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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의 비밀 조직인 천지회에서 언문(소리글) 훈민정음이 창제 된다.

 

밀본은 세종 이도가 하려는 일이 글을 만드는 일인지를 알게 되지만, 글이 어떠한 형식인지 모른다.

 

하지만, 글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밀본과 유림은 글을 만들어 스스로 이적이 되려하느냐고 반발한다.

 

유림의 영수인 혜강을 필두로 성균관 집현전, 사관들 까지 들고 일어난다.

 

문제는 세종 이도가 만들려는 글이 얼마나 좋은지, 나쁜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강채윤은 훈민정음 28자로 반나절만에 글을 읽고 쓴다. 북촌의 어리숙한 밀본의 자객은 자신의 반나절 만에 자신의 이름를 쓰고, 어린 아이는 밀본 정기준의 말을 바로 듣고 글로 써내려 간다.

 

밀본 정기준은 글은 지배자와 지배하지 않는자를 가르는 기준인데 모든 백성들이 글을 알게 된다면 자신들과 백성들과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며 집현전 철폐를 내세워 글(훈민정음)과 세종 이도의 친위세력 집현전과 바꾸려 한다.

 

하지만, 세종이 만들려는 글이 하루만에 배우고 익혀서 말한다면 집현전 철폐가 아닌 한글을 만들지 못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뿌리깊은 나무>에서의 훈민정음 보급을 위해 정음청과 언문청을 만들고 친위세력 집현전 철폐를 맞바꾼다는 설정은 그럴 듯 하다.

 

하지만, 이는 역사와는 1인치도 비슷한 부분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언문  훈민정음이 창제되자 집현전을 비롯한 성리학의 양반들이 반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시로 최만리의 상소를 들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소설상의 설정일 뿐이다. 소설이 얼마나 역사를 망칠수 있는가의 대표적인 사례가 훈민정음 한글에 관한 최만리의 상소와 당대의 시대상을 모르는 단순한 생각이 지금까지 사실처럼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때는 144312 30로 명절인 설을 앞둔 날이다.

 

세종 이도가 훈민정음을 발표한 때가 참으로 교묘하지 않는가? 세종 이도는 집현전이나 사관이나 사간원이나 유림들이 반대할 것을 예측하고 공개를 하였을 것이다. 단지 설을 앞두고 발표를 하므로서 반대를 교묘히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시 유림들은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는다.

 

1444 2월 세종 이도는 중국의 한자를 우리의 훈과 음으로 되어 있던 운회를 언문 훈민정음으로 번역하게 한다.

 

그 중심에 세자(문종)가 있었고, 세조 수양대군(진영대군)과 안평대군 등이 중심이 되어 신숙주, 최항, 박팽년 등을 동원하여 작업하게 한다.

 

또한, 삼강행실도를 언문 훈민정음으로 새롭게 만들어 보급하게 한다. 정음청, 언문청을 만들고 과거에 언문 훈민정음을 과목에 채택한다. 더군다나 소학, 사서, 삼경을 비롯한 수 없이 많은 유학의 저서들을 훈민정음으로 번역케 한다.



그런데 집현전 대빵인 부제학 최만리를 비롯해서 하위지, 김문 등 7명이 반대를 한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 천하 제일검객과 같은 논쟁의 달인 세종 이도는 최만리와 반대자의 논리를 무력하 시키고 김문을 하옥하고 장 100대를 치는 것으로 언문 반대 세력을 진압한다. 김문에게 죄를 준 것은 임금을 상대로 거짓된 말로 속임수를 썼다는 것이지 언문 자체는 아니였다. 
 

“전번에 김문(金汶)이 아뢰기를, 언문을 제작함에 불가할 것은 없습니다.’ 하였는데, 지금은 도리어 불가하다 하고, 또 정창손(鄭昌孫)은 말하기를,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반포한 후에 충신·효자·열녀의 무리가 나옴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질(資質) 여하(如何)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꼭 언문으로 번역한 후에야 사람이 모두 본받을 것입니까.’ 하였으니, 이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용속(庸俗)한 선비이다.”

