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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IN드라마/계백

계백, 예수가 된 의자왕? 왜곡 달인 조선일보에도 욕먹는 사극 안타깝다

 

조선일보가 황원갑(소설가, 역사연구가)의 이름을 빌려서 'TV 사극, 역사왜곡 정도가 지나치다‘라는 기사를 송고했다.


주된 내용은 “시청률이 중요하고 재미를 앞세우는 드라마라도 역사는 몇사람이 입맛대로 비틀거나 뒤집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가볍게 여기고 변곡하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올바른 역사교육에 역행하는 범죄와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이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런 기사가 조선일보의 지면을 통해서 나왔다는 것이 스스로의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이다.


조선일보는 사실보도가 생명인 기사에서 소설가도 아니고 드라마 작가도 아닌데 근현대사를 왜곡하는데 앞장을 섰고, 자신들의 조선일보 역사도 왜곡하였다.


참으로 조선일보의 눈에도 최근 사극의 역사왜곡은 도가 지나쳤나보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을 민족신문이라고 선전을 한다. 선전하는 이유는 한때 조선일보가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팔린 적이 있었다. 이를 두고두고 자신들이 민족신문이라고 선전하는 이유이다.


그 후 재정난을 이기지 못한 민족계열 조선일보는 방씨 일가에게 팔렸다.  방씨일가는 민족주의를 철저히 지향했다. 일본 민족주의 말이다. 천황을 위해서 조선인들은 죽음으로 충성하라고 선동한 것은 다름 아닌 조선일보다. 민족지라는데 동의하는 부분은 친일을 넘어 내선일체를 주장하고 철저히 일본이 되고자한 조선일보의 일본민족주의일뿐이다.


친일 매국노의 선두주자로 이완용과 송병준을 든다. 이들을 빼고 친일 매국노를 언급한다는 자체가 무의미 할 정도이다. 그런데 이중 하나가 조선일보의 사주였다면 말을 다한 것이다.

1920년 대정친목회는 조선일보를 창간한다. 그리고 1921년 송병준은 대정친목회로부터 조선일보 판권을 인수한다.

 

 


대정친목회의 대정(大正)는 다름 아닌 당시 일본 천왕 다이쇼오(大正)의 연호이다. 일본 황제의 연호를 딴 대정친목회가 정상적인 경제단체는 아니였다. 친일매국자본가들로 이뤄진 경계단체가 대정친목회였다. 민족 반역자 송병준이 친일매국자본가들의 모임인 대정친목회로부터 조선일보 판권을 인수한 것이다. 송병준은 자신과 맞지 않고 적자가난  조선일보를 민족계열 인사에게 넘긴다.
 


그 후 안재홍, 이상재로 이어진 민족계열로 넘어왔다가 민족지도자 조만식이 1932년 조선일보 사장에 취임하였지만 조선일보는 탄압과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방씨에게 조선일보를 지원하고 인수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방씨는 조선일보를 인수한 후 철저한 반민족 친일신문으로 변신을 하였다.


조선일보에는 역대 사장리스트가 있다. 하지만, 송병준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조선일보 스스로 송병준을 지워 버린 것이다.


이름만 조선일보라고 해서 친일매국지로 출발했던 조선일보가 민족계열인사에게 팔렸고, 탄압과 경영난에 의해서 다시 친일매국 방승모에게 팔렸다고 해서 조선일보의 행위가 모두 민족지가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친일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최종 인수자는 친일 매국인 방씨일가의 신문일 뿐이다. 아파트나 부동산도 최종인수자가 주인인 것처럼 이전 소유자의 흔적은 이집의 이전 소유자는 유명한 누구누구였다는 흔적대로 남을 수는 있겠지만, 자신이 유명인사가 되지도 않을뿐만 아니라 이전 소유주들의 행적이 자신의 행적이 되지 않는 것처럼 친일 매국한 방씨일가가 민족인사가 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요즘 조선일보는 자신의 흔적은 말살한체 자신들이 말하고자하는 ‘민족인사’가 조선일보를 소유했다는 사실만 부각시키고 매국행위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최근 친일파 송병준의 후손이 토지반환소송에서 패소한 적이 있다. 이때 조선일보는 자신의 한때 사주였던 송병준을 ‘친일파 송병준’이 패소했다고 기사를 송고한 적도 있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조선일보에 입사 전후 송병준이 자사의 사주였다는 사실을 몰랐을 수도 있고, 알았다고 해도 송병준으로부터 조선일보를 민족계열 인사가 사들였으니 현재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문제는 조선일보가 민족계열 인사들로부터 친일 방씨일가에 팔렸고 현재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을 눈을 감아버린다.


