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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공주의 남자>에서 성삼문, 신숙주, 이개 등 한글창제에 관여한 인물이라고 알려진 사육신이 나온다.
 
10월 9일이 한글날이기는 한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에 대한 상식이 얼마나 잘못된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10월 9일이 훈민정음(한글)을 만든 565회 한글날이라고 한다. 이부터 잘못된 상식중에 하나다.

훈민정음(한글)이 만들어진 것과 반포일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더군다나 훈민정음 창제에 성삼문 신숙주는 훈민정음 창제에 커다란 공이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성상문과 신숙주, 이개 등 사육신을 포함한 집현전은 한글창제에 전혀 관여한적이 없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이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암기식 역사교육을 받았는지 알게될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 뿌리>는 세종 이도가 훈민정음을 만들게 되는 계기를 장인 심온의 죽음으로부터 찾고 있다.


심온은 사은사로 명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심온과 관련된 자들의 문제로 심온 또한 자리를 보전할 수가 없었다.


요동에서 돌아오는 심온에게 서울의 사정을 알리려는 자가 있었는데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심온의 노비 어리숙한 석삼으로 그렸다.


석삼이 어리석어서 심온에게 정확히 말로써 밝히지 못하고 또한, 글로써 심온에게 전하지 않아서 심온이 결국에는 서울로 돌아왔지만, 유배를 떠나고 심온이 자결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뿌리 깊은 나무는 어리석은 백성이 쉽게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글이 있었다면 심온도 죽지를 않았을 것이고 석삼이도 죽지 않았을 거니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를 만들어 자신이 뜻한바를 글로써 표현한다면 억울함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결심을 하는 변곡점으로 삼은 것이다.




이는 훈민정음 반포 기념 정인지의 서문에도 명확히 나오고 있다.


우리동방의 예악 문물(禮樂文物)이 중국에 견주되었으나 다만 방언(方言)과 이어(俚語)만이 같지 않으므로, 글을 배우는 사람은 그 지취(旨趣)의 이해하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사람은 그 곡절(曲折)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로워하였다. 옛날에 신라의 설총(薛聰)이 처음으로 이두(吏讀)를 만들어 관부(官府)와 민간에서 지금까지 이를 행하고 있지마는, 그러나 모두 글자를 빌려서 쓰기 때문에 혹은 간삽(艱澁)하고 혹은 질색(窒塞)하여, 다만 비루하여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사이에서도 그 만분의 일도 통할 수가 없었다.

- 세종 28년, 1446년 9월 29일(음)  훈민정음 반포


 그런데 왜 세종은 훈민정음(한글)을 비밀스럽게 만들었을까? 당시의 시대상황을 알게 된다면 세종 이도가 비밀프로젝트로 훈민정음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유학자의 다수는 한자를 제외한 문자는 오랑캐들이나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조선이 소중화인 것은 중국과 같은 문자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다. 왜 스스로 문자를 만들어 오랑캐가 되어야 하느냐고 하던 사람들이 당시의 사림파 유학자의 대다수였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언문청>,<정음청>을 만들어서 수많은 저술활동을 한다.

세종은 수양대군(세조)에게 석가의 일생을 훈민정음으로 기록한 <석보상절>을 만들게 하였다. 더불어 세종 스스로 석가의 탄생과 일생을 다룬 <월인천강지곡>의 대서사시를 훈민정음으로 만들었다. 세종과 세조는 불교와 훈민정음(한글)과는 땔 수 없는 불가분의 존재였다.


언문청에서는 <사서>를 훈민정음으로 번역케하고, <소학>, 농서나 삼강행실도 등 모든 방면에 훈민정음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중종반정을 한 사림파들이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 후 가장먼저 한일은 9월 4일 <언문청>을 없애는 일이였다.


세종이 죽고 문종이 즉위한 초년에도 <정음청>을 없애라는 끝없는 상소가 올라온다.

하지만, 문종이 죽고 단종 즉위년 1452년 12월 2일 <정음청>을 없앤다.


사림파가 세조 죽이기를 감행한건 겉보기에는 단종폐위에 있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불교와 훈민정음과 당시에는 잡기라고 천대시한 천문, 지리, 국방 등 다양한 학문에 집착한 세조(수양대군)을 이단이라고 하는 데 서도 찾을 수가 있다.


오직 <유학> 그것도 주희(주자)에 집착해 국가경영에 유학만이 유일한 <종교>라고 생각한 사림파 사람들에게 세조나 세종은 이단이었다. 세종이 죽고 나서 세종은 초기에는 요.순이었지만, 말년에 망년이 들었다고 공격했던 자들이 당시 사림파 유학자였다. 중종반정에 성공한 세력에게는 세조가 죽어야 조선이 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신숙주와 성삼문이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를 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학자군에서 조차 말이다. 하지만, 신숙주와 성삼문이 요동의 황찬을 찾아간 일은 훈민정음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신숙주와 성삼문이 명나라의 한림학사인 언어학자 황찬을 찾아간 일은 <운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운회 요즘으로 치면 영어사전처럼 한자의 정확한 발음을 통일 시키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한자의 발음은 중구난방이여서 통일되지 않았다. 조선뿐만 아니라 명나라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오히려 당나라 시대 고어 발음은 조선이 더 비슷하고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종은 당시 <한자>의 정확한 발음을 알고자 성삼문과 신숙주를 파견했던 것이다.


집현전 부수찬(副修撰) 신숙주(申叔舟)와 성균관 주부(注簿) 성삼문(成三問)과 행 사용(行司勇) 손수산(孫壽山)을 요동에 보내서 운서(韻書)를 질문하여 오게 하였다.


세종 27년, 1445년 1월 7일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훈민정음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보면 쉬이 알 수 있다.  훈민정음 창제는 신숙주와 성삼문이 요동의 황찬을 찾아가 <운서>를 질문하기 전인 세종 25년 1443년 12월 30일 이다. 운서란 중국의 발음과 훈을 기록한 <홍무정음>을 말하는 것이지 한글(훈민정음)의 문자, 운서와는 하등 관련이 없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 세종 25년 1443년 12월 30일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고 나서 공식적으로 반포된 때는 위에도 언급했지만, 세종 28년 1446년 9월 29일(음) 이였다.


1445년 1월 7일부터 황찬을 만나러간 신숙주와 성삼문, 손수산은 <운서>에 대해서 알아오고 1447년 결과물을 내 놓는다. 이름하여 동국정운이다.


이달에 《동국정운(東國正韻)》이 완성되니 모두 6권인데, 명하여 간행하였다.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신숙주(申叔舟)가 교지를 받들어 서문(序文)을 지었는데

..중략..

이에 사성(四聲)으로써 조절하여 91운(韻)과 23자모(字母)를 정하여 가지고 어제(御製)하신 《훈민정음》으로 그 음을 정하고, 또 ‘질(質)’·‘물(勿)’ 둘의 운(韻)은 ‘영(影)’ 으로써 ‘내(來)’) 를 기워서 속음을 따르면서 바른 음에 맞게 하니, 옛 습관의 그릇됨이 이에 이르러 모두 고쳐진지라, 글이 완성되매 이름을 하사하시기를, ‘《동국정운(東國正韻)》’이라 하시고, 인하여 신(臣) 숙주(叔舟)에게 명하시어 서문(序文)을 지으라 하시니.. 생략..

- 세종 29년 1447년 9월 29일


신숙주가 죽고 나서 쓰여진 신숙주 졸기에도 정운에 대한 언급을 한다.
 

정음(正音)을 알고 한어(漢語)에 능통하여 《홍무정운(洪武正韻)》을 번역하였으며, 한음(漢音)을 배우는 자들이 많이 이에 힘입었다. - 성종 6년, 1475년 6월 21일


홍무정운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한 저서가 <동국정운>인 것이다.
 

세종조(世宗朝)에 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 등을 보내어 요동에 가서 황찬(黃瓚)에게 어음(語音)과 자훈(字訓)을 질정(質正) 하게 하여 《홍무정운(洪武正韻)》과 《사성통고(四聲通考)》 등의 책을 이루었기 때문에,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이에 힘입어서 한훈(漢訓) 을 대강 알게 되었습니다. - 성종 1487년 2월 2일


세종께서 또 언문 글자로써 화음(華音)을 번역하고자 하여 한림학사 황찬(黃瓚)이 죄로써 요동에 유배 되었다는 말을 듣고 공에게 명하여 조경사(朝京使)를 따라 요동에 들어가서 황찬을 보고 질문하게 하였다. 공은 말만 들으면 문득 해득하여 털끝만큼도 틀리지 아니하니 황찬은 크게 기특히 여겼으므로 이로부터 요동에 갔다온 것이 무릇 13번 이었다

- 신숙주 묘비명 <동문선>



황찬에게 간 일은 훈민정음 때문이 아니라. 신숙주의 묘비명에 있는 것처럼 언문(훈민정음) 한글로 정확한 화음(한음), 한자훈 번역하기 위해서 황찬을 13번이나 찾아간 것이다.


하지만, 많은 학자나 소설가들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위해서 성삼문, 신숙주가 요동까지 찾아가 명나라 몰래 유배된 황찬을 찾아 훈민정음 창제에 필요한 정보를 배워왔다고 퍼트린 것이다.


년도별로 정리를 하면 집현전학사들을 비롯해서 신숙주와 성삼문이 훈민정음 창제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443년 12월 30일(음) 훈민정음 창제 세종대왕 직접 만듬
1445년 1월 7일 성삼문, 신숙주, 요동 한림학사에 중국(화음) 운서(홍무정운)에 대해서 질문
1446년 9월 29일(음) 훈민정음 반포
1446년 12월 이과와 이전의 취재에 훈민정음 시험

1447년 4월 20일 함길도 자제의 관리 선발에 훈민정음을 시험하게 하다
1447년 9월 29일 신숙주, 홍무정운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해 동국정운을  만듬


조금만 훈민정음 창제에 관심이 있었다면 황당한 소설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과 드라마가 역사가 되는 현장에 다시금 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제발 한글창제를 위해서 황찬을 찾아가는 황당한 설정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 비밀조직 프로젝트 팀으로 성삼문이 한글창제에 깊이 관여했다는 것으로 봐서 뿌리깊은 나무도 어쩔수 없는 선택을 할것같다는 생각이다. 이는 또다시 사육신 성삼문의 신화창조에 일조할것 같다.
 
가장 적극적으로 훈민정음을 사용한 이는 세조(수양대군)과  비인 정희왕후였다. 정희왕후는 수시로 대신들에게도 언문(훈민정음)으로  명령을 내리기도 했었다.
 


공주의 남자에서 세령공주는 계유정난 시 김승유만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갇혀있는 광에서 여리를 통해 한자로 쓰여진 혈서를 김승유에게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좀더 극중 리얼리티를 살렸다면 수양대군의 딸 세령공주는 한자 혈서가 아닌 훈민정음(언문)으로 "승법사 여리"라고 보내지 않았을까?


훈민정음(언문, 한글)은 세종대왕 스스로 만든 글자이다. 그것도 음운학에 조예가 깊었던 세종대왕이 말이다. 실록을 비롯한 고전들이 모두 세종(世宗)어제(御製) 세종임금이 만든 이라고 하는데 무슨 배짱으로 극히 일부 학자와 소설가들은 이를 부정하는지 알수가 없다.


대한민국은 한글날을 10월 9일로 되어 있지만, 세종대왕이 한글(훈민정음)을 창제한 1443년 12월 30일(음)을 기준으로 양력으로 환산해서 1월 15일로 복원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1443년 12월 30일(음) 훈민정음 창제일도 아니고, 1446년 9월 29일(음) 훈민정음 반포일도 아닌 훈민정음 혜례본에 책을 발간한 9월 10일(음)에 맞춘 정체불명의 양력 10월 9일 한글날은 뜸금 없다고 하겠다.


정상적으로 복원하자는데 북한(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조선글날 1월 15일로 했다고 빨갱이 따라하는 거냐며 너 빨갱이지라는 초딩 같은 소리는 하지 말자.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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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봉성 2011.10.08 0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세종대왕은 처음에는 중국어 발음을 표기하는 소리문자로서의 한글을 창제하였는데 이 부분에서 집현전 학자들과 마주치게 된다. 집현전 학자들이 반대한 것은 한글 창제를 반대한 것이 아니고 중국문헌을 중국식 발음으로 한글로 토를 달려고 한데 있는 것이다.

  2. 지나가던 이 2011.10.15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뿌리 깊은나무 인물 소개에 그런게 있었는지 몰랐네요
    그렇다면 진짜 실망인데
    요즘 드라마는 한국사람만이 아닌 외국인들도 보는데 더 신중해야 할일을 저렇게 어이없이 만들다니
    만약 저런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진짜 화날거 같네요
    제발 저따위로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역사를
    왜곡한다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죠 아니 만들지를 말아야겠죠

  3. 전휘정 2011.10.28 0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읽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군요.. 성삼문이 중국에 간것이 훈민정음과 관련이 없다는 것만으로 성삼문이 한글창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완벽한 주장이 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단지 그이유만으로는 불충분한 것 같은데요..

  4. 이규삼 2011.11.08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글 창제가 뿌리깊은나무 극중내용이 틀림없다고 봅니다. 가림토 문자 인용하는이들은 신미대사를 말하는 이들이 있으나 세종대왕과 만남이 한글반포 이후였음으로 말이안되고, 환단고기의 가림토문자를 말하는 이들은 환단고기가 1911년에 완성된 책이므로 믿을것이 못됩니다. 집현전에 언문청을 만든것은 반포한 이후이므로 학사들의 역할도 직접적인 관계가 없을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검색해 보시면 세종대왕 단독 창제로 밖에 말할께 없읍니다.

  5. Favicon of http://www.angeljackets.com/ BlogIcon winter clothing 2011.11.16 1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종대왕과 만남이 한글반포 이후였음으로 말이안되고, 환단고기의

  6. Favicon of http://crossnh.tistory.com BlogIcon 성현도사 2011.12.09 0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그렇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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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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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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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 정난공신이 되고자 이색의 후손들이 정치를 했냐는 거냐고 반문을 하면서 어이가 없고 개탄스럽다고 말을 한다. 도대체 정난의 주동자인 안평대군과 김종서와 황보인이 충신이라는 말인가?

  13. Favicon of http://1000moon.pe.ne.kr/board.php?board=Chunmoonhaeza&category=6&command=body.. BlogIcon hdhghh 2013.01.17 1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一聲雞已報春風
    새벽 닭 우는 소리 봄소식 알리네


<공주의 남자>에 관한 기사를 보면 역사와 야사와 픽션을 절묘하게 믹스한 최고의 사극이라고 칭찬을 한다.
공주의 남자 결말은 <금계필담>의 결말과 유사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김승유와 세령공주만의 해피엔딩이라는 것만 빼고 말이다.

김승유의 신숙주집의 신면의 노비가 된 세령구하기 프로젝트라는 철없는 사랑놀음 때문에 죽어나간 사람들을 계산하면 세조(수양대군)이 죽인자보다 많다.

친구라는 정종죽여, 금성대군 죽여, 단종도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시애의 난에 동원된 수 많은 사람들도 김승유 때문에 반란군이 되었으니 말이다. 결국에는 신면도 죽음에 이르게 했으니 말이다.

물론, 사랑으로 다 용서가 되는 멜로에서는 철이 있던 없던 김승유는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건 주인공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다. 그렇더라도 주인공으로서는 참으로 감당이 안되는 민폐주인공임에도 분명하다.

공주의 남자 결말이 그래서 개인 김승유와 세령공주만의 해피엔딩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단지, 김승유가 장님이 되었다는 설정만 빼고 나면 말이다.

그런데 김승유가 낳은 아들은 효달일까?
 
정말 역사와 야사와 픽션을 절묘하게 믹스한 최고의 사극일까?

기자들이 역사를 연구한 적도 없고, 조선의 역사를 읽어본적도 없고. 시청자들이 역사를 알고 보지 않는것이니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공주의 남자 제작자는 스스로 "조선의 역사속 감춰진 리얼 드라마틱 러브"라고 선전을 하였다.

하지만, 공주의 남자에서 역사적인 사건은 제대로 다룬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보면 볼수록 역사를 망가트린것만 보았다. 대부분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재해석을 하는게 일반적인데 공주의 남자에선 재해석이 없다. 왜 사건이 일어났을까 보다는 적대적인 사람들이 한편이 되어서 역사모독을 하는 수준이다.

더군다나 극적인 전개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 드라마나 역사스페셜은 만드는 순간 픽션이 가미될수 밖에 없다.

사실 공주의 남자를 보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글일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공주의 남자를 보는 사람이 검색을 통해서나 알음알음 같이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서 글을 찾아 볼텐데 비판을 하고 있으니 좋은 평가를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최소한 공주의 남자에서 받은 감흥도 좋지만, 실제역사와 비교해서 보는 것이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더불어 드라마와 역사를 구분해서 볼수 있으니 말이다.

드라마는 지나면 잊혀지만, 역사는 남는다. 잘못된 드라마의 설정으로 드라마를 보고 역사처럼 이야기는 하지 않을수가 있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최소한 다른이에게 또는 자식들에게 드라마와 역사의 차이점까지 알려줄수 있으니 말이다.

공주의 남자를 보고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는데 자신이 멍청해서 눈물을 흘린거냐며 반발한다. 사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을 다루지 않고 배경만 따왔다면 글쓴이도 눈물을 흘렸을 지도 모른다. 또한, 충분히 공주의 남자는 재미가 있고 감동코드가 있다. 그렇더라도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어쨌든, 사극을 비롯한 시대극이란 기록의 빈틈을 합리적인 설정으로 메꾸어 가야 한다.  빼대는 지키고, 살과 피를 돌려 살아움직이게 하는게 드라마나 역사다큐나 차이점이 없다. 단지, 드라마는 좀더 작가의 자유도(창의력)이 발휘될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인 사건의 선후관계까지 자유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를 넘나드는 SF 역사극도 기본적인 팩트(사건)은 지키고 있고,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들어가 관계되어서 사건이 미래에 미치지 않도록 설정하고 고민하는 장면을 필히 넣는다. 
 
잘못된 드라마의 설정이 앞으로 공주의 남자를 보고 드라마가 역사인척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 질것이다. 정종과 김승유와 신면의 삼각관계와 배신자 신면를 이야기 할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선덕여왕과 같은 시대에 있었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김승유.정종을 사육신이나 생육신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란 법은 없다.

공주의 남자에서 한없이 불쌍한 인물로 경혜공주와 정종을 말하고, 실질적인 주인공이 문종의 딸인 경혜공주와 정종이 아닐까하는 사람들도 있다. 더군다나 정종과 경혜공주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정종은 계유정란 공신이였고, 문종이전 시절부터 조선의 대단한 권력자 가문이였다.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단종을 정종과 경혜공주의 집으로 이어시켜서 지냈고, 어린 단종의 뒷배를 이용해서 수 많은 재산을 불렸다. 요즘으로 치면 권력형 비리의  몸통에 정종과 경혜공주가 있었던 것이다.
 


위와 같은 정종이 한미한 가문일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김승유와 친구가 가당키나 한가? 김승유가 살아 있었다면 권력자의 2세들로 왕자당을 만들어서 기생집에 드나들었음직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정종은 계유정난으로 조선에서 가장 혜택받은 존재였다. 넘쳐나는 재산에 정난으로 망한 집안의 전토와 공신전과 노비를 수 없이 받았으니 말이다. 그런 김승유와 정종이 계유정란시 친구이고 이후로도 친구가 될수 있었을까? 친구였다가도 견원지간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더군다나 사육신의 한사람인 이개가 신면과 김승유와 정종의 스승이라고 떠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사육신과 김종서는 철천지 원수일 수 밖에 없고, 사육신과 정종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고, 오히려 정종에게 적대적이였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공주의 남자는 조선후기 금계필담에 채록된 세조의 큰딸과 김종서의 손자와의 사랑을 모티브로 탄생한 드라마다.


김종서의 손자는 계유정난으로 유모의 손에 살아남아 백악산 보굴로 숨어든다.


세조의 큰 딸 세희는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려고 하자, 세조에게 어찌하여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려하느냐고 반기를 들고, 정희왕후가 세희를 죽은 것으로 위장하여 유모와 함께 나가살도록 한다.


세희와 김종서의 손자는 백악산 보굴에서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세조가 요양 차 지나는 길에 우연히 세희와 외손녀를 만나게 되자. 세희와 김종서 손자는 더 깊은 산으로 숨어들어 살았다는 것이 골자이다.