 

의금부(義禁府)에서 조사하여 아뢰기를,
김문(金汶)은 율(律)이 대제상서사불이실(對制上書詐不以實)에 해당하오니, 장(杖) 1백 대에 도(徒) 3년을 처하소서.”
하니, 다만 장(杖) 1백 대를 속(贖)바치게 하였다.
1444년 2월 21일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가 논쟁의 달인으로 나온 것은 사실이다. 세종 이도는 성리학의 논리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권한과 협박, 눈물 등 다양한 인간적인 면모를 동원하여 반대를 회유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근접한 사람이 김대중노무현이다.

 

특히 노무현은 논쟁을 좋아하고 자신을 논리로써 굴복시킬 수 있다면 언제든지 자신의 견해를 바꿀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그리고 집권초기 검찰개혁을 하면서 평검사들과 집단토론을 주재한 적도 있다. 조중동을 비롯한 신문들은 논쟁에 집중하기 보다는 세종 이도가 지랄하고 자빠졌네, 우라질 처럼 말하는 장면에서 통쾌함을 느끼고 있었던 시청자들과는 다르게 막 하자는 거냐?노무현의 말에 딴지를 걸어서 논쟁은 사리지고 노무현의 막말사건으로 비화시켰지만 말이다.

 

세종 이도가 언문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운회와 삼강행실도를 만들라 하자 처음 김문을 비롯한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그런데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가 반대를 하자 김문은 자신의 견해를 바꿔 최만리의 편에 섰고, 어찌 선비가 교언영색할 수 있는가 왕을 속이는 김문을 하옥하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집현전 학사는 처벌하지 않는다.

 

최만리가 반대한 이유는 중화와 다른 글을 만들어 이적이 되려하는가 였고, 글은 배우고 익히는데 시간이 오래 결려야 하는데 언문은 너무 쉬어서 유자들이 공부를 게을리 할까 저어한다고 한것이다. 훈민정음은 너무나 훌륭한 글이라는데 최만리도 동의를 하였었다.


 

 

1. 우리 조선은 조종 때부터 내려오면서 지성스럽게 대국(大國)을 섬기어 한결같이 중화(中華)의 제도를 준행(遵行)하였는데, 이제 글을 같이하고 법도를 같이하는 때를 당하여 언문을 창작하신 것은 보고 듣기에 놀라움이 있습니다. 설혹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뜬 것이고 새로 된 글자가 아니라.’ 하지만, 글자의 형상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을지라도 음을 쓰고 글자를 합하는 것은 모두 옛 것에 반대되니 실로 의거할 데가 없사옵니다. 만일 중국에라도 흘러 들어가서 혹시라도 비난하여 말하는 자가 있사오면, 어찌 대국을 섬기고 중화를 사모하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사오리까.

..중략..

역대로 중국에서 모두 우리 나라는 기자(箕子)의 남긴 풍속이 있다 하고, 문물과 예악을 중화에 견주어 말하기도 하는데, 이제 따로 언문을 만드는 것은 중국을 버리고 스스로 이적과 같아지려는 것으로서, 이른바 소합향(蘇合香)을 버리고 당랑환(螗螂丸)을 취함이오니, 어찌 문명의 큰 흠절이 아니오리까.
1444년 2월 20일 최만리 언문 반대 상소


<뿌리깊은 나무>에서 모든 관청이 업무를 보지 않고, 등처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 언문 훈민정음을 가장 반겼던 사람들은 실제 유림들이었다.

 

함길도, 제주, 호남, 경상, 경기마다. 말이 다르듯이 한자도 한자를 공부하는데 스승에 따라 훈과 읽는 방법이 달랐다.

