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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천안함 사고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3월 26일 오후 9시 22분 경에 반파를 당한것으로 확정되고 있다.

하지만, 천안함이 사고가 나고 청와대는 3월 26일 오후 10시경에 긴급안보관계장관회의를 청와대 벙커에서 했다고 하였다.

이때 청와대는 9시 45분경 천안함이 피격되었다고 긴급하게 언론에 알린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이 있고 단 15분도 지나지 않는 10시경에 긴급안관계 장관회의를 하였다는 청와대의 발언은 물리적인 시간상 있을 수 없는 일을 청와대는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와대가 9시 45분 이전에 천안함 사고를 미래를 보는 <예지능>이 없다면 청와대 벙커에 모일수 없다

물론, 10시 경에 긴급장관회를 발동하고 몇시에 관계장관들이 다 도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청와대 내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진들만 벙커에 들어가 관계장관들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국정조사를 한다면 얼마나 신속히 장관들이 모였는지도 조사를 해봐야 할 것이다. 긴급안보 장관회의에 참여하는 관계자의 면면을 보면, 당연히 가야할 군대를 20대부터 30대의 고령이 될때 까지 어떻게 하면 빠져볼까 고민하였던 사람들이다. 

다 늙은 나이에 젊어서도 하지 않던 국가 안보에 신속히 대응했다는 것은 지나온 과거가  국가안보 관계자 장관회의를 하기 위해서 모인것 보다는 가장 안전한 장소를 찾아 청와대 벙커에 피해모였다는 의심을 한다고 해도 그들의 지난 전력상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고 하겠다.
 

긴급안보장관회의 의장이고 국통수권자인 대통령를 비롯해서 국방부 장관을 제외한 국방부 차관까지도 국방의 의무를 진 전력이 없다.


또한, 긴급장관회의에 참여하였던 장관들이 국가안보에 준하는 내용을 가족들에 발설했는지 뿐만 아니고 그들의 가족들이 어떠한 행동을 하였는지도 알아 보아야 할것이다. 혹시 그들 가족들은 그 시간에 외국으로 빠져 나가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직행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왜 청와대는 9시 22분경에 발생한 천안함 사건을 9시45분에 있었던 상황으로 몰고 갔을까? 그리고 왜 10시경에 긴급안보장관회의를 했다고 했을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세종시 수정안이 의회에 개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시의 원안은 행정복합도시이다. 수정안은 행정관련 부서를 옮기지 않는다는 안이다. 행정부서를 옮기지 않는다는 명분은 안보상에 콘트롤 타워가 분산되어 있으면 긴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안보상황에서 신속히 대처를 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였다.

그래서 천안함을 이용해서 세종시에 물타기를 시도하려는 의도가 명확히 보였다. 긴급한 상황에서 안보관련 장관들이 서울에 있으니 15분만에 청와대 벙커에 모일수 있다는 것을 언론에 알리고 스스로 초기 대응을 잘했다고 자화자찬을 하였던 것이다.

만약, 세종시에 안보관련 장관들이 떨어져 있었다면 지금처럼 모일수 없지 않는가? 그러니 세종시 수정안은 장래를 위해서 의회에서 통과되어야 한다는 퍼포먼스에 제격인 것이다.  한마디로 안보를 정치에 이용했다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것이다.

물론, 청와대의 작전은 애초부터 맞지 않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이유는 긴급장관회의에 참여한 면면을 보면 실패가 당연한 귀결인것이다. 사건이 난 9시 16~21분 사이부터 40분이 넘도록 콘트롤 타워는 가동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고, 군경력이 없는 장관들은 3시간 동안 우왕자왕하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5차례 군면제자 안보장관회만을 했던 것이다.

