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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신의의 배경은 공민왕 1(정확히는 공민왕 재위2) 가을에 있었던 조일신의 난에서 쉬이 알 수 있다.
역사는 조일신은 원에서 부터 공민왕의 근신에서 호위하여 공민왕이 고려에 돌아오자 숙의공신으로 고려 조정을 농단했다.

하지만,공민왕은 이제현 등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유림을 끌어들여 조정을 일신하였다.

 

조일신은 자신보다 이제현 등이 조정의 권한을 쥐고 흔들자 반발하여 난을 일으킨다.

 

조일신이 덕흥군과 관계없이 일당을 모아 친원파의 대두 기철(오성) 일당을 몰아내고 공민왕이 가지고 있는 옥새를 쥐고 자신은 우승상에 오르고 조일신과 같이 반란에 참여했던 정천기를 좌승상에 제수한다.

하지만, 고려 조정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조일신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 정천기의 잘못으로 몰아 정천기와 반란에 참여한 주동자를 처벌하고 조일신은 좌승상으로 물러나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공민왕은 암중으로 최영, 김청수, 안우에게 명하여 조일신 일파를 몰아낸다.


그런데 신의에서 박윤재(덕흥군)의 지시에 조일신이 반란의 하수인이 되었고, 조일신의 반란이 무산되자 덕흥군은 조일신을 반란의 수괴로 몰아 조일신을 처단한다. 그러니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팩트로 신의에 대해서 언급할 수가 없다.

 

신의는 천혈을 통해서 이민호(최영)에게 납치된 김희선(유은수)가 공민왕 시대로 넘어가 역사를 바꾸는 과정을 그리고 최영과의 천년의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래서 신의에서는 김희선이 노국공주를 살리기 위해서 과거로 납치되지 않았다면 이성계는 일찍 죽고, 조선은 생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김희선(유은수)이 사랑한 이민호(최영)도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한마디로 김희선이 과거로 타임슬립이 되므로 현재 역사가 있었다고 드라마 작가는 설정한 것이다.

 

 한마디로 만약,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하였다면, 신라가 통일한 것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아니면 대원군이 좀더 일찍 세계와 교류했다면 조선은 일본에 침탈되지 않았을 거라는 류의 적극적인 개입이 신의류의 타임슬립 장치를 둔 소설이다.

개인의 의지에 의해서 움직이는 닥터후나 백퓨더퓨처, 터미네이터의 SF가 아닌 우연한 기회에 하늘이 만든 장치가 천혈일 뿐이다. 아직까지 대한민국 드라마는 SF를 하기에는 작가들의 역량과 제작비 등 환경이 만들어 지지 않았다는 것 뿐이다.

타임슬립을 주제로 한 모든 드라마/소설 등은 미래에서 온 특정인에 의해서 역사가 바뀌거나, 특정한 터미네이트처럼 일부러 근원이 되는 자를 죽이려고 타임슬립을 하는 경우가 있다.
신의 원작 논란에 빠진 MBC의 닥터진도 죽은 사랑하는 여인 때문에 우연히 과거로 돌아가 죽어가던 세도가 안동김씨의 수뇌를 살려주고, 대원군에게 조력하고, 어린 고종도 살려준다. 닥터진이 과거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현재는 바뀔 수 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반대로 옥탑왕 왕세자는 과거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미래로 온다는 전혀 다른 설정이다.

 

어쨌든, 타임슬립 드라마의 강점은 역사를 작가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타임머신 장치가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어떠한 행위가 현재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니 역사적인 팩트에 자유롭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통사극이나 퓨전사극에서 실존인물을 다루지만 역사와 무관한 시대극보다는 타임슬립 작품은 작가가 역사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한국식 시대극(사극)으로는 금상첨화이다.

 

한마디로 역사를 왜곡했네, 작가가 공부를 하지 않았네라고 할 근거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역사에 관심이 많고 사극류라면 시간이 없어도 시간을 내서 볼려고 하는 편인데 역사적인 팩트는 이러한데 작가가 공부 좀 했으면 좋겠다고 할 근거가 티끌만큼도 없다.

 

선덕여왕이나 뿌리깊은 나무나 공주의 남자, 동이, 대왕의 꿈은 정통사극이라 역사적 팩트에 대해서 민감하고 역사적인 인물이 행한 행위가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인물간의 관계와 사건은 아주 정밀해야 한다.

특히 선덕여왕이나 공주의 남자의 경우는 기본적인 인물관계까지 부합되지 않는 생뚱맞은 드라마였다. 신의처럼 그럴수 있다는 개연성있는 장치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작가는 등장인물의 기본적인 인물정보나 사건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역사학자 만큼은 아니더라도 역사학자에 준하게 공부가 되어 있어야 하고 역사내공을 갖춰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드라마 시나리오 자체가 실시간으로 나오기도 힘들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극은 실시간 생방송 드라마 이기 때문에 작가는 역사에 무관해지고 공부가 되어 있을 수가 없다.

 

반면에 신의, 닥터진, 옥탑방왕세자 처럼 초기 등장인물과 시대상황만 맞춘다면 작가의 상상력 안에서 작품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더군다나 역사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쪽대본이 횡횡하고 실시간 대화로 줄거리가 바뀌어도 되는 대한민국 드라마 제작환경에 타임슬립이란 장치가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닥터진이나 옥탑방왕세자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계의 현상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미래에서 자신이 왔던 시대로 돌아가지만, 신의는 천혈이란 의지에 상관없이 타임슬립이 되는 장치를 도입하고 현대로 돌아오려는 김희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신의는 처음 극의 도입에 화타를 등장시키고, 유은수의 다이어리가 화타의 유물화 되면서 최소한 김희선이 화타와의 연관성이 있고 끊임 없이 타입슬립을 했다는 다이어리의 기록으로 인해서 천혈의 규칙성을 발견한다는 점이다.


 

신의 고려시대에서 최영 살리고 과거로 김희선 처음 타임 슬립한 김희선에게 편지를 남긴다. '제발 이것이 너에게 이르기를. 간절함은 인연을 만들고. 기억만이 순간을 이루게 한대. 부디 글을 사람과 함께 있는 네가 읽을 있기를. 부디 너무 늦지 않았기를' 이라고 하지만, 김희선 편지의 뜻을 알지 못하다 다시 꿈을 꾸고나서야 의미를 알게 된다.

 

신의 작가 송지나는 꿈이 꿈이 아니고 미래의 김희선이 과거로 간 뒤의 행동이 덕흥군의 독으로 인해서 각인된 기억이꿈으로 나타난다는 장치를 만들었다. 어떤 순간에 미래의 김희선의 모든 행동과 기억들은 타임슬림 초급자 김희선에 전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 이전 글에 송지나가 작가가 이미 언급했다. 이제 편지가 아닌 스스로 기억을 끄집어 내게 되지 않을까?


2012/10/02 - [역사IN드라마/신의] - 신의 천혈 이민호 김희선 이별후 재회 스포일러난발 마의 아닌 시청률 하락원인 조일신 난은 덕흥군 계략?
2012/09/26 - [역사IN드라마/신의] - 신의 이민호 김희선 약속 미래 김희선 실패했지만, 초보 김희선 지켜낼까?
 

물론, 신의 처럼 말로 때우면 그만 이지만, 김희선이 과거에서 다시 현재로,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고려시대로 움직이는 여정이 아직까지는 없다는 점이고, 천혈이 꼭 자신이 가고자 하는 시대와 장소로 가는 것인가 하는 기본적인 의문에 작가는 성실히 답을 주어야 한다.

옥탑방이나 닥터진처럼 전지적인 자연계의 힘 때문에는 신의에서는 해당사항이 없어져 버렸다. 그냥 처음부터 닥터진이나 옥탑방처럼 전지적인 누군가의 의도적이나 우연을 가장한 간섭이었다면 보다 내용을 이끌어 가기 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과거로 돌아간 김희선의 활약은 어쩌면 볼 수 없지 않을까? 신의에서 이민호(최영)은 어릴적에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졌다.

신의의 결론을 추론하자면 미래의 김희선은 과거 최영(이민호)가 사랑한 매희(김효선) 여인의 화신이 거나 죽은줄 알았던 매희가 미래로 타임슬립되어 기억을 잃어버린 미래에서 온 김희선이다. 죽은줄 알았던 인물이 살아나는 장치는 수 없이 많다.

특히 해를 품은 달에서 김유정은 무덤속에서 살아나지만 기억상실이 되었다가 기억을 찾는다. 천년을 뛰어넘는 세대의 사랑이 아닌 매희의 천년동안 최영을 지키고자한 사랑이 아닐까? 그래야 뜸금없는 이민호와 김희선의 사랑이 납득이 되지 않을까?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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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12.10.03 2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그런 사랑이라면 매희의 마지막이 자살이란 설정은 좀 아니지않았나요...?

  2. ㅇㅇ 2012.10.03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희는 자살하였다함...
    환생이라면 모를까 매희의 타임슬립은 뜬금없음...

  3. ㅇㅇ 2012.10.03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희는 자살하였다함...
    환생이라면 모를까 매희의 타임슬립은 뜬금없음...

  4. Favicon of http://howtostopsweatingsomuch.com/articlearchive/?tips-about-producing-beauti.. BlogIcon scentsy buddies 2012.10.04 0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의 서면으로 아이디어를 사랑

  5. jjoo 2012.10.04 0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자기 매희가 왜나와요...;;;; 그러면 정말 얘기 이상한데요?

  6. aaa 2012.10.07 2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우가 다른데 너무 황당하네요

  7. qkek 2012.10.13 2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의 글이 바로 스포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자신의 의지가 결여 된 자라면 그래서 의지와 상관 없이 흘러 간다면 이것이 오히려 합당 하다고 해도 .내용은 개판이 되는 거다. 시청자들은 생각 없는 단순한 드라마를 싫어 한다.

  8. Favicon of http://petmedicinesupply.com/ BlogIcon best dog for allergies 2013.02.02 2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램수행점수를 계속 상승시키고 있다. 박소연과 김해진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는 정기준(가리온)의 시신해부를 통해서 후음(목구멍)소리에 해당하는 상형문자
를 만들어 낸다.

 

시신해부와 천지계 문신는 극중 긴장감을 위한 도구로서 작가는 유용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선덕여왕에서 보름날 일식만큼이나 황당한 설정이다. 한마디로 당시 조선 시대의 상황을 도외시한 설정이다.

 

분명 세종 이도는 극중 처럼 털털한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눈물도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신하들과 논쟁을 하면서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눈물로 호소를 하기도 한다.

 

더불어 자신의 생각이 확고할 때는 논쟁으로 신하들의 논리를 무력화 시키기도 한다.

 

신하들과 대화를 하다 대화가 안되면 일반사람들처럼 신하가 물러나면 고루하고 생각이 낡았다고 뒷담화까지도 하면서 웃기까지 한다.

 

세종 이도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근엄함과는 차이가 많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니 뿌리깊은 나무에서 이도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세종 이도를 바로 찾아주기 프로젝트와도 같기는 하다.

 

하지만, 세종 이도는 문신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뿌리깊은 나무에서 처럼 천지계원인 신하들에게 문신을 했을 가능성은 없다. 한마디로 개연성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런 세종 이도가 한글(훈민정음)때문에 시신해부를 한다는 발상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글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2011/11/10 - [역사IN드라마/뿌리깊은나무] - 뿌리깊은 나무, 밀본 가리온 시신해부와 백두산이 장백산? 독도는 다케시마? 엄청난 차이점
2011/11/10 - [역사IN드라마/뿌리깊은나무] - 뿌리깊은 나무, 가리온 정기준 시체해부 한글 만든다? 도 넘은 설정



어쨌든 훈민정음의 기초는 완성이 되었고, 이를 이용한 글자를 써보이는 장면에서 소이는 딴 생각을 하고 있다. 소이라고 써 보인 세종은 뻘춤할 수밖에 없다. 글이 있어도 읽을 수 없고, 말을 할 수 없다면 소이에게는 한자나 한글이나 별반 차이도 없다.

 

더군다나 소이나 채윤은 이미 한자를 자유롭게 쓰고 있으니 한글이 있으나 없으나 별반 다르지도 않을 것이다. 소이가 강채윤이 남긴 벽서를 생각하며 딴 생각을 하는 것 처럼 그렸지만, 뿌리깊은 나무는 이를 간과한 것 같다. 그러니 소이가 한글을 보고도 반응이 신통치 않은 것은 일견 이해가 가는 장면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어리석은 백성이 자신의 의사를 글로서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변곡점이 소이와 강채윤이 글을 몰라서 자신들의 가족이 몰살되었다는 지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한자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소이나 강채윤에게는 한글의 필요성이 있었을까? 이미 강채윤이나 소이는 기득권에 편입된 상태인데 말이다.


 

어쨌든, 뿌리깊은 나무에서 밀본의 수장 정기준(가리온)은 세종의 보위세력이나 다름없는 집현전을 없앨 궁리를 한다.

 

밀본의 수하 중에서도 집현전의 두번째 고위직인 직제학에 심종수가 있다. 심종수도 집현전이 없어저할 부당한 세력이라고 생각했을까?

 

뿌리깊은 나무에서 중대한 설정의 오류는 집현전이 단순히 국왕 세종 이도의 친위세력이라고 생각한 점이다.

 

그러니 집현전을 태종 이방원이 세종 이도가 가지고 놀 놀이감으로 생각하는 측면이 있지만, 세종 이도는 집현전을 통해서 문치를 해 나갈 것이라고 설정한 것이다.

 

집현전은 고려 인종시절에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는 삼국사(삼국사기)의 김부식도 집현전의 고위직에 있었다. 그 만큼 연원이 오래된 조직이 집현전이다. 단지 집현전이 집현전 답게 조직화 되어 있고, 독립기관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은 세종 때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 처럼 이도가 요구를 해서 이방원이 마지못해 승락하고 개에게 먹이를 던져주듯이
집현이란 이름을 만든 것이 아니다.

 

태종 이방원의 측근이 박은이 집현전의 독립기관화를 상소하고 세종 이도가 이를 받아 들이고, 박은을 집현전의 관리책임자인 직제학에 임명하고, 부제학에 신숙주의 아버지 신장을 임명한다. 신장은 그 후 직제학에 오른 후 7년여 봉직을 하고 물러난다.

 

그렇다면 집현전이 단순히 왕의 직할부서의 역할을 한 것 일까? 그렇지가 않다. 집현전은 끊임없이 세종 이도의 정치에 딴지맨 역할을 한다. 조선은 사헌부, 사간원 등 수 없이 많은 왕의 독점적 권력을 비판하고 견재하는 수단을 가지고 있었는데 또 하나의 비판기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반대가 훈민정음의 부당함을 상소한 것도 집현전이었다. 부제학 최만리로부터 직제학과 사육신의 하나인 하위지 등 관련자만 7명이나 있었다. 집현전은 20명의 상설기관이지만, 내 놓고 반대한 사람이 7명이라면 대다수가 반대했다고 할 수 있다. 나머지 이개나 박팽년, 성삼문 등은 왕이 시키니 한다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이 공법(세법)개정을 시도하자 밀본은 세법개정이 성리학을 말살하는 정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견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세법에 반대하는 것 처럼 비춰졌을 것이다. 또한, 세법에 가장 반대한 세력도 집현전과 수 많은 위정자 들이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은 백성을 생각해서 기득권 세력에 반하는 세법(공법)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많은 시청자들이 이에 동감을 표하고 기득권에 대항한 세종과 기득권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위정자들을 생각하고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종의 세법개혁은 기득권 말살과는 하등 상관이 없고, 오히려 세법개혁은 기득권층을 강화하고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하는 개혁이었다. 그래서 집현전을 비롯해서 수 많은 조직에서 반대를 한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성리학들이 반대한 이유는 세종의 세법(공법)에는 문제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의 세법은 일견 세금감세 정책이었고, 모두 세금이 감하게 되는 정책이었지만, 가진자들에게 세금을 감세하는 일괄 부자감세정책이었다. 현재의 소득세는 누진제로 되어 있어서 부자가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세종의 공법은 평등과세였다. 100을 가진자는 30의 세금을 냈는데 바뀐 정책은 100을 가진자에게 10만 부담하게 하는 감세였다. 못가진 자는 세금의 혜택이 일부 있었지만, 절대적인 혜택은 부자들이 보는 기득권을 지키는 정책이었다.

 

그래서 조선 세종 시대의 공법은 논란 끝에 전체적으로 감세가 되는 기본 골격에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는 방식으로 누진되는 누진세로 바뀌게 된다. 한마디로 세종 시대 사대부들은 요즘의 부자들과는 다르게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부자들에겐 있을 수 없는 정책이지만 세종시대 권력자들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었다. 워린버핏은 세종 시대 관리자에게는 기본적으로 가진 생각들이었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글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2011/11/02 - [역사IN드라마/뿌리깊은나무] - 뿌리깊은 나무, 세종 세법 밀본 기득권말살 정책? 부자감세 위정자들 워린버핏세 주장
 

그러니 뿌리깊은 나무가 얼마나 잘못된 설정을 했는지 쉬이 알 수가 있다. 세법을 반대한 이유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 기득권을 버리고 나라의 재정과 부익부 빈익빈을 없애자는 반대였던 것이다.

 

집현전에서 또 다른 반대는 불교에 대한 반대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내불당 사건과 불경을 편찬을 들어서 밀본이 성리학을 말살하는 정책이라고 하지만, 이 또한 집현전에서 반대를 한다. 물론, 뿌리깊은 나무에서 내불당 사건을 예시로 들었지만, 내불당 사건은 한글이 창제된 후의 사건이다.

 

내불당은 1446년 소현왕후가 사망하고 세종이 내불당을 문소전 뒤편 북서쪽 궁궐 내에 불사를 만들자 반대를 한 것 이다. 뿌리깊은 나무 작가 김영현은 좋은 작가임에는 분명하고 시청자를 끄는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출중하지만, 개연성과 리얼리티도 없는 말이 되지 않는 설정을 함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깍아 먹는 경우가 많이 있다.

 

좀더 깊숙히 생각하고 자신의 시나리오를 검증했다면 쉬이 바꿀 수 있는 설정들이다. 문신, 시신해부, 내불당 언급과 집현전설치와 없애기, 세법은 그 중 대표적인 설정의 오류이다.

 

아마도 사사건건 반대를 하고 딴지를 거는 집현전을 없애고 싶었던 사람은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 이도라면, 가장 먼저 집현전을 없애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밀본의 본원 정기준이 세종 이도의 직할 보좌기관인 집현전을 없앤다고 나서니 얼마나 속으로 쾌재를 불렀겠는가?

 

오죽하면, 세종 이도는 집현전의 반대에 궁궐을 떠난 적이 있었다. 세종 이도는 태종 이방원이 세운 흥천사에 불탑을 중건하고 경천회를 개최하려고 했다. 하지만, 집현전을 비롯한 사간원, 대간, 성균관 등의 반대에 직면한다.

 

그래서 상소를 아예 받지 않도록 조치를 하지만, 언로가 막혔다고 대대적으로 들고 일어난다. 2년여 동안 끊임없이 반대를 하자 세종 이도는 꼼수를 내고 흥천사 사리탑 경천회를 하도록 지시하고 왕에게 반대할 수 없도록 온양행궁으로 온천욕을 떠나버린다.

