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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10월 3일은 하늘이 열리는 개천의 날이라고 한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날이라고 한다. 음력 10월 3일이던 날이 양력 10월 3일이 되고, 환웅이 신시를 만들었다고 알려지는 개천의 날이 단군이 나라를 세운날이라고 잘못 알려지게 된다.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탄신일이 아니듯, 크리스마스에 눈이오지 않음 안된다는 환상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유대땅에서 눈을 보기는 천지개벽을 하기만큼 힘들다라고 이야기를 해줘봐야 별무 신통이다. . 예수와 동방박사는 사라지고 그자리에 <산타>가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 되는 일처럼 원형이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민족의 시조가 나라를 세웠다는 날이 바뀐다고 달라질것도 없다.

길림에 있는 곰상(쑥과 마늘이 보인다)

 단군이 기원전 2333년에 개국을 하였다. 단군이 태어난때로 돌아가면 환웅이 범과 곰에게 마늘과 쑥을 주어 동굴에서 빛을 보지 않고 치성을 드린다면 100일만에 인간이 될수 있다고 한다. 

곰이야 동면을 하는 동물이니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100일을 참을 수 있지만 범이야 일주일만 굶어도 굶주림에 목놓아 울어버릴것이고 배고픔에 탈출하는 것이 범의 성격에 맞는 일이다.

 범이야 애초부터 마늘과 쑥을 먹지 않는 육식동물이니 예초부터 게임이 되지 않는 불공정 시합을 환웅은 시킨 것이다. 환웅은 이미 범보다는 곰에게 마음이 있었지 않을까 한다. 한마디로 범이 풀을 뜯어먹냐?라는 개가 풀뜯어 먹는 이야기다. 

그 증거로 호랑이가 배가 고파 더이상 참을 수 없어서 동굴을 빠져나가자 100일이 지나야 인간이 될수 있다는 <약속>은 간곳이 없고, 곰은 21일만에 인간이 되고, 환웅과의 사이에 단군을 낳는다. 그래서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도 환웅이 애초부터 <웅녀>에 마음이 있었던것이 아닐까하고 그려가지 않던가?

 한웅이 인간세상에 올때를 보면 <우사>,<운사>,<풍백>과 남.여 삼천인을 데불고 온다. 바람과 구름과 비는 농사를 짓는데 없어서는 않된다. 360개의 생노병사를 관장하여 삼라만상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기치로 인간계에 구현을 하는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기자가 오자 단군이 기자를 피해서 구월산에서 하늘로 올라갔다고는 것으로 봤을때. 기원전 1000~1200년전 기자에 밀린것 같다.

 마한은 위만에 쫓겨난 기준이 현재의 한반도 남쪽땅에서 <진>을 멸하고 <마한>이라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나라의 후손이 다시 기준의 후손을 물리치고,목지국에서 마한을 다스렸지만 마한이 들어선후에도 백성들 사이에서는 <기준>을 기리는 제사를 했다고 한다. 이때가 250년전후이니 기원전 194~5년 기준이 위만에 쫓겨난후에 근 450여년 만이다. 요즘 이야기로는 호랑이 담배를 피워던 시절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단군의 후손들은 기자에 쫓기고 기자의 후손인 기준에 쫓기는 웃지 못할 상황에 봉착한것 같다.

 마한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땅에도 제사를 지낸다고 하는데 소도가 있어서 <천군(天君)>이 제를 주제한다고 한다. 천군은 박종훈이 주연한 <천군(天軍)>과는 다르다. 천군은 하늘군대이고 마한의 천군은 하늘임금이 된다. 천군이 환인이 된다. 천군(天君)>을 옛고음으로 발음하면 어떻게 될까? 훈민정음 창제시절에는 천이 <텬>이고 중국식 발음으로는 (tian)이니 고음으로는 오히려 단군에 가깝지 않았을까?

환(桓)은 이름이 하늘의 음차이고 천(天)은 훈이니 하늘을 뜻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마한의 천군은 환인이던 환웅이던 단군이던 연관성이 있을것 같다. 절에 있는 칠성각(당)과 삼신당(각)이 환인/환웅/단군을 이름한다는 이도 있으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문제는 왜 <우사>,<운사>,<풍백>일까? <산해경>을 볼라치면 풍백은 바람의 신으로 오른손에 부채를 들rh 있는 것으로 묘사가 되고 있다. <비렴>이나  방천군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하늘에 있는 별자리중에서 기(箕)성에 해당한다.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신라 종묘의 제도
입춘 후 축일(丑日)에는 견수곡문(犬首谷門)에서 풍백(風伯)에 제사지내고, 입하 후 신일(申日)에는 탁저(卓渚)에서 우사(雨師)에 제사지내고, 입추 후 진일(辰日)에는 본피유촌(本彼遊村)에서 영성(靈星)에 제사지냈다

삼국사기 신라/제사에 보면 우사/풍백 등에게는 때가 되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상전인 환웅을 제사지냈다는 말은 없다. 연결시킬려면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냈으니 환웅/환인/단군에 제사를 지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단지 우리만이 지내는 것이 아닌  전세계 어떤 민족이나 지냈으니 꼭집어서 <환인>,<환웅>,<단군>을 지칭한다고 할 수 없다.

