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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계백>에서 은고(송지효)가 황후에 오른다.

 

은고는 황후책봉을 받기 위해서 당나라의 교서를 받아야 하지만, 받지 못하자 신라의 김춘추를 통해서 당나라의 교서를 받아낸다.

부여효의 태자 책봉을 받기 위해서 신라 김춘추와 김유신과 연계해서 백제의 정보를 팔아넘기려 한다. 
 

계백이 신라를 치기 위해서 도비천성에 웅거하여 신라를 치기위한 계략을 꾸민다. 하지만, 은고는  계략을 빼내 임자를 통해서 신라에 팔아 넘긴다.

이로 인해서 <계백>에서 백전백승, 전쟁의 신인 계백이 처음 패전을 한다.

 

김유신 열전에는 임자를 백제의 좌평이라 했으며 임자가 김유신에게 백제의 정보를 빼내 팔아 넘긴다. 

임자가 백제의 정보를 팔아넘긴 이유는, 김유신이 신라 부산현령이였던 임자의 노비 조미갑(조미압)을 통해서 신라가 망하면 임자에게 의지하고, 백제가 망하면 임자가 신라에 의지해서 한평생 잘 살아보자는 이간계에 넘어간 때문이다.

 

임자는 신라에 정보를 팔아서 6559김유신이 백제의 도비천성을 공략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처음 임자가 은고의 복심으로 나올 때 이미 은고가 신라와 내통한다는 설정이 있을 것을 알았지만, 드라마 <계백>은 정말 은고가 백제를 팔아 넘긴 것으로 그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은고의 황후 책봉과 부여효의 세자 책봉을 받기 위해서란 것이 참으로 놀라운 반전이라고 하겠다.
 

 

 

655년 9월 김유신이 도비천성을 공격하기 전에 백제는 고구려, 말갈과 더불어 신라의 북변 30개성을 공취한다. 김유신의 도비천성 공격은 백제에 대한 반격의 성격이 강한 전투였다.

 

8월에 왕은 고구려와 말갈과 더불어 신라의 30여 성을 공격하여 깨뜨렸다. 신라 왕 김춘추(金春秋)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표를 올려 『백제가 고구려와 말갈과 함께 우리의 북쪽 경계를 쳐들어 와서 30여 성을 함락시켰다.』고 하였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 의자왕 25655


영휘 6년 을묘(655) 가을 9월에 유신이 백제 땅에 들어가 도비천성(刀比川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이 무렵 백제의 임금과 신하들은 심히 사치하고 지나치게 방탕하여 국사를 돌보지 않아 백성이 원망하고 신이 노하여 재앙과 괴변이 속출하였다.
 
유신이 왕에게 고하기를 “백제는 무도하여 그 지은 죄가 걸주(桀紂)보다 심하니 이 때는 진실로 하늘의 뜻을 따라 백성을 위로하고 죄인을 정벌하여야 할 때입니다.” 하였다.

이보다 앞서 급찬 조미갑(조미압)(租未압@[土甲])이 부산현령(夫山縣令)이 되었다가 백제에 포로로 잡혀가 좌평 임자(任子)의 집 종이 되어 일을 부지런히 하고 성실하게 하여 일찍이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임자가 불쌍히 여기고 의심치 않아 출입을 마음대로 하게 하였다. 이에 도망쳐 돌아와 백제의 사정을 유신에게 고하니 유신은 조미갑이 충직하여 쓸 수 있음을 알고 말하였다.
-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 61세


 

 


그런데 <계백>에서 계백이 다시 군사를 이끌게 한 때를 은상이 죽고 나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은상은 649년에 죽고, 신라본기, 김유신 열전에 따르면 649년에 신라 석토성을 비롯한 7개의 성을 공취하지만, 신라 김유신의 반격을 받고 좌평 은상과 달솔 자견을 비롯한 10명의 장군이 죽고 군사 9,000명이 죽는다.

