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의 시청률의 일등 공신은 미실(고현정)이다. 하지만, 미실은 늙지도 않고, 유신이 풍월주가 612년 까지도 생존하고 있다. 미실은 동생인 미생(550년)보다는 빠르고, 546년생인 사다함과 비스한 때에 태어났다. 하지만 극중에서 조금씩 늙어가고는 있지만, 미실이 청춘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612년 미실은 63세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미실은 이때까지 생존하고 있었을까? 궁금하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이 <선덕여왕>의 시청률 때문에 죽지 않는 미실을 살려둔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물론, 나 또한 한때 그런생각을 한적이 있다. 미실은 그의 낭군인 세종과 설원랑과 함께 영흥사에 들어가 불공을 드리며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말년에 병이 들자, 설원랑은 지극정성으로 미실을 간호하였다. 그리고 미실이 죽자 설원랑도 따라 죽었고, 세종 또한 따라 죽었다.
태어난 때는 달리하지만 죽을때는 같이한다는 부부지연과 형제결의를 실제로 실천한 이들이 미실과 세종과 설원랑이다. 하지만, 화랑세기에는 이들이 죽은 날에 대한 기록이 없다. 6세 풍월주 세종, 7세 풍월주 설원, 11세 풍월주 하종(세종/미실), 16세 풍월주 보종(설원랑/미실) 이처럼 미실, 세종, 설원의 죽음은 미스테리하다.
그렇다면 미실은 언제 죽었을까? 이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16세 풍월주이고 미실과 설원랑의 아들인 보종을 이어 풍월주에 오른 17세 염장의 기록에 미실이 최소한 유신이 15세 풍월주가 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비재를 통해서 14세 풍월주 호재(603~612)의 뒤를 이어 15세 풍월주 유신이 오른 것으로 처리하였다. 하지만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이때 미실 자신의 아들인 <보종>이 호림의 부제의 자격으로 풍월주에 오를수 있었다. 하지만, 미실은 <보종>에서 풍월주의 지위를 나이 어린 유신(18세)에 양보하게 하였다. 이에 효성이 지극한 보종은 어머니 미실의 뜻을 따른다. 하지만, 보종(33세)을 따르던 염장(27세)은 유신이 풍월주에 오르는데 적극 반대를 한다. 미실은 염장을 불러서 유신이 풍월주에 오르는데 어쩔수 없는 이유를 들어서 달랜다.
유신이 어쩔수 없이 보종보다 나이가 어리고, 염장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유신이 풍월주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미실이 유신의 할머니이고 진평왕의 모후인 <만호태후>를 두려워 하였기 때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이 하종(세종/미실)의 딸인 영모를 아내로 맞이하도록 하였지만, 실제는 만호태후가 <미실>을 달래기 위해서 <영모(하종/미모)>를 유신의 아내로 내려준 것이다. 미실은 만호태후를 위해서 풍월주를 양보하고, 만호태후는 미실을 달래기 위해서 영모를 손주며느리로 받아 들인것이다.
어찌되었던 "미실은 유신이 풍월주가 되는 612년까지 생존하고 있었다"는 것은 확인이 된다. 다만, 미실이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아름다움을 유지했는가?는 알 수 없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실은 색도의 달인이다. 색도는 관계를 하면서 젊음을 유지하고, 관계를 맺는 상대자 또한, 도를 얻어 <불로장생>케 하는것을 말한다.
요즘도 적절한 부부관계는 삶을 젊게 살도록 한다고 한다. 또한, 중국의 <황제내경>이나 <소녀경>,인도의 <카마수트라>은 관계를 통해서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무병장수를 하며, 도를 깨우치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또한 불교의 밀교 또한 관계를 통해서 <도>를 얻는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는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고현정)이 <공주가 돌아왔다: 공돌>의 황신혜보다도 젊고, 63세 이상의 나이로 젊음을 유지하는 이유는 보톡스나 성형술이 아닌 <색도>로 득도 했기 때문이니 너무 탓하지는 마시길 바란다.
그런데 화랑세기에는 10세 풍월주 미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건복 26년(609)에 세상을 떠났다. 나이가 60이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문노는 이보다 앞선 606년에 죽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죽은 자들이 많이 나온다.
또한 살아 있어야 하는 천명도 죽이고, 용수도 죽인다. 왜? 죽은 자를 살려놓고, 살아야 하는 자는 죽이는 이유는 <원작자>만이 알 수 있다. 또한, 설원, 세종, 미실을 언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퇴출 시킬지 그것이 알고 싶기는 하다.
