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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공주의남자>가 결말로 치닫고 있다. 세령공주는 세조(수양대군)의 명으로 신면의 노비가 된다.


수양대군(세조)가 세령공주를 신면의 노비로 만든 이유는 김승유가 세령을 구하러 올 때 잡으려는 계략과 세령이 마음을 다잡기를 바라는 마음이였다.


김승유는 광주에 있던 정종으로부터 반란복위 계획이 있으니 김승유가 내려와서 도와주기를 바란다.


반란 계획은 서울의 총통위가 서울에서 내응을 하고, 정종이 있는 전라도 군사와 금성대군이 있는 경상도 군사가 수원에서 모이고, 김승유 자신이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을 모시고 서울을 공략한다면 세조(수양대군)의 세력은 무너지고, 전국의 수양대군의 반대파와 유림들이 단종을 복위하는데 찬성할것이니 실패할 수 없다고 총통위 군사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이에 총통위 반란세력은 김승유가 김종서를 닮아 절묘한 계책이라며 김승유를 한층 띄워준다.


하지만, 김승유는 광주로 가는 도중에 세조와 신면이 퍼트린 세령공주가 신면의 노비가 되어 신면의 집에 잡혀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면의 집으로 빙옥관 사람들과 찾아간다.


김승유에게 필요한건 신면이 세령을 덮칠까하는 우려해서 신면의 집으로 찾아가 세령을 구하는 것이 우선일까? 아니면 정종을 찾아가 반정을 하는게 우선일까? 물론, 김승유는 신면과 세령이 결혼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세령공주를 수양대군 집 결혼식장에 침투해서 납치하는 만행도 저지른적이 있다. 신면의 집에는 수많은 군사들이  포위하고 있다. 달랑 3명으로 신면의 집에 들어가 세령을 구하는데 성공을 한다.


김승유의 수준이라면 신면의 집으로 쳐들어가는 것 보다는 궁궐을 넘어서 세조(수양대군)을 치는것이 더 빠를 것 같다. 정종과 함께 전라도, 경상도 군사를 몰아 수원에서 모여서 서울을 공략할 필요가 없을 텐데 말이다.


김승유가 세령을 구하여 한말에 두명이 말을 타고 광주로 떠난다. 작가는 주인공 말태우기에 습관화 된 것 같다. 한 마리 말을 타고 두 명이 광주까지 간다는 발상은 참으로 난감하다. 더군다나 신면보다 빨리 광주에 도착하기 까지 한다. 나르는 슈퍼보드라도 탔나? 한가한 사랑놀음 스킨쉽이 신면보다 더 빠르게 했다는 것인가?


어쨌든, 김승유가 세령을 구하고 떠나자, 신면은 빙옥관으로 가서 빙옥관 주인을 잡아들이고 빙옥관 주인은 김승유 너의 사랑만 소중하지 않고, 나의 사랑도 소중하다며 김승유가 정종이 있는 광주로 갔다고 까발린다.


결국에는 정종은 서울로 압송되어 거열형에 처해지고, 금성대군은 경상도에서 사약을 받고 죽는다. 강원도 영월에 있던 단종도 사약을 받고 죽는다.

김승유가 자신의 치기어린 사랑놀음에 민폐만 끼치지 않았다면 아버지도 죽지 않고, 정종도 죽지 않았을 것이고, 금성대군도 죽지 않고, 자신의 아버지 김종서가 단종을 지켜달라는 유명도 지킬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김승유는 하지 말라는 짓은 골라서 하는 청개구리였다. 사랑 때문에 아버지와 형을 죽였고, 결국에는 친구인 정종과 금성대군과 자신의 주군인 단종도 죽여 버렸다. 하지만, 김승유는 자신이 어떠한 잘못을 했는지 모르고 처형장에 찾아가 정종을 구하려고 하지만, 이미 정종이 죽고 난 후의 피 흔적만 바라본다.


다른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정종의 처형을 김승유만 모른다는 설정도 어설프기 그지없다. 김승유 같이 어설프고 민폐만 끼치는 인물을 세조와 대항하는 우두머리로 두고 있다면 그 조직은 해보나 마나 필패이다.  총통위 반란세력은 후사를 도모하기 위해서 이시애와 연합전선을 구축하는데 세령공주는 수양대군의 딸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딴지를 건다. 주군 단종이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모자리들의 모임인 총통위와 민폐 김승유가 반란에 실패할것은 명확하다.


김승유는 이제 이시애가 있는 함경도로 떠나 반정을 도모하려고 한다. 분명히 예전부터 지금까지 한 것처럼 김승유가 이시애를 죽음으로 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좋게 이야기하면 김승유는 머피의 법칙에 빠진것이다. 그리고 신면이 세조에 버림을 받지만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려다 죽게 될 것이다.


공주의 남자의 작가는 김승유가 세조(수양대군)를 죽이고 조선의 왕이 된다는 설정을 하지 않는지 알수가 없다. 세조가 죽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세조가 왕인데 세조를 죽이면 역사와 다르기 때문인가? 최소한 큰틀에서 역사는 지켜야 하는 거라고 작가나 시청자가  생각했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그동안 공주의 남자가 지킨 역사적 팩트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역사를 망치는데 작가의 활약은 끝이 없었다.



실존인물 김승유가 계유정란이전에 죽었는데 계유정란에 나온다는 설정자체 부터가 실패한 설정이다.
 
김종서의 손자 김석동이 세령공주와 사랑을 하고 계유정란에 나온다면 그나마 역사를 망치지 않고 할수 있는 설정이였을 것이다.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제작자 계유정란 김승유 3살? 그럼 김승유와 아들 효달이 동갑? 대략난감

경혜공주는 세종이 명하여 정종과 결혼을 한다. 그전에 세종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8째 아들 영흥대군(영응대군)을 정충경의 딸 정씨에게 장가를 보낸다. 정종은 평창군주(경혜공주)에게 장가를 가기 전에 이미 왕족의 일원이었다. 영흥대군은 어릴적 수양대군의 손에 큰다.


정종의 고모는 1407년 태종(이방원)의 둘째 효령대군에게 시집을 갔고, 정종의 누이는 세종의 영응대군에게 시집을 갔고, 정종은 문종의 큰딸 평창군주(경혜공주)에게 장가을 갔다. 공주의 남자에서처럼 아버지 정충경이 죽자 한미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3대에 걸쳐 왕가와 혼인하는 한미한 왕족을 본적이 있는가?

 

정종은 전국방방곡곡 재산이 없는 곳이 없었다. 경혜공주와 정종이 결혼한 후에는 더욱더 재산을 불려나갔다. 어린 동생 단종을 자기집에 모셔놓고, 권력형 비리 정점에 정종과 경혜공주가 있었다. 계유정란이 있던 때도 단종은 경혜공주의 집에 있었다. 반란에 연루되어 유배된 지역도 자신의 농장이 있는 통진이었을 만큼 정종은 끝없는 사랑을 받았다.


어쨌든,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의 뻘짓같은 세령 구하기로 인해서 정종과 금성대군과 단종이 죽었다.