이 이야기는 정조시기에 백악산에서 김종서의 오래된 위패가 발견됨으써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공주의 남자 작가와 제작자는 세희를 세령이라 이름을 바꾸었고, 김종서의 손자를 김종서의 셋째 아들인 김승유로 바꾸어서 세령과 김승유의 사랑으로 극화하였다.


금계필담 이야기가 전해지는 대로 세조의 큰딸과 김종서의 손자로 극화했다면 보다 개연성 있고 역사도 망치지 않는 드라마가 만들어 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김종서에게는 3명의 적자와 2명의 서자가 있었다. 그리고 기록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손자는 김종서의 둘째 아들 김승벽의 큰아들 김석동(중남)이였다. 둘째 아들 김승벽의 막내 삼동(팽)은 유모의 손에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김승유의 아들 효달은 유모가 자신의 아들을 효달로 속여 대신 죽고, 효달이 살아남았다고 순천김씨 대동보는 전한다. 문제는 서자 중 김목대는 15살이 되지 않아 나이가 어렸을 것으로 추측되고, 서장자인 김석대는 커서 자식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외 큰아들 김승규의 막내 말동(행남)은 송시열의 5대조가 김종서의 조카 사위였는데 정난이 일어나자 3살 김말동(김행남)을 몰래 빼돌려 강화도로 보내서 길렀다고 한다.


계유정난에서 김승유가 살아 있을 확률은 0%도 안 된다. 왜냐하면 정난 후 김종서의 서자를 비롯해 식솔들인 손녀까지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 김승유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더불어 순천김씨 대동보에서 정란 시 김승유의 아들 효달이 어렸다고 하였고, 김승유의 처는 여흥민씨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승유가 계유정난 이전부터 총각으로 등장하는 순간 공주의 남자는 산으로 간다. 더군다나 등장하지 말아야할 죽은자가 등장하므로서 인물간의 관계가 흐트러져 버린다.


유부남에 자식까지 있고, 이미 죽은 김승유가 세령과 사랑하는 사이로 그리는 순간 공주의 남자는 막장코드가 된다. 오히려 살아남은 김종서의 손자 김석동(중남)과 세령과 엮었다면 충분히 극으로 만들어도 딴지를 걸 수 없게 된다.


더군다나 경혜공주의 결혼, 계유정란, 세조의 왕위 찬탈, 사육신의 단종복위, 정종의 반정, 이시애의 난, 그리고 세령과 김승유의 행복한 삶까지 1450년부터 1468년까지 19년을 한 두해에 이뤄진 것으로 다루는 무리수를 두었다.


그러니 이시애의 난이 끝난 이듬해 죽은 세조가 죽지도 않고 유령도 아닌 상태에서 늙어서 나타나는 처음부터 황당한 극 전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개그프로 감수성에도 다루지 않을 극의 전개이다. 그러니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있을수가 없다.


공주의 남자에서 등장하는 인물간의 관계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다음과 같다.



공주의 남자 극의 시작은 경혜공주의 결혼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아래의 사건들이 공주의 남자에서 그린 처음부터 끝까지다.


공주의 남자 황당설정
세조의 큰딸 세희(세령)과 김종서 아들 김승유와 사랑
1453년 김승유 20살(1434년생) 설정
세령,  숭(1438년)보다 누나 
신면(1438년)생 김승유와 동갑
정종, 김승유, 신면 사육신 이개의 제자
신면 죽을때 까지 한성부 판관
사육신 처음부터 김종서파, 정종, 금성대군파, 단종파
세종
문종 말년,경혜공주 유부남 김승유에 시집보내려다 실패  정종과 결혼
1450년 1월 24일 경혜공주(평창군주) 정종과 결혼
문종 1452년 5월 14일 문종 죽음
단종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 김종서, 안평대군, 황보인 등 죽임
김승규, 김종서만 죽었지만, 모두 몰살된것으로 그림 
이개와 정종, 김승유 살려줌, 강화도 유배수장되다 탈출
1456년 9월 7일 의금부에 난신 연좌된 부녀 대신들에게 나눠줌
김승규의 아내, 딸 아강 강곤의 노비됨
신면과 세령공주 김승규 아내,아강 살려줌 
1471년 윤 9월28일, 강곤에 하사된 김승규의 딸 숙희 방면
1472년 5월 정인지에 하사된 김승규의 처 내은비 딸 내은금 방면
세조 1456년 5월 12일 온녕군 죽음
김승유, 신숙주 척살 실패
1455년 6월 11일(윤) 세조의 왕위찬탈
1455년 8월 19일 정종 수원에서 통진 농장으로 이배
김승유, 사육신, 정종과 함께 서울 집에서 반란모의 
 
1456년 6월 1일 사육신의 단종복위 사건, 단종 반란수괴
1455년 8월 19일 정종 수원에서 정종의 통진 목장으로 이배
1457년 6월 21일 단종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격하되고 영월로 유배
정종 경혜공주가 세조에 무릎꿇어 서울에서 광주로 유배됨 
1457년 6월 27 정종 통진 목장에서 전라도 광주 유배
1461년 7월 정종 반란모의 
1461년 10월 23일 경혜공주, 정미수와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옴
1461년 10월 20일 정종의 죽음
1457년 10월 22일 이후, 송현수, 금성대군, 단종 죽음
1455년 정종과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 태어남
1467년 5월 17일 이시애의 난
1467년 5월 18일 신면, 이시애의 난 진압하다 30살로 죽음
1457년 9월 2일 세자 도원군 장(숭) 20살 죽음
김승유, 세령,아강 같은 나이 딸있음
1468년 9월 8일 세조(수양대군) 수강궁(창경궁)에서 죽음
성종
세령과 김승유 앞에 나타난 세조(수양대군)은 유령?


공주의 남자를 보면 세조(수양대군)이 이시애의 난이 있고 늙도록 왕에 있었는줄 알것이다. 하지만, 세조는 이시애의 난이 있고 이듬해 죽는다. 세령과 김승유 앞에 나타난 세조에게 유령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것은 극히 정상적인 생각이다. 그렇다면 공주의 남자가 망친 역사를 복원하면 어떻게 될까?


실제 역사
세조의 큰딸 세희(세령)과 김종서 손자의 사랑
김승유 계유정란 이전 죽음. 아내 여흥민씨 사이 아들 효달있음
경혜공주 1436년생, 숭 1438년생, 세령 숭보다 어림
신면 1438년생, 의숙공주 1442년생
사육신 안평대군,김종서 배신, 금성대군, 정종과는 처음부터 적대적임
사육신, 김종서 남은 일파 죽이라 주장, 수없이 죽이고 정난공신됨
사육신 일부 성삼문 등 단종폐위, 세조옹립 좌익공신됨 
사육신 단종복위 반란, 하지만 단종 반란수괴 실토 단종 유배빌미 제공 
세종
1450년 1월 24일 15살 경혜공주(평창군주) 정종과 결혼
1450년 2월 세종 죽음
문종 1452년 5월 14일 문종 죽음
단종 1453년 숭, 신면 16살, 경혜공주 18살, 세령(세희) 13~15살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 김종서, 안평대군, 황보인 등 죽임
1453년 11월 8일 성삼문, 권자신,박팽년, 이개, 유성원, 성승 등 사육신 계유정란공신3등, 정종 1등공신
1453년 11월 김종서 아들 김승벽, 김석대 사사
1454년 8월 15일 김종서 아들 김목대, 김승규 아들 김조동·김수동 사사
1454년 8월 15일 김승벽 아들 김석동 전라도 극변 관노로 영속
1455년 6월 혜빈 양씨, 금성대군, 정종 반란모의
세조
1455년 6월 11일(윤) 세조의 왕위찬탈
1455년 8월 12일 정종 양근에서 수원으로 이배
1455년 8월 19일 정종 수원에서 통진 농장으로 이배
1455년 9월 5일 수양대군(세조) 왕위찬탈 공 권자신, 성삼문 좌익공신
1455년 정종과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 태어남
1455년 원종공신 행부승 신면 18세
1456년 5월 12일 온녕군 죽음
1456년 6월 1일 사육신의 단종복위 사건, 단종 반란수괴
                      단종 외삼촌 권자신, 외할머니 최아지 반란연류 
1456년 6월 29일 현덕왕후 서인으로 격하되고 개장(이장)
1456년 9월 7일 의금부에 난신 연좌된 부녀 대신들에게 나눠줌
1457년 6월 단종 장인 송현수, 권완의 반란 사건
1457년 6월 21일 단종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격하되고 영월로 유배
1457년 6월 27일 금성대군, 이보흠 반란 사건
1457년 6월 27 정종 통진 목장에서 전라도 광주 유배
1457년 8월 송현수 관노 됨
1457년 9월 2일 세자 도원군 장(숭) 20살 죽음
1457년 10월 22일 이후, 송현수, 금성대군, 단종 죽음
1458년 평안도 도체찰사 신숙주에게 회군하길 바라는 수찰 내림 
1458년 도염서령 신면
1460년 신숙주 함길도 도체찰사, 종부소윤 신면 함께감
1461년 3월 신면 장령
1461년 7월 정종 반란모의 
1461년 10월 20일 정종의 죽음
1461년 10월 23일 경혜공주, 정미수와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옴
1464년 신면 우승부지 지공조사
1467년 5월  신면 도승지겸 함길도 관찰사
1467년 5월 17일 이시애의 난
1467년 5월 18일 신면, 이시애의 난 진압하다 30살로 죽음
1468년 9월 8일 세조(수양대군) 수강궁(창경궁)에서 죽음
성종
1471년 윤 9월28일, 강곤에 하사된 김승규의 딸 숙희 방면
1472년 5월 정인지에 하사된 김승규의 처 내은비 딸 내은금 방면

공주의 남자에서 가장 불쌍한 배역은 신면이다. 아버지 신숙주 때문에 아들 신면까지 도매금을 넘어갔다. 그런데 배신의 역사인 시육신은 언제부터 그리 충신이 되어야 하는걸까? 배신을 해도 신숙주보다 더 많이 했는데 말이다. 중종반정을 하고 권력을 쟁취한 사림파들이 만든 허구와 신화가 사육신이다. 사림파들에게는 이교도라도 생각한 세조를 죽이기 위해서 사육신을 신격화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동안 공주의 남자가 망친 역사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아래글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2011/10/07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결말, 김승유 세령공주 때문에 억울한 누명 쓴 신면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모 시체 바다에 버렸다는 사림의 선동결과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관노비 없었고, 아들 정미수 수양대군 지어준 이름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결말, 단종도 죽인 김승유, 이시애와 수양대군 죽이고 왕될 기세?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 경혜공주 똥도 먹은 효자였다.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불쌍한 신면과 배신자 사육신 어떻게 충신 아이콘 되었나?
2011/10/04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사육신 박팽년 성삼문, 단종 양위시 경회루 투신사건 사실일까?
2011/09/30 - [TV&ETC] - 공주의 남자, 정종 죽고 경혜공주 공노비 된건 김승유 신묘한 계책?
2011/09/30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정종과 경혜공주 복중 아기 정미수 유복자될까? 사실은 이산 정조가 알고 있다
2011/09/29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될까? 사실은 정조만 알고 있었다.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 된다? 사실은 진실과 허구 왜 퍼졌을까?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 처 윤씨 사육신 편에서 자살했나? 사실은 방개떡 고사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제작자 계유정란 김승유 3살? 그럼 김승유와 아들 효달이 동갑? 대략난감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광개토태왕, 계백, 사극 문헌고증 파괴해야 시청률 오른다?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스승 이개 알고보면 계유정란공신, 사육신 단종폐위 좌익공신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적과동침, 단종 죽인건 사육신 충신인가? 배신 아이콘인가?
2011/09/17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단종복위 위해 불구대천원수인 이개 성삼문 등 사육신과 동침한다?
2011/09/10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추석 보름달은 원한에 시퍼런 날이 서있었을 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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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11.10.09 0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딸이 죽어 그 고통으로 일년만에 늙었다는 설정이 아닐지요.
    작가도 그 정도는 알 텐데요.
    갓쉰동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사극을 제작할 때 갓쉰동님께 감수를 받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2. aa 2011.10.29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령은 숭보다 누나인 설정이 맞았다고 봅니다.
    계유정난 당시 숭의 나이는 고작 15살인데요..
    아버지에게 대적할 힘이 잇을 정도라면 최소한 숭보다 나이가 많았어야 하지 않을까요...

  3. 가지가지 2011.11.27 2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요. 제가 볼 땐 가지가지하신다는 느낌이..드는데요. 사극의 틀을 빌린 또 하나의 로맨스 드라마로도 보세요. 님만큼 역사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많고, 지금 글쓰는 저도 님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 바보인 듯 하고 역사적 사실은 도외시한 채 이 내용만 가지고 역사를 안다고 생각하며 볼까요? 이것을 계기로 하여 경혜공주를 알고 영양위 정종도 알고 인터넷을 통해 많은 실제적 역사를 검색해가며 공부해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쥔장 글은 헛똑똑이의 행동의 전형적인 형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극이 무조건 다 재해석이 아니고, 사극의 장르에 따라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 천편일률적인 사극만 가대하지 마시길.

  4. Favicon of http://lionfilmstudio.com BlogIcon 박기동 2011.12.31 1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한다

  5. Favicon of http://no-credit-check-cell-phones.com BlogIcon 박기동 2012.01.07 0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6. Favicon of http://get.scrapping.cc BlogIcon 사라 2012.04.06 0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아침입니다.

  7. Favicon of http://hollyholly.is-a-chef.com BlogIcon Gianna 2012.05.11 0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8.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10. Favicon of http://www.perfectmotoindustry.com BlogIcon Exhaust Pipes 2012.08.21 1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llkjihygjhfg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박시후)는 신면(송종호)의 심복 송자번(진성)을 죽였다.


김승유가 노린 것은 신면의 뒤통수다. 이를 간파한 송자번이 대신 날아온 칼을 맞아 죽는 것이다.

이전 신면이 날린 화살을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게 반칙하며 구한 세령공주(문채원)을 떠올리게 한다.

송자번의 역할은 조석주(김뢰하)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주군을 위해서 목숨까지 받치는 배역은 악역이라고 해도 환영받는다. 그래서 송자번에게 미친존재감이라고 말하는 지도 모르겠다.

김승유의 찌질한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당한 승부보다는 뒤에서 음모를 꾸미지만 언제나 실패를 하고 김승유로 인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사랑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르고 있다가 아버지 김종서와 형 김승규가 죽는다. 그리고 자신을 구원해준 빙옥관은 난장판이 된다.

김승유가 사랑에 눈이 멀어 신면의 집에있는 세령공주(문채원)을 구하려다 반정이 들켜서 친구 정종(이민우)은 죽는다.

신면은 정종이 죽을때 내손에 친구의 피를 뭍혔구나하면서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공주의 남자에서 가장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건 신면이다.

신면은 항상 김승유를 적대시 하면서도 김승유를 끝없이 살려준다.


하지만, 김승유는 신면의 아버지 신숙주를 죽이려하고, 정종이 유배로 가 있던  광주에서도 김승유는 숨어서 화살을 날려 신면을 죽이려 한다.


김승유의 방해공작은 세령공주와의 결혼식장에 난입하여 세령을 보쌈하는 짓도 서슴치 않았다.
 


이제 김승유는 끝까지 신면에게 마수를 뻐친다. 신면은 한명회의 명령으로 화살이 날아오는 데도 김승유 대신 화살받이가 된다. 그런데 김승유는 신면을 향해 어찌 같은 편에게 화살을 날리냐고 이상한 말을 한다. 참으로 사극에서 주인공으로 이처럼 민폐인 주인공은 보다보다 처음 본다. 

신면은 죽어가면서 정종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한다. 신면이 정종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이유가 있을까? 오히려 정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김승유였다.


개연성 없고 리얼리티 없는 상황에서 엉뚱한 대사를 난발하는 것을 보고 탄탄한 스토리라고 말하는 모양이다.

김승유의 미친사랑놀음에 정종의 반란은 들키고 말았고, 결국에는 서울로 압송되어서 거열형에 처해지고 말았다. 이번에도 김승유 때문에 이시애와 그 일파들은 때죽음을 당했다. 김승유 가는곳에 죽음만이 자리한다. 머피의 법칙이 아닌 김승유법칙이라도 만들어야 할까보다. 여기까지가 공주의 남자에서 보인 김승유의 모습이다. 결론은 김승유와 세령공주의 사랑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말이다.




김승유는 수양대군(세조)가 승법사에 가서 불공을 드린다는 사실을 알고 승법사에서 최후의 일전을 버리려 한다.


외방으로 관노가 되었다는 경혜공주는 승법사에서 멀쩡히 생활을 하고 있다. 수양대군(세조)가 참으로 마음씨고운 아저씨다. 정희왕후와 세조(수양대군)은 세령공주가 김승유의 애를 밴것을 알고 방에 감금한다.


승법사에서 세조는 세자를 데려간 것도 모자라서 세령의 몸에 김종서의 자식을 베게 할수 있느냐고 말한다.


승법사에 몰래 숨어든 김승유는 관원들을 하나 하나 처치한다. 그리고 수양대군의 뒤에서 칼을 겨누고, “수양 너의 목을 거두려왔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수양대군(세조)는 괜찮겠는냐? 세령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인데“라며 말한다. 김승유는 자신이 수양을 못죽이더라도 수 많은 김승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을 한다.



마지막으로 칼을 내려치려 하자. 수양대군은 세령이 아이를 베었다. 너 김승유 너의 아들이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민폐 김승유는 수작부리지 말라고 칼을 들지만, 내금위장에게 저지를 당한다. 역시나 김승유는 민폐일 수밖에 없다.

김승유가 수양대군을 죽일 기회는 너무나 많았다. 세령과 신면의 결혼식장, 세령을 납치하고 화살로 편지를 보낼 때, 그리고 세령을 납치한후 복부를 겨냥하지 않고, 이성계가 갑옷과 얼굴을 가면으로 가렸지만 왜장이 입을 벌리자 입속에 화살을 날려 왜장을 잡아 버린다. 이성계가 아니더라도 그냥 목이나 얼굴을 겨냥하면 수양을 죽일 수 있었다.


세조가 죽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면 공주의 남자 드라마를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세조가 죽더라도 충분히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역량을 갖춘자들이 공주의 남자 제작자와 작가들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공주의 남자가 지킨 역사적인 팩트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공주의 남자 결말에 세조가 죽는다고 이상할 것도 없고, 오히려 시청자들은 환호할지 모른다. 왜 역사적인 팩트를 지켜야하냐고 재미없다고 하는 이상한 시청자들이 있는게 공주의 남자 시청자들이다. 그러니 그들을 위해서라도 세조를 죽였어야 했다.
 



옥에 갇힌 김승유를 찾아간 세령공주는 김승유 너의 뜻대로 하라고 말을 한다. 김승유는 세령에게 저승에 가면 아버지와 정종에게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한 이가 있었다고 말하겠다고 말을 한다. 정희왕후는 김승유에게 독약(?)을 먹여 죽은 척 하게 만들고 세령과 함께 조용히 살도록 조치를 한다. 약 조절을 못해서 김승유가 눈이멀어 버리지만 말이다. 대의도, 명분도, 복수도 버린 사랑에 눈이먼 김승유를 표현하고자 한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말이다.




온양행궁에 간 수양대군(세조)는 딸과 지나가는 김승유를 발견하고 조용히 뒤를 쫓는다. 그리고 세령과 김승유과 외손녀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웃음을 짓는다. 세조(수양대군)은 마음이 태평양이다. 피와 눈물도 없는 세조가 어느 날 개과천선이라고 했던 모양이다.


시청자들은 이들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공주의 남자 작가와 제작자는 애마부인의 팬인가? 연인 둘이 말을 타면 자연스런 스킨십과 흔들림에 오르가슴을 느낄만큼 좋은건 알겠는데 처음부터시작해서 끝까지 김승유와 세령공주를 말태우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다. 
 


드라마는 드라마고 이제 <공주의 남자> 작가가와 제작자가 망친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역사를 알고 드라마를 보면 극이 더 재미가 있다. 어떻게 역사적인 사건을 다루고 재해석하는가 보는 재미가 시대극(사극)을 보는 또 다른 재미이다.