 

임금이 승정원에 이르기를,
온정(溫井)에 거둥하는 사이에 흥천 사리각(興天舍利閣)에서 경찬회(慶讚會)를 베풀면 어떨까.”

거둥하실 때 그것을 하시면 언관(言官)들이 번거롭게 청하지 못할 것이니, 하교하심이 참으로 지당하옵니다.

다만 국도(國都)를 비우실 때이므로 공양(供養)할 여러가지 물건을 지공하기가 어려울까 하오니, 서울에 남아 있는 승지로 하여금 호조와 같이 의논해서 지공해 쓰고 환궁하신 뒤에 주달(奏達)하게 함이 온당할까 하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알았노라.”
- 세종 24년 1442년, 2월 21일 


뿌리깊은 나무가 밀본 본원 정기준(가리온)을 통해서 집현전을 없애려 한다는 설정을 넣은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단순히 집현전을 왕의 친위세력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집현전을 믿지 못하는 세종이 비밀세력 천지계를 조직하고 있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집현전을 없앤 이는 다름 아닌 세조 수양대군이었다. 수양대군은 집현전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박팽년, 성삼문을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했고, 광평대군이 이를 주도한 것으로 그리고 있지만, 특히 언문 훈민정음에 관한한 수양대군만큼 아는 이도 없었다.
 

 


세조 수양대군은 세종과 같이 성리학과 잡학으로 천시하는 군사, 농학, 천문, 지리, 수학 등에 능했고, 불교를 탄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도 천시하지 않았다. 가장 적극적으로 훈민정음을 실생활에 사용한 군주와 왕실은 세조 때였다. 오죽하면 언문(훈민정음)으로 신하들에게 지시까지 했겠는가? 공주의 남자에서 세령공주가 김승유를 살리자고 혈서로 쓴 한자 "승법사 여리"는 한글인 "승법사 여리"라고 했어야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있다.

 

어찌보면 뿌리깊은 나무에서 정도전의 밀본 계원은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등 사육신으로 그려야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있지 않을까 할 정도이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비난 받는 수양대군과 신숙주가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하였다고 그릴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개연성도 없는 광평대군을 천지계를 이끄는 왕실 종친세력으로 그리고, 신숙주가 뿌리깊은 나무에 등장하지 않는 이유이다.

 

수양대군이 집현전을 없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많은 사람들이 사육신의 다수가 집현전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말을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집현전이 공론만 있고, 사사건건 임금이 하는 일에 반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조 수양대군에게 왕이 하는 일에 딴지만 거는 집현전이 좋아 보일리가 없는 것이다.

 

세조 2 1456집현전(集賢殿)을 파하고, 경연(經筵)을 정지하며, 거기에 소장(所藏)하였던 서책(書冊)은 모두 예문관(藝文館)에서 관장하게 하라.

 

뿌리깊은 나무에서 밀본은 왕은 꽃이고 정승을 중심으로 한 신권은 나라를 지탱하는 뿌리라고 언급을 하면서 조선은 신권의 나라라고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신권 강화의 핵심은 사간원, 사헌부, 집현전이 중추였다.

 

밀본이 추구하는 성리학의 나라, 신하들의 나라의 논리를 집현전에서 집대성하고 발전시켰는데 신권을 지상명제로 생각한다는 밀본이 성리학의 뿌리와 논리를 제공하는 집현전을 없앤다는 설정이 가당키나 한가? 왕에게 집현전은 버릴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는 계륵과 같은 존재였을 뿐이다.

한마디로 뿌리깊은 나무에서 밀본 정기준이 성리학의 나라를 세우려고 집현전을 없애려 시도한다는 설정은 자책골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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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www.balloonking.co.uk BlogIcon balloons by post 2011.12.11 2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은 나가 이제까지 오늘 만난 제일 지도 블로그이다. 나는 나가 여기에서 본 장소로 진짜로 황홀케 했다 나는 그(것)들을 언젠가 방문하고 싶다. 그것을 유지하십시오!

  3. Favicon of http://perdredupoidsvite.blogs.fr BlogIcon Yoshie 2011.12.16 0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블로그 입니다 몹시 재미 ! I 포기에 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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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부족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ㅎ

  7.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 훈민정음 해례(교본)은 세자(문종), 수양대군(세조),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박팽년 등이 세종의 지시와 교정을 받고 만들어진다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kso-c-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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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글)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쉽게.. 검색창에 "언문"이 무슨

  9. Favicon of http://www.balloonking.co.uk/40th-birthday-balloons-2 BlogIcon 40th birthday balloons 2012.07.14 0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잘보고 갑니다~ ㅎㅎ
    매력적인 블로그 기대할께요~ ^^

  10. Favicon of http://rocville.com/?p=News BlogIcon Delbert 2012.07.21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들에게 문신을 했을 가능성은 없다. 한마디로 개연성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다

  11. Favicon of http://www.1-health-insurance-quotes.com/anthem-lumenos/ BlogIcon lumenos 2012.07.24 16: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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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Favicon of http://thestarryeye.typepad.com/pets/2007/10/index.html BlogIcon best wireless pet fences 2012.11.14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긴것은 세종대왕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로 세종 이도를 극찬하기도 한다

  17. Favicon of http://www.onlineindia.ind.in/engine/handlers/page_handler.php/view/535/disast.. BlogIcon southwest seasoning 2012.11.20 1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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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병훈은 조선왕조실록에서 극히 드물게 나온 숙빈최씨의 성장과정을 드라마화는데는 무난하다고 할 수 있으나, 동이(숙빈최씨)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함을 드러내고 말았다.

  19. Favicon of http://www.edgeptown.com/index.php?ch=style&sc=life&sc2=features&sc3=&id=41788 BlogIcon petsafe invisible fence installation 2012.12.27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세종 이도는 문신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뿌리깊은 나무에서 처럼 천지계원인 신하들에게 문신을 했을 가능성은 없다. 한마디로 개연성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20. Favicon of http://essentialswaterbarrel.xanga.com/ BlogIcon katadyn pocket filter 2013.01.05 2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구성으로 이루어 졌다. 하지만, 미션의 내용과 해결하는 방법은 이전 이병훈 사극이 주었던 치밀함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21. Favicon of http://naughtystrawberry.co.uk/ BlogIcon dildos 2013.02.15 1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은 실제로 마당에 많은 식물을 성장하는 데 사용되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토지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의 집 뒤에 땅을 많이 사용할 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성삼문은 강채윤의 뒤를 쫓아서 강채윤을 보자기로 싸서 납치를 하지만, 강채윤은 납치범이 어리버리 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강채윤은 성삼문의 뜻대로 행동을 하지만, 이내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만다.
 
그동안의 날라리 성삼문이 어리버리 성삼문으로 화하고 있다.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은 무과에 급제한 무관 출신이고, 그 할아버지 성달생 또한 무과에 급제한 무관출신이다.


아버지 성승이나 할아버지 성달생에게 어릴적 부터 무예를 사사 받았을 성삼문이 강채윤에게 어리버리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듯 하다.

어쨌든, 어리버리 성삼문이 세종의 예 처럼 낯설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저 웃음짓게하는 코드로서 재미가 있다. 

정기준이 무림고수라는 설정보다는 성삼문이 알고보니 무림고수라는 설정은 개연성까지 있다. 성삼문의 뛰어난 무예솜씨를 <뿌리깊은 나무>에서 볼수 있었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법(공법)은 지방아전들이 13년 전에 토지 공법(세법)에 가부조사 (여론조사) 18만 명이나 참가하였지만 도입에 실패한다.

이유는 찬성이 과반수는 넘었지만, 반대도 만만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의회에서 과반수로 법이 만들어지는 것과는 세종이 백성들에게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법을 통과시키는 방법은 달랐다. 

공법을 처리하는 방법에서도 세종 이도는 여타 군왕과는 다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민주주의 시대에 대통령을 해도 그 어떤 민주적인 지도자보다 민의를 살핀 대통령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백성이 원치않으면 실행을 하지 않았고 지속적인 설득작업을 하였고 백성의 말에 귀를 귀울렸다.

<뿌리깊은 나무>에선 공법(세법) 가부조사를 하면서 팔도지리지 편찬 때문이라고 알고 있지만, 각 지방의 방언을 채록하고 수집한 것이라며 정인지 너가 연구하는 바탕이 세법 조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모르냐고 세종이 반문한다. 

그러니 <뿌리깊은 나무>에서 언문(훈민정음)을 만들려고 시도한 것은 13년 이전부터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다고 말을 하고자 하는 듯 하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언제 한글이 만들어지는지 궁금한 사람들에는 궁금증이 어느정도 해소가 될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뿌리깊은나무> 시제는 처음 세법문제(공법)가 불거지고 대대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한 때는 1430년이였다. 

그후 13년이 흐른 상태이니 1443년이 된다. 1443년 겨울 12월 30일 세종 이도는 친히 만든 언문(훈민정음) 28자를 발표한다. <뿌리깊은 나무> 원작 소설이 한글 반포 7일간의 일을 다룬 미스테리 물이라고 한다. 왜 훈민정음을 비하하는 "언문"이라고 썼냐고 비난하는 사람이 간간히 보인다. 미안하지만, 언문은 훈민정음과 같이 세종이 직접 만든 단어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 세종 25년,1443년 12월 30일

드디어 언문청(諺文廳)을 설치하여 사적(事迹)을 상고해서 용비시(龍飛詩)를 첨입(添入)하게 하니
- 세종 28년 1446년 11월 8일


어쨌든, 광평대군은 세종 이도가 세법을 이용해서 친왕파와 반왕파를 가려내려는 행동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이에 세종 이도는 나의 마음을 살피려 하지 말라고 경고를 한다.

 

성리학이 조선을 이끌지 못한다는 숨은 뜻이 있다고 장기준은 생각하고 최만리를 비롯한 중앙 관료들을 포섭하려 한다.
 

 


정기준은 세법개혁은 토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부를 축적하고 있는 중앙 사대부와 지방토호 유림

혁파하고 성리학을 말살하려는 것이라고 말을 한다

.

 성리학을 말살하려는 이유로 신하들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궁내에 내불당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잡학(천문,지리,언문,군사,농학)등을 우대하는 것이 그 증거라고 말을 한다

.

 

세종은 중국의 책력이 아니라 우리의 책력을 만들려고 할 때도 유림과 사대부들은 국고가 낭비되고 신분제도가 흔들린다며 나의 일을 사사건건 반대를 하였었다. 그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지랄 맞게도 천자의 뜻에 반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였을 뿐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밀본을 성리학의 유림 속에 숨어들었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색출하려 하지만, 처음 조선을 조선답게 만들려고 하는 이유는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와 정기준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무가 아닌 문치로 조선답게 만들려고 했는데 반대세력이 자신의 신하들을 하나하나 척살하자 분노하고 초발심을 잃어버리고 고뇌하는 장면을 어린 세종과 현재의 세종간에 대화로 극명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 같다.

 

천사와 악마의 속삭임 속에서 세종이도는 소이와 강채윤의 대화에서 실마리를 찾고 강채윤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가야할 길이 어디인지를 다잡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간적인 세종의 모습을 보여주는 또 다른 중요한 신이 아니였을까 한다. 이를 무협에서는 주화임마라고 한다. <뿌리깊은 나무>는 초상술이라는 무협 요소를 집어 넣은 것 처럼 또다른 무협의 요소를 집어넣은 것이다.

 

그런데 무협에서 초상술은 내공을 바탕으로 하여 흔적이 남지 않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단단한 바닥이 꺼질 만큼 흔적을 남는다. <무협>에서는 이는 내공이 아닌 외공을 익힌 자들의 흔적이다.
 

 


어쨌든, 소이를 쫓아간 강채윤은 소이가 언문 관련 외국 서적을 태우는 장면을 목격하고 소이가 목놓아 우는 장면을 목격하고 소이의 뒤를 추적하다 소이가 마취제와 독약(수면제)를 상시 복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연민에 빠지다 소이 숙소까지 쫓아간다.

소이가 잠을 자지 못하는 이유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세종 이도는 어찌 너가 그리 잘아는 것이냐고 말한다. 이에 강채윤은 수면제와 마취제는 복수를 결심하게 되자 약을 끊었지만, 복수를 결심하고 더욱더 참담하게 되었지만, 결심이 없는 강채윤은 더 이상 강채윤이 아니었으니 그만큼 절박하고 분노했고 의로운 결심이었기 때문에 지금 현재의 강채윤이 있었던 거라고 말을 한다.

 


세종 이도는 강채윤을 그만큼 이였구나 너 똘복이의 결심은 너는 너의 길을 계속 가거라 그게 너가 살아가는 이유라면 말이다.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다.라며 밀본으로 흔들렸던 초심을 바로잡는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새로이 등장한 역사적인 편린을 내보였다. 하나는 전세계 어느 나라 군주도 하지 않았던 세종의 토지세에 해당하는 세법 여론조사방법이다.

세종은 토지세를 징수하기 위해서 백성들의 생각을 듣고자 하였고, 전국민을 대상으로 토지세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에 대해 안건을 세우고, 백성의 소리를 들었던 초유의 일은 한 것이다.

 

호조에서 공법에 의거하여 전답 1결마다 조 10두를 거둘 것을 건의하니 모든 이에게 그 가부를 물어 아뢰게 하다. – 세종 47, 12(1430 경술 / 명 선덕(宣德) 5) 3 5(을사)

 

이제부터는 공법(貢法)에 의거하여 전답(田畓) 1()마다 조() 10[]을 거두게 하되, 다만 평안도(平安道)함길도(咸吉道)만은 1() 7[]을 거두게 하여, 예전부터 내려오는 폐단을 덜게 하고, 백성의 생계를 넉넉하게 할 것이며, 그 풍재(風災)·상재(霜災)·수재(水災)·한재(旱災)로 인하여 농사를 완전히 그르친 사람에게는 조세(租稅)를 전부 면제하게 하소서.

하니, 명하여

“정부·육조와, 각 관사와 서울 안의 전함(前銜) 각 품관과, 각도의 감사·수령 및 품관으로부터 여염(閭閻)의 세민(細民)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可否)를 물어서 아뢰게 하라.

 

위의 사실에서도 알 있듯이 토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에서는 1결에 조 10말이고, 척박한 땅인 평안도, 함길도는 1결에 7말을 거두게 하고, 풍재, 상재, 수재, 한재로 인해서 농사를 망치면 조세를 전부 면제하는 안건이었다.


세종은 세금을 감면하는 일대혁신적인 세제개혁을 단행하려고 하지만, 
4개월 후 1차보고가 올라오고  함길.평안,황해.강원도에선 모두불가 의견이 많다고하자, <뿌리깊은나무>에서 처럼 세종은 토지세 개혁을 하는 이유는 공정성과 중간에서 아전들이 잔꾀를 내어 부유한 자가 세금을 착복하고 빈한 자를 괴롭혀 심히 우려하고 있다고 말한다.

 

호조 판서 안순(安純)이 아뢰기를,

“일찍이 공법(貢法)의 편의 여부를 가지고 경상도의 수령(守令)과 인민들에게 묻사온즉, 좋다는 자가 많고, 좋지 않다는 자가 적었사오며, 함길·평안·황해·강원각도에서는 모두들 불가하다고 한 바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백성들이 좋지 않다면 이를 행할 수 없다. 그러나 농작물의 잘되고 못된 것을 답사 고험(考驗)할 때에 각기 제 주장을 고집하여 공정성을 잃은 것이 자못 많았고, 또 간사한 아전들이 잔꾀를 써서 부유한 자를 편리하게 하고 빈한한 자를 괴롭히고 있어, 내 심히 우려하고 있노라. 각도의 보고가 모두 도착해 오거든 그 공법의 편의 여부와 답사해서 폐해를 구제하는 등의 일들을 백관(百官)으로 하여금 숙의(熟議)하여 아뢰도록 하라.

-         세종 49, 12(1430 경술 / 명 선덕(宣德) 5) 7 5(계묘)

 


왜 함길도,평안.황해.강원도는 반대가 많았을까? 소출자체가 적었을 뿐만 아니라, 국경지역이라서 다른 군역등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뿌리깊은 나무>처럼 경기. 경상. 호남에서는 반대보다는 찬성이 많았다. 그 지방은 소출에 비해서 이전보다 세금을 덜 내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세종이 사대부와 유림이 반대한다고 질책하는 장면은 실제 조선에서 일어난 일과 하등 상관이 없었다.

 

세금을 적게 내게 만들겠다는 유림이 반대했다면 국고를 생각한 것이지 기득권을 지키지 위해서는 아니라는 뜻이다. 단지, <뿌리깊은 나무>작가가 언문(훈민정음)창제를 반대하는 세력이 있을 것이고, 성리학을 바탕으로한 유림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설정은 이치에 맞지 않다. 토지세를 내려주겠다는 반대할 사람있으면 손들어 보기 바란다. 세종이 세금을 올리자고 한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만약 조세를 감한다면 반드시 그 2배를 더 주어야만 원액(元額)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니, 그렇게 되면 군자전(軍資田)이 아마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대저 비옥한 전토를 점유하고 있는 자는 거의가 부강(富强)한 사람들이며, 척박한 전토를 점거하고 있는 자는 거의가 모두 빈한한 사람들이온데,

 

만약 호조(戶曹)에서 신청한 공법에 의해 시행한다면, 이는 부자에게 행()일 뿐, 가난한 자에게는 불행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더욱이
함길·평안도의 전지의 조세는 다른 도의 수량보다 이미 감한 것인데, 이에서 또 감한다면, 만약 군병의 동원이나 큰 흉년이 있을 경우 이를 감당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실시하기 어려울 것 같으오니, 조종조(祖宗朝)에 이루어 놓으신 법에 의하여 전대로 시행하는 것이 편하고 유익하지 않을까 하오며, 그 폐단을 구제 방지하는 조건을 아울러 기록하여 아뢰나이다.

 

무릇 가하다는 자는 9 8 6 57인이며, 불가하다는 자는 7 4 1 49명입니다.

-         세종 49, 12(1430 경술 / 명 선덕(宣德) 5) 8 10(무인)


 

그렇다면 세종이 공법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기 전에 조선시대의 토지세는 어떠했을까?

 

본국의 전부(田賦)의 법이 고려 때부터 1결마다 30두를 거두었으니, 이는 공법(貢法)인 것입니다.

태조께서 감손(減損)에 따라 세를 덜어 주는 제도를 처음 세우시매 진실로 아름다운 법이나, 다만 손과 실을 결정하는 데에도 적중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갓 민간만을 시끄럽게 하여,

다시 공법을 정하였으나, 지금 정한 세수(稅數) 도 혹 미진함이 있으니 호조로 하여금 다시 참작을 더하여 공사가 편리하게 시행토록 하옵소서

 

고려의 말기에는 토지 제도가 크게 허물어져서, 우리 태조께서 즉위하여 먼저 토지의 경계를 바루고 조세 받는 수량을 정하셨다.

1결마다 조미(糙米) 30(), 1결마다 잡곡 30두로 하니, 곧 옛날 10분의 1을 받던 수량이다. 또 가을철 추수기에 손실의 제도를 세웠는데, 성주(成周) 시대의 연사를 보아서 조세를 거두던 뜻이다.
태종조에서도 또 조관(朝官)을 보내서 심검(審撿)하는 법을 세워서, 제도가 지극히 세밀하여 실로 아름다운 법이었다.

