁금하다고 한다. 비담이 문노를 찾아간 목적은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묻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 주저하며 그저 비재의 이야기를 한다. 누구나 부탁을 할때 일상적인 문제부터 꺼낸다. 오늘 날씨 좋지? 또는, 요즘 건강은 어때? 등 자신의 속내를 주변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면서 비담은 화랑이 되고 싶다고 한다. 화랑이 되기 위해서는 출신성분을 알아야 한다. 귀족의 자제가 아니면 화랑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모을 알려달라는 것이다.


신국인 신라의 3가지 의미

문노는 유신과 보종에게 두번째 비재를 낸다. 신국인 <신라>가 가진 3가지의 의미를 알아오라고 한다. 시한은 3일이라고 한다.

첫번째 의미.  서라벌은 쇠벌에서 온것이라고 말을 한다. 북방의 철기라고도 하고. 금과 쇠가 그 어느나라보다 뛰어나다 한다. 그래서 서라벌의 쇠는 단단해서 타국이 함부로 못했다고 한다. 쇠는 고대사회에서는 권력의 상징이고 군사력의 상징이다. 이를 화랑도 창설과 연결시키려고한다. 이는 무예이고 무력증진이다.

두번째 의미.  새로운것을 엮는다라고 한다. 새로운 문물을 가져온 혁거세 거서한을 받아들였듯이 신라는 새로운 문물과 신세력을 받아 더 강하게 한다. 그러니 신흥세력의 발탁이라고 한다. 또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뛰어난 기재를 키워냈다고 한다. 그래서 화랑이 필요했다고 이야기를 한다.

세번째 의미.  그렇다면 마지막 한가지는 무엇인가?라고 반문한다. 그렇다면 무력과 신흥세력을 키워 무엇을 할것인가? 라고 반문한다. 

답은 <삼한일통>이다. 대한민국의 국시가 한때 반공인 시절도 있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 시절도 있었다. 이처럼 지증의 유지인 <삼한일통>으로 가는 기나긴 여정이 한세대에 이룰 수 없고, 덕만에서 승만(진덕)으로 춘추로 이어진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를 이룰수 있는 주체세력이 다름 아닌 화랑이다. 작가는 요렇게 말을 하고자 하는것이다. 답을 알고 보면 재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답을 찾아가는 덕만과 유신을 보는것도 잼있지 않겠는가? 사극은 과거를 통해서 현시대상황를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러니 현재로 돌아오면 "통일을 위해서 니들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니?"라고 질문을 던진것이다. 사극을 볼때는 사극을 만든자와 같은 장단에 놀아주어야 한다. 사극은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게 역사고 사극을 보는 방법이다.



지증왕의 불가능한 꿈?

이사부,노리부,진흥

신라의 3번째 답은 이사부가 언급했다고 한다. 그러니 알고 있어도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증이 신라로 지은 이유가 있다고한다. 진흥(원종:이순재)왕은 지증왕의 꿈은 한세대에 이룰 수 없으니 국사를 편찬하여 지증왕의 유지를 자손만대에 전하라고 한다.

거칠부가 국사를 편찬하게 된때는 545년이다. 그러니 문노는 거칠부의 사위로 그 뜻을 알수 있었을 것으로 짐작하게 한다. 545년 년도를 잘기억해 두기 바란다.

진지(임호)시기 국사의 기록들이 훼손되었다. 또한, 국사를 모두 불사르라고 명령하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분서갱유를 한 진시황과 같은 인물이라는 설정이다. 결국에는 진지를 폐위할것을 거칠부와 노리부와 결의한다. 이때 세종의 아버지인 이사부는 병중에 있었지만, 진지의 폐위에 동의를 한다. 또한, 문노도 이에 가담은 아니지만 묵인을 한다. 묵인의 댓가가 화랑 8세 풍월주의 지위였다.

미실이 진흥의 유지를 감추면서 까지 진지를 옹립하려한 것은 무슨 때문인가? 유언중 진평을 옹립하려고 한것을 제외하고 다른 선제 진흥의 유흔은 무엇이였을까? 이는 신라의 국호에 대한 숨은 3번째의 뜻을 감추기 위한 진지의 뜻이였다?