단지, 삼국사기만으으로는 단군에게 제사를 지냈는지는 모르지만, 유사와 삼국지 위지동이전을 빌리면 <단군>에게도 제사를 지내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단, 고조선이 망한후 수천년 수백년이 지난관계로 그 흔적이 사라지고 민간 종교화하지 않았을까? 할 뿐이다. 신라 중후기 <솔거>가 <단군>그림을 수천장을 그려 신라가정마다 단군그림이 없는 집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고구려·백제의 제사 의례/고구려/중국기록/당서 
당서(唐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고구려는 풍속에 음사(淫祠)가 많고 영성(靈星) 및 해[日]·기자(箕子)·가한(可汗) 등의 신에게 제사지냈다. 나라의 왼쪽에 큰 굴이 있어 이를 신수(神隧)라고 하며, 매년 10월에 왕이 모두에게 친히 제사지냈다.』

국동대혈

고구려의 제사기록을 살펴보면 <가한>에 제사를 지내고, 부여신(유화), 고등신(주몽), 나라의 동쪽에 커다란 굴이 있는데 동굴에서 제를 올린다고 한다. 동굴속 <웅녀>의 모습이 느껴지지 않는가? 고구려와 전혀 관련이 없는 듯한 동굴속에서 제사를 지낼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고구려와 더불어 동굴을 숭상하는 족속 중에 선비족이 있는데 그 족속은 동호에서 갈라진 자들로 선비산에 있는 동굴이 자신들의 출생지라고 생각을 하고 제를 올린다.  고조선의 곰동굴과 고구려의 동굴과 선비족이 동굴이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한과 동혈(국동대혈)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말은 하고 있지만, 같은 단락에 당서를 빌어서 <기자>에 제사를 지냈다는 글은 쏘~~옥 빼놓고 있다. 일종의 <기자> 죽이기에 해당 한다. 공교롭게도 10월인것도 재미있다.

고구려가 기자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신라가 금관가야의 제사를 지내는 것과 같고, 조선이 단군묘나 기자묘나 이전 나라의 묘를 관리.유지하면서 제사를 지내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어미인 유화부인은 <하백>의 딸로 나온다. <하백>은 압록곡에 사는 물의 신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산해경>에는 하백은 황하를 지키는 강물의 신이다. 또한, 하백은 모든 강들의 신이 되기도 한다.

장천1호분 사냥, 왼쪽 나무아래 곰이 숨어있다.

대륙사관를 추종하는 많은 이들이 산해경을 동이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자신을 동쪽에 있는 <동이>로 부르는 족속은 없다. 산해경의 중심은 현재의 중국 황하 중심부를 기준으로 내경과 외경으로 분리하고 있다. 고조선 지역인 요령/요동/한반도지역은 산해경의 기준으로 외경에 해당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면 장천1호분에 굴속에  곰과 범이 굴속에 쪼그리고 있는 장면이 있다. 단군탄생의 웅녀와 범녀의 모티브이다. 고분중 사냥하는 장면에서는 호랑이는 사냥군에 쫓기지만 곰은 굴속에 숨어 있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사람은 환웅의 사람(신족)이고 범족은 쫓기고 곰족은 일종의 보호를 받는 듯한 묘사가 삼국유사에서 한웅과 웅녀의 원형처럼 느껴진다.  실제는 고구려에 광범위하게 퍼저 있는 전승된 이야기들을 위서가 받아 쓰고  삼국유사가 <위서>를 빌어 채록하였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동아시아 고대 3대 문화권중의 하나인 홍산문화는 기원전 3000년~2000년으로 추정되는데 불교의 가부좌상에 해당하는 가부좌를 하고 가슴을 들여낸 부인상이 발견되었다. 어쩌면 이 부인상이 단군조선의 시조인 웅녀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숭배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홍산문화지역이 초기 단군이 개국한 땅이고 기원전 1100~1200년 주나라에 의해서 은나라가 망하자 기자가 홍산지역으로 피난을 오니 초기 전기단군조선의 후왕들은 현재의 요동/평양으로 물러나고 결국에는 평양까지 기자조선에 먹히지 않았을까 추측 된다.  

 수양산에서 불에 타 죽어 충철의 표상이고 불을 피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는 한식의 유래가 된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의 왕자였는데 고죽국이 홍산과 현재의 북경사이에 있는 나라이다.(후에 동호라 불리던 지역) 이때 기자는 고죽국 넘어 조선에 와서 왕이 되었다 하고 삼국유사는 기자가 오자 단군이 구월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고 전한것이 아닐까한다.  