하지만, 공주의 남자에서는 역사적인 팩트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역사를 망치고 있다. 그러니 재해석할만한 점은 한곳도 없다. 무언가 비슷해야 재해석이 되는 것이지 미꾸라지가  개천에서 흙탕물을 만들듯이 공주의 남자가 한일은 역사에 흙탕물을 퍼트렸고,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은 <공주의 남자>가 이야기한 드라마가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믿고 대화를 할 것이 너무나 뻔하다.


오죽하면 공주의 남자를 보고 역사와 야사와 픽션이 절묘하게 조화되었다는 댓글이 환영을 받겠는가? 공주의 남자는 픽션은 있을지라도 역사와 야사는 없었다. 


이시애의 난은 세조 13년 1467년 5월에 벌어진 사건이다. 신면은 1438년생으로 이때 30살이었다. 신면은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함길도 관찰사였다.


이시애의 반간계에 속아서 세조는 한명회와 신숙주를 하옥시킨다. 왜냐하면 한명회와 신숙주가 이시애와 내통했다는 말을 퍼트렸기 때문이다.


신면은 이시애를 소탕하다 이시애의 반란군이 쏜 화살에 맞아 죽는다. 공주의 남자에서처럼  한명회의 진압군에 화살을 맞은 것이 아니다. 더불어 한명회는 서울에 있어야지 이시애 반란 현장에 출현할 수가 없었다. 세조가 신면에게 잘 죽었다고 하는 장면은 있을 수 없는 장면이다. 세조를 악당 중에 악당으로 몰아야 시청률이 오르니 작가의 고충은 이해가 되지만, 전혀 개연성 없는 장면까지 넣을 필요가 없다.
 

1467년 4월 22일 도승지 신면 함길도 관찰사 되다.


도승지(都承旨) 신면(申㴐)을 오응(吳凝)을 대신하여 함길도 관찰사로 삼고, 곧 금대(金帶)를 띠게 하고 술을 올리게 하고는


5월 7일 함길도 관찰사가 되어 서울을 떠난다. 그리고 5월 17일 이시애 등이 수령들을 죽이고 반역을 한다고 장계가 올라온다.


 

장계를 받은 세조가 한일은 공주의 남자와는 전혀 다르게 반란에 신면이 죽을 수가 있으니 신면을 서울로 올려 보낼 것을 명한다.
 

임금이 신숙주에게 이르기를,

이시애가 이미 경(卿)을 구실로 삼았고, 경의 아들 신면(申㴐)이 지금 마침 관찰사(觀察使)가 되었으니, 이시애가 반드시 죽일 것이다. 속히 체대(遞代)하여 오게 함이 가하겠다.”

하고, 좌승지(左承旨) 어세공(魚世恭)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내가 경으로써 오래도록 승지(承旨)의 임무를 맡기려고 하였는데, 지금 북방에 사변이 일어났으니, 경은 마땅히 속히 가서 이를 진정(鎭定)하라.” 세조 13년 1467년 5월 17일


신면은 17일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장계를 올리고, 다음날 저녁에 죽는다.

18일 밤에 신면·구치동과 반인(伴人)·가노(家奴) 등 16인을 죽였으며


하지만 한성 에서는 신면이 이시애의 일파가 되었고, 한명회, 신숙주가 반역에 연루되었다고 하옥시킨다.
 

이시애의 모반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으므로 신숙주·한명회를 가두게 하다

1467년 5월 19일 “근자에 신숙주와 한명회 등이 백관(百官)의 장(長)으로 있으면서 뭇사람의 입에 구실감이 되었으니, 비록 반역(反逆)한 것은 아닐지라도, 반종(伴從)을 신칙(申飭)하지 못하고 인군을 배반하였다는 악명(惡名)을 받아서, 원근의 의혹을 일으킨 것은 진실로 모두 스스로 취한 것이다. 나도 또한 어리석고 나약하여 위엄이 없는데, 백성들의 말을 따르지 않고 방편(方便)을 생각하지 않음은 옳지 못하니, 우선 이들을 가두어 두는 것이 옳겠다.”

 


1467년 5월 22일 도총사 김관의 장계 신면이 죽었고...기타 등등

 신면이 대전(大箭) 6매(枚)를 가지고 기둥에 의지하여 활을 쏘아 적의 얼굴을 맞히었으나, 적이 또 화포(火砲)를 던져서 연기와 화염이 서로 창일하니, 신면이 형세가 다하여 활을 꺾어 던지고, 마침내 아래로 떨어져 담장을 넘으려고 하는데, 적이 죽이고, 구치동(丘致峒)과 박종문(朴宗文)·녹사(錄事) 엄유구(嚴悠久)와 반인(伴人)·가노(家奴) 등까지 모두 죽였으며, 윤자운(尹子雲)을 객사(客舍)의 별실(別室)에 가두었습니다.”하였다.


신면은 승지(承旨)가 된 지 5년이 되었어도 일찍이 과실이 없었으며, 임금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 자못 자상하고 명확하였다. 죽을 때의 나이가 30이며, 아들이 둘이 있으니, 신용관(申用灌)과 신용개(申用漑)이다.



 

1467년 6월 11일 예조에서 함길도에서 피살된 수령에게 치부(致賻)할 것을 아뢰다

“함길도 절도사(咸吉道節度使) 강효문(康孝文)·관찰사(觀察使) 신면(申㴐)·우후(虞候) 정육을(鄭六乙), 도사(都事) 박종문(朴宗文)·조극치(曹克治), 평사(評事) 권징(權徵)·종사관(從事官) 구치동(丘致峒)·경차관(敬差官) 손욱(孫旭)·점마 별감(點馬別監) 심원(沈湲)과 제읍의 수령·훈도(訓導)·만호(萬戶)·군관(軍官)·심약(審藥)·검률(檢律)은 한결같이 임소(任所)에서 죽음을 따른 자이니, 구례에 의하여 치부(致賻)하소서.



공주의 남자에서 세조가 신숙주에게 신면이 전장에 죽은건 당연하고, 이시애도 죽이지 못했으니 죄가 있다고 말하는 장면에 신숙주가 똥씹은 얼굴을 하고 있는 장면은 세조(수양대군)과 신숙주를 두 번 죽이는 것이다.


세조 척살에 실패한 김승유가 옥에 갇히고 풀려나서 조용히 세령과 딸과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세조가 온양온천에 나타날 수가 있을까?


1455년 6월 1일 세조는 단종에게 왕위를 선위 받고 부터 1468년 9월 8일까지 14년간 재위하였다.


한마디로 세조(수양대군)은 1467년 이시애의 난이 있고 이듬해에 죽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공주의 남자에선 이시애의 난이 1년도 지나지 않아 세조는 쭈그렁 할아버지가 되어 버렸고, 김승유의 딸은 형 김승규의 딸 아강의 나이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김승유는 아강과 형수는 잘 돌보고 있는 것인가?
 공주의 남자 마지막에 등장한 세조는 죽은 유령임에 틀림이 없다.


좀 더 완결성 있는 멜로는 없는 건가? 언제부터 시대극 멜로는 시대와 무관해야한다는 룰이라도 정했던가? 최소한 작가로서 지켜야할 룰이 있다. 이 룰을 위반하면 막장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가장 불쌍한 캐릭터는 신면이다. 신면이 단지 신숙주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주의 남자에서 악역으로 나온다. 신숙주가 악역이면 아들도 악역인가? 현재도 정치적 견해가 다른 부자는 너무나 많이 있다. 조선시대라고 해서 다르지가 않았다.


문제는 신면이 등장할 이유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김승유와 정종과 절친이라는 설정이다.


신면이 처음등장한 때는 신면의 나이 18살 1455년 세조 1년 12월 27일 원종공신에 제수될 때이다. 이때 신면의 직책은 행 부승이었다. 신면이 원종공신과 행부승이 된 이유는 신숙주가 세조를 옹립한 좌익공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육신의 다수도 좌익공신이었다.


공주의 남자처럼 신면이 한성부 판관이 되어 미친놈처럼 뛰어다니지도 않을 뿐 만 아니라 정종이나 김승유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인물이다. 단지 극의 재미를 위해서 신면을 악역으로 만든 것이다.


왜 죄없는 신면을 악역으로 만들어야 했을까? 신면은 억울하지 않았을까? 계유정란 이전에 죽은 아저씨뻘 되는 유부남 김승유와 친구가 되어야 하고 정종과 친구가 되어야 하니 말이다. 여우같은 마누라에 토끼같은 아들 2명이나 있는데 친구 김승유의 연인인 세령을 사랑하여 친구를 배신하는 역할까지 맡아야 했을까?



실질적으로 계유정란 이전에 죽은 김승유의 적은 영양위 정종과 신숙주와 사육신들이었다. 사육신 중의 한명인 박팽년의 아들은 단종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죽을 때 계유정난 때 죽은 김종서와는 자신은 다르니 반적 김종서와 비교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죽는다.


공주의 남자로 인해서 신면은 이제 김승유의 친구가 되고, 여자 때문에, 세조에 비리 붙어서 친구를 죽이는 파렴치한이 되어 버렀다. 공주의 남자에서 신면은 죽어가면서 정종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아무 이유도 없이 공주의 남자 작가에 의해서 악당이 되어버린 신면은 죽어서도 억울하지 않을까? 신면이 정종에게 미안할것이 아니라 공주의 남자 작가와 제작자들이 신면에게 미안해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계유정란때 김승유의 아들 효달은 난리통에 유모의 손에 이끌려 살아났다. 효달의 어머니는 여흥민씨였다. 왜 자신의 아버지 김승유는 어린 효달은 살피지 않고 바람나서 세령공주만 찾아 그리도 나돌아 다닐까? 

대충 아무생각없이 보면 공주의 남자는 여성들의 눈물을 빼는 조선시대 멜로이지만, 알고 보면 죽은 김승유가 자신의 자식을 돌볼 생각도 없이 조카며느리와 눈이 맞아 사랑의 도피를 하는 엽기, 막장극이다. 

역사를 알고 보면 공주의 남자는 정말로 재미가 배가된다. 다양한 이야기꺼리가 있고, 웃을수 있는 개그도 있고, 막장 멜로도 있고, 유령이 등장하는 납량극도 있고, 시대를 넘나드는 황당SF도 있으니 말이다.

정말 역사와 야사와 픽션을 믹스한 정교한 스토리라인의 개연성과 리얼리티를 살린 시대극 보기가 힘든것인가?

어쨌든, 공주의 남자는 중견배우들의  선굵은 연기와 이민우, 홍수현, 송종호 등 조연 배우들이 극을 살렸다고 하겠다. 물론, 닥치고 멜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박시후와 문채원의 무채색 연기도 한목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드라마가 아닌 재대로된 역사를 알고 싶다면 아래글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역사를 알고 보면 사극은 더 재미가 있습니다.

2011/10/0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결말, 김승유와 세령공주를 만난 수양대군은 귀신일까?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모 시체 바다에 버렸다는 사림의 선동결과
2011/10/06 - [역사이야기] - 뿌리깊은 나무, 훈민정음 비밀팀? 중종반정 언문청 철폐 보면 답나온다.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관노비 없었고, 아들 정미수 수양대군 지어준 이름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결말, 단종도 죽인 김승유, 이시애와 수양대군 죽이고 왕될 기세?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 경혜공주 똥도 먹은 효자였다.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불쌍한 신면과 배신자 사육신 어떻게 충신 아이콘 되었나?
2011/10/04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사육신 박팽년 성삼문, 단종 양위시 경회루 투신사건 사실일까?
2011/09/30 - [TV&ETC] - 공주의 남자, 정종 죽고 경혜공주 공노비 된건 김승유 신묘한 계책?
2011/09/30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정종과 경혜공주 복중 아기 정미수 유복자될까? 사실은 이산 정조가 알고 있다
2011/09/29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될까? 사실은 정조만 알고 있었다.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 된다? 사실은 진실과 허구 왜 퍼졌을까?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 처 윤씨 사육신 편에서 자살했나? 사실은 방개떡 고사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제작자 계유정란 김승유 3살? 그럼 김승유와 아들 효달이 동갑? 대략난감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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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nacts 2011.10.08 2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거든, 현재든 아님 미래이든 사람의 욕심, 사랑은 늘 있어왔고, 있을 것입니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 피비린내 나는 역사 곳에서 공자의 인은 절규와도 같은 사랑의 외침이었을 것입니다. 공주의 남자를 시청하며, 피 냄새나는 탐욕의 역사 속에서 승유와 세령의 사랑, 세 친구들의 아픈 우정은, 그 시대 백성들의 아픔, 바램이었을 것이고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같은 것입니다. 픽션 논픽션을 따지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시대를 사는 백성들의 외침도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123456 2011.10.08 2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폐캐릭터..................... 완전 짱나
    참~~~ 역사 잘 아시네요???????!!!!!!!!
    진짜 추천하기 싫다

  4. ......... 2011.10.08 2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존나 짱나네!!!!!!!!!!!!!!!!!!!!!!!!!!!!!!!!!!!!!!!!!!!!1

  5. 짱나 2011.10.09 14: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랑 사실이랑 구분못하세요? 공주의남자 기획의도도 김종서 손자와 세조의딸의 사랑 이야기 금계필담을 김종서 아늘과세조의 딸 사랑 얘기로 다시 창작하여 작가의 상상으로 써간다고 했는데 말이지요....지금역사 강의 하시나요?그럼 드라마 보지마세요 그리고 임운 안죽었어요 잘보고 말씀하세요

  6. 별로네 2011.10.09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이 별로네요
    굉장히 부정적이시네요
    그동안 재미있게 본 다른 시청자들은 생각이 없어서 재밌게 본줄 아시나봐요?

  7. Favicon of http://.com BlogIcon 드라마의 역사고찰은 갓쉰동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었다. 2011.10.11 1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가 연산군시대까지 모두 보여줄수 없기때문에 연산군시대까지 수양대군과 신숙주와 한명회와 그 후손들이 결국 서로 죽고 죽이기를 했음을 시간적으로 압축해서 상징화하고 있어서 굉장히 통찰력깊은 드라마적 상징이라고 저는 드라마를 칭찬했는데요. 수양대군과 반정공신들이 한통속이 되어 불법왕위찬탈을 했지만 이들이 끝까지 한편이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서로 죽고 죽이기를 하다가 자멸했지요. 이를 보이고 있는것입니다. 즉 신숙주의 사촌여동생의 딸이 성종의 계비였다가 폐비되는 윤씨입니다. 폐비 윤씨의 어머니가 고령신씨이지요. 연산군에게 딸의 피맺힌 옷을 적하는. 이 윤씨를 폐비하는데 앞장선것이 시어머니인 반정공신 한확의 딸 인수대비와 성종의 정비인 공혜왕후의 아버지 한명회, 그리고 폐비윤씨에 이어 왕비가 되는 정현왕후의 6촌인 윤필상등입니다. 모두 반정공신이나 세조등극에 협력한 좌익공신, 원종공신들이죠. 이들이 1478년 먼저 죽은 신숙주의 5촌을 결국 사약내려 죽게하죠. 세조의 증손자이자 신숙주의 종손자인 연산군은 어머니의 원한을 푼다고 인수대비를 들이박아 죽게하고 한명회를 부관참시하고 윤필상을 귀양후 사약내력 죽게합니다. 또 반정공신 한명회외 신숙주는 세조사후 저희들의 정권을 위해 세조가 아끼던 조카나 5촌 당조카들을 모함해 죽이죠. 바로 구성군 이준과 남이장군. 그리고 이성계의 처족인 강순입니다. 이시애의 항쟁과 건주여진토벌을 한 왕족이나 인척 장군들인 구성군과 남이,강순이 세조사후 무언가 신숙주,한명회,정인지의 비리를 함길도나 건주여진토벌중에 알아채어 정치적으로 부상하는것을 못본거죠. 구성군 준은 세종4째 임영대군의 차남, 남이는 태종의 4녀의 정선공주의 손자이자 정난공신 권람의 사위, 강순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강씨의 친정 종손자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부정한 야합의 뒷끝은 자중지란속의 자멸이었음을 신숙주의 5촌당조카 페비윤씨를 대신해 신면을 죽이는 한명회로 상징화 한겁니다. 마지막회 그 짧은 순간에 이 추악한 야합의 말로를 알려주기위해.

  8. 이지영 2011.10.12 1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드라마잖아요~~` 그냥 넘어가지요

  9. 머라카노 2011.10.15 1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두서가 없네.... 글 초반에는 왜 꼭 역사적 사실대로 가느냐고.... 세조를 죽여라 하더니.. 글후반에는 역사적 사실이랑 다르다고 모라하네... 이런 횡설수설하면서 글 써놓으면서 유식한척하는 인간들이 있더라...

  10. Favicon of http://sob BlogIcon 아이고 2011.10.18 0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하나 만들어보시던가요;;
    님이 말한대로 드라마 만들면 그냥 다큐프라임이 될것같은데

  11. 갑갑한양반 2011.11.21 2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갑갑한 양반이네. 당신만큼 역사에 박식한 사람들 많고요, 19세기에 서유영(徐有英)이 펴낸 <금계필담(錦溪筆談)> 이라는 야담집에 있는 이야기를 각색해서 나온 것입니다. 사극도 님이 말한 방식의 드라마가 있고 새로운 방식의 사극 드라마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참 생각이 고루하시네요. 공주의 남자로 인해서 계유정난의 전후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렇게 검색하면서 이미 이것이 야사를 바탕으로 한 로맨스가 가미된 이야기임을 알게 됩니다. 염려마세요. 다른 사람들도 님만큼 똘똘하고 사리구분은 할 줄 안답니다.

  12. Favicon of http://glbnews.com BlogIcon 고명진 2012.01.02 08: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13. Favicon of http://raviv-tzad.com BlogIcon 아가 2012.01.07 0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박 겉 핥기

  14. Favicon of http://nutter.dnsalias.com BlogIcon 케네디 2012.04.06 0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15. Favicon of http://windy.is-a-green.com BlogIcon 제비꽃 2012.05.09 0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아침입니다.

  16. Favicon of http://john.is-a-liberal.com BlogIcon Makayla 2012.05.11 05: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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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18.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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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에서 세자가 죽음에 이르자 이제 가야한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문종과 현덕왕후가 자신을 보고 손짓하고 있다고 말을 한다.

공주의 남자는 미스테리 추리물보다 복잡하다.

공주의 남자에서 단종이 죽는것을 간략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끝냈다. 더군다나 금성대군도 사약을 받고 죽는 것으로 끝냈다.

문제는 정종이 죽고, 금성대군도 죽고, 단종이 죽는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마침내 문종과 단종 등이 저승사자가 되어 세자를 끌고 간다는 설정이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설정인지 모르겠다. 정종이 죽은 때는 1461년 이고, 세자 도원군(장: 숭)이 죽은 때는 1457년이다. 숭이 죽자, 금성대군이 죽고, 단종이 죽는 순서이다. 그리고 정종은 1461년에 죽는다. 더군다나 경혜공주의 유복자로 나오는 정미수는 1455~1456년경에 태어난다. 시계를 돌려도 타임머신 모드인가.

세자 숭이 죽을 때는 20살이 되었을 때이다. 1461년을 기년으로 하면 세령은 30살이 넘고, 숭은 24살이 넘어야 한다. 그런데 어느덧 1467년 5월 이시애의 난이 일어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정미수가 1467년에 태어났다는 말인가? 아니면 세자 숭이 1467년에 죽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이시애가 1457년에 반란을 획책했다는 것인가?

아무리 막장 멜로에 민폐 김승유를 주인공으로 했다고 해도, 너무한것 아닌가?

오늘날만 막장극이 있었던건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공주와남자 같은 막장 드라마가 있었다.


조카의 왕위를 강탈한 세조를 비난하기 위한 또 하나의 좋은 소스를 제공한다. 세조가 나쁜놈 임을 증명하는 증거물로 형왕(문종)의 아들 단종도 죽이고, 문종의 딸 경혜공주까지도 관노비로 만들고 단종의 어머니 묘도 파헤쳐 바다에까지 버린 세조는 파렴치한 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소릉은 문종(文宗)의 비(妃)인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의 옛 능호(陵號)이다.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어 시해한 뒤 세조의 꿈에 현덕왕후의 영혼이 나타나 “죄 없는 내 아들을 죽였으니, 나도 네 아들을 죽이겠다.” 하였는데, 꿈을 깨자마자 세자의 운명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격분한 세조는 소릉을 파헤쳐 버리도록 명하였다.