정종이 서울로 압송된 때는 1461년 7월이었고, 3개월인 1461년 10월 20일 정종이 죽는다.  광주에 같이 있던 경혜공주는 3일후인 1461년 10월 23일에 아들 정미수와 함께 서울로 올라온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경혜공주가 정종이 압송되자 자기 마음대로 서울로 올라오는 것으로 그렸고, 이미 태어나 눈망울을 굴리고 있었을 정미수는 아직도 경혜공주의 배속에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사림파들이 경혜공주가 관노가 되었다는 유언비어와 정미수가 유복자였다는 설을 퍼트린다. 하지만, 알고보면 한심한 수준의 쌔빨간 거짓말이들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더욱 압권은 김승유와 정종이 전라도 군사와 금성대군이 있는 경상도 군사를 이끌고, 김승유가 영월에 있는 단종을 모시고 오겠다는 설정이다. 더군다나 세조의 맏아들 세자 숭(장)이 아픔에도 세령을 찾는다는 설정이다. 


김승유가 신면의 집에서 뻘짓을 하지 않고, 정종과 정상적인 반란을 한다면 김승유의 반정계획은 성공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을 조금 차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공주의 남자에서 수양대군(세조)는 정종을 죽이고 금성대군과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금성대군과 단종이 죽는 시점이 비슷한 건 사실이지만, 단종이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말은 세조가 죽어야 사는 사림이 퍼트린 유언비어인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1457년 6월 21일 단종의 장인 송현수는 권완과 단종복위를 꿈꾸며 반란을 획책하지만 들키고 만다. 이때 단종은 노산군으로 감봉되고 영월유배

1457년 6월 22일 단종 영월로 유배되다.


1457년 6월 27일 관노 이동이 금성대군의 모반을 아뢰다.

금성대군은 경상도에서 순흥부사(영주) 이보흠, 안순손과 반란을 획책하고 단종 복위를 꿈꾸지만 이도 들키고 만다.


1457년 9월 2일 세조의 세자 도원군 장(숭)이 죽는다.


1457년 10월 21일 결국 단종의 장인 송현수와  금성대군을 죽이라는 의정부, 사간원, 사헌부, 종친부의 압박에 세조(수양대군)은 송현수와 금성대군을 사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1457년 10월 21일 단종이 결국에 죽었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영월에서 보고가 올라왔다는 뜻은 단종이 그전에 죽었다는 뜻이다.


1457년 11월 18일 

종부시(宗簿寺)에서 아뢰기를,

“노산군(魯山君) 및 이유(李瑜) ·이영(李瓔)·이어(李)·이전(李瑔)·정종(鄭悰) 등은 그 죄가 종사(宗社)와 관계되므로 속적(屬籍)을 마땅히 끊어야 합니다. 청컨대 아울러 자손까지도 종친(宗親)에서 삭제하고 부록(附錄) 같은 데 기록하도록 하소서.”
 
1461년 7월 정종 광주에서 반란 계획이 들통남
1461년 10월 20일 정종 죽음
1461년 10월 23일 광주에 있던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와 서울로 돌아옴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이 반란이 들킨 때는 1461년 7월이었다. 그러니 1461년 10월 정종이 죽고, 1457년 10월 금성대군이 죽고, 1457년 10월 단종이 죽을 수가 없다. 더군다나 1457년 9월 금성대군과 단종보다 먼저 죽은 도원군 장이, 정종이 죽은 이후에 세령공주를 찾을 수도 없다.

 

1467년 5월 16일 함길도 전 회령절제사 이시애가 반란을 하다. 이때 신면이 죽는다. 신면의 나이는 30살이었고, 신면에게는 두 명의 아들 5~6세의 신용관, 신용개가 있었다.

 

신면은 승지(承旨)가 된 지 5년이 되었어도 일찍이 과실이 없었으며, 임금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 자못 자상하고 명확하였다. 죽을 때의 나이가 30이며, 아들이 둘이 있으니, 신용관(申用灌)과 신용개(申用漑)이다. - 세조 13년, 1467년 5월 22일


이때 신숙주와 한명회는 이시애의 반란에 연루되었다는 이시애의 반간계에 하옥되는 처지에 있었다가 신면이 반란을 진압하다 죽고나서 이시애에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풀려난다.


정종이 죽은 때는 1561년이고, 이시애의 난은 1567년 5월, 계유정란은 1553년이여서 세월은 화살처럼 빨리 지나간다. 어느덧 12년이 흘렀다. 하지만, 김승유의 조카 아강은 아직도 어린애에 불과하다. 충격을 먹어서 더이상 자라지 않겠다고 선언한 피터팬에 양철북의 꼬마를 생각하게 한다.

김승유와 세령은 30대 후반 노총각, 노처녀가 되었다. 신면은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 세령공주를 자신의 첩실로 들이려고 노력하고 있고, 세조는 신면에게 세령공주를 첩실로 넘기지 못해서 안달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신면은 한성부 판관으로 나온다. 1453년 계유정란 즈음에 김승유, 정종, 신면, 세령공주는 20살로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신면은 1438년생으로 15살에 불과했다. 수양대군이 신면에게 세령을 노비로 하사한 때인 1461년이면 신면은 24살이고 이미 아들 신용관을 임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공주의 남자> 결말에서 김승유가 반란에 성공해서 세조를 죽인다고 이상할 것이 없고, 오히려 공주의 남자답다고 하겠다.  세조가 죽어야 시청자들은 오르가슴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그리고 김승유가 세령과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앤딩이나 아버지가 죽은 세령이 결국에는 김승유를 떠나거나 죽거나 절로 들어가는 것으로 그린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먼저 김종서를 죽인 사람은 수양대군이니 김승유가 수양대군을 죽이고 왕이 된들 세령과 사랑은 변치 않을 것이다. 서로 비긴 것이니 말이다. 시청자들도 공주의 남자 결말에 김승유와 세령공주가 산에 들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있기도 하다. 현재 공주의 남자 결말로는 신면도 죽고, 김승유도 죽고, 세령도 죽는 새드엔딩이 될것이 눈에 보이지만 말이다.
 


공주의 남자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가 역사인듯 말하는 사람이 늘어날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고 아직도 역사와 구분을 하지 못하고 미실이 어떻네 하는 사람들을 보면 웃지않을 수 없다.

지금도 공주의 남자를 보고 역사와 구분을 하지 않고, 신면을 비난하고, 세조를 비난하고, 사육신과 김승유가 한편이었는 줄 안다. 김승유와 정종, 그리고 사육신이 한편이라 설정은 김종서를 두번죽이는 것이다. 또한, 사육신을 두번 죽이는 것이다. 드라마가 역사가 되고 신화가 되어서 언젠가는 김승유는 사육신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을 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그와 반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와 역사가 다르다는 점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래의 글들은 공주의 남자나 사극이 망친 역사를 바로잡는 글들 입니다. 최소한 드라마를 보더라도 역사를 알고 보면 재미가 극대화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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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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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05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크리스폴 2011.10.05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입니다..다만 아쉬운 것이 오타가 많네요..신경써주셨으면..백동수랑 광개토태왕에 대한 글도 써주셨으면..혹시 안 보시나요? ^^

  3. Favicon of http://www.starkdevelopmentinc.com/ BlogIcon General Contractors San Diego 2011.10.05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찬성할것이니 실패할 수 없다고 총통위 군사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이에 총통위 반란세력은 김승유가 김종서를 닮아 절묘한 계책이라며 김승유를 한층 띄워준다.


    하지만, 김승유는 광주로

  4. 2011.10.06 0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사람들이 이걸보고 역사라고 믿는게 문제가 아니라 실제 역사자체에 관심을 안 갖는게 문제겠지요 ㅋ

  5. 공남폐인 2011.10.06 2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남 안보셧나바요 내용이 안맞네요 전혀ㅡㅡ 김승유가 사랑해서 가족이 죽다녀ㅡㅡ 일회부터 보시길...

  6. ㅓㅓ 2011.10.21 14: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보지 마세요.