단군상을 파괴하는 행위도 비난받아야 하지만 과도한 고조선의 역사단절도 마땅치 한다. 일연은 왜 고조선이라고 했을까? 우리역사에 조선은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조선 4개의 조선이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고려말년에 쓴 것이니 이성계의 조선왕조는 있지 않았다. 그러니 조선을 중심으로 고조선을 기술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고조선이란 말을 썼다는 것은. 기자조선 앞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 옛조선이 있었다.. 이를 단군조선이라한다. 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단군이 기자에 의해서 망했다고 일연은 <위서>를 빌어서 전한 것이다.  

길림 웅녀상

한때 언론은 개천절날 단군상 철거이야기와 중국의 길림지역의 웅녀상으로 동북공정의 또다른 방편이라는 이야기가 이슈였다. 

반 동북공정이란 이름만으로 사학연구소들이 먹은 국가재정만 하더라도 상당한 액수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커다란 연구성과를 내 놓은 것을 본적이 없다.

단군을 역사로 만들고자 한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전하는 것은 왜곡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은폐왜곡이 고구려가 <기자>에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을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누구도 신라가 <풍백>,<우사> 등에 1년에 한번씩 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주장에 필요한 것만 추려서 이야기를 하면 역사의 수레바퀴에 아귀가 맞지 않아 잡음 같은 충돌음이 생긴다. 똥을 누다 말고 일어선 찜찜함이 있다. 단군을 역사로 만들고 싶다면 합리적인 해석을 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기자>를 빼고 나면 요동이던 한반도던 역사는 단절된다.  

즐거운 추석 한가위가 되길 소망하면서 고조선을 이야기할때 누구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늘이 열리고, 한가위 전날 주절거려 보았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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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jintonyleo.tistory.com BlogIcon 진 토니 2009.10.02 2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조선에 대해 자세한 리뷰를 하셨네요. 큰 작업에 추천을 꾹 눌렀습니다. 전 티스토리를 한지 몇일 안됬는데. 여기는 보고 배울 것이 많은 홈피군요.

    님은 삼국사기를 어디서 번역본을 구하셨나요? 궁금합니다. 전 문광부에하는 조선왕조실록은 봤지만

    삼국사기는 krpia인가에서 봤는데 일년에 한 몇십만원돈이어서 꼭 필요한 일 아니면 못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구하시는 곳이 있으시면 제 홈피에 귀한 걸음 하셨을 때 남겨 주세요.

    신종플루 조심하시고, 좋은 추석 보내세요^^

  3. 갓쉰동최고 2009.10.02 2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내에서 원래 한족출신이 아닌 위만을 제외하고 정식 중화국가에서 왕래한 외국인은 진시황의 동방원정대중 하나인 서복이 최초로유력하죠. 기자의 경우 도래설만이 존재하고 도래의 근거가 아직까지는 발견이 제대로되지 않았죠. 그리고 조선초기까지는 소격서에 제사를 모시고 단군조선을 최초의 국가로 여겼으나 조광조가 등장한이후 소격서를 폐지하고 기자조선을 우리민족의 최초의 국가체제를 갖춘 나라로 인정하엿죠. 따라서 기자도래설의 경우 우리학계와 중국학계의 공동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조선의 예는 잘못된 예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유교이상주의를 꿈꾼 조광조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우리 사학계의 연구에 대해서 무조건 신회하지않고 성과가 없다고해서 비판하는 것은 열린 학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봅니다. 단지 주류학계안으로 모든학계와 학자들을 평가할수는 없다고 봅니다.
    역사의 진실이란 언제 누구에의해서 밝혀질지 모르기 때문이죠. 그냥 조용히 연구과정을 지켜볼 뿐이죠.
    그래도 앞장서서 역사에대한 열정을품고 연구를 하는 자들이니까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5 16: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흔적은 있지요.. 다만 국내에서 말을 하지 않고 있지요. 요동.요서에는 기자의 후손으로 생각되는 흔적들이 종종 발견된다고 합니다. 감추고 싶은것이겠지요.. 한국사를 전공하는 자들은.. ㅋㅋ 물론, 한국사의 주류안에서도 새로운 물결이 나오는것은 사실임.. 아님 비주류에 주류를 빼앗길 위기감이 있으니요.. ㅋㅋ

    • Favicon of http://f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08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공자도 아니시고 학계에 인맥이 있으시지 않으시면
      학계의 동향을 알기 힘든데 요즘 학계정보는 어떻게 구하시나요? 물론 저는 전공자나 재야 전공자들과 정보공유를하지만

    • Favicon of http://f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08 2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기자설의 경우 대단히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지요
      서복도래설처럼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9 10: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직까지는 저의 취미이고 나름대로 시간이 없는 관계로.. 별로 알고는 싶지 않습니당.. ㅋㅋ 언제 기회가 된다면 교류가 있겠지용.. ^__^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9 1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자와 왜 문제는 한국에서 금기지용.. ㅋㅋ

