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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대왕의 꿈은 김춘추(태종무열왕)의 일대기를 극화한 드라마다. 그런데 대왕의 꿈을 보고 있노라면 중국의 동북공정을 떠올리게 된다.

 

중국은 현재 중국의 영토내에 있었던 고대사를 자국의 역사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대한민국이 한반도내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고 고대 고구려의 역사를 편입한 이유는 현재의 대한민국의 영토내에서 이뤄진 일이기 때문이다.

더나가 한민족을 이루는 고대 예맥과 한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조선(고조선)부터 역사에 편입하고 부여, 발해까지 역사로 편입한 것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로 현재의 영토를 기반으로 고대 민족사까지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와 역사를 왜곡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 이유는 자의적으로 왜곡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회 조사국보고서에 고대사를 중국 동북공정 주장을 담아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할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은 중국에 분노할 명분이 없다. 왜냐하면 자국의 역사 왜곡을 중국못지 않게 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드라마에서 조차 미화 왜곡을 당연시하고 재미를 위해서 미화왜곡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난무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 민국 공영방송 KBS에서 이상한 사극이 만들어 지고 있다. 신라사를 왜곡하고 김춘추를 미화왜곡 하는 것을 넘어 같은 신라내의 유신의 업적까지 김춘추의 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대왕의 꿈에서 신라는 고구려의 낭비성을 공격하는 629년을 극화하고 있다. 그런데 김춘추가 낭비성에 김춘추가 등장하고 있다. 낭비성은 김유신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전투다.

 

 

 

629년 진평왕은 소판(3등급) 김서현을 대장군으로 김춘추의 아비 대아찬(4등급) 김용춘을 김서현 보좌 대장군, 김유신을 부장으로 삼아 낭비성을 공격한다. 그렇지만, 낭비성은 견고해서 쉽게 이길수가 없었다. 김유신은 말에 올라 성으로 나아가길 반복하여 적의 장수들의 목을 취하기를 여러 번 하였다. 그리고 끝내는 낭비성을 공략하는데 성공한다.

이때 김유신의 나이 35살이었다. 김유신도 전쟁 전면에 등장할 때 나이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27살 새파란 김춘추가 김서현과 아비 김용춘 대신에 제갈공명화 되어서야 되겠는가?

 

이곳에 김춘추가 등장할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덕만공주(선덕여왕)까지 참전하고 있다. 낭비성에 참전한 인물은 김춘추가 아닌 김춘추의 아비라고 인식되는 김용춘김서현을 보좌하는 대장군으로 참전할 뿐이다.

 

대왕의 꿈은 김용춘이나 김용수의 일을 김춘추가 한 일로 꾸밀뿐만 아니라 김유신의 최초업적까지 가로채기를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김춘추가 애비의 전공이나 남의 전공이나 탐내는 원균 같은 자였다고 대왕의 꿈 작가는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대왕의 꿈이 얼마나 한심하냐면 김춘추가 어릴적 부터 애비어미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날뛰고 있다는 점이다 . 문희의 임신상태에서는 김춘추는 자식까지 돌보지 않는 요즘으로 치면 개아지였다. 그런데 대왕의 꿈에서는 김춘추가 의리의 돌쇠로 나오기까지 한다. 

대한민국 고대사 연구가 얼마나 한심하냐면 김춘추의 아비가 김용춘인지 김용수인지 조차 모르는 수준이다. 낭비성전투가 벌어진 지역비정도 못해서 충북지역에 있는 지명으로 고증하는 수준이다. 


대왕의 꿈의 김춘추 (태종무열왕)의 영정을 날출(出)자형 금관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그릴만큼 형편이 없다. 김춘추가 진덕여왕 3년에 모든 복식을 당복으로 바꾸는 대대적인  개편작업을 하고 당나라의 위성국으로 전락해서 백제/고구려/왜의 조롱까지 받았는데 태종무열왕(김춘추)영정이 출자형이 가당키나 한가?

대왕의 꿈에 투입한 200억이면 고대사 연구를 하더라도 수없는 업적을 만들어 낼만한 거금이다. 그런 거금을 쓸데없는 한국판 동북공정인 신라공정 더나가 김유신 미화작업에 투입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게 김춘추가 미화작업할 만큼 KBS는 부끄러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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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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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worldsay.tistory.com BlogIcon 러브멘토 2012.10.29 14: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엄니가 좋아하는드라마 ㅋㅋ
    잘보고 갑니다 ㅋ

  2. Favicon of http://www.crov.org/tatuaggi-lettere/ BlogIcon tatuaggi lettere 2012.11.01 1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입하고 고대 고구려의 역사를 편입한 이유는 현재의 대한민국의 영토내에서 이뤄진 일이기 때문이다.

  3. Favicon of http://forum.prg.pifas.net/viewtopic.php?f=2&t=2 BlogIcon average cost of owning a dog in nyc 2012.11.14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법은 흰색 모자입니다. 이 흰 모자를 구현함으로써 당신은 페이지 순위를 얻을 과정을 따라 이동합니다 않습니다하지만 금지되는에서 당신을 방지입니다.

  4. Favicon of http://mountainhousefreezedriedfood3.onsugar.com/Things-You-Need-Prepare-Crisi.. BlogIcon real military mre meals for sale 2012.11.19 14: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적으로 처음아역이 등장했을때가 잼있던거같아요 해주는 조금억척스럽고 씩씩한아이였는데 어른

  5. 산성방화별감 2012.12.16 0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양반아 신라 까대고 고구려 숭배한다고 해서 당신의 꼬인 인생이 달라지진 않아 인생 퇴갤할때까지 그저 남을 씹어대기만 하면서 살다 갈건가? 정신좀 차리시게 편집증은 정신병이야 진실로 당신이 걱정스러워 하는 말인데 정신과 가서 상담좀 받길 바래 내 중딩때 모습을 보는것 같아서 안타깝구만

  6. Favicon of http://www.phish3dmovie.com/freeze-dried-food/ BlogIcon emergency preparedness kits vancouver 2013.01.05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도 마찬가지로 현재의 영토를 기반으로 고대 민족사까지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와 역사를 왜곡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7. Favicon of http://blog.daum.net/21010 BlogIcon 요동킴 2013.02.10 15: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주공정(동북공정)이라는 표현을 해야 옳습니다 고구려 몽골족,고구려만주족을 아시나요?
    우리의 고구려합중국 형제들을 중국 고대국가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아직도 오랑케(빨갱이)로 알고있나요
    http://blog.daum.net/21010/?t__nil_login=myblog

 

김춘추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논란이 있는 인물이다.

 

오히려 김춘추는 좋은 이미지 보다는 나쁜 이미지로 각인이 되었다.

 

외세 인 당을 끌어들여 한민족 역사를 한반도 그것도 한반도의 반 토막으로 축소시켰다는 점에서 김춘추는 좋아라 하는 사람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글쓴이(갓쉰동)이야 당시 생존을 위해서 치열하게 살다간 인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KBS 방송은 200(?)을 투입해서 김춘추를 재조명하고자 기획되었다. 김춘추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있는 목적 극이다.

 

김춘추 역에는 사극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수종이 등판해서 김춘추를 구원하려고 한다.

 

좋게 말해서 최수종이 김춘추를 재조명하는 계기를 만들어 냈을수 있지만, 최수종은 사극에 너무나 식상하게 등장하는 인물이다.

 

오죽하면 고려를 세운 사람이 최수종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만큼 한 때 최수종은 사극의 시작이며 끝이었다. 문제는 최수종은 비슷한 패턴의 비슷한 연기를 한다는 점이다. 어떠한 배역이 되었던 배역이 들어 나는 게 아닌 최수종의 모습만 보인다. 왕건을 하건 다른 역을 하건 왕건의 모습이 아닌 최수종일 뿐이다.

 

이에 반해서 김영민은 배역에서 김영민의 존재가 사라지고 배역에 녹아난다. 김영민은 사라지고 배역만 남는다 어느 것이 좋은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가 있지만, 배우가 이름이 아닌 배역을 남는다는 점에서 글쓴이(갓쉰동)김영민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최수종에게서 새로움은 없다. 항상 똑 같고 한결 같은 모습이다. 그러니 김춘추의 모습이 드러날 수가 없는 것이다. KBS의 패착은 최수종으로부터 비롯 되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최수종이 연기의 신이라고 해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김춘추를 살릴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대왕의 꿈의 가장 큰 문제는 배우에 있지 않다. 더불어 논란의 중심에 있고 별로 알고 싶다고 생각지도 않는 김춘추에 있지도 않다. 대왕의 꿈은 여타 사극 드라마는 다르게 역사적인 기본 팩트에 충실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물의 출생과 사건에 대한 왜곡은 극히 드물다. 단지, 나이에 맞지 않는 배역을 선택한 연출진에게 문제가 있을 뿐이다.

 

대왕의 꿈 김춘추 태종무열왕이 인기가 없고 이슈가 안되는 이유는 김춘추를 알고 있다고 자만한 사람들에게도 있지만위에서 언급한 문제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대왕의 꿈은 한마디로 재미가 없다는 점이다. 사극 매니아 글쓴이(갓쉰동)이 보더라도 사극이 재미가 없다는 생각을 할만큼 대왕의 꿈 스토리라인은 형편이 없다. 요즘 만화 대사처리도 대왕의 꿈처럼 대사처리를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연출도 대왕의 꿈처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 구조는 너무나 단순해서 극에 몰입을 할 수가 없다. 좋게 말해서 스케일이 크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야기 항상 떠있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최소한 인물간의 대사처리나 극중에서 긴장감은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다. 한마디로 김춘추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와 연출자의 역량부족이 시청자로 하여금 몰입을 방해하고 대왕의 꿈을 멀리하는 것이다. 배우들이 소리만 지르고 인상을 쓰고 눈만 부랄인다고 좋은 배우는 아니다. 어린 김춘추가 미친놈이듯이 승만왕후의 모습은 미친년으로 보일 뿐 왕후의 카리스마는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다.

 

대왕의 꿈에서 승만왕후는 딸을 낳자 딸을 버리고 새롭게 다른 곳에서 주어온 아이를 아들로 만든다. 버려진 여자는 승만왕후의 시비인 시노의 딸로 키워진다. 김법민(문무왕)은 승만왕후의 버려진 딸이 주어온 원자에게 괴롭힘을 받자 분노한다.

 

 

당의 사신이 신라에 들어와 신라가 점령한 철령 이북지역을 고구려에 돌려주라고 하자. 신라는 백제와 연합해서 고구려를 칠 생각을 한다. 논리는 삼국의 일은 삼국이 해야지 외세를 끌어들여 삼국을 위태롭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잊었나? 김춘추가 비난받은 이유가 작가가 김춘추나 덕만공주의 논리적 근거 내용 때문 임을 말이다.

 

대왕의 꿈은 빠르게 시간이 흘러간다. 한 시대를 한 회로 처리할 만큼 빠르게 세월이 흐른다. 이를 두고 빠른 전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빠른 전개와는 다르다. 한 시간을 2시간 3시간짜리로 늘리고 늘려도 지루한 감이 없이 빠른 전개라고 말할 수 있고 아무리 세월이 빨리 흐른다고 전개가 빠르다고 할 수는 없다. 대왕은 꿈은 극중 시제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는데 내용이 없다.

 

천관녀와 김유신의 사랑도 대충대충 처리하고, 김춘추와 김문희의 관계도 대충 처리하고 만다. 백반 갈문왕은 언제 어떻게 극에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이 사라져 버리고, 진흥왕비인 사도태후는 언제 어떻게 되었는지 극중에서 사라져버렸다. 당연히 천관녀의 행방도 묘연하다. 극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할 김용춘김서현은 극의 들러리로 전락한지 오래가 되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점은 대왕의 극중 시제가 낭비성 전투를 앞둔 629년인데 김춘추가 18대 풍월주로 나온다는 점이다. 김춘추가 18대 풍월주가 된 때는 626년 문희가 김법민을 낳은 이후다. 대왕의 꿈에서 문희는 임신한 상태에 있다. 이는 김법민의 동생인 김인문이 태어난다는 암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풍월주가 왜 백제에 건너가 왕도 아닌 의자왕자와 대면하는 것일까?

   

 

실제로 덕만공주는 대왕의 꿈에서 처럼 늙지도 않고 노회하지도 않았다. 대왕의 꿈에서 그나마 재대로 인물관계가 설정된 부분은 천명과 덕만의 관계다. 천명은 나이고 많고, 덕만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리게 설정했다는 점이다. 화랑세기는 천명과 덕만을 왕비 마야부인의 자식으로 그렸지만, 실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분석해보면 천명과 덕만은 나이차이가 많이 나고 동모제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어머니가 다른 배다른 자매였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자세히 논증하고자 한다.

 

극중에서 625년 문희(문명왕후)가 임신하고 626년에 태어난 김법민은 629년이면 4살 이고 만으로 해도 2~3살에 불과하다. 그런데 무슨 신력이 있어서 글을 깨우치고 원자의 일에 간섭할 만하다고 그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똥오줌도 재대로 가릴 수 없는 나이인데 말이다. 좀더 극중 개연성과 리얼리티는 살려야 하지 않을까?
 

 


신의는 철저히 여성을 기반으로 한 사극이지만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어 내고 대왕의 꿈은 신의와 정 반대의 현상이다. 대왕의 꿈의 시청률이 낮고 이슈가 없는 이유는 대왕의 꿈은 철저히 남성위주의 사극으로 만들어 졌다는 점이다. 문희와 김춘추의 사랑과 천관녀와 김유신의 사랑에 좀더 할애를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요즘 시청률이나 이슈를 만드는 쪽은 여성들이다. 한마디로 여성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대왕의 꿈은 철저히 여성들을 무시하고 여성들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가 없다. 
 대사의 치졸함을 넘어 유아틱한 대사가 사극 매니아 까지 등을 돌리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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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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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사를바로보는시각 2012.10.22 1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초부터 매국노 김춘추를 미화한 내용의 사극을 다룬다는게 실수였음.. 김춘추는 존경받을인물이 아니라 비판받아야할 역사적 인물인데 그런 사람을 미화하니 시청자들이 분노할수밖에 없죠..김춘추가 만주를 당에 내주면서 우리민족에게 크나큰 타격이 되었죠..지금도 그 영향을 받는다고 봐야합니다.

    PD가 참 역사의식이 없는듯합니다.