35회에 보여준 유신(엄태웅)의 연기는 극중의 방황자에서 서서히 엄태웅의 진가가 발휘되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덕만과 춘추의 첫대면에서 춘추(유승호)의 말하는 톤과 억양은 치기어린 춘추를 연기하고 반감을 가진자의 속내를 보여준다고는 하지만, 아직 사극에 적응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어찌되었던 15세 풍월주가 된 612년에는 춘추는 10살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선덕여왕>의 시청률 때문에 죽지 않는 미실을 살려둔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물론, 나 또한 한때 그런생각을 한적이 있다. 미실은 그의 낭군인 세종과 설원랑과 함께 영흥사에 들어가 불공을 드리며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말년에 병이 들자, 설원랑은 지극정성으로 미실을 간호하였다. 그리고 미실이 죽자 설원랑도 따라 죽었고, 세종 또한 따라 죽었다.
그렇다면 미실은 언제 죽었을까? 이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16세 풍월주이고 미실과 설원랑의 아들인 보종을 이어 풍월주에 오른 17세 염장의 기록에 미실이 최소한 유신이 15세 풍월주가 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호림공이 풍월주가 되자, 보종공이 부제가 되었고 공은 전방대화랑이 되었다. 그 때 나이 18살이었는데, 용기와 힘이 있어 능히 무리를 복종시킬 수 있었다. 키가 이미 보종공보다 커서 보종공을 아이처럼 늘 업어 주었다. 보종공이 유신공에게 양위를 하자, 염장공이 홀로 받아들이지 않고 보종공을 보호하려 하였다. 호림공이 곤란하게 여겼다. 미실궁주가 이에 염장공을 불러 달랬다. - 화랑세기 17세 풍월주 염장 612년 기록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비재를 통해서 14세 풍월주 호재(603~612)의 뒤를 이어 15세 풍월주 유신이 오른 것으로 처리하였다. 하지만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이때 미실 자신의 아들인 <보종>이 호림의 부제의 자격으로 풍월주에 오를수 있었다. 하지만, 미실은 <보종>에서 풍월주의 지위를 나이 어린 유신(18세)에 양보하게 하였다. 이에 효성이 지극한 보종은 어머니 미실의 뜻을 따른다. 하지만, 보종(33세)을 따르던 염장(27세)은 유신이 풍월주에 오르는데 적극 반대를 한다. 미실은 염장을 불러서 유신이 풍월주에 오르는데 어쩔수 없는 이유를 들어서 달랜다.
이는 미실이 유신의 할머니이고 진평왕의 모후인 <만호태후>를 두려워 하였기 때문이다.
호림공이 풍월주의 지위를 물려주겠다고 청하였다. 공은 사양을 하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에 15세 풍월주가 되었다. (만호)태후가 하종공의 딸 영모(令毛)를 아내로 맞이하도록 명하여 미실궁주를 위로하려고 하였다. 영모는 곧 유모(柔毛)의 동생이었다. 형제가 모두 선화(仙花)의 아내가 되었다. 그 때 사람들이 영화롭게 여겼다. 곧 건복(建福) 29년 임신년(612)이었다. 공이 풍월주의 위에 올랐다. 날마다 낭도들과 더불어 병장기를 만들고 궁마를 단련하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이 하종(세종/미실)의 딸인 영모를 아내로 맞이하도록 하였지만, 실제는 만호태후가 <미실>을 달래기 위해서 <영모(하종/미모)>를 유신의 아내로 내려준 것이다. 미실은 만호태후를 위해서 풍월주를 양보하고, 만호태후는 미실을 달래기 위해서 영모를 손주며느리로 받아 들인것이다.
요즘도 적절한 부부관계는 삶을 젊게 살도록 한다고 한다. 또한, 중국의 <황제내경>이나 <소녀경>,인도의 <카마수트라>은 관계를 통해서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무병장수를 하며, 도를 깨우치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또한 불교의 밀교 또한 관계를 통해서 <도>를 얻는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는다.
그런데 화랑세기에는 10세 풍월주 미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건복 26년(609)에 세상을 떠났다. 나이가 60이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문노는 이보다 앞선 606년에 죽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죽은 자들이 많이 나온다.
또한 살아 있어야 하는 천명도 죽이고, 용수도 죽인다. 왜? 죽은 자를 살려놓고, 살아야 하는 자는 죽이는 이유는 <원작자>만이 알 수 있다. 또한, 설원, 세종, 미실을 언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퇴출 시킬지 그것이 알고 싶기는 하다.
35회에 보여준 유신(엄태웅)의 연기는 극중의 방황자에서 서서히 엄태웅의 진가가 발휘되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덕만과 춘추의 첫대면에서 춘추(유승호)의 말하는 톤과 억양은 치기어린 춘추를 연기하고 반감을 가진자의 속내를 보여준다고는 하지만, 아직 사극에 적응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어찌되었던 15세 풍월주가 된 612년에는 춘추는 10살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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