  7. 뮤리엘 2011.10.30 0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 관심이 많은건 잘 알겠는데요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고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입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워낙 잘되어있어서 드라마를 보고 인터넷에서 사실여부를 찾아보는 활동도 활발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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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히 반박할려면 위처럼 일본의 수입조건과 한국의 수입조건이 다르다는 가장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또한, 확율론적으로도 반론을 제기한것도 극히 위함한 발상이고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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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김승유는 광주로 가는 도중에 세조와 신면이 퍼트린 세령공주가 신면의 노비가 되어 신면의 집에 잡혀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면의 집으로 빙옥관 사람들과 찾아간다.

  19. Favicon of http://www.fremdgehen-heute.ch/ BlogIcon Heute Fremdgehen 2012.12.30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그와 반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와 역사가 다르다는 점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래의 글들은 공주의 남자나 사극이 망친 역사를 바로잡는 글들 입니다. 최소한 드라마를 보더라도 역사를 알고 보면 재미가 극대화 됩니다.


<공주의 남자>에서 경혜공주는 문종 말년(1452년 경) 비루한 가문의 정종에게 시집을 간다.

 

<공주의 남자>에서 문종은 김종서와 밀약을 맺고 김종서의 막내 아들 김승유를 경혜공주의 부마로 세우려 했지만, 수양대군(세조)의 반대로 정종에게 시집을 가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경혜공주는 처음에 마지못해 맞이한 부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정종이 자신을 지키고 문종이 승하하고 단종이 왕위에 있었을 때에도 충실히 왕실을 위해서 노력하는 면에 점차 마음을 열고 자신의 배필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경혜공주는 문종과 현덕왕후의 소생인 경혜공주(1436년생)는 세종 말년 1450년 1월에 세자 문종의 맏딸로 평창군주 시절 15살에 영양위 정종에게 시집을 간다.


작가가 자신이 목적한 이야기로 이끌어 가려고 사실이 아님을 알고 서도 허위로 만든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설마 작가가 거짓말을 했겠어 하면서 드라마가 역사인것처럼 수양대군을 비난하고, 그에 비리 붙어있는 신숙주와 신면을 나쁜놈으로 몰아 세우고 비난을 한다. 이를 지적하면 왜 드라마와 역사를 구분하지 못하냐고 역성이다.
 


실질적으로 드라마와 역사를 구분 못하고 드라마의 설정을 역사로 알고 감정이입을 하면서 전혀 관련도 없는 자를 비난하면서 말이다. 


이와 비슷한 예가 예전이라고 없었겠는가? 정종, 경혜공주와 관련해서 이긍익이 채록한 연려실기술에는 다음과 같은 경혜공주이야기 전해진다.
 

정종(鄭悰)


본관은 해주(海州)인데, 문종의 부마(駙馬)이다. 경혜공주(敬惠公主)에게 장가들어 영양위에 봉해졌다. 시호는 헌민공(獻愍公)이다.
 

○ 공이 적소에 있다가 사사된 뒤에, 공주가 순천 관비가 되었다. 부사 여자신(呂自新)은 무인인데, 장차 공주에게 관비의 사역을 시키려 하니, 공주가 곧 대청에 들어가 교의(交椅)를 놓고 앉아서 말하기를, “나는 왕의 딸이다. 죄가 있어 귀양은 왔지마는, 수령이 어찌 감히 나에게 관비의 사역을 시킨단 말이냐.” 하므로 마침내 부리지 못하였다. 여자신은 뒤에 벼슬이 형조 판서에 이르렀는데, 여유길(呂裕吉)의 방조(旁祖)이다.

- 연려실기술(이긍익)
단종고사본말 정난에 죽은 여러신하



이긍익은 공자의 (<춘추>) 예를 따라 “술이부작”(전술하기만 하고 창작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더불어 연려실기술을 쓰는 이유는 “이는 널리 수집하여 후세에 완전한 글을 저술할 분에게 고징(考徵)의 자료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다만 듣고 본 것이 넓지 못하여 많이 빠뜨린 것이 한스러우니, 독자는 용서할지어다.


세조 2년 1456년 2월 처음 순천부사에 대한 언급을 하는데 세조가 순천부사를 추국한다. 어쩌면 관노로 떨어진 경혜공주에게 일을 시키지 못했다고 추국했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사육신 중의 한명인 유성원이 분사현집의로가 있었으니 경혜공주에게 일을 시킨 순천부사를 추국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순천부사가 추국을 당한 이유는 사람이 일을 부지런히 하지 않는다고 죽이고도 유성원이 국문하려고 하자 병을 핑계로 사직해 버렸기 때문에 추국하기를 상소한 것이다.

물론, 당연히 감히 경혜공주에 일을 시킨 여자신은 아니다. 이때 순천부사는 정유용이었다.

 

 

 


물론, 경혜공주가 관노로 강등된 때는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하고, 왕이 된 후라고 생각했다면 위의 기록은 아무쓸모도 없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한다.
 

전라도 분사헌 집의(分司憲執義) 유성원(柳誠源)이 아뢰기를


 ‘부사(府使) 정유용(鄭有容)은 박인(朴仁)이 사냥에 부지런하지 않았다 하여 죽이고, 사냥한 자에게 면포(綿布)를 징수하되 군사(軍士)는 사람마다 1필, 주리(主吏)는 사람마다 5필이었다고 하므로, 신(臣)이 국문(鞫問)하려 하니, 정유용은 질병으로 사직하였으므로 공사(供辭)에 관련된 사람을 국문하여 성안(成案)해 가지고 왔습니다.”

- 세조 2년 1456년 2월 24일



일단 세조시절 전라도 순천부사로 여자신이 있었을까?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여자신은 세조시절 등장하지 않는다. 여자신이 실록에 처음 등장할 때는 성종1년 1470년이다. 여자신의 활동무대는 성종시기라는 뜻이다. 처음부터 삐그덕 거리고 말았다. 여자신의 처음 이름은 여의보였는데 이름을 성종이 여자신으로 바꾸도록 하고 변방 도절제사가 되게 한다.


이름은 달라도 경혜공주가 관노로 떨어졌을 수도 있지 않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세조는 악당인데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경혜공주가 전라도 순천에 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관노가 된 적도 없다.


 



연려실기술의 시제는 정종이 죽은 이후, 경혜공주가 순천관노가 되고, 순천부사 여자신이 경혜공주에게 사역을 시켰는데 경혜공주가 반발했다는 것이다. 

키포인트는 정종이 죽은 이후가 된다. 정종은 1461년 7월 26일 반란에 연루되어 서울로 압송되고, 세조 7년 1461년 10월 20일에 죽는다. 세조는 광주에 남아 있는 경혜공주를 서울로 오도록 조치를 한다.


세조 7년, 1461년 7월 26일, 외인 중과 소통한 정종을 잡아들이게 하다.


세조 7년, 1461년 10월 20일,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서 상참(常參)을 받고 정사(政事)를 보았다. 좌의정 신숙주(申叔舟)·우승지(右承旨) 홍응(洪應)을 불러 정종(鄭悰) 등의 죄를 의논하여 결정하였는데, 정종과 그 일에 관여한 5인을 능지(凌遲)


세조 7년 10월 23일, 환관(宦官) 임용(林用)을 광주(光州)에 보내어 정종(鄭悰)의 아내를 데리고 오게 하였다.



정종이 죽고 3일 만에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경혜공주다. 순천으로 갈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경혜공주가  관노가 된적이 있을까?
 

1455년 11월 4일 정종은 자신을 수호하는 반인(군인) 김인을 나주와 광양으로 보내 조유례와 모의를 진행한다.는 남계상의 자복이 올라온다.