 


공법
을 버리고 예전대로 손실법을 행하게 하다

 

임금이 말하기를,

공법은 옛일을 상고하고 지금을 참작해서 대신들과 더불어 의논하여 정한 것이고, 본래에는 백성들에게 편리하게 하고자 한 것이었다. 내가 부덕(不德)하여 20여 년을 왕위에 있으면서 일찍이 한 해도 풍년이 없었고, 해마다 흉년이 들었으나 뒷세상의 풍년도 기필할 수 없으니, 이 법은 단연히 시행할 수 없겠다. 그러나 이 법을 이미 정해서 전국에 반포했은즉, 후세의 자손이 필시 행할 때가 있을 것이니, 이제 황희(黃喜) 등의 의논을 따르라.하고, 즉시 정부에 전지를 내리기를,

각도의 조세는 공법을 버리고 예전대로 손실법(損實法)에 의하여 민생에게 좋도록 하게 하라.

-         세종 78, 19(1437 정사 / 명 정통(正統) 2) 8 28(을유) 


하지만, 세종 13년부터 세제개혁을 하던 세종의 공법은 시행할 수 없었다.

 

나는 경상·전라 양도의 인민들 가운데 공법의 시행을 희망하는 자가 3분의 2가 되면 우선 이를 양도에 시행하려니와, 3분의 2에 미달한다면 기어이 강행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만약 이 법을 시행하여 어떤 폐단이 생기게 되면 즉시 이를 개정하곤 하면, 거의 그 폐단도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은 반드시 이 법을 시행하려는 것도 아니니, 경들은 이 법의 이해(利害)를 잘 알아서 속히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라.

 

위의 기록으로 알 수 있듯이 공법을 시행할 때 3분의 2가 찬성하면 시행하겠다는 발상을 세종은 하고 있다. 요즘에도 중대한 헌법상황이면 2/3의 찬성이 있어야 가부가 결정되는 것과 같다. 그후 압도적인 전라. 경상도에 시험 시행을 한다. 한글창제 4년전의 일이다.

 
우선 경상·전라 양도에 공법을 시행하다

의정부(議政府)에서 호조(戶曹)의 첩정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지난 정사년에 비로소 공법(貢法)을 세웠으나 마침 흉년으로 인하여 아직 정지하였었는데, 금년에 화곡이 조금 풍년이 들고, 또 이 공법이 시험한 지가 이미 2년이 되었으나 별로 큰 폐단이 없사오니, 청하건대 이제부터는 경상(慶尙)·전라(全羅) 양도로 하여금 모두 공법(貢法)을 행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 89권, 22년(1440 경신 / 명 정통(正統) 5년) 5월 8일(기유)


정기준이 유림과 사대부를 꼬셔서 공법에 반대한다는 설정이 조금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세종이 하려는 공법은 실제 전체적으로 세수가 줄어들지만, 그 동안 많은 세금을 내던 사대부와 유림들에게는 두손 두발 들고 환영할 만 한 부익부 빈익빈을 가져올 확률이 높은 세제감면 개혁이었다.

한마디로 감세정책이기는 하지만, 실제혜택은 토지가 많고, 경기, 경상, 전라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유림과 부자들에게 혜택이 가는 부자감세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척박한 땅에 사는 사람들은 반대를 했고, 상대적으로 부유한 경상. 전라는 찬성이 압도적이었다.

 

<뿌리깊은 나무>가 최근의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는 알겠는데, 정기준이 세종의 법이 사대부와 유림을 말살하려는 계획이 있는 무서운 법이라며 반대한다는 에피소드는 그냥 보기에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유림의 모습을 보여주는 세종과 기득권 유림의 극명한 대립과 충돌로서 좋은 소재이고 사극이 가져야할 "현실비판"이기는 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세종의 뜻은 과도한 세금으로 부터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려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혜택은 부익부빈익빈인 부자감세를 하는데,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을 자신들의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사대부와 공직에 있던 위정자들이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세종시대에는 부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한다는 워린버핏 같은 생각을 가진 위정자들이 많았다.

실제, 조선의 세금(토지부가소득세)공법은 경상,전라 1등, 충청.경기 등 2등 그리고 나머지를 3등, 기타 제주 4개의 지역으로 나누고 그 안의 토지의 질에 따라 5가지로 구분해서 토지가 상등품으로 갈수록 중과세를 하는 정책으로 토지부가가치에 따른 중과세 세금정책을 편다. 요즘은 보통의 월급쟁이 보다 부자가 세금을 적게 내는 정책이 주류를 이루고 왜 워린버핏같은 이가 없느냐며 워린버핏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공분하지만 말이다.

성리학 유림과 세종이 충돌하는 궁궐 내불당(불교사찰) 사건은 공주의 남자편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간단하게 결론만 말하면 집현전을 비롯한 대다수는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이 늙어 노망이 들었다고 할만큼 중요한 사건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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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독자들에게이 사이트가 유용했다. 자신의 멋진 전망을 공유하는 저자에게 감사.


 <계백>에서 의자왕(조재현)이 은고(송지효)를 겁탈하는 베드신이 방영되었다.

요즘은 부부간에도 의사에 반한 물리력을 동원한 강제적인 성관계는 처벌받는 세상이다.

의자왕(조재현)은 태자가 된 후 가장 먼저 한일은 은고(송지효)와 계백(이서진)을 갈라놓는 일이였다.


그런데도 은고와 계백은 가까이 하여 의자왕(조재현)와 무왕은 계백은 외지로 보냈지만, 계백은 전공을 세워 사비(부여)로 입성한다.


계백과 은고를 갈라놓는데 실패한 의자왕자는 계백을 축출하려고 음모를 꾸며 은고를 함정에 몰아넣고 수족과 같은 족친을 잘라버리고 은고 부의 상징이었던 상단까지 국고로 환수한다.


그리고 은고를 죽이려는 무왕에게 의자왕자는 은고가 용종을 임신했다고 말하며 은고를 살려준다. 계백을 마음에 두고 있던 은고는 의자왕자에게 식상한 발언을 한다.

나의 몸은 가질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의 마음은 가질 수 없다. 강제로 키스를 하고 은고를 범하려던 베드신에서 의자왕자는 은고가 눈물을 흘리자 방을 나와 버린다 .
의자왕이 매너남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계백>에서 결국에는 의자왕과 계백이 갈라진 진 것은 은고 때문이고, 백제가 망한 이유는 겨우 계백의 여자를 빼앗은 의자왕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더불어 계백은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보다는 너희 가족을 위해서 싸우고 그렇지 않으면 삶을 모색하라고 말을 한다.


계백은 전투의 기본을 망각한 것이다. 자신의 처와 자식을 죽인 건 단순히 은고를 잊지 못해서 처와 자식에 대한 애정이 없는 반증일 뿐이다. 계백의 눈으로 본 백제의 마지막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하겠다는 잘못된 멜로 계백이 백제의 마지막 충신(?)이라는 계백을 욕 먹이고 있다. 물론, 드라마 계백에서는 처와 자식을 죽이는 설정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은고는 삼국사기에는 나오지 않는 인물로 <일본서기>에서만 등장한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백제가 망한 이유가 <은고>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은고가 국정을 농단해서 백제가 망했다는 것이다.


<계백>은 은고를 사택비의 입을 통해서 은고 너는 나와 닮았다고 수시로 언급하고 있다.

사택비가 말한 은고가 사택비와 닮음 점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사랑하지 않는 자의 품에 안겨서 정치욕만 남은 사택비를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은고를 보고 사택비를 창조한 것이 아닐까? 아니면 대부분의 사극작가들이 그런 것처럼 단순히 이전사극 선덕여왕의 미실을 베낀 것이겠지만 말이다.


사실 드라마 리뷰는 하고 싶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사택비가 선화공주를 질투해서 선화를 죽이고 <교기>를 왕에 올려 세웠다는 설정을 할 때부터 <계백>은 역사드라마가 아닌 멜로사극으로 넘어가 버렸다. 멜로물을 리뷰하는건 체질에 맞지 않는다. 그저 드라마속 역사이야기만 하고자 했었다.


대를 위해서 충성했지만, 돌아온 것은 아버지 무진은 사랑하는 사택비를 무왕에게 빼앗겼고, 아들 계백은 무왕의 아들 의자왕자를 태자에 올려 왕이 되는 발판을 마련했지만, 사랑하는 연인 <은고>를 빼앗겼다는 설정을 하는 순간 드라마 시청률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드라마 속에서 감춰진 역사를 알거나 작가가 역사를 어떻게 재해석하는지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도대체 <계백> 작가가 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은고와 계백의 사랑의 이야기가 절절하지도 않기 때문에 여성시청자들로 부터도 외면을 받아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백제가 망했기 때문에 승자의 역사로 백제와 의자왕을 나쁘게 그렸을 것이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백제는 망했을지 모르지만, 의자왕과 그의 후손이 망한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를 보더라도 의자를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의리가 있어서 <해동증자>라고 칭했다는 말뿐만 아니라, 웅걸차고 용감하였으며 담력과 결단력이 있었다.” 라며 망국의 왕에게는 있을 수 없는 말의 성찬이다. 역사책 한 줄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김부식을 사대주의자로 몰아세우고 신라의 후손인 김부식이 백제를 깍아 내리고 폄하하기 위해서 역사를 왜곡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일수록 드라마의 설정에는 굉장히 민감하다.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하면서 말이다.


오히려 전하는 말은 의자왕이 여자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닌가하는 망국의 한을 읊은 낙화암의 3천 궁녀만이 있을 뿐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삼천궁녀를 사실처럼 믿고 있어서 탈이지만 말이다. 이 또한 사실은 아니다.


어쨌든, 백제 의자왕은 항복하므로서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의자왕은 당으로 끌려갔지만 행복(?)한 삶을 살다가 죽는다. 물론, 뱀대가리가 용꼬리보다는 나을 수 있지만 말이다.


이때 끌려간 왕자만 13여명이고 은고도 함께 당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그의 아들 부여융은 백제 부흥군을 잡기 위해서 웅진도독으로 다시 백제에 들어온다.
 

어떤 책에는 ‘경신년(제명천황 6년, 660) 7월에 이르러 百濟가 사자를 보내, 唐과 新羅가 힘을 합해 우리를 공격하여 이미 義慈王과 왕비, 태자를 포로로 하여 갔다고 아뢰었다.


11월 1일에 將軍 蘇定方 등이 사로잡은 百濟王 이하 太子 隆 등 여러 왕자 13명, 大佐平 沙澤千福·國辨成 이하 37명, 모두 50여 명을 朝堂에 바쳤다. 급히 인도하여 천자에게 나아가니, 천자는 은혜로운 칙명으로 보자마자 풀어주었다


百濟王 義慈, 그 妻 恩古(은고), 그 아들 隆(융) 등, 그 신하 佐平 千福, 國辨成, 孫登 등 모두 50여 명이 가을 7월 13일에 蘇將軍에게 사로잡혀 唐에 보내졌다. - 일본서기


백제 부흥군에게 부여융의 존재는 왜에서 귀국한 부여풍과 명목상의 왕일지라도 또 다른 정통성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고, 백제부흥군은 분열될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백제가 망할 때 서울 사비(부여)는 둘째 부여태에게 맡기고 의자왕은 태자효와 웅진(공주)로 옮겨서 옹성전에 돌입한다. 하지만, 부여태가 왕을 참칭하자 태자 효의 아들 부여문사는 부여융에게 작은 아버지 부여태가 왕을 참칭한 것은 당나라가 물러난 후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며 부여융과 함께 당의 소정방에게 항복한다. 결국 부여태에게는 사람이 없어서 부여태도 항복하고 만다.

 

이는 흑치상지도 마찬가지이다. 흑치상지는 처음 백제 부흥군(?)에서 맹활약하지만, 당에 항복한 후 백제부흥군을 척살하고 붕괴시키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대부분 상층부의 백제인사들은 백제가 망하던 망하지 않던 별다른 타격 없이 잘 먹고 잘살았다. 왜 백제부흥기로 설정하는지는 알 수 없다. 최소한 백제는 이후에도 3년간 존재했는데 말이다.


어쨌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군림의 욕망과 자신의 부를 유지하고 백성위에 군림하는 것이지 백성의 안전에는 별다른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계백>처럼 의자왕이 계백의 연인을 빼앗을 만큼 망나니(?)였을까? 개연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의자왕은 좌평으로 임명한 서자만 해도 41명이나 되었을 만큼 후비들이 많았다.


17년(657) 봄 정월에 왕의 서자(庶子) 41명을 좌평으로 삼고 각각에게 식읍(食邑)을 주었다.


<계백>에서는 의자가 632년 태자가 되었는데 간신히 아들인지 딸인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이 세자빈이 낳은 어린 핏덩이에 불과한 자식이 있을 뿐이다.

 

3째 아들로 추측되는 부여융만 해도 615년에 태어난다. 이때는 의자왕자가 태자가 되기 한참전의 일이다. "무왕 재위 33년(632)에 태자로 삼았다". 의자왕이 대략 15~17살 이전에 결혼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백제부흥군의 왕이 된 부여풍은 이미 630년에 왜에 가 있었다.


그런데 의자왕의 정비는 드라마 계백에서처럼 세자비인 여문진의 여식이기 보다는 <은고>가 정식 세자비이고 은고는 의자가 왕이 되었을 때 정비였다.


어떤 이들은 의자왕을 계백의 연인인 은고를 빼앗는 파렴치한으로 폄하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왜 의자왕을 폄하한 막장드라마를 만드는 것이냐고 말을 한다.


사실 계백은 막장드라마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기는 하다. 의자왕의 어미인 사택비가 자신의 아들 의자를 죽이려하고, 의자는 세자비인 은고와 함께 어머니인 사택비를 죽이려는 설정자체가 웃기는 막장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2011/07/27 - [드라마&역사/계백] - 계백, 의자왕 어머니 선화황후 아닌 사택비 가능성 더 높다.

비판의 지점은 이곳이지 여성편력이 심했던 의자왕을 여성편력이 없던 것으로 미화하는 것이 역사왜곡이고 막장이다.


그런데 의자왕이 무슨 성역이라도 되나? 가장 개연성 있는 장면이 의자왕의 여자편력인데 말이다.


<계백>에서 은고는 612년 선화공주가 죽은 시점에 태어난 것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615년에 이미 3째 아들 부여융이 태어났다. 사실 부여융이 3째 아들이 아닌 4째 아들일 가능성이 더 높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630년에 왜에 간 부여풍이 세자의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은고는 의자왕과 비슷한 나이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오히려 막장이라면 은고를 계백의 연인으로 그린 것이 막장이면 막장이지 않을까한다. 아무리 요즘 드라마 트랜드가 연상녀와 연하남이 유행이라지만, 계백과 은고를 연인으로 설정한 <계백>의 작가는 머리가 조금 이상한 것이 아닐까한다.


은고는 의자왕의 여성편력 때문에 대리만족과 욕구 해소하는 방편으로 권력에 집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의자왕 19년(659) 봄 2월에 여러 마리의 여우가 궁궐 안으로 들어왔는데 흰 여우 한 마리가 상좌평(上佐平)의 책상[書案] 위에 앉았다. - 삼국사기 백제


위의 기록은 참요의 성격이 강하다. 여우란 여성을 뜻하고, 궁에 들어온 후비들일 가능성이 있다. 의자왕 17년(657년)의 서자 41명에게 좌평과 식읍까지 둔 것을 염두해 두고 국정을 농단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흰 여우 한 마리“는 여러 여우 중에 가장 늙은 여우를 뜻하고 왕비 <은고>를 뜻하는 것이다. 대 놓고 은고가 백제를 망하게 했다는 기록은 일본서기에 보인다.
 

하물며 밖으로 곧은 신하를 버리고 안으로 요망한 계집(祅婦)을 믿어 오직 충성되고 어진 사람한테만 형벌이 미치며 아첨하고 간사한 사람이 먼저 총애와 신임을 받아 표매(標梅)에 원망을 품고 저축(杼軸)에 슬픔을 머금는다......'

- 대당평백제국비명(김영심 역)


어떤 사람은 “百濟가 스스로 망하였다. 임금의 大夫人이 요사스럽고 간사한 여자로, 무도하여 마음대로 국가의 권력을 빼앗고 훌륭하고 어진 신하들을 죽였기 때문에 이러한 화를 불렀다. 삼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삼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 하였다. - 일본서기 660년


<계백>에서 성충이 은고와 한편으로 그린 건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성충이 죽은 건 대부인 은고가 성충같이 훌륭하고 어진신하들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추후에 성충과 은고가 반목하게 그릴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정치는 생물이니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지 않겠는가? 의자왕이 신라를 멸망직전까지 몰아세우다 자아도취 되어 말년에 백제를 망하게 한 것처럼 말이다.


의자왕자의 부인이고 부여효, 부여태, 부여융, 부여풍 등의 어미인 은고를 사랑한 것으로 그린 <계백>이라니 얼마나 막장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나 계백과 은고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드라마인데 어때요 의자왕 나뻐요. 백제가 망한 이유가 있었네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겠지만 말이다.


백제의 마지막 충신으로 추앙받는 성충도 주색에 빠진 의자왕에게 간언하다 굶어 죽고, 백제의 마지막에 대해서 언급한다.
 

16년(656) 봄 3월에 왕은 궁녀와 더불어 주색에 빠지고 마음껏 즐기며[淫荒耽樂]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좌평 성충(成忠)<혹은 정충(淨忠)이라고도 하였다.>이 극력 간언하자 왕은 분노하여 그를 옥에 가두었다. 이로 말미암아 감히 간언하는 자가 없었다. - 삼국사기


성충은 백제 개로왕을 예로 들어 궁녀와 놀고, 연못을 파고, 방장산을 만들고, 태자궁을 크게 한 것에 간언을 하였을 것이다. 개로왕이 백제 한성을 의자왕처럼 꾸미고 궁녀들과 놀다가 고구려 장수왕에 불태워지고 백제는 웅진으로 천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나라가 망하는 공식과 원인은 외부보다는 내부로부터 붕괴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성충의 말을 들었더라면 백제는 망하지 않았을 것이라 말하지만 성충의 말을 듣는다고 백제가 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지, 성충의 말을 들었다면 좀 더 백제가 망하는 시기를 늦출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백제의 멸망은 고구려의 방어선의 이분화로 인해서 고구려 멸망을 과속화한 측면이 있다. 백제멸망 이전 고구려 남방은 백제가 신라를 견제함으로 안정화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의자왕자가 615년 이전 자신의 애(효, 태, 융, 풍 등)들을 낳은 은고를 계백으로 부터 빼앗는 설정과 계백이 바람난 은고와 사랑하는 사이라고 계백이 유부녀를 사랑하는 순간 단순 시청율을 노린 막장코드일 뿐이다. 아무리 드라마 시제 635년경이며 부여효의 아들인 원손자 부여문사도 볼 때이다.

최근 공주의 남자, 광개토태왕 등 사극조차 막장코드를 넣는걸 당연시 하고 대세가 되었다. 오히려 사극은 작가나 제작자나 시청자가 당시 역사를 모르니 보다 쉽게 막장코드를 만들어 넣는다. 물론, 드라마인데 뭐 어때라는 드라마도 모르고 역사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상관이 없겠지만 말이다.
 

