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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IN드라마/공주의남자

공주의 남자, 문종 승하와 김종서 좌의정 복귀 파국예고, 요코이야기 퇴출 미친짓?

 드라마 <공주의남자>에서 문종은 경혜공주와 정종을 결혼시키고, 쓰러지고 만다.

이때 수양대군은 경혜공주를 사가에 내 보내 문종의 곁에 두지 않도록 조치를 한다.

이에 세경은 사가로 출궁하는 경혜공주를 맡이하여 아무것도 모르는듯 경혜공주에게 친정어미가 해주어야 했을 물품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전해준다. 경혜공주가 세령을 미워할 수 없는 장치와 같다.

하지만, 세령의 아버지 수양은 병을 주고 세령은 경혜에게 약을 주는 형국이다. 그래야 세령이 착해야 한다는 환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혜의 입장에서는 아버지를 몰아내고 정권을 찬탈할 원수의 딸에 지나지 않는다. 사적으로는 작은 아버지의 딸로 사촌동생이 되지만, 피와 눈물도 없는 권력쟁취과정에서는 형제도 부모도 없는 것이다. 권력의 속성은 인륜을 저버리고 천륜까지 저버릴 만큼 마력을 발휘하는 것은 고금의 진리이다.


사가에 돌아온 정종과 경혜의 집을 보면 정종이 드라마에서 자신의 집이 몰락한 가문이라고 한말이 실감이 나지 않고, 으리으리한 고래등 집이다. 부자는 망해도 3대가 먹고 산다는 말인가? 아니면 이명박 대통령 말대로 이건희에 비해서 자신은 빈민이라고 한말을 패러디하는 것인가?

어쨌든, 사가에 돌아온 경혜는 정종과 동침도 하지 않고 정종을 멀리한다. 하지만 해바라기 같은 정종은 짝사랑도 좋아라 한다. 경혜는 사가로 돌아온 다음날 죽은 어머니가 보고 싶어 현재 안산시에 있는 소릉을 찾아가려 하지만, 나루터에서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돌아선다. 경혜가 돌아왔을 때는 어느덧 해가지는 저녁이 되었다.


경혜공주가 가마꾼을 돌려 정종의 집으로 가려는 중에서 세령은 승유와 같이 한강을 건너 안산 소릉에 다녀와서 능에 핀 꽃을 겪어 경혜에게 준다. 미워할 수 없는 세령의 모습에 경혜는 자신을 자책한다. 그런데 한강을 건너 안산까지 간 세령과 승유는 같은 날 밤늦게 돌아올 수 있었을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경이로운 홍길동 같은 세령과 승유가 아닐 수 없다.


문종은 자신이 더 이상 이승에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김종서를 은밀히 만나기 위해 정종의 집을 방문한다. 그리고 김종서에게 좌의정 패를 하사하고 김종서로 하여금 세자를 보위토록 조치를 한다.


궁으로 돌아온 문종은 세자(단종)와 경혜와 정종과 안평과 수양이 있는 자리에서 죽고, 수양은 대신들을 불러 세자를 겁박해서 만든 교지를 발표하려던 찰라 안평은 문종이 죽기 전에 만든 유시가 있다고 수양을 견제한다. 그리고 유시를 발표하고 좌의정 김종서와 황보인이 세자를 보위할 것이라고 말한다.


궁궐로 돌아온 김종서는 수양에게 왕족이 더 이상 정치에 발을 들어놓지 못하게 하겠다고 하며 만약 왕친들이 정치에 기웃거리면 목숨을 걸어야 할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이에 수양은 궁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김종서 너를 죽이고 말겠다고 혼자말을 한다.

더 이상 수양과 김종서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양립할 수 없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만다. 이때 승유는 한가히 세령을 생각하다 세령이 있다고 하는 절을 찾아가 세령을 끌어 안는다.


경혜의 결혼과 문종은 죽음은 몇 일이 되지 않아서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경혜의 결혼과 문종의 죽음간에 얼마의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까?
 

유시(酉時)에 임금이 강녕전(康寧殿)에서 훙(薨)하시니, 춘추(春秋)가 39세이셨다. 이때 대궐의 안팎이 통하지 않았는데, 오직 의관(醫官)인 전순의(全循義)·변한산(邊漢山)·최읍(崔浥)만이 날마다 나아와서 안부(安否)를 보살폈지마는, 모두가 범용(凡庸)한 의원(醫員)이므로 병증(病症)을 진찰(診察)할 줄은 알지 못하여, 해로움이 없을 것이라고 여기면서 임금에게 활쏘는 것을 구경하고 사신(使臣)에게 연회를 베풀도록까지 하였다. - 문종 2년 5월 14일(1452년)


드라마에서는 경혜가 문종이 죽은 1452년 5월경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경혜와 정종의 결혼은 세종 32년 1450년 1월경이다. 드라마 <공주의남자>에서 문종이 재위말년에 결혼시킨것이 아니고 세종 말년에 장손녀인 경혜를 결혼시킨 것이다.


순의 대부(順義大夫) 정종(鄭悰)이 평창 군주(平昌郡主)에게 장가들었다.


세종 32년(1450 1월 24일(경자)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문종은 수양의 계략에 빠져 우의정에서 김종서를 파직하고 임종전에 안평대군을 통해서 좌의정의 직위를 주고 정종의 집으로 불러드려 자신이 충신을 몰라봤다고 고해성사를 하고 김종서에게 다시금 세자를 지키도록 한다. 