11월 9일 역모에 가담한 자들을 죽이라는 상소가 넘쳐난다.


다 죽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애써 여러 사람의 논의에 따라서 그 더욱 중한 자를 가려서 교수형에 처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관노(官奴)로 삼아, 이로써 두 마음을 품었던 무리들을 징계하니, 지금부터 이후로는 새로운 괴이한 음모가 있는 것이 아니면, 논청하지 말도록 중외(中外)가 알도록 하라



연려실기술에 “경혜공주가 관노가 되었다“는 근거가 제시되는 것이다. 그럼 그렇지 정종과 경혜공주가 관노가 되었잖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프로파간다 이야기는 팩트와 허구를 가미해야 그렇듯하게 포장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악당 수양대군과 결합하면 파급력은 커진다.


하지만, 실제 관노가 된 이는 홍이로를 비롯한 사람들이지 수괴급에 해당하는 정종은 고신만 하도록 하고 있다.


11월 9일, 홍이로(洪利老)· 홍형로(洪亨老)· 홍원로(洪元老)· 강종산(姜從山)· 박오을미(朴吾乙未) 양자유(楊子濡)·홍승(洪昇)·홍적(洪適)은 각기 충군(充軍)한 곳에서 영구히 관노(官奴)에 정속(定屬)케 하며, 정종(鄭悰)은 고신(告身)을 거두도록 하라.


경혜공주는 관노가 된적도 없다. 정종의 유배지 광주에서 노비를 부리면서 그럭저럭 지낸다.

결론부터 말하면 경혜공주는 종친에서 삭제된다. 그래서 경혜공주를 서울로 불러들일때 경혜공주가 아닌 정종의 처(아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1457년 10월 21일 , 이보흠, 송현수, 금성대군의 모의가 들키고, 단종의 장인인 송현수가 교형에 처해지자, 단종(노산군)이 자살했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1457년 10월 30일, 종친의 가장 큰 어른인 양녕대군 이제와 효령대군 이보가 종친들을 이끌고 들어와 금성대군과 관련된 종친들을 죽이라고 간언한다.


 

하지만 세조(수양대군)은 죽이지 않고 유배지의 보안을 철저히 하고 외부인과 접촉을 차단하는 것으로 끝낸다.


“안치(安置)한 이영(李瓔) ·이어(李) ·이전(李瑔) ·정종(鄭悰)에 대한 금방 조건(禁防條件)을 다음과 같이 하소서.

1. 난장(欄墻) 밖에 녹각성(鹿角城) 을 설치하소서.

1. 외문(外門)은 항상 자물쇠로 잠그고 조석거리는 10일에 한 차례씩 주며, 또 담안에 우물을 파서 자급(自給)하게 하고 외인(外人)으로 하여금 서로 통하지 못하게 하소서.

1. 외인이 왕래하여 교통(交通)하거나 혹 물품을 주는 자가 있으면, 불충(不忠)한 자에 견주어 논단하게 하소서.

1. 수령(守令)이 불시에 점검하고, 문을 지키는 자가 혹 비위(非違) 사실이 있으면 율문(律文)에 의하여 죄를 과단(科斷)하게 하소서.”


1457년 11월 18일

종부시(宗簿寺)에서 아뢰기를,

“노산군(魯山君) 및 이유(李瑜) ·이영(李瓔)·이어(李)·이전(李瑔)·정종(鄭悰) 등은 그 죄가 종사(宗社)와 관계되므로 속적(屬籍) 을 마땅히 끊어야 합니다. 청컨대 아울러 자손까지도 종친(宗親)에서 삭제하고 부록(附錄) 같은 데 기록하도록 하소서.”하니 이에 따랐다.



정종과 경혜공주가 종친에서  삭제된 때는 단종이 죽은 이후이다.

그리고 경혜공주는 관비가 되어 사역을 하는데 순천부사 여자신이 공주에게 사역을 시키려 했지만, “나는 왕의 딸이다“라면서 사역을 거부했다는 이야기다.

경혜공주의 기개와 배포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요즘으로 치면 죄를 짓고, 감옥이나 사역을 하는데 내가 누군 줄 알아 나는 누구의 아들이야, 딸이야 하는 철부지 같은 행동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경혜공주의 처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은 각자일 것이다. 단지, 이긍익이 채록한 연려기술위의 경혜공주이야기는 공주가 관노가 되고 겨우 부사인 사람한테 모욕을 당하다니 라는 목적만 달성하면 되는 이야기다.

문제는  <공주의 남자>를 보고 수양대군(세조)의 방해로 자신이 좋아하는 김승유와 맺어지지 못하였다고 수양대군을 비난하는 경혜공주와 닮음꼴이다. 더불어 이에 감정이입을 하고 세조와 신숙주, 한명회를 비난하는데 글을 낭비를 한다. 역사와 드라마를 혼동해서 무시하고 있다. 역사와 드라마를 혼동해도 이만큼 혼동할 수는 없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는 자료조사가 필수이다.


정종은 혜빈 양씨와 금성대군에 연루가 되어 처음 영월로 유배를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1455년 6월 11일(윤) 이날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양위를 하고 항복 선언을 한다. 


6월 18일 정종은 강원도 양근으로 유배를 명하지만, 경혜공주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자 수양대군은 정종이 서울에 있도록 조치를 한다. 하지만, 대간들이 끊임없이 정종을 유배시키라고 말하지만 세조(수양대군)은 정종은 문종의 맏딸인 경혜공주의 남편이다. 그럴 수 없다고 2달 동안 버팅긴다.


1455년 8월 13일, 경기 관찰사(京畿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정종(鄭悰)과 경혜 공주(敬惠公主) 및 데리고 간 노비(奴婢)에게 매월 양료(糧料) 를 주고, 형편에 따라 주육(酒肉)과 찬구(饌具)도 줄 것이며, 공주가 만약 서울을 왕래하고자 하거든 노비까지도 아울러 공궤(供饋)하도록 하라.”


금성대군 이유는 노비도 없고, 노비의 양료도 없는데 경혜공주와 정종만이 공적자금으로 술과 고기 등 모든 비용을 대주고 있다.


1455년 8월 15일, 유배지에 외인의 출입이 빈번하자 노비의 수효를 20인으로 줄이고 유배지 수원관할 내와 서울외 재산을 제외한 정종, 경혜공주의 재산을 몰수 한다. 하지만 실지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다.


1456년 6월 2일 사육신의 단종복위 실패 사건이 터지고 난 이후 6월 26일 정종의 가산을 적몰하고 전국에 산재한 재산도 빼앗긴다. 공주의 남자에서 가난뱅이 정종으로 나오지만, 요즘으로 치면 전국 방방곡곡에 토지가 없는 곳이 없을 만큼 정종은 경혜공주와 결혼전부터 부동산 재벌이었다. 오히려 김종서의 집이 가난해서 계유정난이 터졌는데도 집밖에 없는 것으로 나온다.


계유정란으로 공신이 된 정종은 정란의 피화를 입은 사람들의 집과 토지(전지)를 하여받고, 노비도 하사 받는다. 사육신들도 정난공신이 되어 한 재산 불렸다.


1456년 6월 27일 사람들이 원활하게 접촉할 수 있는 경기일원에 두지 않고 멀리 유배를 보내고 사람들과 교통하기 못하도록 조치한다. 그리고 정종과 금성대군 등 반란에 가담한 종신들의 처첩을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 모여 살도록 조치를 취한다.

