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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는 정기준(가리온)의 시신해부를 통해서 후음(목구멍)소리에 해당하는 상형문자
를 만들어 낸다.

 

시신해부와 천지계 문신는 극중 긴장감을 위한 도구로서 작가는 유용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선덕여왕에서 보름날 일식만큼이나 황당한 설정이다. 한마디로 당시 조선 시대의 상황을 도외시한 설정이다.

 

분명 세종 이도는 극중 처럼 털털한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눈물도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신하들과 논쟁을 하면서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눈물로 호소를 하기도 한다.

 

더불어 자신의 생각이 확고할 때는 논쟁으로 신하들의 논리를 무력화 시키기도 한다.

 

신하들과 대화를 하다 대화가 안되면 일반사람들처럼 신하가 물러나면 고루하고 생각이 낡았다고 뒷담화까지도 하면서 웃기까지 한다.

 

세종 이도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근엄함과는 차이가 많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니 뿌리깊은 나무에서 이도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세종 이도를 바로 찾아주기 프로젝트와도 같기는 하다.

 

하지만, 세종 이도는 문신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뿌리깊은 나무에서 처럼 천지계원인 신하들에게 문신을 했을 가능성은 없다. 한마디로 개연성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런 세종 이도가 한글(훈민정음)때문에 시신해부를 한다는 발상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글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2011/11/10 - [역사IN드라마/뿌리깊은나무] - 뿌리깊은 나무, 밀본 가리온 시신해부와 백두산이 장백산? 독도는 다케시마? 엄청난 차이점
2011/11/10 - [역사IN드라마/뿌리깊은나무] - 뿌리깊은 나무, 가리온 정기준 시체해부 한글 만든다? 도 넘은 설정



어쨌든 훈민정음의 기초는 완성이 되었고, 이를 이용한 글자를 써보이는 장면에서 소이는 딴 생각을 하고 있다. 소이라고 써 보인 세종은 뻘춤할 수밖에 없다. 글이 있어도 읽을 수 없고, 말을 할 수 없다면 소이에게는 한자나 한글이나 별반 차이도 없다.

 

더군다나 소이나 채윤은 이미 한자를 자유롭게 쓰고 있으니 한글이 있으나 없으나 별반 다르지도 않을 것이다. 소이가 강채윤이 남긴 벽서를 생각하며 딴 생각을 하는 것 처럼 그렸지만, 뿌리깊은 나무는 이를 간과한 것 같다. 그러니 소이가 한글을 보고도 반응이 신통치 않은 것은 일견 이해가 가는 장면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어리석은 백성이 자신의 의사를 글로서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변곡점이 소이와 강채윤이 글을 몰라서 자신들의 가족이 몰살되었다는 지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한자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소이나 강채윤에게는 한글의 필요성이 있었을까? 이미 강채윤이나 소이는 기득권에 편입된 상태인데 말이다.


 

어쨌든, 뿌리깊은 나무에서 밀본의 수장 정기준(가리온)은 세종의 보위세력이나 다름없는 집현전을 없앨 궁리를 한다.

 

밀본의 수하 중에서도 집현전의 두번째 고위직인 직제학에 심종수가 있다. 심종수도 집현전이 없어저할 부당한 세력이라고 생각했을까?

 

뿌리깊은 나무에서 중대한 설정의 오류는 집현전이 단순히 국왕 세종 이도의 친위세력이라고 생각한 점이다.

 

그러니 집현전을 태종 이방원이 세종 이도가 가지고 놀 놀이감으로 생각하는 측면이 있지만, 세종 이도는 집현전을 통해서 문치를 해 나갈 것이라고 설정한 것이다.

 

집현전은 고려 인종시절에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는 삼국사(삼국사기)의 김부식도 집현전의 고위직에 있었다. 그 만큼 연원이 오래된 조직이 집현전이다. 단지 집현전이 집현전 답게 조직화 되어 있고, 독립기관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은 세종 때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 처럼 이도가 요구를 해서 이방원이 마지못해 승락하고 개에게 먹이를 던져주듯이
집현이란 이름을 만든 것이 아니다.

 

태종 이방원의 측근이 박은이 집현전의 독립기관화를 상소하고 세종 이도가 이를 받아 들이고, 박은을 집현전의 관리책임자인 직제학에 임명하고, 부제학에 신숙주의 아버지 신장을 임명한다. 신장은 그 후 직제학에 오른 후 7년여 봉직을 하고 물러난다.

 

그렇다면 집현전이 단순히 왕의 직할부서의 역할을 한 것 일까? 그렇지가 않다. 집현전은 끊임없이 세종 이도의 정치에 딴지맨 역할을 한다. 조선은 사헌부, 사간원 등 수 없이 많은 왕의 독점적 권력을 비판하고 견재하는 수단을 가지고 있었는데 또 하나의 비판기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반대가 훈민정음의 부당함을 상소한 것도 집현전이었다. 부제학 최만리로부터 직제학과 사육신의 하나인 하위지 등 관련자만 7명이나 있었다. 집현전은 20명의 상설기관이지만, 내 놓고 반대한 사람이 7명이라면 대다수가 반대했다고 할 수 있다. 나머지 이개나 박팽년, 성삼문 등은 왕이 시키니 한다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이 공법(세법)개정을 시도하자 밀본은 세법개정이 성리학을 말살하는 정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견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세법에 반대하는 것 처럼 비춰졌을 것이다. 또한, 세법에 가장 반대한 세력도 집현전과 수 많은 위정자 들이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은 백성을 생각해서 기득권 세력에 반하는 세법(공법)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많은 시청자들이 이에 동감을 표하고 기득권에 대항한 세종과 기득권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위정자들을 생각하고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종의 세법개혁은 기득권 말살과는 하등 상관이 없고, 오히려 세법개혁은 기득권층을 강화하고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하는 개혁이었다. 그래서 집현전을 비롯해서 수 많은 조직에서 반대를 한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성리학들이 반대한 이유는 세종의 세법(공법)에는 문제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의 세법은 일견 세금감세 정책이었고, 모두 세금이 감하게 되는 정책이었지만, 가진자들에게 세금을 감세하는 일괄 부자감세정책이었다. 현재의 소득세는 누진제로 되어 있어서 부자가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세종의 공법은 평등과세였다. 100을 가진자는 30의 세금을 냈는데 바뀐 정책은 100을 가진자에게 10만 부담하게 하는 감세였다. 못가진 자는 세금의 혜택이 일부 있었지만, 절대적인 혜택은 부자들이 보는 기득권을 지키는 정책이었다.

 

그래서 조선 세종 시대의 공법은 논란 끝에 전체적으로 감세가 되는 기본 골격에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는 방식으로 누진되는 누진세로 바뀌게 된다. 한마디로 세종 시대 사대부들은 요즘의 부자들과는 다르게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부자들에겐 있을 수 없는 정책이지만 세종시대 권력자들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었다. 워린버핏은 세종 시대 관리자에게는 기본적으로 가진 생각들이었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글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2011/11/02 - [역사IN드라마/뿌리깊은나무] - 뿌리깊은 나무, 세종 세법 밀본 기득권말살 정책? 부자감세 위정자들 워린버핏세 주장
 

그러니 뿌리깊은 나무가 얼마나 잘못된 설정을 했는지 쉬이 알 수가 있다. 세법을 반대한 이유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 기득권을 버리고 나라의 재정과 부익부 빈익빈을 없애자는 반대였던 것이다.

 

집현전에서 또 다른 반대는 불교에 대한 반대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내불당 사건과 불경을 편찬을 들어서 밀본이 성리학을 말살하는 정책이라고 하지만, 이 또한 집현전에서 반대를 한다. 물론, 뿌리깊은 나무에서 내불당 사건을 예시로 들었지만, 내불당 사건은 한글이 창제된 후의 사건이다.

 

내불당은 1446년 소현왕후가 사망하고 세종이 내불당을 문소전 뒤편 북서쪽 궁궐 내에 불사를 만들자 반대를 한 것 이다. 뿌리깊은 나무 작가 김영현은 좋은 작가임에는 분명하고 시청자를 끄는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출중하지만, 개연성과 리얼리티도 없는 말이 되지 않는 설정을 함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깍아 먹는 경우가 많이 있다.

 

좀더 깊숙히 생각하고 자신의 시나리오를 검증했다면 쉬이 바꿀 수 있는 설정들이다. 문신, 시신해부, 내불당 언급과 집현전설치와 없애기, 세법은 그 중 대표적인 설정의 오류이다.

 

아마도 사사건건 반대를 하고 딴지를 거는 집현전을 없애고 싶었던 사람은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 이도라면, 가장 먼저 집현전을 없애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밀본의 본원 정기준이 세종 이도의 직할 보좌기관인 집현전을 없앤다고 나서니 얼마나 속으로 쾌재를 불렀겠는가?

 

오죽하면, 세종 이도는 집현전의 반대에 궁궐을 떠난 적이 있었다. 세종 이도는 태종 이방원이 세운 흥천사에 불탑을 중건하고 경천회를 개최하려고 했다. 하지만, 집현전을 비롯한 사간원, 대간, 성균관 등의 반대에 직면한다.

 

그래서 상소를 아예 받지 않도록 조치를 하지만, 언로가 막혔다고 대대적으로 들고 일어난다. 2년여 동안 끊임없이 반대를 하자 세종 이도는 꼼수를 내고 흥천사 사리탑 경천회를 하도록 지시하고 왕에게 반대할 수 없도록 온양행궁으로 온천욕을 떠나버린다.

 

임금이 승정원에 이르기를,
온정(溫井)에 거둥하는 사이에 흥천 사리각(興天舍利閣)에서 경찬회(慶讚會)를 베풀면 어떨까.”

거둥하실 때 그것을 하시면 언관(言官)들이 번거롭게 청하지 못할 것이니, 하교하심이 참으로 지당하옵니다.

다만 국도(國都)를 비우실 때이므로 공양(供養)할 여러가지 물건을 지공하기가 어려울까 하오니, 서울에 남아 있는 승지로 하여금 호조와 같이 의논해서 지공해 쓰고 환궁하신 뒤에 주달(奏達)하게 함이 온당할까 하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알았노라.”
- 세종 24년 1442년, 2월 21일 


뿌리깊은 나무가 밀본 본원 정기준(가리온)을 통해서 집현전을 없애려 한다는 설정을 넣은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단순히 집현전을 왕의 친위세력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집현전을 믿지 못하는 세종이 비밀세력 천지계를 조직하고 있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집현전을 없앤 이는 다름 아닌 세조 수양대군이었다. 수양대군은 집현전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박팽년, 성삼문을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했고, 광평대군이 이를 주도한 것으로 그리고 있지만, 특히 언문 훈민정음에 관한한 수양대군만큼 아는 이도 없었다.
 

 


세조 수양대군은 세종과 같이 성리학과 잡학으로 천시하는 군사, 농학, 천문, 지리, 수학 등에 능했고, 불교를 탄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도 천시하지 않았다. 가장 적극적으로 훈민정음을 실생활에 사용한 군주와 왕실은 세조 때였다. 오죽하면 언문(훈민정음)으로 신하들에게 지시까지 했겠는가? 공주의 남자에서 세령공주가 김승유를 살리자고 혈서로 쓴 한자 "승법사 여리"는 한글인 "승법사 여리"라고 했어야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있다.

 

어찌보면 뿌리깊은 나무에서 정도전의 밀본 계원은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등 사육신으로 그려야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있지 않을까 할 정도이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비난 받는 수양대군과 신숙주가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하였다고 그릴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개연성도 없는 광평대군을 천지계를 이끄는 왕실 종친세력으로 그리고, 신숙주가 뿌리깊은 나무에 등장하지 않는 이유이다.

 

수양대군이 집현전을 없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많은 사람들이 사육신의 다수가 집현전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말을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집현전이 공론만 있고, 사사건건 임금이 하는 일에 반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조 수양대군에게 왕이 하는 일에 딴지만 거는 집현전이 좋아 보일리가 없는 것이다.

 

세조 2 1456집현전(集賢殿)을 파하고, 경연(經筵)을 정지하며, 거기에 소장(所藏)하였던 서책(書冊)은 모두 예문관(藝文館)에서 관장하게 하라.

 

뿌리깊은 나무에서 밀본은 왕은 꽃이고 정승을 중심으로 한 신권은 나라를 지탱하는 뿌리라고 언급을 하면서 조선은 신권의 나라라고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신권 강화의 핵심은 사간원, 사헌부, 집현전이 중추였다.

 

밀본이 추구하는 성리학의 나라, 신하들의 나라의 논리를 집현전에서 집대성하고 발전시켰는데 신권을 지상명제로 생각한다는 밀본이 성리학의 뿌리와 논리를 제공하는 집현전을 없앤다는 설정이 가당키나 한가? 왕에게 집현전은 버릴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는 계륵과 같은 존재였을 뿐이다.

한마디로 뿌리깊은 나무에서 밀본 정기준이 성리학의 나라를 세우려고 집현전을 없애려 시도한다는 설정은 자책골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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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www.balloonking.co.uk BlogIcon balloons by post 2011.12.11 2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은 나가 이제까지 오늘 만난 제일 지도 블로그이다. 나는 나가 여기에서 본 장소로 진짜로 황홀케 했다 나는 그(것)들을 언젠가 방문하고 싶다. 그것을 유지하십시오!

  3. Favicon of http://perdredupoidsvite.blogs.fr BlogIcon Yoshie 2011.12.16 0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블로그 입니다 몹시 재미 ! I 포기에 아버지 !

  4. Favicon of http://www.onlineleatherhandbags.com/ BlogIcon Leather Handbags 2011.12.24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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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Favicon of http://www.suits4menonline.com/ BlogIcon white suit 2011.12.24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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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부족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ㅎ

  7.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 훈민정음 해례(교본)은 세자(문종), 수양대군(세조),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박팽년 등이 세종의 지시와 교정을 받고 만들어진다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kso-c-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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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글)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쉽게.. 검색창에 "언문"이 무슨

  9. Favicon of http://www.balloonking.co.uk/40th-birthday-balloons-2 BlogIcon 40th birthday balloons 2012.07.14 0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잘보고 갑니다~ ㅎㅎ
    매력적인 블로그 기대할께요~ ^^

  10. Favicon of http://rocville.com/?p=News BlogIcon Delbert 2012.07.21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들에게 문신을 했을 가능성은 없다. 한마디로 개연성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다

  11. Favicon of http://www.1-health-insurance-quotes.com/anthem-lumenos/ BlogIcon lumenos 2012.07.24 16: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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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병훈은 조선왕조실록에서 극히 드물게 나온 숙빈최씨의 성장과정을 드라마화는데는 무난하다고 할 수 있으나, 동이(숙빈최씨)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함을 드러내고 말았다.

  19. Favicon of http://www.edgeptown.com/index.php?ch=style&sc=life&sc2=features&sc3=&id=41788 BlogIcon petsafe invisible fence installation 2012.12.27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세종 이도는 문신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뿌리깊은 나무에서 처럼 천지계원인 신하들에게 문신을 했을 가능성은 없다. 한마디로 개연성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20. Favicon of http://essentialswaterbarrel.xanga.com/ BlogIcon katadyn pocket filter 2013.01.05 2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구성으로 이루어 졌다. 하지만, 미션의 내용과 해결하는 방법은 이전 이병훈 사극이 주었던 치밀함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21. Favicon of http://naughtystrawberry.co.uk/ BlogIcon dildos 2013.02.15 1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은 실제로 마당에 많은 식물을 성장하는 데 사용되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토지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의 집 뒤에 땅을 많이 사용할 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10월 3일은 하늘이 열리는 개천의 날이라고 한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날이라고 한다. 음력 10월 3일이던 날이 양력 10월 3일이 되고, 환웅이 신시를 만들었다고 알려지는 개천의 날이 단군이 나라를 세운날이라고 잘못 알려지게 된다.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탄신일이 아니듯, 크리스마스에 눈이오지 않음 안된다는 환상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유대땅에서 눈을 보기는 천지개벽을 하기만큼 힘들다라고 이야기를 해줘봐야 별무 신통이다. . 예수와 동방박사는 사라지고 그자리에 <산타>가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 되는 일처럼 원형이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민족의 시조가 나라를 세웠다는 날이 바뀐다고 달라질것도 없다.

길림에 있는 곰상(쑥과 마늘이 보인다)

 단군이 기원전 2333년에 개국을 하였다. 단군이 태어난때로 돌아가면 환웅이 범과 곰에게 마늘과 쑥을 주어 동굴에서 빛을 보지 않고 치성을 드린다면 100일만에 인간이 될수 있다고 한다. 

곰이야 동면을 하는 동물이니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100일을 참을 수 있지만 범이야 일주일만 굶어도 굶주림에 목놓아 울어버릴것이고 배고픔에 탈출하는 것이 범의 성격에 맞는 일이다.

 범이야 애초부터 마늘과 쑥을 먹지 않는 육식동물이니 예초부터 게임이 되지 않는 불공정 시합을 환웅은 시킨 것이다. 환웅은 이미 범보다는 곰에게 마음이 있었지 않을까 한다. 한마디로 범이 풀을 뜯어먹냐?라는 개가 풀뜯어 먹는 이야기다. 

그 증거로 호랑이가 배가 고파 더이상 참을 수 없어서 동굴을 빠져나가자 100일이 지나야 인간이 될수 있다는 <약속>은 간곳이 없고, 곰은 21일만에 인간이 되고, 환웅과의 사이에 단군을 낳는다. 그래서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도 환웅이 애초부터 <웅녀>에 마음이 있었던것이 아닐까하고 그려가지 않던가?

 한웅이 인간세상에 올때를 보면 <우사>,<운사>,<풍백>과 남.여 삼천인을 데불고 온다. 바람과 구름과 비는 농사를 짓는데 없어서는 않된다. 360개의 생노병사를 관장하여 삼라만상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기치로 인간계에 구현을 하는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기자가 오자 단군이 기자를 피해서 구월산에서 하늘로 올라갔다고는 것으로 봤을때. 기원전 1000~1200년전 기자에 밀린것 같다.

 마한은 위만에 쫓겨난 기준이 현재의 한반도 남쪽땅에서 <진>을 멸하고 <마한>이라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나라의 후손이 다시 기준의 후손을 물리치고,목지국에서 마한을 다스렸지만 마한이 들어선후에도 백성들 사이에서는 <기준>을 기리는 제사를 했다고 한다. 이때가 250년전후이니 기원전 194~5년 기준이 위만에 쫓겨난후에 근 450여년 만이다. 요즘 이야기로는 호랑이 담배를 피워던 시절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단군의 후손들은 기자에 쫓기고 기자의 후손인 기준에 쫓기는 웃지 못할 상황에 봉착한것 같다.

 마한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땅에도 제사를 지낸다고 하는데 소도가 있어서 <천군(天君)>이 제를 주제한다고 한다. 천군은 박종훈이 주연한 <천군(天軍)>과는 다르다. 천군은 하늘군대이고 마한의 천군은 하늘임금이 된다. 천군이 환인이 된다. 천군(天君)>을 옛고음으로 발음하면 어떻게 될까? 훈민정음 창제시절에는 천이 <텬>이고 중국식 발음으로는 (tian)이니 고음으로는 오히려 단군에 가깝지 않았을까?

환(桓)은 이름이 하늘의 음차이고 천(天)은 훈이니 하늘을 뜻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마한의 천군은 환인이던 환웅이던 단군이던 연관성이 있을것 같다. 절에 있는 칠성각(당)과 삼신당(각)이 환인/환웅/단군을 이름한다는 이도 있으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문제는 왜 <우사>,<운사>,<풍백>일까? <산해경>을 볼라치면 풍백은 바람의 신으로 오른손에 부채를 들rh 있는 것으로 묘사가 되고 있다. <비렴>이나  방천군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하늘에 있는 별자리중에서 기(箕)성에 해당한다.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신라 종묘의 제도
입춘 후 축일(丑日)에는 견수곡문(犬首谷門)에서 풍백(風伯)에 제사지내고, 입하 후 신일(申日)에는 탁저(卓渚)에서 우사(雨師)에 제사지내고, 입추 후 진일(辰日)에는 본피유촌(本彼遊村)에서 영성(靈星)에 제사지냈다

삼국사기 신라/제사에 보면 우사/풍백 등에게는 때가 되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상전인 환웅을 제사지냈다는 말은 없다. 연결시킬려면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냈으니 환웅/환인/단군에 제사를 지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단지 우리만이 지내는 것이 아닌  전세계 어떤 민족이나 지냈으니 꼭집어서 <환인>,<환웅>,<단군>을 지칭한다고 할 수 없다.

단지, 삼국사기만으으로는 단군에게 제사를 지냈는지는 모르지만, 유사와 삼국지 위지동이전을 빌리면 <단군>에게도 제사를 지내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단, 고조선이 망한후 수천년 수백년이 지난관계로 그 흔적이 사라지고 민간 종교화하지 않았을까? 할 뿐이다. 신라 중후기 <솔거>가 <단군>그림을 수천장을 그려 신라가정마다 단군그림이 없는 집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고구려·백제의 제사 의례/고구려/중국기록/당서 
당서(唐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고구려는 풍속에 음사(淫祠)가 많고 영성(靈星) 및 해[日]·기자(箕子)·가한(可汗) 등의 신에게 제사지냈다. 나라의 왼쪽에 큰 굴이 있어 이를 신수(神隧)라고 하며, 매년 10월에 왕이 모두에게 친히 제사지냈다.』

국동대혈

고구려의 제사기록을 살펴보면 <가한>에 제사를 지내고, 부여신(유화), 고등신(주몽), 나라의 동쪽에 커다란 굴이 있는데 동굴에서 제를 올린다고 한다. 동굴속 <웅녀>의 모습이 느껴지지 않는가? 고구려와 전혀 관련이 없는 듯한 동굴속에서 제사를 지낼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고구려와 더불어 동굴을 숭상하는 족속 중에 선비족이 있는데 그 족속은 동호에서 갈라진 자들로 선비산에 있는 동굴이 자신들의 출생지라고 생각을 하고 제를 올린다.  고조선의 곰동굴과 고구려의 동굴과 선비족이 동굴이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한과 동혈(국동대혈)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말은 하고 있지만, 같은 단락에 당서를 빌어서 <기자>에 제사를 지냈다는 글은 쏘~~옥 빼놓고 있다. 일종의 <기자> 죽이기에 해당 한다. 공교롭게도 10월인것도 재미있다.

고구려가 기자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신라가 금관가야의 제사를 지내는 것과 같고, 조선이 단군묘나 기자묘나 이전 나라의 묘를 관리.유지하면서 제사를 지내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어미인 유화부인은 <하백>의 딸로 나온다. <하백>은 압록곡에 사는 물의 신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산해경>에는 하백은 황하를 지키는 강물의 신이다. 또한, 하백은 모든 강들의 신이 되기도 한다.

장천1호분 사냥, 왼쪽 나무아래 곰이 숨어있다.

대륙사관를 추종하는 많은 이들이 산해경을 동이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자신을 동쪽에 있는 <동이>로 부르는 족속은 없다. 산해경의 중심은 현재의 중국 황하 중심부를 기준으로 내경과 외경으로 분리하고 있다. 고조선 지역인 요령/요동/한반도지역은 산해경의 기준으로 외경에 해당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면 장천1호분에 굴속에  곰과 범이 굴속에 쪼그리고 있는 장면이 있다. 단군탄생의 웅녀와 범녀의 모티브이다. 고분중 사냥하는 장면에서는 호랑이는 사냥군에 쫓기지만 곰은 굴속에 숨어 있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사람은 환웅의 사람(신족)이고 범족은 쫓기고 곰족은 일종의 보호를 받는 듯한 묘사가 삼국유사에서 한웅과 웅녀의 원형처럼 느껴진다.  실제는 고구려에 광범위하게 퍼저 있는 전승된 이야기들을 위서가 받아 쓰고  삼국유사가 <위서>를 빌어 채록하였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동아시아 고대 3대 문화권중의 하나인 홍산문화는 기원전 3000년~2000년으로 추정되는데 불교의 가부좌상에 해당하는 가부좌를 하고 가슴을 들여낸 부인상이 발견되었다. 어쩌면 이 부인상이 단군조선의 시조인 웅녀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숭배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홍산문화지역이 초기 단군이 개국한 땅이고 기원전 1100~1200년 주나라에 의해서 은나라가 망하자 기자가 홍산지역으로 피난을 오니 초기 전기단군조선의 후왕들은 현재의 요동/평양으로 물러나고 결국에는 평양까지 기자조선에 먹히지 않았을까 추측 된다.  

