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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

공주의 남자 결말, 김승유 세령공주 때문에 억울한 누명 쓴 신면 에서 김승유(박시후)는 신면(송종호)의 심복 송자번(진성)을 죽였다. 김승유가 노린 것은 신면의 뒤통수다. 이를 간파한 송자번이 대신 날아온 칼을 맞아 죽는 것이다. 이전 신면이 날린 화살을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게 반칙하며 구한 세령공주(문채원)을 떠올리게 한다. 송자번의 역할은 조석주(김뢰하)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주군을 위해서 목숨까지 받치는 배역은 악역이라고 해도 환영받는다. 그래서 송자번에게 미친존재감이라고 말하는 지도 모르겠다. 김승유의 찌질한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당한 승부보다는 뒤에서 음모를 꾸미지만 언제나 실패를 하고 김승유로 인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사랑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르고 있다가 아버지 김종서와 형 김승규가 죽는다. 그리고 자신을 구원해준 빙옥.. 더보기
공주의 남자, 사육신 박팽년 성삼문, 단종 양위시 경회루 투신사건 사실일까? 에서 이개는 김승유에게 작은 복수보다 더 큰 대의를 모의하자는 말을 한다. 수양을 죽이고 반정하여 상왕 단종을 복위시키자는 것이다. 사실 김승유의 복수의 끝은 수양을 죽이는 것이고 김종서의 뜻도 단종을 지키는 일이니 김승유가 하는 일이 대의에 부합한다. 하지만, 이개는 김승유가 하는 일은 복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니 김승유가 이개의 눈에는 민폐였던 모양이다. 어쨌든, 김종서가 죽고, 남은 김종서 당의 일원이라고 하는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이라고 상소해 사육신들이 계유정난공신이 되었는데 에서는 김종서 일파가 되어서 김승유를 감싸고 결국에는 김승유와 함께 단종복위를 시도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김승유는 한성부에서 사육신과 정종을 살리려고 파옥까지 감행한다. 저승에서 김종서가 김승유를 봤다면 혓끝을 찼을 것이.. 더보기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 된다? 사실은 진실과 허구 왜 퍼졌을까? 에서 경혜공주는 문종 말년(1452년 경) 비루한 가문의 정종에게 시집을 간다. 에서 문종은 김종서와 밀약을 맺고 김종서의 막내 아들 김승유를 경혜공주의 부마로 세우려 했지만, 수양대군(세조)의 반대로 정종에게 시집을 가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경혜공주는 처음에 마지못해 맞이한 부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정종이 자신을 지키고 문종이 승하하고 단종이 왕위에 있었을 때에도 충실히 왕실을 위해서 노력하는 면에 점차 마음을 열고 자신의 배필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경혜공주는 문종과 현덕왕후의 소생인 경혜공주(1436년생)는 세종 말년 1450년 1월에 세자 문종의 맏딸로 평창군주 시절 15살에 영양위 정종에게 시집을 간다. 작가가 자신이 목적한 이야기로 이끌어 가려고 사실이 아님을 알고 서도 허위로 만든 허.. 더보기
공주의 남자, 제작자 계유정란 김승유 3살? 그럼 김승유와 아들 효달이 동갑? 대략난감 연출자 김정민이 KBS 2 예능프로에 나와서 공주의 남자의 배경이 되는 계유정란 역사와 드라마 차이를 설명하는 로맨스 진실과 허구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그런데 김승유가 계유정란 시 김승유가 3살이었는데 20살로 설정했다고 한다. 의 모티브를 제공한 은 조선 후기에 조선의 설화를 채록한 책이다. 은 김종서의 손자와 세조(수양대군)의 첫째 딸의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물론, 제작자가 실수를 했다고 보지만, 1453년 계유정란 시 김승유가 3살이면 세령공주는 몇 살이라는 말인가? 3살이나 그보다 적은 나이인가? 더군다나 김종서의 자식인 실존인물 김승유가 3살이면, 세령과 사랑하는 손자는 몇 살이라는 말인가? 드라마에서는 세령이 계유정란시 20살로 설정되어 있다. 문제는 계유정란 시 세령이 20살이면 경혜공.. 더보기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에서 사육신 중 한명인 이개와 사육신 등이 절대로 김승유와 한편이 될 수 없다는 글을 송고했더니 이개의 후손이나 사육신 중의 후손 이라는 사람들이 가끔 댓글을 단다. 조상을 욕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조상을 욕보이는 측은 다름이 아닌 공주의 남자 작가인데도 말이다. 목은 이색의 후손으로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하였지만, 조선에 부용하지 않고 고려에 대한 충성과 절개를 지켰다는 것이다. 조선의 왕이 삼고초려를 해서 한산 이씨들이 조선 조정에 나갔는데 정난공신이 되고자 경솔한 판단을 했겠냐는 것이 골자이다. 논리적인 모순은 과연 이색의 후손이 이색의 고려에 충정을 이어 받았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조선의 왕들이 삼고초려를 해서 정치에 참가였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충절가문이거나 이색.. 더보기