자신들이 필요한 곳에 모여살도록 했다고 노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금성대군 이유는 노비가 4명이고, 나머지 정종을 비롯한 이들에게는 노비가 3명이나 있었고, 모여 산 곳의 수령은 이들의 양식을 조달해야 했다. 더군다나 경혜공주는 정종이 있는 전라도 광주에 갈 때 교자를 타고 갈수 있는 특전까지 부여를 한다.


금성대군과 정종 종친들은 관할 관찰사들이 먹거리, 놀거리, 치료까지 해주어야 했다.


1458년 9월 5일 공조(工曹)에 전지(傳旨)하기를,

“이영(李瓔)3010) ·이어(李)3011) ·정종(鄭悰) 등과 그 처(妻)에게 매년 피혜(皮鞋) 2켤레씩 지급하라.”

하였다.


1458년 10월 19일, 승정원(承政院)에서 교지를 받들어 전라도 관찰사에게 치서(馳書)하기를,

“지금 정종(鄭悰)의 부처(夫妻)와 이영(李瓔) 의 부처에게 의복(衣服)과 신[鞋]을 내리니, 이를 전하여 주라.”

1459년 5월 29일, 금산(錦山)에 안치된 이영(李瓔) 과 그 아내, 광주(光州)에 안치(安置)된 정종(鄭悰)과 그 아내에게 3절기의 의복을 내려 주었다.


세조 7년 10월 20일 정종이 죽고, 경혜공주는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온다. 경혜공주는 서울로 올라온 후 궁궐을 수시로 출입한다. 그리고 세조 7년 12월 14일 중전은 왜 경혜공주를 박대하냐고 세조에게 한마디 한다.
 

세조 7년 12월 14일,

중궁이 임금에게 말하기를,

“영양위공주(寧陽尉公主)를 박대하여 버리는 것은 불가(不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바로 나의 마음이다”

하고, 곧 영의정 정창손(鄭昌孫)·좌의정 신숙주(申叔舟)·우의정 권남(權擥)을 숭문당(崇文堂)에 불러 의논하여 말하기를,

정종(鄭悰)의 처(妻)는 문종(文宗)의 적녀(嫡女)이며, 또한 죄가 없으니 내가 가사(家舍)와 전민(田民) 의 공늠(公廩)을 주고자 한다. 또 (금성대군) 이유(李瑜) 의 자녀(子女)에도 또한 마땅히 은혜가 있어야 하겠다.


세조 11년 1465년 4월 1일 “정종(鄭悰)의 자녀(子女)는 연좌(緣坐)하지 말게 하라.”


수양대군(세조)는 계유정난시 김종서와 황보인, 안평대군 등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사육신도 계유정란이 끝난후 관련자를 죽이라고 끊임없이 상소를 하였다. 사육신의 단종복위 사건에도 마찬가지다. 관련자들은 조그만 잘못이 있어도 효수가 되는 극형을 당하고, 관련 여자들은 어김없이 공노비가 되고 공신들의 노비가 된다.

하지만, 반란을 해도 살려주고, 살려주고 끝없이 살려준다. 그 안에 정종과 경혜공주가 있다. 일반인으로 계유정란 관련이나 사육신 관련자였다면 경혜공주는 죽어도 몇번은 죽었을 것이고, 관노가 되거나 공신들의 노비가 되어도 수백번은 되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왕족으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조의 끊임없는 족친에 대한 사랑을 볼수가 있다. 아무리 악당이라도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다. 더불어 근친에 대한 사랑은 한이 없다. 세조도 딱 그 수준이다.

오히려 계유정란이나 사육신관련자에 비해서 차별대우를 받은 이는 경혜공주다. 세자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 문종이 왕이 되고, 자신은 공주가 되었고, 동생인 단종이 왕이 되자 수없이 재산을 불려나간다. 요즘으로 치면 권력형 비리의 정점에 정종과 경혜공주가 있었다.  

반란을 하더라도 특별히 차별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경혜공주는 한없이 불행한 삶을 살아간 것은 맞다.

연려실기술의 경혜공주 관노비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유는 세조는 나쁜놈이고 이에 반하는 경혜공주는 절의가 있고 절개가 있다고 알려주기 위한 유언비어성 목적을 가지고 있는 글이다. 더불어 세조(수양대군)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질녀인 경혜공주를 관노로 만들다니 정말 인정사정없는 놈이구나라고 생각했다면 이긍익이 채록한 이야기는 프로파간다(선동)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경혜공주의 관노비설은 안정복의 순암집에도 나온다. 다만 이긍익의 연려실기술과는 다르게 순암집에는 장흥관노비가 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소릉의 어머니 최씨(崔氏)와 소릉의 아우 권자신(權自愼)이 처형되었으며, 영양위(寧陽尉) 정종(鄭悰)이 처벌당했으며, 경혜공주(敬惠公主)가 장흥(長興)의 관비(官婢)가 되었으며, 심지어는 단종(端宗)의 왕비(王妃) 송씨(宋氏)까지 관비로 되었습니다.  - 안정복 순암집


차라리 1461년 7월 정종이 반란에 연루되어 광주에서 서울로 압송되자 1461년 10월 23일까지 광주에 남아 있던 경혜공주를 전라도 광주부사가 경혜공주에게 불쾌하게 대했다고 한다면 3개월의 공백이 생겨 검증불가능한 조금더 완결성있는 사림의 프로파간다 드라마가 되지 않았을까?

제발 드라마를 보고 역사인것 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신숙주의 아내 윤씨가 사육신 편에서 자살했다는 유언비어도 돌아다니고 있다. 2011/09/2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 처 윤씨 사육신 편에서 자살했나? 사실은 방개떡 고사 이도 사실은 아니다. 배신자 신숙주를 죽이고자 하고 아내보다 못한 신숙주를 만들고 싶어하고 명분을 축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만든 허구이다.

사람이 믿는 거짓말은 작은 팩트에 커다란 거짓말이 포함되야 믿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극대화한 인물이 히틀러와 괴밸스다. 더군다나 악당의 전형인 세조나 신숙주에게는 진실도 필요가 없다. 어짜피 욕하기 위해서 만든 이야기인데 믿거나 말거나의 범주를 벗어난것이다.

단지, 욕하기 위해서 만든 허구인데 믿는 사람이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이만 바보일 뿐이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가장 좋은건 시류에 같이 뭍어가는 것이다. 진실이 아니더라도 같이 욕할땐 같이 욕하고, 같이 웃을땐 같이 웃어주는 것이다. 이에 반발하면 바보되는건 일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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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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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toyvillage.net BlogIcon 라이너스™ 2011.09.28 0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를 위해... 역사와 허구를 섞은듯.^^;
    잘보고갑니다.

    • Favicon of http://license119.com/newki BlogIcon 자격증무료자료받기클릭 2012.05.27 1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경혜공주글 잘 보았습니다.. 아래 자격증관련 정보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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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의문 2011.09.28 2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 아~ 아~ 애달퍼라 수양대군이여~ 조카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리오~]

    라는 결론이군요.

    아무리 수양대군이라 하더라도, 종친을 함부로 못한 것은 그의 힘의 원천 또한 종친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모순적인 힘인거죠.
    이를 감안하여 역사 기록을 살펴보신다면 조금은 다른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11.09.29 04: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은 저보고 신하와 종친이 다 죽인것이지 세조(수양대군)이 죽이지 않았다는 결론을 낼거라고 댓글 달지 않았나요?

