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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IN드라마/공주의남자

공주의 남자 결말, 단종도 죽인 김승유, 이시애와 수양대군 죽이고 왕될 기세?

 

<공주의남자>가 결말로 치닫고 있다. 세령공주는 세조(수양대군)의 명으로 신면의 노비가 된다.


수양대군(세조)가 세령공주를 신면의 노비로 만든 이유는 김승유가 세령을 구하러 올 때 잡으려는 계략과 세령이 마음을 다잡기를 바라는 마음이였다.


김승유는 광주에 있던 정종으로부터 반란복위 계획이 있으니 김승유가 내려와서 도와주기를 바란다.


반란 계획은 서울의 총통위가 서울에서 내응을 하고, 정종이 있는 전라도 군사와 금성대군이 있는 경상도 군사가 수원에서 모이고, 김승유 자신이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을 모시고 서울을 공략한다면 세조(수양대군)의 세력은 무너지고, 전국의 수양대군의 반대파와 유림들이 단종을 복위하는데 찬성할것이니 실패할 수 없다고 총통위 군사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이에 총통위 반란세력은 김승유가 김종서를 닮아 절묘한 계책이라며 김승유를 한층 띄워준다.


하지만, 김승유는 광주로 가는 도중에 세조와 신면이 퍼트린 세령공주가 신면의 노비가 되어 신면의 집에 잡혀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면의 집으로 빙옥관 사람들과 찾아간다.


김승유에게 필요한건 신면이 세령을 덮칠까하는 우려해서 신면의 집으로 찾아가 세령을 구하는 것이 우선일까? 아니면 정종을 찾아가 반정을 하는게 우선일까? 물론, 김승유는 신면과 세령이 결혼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세령공주를 수양대군 집 결혼식장에 침투해서 납치하는 만행도 저지른적이 있다. 신면의 집에는 수많은 군사들이  포위하고 있다. 달랑 3명으로 신면의 집에 들어가 세령을 구하는데 성공을 한다.


김승유의 수준이라면 신면의 집으로 쳐들어가는 것 보다는 궁궐을 넘어서 세조(수양대군)을 치는것이 더 빠를 것 같다. 정종과 함께 전라도, 경상도 군사를 몰아 수원에서 모여서 서울을 공략할 필요가 없을 텐데 말이다.


김승유가 세령을 구하여 한말에 두명이 말을 타고 광주로 떠난다. 작가는 주인공 말태우기에 습관화 된 것 같다. 한 마리 말을 타고 두 명이 광주까지 간다는 발상은 참으로 난감하다. 더군다나 신면보다 빨리 광주에 도착하기 까지 한다. 나르는 슈퍼보드라도 탔나? 한가한 사랑놀음 스킨쉽이 신면보다 더 빠르게 했다는 것인가?


어쨌든, 김승유가 세령을 구하고 떠나자, 신면은 빙옥관으로 가서 빙옥관 주인을 잡아들이고 빙옥관 주인은 김승유 너의 사랑만 소중하지 않고, 나의 사랑도 소중하다며 김승유가 정종이 있는 광주로 갔다고 까발린다.


결국에는 정종은 서울로 압송되어 거열형에 처해지고, 금성대군은 경상도에서 사약을 받고 죽는다. 강원도 영월에 있던 단종도 사약을 받고 죽는다.

김승유가 자신의 치기어린 사랑놀음에 민폐만 끼치지 않았다면 아버지도 죽지 않고, 정종도 죽지 않았을 것이고, 금성대군도 죽지 않고, 자신의 아버지 김종서가 단종을 지켜달라는 유명도 지킬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김승유는 하지 말라는 짓은 골라서 하는 청개구리였다. 사랑 때문에 아버지와 형을 죽였고, 결국에는 친구인 정종과 금성대군과 자신의 주군인 단종도 죽여 버렸다. 하지만, 김승유는 자신이 어떠한 잘못을 했는지 모르고 처형장에 찾아가 정종을 구하려고 하지만, 이미 정종이 죽고 난 후의 피 흔적만 바라본다.


다른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정종의 처형을 김승유만 모른다는 설정도 어설프기 그지없다. 김승유 같이 어설프고 민폐만 끼치는 인물을 세조와 대항하는 우두머리로 두고 있다면 그 조직은 해보나 마나 필패이다.  총통위 반란세력은 후사를 도모하기 위해서 이시애와 연합전선을 구축하는데 세령공주는 수양대군의 딸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딴지를 건다. 주군 단종이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모자리들의 모임인 총통위와 민폐 김승유가 반란에 실패할것은 명확하다.