이때 어떤 승려가 바닷가에 떠 있는 현덕왕후의 관을 발견하고 숲 속에 묻어 두었는데, 중종 8년에 소릉을 복위하자는 소세양(蘇世讓)의 주청으로 인하여 문종의 능인 현릉(顯陵) 곁으로 이장하고는 함께 현릉이라 부르게 되었다. 《燃藜室記述 文宗朝故事本末 昭陵廢復》


세조가 단종을 죽이자, 문종 비인 현덕왕후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 내아들 (단종) 도 죽였으니  니(수양대군) 아들(의경세자)도 죽일거라는 꿈을 꾸었다“는데 단종이 죽고나서 의경세자(숭)이 진실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조가 현덕왕후가 묻혀 있는 경기도 안산의 현덕왕후의 능인 소릉를 허물고 관을 파서 버렸다는 말도 진실처럼 돌아다닌다.

한마디로 어떤 효자가 어머니 병을 고치기 위해서 무덤을 파서 시체를 뜯어와 어미에게 먹이려는데 시체가 벌떡일어나 내다리 돌려줘 하는 전설따라 삼천리에 나옴직한 이야기다.


단종이 죽은 때는 세조 7년 1457년 10월 이였고, 세조(수양대군)의 맏아들 의경세자가 죽은 때는 1457년 9월 2일이었다. 의경세자(장,숭)이 먼저죽고 단종이 후에 죽었다. 요즘으로 하면 불가능한 일이 당시에는 사실처럼 퍼진 것이다. 이를 근거로 세조가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의 소릉을 파서 관을 버렸다는 말이 퍼진 것이다.


더군다나 소릉이 파헤쳐 바다에 버려진 적도 없다. 단지, 소릉이 일반인의 무덤으로 지위가 떨어지고, 소릉에서 사용된 왕비로써의 사용된 기물들이 철거하고 이장된 것이다.


1456년 6월1일 사육신의 단종복위가 실패로 돌아갔는데 사육신의 단종복위에는 사육신의 배후에 단종이 있었고, 단종이 수괴였다. 성삼문과 권자신은 상왕 단종이 자신들과 여러 번 반정복위에 대한 계획을 세웠고, 1456년 6월 1일 당일에 상왕 단종이 세조를 죽이는데 사용할 큰칼까지 주었다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곧 단종이 사육신의 배후이며 수괴라고 자복한 것과 같다.


사육신 중의 한명인 권자신은 현덕왕후 권씨의 동생이었다. 만약, 단종이 권력에서 물러나지 않았다면 권자신은 외척으로 어린 단종을 대신해서 권력을 행사했었을 것이 자명하다.


단종의 매부인 정종과 누나인 경혜공주도 단종이 왕이었을 때  수 없이 많은 재산을 불렸다.


그래서, 권력의 정점에서 물러난 권자신으로서는 단종복위의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만했다. 문제는 권자신 뿐만 아니라 권자신의 어머니 최씨와 연락책인 최씨의 노비가 연루가 되었다.


1456년 6월 사육신 사건은 상왕 단종이 수괴가 되고, 외삼촌 권자신, 외할머니 최씨가 연루된 중대한 사건이 된 것이다.


그래서 현덕왕후는 왕후에서 일반인으로 격하된다. 묘에도 격식이 있었고, 주택에도 격식이 있었고 복식에도 격에 맞아야 했다. 공신이 되면 아버지나 자식도 공직이 증가된다. 마찬가지로 반역을 하게 되면 격하되는 것도 일반화 되어 있었다. 이런 연유로 현덕왕후가 격하되고 격식에 맞게 이장된 것이다.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현덕 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의 어미 아지(阿只)와 그 동생 권자신(權自愼)이 모반(謀反)하다가 주살(誅殺)을 당하였는데, 그 아비 권전(權專)이 이미 추후하여 폐(廢)하여서 서인(庶人)으로 만들었으며, 또 노산군(魯山君)이 종사(宗社)에 죄를 지어 이미 군(君)으로 강봉(降封)하였으나, 그 어미는 아직도 명위(名位)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마땅하지 않으니, 청컨대 추후하여 폐(廢)하여서 서인(庶人)으로 만들어 개장(改葬)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세조 2년 , 1456년 6월 29일


예조에서 종묘서(宗廟署) 의 정문(呈文)에 의하여 아뢰기를,

“현덕 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의 신주(神主)와 의물(儀物)을 일찍이 이미 철거하였으니, 그 고명(誥命)과 책보(冊寶)와 아울러 장구(粧具)를 해당 관사로 하여금 수장(收藏)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세조 3년 1457년 9월 7일



하지만, 현덕왕후 소릉에 사용 내용물들은 종시부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성종 때 고명과 장구들을 종시부에서 내려 태워버린다.
 

현덕빈(顯德嬪) 의 교명(敎命)·죽책(竹冊)과 보(寶)를 종부시(宗簿寺)에 내려 불사르도록 하였다.

- 성종 7년, 1476년 4월 15일


연려실기술이나 현덕왕후 관련 세조가 소릉을 내다 버렸다는 설은 세조 2년 1456년 6월 29일의 소릉을 일반서인의 묘로 격하시키고 개장(이장)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1457년 10월 단종이 죽고, 1459년 9월 2일 의경세자 숭(장)이 죽고, 1456년 6월 29일 세조가 소릉(현덕왕비릉)을 판 것이 아니다.


1456년 6월 1일 사육신 사건으로 단종, 권자신, 현덕왕비의 어머니 최씨가 연루되어 현덕왕후가 서인으로 격하되고, 1456년 6월 29일 능도 그이 맞추어 이장된 것이 사실이다. 개장(이장)과 버린다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무슨 수양대군(세조)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있었겠는가?
 

1456년 6월 이후 사육신 사건으로 단종의 외삼촌 권자신, 외할머니 최씨가 죽는다.

1456년 6월 29일 현덕왕후가 역모의 주역의 가족이란 이유로 서인으로 격하되고 개장(이장)된다.


1457년 6월 단종 장인인 송현수가 반란을 획책하다.

1457년 6월 21일 단종이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격하되고 영월로 유배를 떠난다.

1457년 6월 27일 금성대군, 이보흠과 반란 획책하다 들킴

1457년 8월 송현수가 관노가 됨.
 

1457년 9월 2일 의경세자(장,숭)이 죽음.


1457년 10월 21일 송현수가 교형에 처해지고, 금성대군은 사약을 받고 이후 죽음.


1457년 10월 21일 단종(노산군)이 죽고 예로서 장사지내게 함.



이긍익이 채록한 열려실기술의 기록은 1457년으로부터 1456년 과거로 진행되는 이야기구조이다.


정상적인 이야기라면 의경세자가 죽자, 현덕왕후가 세조(수양대군)의 꿈에 나타나 “니 자식은 내가 죽였다”라고 해서 세조가 단종을 죽였다라고 하면 좀 더 그럴듯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드라마틱하게 세조는 나쁜놈에 또 하나의 덧칠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단지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사실처럼 널리 퍼지고 진실처럼 되어 버렸다.


태종 이방원은 왕자의 난으로 세자였던 방석을 몰아내고, 아버지 이성계가 죽자 1409년 현재 정동에 있던 계모 신덕왕후 강씨의 묘를 성 밖 (현재 서울 성북구 정릉2동) 정릉으로 옮겨 버린다. 왕비릉에서 사용되어진 석물들은 광통교 다리건설에 사용되어지기도 한다.


다음은 1456년 현덕왕비 소릉을 폐한 후 일반 서인의 무덤으로 이장해서 묻은 현덕왕비의 무덤을 58년이 흐른 후 사림파들의 연산군을 몰아내고 반역에 성공한 후 1513년 중종 8년 개장(이장)하여 문종이 있는 현릉의 부부릉으로 옮길 때의 기록이다.
 

여름 4월 17일에 소릉의 옛 무덤을 열었다. 제조 송일과 김응기 등은, “신 등이 당초에는 기간이 오래되어 관곽이 부패해서 남은 것이 없을까 깊이 염려하였으나, 막상 열어서 살펴보니 안팎 관곽이 다 있고 염습(歛襲)이 완전하나 너무 오래되어 다만 형체만 있으므로 새 관곽과 새 의금(衣衾)으로 바꾸어서 범사에 유감없이 하였으며 또한 다시 염할 때는 궁인 및 내관이 나아갔지만 막대한 일을 친히 감독하지 아니할 수 없으므로 신들이 염습을 친히 감독하였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동각잡기》


처음 능을 파헤쳐서 해변에 옮겨 묻은 뒤로는 전소(奠掃)와 수호(守護)의 끊어진 지가 수십 년이 되니, 거민들이 단지 언덕 하나가 그곳이라고 전해온다고 알고 있을 뿐 타설(他說)이 있어 사람을 의혹케 하였다.


천장하려 할 때 땅을 깊이 팠으나 관이 보이지 않아 어찌할 줄을 몰랐더니 포초록(圃樵錄)에는 관 있는 곳을 알 수 없었으므로 군인(軍人)이 물가에 늘어서서 일제히 그 진흙을 파헤쳐 산발치까지 갔으나 보이지 아니 했는데 감역관(監役官)이 꿈에 신의 말씀을 받아서……”라고 하였다.


이 날 밤에 감관(監官)이 졸고 있는데 꿈에 왕후를 뵈니 장전(帳殿)에서 안석에 기대어 왕후의 위의를 갖추고 두 시녀가 모시고 있었다. 감관을 불러 위로하기를, “너희들이 고생하는구나.” 하니, 감관이 엎드려 절하고 놀라 땀을 흘렸다. 잠을 깨어 이상하게 생각하고 다음날 아침, 두어 자 더 깊이 파니 곧 손바닥 넓이만한 관의 칠편(漆片)이 삽날에 찍혀 나와 관을 발견함으로써 능히 일을 잘 마쳤다. 《음애일기(陰崖日記)》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합록(合錄)》


창졸간에 옮겨 묻고 성소(省掃)를 폐한 지 너무 오래되어 시신을 찾지 못할까 걱정했으나 능을 열고 본즉, 안팎 관이 다 형체가 있고 염습이 완전하였다. 관은 바꾸고 법의(法衣)로 관의 빈 구석을 메 꾸었다. 《음애일기(陰崖日記)》



위의 기록 등 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장(이장)을 위해서 삽으로 팠지만, 예상보다 깊이 묻혀있었고, 칠편(옻칠)으로 안팍 관곽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도 정성껏 묻은 묘도 60년 가까이 지나 묘를 파면 묘가 제대로 있을 확률은 별로 없다. 현덕왕비 묘가 제대로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닷가였고, 벌이 침투해서이지 않을까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이라가 발견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조선의 잘못된 장묘법이 미이라를 양산했다. 주자(주희)가 주창한 매장법은 미이라를 양성할 수밖에 없었다. 회(생석회)갑으로 둘려쳐저 있어 공기와 차단이 되고, 생석회는 물과 만나면 발열반응이 생겨 시체와 묘속에 있는 초기 미생물을 죽이게 되고, 요즘도 생회가루가 구제역 등 방역에 많이 사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석회가루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져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된다.


주희는 무덤 속 시체가 빨리 썩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장묘법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주희가 주장한 장묘는 아이러니하게 미라만 양성했다. 시체가 썩지 않고 있으면 당시에는 영혼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원한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서인의 묘로 격하된 현덕왕비의 묘는 조금은 다른 과정으로 멀쩡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니 바다에 떠내려가 현덕왕비의 관을 중이 창졸간에 묻었다는 말은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하겠다. 한마디로 비극적인 왕비의 전설따라 삼천리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물론, 창졸간에 왕비릉에서 단종이 폐위되고, 형제와 어머니가 서인이 되었고, 마침내는 아들 단종까지 세조로 인해서 죽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무덤에서 벌떡 일어설 만한 건 사실이다. 더불어 세조가 무덤까지 파서 바다에 버렸다는 세조(수양대군) 나쁜 넘 프로젝트 이야기는 사실처럼 비쳐질 만큼 충분한 드라마틱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또 하나의 세조 죽이기 작업과 사육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림 측의 선전물임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낭설이 사실인 것처럼 소설로 만들어지고, 드라마로 제작되어서 드라마로 역사를 배운 사람들이 세조를 비난하면 지식인처럼 호도되는 지경에 까지 왔다.


소설과 드라마는 역사와 하등 상관이 없다. 특히 최근에는 사이비 역사학자들조차 교차검증이나 문헌고증을 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낭설을 사실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믿고 싶은 것이 사실이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역사도 아니다. 드라마가 아닌 역사를 알고 싶다면 다음 아래글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2011/10/06 - [역사이야기] - 뿌리깊은 나무, 훈민정음, 왜 비밀팀일까? 중종반정 언문청 철폐 보면 답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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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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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 적으로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조디악 징후 예측 사실 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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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적으로 누가 집회를 주관했는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또한, 집회시간에서도 시위자수가 달라 집니다. 동원이냐 자발적이냐에 따라 해당숫자는 천양지차가 발생합니다.

  19. Favicon of http://www.best-practice-business.de/index.php?cXBfYWN0aXZlPW5ld3MmcXBfaWRfY2F.. BlogIcon invisible fence cost dogs 2012.12.26 2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날만 막장극이 있었던건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공주와남자 같은 막장 드라마가 있었다.

  20. Favicon of http://markets.financialcontent.com/newsok/news/read/22360046/survival BlogIcon mountainhousefoods.org 2013.01.05 2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21. Favicon of http://ford.grupocaiuas.com.br/fiesta-sedan BlogIcon fiesta sedan 2013.01.25 0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Google에서 블로그 사이트를 발견하고 조기 게시물 몇 가지를 확인하십시오. 아주 좋은 작동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합니다. 난 그냥 내 MSN 뉴스 리더에 RSS 피드를 추가. 나중에 당신에게서 더 읽어 앞으로 추구! ...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은 죽기 전에 태중 이름을 지어준다.


아들인지 딸인지 모른다며 두 개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그런데 왜 정종은 태중 아이의 이름을 지어줄까?


사실 정종이 정미수의 이름을 지어준다는 설정은 잘못된 기록에서 기인한다.
 
정미수는 세조가 궁궐에서 정미수를 키우면서 "鄭眉壽"라고 지어준 이름이다. 오래오래 살라는 의미가 있다. 물론, 아명은 정종과 경혜공주가 지었을 것이다. 1461년 10월 정종이 죽을때 정조는 정미수는 여닐곱이라고 기록하고 있었다. 서거정의 예와 사관이 경혜공주가 죽을 때 정미수는 1473년 16세 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부러 정종과 경혜공주가 세조와 적대적인 것으로 만들다 보니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이 죽으면서 지어준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다.

1455년 6월 정미수는 정종이 유배를 떠야야 하고,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양위를 할 시점에 이미 경혜공주의 복중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경혜공주는 유배를 떠날때 이례적으로 교자를 타는 복을 누린다. 왜 경혜공주는 특혜를 받아야 했을까? 

당연히 경혜공주의 배가 불러왔기 때문에 걸어서는 움직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경혜공주가 관노비가 되었다는 설도 잘못된 이야기에서 전해진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세자 숭(장)이 정종이 죽고난 후에 죽는 것으로 그리고 있고, 숭이 죽기전에 단종과 금성대군이 죽은것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세자 도원군 장(숭)은 1457년 9월 2일 죽는다. 김승유는 1463년 이시애의 난에 참가를 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1457년 도원군 장이 죽고, 금성대군이 죽고, 단종이 죽고, 그리고 1461년 정종이 죽는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시계가 꺼꾸로 가다 못해 뒤죽박죽이다. 공주의 남자를 따라가기도 힘에 부친다.


현대는 역사자료도 인터넷으로 쉽게 찾을 수가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기록을 찾기가 힘들었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책을 통해서 일수밖에 없다.


속담에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말이 있듯이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간다.

문제는 말로서 퍼지는 여론은 살이 붙는다는 것이다. 감기가 걸렸다고 하면 마지막에는 죽었다고 알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에도 잘못된 정보가 인터넷에서 퍼지는 것처럼 당시는 지금보다 더 빠르게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게 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양반들이 여론을 주도했고 이를 알리는 방법은 사발통문이었다.


정종이 죽고 경혜공주가 복중에 유복자 정미수를 가지고, 관노가 되어서 모욕을 당했다는 말도 그렇게 만들어져 사실처럼 세조시기 전국방방곡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순천관노가 되었다거나 아니다 장흥관노라더라고 살이 붙고, 피가 되어 소문이 살이 되어 진실이 되어간다. 



공주의 남자에서도 세조(수양대군)은 정종이 반란으로 죽고, 금성대군을 사사하고, 단종도 사사한다. 그리고 경혜공주는 변방의 순흥 관노로 보내버린다.  드라마를 보고 세조와 한명회, 신숙주 나쁜놈이라고 했다면 드라마가 역사가 되는 현장을 보고 있는 것이고 사림파의 프로파간다에 속아넘어간 것이다. 그동안 많은 드라마들이 역사가 아닌것을 역사처럼 드라마에 차용하였다. 그에 놀아난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역사화 되었다.

경혜공주 관노비설과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에 대해서 역사적 진실을 알고 싶다면 다음 글들을 참고 하기 바랍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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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 후 이제 귀하의 웹사이트에 블로그 게시물의 일부, 그리고 진정한 블로깅의 방법이 좋아요. 난 곧 내 북마크 사이트 목록에 북마크를 다시 확인합니다. PLS으로 내 웹 사이트를 확인하고 내가 뭘 생각하는지 알려주십시오.

 

<공주의남자>가 결말로 치닫고 있다. 세령공주는 세조(수양대군)의 명으로 신면의 노비가 된다.


수양대군(세조)가 세령공주를 신면의 노비로 만든 이유는 김승유가 세령을 구하러 올 때 잡으려는 계략과 세령이 마음을 다잡기를 바라는 마음이였다.


김승유는 광주에 있던 정종으로부터 반란복위 계획이 있으니 김승유가 내려와서 도와주기를 바란다.


반란 계획은 서울의 총통위가 서울에서 내응을 하고, 정종이 있는 전라도 군사와 금성대군이 있는 경상도 군사가 수원에서 모이고, 김승유 자신이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을 모시고 서울을 공략한다면 세조(수양대군)의 세력은 무너지고, 전국의 수양대군의 반대파와 유림들이 단종을 복위하는데 찬성할것이니 실패할 수 없다고 총통위 군사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이에 총통위 반란세력은 김승유가 김종서를 닮아 절묘한 계책이라며 김승유를 한층 띄워준다.


하지만, 김승유는 광주로 가는 도중에 세조와 신면이 퍼트린 세령공주가 신면의 노비가 되어 신면의 집에 잡혀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면의 집으로 빙옥관 사람들과 찾아간다.


김승유에게 필요한건 신면이 세령을 덮칠까하는 우려해서 신면의 집으로 찾아가 세령을 구하는 것이 우선일까? 아니면 정종을 찾아가 반정을 하는게 우선일까? 물론, 김승유는 신면과 세령이 결혼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세령공주를 수양대군 집 결혼식장에 침투해서 납치하는 만행도 저지른적이 있다. 신면의 집에는 수많은 군사들이  포위하고 있다. 달랑 3명으로 신면의 집에 들어가 세령을 구하는데 성공을 한다.


김승유의 수준이라면 신면의 집으로 쳐들어가는 것 보다는 궁궐을 넘어서 세조(수양대군)을 치는것이 더 빠를 것 같다. 정종과 함께 전라도, 경상도 군사를 몰아 수원에서 모여서 서울을 공략할 필요가 없을 텐데 말이다.


김승유가 세령을 구하여 한말에 두명이 말을 타고 광주로 떠난다. 작가는 주인공 말태우기에 습관화 된 것 같다. 한 마리 말을 타고 두 명이 광주까지 간다는 발상은 참으로 난감하다. 더군다나 신면보다 빨리 광주에 도착하기 까지 한다. 나르는 슈퍼보드라도 탔나? 한가한 사랑놀음 스킨쉽이 신면보다 더 빠르게 했다는 것인가?


어쨌든, 김승유가 세령을 구하고 떠나자, 신면은 빙옥관으로 가서 빙옥관 주인을 잡아들이고 빙옥관 주인은 김승유 너의 사랑만 소중하지 않고, 나의 사랑도 소중하다며 김승유가 정종이 있는 광주로 갔다고 까발린다.


결국에는 정종은 서울로 압송되어 거열형에 처해지고, 금성대군은 경상도에서 사약을 받고 죽는다. 강원도 영월에 있던 단종도 사약을 받고 죽는다.