      이제와서 수양대군이라도 종친을 무시할수 없었다고 말하면 어쩝니까? 정종과 안평대군, 금성대군, 어어, 기타 등등을 종친부에서 나서서 죽이라고 사주를 하기는 합니다. 그전에 요지부동인 수양이 마지못해 따라했다고 실록은 기록하고 있지만 말이지요.. 님의 말씀중에 다양하게 역사를 살펴보신다면 다른해석도 가능하다는 말씀은 동감합니다. 제글은 그런 글이 다수를 차지하고, 그에 맞추어 글을쓰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사육신관련해서 후세에 과도한 영웅만들기 작업엔 별로 동감이 안가더란 말씀이지요..

    • 의문 2011.09.29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 글을 잘 못 이해하셨군요.

      님의 글을 읽다보면, TEXT를 그 중에서도 조선왕조실록만을 무조건 믿는 경향이 있어서 그 기록대라면,

      [엄청나게 불쌍한 수양대군 및 친족을 무지하게 사랑하는 수양대군]

      이란 결론에 이를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명백하게 님의 글은 그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고 말입니다.

      따라서,
      [수양대군이 종친을 열라기 사랑해서] 그런 기록이 나왔다는 님의 글에 리플을 달고 있는 거죠.

      전 [수양이 종친을 열라기 사랑했다]라는 기본전제에 동의하지 못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를 교묘하게 [내 주장과 같군요]라고 하신 건 유감이군요. 오해하신 거라면 지금이라도 정정하세요.

      그럼 [수양대군이 종친을 무시하지 못했다.]라는 부분에 대한 제 뜻을 설명드리지요.

      이는 [군대]로 권력을 잡은 자가 [군대]를 못 없애는 것과 같으며,

      중이 제머리 못 깍는 것과 같으며,

      역사학자가 자기가 연구한 역사를 전면 부정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양대군의 찬위는 [그 역시 왕가의 자손]이 아니었다면 사실상 혁명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대로 단종, 문종, 세종, 태종, 태조의 계보를 계승합니다.

      따라서 그는 종친을 부정할 수가 없으며, 사육신들과 같은 급으로 취급할 수도 없습니다. 계보를 계승하려는 욕심이 있는 한은 말입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신하들로 하여금 없애게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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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경혜공주는 문종과 현덕왕후의 소생인 경혜공주(1436년생)는 세종 말년 1450년 1월에 세자 문종의 맏딸로 평창군주 시절 15살에 영양위 정종에게 시집을 간다.

  18. Favicon of http://markets.chron.com/chron/news/read/22360046/survival BlogIcon survival radio 101 2013.01.05 2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공주의 남자>에서 신숙주는 수양대군의 복심이 되어 계유정란으로부터 단종을 폐위하고 수양대군을 왕위에 옹립하는 것으로 나온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신숙주의 살았는 큰아들(큰아들은 일찍죽었음) 신면이 아버지 대를 이어서 악역으로 등장을 한다.


<공주의 남자>에서 신면은 친구를 배신하고, 친구 김승유의 연인 세령공주를 빼앗고, 문종, 단종을 배반하고, 수양의 개로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기회가 되면 신면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글을 쓸까한다. 알고보면 불쌍한 영혼이 신면일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숙주를 <숙주나물>의 대명사로 하여 하루가 지나면 쉬어 버리는 나물을 숙주나물로 이름한다. 한마디로 변심의 아이콘이 신숙주이다. 

신숙주가 숙주나물로 불리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글쓴이는 왜 신숙주가 숙주나물로 불리는 이유를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저변에 깔린 프로파간다를 알지 못하고 선현들이 신숙주를 숙주나물로 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신숙주가 계유정란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계유정란으로 정란공신이 되고, 후에 단종 복위 운동에 성삼문과 함께 하지 않았다고 비난을 한다. 물론, 성삼문은 친구인 신숙주에게 의사를 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456년 6월 성삼문은 신숙주는 친구이지만 죽여야 한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야사로 신숙주를 비난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사실처럼 돌아다닌다. 신숙주는 배신자이지만, 신숙주의 아내 윤씨는 사육신과 함께 단종복위에 참가하지 않고 돌아와서 신숙주를 꾸짖고 자결을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숙주는 배신의 아이콘 이였지만, 신숙주의 아내 윤씨는 만고의 충신인 것이다.


신숙주의 후손이  신숙주의 제사를 지내고나서 제사에 사용한 봉개떡(방개떡)을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나눠줬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방개떡”을 먹지 않아 이유를 물으니 “성삼문”의 후손이었다고 한다.  방개떡은 봉개떡에서 유래한다. 방개잎은 하루가 지나면 쉬어버리는 숙주나물과는 다르게 방개잎으로 음식을 보관하면 한여름에도 몇일동안 상하지 않고 보관이 된다. 그래서 제사에 올릴때 방개잎으로 제물을 감싼다. 천연방부제가 방개잎(봉개잎)이다. 숙주나물과 비견되는 상징물이다.


당연히 성삼문의 후손으로서는 신숙주의 제사상에 오른 떡을 먹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나 같아도 먹지 않을 것 같다.


어떤 이가 성삼문의 후손이라는 아이에게 조용히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공물은 신숙주를 위한 공물이 아닌 사육신과 함께해 절개를 지킨 신숙주의 아내 “윤씨”에게 바치는 공물이니 먹어도 된다고 하자. 성삼문의 후손을 자처하는 아이가 그제야 먹었다는 훌륭한 고사가 아닐 수 없다.


절개와 절의의 상징인 사육신을 추앙하고 더불어 배신자 신숙주를 또한방 먹일 감자이니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아내보다 못한 신숙주가 되시겠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성삼문의 후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15만이 넘는다고 한다. 절손된 가문으로서는 참으로 많은 후손을 남겼다. 성삼문의 직계 후손은 절손이 되어 1902년 고종 때 성삼문의 방계 후손으로 하여금 제사를 봉사하게 하였다.

자세한 사항은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물론, 성삼문에게 막내아들이 있었는데 유모가 막내아들을 빼돌려서 숨어서 살았다는 이야기가 나름대로 전한다. 대부분 이런 과정으로 살아남긴 한다. 김종서의 손자 3명도 계유정란 때 유모의 손에 살아 남았다고 전한다. 어쨌든, 언제부터 어떻게 성삼문의 직계후손이 15만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누가 성삼문을 명예훼손하는지 알수가 없다.


어쨌든, 연산군때 반정을 성공한 중종  때부터 끊임없이 사육신 후손을 찾았고, 영, 정조 때는 사육신관련자, 계유정란관련으로 절손된 김종서를 비롯한 황보인 등 수 많은 사람의 후손을 찾아 관직을 하사하기 까지 했다.


그런데도 성삼문의 후손은 나오지 않았다. 1902년 고종 때 오죽하면 제사를 지낼 후손이 없자, 성삼문의 방계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겠는가? 고종 당시 왜 사육신에 집착을 하였을까? 조선을 끊임없이 청나라, 러시아, 일본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에 나라를 들어서 넘기려는 수작을 벌리는 자들도 넘쳐났다. 결국에는 일본에 나라를 넘긴 친일민족반역자들과 그 후손이 잘먹고 잘살고 있고 조선에 충성하고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은 절손되거나 3대가 망해서 비루먹는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설화의 문제점이 없을까? 미안한 이야기지만 처음부터 이 설화는 성립할 수 없다.


신숙주의 부인 윤씨는 세조 2년 1456년 1월 26일 죽는다. 계유정란은 1453년 10월 10일에 있었고 신숙주가 정란공신이 된 것은 맞다. 이때 사육신의 대부분이 정란공신이 되어 공신전과 계유정란으로 남은 여자들을 노비로 하사 받는다. 성삼문도 예외는 아니다.
 