무릇 전후에 관직을 제수한 것이 모두 특지(特旨)341) 였다. 김승규우의정 김종서의 아들인데 내간상(內艱喪)을 당하였더니, 탈상(脫喪)한 지 수일만에 조무영을 대신하여 사복 소윤이 되었고, 그 아우 김승벽도 또한 같은 날에 관직에 제수되니, 사복은 근시관(近侍官)으로서 돈녕부에 비할 바가 아니므로, 의논하는 자가 말하기를,
“죽은 부마(駙馬)가 어찌 살아 있는 의정(議政)과 같겠는가?”
하였는데, 김종서가 일을 하는 데 얼마나 전횡(專橫)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 단종 즉위년(1452년)
8월 7일

하지만, 위의 사실로 <공주와 남자>에서 우의정에서 승유가 공주를 꾀어 궁궐밖으로 돌아다녀, 승유가 죽게 되자 문종이 김종서의 우의정직을 파직하였다는 이야기 구조는 성립이 되지 않는다. 더불어 문종이 승하하기 전에 김종서에게 좌의정직을 제수했다는 이야기 라인도 명분이 성립하지 않는다.
김종서는 문종이 1452년 5월 죽고, 단종이 즉위한 5월 이후 8월경에도 우의정에 있었다. 

김종서가 우의정에서 좌의정이 된때는 단종 즉위년(1452년) 12월 11일 이었다. 김종서가 우의정에서 파직된 적도 없었다.
 

 김종서(金宗瑞)를 좌의정(左議政)으로, 정분(鄭苯)우의정(右議政)으로, 한확(韓確)을 좌찬성(左贊成)으로, 정인지(鄭麟趾)를 - 단종 즉위년(1452년) 12월 11일 


 
<공주의 남자>에서 역사적 사실과 팩트를 무시하고 경혜공주를 등장시킨 이유는 너무나 뻔한 스토리 라인 때문이다. 사랑한 연인이 알고보니 철천지 원수가 되는 관계의 이뤄질수 없는 사랑를 이룬 아픈사랑, 더불어 삼각관계와 한남자를 사랑하는 여인들, 한여인을 사랑하는 남자들의 고리타분한 더블 삼각관계 스토리 라인을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역사적 팩트조차 비틀어 버린것이다.

최근 625특집 다큐로 공영방송 KBS에서 백선엽을 625전쟁의 영웅으로 묘사하였다. 하지만, 백선엽은 일본군대를 나와 독립군을 토벌하던 악질 친일매국노였다. 드라마는 다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극히 논리적 모순을 가지고 있는 사람눈에는 다큐는 역사라는 생각이 얼마나 무지한 지를 쉽게 반증하는 사례이다. 다큐도 사실을 왜곡할수 있고, 왜곡된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수 있다. 역사를 알고 싶다면 다큐나 역사스페셜이나 보라는 말이 얼마나 역사와 드라마에 무지한지를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다.

매국행위로 인해서 자신의 개인적인 목숨의 위기를 일반 군인들을 앞세워 보전하고 전쟁영웅(?)으로 탈바꿈 하듯이 백선엽이 독립군출신으로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나들며 독립운동을 하였다고 하는 것만큼 <공주의 남자>는 역사왜곡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을 한다.

백선엽이 독립군이 되던 친일파가 되었던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자신의 목숨도 구하고, 부하들의 희생으로 영웅도 되고 재미있으면 되지 않겠는가? 백선엽에게는 말이다.


<야망의 세월> 드라마로 대통령까지 된 이명박도 있다. 야망의 세월에서 이명박은 못하는 것이 없는 만능 일꾼이다. 안되는 것도 없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도 발휘를 한다. 별로 한일일도 없이 정치권에 돈배달 전문 가방모찌였던 이명박이 정주영의 모든 일을 하였다.

드라마 환상에 빠진 무지몽매한 시청자들은 드라마에서 한일이 정말 이명박이 한일처럼 느껴서 이명박을 서울시장으로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이명박은 드라마를 적극적으로 자신의 업적으로 미화했다.


재미가 하나도 없는 역사적인 팩트의 왜곡을 재미라고 생각하고 역사를 왜곡해야 재미라는 이유만으로 역사적 사실과 팩트의 왜곡이 양극화에 뒤로 가는 참으로 훌륭한 경제 대통령을 뽑은 것이다.

개연성과 합리성이 결여된 드라마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진실들이 왜곡되었는지를 안다면 함부로 재미를 위해서 역사왜곡은 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면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침탈도, 독도도 재미를 위해서 용서를 해야하고 재미있어야 해야하지 않을까? 사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주장은 일견 주장의 내용에 타당한 측면이 그들 나름대로 많이 있다. 이를 깰 논리를 구축해야 함도 당연하다.


요코는 함경북도에서 살다가 일본의 패망(?)으로 일본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자전적 소설 <요코이야기>을 쓴 적이 있다. 요코이야기는 미국에서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의 중고등학교 독서교재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미국에 거주하는 재미동포들이 요코이야기 내용 중 많은 부분들이 역사적 진실이 결여되어 있다고 독서교재 채택 반대운동을 하였고, 미국 교육당국은 <요코이야기>를 퇴출시켰다.


드라마는 드라미일 뿐, 소설은 소설일 뿐, 재미를 위해서 역사왜곡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요코이야기는 퇴출되어서는 안 되고, 이를 비판하는 것 또한 문제가 되고, 재미동포와 미 교육당국은 소설과 역사와 현실을 도외시한 무지한 사람들일 것이다. 역사적인 사건을 다루는 드라마나 소설은 역사적인 팩트나 왜곡은 있을 수 없다. 단지 팩트에 대한 해석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 가는 과정인 것이다.


극히 일부의 재미는 역사왜곡부터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보는 자료조사에 충실한 조정래의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이나 박경리의 토지 등 대하소설을 쓴 작가들은 참으로 재미도 없고 능력도 없는 작가군에 속한다고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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