 수양산에서 불에 타 죽어 충철의 표상이고 불을 피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는 한식의 유래가 된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의 왕자였는데 고죽국이 홍산과 현재의 북경사이에 있는 나라이다.(후에 동호라 불리던 지역) 이때 기자는 고죽국 넘어 조선에 와서 왕이 되었다 하고 삼국유사는 기자가 오자 단군이 구월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고 전한것이 아닐까한다.  

단군상을 파괴하는 행위도 비난받아야 하지만 과도한 고조선의 역사단절도 마땅치 한다. 일연은 왜 고조선이라고 했을까? 우리역사에 조선은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조선 4개의 조선이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고려말년에 쓴 것이니 이성계의 조선왕조는 있지 않았다. 그러니 조선을 중심으로 고조선을 기술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고조선이란 말을 썼다는 것은. 기자조선 앞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 옛조선이 있었다.. 이를 단군조선이라한다. 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단군이 기자에 의해서 망했다고 일연은 <위서>를 빌어서 전한 것이다.  

길림 웅녀상

한때 언론은 개천절날 단군상 철거이야기와 중국의 길림지역의 웅녀상으로 동북공정의 또다른 방편이라는 이야기가 이슈였다. 

반 동북공정이란 이름만으로 사학연구소들이 먹은 국가재정만 하더라도 상당한 액수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커다란 연구성과를 내 놓은 것을 본적이 없다.

단군을 역사로 만들고자 한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전하는 것은 왜곡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은폐왜곡이 고구려가 <기자>에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을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누구도 신라가 <풍백>,<우사> 등에 1년에 한번씩 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주장에 필요한 것만 추려서 이야기를 하면 역사의 수레바퀴에 아귀가 맞지 않아 잡음 같은 충돌음이 생긴다. 똥을 누다 말고 일어선 찜찜함이 있다. 단군을 역사로 만들고 싶다면 합리적인 해석을 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기자>를 빼고 나면 요동이던 한반도던 역사는 단절된다.  

즐거운 추석 한가위가 되길 소망하면서 고조선을 이야기할때 누구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늘이 열리고, 한가위 전날 주절거려 보았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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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jintonyleo.tistory.com BlogIcon 진 토니 2009.10.02 2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조선에 대해 자세한 리뷰를 하셨네요. 큰 작업에 추천을 꾹 눌렀습니다. 전 티스토리를 한지 몇일 안됬는데. 여기는 보고 배울 것이 많은 홈피군요.

    님은 삼국사기를 어디서 번역본을 구하셨나요? 궁금합니다. 전 문광부에하는 조선왕조실록은 봤지만

    삼국사기는 krpia인가에서 봤는데 일년에 한 몇십만원돈이어서 꼭 필요한 일 아니면 못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구하시는 곳이 있으시면 제 홈피에 귀한 걸음 하셨을 때 남겨 주세요.

    신종플루 조심하시고, 좋은 추석 보내세요^^

  3. 갓쉰동최고 2009.10.02 2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내에서 원래 한족출신이 아닌 위만을 제외하고 정식 중화국가에서 왕래한 외국인은 진시황의 동방원정대중 하나인 서복이 최초로유력하죠. 기자의 경우 도래설만이 존재하고 도래의 근거가 아직까지는 발견이 제대로되지 않았죠. 그리고 조선초기까지는 소격서에 제사를 모시고 단군조선을 최초의 국가로 여겼으나 조광조가 등장한이후 소격서를 폐지하고 기자조선을 우리민족의 최초의 국가체제를 갖춘 나라로 인정하엿죠. 따라서 기자도래설의 경우 우리학계와 중국학계의 공동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조선의 예는 잘못된 예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유교이상주의를 꿈꾼 조광조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우리 사학계의 연구에 대해서 무조건 신회하지않고 성과가 없다고해서 비판하는 것은 열린 학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봅니다. 단지 주류학계안으로 모든학계와 학자들을 평가할수는 없다고 봅니다.
    역사의 진실이란 언제 누구에의해서 밝혀질지 모르기 때문이죠. 그냥 조용히 연구과정을 지켜볼 뿐이죠.
    그래도 앞장서서 역사에대한 열정을품고 연구를 하는 자들이니까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5 16: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흔적은 있지요.. 다만 국내에서 말을 하지 않고 있지요. 요동.요서에는 기자의 후손으로 생각되는 흔적들이 종종 발견된다고 합니다. 감추고 싶은것이겠지요.. 한국사를 전공하는 자들은.. ㅋㅋ 물론, 한국사의 주류안에서도 새로운 물결이 나오는것은 사실임.. 아님 비주류에 주류를 빼앗길 위기감이 있으니요.. ㅋㅋ

    • Favicon of http://f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08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공자도 아니시고 학계에 인맥이 있으시지 않으시면
      학계의 동향을 알기 힘든데 요즘 학계정보는 어떻게 구하시나요? 물론 저는 전공자나 재야 전공자들과 정보공유를하지만

    • Favicon of http://f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08 2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기자설의 경우 대단히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지요
      서복도래설처럼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9 10: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직까지는 저의 취미이고 나름대로 시간이 없는 관계로.. 별로 알고는 싶지 않습니당.. ㅋㅋ 언제 기회가 된다면 교류가 있겠지용.. ^__^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9 1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자와 왜 문제는 한국에서 금기지용.. ㅋㅋ

    • Favicon of http://f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09 2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자설의 경우 금기가항이 아닙니다.
      학계의 움직임을 잘모르시나 보신데
      고조선학회같은 상고사 관련 학회의 경우에는 언급을 합니다.또한 주류인 진단학회또한 언급을 하지요.
      다만 문물교류사를 연구하시는 분들이나 동북아재단 측에서는 기자도래설을 중시하지 않기는 합니다.
      기자도래 자체가 유교적 이상을 꿈꾼 조선시대에 활발해지기 때문이죠. 그리고 기자도래의 경우 관련 기록이 거의 없죠.
      저도 고등학생인데다가 정보공유의 한계때문에 이정도 밖에 모릅니다

  4. Favicon of http://f BlogIcon 갓쉰동최고 2009.10.02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우리민족은 님 말대로 중국에 의해서만 동이족이라고 불리웠습니다. 만주지방의 고구려를 비롯한 우리민족은 예맥족의 일종으로 맥족이라고 불렸죠.
    그 예는 돌궐이나 서역국가들이 우리를 맥클리 맥구려라고 불렀다는 점에서 드러납니다
    동이족은 한족의 중화사상에서 나온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는 표현으로 우리역사에있어서 별로 좋은 이름은 아니지요. 이는 학자들이 고쳐야 할듯 합니다

  5. 김호성 2009.10.03 0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그런데 글 내용에 오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식은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서 충절을 지키기 위해 불에 타죽어 불을 피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는 유래를 가진 날이 아닙니다. 백이와 숙제는 충절을 지키기 위해 수양산에서 고사리로 연명하다 굶어 죽게 됩니다. 한식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는 백과사전에서 퍼온 내용입니다.

    한식이라는 명칭은, 이 날에는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다는 옛 습관에서 나온 것인데, 한식의 기원은 중국 진(晉)나라의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개자추가 간신에게 몰려 면산(緜山)에 숨어 있었는데 문공(文公)이 그의 충성심을 알고찾았으나 산에서 나오지 않자, 나오게 하기 위하여 면산에 불을 놓았다. 그러나 개자추는 나오지 않고 불에 타죽고 말았으며, 사람들은 그를 애도하여 찬밥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5 16: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2가지의 학설중에 저는 백이.숙제를 언급했는데..님이 지적을 해주시니 보는 분들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6. Favicon of http://potatobook.tistory.com/ BlogIcon 감자꿈 2009.10.03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는 역사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에요.
    갓쉰동 님 행복한 추석 보내고 계시죠? ^^

  7. Favicon of http://toribugs.tistory.com BlogIcon 토리벅스 2009.10.03 14: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동대혈의 사진을 이렇게 본 거는 처음이네요^^ ㅎㅎ

  8.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BlogIcon 펨께 2009.10.03 1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배우고 갑니다.
    외국에서 살면서 실지로 얼마나 많은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잊고 살아가는지를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것 같습니다.

    즐거운 한가위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5 16: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하드라구요.. 님처럼.. ㅋㅋ 그곳에도 한가위 달이 따스하고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당.

    • 팸께님아 2009.10.10 1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팸께님아
      역사를 배워도 올바른 역사를 배우셔야지
      저런 식민사학에 물드린 역사를 배우면 님 정신만 망가질 뿐입니다. 우리나라가 그렇거든요.
      대다수가 왜곡된 역사를 배우니 당연히 민족정신이 없는것이고......

  9. Favicon of http:// bldg.daum.net / uri - modu BlogIcon 시림, 김 재덕 2009.10.05 0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l^*..........
    마음에 뜨거운 사랑
    하나 하나 기억 꺼내어
    그 사랑 담으며
    나 저~길 걸어가리

    추억, 행복 담긴 시간되세요
    사랑으로...
    기다림에

  10. 2009.10.05 0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그러게요 2009.10.06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개천절 없앤 x는 그냥 "빨간날 줄이자"라는 취지 밖에 생각 못 했겠지만요. 그 날에 깃들인 뜻까지 소멸되어 간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어요..

  12. 개천절은 2009.10.10 0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천절은 단군 탄생일이 아니라
    환웅천황께서 신시에서 배달국을 세우신 날입니다.
    아직도 단군에 탄생일이 개천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직도 왜곡된 역사서 삼국사기를 믿는겁니까?
    역사왜곡이 가장 심한나라는 우리나라말고 거의 없습니다.
    어느 나라든 역사가 왜곡되기 마련인데 우리나라 만큼 역사왜곡이 심한 나라 없습니다.
    개천절은 단군 탄생일이 아닙니다.
    크리스마스 또한 예수 탄생일이 아니란것이 밝혀졌는데
    아직도 우리는 개천절이 단군탄생일이라고 생각하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틀린 말입니다.

  13. 그리고 2009.10.10 1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서 불타 없어진거 맞습니다.
    일본놈들과 서양 중국놈들에 의해서 없어지기도 했고
    우리나라 사대주의학자에 의해 없어지기도 했죠.
    지금 주류학계들은 죄 다 이병도 사학에 영향을 받았는데
    그 이병도는 대표적인 식민사학자이지요.

  14. 그리고 2009.10.10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그리고 곰이 사람이 된다? 이게 말이 됩니까?
    곰이 사람이 되었다는것은 비유적인 표현일 가능성이 있는것이지
    아직도 님은 신화를 역사로 착각하고 계십니까?
    해석을 해도 어쩜 그리 못할수가......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닉은 통일 시켜주셈..
      어디에 곰이 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하던가요? 당연히 비유지요.. 신화속에는 역사가 숨어 있어용.. 또한, 신화자체도 역사의 기록물입니당.. 그러니 신화도 역사의 일부에용.. 해석의 문제는 별개로 하고용..

      일일리 반박하거나 대응할만한 댓글이 없는게 아쉽습니당.. 그래서 이댓글로 님이 남겨논 댓글에 대한 대응을 갈음 할까 합니당.

  15. Favicon of https://sephia.tistory.com BlogIcon sephia 2010.10.03 18: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잠깐...... 이거 잘 쓰셨다 싶어서 글 써진 연도를 봤더니........ 작년 글입니까???

    뭐, 사실 개천절에 대해서 어떤 날인지 잘 모르는 정부니... 답답할 노릇이죠.

  16. Favicon of http://ㅁㄴㅇㄹ BlogIcon ㅁㄴㅇㄹ 2010.10.07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ㅁㄴㅇㄻㄴㅇㄻㄴㅇㄹ zzzz메렁메렁 ㅎㅎㅎ 장난입니다..

  17. Favicon of http://ㅁㄴㅇㄹ BlogIcon ㅁㄴㅇㄹ 2010.10.07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18. 오스왈드 2010.10.07 0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보았습니다
    그 유명한 사냥도 벽화는 단군신화라기 보다는 그냥 사냥을 그린 것인데 우연찮게 비슷했다고 해야 하나...
    그정도인 것 같고요
    환웅이 기록에 없는 이유는 환웅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원 단군신화는 환인-단군인데 나중에 환인-환웅-단군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고구려 신화에서도 천제의 아들이자 유화를 건드리는 해모수는 후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군요
    환웅의 존재는 중앙집권이 확립되면서 백성이 왕을 직접 친견한다는 사고가 사라지고 난 뒤 일종으 중개자로서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합니다

  19.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niches/mature.php BlogIcon Mature Pussy 2012.07.12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중에 김영랑의 시처럼 모란이 피기까지는 삼백예순날은 아니더라도

  20. Favicon of http://www.qtoursindia.com/?p=66 BlogIcon meal ready to eat individual 2012.12.10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드라마 작가가 간과한 것이 있다. 태자 부여 융에 관한 것이다.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나 682년 68세의 나이로 복망산에 뭍힌다.

  21. Favicon of http://mariviclisy.blogspot.com/2012/04/this-baker-dozen-items-it-is-best-to.h.. BlogIcon dehydrated strawberries esophageal cancer 2012.12.25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운사>,<풍백>일까? <산해경>을 볼라치면 풍백은 바람의 신으로 오른손에 부채를 들rh 있는 것으로 묘사가 되고 있다. <비렴>이나 방천군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하늘에 있는 별자리중에서 기(箕)성에 해당한다.

MBC 사극 <선덕여왕>은 대부분의 모티브와 등장인물들을 <화랑세기>에 의존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문노>,<미실>, <하종>,<보종>,<미생>,<세종>과 화랑들이다. 아직까지 화랑세기의 진위논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또한,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화랑세기는 새로운 역사물을 만들 때 소설의 영감을 받기도 한다. 

글쓴이도 또한, 역사를 해석할 때 화랑세기를 참고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빈틈을 찾아 합리적인 해석을 찾기도 한다. 어찌 되었던 <화랑세기>의 위작여부에 상관없이 우리 사학계와 문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화랑세기>를 보기전에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로 미쳐 깨닫지 못했고, 이들 사서로 합리적인 해석이 불가능했던 것이 화랑세기를 읽고 나서 그 미싱링크를 찾아낸 적이 있다.  

미싱링크를 찾은 다음 화랑세기를 보지 않고, 다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다시 읽었을때도 화랑세기가 있고, 없고에 상관없이 합리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것중에 하나가, <만파식적>에 관한 재해석이다. 글쓴이는 화랑세기의 도움으로 만파식적이 가지고 있던 의문부분을 상당수 해결할 수 있었다.
삼국사기에는 효소왕(이홍, 이공)의 나이를 추측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신문왕5년 687년 원자가 태어났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효소왕(이홍,이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삼국유사> <만파식적>을 읽다 보면 이해가 되지 않고 미궁속으로 빠진다.

682년 임오(壬午) 5월 초하루(다른 책에는 천수天授 원년元年이라 했으나 잘못)에 해관(海官) 파진찬(波珍飡) 박숙청(朴夙淸)이 아뢰었다.  “동해 속에 있는 작은 산 하나가 물에 떠서 감은사를 향해 오는데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합니다.” 

일연은 <삼국사기>를 읽고 <삼국사기>에서 일부러 빼버린 이야기나 삼국사기가 흘려버린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유사>를 작성했다. 또한, <삼국사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주석을 달면서 다른 이설도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하고 있다. 

일연은 <삼국유사><만파식적>의 사건이 682년 임오년 5월 또는 천수 원년(690)년때 일어난 사건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한 682년 5월과 690년 5월중 일연은 <만파식적>이야기가 682년 5월에 있었던 일이라고 하고 있다.  이로써 687년 이홍(이공)이라고 추측되는 <원자>를 이홍(효소왕)으로 보고 있지 않음이 확실해 진다.

그렇지 않다면, 682년이면 이홍(이공)이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데 690년이 틀렸다고 확신에 차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682년 이미 이홍(이공)이 생존하고 있었고  <이홍>이 682년에 이미 태자가 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일연은 <만파식적>을 빌어서 <삼국사기> 신문왕 때의 기록이 잘못되었다고 언급하고 있지도 않다. 이는 후대의 많은 이들이 <원자>가 꼭 맏아들이란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를 읽다 보면 꼭 원자 = 장자가 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원자=맏아들이라고 하지도 않고 있다. 장자 = 원자 일 수 도 있지만, 원자 =/= 장자가 아닌 경우도 많다. 장자는 장자라고 별도로 기록하고 있다. 이를 구별하지 못한 후학들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원자 = 장자 의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버지 문무대왕(文武大王)을 위하여 동해(東海) 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세웠다(절 안에 있는 기록에는 이렇게 말했다.  문무왕文武王이 왜병倭兵을 진압하고자 이 절을 처음 창건創建했는데 끝내지 못하고 죽어 바다의 용龍이 되었다.  그 아들 신문왕神文王이 왕위王位에 올라 개요開耀 2년(682)에 공사를 끝냈다.  금당金堂 뜰 아래에 동쪽을 향해서 구멍을 하나 뚫어 두었으니 용龍이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대개 유언遺言으로 유골遺骨을 간직해 둔 곳은 대왕암大王岩이고, 절 이름은 감은사感恩寺이다.  뒤에 용龍이 나타난 것을 본 곳을 이견대利見臺라고 했다).

 그렇다면, 감은사는 문무왕(661년~681년 7월)때 공사를 시작해서 682년 5월 이전에 완공되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신문왕이 동해쪽의 관리가 보고한 내용을 살피려 감은사에 갔다. 거북모양의 바위섬에서 있는 용으로 부터 <검은옥대>와 대나무를 가지고 오는 도중 이공태자가 성을 지키고 있다가 말을 타고, 신문왕을 맞이 했다는 이야기다. 

이공(효소) = 원자 = 장자 라는 확신을 가지고 <삼국사기>의 기록을 재정립해 보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만파식적>의 이야기가 어느때 발생한 때인지를  추적한다면
 

682년 5월 금성이 달을 침입했다. <만파식적> 1 <삼국유사>
687년 2월 원자가 태어났다. (맏아들 이공이 태어났다)
690년 5월 만파식적  2 <삼국유사>
691년 3월 왕자 이공이 태자가 되다.  5살(만 3살)
692년 봄 대나무가 말랐다. 7월 신문왕이 죽음, 효소(이공)의 나이는 6살(만 4살 몇개월)에 왕위에 올랐다.


<만파식적 1> 일연은 <삼국유사>는 태어나지도 않은 이공(효소)왕을 태자로 등장시켜 690년이 아닌 682년 5월이라고 하고 있다. 일연은 <원자>와 이공은 다른 인물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연>은 <김흠돌반란사건>을 염두해 두고 <만파식적>을  이야기한것 같다. 반란으로 민심이 어수선한 것을 <만파식적>으로 일시에 해소시켰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일연은 690년의 <만파식적 2>의 이설을 배격하고 있다.

보다 합리적인해석은 이공(효소왕)이 태자였고 이설인 천수원년(690년)설을 따르면 이공이 태자가 되기 전이니 천수년간중 691~693년 사이가 되어야하고, 그런데 신문왕은 692년 7월에 죽음으로  691년 5월 ~692년 5월사이에 있었던 일이 된다.

좀더 그 시기를 줄인다면, <삼국사기> 신문왕 12년 (692년) 봄 기사에 <대나무가 말랐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만파식적>의 대나무와 연결이 되는내용이다.. 봄에 대나무가 말랐을 정도면 봄가뭄이 심했다고 할수 있는데 그렇다면 단순히 봄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심했다라고 기록하면 되었을 것인데도 <대나무가 말랐다>라고만 기록하고 있다.

제14대 유리왕(儒理(禮)王) 때 이서국(伊西國) 사람들이 금성(金城)을 공격해 왔다.  신라에서도 크게 군사를 동원했으나 오랫동안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이상한 군사가 와서 신라군을 도왔는데 그들은 모두 댓잎을 귀에 꽂고 있었다.  이들은 신라 군사와 힘을 합해서 적을 격파했다.  그러나 적군이 물러간 뒤에는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댓잎만이 미추왕의 능 앞에 쌓여 있을 뿐이었다.  그제야 선왕(先王)이 음(陰)으로 도와 나라에 공을 세웠다는 것을 알았다.  이리하여 그 능을 죽현능(竹現陵)이라고 불렀다. - 삼국유사 죽현능

신라에서 대나무의 상징은 김씨계의 첫 왕인 <김미추>를 상징한다. 김미추가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서고국이 경주를 침입할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죽엽군들이 나타나 위기의 신라를 구원한다. 그리고 조사를 해보니 <미추릉>의 주위에 있던 대나무 잎들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죽엽군은 <김미추>가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서 보낸 <음병>이라고 믿었고, 미추릉을 <죽현릉>이라고 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이처럼 대나무는 <신라>에서는 신성시 하는 신물 중에 하나이다. 그러니 692년 봄 <대나무가 말랐다>라는 이야기는 단순한 대나무가 아닌, <김미추릉>에 있던 대나무가 말랐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미추릉에 있던 대나무가 말랐다는 것은 곧 신라를 지탱해주던 김미추계에 이상이 발생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만파식적>에 2개의 대나무가 낮에는 둘로 갈라지고, 밤에는 하나가 되어 바람이 불고, 어둠이 밀려왔다고 했으니, 신라의 변고를 말하고 2개의 세력이 충돌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만파식적>과 <삼국사기>
692년 봄 <대나무가 말랐다>는 신문왕 말년에 신라왕실의 혼란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692년 신문왕 말년 이런 혼란을 <만파식적>으로 잠재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공태자가 6살에 신문왕이 궁을 비운틈에 왕궁을 지키고, 말을 몰아서 왕을 영접하고, 검은옥대에 주렁주렁 달린 옥들이 용이라고 하였다고 하고 있다. 여전히 석연치 않는 부분은 만 4살 조금 넘은 나이에 왕을 대신해서 왕성을 지키고, 신문왕이 모르던 사실을 알려줄 정도의 지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대다수 나이가 어린왕자가 왕위에 오르면 어린왕의 모후가 섭정을 한다. 그리고 섭정을 하는 모후(태후)의 기록이 왕의 기록으로 남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이공태자의 기록도 이공의 모후인 신목(왕후)의 행동이 아닐까?

신목은 요석공주의 소생으로 설총의 누이로 추측되는 인물이다. 설총에게 <검은옥대>와 <만파식적>에 관한 이야기를 미리 듣고 신문왕에 이야기를 했을 수 있지 않을까? 이는 이공이 687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기록을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추측한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신문왕과 <이공>태자에 관한 이야기라면 어찌 될까?

미궁속에 빠지게하는 <원자>== <장자>라는 올가미를 풀어버린다면..

합리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은 687년 2월 태어났다는 <원자>가 이공태자일 필요성도 없고 <원자> = /= <장자> 라면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일연도 <원자>=이공(효소)라고 하지 않았다.

신목이 신문왕비가 되는 나이를 보면 아버지 김흠운이 655년 정월에 사망할 시점을 신목의 출생 한때라고 하더라도 신문왕 즉위년(681년)이면 27세가 된다. 그런데 33살 이상인 687년에 첫번째 원자를 낳았다? 그리고 흥광(성덕왕)을 낳고, 728년 당나라에 숙위하는 김사종을 낳았다?

신라사회에는 13~15세 정도면 결혼하고 15~6세면 자식 한둘은 낳고 있다, 그런데 유독 신목만 당시 조혼이 성행한 신라사회에서 첫결혼은 28세에 한다? 신목이 과부가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상황이거나 신문왕과 이전부터 사실혼 (후비)관계에 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또한, <삼국유사> 일연은 <만파식적>에서 682년 5월에 있었거나 690년 (천수 원년) 두가지 설을 전하고 있다.