김승유가 자신의 치기어린 사랑놀음에 민폐만 끼치지 않았다면 아버지도 죽지 않고, 정종도 죽지 않았을 것이고, 금성대군도 죽지 않고, 자신의 아버지 김종서가 단종을 지켜달라는 유명도 지킬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김승유는 하지 말라는 짓은 골라서 하는 청개구리였다. 사랑 때문에 아버지와 형을 죽였고, 결국에는 친구인 정종과 금성대군과 자신의 주군인 단종도 죽여 버렸다. 하지만, 김승유는 자신이 어떠한 잘못을 했는지 모르고 처형장에 찾아가 정종을 구하려고 하지만, 이미 정종이 죽고 난 후의 피 흔적만 바라본다.


다른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정종의 처형을 김승유만 모른다는 설정도 어설프기 그지없다. 김승유 같이 어설프고 민폐만 끼치는 인물을 세조와 대항하는 우두머리로 두고 있다면 그 조직은 해보나 마나 필패이다.  총통위 반란세력은 후사를 도모하기 위해서 이시애와 연합전선을 구축하는데 세령공주는 수양대군의 딸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딴지를 건다. 주군 단종이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모자리들의 모임인 총통위와 민폐 김승유가 반란에 실패할것은 명확하다.


김승유는 이제 이시애가 있는 함경도로 떠나 반정을 도모하려고 한다. 분명히 예전부터 지금까지 한 것처럼 김승유가 이시애를 죽음으로 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좋게 이야기하면 김승유는 머피의 법칙에 빠진것이다. 그리고 신면이 세조에 버림을 받지만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려다 죽게 될 것이다.


공주의 남자의 작가는 김승유가 세조(수양대군)를 죽이고 조선의 왕이 된다는 설정을 하지 않는지 알수가 없다. 세조가 죽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세조가 왕인데 세조를 죽이면 역사와 다르기 때문인가? 최소한 큰틀에서 역사는 지켜야 하는 거라고 작가나 시청자가  생각했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그동안 공주의 남자가 지킨 역사적 팩트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역사를 망치는데 작가의 활약은 끝이 없었다.



실존인물 김승유가 계유정란이전에 죽었는데 계유정란에 나온다는 설정자체 부터가 실패한 설정이다.
 
김종서의 손자 김석동이 세령공주와 사랑을 하고 계유정란에 나온다면 그나마 역사를 망치지 않고 할수 있는 설정이였을 것이다.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제작자 계유정란 김승유 3살? 그럼 김승유와 아들 효달이 동갑? 대략난감

경혜공주는 세종이 명하여 정종과 결혼을 한다. 그전에 세종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8째 아들 영흥대군(영응대군)을 정충경의 딸 정씨에게 장가를 보낸다. 정종은 평창군주(경혜공주)에게 장가를 가기 전에 이미 왕족의 일원이었다. 영흥대군은 어릴적 수양대군의 손에 큰다.


정종의 고모는 1407년 태종(이방원)의 둘째 효령대군에게 시집을 갔고, 정종의 누이는 세종의 영응대군에게 시집을 갔고, 정종은 문종의 큰딸 평창군주(경혜공주)에게 장가을 갔다. 공주의 남자에서처럼 아버지 정충경이 죽자 한미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3대에 걸쳐 왕가와 혼인하는 한미한 왕족을 본적이 있는가?

 

정종은 전국방방곡곡 재산이 없는 곳이 없었다. 경혜공주와 정종이 결혼한 후에는 더욱더 재산을 불려나갔다. 어린 동생 단종을 자기집에 모셔놓고, 권력형 비리 정점에 정종과 경혜공주가 있었다. 계유정란이 있던 때도 단종은 경혜공주의 집에 있었다. 반란에 연루되어 유배된 지역도 자신의 농장이 있는 통진이었을 만큼 정종은 끝없는 사랑을 받았다.


어쨌든,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의 뻘짓같은 세령 구하기로 인해서 정종과 금성대군과 단종이 죽었다.



정종이 서울로 압송된 때는 1461년 7월이었고, 3개월인 1461년 10월 20일 정종이 죽는다.  광주에 같이 있던 경혜공주는 3일후인 1461년 10월 23일에 아들 정미수와 함께 서울로 올라온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경혜공주가 정종이 압송되자 자기 마음대로 서울로 올라오는 것으로 그렸고, 이미 태어나 눈망울을 굴리고 있었을 정미수는 아직도 경혜공주의 배속에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사림파들이 경혜공주가 관노가 되었다는 유언비어와 정미수가 유복자였다는 설을 퍼트린다. 하지만, 알고보면 한심한 수준의 쌔빨간 거짓말이들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더욱 압권은 김승유와 정종이 전라도 군사와 금성대군이 있는 경상도 군사를 이끌고, 김승유가 영월에 있는 단종을 모시고 오겠다는 설정이다. 더군다나 세조의 맏아들 세자 숭(장)이 아픔에도 세령을 찾는다는 설정이다. 


김승유가 신면의 집에서 뻘짓을 하지 않고, 정종과 정상적인 반란을 한다면 김승유의 반정계획은 성공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을 조금 차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공주의 남자에서 수양대군(세조)는 정종을 죽이고 금성대군과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금성대군과 단종이 죽는 시점이 비슷한 건 사실이지만, 단종이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말은 세조가 죽어야 사는 사림이 퍼트린 유언비어인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1457년 6월 21일 단종의 장인 송현수는 권완과 단종복위를 꿈꾸며 반란을 획책하지만 들키고 만다. 이때 단종은 노산군으로 감봉되고 영월유배

1457년 6월 22일 단종 영월로 유배되다.


1457년 6월 27일 관노 이동이 금성대군의 모반을 아뢰다.

금성대군은 경상도에서 순흥부사(영주) 이보흠, 안순손과 반란을 획책하고 단종 복위를 꿈꾸지만 이도 들키고 만다.


1457년 9월 2일 세조의 세자 도원군 장(숭)이 죽는다.


1457년 10월 21일 결국 단종의 장인 송현수와  금성대군을 죽이라는 의정부, 사간원, 사헌부, 종친부의 압박에 세조(수양대군)은 송현수와 금성대군을 사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1457년 10월 21일 단종이 결국에 죽었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영월에서 보고가 올라왔다는 뜻은 단종이 그전에 죽었다는 뜻이다.


1457년 11월 18일 

종부시(宗簿寺)에서 아뢰기를,

“노산군(魯山君) 및 이유(李瑜) ·이영(李瓔)·이어(李)·이전(李瑔)·정종(鄭悰) 등은 그 죄가 종사(宗社)와 관계되므로 속적(屬籍)을 마땅히 끊어야 합니다. 청컨대 아울러 자손까지도 종친(宗親)에서 삭제하고 부록(附錄) 같은 데 기록하도록 하소서.”
 
1461년 7월 정종 광주에서 반란 계획이 들통남
1461년 10월 20일 정종 죽음
1461년 10월 23일 광주에 있던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와 서울로 돌아옴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이 반란이 들킨 때는 1461년 7월이었다. 그러니 1461년 10월 정종이 죽고, 1457년 10월 금성대군이 죽고, 1457년 10월 단종이 죽을 수가 없다. 더군다나 1457년 9월 금성대군과 단종보다 먼저 죽은 도원군 장이, 정종이 죽은 이후에 세령공주를 찾을 수도 없다.

 

1467년 5월 16일 함길도 전 회령절제사 이시애가 반란을 하다. 이때 신면이 죽는다. 신면의 나이는 30살이었고, 신면에게는 두 명의 아들 5~6세의 신용관, 신용개가 있었다.

 

신면은 승지(承旨)가 된 지 5년이 되었어도 일찍이 과실이 없었으며, 임금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 자못 자상하고 명확하였다. 죽을 때의 나이가 30이며, 아들이 둘이 있으니, 신용관(申用灌)과 신용개(申用漑)이다. - 세조 13년, 1467년 5월 22일


이때 신숙주와 한명회는 이시애의 반란에 연루되었다는 이시애의 반간계에 하옥되는 처지에 있었다가 신면이 반란을 진압하다 죽고나서 이시애에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풀려난다.


정종이 죽은 때는 1561년이고, 이시애의 난은 1567년 5월, 계유정란은 1553년이여서 세월은 화살처럼 빨리 지나간다. 어느덧 12년이 흘렀다. 하지만, 김승유의 조카 아강은 아직도 어린애에 불과하다. 충격을 먹어서 더이상 자라지 않겠다고 선언한 피터팬에 양철북의 꼬마를 생각하게 한다.

김승유와 세령은 30대 후반 노총각, 노처녀가 되었다. 신면은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 세령공주를 자신의 첩실로 들이려고 노력하고 있고, 세조는 신면에게 세령공주를 첩실로 넘기지 못해서 안달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신면은 한성부 판관으로 나온다. 1453년 계유정란 즈음에 김승유, 정종, 신면, 세령공주는 20살로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신면은 1438년생으로 15살에 불과했다. 수양대군이 신면에게 세령을 노비로 하사한 때인 1461년이면 신면은 24살이고 이미 아들 신용관을 임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공주의 남자> 결말에서 김승유가 반란에 성공해서 세조를 죽인다고 이상할 것이 없고, 오히려 공주의 남자답다고 하겠다.  세조가 죽어야 시청자들은 오르가슴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그리고 김승유가 세령과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앤딩이나 아버지가 죽은 세령이 결국에는 김승유를 떠나거나 죽거나 절로 들어가는 것으로 그린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먼저 김종서를 죽인 사람은 수양대군이니 김승유가 수양대군을 죽이고 왕이 된들 세령과 사랑은 변치 않을 것이다. 서로 비긴 것이니 말이다. 시청자들도 공주의 남자 결말에 김승유와 세령공주가 산에 들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있기도 하다. 현재 공주의 남자 결말로는 신면도 죽고, 김승유도 죽고, 세령도 죽는 새드엔딩이 될것이 눈에 보이지만 말이다.
 


공주의 남자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가 역사인듯 말하는 사람이 늘어날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고 아직도 역사와 구분을 하지 못하고 미실이 어떻네 하는 사람들을 보면 웃지않을 수 없다.

지금도 공주의 남자를 보고 역사와 구분을 하지 않고, 신면을 비난하고, 세조를 비난하고, 사육신과 김승유가 한편이었는 줄 안다. 김승유와 정종, 그리고 사육신이 한편이라 설정은 김종서를 두번죽이는 것이다. 또한, 사육신을 두번 죽이는 것이다. 드라마가 역사가 되고 신화가 되어서 언젠가는 김승유는 사육신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을 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그와 반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와 역사가 다르다는 점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래의 글들은 공주의 남자나 사극이 망친 역사를 바로잡는 글들 입니다. 최소한 드라마를 보더라도 역사를 알고 보면 재미가 극대화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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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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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05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크리스폴 2011.10.05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입니다..다만 아쉬운 것이 오타가 많네요..신경써주셨으면..백동수랑 광개토태왕에 대한 글도 써주셨으면..혹시 안 보시나요? ^^

  3. Favicon of http://www.starkdevelopmentinc.com/ BlogIcon General Contractors San Diego 2011.10.05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찬성할것이니 실패할 수 없다고 총통위 군사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이에 총통위 반란세력은 김승유가 김종서를 닮아 절묘한 계책이라며 김승유를 한층 띄워준다.


    하지만, 김승유는 광주로

  4. 2011.10.06 0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사람들이 이걸보고 역사라고 믿는게 문제가 아니라 실제 역사자체에 관심을 안 갖는게 문제겠지요 ㅋ

  5. 공남폐인 2011.10.06 2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남 안보셧나바요 내용이 안맞네요 전혀ㅡㅡ 김승유가 사랑해서 가족이 죽다녀ㅡㅡ 일회부터 보시길...

  6. ㅓㅓ 2011.10.21 14: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보지 마세요.

  7. 뮤리엘 2011.10.30 0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 관심이 많은건 잘 알겠는데요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고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입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워낙 잘되어있어서 드라마를 보고 인터넷에서 사실여부를 찾아보는 활동도 활발하구요

    사료를 근거로 만든다고 해도 100% 정확할수는 없죠. 사료라는것이 승자의 기록이고 사람이 작성하는 것이라서 100% 객관적인 사실만 기록할수도 없구요

    드라마를 위한 어느정도의 극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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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히 반박할려면 위처럼 일본의 수입조건과 한국의 수입조건이 다르다는 가장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또한, 확율론적으로도 반론을 제기한것도 극히 위함한 발상이고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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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김승유는 광주로 가는 도중에 세조와 신면이 퍼트린 세령공주가 신면의 노비가 되어 신면의 집에 잡혀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면의 집으로 빙옥관 사람들과 찾아간다.

  19. Favicon of http://www.fremdgehen-heute.ch/ BlogIcon Heute Fremdgehen 2012.12.30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그와 반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와 역사가 다르다는 점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래의 글들은 공주의 남자나 사극이 망친 역사를 바로잡는 글들 입니다. 최소한 드라마를 보더라도 역사를 알고 보면 재미가 극대화 됩니다.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가 죽고 경혜공주는 복중에 아기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경혜공주는 공노비가 된다. 그런데 이는 역사와 무관하다.


경혜공주는 공노비가 된적도 없다. 그런데 왜 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경혜공주가 관노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을까?


이는 이긍익의 열려실기술이나 수 많은 문헌에서 경혜공주가 관노비가 되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조는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자신의 저서에서 문헌고증으로 밝히고 있다.



공주의 남자에서 경혜공주가 처음 정종에서 마음을 열고 몸을 연것은 사육신 단종복위 사건이 일어나기 전 날밤으로 그리고 있다.
 
더군다나 정종은 죽기전에 자식의 이름을 지어주고 죽는 다는 설정이다.

그렇다면 정종이 죽을 때 경혜공주는 복중에 아기를 임신하고 있었을까? 이도 사실이 아니다. 

 

 


1455년 6월 11일(윤) 경혜공주는 금성대군과 정종이 연루되어 유배를 떠나고, 단종이 수양대군(세조)에게 양위를 할 때 이미 정미수를 임신하고 있었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경혜공주는 단종이 폐위되고, 남편인 정종이 유배를 떠나게 되자, 수양대군을 찾아가 “전하”를 수없이 되 풀이 말한다.

전하가 원하는 대로 님이 짱 되었으니 나의 남편만은 유배를 보내주지 말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 장면에서 세조는 비열한 웃음을 한다. 이제 니가 나를 임금으로 인정을 하는 구나 하고 말이다.

 



좀 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려 했다면 경혜공주가 약간 배가 부르게 했다면 그 장면은 명장면으로 남았을 것이다. 물론, 배가 부른다고 티는 나지 않는다. 왜냐 하면 한복의 특성이 배를 충분히 가릴만 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경혜공주가 정종이 죽기 전에 아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까?


정종은 세조 7년 1461년 10월 20일에 죽는다. 경혜공주는 1473년 성종 4년 12월 30일  죽는다.


1474년 1월 1일 성종 5년 파란만장한 삶을 산 경혜공주 졸
 

호조(戶曹)에 전지(傳旨)하여 경혜 공주(敬惠公主)에게 부의(賻儀)로 쌀·콩 아울러 70석(碩), 정포(正布) 50필, 종이 1백권, 석회(石灰) 60석, 촉랍(燭蠟) 30근을 내려 주게 하였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처음에 정종(鄭悰)이 주살(誅殺)되니, 공주(公主)는 머리를 깎고 여승(女僧)이 되었는데, 매우 가난하였으므로, 세조(世祖)가 불쌍히 여겨 노비[藏獲]를 돌려주고, 내수사(內需司)로 하여금 집을 지어서 주게 하였다. 아들 정미수(鄭眉壽)는 나이 16세로 공주가 병이 위독해지면 약이(藥餌)를 반드시 먼저 맛보았고, 옷은 띠를 풀지 않았으며, 똥을 맛보기까지 하면서 병을 보살폈다.” 하였다. - 성종 5년 1474년 1월 1일



1473년 경혜공주 28살로 새해가 되기전에 죽는다. 죽기 전에 병이 위독했다. 아들 정미수는 16살로 공주가 병이 위독해지면 똥을 맛보기 까지 하면서 간호를 하였다. 정조는 1461년 정종이 죽을때 여닐곱이라고 했다.


그러니 정미수는 세조 2년 1455년생 일 수밖에 없다. 정미수가 12월생이라고 해도 단종이 폐위되고 아버지 정종이 유배 되는 1455년 6월(윤)이면 경혜공주는 임신 4개월이 된다. 이때 경혜공주는 최소 4~6개월 임산부가 되었음 직하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정종이 유배를 떠나려고 할때 경혜공주는 병이 있다고 상왕 단종에게 알린다. 이에 세조(수양대군)과 단종은 경혜공주가 병을 핑계되는 건 정종의 유배를 늦추고자하는 계략이라고 생각을 한다.
 

의금부(義禁府)에 전지(傳旨)하기를,

“이어(李)는 아산(牙山)으로, 이전(李瑔)은 안성(安城)으로, 정종(鄭悰)은 양근(楊根)으로 이배(移配)하도록 하라.”


세조 1년 1455년 6월 17일(윤) 강원도 양근 유배


어제 들으니 공주가 편치 않다고 한다. 내 몹시 놀라고 걱정되어 시녀(侍女)로 하여금 문병하게 하고, 또 의원(醫員)과 약물을 보내었다. 이제 상왕(上王)께서 사람을 보내어 이르시기를, ‘영양 위(寧陽尉)의 공주가 그 병을 내게 고해 왔는데, 그의 의중이 아마도 정종을 돌아오게 하려는 것 같다.’고 하였다. 내가 명을 듣고 황공하여 드디어 의금부(義禁府)에 전지하여 정종을 놓아 보내게 하라고 하였다.”

하고, 이내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에게 전(傳)을 주어 올려 보내라고 유시(諭示)하였다

- 세조 1년 1455년 6월 18일(윤) 



경혜공주가 처음 정종이 1455년 6월 11일 (윤) 유배계획이 있다가 경혜공주가 아프다는 핑계가 아닌 정종의 유배소식과 단종이 수양대군(세조)에게 양위하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이미 임신한 상태에 있던 경혜공주가 쓰러졌던 것이 아닐까 한다. 요즘은 임신진단은 2주미만도 체크가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배가 부르고 입덧이라도 해야 알 수 가 있었다.


임신한 상태에서 작은 충격에도 유산될 확률이 높다. 1455년 6월 당시 경혜공주가 아프다고 한 건 꾀병이 아니었다.


결국 정종은 금성대군과 연루되어 1455년 6월 11일(윤) 영월로 유배계획이 되었다가 단종이 하야하면서 보류되고, 강원도 양근 이배 계획도 경혜공주가 아프다는 이유로 보류된다. 결국에는 8월 12일 수원으로 갔다가, 곧바로 1455년 8월 19일 정종 자신의 목장이 있는 통진으로 간다. 1456년 6월 26일 광주로 이배되는 것이다.


정종이 유배를 떠나지 않게 된 이유는 복중 정미수가 아버지 정종과 어머니 경혜공주를 위한 효도가 아니였을까? 정종은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에 효도를 하고, 경혜공주가 죽기전에는 어머니 경혜공주의 아픈 똥맛을 볼 정도로 효자였던 듯 하다.


그리고 정미수는 1455년 8월 20일 이후 통진 목장에서 낳았을 것이 자명하다.


정미수가 태어난 때는 정종이 광주로 이배된 때는 1456년 6월 1일 사육신의 반란사건 발각된 후, 1456년 6월 27일 사육신과 관련이 없었던 정종과 경혜공주는 통진 자기농장에서  전라도 광주로 이배된다.


정종이 죽은 때는 1461년 세조 7년 10월 20일이고, 경혜공주가 광주에서 돌아온 때는 정종이 죽은 3일 후인 1461년 세조 7년 10월 23일 이였다. 정조가 순천노비설을 배척한 이유가 명확해지는 것이다.
 



1456년 6월 27일 통진에서 광주로 이배될 때 정미수는 첫돌이 바로 지난 2살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공주의 남자에서 경혜공주와 세령공주가 만났을 때 경혜공주는 어린 정미수를 앉고 있거나 정미수가 똘망한 눈망울을 굴리고 세령과 김승유를 바라보았다면 좀더 극적이지 않았을까?



1461년 정종이 죽을 때 정종의 아들 정미수는 7살이었다.
더군다나 정종이 죽을때 경혜공주는 아직 광주에 있었다. 경혜공주가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온때는 정종이 죽고 3일 후였다. 남편의 임종도 보지 못한 경혜공주와 아들 정미수다.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과 경혜공주의 달달한 임신사실과 서로 기뻐하는 장면이 나오고 유복자로 남긴 자식을 위해서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은 왠지 뜸끔 없고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대목이다.
 



