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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IN드라마/김수로

김수로, 네티즌 관심 없는 이유

MBC 드라마 김수로에서 야철장 조방이 죽고,  구야국에서 철의 생산이 중단위기에 처한다.

일서가 조방의 뒤을 이어 야철장을 책임지지만 신귀간 태강의 계략으로 9간들에게 철광석을 공급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낙랑을 비롯해서 대방에도 철을 줄 수 없고, 만들어 놓은 쇠들은 녹이 쓸어 팔수조차 없는 지경이 이르게 된다.


언제 등장할까 살펴보던 허황옥은 김수로가 왕이 되기도 전에 가야에 등장한다. 허황옥은 허상인(?)의 딸인지, 아니면, 허상인의 질녀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유타국 공주로 김수로가 42년 왕이 된 6년후인 48년에 처음 만나지만, 기존 기록과 다르게 김수로는 이미 왕이 되기전에 허황옥과 썸싱이 있었다는 뜻을 전달하려 하는 듯하다.

아무 연고도 없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허황옥이 김수로를 만나는 것보다는 개연성이 있어보이지만, 옛날 결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략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유연애를 하였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역사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 김수로는?

드라마 김수로는 기원 42년는 김수로가 가략국을 세우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때 낙랑, 대방이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대방군은 등장하면 안된다.

평양 지역 무덤에서 기원전 42년 (초원4년) 작성된것 알려진 한나라 시대의 죽간이 발견되었는데, 이 문서는 당시의 낙랑군의 인구를 조사한 자료였다. 요즘으로 치면, 인구조사에 해당한다. 낙랑군에는 25개현이 있었다. 낙랑군의 총인구는 28만명이고, 가구수는 4만5천호 정도 였다. 한가구에 약 6.2명 정도 살았다. 노비가 있는 집도 있었을 것이고, 부모를 모시고 사는 집도 있었을 것이니 요즘처럼 2~3명의 자녀가 있었지 않았을 까 한다.

그런데 인구조사 죽간에 대방이 등장한다.
당시 인구는 4,300 여 가구에 2만9천명정도의 인구였다. 당시로는 적지 않은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삼한지역으로 치면 대.중국에 해당한다. 하지만, 대방은 낙랑군내에 있는 25현중이 하나이다.

기원2년 한서지리지에 의하면 낙랑군의 인구는 6만여호에 40만의 인구였다.  그러니 자연증가율을 감안하더라도 김수로가 가락국을 세울때 낙랑군의 인구는 8만여호에 60만 안팍이였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낙랑군의 인구는 드라마 호동과 낙랑의 주무대인 32년 고구려 무휼(대무신)왕이 낙랑을 복속시키는 격변기를 거치고, 25년 유수가 왕망의 신나라를 멸하고,44년 후한 광무제 유수가 다시 한나라에 귀속된다. 그러니 낙랑군의 인구는 변화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김수로 시대에는 낙랑. 대방이 대등한 레벨로 등장하면 안된다. 대방은 낙랑의 하부 속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수로에서는 낙랑도 등장하고 대방도 등장한다.
대방이 낙랑에서 분리된때는 요동군을 장악한 공손씨에 의해서 이다. 206년 공손강는 낙랑의 남쪽의 대방을 독립시켜 대방군으로 승격시킨다. 

206년에 생긴 대방군의 이야기가 기원 42년 전후의 김수로 이야기에 나오는 것이다. 이러니 머리를 싸맬 수 밖에 없다. 

 김수로에는 김해항도 나온다. 하지만, <김해>라는 지명 또한 김수로 시대 뿐만 아니고, 가야가 망하기 전에는 없는 지명이다. 김해라는 지명은 고려시대에 처음 등장하는 지명이다.

사실 김수로에서 변한내에 구야국이 있고, 구야국 내에 9간이 있다고 하지만, 김수로가 만든 나라 이름이 구야국이다. 가락국이 아니고 구야국이라고 하다니 하는 의문은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기술하려 한다. 

김수로는 아역들이 퇴장하고 성인 김수로와 허황옥이 등장한다. 하지만 매니아 층을 벗어나 일반 시청자를 끌어들이는데는 실패한 것 같다.  실은 사극 매니아 층도 김수로를 본다면 웃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사극은 망가지면 망가질수록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여성층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사극은 성공할 수 없다. 선덕여왕이나 추노나 동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허위의 역사극이지만 여성들에게 볼거리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극 김만덕이 블로거들에 인기를 얻지 못하고, 일반시청자들에게도 인기가 없었던 이유는 너무나 뻔한 이야기를 너무나 뻔하게 만들어 갔었기 때문이다. 갈등도 없고 드라마틱한 반전도 없기 때문이다. 사극이 되었던 일반 드라마가 되었던 1회를 보나 마지막회를 보나 같은 드라마는 좋은 드라마라고 할 수 없다.


김수로에게는 선덕여왕처럼 게임방식의 성장드라마도 없고, 그렇다고 추노처럼 무협의 볼거리와 배우들이 연기에 몰입하는 바도 없다. 추노의 무협과 김수로를 비교하면 애들과 어른들의 싸움을 보는듯 하며 손발이 오글어든다. 신이란 불리운 사나이가 블럭버스터의 망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면 김수로는 사극은 이렇게 만들면 망한다는 실례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한다. 선덕여왕으로 흥한 MBC가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와 김수로로 망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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