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과 덕만사이에 국혼이 진행된다. 비담과 덕만의 국혼이 성사되는 이유는 다른 이유가 없다. 비담을 좋아하는 팬들이 비담과 덕만의 사랑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에 의해서다.
덕만과 비담의 러브라인 요구를 하게 된 이유는 작가들이 드라마 전개를 전혀 역사와 부합되지 않게 전개하고 있으니, 드라마를 보는 아무 생각없는 시청자중 자기들이 좋아하는 배우가 극중에 많이 나오고, 이왕이면 왕과 썸씽이 있는게 좋지 않는가 하는 요구를 시청율에 목맨 작가들와 제작자가 어짜피 버린몸 시청율이나 올려보자는 알팍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와는 무관하지 오래이니, 차라리 덕만과 춘추의 결혼이 더 낫지 않을까 하지만 말이다. 춘추와 덕만은 안된다고? 하다면 드라마 인데 어떻겠는가? 어짜피 드라마 선덕여왕은 환타지 사극도 아니고 퓨젼사극도 아니고, 드라마가 갖춰야 할 개연성이나 스토리 구조는 망가질 때로 망가졌는데 말이다. 현재 드라마는 개그 프로 보다도 못한 상태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실이 떠나고 드라마 선덕여왕의 이야기가 재미가 없어지고, 극중 개연성도 없어졌다고 하지만, 실제는 미실이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할때 부터 선덕여왕은 극으로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덤앤더머의 최고봉은 미실과 설원과 덕만이였다.
오히려 미실이 떠난 상황에서 드라마 선덕여왕이 그나마 개연성도 확보하고 드라마 다워졌지만, 미실이 있을 때 보이지 않던 흠결들이 미실이 떠난 후 개안을 하듯이 흠결들이 부각되었을 뿐이다.
바보들의 행진은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시대의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세상과 동떨어진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보들이란 자조적이고 역설적인 표현이였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미실이나 덕만이나 유신이나 모든 배역들이 정말 바보들일 뿐이다. 혹시 배역을 맡은 배우들 까지 역사는 고사하고 기초상식 조차 모르는 바보들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현재 드라마 전개상 덕만 다음대 왕이 진덕인것은 분명한데 진덕역의 승만은 드라마에 등장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덕만 다음대에 춘추가 왕이 된다고 해서 달라질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드라마 상에서 춘추는 나이가 어리니 역사 기록상에서 654년에서 661년까지 29대 신라왕이 되는 것 보다는 647년 부터 왕이 되는게 더 멋스럽지 않겠는가? 또한, 최소한 삼한일통의 기초를 닦을려면 8년 재위보다는 647년부터 재위해서 14년 재위하는게 멋지지 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드라마 인기도 떨어지는데 미실이 자살한줄 알았는데 지리산에 들어가 수행을 한후 돌아오는것으로 설정해서 덕만의 뒤를 이어 미실이 왕이 되고 이름을 승만으로 바꾸었다고 설정하는것이 다시 드라마 선덕여왕의 시청율을 높이는 방법이 아닐가 한다. 여기까지가 드라마 리뷰였다.
덕만은 누구와 결혼했을까?
그렇다면 기록상 선덕여왕은 비담과 결혼을 하였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의 기록상 선덕여왕이 결혼한 상대은 최소한 4명이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죽여 버렸다. 첫번째는 용수이고 두번째는 을제이다. 그리고 당연히 결혼한 용춘은 존재 여부도 불투명하게 만들어 버렸다. 또한, 흠반갈문왕과 결혼한 것으로 나오지만 존재여부가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덕만과 비담이 국혼을 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결혼이 성립되기 전에 덕만이 죽어버리고 닭쫓던 개 지붕처다 보듯이 비담이 사랑하는 덕만을 위해서 난을 일으키는것으로 설정할 수도 있지만, 현재 까지 결혼 상대자 비담이 국혼을 한다면 기록상 비담은 흠반갈문왕이 된다는 뜻이다.