<일연>은 <김흠돌반란사건>을 염두해 두고 <만파식적1>을  이야기한 것 같다. 반란으로 민심이 어수선한 것을 이듬해 5월 수습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682년 5월 태백이 달을 침입했다고 했으니 682년 5월 전해져온 이야기 일 수 있다.

또한, 일연은 왕자와 태자를 혼동해서 소급적용하는 경우가 있고, 김춘추와 김문희와의 관계에서 처럼 선덕공주가 분명한데도 선덕여왕이 춘추와 문희를 연결시켰다고 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 만파식적 1> 682년 5월과 <만파식적 2> 690년 ~ 692년 5월 <만파식적 2>설도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을 보다 합리적으로 해석한다면 687년에 태어난 <원자>를 꼭 <이홍>이라고 볼 필요가 없다. 원자란 꼭 맏아들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일연 또한  687년 <원자>가 태어났음을 알고 서도 690년 <만파식적 2설>  682년 <만파식적 1설> 설>이 맞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일연 또한 원자 = 장자라고 보지 않았을 뿐더러, 원자 = 이공(효소왕)이라고 보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이공(효소왕)은 신문왕이 즉위한 후 682년에 충분히 말을 타고 돌아 다닐수 있고, 왕이 성을 비운사이 성을 지킬정도이며, 왕에게 지혜를 알려줄 정도의 나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늦은 나이라고 해도 10세이상은 되었다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가지 삼국사기도 원자 = 이공(효소)로 보지 않고 있다는 정황 증거가 발견된다. <삼국사기>는 단순히 689년 <왕자 이홍을 태자로 삼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여러 왕자 중 이홍을 태자로 삼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로써 원자가 꼭 이홍(이공)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된다.

삼국사기에서 모든 원자들이 장자인 경우가 없다. 또한, 장자와 원자를 구별해서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원자>==<장자>의 설은 장자가 원자가 될 수도 있지만 꼭 동일하지는 않는 것이다. 정비소생 이거나 후비소생이라도 장자는 될 수 있다. <원자>란 <왕>과 정비인<왕비>의 소생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원자>란 적통을 이어갈 사람으로 해석하거나, 정식왕과 정식 왕비사이에 태어난 첫번째 왕자라고 한다면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신문왕이 왕이 된후 늙은 신목을 받아 들여 낳은 첫아이가 이공(효소)가 아니라는 또다른 증거가 있다.

<화랑세기>에는 <김흠돌>이 반란을 일으키는 여러 원인중의 하나를
정명태자(신문왕)와 신목사이에 이공(효소왕)이 태어나 태자비였던 흠돌의 딸이 배척되고 흠돌의 권력이 무너질것을 두려웠다고 하고 있다. 좀더 소상히 설명하면,

신목은 김흠운의 딸이다, 655년 아버지 김흠운이 죽자, 춘추(태종)가 손자인 소명태자에 시집을 보내려 했으나 소명태자가 655년 이전 어린 나이에 일찍 죽었다. 그런데 신목은 다른 곳에 시집가지 않고 소명태자의 제사를 주관하는 <소명제주>가 되어 자의왕후가 좋아했다고 한다. 그후 소명궁에 살고 있던 신목은 665년 태자가 된 정명(신문왕)태자와 눈이 맞아 <이공>을 낳았다고 한다.(15세 전후) 이때 자식이 없던 태자비 흠돌녀가 투기를 했다고 한다. 뒷배경이였던 문명태후가 죽은 후 김흠돌은 681년 7월 문무왕이 죽고 난후 8월 8일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반란에 실패해 김흠돌은 죽고, 흠돌녀는 정식 왕비도 되기전에 궁에서 축출 된다. <화랑세기>

이로서  문무에게는 정명(신문왕)의 형으로 추측되는 소명이 661~665년 사이 태자가 되었지만, 결혼을 약속한 소명을 두고 일찍죽었다. 665년 정명이 대신에 태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목은 결혼을 약속한 소명태자가 죽자 소명태자와 영혼결혼식을 하고 소명태자가 살고 있던 소명궁에서 생활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665년 이후 소명의 동생인 정명이 태자가 되자 정명과의 사이에 이공을 낳았다고 하겠다. 

이로써 이공(효소)는 빠르면 665년 이후에 태어났고 늦어도 문명태후가 죽기전에 태어났다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682년 5월 <만파식적 1>이 성립하려면 이공(효소)는 10세 초중반이 됨으로 666~672년생이 되어야 한다.

683년 5월 신목이 신문왕의 정비인 (부인)이 되어 687년 2월에 낳은 첫아들이 <원자>가 되는 것이다.
이를 연표로 작성하면 다음과  같다.

626년 문무(법민) 생
654년 문무(법민) 28세 왕자
655년 1월 문무(법민) 29세 입태자
655년 신목태후 아버지 김흠운 사망 및 신목태후 출생(?)
661년 7월 문무 36세 왕
661년 ~ 665년 소명태자 사망, 신목 소명제주 <화랑세기>
665년 신문(정명) 입태자
666~672년 신문(정명)/신목의 장자 효소(이공) 태어남 <유사><만파식적 1><화랑세기>
666~680년 신문(정명)/신목의 장자 효소(이공) 태어남, <만파식적 2><화랑세기>
681년 7월 문무(법민) 56세 사망
681년 7월 신문(정명) 왕위 계승
681년 8월 김흠돌 반란
682년 5월 만파식적 사건 1 <삼국유사> 효소(이공,이홍) (10세~17세)
683년 5월 신목 신문왕의 부인이 됨
687년 2월 원자 태어남
690년 5월 만파식적 사건 2 <삼국유사>
691년 신문왕 11년 봄 3월 1일에 왕자 이홍(理洪)을 태자로 봉하였다.
692년 7월 신문(정명)왕 죽음
692년 7월 효소(이공,이홍) 왕위계승 (10세~27세), <만파식적 1> 이면 (20세~27세)
700년 6월 이찬 경영 반란
700년 7월 신목태후 사망  <황복사 3층석탑 은합>
702년 7월 성덕(흥광,융기) 신문왕 2자 왕위계승
728년 성덕왕 27년 7월 왕의 동생 김사종(3자~4자) 당나라 숙위

682년 5월 <만파식적 1> 이공(효소왕)은 (10세~17세)전후가 되고, 692년 5월 <만파식적 2> 이공(효소왕)은  (20세~27세)전후가 된다. 그러므로 <삼국유사>의 <만파식적>은 <1><2>에 상관없이 합리적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687년 2월에 태어난 <원자>를 단지 맏아들로 해석해 <원자>==이공(효소왕)이니 이공(효소왕)은 692년 6세에 왕위를 계승했을 것이다. 그러니 <신목>태후가 섭정을 하였을 것이라 추측하였고, 700년 7월에 신목태후가 죽은 줄도 모르고 702년 이공(효소왕)을 대신에 왕위에 오른 동생 흥광(성덕)왕도 692년 죽은 신문왕의 유복자일 가능성이 있으니 11살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신목태후가 섭정하였을 것이라 주장하는 사태까지 발전하였다.

<삼국유사>의 만파식적 이야기를 가공의 이야기 알고 있었으며 단지 690년 설을 추종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화랑세기를 인용하는 많은 사람들도 <원자>를 <이공(효소왕)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를 자신의 틀속에 갇어 놓고 자신의 입맛(가설)에 맞지 않는다 하여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화랑세기> 중 하나 또는 모두가 잘못되었다고 하였다.

좀더 <원자>를 확대 해석한다면 <원자>는 신문왕과 신목의 아들인 태자 이홍(효소왕)의 아들일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 다음 기록을 본다면 이때 원자는 효소왕의 아들이 아닌 효소왕의 동생인 성덕왕일 가능성이 많다.

<삼국사기>에는
702년 성덕왕 즉위년 "신문왕의 둘째 아들이고 효소왕의 친동생이다. 효소왕이 죽고 아들이 없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세웠다."

흥광(성덕왕) 이 687년에 태어난 <원자>라면, 702년 성덕왕은 왕위에 오를때 나이가 16세로 추측 된다.
 

728년 성덕왕 27년(728) 가을 7월에 왕의 아우 김사종(金嗣宗)을 당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아울러 글을 올려 자제들의 국학(國學) 입학을 청하니, 조칙으로 이를 허락하고 김사종에게 과의(果毅)의 관작을 주고 머물러 숙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하지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화랑세기> 공히 받아 들이거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으로도 충분히 <만파식적>의 시기를 680년이던 690년 이후 이던지 상관없이 이공(효소)가 만파식적에 중추적인 등장인물이 될려면 충분한 나이가 되어야함을 예측할 수 있다.

이로 미루어 이공(효소왕)은 22세~27세에 왕위를 계승하였고, 흥광(성덕) 또한 692년 7월 죽은 신문왕의 유복자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원자>가 흥광(성덕왕)이라면, 655년 이전 출생인 신목은 688년 이면 34살~39살 이상으로 728년에 당나라에 숙위하러간 성덕왕의 동생 김사종은 신문, 신목사이에 태어났던 신문과 다른 후비 사이에 태어났던 688년~693년 사이에 태어나야 한다.

만약, <원자>가 사종이라면 흥광은 신문왕이 왕이 되는 681년 7월 이전 이미 태어났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고, 22세 전후에 왕위에 올랐음을 예측할 수도 있다.

글쓴이는 아직까지 화랑세기를 사서로서 인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화랑세기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보다는 후대에 만들어진 위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이유는 삼국사기와 사국유사의 기록중 한쪽에 손을 들어주는게 아니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사이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고, 삼국사기도 맞고, 삼국유사도 맞다는 류의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이설이 있는데 둘다 맞는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앞서 만들어 졌다는 사서가 후대 사서를 본듯한 내용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만파식적이나 선덕여왕시기 등 화랑세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으로 해석 불가능한 역사적인 미스터리를 해결하는데 충분한 동기부여를 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드라마 선덕여왕은 화랑세기를 재조명 하는 데 커다란 공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화랑세기를 위서로 인정하는 많은 분들은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인해서 위서 화랑세기가 사서로 인정되는게 달갑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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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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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rubygarden.tistory.com BlogIcon 루비™ 2009.12.31 17: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해는 선덕여왕 드라마로 인해 많이 즐거웠고
    갓쉰동님의 해박하신 포스팅으로 인해 제 식견이 무지 넓어졋던 한해였답니다.
    이제 한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네요..
    2009년 한해 동안 많은 사랑 베풀어주신 것 감사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최고로 멋진 2010년 되세요~~!!

  3. Favicon of http://phsminister@hanmail.net BlogIcon 청석 2010.01.01 0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밝아오는 경인년 새해에 더욱 님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 오길 바라며 더욱 님의 블로 그가 번성하길 기원합니다.
    그동안 저에게 관심 보여준 님 에게 새해 인사드립니다.

  4. Favicon of http://blog.daum.net/bada0101 BlogIcon 영혼울림 2010.01.01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대단하십니다.
    늘 깊은 지식과 분석 접근력에 감동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5.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10.01.02 2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 블로그 대박나시고, 원하시는 소원들이 성취되시길 기원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6. Favicon of http://silim1009.tistory.com BlogIcon 시림 (詩琳) 2010.01.08 17: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빛....
    태어나
    길 걸었으며
    그 곳에
    내 희망
    나에 꿈 이루었지

    행복은 곁에 있어요
    사랑으로...
    기다림에

  7.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BlogIcon 펨께 2010.01.08 1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잘 지내시는지요?
    좋은 주말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8.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niches/wet.php BlogIcon click here 2012.07.14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듯이 한가하게 주식이야기와 남북정

  9. Favicon of http://www.free-brazzers.com/ BlogIcon Brazzers membership 2012.09.08 0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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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Favicon of http://www.saucylondon.com/ BlogIcon london escort 2012.09.19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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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Favicon of http://rocville.com/?p=News BlogIcon Albert 2012.10.01 2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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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Favicon of http://jaysxlist.com/index.php?montreal_massage___massage_montreal BlogIcon montreal massage parlor 2012.10.03 1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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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Favicon of http://theblogtest.com/ BlogIcon theblogtest 2012.10.03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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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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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들은 덕만에 관한 기록이 없어서 글을 만들기 힘들다고 한다.

사실 선덕여왕 덕만처럼 삼국시대에 가장 많은 기록과 전승을 가지고 있는 왕도 드물다. 그런데 기록이 없어서 극을  만드는데 힘들다고 한다는 말은 별로 동의가 되지 않는다. 

기록이 소락 할수록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하기가 쉽다. 아주 작은 기록만 일치시키면 되고 재해석 하면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고 있노라면 드라마 작가나 제작자의 기획의도에서 사람을 얻어 천하를 얻는다고 하였지만, 드라마에서 덕만이 유신을 보고 많은 사람을 얻었지만 남은 자는 유신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선덕여왕이 얻은 인물은 김유신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선덕여왕은 아무것도 이룬것이 없다는 뜻이다.

물론, 잔챙이 수십명보다는 확실한 월척인 유신을 얻었다면 성공한 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드라마상 선덕여왕은 무능하고 우유부단함의 전형적인 모습니다. 기획의도와 정반대의 왕을 그리고 있다는 말이다. 죽도 밥도 아닌 드라마 선덕여왕이 된 이유야 미실를 주인공으로 그리려는 복선를 가지고 있고, 선호하지 않은 덕만을 드라마로 쓸려니 작가 스스로도 난감했을 수 있다.

더불어 드라마 뿐만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덕만을 무능한 왕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기록들을 분석해보면 덕만은 왕으로써 무능하지 않을 뿐더러 시호가 <선덕>일 만큼 선정을 베풀고 있다.


비담의 난에 가입하는 자들을 보면 주진과 미생과 보종과 하종과 호재와 필탄이 있다. 10화랑 중에서 4명이 반란에 투입되고 있다. 호재는 덕만의 외삼촌이 된다. 호재의 아버지는 복승공이 복승공의 딸인 마야가 덕만의 어머니이다. 그런데 호재는 비담의 난에 가입하는 것으로 나온다.

물론, 당시 비담의 난에 연루되어 죽은 자들은 30여명에 이른다. 그러니 화랑중에서 난에 가담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던, 덕만은 화랑의 수장인 천신황녀였으니 사람관리에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덕만은 드라마 선덕여왕 처럼 무능한 군주였을까? 삼국사기에 의하면 덕만은 <덕>은 있으나 힘이 없는 군주처럼 그려지기는 했고, 김부식은 덕만을 여자가 왕이 되어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당서를 인용해서 이세민이 신라에 여왕이 있으니 업신여김을 받으니 당나라 왕족으로 하여금 신라의 왕으로 삼는다면 군대를 보내 도와주고 안정이 된다면 그때 다시 신라에서 왕을 뽑는게 낫지 않겠는가?라는 신라를 업수히 여기는 말을 듣게 된다.


덕만이 무능하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확대시킨자는 삼국사기의 김부식이다. 김부식은 덕만을 여러가지로 평하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쉬이 알수 있다.

하지만 딴지맨 일연은 덕만이 무능하지 않고 오히려 유능하다는 식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삼국사기 기록만을 검토해본다고 해도 덕만은 무능하지 않고 선정과 외교적인 술수가 능한 군주임을 쉬일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덕만과 관련된 <지기삼사>중에서 <옥문곡>사건은 덕만의 예지능력보다는 신라 깊숙히 백제군이 들어오게 할 만큼 신라는 허약했으니 그는 신라에서 여왕이 있었기 때문에 이웃나라에 업수히 여김의 사례로 인용되기도 한다.

사실 삼국사기를 보고 있노라면 지명 비정에 오류가 많이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지명비정 오류도 있지만 후대에 오류도 많이 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옥문곡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독산성 또한 비슷한 사례이다. 삼국사기에는 독산성이 여러곳에 등장한다.


그렇다면 덕만이 무능해서 백제군이 신라 깊숙히 까지 들어와서 분탕질할 만큼이였는지 삼국사기의 <옥문곡>사건을 분석해보자.


636년 선덕왕 5년 여름 5월에 두꺼비가 궁궐 서쪽 옥문지(玉門池)에 많이 모였다. 왕이 이를 듣고 좌우에 말하였다.

"두꺼비는 성난 눈을 가지고 있으니 이는 병사의 모습이다. 내가 일찍이 듣건대, 서남쪽 변경에 이름이 옥문곡(玉門谷)이라는 땅이 있다고 하니 혹시 이웃나라 군사가 그 안에 숨어 들어온 것은 아닐까?"

이에 장군 알천(閼川)과 필탄(弼呑)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가서 찾아보게 하였다. 과연 백제 장군 우소(于召)가 독산성(獨山城)을 습격하려고 무장한 군사 500명을 이끌고 와서 그 곳에 숨어 있었으므로, 알천이 갑자기 쳐서 그들을 모두 죽였다.

여기서 주의 깊에 봐야 하는 대목은 덕만이 궁궐 서쪽 옥문지에 두꺼비가 모여서 울었는데, 서남쪽 변경에 이름이 <옥문곡>이라는 땅이 있으니 그곳에 이웃나라 군사들이 숨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덕만이 말한 옥문곡은 <서남쪽변경>에 있다는 말이다. 변경이란 국경지대를 말한다. 그러니 백제 별동대가 숨어있었다는 옥문곡은 신라 서라벌 중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지 않고, 저멀리 서남쪽 경계에 있다는 뜻이다.

이때의 서남쪽 경계는 어디였을까? 신라가 합천 대야성까지 서쪽변경을 침탈당한 때는 642년 7월이후가 된다. 642년 7월 고구려와 백제는 연합하여 당항성을 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때 신라는 당항성을 지키기 위해서 대당 외교를 강화하고 군대를 이동해서 경계를 한다.

하지만 백제는 당항성을 치기 보다는 경계가 허술해진 서쪽 변경 미후성으로 부터 40여개 성을 빼앗고, 642년 8월 같은해 경남 합천에 있는 대야성을 함락시킨다.


그러니 642년 8월 이전에 있었던 635년 지기삼사 옥문곡과 독산성은 대야성 서쪽과 미후성 서쪽 밖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그동안 통설로 알고 있었던 덕만이 왕이 되자 국력이 쇠하고, 이웃나라로 부터 업수히 여기고 신라 깊숙히 백제의 별동대가 들어올 정도로 국방력이 허술했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춘추가 처음 당항성으로 부터 들어올때 <금오산>에 유하다 대남보를 속이고 서나벌로 입성을 한다. 이때 금오산은 현재 구미와 김천 지역에 있는 금오산이 아닌 경주의 남산 아래쪽에 있는 <금오산>이였다.

그렇다면 왜 신라 궁성과 가까이까지 별동대가 들어올 정도로 신라가 허약했다는 말을 들어야 했을까? 그것은 단지 <독산성(獨山城)>이란 지명 때문이다. 위에서 잠깐 언급을 했지만, 고지명확정 오류 때문이다. 특히 독산성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곳만 최소한 3군데에 이르고 있다.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던 독산성과 백제의 서남변경지대의 독산성 그리고 경주인근에 있었던 독산성으로 볼 수 있다. 

사람도 <동명이인>이 있듯이 독산성도 <동명이지명>이란 뜻이다. 현재도 국내에 같은 지명을 가지고 있는 곳이 무수히 많이 있다. 이들 같은 지명이 있다고 해서 같은 장소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옥문곡과 독산성은 단지 백제와 경계한 독산성일 따름이다.

선덕왕 시기 전쟁기록은 사실 몇건이 되지 않는다. 신라가 수세에 몰린 이유는 고구려와 백제가 연합해서 신라를 압박하였기 때문이다. 신라는 생존을 모색하기 위해서 고구려와 백제의 연합을 깨려고 춘추가 642년 겨울 대 고구려 외교를 하였지만 실패한다. 그리고 춘추는 왜로 들어가 백제와 왜의 연합을 와해할 목적으로 왜로 들어갔지만 백제와 왜 연합을 깨는데도  실패한다.

그후 643년 8월 신라는 당으로 사신을 보내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를 치는데 도와달라는 뜻을 전한다. 이때 외교전은 고구려와 백제가 연합해서 당항성을 칠려는 계획을 무산시킨다.

645년 5월 당나라 이세민이 고구려를 칠때, 신라는 3만의 대군으로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침공한다. 고구려는 남쪽으로 신라의 압박과 서쪽으로 당나라의 공세를 견뎌내야 했다. 이틈을 놓치지 않고 백제는 신라의 변경 7개 성을 공격하여 빼앗아 버린다. 그러니 645년 고구려 대당 전쟁은 당+신라 동맹과 고구려+백제동맹의 국제전이였다는 뜻이다. 이해 11월 이찬 비담은 상대등에 임명된다.

결론적으로 덕만이 왕이 였던 선덕왕 시기는 고구려와 백제동맹을 막기 위해서 대당외교와 대왜외교를 강화하던 시기였다. 그러니 기존에 알고 있던 덕만시기에 수세적인 위치에서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덕만이 여인이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 아니고 대외적인 요인때문이였다는 뜻이다. 그리고 덕만은 고구려 백제동맹 시기를 외교전과 군사력으로 잘 견디어 내었다.

또한, 이시기 첨성대를 만들고, 당으로 유학생과 유학승을 보내 내치 기반을 확립하던 시기였다. 또한, 범 국가적으로 영묘사, 분황사, 황룡사 9층 목탑 등 사찰을 지어 백성의 정신적인 구심점을 마련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동안 알고 있었던 역사적인 상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 않을까 한다.

사실 비담의 난은 칠숙의 난과 유사한 면을 가지고 있다. 칠숙과 비담은 자신들이 최소한 차기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만한 위치에 있었고, 이를 결행했지만 칠숙은 덕만과 진평에 의해서 난이 진압되고, 비담의 난은 유신과 알천, 대아찬 수승 등에 의해서 진압된다.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운이는 24세 풍월주 천광이라고 한다. 천광은 풍월주로서 낭도를 이끌고 최전선에서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 공로로 <호성장군>에 임명되기도 한다. 칠숙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이는 염종과 비슷한 이름를 가진 17세 풍월주 염장이다.

24세 풍월주 천광은 636년 상대등에 오른 수품의 아들이라고 한다.  수품의 아버지는 진흥왕/사도비의 아들인 구륜이다. 구륜이 진흥왕/미실의 딸인 반야와 결혼해서 수품을 낳았다. 그러니 천광의 할머니 반야공주는 미실가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가문이 칠숙의 난을 비롯해서 비담의 난을 일으키는 주체로 나오지만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이들 염장과 천광 풍월주들은 미실과 밀접한 친족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두 난을 진압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드라마 선덕여왕은 정변의 주체를 왜곡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드라마니 괜찮다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최소한 기록과 유사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친일민족 반역자를 친일민족반역자라고 이야기를 해도 명예훼손이라는 말을 하는 세상인데 난을 진압한 세력을 난을 일으킨 세력으로 몰아 세운다면 아마도 미실을 비롯한 미실가문의 후손들은 참으로 억울할 만 하다. 단지 드라마라는 이유만으로 당시 신라 왕실의 입장에서 만고의 충신가문이 역신으로 몰렸고, 덕만을 비롯한 진평왕은 허수아비 왕이 되었으니 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는데, 또는 당시 역사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면 추천을 많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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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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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BlogIcon 펨께 2009.12.24 0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긴 크리스마스라 야단들이랍니다.
    갓쉰동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좋은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2. Favicon of http://dongnae.tistory.com BlogIcon Sun'A 2009.12.24 07: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메리 크리스마스~!
    좋은하루 보내세요^^

  3. Favicon of https://boskim.tistory.com BlogIcon 털보작가 2009.12.24 08: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 아닐까요?
    갓쉰동님! 오늘도 행복하시구요.
    메리 크리스마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2.24 1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드라마이야기보다는 드라마를 통한 역사 이야기지용..

      머 사실 드라마 내에서 널뛰기 설정을 비판하기는 하지만.. ㅋㅋ

  4. Favicon of https://islandlim.tistory.com BlogIcon 임현철 2009.12.24 0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이브 되세요.