  2. 로드러너 2012.10.22 2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 헛소리를 하는건지?;; 전라디언 열폭하시는군!? 흥미진진하고 재미만 있다.

    • ㅉㅉㅉ 넌 정말 구제불능이다. 2012.10.24 1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게 니놈의 한계야 형은 전라도 출신도 아니고 전라도랑 관계 전혀 없단다.

      그게 너의 한자리수 아이큐의 사고방식이야

      잘못된 역사는 비판할줄 알아야한다.

  3. 지나가다 2012.10.23 0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식의 사극을 보느니 역사 다큐를 보고 판타지 사극을 보는게 나음.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개연성 조차도 없고...

  4. ㅉㅉㅉ 넌 정말 구제불능이다. 2012.10.24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드리너야 역사좀 똑바로 알아라 김춘추가 만주땅 내주고 우리 민족 영역이 위축된거야

    사실대로 말하고 객관적으로 말하는건데 뭔 지역타령이냐 임마 김춘추는 존경받을 인물이 아니야

    김부식이나 김춘추 이런 부류들은 우리 민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애들이다 인정할건 인정해라

    로드리너 니놈은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선생님이 김춘추 비판한거 모르냐??

  5. 비평가 2012.11.07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거 방영한 사극과 스토리 전개가 너무 유사해 식상하다. 좀 다른 차별화가 필요하다.

  6. Favicon of http://twittersora.net BlogIcon 소라넷 2013.01.11 0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뷰 잘 읽었습니다. Dreamlive만의 긴글 리뷰 정말 팬이예요.

  7. 조롱박 2013.01.29 1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에 공감을 표합니다. 한마디로 너무도 무미건조하고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재미없어 처음 두어 회 보다가 아예 볼 생각을 접었습니다. 저는 무려 80회난 되는 엄청난 시간과 제작비를 들여 이런 방송을 하는지 제작진들을 성토하고픈 사람입니다. 왜 이런류의 사극밖에 보여주지 못하는지...
    좀 좋은 사극 못만드나요?

 

김춘추가 축국 이후 김유신의 집에가서 술을 마시고 취하고 잠을 잤는데 문희가 침상에 있어서 놀라 자빠진다.

대왕의 꿈처럼 부인을 생각해서 놀랐을까?

김춘추와 문희, 보희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보희가 문희에게 양보한 이유는 단순히 꿈을 팔고 사서 그런 것이 아니다. 보라부인과 결혼한 유부남 이기 때문에는 더더욱 아니다.

 

보희는 꿈에 서형산에서 오줌을 누자 서라벌이 홍수가 나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희는 보희의 꿈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하고 보희의 꿈을 비단으로 산다.

 

돼지 꿈을 꾸었는데 로또를 사지 않고 친구에게 팔아버린 것과 같다. 요즘도 횡재수가 있는 꿈을 구면 문희처럼 꿈을 팔라는 말을 하지만 보희가 되지 않으려고 꿈을 팔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유신의 계략이 넘어간 춘추가 김유신의 집에 오자 김유신은 보희에게 김춘추를 맞이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보희가 자신은 아퍼서 김춘추을 모실 수가 없습니다. 라며 거부하자 문희가 대타로 김춘추를 모시게 된다.

 

김춘추는 문희를 임신시키고서 나몰라 문희를 쌩깐다. 이에 분노한 잔머리 김유신은 김춘추가 자기 동생을 임신 시켜놓고 생깠다고 동네방네에 소문을 퍼트리고 문희를 장작에 태워죽이겠다고 언플을 한다.

 

 

문무왕(文武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법민(法敏)이고 태종무열왕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문명왕후(文明王后)인데, 소판(蘇判) 서현(舒玄)의 막내딸이고 유신(庾信)의 누이이다.

그 언니[]가 꿈에 서형산(西兄山) 꼭대기에 올라앉아서 오줌을 누었더니 온 나라 안에 가득 퍼졌다. 꿈에서 깨어나 동생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동생이 웃으면서 “내가 언니의 이 꿈을 사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비단치마를 주어 꿈값을 치루었다. 며칠 뒤 유신이 춘추공(春秋公)과 축국(蹴鞠)을 하다가 그만 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떼었다
.

유신이 말하기를 “우리 집이 다행히 가까이 있으니 청컨대 가서 옷고름을 답시다.”라 하고는 함께 집으로 갔다. 술상을 차려 놓고 조용히 보희(寶姬)를 불러 바늘과 실을 가지고 와서 [옷고름을] 꿰메게 하였다. 그의 언니는 무슨 일이 있어 나오지 못하고, 동생이 나와서 꿰메어 주었다. 옅은 화장과 산뜻한 옷차림에 빛나는 어여쁨이 눈부실 정도였다. 춘추가 보고 기뻐하여 혼인을 청하고 예식을 치루었다. 곧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법민(法敏)이다. - 삼국사기 문무왕 원년

 
이에 선덕여왕이 연기가 피어오른 모습을 보고 김춘추가 들으라고 저 연기가 무슨연기냐며 묻는다. 이에 신하들이 김유신의 동생이 아비도 없이 임신을 해서 집안망신이라며 태워죽이려는 것이라고 찔러버린다.

김춘추가 선덕여왕에 머리를 조아려 문희를 임신시키고 쌩깐 망나니가 자신이라고 고한다. 이에 선덕여왕은 김춘추에게 니가 사내라면 책임을 져야하지 않느냐고 질책하고 김춘추는 마지못해 문희를 구했는데 임신한 아들이 태어나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법민)이였다는 것이 그동안 알려진 이야기다.

 

 

춘추공은 유신의 뜻을 알고 드디어 아지와 관계하고 이로부터 자주 왕래했다.  유신은 그 누이가 임신한 것을 알고 꾸짖었다.  "너는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아이를 배었으니 그게 무슨 일이냐."  그리고는 온 나라 안에 말을 퍼뜨려 그 누이를 불태워 죽인다고 했다.  

어느 날 선덕왕(善德王)이 남산(南山)에 거동한 틈을 타서 유신은 마당 가운데 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질렀다.  연기가 일어나자 왕이 바라보고 무슨 연기냐고 물으니, 좌우에서 아뢰기를, "유신이 누이동생을 불태워 죽이는 것인가 봅니다"했다.  왕이 그 까닭을 물으니, 그 누이동생이 남편도 없이 임신한 때문이라고 했다.  왕이 "그게 누구의 소행이냐"고 물었다.  이때 춘추공은 왕을 모시고 앞에 있다가 얼굴빛이 몹시 변했다.  왕은 말한다.  "그것은 네가 한 짓이니 빨리 가서 구하도록 하라."  춘추공은 명령을 받고 말을 달려 왕명(王命)을 전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고 그 후에 버젓이 혼례를 올렸다. - 삼국유사

 

삼국사기는 김춘추가 자발적으로 문희를 임신시키자 혼례를 올렸다고 하지만, 요즘도 임신 시켜놓고 쌩까는 남자들이 많지만 김춘추도 책임지지 못하는 찌질이었다.

 

일연선사는 삼국사(삼국사기)에 나온 이야기는 거짓말 말이고 김춘추는 비겁하게 나몰라라 했다가 선덕여왕과 김유신의 합동작전에 어쩔 수 없이 문희를 받아들였다고 까발린다.

 

 하지만, 일연선사도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사실 선덕여왕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고 선덕여왕이 공주시절에 벌어진 일이다. 왜냐하면 선덕여왕 재위 기간는 632~647년까지였다.

 

 

위 사건이 정확이 어떤 시기에 일어난 일인지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역사학자들은 단순히 검증도 하지 않고 삼국유사의 기사를 보고 선덕여왕시기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확히는 언제였을까? 당연히 김법민이 언제 출생했는지를 알면 된다. 그런데 김법민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선덕여왕 시기라고 이야기할 뿐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헌고증에는 단순히 써 있는 대로  받아 들이면 안 된다. 교차검증이 필요하다.

 

   

김법민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김법민의 동생인 김인문에 대한 기록이 삼국사기 열전에 나온다. 김인문은 진덕여왕 5651년 당나라 숙위로 떠난다. 이때 나이가 23살이라고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김인문(金仁問)은 자()는 인수(仁壽)이고, 태종대왕의 둘째 아들이다. 어려서 학문을 시작하여 유가(儒家)의 책을 많이 읽었고, 겸하여 장자(莊子)·노자(老子)·불교의 책도 읽었다. 또한 예서(隷書)와 활쏘기·말타기·향악(鄕樂)을 잘 하였는데, 행동의 법도가 수수하고 세련되었으며, 식견과 도량이 넓어 당시 사람들이 추앙하였다. 영휘(永徽 2(진덕왕 5: 651), 인문의 나이 23세에 왕명을 받아 대당에 들어가 숙위하였다. - 삼국사기 열전 김인문

 

그렇다면 651 23살이니 김인문은 629년생이다. 당연히 김인문의 큰형인 김법민(문무왕)은 629년 이전에 태어나야 한다. 629년이면 선덕여왕 시기(632~647)가 아닌 진평왕 때임을 알 수가 있다


김춘추가 문희를 받아 들일수 없었던 이유는 김춘추의 나이에서 쉬이 알 수 있다.  김춘추는 602년생이니 629년 이전이면 28살이다. 김춘추는 이미 결혼한 상태인 유부남이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김춘추가 문희를 거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고타소의 생모가 살아있기 때문에 문희를 받아 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대왕의 꿈에서 김춘추가 결혼한 상태에 있고 복중에 애를 가지고 있는 보라 김춘추의 아내라고 나오고 있지만, 이는 실존인물이 아니다. 박창화 화랑세기에 나온 이야기를 갖다 쓴것이다.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김춘추가 진평왕의 후비인 보량군주와 결혼시키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보량군주가 아닌 보량의 자매인 보라와 결혼한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했다면 김춘추는 할아버지 진평왕의 후비인 할머니랑 결혼했다는 망나니 짓을 한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런데 왜 보희는 문희에게 김춘추를 양보했을까? 김춘추가 유부남이기 때문에 그랬을까? 그렇지가 않다.

 

언니인 보희에게 문제가 있어서 문희가 대타로 김춘추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보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보희에게는 여자로서 차마 말할 수 없고 여자라면 다는 관계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보희는 생리를 하고 있으니 김춘추를 받아들일 수 가 없는 것이다. 요즘도 마찬가지이지만,당시에도 오라버니에게 나는 그날이니 문희에게 대타를 뛰게하세요라고 말하지 못하고 아프다는 핑계를 댄 것 뿐이다.

 

단순히 그날이라고 말을 하면 결혼한 사람이나 애인을 둔 남자들은 관계를 할 수 없다는 말이거나 실제로 그날이구나 잘 알아 듣는다. 보희는 김춘추와 맺어질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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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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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houseinhanoi.com/houses/properties/2/0 BlogIcon hanoi houses for rent 2013.05.06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대왕의 꿈이나 대부분의 사극에서 김춘추의 아버지를 김용춘이라고 하고 김용춘김용수를 다른 이름을 가진 동일 인물이라고 한다.

 

물론, 그런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릴 적 이름과 성인이 되었을 때 이름은 다른 경우가 많다. 글쓴이도 2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조카도 집에서 부르는 이름과 가족등록부에 올라있는 이름이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글쓴이(갓쉰동)이 다른 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예전에도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김용춘김용수는 동일인물이 절대로 될 수 없는 기록들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용수와 용춘의 기록들을 다 뽑아 보자. 그럼 확실히 이들이 동일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622년 진평 44(622) 2월에 이찬 용수(龍樹)를 내성 사신(內省私臣)으로 삼았다. - 삼국사기 진평왕 44

629
51(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였다. - 삼국사기 진평왕 51


635
년 선덕 4 10월에 이찬 수품(水品)과 용수(龍樹) <또는 용춘(龍春)이라고도 하였다.>를 보내 주·현을 두루 돌며 위문하였다.- 삼국사기 선덕왕 4

643년 선덕 3 16일에 자장 돌아와 탑을 세워야 한다고 선덕왕에 보고, 이후 이간(伊干) 용춘(龍春; 혹은 용수龍樹)이 그 역사를 주관하는데 거느리고 일한 소장(小匠)들은 200 명이나 되었다. - 삼국유사 황룡사 9층 목탑

654
3월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라고도 하였다.>의 아들이다. - 삼국사기 29대 춘추

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 삼국유사 29대 춘추

654
년 태종 원년(654) 여름 4월에 왕의 죽은 아버지를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추봉(追封)하고 어머니를 문정태후(文貞太后)로 삼았다 - 삼국사기 김춘추 1 4

 

삼국사기는 춘추의 아비로 용춘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고, 삼국유사는 용수를 춘추의 아비라고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로 다르게 말을 하니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용수와 용춘을 철저히 분리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용수를 별도로 한번 언급하고 있고, 용춘을 한번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은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통설이 용춘(용수) 또는 용수(용춘)으로 이들을 같은 동일인으로 취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용춘(金龍春) 생몰년 미상. 신라시대 왕족. 일명 용수(龍樹). 진지왕의 아들이며 태종무열왕의 아버지. 어머니는 지도부인(知道夫人) 박씨이고, 부인은 진평왕의 딸인 천명부인(天明夫人) 김씨이다.
아버지 진지왕의 신분은 성골이나, 왕위에 재위한 지 4년 만인 579년에 폐위당하였으며, 용춘의 아들인 김춘추의 신분은 진골로 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표로 만들면 다음과 위와 같다.

 

 

삼국사기에 용수가 등장한 때는 6222등급인 이찬 내성사신이다. 삼국사기에 용춘은 629 8월 고구려 낭비성을 공격할 때 대장군으로 파진찬(4)이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도 용춘과 함께 대장군으로 부장군 김유신과 함께 참전하는 기록이다.

용수는 이찬(2)급이고 용춘은 629년에 대장군 파진찬(4)위에 해당한다고 기록한 것이다. 용수와 용춘이 동일 인물이라면 2 등위 이찬이 7 6개월 후에 4등위 파진찬이 되었다는 뜻인데 이는 국무총리가 장군이 되어서 전장에 참여하는 꼴이 된다. 또는 장군이 계급이 강등되어 일개 사병으로 참전하는 꼴이다. 이순신처럼 백의종군을 하려면 충분히 그만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

 

635년 용수 혹은 용춘이 이찬 수품과 함께 주군을 위무하고 있다. 만약, 용수와 용춘이 동일인물이라면 622년 이찬(2등급)에서 629년 파진찬(4등급)으로 강등되고 635년 이찬(2등급)으로  직위가 강등되었다고 승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결론은 김용수김용춘은 별개의 인물이라는 뜻이다. 또한, 용수는 내성사신과 황룡사9층목탑 관리자처럼 문에 치중한 인물이고 용춘은 파진찬 대장군으로 무에 치중한 인물이다.