 

649년 가을 8월에 왕은 좌장(左將) 은상(殷相)을 보내 정예 군사 7천 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석토성(石吐城) 등 일곱 성을 공격하여 빼앗았다. 신라 장군 유신(庾信)· 진춘(陳春)· 천존(天存)· 죽지(竹旨) 등이 이를 맞아 치자, [은상은] 이롭지 못하므로 흩어진 군사들을 수습하여 도살성(道薩城) 아래에 진을 치고 다시 싸웠으나 우리 군사가 패배하였다.

- 백제본기 의자왕 9-
 

649 8월 이에 유신 등이 진격하여 크게 이겨 장사(將士) 100명을 죽이거나 사로잡고 군졸 8,980명을 목베었으며, 전마(戰馬) 1만 필을 획득하였고 병기와 같은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 신라본기 진덕왕 3 

 


649
년 이때부터 신라는 당 복식으로 바꾼다. <계백>에서 김춘추가 백제 사비성에 당복식으로 나오는 장면은 있을 수 없는 장면이다.
 


649년 3년 봄 정월에 비로소 중국의 의관(衣冠)을 착용하였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어쨌든, <계백>에서는 649년 은상의 죽음으로부터 655년 사건으로 바로 넘어 가고 있다.

 

<계백>에서 백제를 찾아보기 힘들고, 계백이나 의자왕을 찾아 보기 힘들다. 단지, 상열지사 삼각관계로 인해서 백제가 망했다는 여자가 한을 품으면 나라도 망하게한다는 것뿐이다. 이는 사극의 범주가 아닌 현재 사극의 주류 시청자인 여성주의 사극을 표방하는 바를 따라 간 것이기는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설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 시청자들을 TV앞으로 끌어들였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역사도 망치고 시청률도 망친 남 따라가다 망친 대표적인 사례 사극이 되고 말았다

.

<계백>은 총제적인 부실덩어리다. 첫째는 시나리오의 부실이고, 두 번째는 제작자의 연출력, 세 번째는 연기자의 발연기, 네번째는 철저하게 고증을 무시한 역사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글쓴이(갓쉰동)는 시나리오의 개연성과 리얼리티와 고증을 주로 보는 편이다. 그다음이 제작자의 연출력이고 마지막이 배우들의 연기다. 시나리오가 부실해도 연출력이 탄탄하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다. 또한, 시나리오가 부실해도 연출력이나 배우의 연기가 탄탄하면 그런대로 봐줄만 드라마가 된다.

 

그런데 <계백> 어느 하나 만족스러운 점을 발견할 수가 없다. 시나리오가 부실하더라도 연출자의 연출력이나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시나리오의 부실을 보완하는 경우가 많은데 <계백>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계백>에 나오는 배우들이 그 동안 얼마나 다른 드라마에서 발연기를 하고 날로 먹었는지를 알 수 있었을 뿐이다. 오히려 조재현보다 송지효의 연기가 제일 나아 보일정도면 말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이전 제작자들이 이런 배우들과 함께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얼마나 OK사인을 내기 위해서 NG를 내면서 고생을 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만약, 계백 연출자가 아닌 <계백>에 등장하는 배우들과 한번이라고 같이한 드라마 제작자였다면 <계백>의 대부분의 장면은 NG사인을 내야 합당한 장면이 태반이었다.

 

<계백>에서 백제의 왕은 황제로 나온다. 무왕이나 의자왕은 폐하라하고 은고나 사택비를 폐하라, 전하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백제는 황제국이다. 백제 의자왕의 처음이자 마지막 태자였던 부여융을, 황제국 백제가 부여융을 양자로 만들어 당에 왕자를 숙위시키고, 부여효를 태자로 만들기 위해서 당에 머리를 숙이고, 승인 교서가 없다면 태자도 될 수 없고, 황후는 당의 승인 교서가 없다면 황후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모자란 황제국이 된 것이다.

 

사실 백제는 황제국이 된 적도 없지만, <계백>에서 어떻게 그려나갈지 궁금해서 보고 있었는데 황당한 황제국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황제국이라고 했다면 제대로 황제국을 만들던지 했어야 하지 않을까? 당황제의 책봉 교서를 받는 황제국을 본적이 있던가?
 