    • Favicon of http://f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09 2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자설의 경우 금기가항이 아닙니다.
      학계의 움직임을 잘모르시나 보신데
      고조선학회같은 상고사 관련 학회의 경우에는 언급을 합니다.또한 주류인 진단학회또한 언급을 하지요.
      다만 문물교류사를 연구하시는 분들이나 동북아재단 측에서는 기자도래설을 중시하지 않기는 합니다.
      기자도래 자체가 유교적 이상을 꿈꾼 조선시대에 활발해지기 때문이죠. 그리고 기자도래의 경우 관련 기록이 거의 없죠.
      저도 고등학생인데다가 정보공유의 한계때문에 이정도 밖에 모릅니다

  4. Favicon of http://f BlogIcon 갓쉰동최고 2009.10.02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우리민족은 님 말대로 중국에 의해서만 동이족이라고 불리웠습니다. 만주지방의 고구려를 비롯한 우리민족은 예맥족의 일종으로 맥족이라고 불렸죠.
    그 예는 돌궐이나 서역국가들이 우리를 맥클리 맥구려라고 불렀다는 점에서 드러납니다
    동이족은 한족의 중화사상에서 나온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는 표현으로 우리역사에있어서 별로 좋은 이름은 아니지요. 이는 학자들이 고쳐야 할듯 합니다

  5. 김호성 2009.10.03 0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그런데 글 내용에 오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식은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서 충절을 지키기 위해 불에 타죽어 불을 피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는 유래를 가진 날이 아닙니다. 백이와 숙제는 충절을 지키기 위해 수양산에서 고사리로 연명하다 굶어 죽게 됩니다. 한식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는 백과사전에서 퍼온 내용입니다.

    한식이라는 명칭은, 이 날에는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다는 옛 습관에서 나온 것인데, 한식의 기원은 중국 진(晉)나라의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개자추가 간신에게 몰려 면산(緜山)에 숨어 있었는데 문공(文公)이 그의 충성심을 알고찾았으나 산에서 나오지 않자, 나오게 하기 위하여 면산에 불을 놓았다. 그러나 개자추는 나오지 않고 불에 타죽고 말았으며, 사람들은 그를 애도하여 찬밥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5 16: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2가지의 학설중에 저는 백이.숙제를 언급했는데..님이 지적을 해주시니 보는 분들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6. Favicon of http://potatobook.tistory.com/ BlogIcon 감자꿈 2009.10.03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는 역사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에요.
    갓쉰동 님 행복한 추석 보내고 계시죠? ^^

  7. Favicon of http://toribugs.tistory.com BlogIcon 토리벅스 2009.10.03 14: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동대혈의 사진을 이렇게 본 거는 처음이네요^^ ㅎㅎ

  8.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BlogIcon 펨께 2009.10.03 1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배우고 갑니다.
    외국에서 살면서 실지로 얼마나 많은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잊고 살아가는지를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것 같습니다.

    즐거운 한가위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5 16: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하드라구요.. 님처럼.. ㅋㅋ 그곳에도 한가위 달이 따스하고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당.

    • 팸께님아 2009.10.10 1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팸께님아
      역사를 배워도 올바른 역사를 배우셔야지
      저런 식민사학에 물드린 역사를 배우면 님 정신만 망가질 뿐입니다. 우리나라가 그렇거든요.
      대다수가 왜곡된 역사를 배우니 당연히 민족정신이 없는것이고......

  9. Favicon of http:// bldg.daum.net / uri - modu BlogIcon 시림, 김 재덕 2009.10.05 0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l^*..........
    마음에 뜨거운 사랑
    하나 하나 기억 꺼내어
    그 사랑 담으며
    나 저~길 걸어가리

    추억, 행복 담긴 시간되세요
    사랑으로...
    기다림에

  10. 2009.10.05 0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그러게요 2009.10.06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개천절 없앤 x는 그냥 "빨간날 줄이자"라는 취지 밖에 생각 못 했겠지만요. 그 날에 깃들인 뜻까지 소멸되어 간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어요..

  12. 개천절은 2009.10.10 0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천절은 단군 탄생일이 아니라
    환웅천황께서 신시에서 배달국을 세우신 날입니다.
    아직도 단군에 탄생일이 개천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직도 왜곡된 역사서 삼국사기를 믿는겁니까?
    역사왜곡이 가장 심한나라는 우리나라말고 거의 없습니다.
    어느 나라든 역사가 왜곡되기 마련인데 우리나라 만큼 역사왜곡이 심한 나라 없습니다.
    개천절은 단군 탄생일이 아닙니다.
    크리스마스 또한 예수 탄생일이 아니란것이 밝혀졌는데
    아직도 우리는 개천절이 단군탄생일이라고 생각하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틀린 말입니다.

  13. 그리고 2009.10.10 1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서 불타 없어진거 맞습니다.
    일본놈들과 서양 중국놈들에 의해서 없어지기도 했고
    우리나라 사대주의학자에 의해 없어지기도 했죠.
    지금 주류학계들은 죄 다 이병도 사학에 영향을 받았는데
    그 이병도는 대표적인 식민사학자이지요.