 

삼국사기도 용수와 용춘을 별개의 인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635 1월 주.군을 순시하는 자가 용수인지 용춘인지를 알 수 없다고 하고 있으며, 용춘이 춘추의 아비인 것 같은데 용수라고 하는 기록도 있다는 것을 남겨 두었다.

 

일단 용수와 용춘은 별개의 인물임이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용수와 용춘이 형제라면 누가 형일까? 직급으로 봐서 용수가 형이고 용춘이 동생일 수 밖에 없다.

 

김용수의 아버지 진지왕(사륜/금륜)은 진흥왕(24)의 둘째 아들로 신라 25대왕 576~579년까지 재위하다 폐위되었다. 진흥왕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던 동륜태자의 아들 진평왕은 나이가 어려 왕이 되지 못하고 작은아버지 진지왕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성인이 되자 진평왕을 지지하는 세력이 진지왕을 몰아내고 왕권을 회복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왕의 꿈처럼 진평왕이 무능한 왕은 아니다. 기록에도 진평왕은 기골이 장대하고 고구려가 북한산성을 공격하자 직접 전쟁을 수행할 만큼 강골기질을 갖고 있었다.

 

어쨌든, 진지왕이 죽은 때는 비형랑과 도화녀의 전설 때문에 폐위된 이후 얼마간 생존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도 김용수나 용춘은 비형랑보다는 형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용수 용춘 형제는 진지왕이 폐위되고 비형랑이 태어나기 전 늦어도 579~582년 이전 임을 알 수 있다.

 

<대왕의 꿈>이나 MBC <선덕여왕>박창화의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고 있지만, 선덕여왕은 퓨전사극이기에 화랑세기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특히 미실을 등장시킨 점은 선덕여왕 드라마가 정통사극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반면에 KBS <대왕의 꿈>은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여 몇몇 인물과 화랑의 체계를 따 왔지만, 미실도 등장하지 않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실 화랑세기는 박창화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창작한 요즘에도 보기 드문 정교한 소설이다.

 

화랑세기는 용수와 용춘을 별도 인물로 보고 있고, 진평왕의 딸 천명이 용춘을 좋아했지만, 용수와 혼례를 하고 잠자리는 용춘과 했다며 김춘추를 김용춘과 천명공주의 아들로 만들었다. 그리고 용수가 일찍 죽자 동생 김용춘과 합법적으로 결혼시키고 김춘추를 김용춘의 자식으로 만들었다. 결국 김춘추를 생물학적, 법적으로 김용춘의 자식으로 만들었다. 화랑세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교묘히 절충해서 두 사서에 위반되지 않게 창조를 하고 있다. 소설로서 이보다 정교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그렇다면 김춘추는 김용수김용춘 중 누구의 아들일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보더라도 누구의 자식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김춘추의 어머니 천명공주만이 아는 사실일지 모른다. , 김용수김용춘과는 직급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을까? 622년 이찬(2)이 된 용수와 7년 후인 629년 파진찬(4)급으로 나온 김용춘이니 말이다.

 

진흥왕은  534년생으로 7살인 540년에 왕위에 올랐다. 진평왕의 아버지 동륜태자는 566년 태자가 되었다가 572년 죽었다 진평왕은 57915살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니 진평왕은 565년생이다. 진흥왕 32살에 원손인 진평왕(백정)이 태어난 것이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 564년생으로 추측된다. 김서현629년 용춘과 같은 대장군이지만, 직급은 1단계 높은 소판(3등급)급 대장군이었다. 김서현과 진평왕은 비슷하거나 동년배이지 않았을까? 더불어 김용수는 진흥왕의 둘째인 진지왕(사륜/금륜)의 아들이므로 진평왕(백정)이나 김서현보다 어린 565년 이후에 태어났을 것이다. 결국엔 김용춘김서현보다 나이가 한참은 적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천명공주는 580년 전후에 태어났을 것이다. 602년생 김춘추와 천명공주의 나이를 추측할 때 아버지나 삼촌뻘인 김용수보다는 비슷한 연배의 김용춘와 결혼하고 김용춘이 김춘추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왜 대왕의 꿈의 시대배경은 609년으로 춘추나이 7~8살인데 채상우(99년생)으로 14살 중학생이 유치원 아역을 하고, 천명공주는 많아봐야 20 중후반 인데 조경숙은 1962년생으로 51살이 나오고, 김용춘은 많아봐야 30대 초반 밖에 안되었을 텐데 정동환:1949년생 64세가 나올까? 

 

좀더 개연성 있는 사극보기가 그렇게 힘든 것인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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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ornets 2012.09.24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평왕이 565년생이라는 기록은 어디에 있나요?

대왕의 꿈에서 김춘추를 진골이라고 한다.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를 때 성골남자가 없어서 선덕이 왕위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김춘추를 진골출신의 왕족으로 왕위에 올랐다고 하는 게 그 동안의 통설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버려야할 통설일뿐이다.

 

역사스페셜에서는 김춘추도 성골로 만들어 만들어 버렸고,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를 때 김춘추를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직접적인 왕권과 관계가 없고 귀족간의 암투 때문이라고 얼버무린다 

김춘추가 성골인지 진골인지는 알 필요가 없다. 김춘추는 진지왕의 아들인 김용춘의 아들이다. 사실 김춘추가 김용춘의 아들인지 김용수의 아들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김용춘김용수는 동일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진평왕의 딸 천명공주의 아들이다. 왕족과 왕족간의 자식이니 김춘추 또한 왕족이다.

 


김유신 또한 대대로 신라 왕의 외손이고 가락국의 왕손이다. 김무력은 진흥왕의 딸 아양공주와 결혼했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은 진흥왕의 동생 숙흘종의 딸인 만명과 결혼해서 왕족이다. 이미 김유신 이전시기부터 왕족인 진골출신이다.

 

삼국사기에도 분명히 1골과 2골을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해석하는 자들이 자의적이 되어 버린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살펴봐도 <진지(금륜)>이 폐위되었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이 <족강>이 되어 <진골>이 되었다고 언급이 되어 있지도 않고, 춘추 이전의 왕들과 춘추이후의 왕을 구분하는데 단순히 2분법적으로 나누고 있을 뿐이다.

만약, <춘추>이전의 왕들을 <성골>로 나눴다면, 눌지이후의 왕들은 모두다 <진골>일 수 밖에 없다. 그이유는 눌지이전의 왕은 실성왕이다. 눌지가 고구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실성왕을 폐위시키고, 쿠데타를 성공시켰다.

문제는 눌지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자비왕은 실성왕의 딸인, 눌지왕비의 소생이다. 자비는 곧 폐위된 왕의 외손이 된다. 

통설에 따르면, 실성왕녀인 눌지왕비는 <족강>이 되어 <진골>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용춘의 예에 따라 그의 후손인 <자비왕>도 마찬가지로 <진골>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눌지 자신은 성골 진골 그런게 무슨 개뼈다귀냐는 듯이 상관하지 않고, 자비왕(눌지/실성왕녀)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458년 자비 마립간(慈悲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눌지왕의 맏아들로 어머니 김씨는 실성왕의 딸이다. - 자비왕 원년


또한, 진흥왕도 법흥왕의 아들이 아니다. 그렇다고 법흥왕의 형제도 아니다. 그러니 성골로서 왕이되지 못했다. 지증왕도 성골로 왕위를 이어 받지는 못했다. 단지 왕족으로서 전왕인 소지(비처)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받았을 뿐이다.

진평왕은 머리가 어떻게 되서 자신의 딸인 천명공주를 폐위된 진지(금륜)의 자식(용수와 용춘)에게 시집을 보냈겠는가? 천명을 족강시키기 위해서? 아니면 전왕의 자식들과 화해할려고?

그런데 진덕왕 이전 시기는 성골이고 태종무열왕(김춘추)이후에는 진골이라는 설이 합리적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역사연구의 결과라는게 증명이 된다.

단순히 성골은 <성조(聖祖>나 <성조(聖朝)>의 다른 말이다. 왕보다 성스러운 존재가 어디에 존재하겠는가? 그런데 갑자기, 왕이나 왕의 자제를 성골 밑의 진골이라고 생각하는 발상자체가 웃기는 것이다. 좀더 정확한 <성골>의 의미는 현재 왕의 피와 살과 뼈를 이어 받는 자이다. 또한, 삼국사기가 인용한 당나라 영호징의 <신라기>에도 <왕족>을 <1골>이고, 귀족을 <2골>이라고 이야기 했다.

당나라 영호징(令狐澄)의 신라기(新羅記)에 말하기를 『그 나라의 왕족은 제1골(第一骨)이라 하고 나머지 귀족은 제2골(第二骨)이라 한다.』- 654년 3월 진덕왕 8년

영호징의 신라기에도 왕족은 제1골인 진골이고, 나머지 귀족들는 제2골일 뿐이다. 귀족인 2골은 6두품에해당하는 6부의 귀족들이다. 성골은 누구냐고? 당연히 현재왕의 형제나 뼈를 이어 받는 왕자와 공주들이다.

그러니 당연히 춘추는 진평(백정)이나 선덕(덕만)이나 진덕(승만)의 피와 살을 이어 받지 못했던 왕족으로 왕이 되었다. 그리고 춘추 자신이 <성골>이 된것이다. 문무는 김춘추왕의 뼈를 이어 받았으니 당연히 <성골>로서 왕이 된것이다.   신라사 연구의 가장 커다란 통설의 실패작은 <성골>, <진골>을 구분하는데 있다. 

잘못된 통설로 인해서 삼국시대 특히 신라의 드라마 마다 성골이 어떻네, 진골이 어떻네 하는게 얼마나 얼척없는 짓인지 모르겠다.

드라마 <대왕의 꿈>에서 김춘추가 왕의 자질을 보여주었다며 진골인 김춘추를 진평왕의 양자로 만들어 왕위를 물려주어야 한다고 설왕설래가 심하다. 김춘추를 양자로 입적하자는 설은 재미있기는 하지만,<대왕의 꿈>에서나 역사적인 기록에서도 어릴적 김춘추가 왕의 자질을 보여준적은 없다.


오히려 덕만공주는 지기삼사라는 3가지의 영특함을 보여주고 왕의 자질을 검증받은 적은 있지만 말이다. 최소한 드라마 상으로라도 김춘추가 왕의 자질이 있음을 보여주기 바란다. 문제는 드라마 대왕의 꿈에서 나온 김춘추는 버르장머리 없는 모습만 무수히 보여주기만 했을 뿐이다.

사실 글쓴이(갓쉰동)은 사극에서 특히 정통사극을 표방하는 KBS에서 이렇게 허술하게 드라마를 만들줄 꿈에도 몰랐다.

김유신이 화랑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가야파에 불과한 김서현이 만명과 사통하자 만명부인과 인연을 끊었다고 말을한다. 그래서 김유신도 거부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유신은 595년생이다. 김유신은 20개월만에 세상의 빛을 밨다고 한다. 아무리 김유신이라고 해도 임신기간 40주를 넘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김유신의 임신기간이 20개월일 수는 없다. 합리적인 해석은 만명부인은 임신중독에 의한 비만이 되고 사산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만명부인이 실제 비만형일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김유신은 김서현과 만명의 첫째자식은 아닐것이다.
 


드라마 대왕의 꿈에서는 새파란 화랑 김서현이 만명과 사통하고 인정받지 못하자 594년에 김서현과 만명이 도망쳤다고 설정되었지만, 위의 임신 20개월이라는 사실로 보아 593년경에 도망쳤을 것이다. 김서현은 564년생이다. 594년이면 김서현의 나이는 한국나이 31살이다. 드라마 대왕의 꿈에서는 김서현의 나이는 김유신과 비슷해 보인다. 반면에 백제 무왕은 580년생으로 609년이면 29살에 불과한다. 늙은이로 나온다. 기본적인 설정은 지키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숙흘종이 반대한 이유는 김서현이 가야파였기 때문일까? 답은 김서현에게 있다. 김서현이 도망친 년도에 상관없이 김유신이 태어난 때 김서현의 나이는 한국나이로 30살쯤이 된다. 현재야 30대에 결혼하는 경우가 많지만 과거에는 여자는 생리를 하기 시작하면 결혼상대를 구했고, 남성도 2차 성징이 나타나는 15세 전후에 결혼을 시켰다. 그러니 김서현은 나이가 많아도 너무나 많다.

 



당시의 기준으로 김서현은 만명에 비해서 아버지 뻘이지만, 김서현은 진흥왕의 외손이고, 만명은 진흥왕의 조카다. 서열상 만명이 김서현보다 높은 서열이다. 이모뻘인 만명과 조카뻘인 김서현이다. 

김서현이 만명을 만난때에는 김서현은 이미 결혼을 했거나 사별한 상태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아마도 김서현에게는 김유신 말고도 김유신위 형제들이 있었을 것이다. 반대이유도 가야파보다는 유부남에 나이많고 손자뻘인 김서현을 탐탁치 않았다고 보는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611년 겨울 10월에 백제 군사가 가잠성(椵岑城)을 포위하여 100일이나 지속되었다. 현령(縣令) 찬덕(讚德)이 굳게 지켰으나 힘이 다하여 죽고 성은 함락되었다.



 드라마상 시대배경은 609년경의 일인데 또다시 김유신은 611년 가잠성 전투에 참여한다. 드라마 작가들, 특히 사극 작가는 역사서를 기본적으로 봐야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극작가들은 역사책보기보다는 이전에 나온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고 이전과 다른 설정을 한다. 문제는 이전 작가가 만들어 놓은 틀을 조금만 수정해서 아이디어를 도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전 드라마의 잘못이 만드는 드라마 마다 반복된다. 김유신의 가잠성 전투 참여는 MBC 선덕여왕을 빼낀 계백에서 빼온 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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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ornets 2012.09.16 1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왕이 580년생이라는 건 어디에 나와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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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의 꿈에서 숙흘종이 김서현과 만명의 관계를 반대한 이유를 가야계 진골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에는 자식이 없다며 김유신의 화랑가입도 반대를 한다. 그렇다면 이는 사실일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사실처럼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 잘못된 환상이 부른 파국일 뿐이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은 김무력과 아양공주(진흥왕의 딸)의 아들로 왕실의 외척이다. 숙흘종은 진흥왕의 동생이니 김무력은 숙흘종에게는 조카사위가 된다. 그러니 숙흘종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김서현이 이모뻘이 되는 만명(숙흘종/만호)를 사랑하는 것도 용서가 될수도 있다.