고인이 된[故] 주국(柱國) 대방군왕(帶方郡王) 백제왕百濟王) 부여장(夫餘璋)은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멀리서 정삭(正朔)을 받고, 보배를 바치고 글월을 올려 처음과 끝이 한결같았는데 문득 죽으니 깊이 슬퍼하고 추도한다. 마땅히 일상의 예에 더하여 애도의 영예를 표하노라.』 [태종이 왕에게] 광록대부(光祿大夫)를 추증하고 부의(賻儀)를 후하게 내렸다.
 - 백제 무왕


설령 백제가 당의 책봉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이는 사후 인정하는 형태를 취한다. 당나라가 감놔라 대추놔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백제의 왕이 죽었거나 새로운 왕이 나면 형식적으로 교지를 내려서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목메일 국가는 하나도 없다. 또한 그럴 이유도 없다.

 

그런데 황제국 백제가 부여융 태자를 당황제 시위를 위해서 당에 가고, 황후와 태자가 책봉을 받으려고 당나라에 직접적으로 교지를 받으려는 것도 것도 아니고, 신라를 통해서 해야한다는 설정은 개연성과 리얼리티 제로다.

<
계백>은 주류인 연예사극도 아니고 백제의 마지막 충신이라는 계백도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 의자왕의 ()대부인, 부인, 처로 기록된 은고가 후비 출신이라는 설정으로부터 615년에 태어난 부여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각관계의 억지로 만든 설정 때문에 부여융은 어미애비도 없는 듣보잡 왕자로 만들어 버렸다.

612
년에 태어난 은고로 그리면서부터 <계백>은 첫 단추부터 잘못 채운 개연성, 리얼리티가 사라진 드라마다. 은고와 의자왕과 계백이 삼각관계라는 설정을 하는 순간 <계백>은 산으로 들로 강으로 바다로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린다.

 

최소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를 만드는 시나리오 작가나, 제작자라면 자신들이 쓰고자, 연출하고자 하는 드라마의 제작배경이나 역사에 대해서 한권으로 읽는 역사 시리즈 책이라도 읽어 봐야 하지 않을까? 겨우 본다는 게 이전 사극류나 소설나부랑이를 읽고 사극 시나리오를 스고 연출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건축의 기본을 모르고 50층 빌딩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것만큼 무모하다.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드라마의 시대배경을 전공한 사학자에게 시나리오 고증 감수. 검증이라도 받아보던지 말이다. 쪽대본으로 찍는 생중계 드라마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인가? 드라마 인데 어떻게 만들던지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한다면 자신들이 만든 시나리오의 극중 개연성이나 리얼리티라도 살리던지 말이다.

 

사실 드라마 이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지를 못하는 것 같다. 대다수의 시청자는 역사를 모르고 드라마를 시청한다.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도 암기식 교육을 받고, 역사가 어렵다고 역사과목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역사를 전공했다고 해도 자신의 전공부분이 아닌 부분에서는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작가의 허황된 역사지식이나 상식을 바탕으로 만든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역사지식을 은연중에 이식시킬 가능성이 높다.

 

사극을 만드는 목적 중에 커다란 이유는 사극을 통해서 시청자가 몰랐던, 잘못 알고 있었던 역사를 자연스럽게 역사적 지식을 습득하게 하는 파급력과 목적이 있다는 것을 <사극>을 만드는 작가가 몰랐을리 없다. 몰랐다면 사극작가나 제작자로서는 낙제점이다.

 

저녁 해는 서편 황금빛 노을로 떨어지는데 아직도 백제 의자왕과 계백과 은고는 언제 나오는지 알 수 가 없다. 집 나간 은고, 계백, 의자왕을 보신 분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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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t-1004.tistory.com BlogIcon 일프로 인 코리아 2011.11.09 10: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계백 이거 재미있다던데 저도 챙겨봐야겠에요^^

  2. 지나가다 2011.11.09 1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제국으로 설정한거는 잘못이지만 중국으로부터 왕 책봉은 형식적으로라도 받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황제라는 용어를 쓴거는 잘못된게 맞지만 폐하라고 불린거는 맞다고 봅니다.
    미륵사 석탑 금제사리봉안기에 있는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때 백제 왕은 대왕폐하라고 불렸으니까요.