  5. Favicon of https://djyaru.tistory.com BlogIcon DJ야루 2009.12.24 0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괜히 역사를 혼동할까봐 걱정이 되네요ㅋㅋㅋ

    아무튼간에 갓쉰동님 즐거운 이브 되세용!!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2.24 11: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미 오해하는 사람들 많더라구요.. 인터넷을 보면..
      미실과 덕만이 하면서.. 유신과 춘추가 비담이 어쨌내 하면서 역사 토론 마당에서도 그러니.. ㅋㅋ

  6. Favicon of https://iconiron.tistory.com BlogIcon 레오 ™ 2009.12.24 09: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화나 영화는 감독의 생각을 담고 있어 아무래도 가감을 할 겁니다
    그래도 실망하지 마시기를 ..
    메리크리스마쓰 되세요 ^^^

  7. Favicon of https://greensol.tistory.com BlogIcon 여행사진가 김기환 2009.12.24 11: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튼 갓쉰동님 덕분에 역사공부 많이 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8. Favicon of http://ozalgong.tistory.com BlogIcon ll오잘공ll 2009.12.24 1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대단하신걸요.저도 학교다닐땐 역사공부좀 햇는데.
    분석까지 해주고 ~ 많이 배우고 갑니다.

  9. 어신려울 2009.12.24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간 어찌 지내셨나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갓 쉰동님
    해피 성탄 되세요.

  10. Favicon of https://gamjastar.tistory.com BlogIcon 또웃음 2009.12.24 1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글 잘 읽고 갑니다.
    갓쉰동님,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

  11. Favicon of https://qlcanfl.tistory.com BlogIcon 빛무리~ 2009.12.24 12: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즐거운 성탄 보내세요^^

  12. Favicon of http://peopleit.net BlogIcon 민시오™ 2009.12.24 13: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크림 같이 달콤한 크리스마스되시길 바랍니다^^
    메리크리스마스~~~~

  13. Favicon of https://skagns.tistory.com BlogIcon skagns 2009.12.24 19: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끝나니까 가장 생각나는 것이 갓쉰동님이더라구요. ㅎㅎ;;;
    그동안 덕분에 선덕여왕을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

  14. 클래식 2009.12.24 2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는 선덕여왕이 여성이기 때문에 폄하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근데 제가 아는 것이 짧아서 거기에 대한 근거는 말씀 못드리네요. ^^;
    선덕여왕 보지는 않았지만 갓쉰동님이 올리신 글 보고 중요한 것을 배우고 갑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네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따뜻한 연말되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2.25 08: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여성이기 때문에 오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지요.. 그걸 증폭시킨게 이세민의 발언과 비담의 난이고, 김부식의 결정적인 한방이지요..

  15. Favicon of http://www.humornara.kr BlogIcon 유머나라 2009.12.25 0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해요. 정말 삼국사기를 잘 해석해볼 필요가 있네요.
    대충 짐작으로 누굴 비난하고 할 것 없이.
    대단한 안목이어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2.25 08: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대충 해석하면 절대 풀리지 않는 부분이 많아요..

      특히 선덕여왕의 옥문곡이나 김유신 김춘추 문희 덕만의 관계는..

  16.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朱雀 2009.12.25 09: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갓쉰동님 덕분에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다시 알게 됩니다.
    조만간 삼국사기랑 몇개를 좀 봐야 겠어요.
    <선덕여왕>이랑 갓쉰동님 포스트때문에 자꾸 궁금해져서요. ^^
    연말연시 잘 보내세요~갓쉰동님~^^/

  17. 2010.07.17 0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은 무능한 여군주라고 정평이나있죠 한때 드라마 연개소문에서도 선덕여왕의 무능함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18. Favicon of http://seekingalpha.com/user/4146461/profile BlogIcon Seeking Alpha 2013.03.12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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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Favicon of http://dailymiaminews.com/2011/12/08/the-2011-miami-real-estate-success-—-pr.. BlogIcon miami property 2013.05.02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사이트에 게시 된 기사 및 정보는 정말 인상적이다. 나는 확실히 게시 다른 확인합니다. 감사합니다.

드라마 선덕여왕 53회에서는 별다른 에피소드가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대사는 의자에 앉아서 노닥거리는 걸로 소일하고 있다. 54회에는 백제의 계백(최원영)이 등장한다고 한다. 이유는 없다. 계백이 백제 멸망기에 유신과 국운을 걸고 황산벌에서 전투를 하였다는 것 말고, 640년 전 후 계백이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김유신은 너무나 뻔한 스토리인 이순신이 전장에서 전공을 세웠지만 원균의 모략으로 백의종군을 하였듯이 전공을 세운 김유신이 비담의 농간으로 백의종군한다는 드라마 패러디 수준의 이야기를 엮어갈 모양이다. 좋게 말하면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들은 사극을 만들때 역사책은 안보고 기존의 사극드라마 패러디 하기에 급급하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기존 사극 빼끼기 수준의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선덕여왕 즉위 전후 10년사이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알면 한가히 농담따먹기 수준의 사극은 안 봐도 되지 않을까 한다. 내실을 기해달라는 뜻이다.

선덕여왕은 즉위부터 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미실에 의한, 미실을 위한, 미실 만을 위한 드라마 였으니 번외편 선덕여왕에 힘이 실리지 않는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순신의 백의종군?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위 계승권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칠숙은 진평왕이 덕만을 차기 왕위에 올리려는 생각을 간파하고 석품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진평왕은 칠숙의 난을 사전에 감지하여 칠숙의 난을 조기에 진압하였다.


그런데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는 칠숙이 난을 일으킬것이란 사전모의를 17세 풍월주인 염장이 알고, 덕만에게 알렸고, 덕만과 염장이 칠숙과 석품의 난을 진압하는데 혁혁한 공로가 있었다고 전한다. 삼국사기에서 진평왕이 사전에 칠숙의 난이 있음을 감지한건 염장과 덕만의 진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염장은 극중에서 악역인 보종을 업어 키우듯이 하였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염장이 등장할 수 없는 것이다. 악역이 아닌 보종을 악역으로 만들었는데, 그와 가장 가까이 지낸 염장이 덕만의 편이였다는 설정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생과 비슷한 연배인 적대적인 대남보를 미생의 아들로 만드는 설정인데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지만 말이다. 대남보를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진평왕의 말년에 관한 기록은 참으로 애매한 부분이 있다. 김부식은 <고기>의 기록을 토대로 진평왕이 632년 정월에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진평왕의 죽음에는 다른 이설도 있다 당서에는 칠숙의 난이 있은 직후 631년 죽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일연은 삼국사기에 대한 이설을 가장 많이 기록하고 있다. 어찌보면 일연은 삼국사기 딴지맨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일연은 삼국유사 왕력편에 아주 재미 있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덕만에게는 왕위에 오르기전에 남편이 있었고, 남편의 이름은 <음갈문왕>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삼국사기에는 632년 정월 부터 17년간 재위하였지만, 삼국유사는 634년 연호를 인평으로 바꾸고 647년 1월 8일경 비담이 난을 일으키는 바로 전후 덕만이 죽을때까지 14년간 재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진평왕 말년인 625년 전후에 덕만의 어미인 마야황후가 죽고, 계모로 승만황후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승만에 대한 기록은 더이상 발견할 수 없지만, <화랑세기>에는 진평왕 말년에 황후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것을 알 수 있다. 덕만과 비슷한 나이 어린 승만은 아들을 낳고, 승만 자신의 아들로 하여금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을 만들려고 하였지만, 승만의 아들은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해서 죽어 버렸다.

이때, 덕만의 대부였으며, 남편인 용춘과 용수는 승만의 미움을 받아 지방으로 좌천되고 629년 낭비성 전투의 공적으로 서라벌 정치 중심에 발을 내딛는다.

정상적인 드라마라면 칠숙과 미천한 6부 귀족 출신인 손승만과 덕만의 왕위 쟁탈전을 그려야 합리적이다. 또한, 왕족이고 황후였던 미실이 등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진골, 성골의 허구는 6부 귀족 출신인 황후 손씨에 의해서 여지없이 깨지는 만큼 중요인물이다. 어쩌면 미실은 손 승만황후에 비하면 욕심도 없었을 것이다.

아들을 잃은 승만왕후와 왕위 승계에 불만을 품은 이찬 칠숙이 동상이몽이나 내연의 관계를 유지하였을 수도 있다. 631년 이찬 칠숙의 난은 승만왕후와 칠숙의 협력에 의해서 일어나지 않았을까하는 의심을 하게 되는것이다. 칠숙과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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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의난이 칠숙의난이면, 김춘추 문희 결혼은 없다.
2009/07/26 -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가 위서가 아니라고 한다면,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덕만과 545~548년 생인 미실은 같은세대가 아니다. 미실은 614년 사도태후가 죽은 해를 전후에 죽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덕만은 여러 기록의 증거로 610년~615년 전후에 태어났을 것임으로 덕만의 할머니 진흥왕비인 사도태후와 미실은 영흥사에 들어가 비구니로 말년을 보냈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숙명적 라이벌로 그려진 덕만과 미실이 조우할 수 있는 때는 꼬꼬마 덕만과 70살 전후 미실이 아주 늙었을 때  잠깐 보지 않았을까 한다. 미실이 언제 죽었는지 알고 싶다면

2009/11/0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고현정 하차로 본 미실 최후 미실의 난, 비담(김남길) 존재감 사라진 진짜 이유?
2009/10/12 - [역사이야기] - 삼국사기, 화랑세기 기록으로 본 선덕여왕 미실(고현정) 언제 하차해야 하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 살펴보면 덕만은 631년 5월 칠숙이 난을 진압한 이후 진평왕을 대신해서 섭정을 하였고, 진평왕이 칠숙의 난 즈음해서 죽고 상중에 왕위에 오르지 않고, 김정일 처럼 유흔 통치를 하며, 일연이 말한대로 634년 정식으로 왕위에 올랐을 수도 있다.

덕만이 왕위에 오르면서 가정 먼저 한일은 대신 을제를 국정전반을 총괄하게하고, 여름 가뭄이 있자 가을 추수철에 사자를 지방에 보내서 굶주린 백성들에게 구휼미를 주고, 혼자 살아갈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진휼하였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대신 을제는 용춘과 더불어 덕만의 남편이 되는 인물이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진평왕의 대등으로 나오는 신구가 했던 인물이다.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여름 5월부터 가물다가 6월에 이르러서야 비가 왔다. 겨울 10월에 사자(使者)를 보내 나라 안의 홀아비와 홀어미, 부모없는 어린 아이와 늙어 자식없는 사람 그리고 혼자 힘으로 살아갈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문하고 진휼하였다.

또한, 삼국유사에 의하면 분황사와 영묘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또한,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부에 의하면 이때 선덕여왕 2년 첨성대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첨성대가 612년 이후 바로 만든것으로 나오지만, 632년 즈음에 만들었다는 뜻이고, 공주시절이 아닌 덕만이 왕일때 만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또한, 덕만의 가장 치적은 불사를 하고, 백성들에게 조세를 감면하고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서 진휼한 것을 알 수 있다. 덕만이 죽고 시호가 <선덕>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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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년에는 신궁에 직접 나아가 제사를 지내고, 죄인들을 사면하고, 주.군의 세금도 면제해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경주에 지진도 있었고, 5월에는 백제가 서쪽 변방을 침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천신황녀의 지위를 버렸다고 했지만, 덕만은 신라 고유의 종교인 신도와 불교를 융합하여 새로운 신라를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해에는 백제가 변방을 침범하였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이 전쟁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하고 군의 주축이 된 서현이나 10화랑들의 활약이 있어야 한다.

634년 덕만이 왕이 된 3년에는  전왕인 아버지 진평이 사용하던 연호를 <건복>에서 <인평>으로 바꾸고 직접적인 신국의 황제가 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삼국유사 일연은 이해를 기준으로 14년간 치세하였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635년에는 또다시 이찬 수품과 용수 혹은 용춘을 주군에 내려보내 백성들의 살림을 살피고 진휼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알천 이승효가 비담 김남길에 이어서 신종플루에 걸려 집중 격리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이는 이들과 같이 연기한 배우들 또한 위험하다는 뜻이다. 드라마가 산으로 들로 바다로 가버린 점이 있으니 이참에 극중리얼리티나 극의 완성도를 위해서 휴지기를 가지고, 좀 더 완성도 높은 극본을 보기를 바란다.
또한, 알천이나 비담의 예처럼 선덕여왕의 배우들은 한가지 이상 선덕여왕을 찍으면서 병을 얻었을 것이다. 이는 당일치기 쪽대본으로 극을 만드는데 기인한 점이 많다. 그러니 처음 유신보다 20살은 많은 알천이 선덕여왕 극중에 왜 나와야 하는지 조차 잃어버리고, 나침판 없이 항해하듯 하는 것이다.

어쨌든, 미실의 난중에 가장 극에서 비중있게 나와야 하는 비담의 예처럼 알천의 극중 비중이 떨어진 이유가 신종플루 같지는 않다. 선덕여왕에서 미실을 위한 미실 드라마를 찍은 것처럼, 비담의 선덕여왕을 찍고 있다는 것이 알천의 예에서도 금방 들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덕만 시기 가장 화려한 생을 보낸 알천이 병풍이 되다


636년에는 병이 있었지만, 의술과 기도로도 효험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이해에는 선덕여왕의 <지기삼사>의 하나인 옥문곡에 두꺼비가 울어서 백제의 침입을 알고 알천과 필탄을 보내 백제가 독산성에 숨어 있던 백제군을 섬멸한다.

637년에는 알천은 대장군의 반열이 오른다. 대장군은 3.4등위만 누릴수 있는 병과에서는 최고등위에 해당한다. 알천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유신이 대장군이 되기 훨씬 이전에 대장군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실질적으로 덕만의 최측근은 비담 아니고 유신도 아니고 용춘.용수와 알천, 염장 그리고 너무 일찍 조로환자로 만든 을제였다

알천의 전공을 빼앗은 유신과 생각없는 덕만


638년 선덕왕 7년 11월 고구려가 칠중성을 공략할 때 대장군 알천은 군사를 이끌고 가서 칠중성 벌판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때도 유신은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알천 대신 있지도 않은 전쟁에서 승리한 유신이 돌아와서 비담의 정적으로 팽당하는 꼴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비담과 알력싸움을 하는 대상이 있다면 칠중성에서 대승을 하고 돌아온 알천과 비담이 정치쌈을 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그동안 병풍배우로 전락한 알천과 필탄이 활약할 수 있는 토대를 박살내고 왜 알천과 필탄이 드라마에 등장하여야 하는지도 모르게 병풍배우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아무런 활약도 없이 그저 도망가는 왜인의 조총의 유탄에 맞고 죽었다는 것 만큼 어설픈 설정이고, 백전백승의 이순신이 꼬랑지를 내리고 도망다녔다는 것 만큼 황당하다.  왜 드라마 선덕여왕에 알천과 필탄이 극에 나와야 하는지도 모를 정도가 되어 버렸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덕만의 내치는 잘 하였지만, 국방에 관한 외치는 하지 못하고 수세에 몰렸다는 이유로 덕만을 높이 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이미 백제로 부터 핍박을 받고 서쪽 변경을 빼앗기는 곤혹을 치렸었다. 그러니 덕만이 단순히 여인이기 때문에 외침이 많았다는 설은 낭설에 가깝다고 할것이다. 또한, 알천의 예가 보여주듯이 고구려의 침입에 적극적으로 보복전쟁도 수행하고 있다.

왜산 수노?


덕만이 왕이 되고 한일이라고는 비담의 농간에 놀아나 복야회를 치고, 자신의 충신인 유신을 버리는 것 말고 한일이 없다. 사실 복야회가 등장한다면 복야운동을 한 왜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 왜인들이 등장해야 하지만 한명의 왜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복야회나 신라의 미실이나 신라 병사들은 왜국에서 수입한 <수노>를 가지고 열심히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신라의 첨단 무기인 수노를 <왜>에서 수입하는 드라마라는 설정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수노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09/0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당.일본 떨게한 신라 비밀병기?
2009/11/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고현정 미실 최후 자살 죽음장소, 대야성 선택이유? 수노(手弩)는 왜(일본)산 최고?

어찌되었던 덕만이 사람을 얻어 왕이 되고, 신진 세력을 키우는데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없다. 최소한 <대왕세종>처럼 사람을 키우고, 새롭운 선진물물을 받아들이고, 월천으로 대변되는 격물을 어떻게 만들고 하늘을 살폈는지는 보여주어야 하지만 어떠한 노력도 없다. 실제로 덕만은 신진세력을 키우기 위해서 당나라에 우리 신라 귀족가문의 자제를 당신 나라의 대학(?)에서 수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도 요청도 한다. 진평왕과 덕만시기에는 당나라 유학 전성시대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난에 이어서 642년 대야성 전투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642년 7월 백제는 대대적으로 신라를 침공해서 신라의 서쪽 40개성을 함락시킨다. 다음달 8월에 고구려와 연합해서 당으로 통하는 길목인 당항성을 침공할 기세를 보여준다. 백제의 윤충은 경남 합천 대야성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대야성은 백제의 침공에서 끝물이였다. 대야성이 중요하게 된 이유는 김춘추의 여식인 고타소가 죽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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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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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kmc10314.tistory.com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1.24 14: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갓쉰동님 저하고 비슷한 생각 두가지를 하셨네요...
    그래도 알천이 진덕여왕때 상대등인데.. 오늘 두 마디 했고요.
    "춘추공께서 오셨습니다." / "폐하.... 인강전에..."

    그리고 이 시점에 계백이 왜 나오는지.....

    저는 원래 드라마는 드라마 / 역사는 역사로 보는 사람이긴한데요.
    진덕여왕을 넣지도 않고 계백을 넣는다는 것이 웃겨서요.
    진덕여왕은 나오야 하는 인물이고, 계백은 나오지 말아야 하는 인물인데....

    하기사 뭐 선덕여왕 제작진측에 역사대로 만들어줄 것을 기대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사극에 바라는 작은 소원이 있다면 그저 최소한 TV 시청에
    "15세 미만 관람불가 (솔까말 이거 누가 지킵니까? ㅋㅋ)" 대신에
    "이 드라마는 역사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극입니다. 실제 역사와는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라는 식의 자막을 까는 편이 더 현명할 듯 싶네요...

    그 점과 관련해서 트랙백하나 걸구가요 ㅋ

  3. Favicon of http://minjine.kr/story BlogIcon 뽀글 2009.11.24 15: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과 드라마는 확실히 차이가 있군요^^;; 저도 책으로 다시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알천에 대해서도 알아볼겸~^^

  4. Favicon of http://yim3204.tistory.com BlogIcon 분홍별장미 2009.11.24 15: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요즘 너무 바빠서 미실죽기전편까지만 보았네요..
    한번 몰아서 봐야겠어요 ^^;;;;

  5. Favicon of https://rubygarden.tistory.com BlogIcon 루비™ 2009.11.24 15: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와서 선덕여왕 보는게 시들막해졌어요.
    얼토당토 않은 내용이 너무나 많으니..
    아무리 99%를 픽션으로 만들었더라도 너무 심하다 싶어서요.
    하긴...뭐 애초에 덕만과 유신 러브라인 설정한 것 부터가
    드라마가 산으로 갈 운명을 타고 났는지도...
    언제나 도움 되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6. Favicon of http://blog.daum.net/hls3790 BlogIcon 옥이 2009.11.24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두...요새 산으로 간다는 생각을 합니다...그래서 선덕여왕만 보던 옥이가 이제 선덕여왕 안보려고요...
    미실이 죽은뒤...정말 이상해집니다..
    행복한 저녁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1.24 2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실때부터도 이상했었음.. 워낙 고현정에 집중이 되서 안보인거지요.. 이제 대들보가 없어졌으니.. 잘보이는 것임.. ㅋㅋ

  7. Favicon of http://rindarinda.tistory.com BlogIcon rinda 2009.11.24 17: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로는 알천이 대단한 일을 했군요.
    드라마에서는 그저 꽃미남 중 한 사람일 뿐이니 참;;
    허구가 심하게 많아지니 점점 챙겨볼 생각이 없어집니다ㅎㅎ

  8. Favicon of https://sapientis.tistory.com BlogIcon 백두 대간 2009.11.24 18: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참 할 말이 없네요, 이젠.

  9. Favicon of http://shinlucky.tistory.com BlogIcon shinlucky 2009.11.24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픽션은 픽션이고,
    그나저나 이렇게 진짜 사실과 비교해보는게 전 더 재미있습니다. ^_^

  10. Favicon of https://pplz.tistory.com BlogIcon 좋은사람들 2009.11.24 2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이 요즘 예전이랑 달라진걸 부쩍 느끼네요.~ 줏대가 없어졌어요~

  11. 갓쉰동님 광팬 2009.11.25 0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순신의 백의종군장면은 비극적이고 처절한데 김유신의 백의종군은 폭소만 나오네요 ㅎㅎ 역사상의 선덕여왕이 드라마에서처럼 치졸하고 생각없고 자기편만 챙기는 작은 그릇의 여인이라면 왜 드라마로 만들었는지 의문이네요. 드라마가 사실이라면 선덕여왕은 우리가 그닥 존경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고 드라마가 거짓이라면 작가는 저승에서 선덕여왕에게 크게 혼날겁니다^^;; 뭐... 작가의 농간 덕분에 미실이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저따위 설정으로나마 알 수 있었지만요...

  12. 사람들의 착각 2009.11.25 0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유신이 활약한 시기는 대야성이 깨진 시기인데.....ㅋㅋ
    다들 착각하고 있더군요.
    대야성함락 전후로 나누어 서현, 용춘. 용수, 알천, 염장, 을제, 필탄이 주요인사였고
    대야성함락후에 유신, 임종, 술종, 호림이 새로 가담했죠.
    그런데 사람들이 선덕여왕치세 처음부터 김유신이 활약하는 줄 알고 있더군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1.25 1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유신의 활약은 628년 낭비성 전트부터지요.. 이때 김유신의 존재가 부각되기도 하지만, 선덕여왕에선 나오지도 않았음..

  13. 산으로 가다가 2009.11.25 0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은 다시 바다로 가고 있더군요.
    스토리는 둘째치고라도...
    아직도 이요원씨의 발연기는 계속 되더이다.
    여왕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허겁지겁하는 모습이 너무 짜증납니다.
    어쩔줄 몰라서 고민하는 것이 얼굴에 다 나오고...
    카리스마가 전혀 없어요.

    미실의 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최소한 평균치는 해야 할 것 아닙니까?

  14. Favicon of http://killerich.iptime.org BlogIcon killerich 2009.11.25 0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저도 드라마봐야겠어요^^..;;
    선덕여왕 아직까지 한번도 안 봤어요..;; 외계인같죠TT

  15.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montreal florist 2009.11.25 0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설도 재밌다니깐여

  16.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11.25 06: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가 갑자기 맥이 빠졌어요.
    마치 삼국지에 유비,관우, 장비가 없는 느낌이네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17. Favicon of https://leeesann.tistory.com BlogIcon pennpenn 2009.11.25 09: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전문지식에 탄복하고 갑니다.

  18. Favicon of http://daum.net/jmk BlogIcon 하-하 2009.11.25 1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공부 잘 하였습니다.님께서 역사의 잔실을 알려주어 가마사합니다.

  19. Favicon of http://daum.net/jmk BlogIcon 하-하 2009.11.25 1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덕 등장은 시청률 흥미 없을테고, 완전 시청률/흥미땜에 계백 등장시킨것응 좋은데, 어찌 계백 캐릭터를 그리 어리숙하게 맹그러 버렸을까? 기막힌 발상이네.

  20. Favicon of https://smilecap.tistory.com BlogIcon 스마일맨 민석 2009.11.25 14: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아직 못봤는데...
    한번 봐야겠어요 ㅎ

  21. 은루히 2009.12.02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요원씨의 연기력도 문제 겠지만
    제일 큰 문제는 제작진 이라고 말하고 싶으나
    그냥 전 닥치고 볼렵니다...(먼산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2.02 01: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살펴보면 죽은자들 천국입니다.. 산자들보다는.. ㅋㅋ

      이요원은 저는 그정도면 선방했다고 봐용.. 가장 문제는 작가이고 그다음은 감독과 제작자지요..