  14. 그리고 2009.10.10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그리고 곰이 사람이 된다? 이게 말이 됩니까?
    곰이 사람이 되었다는것은 비유적인 표현일 가능성이 있는것이지
    아직도 님은 신화를 역사로 착각하고 계십니까?
    해석을 해도 어쩜 그리 못할수가......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닉은 통일 시켜주셈..
      어디에 곰이 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하던가요? 당연히 비유지요.. 신화속에는 역사가 숨어 있어용.. 또한, 신화자체도 역사의 기록물입니당.. 그러니 신화도 역사의 일부에용.. 해석의 문제는 별개로 하고용..

      일일리 반박하거나 대응할만한 댓글이 없는게 아쉽습니당.. 그래서 이댓글로 님이 남겨논 댓글에 대한 대응을 갈음 할까 합니당.

  15. Favicon of https://sephia.tistory.com BlogIcon sephia 2010.10.03 18: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잠깐...... 이거 잘 쓰셨다 싶어서 글 써진 연도를 봤더니........ 작년 글입니까???

    뭐, 사실 개천절에 대해서 어떤 날인지 잘 모르는 정부니... 답답할 노릇이죠.

  16. Favicon of http://ㅁㄴㅇㄹ BlogIcon ㅁㄴㅇㄹ 2010.10.07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ㅁㄴㅇㄻㄴㅇㄻㄴㅇㄹ zzzz메렁메렁 ㅎㅎㅎ 장난입니다..

  17. Favicon of http://ㅁㄴㅇㄹ BlogIcon ㅁㄴㅇㄹ 2010.10.07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18. 오스왈드 2010.10.07 0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보았습니다
    그 유명한 사냥도 벽화는 단군신화라기 보다는 그냥 사냥을 그린 것인데 우연찮게 비슷했다고 해야 하나...
    그정도인 것 같고요
    환웅이 기록에 없는 이유는 환웅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원 단군신화는 환인-단군인데 나중에 환인-환웅-단군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고구려 신화에서도 천제의 아들이자 유화를 건드리는 해모수는 후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군요
    환웅의 존재는 중앙집권이 확립되면서 백성이 왕을 직접 친견한다는 사고가 사라지고 난 뒤 일종으 중개자로서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합니다

  19.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niches/mature.php BlogIcon Mature Pussy 2012.07.12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중에 김영랑의 시처럼 모란이 피기까지는 삼백예순날은 아니더라도

  20. Favicon of http://www.qtoursindia.com/?p=66 BlogIcon meal ready to eat individual 2012.12.10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드라마 작가가 간과한 것이 있다. 태자 부여 융에 관한 것이다.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나 682년 68세의 나이로 복망산에 뭍힌다.

  21. Favicon of http://mariviclisy.blogspot.com/2012/04/this-baker-dozen-items-it-is-best-to.h.. BlogIcon dehydrated strawberries esophageal cancer 2012.12.25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운사>,<풍백>일까? <산해경>을 볼라치면 풍백은 바람의 신으로 오른손에 부채를 들rh 있는 것으로 묘사가 되고 있다. <비렴>이나 방천군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하늘에 있는 별자리중에서 기(箕)성에 해당한다.

오늘은 쉬어가는 페이지를 작성했다.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역사적 지식이나 상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지난 사례를 실증적으로 검토해 볼것이다. 예로 솔거에 대한 기록이다.

글쓴이는 지속적으로 덕만에 관한 기록들을 살피고, 이에 대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들과, 현재 사학계에서 인정된 사실이 아닌 주장들이 사실처럼 공인되는 것을 수정하고 있는 중이다.

대표적인 예가 덕만의 나이에 대한 진실찾기 였고, 기존에 알고 있었던, 덕만과 천명이 한 어머니 뱃속에서 난 동복자매간이 아님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들로 부터 증명하였다. 또한, 덕만이 모란꽃의 나비와 벌이 없음을 보고, 모란은 향기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던 때는 덕만이 어릴때인 627년 11월이라는 사실도 증명하였다. 또한, 덕만이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준때는 선덕왕때가 아닌 덕만 공주시절인 628년 이전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도 삼국유사,삼국사기를 인용해서 증명하였다.

덕만과 관련된 2개의 사찰이 있는데 하나는 분황사이고, 또하나는 영묘사에 관한 기록들이다. 영묘사에 관한 기록들은 덕만의  영묘사 옥문지, 영묘사 화재사건을 유발한 지귀심화 등에 관한 기사를 송고 했었다. 


이번에는 분황사에 관한 기록들 중에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을 깨볼 생각이다. 솔거도 분황사와 관련이 있다. 솔거는 분황사의 관음보살상을 만든 일이 있고, 이런 일화가 삼국유사에 장님이 눈을 뜨게 했다는 기록을 남겨지기도 했다.

혹시 님들은 솔거가 신라의 어느시대에 활약한 화가라고 알고 있습니까? 진흥왕때? 아니면 확실히는 모르지만 통일신라시대때? 다음과 같은 일을 하기 전까지는 막연히 통일신라시대때라고 알고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어떤 기록들을 검색하다가 솔거에 관한 내용까지 검색하게 되었다. 그런데 솔거에 관한 기록에 중대 오류를 발견하였는데, 과거 네이버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지금도 솔거에 대한 기록은 잘못된 부분이 많이 있다. 솔거만 만들었다는 작품은 빼고, 인물 솔거만을 대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럼 솔거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자. 일단,  네이버의 과거의 기록이다. 