 


대제학 신숙주의 처 윤씨의 상에 사재감 정 조효문을 보내어 호상하게 하다.
 

“신 대제학(申大提學)은 다른 공신의 예(例)와 다르고, 또 만리(萬里) 외방에 있으며, 또 여러 아들이 다 어리니, 나의 애측(哀惻)함을 다 진술할 수가 없다. 정원(政院)에서 포치(布置)하여 관(官)에서 염장(殮葬)하게 하며, 또 관원을 보내어 치제(致祭)하는 등의 일을 상실(詳悉)히 아뢰도록 하라.” - 세조 2년 1456년 1월 26일


사육신이 단종복위를 시도한 때는 1456년 6월 1일이다. 이 날의 쿠데타는 실패로 끝난다. 이튿날 김질과 김질의 장인인 정찬손이 세조(수양대군)에게 어제 왕을 죽이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고변을 함으로서 들통나고 끌려간다. 집에 있던 유성원만이 자신들의 반정(복위)가 물거품이 되었다고 자살하고 만다.


1456년 1월에 죽은 신숙주의 아내가 무슨 귀신도 아닌데 1456년 6월 일을 기억해서 신숙주가 사육신과 같이 하여 죽지 않고 살아돌아왔다고 신숙주 너는 충신도 아니다면서 죽을 수가 있겠는가?


더군다나 신숙주는 처 윤씨가 병환으로 죽을 때, 1455년 10월 24일 단종의 사은사로 멀리 명나라에 가 있어서 윤씨가 죽은 줄도 몰랐다. 공주의 남자에서 신면이 나오고 있지만, 신숙주의 아들들이 다 어렸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짜피 신숙주는 나쁜놈인데 윤씨가 있던 없던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마는 이렇게 말을 하면 신숙주와 신숙주의 아내 “윤씨”는 부창부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사육신을 치켜세우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더라도 없는 이야기까지 끌어들여서 신숙주를 모독할 필요가 없다.


신숙주와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이 갈린 순간은 사육신이 단종복위를 시도한 1455년 말부터다. 계유정란으로 정란공신을 받은 사람도 사육신이었고, 세조가 양위 받아 공신을 제수할 때 사육신들의 다수도 신숙주와 같이 <좌익공신>이 되었다. 신숙주가 단종을 배신한 배신자라면 사육신도 배신자일 뿐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사육신 중 이개가  신숙주에게 말하는 장면은 100% 허구이다.

신숙주와 사육신을 가른 이유은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참조하기 바란다.

사육신이 충신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단종의 복위를 하다 죽었다는 절개와 절의뿐이다. 분명히 절의한 사육신은 추앙받아 마땅하다. 왜냐하면 절의와 절개란 어떤 시대이던 상관없이 추앙해주어 하기 때문이다. 연산군을 위해서 죽은 자도 절의가 있다고 추앙해 주는 게 조선이었다. 절의를 지키고 충성하는 신하를 내치면 어떻게 될까?


어떤 배덕자들이 왕을 몰아내는데 왕을 위해서 충성을 받칠자가 없다면 그 나라는 망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반역과 반역의 연속이 될 것이다. 그래서 고려의 정몽주, 이색 등을 만고의 충신이라고 추앙하는 것이다. 사육신도 그 범주에서 충신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조선의 왕들은 끊임없이 반정에 속을 썩어야 했다.

태종(이방원)처럼 형제를 죽이고 왕이 되거나, 숙부가 왕을 몰아 낼때 지켜줄 신하가 필요했다. 왕의 입장에서 숙부나 자신의 형제가 자신을 왕에서 쫓아내거나 세자가 왕이 되었을 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쫓아낸다면 좋아할 왕은 하나도 없을 것이고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겠는가?. 유교의 입각해서도 조선은 배덕의 역사이다. 배덕하지 말고, 반역하더라도 충성을 하는 자를 숭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육신들이 계유정란에서 안평대군, 김종서, 황보인을 따르던 인물들을 주살하도록 상주한 것처럼 세조(수양대군)편에 있던 사람들이 당연히 사육신 관련자를 처벌하려 시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반대로 사육신이 쿠데타에 성공하더라도 피의 보복은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어린 상왕의 존재는 세조를 옹립한 세력들에는 가시와 같다. 상왕 단종이 연루 되지 않았더라도 연루자로 몰아 밖으로 내치거나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문제는 단종을 죽이는 결정적인 동인을 제공한 자도 사육신중 성삼문과 권자신이였다는 것이다. 성삼문은 자신들의 배후에 상왕 단종이 있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만다. 단종의 외삼촌인 권자신도 우리의 배후에는 상왕전하가 있고, 상왕이 징표로 큰칼까지 주었다고 까발린다. 마지막 순간에 단종을 배신하고 만다.

성삼문과 권자신이 상왕이 모반을 알고 있었다고 하다
 

“상왕(上王)께서도 역시 너희들의 역모에 참여하여 알고 있는가?”

하니, 성삼문이 대답하기를,

“알고 있다. 권자신(權自愼)이 그 어미에게 고(告)하여 상왕께 알렸고, 뒤에 권자신·윤영손(尹令孫) 등이 여러 번 약속을 올리고 기일을 고하였으며, 그날 아침에도 권자신이 먼저 창덕궁(昌德宮)에 나아가니, 상왕께서 긴 칼을 내려 주셨다.”

하였다. 구치관이 또 권자신에게 물으니, 권자신의 대답도 성삼문과 같았다.

- 세조 2년, 1446년 6월 7일


그 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영월로 유배를 떠난다. 이 와중에 단종의 어머니인 문종비 권씨는 비에서 강등되고, 묘의 기물도 파괴된다. 묘를 수리하지 않아 묘가 떠내려가는 참화까지 당한다. 이에 대한 허황된 이야기가 널리 사실인것처럼 퍼지고 또다시 신숙주와 세조는 죽일놈이 되지만 말이다.


분명히 사육신은 추앙해주어야 하지만, 없는 이야기까지 만들어서 추앙할 필요는 없고,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서 신숙주를 죽일놈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 신숙주가 죽어야 추앙할 사육신이라면 존경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신숙주는 성종 6년, 1475년 6월 21일에 죽는다. 6월 21일(음)이면 양력으로 7월 중.하순에서 8월 초순이다. 한여름 묘지에서 제사를 지낸다면 쉽게 음식이 상할 수 밖에 없다. 어린이가 신숙주의 제사떡을 먹지 않는 이유는 여름에 상했을까봐서이지, 신숙주의 변절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이 떡은 쉽게 쉬지 않는 방개잎으로 쌓은 것이니 쉬지 않는단다.가 정확한 이야기가 아닐까한다. 

어쨌든, 사육신의 다수가 <정란공신>직을 거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거부한 이유가 수양대군(세조)에 반기를 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환상적인 반전이 있다. 공주의 남자에서 얼마나 황당한 설정을 했는지 쉬이 알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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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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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박시후)는 스승 이개와 사육신 등과 함께 세조(수양대군)을 척살하고 단종복위에 참여를 한다.

승유(박시후)는 세조를 죽이려하고 세령(문채원)은 승유가 목표로 한 인물이 누구일까 궁금해서 수시로 대호가 날뛰는 도성에서 호위무사도 없이 밤이슬을 맞으며 경혜공주를 찾아 나선다.