      저는 개콘 보듯이 봅니당.. 너무 웃겨성.. ㅋㅋ

성골 남자의 씨가 마른 이유는 진평왕이 딸만을 낳았는데, 그 후 왕위를 이을 왕제가 없었다. 그런데 정말 그러할까? 삼국사기에는 진평왕 원년 왕위에 오른 후 진평왕의 동모제(?)인 동생 둘을 갈문왕에 봉하고 있다. 복승의 딸이고 진평왕의 비이며, 덕만과 천명의 어미인 마야부인 또한 성골이다. 그렇다면 복승도 성골이라는 의미다. 진평왕은 어린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진평왕의 동생들에게는 남자 아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춘추가 왕이 되기전에 왕의 우선 순위는 알천이였다. 알천이 나이가 많아, 춘추에 왕위를 양보하게 되었다. 실제는 유신계와 춘추의 어미인 천명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정말 진골위에 성골은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를 하면 천만에 만만의 콩떡이 되시겠다. 이는 후대에 만들어진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그리고 지금까지 나온 고고학 유물이나 기록 어디에도 <성골>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진골>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사학을 전공하는 자들이 성골, 진골을 나누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런데 이들의 성골과 진골을 나누는 기준이 서로 다르다.

어떤이는 왕족과 왕족간의 근친혼을 성골이라고하고 귀족과의 결혼을 하게 되면 성골에서 진골로 떨어진다(족강)고 한다. 물론, 신라 중기 이후 후대로 넘어가면 근친혼이 사라지기는 한다. 그렇다고 성골이 씨가 마르고 진골만이 남게 되겠는가? 어찌 되었던 왕족과 왕족의 결혼은 계속 되고 있는데 말이다.  

성골과 진골이 있다면, 그 기준은 간단명료해야 한다. 그런데 전공자 마다, 분류가 다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를 성골과 진골을 구이 나누고자 하는 이유가 나누기를 좋아하고, 분류하기를 좋아하는 학자적인(?) 학구열일까? 아니면 성골, 진골의 분류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았기 때문일까?  

글쓴이의 견해는 성골이 진골이고, 진골이 성골이라는 생각이다. 춘추는 삼국 중 백제를 굴복시킨 첫 왕이고 그의 아들인 문무왕때 어찌되었던 백제와 고구려를 굴복시켰다. 신라로 볼때는 새로운 시대의 만든이다. 그러니 당대에 이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또한, 춘추를 이은 문무나 신문왕은 기존질서와 이전 왕대와 차별화를 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도 국민의 정부, 문민정부, 참여정부 등 1공화국, 2공화국, 3공화국, 5공, 6공을 나누듯이 말이다. 우리가 시대를 구분하고자 하듯이 당대나 후대 고려사람들의 관점에서 분류하고 싶은 것이다. 신라를 나눌때 상대, 중대, 후대로 나누기도 한다. 또는 삼한일통이전과 이후로 나누기도 한다. 성골과 진골을 나누는 일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조심히 들여다 보면, 성골이 진골이요, 왕족임을 알 수 있다. 성골진골의 분류체계가 확립된 시기는 춘추(태종)시기가 아닌 고려시대의 분류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이를 제시하고자 한다.  

국인이 말하다.  국인(나라사람)은 누구를 말하는가?  

8년(654) 봄 3월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진덕(眞德)이라 하고 사량부(沙梁部)에 장사지냈다.  

國人謂始祖赫居世至眞德二十八王 謂之聖骨 自武烈至末王 謂之眞骨 唐令狐澄新羅記曰 『其國王族 謂之第一骨 餘貴族第二骨』

나라 사람들은 시조 혁거세로부터 진덕왕까지의 28왕을 일컬어 성골(聖骨)이라 하고, 무열왕부터 마지막 왕까지를 일컬어 진골(眞骨)이라 하였다. 당나라 영호징(令狐澄)의 신라기(新羅記)에 말하기를 『그 나라의 왕족은 제1골(第一骨)이라 하고 나머지 귀족은 제2골(第二骨)이라 한다.』- <삼국사기> 28대 진덕왕 말년

지금까지 "진덕왕까지 28왕을 일컬어 성골이라고 하고, 무열왕 부터 마지막 왕까지를 진골이라고 하였다"는 기준을 넘어 설 수 없다. 이 기준을 넘어서는 분류는 존재하면 안된다. 이는 하나의 선언이고, 기준이고, 명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국인>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보아야 한다. 그냥 읽으면 신라의 사람으로 읽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일반적인 국인론이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진덕>왕 사후에 기록된 <국인>에 대해서 알아보자.  

나라 사람들은 시조 혁거세로부터 진덕왕까지의 28왕을 일컬어 성골(聖骨)이라 하고, 무열왕부터 마지막 왕까지를 일컬어 진골(眞骨)이라 하였다. 

이말의 주체가 되는 <나라사람들 :<국인(國人)>은 진덕왕 말년 당시의 나라사람들이 될 수 없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다음에 기술된 "무열왕부터 마지막 왕까지를 일컬어 진골이라고 한다."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다시 말하면 신라가 망한후 고려 <김부식>시기의 학자층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 초기 이승만 대통령시기 사람들이 현재 대통령이 노무현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허황된 말이다. 현재의 사람은 과거 이승만, 박정희, 최규화,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을 말할 수 있지만, 그 당시의 사람은 미래가 어찌되었는지 알수 없는 것과 같다.  

이처럼 여기서 말하는 <국인>이란 신라가 끝나고, 고려시대 김부식때의 사람들 좁히면 당시 귀족일단이나 식자층이 그렇게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더욱 좁히면 신라 출신자들이 하는 이야기이다. 또한, 김부식은 당시의 진덕왕때 사람들이나 신라사람들이 이야기 했다고 하지 않고 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국인>을 신라 진덕왕시기의 사람들로 인식을 함으로서 비져진 코미디이다.  

영호징은 말한다. 성골, 진골은 없다 

또한, 많은 이들이 영호징의 <신라기>를 성골, 진골이 있었음을 증명하려 한다. 하지만 영호징이 말한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나라 영호징(令狐澄)의 신라기(新羅記)에 말하기를 『그 나라의 왕족은 제1골(第一骨)이라 하고 나머지 귀족은 제2골(第二骨)이라 한다.』其國王族 謂之第一骨 餘貴族第二骨』

왕족은 1골이고, 귀족은 2골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왕족은 성골이라는 말이 없다. 왕족은 그저 1골이고 귀족은 2골이라고 한다. 하지만, 성골, 진골이 있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1골은 성골이고, 2골은 진골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진골출신 춘추가 왕이 되었으니 진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일단 왕이 되었다면, 그 일족은 귀족이 아닌 왕족이 되는 것이다. 또한, 그의 후손들도 제 1골인 왕족이 되는 것이다. 왕족이 귀족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춘추는 진지왕의 손자인 왕족으로 왕이 된것이다. 유신 또한 신라왕족 출신이다.

신라는 남자중심이 아닌 남.여 공히 그들이 결혼한 상대는 왕족으로 편입되고 있다. 또한, 여 왕족에 장가간 많은 사람들이 왕이 된다. 신라는 왕족들에게서는 남.여 차별적이 요소가 전혀 없다. 오히려 사위로 왕이된 석탈해나 김미추 시대의 진정한 왕은 왕후로 기록된 여왕이였지 않는가 하는 의심이 든다.  

또한, 영호징은 통일신라 이후의 사람이다. 그러니 영호징이 말한 제1골은 진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2골인 귀족은 신라의 6두품을 이르며 6부족(씨성)에 해당할 뿐이다. 그래서 신라는 왕족(진골)과 6두품에 복식이나 집이나 가마 등 각 계급과 직제에 맞춘 규정이 있었다.  

성스런 진골만 있을 뿐이다.  

만약, 춘추 이전이 성골이라면, 왕족 출신도 아닌 석탈해, 김미추가 왕이 되었다. 그런데 석탈해는 성골이고, 왕족인 김춘추는 진골이라는 말이 되는데, 이는 논리적 모순이다. 그렇지만 김씨계 왕들을 성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또한,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삼국사기에 김부식이 말한 <성골>을 제외하고, <성골>이라는 단어는 더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진골>출신은 수 없이 등장하지만 말이다. 하물며 있지도 않은 성골이 진골의 상위계급이라니 있을 수 없다.  

단지, '성스러운 진골(聖而 .. 眞骨)'만 있을 뿐이다.

 만약, 성골 진골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분들은 알려주기 바란다. 글쓴이는 아직 이를 정확히 구분하는 이를 본적이 없다. 춘추 이전 28왕 그들 스스로 성골은 있지 않다고 증명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있다면 단지 시대 구분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을 뿐이다.

 어찌 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안은 <뼈대>가 있는 집안이라는 말을 한다. 이 또한 신라시대부터 내려온 뼈속깊이 새겨진 흔적이 아닐까?

그렇다면 성골은 없다는 말인가? 왕즉성조(골)

성골은 당대의 왕의 자제를 말한다. 진평왕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그들이 성골이고, 딸들만 있다면 그 공주들이 성골이다. 그럼 진평왕은 성골일까? 왕보다 성스런 존재가 있을 수 있는가? 왕위에 왕없다는 말이다. 그 무엇보다도 존귀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진평왕은 성골로써 왕위에 올랐을까? 아니다. 단지 진흥왕의 손자로 왕위에 올랐다. 진흥왕시기에는 진평(백정)은 성골이였다. 하지만, 진지(금륜)이 왕이 되었을때는 제1골인 진골(왕족)이였다. 진평(백정)은 진지왕의 방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진지왕이 되는 순간 방계가 되는 것이다. 진지왕이 폐위되고, 진평왕이 왕이 되었을때 비로서 성조(聖朝)이자 성골이 되었다.

진지왕의 후손인 용수.용춘 또한 진지왕의 폐위여부와는 상관없이 진평왕이 왕이 되는 순간, 진평왕의 방계인 왕족(진골)이 되는 것이다.

춘추도 진골(왕족:1골)로 왕위에 올라 성골(성조)가 되었다. 그러니 법민도 아버지 춘추가 왕이 되므로 해서 왕족(진골)에서 성골이 된것이다.

만약, 당대 왕이 성조이자 성골이 아니고, 기존 통설에 따라 진지왕의 폐위되어 용춘.용수가 족강이 되었다면,  실성왕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눌지왕의 후손들은 전부 진골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유는 눌지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된이는 자비왕이다. 자비왕은 실성왕의 딸의 아들로써 왕이 된다. 기존 통설의 폐위되면 족강되어 진골이 된다는 설의 최대 헛점이 되는 것이다. 누구도 지비왕부터 성골이 아닌 진골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지증왕은 소지왕의 뒤를  이어 왕위 되었다. 그런데 지증왕은 소지왕의 6촌에 불과하다. 지증왕은 단지 왕족으로 왕이 된것이다. 법흥왕의 뒤를 이어 왕이된 진흥왕 조차도 왕족으로 왕이 된것이다. 진흥왕은 법홍왕의 조카이자 외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성골.진골을 복잡하게 만든건 기존통설을 만든자들이다. 신라를 요상하고 이상한 나라로 만든이들은 신라가 아닌 현대 신라사를 연구하는 자들이 만든것이다. 신라는 당시에 있던 다른 나라와 같이 보통의 국가에 지나지 않았다. 족친혼은 신라만의 고유한 것도 아니고, 동양의 몇나라를 제외하면 일상화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성골(성조)은 당대왕과 자제이고, 왕의 적통이 이동하면 성골이였던 자들은 자동으로 왕족이 되는 것이다. 이는 어느 왕조나 마찬가지이고, 같은 왕조내에서나 다른 나라의 역사에도 마찬가지이다. 진골은 왕족의 다른말일 뿐이다.


그래서 덕만은 진평왕의 딸로 성조황고가 된것이다. 그래서 일연은 삼국유사에 진평왕시기 <성골남진>이 되었다고 한것이고, 삼국사기는 진덕(승만)에 성골이 없다고 한것이다. 덕만과 진덕(승만)은 그저 무자식이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논란이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는 진평왕에 성골남진이 되지 않았고 덕만은 많은 왕자와 많은 공주를 물리치고 왕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덕만에게는 당시의 왕자와 공주보다도 왕이 될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실성왕, 눌지왕, 자비왕, 지증왕, 진평왕이던, 선덕왕이던, 진지왕이던, 김춘추왕이던 어느왕이나 왕이 되기전 성골로써 왕이 되었건, 진골로써 왕이 되었건 상관없이 계급위에 있는 존재하는 성조이자 성골이다. 그러니 <왕즉성조>이다. 그렇지 않다면 왕이 일개 왕족(진골)과 동등하다는 말인가? 그러면서 김춘추시기 이후에 왕권이 강화되었다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기존 통설에 따르면 일개 왕족(진골)과 동등한 왕이 말이다.

요즘 화랑세기를 <사서>로 인정하는 자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화랑세기를 사서로 인정하는 하는 자들도 기존 통설에 벗어 나지 못하고 <성골><진골>의 환상에 빠져 있는 자들이 있다. 도대체 화랑세기를 사서로 인정하면서 성골이 진골의 상위개념이고, 폐위되면 그의 후손은 족강이 되어 진골이 된다거나, 궁을 벗어나면 성골의 지위를 잃게 된다는 황당한 설을 내 놓기도 한다. 화랑세기는 성골.진골을 나누지 않고 있다.

용수.용춘을 두고 춘추가 전면에?

300

화백회의에 난입한 춘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춘추의 실질적인 생부인 용춘을 두고, 춘추의 생부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다음 2009/09/21 - [역사이야기] - 천명만 알 수 있는 김춘추의 생부(용수?,용춘?)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춘추가 10살로 전면에 등장해서 덕만과 왕위다툼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무지의 소산이다. 용수와 용춘은 612~3년 전후인 드라마 시점에서 누구도 누리지 못한 권력을 쥐고 있다. 그런데 젖비린내나는 춘추가 그의 아버지를 뒤로 하고 전면에서 "내가 왕이로 소이다"라거나 "비담을 죽여버리겠다"고 공언을 한다는 생각이 끔찍하다.

또한, 당시 왕위 승계서열상 춘추는 열손가락으로 치면 등위권에도 들지 못한다. 2진법으로 샌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2진법으로 숫자를 샌다면 10손가락은 1024개까지 숫자를 샐수 있다) 한마디로 춘추가 화백회의 중간에 등장한다는 발상자체가 이승만 정권때 이명박이나 전두환이나 박정희가 나와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무슨 선거고 투표냐? 내가 왕(대통령)이라고  하는 꼬라지와 같다.

물론, 드라마를 아무 생각없이 보면 극적인것 처럼 보이긴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가 미실을 통해서 공언한것 처럼 "백성(시청자)는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을 뿐만 아니고 버거워 할 뿐이다." 또한 마약에 취한것 처럼 사실을 알려주면 어린아이 처럼 오히려 성질부터 부린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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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potatobook.tistory.com/ BlogIcon 감자꿈 2009.10.08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으면서도 복잡한 구성을 매번 이렇게 정리하시는 걸 보면
    항상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저는 추천과 댓글 3위 안에 들었습니다. ^^

  3. 목만치 2009.10.08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학도가 되려고 생각 중이였다가 요새 고민중이였는데 요새 매일 님의 글을 보고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서 이제는 꼭 하고 싶어졌어요 고마워요 ㅋ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8 12: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앗 배고픈 직종을 선택하시려 하다니 제가 님의 밥줄을 끊어 놓는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그냥 취미생활로 하시는게 좋을 것 같은데요.. 아니면 제2전공정도로..

      추천은 계속 하고 있지요? ㅋㅋ
      글쓴이인 저는 추천이 밥입니당.. ㅋㅋㅋ

  4.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10.08 1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춘추가 골품제도를 부정하는 말을 하길래 그 골품때문에 머리가 아프더라구요~
    갓쉰동님 글 읽고 골품 조금 정리하고 갑니다. ^^

  5.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BlogIcon 모과 2009.10.08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잊었던 신라의 역사를 상기 시켜 주었습니다.
    왕족(진골) ...ㅎㅎ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8 1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양반, 왕족이렇게 구분한 것과 같지요. 조선시대에..
      조선이 하늘에서 떨어진 용가라 통뼈가 아니기 때문에 신라부터 있었던 계급적인 구성을 이어 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도 자신의 조상이 뼈(골)이 있는 집안이는 말이 전해지고 있었던거지요. 요런것이 신라의 흔적이지요..

  6. Favicon of https://leeesann.tistory.com BlogIcon pennpenn 2009.10.08 15: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고~
    골치아프네요~
    이를 어찌 정리하셨는지 대단한 역사학자이십니다.

  7. 상록수 2009.10.08 16: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시원한 글..재미 있습니다.
    춘추가 덕만과 싸워서 왕이 되겠다하니 너무 한다 싶더군요.
    드라마가 나이를 초월한것이~~...
    좋은 글 고맙습니당.

  8. Favicon of https://sapientis.tistory.com BlogIcon 백두 대간 2009.10.08 17: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쓰예요, 나이쓰~~~ ^^

  9. lethe4me 2009.10.08 1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고, 새로운 이야기였습니다..^^
    결국 1골과 2골의 이름보다 진골과 성골의 이름을 택하셨네요.

    화랑세기를 사서로 어느정도로만 인정하신다면,
    약간은 화랑세기와는 벗어나는 듯,
    하지만, 유일하게 믿을 근거로 가지는 삼국사기와 유사로 판단할땐,
    설득력있고, 재미있는 이야기인거 같아요..^^

    (진골, 성골이 없었다는 점에서는 절대 공감합니다..^^)

    진골 성골을 이야기하면서 꼭나와야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죠..^^
    모계와 부계..
    그것도 한번 정리해주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8 22: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도 지롤을 해서용. ㅋㅋ 이미 알고 있는 단어를 쓴것이고.. 표안에 친절히 그려 넣었지용.. 왕을 계급에 추가하는 멍청이들이 있는데 어쩌겠어용..

  10. 아.. 헷갈려요 2009.10.08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교에서 배운 국사랑 달라서 헷갈려요.
    학교에선 춘추가 왕이 된 이후로, 귀족들이 서로 왕이 되려고 왕을 죽이고,
    왕이 그 후로 자주 교체되었는데.. 그 이유가 진골이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춘추가 보여줌으로서
    이제껏 성골이 왕이었기에 그저 바라만 봐야했던 진골귀족들이 자기들이 왕이 되려고 음모를 꾸며서,
    왕이 자주 교체되었다는데... 그럼 그건 그 국사선생님이 잘못가르쳐 준건가요?
    김춘추 이후로 왕이 자주 교체된 것은 신라 말기라서 그랬던 건가요?
    가르쳐주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8 2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연구하지 않고, 남의 글을 그냥 외워서 그래용.. 선생이..
      외부의 적이 없으면 반란이 자주 일어나지요.. 배부르면 딴생각을 하듯이.. 투쟁의 대상이 내부로 향하는게 일반적이닌까요..

      춘추 이후 왕이 자주 바뀌지도 않았어용..
      춘추이후 654년 26(?) 인데.. 약 935년 망할때까지.. 평균년으로 하면 약 15년 정도는 되는데용.. 말왕과 최소의 시작왕을 빼면 적은 년수는 아니지요.. 오히려 이전왕으 재위기간이 비정상적이라고 보시는게..

  11. Favicon of http://smallstory.tistory.com BlogIcon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10.08 23: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갓쉰동 님이시네요. 잘 보고 갑니다.
    !

  12. Favicon of http://myeurope.tistory.com BlogIcon 유리-MyEurope 2009.10.09 0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친혼이 저 시대 전까지 있었다면...유럽보다는 일찍 멈춘 결과가 되는건가요?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9 1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4촌밖은 아직도 결혼하지 않나요?

      고려시대까지는 근친혼은 계속 지속된것으로 생각되며..
      그당시에도 근친혼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던것 같습니당.. 진흥왕도 그렇고.. 양도도 그렇고,..

  13. 이리닷컴 2009.10.09 1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란 소통하는게 역사라고 배웠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그 소통은 아무래도 당시의 사람들의 이해력과 원하는 포인트를 맞혀가는게 그게 현재로서의
    역사적 사실인 즉 성골 진골 6두품 5두품 이렇게 구분 지었지 않나 생각듭니다

  14. 갓쉰동 최고 2009.10.09 2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역사학도를 꿈꾸지만 님의 역사학과를 보는 시선은 불편합니다.
    밥벌이가 힘든 학문이니 취미로 삼거나 제2의 전공으로 삼아라.
    물론 경제적으로 봤을때 역사학과나 철학과같은 기초학문을 바탕으로하는 학과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적성에 맞지않는 다른학과를 선택하고 전공하는것도 옳지않습니다.
    뿐만아니라 님의 논리대로 경제성을 중시한다면 우리나라에는 법학 의학 경영학 등 일부 실용학문의 전공자들만히 가득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초학문은 부실하게 되며 님과같은 분들이 참고할 연구서적을 비롯한 자료들도 부족해 지고 나아가 우리나라의 학문의 근본이 흔들리겠죠.
    경제성에 근거해서 다른사람의 전공을 비난하는것은 옳지 않다고봅니다. 그리고 오히려 님과같은 분들의 포스팅은 자칫 상아탑에만 갇혀있다고 생각될수있는 기초학문들의 실용화를 위해서 좋은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 건 밥을 먹고살아야 해요.. 늘 배고픈 학문이라고 말을 하잖아요. 그들 스스로.. 그것도 그 학계에서는 제일 잘나가는 사람들 조차 그렇다면 대다수는 정말 힘들어요.. 학계라도 진출하는 극히 일부조차도요..

      요즘은 모든 학문이 서로 영향을 주고, 믹스되고 있어용.. 의학과 사학, 고고학, 천문학, 등과도 교류가 되고요. 물리학과. 재료학이 역사와 연관이되기도 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겁니다.. 그러니 정통역사학을 연구하지 않지 않더라도 충분히 역사와 연관해서 연구를 할수 있습니다. 그것도 학문을 하는 사람이야기고,, 모두 그 학과를 전공한다고 해서. 그 곳에서 밥벌이는 못해요.. 그점을 간과하지 말라는 뜻이였습니다.

      그러니 제2 전공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각오가 되어 있다면 제가 2전공을 하라고 해도, 전공을 할겁니다. 다만, 다른식으로 역사를 연구할 수 도 있는 방법이 있다는 선택을 주는 겁니다.



      님이 예로 제시한 법학이나 의학이나 경영학도 역사를 연구할 수는 있다는 거지요. 온리 역사학이 아니여도 된다는 뜻입니다..

  15. Favicon of http://f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09 2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님은 단순히 역사를 취미의 하나로 생각합니다만 저는 역사를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닌 경제 정치 과학 예술등 전분야에 뿌리이며 나아가 우리사회를 바꿀수도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삼국유사나 사기의 글귀를 풀어 옛날에 이렜었다가 아닌 진짜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나아가 미래를 계획하는 또 모든 학문과 사회의 뿌리로서의 역할 말입니다.

  16. 갓쉰동 최고 2009.10.10 1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요즘은 골품제자체를 진성골제로 나누어서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교과서의 골품제 다음이 골품제 설명에서는요. 관한 네용입니다.
    신라에는 혈연에 따라 사회적 제약이 가해지는 골품제도가 있었다. 골품은 신라사회에서 개인의 사회활동과 정치활동의 범위까지 엄격히 제한하였다. 이하 중략 - 국사교과서 197~198쪽

    이처럼 골품제를 설명할때 보편적으로는 신분제를 뜻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56쪽에 있는 태종무열왕은 최초의 진골왕으로의 부분은 왕실내의 진 성골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서 주장하는 느낌이 드네요.

    그리고 화백회의의 경우 지금의 의회제가 아닌 초기 영국식 의회제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귀족 중심에 왕의 탄핵권도 갖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위엣분이 들으신 수업내용은 왕이 자주 바뀌었다기 보다는 내물왕계와 무열왕계의 왕위 다툼이 치열했다는 설명일겁니다. 사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골과 품을 나눠서 봅니당.. 물론,골이 우선하지만요.. 그거야 지금도 마찬가지지요.. 지금도 계급사회로 가고 있거든요..