솔거 [, ?~?] 신라 진흥왕 때의 화가 솔거(率居)가 황룡사(皇龍寺) 벽에 그린 그림.

신라 진흥왕 때의 화가. 황룡사 벽에 그린 《노송도()》에 새들이 앉으려다가 부딪쳐 떨어졌다는 일화가 있다. 그 밖에도 분황사의 《관음보살상》, 진주 단속사의 《유마거사상》 등이 있어 신화()라고 했다 하나 전하지는 않는다.
 
노송도 작가  솔거(率居) 종류  벽화 제작연도  신라 진흥왕 연간 

현재는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솔거가 활동한 시기에 대해서는 학계의 논란이 있으나, 대개 통일신라 때의 인물로 추정한다.

네이버의 솔거 기록은 <두산백과사전>을 인용하고 있다. 신라 진흥왕때의 화가에서 "활동시기에 대해서는 학계의 논란이 있으나 대개 통일신라 때의 인물로 추정한다." 라고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노송도에 관한 기록은 수정되지 않고 있다.

신라 진흥왕 때의 화가 솔거()가 황룡사() 벽에 그린 그림.
작가 솔거()
종류 벽화
제작연도 신라 진흥왕 연간


사실 솔거 기록만도 바뀌게 된 배경은 글쓴이가 솔거에 관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과 솔거관련 여러가지 기록들을 근거로 수정을 요구하여 수개월 이상 지난 후에 겨우 바뀌게 된것이다. 물론, 노송도도 수정요구했지만 달랑, 솔거만 바꾼것을 보고 사학계나 학계가 참으로 힘든곳이구나 했다. 어찌 되었던 원출처인 <두산백과사전>의 개정판은 어찌바뀔지 모른다. 두산백과사전 다음판에는 여전히 <통일신라시대 추정된다>이거나 진흥왕때 화가라고 기록될건지는 두고 볼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네티즌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위키백과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솔거(率居)는 신라 진흥왕 때의 화가이다

황룡사지금동보살두 /황룡사지금동보살두, 높이 8.3cm

일단 솔거가 그렸다는 황룡사 벽화의 노송도를 알기 위해서는 황룡사가 언제 만들어 졌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솔거처럼 언제 태어나고, 활동했는가를 알고 싶다면 최종활동시기나 기록를 기준으로 역산을 하는 방법이 최선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역사 상식을 조금 보충할꼄 차근차근 근거를 찾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삼국사기>,<삼국유사> 에는 황룡사가 진흥왕 14년 553년에 만들기 시작했다

300

( 분황사석탑 출처 : 한국브리태니커회사 )

27년(566) 2월에 기원사(祇園寺)와 실제사(實際寺) 두 절이 이루어졌다. 왕자 동륜(銅輪)을 왕태자로 삼았다. 진(陳)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황룡사가 준공되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3년(634년)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었다. 분황사(芬皇寺)가 완성되었다." - 삼국사기   

황룡사는 진흥황 14년 553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진흥왕 27년(566년)에 완성이 된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분황사는 634년 덕만 선덕왕 3년에 완성되었다고 하지만 삼국유사는 분황사는 634년에 착공(시작)하고 635년에 영묘사 공사를 착공(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영묘사의 옥문지 사건은 635년 이후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영묘사 지귀설화도 635년이후가 되어야 하지만, 지귀설화의 화재사건을 근거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절충한다면 영묘사는 1차, 2차 완성시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지귀심화에 관한 기사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어찌되었던 분황사는 634년 이후인 선덕왕때 만들어 진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솔거가 만들었다는 진주 단속사의 《유마거사상》은 언제 만들 수 있었을 까요?  

일단 진주 단속사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단속사터 탑

763년 경덕왕 22년 8월에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다시 피었다. 상대등 신충(信忠)과 시중 김옹(金邕)이 관직에서 물러났다. 대나마 이순(李純)은 왕이 총애하는 신하였는데, 갑자기 하루 아침에 세상을 피하여 산 속으로 들어갔다. 왕이 여러 번 불렀으나 나오지 않고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왕을 위하여 단속사(斷俗寺)를 세우고 거기서 살았다. - 삼국사기

 
763년 경덕왕(景德王; 왕은 곧 효성왕曉成王의 아우임) 22년 계묘(癸卯)에 신충은 두 친구와 서로 약속하고 벼슬을 버리고 남악(南岳)에 들어갔다. 두 번을 불렀으나 나오지 아니하고 머리 깍고 중이 되었다. 그는 왕을 위하여 단속사(斷俗寺)를 세우고 거기에 살았는데, 평생을 구학(丘壑)에서 마치면서 대왕의 복을 빌기를 원했으므로 왕은 이를 허락하였다. 임금의 진영(眞影)을 모셔두었는데 금당 뒷벽에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 삼국유사 
 