삼국유사 왕력편에 의하면 선덕여왕 덕만은 634년 왕위에 오르는 즈음에 이미 결혼 상태에 있었다. 결혼 대상은 <음갈문왕>이였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580년 태어나서 646년 11월까지 67세가 되도록 성처녀로 있다가 늦바람이 나서 어린(?) 44세의 춘추를 놔 두고, 68세 비담과 결혼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삼국유사에서 덕만이 결혼 관계에 있었다는 기록은 덕만이 죽을때 자신의 무덤자리를 도솔천 위에 만들라고 했을때, 신하들이 <지기삼사> 중 황제는 어찌하여 모란에 향기가 없다는 뜻을 알게되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답으로 이세민이 자신이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 모란꽃이 들어오기 전까지 덕만은 남편(배필)이 없었다는 뜻이 된다. 모란꽃이 들어오고 나서 <음갈문왕> 배필이 생겼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선덕왕 덕만은 언제 <음갈문왕>과 결혼을 하였을까?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의 632년1월부터 647년 1월까지 16년 재위한것과는 다르게 634년 3월부터 647년 1월 8일까지 14년 재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모란꽃 이야기는 627년 11월 사건 전후에 있었던 일이다.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모란씨 서되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니 <음갈문왕>과 결혼은 627년 11월 이후부터 634년 사이에 있었던 일이 된다.
만약,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가 위서가 아니라면, 음갈문왕과 결혼시기는 더 줄어 들게 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용춘은 629년 이후에 덕만과 결혼하고, 그후 용춘의 형 용수와 결혼관계에 있지만, 을제가 대신으로 덕만과 결혼한 때는 632년 1월이다. 그러니 음갈문왕과의 결혼은 632년 이후에서 634년 사이가 된다. 만약, 화랑세기의 흠반갈문왕이 <음>갈문왕과 동일인이라면 634년 1월 연호를 인평으로 바꾼해에 결혼한 것이다. 그러니 기존 통설과는 다르게 덕만은 나이가 어릴때 왕위에 올랐다는 또다른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음갈문은 누구일까?
선덕의 뒤를 이어 왕위를 이은자는 승만이다. 승만은 국반갈문왕의 딸이다. 국반갈문왕은 덕만의 아버지 진평왕의 동생이다. 즉 국반갈문왕은 덕만의 작은아버지이고 덕만은 작은아버지와 결혼을 한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덕만이 죽고, 의붓 딸인 승만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비담은 승만이 왕위를 잇는데 불만을 품고 명활성에서 난을 일으키는 것이다.
결론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과 덕만은 결혼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결혼에 실패한 비담이 난을 일으킨다는 설정이거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궁을 떠나는데 정치에 관여를 해서 맹약서 대로 춘추에 의해서 비담이 죽는 것이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물론, 정상적인 드라마라면 비담의 결혼은 실패해야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정상적인 드라마와는 전혀 다르니 어떻게 진행될지는 작가들의 쪽대본에 달려있을 뿐이다. 다만, 역사와 전혀 다르게 진행될것이란건 그동안 드라마 선덕여왕의 형태로 봐서 알 수는 있다.
어쩌면 시청자들 중에서 비담이 선덕여왕 다음대 왕이 되는 걸로 설정해 달라고 요구하면, 비담의 난이 아닌 염종만의 난으로 마무리 되거나 역사와는 다르게 비담이 난을 성공시켜서 이름을 춘추로 바꿀 지도 모르겠다. 어짜피 드라마인데 상관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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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만과 비담의 러브라인 요구를 하게 된 이유는 작가들이 드라마 전개를 전혀 역사와 부합되지 않게 전개하고 있으니, 드라마를 보는 아무 생각없는 시청자중 자기들이 좋아하는 배우가 극중에 많이 나오고, 이왕이면 왕과 썸씽이 있는게 좋지 않는가 하는 요구를 시청율에 목맨 작가들와 제작자가 어짜피 버린몸 시청율이나 올려보자는 알팍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와는 무관하지 오래이니, 차라리 덕만과 춘추의 결혼이 더 낫지 않을까 하지만 말이다. 춘추와 덕만은 안된다고? 하다면 드라마 인데 어떻겠는가? 어짜피 드라마 선덕여왕은 환타지 사극도 아니고 퓨젼사극도 아니고, 드라마가 갖춰야 할 개연성이나 스토리 구조는 망가질 때로 망가졌는데 말이다. 현재 드라마는 개그 프로 보다도 못한 상태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실이 떠나고 드라마 선덕여왕의 이야기가 재미가 없어지고, 극중 개연성도 없어졌다고 하지만, 실제는 미실이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할때 부터 선덕여왕은 극으로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덤앤더머의 최고봉은 미실과 설원과 덕만이였다.