    『 가만히 생각하건데, 法王(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중생들의) 근기(根機)에 따라 감응(感應)하시고, (중생들의) 바람에 맞추어 몸을 드러내심은 물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석가모니께서는) 왕궁(王宮)에 태어나셔서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면서 8곡(斛)의 사리(舍利)를 남겨 3천 대천세계를 이익되게 하셨다. (그러니) 마침내 오색(五色)으로 빛나는 사리(舍利)를 7번 요잡(오른쪽으로 돌면서 경의를 표함)하면 그 신통변화는 불가사의할 것이다.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曠劫]에 선인(善因)을 심어 금생에 뛰어난 과보[勝報] 를 받아 삼라만상을 어루만져 기르시고 불교[三寶]의 동량(棟梁)이 되셨기에 능히 정재(淨財)를 희사하여 가람(伽藍)을 세우시고, 기해년(己亥年) 정월 29일에 사리(舍利)를 받들어 맞이했다.

    원하옵나니, 세세토록 공양하고 영원토록 다함이 없어서 이 선근(善根)을 자량(資糧)으로 하여 대왕폐하(大王陛下)의 수명은 산악과 같이 견고하고 치세[寶曆]는 천지와 함께 영구하여, 위로는 정법(正法)을 넓히고 아래로는 창생(蒼生)을 교화하게 하소서.

    또 원하옵나니, 왕후(王后)의 신심(身心)은 수경(水鏡)과 같아서 법계(法界)를 비추어 항상 밝히시며, 금강 같은 몸은 허공과 나란히 불멸(不滅)하시어 칠세(七世)의 구원(久遠)까지도 함께 복리(福利)를 입게 하시고, 모든 중생들 함께 불도 이루게 하소서.』

  3. 지나가다 2011.11.09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 역사연구자들의 주장을 보아하니 '대왕폐하'라는 용어를 쓴 자체가 백제 내부적으로는 무왕을 황제로 여기면서 대왕폐하라고 불렀다는것을 의미한다고 하는군요. 또한 백제가 대내적으로 왕권이 강화됐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중국의 군주와 버금가는 위치에 있음을 과시하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라고 하구요.
    '폐하'는 황제에게만 붙이는 이름"이라며 무왕을 이같이 부른 것으로 비춰볼 때 "사리봉안기는 무왕대에 이루어진 왕권 강화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드라마상에서 황제라는 명칭을 쓴것이 그렇게 무리수는 아닌거같긴 합니다. 이왕이면 대왕폐하라고 썼으면 어땠을까 싶지만요..ㅎㅎ

  4. Favicon of http://www.sudacademy.org BlogIcon Sud Academy Blog 2011.11.09 2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위대한 기사 주셔서 감사합니다,이 영화는 아주 좋은 생각합니다.

  5. 백제연구가 2011.11.12 1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백제가 가장 강성하던 시절에 조차, 황제국 이였던 적은 없습니다. 하물며 당나라 시절에는.....

    위서 백제전이나, 삼국사기 백제본기 등에 실려있는
    중국의 북방국가 '북위' 에게 벡제가 고구려를 정벌해 달라고 보낸 외교문서 입니다.

    이 당시 백제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에게 타격을 당했다고는 하나, 아직 한강유역을백제가 점유하고 있는 강대한 국가였던 시절입니다.

    이를 봐도 백제는 황제국과는 위상이 멀지요.