 

이를 통일하고 스승이 없어도 한자를 읽게 만들어 버린 것이 언문 훈민정음이다. 한자는 스승이 없다면 배우고 익힐수가 없는 문자였다. 하지만, 훈민정음으로 표기된 한자는 혁명과도 같았다. 혼자 익힐 수 있는 문자가 된것이다. 훈민정음은 양반 유림들에게는 한자를 공부하기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글이 되었다. 한마디로 문자(한문)을 배우는 보조수단으로 한글(훈민정음)만한 것이 없었다.

세종 이도가 가장 먼저 한일도 한자사전 운회를 언문으로 만들어 조선에서 사용하는 한자음을 통일화 시키는 작업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는 환영분위기 였다. 훈민정음에 반대는 집현전의 최만리와 7명의 유학자뿐이였고, 오히려 내불당이나 흥천사 사리탑의 경우는 몇 해를 넘기고 끊임없이 상소를 하고 모든 유림들이 들고 일어나 데모와 사보타지를 하였다.

후에 문종이 즉위하자 정음청을 없애고, 단종이 즉위하자 언문청을 없애자는 상소를 하고 유림이 정권을 장악한 중종반정 이후에 언문청을 없애버리지만 말이다. 이는 정보의 과점상태가 사라지고 꼴보수 성리학자들인 사림파와  백성을 가르는 점이 없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했지만, 말이다.

사실 훈민정음을 지킨 이는 세종 다음에 세조 수양대군이였다. 수양대군이 없었다면 훈민정음은 한 때 과거에 있었던 흘러간 글자가 되었을 것이다.

 

사실 세종이도에게 왕으로서 집현전은 계륵과 같은 존재였지만, 유학자인 세종 이도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조직이었고, 집현전은 유학을 숭상하는 성리학자의 연구기관으로서 유학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논리를 개발하는 곳이었다.

그러니 집현전은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의 친위조직이 아닌 집현전을 없애고 성리학의 나라를 만들려한 밀본의 뿌리에 해당하는 것이다. 문제는 <뿌리깊은 나무>에서 단순하게 집현전 세종의 친위조직으로 왕권을 강화하는 목적이 있는 기구로 설정하고 밀본은 집현전만 없으면 재상이 다스리는 성리학의 나라가 된다는 엉뚱한 설정인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를 하면 세종이 언문을 만들자 극히 일부의 반대가 있었지만 별다른 반발이 없었다. 왜냐 하면 언문 훈민정음은 백성이 아닌 유학자 자신들에게 너무나 필요한 문자였기 때문이다. 유림의 힘은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부에 있었다. 그리고 공부를 통한 정보의 독점에 있었지 문자를 알고 말고의 차이가 아니였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대다수가 한글을 읽고 쓰지만, 공부를 통해서 정보를 독점한 극히 일부에 이끌려가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백성은 신분상의 제약으로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글을 안다고 해서 입신양명을 할 수 없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강채윤이 밀본을 색출하여 일을 마무리 하면 세종 이도에게 할말이 있다고 있다고 한 것은 단순히 소이를 취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양반과 천민을 가르는 신분제를 없애야 한다는 소원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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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개울 넘어에 2011.11.29 0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왕조시대의 왕은 절대자입니다. 왕의 정치행위,행동들에 신하들이 반대하는 건 왕이 용납할 정도에서 그치는거지 그 이상의 반대행위는 여차하면 3족이 몰살당할 위험을 감수할 자신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거죠.
    왕조시대의 법전(조선의 경국대전 같은)은 헌법개념의 상위법이 아니라 일반법이라 특별법 개념의 왕의 교시에 밀리는 겁니다.
    왕의 교시는 법보다 우선인거죠.
    괜히 환관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수렴청정하의 왕의 친인척이 국정을 유린하는게 아니죠.
    지금과 비교해서 왕조시대 왕들은 군,병권을 포함한 행정에 입법,사법에 언론 까지 장악하고 있는건데 뿌나같이 왕권이 허약해 보이는건 너무 심한 오버로 보입니다.
    유신시대 박정희나 5공 초 전두환과도 비교할 수 없이 터무니 없이 강한 권력을 가진게 왕들인데 뿌나같이 왕권이 허약했다면 조선이 저리 오래 갈 수가 없는거에요.
    신하들이 상소하고 간언하는게 사실은 왕이 이정도는 봐줄거란 간보기가 전제되 있다는 말이죠.