조선일보 기자가 소설을 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기사로 온국민이 사실로 받아들이고 전국방방곡곡 동상도 세워지고 웅변대회도 열렸다. 도대체 본 사람이 없는데 기자가 잠입르뽀 사건 현장에 있지 않으면 도저히 알수 없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라이브 기사가 나올수나 있겠는가? 기자도 소설을 쓰는데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건 3자적 관점에서 충분히 가능하다.

어쨌든, 최근 TV 사극의 역사 왜곡은 도가 지나치다 못해 역사를 난도질하는 걸 재미라고 생각을 할 정도 이고, 당당히 역사는 왜곡되야 재미가 있지 있는 사실대로 한다면 재미가 없다고 하는 극히 정상적이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역사는 더욱더 피폐해지는 것이다.


최소한 사극이란 사극을 통해서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몰랐던 사실과 접근방법과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의 다양성을 보여주는데 재미가 있지 역사적인 기본기록자체를 부정하는데 재미를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역사 기록 자체를 부정할려면 드라마에 그 이유가 충분히 개연성있게 설명되어 녹아나 있어야 한다.


드라마 계백에서 계백의 아버지와 무왕의 왕비인 사택비가 어릴적 연인관계였지만, 헤어진 장면이 나온다. 충분히 계백의 아버지와 사택비가 사랑하는 관계일수 있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역사에 기록된 부분을 재해석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최근 사극과 마찬가지로 계백에는 재해석이 아닌 철저히 무시 내지는 왜곡해 버린다는 것이다. 오히려 왜곡을 넘어서 역사에 대한 몰상식이거나 무지하다고 할만하다.
 

의자왕(義慈王)은 무왕의 맏아들이다. 웅걸차고 용감하였으며 담력과 결단력이 있었다. 무왕이 재위 33년(632)에 태자로 삼았다. 어버이를 효성으로 섬기고 형제와는 우애가 있어서 당시에 해동증자(海東曾子)라고 불렀다. - 삼국사기 의자왕 즉위원년 644년


웅걸차고 용감하고 담력과 결단력이 있었다는 내용은 백제의 마지막왕에게 주어지기는 한계가 있어 보이긴 하지만, 드라마 계백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관계로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하지만, 계백에는 역사에서 의자왕에 대한 기록은 의자가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와 우애가 있어서 해동증자라고 불리운다는 내용은 안중에도 없다. 증자는 공자의 제자였고 증자의 사상은 맹자로 이어졌다고 알려진 인물이고 충과 효의 덕목을 강조한 사람이다.

 


그런데 드라마 계백에서 의자가 충과 효에 연연한 모습을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교기와의 우애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단지, 자신의 어미인 선덕왕후의 위패까지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르는 장면만 목도된다. 물론 시작부터 잘못 설정된 사택비와 선화와 의자와의 관계에서 의자가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라는 설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설마 위패 태우기 장면을 보고 해동증자라는 말이 나왔을거라고 상상할 수가 있을까? 아니면 앞으로 선덕왕후의 사당을 세우고 매일 밤 무덤가를 찾아가는 설정으로 부모에 효도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현재 교기와 왕위쟁탈전을 목전에 둔 의자와 교기가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다고 할수 있을까?


아니면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을 죽이려한 사택비에게 조차 효를 행했기 때문에 증자라는 칭송을 들어야 했던 것인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이니 해동의 예수라면 모를까 말이다. 


최소한 왜곡의 달인 조선일보에서 조차  현재 사극의 역사 왜곡은 도가 지나쳐 보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더라도 왜곡의 달인 조선일보가 남의 입을 빌려서 할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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