더군다나 진골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논리는 더더욱 문제 투성이다. 오히려 김서현이 숙흘종보다 진흥왕의 직계에 가깝다. 김서현 가문은 금관가야 출신으로 대대로 신라왕족과 결혼동맹을 맺고 있었다.
 
<대왕의 꿈>에서 김유신은 자신을 금관가야 왕족 출신이라며 자존감을 내세우고, 화랑들은 김유신이 가야계이고 아버지 김서현이 만명부인을 보쌈해서 숙흘종이 반대하니 화랑이 될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어린 김유신이 자신을 금관가야 출신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냥 가야나 가락이나 남가야나 임나인으로 생각해야 정상이다. 왜냐하면 금관경, 금관가야의 최초기록은  680년 가야군에 금관소경을 설치했다. 그러니 어린 김유신이 금관가야를 입에 담을수 없다. 금관이란 지명은 김유신 사후에 생겼으니 말이다.
 


가야국 김수로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에서는 김해관이란 상단도 나오니 한국 사극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극의 기본은 사료를 바탕으로 한 고증과 개연성이다.

신라시대 성골은 왕의 직계친인척 밖에 없다. 그 이외 방계왕족들은 진골일 뿐이다. 김춘추가 진골인 이유는 진평왕과 하등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진지왕(전지)의 손자이지만 김춘추는 진평왕의 딸인 천명공주의 아들이다.

덕만공주나 천명공주는 성골이지만, 천명공주의 아들 김춘추는 진골이다. 마찬가지로 김유신도 진골이다. 김춘추가 왕이 되는 순간 김춘추는 성골이 되고, 그의 아버지 김용춘(용수)도 성골이 된다. 당연히 김춘추의 아들들도 성골이 되는 것이다. 진덕왕 때 성골이 없다는 이야기는 진덕여왕에게 아들도 딸도 없었기 때문이다.

진덕왕이전 시기를 성골시기이고 태왕무열왕 이후 진골시대라고 분리하는 것은 허구적 논리로 성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라 혁거세 이후 석탈해가 성골이 될수 없는데 성골이 되고, 김씨계 최초의 왕이 되는 김미추 이사금 또한 성골이 될 수 없는데 왕이 되고 성골이 되었다.

그동안 알려진 숙흘종이 김서현을 반대한 이유가 신분상으로 김서현은 가야계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숙흘종 자신의 동생(?)인 아양공주가 이미 김서현의 아버지 김무력에 장가를 갔고, 김무력은 백제 성왕을 죽이는데 일등공신이였다.

숙흘종이 반대한 이유는 김서현의 신분때문이라고 하지만, 단지 김서현의 나이와 결혼때문이다. 김서현은 564년생이다. 김서현이 만명과 도망친 때는 593년경이다. 당시 김서현의 나이는 30살이였다.

당시 신라시대 30살이면 손주도 볼나이다. 그러니 김서현은 장가를 갔어도 한참전에 갔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그러니 김서현은 이미 장가를 갔었고, 김서현이 사별을 했던지 만호가 후처가 되기때문에 왕족으로서 후처가 되는 것을 반대 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대왕의 꿈>의 시대배경은 606년이다. 김춘추 나이 5살(만 3~4살) 똥오줌도 제대로 가리지 못할 나이다. 그런데 키는 기골이 장대하고 말주변은 20대이다. 그리고 비형랑은 김춘추 아버지 김용춘의 동생인데 작은아버지에게 야자를 까고 있다. 최소한 개연성 있게 만들어주면 안되겠나? 김춘추가 무슨 후레자식인가? 왕도 자신보다 계보가 위이면 야자를 하지 않는다. 또한, 신하에게도 야자를 트지 않는다. 김춘추가 무슨 개망나니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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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kmc10314.tistory.com BlogIcon 체리블로거 2012.09.10 07: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골중에 사실 제대로 역사에 근거해서 만들어진게 없긴 하죠...
    그나마 예전사극들이 조금 덜했다고 할까요...? ㅎ

  2. hornets 2012.09.10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타 좀 줄여주세요..^^

  3. 2012.09.11 0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신라 삼한일통의 초석을 다진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일대기를 다룬 대왕의 꿈이 KBS에서 200억 대작으로 시청자의 소중한 시청료로 만들어 지고 있다.

 

대왕의 꿈 1회에서 김춘추(최수종)김유신(김유석)의 결투신이 방송되었다. 그리고 606년 백제가 만노군(진천)에 침공해오자 어린 김유신이 백제 장군을 몰아내는 신이 스팩타클 장구하게 그려졌다.

최수종은 또다시 사극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최수종의 사극은 너무나 뻔한 캐릭터다. 고려왕건이 신라 김춘추가 되고 해신 장보고가 된다. 오죽하면 고려를 건국한이는 최수종이라고 하겠는가? 배우에게 대단한 칭찬일수는 있지만 최수종에게는 짐이되기도 한다.

글쓴이(갓쉰동)은 누가 주인공이 되던 상관하지 않는다. 글쓴이가 주로 보는 것은 작가와 연출자의 개연성 있는 스토리와 역사의 이해도 일뿐이다.

다만, 같은 패턴에 같은 캐릭터를 고수한 최수종의 연기는 식상하기는 하다. 충분히 KBS는 사극할 만 사람이 최수종 밖에 없냐는 비판을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어쨌든, 김유신은 화랑의 상징이라고 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있다.

김서현의 명에 의해서 신라 서나벌(경주)로 온 김유신은 천관녀를 희롱하던 화랑들을 무찔려 구하고, 화랑이 되려 하지만 신분과 어머니 만명(숙흘종/만호)과 김서현의 도주로 인한 외할아버지 숙흘종(입종갈문왕의 아들, 진흥왕의 동생)의 반대로 화랑이 되지 못한다고 나온다. 
 

그런데 연예부 기자가 대왕의 꿈이 대작으로 정통 명품사극에 명불허전이라며 칭찬하기 바쁘다.

 

 

 

이날 방송은 역사 운명의 소용돌이에 함께 휘말릴 김춘추와 김유신 만남을 조명했다. 캐릭터들이 놓인 상황을 역사적 근거에 기초해 재창조한 대본은 탄탄했고 어디까지나 김춘추와 김유신 집중 조명한 연출력은 남달랐다.

 

고증을 통한 신라시대의 의상과 장신구 등도 시청자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 기사중 일부 -


 역사적 근거에 기초하여, 고증을 통한 신라시대의 의상과 장신구란다. 도대체 역사적 근거에 기초했다는 건지 모르겠고, 고증을 통한 신라시대의 의상과 장신구가 나오는지 알 수 가 없다.

 

연예부 기자들이 말한 신라시대 고증과 역사적인 근거를 찾아보자.

 

김유신 595년생이다. 그렇다면 606년 이면 김유신의 나이는 한국나이로 12살이며 초등학교 5학년에 해당하고 만으로 10~11살에 불과하다. 이때 김춘추의 나이는 602년생으로 한국나이로 5살이고 만나이로는 3~4살에 불과하다.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603년 북한산성 전투에 김유신을 전투에 참가시킨 적도 있으니 양호하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602년 전투에 참가시켰으니 양호하다고 해야하나?  어디에 역사적 근거가 있는가? 더군다나 5(:3~4) 꼬마가 김유신과 맞장을 까고 증조할머니인 사도태후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나 있겠나? 아무리 김춘추와 김유신을 띄우고자 하더라도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이성계가 낙엽으로 강을 건넜다고 해도 믿을 판국인가? 적당히 해야 한다.

 


김춘추가 쓰고 있던 왕관은 신라 중기시대에 출토된 날출()자 신라금관 중에서 단이 가장 많은 4단 가지를 가지고 있다. 더불어 김춘추의 허리춤에는 신라릉에서 출토된 옥대를 차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두고 신라시대의 왕의 복식을 복원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글쓴이(갓쉰동) 이 볼 때는 이상하고 이상하다
 



진평왕, 선덕왕, 진덕왕은 옥대를 차고 있을 수가 있다. 삼국유사에 진평왕의 천사옥대 이야기가 나오고 천사옥대는 신라의 3대 보물 중에 하나였다고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전하고 있다.

 

경명왕 5(921) 봄 정월에 김율 (金律)이 왕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신이 작년에 사신으로 고려 에 갔을 때 고려 왕이 신에게 물어 말하기를, ‘신라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으니, 장육존상(丈六尊像)과 구층탑(九層塔) , 성대(聖帶)를 이른다고 들었다. 장육존상과 구층탑은 아직도 있으나, 성대가 지금까지도 있는지는 알지 못하는데, 그러한가?’라고 하였는데, 신은 답하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이를 듣고 여러 신하들에게 물어 말하기를, 

“성대는 어떤 보물인가?”라고 하였으나, 아는 자가 없었다.

 

이때 황룡사(皇龍寺) 90세가 넘은 승려가 있었는데, 말하기를 

“제가 일찍이 그에 대해 들었는데, 보대(寶帶)는 진평왕 (眞平王)이 착용하던 것이라고 합니다. 대대로 전해져 남고(南庫)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마침내 창고를 열도록 명하였으나 찾을 수 없어, 다른 날 재계(齋戒)하여 제사를 지낸 이후에 그것을 찾았다. 그 성대는 금과 옥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매우 길어 보통 사람들이 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그런데 KBS는 고증을 하였다고 한다. 웃기는 장면은 김춘추가 금관을 쓰고, 옥대를 차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654년 진덕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김춘추가 천사옥대에 해당하는 옥대허리띠를 차고 있을 수 없고, 김춘추가 황금관 쓰고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김춘추가 진덕왕 시기 법흥왕 이후 자리잡았던 신라 복식을 모두 당나라 식으로 바꿔 버렸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648년 진덕왕 2[] 춘추는 또 장복(章服)을 고쳐서 중국의 제도에 따를 것을 청하자 이에 내전(內殿)에서 진귀한 옷을 꺼내어 [] 춘추 와 그를 따라 온 사람에게 주었다. 조칙(詔勅)으로 [] 춘추 에게 관작을 주어 특진(特進) 으로 삼고, 문왕 을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으로 삼았다.

 

649년 진덕왕 3년 봄 정월에 비로소 중국의 의관(衣冠)을 착용하였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복식이 바뀌자 일본서기에는 왜에 사신으로 온 신라사신에게 신라의 복식이 당복식으로 바뀌자 비아양하기까지 했다. 니들 나라는 자존심도 없냐? 당복식으로 바꿔 스스로 당나라 속국이 되려하느냐고 말이다.

 

김춘추 스스로 당에 들어가 신라 복식을 당나라 복식제도로 바꾸었는데 김춘추가 왕이 되자 다시 황금관을 쓰고 옥대를 찼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합당하다고 생각되는가? 그리고 그것이 신라시대 복식과 장신구를 고증을 통해서 재현했다고 할 수 있는가?

 

조선고종은 조선복식을 바꾸어 스스로 서양식 복장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후대에 대한제국 순종의 복식을 세종시대의 복식으로 재연한다면 이는 합리적이지 않다.

 

1977박정희가 경주 남산 밑에 통일관을 만들고 통일의식을 고취하고 했다. 그리고 김춘추(태종무열왕), 김법민(문무왕), 김유신(흥무대왕)의 영정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모두다 신라금관을 쓰고, 옥대를 하고 있다.

뼈속까지 친일매국이였던 박정희가 혈서를 쓰고 일본제국군이 되었다고 해서 일본 제국군복을 입고 대한민국 헌법질서를 파괴한 자가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헌법위에 손을 얹고 대한민국 대통령 선서를 하지 않고 양복을 입고 선서를 했다. 박정희가 군복을 입고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군사반란을 일으켰다고 해서 군복을 입고 대통령선서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드라마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유물을 전시하고 영정까지 만들었다고 하는 경주 통일관의 영정을 비롯해 전국에 깔려있는 김춘추 영정들은 모두 불태워버리고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아무생각없이 고증을 했다며 이미 진덕왕때 바뀐 복식을 대왕의 꿈처럼 황당하게 김춘추가 신라금관과 옥대를 찼다는 황당한 허구가 닥치고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무지는 사라질 것이다. 김춘추, 김유신, 김법민의 영정이 불태워저야 대한민국 역사가 바로설수  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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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모 2012.09.10 0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대는 누구신지
    민주진보당 입닙까?

  2. BlogIcon 경상도인 2012.09.10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거가 다가오니 서서히 경상도,전라도 말이 나오는 구먼......

  3. .....ㅡ 2012.09.10 1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의 내용에는 저역시 공감하지만 밑에 댓글 다신 분의 말씀은 조금 그렇군요 태종 무열왕 김춘추가 삼국통일과정에서 당나라를 끌어들인 점에서는 잘못했지만 결국 당나라를 몰아냈으며 외교 과정에서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당나라의 속국을 자처했다는 것은 좀 그렇군요 아래 댓글을 다신 분이 하신 말씀은 태종 무열왕의 모든 업적을 부정하며 우리 역사를 부정하는 것 밖에 되질않습니다 거기다 경상도니 김씨니 이런 말씀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것으로 밖에는 볼 수없네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이런걸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

    • moosou 2012.09.12 0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봐요 김춘추가 삼국통일 한거 빼고 이렇다 할 업적이 있습니까? 삼국통일도 다 하지 못했죠 고구려 치지도 못하고 사망 했으니.
      김춘추는 그냥 의자왕에게 복수하려고 눈이 뒤집혀 당나라 끌여들여 백제 멸망 시킨거지 애초에 삼국통일의 목적도 아니었죠.
      백제도 예식이라는[당시 웅진성주] 배반자 덕분에 운좋게 의자왕 사로잡아 멸망 시킨거죠.
      김춘추의 업적이 있다면 좀 풀어서 알려 주시렵니까?

