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계유정란을 다루고 있다. 수양대군은 김종서의 집을 찾아가 김종서를 죽이고, 남은 자들로 하여금 김승유를 척살하라고 명하고 사라진다.
수양대군이 김종서와 김승유를 죽이려는 것을 안 세령을 집에 가두고 집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세령은 꾀를 내어 집을 나와서 김종서를 찾아가 자신의 아버지 수양이 죽이려한다는 사실을 알리려한다. 하지만, 세령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는 여리는 하인들을 대동하고 김종서의 집앞에서 세령을 집으로 끌고 온다.
여리가 세령의 사랑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세령이 김종서에게 수양대군이 죽이려한다는 사실을 알리게 된다면 수양대군의 계략은 실패로 끝나고, 오히려 수양대군을 비롯한 일족이 멸문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광에 갇히 세령은 마지막으로 여리에게 피로 쓴 혈서를 승유에게 전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이날이 지나면 더 이상 승유를 볼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여리나 세령은 서로 마음이 통한것이다. 세령은 승유만이라도 살리고 싶은 마음에 혈서를 보냈지만, 머리 나쁜 김승유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세령을 만나고자 하는 일념으로 절을 찾아 나선다.
세령이 승유를 위해서 계유정란을 막으려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려는 노력은 일견 보였지만, 계유정란이 승유와 세령의 사랑다툼의 일환으로 그려지는 것은 개연성 없음이다. 그러니 세령의 몸부림이 와 닿지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김승유는 바당에 피를 흘리고 죽은 아버지 김종서와 김승유를 두고, 먼저 아버지를 찾기보다는 형인 승유를 끌어 앉고 울부짖는다. 김승규의 처도 남편인 김승규를 두고 아버님을 부르짖는데 아들인 승유는 “형님~”하고 있다.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는 겉멋만 든 한량에 허당 임을 계유정란에서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에게 몰입이 되지 않는 극히 드문 드라마이다. 이는 주인공을 주인공답지 못하게 그린 작가의 문제이지 주인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가하게 사랑놀음만 하는 평면적인 세령과 승유 주인공들이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포스를 내고할 명분과 개연성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 아버지 김종서와 형인 김승규도 죽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할 수 없다는 복수의 화신이 된 승유(박시후)가 좀 더 입체적인 모습으로 바뀔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시후 특유의 목소리가 과연 입체적인 주인공으로 탈바꿈될 수 있을까는 의문이다. 박시후나 문채원의 문제라기 보다는 작가와 피디의 역랑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작가가 주인공에 맞는 배역과 대사를 주고 이를 피디가 잘 콘트롤 하지 않는다면 박시후와 문채원의 연기는 더 이상 발전이 없을 것이 자명하다. 지금까지 보여준 두 유령커플의 연기를 최종 OK한 사람은 다름 아닌 피디이고, 피디가 이들 주인공의 연기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반전과 클라이막스인 <계유정란>이 일어났고, 등장인물들이 이를 계기로 친구나 연인이었다 원수가 되는 대 변환를 맞이했다.
그렇다면 철퇴를 맞고 쓰러진 김종서는 이대로 <공주의 남자>에서 하차하고 말까? 사실 김종서는 김종서의 방안에서 철퇴를 맞지 않고, 마당에서 철퇴를 맞고 쓰러진다. 수양대군은 김종서의 방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수양대군은 김종서가 죽었다고 믿고 김종서의 집을 나온다.
하지만, 죽었다고 믿었던 김종서는 수양대군이 반정(?)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고 안평대군과 연락을 취하려하고 궁에 들어오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둘째 아들 김승벽의 처갓집에 숨어든다.
수양일파는 김종서가 살아나 돈의문, 서소문, 숭례문을 돌며 도성에 진입하려다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고 김종서가 숨어 있을 만한 곳을 수색하고 김승벽의 처갓집에 처들어간다. 김종서가 최후를 맞이하는 장소는 김종서의 집이 아닌 둘째 아들 김승벽의 처갓집이다.
김종서(金宗瑞)가 다시 깨어나서 원구(元矩)를 시켜 돈의문(敦義門)을 지키는 자에게 달려가 고하기를,
“내가 밤에 어떤 사람에게 상처를 입어 죽게 되었으니, 빨리 의정부(議政府)에 고하여 의원으로 하여금 약을 싸 가지고 와서 구제하게 하고, 또 속히 안평 대군(安平大君)에게 고하고, 아뢰어 내금위(內禁衛)를 보내라. 내가 나를 상하게 한 자를 잡으려 한다.”