시대극은 당시 역사를 알고 보면 재미있는 요소가 참으로 많다. 아무것도 모르고 단지 작가가 창조한 세상에서 보는 사극(시대극) 보다는 최소한 100배 이상 더 재미가 있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역사와 드라마의 재미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고, 작가의 잘못된 역사지식을 바탕으로 만든 드라마를 역사로 인식하지 않아도 된다. 더불어 자녀들에게도 드라마가 아닌 바른 역사를 이야기해 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일석3조 이상을 얻을 수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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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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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crantfordsflowers.com BlogIcon 고명진 2012.01.05 0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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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Favicon of http://walltownshipchamber.com BlogIcon 원숭이 2012.01.07 0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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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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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Favicon of http://www.perfectmotoindustry.com BlogIcon Shock Absorber 2012.08.21 1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llkjihygjh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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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은 가까이 하여 의자왕(조재현)와 무왕은 계백은 외지로 보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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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도 은고와 계백은 가까이 하여 의자왕(조재현)와 무왕은 계백은 외지로 보냈지만, 계백은 전공을 세워 사비(부여)로 입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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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은 가까이 하여 의자왕(조재현)와 무왕은 계백은 외지로 보냈지만???????

    WTF`?

  17. Favicon of http://finance.boston.com/boston/news/read/22360046/survival BlogIcon survival radio stations 2013.01.05 2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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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Favicon of http://ford.grupocaiuas.com.br/new-fiesta-hatch BlogIcon new fiesta 2013.01.30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시물 반갑습니다. 나는 매일 다른 블로그에 대한 자세한 도전 뭔가를 배우게됩니다. 항상 다른 작가의 콘텐츠를 읽고, 그들의 상점에서 뭔가를 조금 연습을 자극한다. 당신이 상관 없어 여부를 내 블로그에 콘텐츠를 일부 사용 싶어요. Natually 당신에게 당신의 웹 블로그에 링크를주지. 공유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주의 남자>에서 성삼문, 신숙주, 이개 등 한글창제에 관여한 인물이라고 알려진 사육신이 나온다.
 
10월 9일이 한글날이기는 한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에 대한 상식이 얼마나 잘못된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10월 9일이 훈민정음(한글)을 만든 565회 한글날이라고 한다. 이부터 잘못된 상식중에 하나다.

훈민정음(한글)이 만들어진 것과 반포일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더군다나 훈민정음 창제에 성삼문 신숙주는 훈민정음 창제에 커다란 공이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성상문과 신숙주, 이개 등 사육신을 포함한 집현전은 한글창제에 전혀 관여한적이 없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이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암기식 역사교육을 받았는지 알게될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 뿌리>는 세종 이도가 훈민정음을 만들게 되는 계기를 장인 심온의 죽음으로부터 찾고 있다.


심온은 사은사로 명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심온과 관련된 자들의 문제로 심온 또한 자리를 보전할 수가 없었다.


요동에서 돌아오는 심온에게 서울의 사정을 알리려는 자가 있었는데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심온의 노비 어리숙한 석삼으로 그렸다.


석삼이 어리석어서 심온에게 정확히 말로써 밝히지 못하고 또한, 글로써 심온에게 전하지 않아서 심온이 결국에는 서울로 돌아왔지만, 유배를 떠나고 심온이 자결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뿌리 깊은 나무는 어리석은 백성이 쉽게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글이 있었다면 심온도 죽지를 않았을 것이고 석삼이도 죽지 않았을 거니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를 만들어 자신이 뜻한바를 글로써 표현한다면 억울함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결심을 하는 변곡점으로 삼은 것이다.




이는 훈민정음 반포 기념 정인지의 서문에도 명확히 나오고 있다.


우리동방의 예악 문물(禮樂文物)이 중국에 견주되었으나 다만 방언(方言)과 이어(俚語)만이 같지 않으므로, 글을 배우는 사람은 그 지취(旨趣)의 이해하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사람은 그 곡절(曲折)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로워하였다. 옛날에 신라의 설총(薛聰)이 처음으로 이두(吏讀)를 만들어 관부(官府)와 민간에서 지금까지 이를 행하고 있지마는, 그러나 모두 글자를 빌려서 쓰기 때문에 혹은 간삽(艱澁)하고 혹은 질색(窒塞)하여, 다만 비루하여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사이에서도 그 만분의 일도 통할 수가 없었다.

- 세종 28년, 1446년 9월 29일(음)  훈민정음 반포


 그런데 왜 세종은 훈민정음(한글)을 비밀스럽게 만들었을까? 당시의 시대상황을 알게 된다면 세종 이도가 비밀프로젝트로 훈민정음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유학자의 다수는 한자를 제외한 문자는 오랑캐들이나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조선이 소중화인 것은 중국과 같은 문자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다. 왜 스스로 문자를 만들어 오랑캐가 되어야 하느냐고 하던 사람들이 당시의 사림파 유학자의 대다수였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언문청>,<정음청>을 만들어서 수많은 저술활동을 한다.

세종은 수양대군(세조)에게 석가의 일생을 훈민정음으로 기록한 <석보상절>을 만들게 하였다. 더불어 세종 스스로 석가의 탄생과 일생을 다룬 <월인천강지곡>의 대서사시를 훈민정음으로 만들었다. 세종과 세조는 불교와 훈민정음(한글)과는 땔 수 없는 불가분의 존재였다.


언문청에서는 <사서>를 훈민정음으로 번역케하고, <소학>, 농서나 삼강행실도 등 모든 방면에 훈민정음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중종반정을 한 사림파들이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 후 가장먼저 한일은 9월 4일 <언문청>을 없애는 일이였다.


세종이 죽고 문종이 즉위한 초년에도 <정음청>을 없애라는 끝없는 상소가 올라온다.

하지만, 문종이 죽고 단종 즉위년 1452년 12월 2일 <정음청>을 없앤다.


사림파가 세조 죽이기를 감행한건 겉보기에는 단종폐위에 있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불교와 훈민정음과 당시에는 잡기라고 천대시한 천문, 지리, 국방 등 다양한 학문에 집착한 세조(수양대군)을 이단이라고 하는 데 서도 찾을 수가 있다.


오직 <유학> 그것도 주희(주자)에 집착해 국가경영에 유학만이 유일한 <종교>라고 생각한 사림파 사람들에게 세조나 세종은 이단이었다. 세종이 죽고 나서 세종은 초기에는 요.순이었지만, 말년에 망년이 들었다고 공격했던 자들이 당시 사림파 유학자였다. 중종반정에 성공한 세력에게는 세조가 죽어야 조선이 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신숙주와 성삼문이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를 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학자군에서 조차 말이다. 하지만, 신숙주와 성삼문이 요동의 황찬을 찾아간 일은 훈민정음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신숙주와 성삼문이 명나라의 한림학사인 언어학자 황찬을 찾아간 일은 <운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운회 요즘으로 치면 영어사전처럼 한자의 정확한 발음을 통일 시키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한자의 발음은 중구난방이여서 통일되지 않았다. 조선뿐만 아니라 명나라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오히려 당나라 시대 고어 발음은 조선이 더 비슷하고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종은 당시 <한자>의 정확한 발음을 알고자 성삼문과 신숙주를 파견했던 것이다.


집현전 부수찬(副修撰) 신숙주(申叔舟)와 성균관 주부(注簿) 성삼문(成三問)과 행 사용(行司勇) 손수산(孫壽山)을 요동에 보내서 운서(韻書)를 질문하여 오게 하였다.


세종 27년, 1445년 1월 7일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훈민정음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보면 쉬이 알 수 있다.  훈민정음 창제는 신숙주와 성삼문이 요동의 황찬을 찾아가 <운서>를 질문하기 전인 세종 25년 1443년 12월 30일 이다. 운서란 중국의 발음과 훈을 기록한 <홍무정음>을 말하는 것이지 한글(훈민정음)의 문자, 운서와는 하등 관련이 없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 세종 25년 1443년 12월 30일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고 나서 공식적으로 반포된 때는 위에도 언급했지만, 세종 28년 1446년 9월 29일(음) 이였다.


1445년 1월 7일부터 황찬을 만나러간 신숙주와 성삼문, 손수산은 <운서>에 대해서 알아오고 1447년 결과물을 내 놓는다. 이름하여 동국정운이다.


이달에 《동국정운(東國正韻)》이 완성되니 모두 6권인데, 명하여 간행하였다.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신숙주(申叔舟)가 교지를 받들어 서문(序文)을 지었는데

..중략..

이에 사성(四聲)으로써 조절하여 91운(韻)과 23자모(字母)를 정하여 가지고 어제(御製)하신 《훈민정음》으로 그 음을 정하고, 또 ‘질(質)’·‘물(勿)’ 둘의 운(韻)은 ‘영(影)’ 으로써 ‘내(來)’) 를 기워서 속음을 따르면서 바른 음에 맞게 하니, 옛 습관의 그릇됨이 이에 이르러 모두 고쳐진지라, 글이 완성되매 이름을 하사하시기를, ‘《동국정운(東國正韻)》’이라 하시고, 인하여 신(臣) 숙주(叔舟)에게 명하시어 서문(序文)을 지으라 하시니.. 생략..

- 세종 29년 1447년 9월 29일


신숙주가 죽고 나서 쓰여진 신숙주 졸기에도 정운에 대한 언급을 한다.
 

정음(正音)을 알고 한어(漢語)에 능통하여 《홍무정운(洪武正韻)》을 번역하였으며, 한음(漢音)을 배우는 자들이 많이 이에 힘입었다. - 성종 6년, 1475년 6월 21일


홍무정운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한 저서가 <동국정운>인 것이다.
 

세종조(世宗朝)에 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 등을 보내어 요동에 가서 황찬(黃瓚)에게 어음(語音)과 자훈(字訓)을 질정(質正) 하게 하여 《홍무정운(洪武正韻)》과 《사성통고(四聲通考)》 등의 책을 이루었기 때문에,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이에 힘입어서 한훈(漢訓) 을 대강 알게 되었습니다. - 성종 1487년 2월 2일


세종께서 또 언문 글자로써 화음(華音)을 번역하고자 하여 한림학사 황찬(黃瓚)이 죄로써 요동에 유배 되었다는 말을 듣고 공에게 명하여 조경사(朝京使)를 따라 요동에 들어가서 황찬을 보고 질문하게 하였다. 공은 말만 들으면 문득 해득하여 털끝만큼도 틀리지 아니하니 황찬은 크게 기특히 여겼으므로 이로부터 요동에 갔다온 것이 무릇 13번 이었다

- 신숙주 묘비명 <동문선>



황찬에게 간 일은 훈민정음 때문이 아니라. 신숙주의 묘비명에 있는 것처럼 언문(훈민정음) 한글로 정확한 화음(한음), 한자훈 번역하기 위해서 황찬을 13번이나 찾아간 것이다.


하지만, 많은 학자나 소설가들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위해서 성삼문, 신숙주가 요동까지 찾아가 명나라 몰래 유배된 황찬을 찾아 훈민정음 창제에 필요한 정보를 배워왔다고 퍼트린 것이다.


년도별로 정리를 하면 집현전학사들을 비롯해서 신숙주와 성삼문이 훈민정음 창제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443년 12월 30일(음) 훈민정음 창제 세종대왕 직접 만듬
1445년 1월 7일 성삼문, 신숙주, 요동 한림학사에 중국(화음) 운서(홍무정운)에 대해서 질문
1446년 9월 29일(음) 훈민정음 반포
1446년 12월 이과와 이전의 취재에 훈민정음 시험

1447년 4월 20일 함길도 자제의 관리 선발에 훈민정음을 시험하게 하다
1447년 9월 29일 신숙주, 홍무정운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해 동국정운을  만듬


조금만 훈민정음 창제에 관심이 있었다면 황당한 소설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과 드라마가 역사가 되는 현장에 다시금 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제발 한글창제를 위해서 황찬을 찾아가는 황당한 설정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 비밀조직 프로젝트 팀으로 성삼문이 한글창제에 깊이 관여했다는 것으로 봐서 뿌리깊은 나무도 어쩔수 없는 선택을 할것같다는 생각이다. 이는 또다시 사육신 성삼문의 신화창조에 일조할것 같다.
 
가장 적극적으로 훈민정음을 사용한 이는 세조(수양대군)과  비인 정희왕후였다. 정희왕후는 수시로 대신들에게도 언문(훈민정음)으로  명령을 내리기도 했었다.
 


공주의 남자에서 세령공주는 계유정난 시 김승유만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갇혀있는 광에서 여리를 통해 한자로 쓰여진 혈서를 김승유에게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좀더 극중 리얼리티를 살렸다면 수양대군의 딸 세령공주는 한자 혈서가 아닌 훈민정음(언문)으로 "승법사 여리"라고 보내지 않았을까?


훈민정음(언문, 한글)은 세종대왕 스스로 만든 글자이다. 그것도 음운학에 조예가 깊었던 세종대왕이 말이다. 실록을 비롯한 고전들이 모두 세종(世宗)어제(御製) 세종임금이 만든 이라고 하는데 무슨 배짱으로 극히 일부 학자와 소설가들은 이를 부정하는지 알수가 없다.


대한민국은 한글날을 10월 9일로 되어 있지만, 세종대왕이 한글(훈민정음)을 창제한 1443년 12월 30일(음)을 기준으로 양력으로 환산해서 1월 15일로 복원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1443년 12월 30일(음) 훈민정음 창제일도 아니고, 1446년 9월 29일(음) 훈민정음 반포일도 아닌 훈민정음 혜례본에 책을 발간한 9월 10일(음)에 맞춘 정체불명의 양력 10월 9일 한글날은 뜸금 없다고 하겠다.


정상적으로 복원하자는데 북한(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조선글날 1월 15일로 했다고 빨갱이 따라하는 거냐며 너 빨갱이지라는 초딩 같은 소리는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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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봉성 2011.10.08 0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세종대왕은 처음에는 중국어 발음을 표기하는 소리문자로서의 한글을 창제하였는데 이 부분에서 집현전 학자들과 마주치게 된다. 집현전 학자들이 반대한 것은 한글 창제를 반대한 것이 아니고 중국문헌을 중국식 발음으로 한글로 토를 달려고 한데 있는 것이다.

  2. 지나가던 이 2011.10.15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뿌리 깊은나무 인물 소개에 그런게 있었는지 몰랐네요
    그렇다면 진짜 실망인데
    요즘 드라마는 한국사람만이 아닌 외국인들도 보는데 더 신중해야 할일을 저렇게 어이없이 만들다니
    만약 저런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진짜 화날거 같네요
    제발 저따위로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역사를
    왜곡한다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죠 아니 만들지를 말아야겠죠

  3. 전휘정 2011.10.28 0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읽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군요.. 성삼문이 중국에 간것이 훈민정음과 관련이 없다는 것만으로 성삼문이 한글창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완벽한 주장이 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단지 그이유만으로는 불충분한 것 같은데요..

  4. 이규삼 2011.11.08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글 창제가 뿌리깊은나무 극중내용이 틀림없다고 봅니다. 가림토 문자 인용하는이들은 신미대사를 말하는 이들이 있으나 세종대왕과 만남이 한글반포 이후였음으로 말이안되고, 환단고기의 가림토문자를 말하는 이들은 환단고기가 1911년에 완성된 책이므로 믿을것이 못됩니다. 집현전에 언문청을 만든것은 반포한 이후이므로 학사들의 역할도 직접적인 관계가 없을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검색해 보시면 세종대왕 단독 창제로 밖에 말할께 없읍니다.

  5. Favicon of http://www.angeljackets.com/ BlogIcon winter clothing 2011.11.16 1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종대왕과 만남이 한글반포 이후였음으로 말이안되고, 환단고기의

  6. Favicon of http://crossnh.tistory.com BlogIcon 성현도사 2011.12.09 0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그렇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_^

  7.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8.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

  9. Favicon of http://www.perfectmotoindustry.com BlogIcon Folding Basket 2012.08.21 1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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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Favicon of http://discardedlies.com/date/?07/30/2007 BlogIcon wireless dog fence for small dogs reviews 2012.11.14 1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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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Favicon of http://iweed.info/blogs/viewstory/11570 BlogIcon water pouch bottle 2012.11.19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제에 커다란 공이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성상문과 신숙주, 이개 등 사육

  12. Favicon of http://www.sbwire.com/press-releases/survival-warehousecom-helps-survivalists-.. BlogIcon survival radio amazon 2013.01.05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불어 정난공신이 되고자 이색의 후손들이 정치를 했냐는 거냐고 반문을 하면서 어이가 없고 개탄스럽다고 말을 한다. 도대체 정난의 주동자인 안평대군과 김종서와 황보인이 충신이라는 말인가?

  13. Favicon of http://1000moon.pe.ne.kr/board.php?board=Chunmoonhaeza&category=6&command=body.. BlogIcon hdhghh 2013.01.17 1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一聲雞已報春風
    새벽 닭 우는 소리 봄소식 알리네


<공주의 남자>에 관한 기사를 보면 역사와 야사와 픽션을 절묘하게 믹스한 최고의 사극이라고 칭찬을 한다.
공주의 남자 결말은 <금계필담>의 결말과 유사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김승유와 세령공주만의 해피엔딩이라는 것만 빼고 말이다.

김승유의 신숙주집의 신면의 노비가 된 세령구하기 프로젝트라는 철없는 사랑놀음 때문에 죽어나간 사람들을 계산하면 세조(수양대군)이 죽인자보다 많다.

친구라는 정종죽여, 금성대군 죽여, 단종도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시애의 난에 동원된 수 많은 사람들도 김승유 때문에 반란군이 되었으니 말이다. 결국에는 신면도 죽음에 이르게 했으니 말이다.

물론, 사랑으로 다 용서가 되는 멜로에서는 철이 있던 없던 김승유는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건 주인공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다. 그렇더라도 주인공으로서는 참으로 감당이 안되는 민폐주인공임에도 분명하다.

공주의 남자 결말이 그래서 개인 김승유와 세령공주만의 해피엔딩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단지, 김승유가 장님이 되었다는 설정만 빼고 나면 말이다.

그런데 김승유가 낳은 아들은 효달일까?
 
정말 역사와 야사와 픽션을 절묘하게 믹스한 최고의 사극일까?

기자들이 역사를 연구한 적도 없고, 조선의 역사를 읽어본적도 없고. 시청자들이 역사를 알고 보지 않는것이니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공주의 남자 제작자는 스스로 "조선의 역사속 감춰진 리얼 드라마틱 러브"라고 선전을 하였다.

하지만, 공주의 남자에서 역사적인 사건은 제대로 다룬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보면 볼수록 역사를 망가트린것만 보았다. 대부분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재해석을 하는게 일반적인데 공주의 남자에선 재해석이 없다. 왜 사건이 일어났을까 보다는 적대적인 사람들이 한편이 되어서 역사모독을 하는 수준이다.

더군다나 극적인 전개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 드라마나 역사스페셜은 만드는 순간 픽션이 가미될수 밖에 없다.

사실 공주의 남자를 보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글일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공주의 남자를 보는 사람이 검색을 통해서나 알음알음 같이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서 글을 찾아 볼텐데 비판을 하고 있으니 좋은 평가를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최소한 공주의 남자에서 받은 감흥도 좋지만, 실제역사와 비교해서 보는 것이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더불어 드라마와 역사를 구분해서 볼수 있으니 말이다.

