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갓쉰동 꿈꾸는 삶

 

대왕의 꿈이나 대부분의 사극에서 김춘추의 아버지를 김용춘이라고 하고 김용춘김용수를 다른 이름을 가진 동일 인물이라고 한다.

 

물론, 그런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릴 적 이름과 성인이 되었을 때 이름은 다른 경우가 많다. 글쓴이도 2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조카도 집에서 부르는 이름과 가족등록부에 올라있는 이름이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글쓴이(갓쉰동)이 다른 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예전에도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김용춘김용수는 동일인물이 절대로 될 수 없는 기록들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용수와 용춘의 기록들을 다 뽑아 보자. 그럼 확실히 이들이 동일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622년 진평 44(622) 2월에 이찬 용수(龍樹)를 내성 사신(內省私臣)으로 삼았다. - 삼국사기 진평왕 44

629
51(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였다. - 삼국사기 진평왕 51


635
년 선덕 4 10월에 이찬 수품(水品)과 용수(龍樹) <또는 용춘(龍春)이라고도 하였다.>를 보내 주·현을 두루 돌며 위문하였다.- 삼국사기 선덕왕 4

643년 선덕 3 16일에 자장 돌아와 탑을 세워야 한다고 선덕왕에 보고, 이후 이간(伊干) 용춘(龍春; 혹은 용수龍樹)이 그 역사를 주관하는데 거느리고 일한 소장(小匠)들은 200 명이나 되었다. - 삼국유사 황룡사 9층 목탑

654
3월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라고도 하였다.>의 아들이다. - 삼국사기 29대 춘추

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 삼국유사 29대 춘추

654
년 태종 원년(654) 여름 4월에 왕의 죽은 아버지를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추봉(追封)하고 어머니를 문정태후(文貞太后)로 삼았다 - 삼국사기 김춘추 1 4

 

삼국사기는 춘추의 아비로 용춘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고, 삼국유사는 용수를 춘추의 아비라고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로 다르게 말을 하니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용수와 용춘을 철저히 분리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용수를 별도로 한번 언급하고 있고, 용춘을 한번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은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통설이 용춘(용수) 또는 용수(용춘)으로 이들을 같은 동일인으로 취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용춘(金龍春) 생몰년 미상. 신라시대 왕족. 일명 용수(龍樹). 진지왕의 아들이며 태종무열왕의 아버지. 어머니는 지도부인(知道夫人) 박씨이고, 부인은 진평왕의 딸인 천명부인(天明夫人) 김씨이다.
아버지 진지왕의 신분은 성골이나, 왕위에 재위한 지 4년 만인 579년에 폐위당하였으며, 용춘의 아들인 김춘추의 신분은 진골로 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표로 만들면 다음과 위와 같다.

 

 

삼국사기에 용수가 등장한 때는 6222등급인 이찬 내성사신이다. 삼국사기에 용춘은 629 8월 고구려 낭비성을 공격할 때 대장군으로 파진찬(4)이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도 용춘과 함께 대장군으로 부장군 김유신과 함께 참전하는 기록이다.

용수는 이찬(2)급이고 용춘은 629년에 대장군 파진찬(4)위에 해당한다고 기록한 것이다. 용수와 용춘이 동일 인물이라면 2 등위 이찬이 7 6개월 후에 4등위 파진찬이 되었다는 뜻인데 이는 국무총리가 장군이 되어서 전장에 참여하는 꼴이 된다. 또는 장군이 계급이 강등되어 일개 사병으로 참전하는 꼴이다. 이순신처럼 백의종군을 하려면 충분히 그만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

 

635년 용수 혹은 용춘이 이찬 수품과 함께 주군을 위무하고 있다. 만약, 용수와 용춘이 동일인물이라면 622년 이찬(2등급)에서 629년 파진찬(4등급)으로 강등되고 635년 이찬(2등급)으로  직위가 강등되었다고 승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결론은 김용수김용춘은 별개의 인물이라는 뜻이다. 또한, 용수는 내성사신과 황룡사9층목탑 관리자처럼 문에 치중한 인물이고 용춘은 파진찬 대장군으로 무에 치중한 인물이다.

 

삼국사기도 용수와 용춘을 별개의 인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635 1월 주.군을 순시하는 자가 용수인지 용춘인지를 알 수 없다고 하고 있으며, 용춘이 춘추의 아비인 것 같은데 용수라고 하는 기록도 있다는 것을 남겨 두었다.