    백제의 이런 반민족적인 행태에 고구려가 얼마나 열받았는지, 이 후, 고구려 장수왕이 직접 백제의 한성유역을 공격하고, 백제 개로왕을 참수시켜 버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이 나라를 동쪽 끝에 세웠으나 시랑(豺狼, 승냥이로 고구려를 비유함)이 길을 막아서 비록 해마다 좋은 교화를 받았으나 봉번奉藩의 인연이 없어서 대궐을 바라보며 끌리는 마음이 다함이 없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이때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하늘의 명령에 화합하고 우러러보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사사로이 임명한 관군장군부마도위불사후장사 여례餘禮와 용양장군대방태수사마 장무張茂 등을 파견하여 거친 물결에 배를 띄우고 험한 나룻길을 더듬어 목숨을 자연의 운명에 의탁하며 정성의 만분의 일이나마 드리오니, 신지神祗가 감동하고 황령皇靈이 널리 덮어서 천자의 조정에 도달하여 저의 뜻을 펴게 된다면 비록 아침에 소식을 듣고 저녁에 죽는다 하더라도 영원히 한이 없겠습니다.

    신이 고구려와 더불어 근원이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선대에는 옛 정의를 돈독히 존중하였는데, 그 조부 고국원왕이 경솔히 이웃의 우호를 없애고 친히 사졸의 무리를 거느리고 신의 국경을 침략하므로 신의 조부 수(須, 근구수왕. 이때는 태자였음)가 군사를 정비하여 번개같이 달려서 기회를 타서 치니 화살과 돌멩이가 잠깐 오가는 사이 고국원왕의 목을 베게 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감히 남쪽을 돌아보지 못하였는데 풍씨(馮氏, 북연의 임금)가 죽고 그 잔당마저 달아나서 숨으니 더러운 무리(고구려)가 차츰 번성하여 마침내 빈번히 침입하여 원한이 맺히고 화가 연달아 30여 년이나 되었으며, 그 결과 우리의 재정과 힘이 다하여 궁색하여졌습니다.

    만일 폐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겨 속히 군사를 파견하여 우리나라를 구원하여 주시면 마땅히 비천한 딸이나마 후궁으로 보낼 것이며, 아울러 자제를 파견하여 마구간에서 말을 기르게 하고, 한 치의 땅, 한 사람의 백성도 감히 제것으로 여기지 않겠습니다. 지금 거련(고구려 장수왕의 이름)은 죄가 있어 나라는 스스로 어육이 되고, 대신강족大臣彊族의 살육이 그지없어 죄악이 쌓이고 백성들의 마음이 흐트러졌으니 이것은 멸망의 때로 하늘이 사람의 손을 빌릴 기회입니다. 또 풍씨의 군사와 말들은 그들이 거두어 줄 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고, 낙랑의 여러 고을은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니 천자의 위엄이 한번 움직이면 싸우지 않고도 정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도 비록 불민하나 온 힘을 다하여 마땅히 부하를 거느리고 폐하의 위풍을 받들어 재빨리 응할 것입니다.

    또한 고구려의 불의와 간사함이 하나가 아니어서 겉으로는 받드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흉악한 산돼지처럼 돌진할 마음을 품고, 혹은 남쪽의 유씨(송나라)와 통하고 혹은 북쪽의 유연과 약속하여 서로 입술과 이처럼 의지하여 폐하의 경계를 침범하려고 합니다. 옛날 당요(唐堯, 요임금)는 지극한 성인이었으나 단주를 벌주고 맹상군을 어진 이라 칭하였으나 길가에서 꾸짖음을 외면치 않았습니다. 지난 경진년(비유왕 14년, 장수왕 8년) 이후에 신의 서쪽 경계 소석산 북쪽나라 바다 속에서 10여 명의 시체를 발견하고 아울러 의복, 기구, 말안장, 말굴레 등을 얻었는데 이는 고구려의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에 들으니 바로 한인이 신의 나라로 오다가 긴뱀(고구려를 말함)이 길을 가로막고 바다로 침몰시켰다 하니, 비록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분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옛날 송나라가 신주申舟를 죽이자 초나라 장왕이 발벗고 일어났고, 놓아준 비둘기를 새매가 잡으니 신릉군이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적을 이기고 공명을 날렸으므로 끝없이 칭찬받았습니다.

    무릇 구차한 변방의 소국도 오히려 만대의 신의를 사모하는데 하물며 폐하께서는 천지의 기운과 합하고 위세가 산과 바다를 기울일 수 있는데도 어찌하여 지금 작은 아이들(고구려를 지칭함)에게 천자의 통로를 막게 하십니까. 이제 그때 얻은 말안장 하나를 올려 실제로 증거로 삼아 글을 올립니다.”