이명박 - 대통령            (면제)

정운찬 - 국무총리          (면제)

김태영 - 국방부장관        (합참의장 만기전역)

원세훈 - 국정원장          (면제)

안상수한나라당 원내대표 (면제 -행방불명, 정신병)

최시중 - 방통위원장        (일병귀휴, 아들 면제)

강만수 - 특별보좌관        (면제)

백희영 - 여성부장관        (아들 공익, 정신병 - 그런데 유학)

윤증현 - 재경부장관        (면제)

정종환 - 국토해양부장관    (면제)

이만의 - 환경부장관        (면제)

이귀남 - 법무무장관        (군필)

김황식 - 감사원장          (면제)

정정길 - 대통령실장        (면제)

원희룡 - 혁신위원장        (면제)

유명환 - 외교통상장관      (군필)

(국가안보장관회의에 이들이 다 참여했다고 볼 수 없음)

미국은 핵전쟁을 가상해서 정보의 독점을 막고 분산하는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이  결과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오히려 한곳에 집중해서 다 같이 죽자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국가 안보를 위해서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안보란, 대통령으로 부터 장관까지 군대를 갔다온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이지, 군대도 갔다오지 않는 자들이 말할 사항은 아니다. 오죽하면 현재 면제자나 군대 회피전력이 있는 청와대의 천안함 대처능력 행태를 보고 우리자식들은 어떠한 수단을 쓰던지 군대에 보내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겠는가?

안보란 지도층의 솔선수범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첨단무기를 가지고 운영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스템을 관리할 콘트롤 타워 역량이 없다면 개발의 편자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자중 절대다수가 의무적으로 군대를 가야하는 현실에서 청와대의 안보장관회의 구성원들 중 절대 다수가 군대를 가지 않을 확률을 통계학적으로 계산한다면, 마른 하늘에 벼락을 맞은 후 로또 1등을 연속으로 수십번 맞는것 보다도 어려울것이다.

어쩌면 이명박 정부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광우병소를 먹고 죽을 확률보다 수백만배 어렵지 않을까 한다. 이와 같은 확률을 뚫고 구성된 군면제 안보장관들에게 좋은 결과를 바란다는 것은 죽은자식 불알만지기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최대 안보위협과 최대위기는 청와대와 국가비상안보장관회의구성원이라는 뜻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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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ephia.tistory.com BlogIcon sephia 2010.04.02 16: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나마 김태영은 봐줄만 하겠네요.
    그런데 나머지는 전부 목을 쳐야.. ㄱ-

  2. 왠지궁금 ^^ 2010.04.03 0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은 군대 다녀오셨나요?

드라마 선덕여왕은 춘추(유승호)의 아버지를 <화랑세기>의 기록에 따라 <용수>라고 설정을 하고, 용수와 용춘를 서로 다른 인물로 설정하였다. 용수가 형이되고, 용춘이 동생이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용수를 미실의 계략으로 춘추가 태어나기 전에 죽은 것으로 설정하였고, 춘추는 유복자로 태어 났다고 하였다. 하지만,  위 설정이 얼마나 역사의 기록과 부합하며, 원작자가 인용한 <화랑세기>와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지 않는가?

일단,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살펴보면, 기존 역사학계의 통설과는 다르게 용수와 용춘은 동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춘추의 아버지로 기록된, 용수.용춘을 동일인으로 기록하고 있을까? 아니면 다른 이로 기록하고 있을까? 겉보기로는 용수.용춘을 동일인으로 기록하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통설은 용수(용춘) 또는 용춘(용수)로 기록하고 있고, 이들을 동일인으로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좀더 신경을 쓰고 본다면, 용수와 용춘은 별도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용수와 용춘의 기록들을 다 뽑아 보자. 그럼 확실히 이들이 동일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622년 진평 44년(622) 봄 정월에 왕이 몸소 황룡사에 거동하였다. 2월에 이찬 용수(龍樹)를 내성 사신(內省私臣)으로 삼았다. - 삼국사기 진평왕 44년

629년 51년(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였다. - 삼국사기 진평왕 51년

635년 선덕 4년 10월에 이찬 수품(水品)과 용수(龍樹) <또는 용춘(龍春)이라고도 하였다.>를 보내 주·현을 두루 돌며 위문하였다.- 삼국사기 선덕왕 4년

정관(貞觀) 17년 계묘(癸卯; 643) 3월 16일에 자장 돌아와 탑을 세워야한다고 선덕왕에 보고, 이후 이간(伊干) 용춘(龍春; 혹은 용수龍樹)이 그 역사를 주관하는데 거느리고 일한 소장(小匠)들은 200 명이나 되었다. - 삼국유사 황룡사 9층 목탑