 

일단 용수와 용춘은 별개의 인물임이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용수와 용춘이 형제라면 누가 형일까? 직급으로 봐서 용수가 형이고 용춘이 동생일 수 밖에 없다.

 

김용수의 아버지 진지왕(사륜/금륜)은 진흥왕(24)의 둘째 아들로 신라 25대왕 576~579년까지 재위하다 폐위되었다. 진흥왕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던 동륜태자의 아들 진평왕은 나이가 어려 왕이 되지 못하고 작은아버지 진지왕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성인이 되자 진평왕을 지지하는 세력이 진지왕을 몰아내고 왕권을 회복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왕의 꿈처럼 진평왕이 무능한 왕은 아니다. 기록에도 진평왕은 기골이 장대하고 고구려가 북한산성을 공격하자 직접 전쟁을 수행할 만큼 강골기질을 갖고 있었다.

 

어쨌든, 진지왕이 죽은 때는 비형랑과 도화녀의 전설 때문에 폐위된 이후 얼마간 생존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도 김용수나 용춘은 비형랑보다는 형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용수 용춘 형제는 진지왕이 폐위되고 비형랑이 태어나기 전 늦어도 579~582년 이전 임을 알 수 있다.

 

<대왕의 꿈>이나 MBC <선덕여왕>박창화의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고 있지만, 선덕여왕은 퓨전사극이기에 화랑세기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특히 미실을 등장시킨 점은 선덕여왕 드라마가 정통사극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반면에 KBS <대왕의 꿈>은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여 몇몇 인물과 화랑의 체계를 따 왔지만, 미실도 등장하지 않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실 화랑세기는 박창화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창작한 요즘에도 보기 드문 정교한 소설이다.

 

화랑세기는 용수와 용춘을 별도 인물로 보고 있고, 진평왕의 딸 천명이 용춘을 좋아했지만, 용수와 혼례를 하고 잠자리는 용춘과 했다며 김춘추를 김용춘과 천명공주의 아들로 만들었다. 그리고 용수가 일찍 죽자 동생 김용춘과 합법적으로 결혼시키고 김춘추를 김용춘의 자식으로 만들었다. 결국 김춘추를 생물학적, 법적으로 김용춘의 자식으로 만들었다. 화랑세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교묘히 절충해서 두 사서에 위반되지 않게 창조를 하고 있다. 소설로서 이보다 정교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그렇다면 김춘추는 김용수김용춘 중 누구의 아들일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보더라도 누구의 자식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김춘추의 어머니 천명공주만이 아는 사실일지 모른다. , 김용수김용춘과는 직급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을까? 622년 이찬(2)이 된 용수와 7년 후인 629년 파진찬(4)급으로 나온 김용춘이니 말이다.

 

진흥왕은  534년생으로 7살인 540년에 왕위에 올랐다. 진평왕의 아버지 동륜태자는 566년 태자가 되었다가 572년 죽었다 진평왕은 57915살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니 진평왕은 565년생이다. 진흥왕 32살에 원손인 진평왕(백정)이 태어난 것이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 564년생으로 추측된다. 김서현629년 용춘과 같은 대장군이지만, 직급은 1단계 높은 소판(3등급)급 대장군이었다. 김서현과 진평왕은 비슷하거나 동년배이지 않았을까? 더불어 김용수는 진흥왕의 둘째인 진지왕(사륜/금륜)의 아들이므로 진평왕(백정)이나 김서현보다 어린 565년 이후에 태어났을 것이다. 결국엔 김용춘김서현보다 나이가 한참은 적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천명공주는 580년 전후에 태어났을 것이다. 602년생 김춘추와 천명공주의 나이를 추측할 때 아버지나 삼촌뻘인 김용수보다는 비슷한 연배의 김용춘와 결혼하고 김용춘이 김춘추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왜 대왕의 꿈의 시대배경은 609년으로 춘추나이 7~8살인데 채상우(99년생)으로 14살 중학생이 유치원 아역을 하고, 천명공주는 많아봐야 20 중후반 인데 조경숙은 1962년생으로 51살이 나오고, 김용춘은 많아봐야 30대 초반 밖에 안되었을 텐데 정동환:1949년생 64세가 나올까? 

 

좀더 개연성 있는 사극보기가 그렇게 힘든 것인가?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hornets 2012.09.24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평왕이 565년생이라는 기록은 어디에 있나요?

블로그 이미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 시사 사회 문화 스포츠 평론
갓쉰동
09-21 04:14
Yesterday118
Today10
Total12,303,283

최근에 달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