  4. 김씨 2012.09.11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는 좀 제대로 알고 지껄이세요

    진평 사후에 두 여왕때 신라국력 개판납니다
    왕위싸움에 군사력도 엉망,
    선덕때 김춘추 딸 고타소 죽어서 김춘추 열받아서 고구려에 원병 청하러 갑니다
    백제 친다구요, 댓가없이 원병 달라고 하니 연개소문이 옥에 가둡니다
    뒤에 뇌물쓰고 신라가 먹은 고구려땅 되돌려 준다고 허언을 해서 옥에서 탈출 한 다음
    그 길로 당나라 가서 고구려좀 쳐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고구려는 그거 다 막아내고,
    그동안 신라는 백제를 건들여보지도 못하고,
    김춘추 왕위에 오르고 나서,, 고구려땅 전부를 당에게 준다는 약속하고
    나당연합으로 백제 멸망시키는거에요
    백제 멸망후 1년뒤 김춘추 죽어요
    백제복위 세력도 감당 못해서 당나라군이 백제 잔여세력까지 없애고,,
    당나라가 고구려땅 뿐 만 아니라 백제 신라까지 넘보자
    안승 주도의 고구려 부흥세력에게 신라내 망명정부를 세워주면서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세워주고 당나라 몰아내라고 시키는거에요,, 그래서 그나마 그 덕에 백제영토를 당에게 안뺏긴거구요,

    헛소리 지껄이는 분들은 제발 좀 역사 공부좀 하고 헛소리를 하세요,

    우리민족이 위기상황에서 외세에 의존하는거,,신라가 밥먹듯이 하던거에요
    쪽바리 쳐들어오자 바로 광개토대왕에게 구조요청하고,,
    조상이지만 부끄러운건 부끄러운거고 인정해야하는겁니다

    제가 경주김씨라서 이런말 하는거에요,

    • 역사좀 제대로 2012.09.11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타소 죽였다고 백제를 멸망시키겠다 는 일념으로 왕이 되고 당나라와 손을 잡은 거임..원한을 잠시잊고 숲을 보는 안목이있었다면 대한민국영토가 한반도 절반만 있지는 않았을 거다

    • 김씨 2012.09.11 2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타소죽어서 그런거라고 써놨는데요

  5. moosou 2012.09.11 2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우 공감 됩니다.
    그런데 당나라 힘입어 통일하고 통일후에 당나라 속국으로 만든 당나라 개 였던 김춘추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토록 영웅시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김씨들 경상도인들...

  6. 2012.09.13 2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심한 김춘추새끼

  7. 2012.09.13 2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심한 김춘추새끼

  8. 2012.09.22 0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9. Favicon of http://cheaplouissvuittonhandbags.com/ BlogIcon Discount Louis Vuitton Handbags 2012.11.22 1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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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Favicon of http://canadagooseonliner.com BlogIcon Baby Reese Bomber 2012.11.27 1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 참 우습다 정말 두렵다

  12. 대신라혼 2013.01.30 04: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제넘게 역사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현장이네요. 전라도 왜구 세력의 후손인지, 이주해온 중국 백제의 유전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이 되었건 한민족과는 관계가 없는 집단이지 싶은데, 역사에 대해서 왈가 왈부 하고 싶으면 최소한 기본적인 고고학 유물이나 접하고 나서 썼으면 하는 생각을 전해봅니다.

    박정희가 아무 이유없이 신라의 3신을 설정을 해서 영정을 만들어 뒀을거 같습니까? 이주해온 중국 한족 백제를 박살을 내서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전라도의 전방후원형 세력인 임나를 신라의 진흥왕이 영구히 멸망시켜, 김춘추가 일본에 갔을 때, 일본에서는 임나의 조를 면제해주기로 했죠.

    물론 왜 임나의 조를 면제해줬는지는 일본서기에는 전하지 않죠. 추정에 근거하면 당시 일본내부의 소가씨의 난이 한참일 때, 고대 신라인과 한 혈통이었던 일본의 야요이인들을 도모해서 천황가를 도와 소가씨의 난을 제압했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만 있을 뿐이죠. 당시 천황가의 가장 큰 골치가 내부 반란 문제였으니 말입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일본이 이유없이 한반도의 전라도 임나를 멸망시킨 것에 대한 사죄의 의미를 담고 있는 임나의 조를 면제할 이유가 없다라는 것이죠.

    고고학 유물을 왜 보라고 하는지 궁금하지요? 백제 한성 백제박물관에 가서 거기서 나온 모든 고고학 유물들을 접한 뒤에, 중국의 남경 박물관에 가서 유물을 딱 접하고 오면 됩니다. 그러면 백제라고 하는 국가가 뭔지 정확하게 알게 될겁니다.

    일본의 3대 신기인 칠지도에 명문이 하나 등장하죠. 다른 내용은 다 접어두고, 태화 4년이라고 하는 명문이 나옵니다. 중국 동진의 명문이죠. 왜 중국 동진의 연호가 칠지도에 새겨져 있으며, 거기에 두개의 나라, 즉, 백제와 倭가 존재하는지 궁금하지요? 궁금할거 없습니다.

    4세기 이후부터 한반도와 일본에는 중국남조의 유물이 대거 출현하는 공통점이 나오기 때문이죠. 그리고 백제와 倭는 중국 동진 이후로 60간지만 출현을 시키죠. 귀하의 수준이나 식견으로 고대사를 이야기 하는건 한민족사를 모욕하는 것과 같은 처사라는 개인적인 소견을 전합니다. 특히 그 몸의 혈통에 임나의 피가 흐르고 있는 주제라고 한다면 더더욱 기가 막히죠.

    광개토 대왕의 신라구원전에 의해 전라도의 옹관묘 세력은 4세기 말에 그 흔적을 감춥니다. 그리고 한성백제가 멸망한 직후에 전방후원형 세력이 등장을 하게 되고, 이 전방후원형의 등장으로 웅진백제라고 하는 국가가 갑자기 출현을 하죠. 역사에서 사라진 백제가 또 등장을 하는 희한한 현상이죠.

    그리고 이 전방후원형은 신라의 진흥왕에 의해 몰살을 당하는데, 이 당시에 있었던 전쟁이 그 유명한 "관산성 전투"입니다. 백제와 倭, 임나 3국이 신라에 의해 몰살을 당한 전쟁이기도 합니다. 관산성 전쟁 이후로 전라도의 전방후원형은 자취를 감추고, 이후부터는 백제, 신라 누구의 유물도 출현시키지 않습니다. 즉, 사람을 죽이기 위한 의도에서 전쟁을 벌였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재미있지요? 이게 역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준 안되는 논리로 김춘추나 김유신, 신의 레벨에 입문한 사람들의 능력을, 귀하의 수준으로 재단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들이 왜 신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었는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오게 될것이니,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되겟습니다. 그리고 귀하의 몸속에 흐르는 하등한 유전자와 혈통에 대한 괴리감도 한번은 맛볼 날이 오게 될겁니다.

    신라는 삼국중 가장 늦게 중국식 연호와 관등을 받아들여, 김부식 조차도 고구려와 백제가 일찍부터 중국을 받들어왔는데, 신라가 참람되게 중화를 받아들인점을 괘씸해하기도 했죠. 가장 늦은 중화가 귀하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되어지는가 봅니다. 만년 중국의 속국으로 살아오며, 조공대국으로 연명해온 과하마 기마군단을 운용한 고구려와 중국 그 자체와 완전히 꼭 같은 백제에 대한 귀하의 비난의 논조가 어떨지가 낼름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 에라잊등신 2013.02.16 1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W고구려가 중국을 받들엇다는건 무슨개소리냐
      중원사상을 철저히 밟아버린게 바로 고구려다
      어디서 짱개 쪽발이가 역사좀 아는척 설치노
      난 경주김씨 수은공파 울산사는데 신라가ㅅ후리하고 빙신인건 인정해라 마

사라진 문노와 미실이 버린 자식 비담?

(c) mbc 사극 문노(정호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그동안 사라진 문노(정호빈)와 숨겨둔 카드 비담이 카리스마 넘치게 공개되었다. 문노는 병이 걸린 마을을 구하는 선인으로 등장한다. 비담(김남길 역)은 문노가 키우는 제자로 나온다. 

(c) mbc 식탐비담(김남길)

<선덕여왕>에서 비담의 성격을 게으른 듯 하면서 내면을 숨기는 심계가 있지만, 식탐에 집착하는 인물로 설정되었다. 또한, 덕만을 두고, 비담과 유신의 통속적인 사랑의 삼각관계를 암시하였다.

자신의 무공을 속이면서까지 서현의 부하들에 매를 맞지만,  바구니 속의 닭고기가 망가지자,  숨겨진 무공을 들어내며 복수할 것을 다짐하고, 뒤를 쫓아 간다. 그리고 우연히 위기에 처한 덕만을 구하게 된다.

덕만을 구하고자 한 목적이 아니라.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덕만이 구해지는 것이다. 기존의 영웅담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칼있으마 비담(김남길)

그렇다면, 미실과 진지왕의 아들로 등장하는 비담은 언제 태어난 것일까? 드라마 선덕여왕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진지왕이 폐위되기 전에, 미실은 진지왕의 아들인 비담을 낳았다.

진지가 약속과 다르게 미실을 왕후로 받아 들이지 않자. 자신의 이모인 진흥비인 사도(옥진/영실)과 함께 진지를 폐위하고, 아들인 비담을 버리는 것으로 설정했다. 진지(금륜)의 비이며, 용춘의 어머니가 되는 지도는 미실의 이종사촌이다. 그러니 용수.용춘과 비담은 아버지는 같고, 어미가 다른 이복형제간이다. 권력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는 사실이 또한번 증명된다.

그러니 비담은 진지왕 폐위시인 579년 직전에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버려진 비담을 사라진 문노가 키우게 되는 것이다.


화랑세기에는 미실과 설원랑 사이에 태어난 보종을 미실의 막내아들이라 했다. 보종의 탄생비화는 처음 미실이 진평과 관계를 가지려 했으나 진평왕이 너무 어려 미실을 따를 수 없었다. 이에 설원랑과 관계하여 보종을 낳았다.

16세 풍월주 보종(백도빈)

미실은 보종을 자신의 막내아들로 끔찍히 여겼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도 보종을 끔찍히 아끼는 듯한 모습을 여래사 사건으로  부상을 당한 보종에, 미실은 애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보종은 진평왕 즉위 초년인 580년 이후에 태어 난 것이 된다. 

미실이 보종을 끔찍히 사랑했듯이 보종 또한 어릴때 부터 어머니인 미실을 따르며, 어머니가 죽으면 자신도 따라 죽을 듯이 대했다. 미실이 죽고, 수 많은 저작물을 남기자, 이를 보종이 보관하고 정리하였다고 한다. 화랑세기의 수많은 내용의 근거가 미실이 저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였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어찌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비담은 보종의 형이 되는 것이다. 사실 비담에 대한 기록은 망실되어 알 수 없다.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이찬 칠숙이 631년 반란을 일으키지만, 9족이 멸하고 칠숙의 가계가 쑥대밭이 된다. 비담도 똑 같은 이유로 기록이 망실된 것이다.

이전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사실은 유신과 보종 너무나 친한 사이 글에서 선덕여왕에서 와는 다르게 보종은 진성공자로 착하고, 유하고, 선함의 대명사 였고, 유신이 아플때에는 그의 치료를 해주는 주치의 역할까지 했다고 이야기를 했다.

비담은 미실과 금륜(진지)의 아들일까?

진지왕(임호)

그렇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왜? 비담을 미실의 아들로 설정을 하였을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비형랑은 전지왕이 죽은 후 귀신이 되어 도화녀와 관계를 맺어서 비형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진지왕(금륜)이 미실과 사도(진흥비)에 의해서 폐위된 후 별궁에 기거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별궁에 있는 궁녀 사이에 비형랑을 낳았다. 비형랑은 진평왕이 아들처럼 길렀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비담과 비형랑은 '비'자 돌림으로 같으니 비담도 진지왕의 소생이 아닐까? 또한, 미실이 진지왕와 관계를 가졌다면 소생을 두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비담을 미실과 진지왕의 소생으로 만든 것이다. 물론, 비담이 미실의 아들일지라도 화랑세기나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기록되지 않을 수 있다.


비담이 643년 선덕(덕만)왕 12년 상대등이 되고, 647년 선덕왕 16년 정월에 염종과 같이 반란을 일으킨다. 칠숙은 이찬의 지위에 있었지만, 칠숙과 관련된 기록이 사라진 것 처럼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에 잘못을 하고 "호적에서 파버린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가족과 일족의 테두리에서 버려지는 방법은 족보에서 파버리는 것이 최고의 징계였을 수 있다. 쿠데타에 실패한 일족을 족보에 남겨두는 것은 불명예일 뿐만 아니고, 치욕에 가깝다. 해당 가문의 생존과도 직결이 된다.  그러니, 칠숙, 석품, 비담, 염종이 역사에서나 족보에서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설령 후손이 살아있다고 해도, 역신의 후손이라고 내 놓는 멍청한 후손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당대에 썼다'는 화랑세기에도 없을까? 하는 의문을 품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어찌되었던 '비담이 상대등까지 올랐다'는 말은 신라사회에서는 역설적이게도 비담은 최고위 왕족 중에 하나 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나이는 대략 50대 후반에서 60대이지 아닐까? 그렇다면 570~590년대 태어났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유신도 역사기록에서 사라지는 위험한 상황에 봉착한 때가 있었다. 이는 기회가 되면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결론은 비담이 진지왕과 미실 사이에 난  아들일 수 도 있겠다. 비담이 진지(금륜)/미실 사이에 난 아들이라고 해도 반박할만 한 역사적 자료는 없다는 사실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그동안 잘못된 인물 설정으로 비판을 받았지만, 비담은 미실의 버려진 아들이란 설정은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다.

문제는 비담으로 인해서 미실가문은 멸문에 가까운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 징후는 없다는 사실이다. 역설적이게도 미실가문과 진지(금륜)의 가문은 그후에도 꾸준히 세를 확장할 뿐만 아니라 왕도 배출한다. 물론, 비담의 반대파에서 비담을 진압하면, 왕도 배출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결정적으로 비형랑(鼻荊郎)은 코.종.시비(鼻)을 쓰고, 비담(毗曇)은 밝을.도울비(毗)을 쓴다. 그러니 비형랑과 비담 이들에게 같은 음만 가졌지 훈(뜻)이 전혀 다른 글짜를 쓰고 있다. 그러니 이들사이에 돌림자는 없다.  원작자의 중대한 실수가 되는 것이다. 단지, 코비에는 노비.시종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니 도울비가 노비.시종을 같이 사용했다면 할만은 없다.