드라마는 지나면 잊혀지만, 역사는 남는다. 잘못된 드라마의 설정으로 드라마를 보고 역사처럼 이야기는 하지 않을수가 있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최소한 다른이에게 또는 자식들에게 드라마와 역사의 차이점까지 알려줄수 있으니 말이다.

공주의 남자를 보고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는데 자신이 멍청해서 눈물을 흘린거냐며 반발한다. 사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을 다루지 않고 배경만 따왔다면 글쓴이도 눈물을 흘렸을 지도 모른다. 또한, 충분히 공주의 남자는 재미가 있고 감동코드가 있다. 그렇더라도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어쨌든, 사극을 비롯한 시대극이란 기록의 빈틈을 합리적인 설정으로 메꾸어 가야 한다.  빼대는 지키고, 살과 피를 돌려 살아움직이게 하는게 드라마나 역사다큐나 차이점이 없다. 단지, 드라마는 좀더 작가의 자유도(창의력)이 발휘될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인 사건의 선후관계까지 자유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를 넘나드는 SF 역사극도 기본적인 팩트(사건)은 지키고 있고,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들어가 관계되어서 사건이 미래에 미치지 않도록 설정하고 고민하는 장면을 필히 넣는다. 
 
잘못된 드라마의 설정이 앞으로 공주의 남자를 보고 드라마가 역사인척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 질것이다. 정종과 김승유와 신면의 삼각관계와 배신자 신면를 이야기 할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선덕여왕과 같은 시대에 있었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김승유.정종을 사육신이나 생육신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란 법은 없다.

공주의 남자에서 한없이 불쌍한 인물로 경혜공주와 정종을 말하고, 실질적인 주인공이 문종의 딸인 경혜공주와 정종이 아닐까하는 사람들도 있다. 더군다나 정종과 경혜공주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정종은 계유정란 공신이였고, 문종이전 시절부터 조선의 대단한 권력자 가문이였다.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단종을 정종과 경혜공주의 집으로 이어시켜서 지냈고, 어린 단종의 뒷배를 이용해서 수 많은 재산을 불렸다. 요즘으로 치면 권력형 비리의  몸통에 정종과 경혜공주가 있었던 것이다.
 


위와 같은 정종이 한미한 가문일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김승유와 친구가 가당키나 한가? 김승유가 살아 있었다면 권력자의 2세들로 왕자당을 만들어서 기생집에 드나들었음직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정종은 계유정난으로 조선에서 가장 혜택받은 존재였다. 넘쳐나는 재산에 정난으로 망한 집안의 전토와 공신전과 노비를 수 없이 받았으니 말이다. 그런 김승유와 정종이 계유정란시 친구이고 이후로도 친구가 될수 있었을까? 친구였다가도 견원지간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더군다나 사육신의 한사람인 이개가 신면과 김승유와 정종의 스승이라고 떠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사육신과 김종서는 철천지 원수일 수 밖에 없고, 사육신과 정종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고, 오히려 정종에게 적대적이였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공주의 남자는 조선후기 금계필담에 채록된 세조의 큰딸과 김종서의 손자와의 사랑을 모티브로 탄생한 드라마다.


김종서의 손자는 계유정난으로 유모의 손에 살아남아 백악산 보굴로 숨어든다.


세조의 큰 딸 세희는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려고 하자, 세조에게 어찌하여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려하느냐고 반기를 들고, 정희왕후가 세희를 죽은 것으로 위장하여 유모와 함께 나가살도록 한다.


세희와 김종서의 손자는 백악산 보굴에서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세조가 요양 차 지나는 길에 우연히 세희와 외손녀를 만나게 되자. 세희와 김종서 손자는 더 깊은 산으로 숨어들어 살았다는 것이 골자이다.


이 이야기는 정조시기에 백악산에서 김종서의 오래된 위패가 발견됨으써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공주의 남자 작가와 제작자는 세희를 세령이라 이름을 바꾸었고, 김종서의 손자를 김종서의 셋째 아들인 김승유로 바꾸어서 세령과 김승유의 사랑으로 극화하였다.


금계필담 이야기가 전해지는 대로 세조의 큰딸과 김종서의 손자로 극화했다면 보다 개연성 있고 역사도 망치지 않는 드라마가 만들어 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김종서에게는 3명의 적자와 2명의 서자가 있었다. 그리고 기록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손자는 김종서의 둘째 아들 김승벽의 큰아들 김석동(중남)이였다. 둘째 아들 김승벽의 막내 삼동(팽)은 유모의 손에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김승유의 아들 효달은 유모가 자신의 아들을 효달로 속여 대신 죽고, 효달이 살아남았다고 순천김씨 대동보는 전한다. 문제는 서자 중 김목대는 15살이 되지 않아 나이가 어렸을 것으로 추측되고, 서장자인 김석대는 커서 자식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외 큰아들 김승규의 막내 말동(행남)은 송시열의 5대조가 김종서의 조카 사위였는데 정난이 일어나자 3살 김말동(김행남)을 몰래 빼돌려 강화도로 보내서 길렀다고 한다.


계유정난에서 김승유가 살아 있을 확률은 0%도 안 된다. 왜냐하면 정난 후 김종서의 서자를 비롯해 식솔들인 손녀까지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 김승유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더불어 순천김씨 대동보에서 정란 시 김승유의 아들 효달이 어렸다고 하였고, 김승유의 처는 여흥민씨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승유가 계유정난 이전부터 총각으로 등장하는 순간 공주의 남자는 산으로 간다. 더군다나 등장하지 말아야할 죽은자가 등장하므로서 인물간의 관계가 흐트러져 버린다.


유부남에 자식까지 있고, 이미 죽은 김승유가 세령과 사랑하는 사이로 그리는 순간 공주의 남자는 막장코드가 된다. 오히려 살아남은 김종서의 손자 김석동(중남)과 세령과 엮었다면 충분히 극으로 만들어도 딴지를 걸 수 없게 된다.


더군다나 경혜공주의 결혼, 계유정란, 세조의 왕위 찬탈, 사육신의 단종복위, 정종의 반정, 이시애의 난, 그리고 세령과 김승유의 행복한 삶까지 1450년부터 1468년까지 19년을 한 두해에 이뤄진 것으로 다루는 무리수를 두었다.


그러니 이시애의 난이 끝난 이듬해 죽은 세조가 죽지도 않고 유령도 아닌 상태에서 늙어서 나타나는 처음부터 황당한 극 전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개그프로 감수성에도 다루지 않을 극의 전개이다. 그러니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있을수가 없다.


공주의 남자에서 등장하는 인물간의 관계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다음과 같다.



공주의 남자 극의 시작은 경혜공주의 결혼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아래의 사건들이 공주의 남자에서 그린 처음부터 끝까지다.


공주의 남자 황당설정
세조의 큰딸 세희(세령)과 김종서 아들 김승유와 사랑
1453년 김승유 20살(1434년생) 설정
세령,  숭(1438년)보다 누나 
신면(1438년)생 김승유와 동갑
정종, 김승유, 신면 사육신 이개의 제자
신면 죽을때 까지 한성부 판관
사육신 처음부터 김종서파, 정종, 금성대군파, 단종파
세종
문종 말년,경혜공주 유부남 김승유에 시집보내려다 실패  정종과 결혼
1450년 1월 24일 경혜공주(평창군주) 정종과 결혼
문종 1452년 5월 14일 문종 죽음
단종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 김종서, 안평대군, 황보인 등 죽임
김승규, 김종서만 죽었지만, 모두 몰살된것으로 그림 
이개와 정종, 김승유 살려줌, 강화도 유배수장되다 탈출
1456년 9월 7일 의금부에 난신 연좌된 부녀 대신들에게 나눠줌
김승규의 아내, 딸 아강 강곤의 노비됨
신면과 세령공주 김승규 아내,아강 살려줌 
1471년 윤 9월28일, 강곤에 하사된 김승규의 딸 숙희 방면
1472년 5월 정인지에 하사된 김승규의 처 내은비 딸 내은금 방면
세조 1456년 5월 12일 온녕군 죽음
김승유, 신숙주 척살 실패
1455년 6월 11일(윤) 세조의 왕위찬탈
1455년 8월 19일 정종 수원에서 통진 농장으로 이배
김승유, 사육신, 정종과 함께 서울 집에서 반란모의 
 
1456년 6월 1일 사육신의 단종복위 사건, 단종 반란수괴
1455년 8월 19일 정종 수원에서 정종의 통진 목장으로 이배
1457년 6월 21일 단종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격하되고 영월로 유배
정종 경혜공주가 세조에 무릎꿇어 서울에서 광주로 유배됨 
1457년 6월 27 정종 통진 목장에서 전라도 광주 유배
1461년 7월 정종 반란모의 
1461년 10월 23일 경혜공주, 정미수와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옴
1461년 10월 20일 정종의 죽음
1457년 10월 22일 이후, 송현수, 금성대군, 단종 죽음
1455년 정종과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 태어남
1467년 5월 17일 이시애의 난
1467년 5월 18일 신면, 이시애의 난 진압하다 30살로 죽음
1457년 9월 2일 세자 도원군 장(숭) 20살 죽음
김승유, 세령,아강 같은 나이 딸있음
1468년 9월 8일 세조(수양대군) 수강궁(창경궁)에서 죽음
성종
세령과 김승유 앞에 나타난 세조(수양대군)은 유령?


공주의 남자를 보면 세조(수양대군)이 이시애의 난이 있고 늙도록 왕에 있었는줄 알것이다. 하지만, 세조는 이시애의 난이 있고 이듬해 죽는다. 세령과 김승유 앞에 나타난 세조에게 유령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것은 극히 정상적인 생각이다. 그렇다면 공주의 남자가 망친 역사를 복원하면 어떻게 될까?


실제 역사
세조의 큰딸 세희(세령)과 김종서 손자의 사랑
김승유 계유정란 이전 죽음. 아내 여흥민씨 사이 아들 효달있음
경혜공주 1436년생, 숭 1438년생, 세령 숭보다 어림
신면 1438년생, 의숙공주 1442년생
사육신 안평대군,김종서 배신, 금성대군, 정종과는 처음부터 적대적임
사육신, 김종서 남은 일파 죽이라 주장, 수없이 죽이고 정난공신됨
사육신 일부 성삼문 등 단종폐위, 세조옹립 좌익공신됨 
사육신 단종복위 반란, 하지만 단종 반란수괴 실토 단종 유배빌미 제공 
세종
1450년 1월 24일 15살 경혜공주(평창군주) 정종과 결혼
1450년 2월 세종 죽음
문종 1452년 5월 14일 문종 죽음
단종 1453년 숭, 신면 16살, 경혜공주 18살, 세령(세희) 13~15살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 김종서, 안평대군, 황보인 등 죽임
1453년 11월 8일 성삼문, 권자신,박팽년, 이개, 유성원, 성승 등 사육신 계유정란공신3등, 정종 1등공신
1453년 11월 김종서 아들 김승벽, 김석대 사사
1454년 8월 15일 김종서 아들 김목대, 김승규 아들 김조동·김수동 사사
1454년 8월 15일 김승벽 아들 김석동 전라도 극변 관노로 영속
1455년 6월 혜빈 양씨, 금성대군, 정종 반란모의
세조
1455년 6월 11일(윤) 세조의 왕위찬탈
1455년 8월 12일 정종 양근에서 수원으로 이배
1455년 8월 19일 정종 수원에서 통진 농장으로 이배
1455년 9월 5일 수양대군(세조) 왕위찬탈 공 권자신, 성삼문 좌익공신
1455년 정종과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 태어남
1455년 원종공신 행부승 신면 18세
1456년 5월 12일 온녕군 죽음
1456년 6월 1일 사육신의 단종복위 사건, 단종 반란수괴
                      단종 외삼촌 권자신, 외할머니 최아지 반란연류 
1456년 6월 29일 현덕왕후 서인으로 격하되고 개장(이장)
1456년 9월 7일 의금부에 난신 연좌된 부녀 대신들에게 나눠줌
1457년 6월 단종 장인 송현수, 권완의 반란 사건
1457년 6월 21일 단종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격하되고 영월로 유배
1457년 6월 27일 금성대군, 이보흠 반란 사건
1457년 6월 27 정종 통진 목장에서 전라도 광주 유배
1457년 8월 송현수 관노 됨
1457년 9월 2일 세자 도원군 장(숭) 20살 죽음
1457년 10월 22일 이후, 송현수, 금성대군, 단종 죽음
1458년 평안도 도체찰사 신숙주에게 회군하길 바라는 수찰 내림 
1458년 도염서령 신면
1460년 신숙주 함길도 도체찰사, 종부소윤 신면 함께감
1461년 3월 신면 장령
1461년 7월 정종 반란모의 
1461년 10월 20일 정종의 죽음
1461년 10월 23일 경혜공주, 정미수와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옴
1464년 신면 우승부지 지공조사
1467년 5월  신면 도승지겸 함길도 관찰사
1467년 5월 17일 이시애의 난
1467년 5월 18일 신면, 이시애의 난 진압하다 30살로 죽음
1468년 9월 8일 세조(수양대군) 수강궁(창경궁)에서 죽음
성종
1471년 윤 9월28일, 강곤에 하사된 김승규의 딸 숙희 방면
1472년 5월 정인지에 하사된 김승규의 처 내은비 딸 내은금 방면

공주의 남자에서 가장 불쌍한 배역은 신면이다. 아버지 신숙주 때문에 아들 신면까지 도매금을 넘어갔다. 그런데 배신의 역사인 시육신은 언제부터 그리 충신이 되어야 하는걸까? 배신을 해도 신숙주보다 더 많이 했는데 말이다. 중종반정을 하고 권력을 쟁취한 사림파들이 만든 허구와 신화가 사육신이다. 사림파들에게는 이교도라도 생각한 세조를 죽이기 위해서 사육신을 신격화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동안 공주의 남자가 망친 역사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아래글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2011/10/07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결말, 김승유 세령공주 때문에 억울한 누명 쓴 신면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모 시체 바다에 버렸다는 사림의 선동결과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관노비 없었고, 아들 정미수 수양대군 지어준 이름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결말, 단종도 죽인 김승유, 이시애와 수양대군 죽이고 왕될 기세?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 경혜공주 똥도 먹은 효자였다.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불쌍한 신면과 배신자 사육신 어떻게 충신 아이콘 되었나?
2011/10/04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사육신 박팽년 성삼문, 단종 양위시 경회루 투신사건 사실일까?
2011/09/30 - [TV&ETC] - 공주의 남자, 정종 죽고 경혜공주 공노비 된건 김승유 신묘한 계책?
2011/09/30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정종과 경혜공주 복중 아기 정미수 유복자될까? 사실은 이산 정조가 알고 있다
2011/09/29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될까? 사실은 정조만 알고 있었다.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 된다? 사실은 진실과 허구 왜 퍼졌을까?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 처 윤씨 사육신 편에서 자살했나? 사실은 방개떡 고사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제작자 계유정란 김승유 3살? 그럼 김승유와 아들 효달이 동갑? 대략난감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광개토태왕, 계백, 사극 문헌고증 파괴해야 시청률 오른다?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스승 이개 알고보면 계유정란공신, 사육신 단종폐위 좌익공신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적과동침, 단종 죽인건 사육신 충신인가? 배신 아이콘인가?
2011/09/17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단종복위 위해 불구대천원수인 이개 성삼문 등 사육신과 동침한다?
2011/09/10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추석 보름달은 원한에 시퍼런 날이 서있었을 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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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11.10.09 0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딸이 죽어 그 고통으로 일년만에 늙었다는 설정이 아닐지요.
    작가도 그 정도는 알 텐데요.
    갓쉰동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사극을 제작할 때 갓쉰동님께 감수를 받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2. aa 2011.10.29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령은 숭보다 누나인 설정이 맞았다고 봅니다.
    계유정난 당시 숭의 나이는 고작 15살인데요..
    아버지에게 대적할 힘이 잇을 정도라면 최소한 숭보다 나이가 많았어야 하지 않을까요...

  3. 가지가지 2011.11.27 2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요. 제가 볼 땐 가지가지하신다는 느낌이..드는데요. 사극의 틀을 빌린 또 하나의 로맨스 드라마로도 보세요. 님만큼 역사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많고, 지금 글쓰는 저도 님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 바보인 듯 하고 역사적 사실은 도외시한 채 이 내용만 가지고 역사를 안다고 생각하며 볼까요? 이것을 계기로 하여 경혜공주를 알고 영양위 정종도 알고 인터넷을 통해 많은 실제적 역사를 검색해가며 공부해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쥔장 글은 헛똑똑이의 행동의 전형적인 형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극이 무조건 다 재해석이 아니고, 사극의 장르에 따라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 천편일률적인 사극만 가대하지 마시길.

  4. Favicon of http://lionfilmstudio.com BlogIcon 박기동 2011.12.31 1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한다

  5. Favicon of http://no-credit-check-cell-phones.com BlogIcon 박기동 2012.01.07 0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6. Favicon of http://get.scrapping.cc BlogIcon 사라 2012.04.06 0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아침입니다.

  7. Favicon of http://hollyholly.is-a-chef.com BlogIcon Gianna 2012.05.11 0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8.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10. Favicon of http://www.perfectmotoindustry.com BlogIcon Exhaust Pipes 2012.08.21 1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llkjihygjhfg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박시후)는 신면(송종호)의 심복 송자번(진성)을 죽였다.


김승유가 노린 것은 신면의 뒤통수다. 이를 간파한 송자번이 대신 날아온 칼을 맞아 죽는 것이다.

이전 신면이 날린 화살을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게 반칙하며 구한 세령공주(문채원)을 떠올리게 한다.

송자번의 역할은 조석주(김뢰하)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주군을 위해서 목숨까지 받치는 배역은 악역이라고 해도 환영받는다. 그래서 송자번에게 미친존재감이라고 말하는 지도 모르겠다.

김승유의 찌질한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당한 승부보다는 뒤에서 음모를 꾸미지만 언제나 실패를 하고 김승유로 인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사랑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르고 있다가 아버지 김종서와 형 김승규가 죽는다. 그리고 자신을 구원해준 빙옥관은 난장판이 된다.

김승유가 사랑에 눈이 멀어 신면의 집에있는 세령공주(문채원)을 구하려다 반정이 들켜서 친구 정종(이민우)은 죽는다.

신면은 정종이 죽을때 내손에 친구의 피를 뭍혔구나하면서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공주의 남자에서 가장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건 신면이다.

신면은 항상 김승유를 적대시 하면서도 김승유를 끝없이 살려준다.


하지만, 김승유는 신면의 아버지 신숙주를 죽이려하고, 정종이 유배로 가 있던  광주에서도 김승유는 숨어서 화살을 날려 신면을 죽이려 한다.


김승유의 방해공작은 세령공주와의 결혼식장에 난입하여 세령을 보쌈하는 짓도 서슴치 않았다.
 


이제 김승유는 끝까지 신면에게 마수를 뻐친다. 신면은 한명회의 명령으로 화살이 날아오는 데도 김승유 대신 화살받이가 된다. 그런데 김승유는 신면을 향해 어찌 같은 편에게 화살을 날리냐고 이상한 말을 한다. 참으로 사극에서 주인공으로 이처럼 민폐인 주인공은 보다보다 처음 본다. 

신면은 죽어가면서 정종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한다. 신면이 정종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이유가 있을까? 오히려 정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김승유였다.


