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뿌나>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뿌리깊은 나무는 그 동안의 사극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대고증을 하는 것으로서도 대단한 사극이고 명품사극의 반열에 올라도 될 만한 드라마였다.
뿌리깊은 나무 제작자 장태유는 <뿌리깊은 나무>를 시대상을 재연하는 <다큐사극>을 표방하고 있었고 초기에는 일정하게 이를 완성하는 듯 하였다.
하지만, 후반에 갈수록 장태유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어린 세종 이도가 왕이 되고 나이가 드는 장면 하나에도 심열을 기울렸던 장태유에게는 나이가 들지 않는 한 사람이 있다.
소이역을 맡은
그런데 소이는 세종 이도가 즉위할 때 나이가 여닐곱 정도의 아이였고, 세종 이도가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인 세종 28년 1446년 소이의 나이는 최소한 서른네다섯 정도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이는 여전히 신세경의 실제 나이로 밖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배우 신세경의 한계를 보는 듯 하다.
뿌리깊은 나무는 한글이 기득권을 이겨내고 만들어진 글자이고 수 많은 피를 보고서 탄생한 글자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또한 후대에 한글이 비하된 것은 기득권 세력의 암중 세력인 밀본의 흔들리지 않은 뿌리에서 연원을 찾은 듯 하다.
한짓골 한가놈이
성리학이 처음이자 끝이라고 나오는 밀본에서 한명회를 수양대군과 연관시키는 행위는 개연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김영현 도대체 무슨생각?이라고 할수 밖에 없다. 현재의 한글이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도 세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사실이다.
어쨌든, SBS의 구본근 센터장은 "나도 한 명의 시청자로서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했다. 한글을 만드는 과정이 어려웠고 반포하기까지 힘들었다는 것을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바탕으로 뿌리깊은 나무가 만들어졌다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는 역사를 바탕으로 한 장면은 단 하나도 없었다.
뿌리깊은 나무는 한글 창제의 미스터리 추리극을 표방했지만, 실제 한글과 드라마 한글 창제는 안드로메다 거리만큼 떨어져 있었다. 이를 역사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라고 한다면 파리도 새라고 불러도 할말이 없다.
그런데 구본근이나 많은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고 역사를 알았다는 듯이 말하고 있다.
구본근은 “한글을 만드는 과정이 어려웠고 반포하기까지 힘들었다는 것을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됐다” 하지만, 한글을 만드는 과정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세종 이도의 독자적인 작품이었고, 문자를 만드는 방법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였다.
단지 세종의 발상의 전환이 획기적인 문자를 만들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반포하기 까지 힘들었다는 것을 드라마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장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글 창제부터 한글 반포까지 별다른 반대조차 없었다. 오히려 환영분위기가 당대의 시대 상이였다.
억지로 한글의 위대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집현전 학사를 죽이지 않아도, 광평대군을 죽이지 않아도, 소이를 비롯한
한마디로 억지로 쥐어짜서 만들지 않아도 될 만큼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드라마로 만들어도 재미가 있다. 작가가 얼마나 한글의 탄생과정이 밋밋하면 기존의 역사까지 깡그리 무시하면서 까지 신격화해야 했을까를 반문한다면 오히려 작가가 한글의 안티세력인 밀본이 아닐까한다.
뿌리깊은 나무 작가
김문은 처음에 언문으로 삼강행실도를 만드는데 찬성하지만 후에 반대를 하다 장 100대를맞고 풀려난다. 왜냐하면 사실을 왜곡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딴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한글창제를 다룬 드라마를 표방했지만, 실제 한글 창제 과정은 보여주지 못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가 재미가 있으면 되지 역사는 왜 따지냐는 말을 한다. 드라마가 역사를 다룬 드라마라면 이는 논리적인 모순이다.
뿌리깊은 나무 작가는 세종의 대사 중 “결과나 목적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이는 현재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결과와 목적의 정당성의 동의여부와는 상관없이 통용되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뿌리깊은 나무 작가나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드라마의 목적이 한글 창제에 대한 미스터리와 한글의 위대성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이에 충실해야 한다. 설령, 시청률이 목적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는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세종이 위대한 성군인 이유는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희생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과정에 충실한 것이 세종이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의 모습은 없었다. 단지, 세종의 겉모습만을 이전 사극의 근엄함과는 다르게 표현하였고, 이는 실제 세종의 모습이었다.
뿌리깊은 나무가 수 많은 문제점과 한계를 들어낸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뿌리깊은 나무만한 사극이 그 동안 나오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만큼 뿌리깊은 나무는 좋은 드라마 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를 토대로 한글에 대한 환타지도 좋지만, 세종이 어떠하네 한글은 기득권을 이겨내고 만들어진 글자라고 말하거나 드라마 내용을 가지고 역사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을 넘어 짜증이 날 때도 있다. 한마디로 드라마와 역사를 혼동한 헛소리다.