654년 3월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라고도 하였다.>의 아들이다. - 삼국사기 29대 춘추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 삼국유사 29대 춘추

654년 태종 원년(654) 여름 4월에 왕의 죽은 아버지를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추봉(追封)하고 어머니를 문정태후(文貞太后)로 삼았다 - 삼국사기 춘추 1년 4월

삼국사기는 춘추의 아비로 용춘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고, 삼국유사는 용수를 춘추의 아비라고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로다르게 말을 하니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용수와 용춘을 철저히 분리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용수를 별도로 한번 언급하고 있고, 용춘을 한번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은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통설이 용춘(용수) 또는 용수(용춘)으로 이들을 같은 동일인으로 취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용춘(金龍春)
생몰년 미상. 신라시대 왕족. 일명 용수(龍樹). 진지왕의 아들이며 태종무열왕의 아버지. 어머니는 지도부인(知道夫人) 박씨이고, 부인은 진평왕의 딸인 천명부인(天明夫人) 김씨이다.
아버지 진지왕의 신분은 성골이나, 왕위에 재위한 지 4년 만인 579년에 폐위당하였으며, 용춘의 아들인 김춘추의 신분은 진골로 되어 있다.


통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는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기사로 공주시절에 엮어준것이 아니고, 선덕왕이 덕만공주 시절에 문희와 춘추의 매파가 되었다고 증명하였다. 또한, 모란꽃과 모란씨가 언제 들어온지 아무도 몰라서 하지 않은 이야기를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을 토대로 2009/07/23 -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증명하였다.

위의 용수와 용춘의 기록들을 시간순으로 직위와 이름순으로 도표를 만들어 보았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기록된 용수, 용춘

 

용수가 등장한 때는 삼국사기에 622년 이찬으로 내성사신이 되었다는 기록이다. 용춘은 삼국사기에 629년 8월 고구려 낭비성을 공격할때 파진찬(4급) 대장군으로 참전하는 기록이다.

삼국사기는 용수와 용춘을 별개의 인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635년 1월 주.군을 순시하는 자가 용수인지 용춘인지를 알 수 없다고 하고 있으며, 용춘이 춘추의 아비인것 같은데 용수라고 하는 기록도 있다는 것을 남겨 두었다.


용수는 이찬(2등)급이고 용춘은 629년에 파진찬(4등)위에 해당한다고 기록한 것이다. 용수와 용춘이 동일 인물이라면 2 등위 이찬이 7년 6개월 후에 4등위 파진찬이 되었다는 뜻인데 이는 국무총리가 장군이 되어서 전장에 참여하는 꼴이 된다. 또는 장군이 계급이 강등되어 일개 사병으로 참전하는 꼴이다. 이순신 처럼 백의종군을 할려면 충분히 그만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용수를 602~3년 즈음, 미실의 계략으로 용수가 죽은 것으로 설정했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아무리 빨리 죽었다고 해도, 622년까지 용수는 생존하고 있었다. 또한, 천명은 춘추가 왕이 될때에도 굳건히 살아 있었다.

어찌되었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용수와 용춘을 철저히 분리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기존 통설은 서로 다른 자를 하나의 인물로 만들어 괴물을 만들어 버린것이다. 

<화랑세기>는 용춘이 어떻게 629년 낭비성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기록이 있다. 마야의 뒤를 이어 황후가 된 손승만이 아들을 낳았지만, 일찍 죽는 일이 생겼다. 하지만, 승만황후는 왕자가 일찍 죽은 이유가 용수.용춘 형제라고 의심을 한다. 그리고 용수.용춘을 지방으로 축출해 버린다. 이후 용춘은 고구려 낭비성 원정군에 합류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승만왕후도 무시하지 못할 권력을 쥐고 서라벌로 금의환향한다.

