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개토왕

은고 사비성 태울만큼 계백 사랑했을까? 공주의 남자 비롯한 역사파괴 끝은 어디까지? 에 후에 의자왕의 처(왕비)가 되는 은고가 등장한다. 드라마 계백에서 은고는 612년 선화황후가 자살한 해에 태어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이해에 계백도 태어났다. 드라마 에서 계백은 은고를 사랑하고, 은고도 계백을 사랑한다. 계백의 아버지 무진은 사택비를 사랑하고, 사택비도 무진을 사랑했다. 하지만, 사택비는 사택적덕의 명에 의해서 무왕과 결혼한다. 마찬가지로 은고는 계백을 사랑했지만, 사택비의 명으로 의자왕의 후비가 되는 것으로 그리지 않을까 한다. 의자는 628년 가잠성 전쟁에서 공을 세운 후 연좌평의 딸과 결혼 한다. 계백이 황산벌 전투에 참가할 때 처.자식을 죽이고 출전한 이유가 밝혀지는 대목이다. 계백의 작가진은 계백이 처.자식을 쉽게 죽일 수 있었던 원인을 은고에서 찾는 듯하다. 계백에게는 사.. 더보기
광개토태왕, 담덕이 부끄러운 KBS, 동북공정보다 못한 이유 광개토태왕은 고증은 필요없는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 사극에서 고증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남녀간의 사랑? 아니면 작가의 개연성없는 이야기? 아니면 역사를 망치고자 하는 심려한 배려인가? 제작자는 고구려 갑주 복식에 대해서 왜 고증을 따르지 않느냐는 말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힘들어 해서라는 말로 듣는 이에게 남감함을 주었었다. 고구려 군인들은 배우들의 잠시 촬영에도 힘든 복식을 하고 전쟁에 참가했다는 것인가? 요즘 사극에서 예사로 나오는 말들이 있다. 배우들은 말을 타고 질주를 한다. 그런데 등장하는 말들이 하나 같이 고구려에서 타던 말이 아니다. 고구려 말을 구하기 어렵다면 말을 하지 않겠다. 고구려 말은 언제든지 구할수 있다. 고구려 말은 말 등의 높이가 3척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3척마라 불리웠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