개연성 없고 리얼리티 없는 상황에서 엉뚱한 대사를 난발하는 것을 보고 탄탄한 스토리라고 말하는 모양이다.

김승유의 미친사랑놀음에 정종의 반란은 들키고 말았고, 결국에는 서울로 압송되어서 거열형에 처해지고 말았다. 이번에도 김승유 때문에 이시애와 그 일파들은 때죽음을 당했다. 김승유 가는곳에 죽음만이 자리한다. 머피의 법칙이 아닌 김승유법칙이라도 만들어야 할까보다. 여기까지가 공주의 남자에서 보인 김승유의 모습이다. 결론은 김승유와 세령공주의 사랑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말이다.




김승유는 수양대군(세조)가 승법사에 가서 불공을 드린다는 사실을 알고 승법사에서 최후의 일전을 버리려 한다.


외방으로 관노가 되었다는 경혜공주는 승법사에서 멀쩡히 생활을 하고 있다. 수양대군(세조)가 참으로 마음씨고운 아저씨다. 정희왕후와 세조(수양대군)은 세령공주가 김승유의 애를 밴것을 알고 방에 감금한다.


승법사에서 세조는 세자를 데려간 것도 모자라서 세령의 몸에 김종서의 자식을 베게 할수 있느냐고 말한다.


승법사에 몰래 숨어든 김승유는 관원들을 하나 하나 처치한다. 그리고 수양대군의 뒤에서 칼을 겨누고, “수양 너의 목을 거두려왔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수양대군(세조)는 괜찮겠는냐? 세령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인데“라며 말한다. 김승유는 자신이 수양을 못죽이더라도 수 많은 김승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을 한다.



마지막으로 칼을 내려치려 하자. 수양대군은 세령이 아이를 베었다. 너 김승유 너의 아들이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민폐 김승유는 수작부리지 말라고 칼을 들지만, 내금위장에게 저지를 당한다. 역시나 김승유는 민폐일 수밖에 없다.

김승유가 수양대군을 죽일 기회는 너무나 많았다. 세령과 신면의 결혼식장, 세령을 납치하고 화살로 편지를 보낼 때, 그리고 세령을 납치한후 복부를 겨냥하지 않고, 이성계가 갑옷과 얼굴을 가면으로 가렸지만 왜장이 입을 벌리자 입속에 화살을 날려 왜장을 잡아 버린다. 이성계가 아니더라도 그냥 목이나 얼굴을 겨냥하면 수양을 죽일 수 있었다.


세조가 죽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면 공주의 남자 드라마를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세조가 죽더라도 충분히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역량을 갖춘자들이 공주의 남자 제작자와 작가들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공주의 남자가 지킨 역사적인 팩트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공주의 남자 결말에 세조가 죽는다고 이상할 것도 없고, 오히려 시청자들은 환호할지 모른다. 왜 역사적인 팩트를 지켜야하냐고 재미없다고 하는 이상한 시청자들이 있는게 공주의 남자 시청자들이다. 그러니 그들을 위해서라도 세조를 죽였어야 했다.
 



옥에 갇힌 김승유를 찾아간 세령공주는 김승유 너의 뜻대로 하라고 말을 한다. 김승유는 세령에게 저승에 가면 아버지와 정종에게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한 이가 있었다고 말하겠다고 말을 한다. 정희왕후는 김승유에게 독약(?)을 먹여 죽은 척 하게 만들고 세령과 함께 조용히 살도록 조치를 한다. 약 조절을 못해서 김승유가 눈이멀어 버리지만 말이다. 대의도, 명분도, 복수도 버린 사랑에 눈이먼 김승유를 표현하고자 한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말이다.




온양행궁에 간 수양대군(세조)는 딸과 지나가는 김승유를 발견하고 조용히 뒤를 쫓는다. 그리고 세령과 김승유과 외손녀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웃음을 짓는다. 세조(수양대군)은 마음이 태평양이다. 피와 눈물도 없는 세조가 어느 날 개과천선이라고 했던 모양이다.


시청자들은 이들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공주의 남자 작가와 제작자는 애마부인의 팬인가? 연인 둘이 말을 타면 자연스런 스킨십과 흔들림에 오르가슴을 느낄만큼 좋은건 알겠는데 처음부터시작해서 끝까지 김승유와 세령공주를 말태우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다. 
 


드라마는 드라마고 이제 <공주의 남자> 작가가와 제작자가 망친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역사를 알고 드라마를 보면 극이 더 재미가 있다. 어떻게 역사적인 사건을 다루고 재해석하는가 보는 재미가 시대극(사극)을 보는 또 다른 재미이다.


하지만, 공주의 남자에서는 역사적인 팩트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역사를 망치고 있다. 그러니 재해석할만한 점은 한곳도 없다. 무언가 비슷해야 재해석이 되는 것이지 미꾸라지가  개천에서 흙탕물을 만들듯이 공주의 남자가 한일은 역사에 흙탕물을 퍼트렸고,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은 <공주의 남자>가 이야기한 드라마가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믿고 대화를 할 것이 너무나 뻔하다.


오죽하면 공주의 남자를 보고 역사와 야사와 픽션이 절묘하게 조화되었다는 댓글이 환영을 받겠는가? 공주의 남자는 픽션은 있을지라도 역사와 야사는 없었다. 


이시애의 난은 세조 13년 1467년 5월에 벌어진 사건이다. 신면은 1438년생으로 이때 30살이었다. 신면은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함길도 관찰사였다.


이시애의 반간계에 속아서 세조는 한명회와 신숙주를 하옥시킨다. 왜냐하면 한명회와 신숙주가 이시애와 내통했다는 말을 퍼트렸기 때문이다.


신면은 이시애를 소탕하다 이시애의 반란군이 쏜 화살에 맞아 죽는다. 공주의 남자에서처럼  한명회의 진압군에 화살을 맞은 것이 아니다. 더불어 한명회는 서울에 있어야지 이시애 반란 현장에 출현할 수가 없었다. 세조가 신면에게 잘 죽었다고 하는 장면은 있을 수 없는 장면이다. 세조를 악당 중에 악당으로 몰아야 시청률이 오르니 작가의 고충은 이해가 되지만, 전혀 개연성 없는 장면까지 넣을 필요가 없다.
 

1467년 4월 22일 도승지 신면 함길도 관찰사 되다.


도승지(都承旨) 신면(申㴐)을 오응(吳凝)을 대신하여 함길도 관찰사로 삼고, 곧 금대(金帶)를 띠게 하고 술을 올리게 하고는


5월 7일 함길도 관찰사가 되어 서울을 떠난다. 그리고 5월 17일 이시애 등이 수령들을 죽이고 반역을 한다고 장계가 올라온다.


 

장계를 받은 세조가 한일은 공주의 남자와는 전혀 다르게 반란에 신면이 죽을 수가 있으니 신면을 서울로 올려 보낼 것을 명한다.
 

임금이 신숙주에게 이르기를,

이시애가 이미 경(卿)을 구실로 삼았고, 경의 아들 신면(申㴐)이 지금 마침 관찰사(觀察使)가 되었으니, 이시애가 반드시 죽일 것이다. 속히 체대(遞代)하여 오게 함이 가하겠다.”

하고, 좌승지(左承旨) 어세공(魚世恭)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내가 경으로써 오래도록 승지(承旨)의 임무를 맡기려고 하였는데, 지금 북방에 사변이 일어났으니, 경은 마땅히 속히 가서 이를 진정(鎭定)하라.” 세조 13년 1467년 5월 17일


신면은 17일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장계를 올리고, 다음날 저녁에 죽는다.

18일 밤에 신면·구치동과 반인(伴人)·가노(家奴) 등 16인을 죽였으며


하지만 한성 에서는 신면이 이시애의 일파가 되었고, 한명회, 신숙주가 반역에 연루되었다고 하옥시킨다.
 

이시애의 모반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으므로 신숙주·한명회를 가두게 하다

1467년 5월 19일 “근자에 신숙주와 한명회 등이 백관(百官)의 장(長)으로 있으면서 뭇사람의 입에 구실감이 되었으니, 비록 반역(反逆)한 것은 아닐지라도, 반종(伴從)을 신칙(申飭)하지 못하고 인군을 배반하였다는 악명(惡名)을 받아서, 원근의 의혹을 일으킨 것은 진실로 모두 스스로 취한 것이다. 나도 또한 어리석고 나약하여 위엄이 없는데, 백성들의 말을 따르지 않고 방편(方便)을 생각하지 않음은 옳지 못하니, 우선 이들을 가두어 두는 것이 옳겠다.”

 


1467년 5월 22일 도총사 김관의 장계 신면이 죽었고...기타 등등

 신면이 대전(大箭) 6매(枚)를 가지고 기둥에 의지하여 활을 쏘아 적의 얼굴을 맞히었으나, 적이 또 화포(火砲)를 던져서 연기와 화염이 서로 창일하니, 신면이 형세가 다하여 활을 꺾어 던지고, 마침내 아래로 떨어져 담장을 넘으려고 하는데, 적이 죽이고, 구치동(丘致峒)과 박종문(朴宗文)·녹사(錄事) 엄유구(嚴悠久)와 반인(伴人)·가노(家奴) 등까지 모두 죽였으며, 윤자운(尹子雲)을 객사(客舍)의 별실(別室)에 가두었습니다.”하였다.


신면은 승지(承旨)가 된 지 5년이 되었어도 일찍이 과실이 없었으며, 임금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 자못 자상하고 명확하였다. 죽을 때의 나이가 30이며, 아들이 둘이 있으니, 신용관(申用灌)과 신용개(申用漑)이다.



 

1467년 6월 11일 예조에서 함길도에서 피살된 수령에게 치부(致賻)할 것을 아뢰다

“함길도 절도사(咸吉道節度使) 강효문(康孝文)·관찰사(觀察使) 신면(申㴐)·우후(虞候) 정육을(鄭六乙), 도사(都事) 박종문(朴宗文)·조극치(曹克治), 평사(評事) 권징(權徵)·종사관(從事官) 구치동(丘致峒)·경차관(敬差官) 손욱(孫旭)·점마 별감(點馬別監) 심원(沈湲)과 제읍의 수령·훈도(訓導)·만호(萬戶)·군관(軍官)·심약(審藥)·검률(檢律)은 한결같이 임소(任所)에서 죽음을 따른 자이니, 구례에 의하여 치부(致賻)하소서.



공주의 남자에서 세조가 신숙주에게 신면이 전장에 죽은건 당연하고, 이시애도 죽이지 못했으니 죄가 있다고 말하는 장면에 신숙주가 똥씹은 얼굴을 하고 있는 장면은 세조(수양대군)과 신숙주를 두 번 죽이는 것이다.


세조 척살에 실패한 김승유가 옥에 갇히고 풀려나서 조용히 세령과 딸과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세조가 온양온천에 나타날 수가 있을까?


1455년 6월 1일 세조는 단종에게 왕위를 선위 받고 부터 1468년 9월 8일까지 14년간 재위하였다.


한마디로 세조(수양대군)은 1467년 이시애의 난이 있고 이듬해에 죽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공주의 남자에선 이시애의 난이 1년도 지나지 않아 세조는 쭈그렁 할아버지가 되어 버렸고, 김승유의 딸은 형 김승규의 딸 아강의 나이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김승유는 아강과 형수는 잘 돌보고 있는 것인가?
 공주의 남자 마지막에 등장한 세조는 죽은 유령임에 틀림이 없다.


좀 더 완결성 있는 멜로는 없는 건가? 언제부터 시대극 멜로는 시대와 무관해야한다는 룰이라도 정했던가? 최소한 작가로서 지켜야할 룰이 있다. 이 룰을 위반하면 막장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가장 불쌍한 캐릭터는 신면이다. 신면이 단지 신숙주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주의 남자에서 악역으로 나온다. 신숙주가 악역이면 아들도 악역인가? 현재도 정치적 견해가 다른 부자는 너무나 많이 있다. 조선시대라고 해서 다르지가 않았다.


문제는 신면이 등장할 이유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김승유와 정종과 절친이라는 설정이다.


신면이 처음등장한 때는 신면의 나이 18살 1455년 세조 1년 12월 27일 원종공신에 제수될 때이다. 이때 신면의 직책은 행 부승이었다. 신면이 원종공신과 행부승이 된 이유는 신숙주가 세조를 옹립한 좌익공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육신의 다수도 좌익공신이었다.


공주의 남자처럼 신면이 한성부 판관이 되어 미친놈처럼 뛰어다니지도 않을 뿐 만 아니라 정종이나 김승유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인물이다. 단지 극의 재미를 위해서 신면을 악역으로 만든 것이다.


왜 죄없는 신면을 악역으로 만들어야 했을까? 신면은 억울하지 않았을까? 계유정란 이전에 죽은 아저씨뻘 되는 유부남 김승유와 친구가 되어야 하고 정종과 친구가 되어야 하니 말이다. 여우같은 마누라에 토끼같은 아들 2명이나 있는데 친구 김승유의 연인인 세령을 사랑하여 친구를 배신하는 역할까지 맡아야 했을까?



실질적으로 계유정란 이전에 죽은 김승유의 적은 영양위 정종과 신숙주와 사육신들이었다. 사육신 중의 한명인 박팽년의 아들은 단종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죽을 때 계유정난 때 죽은 김종서와는 자신은 다르니 반적 김종서와 비교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죽는다.


공주의 남자로 인해서 신면은 이제 김승유의 친구가 되고, 여자 때문에, 세조에 비리 붙어서 친구를 죽이는 파렴치한이 되어 버렀다. 공주의 남자에서 신면은 죽어가면서 정종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아무 이유도 없이 공주의 남자 작가에 의해서 악당이 되어버린 신면은 죽어서도 억울하지 않을까? 신면이 정종에게 미안할것이 아니라 공주의 남자 작가와 제작자들이 신면에게 미안해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계유정란때 김승유의 아들 효달은 난리통에 유모의 손에 이끌려 살아났다. 효달의 어머니는 여흥민씨였다. 왜 자신의 아버지 김승유는 어린 효달은 살피지 않고 바람나서 세령공주만 찾아 그리도 나돌아 다닐까? 

대충 아무생각없이 보면 공주의 남자는 여성들의 눈물을 빼는 조선시대 멜로이지만, 알고 보면 죽은 김승유가 자신의 자식을 돌볼 생각도 없이 조카며느리와 눈이 맞아 사랑의 도피를 하는 엽기, 막장극이다. 

역사를 알고 보면 공주의 남자는 정말로 재미가 배가된다. 다양한 이야기꺼리가 있고, 웃을수 있는 개그도 있고, 막장 멜로도 있고, 유령이 등장하는 납량극도 있고, 시대를 넘나드는 황당SF도 있으니 말이다.

정말 역사와 야사와 픽션을 믹스한 정교한 스토리라인의 개연성과 리얼리티를 살린 시대극 보기가 힘든것인가?

어쨌든, 공주의 남자는 중견배우들의  선굵은 연기와 이민우, 홍수현, 송종호 등 조연 배우들이 극을 살렸다고 하겠다. 물론, 닥치고 멜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박시후와 문채원의 무채색 연기도 한목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드라마가 아닌 재대로된 역사를 알고 싶다면 아래글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역사를 알고 보면 사극은 더 재미가 있습니다.

2011/10/0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결말, 김승유와 세령공주를 만난 수양대군은 귀신일까?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모 시체 바다에 버렸다는 사림의 선동결과
2011/10/06 - [역사이야기] - 뿌리깊은 나무, 훈민정음 비밀팀? 중종반정 언문청 철폐 보면 답나온다.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관노비 없었고, 아들 정미수 수양대군 지어준 이름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결말, 단종도 죽인 김승유, 이시애와 수양대군 죽이고 왕될 기세?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 경혜공주 똥도 먹은 효자였다.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불쌍한 신면과 배신자 사육신 어떻게 충신 아이콘 되었나?
2011/10/04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사육신 박팽년 성삼문, 단종 양위시 경회루 투신사건 사실일까?
2011/09/30 - [TV&ETC] - 공주의 남자, 정종 죽고 경혜공주 공노비 된건 김승유 신묘한 계책?
2011/09/30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정종과 경혜공주 복중 아기 정미수 유복자될까? 사실은 이산 정조가 알고 있다
2011/09/29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될까? 사실은 정조만 알고 있었다.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 된다? 사실은 진실과 허구 왜 퍼졌을까?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 처 윤씨 사육신 편에서 자살했나? 사실은 방개떡 고사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제작자 계유정란 김승유 3살? 그럼 김승유와 아들 효달이 동갑? 대략난감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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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nacts 2011.10.08 2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거든, 현재든 아님 미래이든 사람의 욕심, 사랑은 늘 있어왔고, 있을 것입니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 피비린내 나는 역사 곳에서 공자의 인은 절규와도 같은 사랑의 외침이었을 것입니다. 공주의 남자를 시청하며, 피 냄새나는 탐욕의 역사 속에서 승유와 세령의 사랑, 세 친구들의 아픈 우정은, 그 시대 백성들의 아픔, 바램이었을 것이고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같은 것입니다. 픽션 논픽션을 따지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시대를 사는 백성들의 외침도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123456 2011.10.08 2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폐캐릭터..................... 완전 짱나
    참~~~ 역사 잘 아시네요???????!!!!!!!!
    진짜 추천하기 싫다

  4. ......... 2011.10.08 2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존나 짱나네!!!!!!!!!!!!!!!!!!!!!!!!!!!!!!!!!!!!!!!!!!!!1

  5. 짱나 2011.10.09 14: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랑 사실이랑 구분못하세요? 공주의남자 기획의도도 김종서 손자와 세조의딸의 사랑 이야기 금계필담을 김종서 아늘과세조의 딸 사랑 얘기로 다시 창작하여 작가의 상상으로 써간다고 했는데 말이지요....지금역사 강의 하시나요?그럼 드라마 보지마세요 그리고 임운 안죽었어요 잘보고 말씀하세요

  6. 별로네 2011.10.09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이 별로네요
    굉장히 부정적이시네요
    그동안 재미있게 본 다른 시청자들은 생각이 없어서 재밌게 본줄 아시나봐요?