만약,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704년경 김대문이 저작한 것이 아니라면, 박창화는 현재 괴물이된 키메라 용수.춘을 만든 이들보다 역사적 안목과 역량이 몇수는 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춘추의 아버지는 누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하나하나 살펴본다면 위에서 언급한것 처럼 용수와 용춘은 철저히 다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단지, 춘추의 아버지가 용수인가? 용춘인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화랑세기에는 용수의 나이와 용춘의 생몰년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춘추의 아버지는 용춘의 형인 용수이며, 용수가 죽고나서 형수인 천명을 아내로 맞이하고, 춘추를 자식으로 입양한다.

생부는 용수이지만, 어머니 천명이 작은 아버지 용춘에 시집을 가서, 자동으로 춘추는 법적으로 용춘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화랑세기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 춘추의 아버지를 용수라고 하는 것도 당연하고, 용춘이라고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한다.

용춘의 아들이 된 춘추

최근 총리지명을 받은 정운찬은 형제가 있었다. 하지만, 아들이 없는 큰아버지의 아들로 입적을 한다. 그래서 정운찬은 독자로 군대를 면제받게 된다. 또한, 정운찬의 동생도 독자로 군대를 면제 받게 된다. 예전에 주로 군대를 면제받는 방법으로 많이 사용하던 편법이다.

물론, 정운찬이 정말 군대를 면제받기 위해서 <양자입적>이라는 편법을 동원했는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운찬이 일반적으로 20대 초반이면 다 가는 군대를 가지 않고, 뒤 늦게 큰아버지의 아들로 호적을 옮기고, 더 나아가 나이가 30세가 넘어서 군대를 면제 받는 것으로 보았을 때, 정운찬은 국방의 의무를 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는 것을 쉬이 알수는 있다.
이런 자들이 나라를 걱정하고, 공직에 올라가 세금을 낭비하며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발상은 어패가 있다. 단순히 자신의 부귀와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서 <국가봉사>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국가에 봉사할 생각이 있다면, 국무총리직을 사양하는게 정운찬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국가에 대한 봉사이다.

어찌되었던, 
양자를 들여서 가문의 종통을 잇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  아버지에게는 삼형제가 있었는데, 가장 큰 아버지는 딸을 하나만, 낳고 일찍 돌아 가셨다. 두번째 큰아버지는 외아들을 두었다. 그런데, 막내인 아버지는 아들이 둘이 있었다. 그래서 막내인 아버지는 큰아들을 자신의 큰형님의 양자로 입적시키고, 족보도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큰아버지가 죽고 한참후에 막내인 아버지는 장가를 가서 아들 둘을 낳았다. 그러니 입양된 큰아버지의 아들은 생물학적으로는 도저히 큰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없다. 기록이 제일 큰아버지의 기록만 남았다면, 입양된 큰아버지의 아들은 생물학적으로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아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이 불신되는 이유도 초기기록이 불분명한 이유도 있지만, 법통을 이은 아들과 생물학적인 부자관계 혼동해서 읽다보면 그런 불신하는 경우가 많다. 생물학적 아버지만을 찾다보면 역사의 기록을 불신할 수 밖에 없어져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이산>을 봐서 알겠지만, 정조(이서진)의 아버지는 사도태자라고 한다. 하지만, 정조가 왕이 되기전까지는 생부는 사도일지 모르지만, 종통과 법통은 사도의 형에게 있었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면서, 자신의 생부도 사도이고, 종통과 법통도 사도에게 있다고 천명한다.

천명만이 알 수 있는 춘추의 생부. 그러나


삼국사기의 기록을 토대로 살펴본다면, 춘추는 603년 생이다.

622년 용수는 이찬(2등위)이였다. 그러니 나이가 적지 않았다. 629년 용춘은 파진찬으로 4등위에 해당한다. 이들 용수. 용춘 형제는 나이 차이가 있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용춘은 576년생 즈음이다. 용춘이 춘추를 낳았다면, 28살에 춘추를 낳은 것이다. 용수가 낳았다면 이보다는 많은 30대에 낳은 것이 된다.

통설로 천명은 15세 전후에 춘추를 낳았다고 보는게 일반적이다. 진평왕13세가 되는 579년에 태어 났다고 해도 천명은 602년에 24살이다.