  1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8. Favicon of http://litorowley.typepad.com/blog/2012/04/greatest-in-survival-products-and-s..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arizona 2012.11.01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9. Favicon of http://patapete.wordpress.com/tag/cats/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canada 2012.11.06 1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자 아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춘추가 왕이 되기전에 왕의 우선 순위는 알천이였다

  20. Favicon of http://stephenthedog.com/?m=200707 BlogIcon underground electric dog fence 2012.12.22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 기능을 갖춘 스크린 캡쳐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프로그램 없이도 웹페이지를 가장 빠르

  21. Favicon of http://survivalfoods.livejournal.com/ BlogIcon family food survival kits 2013.01.02 16: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는 삼한일통이전과 이후로 나누기도 한다. 성골과 진골을 나누는 일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천명(박예진)

그동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만을 토대로 천명과 덕만이 어머니가 다른 이유를 증명하였다.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천명은 덕만과 같은 어머니 일지라도 천명이 나이가 많고, 덕만은 나이가 어린 동생이라고 주장했었다. 이제 천명은 절대로 마야의 소생이 아님을 증명하고, 마지막 가능성을 버릴려고 한다.

일단, 천명의 나이를 정확히는 알수는 없지만, 천명의 아들인 춘추가 603년 생이라는 사실은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천명의 나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천명이 13~15세에 용수(용춘)에게 시집을 가서 603년 춘추를 낳았다면, 천명은 587~589년 생이다.

그럼 천명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살펴 볼 차례이다. 천명의 아버지는 진평왕이다. 진평왕은 13세인 579년 진지왕이 폐위되고, 26대 신라국왕에 등극했다. 그렇다면 진평왕은 567년 생이 된다. 만약, 마야가 천명의 어머니라는 가정하에서 마야의 나이를 유추해 보자,

마야가 진평왕과 같이 등극시나 등국후 바로 왕후가 되었다면, 진평과 나이가 비슷할 것이다. 신라에는 13세 이전에 결혼하는 것 보다 더 빠르게 결혼을 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는다. 또한, 민며느리제도가 꼭 동옥저만의 풍습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안의 어린 신부를 맞아 키워서 정식 며느리로 삼는 경우가 조선시대까지도 비일비재 했었다. 진위를 알 수 없는 화랑세기에는 12세 풍월주 보리는 13세에 결혼을 했지만, 아내인 보룡(만호/숙태자)는 7살에 시집을 갔다.  또한, 일제시기 여성를 성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기위해서 어린신부들이 일찍이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성만이 알 수 있는 진평/마야와 천명/덕만의 생리학적 접근

그렇다면 마야는 진평왕과 같은 나이로 유추해 보자.


진평,용춘,천명,춘추의 생몰년 비교와 마야,천명,덕만 나이 추정


진평왕은 천명을 19~23살 정도에 낳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시 시대상황으로 보면 조금 늦은 나이때 천명을 낳은  것이다. 그렇다면 천명위로 진평왕에게 몇몇의 자식이 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이제 천명의 주변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 하고, 이전에 추적한대로 덕만의 출생시기는 632년 15~18세에서 정도로 추측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632년 등극과 동시에 대신인 을제에 국정전반을 관할하게 하여, 일종의 을제 섭정기간이 지나고, 634년 선덕왕 2년 음갈문왕과 결혼을 하고, 진평왕이 사용하던 <건복>이란 연호를 <인평>으로 바꾸면서, 진평왕의 유흔통치를 끝내고, 직접통치의 길을 나섰음을 신라에 천명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덕만은 615년(18세등극시)생에서 618년(15세등극시)생 사이가 된다. 

왜 덕만은 어린나이에 왕이 될 수 밖에 없는가? 이와 관련된 기사는 다음 목록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럼 천명과 덕만의 기록을 비교해 보자, 천명은 585~589년생이고, 덕만은 615~618년 생이다. 이들간에 나이차는 최소 27살에서 많게는 34살 차이가 난다.

615년에 덕만의 아버지 진평(567년생)과 어머니 마야는 567년생이니 이들이 덕만을 낳을때 나이는 49~52살이 된다. 아버지 진평으로써도 늦은 나이이기도 하지만, 남자라는 동물은 문지방 넘을 힘만 있다면 얼라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문지방 넘을 힘이 없고,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애를 낳을 수 있다.

덕만(이요원)

하지만 여성인 어머니 마야의 나이는 여성의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이례적이지 않는가? 더 나아가 덕만이 618년 생이라면 마야의 나이는 52세가 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분명히 덕만는 마야의 소생이라고 했다.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은 마야는 진평왕이 679년 왕위에 있을때 왕후가 아니라는 반증이지 않을까? 물론, 현재 기네스 북에 등재 된 최고령 자연임신과 출산은 59세이다. 현재 의료가 발달된 혜택을 충분히 보고 있는 영국의 사례이다. 한국의 사례는 52세가 최고령 출산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현대 여성의 폐경기는 45~50세 전후로 알려졌다. 과거 신라사회에서도 여성의 폐경기가 44~52세 정도였을까? 마야가 아주 늙은 나이때 덕만을 낳았을 수도 있다. 이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가 된다. 차라리 천명이 덕만을 낳았다면 믿겠지만, 마야가 20전후에 천명을 낳고, 49~52세에 덕만을 낳았다고 한다면 한번은 의심해 봐야 한다. 또한, 마야가 18세~19세에 천명을 첫딸로 낳았다라고 생각한다면, 신라의 결혼 풍습을 알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2007년 기준 통계청 자료, 여성 년령대별 합계출산율표


위의 표는 2007년 전국의 가임여성15~49세의 합계출산율을 반영한 것이다. 45~49세 여성은 이처럼 현대의학과 영양이 충분히 공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1.25명의 0.2%만을 담당하고 있다. 그냥 표로 보았을때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를 그림으로 본다면 어찌될까?

2007년 통계청자료, 여성 연령대별 합계출산율

삼국사기 기록대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여서 "천명은 진평왕의 딸이고, 덕만은 진평왕과 마야의 장녀이다"를  받아 들인다면, 합리적으로 천명은 진평왕 초년에 왕비인지 후비인지 이름을 알 수 없는 비에게서 낳았고, 덕만은 진평왕 초년의 왕비가 죽거나, 늙어서 아들을 낳기 위해서 들은 후비였거나, 정비로 받아들이고 덕만을 낳았다고 보는게 합리적이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기록대로 마야의 나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진평과 마야의 장녀인 덕만을 615~8년경 낳았다고 보는게 합리적일까요? 아니면 기록되지 않는 천명의 어머니까지도 마야가 되어 588년경 천명을 낳고, 615~8년경인 49~52살 정도에 덕만을 낳아다고 보십니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는 다르게 화랑세기는 "천명과 덕만의 모후를 마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박창화가 1930년대에 창작한 역사소설이 될수 밖에 없는 핵심적인 키가 됩니다. 마야가 천명과 덕만의 모후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생리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하다, 그러니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박창화의 창작 역사소설이다. 라고 결론을 낼 수도 있습니다.

마야(윤유선)

하지만, 여기에는 약간의 트릭이 숨어 있습니다. 마야를 진평왕과 같은 나이로 추측했다는 겁니다. 이 함정에 벗어 난다면 쉽게 생리학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진평은 13세에 왕위에 등극하고 18세 친정체제를 구축하면서 꽃다운 13세 전후의 복승/송화(지소/영실)의 딸, 마야를 왕비로 맞이 했다면 당연히 마야가 더 어렸을 수도 있습니다. 진흥왕은 7살에 왕이 되었는데, 화랑세기에는 진흥비인 사도(기오/흥도) 또한, 7살이였다고 합니다.

그럼 위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49~52세는 가능한 44~47세가 됩니다. 49~52세는 불가능한 나이가 되지만, 물론, 3%의 극히 낮은 분포에 해당합니다만, 44~47세는 생리학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 않습니다. 진평왕이 22살, 마야는 꽃다운 낭낭14~18세 미만에 천명을 낳았고, 44~47세 이전인 615년에 늦둥이 덕만을 낳았다. 그러니 천명은 덕만과 같이 마야의 소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단, 삼국사기의 기록을 부정했을때 라는 단서가 붙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을 신뢰한다면 덕만과 천명은 이복자매 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천명과 덕만의 모후는 마야' 라는 화랑세기를 불신할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위에서 언급을 했지만, 40대 중반에 덕만을 낳았다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해 9월 진평제는 보명과 미실을 좌우후로 삼았다. - 화랑세기 22세 풍월주 양도

화랑세기에는 마야가 진평왕 초년의 왕후가 아니였음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진평은 초년에 보명(지소/구진)과 미실(미진부/묘도)을 좌.우 왕후로 했다고 합니다. 마야가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화랑세기를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겁니다. 화랑세기는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빠지는 마약과도 같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방점을 찍어 두고, 화랑세기의 동부동모 자매간을 가능성으로 열어 두고자 합니다. 어떤것을 선택하던 덕만은 18세미만에 왕위에 올랐다는 불변입니다.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였다는 겁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왜 홍시가 홍시맛이 나는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습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봐야 아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천명을 마야의 소생으로 볼것인가 말것인가를 결정하고 삼국사기.유사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느냐 하는 거지요. 만약, 삼국사기를 불신한다면, 최소한 천명, 덕만, 마야의 관계는 화랑세기가 정확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문화.연예 카테고리 다수를 차지 하고 있는 여성들이 그 답을 줄 차례입니다. 어떠십니까?

문제의 핵심은 마야가 진평의 초기 정비라는 가정에 따른 겁니다. 만약, 마야가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고, 손승만 왕후처럼, 왕자를 생산하기 위해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천명을 낳은 생모 뒤를 이어서 왕후가 되었다면, 천명과 마야, 덕만과 천명의 관계가 아주 자연스럽게 해결이 됩니다. 또한, 천명을 대신해서 덕만이 왕위를 이을수 밖에 없는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합니다.

화랑세기에서 처럼  덕만도 천명의 양보로 진평의 뒤를 이어 27세 신라왕에 올랐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조선시대 세종이 형들의 양보(?)로 이방원(태종)의 4째 아들로 왕위를 이을 수 있습니다. 왜? 세종이 이방원의 셋째아들이 아니고 넷째 아들이냐?고 반문하는 분들 
2009/07/30 - [역사이야기] - 조선 세종, 신라 덕만, 천명의 기록 비교해 보니  기사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어짜피 천명이 덕만보다 나이가 최소한 27~34살은 많은 진평의 자매간이다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인것 같습니까? 천명과 덕만이 마야의 딸인것 같습니까? 아니면 천명과 덕만이 다른 어머니를 두었던 것 같습니까? 이 세가지 명제가 모두  참이 되기 위한 조건은 여성은 폐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리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는 아니다'. '천명은 덕만의 나이 많은 언니다'라는 명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으로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봅니다.

다만, '천명과 덕만은 마야의 딸이다'라는 화랑세기의 명제는 불가능하지만 여성의 생리학적으로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만 언급을 하겠습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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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17 06: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후. 복잡하군요. 나이가^^ 그런데 이걸 어떻게 다 정리하셨어요? 전 그냥 봐도 머리가 아픈데. 존경합니다.

  2. Favicon of http://theruth.tistory.com BlogIcon 루스(ruth) 2009.08.17 06: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엄청난 분석이신데요. 눈이 띠용~ @_@

  3.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17 07: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복잡하지만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하신 갓쉰동님 덕분에 또 새로 복습하고 갑니다. 블로그 제목은 바꾸셨는데 닉네임은 아직 안바꾸셨나봐요?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0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___^
      닉을 한꺼번에 바꿔어 버림 기존 사람들이 모르잖아요.. ㅋㅋ

      이번주내에 다음 메인에 한 두번 올라가면.. 그럴리는 없겠지만,.. ㅋㅋ

  4. Favicon of http://blog.daum.net/gnathia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8.17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대단하십니다.. ^^

  5. Favicon of http://starculture.tistory.com BlogIcon 아이러니♡ 2009.08.17 08: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야 정말 엄청난 글을 올려주셨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6. 2009.08.17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17 10: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기를 누설 하셨군요...
    이젠 왠만한 남성도 감 잡게 되었다는 ㅋ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막바지 무더위 잘 넘겨
    건강하게 지내시시는 이번주 되시길 바랍니다.

  8.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17 14: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9. Favicon of http://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17 22: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특한 분석에 한 수 배웁니다.
    갓쉰동보다 이반도 더 맘에 들고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8 08: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댓글을 달아 주시고..

      이반이 좀 부드러운 이미지 같기는 하지요? 숨어 있는 이미지는 전혀 상반되는데요.. ㅋㅋ

  10.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읽다보면 수많은 의문들이 생긴다. 그중에서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된 덕만(선덕)에 대한 의문도 수없이 많이 있다. 왜 진평왕은 덕만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을까?  덕만은 몇살때 왕위에 오른것일까? 덕만의 형제들은 누가 있을까? 덕만은 천명과 어머니가 같은 마야부인의 소생인가? 덕만은 진평의 첫번째 딸인가? 이런 의문들을 풀다 보면 정말 덕만은 남자형제들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에 이르게 된다.  


위같은 의문들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어느정도 해소를 할 수 있었다.  덕만의 기록을 추척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덕만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50대에 가까운 나이에 왕위에 절대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또한, 덕만은 천명보다 나이가 절대로 많을 수 없었다. 그러니 천명의 나이 어린 동생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천명은 덕만과 같은 마야의 소생이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다음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첫째, 덕만은 진평왕과 정비 마야의 장녀다.
둘째, 천명이 나이는 많지만, 정비인 마야의 소생은 아니다.

셋째, 천명과 덕만은 이복자매간이다.

넷째, 천명은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덕만보다 왕위승계에서 후순위다.
다섯째, 마야의 후손으로는 덕만 말고도 또다른 자매(들)이 있다.  

여섯째, 덕만은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했다.
일곱째, 덕만은 왕위를 오를때, 현재 80년생이며 한국나이 30살인 이요원보다도 어렸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의 아역역할을 한 남지현은 2009년 현재 15세이다.덕만은 실제로 632년에 15~18세 정도에 늦어도 20세 전후에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진평왕에게는 정말 남자 자식들(왕자)인 성골남자들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들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물론 덕만이 언니인 천명을 물리치고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역사이야기] - 조선 세종, 신라 덕만, 천명의 기록 비교해 보니  마야의 소생인 적장녀인 덕만이 적장녀가 아닌 언니 천명을 이기고 왕위를 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화랑세기가 언급한 것처럼 천명과 덕만이 마야의 소생이고, 천명이 나이가 많은 언니인데, 천명이 진평의 의도를 알고, 효심으로 덕만에게 순순히 물려 주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자 형제가 있었다면 어찌되었을까? 이도 덕만이 진평과 마야의 적장녀라면 일부 해결은 된다. 왕비의 소생이 아닌 후비들의 소생들이 왕위에 도전하는 행위는 반역에 해당한다.

하지만, 피터지는 왕위쟁탈전의 골육상잔이 벌어지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송고하였다.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칠숙의 반란도 적통을 이를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왕위쟁탈전의 일환이 아닐까? 

 이런 의문을 단숨에 해결해준 책이 현존하는 <화랑세기>이다. 화랑세기에는 진평왕에게는 4명의 아들들이 있었다. 그중 손씨 승만 왕후를 통해서 난 자식은 의문스런 죽음을 당하고, 승만왕후는 자신의 아들이 죽은 배후에 용수.용춘 형제가 있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용수.용춘형제는 지방을 순회하며 외유를 했어야 했다고 한다. 또다른 3명의 자식들은 덕만과 왕위 다툼에 밀려서 왕위를 이을 수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화랑세기는 또한 천명과 덕만은 마야의 소생이고, 덕만이 천명의 동생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덕만이 왕위에 오를 수 있게  된것도 천명이 아버지 진평이 덕만를 후계로 인정하자 효심이 지극한 천명이 순순히 물러 났다고 한다.

어찌되었던 그동안 상식일거라고 생각한 진평왕은 왕자가 없었다. 어쩔 수 없어서 유일한 성골 출신 여성인 '덕만이 왕위에 올랐다'가 아니고 화랑세기에 의하면 수 많은 남자 형제 3명을 물리치고 당당히 신라의 대권을 차지하여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되지 않았는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서만 보아도,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데 수 많은 난관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진평왕 말년 631년 이찬 칠숙의 난을 물리치고, 언니라고 생각되는 천명도 물리치고, [역사이야기] - 이요원보다 남지현 나이때 왕위에 오른 덕만 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성조황고:聖祖皇姑>란 성스런 조상을 둔 황제의 딸 : 아들이 있어서 장가를 보낼 나이정도에 있는 것으로 해석해도 30세전후 라는 뜻이 되지만,진평왕의 뒤를 잇기에 핏줄에 하자가 없는 정통성 있는 진평왕의 다 큰(성숙한) 자식 정도이다.<황고>의 황과 대응하여 황제(진평)의 결혼해서 어른 노릇할 정도의 나이인 성인여식이란 뜻이다.

왕족들과 귀족집단의 항복을 받아 <성조황고>라는 충성서약문을 쓰게 만들고  왕위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덕만은 이들 말고도 자신의 남자형제를 물리치고 대권을 장악했다고 화랑세기는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문은 화랑세기를 쓰게된 동기와 화랑 폐쇄된 결정적인 이유를 화랑출신의 27세 풍월주 흠돌과 26세 풍월주 진공과 흥원의 반란사건을 들고 있다. 또한, 흠돌과 흥원의 반란을 물린 친 주역도 화랑의 풍월주 출신인 김대문의 아버지 28세 풍월주 오기라고 하고 있다.
 
처음 631년 칠숙이 반란을 일으킬때 이를 진압한 것도 염장을 비롯한 화랑출신들이고, 647년 비담의 반란을 제압한 것도 화랑 출신인 유신이라고 이야기한다.

681년 흠돌과 같이 반란에 주동적으로 가담한 흥원이 진평왕의 손자라고 손들고 나선 것이다. 632년 대권경쟁에서 덕만에 밀리고, 647년 승만에게 빼앗기고, 681년 절치부심 흠돌과 진공과 함께 흥원이 '정통성회복'을 기치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흥원은 진평왕/태양공주(진흥/사도) 사이에 난 홍원의 자식이다. 그러니 덕만이 왕위를 계승할때  홍원이 생존하고 있었을 것이다. 진평왕이 고모인 태양공주와 결혼을 했다는 것은 최소한 홍원이 덕만보다는 나이가 많았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진평/태양 사이에는 홍원만이 아니고 홍원의 형인 태원도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만 태원의 소생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당대의 화랑세기에서 조차도 태원의 후손에 대한 기록이 사라지는 것이다. 또한, 태원과 홍원을 비롯한 흥원까지 누구와 결혼했는지 알 수 없다.

기록이 사라질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특별한 하자가 없이 조용히 여생을 보냈거나, 아니면 역모에 역류되었을 때 이다. 태원, 홍원의 결혼상대자와 흥원의 아내에 대한 기록이 사라진 이유는 김대문 가문이나, 춘추가문이나, 김유신 가문과 연관이 없다면 모계를 기록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

태원의 기록이 사라지는 이유는 흥원이 반란을 일으키는 681년 이전 631년 이찬 칠숙의 반란사건이나, 647년 비담의 반란 사건이나, 김춘추가 654년 알천을 물리치고, 왕위를 이을 때 연관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화랑세기를 집필한 김대문은 오기/운명(선품/보룡)의 아들이고, 자의는 (선품/보룡)의 딸이다. 자의와 오기는 이종사촌겸 고종사촌간이다. 선품(구륜/보화)은 21세 풍월주이다. 보화는 진평과 미실사이에 태어났다. 어찌되었던 김대문에게 자의는 이모가 된다. 자의가 법민(문무)의 처이니 654년 춘추가 왕위에 오를때, 태원, 홍원의 처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았을 때  정상적으로 오르지 않았다고 해도 이를 바로 기록했다고 볼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화랑세기에 의하면 덕만이 왕위에 오를때 태원,홍원(진평/태양) 형제와 보로(진평/보량:박은빈), 승만아들(진평/승만)등 남자형제들을 물리쳤다는 것이다. 덕만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처럼 성골남자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등에 떠밀리 듯 쉬이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글은 덕만이 왕이 되는 과정의 시리즈 글입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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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preciousness.tistory.com BlogIcon ♡ 아로마 ♡ 2009.08.07 06: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하~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힙합댄스 부~탁~ 해용 ^^

  2. Favicon of http://0063.tistory.com BlogIcon 카르페디엠^^* 2009.08.07 0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으로 드라마 전개가 너무 기되됩니다.^^

  3.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07 07: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진진한데요? 사실 당사자에겐 너무나 살얼음판 걷는 듯 위태롭겠지만 말이죠.
    그나저나 전 진덕여왕도 참 의문이에요
    선덕여왕은 왜 사촌 동생인 진덕여왕에게 왕위를?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7: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덕만이 634년 결혼한 상대자가 작은 아버지중 한명인 국반이라고 생각합니다..
      덕만 승만.. 덕만의 양딸이 되는 거지요.. 공식적으론 덕만의 자식이 되구요.. 왕의 딸이니 어렵지 않게 올랐지 않을까요?

      이와 관련된 포스트를 참고 하시길.. 어린나이에 왜 왕이 되었는가 시리즈 이니까요.. ^__^

  4. 임현철 2009.08.07 0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부 잘하고 갑니다.

  5. Favicon of http://starculture.tistory.com BlogIcon 아이러니♡ 2009.08.07 09: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재미있게 읽고 가요!
    앞으로 이 역사대로 드라마가 전개된다면 흥미진진할 것 같네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5: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지 자못 궁금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글은 선덕여왕의 제작자에 드리는 글이 아닌 원작에 드리는 글이고, 원작이 부실하니 계속 이상한 설정이 나올겁니다.

      앞으로 화랑세기를 인용해서 작품을 만들 소설가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거지요..

  6. Favicon of http://after32.tistory.com BlogIcon 맥주 콜~ 2009.08.07 09: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이네요. 추천 누르고 갑니다~

  7. Favicon of http://hera282.com BlogIcon hera 2009.08.07 0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너무 잘 봤습니다. 요즘 선덕여왕에 확 꽂혀서요 ㅎㅎ

  8.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07 10: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또 새로운 사실을... 공부 너무 열심히 했더니 머리아파요. 선덕여왕, 덕만아 나 좀 살리도~ ㅎㅎ

  9.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07 10: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제 소설을 추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갓순동님은 화랑세기를 어디서 읽으셨나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근데... 저는 화랑세기를 못 믿겠어요... ㅋㅋ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10. 87 2009.08.07 1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좋은정보 감사해요
    [ 가애스타일 ] 차비 나눠주기






    ////////


    안녕하세요 좋은정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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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7 1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즈음은 갓쉰동님 블로그오면..
    뿌듯 ㅎㅎㅎ
    운동하고 나중에 공부하리다 ㅎㅎㅎ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12. 진돌이네 2009.08.07 1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갓쉰동님의해박한 지식에 감탄할뿐이에요^^더불어 역사가 참 흥미로와지네요.

  13. 니에 2009.08.07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세기에 기초해서 선덕여왕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해석을 하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1가지 지적하고 넘어갈 것은 김대문이 썼다고 전해지는 '화랑세기'에 대해서 입니다.
    화랑세기는 현재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서적입니다.
    화랑세기에 나오는 내용들을 인정할 것이냐, 그렇지 않을 것이냐 문제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가 나오게 된 것은 첫번째로 발견된 경위입니다. 실전되었다고 전해지던 화랑세기는 1970년대쯤(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잊어버린^^;)개인의 저택에서 발견됩니다. 그리고 발견된 화랑세기는 진짜를 일본에서 보고 필사한 것이라는 말이 적혀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없기에 먼저 의심을 품게됩니다. 두번째로는 화랑세기에 적힌 언어문제입니다. 신라시대에 쓰여진 것이고, 그것을 그대로 필사한 것이라면 그 언어는 향찰로 표기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신라시대에 쓰이지 않았던 말이 쓰여있고 후대의 말 까지 쓰여있다는 점에서 의심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주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이 화랑세기에 나온 몇 가지 기록이 발견된 유적이나 유물과 같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전히 많은 문제를 지닌 책입니다.