하였으나, 문 지키는 자가 듣지 않았다. 김종서가 상처를 싸매고 여복(女服)을 입고서, 가마를 타고 돈의문(敦義門)·서소문(西小門)·숭례문(崇禮門) 세 문을 거쳐 이르렀으나 모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와 그 아들 김승벽(金承壁)의 처가(妻家)에 숨었다.
이튿날 아침에 이명민(李命敏)도 또한 다시 깨어나서 들것에 실려 도망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홍달손(洪達孫)에게 고하니 호군(護軍) 박제함(朴悌緘)을 보내어 베었다. 세조가 인하여 여러 적이 다시 깨어날 것을 염려하여, 양정(楊汀)과 의금부 진무(義禁府鎭撫) 이흥상(李興商)을 보내어 가서 보게 하고, 김종서를 찾아 김승벽의 처가에 이르러 군사가 들어가 잡으니, 김종서가 갇히는 것이라 생각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걸어 가겠느냐? 초헌(軺軒)을 가져오라.”하니, 끌어내다가 베었다.
사실 김종서의 집은 현재 서대문 밖에 있었다. 경혜공주의 집은 현재 창덕궁 뒤편인 계동에 있었다. 그러니 수양이 김종서 일파가 도성에 집입하지 못하게 돈의문, 서소문, 숭례문을 장악한 것이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수양은 드라마 상 전혀 정적으로서 능력을 보여주지 않고 고문관이였던 김승유를 죽이려고 자객들을 남겨두었다는 설정이 어설프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김승유를 죽이려고 남겨둔 자객이 있었다면 다시 살아난 김종서를 그냥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공주의남자>에서 절에서 돌아온 승유를 맞이하는 김종서의 칼든 하인들은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관심도 없다. 자신의 주군이 피격을 당했는데, 멀쩡히 자객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어떠한 조치를 취하는 부하가 단 하나도 없고, 달랑 며느리와 손녀만 시체(?)를 부둥껴 앉고 울부짖는다. 이를 개연성이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승유가 다시 살아난 김종서를 보좌해서 단종에게 수양의 반란사건을 알리려고 도성으로 진입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예고편에서처럼 단종이 있던 영양위의 정종의 집에서 신면과 칼부림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단종은 경혜공주의 집으로 어가를 옮겨서 정치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드라마처럼 단종이 경혜공주의 집으로 가는 날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죽이려하지는 않았다.
“주상께서 만약 영양위(寧陽尉)의 집에서 편안하시다면 그 나머지 작은 폐(弊)는 헤아릴 것 없습니다. 수강궁(壽康宮)은 아침저녁으로 볕이 쬐고 뜨겁기가 크게 심하여 이어(移御)하실 수 없으니 8월 이후를 기다려서 다시 의논하여 아뢰겠습니다. - 단종 1년(1453년 7월)
재미있게도 분명히 김종서의 순천김씨 족보에는 김종서의 아들로는 3명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김승규와 김승벽, 그리고 김승유이다. 이들 후손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계유정란을 비롯해서 김승규, 김승벽에 대한 기록은 있지만, 김승유에 대한 기록은 한줄도 없다.
김종서의 아들들은 김종서의 위명으로 벼슬을 하였다. 하지만, 김승유는 벼슬이나 계유정란을 즈음에서 김승벽처럼 달아나 잡혀서 죽었다는 기록도 없고, 김승규처럼 아버지를 지키려다 죽었다는 기록도 없다. 세조이후 김승벽, 김승규에 대한 기록은 있다. 하지만, 승유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이는 김승유가 자손만 남기고 일찍죽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승유가 공주의남자에 등장할 수 없다. 승유가 공주의 남자에 등장하는 순간 공주의남자의 드라마 전체적인 틀은 흐트러지고 개연성이 없는 드라마가 되어버린다. 불필요한 승유와 세령간의 사랑으로 이야기 거리가 많을 거라고 생각한 작가의 무분별한 욕심이 자신의 작품 질을 스스로 망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공남에서 주인공인 김승유역을 맡은 박시후가 유령인것처럼 승유는 이미 유령이 되었을 것이 자명하니 말이다. 세령이 반대한건 <계유정란>보다는 단종폐위에 반대했을 것이다. 물론 말이 안되지만, 차라리 죽은 승유보다 공주의 남자에 등장하지 않는 김승벽을 사랑한 세령이 공주의 남자에 어울리고 그나마 개연성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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