공주의 남자, 김승유 적과동침, 단종 죽인건 사육신 충신인가? 배신 아이콘인가? 에서 김승유(박시후)는 스승 이개와 사육신 등과 함께 세조(수양대군)을 척살하고 단종복위에 참여를 한다. 승유(박시후)는 세조를 죽이려하고 세령(문채원)은 승유가 목표로 한 인물이 누구일까 궁금해서 수시로 대호가 날뛰는 도성에서 호위무사도 없이 밤이슬을 맞으며 경혜공주를 찾아 나선다. 공주의 남자에서 세령은 김승유가 죽이려는 상대가 자신의 아버지 세조(수양대군)인것을 알고 아버지의 안위보다는 김승유의 안위를 걱정하며 궁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단종을 폐위하고 세조 옹립에 공을 세워 공신이 된 성삼문과 사육신의 일파들은 어찌하여 수양대군(세조)을 척살하고 단종복위를 꿈꾸었을까? 세조의 정치와 사육신으로 대표되는 성삼문의 정치의 목표가 달랐기 때문이다.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들은 유교를 바탕으로 신하들이 중심.. 더보기
공주의 남자, 김승유 단종복위 위해 불구대천원수인 이개 성삼문 등 사육신과 동침한다? 에서 김승유는 김종서를 죽이는데 일조한 한명회의 수하 두명을 참살하고 나무위에 걸어둔다. 김승유는 빙옥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개를 만난다. 사육신중의 한명인 이개는 김승유와 정종과 신면의 스승으로 나온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주인공들은 자라지도 않고 늙지도 않았는데 어느 새 6년의 시간이 구렁이 담넘어 가듯이 지나가고 있다. 극중에서 몇일 지나지도 않았는데 1~2년이 훌쩍 넘나든다. 1452년 문종이 죽고 단종이 즉위하고,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란이 끝나기 무섭게 1455년 6월 11일 단종이 폐위되고 수양대군이 왕이 되었다가 몇일 지나지 않아서 1456년 6월 2일 단종복위 사건을 다루고 있다. 공주의 남자에서 하루는 1년인듯 하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관심이 없을 지도 모른다. 박시후와 .. 더보기
공주의 남자, 김종서 후손중 김승유 제외하고 절손되었을까? 사실은 에선 김종서의 살아남은 후손으로 김승유와 큰아들 김승규의 아내와 여식인 아강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김종서에게는 처음부터 아들로 김승규와 김승유만이 있다. 작가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를 극적인 묘사라고 말을 한다. 김승유가 멍청하게 나오는 이유도 김종서가 죽고 가족이 몰살되었기 때문이라고 이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박시후)가 복수하는 장면은 어디에도 없다. 단지, 세령이 자신을 속였다는 이유와 세령이 신면과 결혼한다는 이유만으로 질투심로 칼부림을 하는 것 밖에는 없다. 그것도 너 죽고 나죽자는 단순무식하게 말이다. 세령공주(문채원)은 신면(송종호)의 도움으로 김승규의 아내와 아강을 숨겨준다. 수양은 세령이 숨겨준 것을 알고도 모른 척 한다. 결론은 수양대군이 아량을 베풀.. 더보기
공주의 남자, 민폐 김승유, 박시후 잘못인가? 작가 잘못인가?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는 금성대군과 정종의 노력으로 단종이 결심하여 참수를 면하고 유배를 떠난다. 수양대군은 유배를 떠나는 김승유를 살려두지 말고 죽이라고 말을 한다. 안평대군도 유배를 떠나는 도중에 사사되고 만다. 승유는 찾아온 세령의 목을 조르며 왜 자신을 속였느냐며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을 한다. 세령은 제발 살아 남아 자신 세령과 아버지 수양대군을 용서하지 말라한다. 승유는 신면에게 어찌 친구로서 자신에게 적대시 하려하느냐고 말을 하지만, 신면은 김종서가 수양을 먼저 쳤다면 지금 옥에 갇혀 있는건 승유 너가 아니고 신면 자신이라고 말을 한다. 승유는 부모들의 반목 등 어떠한 일이 생기더라도 친구들간에 우정은 변치 말자고 하지만, 승유의 맹세는 한탓 허풍선에 지나지 않는다. 신면인 친구도 죽이.. 더보기
공주의 남자, 생방송 사극 빈번한 우연남발 개연성 없는 김승유와 세령의 사랑 에서 계유정란의 후반부를 극화하였다. 죽었던 김종서(이순재)가 김승유(박시후)의 아버지 하는 소리에 부활하고, 김승유로 하여금 단종이 있던 경혜공주(홍수현)의 사저로 가서 김종서가 살아 있음을 알리고 수양대군(박영철)이 반란을 일으켰음을 알리라 한다. 계유정란으로 김종서가 죽은 때는 4대문이 다 닫힌 1453년 10월 10일 새벽이었다. 당시에는 70년대처럼 통행금지가 있었고 저녁이 되면 4대문은 철통같이 방어하여 도성 입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물론, 특별한 국가 중대한 사유가 있다면 4대문을 통과할 수 있지만 말이다. 수양대군이 반란을 계획하고 제일 먼저 장악한곳이 요즘으로 친다면 수도경비 사령부이다. 그리고 4대문를 장악했다. 서대문 밖에서 살고 있던 김종서가 단종을 만나려면 4대문을 통과해야 한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