어찌되었던  미실이 왜 비담를 버렸을까? 덕만과 대응되는 인물이 필요했음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지만, 그부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드라마를 보면 그의 과거에 대한 파편들이 들어 나겠지만. 문노가 어찌하여 비담을 자신의 내제자로 받아 들였을까하는 의문도 들게 된다.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남자와 그의 아들


선덕여왕에서 비담은 11세 풍월주 하종(세종/미실)의 동생이며, 비형랑(진지/도화녀)의 형이 되고, 16세 풍월주 보종(미실/설원랑)의 형이 된다. 그런데 배역을 보면 비담이 천명,덕만, 보종보다 어리게 보인다.

하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가장 어린 595년생인 유신(엄태웅)이 천명(박예진), 덕만(이요원) (588~590년생), 비담(578년생?), 보종(579년생) 보다도 늙어 보이긴 한다.


사극 드라마 선덕여왕 원작이 더 좋았더라면..

사실 선덕여왕에서는 아직까진 유신이 등장하면 안된다. 현재 600~605년 사이를 진행되는 시대배경 상황으로는 유신이 낄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왜 선덕여왕 원작자는 유신을 등장인물로 설정하였을까?

북두의 상징인 유신도 넣고 싶고, 화랑세기를 통털어 주인공 같은 미실을 빼면 안될것 같으니 미실도 넣고, 덕만도 넣고 싶은 욕심이 화를 자초한 것 이다. 그러니 유신역을 맡은 엄태웅이 연기를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는데 유별나게 극에 녹아 들지 못하고, 겉도는 것이다.

 
시대적 배경은 유신의 아버지 세대와 삼촌들 세대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만명과 사랑의 도피를 한 유신의 아비 김서현이, 유신이 맡은 배역을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았을까?  

화랑세기를 처음 보는 사람은 "뭐 이런 개족보가 다있나"한다. 그래서 신뢰할 수 없다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든다. 그리스.로마신화의 신들의 전쟁과 혼맥은 화랑세기에 비하면 놀랄일도 아니다. 드라마 선덕여왕도 "머 이런 황당한 사극이 있나?"한다. 그런데 재미가 있다.

만약, 사극 선덕여왕 제작진이 탄탄한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면, 선덕여왕은 지금보다도 정말 재밌게 만들어 졌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역사를 탐구하는 사람에게는 사극 선덕여왕의 잘못된 설정이 퍼도 퍼도 끊임없이 솟아는 샘과 같이 재밌는 연구소재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한마디로 노천 노다지(금) 광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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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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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바우바우 2009.09.16 0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너무 잼나요. 몰랐던 부분을 잼나게 풀어주셔서 ^^ 감솨~합니다.

  3. 호호 2009.11.09 2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신이 따지자면 어리게는 5살이겠군요............
    뭐...뭐지?

  4. 갓쉰동님 글을 읽게 해 준 선덕여왕에 감사ㅎㅎ 2009.11.13 0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여간 열심히 읽었습니다.
    드라마는 보고 난 즉시 잊어버리지만,
    님의 글은 두고 두고 보고 있습니다.
    역시!!!
    공부 많이 하고 있습니다.

  5. Favicon of http://etboosters.com BlogIcon 2012.01.02 1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전체에 서있다면 당신은 파고있어, 당신은 파고를 중지해야합니다

  6. Favicon of http://lionfilmstudio.com BlogIcon 김성환 2012.01.07 0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짚신도 짝이 있다

  7. Favicon of http://craig-whyte.is-a-green.com BlogIcon 엘리자베스 2012.04.03 1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심 없습니다.

  8. Favicon of http://nobody.dyndns-web.com BlogIcon 피리 부는 사람 2012.04.06 07: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가 안갑니다.

  9. Favicon of http://peppa.is-a-nurse.com BlogIcon Arianna 2012.05.09 0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살 여유가 없습니다.

  10. Favicon of http://bigscary.dyn-o-saur.com BlogIcon 루시 2012.05.11 1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지내십니까?

  11.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2.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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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niches/wet.php BlogIcon Wet Pussy 2012.07.21 2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무사히 풀려났다는 소식에 위대하시고 영민하신 교지를 하사하셨습니다.

  14. Favicon of http://rocville.com/?p=Forums BlogIcon Chris 2012.07.30 1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선덕여왕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진지왕이 폐위되기 전에, 미실은 진지왕의 아들인 비담을 낳았다.

  15. Favicon of http://www.holistic-veterinarian.com BlogIcon invisible dog fence installation 2012.11.03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티즌 악플러들은 뻘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만약, 일본이 진다면 일본 악플러들의 만행이 만만치 않을것 같다. 반면에 일본이 파라과이를 이긴다면 한국내의 악플러들이 허정무 감독과 대한민국 대표팀을 공격할 것 또한 자명해 보인다.

  16. Favicon of http://bessiecastro4.blogspot.com/2012/04/careful-planning-that-has-disaster.h.. BlogIcon food grade containers walmart 2012.11.07 2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다면, 미실과 진지왕의 아들로 등장하는 비담은 언제 태어난 것일까? 드라마 선덕여왕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진지왕이 폐위되기 전에, 미실은 진지왕의 아들인 비담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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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실이 죽고, 수 많은 저작물을 남기자, 이를 보종이 보관하고 정리하였다고 한다. 화랑세기의 수많은 내용의 근거가 미실이 저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였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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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실이 죽고, 수 많은 저작물을 남기자, 이를 보종이 보관하고 정리하였다고 한다. 화랑세기의 수많은 내용의 근거가 미실이 저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였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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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아레스가 퇴장을 건 승부가 없었다면 우루과이는 8강에 만족하고 짐을 싸고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승부차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루과이는 이기고 들어갔고, 가나는 이미 지고 들어가는 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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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 경기 2주를 남겨두고 경기도 과천 빙상장에서 연습도중 다른 사람과 충돌하여 심각한 발목 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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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실이 죽고, 수 많은 저작물을 남기자, 이를 보종이 보관하고 정리하였다고 한다. 화랑세기의 수많은 내용의 근거가 미실이 저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였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그 동안 덕만이 진평왕의 뒤를 이어 천명을 제치고, 왕위를 이은 이유를 이전 기사들에서 충분히 증명하고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위의 글들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천명과 덕만은 이복자매간이다.
둘째, 천명이 나이는 많지만 정비인 마야의 소생은 아니다.
셋째, 덕만은 진평왕과 정비 마야의 장녀다.
넷째, 천명은 덕만보다 왕위승계에서 후순위다. 
다섯째, 덕만은 왕위를 오를때 현재 이요원만큼 어렸다.
여섯째, 덕만은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했다
.


(c) mbc 사극 선덕여왕, 칠숙과 소화

이제 미실의 충복으로 설정된 칠숙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충실한 충복으로 덕만을 제거하기 위해 머나먼 사막까지 추적하여,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불길속에서 눈의 각막이상으로 실명위기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덕만의 유모인 소화를 사막의 개미지옥같은 유사에서 구하고, 사랑하게 된다.
 
앞으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칠숙과 석품이 어떠한 과정을 걸쳐서 반란을 일으키는 지는 현재로써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진평왕 말년에 석품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 칠숙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이다.

드라마와는 다르게 칠숙은 미실의 충복이 아니라, 신라의 왕위계승권에서 최고 우선권이 있었지만, 진평왕이 덕만을 왕위에 올리려는 의도를 간파하고,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진평왕이 미리 칠숙의 반란을 눈치채고, 칠숙을 잡아들여 9족을 멸한다. 칠숙과 같이 반란에 동조하고 참여했던 석품은 백제로 도망치다가 가족이 그리워, 경주(서라벌)로 돌아와 집에서 잡혀 죽게 된다.


삼국사기에 칠숙의 반란 기사를 살펴보자.

631년 여름 5월에 이찬 칠숙(柒宿)과 아찬 석품(石品)이 반란을 꾀하였다. 왕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칠숙을 붙잡아 동시(東市)에서 목베고 아울러 구족(九族)을 멸하였다. 아찬 석품은 도망하여 백제 국경에 이르렀다가 처와 자식을 보고싶은 생각에 낮에는 숨어 있고 밤에는 걸어 총산(叢山)에까지 돌아와, 한 나무꾼을 만나 옷을 벗고 해어진 나무꾼의 옷으로 갈아입고 나무를 지고서 몰래 집에 이르렀다가 잡혀 처형되었다. - 삼국사기 본기 신라 진평왕 53년 

칠숙이 반란을 일으킬때 직위를 살펴보자.. 이찬은 명예직에 가까운 상대등, 각간 등에 뒤이은 실질적인 일인자인  2등위의 신라 최고급 지위이다. 아찬 석품은,  대아찬 바로 밑인 6등위의 고위직에 있었다. 이들이 아들이 없는 진평왕 말년에 왕위계승권을 놓고, 덕만과 충돌하는 것이다.

칠숙의 지위로 볼때, 칠숙은 왕실과 최측근 사람이다. 석품 또한, 직.간접적으로 왕실과 연결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칠숙의 가계를 알 수 있는 방법은 현재까지는 없다. 그러나 흔적은 몇몇 기사로 확인이 가능하다.

진평왕에게는 동륜과 만호 태후 사이에 난 동복 아우가 두명이 있었다.


원년(579) 8월에 이찬 노리부(弩里夫)를 상대등으로 삼았다. 친동생 백반(伯飯)을 진정갈문왕(眞正葛文王)으로, 국반(國飯)을 진안갈문왕(眞安葛文王)으로 봉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진평왕 원년

한명은 백반인 진정갈문왕이고, 백반의 동생인듯한 국반(진안갈문왕) 이다.
그런데 백반과는 다르게 국반(진안갈문왕)은 덕만의 뒤를 이어 왕에 오른 진덕(승만)의 아버지가 된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진덕왕(眞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승만(勝曼)이고 진평왕의 친동생 국반갈문왕(國飯葛文王)의 딸이다. 어머니는 박씨(朴氏) 월명부인(月明夫人)이다. 승만은 생김새가 풍만하고 아름다웠으며, 키가 일곱 자였고 손을 내려뜨리면 무릎 아래까지 닿았다. - 삼국사기 신라 진덕왕 원년


또한, 삼국유사 선덕왕(덕만)에는 "음갈문왕"를 보면 국반일 수 밖에 없는 "음갈문왕"에 관한 기록이 보여진다.

王之匹飮葛文王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여기서 백반도 "음갈문왕"일 수 있지 않는가?라고 반문한다면, 국반의 딸인 승만이 덕만의 뒤를 이어 왕위를 잇는 것만으로 충분한 반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확실한 증거를  칠숙의 반란 사건으로 증명하고자 하는것이다. 결론 부터 말을 하면 칠숙은 백반갈문왕의 아들일 수 밖에 없다.

진평왕계보도

진평왕때로 돌아가 보자, 진평왕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그러면 다음 대권은 누가 잡을까? 용수와 결혼한 천명이 대권을 잡거나, 신라에 빈번히 보이는 아들이 없을때나 있어도 나이가 어린 왕자를 둔 왕 다음은 사위가 왕이 되었다. 그러니 천명의 남편인 용수나 용춘이 대권을 잡아야 한다. 용춘과 용수는 최소한 용춘은 진평왕시기를 넘어, 덕만이 왕위에 있는 시기를 지나, 647년 진덕(승만)이 왕위를 잇는 그 순간까지도 생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대권은 덕만에게 넘어갔다. 그러니 천명은 정비의 소생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때 왕위계승 서열을 알 수 있는 진흥왕의 자손들의 계보도를 살펴보자. 

 
진평의 딸들은 천명과 덕만과 선화로 알려져 있다. 계보도는 복잡해서 진평/마야의 소생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위의 진평와 계보도에 천명과 덕만이 이복자매로 되어 있는것을 볼 수 있다.

진흥왕 계보도


아들이 없는 진평왕 다음의 대권 순위는 누가 될까?

진평의 형제인 백반과 국반이 다음 대권 후보군이다. 그다음은 백반의 자식들이고, 그 다음이 국반의 자식들이다.

그런데 국반갈문왕에게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진평과 마찬가지로 딸인 승만(진덕)만이 있다. 그렇다면, 백반갈문왕의 자식이 왕위승계 제일 순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백반의 자식에 관한 기록은 망실되고 없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칠숙의 반란사건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백반의 아들로 추측되는 이찬 칠숙은 가만히 있으면, 자신이 다음 대권을 잡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진평은 영민하고, 기지가 있는 덕만을 다음 왕위로 세우고자 한다.

또한, 덕만은 공주시절 고모부인 김서현의 딸인 고종사촌 문희와 자신의 언니인 천명의 아들인 이종조카 춘추를 결혼으로 맺어 줌으로, 진지왕의 아들인 용수/용춘 세력까지 등에 업고 있었다.


그러니 덕만에 왕위가 넘어가는 것을 막을려면, 백반의 아들인 칠숙으로써는 중대한 결단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평왕을 몰아내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거나, 백반이 살아 있다면, 백반을 왕위에 옹립하려고 반란을 결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쿠데타에 성공하면 언제나 그렇듯이 국인(국민)이 전왕이 국정을 농단했다고 선전을 하면 그만이다. 최근까지도 대한민국에서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아주 훌륭한 선례를 남기기도 했었다. 하물며 왕이 하늘인 시대엔 오죽하겠는가? 이래 죽으나 권력욕이 넘치(?)는 칠숙으로써는 당연한 선택이 아닐까한다. 어차피 덕만이 왕위에 오르면, 숙여지내거나 숙청될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칠숙은 반란에 성공하지 못했다. 실패한 쿠데타는 가혹하리 만큼 엄중하게 처벌한다.

이처럼
백반의 후손에 대한 기록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없는 이유는 칠숙이 백반의 아들이며, 반란의 여파로 구족이 멸문지화 당했기 때문이다.

칠숙의 반란사건은 삼국사기에 단순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이면을 추적하다 보면, 왕실내의 왕위다툼이 치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기를 전후로 김유신의 아비인 김서현의 기록은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 기사는
51년(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였다. - 삼국사기 진평왕 51년

입니다. 물론, 김서현의 딸인 문희와 김춘추의 기록을 보면, 대장군보다 높은 소판(3등위)에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추증되었거나, 김서현의 기록이 망실되었기 때문이겠지요.