왜? 진지는 그런 계획에 동의할 수 없는 지는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영영나오지 않을수도 있고, 선덕여왕이 자주 사용하는 과거회상신으로 진지가 신라 국호의 3번째 의미를 감춘 이유가 나올것이다.
잼있게도, <선덕여왕>은 진지의 풍기문란을 이유로 폐위된것이 아니라고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사부와 거칠부와 노리부는 미실을 진평의 비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또한, 미실이 황후가 되는데 힘을 보태라고 한다. 그것이 신국을 위하는 길이라고 한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다. 이사부는 세종의 아버지다. 자신의 며느리를 황후로 세우려고 한다. 황후가 되면 세종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텐데도 말이다.

물론, 화랑세기에는 왕들과 같이 황후도 사통을 한다. 단, 황후일때는 사통을 하지 않고, 황후의 직에서 물러난 때에 한 해서이다. 그래야 황후의 몸에서 난 자식을 왕의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겠는가? 누구의 씨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후사를 보겠는가?  성골, 진골을 믿던 믿지 않던, 상관없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무시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화랑세기에는 용춘의 어미인 지도태후는 진지가 폐위된후 천주와 관계하여 염장을 낳는다. 그러니 용춘.용수 형제와 염장은 이부동모인 형제간이 된다.


거칠부는 미실에게 진흥제의 뜻을 공개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 왜 하려고 하느냐고 반문한다. 전쟁을 하게 되면, 왕권이 강화된다고 한다, 그러나 왕권강화에 반해서 신하와 귀족의 권한이 없어져 버린다. 그러니 국호를 정한 이유중 2가지만 공개를 하고 <역사왜곡>하자라고 한다. 이에 거칠부는 이름처럼 거칠게 거부를 한다.

하지만 미실은 왕후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었을 때는 적극적으로 지증의 유지를 받들어 진지를 폐위하는데 앞장섰다. 하지만 왕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할 일도 아닌데 구지 자신의 천신황녀의 권위가 훼손되는데 찬성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거칠부는 진흥대제가 붕어하던날 미실 당신은 무엇을 하였는지 물어본다. 하지만 미실은 거출부에게 더이상 알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은연중에 협박을 한다.


국사는 48편이라고 하고, 진지가 왕위에 오른뒤 지증제1편의 신라 국호관련 3번째가 훼손되었다. 문노는  미실에게 3번째가 무엇인지 알고 있지 않는가?라고 물어본다. 미실은 알고 있지만, 알려줄 수 없다고 말한다. 

선덕여왕에서는 거칠부가 쌍생이 태어난 <임술년>에 죽었다고 말을 한다. 이전글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거칠부가 죽은때는 통설상 <기해년>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9/08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납량극보다 섬뜩한 비담, 그리고 기사를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거칠부가 국사를 만들때 48편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 거칠부가 만든 기록이 48편인지는 알수 없다. 단지 진흥왕시기에 만들었으니 국사에는 진흥왕에 대한 기록은 담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박혁거세로 부터 법흥왕때까지의 기록이 담겨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진흥왕은 박혁거세로부터 24대왕이 된다. <선덕여왕>에서는 각왕마다 전편.후편을 만들었다는 의미인데 당대왕인 진흥때 까지 기록한 것으로 설정했다는 말이 된다. 몇년도 재위하지 않는 왕이나 장수해서 오랬동안 재위한 왕이나 '필히 두권식 만들었다'는게 너무 작위적이지 않는가? 작위적인 냄새가 난다는 이유를 진흥왕시기 언제 <국사>라는 놈을 만들었지는 글을 계속 읽다보면 알게 될것이다.


진흥과 거칠부

어찌되었던 거칠부가 만든 역사 책이름이 <국사>였을까? 설이 분분하지만, 그저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게 했다가 통설이다. 요즘 국정교과서 처럼 <역사>나 <국사>로 만들었겠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이사부가 늙은 진흥왕에 아뢴다. 나라의 역사는 임금과 신하의 선악을 기록하여 좋고 나쁨을 만대에 보여 본보기로 삼아야 합니다. 또한, 지증왕의 유지를 받들려면 꼭 기록으로 만들어 후대까지 알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감동적이지 않는가? 그럼 삼국사기에 기록된 이사부가 왕에게 아뢰어 신라의 역사를 기록한 때의 기록을 살펴보자. 조금 황당한 사실을 알게 될것이다.