어쨌든, 정미수는 태어나기 전부터 효자였고, 어머니가 죽기 전에도 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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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크리스폴 2011.09.30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미수가 왜 1455년생이죠? 1459년생 아닌가요? 1474년에 16세라고 나오는데..그리고 경혜공주는 1473년 12월 30일에 죽었습니다..^^

  2. Favicon of http://www.smpark.kr BlogIcon 풀칠아비 2011.09.30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 사실을 같이 비교해서 보니, 드라마도 역사도 새롭게 보여지네요.
    잘 보고 갑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3. 의문 2011.09.30 2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미수 나이 문제에 힘을 너무 빼시는 듯....

    다음은 님이 좋아하시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
    성종 29권, 4년(1473 계사 / 명 성화(成化) 9년) 4월 27일(정해)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서거정(徐居正) 등이 상소하기를,
    - 중략 -
    정종(鄭悰)은 세조조(世祖朝)에 당자가 난역(亂逆)의 죄를 입었는데,
    정미수(鄭眉壽)는 그 아들입니다.
    - 중략 -
    이제 나이가 15세가 찼으니 율(律)을 상고하여 죄를 정하여서 마땅히
    정속(定屬)할 것이나, 대왕 대비 전하(大王大妃殿下)께서 천성(天性)이
    인자(仁慈)하시고
    - 중략 -
    --------------------------------------------------------------

    위 기록대로라면,
    1455년이 정미수가 태어날 가능성은 없어집니다만...


    괜스레 힘빼지 마시고,
    백과사전에 나오는대로 1456년으로 정정하세요.

    • 크리스폴 2011.09.30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1459년생이 맞겠죠..1473년에 15세니..

    • 의문 2011.09.30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크리스폴 /

      조선왕조실록대로라면 님이 맞습니다.

      아님 1458년이거나...
      (15세가 찼다)는 말을 만 나이로 해석하면 말입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 뿐만아니라,
      각종 사료들을 종합해서 나온게 1456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조선왕조실록이 정사라 해도...
      그것만 믿을 수는 없잖습니까.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11.10.01 13: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은 정말나이에 힘을 빼는 듯 하군요.. 그리고 조선왕조 실록 좋아하지 않는데요.. 댓글을 쓸때 주의 하시길.. 또한, 토론을 하고자하면 예의는 좀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이글은 핵심은 1455년 윤 6월 11~17일에 경혜공주가 임신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글입니다. 그러니 1455년생이 될수도 있고 1456년생이 될수도 있어요.. 이미 충분히 설명했다고 보는뎅.. 가설을 세울때 1455년 생이라고 해도 임신중이고 1456년생이라고 해도 임신가능성이 있어요..

      태어날 가능성이 왜 없어요.. 임신은 10개월을 기준으로 하지만, 실제는 40주 약 280일입니당. 가임기간 까지 해서 편하게 10개월로 계산을 하지만..

      그리고 임신중 가장 주의 해야할 기간이 임신초기 임은 다 아는 사실이구요..

      경혜공주가 아프다는 핑계는 자신이 알고 있던 없던 임신과 관련이 있다. 남편 유배되, 동생 왕에서 쫓겨나 경혜공주의 몸은 정상이 될수가 없지요..

      이미 서거정의 기록은 확인 한 상태입니다. 설마 그것도 모르고 글을 썼을 만큼 만만하게 글을 쓰지 않아요..

      정조도 자기 문집에 여닐곱이라고 말을 하고 있지요..

      백과사전에 나오는 대로 1456년생으로 정정하라고 하니 백과사전이 무슨 만병통치약으로 아시는군요. 물론, 백과사전에 나올정도면 충분히 검증된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실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백과사전을 전적으로 신뢰를 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걸 몰라서 글을 쓸만큼 한가한 사람도 아니고..

      저는 년도에 진착하고 있지 않거든요. 님이 진을 빼고 있는거지요. .

      님은 초기 댓글에 문종 상중이기 때문에 임신가능성은 없다고 하셨지요.. 지금은 지웠지만, 상중이기 때문에 1455년 절대 불가였다가 님이 왜 지웠는지는 예상이 되요.. 문제는 님은 그것을 근거로 경혜공주와 저를 비난하셨지요..

      저는 님의 댓글을 보고 웃고 말았아요.. 왜냐 당연히 님이 주장하는 상중이면 가능할것 같은데 불가하다고 했으니 얼만 웃었겠습니까?

      물론, 정미수가 몇년생인가 정말 알고 싶기도 하고 기회가 된다면 1455년생인지 1456년생인 검증하고 싶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글은 1455년 6월 경혜가 임신했을 것이다. 경혜는 정종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것이 아니다. 자신이 임신했는지 아닌지는 인지못했을수도 있지만, 말이지요..

      그런데 어느 근거로 상중 3년상이 만3년이 된거지요.. 사실 만 3년이 된다고 해도 경혜공주가 임신가능하지만 말입니다.

      문종은 1452년 5월 14일에 죽었으니 만 3년을 하더라도 1455년 5월이면 상이 끝나고, 경혜는 출가외인이니 복이 감했다는 것은 상식이고..

      1455년은 윤달이 있어서 (윤)6월 17일이면 2달이나 지났어요.

      님처럼 경혜가 잘못알고 만3년상을 했다고 해도 2~3개월의 여유가 있답니다.

      님은 무슨 근거로..1456년설을 그리 믿고 저에게 강요를 하지요.. 저도 확신을 못하고 있는뎅..

      님에게 처음 배워요.. 6월경에 임신상태이면 무조건 다음해에 태어나야 한다는 말은..

      님같은 분이 조선시대에 살았다면 많은 사람 죽었겠어요. 상중에 임신.출산을 하면 죽거나 바보 병신취급을 받았을텐..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저는 요즘 댓글을 달지 않습니다. 시간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래도 최소한 대화가 되는 사람이라면 시간을 내서 성의있게 댓글을 달아 주고싶었거든요.. 님은 최소한 근거를 제시해서 이사람은 그나마 대화가 될것같구나 했는데..

      하지만, 예상을 벗어났어요.. 님은 토론에 대한 기본이 되어 있지 않더란 말이지요..

      그래서 이글을 마지막으로 댓글을 답니다. 또다시 괜한 시간낭비를 했구나 정도로 배우고 말았지요

      기본부터 배우고 오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글을 읽을때 전체를 보고, 작은것에 집착하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저는 나이문제에 힘뺀적 없어든요.. 님이 나이에 진착했지...

      그리고 각종 사료들을 종합해서 나온게 1456년이다. 무슨 확신인지 모르겠어요.. 백과사전?

      어쨌든 님때문에 그동안 즐거웠습니당.. 저는 무슨 1456년이 무덤의 묘지명을 근거로 하는줄 알았어용.. 그렇다고 해도 임신설을 부인할려면 4월말에서 5월 이후생이여야 할텐뎅. 물론, 7삭둥이 한명회도 있고 김유신처럼 20개월만에 태어났다는 말도 있으니...조산도 있을수있고, 만산도 있을수 있겠지요.

      무슨 무대포인지 모르겠어요.. 나이에 진착하지 않았는데 진착했다고 하고, 조선실록에 진착하지 않았는데.. 실록만 믿냐고 하고,, 1455년 윤 6월에 임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1455년은 아니다. 1455년생이라고 하면서 비난을 하니 말입니다.

      최소한 님은 역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그래서 댓글 대화를 하려고 했지만..

      좀더 열린 사고를 하셈.. 그리고 백과사전과 기존학설을 너무 믿지 마시구요.. 본인스스로 연구하는 자세도 가져보셈..

      예를 하나 드리지요.. 솔거는 진흥왕 시절에 활동하는 사람이다. 백과사전에 나온 이야기 입니다. 솔거는 진흥왕 시절에 활동한 사람이 맞을까요?

      님은 조선왕조 실록은 믿지 못하겠다.. 다른 서책과 비교해봐야 한다고 한분입니당. 정확히는 조선왕조 실록 믿지 못하겠다가. 저변에 깔려있는 생각이지만.. 님이 좋아하는 조선왕조실록입니다.. 할때 그리고 수없이 부정하는 글로보았을때 충분히 알수 있는 대목이지요..

      자신이 보고 싶은 건만 볼때 믿고, 그렇지 않을땐 믿지 않겠다는 편협하고 좁은 사고는 금물이지요. 이번 댓글도 마찬가지 였지만, 말이지요.. 역사공부와 연구는 냉철한 머리를 가지고 하는 겁니다.

  4. ^^ 2011.10.01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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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정조는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자신의 저서에서 문헌고증으로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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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는 단종이 폐위되고, 남편인 정종이 유배를 떠나게 되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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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보고 싶은 건만 볼때 믿고, 그렇지 않을땐 믿지 않겠다는 편협하고 좁은 사고는 금물이지요. 이번 댓글도 마찬가지 였지만, 말이지요.. 역사공부와 연구는 냉철한 머리를 가지고 하는 겁니


<공주의 남자>에서 궁을 나간 세령은 빙옥관에서 신면의 손에 이끌려 궁에 다시 돌아온다.


궁에 돌아온 세령은 세조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아버지의 죄업을 자식들에게까지 전달하겠는냐는 것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의경세자(숭:장)(덕종:성종의 아버지)이 피를 토하고 쓰러지자, 세조(수양대군)은 그동안 드라마에서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세조의 뒤를 이어 예종이 되는 둘째 왕자 해양대군(황)를 궁으로 불러들인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 설정으로는 정희왕후 처가에서 길러진 것으로 그리고 있다.


어쨌든 의경세자 숭(장)은  곧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의경세자는 1438년 생으로 20살이 되는 해에 죽는다. 드라마 시제는 1456는 6월 사육신의 쿠데타 실패와 의경세자(장)이 죽은 1457년 9월 2일 사이라는 것을 뜻한다.
 


수양대군은 악담을 퍼붓는 세령에게, 신면을 들어오게 하면서, 신면은 세령과 결혼할 수 없다고 말을 한다. 세령은 신면 너의 노비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시청자를 낚시하는 장면에 지나지 않지만, 신면의 노비가 된다고 해서 세령과 결혼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첩으로 삼으면 되니 말이다. 어쨌든, 그동안 신면은 수양대군에게 끊임없이 이용만 당한 것이 된 것인가? 아니면 세령공주를 노비로 부리니 좋아라 해야 하는 것인가?


<공주의 남자>에서는 1450년부터 신면은 세령을 향한 해바라기 였고, 2번의 결혼 식 실패를 맛봐야 했다. 7년 동안 세조의 노비였으니 신면의 노비가 된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어짜피 공주의 남자는 요즘으로 치면 막장 멜로 시대극이기 때문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시제는 무의미 하다. 작가의 작의적인 시간의 꼬임이 있다. 어쩌면 공주의 남자만의 시간의 왜곡현상이 있어서 블랙홀이 형성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실존인물이고 계유정란 전에 죽었던 김승유가 살아나 젊음을 유지하고 세령과 사랑놀음을 하고 있고, 공주의 남자에서 하루는 1년처럼 빠르게 진행된다. 더군다나 미래로 과거로 지멋대로 왔다리 갔다리 황당 타임머신을 타고 다닌다.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이 끝나고 김승유가 강화도에서 1박2일 입수를 하고 나오니 1년이 지나버렸다.


강화도에서 살아나 대호로 알리게 되는 온녕군을 암살하고 신죽주를 죽이려 실패하자, 세조와 한명회는 온녕군을 죽인 배후는 단종과 정종과 금성대군이 획책한 것이라며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다. 결국에는 김승유가 단종을 몰아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것이 된다.
 


하지만, 온녕군이 죽은 때는 1454년 5월 12일 이었고, 세조(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른 때는 1455년 6월 11일(윤)이였다.
 

단종 2년, 1454년 5월 12일,  온녕군(溫寧君) 이정(李裎)이 졸(卒)하였다

 

위키백과 사전에는 1453년 졸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1453년 10월 계유정란이 끝나고 김종서의 첫째아들 김승규의 아내와 손녀 아강이 강곤의 집에 노비로 팔린 것으로 그렸고, 세령과 신면이 강곤의 집에서 아강과 형수를 빼돌려 살게하다. 김승유가 돌아오자 빙옥관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그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주의 남자를 보고 김종서는 모두 절손된 것으로 알고, 김종서의 살아남은 후손들은 족보를 샀는줄 안다. 하지만, 김종서의 살아남은 손자만 해도 4명이 있었고, 자식도 3명이나 있었다. 물론, 드라마 주인공 김승유는 계유정란 전에 죽고 없었다. 공주의 남자의 이야기 구조는 납량극에서나 나올 스토리 구성이다.
 

전일에 정난(靖難)할 때 사람을 많이 죽이지 않으려고 하여 모두 너그러운 법[寬典]에 따랐는데, 근일에 대간(臺諫) 에서 와언(訛言)이 떠들썩하게 일어남으로 하여 간당(姦黨)의 근본(根本)을 모두 제거하자고 굳이 청하므로, 대신(大臣)에게 의논하였더니, 대신의 의논도 이와 같았다

..중략..

부처(付處)한 이용(李瑢)의 아들 이우직(李友直)과 황보석(皇甫錫)의 아들 황보가마(皇甫加麿)·황보경근(皇甫京斤), 김종서(金宗瑞)의 아들 김목대(金木臺), 김승규(金承珪)의 아들 김조동(金祖同)·김수동(金壽同), ..생략..을 죽여라


단종 2년 1454년 8월 15일


1453년 10월 10일 : 김승규와 김승벽의 두아들 차동과 사동이 죽음.

1453년 10월 11일 : 김종서 죽음

1453년 11월 23일 : 김승벽, 서자 김석대 죽음

1454년 8월 15일(추석) : 서자 김목대, 첫째 김승규 아들 김수동, 김조동 죽음


계유정란으로 노비가 되어 강곤에게 팔려간 며느리, 손녀 아강은 계유정란 때문에 강곤에게 노비가 된 것이 아니다. 실제는 사육신들이 수양대군(세조) 척살 쿠데타에 실패하고, 금성대군의 역모 여파로 그전에는 공노였다가 공신들의 사노비가 된 것이다.


이때 사육신들의 아내와 첩들과 딸들이 공신들의 노비가 되었다. 알고 보면 두고두고 김종서 일가와 사육신들은 악연의 연속이다. 더군다나 1457년 6월 금성대군이 순흥에서 반란를 모의한다는 말을 듣고 치계를 당하고, 금성대군을 사사시키라는 대신들의 간언이 있었으나 세조는 이를 물리친다. 1457년 9월 2일 의경세자가 죽는다. 일련의 사건이 김종서 일가에 쓰나미로 몰려온것이다. 김종서 일가는 사육신과 금성대군. 정종과도 악연의 연속인 것이다.


 

김승규(金承珪)의 아내 내은비(內隱非)·딸 내은금(內隱今)·첩의 딸 한금(閑今)은 영의정(領議政) 정인지(鄭麟趾)에게 주고,

김승규(金承珪)의 딸 숙희(叔熙)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강곤(康袞)에게 주고

김승벽(金承壁)의 아내 효의(孝義)는 예조 참판(禮曹參判) 홍윤성(洪允成)에게 주고,

- 세조2년 1456년 9월 7일




<공주의 남자>에선 김승규의 아내와 딸 아강이 강곤의 노비가 되었지만, 실제는 영의정 정인지의 노비가 되는 것이다. 그것도 세조가 왕위에 오른 2년 후인 세조 2년, 1456년 9월 7일에 말이다.


형수와 조카를 빼돌릴 수 있는 때는 지금 드라마 시제인 1456년 9월 이후가 되어야 합리적이다. 문제는 형수와 조카와 김종서관련 여자들은 성종때 풀려나지만 말이다.  


그런데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김승유와 김종서가 정종과 경혜공주와 친하고, 금성대군과 친할뿐만 아니라, 사육신 이개와 스승관계에 세조를 척살할 계획을 세우고 정종과 금성대군과 함께 쿠데타를 꾀하고 있다.


물론,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한때의 적이라고 해도 공동의 적인 세조를 몰아내기 위해서 합종연횡은 당연하다. 적과의 동침처럼 극적인 설정이 없다. 단순히 처음부터 끝까지 한편이라는 것 보다는 말이다. 물론, 처음 사육신과 안평대군과 김종서.황보인은 한편이었다. 계유정란 시 사육신들이 배신을 때리고 살아남은 김종서 일파를 죽이는데 앞장섰지만 말이다.
 

이현로(李賢老)·이승윤(李承胤)·이개(李塏)·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 등이 교결(交結)하여 마음으로 굳게 맹세하고 ‘문하(門下)’라고 칭하고, 모두 도서(圖書)의 헌호(軒號를 지어서 서로 한때의 문사임을 자랑하였으나, 모두 농락(籠絡)당한 것이었다

..중략..


한때 (안평대군) 용(瑢)에게 아첨하는 자들이 용(瑢)에게 글을 보내는 데 한결같이 계서(啓書)와 같이 하여, ‘용비(龍飛)’·‘봉상(鳳翔)’·‘번린(攀鱗)’·‘부익(附翼)’·‘계운(啓運)’·‘개치(開治)’ 등과 같은 용어를 쓰고도 의혹하지 않았으며, 혹은 신이라 칭하는 자도 있었다. 정난(靖難) 한 뒤에 많이 얼굴을 바꾸고 꼬리를 흔들었으나, 세조는 모두 묻지 않았다

- 단종 1년, 1453년 5월 19일


집의(執義) 이개(李塏)가 본부(本府)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신 등이 지금 정부에서 아뢴 죄목(罪目)을 보니, 이용(李瑢)이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정분(鄭笨)에게 지시하여 심복을 병조(兵曹) 군기감(軍器監)에 포열(布列)하게 하였다 하였으니, 정분의 죄가 황보인·김종서에 못하지 않습니다. 허후(許詡)는 집정 대신(執政大臣)으로서 자주 용(瑢)의 집에 갔으니, 당여(黨與)인 것이 분명합니다. 조수량(趙遂良)·안완경(安完慶) 등은 용(瑢)과 더불어 비밀한 말로 약속하였고, 또 조수량은 용(瑢)의 금대(金帶)를 받았으니, 이것도 또한 용(瑢)의 당입니다. 조순생(趙順生)·이석정(李石貞)·지정(池淨) 등은 모두 무관(武官)으로서 용(瑢)의 집에 왕래하여 당원(黨援)을 하였으니, 청컨대 모두 율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그 나머지 지당(支黨) 이보인(李保仁) 등은 밤낮으로 용의 집에 모였으니 어찌 역모를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또한 법에 의하여 논단하소서.”

- 단종 1년, 1453년 10월 28일



더군다나 이개를 비롯한 많은 사육신들이 안평대군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가 안평대군과 황보인, 김종서가 수양대군 일파에 척살되자. 배신을 때리고 김종서, 황보인, 안평대군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들을 단종을 압박해서 죽이라고 한사람들이 사육신들의 다수였고, 정난공신이 되었다.

더군다나 사육신들은 단종을 몰아내고 세조를 왕에 옹립하고 좌익공신이 된다.

한명회, 신숙주와 함께 단종폐위와 수양대군(세조) 옹립으로 좌익공신이 된 사육신 성삼문

임금이 좌익 공신(佐翼功臣)을 정하는데,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익현군(翼峴君) 이관(李璭)·한확(韓確)·윤사로(尹師路)·권남(權擥)·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를 1등으로 삼아 수충 위사 동덕 좌익 공신(輸忠衛社同德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정인지(鄭麟趾)·이사철(李思哲)·윤암(尹巖)·이계린(李季疄)·이계전(李季甸)·강맹경(姜孟卿)·윤형(尹炯)·최항(崔恒)·전균(田畇)·홍달손(洪達孫)·양정(楊汀)·권반(權攀)을 2등으로 삼아 수충 경절 좌익 공신(輸忠勁節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권공(權恭)·이징석(李澄石)·정창손(鄭昌孫)·황수신(黃守身)·박강(朴薑)·권자신(權自愼)·박원형(朴元亨)·구치관(具致寬)·윤사윤(尹士昀)·성삼문(成三問)·조석문(曹錫文)·이예장(李禮長)·원효연(元孝然)·한종손(韓終孫)·이휘(李徽)·황효원(黃孝源)·윤자운(尹子雲)·이극배(李克培)·이극감(李克堪)·권개(權愷)·최유(崔濡)·조효문(曹孝門)·한계미(韓繼美)·정수충(鄭守忠)·조득림(趙得琳)을 3등으로 삼아 추충 좌익 공신(推忠佐翼功臣)이라 이름하였다.