칠숙의 반란 사건이 이상하고, 요상한 이유는 진평왕의 사망에 대한 다른 기록을 보면 더욱 확실해집니다. 
 

54년(632) 봄 정월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진평(眞平)이라 하고 한지(漢只)에 장사지냈다. 당 태종이 조칙을 내려 광록대부(光祿大夫)를 추증하고 부의(賻儀)로 200단(段)을 주었다.<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정관(貞觀) 6년(632) 임진 정월에 죽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신당서(新唐書)와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모두 『정관 5년(631) 신묘에 신라 왕 진평이 죽었다.』고 하였으니, 어찌하여 그것이 잘못되었을까?
 - 삼국사기 진평왕 54년

김부식은 우리의 <고기>에는 632년에 죽었다 기록하고 있는데, <신당서>와 <자치통감>을 들어 "631년 신묘에 신라왕 진평이 죽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을까? 왜 신당서와 자치통감이 잘못되었을까?를 반문하고 있습니다.   진평왕 죽음에 이설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덕만이 왕위를 계승하는데 쉽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634년 선덕왕 3년에 숙부인 국반갈문왕과 결혼을 하고, 국정을 안정시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상식을 깨는 글을 여러편 기사로 송고했다. 이글을 읽으신 분은 계속 머리를 흔들며 아닌데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하 충분히 그럴수도 있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번 시리즈 글에서 몇가지 소득이 있었다. 일단, 보다 많은 사람들이 선덕여왕시기에 한일 인줄 안 문희와 춘추의 결혼을 선덕여왕이 덕만공주 시기에 한일 임을 증명한 일이나, 덕만이 공주시절 모란꽃이 향기가 없다고한, "모란꽃 사건은 627년 11월에 신라에 들어왔다"는 증명을 한 것이다. 또한, 이번에는 천명과 덕만은 진평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나지 않고, 이복자매이라는 증명도 하였다.

사실 통설이란 기존의 학자가 만들어논 다수설이다. 다수설이 되기 위해서는 이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한다해서 모두 진실이 되고,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역사와 대화를 하고, 의문점을 해소해 가는 것이다.

몇편의 글들은 그동안 의문을 품어 왔던 내용을 드라마 선덕여왕을 빌어서 가설을 다시 재정립하여 세우고, 이를 검증하고, 증명하는데 있었다. 또한, 드라마를 통해서 역사를 배우는 과정에 있었다. 글쓴이는 사극이 가져오는 병폐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많이 본다. 잘못된 사극이던, 잘된 사극이던 이를 교본으로 역사를 다시 배울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오히려, 정통사극이나 명품사극을 표방하고, 스스로 당당히 그 시대를 재조명하였다고 선언한 사극이, 실은 잘못된 역사를 왜곡해 사극으로 만들어 질때 역사공부에는 더 좋은 교재가 된다.

사실 사극의 원전에 해당하는 소설이 잘못된 설정을 토대로 만들어 졌다면, 아무리 사극을 잘 만들더라도 왜곡될 수 밖에 없다.


[역사이야기] - 서녀 천명의 나이 어린 적통 동생 덕만
덕만은 천명의 어린동생임 증명하는 글, 새로 업데이트 된글입니다. 관심있는 분은 본글 추천 후 크릭 ^___^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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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소대영 2009.07.26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부탁이 있습니다.알천량이 80세 되던해에 손자를 보게되어 집인에 경사가 났다하여 경사로울 경자로 이름을 개명하였고 이식.간 .상대등 벼슬까지 하셨으며 춘추와 왕위계승에 까지 말이 있어 나는 너무 늙었고 무덕하니 불가하다 자처하고 용맹한 춘추가 왕이되어야 한다고 사양하여 춘추한테 임금자리를 양보하였다고 우리는 알고있습니다.서기577년 생이시고 679년에(수는 110세)졸하셨으며 진주소씨시조로 모시고 있습니다. 진평.선덕.춘추에 이르기 까지 왕위 계승이 평탄치 않았는데 그어려운 자리를 나이 불구하고 맡을수도 있었는데 하는 후손으로서 욕심이랄까 있지만 그땐 그럴사정도 있었겠다고 생각하고 알천량이라고 나오고 성이 없는데 그에대해서 후일 진주소씨 시조가 되는데 이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상세히 알고쉽습니다 글쓴이 께서 저의 댓글을 보시고 바로 좀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름데로 시조의 흔적을 찾을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좀 도와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전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6 21: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임금의 후손인 기곤오가 소성(蘇城)의 하백(河伯)에 봉해지고 기원전 2266년 소성이 단군 조선에 영속되면서 기시가 소씨로 고쳐졌다. 기곤오의 후손이 신라 6부촌장의 한사람인 돌산 고허촌(突山 高墟村)의 소벌도리(蘇伐都利)이다.
      진주소씨(晉州蘇氏) 시조는 소경(蘇慶)이며 소벌도리의 25세손으로 후손이 없었는데 꿈에 소벌도리가 나타나 진주 구시동(九柿洞)으로 이사를 하면 9저를 얻을 것이라 하였다. 결국 이사를 한 후 660년(무열왕 7)에 9대에 걸쳐 9명의 장군을 낳았고, 이름을 소경으로 고쳤다고 한다. 소경은 648년(진덕여왕 2)에 상대등(上大等)에 올랐다. 후손들이 소벌도리를 원시조로 하고 진주를 본관으로 하였으며, 소경을 중시조로 삼았다. - 소씨(蘇氏) - 본관:진주(晉州)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6 2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년(647) 정월 17일에 비담(毗曇)을 목베어 죽였는데, 그에 연루되어 죽은 사람이 30명이었다. 2월에 이찬 알천(閼川)을 상대등으로 삼고 대아찬 수승(守勝)을 우두주(牛頭州) 군주로 삼았다.- 진덕왕 원년

      비담이 646년 11월 상대등이 되고 647년 정월 비담이 난을 일으킨후.. 647년에 정월에 비담의 뒤를 이어 상대등에 올랐네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6 21: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곳에 가면 진주소씨 족보를 잘 분석해 놓은 글이 있군요..

      http://hyunk02.egloos.com/1903188

  3. 소대영 2009.07.26 2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대영 sody06@hanmail.net.으로 글쓴이 께서 앞의 묻는 내용을 혹이라도 알고 계시면 이메일 주소로 좀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4. 2009.07.26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읽지는못하고가지만,글진짜 잘쓰시는듯..
    >< 칠숙에 관심이 있어서... ㅋㅋㅋㅋ

  5. 궁금궁금 2009.07.26 2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이 작은아버지인 국반과 결혼을 했으면 원래 국반의 부인이자 진덕여왕의 어머니인 박씨(朴氏) 월명부인(月明夫人)은 어떻게 되는건가요?
    걍 쫓겨났을까요?
    월명부인이 안쫓겨났다면 국반은 여왕을 두번째 부인으로 맞이한 행운아인건가요?
    아니면 여왕이 아이를 낳지 못하자 두번째 부인을 들인 간 큰 남자?

    그리고 만약에 월명부인이 첫번째 부인의 자리에서 쫓겨났다면, 진덕여왕이 왕이 되었을때 어머니를 월명부인으로 기록했을까요?
    물론 조선시대이기는 하지만 연산군의 어머니는 아들이 왕이 되고 난 다음에도 폐비윤씨로 기록되고 있지 않나요?
    아니면 진덕여왕이 자신의 친어머니인 월명부인을 원래 자리로 돌린건가요? 자신의 전임왕인 선덕여왕을 밀어내고?

    글을 읽어보니 더 궁금증이 생겨서요....

  6.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6 21: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자리로 돌려 놓지 않았을까요? 저도 글을 쓸때 월명부인은 어찌되었을까 궁금하더군요..
    법률적 어미와, 생물학적 어미와, 법통의 어미 등 차이가 있지 않을까함.

    조선 정조도 큰아버지 아들로 입적하잖아요.. 그리고 왕이되고, 왕이 된후,, 생물학적으로 사도태자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지요. .

    신라시대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을 그것으로 추측합니다. 내물왕 이전시기.. 미추왕때 보면 그의 후손들과 실성, 나물 등이 연대가 맞지 않잖아요.. 생물학적으로는.. 이건 그동안 생각햇던 건데.. 밝혀 버렸네요..

    암튼, 계승, 승계, 법통, 등에 의해서 생물학적으로 도저히 안되는 상황이 해결되거든요.. 기회가 되면 이쪽을 건들생각입니다.. 미추왕때.. 이후를..

  7. 2009.07.26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

    블로그의 제목과 다른 허구에 빠져 역사(?)를 탐구하는 이질적 행태

  8. 두모 2009.07.31 0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 흥미가 많은지라 관심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드리고요.

    위 본문 글 중에 용춘/용수가 진평왕에 뒤이어 왕에 오르지 못한 이유가
    아내인 진평왕의 딸 천명이 정비 소생이 아니기 때문이라 기술되었는데,
    이렇게 볼 수도 있지만,

    제가 어디 다른 글에서 보기에
    용춘/용수의 아비인 진지왕이 황음무도하다 하여 미실 등에 의해서 추방되어 죽었기에
    그 아들들인 용춘/용수는 왕위 계승에서 밀려났다고 하더군요.

    성골/진골의 구분이 없는 듯 하다는 글을 쓰셨는데 저도 동의가 됩니다.
    왕족이 있을 뿐이고, 왕의 아들이 계승자가 되지만
    진지왕의 경우와 같이 죄가 있으면 박탈되는 것이 당연하고
    선덕여왕 즉위는 용춘(용수?)의 아들인 김춘추와 군부세력인 김유신이
    결합해서 옹립한 것이라 봐야죠.

    김춘추는 할아버지 진지왕의 패덕에서 벗어나는 시기가 되고
    아버지 용춘(용수?)의 공적과 자신의 공으로
    왕위에 오를 자격이 공인받게 되었다고 봐야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9: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충분히 그럴수 있지만.진지왕 폐위사건이 벌어진. 579년에서 632년이면 충분히 지나고도 남았겠지요.. 50년은 안되고.. 654년은 된다는 뜻은.. 글쎄요.. 그때도 안되었음.. 지금도 안되는 거지요..

      그리고 정확히는 후비가 아닌 서자도 아닌..
      정비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었는데요.. ㅋㅋ

      제가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역사를 비판할때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는겁니다.. 아직은 화랑세기를 가지고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를 비판하기는 요원하고, 제 생각은 화랑세기는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보다 후대에 만들어진 작품 같거든요..

      너무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절묘하게 절충하고 있어서요..

      후대에 나온 역사서를 절묘하게 빠질수 있다는 말은 후대 작품 아니면 있을수 없거든요..

      성골/진골이 없다는 분을 뵈오니 방갑습니다..

      즐거운 댓글 놀이 였습니다..

      추천도 해주실거죠? ^____^

  9. Favicon of http://lhykkam.naver.com BlogIcon 황금알 2009.07.31 1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동안선덕여왕을꾸준히보지못해서 이해못하는부분에도움이 되었구앞으로보는재미에 많은도움을 주셔서감사 또감사 좋은 저녁 되세요

  10. 산행인 2009.08.05 1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 관심은 많으나 잘모르는 사람입니다. 선덕여왕을 읽고 갓쉰동님의 글을 읽어면서 화랑의 성격에

    의문이 있습니다. 혹시 화랑과 낭도의 성격이 집의 사병이 아닙니까. 화랑은 집의 사병의 우두머리이고요.

    사병이 또 성장하여 사병을 데리고 군에 들어가서 장군이 되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십화랑은

    유력한 열가문의 사병이 아닙니까?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5 1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화랑의 다수는 귀족의 자제이고, 그들을 서포트하는 집단은 6부의 귀족이나 일반인들 입니다. 낭두..라고 해서요..

      이 낭두가 가야파에 점령된 적도 있습니다..

      이들은 낭두에서 벗어나면,, 지방의 관리나, 군대에 편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님의 말씀도 틀린것은 아닙니다..

  11. Favicon of https://saeyanbooks.com BlogIcon 도서출판 새얀 2009.08.06 23: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 이번 글도 잘 읽고 갑니다. 읽을 수록 재미가 쏙쏙~~ 사실 칠숙도 선덕여왕의 재밋거리중 하나죠.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12. 글쎄요. 2009.08.13 0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나름 논리정연한것 처럼 보이긴 합니다만

    억지로 끼워맞추기 식 이라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어 유감일 따름입니다. 천명과 덕만사이의 맏이와 차녀는 누구인가, 만약 맏이가 천명이라면 왜 차녀인 덕만이 왕권을 계승 했을까에 대해서 아랫글을 보시면..

    진평왕은 진흥왕의 장자였던 동륜태자의 아들로, 동륜태자가 개에게 물려 죽자 숙부인 금륜이 진흥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니 이가 진지왕입니다.



    하지만 진지왕이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당시의 집권측과 갈등이 생겨, 결국 왕이 된지 3년만에 화백회의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이에 동륜의 아들인 진평왕이 왕위에 오릅니다.

    당시 진지왕에게는 두명의 아들이 있었으니, 용수전군과 용춘전군이 그들입니다.



    용수와 용춘의 존재에 대해서도 두사람이다, 혹은 한사람인데 이름이 잘못 표기된것 뿐이다라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진지왕의 장남 용수전군이 진평왕의 맏딸인 천명부인과 결혼하여낳은 아이가 바로 김춘추입니다.



    진평왕은 마야왕후가 죽은 뒤 새 왕비를 들여 아들을 낳았으나, 이 아들이 일찍 죽자,후계에 문제가생겼는데,

    전통대로 왕의 사위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

    권력을 쥐고 있던 화백회의측이 폐위시킨 진지왕의 아들( 당시엔 용수전군은 죽고 천명은 용춘전군과 재혼한 상태였음)이 왕이 되므로, 화백회의측은 당연히 이를 거부했고,



    진지왕의 폐위로 왕위에 오른 진평왕또한 이를 용인하기는 곤란했을 겁니다.



    때문에 화랑세기 필사본에는 진평왕이 장녀인 천명을 불러 다음 왕위를 동생인 "덕만에게 양보해 줄것"을 정식으로 요청하였고, 천명이 이를 "용인"하여 궁을 떠났기때문에

    덕만이 왕위에 오른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게 더 논리적이지 않습니까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3 08: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다른 글도 읽어보시길.. 님은 화랑세기를 인용하고 계시잖습니까? 이글은 화랑세기를 기준으로 한게 아니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의 기록을 가지고 증명하는 글입니다..