삼국사기 진흥왕 6년 7월 나라의 역사를 수찬하다.

6년(545) 가을 7월에 이찬 이사부(異斯夫)가 아뢰었다. “나라의 역사는 임금과 신하의 선악을 기록하여 포폄(褒貶)을 만대(萬代)에 보이는 것이니, 이를 편찬하지 않으면 후대에 무엇을 보이겠습니까?” 왕이 진실로 그렇다고 여겨 대아찬 거칠부(居柒夫) 등에게 명하여 문사들을 널리 모아 국사를 수찬케 하였다. - 삼국사기 진흥왕 6년 7월 나라의 역사를 <수찬>하다.

거칠부가 문사를 모아 신라의 역사를 수찬한 때가 진흥왕 6년이다. 진흥왕 6년은 545년이고, 진흥왕은 7세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니 진흥왕 12살에 역사를 편찬할 커다란 계책을 받아 들인것이다. 그런데 선덕여왕에서는 다 늙은 이사부와 다 늙은 거칠부와 다 늙은 노리부와 거기에 늙은 진흥왕이 있다. 진흥왕은 조로증이 있었나보다. 조루라고 생각하지 마라, 조로이다. 그렇다고 쾌걸조로도 아니다. 일반인과 다르게 일찍늙는다는 뜻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거칠부의 입을 통해서 미실이 역사를 왜곡하는것에 반대하고, 진평이 이 사실을 알수 있도록 흔적을 남겨 놓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진평에게 주면 진평이 잘알거라고 했는데 진평은 20년동안 연구를 했는데도 모른다고 한다. 거칠부가 진평을 문자마방진으로 바보로 만드는 순간이다. 


진흥왕은 드라마에서 보는것 처럼 늙어서 죽지 않았다.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2009/07/17 - [역사이야기] - 보과와 법흥 그리고 진흥왕은 천수를 누리지 않았다.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귀찮은 분을 위해서 24대왕인 진흥왕은 576년에 죽는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진흥왕은 7세에 왕위에 오른게 통설이다. 그렇다면 진흥왕은 죽을때 몇살이였을까? 43살이 되시겠다.

진흥(입종/지소)왕 6년이면, 진흥왕이 친정을 하지 않고, 진흥왕의 어미인 지소태후(법흥/연제)가 섭정을 할때이다. 어찌되었던 <수찬>에 주의있게 봐야 한다. 수찬이란 기존에 있던 기록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편찬하였다는 뜻이다. 그러니 진흥왕이전에 각왕의 기록이 있었다는 반증이고, 단지 진흥왕 6년에 거칠부가 한 일은 기존의 사서들을 집대성하여 일목요연하게 만들었다는 뜻이 된다.

헛고생한 덕만과 유신

지증제 1권을 읽고 있던 보종과 석품을 향해 설원을 어짜피 저줄 싸움이기 때문에 답을 찾지 말도록 요구한다. 또한, 답을 알아서도 안되고 관심을 가져서도 않된다고 한다.

또한, 아무리 국사를 읽는다고 해도 알아낼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유는 지증제편이 진평왕시기 세종이 상대등으로 있을 때 다시 쓰여졌기 때문이다. 거칠부가 죽고, 나서 상대등에 세종이 되었다.

그렇다면 세종은 언제 상대등에 올랐을까? 미안한 이야기지만 세종은 상대등에 오른 적이 없다. 진지왕 원년 거칠부가 상대등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세종은 577년 10월 진지2년 이찬의 직위로 백제가 침입하자, 백제군을 몰살시키고, 내리서성을 쌓고 돌아온다. 진평왕 원년에 진지왕을 폐위하는데 공을 세운 노리부가 이찬에서 상대등으로 직위가 상승한다. 그러니 거칠부는 576년에서 579년사이에 죽었을 것이다. 통설은 거칠부를 579년에 78세로 죽은 것으로 하고 있다.
만약, 세종이 상대등이 되었다면, 시기는 577년10월에서 579년 8월 사이 밖에 없다.