김승유는 이제 이시애가 있는 함경도로 떠나 반정을 도모하려고 한다. 분명히 예전부터 지금까지 한 것처럼 김승유가 이시애를 죽음으로 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좋게 이야기하면 김승유는 머피의 법칙에 빠진것이다. 그리고 신면이 세조에 버림을 받지만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려다 죽게 될 것이다.


공주의 남자의 작가는 김승유가 세조(수양대군)를 죽이고 조선의 왕이 된다는 설정을 하지 않는지 알수가 없다. 세조가 죽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세조가 왕인데 세조를 죽이면 역사와 다르기 때문인가? 최소한 큰틀에서 역사는 지켜야 하는 거라고 작가나 시청자가  생각했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그동안 공주의 남자가 지킨 역사적 팩트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역사를 망치는데 작가의 활약은 끝이 없었다.



실존인물 김승유가 계유정란이전에 죽었는데 계유정란에 나온다는 설정자체 부터가 실패한 설정이다.
 
김종서의 손자 김석동이 세령공주와 사랑을 하고 계유정란에 나온다면 그나마 역사를 망치지 않고 할수 있는 설정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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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혜공주는 세종이 명하여 정종과 결혼을 한다. 그전에 세종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8째 아들 영흥대군(영응대군)을 정충경의 딸 정씨에게 장가를 보낸다. 정종은 평창군주(경혜공주)에게 장가를 가기 전에 이미 왕족의 일원이었다. 영흥대군은 어릴적 수양대군의 손에 큰다.


정종의 고모는 1407년 태종(이방원)의 둘째 효령대군에게 시집을 갔고, 정종의 누이는 세종의 영응대군에게 시집을 갔고, 정종은 문종의 큰딸 평창군주(경혜공주)에게 장가을 갔다. 공주의 남자에서처럼 아버지 정충경이 죽자 한미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3대에 걸쳐 왕가와 혼인하는 한미한 왕족을 본적이 있는가?

 

정종은 전국방방곡곡 재산이 없는 곳이 없었다. 경혜공주와 정종이 결혼한 후에는 더욱더 재산을 불려나갔다. 어린 동생 단종을 자기집에 모셔놓고, 권력형 비리 정점에 정종과 경혜공주가 있었다. 계유정란이 있던 때도 단종은 경혜공주의 집에 있었다. 반란에 연루되어 유배된 지역도 자신의 농장이 있는 통진이었을 만큼 정종은 끝없는 사랑을 받았다.


어쨌든,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의 뻘짓같은 세령 구하기로 인해서 정종과 금성대군과 단종이 죽었다.



정종이 서울로 압송된 때는 1461년 7월이었고, 3개월인 1461년 10월 20일 정종이 죽는다.  광주에 같이 있던 경혜공주는 3일후인 1461년 10월 23일에 아들 정미수와 함께 서울로 올라온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경혜공주가 정종이 압송되자 자기 마음대로 서울로 올라오는 것으로 그렸고, 이미 태어나 눈망울을 굴리고 있었을 정미수는 아직도 경혜공주의 배속에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사림파들이 경혜공주가 관노가 되었다는 유언비어와 정미수가 유복자였다는 설을 퍼트린다. 하지만, 알고보면 한심한 수준의 쌔빨간 거짓말이들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더욱 압권은 김승유와 정종이 전라도 군사와 금성대군이 있는 경상도 군사를 이끌고, 김승유가 영월에 있는 단종을 모시고 오겠다는 설정이다. 더군다나 세조의 맏아들 세자 숭(장)이 아픔에도 세령을 찾는다는 설정이다. 


김승유가 신면의 집에서 뻘짓을 하지 않고, 정종과 정상적인 반란을 한다면 김승유의 반정계획은 성공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을 조금 차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공주의 남자에서 수양대군(세조)는 정종을 죽이고 금성대군과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금성대군과 단종이 죽는 시점이 비슷한 건 사실이지만, 단종이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말은 세조가 죽어야 사는 사림이 퍼트린 유언비어인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1457년 6월 21일 단종의 장인 송현수는 권완과 단종복위를 꿈꾸며 반란을 획책하지만 들키고 만다. 이때 단종은 노산군으로 감봉되고 영월유배

1457년 6월 22일 단종 영월로 유배되다.


1457년 6월 27일 관노 이동이 금성대군의 모반을 아뢰다.

금성대군은 경상도에서 순흥부사(영주) 이보흠, 안순손과 반란을 획책하고 단종 복위를 꿈꾸지만 이도 들키고 만다.


1457년 9월 2일 세조의 세자 도원군 장(숭)이 죽는다.


1457년 10월 21일 결국 단종의 장인 송현수와  금성대군을 죽이라는 의정부, 사간원, 사헌부, 종친부의 압박에 세조(수양대군)은 송현수와 금성대군을 사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1457년 10월 21일 단종이 결국에 죽었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영월에서 보고가 올라왔다는 뜻은 단종이 그전에 죽었다는 뜻이다.