      설마,, 화랑세기를 읽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대부분 드라마 선덕여왕에 관련 포스트를 보시면 화랑세기를 인용하고 있거든요...

  13. Favicon of http://manzzang.tistory.com/ BlogIcon 도희 2009.08.22 0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게 읽고가요^^
    댓글을 부끄러워서 잘 안다는 편인데, 재미나게 읽고나니.. 제가 드릴 것은 감사하단 인사 뿐인 것 같아서요^^

  14. 그냥 2009.09.23 1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읽고 가네요.. 역사이야기를 좋아라 하는편인데 화랑세기를 읽어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네요..1

  15. zzzzz 2009.10.22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걸 지적해야되나 좀 그렇지만 선화는 신라의 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의 딸이라고 해요;;;;;;

  16. ㅇㅇ 2009.10.31 0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ㅋㅋ 그런데 학생인저로서는 수능과는 1g도 연관되진 않을거같네요 ㅋㅋㅋ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31 0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용..ㅋㅋ 아쉽지만, 비교체험 했다고 생각하셈.. 수능에 도움이 되었음 좋았을 걸용.. 역사교육의 한계인데용.. 어쩌겠어용..

  17. Favicon of http://ytrty.tistory.com BlogIcon Nehe 2009.12.04 09: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의 ㅇㅇ 님댓글에 웃음과 안타까운 마음이..... 그나저나 이번 수능에는 신라관련해서문제가 나왔을까요? ㅎㅎㅎ

  18.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20. 새벽 2012.12.27 0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계보...진평왕은26대왕이고선덕여왕은27대인데..ㅜㅋ

  21. 윤지 2013.10.31 1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칠숙은 백반갈문왕의 서자라 생각됩니다.
    적자 였다면 진평왕이 처음부터 조카인 질숙을 염두해두지 않았을까요?
    아마 성골 남자 후계자가 없으니 조카인 자기에게 황위를 물려줄 것으로 예상했는데, 성골 여자(덕만공주)를 후계자로 세우자 반란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선덕여왕 덕만에 관한 기록들을 하나 접수하여 역사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상식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하나씩 추적 탐사 검증하고 새로운 주장을 하는 포스팅 했습니다.

지금은 덕만 탐사의 종착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또는 추측하고 있었던 상식을 상식이 아님을 증명하였고, 마지막으로 덕만은 왕위를 이을때 도대체 몇살이였는가? 할머니 였다는데 정말 할머니 였을때 왕위를 이은것인가?를 찾아 갈겁니다. 이글은 그 최종 종착역의 구부능선을 타는 덕만과는 땔래야 땔 수 없는 영묘사에 관한 기록들을 검토해 볼겁니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선덕왕 4년(635) 당나라가 사신을 보내 부절(符節)을 가지고 왕을 주국(柱國) 낙랑군공(樂浪郡公) 신라왕(新羅王)으로 책봉하여 아버지의 봉작(封爵)을 잇게 하였다. 영묘사(靈廟寺)가 완성되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4년

선덕왕 5년 636년 여름 5월에 두꺼비가 궁궐 서쪽 옥문지(玉門池)에 많이 모였다. 왕이 이를 듣고 좌우에 말하였다. - 삼국사기

여름 5월에 장군 우소(于召)에게 명령하여 갑옷 입은 군사 500명을 거느리고 가서 신라의 독산성(獨山城)을 습격하게 하였다. 우소가 옥문곡(玉門谷)에 이르러 날이 저물자 안장을 풀고 사졸들을 쉬게 하였다. 신라 장군 알천(閼川)이 군사를 거느리고 엄습해 와서 이를 쳐서 무찔렀다. 우소는 큰 돌 위에 올라가 활을 당겨 막아 싸웠으나 화살이 떨어져 사로잡혔다 - 삼국사기 백제 무왕

문무왕 2년(662) 영묘사에 불이 났다. - 삼국사기 문무왕 2년

 
둘째는, 영묘사(靈廟寺) 옥문지(玉門池)에 겨울인데도 개구리들이 많이 모여들어 3, 4일 동안 울어 댄 일이 있었다.  나라 사람들이 괴상히 여겨 왕에게 물었다.  그러자 왕은 급히 각간(角干) 알천(閼川)·필탄(弼呑) 등에게 명하여 정병(精兵) 2,000명을 뽑아 가지고 속히 서교(西郊)로 가서 여근곡(女根谷)이 어딘지 찾아 가면 반드시 적병(賊兵)이 있을 것이니 엄습해서 모두 죽이라고 했다.  두 각간이 명을 받고 각각 군사 1,000명을 거느리고 서교(西郊)에 가 보니 부산(富山) 아래 과연 여근곡(女根谷)이 있고 백제(百濟) 군사 500명이 와서 거기에 숨어 있었으므로 이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 삼국유사 선덕왕 지기삼사

일연의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의 선덕왕 궁궐 서쪽 옥문지 사건을 옥문지는 영묘사에 있다하고 개구리가 출연한 때는 여름 5월이 아닌 겨울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개구리 두꺼비가 여름에 우는 거는 일상적인 일이 아닌가? 겨울에 몇일 동안 못에 나와서 우는 것이 특이하니 이 사실을 덕만(선덕왕)에게 보고했다는 것이 합리적이다.


넷은 용궁(龍宮)의 북쪽(지금의 분황사芬皇寺다.  선덕왕善德王 갑오甲午년에 공사가 시작되었다)이요, 다섯은 사천(沙川)의 끝(지금의 영묘사靈妙寺다.  선덕왕善德王 을미년乙未年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 삼국유사 아도기리 중

선덕왕 갑오년이면 634년이고, 을미년은 635년이다. 그런데 삼국사기는 "635년 선덕왕 4년 영묘사 공사가 끝났다."고 한다. 하지만 삼국사기를 본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무슨 소리 선덕왕 2년에 분황사 공사를 시작하고, 영묘사는 635년에 공사를 시작했다라고 삼국사기를 반박하고 있다. 삼국사기 기록대로 635년 선덕여왕 4년에 영묘사가 완성되었다면 636년 선덕왕 6년 옥문지 사건을 기술할때 궁궐 서쪽 옥문지라고 기록하지 않고, 삼국유사처럼 영묘사 옥문지라고 기술하였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일연은 중 양지가 영묘사 장육삼존상과  영묘사 현판 을 썼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 양지(良志)는 그 조상이나 고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고, 오직 신라 선덕왕(宣德王) 때에 자취를 나타냈을 뿐이다.
(.. 중략.. )
영묘사(靈廟寺) 장육삼존상(丈六三尊像)과 천왕상(天王像), 또 전탑(殿塔)의 기와와 천왕사(天王寺) 탑(塔) 밑의 팔부신장(八部神將), 법림사(法林寺)의 주불삼존(主佛三尊)과 좌우 금강신(金剛神) 등은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  영묘사(靈廟寺)와 법림사(法林寺)의 현판을 썼고, 또 일찍이 벽돌을 새겨서 작은 탑 하나를 만들고, 아울러 삼천불(三千佛)을 만들어, 그 탑을 절 안에 모셔 두고 공경했다.  그가 영묘사(靈廟寺)의 장육상(丈六像)을 만들 때에는 입정(入定)해서 정수(正受)의 태도로 주물러서 만드니, 온 성 안의 남녀들이 다투어 진흙을 운반해 주었다.  그때 부른 풍요(風謠)는 이러하다. - 삼국유사 양지사석

구참공(瞿참公)이 어느날 산에 놀러 갔다가 혜공이 산길에 죽어 쓰러져서, 그 시체가 부어 터지고 살이 썩어 구더기가 난 것을 보고 오랫동안 슬피 탄식하고는 말고삐를 돌려 성으로 들어오니 혜공은 술에 몹시 취해서 시장 안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있는 것을 보았다.  또 어느날은 풀로 새끼를 꼬아 가지고 영묘사(靈廟寺)에 들어가서 금당(金堂)과 좌우에 있는 경루(經樓)와 남문(南門)의 낭무(廊무)를 묶어 놓고 강사(剛司)에게 말했다.  "이 새끼를 3일 후에 풀도록 하라."  강사가 이상히 여겨 그 말에 좇으니, 과연 3일 만에 선덕왕(善德王)이 행차하여 절에 왔는데, 지귀(志鬼)의 심화(心火)가 나와서 그 탑을 불태웠지만 오직 새끼로 맨 곳만은 화재를 면할 수 있었다. - 삼국유사 이혜동진(혜숙,혜공)

아주 잼있는 기록이 영묘사의 화재 사건들이다. 영묘사는  끊임 없이 화재사건에 연루 되어 있었다. 삼국사기 기록상 첫번째 화재 사건은 

문무왕 2년(662) 영묘사에 불이 났다. - 삼국사기 문무왕 2년

하지만, 삼국유사는 이동혜진(혜공)의 이적을 빌어서 지귀심화(지귀요탑)사건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덕여왕 당시에도 영묘사에 화재사건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 의해서도 635년에 영묘사를 짓기시작, 완성단계에 이른 얼마 지나지 않아 덕만이 영묘사를 찾아 갔을때 화재 사건이 발생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절충한 진평왕시기 짓기 시작한 영묘사가 지귀심화에 일정정도 불에 타서 중건(중창)에 가까이 635년에 다시 짓기 시작했을 개연성도 있다. 

지금까지 선덕여왕 덕만의 행적중 <지기삼사>와 <지귀심화> 등 관련이 많은 영묘사에 관한 기록을 살펴 보았다.  사실 이글을 쓰는 목적은 선덕여왕 즉 덕만이 <성조황고>라는 말을 왜 들었어야 하며, 삼국사기에서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이며, 천명은 동생이라는 기록을 분석하기 위해서 이다. 천명은 김춘추를 603년에 낳았다. 그렇다면 천명은 최소한 589~590년 이전에 태어 났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덕만이 어머니가 같은 언니라면 천명과 같은 나이이거나 그 이전에 출생해야 한다. 덕만이 588년 생이라고 한다면 덕만이 왕위를 잇는 632년에는 45살이 된다. 덕만이 죽는 647년에는 60살의 천수를 다하게 되는 것이다. 


이글에서 지귀심화(지귀요탑)은 세계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자연발화(SHC)인 미스터리 자연현상이라고 기술 했다. 그러니 <대지도론>에 나온 <술파가>가 유사하고 같은 여왕이기 때문에 <수이전>전하고 <대동운부군옥>이 채록하여 선덕여왕에 투영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역으로 선덕여왕때 혜공의 사건과 지귀심화 사건을 종합해 본다면? 


어쩌면 영묘사 지귀심화 화재사건은 이전에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서 기록한 선덕여왕 당시 김춘추와 문희의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한것이 아니고,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것처럼, 사찰이 하루이틀에 뚝닥하고 만들어지지 않는 기간을 생각할때 여왕시기가 아닌 공주시절부터 영묘사가 한참 건설중 중요건물인 대웅전의  낙성식을 참여하다 지귀의심화를 당하고, 혜공의 법력(?)으로 살아 남은 전각의 일부를 635년 이후에 완성해 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지 않다면 젊은 지귀가 다 늙은 노파(45세이상)인 선덕여왕을 사모해서 상사병으로 자연발화를 했다는 것은 부자연스럽지 않겠는가? 또한가지, 다 늙을 때가지 덕만이 솔로 였다는 것은 당시 신라 사회로 봤을때 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이 된다. 동생인 천명도 결혼해서 603년에 김춘추라는 사내를 낳는데 말이다. 물론, 덕만도 삼국유사 왕력편의 기록에 의하면 '음갈문왕'이란 사람과 결혼을 하였다.


글쓴이가 왜 시리즈로 덕만의 공주시절을 뒤적이고 있는지 최근 시리즈글을 읽었다면 감을 잡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전 3개의 송고된 기사를 읽어 볼것을 권한다. 어찌 되었던 다음편에서 확실하게 종지부를 찍을까 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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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4 10: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편에 종지부라 ㅎㅎㅎ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언제나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2. 지나가다 2009.07.24 14: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 계산이 이상한 것 같네요

    "덕만이 588년 생이라고 한다면 덕만이 왕위를 잇는 632년에는 55살이 된다. 덕만이 죽는 647년에는 70살의 천수를 다하게 되는 것이다."

  3. 계산 2009.07.24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588년생 632년 왕위계승 45세 647년 서거 60세

  4. kmk8933 2009.07.26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넘넘 훌륭합니다!!! 새로운 역사를 배운듯...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가르쳐 주세요~~
    열심히 볼께요.

  5. Favicon of http://bottleless.com/ BlogIcon bottleless dispensers 2011.12.19 1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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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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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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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visit website 2012.07.14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는 삼국사기의 선덕왕 궁궐 서쪽 옥문지 사건을 옥문지는 영묘사에 있다하

  10. Favicon of http://nerrypalmer2.tumblr.com/post/21717375427/ BlogIcon food storage supplies idaho 2012.11.01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1. Favicon of http://www.nytimes.com/2008/03/30/nyregion/30dogs.html?ex=1364616000&en=8d101e..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 settings 2012.11.05 16: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었던 상식을 상식이 아님을 증명하였고, 마지막으로 덕만은 왕위를 이을때

  12. Favicon of http://edillobuse.typepad.com/blog/2012/04/best-success-kits-only-premium-qual.. BlogIcon hurricane survival kit nyc 2012.12.10 2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아무리 미국이 광우병내성을 지니고 있더라도 유전적 결함으로 자연발생적으로 발견되어야 하는 광우병소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도축되기전에 소멸되었거나 도축과정에 은폐되거나 검역과정에 통과되어 전세계 식탁에 올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13. Favicon of http://presurfer.blogspot.com/2007/11/flexible-pet-ownership.html BlogIcon great website examples 2012.12.22 1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던 상식을 상식이 아님을 증명하였고, 마지막으로 덕만은 왕위를 이을때 도대체 몇살

  14. Favicon of http://sustainableurbanite.com/search-for-emergency-food-supplies/ BlogIcon mountain house #10 cans bulk 2012.12.31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글은 그 최종 종착역의 구부능선을 타는 덕만과는 땔래야 땔 수 없는 영묘사에 관한 기록들을 검토해 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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