또 별기(別記)에는 이러하다. 경덕왕 때에 직장(直長) 이준(李俊; <고승전高僧傳>에는 이순李純이라고 하였다)이 일찍이 소원을 빌었더니 나이 50이 되면 중이 되어 절을 세우게 되리라 했다. 748년 천보(天寶) 7년 무자(戊子)에 50세가 되자 조연소사(槽淵小寺)를 고쳐지어 큰 절을 만들고 단속사(斷俗寺)라 하고, 자신도 삭발하고 법명(法名)을 공굉장로(孔宏長老)라 했다. 이준은 절에 거주한 지 20년에 세상을 떠났다. - 삼국유사 단속사 별기

위의 기록들을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다. 

ㅁ 황룡사는 진흥황 14년 553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진흥왕 27년(566년)에 완성이 된 것이다
ㅁ 삼국사기에는 분황사는 634년 덕만 선덕왕 3년에 완성되었다고 하지만 삼국유사는 분황사는 634년에 착공(시작)하고 635년에 영묘사 공사를 착공(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ㅁ 단속사는 천보7년(748년) 경덕왕 7년 이나 경덕왕 22년(763년) 에 단속사가 완공되었다
.

진흥왕 때 황룡사(553년~566년), 선덕왕 634년 이후 분황사, 경덕왕 748~763년 단속사 이다. 

솔거가 단속사의 <유마거상>을 비롯해서 황룡사 <노송도>, 분황사의 <천수관음보살상>를 작업을 할려면 763년 전후 시기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 황룡사의 창건당시에 솔거가 노송도를 그렸다면, 태어나자 마자 그렸다고 해도, 763-566+1 = 198세가 됩니다. 설마, 솔거가 10대 초반에 그r리고, 단속사 창건 당시 유마거상을 만들었다고 해도 210세인데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언급했지만 생몰년을 모를때는 관련기록의 마지막을 기준으로 살아간 시대를 구분하는 겁니다. 

단지, 솔거의 활동시기만을 고려한다면, 빨리 잡아도 748년 경덕왕 7년이고, 늦게 잡아도 763년 경덕왕 22년 이후가 되어야한다. 
 
좀더 솔거의 활동시기를 좁히면, 단속사가 완성된 이후 황룡사나, 분황사가  화재로 일부 소실되거나 중창되는 시기의 중간일 수 밖에 없다.

솔거에 대한 에피소드 1 장님도 눈을 뜨게한 솔거

경덕왕(景德王 : 742~765 ) 때에 한기리(漢岐里)에 사는 희명(希明)이라는 여자의 아이가, 난 지 5년 만에 갑자기 눈이 멀었다.  어느날 어머니는 이 아이를 안고 분황사(芬皇寺) 좌전(左殿) 북쪽 벽에 그린 천수관음(千手觀音) 앞에 나가서 아이를 시켜 노래를 지어 빌게 했더니 멀었던 눈이 드디어 떠졌다.

그 노래는 이러하다. << 무릎을 세우고 두 손바닥 모아, 천수관음(千手觀音) 앞에 비옵나이다. 1,000손과 1,000눈 하나를 내어 하나를 덜기를, 둘 다 없는 이몸이오니 하나만이라도 주시옵소서. 아아! 나에게 주시오면, 그 자비(慈悲) 얼마나 클 것인가. >> 찬하여 말한다..<< 죽마(竹馬)·총생(葱笙)의 벗 거리에서 놀더니, 하루아침에 두 눈 먼 사람 되었네. 대사(大士)가 자비로운 눈을 돌리지 않았다면, 몇 사춘(社春)이나 버들꽃 못 보고 지냈을까. >> -삼국유사


황룡사의 <노송도>처럼 <분황사> <천수관음>의 전설은 천수관음의 불업도 있지만, 눈감은 장님도 눈을 뜨게 할 만큼 뛰어난 그림이란 이야기를 하고 <솔거>가 그렸다는 신의 작품의 변형를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던 솔거의 활동시기가 경덕왕때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또하나의 증거일 수 있다. 
 
에피소드 2 경덕왕 진영을 그린 솔거
경덕왕(景德王; 왕은 곧 효성왕曉成王의 아우임) 22년 계묘(癸卯)에 신충은 두 친구와 서로 약속하고 벼슬을 버리고 남악(南岳)에 들어갔다. 두 번을 불렀으나 나오지 아니하고 머리 깍고 중이 되었다. 그는 왕을 위하여 단속사(斷俗寺)를 세우고 거기에 살았는데, 평생을 구학(丘壑)에서 마치면서 대왕의 복을 빌기를 원했으므로 왕은 이를 허락하였다. 임금의 진영(眞影)을 모셔두었는데 금당 뒷벽에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삼국유사