  7. Favicon of http://.com BlogIcon 드라마의 역사고찰은 갓쉰동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었다. 2011.10.11 1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가 연산군시대까지 모두 보여줄수 없기때문에 연산군시대까지 수양대군과 신숙주와 한명회와 그 후손들이 결국 서로 죽고 죽이기를 했음을 시간적으로 압축해서 상징화하고 있어서 굉장히 통찰력깊은 드라마적 상징이라고 저는 드라마를 칭찬했는데요. 수양대군과 반정공신들이 한통속이 되어 불법왕위찬탈을 했지만 이들이 끝까지 한편이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서로 죽고 죽이기를 하다가 자멸했지요. 이를 보이고 있는것입니다. 즉 신숙주의 사촌여동생의 딸이 성종의 계비였다가 폐비되는 윤씨입니다. 폐비 윤씨의 어머니가 고령신씨이지요. 연산군에게 딸의 피맺힌 옷을 적하는. 이 윤씨를 폐비하는데 앞장선것이 시어머니인 반정공신 한확의 딸 인수대비와 성종의 정비인 공혜왕후의 아버지 한명회, 그리고 폐비윤씨에 이어 왕비가 되는 정현왕후의 6촌인 윤필상등입니다. 모두 반정공신이나 세조등극에 협력한 좌익공신, 원종공신들이죠. 이들이 1478년 먼저 죽은 신숙주의 5촌을 결국 사약내려 죽게하죠. 세조의 증손자이자 신숙주의 종손자인 연산군은 어머니의 원한을 푼다고 인수대비를 들이박아 죽게하고 한명회를 부관참시하고 윤필상을 귀양후 사약내력 죽게합니다. 또 반정공신 한명회외 신숙주는 세조사후 저희들의 정권을 위해 세조가 아끼던 조카나 5촌 당조카들을 모함해 죽이죠. 바로 구성군 이준과 남이장군. 그리고 이성계의 처족인 강순입니다. 이시애의 항쟁과 건주여진토벌을 한 왕족이나 인척 장군들인 구성군과 남이,강순이 세조사후 무언가 신숙주,한명회,정인지의 비리를 함길도나 건주여진토벌중에 알아채어 정치적으로 부상하는것을 못본거죠. 구성군 준은 세종4째 임영대군의 차남, 남이는 태종의 4녀의 정선공주의 손자이자 정난공신 권람의 사위, 강순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강씨의 친정 종손자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부정한 야합의 뒷끝은 자중지란속의 자멸이었음을 신숙주의 5촌당조카 페비윤씨를 대신해 신면을 죽이는 한명회로 상징화 한겁니다. 마지막회 그 짧은 순간에 이 추악한 야합의 말로를 알려주기위해.

  8. 이지영 2011.10.12 1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드라마잖아요~~` 그냥 넘어가지요

  9. 머라카노 2011.10.15 1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두서가 없네.... 글 초반에는 왜 꼭 역사적 사실대로 가느냐고.... 세조를 죽여라 하더니.. 글후반에는 역사적 사실이랑 다르다고 모라하네... 이런 횡설수설하면서 글 써놓으면서 유식한척하는 인간들이 있더라...

  10. Favicon of http://sob BlogIcon 아이고 2011.10.18 0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하나 만들어보시던가요;;
    님이 말한대로 드라마 만들면 그냥 다큐프라임이 될것같은데

  11. 갑갑한양반 2011.11.21 2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갑갑한 양반이네. 당신만큼 역사에 박식한 사람들 많고요, 19세기에 서유영(徐有英)이 펴낸 <금계필담(錦溪筆談)> 이라는 야담집에 있는 이야기를 각색해서 나온 것입니다. 사극도 님이 말한 방식의 드라마가 있고 새로운 방식의 사극 드라마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참 생각이 고루하시네요. 공주의 남자로 인해서 계유정난의 전후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렇게 검색하면서 이미 이것이 야사를 바탕으로 한 로맨스가 가미된 이야기임을 알게 됩니다. 염려마세요. 다른 사람들도 님만큼 똘똘하고 사리구분은 할 줄 안답니다.

  12. Favicon of http://glbnews.com BlogIcon 고명진 2012.01.02 08: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13. Favicon of http://raviv-tzad.com BlogIcon 아가 2012.01.07 0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박 겉 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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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에서 세자가 죽음에 이르자 이제 가야한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문종과 현덕왕후가 자신을 보고 손짓하고 있다고 말을 한다.

공주의 남자는 미스테리 추리물보다 복잡하다.

공주의 남자에서 단종이 죽는것을 간략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끝냈다. 더군다나 금성대군도 사약을 받고 죽는 것으로 끝냈다.

문제는 정종이 죽고, 금성대군도 죽고, 단종이 죽는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마침내 문종과 단종 등이 저승사자가 되어 세자를 끌고 간다는 설정이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설정인지 모르겠다. 정종이 죽은 때는 1461년 이고, 세자 도원군(장: 숭)이 죽은 때는 1457년이다. 숭이 죽자, 금성대군이 죽고, 단종이 죽는 순서이다. 그리고 정종은 1461년에 죽는다. 더군다나 경혜공주의 유복자로 나오는 정미수는 1455~1456년경에 태어난다. 시계를 돌려도 타임머신 모드인가.

세자 숭이 죽을 때는 20살이 되었을 때이다. 1461년을 기년으로 하면 세령은 30살이 넘고, 숭은 24살이 넘어야 한다. 그런데 어느덧 1467년 5월 이시애의 난이 일어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정미수가 1467년에 태어났다는 말인가? 아니면 세자 숭이 1467년에 죽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이시애가 1457년에 반란을 획책했다는 것인가?

아무리 막장 멜로에 민폐 김승유를 주인공으로 했다고 해도, 너무한것 아닌가?

오늘날만 막장극이 있었던건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공주와남자 같은 막장 드라마가 있었다.


조카의 왕위를 강탈한 세조를 비난하기 위한 또 하나의 좋은 소스를 제공한다. 세조가 나쁜놈 임을 증명하는 증거물로 형왕(문종)의 아들 단종도 죽이고, 문종의 딸 경혜공주까지도 관노비로 만들고 단종의 어머니 묘도 파헤쳐 바다에까지 버린 세조는 파렴치한 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소릉은 문종(文宗)의 비(妃)인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의 옛 능호(陵號)이다.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어 시해한 뒤 세조의 꿈에 현덕왕후의 영혼이 나타나 “죄 없는 내 아들을 죽였으니, 나도 네 아들을 죽이겠다.” 하였는데, 꿈을 깨자마자 세자의 운명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격분한 세조는 소릉을 파헤쳐 버리도록 명하였다.

이때 어떤 승려가 바닷가에 떠 있는 현덕왕후의 관을 발견하고 숲 속에 묻어 두었는데, 중종 8년에 소릉을 복위하자는 소세양(蘇世讓)의 주청으로 인하여 문종의 능인 현릉(顯陵) 곁으로 이장하고는 함께 현릉이라 부르게 되었다. 《燃藜室記述 文宗朝故事本末 昭陵廢復》


세조가 단종을 죽이자, 문종 비인 현덕왕후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 내아들 (단종) 도 죽였으니  니(수양대군) 아들(의경세자)도 죽일거라는 꿈을 꾸었다“는데 단종이 죽고나서 의경세자(숭)이 진실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조가 현덕왕후가 묻혀 있는 경기도 안산의 현덕왕후의 능인 소릉를 허물고 관을 파서 버렸다는 말도 진실처럼 돌아다닌다.

한마디로 어떤 효자가 어머니 병을 고치기 위해서 무덤을 파서 시체를 뜯어와 어미에게 먹이려는데 시체가 벌떡일어나 내다리 돌려줘 하는 전설따라 삼천리에 나옴직한 이야기다.


단종이 죽은 때는 세조 7년 1457년 10월 이였고, 세조(수양대군)의 맏아들 의경세자가 죽은 때는 1457년 9월 2일이었다. 의경세자(장,숭)이 먼저죽고 단종이 후에 죽었다. 요즘으로 하면 불가능한 일이 당시에는 사실처럼 퍼진 것이다. 이를 근거로 세조가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의 소릉을 파서 관을 버렸다는 말이 퍼진 것이다.


더군다나 소릉이 파헤쳐 바다에 버려진 적도 없다. 단지, 소릉이 일반인의 무덤으로 지위가 떨어지고, 소릉에서 사용된 왕비로써의 사용된 기물들이 철거하고 이장된 것이다.


1456년 6월1일 사육신의 단종복위가 실패로 돌아갔는데 사육신의 단종복위에는 사육신의 배후에 단종이 있었고, 단종이 수괴였다. 성삼문과 권자신은 상왕 단종이 자신들과 여러 번 반정복위에 대한 계획을 세웠고, 1456년 6월 1일 당일에 상왕 단종이 세조를 죽이는데 사용할 큰칼까지 주었다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곧 단종이 사육신의 배후이며 수괴라고 자복한 것과 같다.


사육신 중의 한명인 권자신은 현덕왕후 권씨의 동생이었다. 만약, 단종이 권력에서 물러나지 않았다면 권자신은 외척으로 어린 단종을 대신해서 권력을 행사했었을 것이 자명하다.


단종의 매부인 정종과 누나인 경혜공주도 단종이 왕이었을 때  수 없이 많은 재산을 불렸다.


그래서, 권력의 정점에서 물러난 권자신으로서는 단종복위의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만했다. 문제는 권자신 뿐만 아니라 권자신의 어머니 최씨와 연락책인 최씨의 노비가 연루가 되었다.


1456년 6월 사육신 사건은 상왕 단종이 수괴가 되고, 외삼촌 권자신, 외할머니 최씨가 연루된 중대한 사건이 된 것이다.


그래서 현덕왕후는 왕후에서 일반인으로 격하된다. 묘에도 격식이 있었고, 주택에도 격식이 있었고 복식에도 격에 맞아야 했다. 공신이 되면 아버지나 자식도 공직이 증가된다. 마찬가지로 반역을 하게 되면 격하되는 것도 일반화 되어 있었다. 이런 연유로 현덕왕후가 격하되고 격식에 맞게 이장된 것이다.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현덕 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의 어미 아지(阿只)와 그 동생 권자신(權自愼)이 모반(謀反)하다가 주살(誅殺)을 당하였는데, 그 아비 권전(權專)이 이미 추후하여 폐(廢)하여서 서인(庶人)으로 만들었으며, 또 노산군(魯山君)이 종사(宗社)에 죄를 지어 이미 군(君)으로 강봉(降封)하였으나, 그 어미는 아직도 명위(名位)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마땅하지 않으니, 청컨대 추후하여 폐(廢)하여서 서인(庶人)으로 만들어 개장(改葬)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세조 2년 , 1456년 6월 29일


예조에서 종묘서(宗廟署) 의 정문(呈文)에 의하여 아뢰기를,

“현덕 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의 신주(神主)와 의물(儀物)을 일찍이 이미 철거하였으니, 그 고명(誥命)과 책보(冊寶)와 아울러 장구(粧具)를 해당 관사로 하여금 수장(收藏)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세조 3년 1457년 9월 7일



하지만, 현덕왕후 소릉에 사용 내용물들은 종시부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성종 때 고명과 장구들을 종시부에서 내려 태워버린다.
 

현덕빈(顯德嬪) 의 교명(敎命)·죽책(竹冊)과 보(寶)를 종부시(宗簿寺)에 내려 불사르도록 하였다.

- 성종 7년, 1476년 4월 15일


연려실기술이나 현덕왕후 관련 세조가 소릉을 내다 버렸다는 설은 세조 2년 1456년 6월 29일의 소릉을 일반서인의 묘로 격하시키고 개장(이장)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1457년 10월 단종이 죽고, 1459년 9월 2일 의경세자 숭(장)이 죽고, 1456년 6월 29일 세조가 소릉(현덕왕비릉)을 판 것이 아니다.


1456년 6월 1일 사육신 사건으로 단종, 권자신, 현덕왕비의 어머니 최씨가 연루되어 현덕왕후가 서인으로 격하되고, 1456년 6월 29일 능도 그이 맞추어 이장된 것이 사실이다. 개장(이장)과 버린다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무슨 수양대군(세조)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있었겠는가?
 

1456년 6월 이후 사육신 사건으로 단종의 외삼촌 권자신, 외할머니 최씨가 죽는다.

1456년 6월 29일 현덕왕후가 역모의 주역의 가족이란 이유로 서인으로 격하되고 개장(이장)된다.


1457년 6월 단종 장인인 송현수가 반란을 획책하다.

1457년 6월 21일 단종이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격하되고 영월로 유배를 떠난다.

1457년 6월 27일 금성대군, 이보흠과 반란 획책하다 들킴

1457년 8월 송현수가 관노가 됨.
 

1457년 9월 2일 의경세자(장,숭)이 죽음.


1457년 10월 21일 송현수가 교형에 처해지고, 금성대군은 사약을 받고 이후 죽음.


1457년 10월 21일 단종(노산군)이 죽고 예로서 장사지내게 함.



이긍익이 채록한 열려실기술의 기록은 1457년으로부터 1456년 과거로 진행되는 이야기구조이다.


정상적인 이야기라면 의경세자가 죽자, 현덕왕후가 세조(수양대군)의 꿈에 나타나 “니 자식은 내가 죽였다”라고 해서 세조가 단종을 죽였다라고 하면 좀 더 그럴듯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드라마틱하게 세조는 나쁜놈에 또 하나의 덧칠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단지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사실처럼 널리 퍼지고 진실처럼 되어 버렸다.


태종 이방원은 왕자의 난으로 세자였던 방석을 몰아내고, 아버지 이성계가 죽자 1409년 현재 정동에 있던 계모 신덕왕후 강씨의 묘를 성 밖 (현재 서울 성북구 정릉2동) 정릉으로 옮겨 버린다. 왕비릉에서 사용되어진 석물들은 광통교 다리건설에 사용되어지기도 한다.


다음은 1456년 현덕왕비 소릉을 폐한 후 일반 서인의 무덤으로 이장해서 묻은 현덕왕비의 무덤을 58년이 흐른 후 사림파들의 연산군을 몰아내고 반역에 성공한 후 1513년 중종 8년 개장(이장)하여 문종이 있는 현릉의 부부릉으로 옮길 때의 기록이다.
 

여름 4월 17일에 소릉의 옛 무덤을 열었다. 제조 송일과 김응기 등은, “신 등이 당초에는 기간이 오래되어 관곽이 부패해서 남은 것이 없을까 깊이 염려하였으나, 막상 열어서 살펴보니 안팎 관곽이 다 있고 염습(歛襲)이 완전하나 너무 오래되어 다만 형체만 있으므로 새 관곽과 새 의금(衣衾)으로 바꾸어서 범사에 유감없이 하였으며 또한 다시 염할 때는 궁인 및 내관이 나아갔지만 막대한 일을 친히 감독하지 아니할 수 없으므로 신들이 염습을 친히 감독하였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동각잡기》


처음 능을 파헤쳐서 해변에 옮겨 묻은 뒤로는 전소(奠掃)와 수호(守護)의 끊어진 지가 수십 년이 되니, 거민들이 단지 언덕 하나가 그곳이라고 전해온다고 알고 있을 뿐 타설(他說)이 있어 사람을 의혹케 하였다.


천장하려 할 때 땅을 깊이 팠으나 관이 보이지 않아 어찌할 줄을 몰랐더니 포초록(圃樵錄)에는 관 있는 곳을 알 수 없었으므로 군인(軍人)이 물가에 늘어서서 일제히 그 진흙을 파헤쳐 산발치까지 갔으나 보이지 아니 했는데 감역관(監役官)이 꿈에 신의 말씀을 받아서……”라고 하였다.


이 날 밤에 감관(監官)이 졸고 있는데 꿈에 왕후를 뵈니 장전(帳殿)에서 안석에 기대어 왕후의 위의를 갖추고 두 시녀가 모시고 있었다. 감관을 불러 위로하기를, “너희들이 고생하는구나.” 하니, 감관이 엎드려 절하고 놀라 땀을 흘렸다. 잠을 깨어 이상하게 생각하고 다음날 아침, 두어 자 더 깊이 파니 곧 손바닥 넓이만한 관의 칠편(漆片)이 삽날에 찍혀 나와 관을 발견함으로써 능히 일을 잘 마쳤다. 《음애일기(陰崖日記)》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합록(合錄)》


창졸간에 옮겨 묻고 성소(省掃)를 폐한 지 너무 오래되어 시신을 찾지 못할까 걱정했으나 능을 열고 본즉, 안팎 관이 다 형체가 있고 염습이 완전하였다. 관은 바꾸고 법의(法衣)로 관의 빈 구석을 메 꾸었다. 《음애일기(陰崖日記)》



위의 기록 등 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장(이장)을 위해서 삽으로 팠지만, 예상보다 깊이 묻혀있었고, 칠편(옻칠)으로 안팍 관곽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도 정성껏 묻은 묘도 60년 가까이 지나 묘를 파면 묘가 제대로 있을 확률은 별로 없다. 현덕왕비 묘가 제대로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닷가였고, 벌이 침투해서이지 않을까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이라가 발견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조선의 잘못된 장묘법이 미이라를 양산했다. 주자(주희)가 주창한 매장법은 미이라를 양성할 수밖에 없었다. 회(생석회)갑으로 둘려쳐저 있어 공기와 차단이 되고, 생석회는 물과 만나면 발열반응이 생겨 시체와 묘속에 있는 초기 미생물을 죽이게 되고, 요즘도 생회가루가 구제역 등 방역에 많이 사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석회가루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져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된다.


주희는 무덤 속 시체가 빨리 썩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장묘법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주희가 주장한 장묘는 아이러니하게 미라만 양성했다. 시체가 썩지 않고 있으면 당시에는 영혼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원한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서인의 묘로 격하된 현덕왕비의 묘는 조금은 다른 과정으로 멀쩡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니 바다에 떠내려가 현덕왕비의 관을 중이 창졸간에 묻었다는 말은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하겠다. 한마디로 비극적인 왕비의 전설따라 삼천리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물론, 창졸간에 왕비릉에서 단종이 폐위되고, 형제와 어머니가 서인이 되었고, 마침내는 아들 단종까지 세조로 인해서 죽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무덤에서 벌떡 일어설 만한 건 사실이다. 더불어 세조가 무덤까지 파서 바다에 버렸다는 세조(수양대군) 나쁜 넘 프로젝트 이야기는 사실처럼 비쳐질 만큼 충분한 드라마틱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또 하나의 세조 죽이기 작업과 사육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림 측의 선전물임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낭설이 사실인 것처럼 소설로 만들어지고, 드라마로 제작되어서 드라마로 역사를 배운 사람들이 세조를 비난하면 지식인처럼 호도되는 지경에 까지 왔다.


소설과 드라마는 역사와 하등 상관이 없다. 특히 최근에는 사이비 역사학자들조차 교차검증이나 문헌고증을 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낭설을 사실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믿고 싶은 것이 사실이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역사도 아니다. 드라마가 아닌 역사를 알고 싶다면 다음 아래글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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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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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긴것은 세종대왕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로 세종 이도를 극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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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 적으로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조디악 징후 예측 사실 변함

  18. Favicon of http://nolanlessis.multiply.com/journal/item/2/Survival_Kits_For_Those_Situati.. BlogIcon msr water filter 2012.12.19 1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가적으로 누가 집회를 주관했는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또한, 집회시간에서도 시위자수가 달라 집니다. 동원이냐 자발적이냐에 따라 해당숫자는 천양지차가 발생합니다.

  19. Favicon of http://www.best-practice-business.de/index.php?cXBfYWN0aXZlPW5ld3MmcXBfaWRfY2F.. BlogIcon invisible fence cost dogs 2012.12.26 2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날만 막장극이 있었던건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공주와남자 같은 막장 드라마가 있었다.

  20. Favicon of http://markets.financialcontent.com/newsok/news/read/22360046/survival BlogIcon mountainhousefoods.org 2013.01.05 2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21. Favicon of http://ford.grupocaiuas.com.br/fiesta-sedan BlogIcon fiesta sedan 2013.01.25 0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Google에서 블로그 사이트를 발견하고 조기 게시물 몇 가지를 확인하십시오. 아주 좋은 작동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합니다. 난 그냥 내 MSN 뉴스 리더에 RSS 피드를 추가. 나중에 당신에게서 더 읽어 앞으로 추구! ...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은 죽기 전에 태중 이름을 지어준다.