    화랑세기를 너무 믿지도 그러나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인 것이죠.
    새로운 역사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화랑세기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 화랑세기의 기록이 전부 사실인지는 조금 더 연구해야 알게 될 것이지만 말이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5: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은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고 있기때문에 그에 맞추어 선덕여왕을 비판하는 겁니당..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만으로 덕만에 남자 형제가 있거나, 성골이라고 믿는 남자들이 넘치고 있다는것도 증명했지요..

      다른 역사이야기 카테고리 글도 읽어 보는 센스를..

      물론, 화랑세기는.. 영감을 주는 획기적인 작품입니다..

  14. 흠... 2009.08.07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치만 선덕이 실제 왕위에 올랐을때 나이는 적어도 50을 넘어서 물려받았다고 알고 있는데요

    필자께서는 화랑세기 라는 책과 내용을 토대로 쓰신것이니 다를수도 있겠지요

    화랑세기라...새롭네요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5: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읽어도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는데요.. 다른 시리즈 포스트 글도 읽어보는 센스를.. ^____^

      저는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고 덕만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고 증명했습니다만,,

  15. 2009.08.07 1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6.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07 17: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고 감사드립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쓸 떼 좀 더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좋았을텐데요... ㅋㅋ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7: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깔금하게 정리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김부식이..
      그런데 자료가 없었다고 하네요.

      충고는 아닌뎅.. ㅠ.ㅠ. 화랑세기는 소설소재로 무궁무진한데 제가 글재주가 없어요.. ㅠ.ㅠ. 님같은 분이 잘 쓸수 있게 터전을 만들어 드린다고 생각하면 좋을것 같아요..ㅋㅋ

  17. Favicon of https://saeyanbooks.com BlogIcon 도서출판 새얀 2009.08.07 2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글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특효약인가봅니다. 글 잘읽고 갑니다^^

  18. Favicon of http://488.nn.hn BlogIcon 건강하요 2011.03.31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희 망 /정 보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내 병은 내가 고친다

  19. Favicon of http://488.nn.hn BlogIcon 건강하요 2011.03.31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희 망 /정 보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내 병은 내가 고친다

  20.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사극 선덕여왕의 극본은 소설 선덕여왕을 원저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mbc 사극 <선덕여왕>제작팀은 국내 최초로 신라시대를 "재현했다"고 공언했다.

소설 선덕여왕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그리고 화랑세기를 근간으로 삼아 소설가의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이들 사서중 하랑세기를 근본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된다. 미실은 그 어떤 사서에서도 등장하지 않고, 유신의 첫번째 아내인 영모 또한, 다른 사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일단 성골남진의 허구를 파헤쳐 보자. 일단 많은 사람들이 성골과 진골이 있다고 믿는 관계로 이에 대한 논의는 추후 자세하게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지만, 계속된 시리즈 기사들을 읽었던 분들이라면, 글쓴이가 성골과 진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알것이다.  일단, 성골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글을 풀어갈 것이다.

<선덕여왕>에서 '성골남진'이란 용어를 차용한 것은 일연의 삼국유사 왕력편에 수록된 선덕여왕에 관련된 기록이다. 선덕여왕이 등극하게 된 이유가 '성골남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덕만이 등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삼국사기는 춘추가 진덕(승만)의 뒤를 이여 등극할때 알천을 왕위에 세우려 했지만, 알천이 거부를 하는 바람에 춘추를 '삼고초려'해서 왕위에 오르게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상투적인 말이지만, 일국의 왕위에 오르는 행위는 다 처음에 겸양를 보이는게 상례이다. 고려의 왕건도 그랬고, 조선의 이성계도 그리 했다. 알천은 예의(?) 상 거절했다가 뒤통수 맞은 것이다. 예의상 거절 하지 않는다면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에 된통 당하는 수가 있다. 정승화 게엄군 사령관이 전두환에 된통 당한것 처럼 말이다.  알천은 스스로를 알고,  지방으로 낙향하여 이름도 바꾼다. 알천은 소벌도리의 25대(?) 후손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때 '소'씨는 왕도 될만큼 거대한 세력을 꾸리고 있었나 보다. 결과적으로는 춘추의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조금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는 진덕왕 이후에 왕위가 춘추에 넘어갔으므로 이때부터 진골이 왕을 대신하게 했다고 옛기록을 들어서 인용하고 있다. 삼국유사는 한발 더 나아가  춘추가 왕위에 오르는 654년이 아닌 632년에 성골남자의 씨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엄밀이 말해서 이들 두 사서는 다른 말을 하는 것이다. 일연은 632년에 성골의 씨가 말랐다는 것이고, 김부식은 654년에도 성골이 왕위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성골이 남았음직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삼국유사의 632년 성골의 씨가 말라서 덕만이 왕위에 오를수 있었다는데 손을 들어 준것이다.
그런데 선덕여왕이 성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화랑세기>는 성골남진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미안하게도 화랑세기에는 성골, 진골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으로 구분하고 있다. 부차적으로 가야파라는 별도의 계파를 이야기하는데 가야파도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진골정통이 진골이고, 대원신통이 성골로 보이겠지만, 실제는 진골정통이 대원신통보다 높은 지위를 가지는게 화랑세기에서 보여주는 파맥분류법이다.

미실은 대원신통으로 격이 떨어진다하여 진지왕때 왕비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날려 먹었다. 그래서 진지왕을 진흥의 비이며 사사로이는 이모가 되는 사도와 짜고, 진지(금륜)를 폐하고, 동륜의 아들인 백정(진평)을 왕위 올려놓는다. 그런데 사도 역시 대원신통으로 진흥의 비가 되었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르게 화랑세기에서는 진골정통이 성골의 격을 갖추고 있으며, 대원신통이 진골의 격을 갖추고 있는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잼있는 사실은 성골 중에 성골이라는 진흥왕의 비가 대원신통인 진골이란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후손인 동륜, 금륜, 은륜, 월륜, 태양 등이 모두 대원신통이 된다. 진흥왕은 자신의 후계를 대원신통에 넘겨주려 했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진흥은 아마도 성골이 싫어던 모양이다.

아니면 진흥의 어미인 진골정통의 지소가 대원신통(진골)에 왕권을 넘겨 주려는 고도의 술책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첫번째 태자인 동륜의 아내는 만호(지소/이화랑)의 피를 이였다. 그러니 만호는 어머니 지소의 맥을 이어 진골정통이다. 예기치 않게 동륜이 개한테 물려 죽는, 개같은 경우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진골정통이 왕위를 계승 했을 것이다.

더 웃기는 상황은 동륜이 죽고, 금륜이 왕위에 올랐는데, 대원신통인 사도와 미실이 작당을 하고 대원신통인 진지를 몰아 내고 진골정통인 동륜의 아들인 진평(동륜/만호)을 왕위에 다시 올렸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어찌되었던 화랑세기는 성골/진골 별 상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고 있는 <선덕여왕>은 이때 만큼은 화랑세기가 말한 성골/진골은 개한테 주란말을 잊어 버린다. 그리고 삼국유사의 <성골남진>을 경전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왜? 성골남진이 되는가?에 대한 이유를 찾아 내야 한다. 그래서 소설 원작자가 찾아 낸것이 진평왕에게는 자녀가 여자만 있고, 덕만이 왕위에 올랐으니, 덕만과 천명에서 이유를 찾으려고 했다. 또한, 천명과 덕만을 삼국사기는 덕만이 천명의 언니라고 하지만, 화랑세기는 덕만을 천명의 동생으로 기술하고 있으니, 이를 믹스하는 방법을 찾아 내었다. 그래서 이들이 쌍둥이라면, 언니 동생이 헛갈릴 수도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데 까지 미친것이다.

그래서 나온 단어가 쌍둥이라는 설정이 되었다. 그럼 쌍둥이가 탄생이란 조건이 충족되면, 성골남진이 된다.라는 저주의 예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방아쇠효과가 되는 것이다. 쌍둥이가 태어나면, 성골은 끝이다. 물론, 천명과 덕만을 쌍둥이로 설정하는 순간, 덕만은 늙었을때 노처녀로 왕위에 올라야만 된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언니 천명과 동생 덕만을 나이차이가 많은 듯하게 기술하고 있다. 마야가 늦게 얻은 자식처럼 말이다. 

사실 이 단어만 가지고도 백번 천번 반박할 자료가 넘친다. 일례만 하나 든다면 소지(비처)왕이 죽고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비처의 6촌 동생인 지증이 왕위를 이었다. 쌍둥이가 태어나지 않아도 왕의 남자씨는 마른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물론, 쌍둥이가 태어나도 왕의씨가 마를 수는 있다. 문제는 비처의 6촌동생인 지증왕이 성골로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왕의 씨가 마르던 말던 성골은 있는 것이다. 사촌도 아니고 6촌에서 성골을 찾아 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진평왕때는 지증왕처럼 6촌동생 성골남자가 없었을까? 천명과 덕만이 쌍둥이로 태어나는 순간, 그 일족은 남자를 생산하지 못하고, 죽어 자빠지는 저주의 죽음의 바이러스 굿판이 벌어진 것인가? 태어나도 딸들만 양산한 것인가?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덕만을 이어 연속으로 승만이 여성으로 왕위를 계승했으니 말이다.
 

진평의 비들


지금까지 위에서 하는 말들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성골남진을 무너트린다면 원인균인 어출쌍생도 무너지는 것이다.  선덕여왕이 성경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진평왕에게는 마야와 승만을 제외하고도 7명이 후비가 있고, 승만, 보량(박은빈), 태양 이들사이에 최소한 4명의 성골왕자를 두고 있다. 

어릴때 죽은  승만후의 자식을 빼고도, 3명의 장성한 성골 아들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3명이 장성했는지는 검증하지 못했다. 추후 검증할 생각이지만, 진흥이 7살에 왕위에 올랐으니, 나이는 상관이 없을 것이다.


진평의 비와 자손들


한마디로 소설 선덕여왕은 화랑세기를 재대로 읽어본적이 한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진평에게 수없이 많은 비들과 왕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고, 미실과 진평사이에 태어난 보화공주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하니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이란 헛구호를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있지 않는가? 귀에 딱지가 붙을 만큼, 매회마다 최소한 세네번은 들은 것 같다. 

성골은 없냐구?

그렇다면 성골은 없다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성골은 당대 왕의 피를 이은 왕자.공주가 성골인 것이다. 화랑세기를 사실이라고 믿는다면, 또는 화랑세기를 믿지는 않지만, 화랑세기를 원전으로 삼았다면, '어출쌍생 성골남진'이란 상상력은 발휘안했을 것이다. 그럼 진평왕에게는 남자 후손이 없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보랑(보종/양명)사이에는 '보로'란 아들을 두고,태양공주(진흥/사도)사이에는 태원과 홍원을 두고 있다.  

화랑세기는 '성골,진골은 개한테나 주라'고 주구장창이야기를 하는데, <화랑세기>를 당대의 기록이라고 믿는 사람들 다수는 성골.진골은 있다고 주구장창 이야기를 한다. 신라사의 가장 잘못된 연구결과가 성골.진골이 있다는 환상이다. 또하나는 화랑에 관한 환상이였다. 사실 화랑세기는 성골.진골, 화랑의 환상을 깨는 책이다.


일본속담에 "100번 계속 거짓말을 하면, 거짓말도 진실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고, 서양 속담에는 "거짓말도 크게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야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써먹는 대국민 홍보(세뇌)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론을 장악하려는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면, 더 미가 있는게 극이다. 지금까지 쓴글들은 <알보사>, <알보재사>의 일환이다.

인명간에 약간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잼있게 읽었다는 분이나, 새로운 해석이라는 분이나, 잘 모르겠지만, 그럴듯하다는 분이나, 나와 생각이 다르지만,  다른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은 글쓴이의 성의를 봐서 글 읽은 값으로 숫자가 써있는 손가락 모양의
view on을 크릭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실 이 글은 그동안 공부한 것을 쏟아 내는 글입니다. 그저 한두시간을 생각하고 쓴글이 아닙니다. 쓰는데 만 몇 시간을 허비해서 쓴글 입니다. 로그인 하지 않고도 추천할 수 있습니다. 댓글도 남겨주시면 더더욱 ㄳ 하겠습니다.. ^___^;;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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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pientis.tistory.com BlogIcon 백두대간 2009.08.06 1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는 또 무슨 죄가 있어서요 ㅎㅎㅎ
    개도 안 물어갈 것 같은데요? ^^

  2. 글쎄요 2009.08.06 1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요 어출쌍생 성골남진
    매회마다 자주나오기는 합니다 .


    역사를 무시하자는건 아니지만
    지금 방영되는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는
    최소 80%는 픽션입니다

    작가라는 사람이 대사를 쓰고
    연기자가 연기를 하고
    시청자가 즐겁게 보면 되는 것을요

    물론 그것을 역사라 여기고 믿는 사람도 있겠지만
    관심을 가지고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며 이러한 관점도 있구나
    라고 느껴주면 되는거죠

    매 사극들이 붐을 일으킬때마다
    원 역사와는 다르다 말하며
    따지고 들면
    드라마는 사실상 드라마가 아니라
    역사다큐가 되어야겠지요

    사실로간다면
    덕만과 을제가 식을올려야하는데
    그건 드라마 상으로는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드라마는 엄연히 픽션이며
    특히나 사극으로 역사공부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진 않겠죠


    님의 글내용은 다 맞는 말씀입니다만

    픽션이 반을 넘는 드라마상에서의
    갈등구조를 일으키며 재미를 불어넣는 소재인
    어출쌍생 성골남진을 개나줘버리라면
    그저 고서도로 충분히 확인할수있는
    역사의 재현으로 밋밋한 드라마가되겠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6: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작가는 대사만 쓰는게 아니고, 인과관계도 살핍니당..
      오히려 스텍타클한 드라마가 될수도 있다는 말을 하는건데용..ㅠ.ㅠ.

  3.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06 19: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출쌍생 성골남진...이젠 무슨 주문처럼 외울 판이라는..ㅋㅋ
    그나저나 ,
    신라시대의 전통문화를 좀더 전해주었더라면 훨씬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할 터인데 그 점이 아쉬워요.
    적어도 향가 몇 수라도...^^
    아니면 제천의식을 좀더....ㅠㅠ

    쓸데없이 질질 짜는 몇몇 배우들의 단독 컷이나 유신의 수련 장면 말고 말이죠.

    역사 다큐가 아니다는 분도 계시지만, 그 허구 속에서 그 시대만의 문화를 전해줄 수 있다면 더욱 의미있는 드라마이지 않겠어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6: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좀더 치밀한 드라마를 보고 싶은데.. 원작이 부실하면 어쩔수 없지요.. 그래도 잼있어용.. ㅋㅋ

      부실한 원작을 잼있게 만드는것도 제작팀의 능력이지요..

      사실 제작팀이 역사를 알겠습니까? 원작가가 알아야징..
      화면을 어떻게 구성하고 카메라워크는 어떻게 할까. 대사처리와 표정연기는..등을 신경쓰는게 제작팀이 할일이고..

      좀더 치밀한 구성을 하였으면 하는 바람정도지요.. ㅋㅋ

  4. ㅁㅁ 2009.08.06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벌도리의 성은 최씨입니다. 최씨의 시조가 소벌도리죠.

  5.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6 19: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좀 헷 갈리는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일단 작성 연대가 달라
    다른 부분이 이해가 가지만
    소설 선덕여왕은 화랑세기를 제대로 읽어본적이
    한번도 없다는 사실이다에 뭔가...
    읽어 봤지만 다른 ... 뭐 그런 뜻 아닌가 하는데...
    아닌가요 ㅎㅎㅎ

    어출쌍생, 성골남진은 완벽하게 이해하고 갑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이니 그렇고 ㅎㅎ)

    그나저나
    개나주라에 ㅠ.ㅠ
    갓쉰동님은 개는 자연에 돌려보내라 하셨는데
    저는 그리도 못합니다.
    이쁜 제 강쥐 당뇨오고 당뇨우울증으로 고생할때
    제 우울증을 치료한 제 딸인데 ㅠ.ㅠ
    뜬금없는 개나주라 ㅠ.ㅠ
    뭔 죄가 있다고 ㅎㅎㅎ
    (오늘은 강쥐 이야기 때문에 머리가
    복잡한 모양입니다. 나중에 다시 공부 ㅎㅎㅎ)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6: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설 원작자가 읽어는 봤는데.. 제대로 못읽었다는 뜻.. ㅋㅋ

      예상 댓글 중에 하나입니당..

      따님께, 심심한 위로를 보내 드립니다.. ㅠㅠ. ㅋㅋ;;;;

      그냥 강쥐는 강쥐이야기로.. ㅋㅋ

  6. 제가알기로는.. 2009.08.06 2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벌도리의 성이 소씨가 아닌걸로 압니다;
    그리고 알천이 소씨의 시조가 된 이유는 지방으로 낙향한뒤에 성을 소씨로 바꿔서라고 알고있습니다만...

  7. Favicon of http://umean2me.egloos.com/ BlogIcon elly 2009.08.07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천랑은 진주소씨의 시조라고 합니다.
    진주로 낙향하고 성씨를 소씨로 했는지, 원래 소씨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주 소씨의 시조라네요. 이름도 알천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바꾸었는데
    이유가 대를 이을 손자를 보아 너무 기쁜 나머지 평생을 써오던 이름을 버리고 개명까지 하셨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도 성골/진골은 그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냥 골품을 가지고 있는 자들 이라고 두루뭉실하게 표현을 하죠.
    남자나 여자 모두에게 골품을 수여하는데, 남자들은 보통 나라에 큰 업적을 세운 경우 골품을 수여하였고,
    여자들은 대부분이 외국(백제, 고구려, 가야, 부여 등..)에서 국가간의 화친을 위해 보내온 공주들이 왕을 모셔 아이를 많이 낳거나, 그들의 후손(대부분은 딸들)이 왕을 모셔 아이를 많이 낳을경우 주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봐도 성골 진골이라는 단어는 없더라구요.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6: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경으로 바꾸었다고 하네요.. 이유가 며느리가 자식을 못낳았는데 소벌도리가 꿈에 나타나 진주로 가면, 후손을 볼수 있다고 햇다네요.. 그래서 그후 이름을 '경'으로 했다는군요..

      냅.. 신라라도 별다르겠습니까? 왕손이 널리 퍼져야 한다는데는 인간의 말초적 본능이지요.. 자신들을 소수로 고립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거든요..

      냅.. 진골은 수없이 나옴.. 잡기엔.. 본기엔 진덕왕조에 한번 나오지요..

  8. 지나가다 2009.08.07 1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쇄뇌가 아니라 '세뇌'
    몇시간을 허비하셨다는 말은 시간을 헛되이 날리셨다는 뜻이죠?^^

  9. 치즈 2009.08.28 2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도 이글 쓴분보다는 선덕여왕 작가가 화랑세기를 훨씬 세밀하게 읽었을거에요..
    어떤 3류 작가라도 자료수집은 직업작가가 아닌 일반인들보다 훨씬 치밀하게 하니까요..
    하지만 논픽션이 아닌 팩션을 쓰는 작가는 자기가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사료를 이용할 뿐
    일부러 사료에 치밀하게 들어맞는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글쓴분처럼 이사람은 화랑세기를 제대로 읽지 않았구나! 제대로 읽었으면 역사에 걸맞는 치밀한 스토리가 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분들도 나오는거겠지요..

    물론 이 글은 '선덕여왕의 이러한 부분은 허구이고 실제 사료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정도를 알려주는 글로는 아주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사에 가장 가까우나 사대주의적 사관에 치우친 삼국사기, 설화나 민담을 대거 차용하는 삼국유사, 진위면에 있어서 많은 시비가 가리는 화랑세기 이 세가지 사료 모두 세부적인면에서 부족함이 존재하기에 원사료라 해서 언제나 진실을 알려주는것은 아니라는것을 알고 있는 선에서 여기에 또다른 허구를 섞은 선덕여왕을 즐기는 태도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좋은 분문 내용 중에서 작가운운하는부분만은 퇴고해보심이 어떨지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8 2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작가가 저보다 많이 봤을거라는데 동의가 안되는데요..
      작가는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용..

      자료조사도 부실하고.. 그 작은 사료조차 분석을 못햇다면.. 문제가 있지 않겠어요?

  10. ? 2009.10.28 0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원신통이 진골정통보다 아래라는 말은 이해가 잘 가지 않네요. 대원신통에서도 왕비를 많이 배출했는데...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29 00: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왕비를 배출했다고 성골이 되지는 않지요. 왕비와 왕비의 아비는 몰라동 일반 통설에 의함그렇구요..

      저의 견해는 당대왕과 그의 자제와 후손만이 성골로 보는 입장이라서용..

  11.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삼국사기는 덕만을 진평왕의 장녀이며, 마야부인의 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삼국사기의 기록에 대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거나 이설이 있음을 곧잘 지적하던 일연은 진평왕의 장녀이며, 마야부인의 딸이라는데 이의제기하지 않고 있다.


화랑세기의 무서움은 기존 사서의 빈틈을 칼처럼 파고 들고 있다. 그동안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거나, 또는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한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선덕여왕이 덕만에 관한 기록에서도 화랑세기의 위력은 발휘된다.

그런데 뜸금없이 화랑세기는 무슨 소리, 덕만은 진평왕의 딸인것은 분명하고, 마야부인의 딸인것은 맞지만, 천명이 맏이고, 덕만은 천명의 동생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화랑세기도 덕만이 천명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말하지 않고 있다, 화랑세기는 무엇을 근거로 덕만이 천명의 동생이라고 했을까? 그건 화랑세기에 맡기도록 하자. 언젠가는 화랑세기를 심층 분석할 때가 올것이다.


사실 덕만의 기록을 심층분석하고 있는 이유도 현존 화랑세기의 진위논쟁에 뛰어들려는 의도도 어느정도 가지고 있다.
 
글쓴이는 그동안 덕만은 진평왕과 마야부인 사이에 태어났지만, 천명은 마야의 소생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더나아가 덕만이 기존에 알고 있던 늙었을때 왕위에 오르지 않고, 극히 젊은 나이때 즉위했다는  여러 증거를 제시하고, 이를 증명하였다.

또하나, 덕만과 천명이 다른 출자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이전글에서 흘렸다.

덕만이 가지고 있는 남성스런 이름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신라 당시에도 여성은 여성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덕만의 어미인, 마야, 진평의 어미인 만호(이것도 약간의 중성을 넘어 남성성이 보이긴한다.) 지소, 지조, 선혜왕후, 보희,문희 등 그 나름대로 여성성이 보이지만, 뜸금없이 덕만이라니, 덕만이 가지고, 있는 뜻은 결코 나쁜 뜻은 아니다. 덕을 널리 퍼트리고 길게 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전 글 [역사이야기] - 천명이 말한 덕만의 촌(?)스런 이름의 이유 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덕만의 이름이 가지는 남성성

덕만이 천명의 나이어린 이복동생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또 하나 있는데, 진평왕이 아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아들은 없고 딸만 있는 집에서는 여자 아이의 이름에 남자의 이름을 붙혀 다음 출생자가 남자이길 소망하는 이름을 짓기고 한다. 또한, 여자이름 중에 끝순이, '말희', '끝네', '말자'라는 이름은 대부분 아이를 더 이상 낳지 말자는 뜻도 있지만, 여자 아이는 그만 낳자란 뜻을 포함하고, 삼신할미에게 다음은 아들을 점지해달라는 기원이기도 하다.

이름에서도 덕만은 위로 많은 언니들을 두었음직하지 않는가? 덕이 있으라는 뜻도 되겠지만, 태어나자 마자, 왕실에 아들들로 번창할 덕을 빌었음 직한 이름이니 말이다.

 
만약, 덕만이 천명보다 언니라면 진평왕의 첫번째 공주의 이름을 '덕만'이란 남성의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여쁜 공주의 이름에 덕만이라니, 다음에 왕자를 생산을 염원하기 위해서 '덕만'이라고 지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만만의 콩떡이 된다. 진평은 왕이다. 언제든지 왕자를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진평왕 초년에 덕만의 이름을 지었다면 진평왕의 머리가 좀 이상스러운 것이다.