덕만이 진평에게 거칠부의 서찰을 보여달라고 하자. 진평은 그저 "서찰함을 가져오라"고만 한다. 그런데 시종은 거칠부의 서찰을 가져온다. 역시 아랫것들은 알아서 기어야 한다. 누구도 거칠부의 서찰을 가져오라 하지 않는데 자동으로 거칠부의 서찰을 가져오다니, 미실이 소화가 더이상 자신에게 필요가 없으니 알아서 하라고 하니 죽여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게 아랫것들의 생각이다.

이는 오야붕이 아랫놈에게 '알아서 해'했다고 죽여버리는 꼬붕을 생각하면 된다. 주체적인 생각이 없다. 현대사에서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관리를 잘하라고 하니 삥탕을 치라는 말이구나 하고 회사공금을 유용하여 비자금을 만들기도 하고, 집회.시위를 잘 관리하라고 하면 때려 잡는게 아랫것들 일이라고 알아서 곤봉질에 총질에 난리도 아니다. 꼬붕들의 세계란 참으로 단순하기 그지가 없다. 

용춘, 서현, 진평, 알천, 유신, 세종, 미실, 설원랑, 흥륜사주지 등의 입을 통해서 국사작업을 흥륜사에서 했다고 하며, 거칠부는 우륵을 발탁하고, 마방진에도 능하고, 주령구를 만들고, 그림에도 능하고, 각석과 세필에도 능했다고 한다.

선덕여왕은 사극판 트루먼쇼

죽방은 "라(羅)는 그물처럼 백제와 고구려를 다 잡아먹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이미 시청자에게 말해 버렸다
결론은 문자마방진을 알고 있으면 되고, 세필을 알면 된다는 뜻이다. 시청자 니들만 알고 있어요"라고 차분히 설명을 해주고 있다.

시청자들에게는 전지적인 힘이 있는" 신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관찰하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시청자 여러분 당신들은 "선덕여왕판 트루먼쇼를 보고 계십니다"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어찌되었던, 드라마에서 녹아나지 못하고, 헛돌던 유신이 주체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시점에 도달해가고 있다. 덕만이 성장하고 있다면 유신도 같이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덕만과 유신이 각성을 하면서 성장해 가는 성장드라마이며, 추리기법을 이용한 추리극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추리물과 성장과 격물을 중요시 하는 이유는 작가의 성향을 파악하면 쉽게 알수 있다.


 특별기획드라마 대장금, 서동요의 김영현 작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와 드라마 히트의 박상연 작가가 공동 집필을 맡았다

김영현의 대장금이나 서동요를 본사람이라면 알 수 있지만, 이야기를 전개할때 대장금이 끝없는 미션을 수행하면서 성장해 간다. 거기에 약간의 추리적인 요소와 격물을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사용한다.

또한, 각종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여 실험을 한다. 애드립의 달인 순돌이 아버지 임현식과 지상렬을 출연시켜서 개그적인 재미를 주고 있다 선덕여왕에서 이문식과 류담을 출연시킨것과 일맥 상통한다. 이병훈PD에 배운 드라마 성공코드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JSA의 박상연은 공동경비구역내에서 벌어진 총기사건을 추리기법으로 하나하나 범인과 진상을 풀어나간다. 공교롭게도 대장금과 JSA에 이영애가 출연했다는 공통점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등장하지 말아야할 돋보기도 등장하고, 나을신궁에서 피가 쏫구치고, 불상이나 비석이 솟아나오고, 야광새가 궁성위를 날아 다니는 것이다. 김영현 특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박상연의 결합이 금상첨화처럼 드라마를 만들어 간다.

다만 아쉬운점은 이들의 공통점이 역사에 그리 밝지 못하다는 것이다. 서동요에서도 마찬가지로 전혀 역사에 부합하지 않게 엉뚱한 내용이 간간히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서동요나 대장금에서 역사적인 설정에 지금 선덕여왕처럼 별로 딴지를 받지 않은 이유는 이병훈이란 관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에는 이를 관리할 사람이 없다.



유신은 풍월주가 되기 위해서, 덕만은 문노에게 답을 주기 위해서 덕만과 유신은 서로 3번째의 비밀을 알아야 한다.

덕만은 마방진을 알아내고, 유신은 세필을 알아 내서 서로 합치시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다시금 소엽도가 다시 전면에 등장한다. 소엽도에는 세필로 신라의 3번째 비밀이 간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