세조 1년 1455년 9월 5일 (음)



 



많은 사람들이 신숙주가 세종의 유명을 버리고,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는데 앞장섰다고 말하고 신숙주를 배신의 아이콘으로 쉬이 쉰다는 숙주나물을 만들어 버렸다.
신숙주는 한번의 배신을 했지만, 사육신은 3번의 배신을 하였다.

첫번째 안평대군과 김종서를 배신하고, 두번째 단종을 배신하고 세조를 옹립했으며, 세번째 세조를 배신하고 단종을 복위시켰다. 신죽주랑 비교해서 누가 더 많은 배신을 했을까? 신숙주가 하루만 지나면 쉰다는 숙주나물이라면 사육신은 3번 배신하고 돌고돌아 충신이 된건가?

가끔가다가 댓글로 충신인 사육신이 그럴리가 없다는 댓글이 달리고, 사육신의 후손인데 선조를 모욕하지 말라도 한다. 본인들이 정확히 사육신의 후손인지는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이글을 권한다.

그리고 세조가 쓴 문종, 단종, 세조실록을 어떻게 믿느냐고 합리화 시킨다.
물론, 세조의 입장을 강하게 어필할 수는 있다. 문종실록과 단종실록 편찬에 사육신도 깊이 관여를 했었다. 문제는 당대 그들 스스로 언행에 당당하였다는 것이다. 유일종교관을 가지고 있던 박팽년이 내불당 관련해서 세종을 모욕하자 문종이 박팽년을 하옥시킨다. 하지만, 박팽년을 구원한 자는 배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신숙주였다. 선왕이 욕보인다고 해도 '언로는 열어야 합니다.'라면서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사육신이 처음 단종을 배신하고 수양대군을 옹립했다고 다시 단종을 옹립하려 시도한 것은 사육신들의 편향된(?) 정치관 때문이였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미화할 필요도 별로 없었다. 더군다나 조선의 사관들은 왕이 화장실(매화틀)에 가는데 까지 붓을 들고 따라다닐 만큼 철저했다. 또한 사관이 아니며 실록을 볼수도 없었다. 문종의 경우 "사관이 너무 가까이서 왕의 말을 적는다고 밖에 나가서 기록을 하면 안되겠니"라며 푸념하는 장면까지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세종은 환관과 비밀 이야기를 하는데 사관을 내보냈다고 실록은 기록까지 한다. 자신들의 조상을 미화하기 위해서 역사까지 왜곡할 필요는 없다.
 

결의를 숭상하여 근본을 배양하면 될 것이다. 성삼문·박팽년 등의 일은 대신에게 물어야 하겠으나, 정몽주·길재 등의 일은 대신에게 묻지 않더라도 그 후손을 녹용(錄用)해야 하리라.”

하매, 이청(李淸)이 아뢰기를,

“아뢴바 절의를 배양하는 일은 지당합니다. 숭장해야 할 자는 성삼문·박팽년뿐 아니라 이개(李塏) 등도 숭장해야 합니다. 그때에는 불의(不義)인 듯하였으나, 대의(大義)가 정해진 뒤에는 사람들이 도리어 의(義)로 여기니 이제 난신(亂臣)이라는 이름을 가할 수 없습니다.”

하고, 기준(奇遵)이 아뢰기를,

성삼문·박팽년 등이 세조에게는 역적이 되고 노산에게는 충신이 되는데, 그때에는 부득이 죄를 가하였으나 이제는 무슨 혐의가 있겠습니까? 예전에 정공(丁公) 이 한 고조(漢高祖)에게로 돌아가매 한 고조가 참(斬)하였는데, 이 일이 성삼문의 일과 서로 비슷합니다. 단병(短兵) 으로 교전할 때에는 정공이 한 고조에게 덕이 되었으나 항우(項羽)에게는 실절(失節)이 되었으니, 한 고조가 개국(開國)한 뒤에는 참하여 절의를 격려한 것은 마땅합니다. 성삼문·박팽년을 이제껏 난신으로 지목하니 어찌 이처럼 답답한 일이 있겠습니까? 그 사람의 자손은 이제 없거니와, 그 외자손(外子孫)이 혹 있더라도 저애(阻礙)됨이 없지 않을 터이니 이것이 어찌 옳겠습니까! 다 허통(許通) 해야 합니다. 신이 매양 아뢰고자 하였으나 못한 것이거니와, 만약에 아뢴 대로 도타이 숭장하면 곧 국맥(國脈)을 연장하는 방도가 될 것입니다.”

하고, 민수원이 아뢰기를,

“좌우가 아뢴 대로 권장하여 사기를 격려해야 합니다.”

하고, 이청이 아뢰기를,

“세조께서 하늘에 응하고 백성을 따랐는데, 성삼문 등이 오히려 노산을 복위시키려고 꾀하였으니 세조에게는 역적이 됩니다. 그러나 이제껏 난신으로 지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 정몽주의 일은 더욱 가상하고 아름습니다.”

하고, 기준이 아뢰기를,

“위란(危亂)할 즈음에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여 이와 같은 몇몇 사람이 있는 것은 워낙 드문 일이니 추장(推奬)해야 합니다. 무왕(武王)은 지극히 거룩한데도 백이(伯夷)·숙제(叔齊)가 오히려 말을 당기면서 간(諫)한 까닭은 군신(君臣)의 분수를 어지럽혀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하고서야 나라가 쇠약해지더라도 전복하는 화(禍)가 없고, 어진 사람이 많이 나서 사직(社稷)이 힘입을 바가 있을 것입니다. 세조조에서도 어찌 성삼문 등의 절의를 몰랐겠습니까마는 문죄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감히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조정에 의논하면 될 것입니다 - 중종 12년, 1517년 8월 5일



사육신이 충신의 반열로 돌아간 때는 중종반정이 성공한 이후에 죄는 있지만, 상육신의 결의는 본받아야 된다고 하면서 시작된다. 선비의 결의는 본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건 조선의 예 뿐만 아니라 어떤 나라도 하는 짓이다.


조선의 선비에게는 ‘불사이군’뿐만 아니라 연산군에 반해서 중종반정을 하는 세력처럼 임금이 임금답지 않았을 때 임금을 없애고 새로운 군주나 역성혁명도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얼마나 조선의 왕들이 신하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겠나? 언제 자신들의 목을 쳐 없앨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 조선의 왕들 스스로 자신들이 잘못하거나 신하들의 눈에 벗어나면 왕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유학자였다. 단지 왕은 유학자의 대표자 정도로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중종반정세력의 명분을 찾는데 사육신에서 찾는 것이다. 세조의 반정이나, 사육신을 죽어도 마땅한 세력으로 남기면 중종반정을 성공한 세력자체도 역모를 꾀한 세력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합리화하는데 사육신만한 세력이 없었다.

사육신이 충신이면 김종서는 역신이 된다. 더군나다 김종서를  척살한 세조는 쿠데타를 진압한 세력이 된다. 사육신과 함께 단종을 몰아낸 세조는 조선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일을 한것이다. 이런 딜레머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이해당사자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수 밖에 없는가를 보는 것이다. 역사를 단순하게 보지 않는것이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를 보면서 역사인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드라마를 보고서 역사를 알았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누구누구는 어떻네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와 역사를 혼돈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드라마는 역사를 알고 보면 재미가 있다. 글쓴이의 대부분의 글은 드라마 리뷰같지만, 실제는 드라마가 망친 역사바로 찾기 리뷰이다. 오죽하면 카테고리가 [역사이야기]이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김승유와 신면이 불쌍하다.  신면이 왜 불쌍하냐는 사림이 있다. 친구를 배신하고, 친구의 연인을 빼앗고, 단종을 배신했는데라면서 말이다. 대표적인 드라마를 역사로 아는 사람들의 전형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기회에..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스승 이개 알고보면 계유정란공신, 사육신 단종폐위 좌익공신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반란 실패한 사택비 죽고, 교기 왜로 쫓겨난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적과동침, 단종 죽인건 사육신 충신인가? 배신 아이콘인가?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광개토태왕, 계백, 사극 문헌고증 철저히 파괴해야 시청률 오른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계백 백제 패망후 왜 천황 될지도?
2011/09/06 - [역사이야기] - 계백, 동명제 초혼관 의자, 교기와 흥수는 왜 왜색풍 옷을 입었나? 사실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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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ㄹㄷhttp:// BlogIcon ㄷㅇㄷ 2011.09.23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육신이 충신이면 김종서는 왜 역신이 되는것인가요? 사육신을 충신으로 봐도 김종서도 그 나름으로 충신으로 볼수 있는거 아니에요?

    • 의문 2011.09.23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양립이 가능할 것 같은데, 무작정 양립이 안되는 것처럼
      글을 쓰시니 다소 불편함이 있긴 하네요.

      게다가 기록에 대한 신뢰가 조금 지나치기도 합니다.

      이정도의 신뢰라면,

      [세조는 엄청나게 종친들을 챙겼다. 종친을 죽이고,
      귀양보내고 그런 건 전부 다 신하들 상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거다. 진정으로 불쌍한 것은 세조다.]

      라는 결론을 내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기록도 전후사정을 보아가며 해석을 해야할 텐데...
      흠...

  2. 하하 2011.09.24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월 21,22 국내최고 라이브가수 박완규 ..... 그리고 부활 패밀리 총출동!

    그동안 방송을 통해 볼수없었던 그와 그들의 최고의 무대, 2011년 10월 "사랑" 이라는 테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고의 무대로 부활하는 이번 콘서트에서는 박완규 외에 부활 패밀리의 총출동으로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 그룹 부활의 보컬 정동하 그리고 역대보컬 이성욱, 정단 위대한 탄생의 최고의 히트메이커 등이 함께
    참여해 박완규와 함께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그동안 방송이나 공연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환상적인 무대 출연진들과 함께 꾸미는 최고의 하모니!

  3. 루비 2011.09.25 0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 또 흑백논리 써놓으셨네. 대체 김승유가 실존인물이고 계유정난전에 죽었다는건 어디서 또 들으셨데?; 님보면 참..머랄까 사극에 한맺힌 사람 같아요.ㅡㅡ 자료라고 내세우는것들도 유리한 부분 추리시고 님이 말하는 진실은 야사에서 이야기들 적절히 섞어 배합. 님아 접때도 리플 한번 달았었는데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에요. 재밌게 보면 그만이지 무슨 작가가 시간을 왜곡하니같은 말을 매번 하시나요? 공남 퓨전사극이에요. 퓨전 몰라요? 퓨전? 그냥 보고나서 역사공부했다 그런말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큰 줄기만 기억하지 뭐 드라마 달달외워서 다닙니까? 언제 몇월몇일 누가 죽었는지 날짜 기억하고 다니겠습니까? 님 생각에 아닌거 같으면 뭐 어차피 님 블로그니까 아닌거 같다고 쓰는건 좋은데 왜 늘 남을 비판하고 님말만 진리라고 우기십니까? 저번엔 어떤분을 역적집안 만드시더니.. 님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데요, 진짜 성격 특이하십니다. 오프라인에서도 그러시는지? 주변인들 정말 피곤할거 같아요. 무서워서 무슨 말 하겠어요? 말꼬리 잡고 늘어질텐데.. 이 드라마 온통 불만이면서 드라마 꼬박꼬박 챙겨 보시는게 더 웃김. 님 공남작가한테 원수졌어요?ㅎ

    • 1234 2011.09.29 0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퓨젼을 진짜로 착각해서 정신병자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잉여 쓰레기가 있어서 쓰시는 것 같은데

  4. 2011.12.19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Favicon of http://huntingpastore.com BlogIcon 고명진 2012.01.02 2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일을 나의 친구를 계속, 이거 정말 끝내 준다

  6. Favicon of http://greenstarenergysaver.com BlogIcon 인형 2012.01.04 0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

  7. Favicon of http://meetthetanners.com BlogIcon 아가 2012.01.04 2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박 겉 핥기

  8. Favicon of http://no-credit-check-cell-phones.com BlogIcon 박기동 2012.01.07 0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9. Favicon of http://john.is-a-liberal.com BlogIcon 애비 게일 2012.04.06 0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속이고 있군요.

  10. 썰영 2012.04.23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다행입니다. 역사를 오도하고 편협화한 극이 재미와 인기에 힘입어 역사를 그르칠까 열려했는데 올바른 사고와 역사적인 사서를 인용해 정확한 연도와 날짜를 표시해 사실에 입각한 해석과 분석적인 설명 을 하시고 역사적인 환경에서 일어난 사건을 객관적 입장에서 정리한것은 매우 중요하고 대단한 일입니다.
    글 전체에서 바른 역사인식을 알게됩니다. 모르고 따르는 일반 대중의 생각을 바르게 하는 모범답안 같습니다. 작가는 인기와 흥미에 영합 할수 있지만 역사를 오도하여 선인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잘못을 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흑백 논리나 개인적인 섣부른 판단으로 왜곡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역사를 오도하고 가치관을 혼란하게 하여 후손들의 판단을 흐리게하면 역사와 민족에게 죄인이 될테니까요.
    개인의 영달을 위해 뜻을 수시로 바꾸는 사람보다 오히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힘써 일한 충신 애국자 대인을 변절자 역적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는 연속극은 창작이라도 배격해야 할것입니다.
    역사의 인물을 인용할때는 사실에 입각해 좋은 점을 나타내던지 그의 숭고한 사상과 철학을 계승해야하는것이지 편협한 생각으로 위인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버린다면 후손들의 귀감이 무엇이며 무엇을 배운답니까? 글만 쓰고 재미만 있고 인기가 높다고 바른길이 아닌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는것은 좋은작가라고 할수 없지요. 바른 판단을 하도록 도와준 윗 글에 찬사와 존경을 보냄니다.

  11. Favicon of http://ginger.gotdns.org BlogIcon 마리아 2012.05.08 2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유대인 음식만 먹습니다.

  12.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륭한 읽기 위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싶은 찾기 위해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확실히 그것의 모든 조금을 즐기는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새로운 물건을 체크 아웃하는 당신이

  13. Favicon of http://www.hometravel-luggagebag.com/ABS-luggage.html BlogIcon ABS luggage 2012.08.21 1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llkjihygjhfg

  14. Favicon of http://www.blondinensex.ch/ BlogIcon Blondinensex Videos 2012.12.30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의 영달을 위해 뜻을 수시로 바꾸는 사람보다 오히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힘써 일한 충신 애국자 대인을 변절자 역적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는 연속극은 창작이라도 배격해야 할것입니다.

  15. Favicon of http://ford.grupocaiuas.com.br/fiesta-sedan BlogIcon fiesta sedan 2013.01.25 0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Google에서 블로그 사이트를 발견하고 조기 게시물 몇 가지를 확인하십시오. 아주 좋은 작동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합니다. 난 그냥 내 MSN 뉴스 리더에 RSS 피드를 추가. 나중에 당신에게서 더 읽어 앞으로 추구! ...


<공주의 남자>에서 이개는 김승유에게 작은 복수보다 더 큰 대의를 모의하자는 말을 한다.


수양을 죽이고 반정하여 상왕 단종을 복위시키자는 것이다.


사실 김승유의 복수의 끝은 수양을 죽이는 것이고 김종서의 뜻도 단종을 지키는 일이니 김승유가 하는 일이 대의에 부합한다.


하지만, 이개는 김승유가 하는 일은 복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니 김승유가 이개의 눈에는 민폐였던 모양이다.


어쨌든, 김종서가 죽고, 남은 김종서 당의 일원이라고 하는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이라고 상소해 사육신들이 계유정난공신이 되었는데 <공주의 남자>에서는 김종서 일파가 되어서 김승유를 감싸고 결국에는 김승유와 함께 단종복위를 시도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김승유는 한성부에서 사육신과 정종을 살리려고 파옥까지 감행한다. 저승에서 김종서가 김승유를 봤다면 혓끝을 찼을 것이다.


사육신이 반정 복위에 실패하고 세조와 죽기전에 설전을 벌리고 고신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서도 생육신으로 추앙받는 남효온의 추강집을 채록해서, 세조 선위 과정에 성삼문과 박팽년, 성승의 일이 나오고 있다.


성삼문과 박팽년은 선위를 인정하였지만, 그날 박팽년은 경회루 연못에 빠져죽으려 했고, 성삼문이 말렸려서 그만 두고 다음 기회를 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서 수 많은 소설에도 등장을 하고 세조와 사육신관련 드라마에서 수없이 인용되는 장면이다. 아마도 처음 이 이야기를 만든 이들은 저작권을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사실일까? 그럴듯 하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단지 성삼문과 박팽년을 신격화하고 반정은 세조가 왕위에 오른 때 부터 계획했다는 정당성을 주기위한 만들어진 소설에 불과하다. 진실이라고는 한푼도 없다.
 

○ 세조가 선위를 받을 때에, 자기는 덕이 없다고 사양하니, 좌우에 따르는 신하들은 모두 실색하여 감히 한 마디도 내지 못하였다. 성삼문이 그때에 예방 승지(禮房承旨)로서 옥새를 안고 목놓아 통곡하니, 세조가 바야흐로 부복하여 겸양하는 태도를 취하다가 머리를 들어 빤히 쳐다보았다.


이 날 박팽년(朴彭年)이 경회루 못에 임하여 빠져 죽으려 하매, 성삼문이 기어이 말리며 말하기를, “지금 왕위는 비록 옮겨졌으나, 임금께서 아직 상왕으로 계시니, 우리들이 살아 있으니 아직은 일을 도모할 수 있다. 다시 도모하다가 이루지 못하면 그때 죽어도 늦지 않다.” 하매, 박팽년이 그 말을 따랐다. 《추강집(秋江集)》



생육신의 하나로 추앙하고 있는 남효온은 <육신전>과 <추강집>을 지었는데 육신전은 조선 선조 시기까지 전해졌으나 어찌 되었는지는 알수 없다. 생육신, 사육신은 남효온의 육신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사육신의 단종복위에 실제로 육신이외 수많은 인물들이 관여를 하였지만, 육신만이 추앙을 추앙을 받고 있고, 추후 사육신에 당시 참여한 인물은 추가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있었고, 현재도 육신의 후손을 자처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선조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사육신 관련해서 세조가 단종으로 선위를 받을 때 성삼문과 박팽년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성삼문은 예방 승지로 옥새를 안조 목놓아 통곡하니 세조가 빤히 쳐다보았다.는 점과 사육신들은 세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추후 세조를 몰아낼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대군일때도 몰아내지 못했는데 왕이 되면 기회조차 없었을 텐데 왜이런 이야기가 전해지는지는 너무나 명확하다.


사육신은 세조의 신하가 아니라 단종의 신하이고, 그래서 사육신이 단종복위를 하는건 정당한 권리행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종이 선위를 할 때 신하들이 들고 일어냐 선위를 못하도록 했다면 세조(수양대군)은 강제적인 힘으로 선위를 받아야 했다. 사육신의 다음에 두고보자에 왠지 신뢰가 되지 않는 점이다.


그런데 박팽년과 성삼문의 대화를 보면 이들 대화는 후에 만들어진 이야기임을 쉽게 알수 있다. 왜냐하면 성삼문이 옥새를 가지고 선위하도록 한 주체이다. 그러니 반정을 할때 성삼문에게 정당성을 부여할 필요성이 대두될수 밖에 없다. 옥새를 넘겼지만, 그때 부터 뒤에서 칼을 갈았다고 말이다.

단종의 명이기 때문에 말 잘듣는 신하가 되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면 그전에 성삼문이 단종에게 수없이 간언한 내용은 참으로 우스워지고 만다.


성삼문이 대성통곡으로 옥새를 넘겨주며 반대를 하였지만, 박팽년이 경회루에 빠지려 하자 성삼문이 박팽년에게 다음에도 기회는 있다. 상왕이 살아 있는 동안 후일을 도모할 수가 있다.라고 말을 하니 박팽년이 순한 양이 되어 경회루에 투신 자살 입수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문제점은 1455년 6월 11일(윤)에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과 사육신이 한자리에 옹기종기 모여서 단종복위를 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정종은 1456년 6월이면 풍진 자신의 목장에서 한가롭게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 정종이 사육신과 만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공주의 남자>의 이야기는 역사화 되어서 사람들에게 회자될 것이다. 어쩌면 추후 정종도 사육신에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렇다면 왜 박팽년과 성삼문은 1455년 6월 11(윤)날에 만날 수가 없었을까?