오히려 미실이 떠난 상황에서 드라마 선덕여왕이 그나마 개연성도 확보하고 드라마 다워졌지만, 미실이 있을 때 보이지 않던 흠결들이 미실이 떠난 후 개안을 하듯이 흠결들이 부각되었을 뿐이다.
바보들의 행진은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시대의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세상과 동떨어진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보들이란 자조적이고 역설적인 표현이였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미실이나 덕만이나 유신이나 모든 배역들이 정말 바보들일 뿐이다. 혹시 배역을 맡은 배우들 까지 역사는 고사하고 기초상식 조차 모르는 바보들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현재 드라마 전개상 덕만 다음대 왕이 진덕인것은 분명한데 진덕역의 승만은 드라마에 등장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덕만 다음대에 춘추가 왕이 된다고 해서 달라질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드라마 상에서 춘추는 나이가 어리니 역사 기록상에서 654년에서 661년까지 29대 신라왕이 되는 것 보다는 647년 부터 왕이 되는게 더 멋스럽지 않겠는가? 또한, 최소한 삼한일통의 기초를 닦을려면 8년 재위보다는 647년부터 재위해서 14년 재위하는게 멋지지 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드라마 인기도 떨어지는데 미실이 자살한줄 알았는데 지리산에 들어가 수행을 한후 돌아오는것으로 설정해서 덕만의 뒤를 이어 미실이 왕이 되고 이름을 승만으로 바꾸었다고 설정하는것이 다시 드라마 선덕여왕의 시청율을 높이는 방법이 아닐가 한다. 여기까지가 드라마 리뷰였다.
덕만은 누구와 결혼했을까?
그렇다면 기록상 선덕여왕은 비담과 결혼을 하였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의 기록상 선덕여왕이 결혼한 상대은 최소한 4명이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죽여 버렸다. 첫번째는 용수이고 두번째는 을제이다. 그리고 당연히 결혼한 용춘은 존재 여부도 불투명하게 만들어 버렸다. 또한, 흠반갈문왕과 결혼한 것으로 나오지만 존재여부가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덕만과 비담이 국혼을 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결혼이 성립되기 전에 덕만이 죽어버리고 닭쫓던 개 지붕처다 보듯이 비담이 사랑하는 덕만을 위해서 난을 일으키는것으로 설정할 수도 있지만, 현재 까지 결혼 상대자 비담이 국혼을 한다면 기록상 비담은 흠반갈문왕이 된다는 뜻이다.
삼국유사 왕력편에 의하면 선덕여왕 덕만은 634년 왕위에 오르는 즈음에 이미 결혼 상태에 있었다. 결혼 대상은 <음갈문왕>이였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580년 태어나서 646년 11월까지 67세가 되도록 성처녀로 있다가 늦바람이 나서 어린(?) 44세의 춘추를 놔 두고, 68세 비담과 결혼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삼국유사에서 덕만이 결혼 관계에 있었다는 기록은 덕만이 죽을때 자신의 무덤자리를 도솔천 위에 만들라고 했을때, 신하들이 <지기삼사> 중 황제는 어찌하여 모란에 향기가 없다는 뜻을 알게되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답으로 이세민이 자신이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왕이 죽기 전에 여러 신하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어떻게 해서 모란꽃에 향기가 없고, 개구리 우는 것으로 변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왕이 대답했다.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그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것은 당나라 임금이 나에게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다. - 삼국유사 선덕왕의 지기삼사
그러니 모란꽃이 들어오기 전까지 덕만은 남편(배필)이 없었다는 뜻이 된다. 모란꽃이 들어오고 나서 <음갈문왕> 배필이 생겼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선덕왕 덕만은 언제 <음갈문왕>과 결혼을 하였을까?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의 632년1월부터 647년 1월까지 16년 재위한것과는 다르게 634년 3월부터 647년 1월 8일까지 14년 재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3년(634)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었다.- 삼국사기 선덕 3년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治十四年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634년)에 왕이 되어 14년동안 다스렸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第二十七 善德女王 名德曼. 父眞平王 母 麻耶夫人金氏. 圣骨男尽 故女王立.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治十四年.
선덕여왕(덕만)의 지기삼사중 첫번째이야기는 당태종때(626년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626년 당나라에 사신을 보낸때는 가을 7월이니 이때는 아직 이세민(태종)이 왕위를 잇기 전이다. 그렇다면 실제 당 태종(이세민)의 치세 이후가 되어야 하니, 627년, 629년, 631년, 632년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진평왕은 632년 정월(1월)에 죽었으므로 덕만의 '모란씨 서되' 사건은 627년, 629년, 631년 중으로 줄어들게 된다.