용수. 용춘이 당시의 신라 사회의 통념으로 보았을때  굉장히 늦은 나이에 <춘추>를 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용수.용춘 누가 되었던 상관없이 용수. 용춘은 천명과 첫 결혼이 아님을 쉬이 알 수 있다. 화랑세기는 용수.용춘이 이미 결혼을 하고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기도 하다.


어찌되었던 춘추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물론, 기록을 남겼지만, 망실되었을 수도 있고, 정확히 천명이 누구와 관계를 하여 춘추를 낳았는지 당대부터 설왕설래 하였을 수도 있다.


신화나 설화를 보더라도, 어머니는 알아도 아버지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몽의 아버지는 해모수라고 하지만, 알길이 없다. 단지 주몽의 어머니는 유화부인임을 알 수 있다. 예수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어머니인 마리아이다.

그러니 춘추의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춘추의 어머니는 천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를 화랑세기는 춘추의 생부는 용수이고, 양부가 용춘이다. 용춘이 양부가 된 이유는 진평왕이 용춘으로 하여금 천명을 아내로 삼아서 왕위를 잇게 하기 위해서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빠져 나갈 구멍을 하나 만들어 놓았다. 낮엔 용수의 처인 천명이 밤에는 용춘의 처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슬쩍 흘리고 있다. 이쯤되면 천명자신도 춘추의 진짜 아버지가 용수인지 용춘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하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춘추의 아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그렇지만, 춘추는 나이 많은 용수보다는 상대적으로 젊고, 천명과 관계를 많이 가진 용춘이 진짜 아버지 였을 것이다. 춘추와 용춘의 이름에서도 <춘>자를 쓰는 용춘이 생물학적인 아버지의 냄새가 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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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서은영 2009.09.21 1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궁금합니다. 김춘추의 아버지가 누구인지요... 가르쳐 주세요ㅗ.~~!

    선덕여왕 재미 있게 보고 있어요....

  3. Favicon of https://ceo2002.tistory.com BlogIcon 불탄 2009.09.21 17: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가 내렸던 월요일이에요.
    지금도 잠시 멈추고는 있지만 언제 쏟아질 지 모를 분위기를 담고 있네요.
    남은 오후시간 마무리 잘하시고, 이번주는 더욱 활기차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4. 2009.09.21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세기는 다르지만 이 드라마는 선덕여왕 소설로 만든 드라마인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찾아서 봐봤자 어차피 소용없는짓..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2 0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설의 모본이 화랑세기이고 삼국유사와 삼국사이지요.. 그러니 문제라고 하는 겁니당.. 소설은 그안에서 있음직한 이야기지요..

  5. Favicon of http://김춘추의 생부는 용운공의 형 용수전군이다 BlogIcon 감사하리 2009.09.21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명공주는 진평왕의 첫째딸이다 / 용춘공의 용수전공과 결혼했는데 / 천명공주가 사랑한 사람은 용충공이다 / 용수전공이 죽으면서 천명공주와 용수공의 아들 춘추공을 부탁하여 결합하였다 용춘공은 뒤에 선덕여왕이 등극하자 용춘공을 올아비로 선택하엿는데 용춘공은 벼슬에 뜻이 없어 말하기를 아들이 없ㅎ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물러가서 살았다 이에 선덕여왕은 을제공을 총사로 임명하였다 / 이것이 화랑세기의 내용이다

  6. 2009.09.21 2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잘보았습니다 김춘추 아버지가 누구인지 궁굼합니다 글로보면 용수아들갓고 용춘은 양아버지같은데 확신응없습니다 좋은자료주셔서 감사합니다 늘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2 00: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로 보면 용수인지 용춘인지 모른다이고, 문제가되는 화랑세기는 용수라고 단정을 하지만,
      용춘이 될수도 있다고 기술하고있지요.

      저의 생각은 용춘이지 않을까합니다.. 여러 정황들이..