    “臣은 高句麗와 함께 夫餘에서 나왔으므로[註024] 先代에는 우의를 매우 돈독히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선조인 釗[註025]가 이웃간의 우호를 가볍게 깨뜨리고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신의 국경을 짓밟았습니다.[註026] 그리하여 신의 先祖인 須[註027]가 군사를 정돈하고 번개처럼 달려가서 기회를 타 돌풍처럼 공격하여, 화살과 돌이 오고 간지 잠깐만에 釗의 머리를 베어 높이 매달으니,[註028] 그 이후부터는 감히 남쪽을 엿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馮氏[註029]의 국운이 다하여 그 遺民이 [高句麗로] 도망하여 온 후로부터 추악한 무리가 점점 강성하여져[註030] 끝내 침략과 위협을 당하여 원한이 얽히고 戰禍가 연이은 것이 30여년입니다. 물자도 다되고 힘도 떨어져서 자꾸만 쇠잔해지고 있습니다.[註031] 만일 天子의 仁慈와 간절한 矜恤이 멀리라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면 급히 장수 한 사람을 보내어 신의 나라를 구원하여 주십시요.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어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아울러 자제들을 보내어 마굿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겠으며 한 치의 땅이나 한 사람의 匹夫라도 감히 저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위서 권100 백제전-

  6. Favicon of http://www.geilekontakte.ch/zug.php BlogIcon Geile Hausfrauen anrufen 2011.11.14 1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위대한 기사 주셔서 감사합니다,이 영화는 아주 좋은 생각합니다.??? 이해가 안 돼요

  7. Favicon of http://www.translation-probst.com/uebersetzungen/beglaubigte-uebersetzung.html BlogIcon Beglaubigte Übersetzungen 2011.11.16 0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되고 힘도 떨어져서 자꾸만 쇠잔해지고 있습니다.[註031] 만일 天子의 仁慈와 간절한 矜恤이 멀리라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면 급히 장수 한 사람을 보내어 신의 나라를 구원하여 주십시요.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어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아울러 자제들을 보내어 마굿간에????

  8. Favicon of http://www.masterconcrete.com.au/driveway-cleaning/ BlogIcon driveway cleaning 2011.12.27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며 요즘 드라마의 극중 개연성 뿐만 아니라 무분별하게 상상으로 쓸 수 없는 부분인 역사적인 팩트와는 다른 드라마를 쓰는 작가에 대한 일침을 하였을까?

  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도 세종 또한 직접 참관하는데..
    은밀히 유족없는 시신으로 몰

  10. Favicon of http://hubshout.com/?SEO-Reseller-Program&AID=84 BlogIcon Janett 2012.07.22 2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인들이 백두산을 따로 지칭하는 말이고 동북공정의 일환인데 한국사람이 장

  11. Favicon of http://www.1-health-insurance-quotes.com/ BlogIcon health insurance quotes for individuals 2012.07.24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의 복심으로 나올 때 이미 은고가 신라와 내통한다는 설정이 있을 것을 알았지만,

  12. Favicon of http://insurancedirectly.com/health-insurance-quotes/is-aarp-health-care-plans.. BlogIcon aetna vision plan 2012.08.08 0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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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좋은 작품이다 나는 이와 유사한 것들을 봤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까지 가장 좋습니다.

  14. Favicon of http://collinsawee.typepad.com/blog/2012/04/are-you-ready-for-various-kinds-wi.. BlogIcon emergency lamp circuit diagram 2012.12.10 2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가 어릴 적 애마부인을 무척 사랑했던 모양이다. 시도 때도 없이 세령과 김승유를 말에 태우니 말이다

  15. Favicon of http://tinyshiny.typepad.com/tinyshiny/2007/08/no.html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dogs 2012.12.25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갈과 더불어 신라의 북변 30개성을 공취한다. 김유신의 도비천성 공격은 백제에 대한 반격의 성격이 강한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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