모란의 특성
한가지 더 고려해야 할 것은 모란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진평왕이 모란씨를 심어 2년동안 땅속에서 발아과정을 지나 꽃을 보는데, 2년이 걸리므로, 632년 1월 죽은 진평왕이 살아생전 모란꽃을 보기는 요원하게 된다. 그러니 629년 9월과 631년 7월 당으로 간 사신단은 후보군에서 탈락하게 된다.
그렇다면 남는 해는 627년 7월과 11월 뿐이다. 이해에는 이례적으로 2번의 사신단이 당나라에 간다. 당의 정치적 격변기이고 이세민이 연호를 <정관>으로 바뀐 해이니, 사신단이 2번 간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진평왕은 632년 정월(1월)에 죽었으므로 덕만의 '모란씨 서되' 사건은 627년, 629년, 631년 중으로 줄어들게 된다.
모란의 특성
한가지 더 고려해야 할 것은 모란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모란꽃은 5월~6월에 10여일 동안 피었다가 9~10월에 열매를 맺는다.
모란씨를 심어 발아하는 데는 약 2년이 걸린다. - 브리태니커백과 모란
모란씨를 심어 발아하는 데는 약 2년이 걸린다. - 브리태니커백과 모란
진평왕이 모란씨를 심어 2년동안 땅속에서 발아과정을 지나 꽃을 보는데, 2년이 걸리므로, 632년 1월 죽은 진평왕이 살아생전 모란꽃을 보기는 요원하게 된다. 그러니 629년 9월과 631년 7월 당으로 간 사신단은 후보군에서 탈락하게 된다.
그렇다면 남는 해는 627년 7월과 11월 뿐이다. 이해에는 이례적으로 2번의 사신단이 당나라에 간다. 당의 정치적 격변기이고 이세민이 연호를 <정관>으로 바뀐 해이니, 사신단이 2번 간것으로 추측된다.
모란꽃 이야기는 627년 11월 사건 전후에 있었던 일이다.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모란씨 서되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니 <음갈문왕>과 결혼은 627년 11월 이후부터 634년 사이에 있었던 일이 된다.
만약,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가 위서가 아니라면, 음갈문왕과 결혼시기는 더 줄어 들게 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용춘은 629년 이후에 덕만과 결혼하고, 그후 용춘의 형 용수와 결혼관계에 있지만, 을제가 대신으로 덕만과 결혼한 때는 632년 1월이다. 그러니 음갈문왕과의 결혼은 632년 이후에서 634년 사이가 된다. 만약, 화랑세기의 흠반갈문왕이 <음>갈문왕과 동일인이라면 634년 1월 연호를 인평으로 바꾼해에 결혼한 것이다. 그러니 기존 통설과는 다르게 덕만은 나이가 어릴때 왕위에 올랐다는 또다른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음갈문은 누구일까?
선덕의 뒤를 이어 왕위를 이은자는 승만이다. 승만은 국반갈문왕의 딸이다. 국반갈문왕은 덕만의 아버지 진평왕의 동생이다. 즉 국반갈문왕은 덕만의 작은아버지이고 덕만은 작은아버지와 결혼을 한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덕만이 죽고, 의붓 딸인 승만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비담은 승만이 왕위를 잇는데 불만을 품고 명활성에서 난을 일으키는 것이다.
결론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과 덕만은 결혼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결혼에 실패한 비담이 난을 일으킨다는 설정이거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궁을 떠나는데 정치에 관여를 해서 맹약서 대로 춘추에 의해서 비담이 죽는 것이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물론, 정상적인 드라마라면 비담의 결혼은 실패해야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정상적인 드라마와는 전혀 다르니 어떻게 진행될지는 작가들의 쪽대본에 달려있을 뿐이다. 다만, 역사와 전혀 다르게 진행될것이란건 그동안 드라마 선덕여왕의 형태로 봐서 알 수는 있다.
어쩌면 시청자들 중에서 비담이 선덕여왕 다음대 왕이 되는 걸로 설정해 달라고 요구하면, 비담의 난이 아닌 염종만의 난으로 마무리 되거나 역사와는 다르게 비담이 난을 성공시켜서 이름을 춘추로 바꿀 지도 모르겠다. 어짜피 드라마인데 상관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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