 
덕만의 이름은 진평왕과 왕실의 절실한 적통을 이을 왕자를 바라는 이름이다. 또한, 마야도 제일 왕후는 아닌 것이다.  

덕만과 천명이 이복자매라는 또 다른 증거 (세종과 그의 형 경녕군)

또하나,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려고 한다. 우리가 너무나 잘알고 있는 조선시대 세종에 관한 기록이다. 세종을 우리는 이방원의 3번째 아들로 알고 있다. 그리고 세종이 즉위하게된 배경도 너무나 잘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과연 세종은 태종의 3번째 아들일까? 아니라고 한다면 총맞을 것이다. 그런데 세종은 태종(이방원)의 3번째 아들이 아니다.


일단, 세종(이도)을 태종(이방원)의 3째아들로 기록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즉위 초년 세종이 세계를 기록한 내용을 살펴 보자.

세종 장헌 영문 예무 인성 명효 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
의 휘는 도(祹)요, 자는 원정(元正)이니, 태종 공정 대왕(太宗恭定大王)세째 아들이요, 어머니는 원경 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이다. - 조선왕조 실록 세종


이기록만 있다면, 세종은 태종의 3째 아들 같지 않는가? 그리고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라고 기록하고 있다.

녕군의 휘는 비(裶)이고 자는 정숙(正叔), 시호는 제간(齊簡)이다. 1395년(태조 4) 12월 13일 개성의 정안군(후의 태종)의 사저에서 효빈 김씨의 소생으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관후하며 효성과 우애가 깊었다. - 전주이씨 대동종보 경녕군

드라마 대왕세종을 본 사람은 이방원의 또다른 아들 경녕군이란 이름을 들어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태종의 아들이고, 후비 효빈 김씨 소생이다. 그런데 경녕군은 1397년생 세종(이도)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러니 경녕군은 세종보다 형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머니는 효빈김씨로 세종과는 다른 후비 효빈 김씨라는 사실 뿐이다. 경녕군과 충녕군은 서로 출신성분 자체가 다르다.


그럼, 태종의 셋째아들은 누구일까? 세종일까? 아니면 경녕군일까? 경녕군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다. 답은 둘째로 알고 있는 효령대군이다. 드라마 세종대왕에서는 경녕군을 효령대군보다 아우(?)로 했었던것 같다. 기억에 의존하는 관계로 틀릴 수도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상식으로는 경녕군이였다.

사실 경녕군은 태종(이방원)의 첫째인 양녕대군(1394년) 다음 1395년에 태어났다. 그러니 1396년 태어난 효령대군 보다도 형이다. 그렇다고 해서 경녕군이 세종이 어미인 원경왕후 민씨는 될 수 없다. 물론, 의붓 큰어미이기는 하다.

그렇다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태종의 3번째 아들 세종(이도:충녕대군)은 잘못된 것일까?  답은 아니다, 세종은 태종의 3번째 아들이 맞다. 이유는 정비인 원경왕후 민씨의 3번째라는 것이고, 적통을 이을 3번째 왕자가 세종(충녕군:이도)이란 뜻이 된다. 왕의 계승서열 3순위인 3번째 왕자라는 것이다. 사사로이는 경녕군이 충녕군(세종)의 형이 되지만, 왕통서열은 존재조차 미미한 후비의 소생이 된다. 물론, 정비인 원경왕후 민씨가 후비가 되거나 폐출되어 폐서인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왕가의 일은 적자/서자를 확실히 구분하고 있다. 양반, 서얼을 구분하고 있는 것처럼, 서얼은 처주지도 않았다. 특별히 기록하지 않는 한에는 말이다. 또한, 정비의 소생이냐 후비의 소생이냐의 차이에 따라 신분은 하늘과 땅이 되는 것이다. 같은 왕의 아들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한마디로 역사를 연구할때 적자, 서자, 적통를 구별할 줄 모르면 삼천포로 빠진다.  

설마 성골.진골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신라가 조선과는 다르다고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왕위를 잇는데 신라가 조선보다 오히려 더 엄격한 기준이 있었지 않겠는가? 진골도 아니고, 성골임금인데 말이다. 사실 글쓴이는 성골.진골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살피고 살펴봐도 성골은 없었다. 읽으면 읽을 수록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왕족, 귀족의 구분만 읽었다. 

그럼 다시 신라의 선덕왕(덕만)이 왕위에 올랐을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자.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사기 신라 춘추왕 원년

이제 요즘과는 다른 적자/서자, 양반/서얼 등 왕가의 룰이나 양반가의 룰에 따라, 읽어보자.

이름은 덕만이고, 진평왕의 장녀(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이다.
김춘추의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이라고 했다.

삼국사기의 딴지맨인 일연이 삼국사기 선덕왕 즉위년 기사에 딴지를 걸지 않는 이유는 일연도 마야부인의 맏딸로 덕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딴지맨 일연이 삼국사기에 딴지를 걸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삼국유사에 진평왕의 늙으막에 얻은 승만왕후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 일연은 선덕 또한, 진평왕의 말년에  정비는 승만왕후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승만왕후에 아들이 없어 왕통을 이을수 없었기 때문에 덕만이 마야부인의 소생으로 왕통을 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일연은 삼국사기에는 없는 덕만이 나이가 어렸을 것으로 짐작하는 기록을 남겨두고 있다. 덕만의 결혼기사이다.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여왕이 왕위에 있을때 결혼하고 있다니, 덕만이 왕위에 오를때 어렸다는 결정타가 아닌가? 물론, 남자왕처럼 비를 많이 바꾸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누구를 누구로 바꾸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봐서 첫결혼이라고 생각하는게 맞지 않을까 한다.

현존하는 <화랑세기>를 의심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누구도 하지 않은 이야기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이제 예고한 대로 선덕왕이 왕위에 올랐을때 덕만에 대한 평가를 보도록 하자.

위의 문장은 선덕(덕만)이 왕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하자 없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이 문장은 뒤의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내용을 수식하기 위한 내용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덕만과 관련된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예사로 넘기기 어려운 기록이 있다.

성품이 너그럽고,어질다
  영묘사 화재사건을 일으킨 <지귀설화>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 

<김유신의 춘추/문희불쇼>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어찌 되었던,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진짜던 가짜던 상관없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만으로 김유신 감독, 각본, 주연, "김춘추를 내사람으로 " 드라마에서 등장한 덕만이 신라 여왕(632년~647년) 시기에 있었던 일이 아닌 진평왕의 공주시절(628년 이전)에 있었던 일임을 증명하였다. 


총명하다.
<모란꽃,모란씨서되>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민첩하다

200
631년에 진평왕 말년 <칠숙의 난>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아직도 <성조황고>를 들어서 덕만은 나이가 많았을 거야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분이나 "그건 니생각이고"라고 하는 분들은 [역사이야기] - 이요원보다 남지현 나이때 왕위에 오른 덕만 <황고>에 대해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근거를 제시했다. 귀찬으신 분을 위해서 요약하자면, <성조황고>는 성스런 조상을 둔 임금(황제)의 성숙한 여식이란 뜻이다.

너무 어릴때 628년이전 문희와 김춘추를 얶어준 사건이 628년이라면 너무 덕만이 이른시기가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덕만이 632년 왕위에 오르고, 632년 결혼하고, 연호를 바꾸는  것을 근거로 635년 18~20세 전후라면 <모란꽃>, <김유신불쇼> 사건들은 덕만으로서 너무 어릴때 사건이 아닌가 의심할 수 도 있다. 

632년 16세에 왕위를 이었다고 한다면, 627년은 11살때 일이고, 628년이면 12살때 일이다. 현재의 기준으로 좀 어려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모란꽃 사건은 늙은 왕이 아주 어린 공주에나 물어 봄직한 말이 아닌가? 그리고 당시엔 깜짝 놀랄 추리 능력을 보인 덕만을 보고, 진평과 대신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용봉의 자질이 보였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기록이  "
총명하다"는 기록으로 남았다면 어떨가? 또한, 12살이전에 있었던 김유신의 불쇼에서 살려준 문희와 그의 복중 아들 법민은 어떨까? 어리지만 너그러워움의 상징이 아닌가?  지귀심화에서 신분도 미천한 지귀를 위해서 행한 행동들은 "너그러움" 자체이다. 또한, 지귀심화로 소실된 영묘사와 잦은 화재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할때 처리하는데 부적같은 주문을 만들어 백성들을 안정화 시키는 것으로 너그러움과 총명함과 민첩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지귀는 마음에서 불이 일어  
몸을 태우고 화신이 되었네.     
푸른 바다 밖 멀리 흘러갔으니,  
보지도 말고 친하지도 말지어다.  

 志鬼心中火(지귀심중화)    
 燒身變火神(소신변화신)
 流移滄海外(유이창해외)
 不見不相親(불견불상친)


"너그럽고, 어질고, 총명하고, 민첩하다" 라는 말은 선덕왕이 왕위에 오를때, 단순한 미사어구가 아닌 , 덕만은 <성조황고>이니 정통성에 하자도 없을 뿐만 아니고 충분히 왕 노릇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PS. 사실 세종대왕의 기사는 천명과 덕만은 같은 어미의 자식이다.라고 주장하는 혹시 모를 딴지가 들어올 반박문을 위해서 남겨두었습니다만, 이제 노출합니다. 이외에도 연산군과, 광해군의 출자를 비교해 본다면, 왜 적통 적자/서자에 연연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왕실 암투의 시작과 끝은 적자들간에도 있었지만, 서자를 낳을 수 밖에 없는 정비와 후비들 사이에도 있었습니다. 후비가 정비가 되면,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소생들인 왕자나 공주들은 인생의 역전 대박 로또가 되니 말입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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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호.. 2009.07.30 2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보고갑니다. 이복형제라.....

  3. 헤윰 2009.07.30 2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하기 쉽게 정리 하시느라 고생하셨겠어요.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4. 재밌네욤 2009.07.31 0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보았네요~~ 그런데 저도 앞에 계신 '성란'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신라시대의 골품제와 조선시대의 적장자 제도를 같은 기준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두 사회 모두 철저한 신분사회였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골품제와 적장제도를 연결시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것은 조선시대 등장한 적장자의 개념

    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저는 님께서 마지막 부분에 "설마 성골.진골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신라가 조선과는 다르다고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쓰신 부분에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역사를 전공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이렇게 단적으로 이야기를 하실 수 있을런지...

    각기 다른 시대의 신분제도를 이렇게 단편적으로 이어서 생각할 수 있는지 정말 놀랍습니다.

    물론 그 만큼 강력한 신분 사회였다는 점을 부각하고 싶으셨다는 느낌은 듭니다만...

    이러한 유교적인 관례가 뿌리 내린 것은 조선 성종 이후 경국대전 체제가 완성된 때 부터 입니다..

    단적으로 고려시대에는 왕의 후궁 중에 시집갔다 온 과부도 있었답니다..

    조선시대에 이런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겠죠..

    조선 초기의 족보에는 딸의 이름도 들어 있었답니다. 하지만 중기이후에 대전체제가 완성되면서 부터 아들

    을 중심으로 족보가 쓰여지고 있지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7: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적서는 비슷하고, 신라가 더 강경했지요..

      이미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것으로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하는데.. 중기 이후다라는 말씀을 하시다니..

      남.여, 적서 차별 등 중기 조선 중기이후에 심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초기 기록을 내 놓은것 아닌가요? 그것도 살펴 보시길..

      왜 하필 조선의 초기기록을 들어서 조선과 신라를 비교했겠는지요..

      이글로 답변이 충분히 되었기를..
      님들은 저의 주장을 더욱 강고하게 하는 보론 성격입니다.. 반론이 아니공..

  5. 흐음... 2009.07.31 0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클이 되겠습니다만.....그냥 왠지 썩 잘 읽혀지는 글은 아니라서....뭔가 말이 맞지 않네요. 제 이해력이 딸리는 것인지....

    "그렇다고 해서 경녕군이 세종이 어미인 원경왕후 민씨는 될 수 없다. 물론, 의붓 큰어미이기는 하다."

    ㅡㅡ> "그렇다고 해서 경녕군이 세종의 어미인 원경왕후 민씨의 아들(혹은 소생)이 될 순 없다. 물론, 그의 의붓 큰어미 이기는 하다." 라고 쓰셔야 말이 될듯 하네요.

    또 " 그러니 일연은 선덕 또한, 진평왕의 말년에 정비는 승만왕후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일연은 선덕 또한" 다음에 왜 진평왕 말년에 정비는 승만왕후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쓰신건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아요. -_-;

  6. 딩가딩가딩 2009.07.31 0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

  7. Favicon of http://otiliayoo@hanmail.net BlogIcon Blah 2009.07.31 0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 기억이지만 그전 국사선생님 중 한 분이 조선에 유교사상이 들어오기 전까진
    남존여비사상이 조선같지 않았다...고 하셨던 생각이 납니다.
    한 예로 여자가 재가를 하는 건 꿈도 못꾸는 조선시대와는 달리 그전까지만해도
    여자들의 혼인이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고 하시면서요.

    암튼 대단하십니다.
    덕분에 요즘 재밌게 보는 선덕여왕 더욱 재밌게 볼 수 있겠습니다.

  8. 가야진 2009.07.31 0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때는 사실 한 어머니, 한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게 사실 의미가 불분명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혼은 허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남녀 모두가 중혼적 성격을 가진 연인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자식도 모계사회인 신라의 골품제에 따라 진골까지는 신분을 부여 받았으니까요.

    여성의 힘에 대한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요즘 천추태후 등에서도 황제가 죽은 후 연인을 두는 모습이 그려지잖아요. 그리고 현재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다수의 역사서에서도 조선의 유고 사상 또한 중기 이후 정착한 것이고 이전의 사회에서는 여권이 힘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보잖아요. 물론 표면적으로는 남성사회로 이어져오긴 했지만, 전쟁이 많은 나라에서 남성의 권력이 사회의 기득이라고 보기에는 힘들다고 생각해요.(내조의 여왕처럼 전쟁에 나간 남성을 대신한 실질적 정치가 아내와 어머니등의 여성이 상당했으니까요.)

    이야기가 약간 옆길로 가긴 했지만, 저는 천명이 마야의 자식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잉첩들도 순수 혈통인 성골 출신으로만 이루어 져있기는 해도 이미 족강된 후이고, 천명이 후비의 자식이라면 정비의 자식인 덕만과 나이가 비슷한 상황에서 왕위계승자인 아들이 없다고해도 마야소생 이외의 인물이 권력을 가지기는 힘들지 않았을까요?

    신라에서 초혼은 대부분 왕을 제외하고는 여성의 골품이 더 높거나 같은 진골이라 해도 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질 수 있는 여성이 자신보다 낮은 지위를 가진 이와 하는 것이 일반적이 잖아요.


    예전에 어디서 들은 말인지, 읽은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제 머리 속에는 성골에서 족강되면 진골의 가장 위 계층이 되고 최근에 족강된 사람이 더 오래전 족강된 사람보다 힘이 있다는 기억이 있거든요.
    이것이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천명이 마야 소생이 아니라면 용수와 천명의 결혼은 불가하지 않았을까요?
    천명의 어머니가 성골이었다해도 용수보다는 더 오래전에 족강되었을테니까요.

    아, 글을 쓰다보니.... 아닐 수도 있겠네요. 천명의 어머니가 용수보다 나이가 어리다면, 저것도 가능하긴 할 것 같아요.

    휴, 요즘 선덕여왕 때문에 도서관에 선덕여왕 관련 책을 다 봐서 역사 공부는 되는데, 드라마 나이 설정이 뒤죽박죽이라 덕분에 제 머리도 뒤죽박죽이예요.

    글이 길어져버렸네요. 암튼, 저는 천명이 후비소생일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글 덕분에 경녕군 이야기는 처음 알게 됬어요. 브라보~!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7: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후비이거나 마야이전 정비라고 했던것 같은뎅..
      족강은 조선이 더 심했지요.. 신라보단

      오르기도 힘들고, 내려가기는 쉽고, 하지만, 조선의 전란이후는 다르지만.. 돈을 주면 언제든지.. 파고 사는게 족이였으니요..

  9. 오타발견!! 2009.07.31 0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께서 쓰신 글인가요? 잘 봤습니다.

    코를 찔찔 흘리며 다니던 어릴 시적부터 역사에 관심이 깊었던 관계로 우연히 지나치다가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도 너무 좋아합니다.ㅎㅎ)


    여러 모로 도움이 많이 됐던 글인 것 같아 잘 보고 갑니다.

    근데, 서론에 나오는 일연의 이야기는, 삼국유사를 지은 그를 말씀하시는게 맞겠죠?


    예를 들면, 진수의 삼국지를 배송지가 주석을 달아서 했던 그런 부류와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어쨌든, "의의를 제기" 라고 쓰셨는데, 의의라는 것은 '말이나 글의 속 뜻' 을 지칭하는 단어인데,

    "이의를 제기" 라고 쓰셔야 할 듯 하네요.ㅎㅎ

    문맥상 '다른 의견이나 주장' 이 들어가야 맞을 듯한 전개네요.ㅎ

    어찌됐든 잘 보고 갑니다.^^ㅎㅎㅎ

  10. 향수 2009.07.31 06: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조목조목 잘 비교하시면서 쓰셨네요..
    그저 알려진 정도의 역사만 알뿐이었는데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되어 기쁩니다
    앞으로도 이런글 열심히 써주세요..
    부지런히 읽어드릴께요..

  11. 제가 알기로는 2009.07.31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명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미실과 천명 모두 오직 <화랑세기>에만 기록되어 있어 그 둘이 가상의 인물일 확률이 높다고 들었습니다.그런데 또 이런 글을 보니 흥미롭네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8: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천명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공히 있는뎅..

      3녀인 천화를 말씀하시는것 아니신지요?

      화랑세기에는 덕만이라고 하지 않고, 왕의 시호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선덕, 천명, 천화.. 조금 냄새가 나지요.. 선화의 다른 이름 같은 천화라..

      흥미로웠다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__^

  12. 재주소녀 2009.07.31 0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렵지만...잼있네요~
    댓글 쓰는거 어려운거 아니네요
    ㅋ 부끄럽지만 처음 써봅니다.

  13. 캐스퍼 2009.07.31 0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어 보았습니다....
    글이 잘 정리 되신다면... 후에...
    "계급사회 변천사"를 쓰세요....
    아직까지....
    삼국시대 이전부터.. 그 이후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 근대화 시대....
    변변한 "계급사회의 변천사"가 없었습니다...
    아주 좋은 책이 될것으로 보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 어려운 말씀을 저는 그정도는 아닙니당.. 제 밥그릇도 있는뎅.. ㅠ.ㅠ.

      즐기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당.. 고수는 널려 있는게 강호의 세계가 아니겠습니까?

      칭찬은 ㄳ히 받겠습니당.. 염치불구하공..

      물론 추천도 때려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댓글들을 다시는 분들이라면.. ㅋㅋ ^___^;;;

  14. -- 2009.07.31 1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은 잘 읽었습니다만...

    역시 신라의 골품제와 조선의 적서개념을 뒤섞으면 안된다는 댓글 의견에 동의합니다..

    적서개념은 부계를 따르는 것이고

    골품제는 부계와 모계에 모두 적용되는 겁니다..

    두 가지를 같은 원리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부계뿐 아니라 모계혈통도 중시되었기 대문에 지소부인이 힘을 쓸 수 있었던 것이고

    선덕,진덕여왕이 즉위할 수 있었던 것이죠.

    너무 사료를 쉽게 자의적으로 해석하셨네요...

  15. Favicon of https://azcaprice.tistory.com BlogIcon 아르제크 2009.08.30 0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 초기에 왕가의 적서 문제가 엄밀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이성계가 자신의 이모형 이원계가 '서자'라고 몰아 아버지 이자춘의 다루가치 직을 대신 취했기 때문
    (이 때문에 이원계의 자녀들은 이천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성계로부터 이반합니다)
    2. 이방원이 '서모'인(그러나 정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아들인 세자 방석을 '서자'라는 이유로 폐했기 때문
    3. 성리학의 부계일원적 구조를 이제 막 도입하는 시기였기 때문(또 태종 스스로가 성리학자이기도 했고요)

    왕가는 자신의 정통성 확립과 함께 사회변혁에 대한 솔선을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적서 구분에 목을 매단 것입니다.
    실제 여말선초 사회에서 적서의 구분은 심하지 않았고 오히려 애매모호한 측면조차 보입니다.
    그것이 조선에 들어서 세월이 흘러갈수록 점점 적자만을 인정하는 형태로 변해간 것이죠.

    예를 들어 조선 초기의 재상인 하륜은 3대째에 적손의 대가 끊기게 되었는데, 이 같은 사실을 접한 당시에 이러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하륜의 서손을 적손으로 인정해서 과거시험을 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죠. 그런데 논의 결과, 공신 집안 하나를 우대하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고 나라의 법을 확실히 하는 것은 국가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특별 대우는 해줄 수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만일 적서의 구분이 이미 당연하고 엄밀한 것이었다면 이런 논의 자체가 있을 수 없었겠지요.


    꼭 신라까지 갈 것도 없이 고려말만 보더라도, 이모형제(이원계-이성계-이화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 이부형제(이성림-염흥방)와 같은 케이스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관직에 등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중기 이후의 엄밀한 적서차별과 재가녀의 자식에 대한 천대를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신라시대에 성골 진골 구분의 실체가 없었을 거라는 의견에는 저도 삼국사기 삼국유사 좀 읽은 사람으로서 동의합니다만, 갓쉰동님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서도 독자들에게 성골진골을 구분하는 신라라면 적서구분이 있었음이 당연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어떻게 된 영문인지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0 1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성골/진골을 믿는 사람이라면 단서가 붙은 거지요.. ^___^

      왕은 무치인데 적서의 차별이 있었겠습니까만은,, 공식적인 왕비의 후손이 왕통을 잇는것은 당연한거지요.. 1차 고려를 한다음 다음 수순으로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후계의 선택은 왕에 있는 것이고,,적이던 서던 말이지요.. 그러니 적서의 차별이 없었다고 할 수 없지요..

  16. 냠냠냠 2009.09.22 2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초혼이라고해서 나이가 어렸을껏이라고 생각하는건 말 그대로 '짐작'이겠지요.

  17. Favicon of http://kr.blog.yahoo.com/sppopsj BlogIcon 천산 2009.10.14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유사왕력보에 기록된 배필이 되는 飮갈문왕이 누구인지 밝힌 것입니다. 그리고 수절이라는 말을 쓰려면 남편이 죽은 후가 되는데, 갓쉰동님은 飮갈문왕이 선덕여왕 시절에 이미 사망한 사람으로 알고 계시네요! 왜 그렇습니까? 님의 주장대로라면, 서기634년에 飮갈문왕을 세웠는데, 언제 사망하였다는 것입니까?

  18. 레아 2009.10.22 1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이 젊었을때 즉위를 했다는 것에 대해선 태클을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진평왕은 10대 중반의 나이에 등극을 해서 왕위 계승기간이 자그만치 50여년이 되는데 선덕여왕이 젊은 나이에 등극을 했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선덕여왕이 젊은 나이에 등극을 했다면 그건 진평왕이 임기 말년에 마야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았다는 이야기 이며 더욱이 마야부인도 진평왕과 나이차이가 많이 났을 터이지만 역사서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22 2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덕여왕은 젊었을때 즉위한 것 같아용..
      마야부인이 천명의 어미라는 기록은 없지용.. 반면에 덕만은 마야와 진평의 딸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거든요. ㅋㅋ

  19. Favicon of http://kelvintrote.blogspot.com/2012/04/all-natural-devastation-survival-kits... BlogIcon soup can storage rack 2012.11.01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며 더욱이 마야부인도 진평왕과 나이차이가 많이 났을 터이지만 역사서 어디에도

  20. Favicon of http://blog.frents.com/fractional-ownership/fractional-ownership/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dogs for sale 2012.11.05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명의 동생이라고 했을까? 그건 화랑세기에 맡기도록 하자.

  21. Favicon of http://www.turks.us/article.php?story=20061205100319652 BlogIcon Housing prices 2013.05.01 1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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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 시사 사회 문화 스포츠 평론
갓쉰동
07-2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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