  3. 붉은비 2011.11.29 1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설이나 드라마에서와 같은 극렬한 반대는 판타지가 섞여있음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한글창제가 환영받았다고 하기에는 세종 사후의 분위기가 영 그렇죠...^^;
    뭐 중종반정 이후 왕조 초기의 활력을 잃고 복고로 회귀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죠만...

  4. 2011.12.01 0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감감가마

  5. 세종대왕 2011.12.01 0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가다가 한마디 적어봅니다... 도대체 한글을 유림이 반대하지 않았던 근거를 어디서 두었나요?? 실록이나 권위있는 근거를 두고 말을 해주세요... 유림이 한자를 익히기위해서 좋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유림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한자를 익히는게 좋아 한글을 반대하지않았다는 말도 억측같네요... 한글에 대해서 반대하지 못한 것은 반대를 할 명분이 없었지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실력이 없던겁니다. 당대 최고의 언문학자가 바로 세종이지요.. 최만리 등 성리학적인 내용만 들어 반대를 했지 다른 언어에 대한 내용에 반대를 못하고 논리적으로 이기지도 못한것이지요... 또한 사대부들이 반대하지 않았다고 확신은 못하지만 그러한 내용이 없던것은 한글에 대한 무시가 더 큰듯합니다... 왜냐하면 한글은 이후로도 거의 쓰이지 못하고 부녀자들이나 익히는 것으로 전락했기 때문이지요

  6. 세종대왕 2011.12.01 0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울넘어님~~~ 조선의 왕이 절대권력을 가진 것은 몇왕밖에 되지 않아요..... 전 연산군만이 왕다운 왕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이며 명분의 나라이지요.... 왕이 아무리 신하들보다 더한 권력을 가진 분이라고 하지만 명분 없이면 어떠한 것도 반대의 부딪히고 말지요...... 세종이 너무 유약하게 그려진다고 했지만 전 사실에 가깝다고 봅니다... 세종은 아버지인 태종과는 다른 태도를 취하지요... 이유가 병때문에 그런건지는 확실히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세종은 왕권과 신권이 가장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시대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절대권력을 내세워서 신권을 누르지는 않았고 논리(경연..)로써 조화를 이루신게 맞습니다.

  7. 헐.. 2011.12.03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떤 제가 모르는 근거가 있었던가하고 읽어보았는데,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한국사학과 교수님 수업을 들을 때 배웠던 바로는 매우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었고, 반포가 된 후에도 양반들이 여전히 싫어하고 멸시해서 몇백년동안 제대로 대우도 못받았고 그저 뒤에서 양반 여인들이나 소설책 읽고 편지쓰는 용도로 조금 쓰이다가 시간이 더 지난후에야 평민들이 소설책보고 하는데 쓰이게 되었다고 배웠습니다. 한글반포도 굉장히 기습적으로 떡! 이루어졌었고.. 반포후에도 반대가 엄청났었고.. 따라서 여전히 한글창제를 언제부터 누가 함께했는지, 아니면 진짜 세종혼자 몰래 했던 것인지도 미궁이라고 배웠습니다만.. 어쨰서 환영받았다는 주장을 하시는것인지..