<솔거>가 <단속사>에 그렸다는 <유마상>은 인도 비사리국의 장자 유마힐의 상() 아닌 실제는 경덕왕의 <진영>이 되겠다.  <단속사>는 경덕왕을 위한 사찰이라 하고, 유마힐은 부처의 속가제자로 비사리국의 장자로 불업를 충실히 한 보살처럼 경덕왕의 생애는 불(佛)에서 시작해서 불(佛)로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나라에 보낸 <만불산>도 경덕왕시기이고, <성덕대왕신종>도 경덕왕때 부터 제조하기 시작한 것을 <혜공왕>이  완성한 것이다. 경덕왕시기에는 왕즉불(王卽佛)사상이 정점에 다달랐다고 할 수 있다. 이또한 솔거의 주 활동시기가 경덕왕때라는 근거자료가 된다. 이로 미루어 <솔거>도 경덕왕의 많은 불사에 공장이로 참여하였을 것은 분명해진다.

단군을 인식하게된 시기가 언제부터 일까? 하는 의문이 솔거까지 추적하였는데, 솔거의 기록이 이상했습니다. 솔거는 단군의 초상을 만들어 집집마다 돌렸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단군을 인식한 시기가 솔거의 활동시기 이전이란 이야기 이겠지요.

 대부분 솔거에 관한 기록들은 두가지 부류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두산대백과사전>의 진흥왕 때 화가 이거나 두번째는 그저 통일신라시대에 활동한 화가 라고 만 기술되어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가 얼마나 긴데 그 기간을 다 솔거가 살았겠습니까? 기존 통설을 깨는데는 시간이 걸림을 솔거사례를 들어서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이글을 본사람은 솔거는 경덕왕 중기 이후에 활동한 화가라는 사실을 알았을 겁니다.  좀 쉬어가는 기사와 즐거운 시간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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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2 1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휴일답게
    쉬어가는 시간이군요 ㅎㅎㅎ
    덕만의 나이에 이어 분황사와 솔거에 대한
    일반적인 우리가 알고있는 오류를 지적하셨군요.
    역사공부 ㅎㅎㅎ
    끝이없군요 정말.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휴일 잘 보내시길 빌면서
    고맙습니다.

  2. Favicon of http://dongnae.tistory.com BlogIcon Sun'A 2009.08.02 1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휴가 아직 안떠나셨어요??
    시원한 곳으로 가셔서 행복한 휴가 보내시길 바래요..
    글 잘보고 갑니다
    휴일 잘 보내시구요^^

  3.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2 12: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이버 오픈 캐스터를 개설하고 싶은데.. 최소 다섯명 이상의 추천이 필요하다고 하는군요..ㅠ.ㅠ. 갑자기 개설이 주저되네요..

    오픈 캐스터 내용은 드라마를 통해본 역사와 정치.사회. 이슈 일반에 대한 내용이 될것 같습니다..

    추천은 이메일로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메일을 보내주고 싶으신 분은 비공개로 댓글로 이메일 주소를 남겨 주신다면 ㄳ 하게 추천인으로 등록하고, 제가 님들에게 메일을 발송할겁니다..

    제목은 네이버 오픈캐스터 추천좀 해주셈 입니다..

    추천자 5 분이 안되면 오프캐스터 추천 하지 말라는 뜻으로 알고 접겠습니다.. ^___^;;;

  4. Favicon of http://www.humornara.kr BlogIcon 유머나라 2009.08.02 1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아.. 정말 멋진 글이어요. 역사도 좀만 더 노력한다면 바로 알게 될 수 있겠구나 싶어요~

  5.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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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7. Favicon of http://susiecrowell.typepad.com/blog/2012/04/budget-endurance-kits-an-affordab.. BlogIcon military meals allowance 2012.11.01 1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이 마흔일곱의 나이에 등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네요. 젊은 나이에 성조황고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

  8. Favicon of http://www.bookcaseangel.com/index.php?category=34 BlogIcon invisible fence wire size 2012.11.06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

  9. Favicon of http://www.cheaphelmetsonlineshop.com/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이 마흔일곱의 나이에 등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네요. 젊은 나이에 성조황고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

  10. Favicon of http://celesteribb.blogspot.com/2012/04/creating-great-urban-survivalism-gear... BlogIcon ready store utah 2012.12.10 2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이는 한때 꿀벅지라는 말이 자신을 칭찬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꿀벅지라는 말이 가지는 성적인 취향임을 알았을 때 유이는 꿀벅지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11. Favicon of http://theapt.blogs.com/ BlogIcon portable electric fence for dogs 2012.12.22 1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 다른 웹브라우저에서는 마우스 우측버튼과 부가기능(add-ons)등을 이용해 지원하고 있는 기능이기도 한

  12. Favicon of http://blogs.forbes.com/people/lyzacarmen/ BlogIcon forbes blogf 2013.03.06 15: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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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Favicon of http://www.turks.us/directory.php?topic=all&year=2013&month=2 BlogIcon Directory 2013.03.14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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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Favicon of http://activerain.com/blogs/williamteho/archives/2009/12 BlogIcon william activerain blogs 2013.05.09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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