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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자책골 눈물? 에 악플이 왠말 박주영 눈물이 실시간 이슈 검색어 상위를 차지했다. 진짜 박주영이 울었는지 마음속으로 울었는지는 알 수 없다. 경기중이나 경기가 끝날 즈음 까지 박주영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박주영이 경기가 끝난 후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었는지를 검색해 봤다. 그런데 박주영 눈물 기사 어디에도 박주영이 눈물을 흘리는 사진 캡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눈물 왕자 정대세처럼 화면상에 박주영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작가적 관점에서 발기자들이 상상력을 발휘해서 작문을 한것이다. 이전 2010/06/17 - [스포츠] - 메시로 부터 시작해서 메시로 끝난 한국 vs 아르헨티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였다 " 박주영의 월드컵 첫골이 아쉽게도 자책골이 되는 상황이였다. 박주영의 잘못이라.. 더보기
선덕여왕 이요원,고현정 vs 아이리스 6회 김태희,김소연 호평 등 비교 사극인 선덕여왕과 액션첩보추리스릴러인 아이리스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 중에 하나다. 그래서 월요일 부터 목요일까지 저녁 늦은 시간을 간만에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월화 드라마의 강자와 수목드라마의 강자인 두 드라마의 극중 여주인공들과 극의 전반을 개인적으로 비교해 보기로 했다. 일단, 아이리스6회를 리뷰해 가면서 마지막으로 이들을 비교해 볼 생각이다. 이번회의 주인공은 아이리스 5회까지 철영(김승우)의 그림자이거나 철영을 사랑하는 호위총국의 요원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리스 6회에선 단연 주인공은 김선화(김소연)이 였다. 극 흐름상 주요인물은 등장할 때 강한 인팩트를 주어야한다. 김태희나 빅뱅의 탑을 내세우기 위해서 강한 각인효과를 주었듯이 한번 각인이 되면 쉽게 잊혀지질 않는다. 단순히 배우.. 더보기
드라마 선덕여왕, 문무왕비 발견을 예견하다? 실성왕 말년 412년에 고구려의 지원을 받은 눌지가 반란을 일으켰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눌지가 반란을 일으키는 와중 실성이 궁성에서 혁거세의 유언비를 가지고 도망을 치다가 비(碑)가 절벽 아래로 떨어졌지만, 앞부분만이 발견되어 전해지고, 뒷부분은 200년 동안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덕만은 좋게 말해서 '꾀'를 내고, 나쁘게 말해서는 '비문조작'을 통해서 자신이 라고 선언한다. 그 후 덕만은 공주의 신분을 회복하고 미실과 본격적인 정치력 대결을 벌린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드라마 선덕여왕이 예언이라도 한것처럼 조선 후기 정조 1796년에 발견되었다, 다시 사라져 발견되지 않던 문무왕비문이 2009년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만에 발견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드라마상에서는 혁거세 유언의 가 사라졌.. 더보기
개기일식과 부분일식 삼국시기 비교해보니 - 일단 일식이 일어나는 조건을 살펴 보겠습니다. 일식은 위의 그림처럼 태양 - 달 - 지구가 나란히 서서 달이 태양을 가리는 때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보름날을 즈음해서 절대로 일식이 일어 날 수 없습니다. 보름날을 즈음해서는 태양 - 지구 - 달 순으로 해서 보름날 지구가 태양을 가려 월식이 일어 나는 겁니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은 옥에 티가 되는 겁니다. 기본적인 상식을 알았으니 2009년에 있었던 일식과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공주였던 진평왕 시기부터 그 이후 일식이 있었던 해를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일식은 대체적으로 년중 최대 4번에서 2번 정도 지구의 어느곳에서 던 발생합니다. 일식이 한번 발생하면 해당지역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 더보기
역사기록으로 본 '선덕여왕', 일식은 있었다. - 개기일식, 부분일식 역사 기록에는 일식이 있었을까? 신라를 국내 최초로 재현했다는 명품 드라마 에서 미실과 덕만이 일식의 대결을 벌렸다. 하지만, 미실의 처참한 패배로 끝나 버렸다. 그런데 역사기록에는 진평왕 시기에 일식이 있었을까? 진평왕 비슷한 시기에 일식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19년(572)에 사신을 북제(北齊)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초하루 경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39년(592) 가을 7월 임신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원성왕 3년(787) 봄 2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몸소 신궁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다. 여름 5월에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가을 7월에 누리가 곡식을 해쳤다. 8월 초하루 신사에 일식이 있었다. 위의 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