  8. ㅇㅇㅇㅇ 2011.12.07 0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조선왕조실록에다가 '언문'으로 검색을 해 보니까 반대 사례라고는 최만리 등 몇 명의 상소 사건 단 한 건 뿐이더군요. 뇌물 사건으로 사형위기에 처한 조말생을 세종이 어거지로 구해 낸 사건이나 내불당, 흥천사 법회 등의 사건에 수년동안 수백건의 상소가 올라오고 대신과 언관들이 등청을 거부하고 오만 난리를 쳐 댔던 거에 비하면 이건 뭐, 사실상 반대가 거의 없었다고 봐야죠. 대왕세종이나 뿌리깊은 나무 같은 환타지 소설로 역사를 "공부"하시는 분들이 가끔 여기다 댓글을 다는데 참 안쓰럽군요. 심지어 1월 1일이 어떻게 설이냐는 초딩까지 댓글을 달고 있으니...

  9. "언문" 2011.12.09 1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글쓴이가 어떤 의도로 이런 글을 쓰신지는 모르나..
    "언문"이 뭔지는 알고..
    언문(소리글)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쉽게.. 검색창에 "언문"이 무슨 뜻으로 사용되었는지는 한번 확인해보셔요..
    ㅋㅋ
    "언문"이 어쩌고,,,
    그것만 보더라도 조신시대에 양반들이 한글을 얼마나 낮추어 생각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0. Favicon of http://www.balloonking.co.uk BlogIcon balloons by post 2011.12.11 2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은 아주 유익하고 좋은 포스트이다. 나는 당신이 화제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좋아한다. 나는 진짜로 그것을 읽는 즐겼다. 많게 감사합니다.

  11.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5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 훈민정음 해례(교본)은 세자(문종), 수양대군(세조),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박팽년 등이 세종의 지시와 교정을 받고 만들어진다

  12.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리글)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쉽게.. 검색창에 "언문"이 무슨

  13. Favicon of http://rocville.com/?p=Events BlogIcon Harvilchuck 2012.07.08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의 훈민정음 보급을 위해 정음청과 언문청을 만들고 친위세력 집현전 철

  14. Favicon of http://www.balloonking.co.uk/40th-birthday-balloons-2 BlogIcon 40th birthday balloons 2012.07.14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너무 귀엽습니다 ^^
    잘보고 갑니다

  15. Favicon of http://pornhublive.com/ BlogIcon http://pornhublive.com/ 2012.07.19 2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세종이 만들려는 글이 하루만에 배우고 익혀서 말한다면 집현전 철폐가 아닌 한글을 만들지 못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16. Favicon of http://cheapcarinsurancemichigan.com/ BlogIcon cheap car insurance michigan 2012.07.23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이 만들려는 글이 하루만에 배우고 익혀서 말한다면 집현전 철폐가 아닌 한글을 만들지 못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17. Favicon of http://www.amerisleep.com BlogIcon Tempurpedic 2012.07.28 2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주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 쇼트프로그램은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18. Favicon of http://www.affordable--health-insurance.org/arizona-health-insurance/ BlogIcon affordable health insurance in arizona 2012.08.09 0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기사를 게시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고 새로운 것들을 게시 보관.

  19. Favicon of http://www.servantsound.com/2012/04/best-medical-kits-only-high-quality-will-do/ BlogIcon freeze drying 2012.12.10 1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드라마 작가가 간과한 것이 있다. 태자 부여 융에 관한 것이다.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나 682년 68세의 나이로 복망산에 뭍힌다.

  20. Favicon of http://extravirgin-oliveoil.net BlogIcon extra virgin olive oil 2012.12.17 0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 한글을 만드는 세종역을 했는데 한국말 맞춤법이 틀린 차칸남자가 되었느냐고 송중기에게 차칸남자를 바로 고치라고 한다.

  21. Favicon of http://extravirgin-oliveoil.net BlogIcon extra virgin olive oil 2012.12.17 0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 한글을 만드는 세종역을 했는데 한국말 맞춤법이 틀린 차칸남자가 되었느냐고 송중기에게 차칸남자를 바로 고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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