  7. Favicon of http://blog.daum.net/doong2009 BlogIcon 둥둥 2009.09.21 2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읽었던 책에는 용춘이라는 인물과 천명, 덕만 공주가 삼각관계로 나오더군요
    천명은 용수와 결혼하고도 용춘과 정을 통해 춘추를 낳게 되구요..
    용춘과 용수라는 인물들도 진지왕의 자식들로 왕권에 도전한 인물들로 나오던데
    드라마에서는 비중이 거의 없어서 조금은 아쉬워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2 00: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천명과 덕만이 삼각관계로 설정한 이유는 천명과 덕만이 나이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통설에 따른것같습니당. 용수와 용춘이 다른 인물이라고 한 것은 화랑세기를 따른것 같구요.

      용수와 용춘이 왕위를 도전할 만한 역량이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당.. 복위하기 위한 생각은있었을 것 같기는 합니당.

  8. 갓쉰동님 광팬 2009.09.21 2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것들을 보면 신라는 다른 삼국보다는 모계의 냄새가 강한 것 같네요.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이 군주가 되고 아들이 아닌 사위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흔한 일이었던 것, 화랑제도 초기에 화랑의 우두머리가 여성이었던 점, 미실같은 거물 여성정치가 비교적 많이 등장했던 것을 보면 그렇네요. 뭐... 오늘도 글 잘봤습니다^^

  9. joomin11 2009.09.22 0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이 정말 역사에대해 얼마나 전문가적인 지식을 갖추셨고 사학계에 몸을 담고 계신지 아니면 그냥 역사연구를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고대사는 학자들이나 사학과 조차도 파헤치기 가장 어렵고 어물쩍넘어가는 부분이지요.. 우선 화랑세기의 위서논란과같이 자료가 부족한경우가 많을뿐더러 그나마 정통한 서적인 삼국사기는 신라위주로 애곡이 되어있고 삼국유사가 야사등을 잘 결합하고 여러서적을 망라한 부분인 만큼 가치는 있으나 앞의 서적들이 부족한 면이 많고 화랑세기의 경우 대조조차가 불가하니 아주 완벽한 서적이라고는 할수 없지요. 물론 고대사는 기존 사학계의 입장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의견 피력 뿐만이 아닌 블로거를 통해서 본인의 의견을 검증도 받지않고 기존의 사학계를 비판하시는 것은 옳지않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고대사는 누가 옳다고 할수없거든요. 부디 사학계의 이단아인 이덕일 교수같은 고대사를 이용한 사기꾼은 되지 마시길 그래도 충분히 논의될수있는 의견이고 선덕여왕드라마의 왜곡을 콕콕 짚어주시는 부분은 추천 꾹 드립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2 0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료가 부족하니 있는 부족한 자료라도 재대로 쓰자는 글입니당.. ㅋㅋ

      없으니 망가트려야 한다가 아니고,, 없는 자료이니 소중하게 여기자는 거지요..

      그리고 저 이덕일 싫어해요.. ㅋㅋ

  10. 익명 2009.09.22 0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익명 2009.09.22 0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2. 두번째입니다. 2009.09.23 1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의 글에 글을 남기네요.
    님은 그나마 남아있는 삼국 역사서를 들고 같이 비교를 하면서
    역사를 꿰뚫어보시려고 하네요.
    정말 재밌고, 이성적인 관찰법이라고 생각됩니다.

    단지 재미로 이렇게 비교해가면서 과거를 추리해보는 것에는 적극찬성입니다.
    하지만, 역시 삼국시대가 아닌 훨씬 뒤 세대에 만들어진 책들로
    과거를 정확하게 추론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거 같습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후대에 쓰여진 역사서일수록
    저자의 의도가 다분히 섞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후대에서는 큰 줄거리의 역사는 이해하되,
    그 역사서에 얽혀 소소한 이론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경계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는 선덕여왕 드라마를 보면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복식이 왜 당나라 복장이냐?
    한글을 쓰지 않고 중국한자를 쓴다.
    결국 한국은 중국 짝퉁에 지나지 않는다.

    이게 중국인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역사를 찢어발기고 부끄러워하는 동안,
    타국에서는 우리의 역사를 비웃고 멸시합니다.