1457년 11월 18일 

종부시(宗簿寺)에서 아뢰기를,

“노산군(魯山君) 및 이유(李瑜) ·이영(李瓔)·이어(李)·이전(李瑔)·정종(鄭悰) 등은 그 죄가 종사(宗社)와 관계되므로 속적(屬籍)을 마땅히 끊어야 합니다. 청컨대 아울러 자손까지도 종친(宗親)에서 삭제하고 부록(附錄) 같은 데 기록하도록 하소서.”
 
1461년 7월 정종 광주에서 반란 계획이 들통남
1461년 10월 20일 정종 죽음
1461년 10월 23일 광주에 있던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와 서울로 돌아옴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이 반란이 들킨 때는 1461년 7월이었다. 그러니 1461년 10월 정종이 죽고, 1457년 10월 금성대군이 죽고, 1457년 10월 단종이 죽을 수가 없다. 더군다나 1457년 9월 금성대군과 단종보다 먼저 죽은 도원군 장이, 정종이 죽은 이후에 세령공주를 찾을 수도 없다.

 

1467년 5월 16일 함길도 전 회령절제사 이시애가 반란을 하다. 이때 신면이 죽는다. 신면의 나이는 30살이었고, 신면에게는 두 명의 아들 5~6세의 신용관, 신용개가 있었다.

 

신면은 승지(承旨)가 된 지 5년이 되었어도 일찍이 과실이 없었으며, 임금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 자못 자상하고 명확하였다. 죽을 때의 나이가 30이며, 아들이 둘이 있으니, 신용관(申用灌)과 신용개(申用漑)이다. - 세조 13년, 1467년 5월 22일


이때 신숙주와 한명회는 이시애의 반란에 연루되었다는 이시애의 반간계에 하옥되는 처지에 있었다가 신면이 반란을 진압하다 죽고나서 이시애에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풀려난다.


정종이 죽은 때는 1561년이고, 이시애의 난은 1567년 5월, 계유정란은 1553년이여서 세월은 화살처럼 빨리 지나간다. 어느덧 12년이 흘렀다. 하지만, 김승유의 조카 아강은 아직도 어린애에 불과하다. 충격을 먹어서 더이상 자라지 않겠다고 선언한 피터팬에 양철북의 꼬마를 생각하게 한다.

김승유와 세령은 30대 후반 노총각, 노처녀가 되었다. 신면은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 세령공주를 자신의 첩실로 들이려고 노력하고 있고, 세조는 신면에게 세령공주를 첩실로 넘기지 못해서 안달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신면은 한성부 판관으로 나온다. 1453년 계유정란 즈음에 김승유, 정종, 신면, 세령공주는 20살로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신면은 1438년생으로 15살에 불과했다. 수양대군이 신면에게 세령을 노비로 하사한 때인 1461년이면 신면은 24살이고 이미 아들 신용관을 임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공주의 남자> 결말에서 김승유가 반란에 성공해서 세조를 죽인다고 이상할 것이 없고, 오히려 공주의 남자답다고 하겠다.  세조가 죽어야 시청자들은 오르가슴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그리고 김승유가 세령과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앤딩이나 아버지가 죽은 세령이 결국에는 김승유를 떠나거나 죽거나 절로 들어가는 것으로 그린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먼저 김종서를 죽인 사람은 수양대군이니 김승유가 수양대군을 죽이고 왕이 된들 세령과 사랑은 변치 않을 것이다. 서로 비긴 것이니 말이다. 시청자들도 공주의 남자 결말에 김승유와 세령공주가 산에 들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있기도 하다. 현재 공주의 남자 결말로는 신면도 죽고, 김승유도 죽고, 세령도 죽는 새드엔딩이 될것이 눈에 보이지만 말이다.
 


공주의 남자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가 역사인듯 말하는 사람이 늘어날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고 아직도 역사와 구분을 하지 못하고 미실이 어떻네 하는 사람들을 보면 웃지않을 수 없다.

지금도 공주의 남자를 보고 역사와 구분을 하지 않고, 신면을 비난하고, 세조를 비난하고, 사육신과 김승유가 한편이었는 줄 안다. 김승유와 정종, 그리고 사육신이 한편이라 설정은 김종서를 두번죽이는 것이다. 또한, 사육신을 두번 죽이는 것이다. 드라마가 역사가 되고 신화가 되어서 언젠가는 김승유는 사육신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을 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그와 반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와 역사가 다르다는 점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래의 글들은 공주의 남자나 사극이 망친 역사를 바로잡는 글들 입니다. 최소한 드라마를 보더라도 역사를 알고 보면 재미가 극대화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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