성삼문은 옥새를 넘기는 경회루 현장에 스스로 옥새를 세조에게 넘기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지만, 박팽년은 정종처럼 지방에 있었기 때문에 이 둘이 만날수는 없다.


단종 3년 1455년 4월 4일 충청도 관찰사로부터 한 장의 장계가 올라와 충주 목사와 홍주목사가 일을 잘하니 승전함이 마땅하다는 글이다. 이에 대해서 한명은 승천시키고, 한명은 노모 때문에 그대로 충주목사에 있게 한다.
 

“충주 목사(忠州牧使) 김담(金淡)과 홍주 목사(洪州牧使) 조석문(曹錫文)이 치효(治効)가 모두 제일입니다.”

하였으므로, 이때에 이르러 승천(陞遷)시킨 것이었다. 김담은 노모(老母)가 경상도 영천(榮川)에 있기 때문에 그대로 충주 목사에 임명하였다.



이때 장계를 올린이는 다름 아닌 경복궁 경회루 현장에 있다는 박팽년이 충청도 관찰사가 되어서 올린 것이다. 4월 4일이니 6월 11일(윤)에는 올라왔을 수도 있지 않는 것 아닌가? 반문하는 것은 정상적이다.


하지만, 세조 1년 1455년 7월 8일 충청도 관찰사 박팽년 이름으로 올라온 일을 처리한다.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 박팽년(朴彭年)이 아뢰기를,

“이제 농사의 일이 바야흐로 많은 시기인데, 수십 일 동안 비가 오지 않으니, 청컨대 향(香)과 축(祝)을 내려서 명산(名山)·대천(大川)에 기도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세조 1년 1455년 7월 8일


한마디로 단종 3년 1455년 4월 4일 이전부터 1455년 7월 8일 까지 박팽년은 충청도 관찰사로 임무에 충실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다. 만약, 박팽년이 6월 11일(윤)에만 특별히 서울 경회루에 나타났다고 생각한다면 박팽년은 근무지 이탈이 된다.


또 한가지 박팽년 관련해서 박팽년인 세조(수양대군)에게 신(臣)이라 칭하지 않고 비슷한 글자인 거(巨)했다는 박팽년의 문서위조사건이 박팽년은 수양대군을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상왕만을 임금으로 인정했다는 이야기다.
 

예문 제학(藝文提學) 박팽년(朴彭年)이 아뢰기를,
이전(李瑔)504) 의 처는 신의 딸입니다. 신이 충청도 감사(忠淸道監司)가 되었을 때 배소(配所)505) 로 떠났고, 그 뒤에 처가 의 배소(配所)로 돌아가면서 그 어린아이를 신의 집에 부탁한 것이라서 신은 미처 몰랐습니다. 신은 생각하기를, 여자가 시집을 가게 되면 그 지아비의 집이 으뜸이 되는 법인데, 하물며 그 죄인의 아들을 집에서 기르고 있어 마음이 실로 황공합니다. 청컨대 그 어미에게 돌려주도록 하소서.”
하니, 지하기를,
전(瑔)이 지금은 비록 죄를 입고 있으나, 그 뒤에는 반드시 통할 것이니, 그대로 두고 잘 기르도록 하라.”
하였다.



만약, 1455년 6월 11일(윤)이후 박팽년의 장계에 신(臣)을 사용하지 않고, 거(巨)로 사용했는데 세조가 신(臣)자로 받았다면 중간에 문서를 위조했다는 혐의로 처벌되어야 하지만, 이에 대해서 처벌기록은 없다. 신과 거도 구별못해서 쪽팔려 처벌하지 않았다면 세조가 참으로 배포가 크다는 의미가 되어 흉악하지도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반란이 실패한 후 죽음을 앞두고 세조(수양대군)에게 <나리>라고 놀렸을 가능성은 있다.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그럴듯한 이야기 이기 때문이다.


충청도 관찰사를 한 것은 상왕의 신하로 봉직한 것이지 세조의 신하로 봉직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단종 복위는 정당하다는 논리이다. 세조(수양대군) 왕으로 있더라도 세조가 명한 것을 상왕이 명한 것으로 인정하고 계속 상왕의 신하로 남아 있으면 된다. 박팽년의 말처럼 떠도는 말의 논리적 모순이다.


사육신 신화를 만들 필요성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좀 더 사육신을 극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신화적인 이야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개연성이나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야부리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야기를 만든 이들은 소설 창작 능력이 없었던 듯하다. 하지만, 믿을 수 있는 거짓말이란 진실은 조금에 뻥은 크게 해야 믿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거짓말 같은 유언비어가 사림(士林)파에 진실이 되어 끝없이 확대 재생산되어서 사육신은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었다.


사림에서 세조(수양대군)이 싫었던 이유는 세조는 유학만을 숭상하지 않았다. 잡기라고 생각되는 불교, 천문, 국방, 지리 기타 등등 잡학이라고 천시하던 학문까지도 세조(수양대군)는 심취해 있었다. 한마디로 실사구시적인 면이 많았다는 뜻이다. 이는 세종을 계승한 것이다.


그러니 유일종교관처럼 유학의 근본이 아닌 일개 한방파가 전부인 것인 냥 믿고 있고, 국가를 통치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고 있었던 사림들은 세조는 이단이었다. 한마디로 세조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믿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정치와 종교가 일치해야하고 유교가 국가통치의 유일한 것이라고 믿은 종교인들인 유학자들에게는 사육신은 순교자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중종반정이후 조선은 편협한 유교 통치관을 가지고 있던 세력들이 조선을 움직이는 중추가 되었다. 조선 초기에 천민이나 노비출신들이 관직에 등용되는 예가 있었고, 서얼출신이나 천출 출신이 등용되는 예도 많았다. 더불어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언문)도 널리 보급되어 활발히 사용되었다.


하지만, 중종반정이후 불교와 서얼출신이나 한글(훈민정음)사용은 극히 배타시 하였고 점차 한글은 천민이나 쌍놈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치부되어 음지로 숨어들었다. 서얼 등이 등용된 때는 임진왜란 시기 백성들의 힘이 필요했던 이후에나 가능해지기 시작하다. 인조반정후 또다시 암흑기로 접어들었지만 말이다.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고 드라마의 설정이 역사라고 믿는 사람들은 드라마와 역사와 어떻게 다른지 제대로 역사적 진실을 싶다면 다음 아래글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2011/10/04 - [역사이야기] - 계백, 김춘추 결혼동맹 의자왕에게 아내 팔아넘긴다? 사실은
 
2011/09/30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 경혜공주 똥도 먹은 효자였다. 정종 죽을때 7살
2011/09/30 - [TV&ETC] - 공주의 남자, 정종 죽고 경혜공주 공노비 된건 김승유 신묘한 계책?
2011/09/30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정종과 경혜공주 복중 아기 정미수 유복자될까? 사실은 이산 정조가 알고 있다
2011/09/29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될까? 사실은 정조만 알고 있었다.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 된다? 사실은 진실과 허구 왜 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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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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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heysukim114.tistory.com BlogIcon *저녁노을* 2011.10.03 09: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과 이과로 나누면서...사회 역사를 배우지 않는 아이들에겐 꼭 필요한 지기님의 글이네요.
    잘못된 이야기로....영향을 미칠까봐 걱정되는 부분이거든요.

    자 ㄹ보고가요

  2. Favicon of http://greenstarenergysaver.com BlogIcon 인형 2012.01.01 0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

  3. Favicon of http://sudowudo.com BlogIcon 아가 2012.01.07 0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4. Favicon of http://allan.eurotravelling.net BlogIcon 알렉시스 2012.04.03 1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지내십니까?

  5. Favicon of http://oh-no.is-into-anime.com BlogIcon 클로이 2012.04.05 2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에 영어를 하시는 분 계십니까?

  6. Favicon of http://bart-simpson.podzone.net BlogIcon 루시 2012.05.08 2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지내십니까?

  7. Favicon of http://windy.is-a-green.com BlogIcon 카일 라 2012.05.11 0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죄송합니다.

  8.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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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Favicon of http://www.analsex24.ch/ BlogIcon Analsex Videos 2012.12.30 1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못된 이야기로....영향을 미칠까봐 걱정되는 부분이거든요.

 

<공주의 남자>에서 세령공주가 신면의 노비가 되자, 정종과 반란을 모의하던 김승유는 광주로 떠나는 시점에 세령이 신면의 노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면의 집을 급습해서 세령을 구한다.


<공주의 남자>를 보고 있노라면 김승유 캐릭터가 참으로 이상하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김승유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사건 사고가 터진다. 그 중심에는 김승유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다.


아버지 김종서가 정승에서 쫓겨난 일도, 김승유와 공주가 사사로이 놀아났다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계유정란도 김승유가 세령과 사랑하는 사이이고, 수양대군이 언제 김종서를 칠지 모르는 시급한 상황에서 김승유는 세령의 연서를 받고 집안일은 돌보지 않고 있다가 아버지 김종서와 형 김승규가 죽는다.


김승유는 계유정란 시 무대포로 정종의 집에 처들어갔다가 신면의 도움으로 간신이 목숨이 부지된다. 하지만, 김승유는 목숨을 보전하고 후일을 도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명천지에 피 뭍은 옷과 피가 낭자한 상태에서 거리를 활보하다. 계유정란으로 죽은 자들의 효수대에서 나 잡아가란 듯이  표를 낸다.


김승유는 다시 북촌의 김종서의 집으로 찾아가 수양대군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잡힌다.


신면과 세령공주의 결혼식장에 난입하여 세령공주를 납치한 후 흔적을 남기고 빙옥관으로 들어온다. 빙옥관은 그 후로부터 끊임없이 시달림을 당한다. 세령공주를 납치했다면 빙옥관이 아닌 처음부터 안가에 납치를 했어야 한다.
 


김승유는 세령을 미끼로 수양대군을 퇴로가 차단된 장소로 불러들이지만, 충분히 준비를 하고 왔을 수양대군의 머리를 향해 화를 쏘기보다는 심장이 있는 좌측 가슴부위도 아니고 복부를 향해서 화살을 날린다.


이 장면은 김승유와 수양대군둘이 덤앤더머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배에 화살을 쏘는 김승유나 가슴에 쏠거라는 확신에 찬 수양대군이나 도대체 이들은 시청자를 모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하게 된다.


강화도에서 배가 침몰할 때도 조석주의 도움으로 탈출을 하고, 무인도에 들어가지만, 몸이 부실하고 쇠사슬에 묶인 상태에서 같이 잡힌 동료를 위기에 몬다.


하는 짓마다. 민폐만 끼치고 있다. 만약, 김승유가 주인공이 아닌 조연이었다면 김승유 캐릭터는 죽어도 벌써 죽어야 한다. 이는 박시후의 문제가 아닌 작가의 문제다.


정종이 죽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다름 아닌 김승유다. 만약, 김승유가 정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조선의 선비이자, 문무를 겸한 김종서의 아들이며 <대호>라면, 너무나 뻔히 함정을 파고 기다릴 신면과 세조(수양대군)을 찾아가 세령을 구출하기 보다는 광주로 내려가 반정을 기획했을 것이다.


조선은 여자들에게는 특별한 룰을 가지고 있었다. 역모를 하더라도 여자는 살려주고 노비로 삼는 것으로 끝난다. 뻔히 세령이 노비가 되어서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지만, 생명에는 지장없이 안전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세령을 노비로 만든 건 김승유를 꼬시기 위한 미끼일 뿐이다.  김승유는 세조의 미끼를 덥석물어 버린다. 김승유가 공주의 남자에서는 언제나 머리는 집에두고온 붕어과이거나 닭대가리다.


김승유가 신면의 집에 찾아간 건 화약고 속에 폭탄을 퍼붓는 것과 진배가 없다. 좋게 말해서 김승유가 정종이 있는 광주로 찾아가지 않고 신면의 집을 급습 아닌 급습을 한 이유는 신면이 세령의 몸을 더럽힐 것이란 단순무식 생각뿐이다. 이전 김승유가 신면과 세령의 결혼을 방해한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김승유는 세령공주와 함께 정종을 찾아가지만, 그곳에서 한일은 신면으로 하여금 군대를 끌어들이고, 세령은 신면의 부하에게 잡히고, 김승유는 세령을 위협한다는 이유만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신면에게 화살한방을 먹이는 것뿐이다.


김승유의 철없는 행동으로 인해서 신면은 반란을 꾸미는 정종을 잡아들이고, 결국에는 정종이 극형에 처한다는 것뿐이다.


언제 역사와 일치된 사건을 맞추었다고 사육신들이 옥에 갇히자, 파옥하러 들어갔다가 사육신과 정종의 말을 듣고 그냥 물러난다. 그냥 사육신이 파옥을 하고 세조를 몰아내고 반정에 성공해서 단종을 복위시켰다고 해서 누구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어쩌면 통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천지이지 않을까 한다. 이미 충분히 공주의 남자는 역사와 무관한 시대배경무시 역사 망치는 재미를 들인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작가가 역사에 충실했다고 뜸금 없이 힘들여 들어간 옥사에 그냥 나오는 황당액션을 만들어 내는지 알 수가 없다.


사육신들의 반정에 정종은 있지도 않았다. 정종은 통진 유배지에서 아들 정미수를 어르고 달래며 똥 기저귀를 갈고 있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를 보고서 경혜공주가 공노비로 어떻게 살아갈까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경혜공주는 공노비가 된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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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관도 김승유같은 민폐 고문관은 없을 듯하다. 아버지 김종서와 형인 김승규 죽여, 친구인 정종까지 죽음으로 몰아 버렸다. 빙옥관의 피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다닌 곳 마다 사건사고에 원인은 항상 김승유의 철없는 행동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으니 말이다.


공주의 남자 극중에 나오는 민폐남 왕노걸은 드라마 재미를 위한 양념으로 귀엽기라고 한데 고장 난 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김승유의 민폐는 감당이 안 된다. 물론, 요즘 드라마의 대세는 철없는 재벌집 아들 길들이니, 시계를 돌려 조선시대 권력가 민폐 아들과 민폐 세령공주와의 철없는 사랑놀음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공주의 남자의 시대배경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주의 남자 시제는 정종이 어떻게 죽었나를 그리고 있다. 정종이 어떻게 죽었나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김승유의 뻘짓에 정종이 죽었다고 요약할 수가 있다.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이 서울로 압송되자 경혜공주는 곧바로 서울로 올라와 빙옥관에서 후일을 도모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정종은 세조 7년 1461년 7월 중들과 반란모의를 하였다가 서울로 압송되고 고문을 당한다. 그리고 3달후인 세조 7년 1461년 10월 20일 죽는다. 경혜공주는 정종이 죽자 3일후 10월 23일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오게 된다.  정종이 죽는 사건현장에 경혜공주가 있을수가 없다. 극의 재미를 위한 설정이라고 해도 과한 측면이 있다.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이 죽고 나서, 경혜공주는 관노가 되고, 김승유는 이시애가 있는 함길도 경흥으로 가서 후일을 도모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고, 세령공주는 김승유에게 나를 두고 떠나라고 말을 한다.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세령의 모습은 아릅답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친구이자, 연적이자, 원수가 된 신면을 죽이려는 극중 모색인 듯하다.



공주의 남자는 귀신들이 등장해서 극을 이끌어 가고 있다. 주인공 김승유는 계유정란 이전에 죽었는데 버젓이 살아나, 가장 세조(수양대군)의 딸 세령(세희)와 사랑에 빠지는 유력한  후보인 김승유 자신의 둘째형 김승벽의 큰아들인 김석동(김중남)을 대신해서 세령과 끔찍한 사랑을 나눈다. 한마디로 조카며느리와 사랑하는 폐륜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금성대군은 1457년 6월 27일 순흥(영주)부사 이보흠과 반란모의가 들켜 10월 21일에 죽었다. 단종은  장인 송현수가 역모에 역루되었다는 말을 듣고 1457년 10월 21일(음) 죽었다.

공주의 남자에서 의경세자(숭:장)은 시름시름 하면서도 세령공주를 찾는다는 설정이 있다. 하지만, 의경세자 장도 1457년 9월 2일에 20살의 어린 나이로 요절한다.
가장 극적인 해가 1453년 계유정란, 1455년 세조양위, 1456년 단종복위 사육신 , 그리고 단종이 죽는 1457년이다.


죽은 김승유가 오래전에 죽은 금성대군을 찾아 경상도로 간다는 설정에, 죽은 상왕 단종을 복위시킨다는 발상도 끔찍하게 재미가 있다. 하이라이트는 금성대군의 경상도 군과 전라도 군이 수원에서 만나 서울을 공격하고, 총통위의 대포를 앞세워 궐에 진입하여 수양대군(세조)과 난신적자를 몰아내고 상왕 단종을 복위시킨다는 전략을 듣자하면 김승유는 죽은 제갈량이 살아있는 사마중달을 무찔렀다는 이야기를 넘어서 제갈량을 쩜져 먹을 만고의 전략가라고 칭해야 할 것이다.


귀신도 부리는 김승유, 김승유를 이길 전략가는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총통위 간부들의 놀라운 계책이라고 거기에 맞장구 치며 말하는 모습은 뒷목을 잡게 하는 얼마나 멋진 일인가? 차라리 핵폭탄을 터트린다는 발상은 더 극적일 것 같은데 말이다.


차라리 세종이나 문종이나 경혜공주의 어머니인 문종비 현덕왕후 권씨가 살아 있어서, 아들 단종도 죽고, 어머니도 죽어, 동생 권자신도 죽어 비참한 삶에 죽지 못해 산다고, 정종이 죽고 살아남아 노비가 된 경혜공주를 위로 했다는 설정은 어떠한가 하는 생각이다.


참으로 궁금한건 극중 시제는 바뀌어 1450년~1452년 문종말년으로 부터 정종이 죽은 1461년 10월이 되어 10년이 지났는데 아역 아강은 여전히 어린이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있다. 어린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을 한다. 충격을 먹어서 성장을 멈춘, 피터팬이나 양철북에 나오는 북치는 소년이 아강인가? 주요 등장인물들은 늙지도 않고, 수염도 없는 내시로 지낼까? 극중 개연성에 리얼리티도 없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불가능이 없다. 드라마를 자료조사도 없이 너무 날로 먹으려는 작가들과 제작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생방송용 시나리오에 자료조사가 가당키나 하며 검증이나 가능하겠는가? 그날그날 게시판보고 박시후와 세령의 달달한 사랑이야기만 하면 되지 말이다.


우리나라 작가군중에서 가장 쉬운 작가들은 현대극보다는 시대극을 쓰는 작가들일 것이다. 거기에 닥치고 멜로면 시청률은 먹고 들어간다. 누가 어렵게 공부를 하고, 자료를 조사해서 시나리오를 쓰려할까 너무나 쉽게 돈을 버는 날라리 시나리오 작가들이 넘처나고 광고도 넘치고 시청률도 높은데 말이다.
 
그래도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역사에 대한 지식이라도 얻어갈수가 있다. 그런의미로 쓰는 글이다. 드라마를 역사로 알고 이야기는 하지 않을수 있으니 말이다. 편하게 볼수 있는 시대극(사극)이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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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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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www.fashion-pascher.org/15-vetements-hackett BlogIcon Polo hackett 2012.10.25 0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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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Favicon of http://www.superiorhomesolutions.net/home-inspection.html BlogIcon sacramento home inspector 2012.10.25 1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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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Favicon of http://www.humidorvault.com/ BlogIcon Humidor 2012.10.31 0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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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Favicon of http://www.brandsathome.co.uk/made-to-measure-blinds.html BlogIcon made to measure roman blinds 2012.11.02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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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Favicon of http://www.homealarmfinder.com/home-alarm-systems/ BlogIcon alarm systems for home 2012.11.06 17: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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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유는 다시 북촌의 김종서의 집으로 찾아가 수양대군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잡힌다.

  18. Favicon of http://finance.6abc.com/abclocal.wpvi/news/read/22360046/survival BlogIcon mountain house ca 2013.01.05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19. Favicon of http://www.miamiinfo.biz BlogIcon Miami Guide 2013.02.12 0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승유는 계유정난후 은둔이라고 나오던데요..

  20. 아베베 2014.06.06 1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죽은사람이 어떻게 은둔을 해요. 추정되긴 하지만

  21. Favicon of http://www.car-games-1.com/ BlogIcon car games 1 2015.03.14 2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동차와 트럭 최신 게임과 재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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