아들인지 딸인지 모른다며 두 개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그런데 왜 정종은 태중 아이의 이름을 지어줄까?


사실 정종이 정미수의 이름을 지어준다는 설정은 잘못된 기록에서 기인한다.
 
정미수는 세조가 궁궐에서 정미수를 키우면서 "鄭眉壽"라고 지어준 이름이다. 오래오래 살라는 의미가 있다. 물론, 아명은 정종과 경혜공주가 지었을 것이다. 1461년 10월 정종이 죽을때 정조는 정미수는 여닐곱이라고 기록하고 있었다. 서거정의 예와 사관이 경혜공주가 죽을 때 정미수는 1473년 16세 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부러 정종과 경혜공주가 세조와 적대적인 것으로 만들다 보니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이 죽으면서 지어준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다.

1455년 6월 정미수는 정종이 유배를 떠야야 하고,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양위를 할 시점에 이미 경혜공주의 복중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경혜공주는 유배를 떠날때 이례적으로 교자를 타는 복을 누린다. 왜 경혜공주는 특혜를 받아야 했을까? 

당연히 경혜공주의 배가 불러왔기 때문에 걸어서는 움직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경혜공주가 관노비가 되었다는 설도 잘못된 이야기에서 전해진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세자 숭(장)이 정종이 죽고난 후에 죽는 것으로 그리고 있고, 숭이 죽기전에 단종과 금성대군이 죽은것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세자 도원군 장(숭)은 1457년 9월 2일 죽는다. 김승유는 1463년 이시애의 난에 참가를 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1457년 도원군 장이 죽고, 금성대군이 죽고, 단종이 죽고, 그리고 1461년 정종이 죽는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시계가 꺼꾸로 가다 못해 뒤죽박죽이다. 공주의 남자를 따라가기도 힘에 부친다.


현대는 역사자료도 인터넷으로 쉽게 찾을 수가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기록을 찾기가 힘들었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책을 통해서 일수밖에 없다.


속담에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말이 있듯이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간다.

문제는 말로서 퍼지는 여론은 살이 붙는다는 것이다. 감기가 걸렸다고 하면 마지막에는 죽었다고 알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에도 잘못된 정보가 인터넷에서 퍼지는 것처럼 당시는 지금보다 더 빠르게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게 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양반들이 여론을 주도했고 이를 알리는 방법은 사발통문이었다.


정종이 죽고 경혜공주가 복중에 유복자 정미수를 가지고, 관노가 되어서 모욕을 당했다는 말도 그렇게 만들어져 사실처럼 세조시기 전국방방곡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순천관노가 되었다거나 아니다 장흥관노라더라고 살이 붙고, 피가 되어 소문이 살이 되어 진실이 되어간다. 



공주의 남자에서도 세조(수양대군)은 정종이 반란으로 죽고, 금성대군을 사사하고, 단종도 사사한다. 그리고 경혜공주는 변방의 순흥 관노로 보내버린다.  드라마를 보고 세조와 한명회, 신숙주 나쁜놈이라고 했다면 드라마가 역사가 되는 현장을 보고 있는 것이고 사림파의 프로파간다에 속아넘어간 것이다. 그동안 많은 드라마들이 역사가 아닌것을 역사처럼 드라마에 차용하였다. 그에 놀아난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역사화 되었다.

경혜공주 관노비설과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에 대해서 역사적 진실을 알고 싶다면 다음 글들을 참고 하기 바랍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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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 후 이제 귀하의 웹사이트에 블로그 게시물의 일부, 그리고 진정한 블로깅의 방법이 좋아요. 난 곧 내 북마크 사이트 목록에 북마크를 다시 확인합니다. PLS으로 내 웹 사이트를 확인하고 내가 뭘 생각하는지 알려주십시오.

 

<공주의남자>가 결말로 치닫고 있다. 세령공주는 세조(수양대군)의 명으로 신면의 노비가 된다.


수양대군(세조)가 세령공주를 신면의 노비로 만든 이유는 김승유가 세령을 구하러 올 때 잡으려는 계략과 세령이 마음을 다잡기를 바라는 마음이였다.


김승유는 광주에 있던 정종으로부터 반란복위 계획이 있으니 김승유가 내려와서 도와주기를 바란다.


반란 계획은 서울의 총통위가 서울에서 내응을 하고, 정종이 있는 전라도 군사와 금성대군이 있는 경상도 군사가 수원에서 모이고, 김승유 자신이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을 모시고 서울을 공략한다면 세조(수양대군)의 세력은 무너지고, 전국의 수양대군의 반대파와 유림들이 단종을 복위하는데 찬성할것이니 실패할 수 없다고 총통위 군사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이에 총통위 반란세력은 김승유가 김종서를 닮아 절묘한 계책이라며 김승유를 한층 띄워준다.


하지만, 김승유는 광주로 가는 도중에 세조와 신면이 퍼트린 세령공주가 신면의 노비가 되어 신면의 집에 잡혀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면의 집으로 빙옥관 사람들과 찾아간다.


김승유에게 필요한건 신면이 세령을 덮칠까하는 우려해서 신면의 집으로 찾아가 세령을 구하는 것이 우선일까? 아니면 정종을 찾아가 반정을 하는게 우선일까? 물론, 김승유는 신면과 세령이 결혼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세령공주를 수양대군 집 결혼식장에 침투해서 납치하는 만행도 저지른적이 있다. 신면의 집에는 수많은 군사들이  포위하고 있다. 달랑 3명으로 신면의 집에 들어가 세령을 구하는데 성공을 한다.


김승유의 수준이라면 신면의 집으로 쳐들어가는 것 보다는 궁궐을 넘어서 세조(수양대군)을 치는것이 더 빠를 것 같다. 정종과 함께 전라도, 경상도 군사를 몰아 수원에서 모여서 서울을 공략할 필요가 없을 텐데 말이다.


김승유가 세령을 구하여 한말에 두명이 말을 타고 광주로 떠난다. 작가는 주인공 말태우기에 습관화 된 것 같다. 한 마리 말을 타고 두 명이 광주까지 간다는 발상은 참으로 난감하다. 더군다나 신면보다 빨리 광주에 도착하기 까지 한다. 나르는 슈퍼보드라도 탔나? 한가한 사랑놀음 스킨쉽이 신면보다 더 빠르게 했다는 것인가?


어쨌든, 김승유가 세령을 구하고 떠나자, 신면은 빙옥관으로 가서 빙옥관 주인을 잡아들이고 빙옥관 주인은 김승유 너의 사랑만 소중하지 않고, 나의 사랑도 소중하다며 김승유가 정종이 있는 광주로 갔다고 까발린다.


결국에는 정종은 서울로 압송되어 거열형에 처해지고, 금성대군은 경상도에서 사약을 받고 죽는다. 강원도 영월에 있던 단종도 사약을 받고 죽는다.

김승유가 자신의 치기어린 사랑놀음에 민폐만 끼치지 않았다면 아버지도 죽지 않고, 정종도 죽지 않았을 것이고, 금성대군도 죽지 않고, 자신의 아버지 김종서가 단종을 지켜달라는 유명도 지킬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김승유는 하지 말라는 짓은 골라서 하는 청개구리였다. 사랑 때문에 아버지와 형을 죽였고, 결국에는 친구인 정종과 금성대군과 자신의 주군인 단종도 죽여 버렸다. 하지만, 김승유는 자신이 어떠한 잘못을 했는지 모르고 처형장에 찾아가 정종을 구하려고 하지만, 이미 정종이 죽고 난 후의 피 흔적만 바라본다.


다른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정종의 처형을 김승유만 모른다는 설정도 어설프기 그지없다. 김승유 같이 어설프고 민폐만 끼치는 인물을 세조와 대항하는 우두머리로 두고 있다면 그 조직은 해보나 마나 필패이다.  총통위 반란세력은 후사를 도모하기 위해서 이시애와 연합전선을 구축하는데 세령공주는 수양대군의 딸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딴지를 건다. 주군 단종이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모자리들의 모임인 총통위와 민폐 김승유가 반란에 실패할것은 명확하다.


김승유는 이제 이시애가 있는 함경도로 떠나 반정을 도모하려고 한다. 분명히 예전부터 지금까지 한 것처럼 김승유가 이시애를 죽음으로 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좋게 이야기하면 김승유는 머피의 법칙에 빠진것이다. 그리고 신면이 세조에 버림을 받지만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려다 죽게 될 것이다.


공주의 남자의 작가는 김승유가 세조(수양대군)를 죽이고 조선의 왕이 된다는 설정을 하지 않는지 알수가 없다. 세조가 죽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세조가 왕인데 세조를 죽이면 역사와 다르기 때문인가? 최소한 큰틀에서 역사는 지켜야 하는 거라고 작가나 시청자가  생각했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그동안 공주의 남자가 지킨 역사적 팩트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역사를 망치는데 작가의 활약은 끝이 없었다.



실존인물 김승유가 계유정란이전에 죽었는데 계유정란에 나온다는 설정자체 부터가 실패한 설정이다.
 
김종서의 손자 김석동이 세령공주와 사랑을 하고 계유정란에 나온다면 그나마 역사를 망치지 않고 할수 있는 설정이였을 것이다.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제작자 계유정란 김승유 3살? 그럼 김승유와 아들 효달이 동갑? 대략난감

경혜공주는 세종이 명하여 정종과 결혼을 한다. 그전에 세종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8째 아들 영흥대군(영응대군)을 정충경의 딸 정씨에게 장가를 보낸다. 정종은 평창군주(경혜공주)에게 장가를 가기 전에 이미 왕족의 일원이었다. 영흥대군은 어릴적 수양대군의 손에 큰다.


정종의 고모는 1407년 태종(이방원)의 둘째 효령대군에게 시집을 갔고, 정종의 누이는 세종의 영응대군에게 시집을 갔고, 정종은 문종의 큰딸 평창군주(경혜공주)에게 장가을 갔다. 공주의 남자에서처럼 아버지 정충경이 죽자 한미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3대에 걸쳐 왕가와 혼인하는 한미한 왕족을 본적이 있는가?

 

정종은 전국방방곡곡 재산이 없는 곳이 없었다. 경혜공주와 정종이 결혼한 후에는 더욱더 재산을 불려나갔다. 어린 동생 단종을 자기집에 모셔놓고, 권력형 비리 정점에 정종과 경혜공주가 있었다. 계유정란이 있던 때도 단종은 경혜공주의 집에 있었다. 반란에 연루되어 유배된 지역도 자신의 농장이 있는 통진이었을 만큼 정종은 끝없는 사랑을 받았다.


어쨌든,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의 뻘짓같은 세령 구하기로 인해서 정종과 금성대군과 단종이 죽었다.



정종이 서울로 압송된 때는 1461년 7월이었고, 3개월인 1461년 10월 20일 정종이 죽는다.  광주에 같이 있던 경혜공주는 3일후인 1461년 10월 23일에 아들 정미수와 함께 서울로 올라온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경혜공주가 정종이 압송되자 자기 마음대로 서울로 올라오는 것으로 그렸고, 이미 태어나 눈망울을 굴리고 있었을 정미수는 아직도 경혜공주의 배속에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사림파들이 경혜공주가 관노가 되었다는 유언비어와 정미수가 유복자였다는 설을 퍼트린다. 하지만, 알고보면 한심한 수준의 쌔빨간 거짓말이들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더욱 압권은 김승유와 정종이 전라도 군사와 금성대군이 있는 경상도 군사를 이끌고, 김승유가 영월에 있는 단종을 모시고 오겠다는 설정이다. 더군다나 세조의 맏아들 세자 숭(장)이 아픔에도 세령을 찾는다는 설정이다. 


김승유가 신면의 집에서 뻘짓을 하지 않고, 정종과 정상적인 반란을 한다면 김승유의 반정계획은 성공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을 조금 차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공주의 남자에서 수양대군(세조)는 정종을 죽이고 금성대군과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금성대군과 단종이 죽는 시점이 비슷한 건 사실이지만, 단종이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말은 세조가 죽어야 사는 사림이 퍼트린 유언비어인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1457년 6월 21일 단종의 장인 송현수는 권완과 단종복위를 꿈꾸며 반란을 획책하지만 들키고 만다. 이때 단종은 노산군으로 감봉되고 영월유배

1457년 6월 22일 단종 영월로 유배되다.


1457년 6월 27일 관노 이동이 금성대군의 모반을 아뢰다.

금성대군은 경상도에서 순흥부사(영주) 이보흠, 안순손과 반란을 획책하고 단종 복위를 꿈꾸지만 이도 들키고 만다.


1457년 9월 2일 세조의 세자 도원군 장(숭)이 죽는다.


1457년 10월 21일 결국 단종의 장인 송현수와  금성대군을 죽이라는 의정부, 사간원, 사헌부, 종친부의 압박에 세조(수양대군)은 송현수와 금성대군을 사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1457년 10월 21일 단종이 결국에 죽었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영월에서 보고가 올라왔다는 뜻은 단종이 그전에 죽었다는 뜻이다.


1457년 11월 18일 

종부시(宗簿寺)에서 아뢰기를,

“노산군(魯山君) 및 이유(李瑜) ·이영(李瓔)·이어(李)·이전(李瑔)·정종(鄭悰) 등은 그 죄가 종사(宗社)와 관계되므로 속적(屬籍)을 마땅히 끊어야 합니다. 청컨대 아울러 자손까지도 종친(宗親)에서 삭제하고 부록(附錄) 같은 데 기록하도록 하소서.”
 
1461년 7월 정종 광주에서 반란 계획이 들통남
1461년 10월 20일 정종 죽음
1461년 10월 23일 광주에 있던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와 서울로 돌아옴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이 반란이 들킨 때는 1461년 7월이었다. 그러니 1461년 10월 정종이 죽고, 1457년 10월 금성대군이 죽고, 1457년 10월 단종이 죽을 수가 없다. 더군다나 1457년 9월 금성대군과 단종보다 먼저 죽은 도원군 장이, 정종이 죽은 이후에 세령공주를 찾을 수도 없다.

 

1467년 5월 16일 함길도 전 회령절제사 이시애가 반란을 하다. 이때 신면이 죽는다. 신면의 나이는 30살이었고, 신면에게는 두 명의 아들 5~6세의 신용관, 신용개가 있었다.

 

신면은 승지(承旨)가 된 지 5년이 되었어도 일찍이 과실이 없었으며, 임금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 자못 자상하고 명확하였다. 죽을 때의 나이가 30이며, 아들이 둘이 있으니, 신용관(申用灌)과 신용개(申用漑)이다. - 세조 13년, 1467년 5월 22일


이때 신숙주와 한명회는 이시애의 반란에 연루되었다는 이시애의 반간계에 하옥되는 처지에 있었다가 신면이 반란을 진압하다 죽고나서 이시애에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풀려난다.


정종이 죽은 때는 1561년이고, 이시애의 난은 1567년 5월, 계유정란은 1553년이여서 세월은 화살처럼 빨리 지나간다. 어느덧 12년이 흘렀다. 하지만, 김승유의 조카 아강은 아직도 어린애에 불과하다. 충격을 먹어서 더이상 자라지 않겠다고 선언한 피터팬에 양철북의 꼬마를 생각하게 한다.

김승유와 세령은 30대 후반 노총각, 노처녀가 되었다. 신면은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 세령공주를 자신의 첩실로 들이려고 노력하고 있고, 세조는 신면에게 세령공주를 첩실로 넘기지 못해서 안달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신면은 한성부 판관으로 나온다. 1453년 계유정란 즈음에 김승유, 정종, 신면, 세령공주는 20살로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신면은 1438년생으로 15살에 불과했다. 수양대군이 신면에게 세령을 노비로 하사한 때인 1461년이면 신면은 24살이고 이미 아들 신용관을 임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공주의 남자> 결말에서 김승유가 반란에 성공해서 세조를 죽인다고 이상할 것이 없고, 오히려 공주의 남자답다고 하겠다.  세조가 죽어야 시청자들은 오르가슴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그리고 김승유가 세령과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앤딩이나 아버지가 죽은 세령이 결국에는 김승유를 떠나거나 죽거나 절로 들어가는 것으로 그린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먼저 김종서를 죽인 사람은 수양대군이니 김승유가 수양대군을 죽이고 왕이 된들 세령과 사랑은 변치 않을 것이다. 서로 비긴 것이니 말이다. 시청자들도 공주의 남자 결말에 김승유와 세령공주가 산에 들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있기도 하다. 현재 공주의 남자 결말로는 신면도 죽고, 김승유도 죽고, 세령도 죽는 새드엔딩이 될것이 눈에 보이지만 말이다.
 


공주의 남자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가 역사인듯 말하는 사람이 늘어날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고 아직도 역사와 구분을 하지 못하고 미실이 어떻네 하는 사람들을 보면 웃지않을 수 없다.

지금도 공주의 남자를 보고 역사와 구분을 하지 않고, 신면을 비난하고, 세조를 비난하고, 사육신과 김승유가 한편이었는 줄 안다. 김승유와 정종, 그리고 사육신이 한편이라 설정은 김종서를 두번죽이는 것이다. 또한, 사육신을 두번 죽이는 것이다. 드라마가 역사가 되고 신화가 되어서 언젠가는 김승유는 사육신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을 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그와 반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와 역사가 다르다는 점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래의 글들은 공주의 남자나 사극이 망친 역사를 바로잡는 글들 입니다. 최소한 드라마를 보더라도 역사를 알고 보면 재미가 극대화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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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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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05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크리스폴 2011.10.05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입니다..다만 아쉬운 것이 오타가 많네요..신경써주셨으면..백동수랑 광개토태왕에 대한 글도 써주셨으면..혹시 안 보시나요? ^^

  3. Favicon of http://www.starkdevelopmentinc.com/ BlogIcon General Contractors San Diego 2011.10.05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찬성할것이니 실패할 수 없다고 총통위 군사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이에 총통위 반란세력은 김승유가 김종서를 닮아 절묘한 계책이라며 김승유를 한층 띄워준다.


    하지만, 김승유는 광주로

  4. 2011.10.06 0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사람들이 이걸보고 역사라고 믿는게 문제가 아니라 실제 역사자체에 관심을 안 갖는게 문제겠지요 ㅋ

  5. 공남폐인 2011.10.06 2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남 안보셧나바요 내용이 안맞네요 전혀ㅡㅡ 김승유가 사랑해서 가족이 죽다녀ㅡㅡ 일회부터 보시길...

  6. ㅓㅓ 2011.10.21 14: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보지 마세요.

  7. 뮤리엘 2011.10.30 0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 관심이 많은건 잘 알겠는데요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고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입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워낙 잘되어있어서 드라마를 보고 인터넷에서 사실여부를 찾아보는 활동도 활발하구요

    사료를 근거로 만든다고 해도 100% 정확할수는 없죠. 사료라는것이 승자의 기록이고 사람이 작성하는 것이라서 100% 객관적인 사실만 기록할수도 없구요

    드라마를 위한 어느정도의 극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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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히 반박할려면 위처럼 일본의 수입조건과 한국의 수입조건이 다르다는 가장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또한, 확율론적으로도 반론을 제기한것도 극히 위함한 발상이고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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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김승유는 광주로 가는 도중에 세조와 신면이 퍼트린 세령공주가 신면의 노비가 되어 신면의 집에 잡혀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면의 집으로 빙옥관 사람들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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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그와 반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와 역사가 다르다는 점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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