    믿지 못할 삼국 역사서로 우리드라마 우리 역사를 비웃기보다는
    오히려, 저 드라마로
    우리나라를 발아래로 생각하는 나라들에게
    우리나라 인물과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초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화강국이야말로 총알없이 다른 나라를 포섭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니까요.
    님의 정교한 글들을 보면서
    님의 주제가 좀더 미래를 위해 발전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내봅니다.^^

    또한, 저는 이 드라마가 단지 신라만을 띄우기 위한 드라마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삼한일통.
    현대에 있어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가 또하나의 일통을 이루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강대해져갑니다.
    미국은 오히려 힘이 위축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불황중이지만, 부자가 망해도 삼년은 간다고 합니다.
    그 활화산 한가운데 위치한 분단국가 한국...남한이던 북한이던
    일통....통일이야말로 살길이다, 라는 게 지금 이 드라마의 속내입니다.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

    현대에 살기에, 드라마는 옛 옷을 입고 과거의 풍경을 보여주지만,
    결국 현대에서 만들기에
    우리의 차가운 현실을 반영해줍니다.

    님처럼 이성적이고 역량있는 역사가라면, 좀 더 큰 틀에서 드라마를 평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글을 남겨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3 10: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작자의 의도는 있습니당. 그 안에서 합리성을 찾는 거지요.. 역사학중에서 문헌사학의 그런것 아니겠어용..

      믿지 못할 역사라니 어떤것을 말하는지요?
      비웃는다고 없는사실을 만들어 사극으로 넣어야 할까요?

      그렇다면 한글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삼국시대에..
      당복식은 잘못된거지요.. 사실.. 고구려식 복장이면 모를깡..

      진덕왕 3년이전에 당복식은 의복의 고증을 못한거지요..

      문화의 우수성은 있는 그대로를 바로 알리는 겁니당.. 남에게 역사왜곡하고 동북공정한다고 할것이 아니고 우리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극은 현대극입니다. 극단적으로 말을 하면..
      현실을 역사라는 거울로 투영해서 보여주는 것이거든요..

      재글 대부분이 사극의 원작을 비판하고, 사극을 비판하는 것 같지만 전혀 아닙니다. 사극을 비판하는게 아니고,, 원작자의 허구에 찬 거짓말을 비판하는데 할양되어 있을 뿐만 아니고, 현실과 세태 비판이니 현실과 잘 쾌를 같이해서 보면 더 사극이 잼있다는 내용이 주류입니당..

      자주오셔서 글 많이 읽어 주시고 추천도 많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___^

      존댓글 ㄳ합니다.. ^____^

  13. Yuna 2009.10.13 1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글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흥미롭게 역사공부 잘하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14. Favicon of http://blog.daum.net/danaw87 BlogIcon 김용재 2009.10.14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시원한 분석평입니다.

    정말 궁금했었는데 말이죠. ㅎㅎ

    드라마에서도 용춘공과 춘추가 별로 부자처럼 붙어있지도 않은 것이

    아예 안친한 것처럼 신하와 왕족의 관계로만 설정되어 보이는 것이 이상했었습니다. ^^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

  15. 프러스 2009.10.16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재미있다고 표현하는게 맞는건지 모르겠는데..
    재미있네요..

  16.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7. Favicon of http://albertwolfe6.blogspot.com/2012/04/emergency-endurance-kits-save-world.h..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los angeles 2012.11.01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8. Favicon of http://www.psfk.com/2007/07/regine-debatty-from-wmmna-on-what-happens-when-art..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uk 2012.11.06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니면 다른 이로 기록하고 있을까? 겉보기로는 용수.용춘을 동일인으로 기록하

  19. Favicon of http://www.cheaphelmetsonlineshop.com/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20. Favicon of http://spluch.blogspot.com/2007_07_01_archive.html BlogIcon above ground electric dog fence 2012.12.22 1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 기능을 갖춘 스크린 캡쳐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프로그램 없이도 웹페이지를 가장 빠르

  21. Favicon of http://survivalfoodpacks.beep.com/ BlogIcon best food survival kits 2013.01.02 16: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들을 동일인으로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좀더 신경을 쓰고 본다면, 용수와 용춘은 별도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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