드라마를 통해서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을 알아가는 것은 좋은 것이다. 사극을 만드는 중요 목적 중에 하나가 역사극을 통한 현실을 비판하는 목적도 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최우선의 목적이 드라마를 통해서 쉽게 당대의 역사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글(훈민정음)은 피를 먹고 태어날 만큼 반대가 심했다는 설정을 하였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많은 사극들은 자료조사도 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는 작가들로 인해서 역사와는 무관한 사극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실존인물과 기록이 존재할 때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그냥 주인공 이름을 세종 이도가 아닌
역사와 다른 훈민정음 창제과정을 보면 뿌리깊은 나무가 얼마나 잘못된 설정을 하고 있는지 알면 무조건 희희낙낙할 수 없는 이유다.
정도전이 태종
세종 이도는 천지회를 만들어 천지계원들에게 문신을 하도록 하지만, 문신자체는 조선시대에 형벌에 속한다. 세종 이도는
그런 세종 이도가 천지계원에게 문신을 하도록 하겠는가? 세종이도가 한글을 만들기 위해서 시체해부까지 한다는 설정자체는 당대에는 상상할수도 없는 일 뿐만 아니라 한글은 시체해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세종이 세법(토지개혁세)을 만들려고 18만명에 이르는 가부조사까지 하지만, 기득권 층이 반대로 이룰수 없었다고 뿌리깊은 나무에서 이야기하지만, 실제 세종의 세법은 찬성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세법자체의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하는 부자감세정책으로 기득권층은 반대하지 않고 세종의 세법에 찬성을 한다. 오히려 관리들이 반대를 하고 15년 동안 세법을 개정하여 현재 소득세율과 같이 혜택을 더 많이 받고 가진 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누진세율로 조정이 된다.
세종 이도가 1443년 한글을 창제하고 처음 한일은 성리학의 기반을 다지는 한자사전에 해당하는 <운회>를 번역하고, <삼강행실도>를 언문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광평대군은 단지 마마와 비슷한 역병으로 알려진 창진으로 죽는다. 이때 세종 이도는 정의공주의 집으로 피신을 떠난다. 광평대군의 죽음과 한글과는 하등 상관이 없었다.
당대에 한글을 반대하지 않는 이유는 한글이 한자를 배우고 익히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너무나 쉬운 글자였기 때문이다. 당시만해도 한자사전도 통일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자를 배우는데 스승이 없으면 안되었다. 더군다나 훈민정음 창제로 인해서 중국에 사대를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당대 사대부들의 생각이었다.
한글창제 이후 역설적이게도 후대 양반들이 한글을 괄시한 이유도 한글이 너무나 쉽게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을 숨어서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지만, 명나라 홍무제 주원장의 명으로 만든 홍무정운을 모본으로 신숙주의 <동국정운> 서문에도 훈민정음은 세종이도의 독자적인 창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글 창제에 깊숙히 개입했다고 알려진 성삼문, 신숙주 조차 훈민정음은 세종 이도의 개인적인 창작물인 임금이 만든 <어제>라고 말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훈민정음은 누구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진 문자가 아닌 세종의 독창적인 창작물로 특허권은 개인 세종에게 있는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글창제가 아닌 한글교본(훈민정음 해례)이 만들어지는 미스터리를 다룬 드라마가 되어 버린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한글창제는 1443년 12월이고 해례본이 만들어진 때는 2년 9개월 후인
뿌리깊은 나무에서 훈민정음 해례(교본)을 소이의 머리 속에 있다는 설정으로 소이가 없었다면 한글 해례본은 없었을 것이라며 극적인 구성을 하고 있지만, 실제 훈민정음 해례(교본)은 세자(문종), 수양대군(세조),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박팽년 등이 세종의 지시와 교정을 받고 만들어진다.
훈민정음 창제로 인해서 세종이 성리학의 이상세계를 만든 요순보다 더 뛰어난 성군으로 추앙받던 상황에서 훈민정음 창제와 훈민정음 해례를 비밀스럽게 만들 이유가 하등 없었다.
당대 신진사대부 유림으로부터 세종이 반대에 직면한 사안은 불사의 중건과 흥천사 사리탑 경찬회, 소헌왕후를 위한 불경의 출판, 소헌왕후 사후 궁궐 내 설치된 내불당 불사 이었지 한글은 아니였다. 1446년 9월에서 10월 사이 수 없이 많은 상소가 올라온다. 하지만, 한글창제와는 하등 상관없는 불사를 하지 말라는 상소였다. 불경의 출판으로 인해서 단종즉위 초년 정음청이 철폐되어 사라지기도 한다.
당시 내불당, 불사, 불경 사건은 세종이 요순을 넘는 성군이였지만 말년에 망령이 났다고 할만한 대단한 사건이었고, 한글창제는 요순도 하지 못한 뛰어난 성군이라고 하는 차이가 있을 만큼 한글 창제 반대자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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