공주의 남자에서 세령은 김승유가 죽이려는 상대가 자신의 아버지 세조(수양대군)인것을 알고 아버지의 안위보다는 김승유의 안위를 걱정하며 궁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단종을 폐위하고 세조 옹립에 공을 세워 공신이 된  성삼문과 사육신의 일파들은 어찌하여 수양대군(세조)을 척살하고 단종복위를 꿈꾸었을까?


세조의 정치와 사육신으로 대표되는 성삼문의 정치의 목표가 달랐기 때문이다.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들은 유교를 바탕으로 신하들이 중심이 되는 정치를 하려했지만, 세조(수양대군)은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유교와 불교가 조화된 정치를 하려고 했다. 그러니 당연히 수양대군과 사육신들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계유정란 공신 성삼문에게 
 땅과 노비를 하사한 단종

숙부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기미를 알아내고 먼저 도모하여 흉한 무리들이 죄에 엎드렸다. (성삼문) 네가 명을 듣고 난에 다달아 같은 마음으로 협찬하여 종사에 공이 있으니 감히 대려(帶礪)를 잊겠는가? 그러므로 훈을 책정하여 3등을 삼고, 그 부모와 아내에게 벼슬을 주고 사유(赦宥)가 영원히 후대에 미치게 한다. 인하여 전지 1백 결·노비 7구·말 1필·백은 10냥·표리 1단을 주노니 이르거든 받으라. 아아! 비밀히 큰 계책을 도와서 이미 세상에 드문 공을 세웠으니, 특수한 공훈을 크게 보답하여 마땅히 비상한 은총(恩寵)을 가(加)하노라.”

- 단종 3년 1455년 1월 24일




단종시기 사육신으로 대표되는 인물들은 환관(내시)들이 정치에 관여하는 데 적극적으로 반대를 했었다. 절대 다수가 계유정란의 공신들이었던 사육신들은 환관인 엄자치와 전균도 정란공신이었지만, 엄자치와 전균이 군(君)이 되는 것을 자신들의 공신의 직위를 걸고 막는데 성공하였었다.


성삼문 옥새를 수양대군에게 넘기다.

 한확 등 군신들이 합사(合辭) 하여 그 명을 거둘 것을 굳게 청하고 세조 또한 눈물을 흘리며 완강히 사양하였다. 전균이 다시 들어가 이러한 사실을 아뢰었다. 조금 있다가 전균이 다시 나와 전교를 선포하기를, ‘상서사(尙瑞司) 관원으로 하여금 대보(大寶)를 들여오라는 분부가 있다.’고 하니, 모든 대신들이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을 변하였다. 또 명하여 재촉하니 동부승지(同副承旨) 성삼문(成三問)이 상서사(尙瑞司)로 나아가서 대보를 내다가 전균으로 하여금 경회루(慶會樓) 아래로 받들고 가서 바치게 하였다. 노산군이 경회루 아래로 나와서 세조를 부르니, 세조가 달려 들어가고 승지(承旨)와 사관(史官)이 그 뒤를 따랐다.

- 단종 3년, 세조 1년, 1455년 윤 6월 11일



한명회, 신숙주와 함께 단종폐위와 수양대군(세조) 옹립으로 좌익공신이 된 사육신 성삼문

임금이 좌익 공신(佐翼功臣)을 정하는데,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익현군(翼峴君) 이관(李璭)·한확(韓確)·윤사로(尹師路)·권남(權擥)·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를 1등으로 삼아 수충 위사 동덕 좌익 공신(輸忠衛社同德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정인지(鄭麟趾)·이사철(李思哲)·윤암(尹巖)·이계린(李季疄)·이계전(李季甸)·강맹경(姜孟卿)·윤형(尹炯)·최항(崔恒)·전균(田畇)·홍달손(洪達孫)·양정(楊汀)·권반(權攀)을 2등으로 삼아 수충 경절 좌익 공신(輸忠勁節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권공(權恭)·이징석(李澄石)·정창손(鄭昌孫)·황수신(黃守身)·박강(朴薑)·권자신(權自愼)·박원형(朴元亨)·구치관(具致寬)·윤사윤(尹士昀)·성삼문(成三問)·조석문(曹錫文)·이예장(李禮長)·원효연(元孝然)·한종손(韓終孫)·이휘(李徽)·황효원(黃孝源)·윤자운(尹子雲)·이극배(李克培)·이극감(李克堪)·권개(權愷)·최유(崔濡)·조효문(曹孝門)·한계미(韓繼美)·정수충(鄭守忠)·조득림(趙得琳)을 3등으로 삼아 추충 좌익 공신(推忠佐翼功臣)이라 이름하였다.

세조 1년 1455년 9월 5일 (음)



많은 사람들이 신숙주가 세종의 유명을 버리고,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는데 앞장섰다고 말하고 신숙주를 배신의 아이콘으로 쉬이 쉰다는 숙주나물을 만들어 버렸다.


신숙주는 세조를 옹립하는데 1등공신이었다면 성삼문은 조카를 폐위하고 수양대군이 왕이 되는데 3등공신이었다. 그래서 신숙주는 1등 좌익공신이고, 성삼문은 3등 좌익공신이다. 이들 간에 차이점은 없다. 똥통에 깊이 빠진 신숙주와 똥물만 뒤집어쓴 성삼문의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 성삼문은 신숙주에 어쩌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성삼문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데 수양대군은 신숙주를 더 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성삼문은 안평대군과 황보인, 김종서 일파를 몰아내는 계유정란 공신이였고,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수양대군(세조)가 왕이 되는 좌익공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문종실록이나 단종실록이 세조일파들이 기록한 것으로 김종서와 사육신을 폄훼하고, 세조를 높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종실록 수찬관에는 좌부승지 성삼문이 있다.
 

《문종실록(文宗實錄)》을 보록각(寶錄閣) 에 봉안하고 수찬관(修撰官)을 의정부에 〈모아〉 사연(賜宴)하였는데, 도승지 박원형(朴元亨), 좌부승지 성삼문(成三問)에게는, 명하여 선온(宣醞)을 하사하고, - 세조 1년 1455년 12월 19일



단종 복위 실패한 쿠데타 당일날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박팽년이 대답하기를,

“성삼문(成三問)·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이개(李塏)·김문기(金文起)·성승(成勝)·박쟁(朴崝)·유응부(兪應孚)·권자신(權自愼)·송석동(宋石同)·윤영손(尹令孫)·이휘(李徽)와 신의 아비였습니다.”

하였다. 다시 물으니 대답하기를,

“신의 아비까지도 숨기지 아니하였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을 대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그 시행하려던 방법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성승·유응부·박쟁이 모두 별운검(別雲劍) 이 되었으니,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그 시기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어제 연회에 그 일을 하고자 하였으나 마침 장소가 좁다 하여 운검(雲劍)을 없앤 까닭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대개 어전(御殿)에서는 2품 이상인 무반(武班) 2명이 큰 칼을 차고 좌우에 시립(侍立)하게 되어 있다. 이날 임금이 노산군과 함께 대전에 나가게 되고, 성승·유응부·박쟁 등이 별운검(別雲劍)이 되었는데, 임금이 전내(殿內)가 좁다고 하여 별운검을 없애라고 명하였다. 성삼문이 정원(政院)에 건의하여 없앨 수 없다고 아뢰었으나 임금이 신숙주(申叔舟)에게 명하여 다시 전내(殿內)를 살펴보게 하고, 드디어 〈별운검이〉 들어가지 말게 하였다.】 후일에 관가(觀稼) 할 때 노상(路上)에서 거사(擧事)하고자 하였습니다


- 세조 2년 1456년 6월 2일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창덕궁 경내의 야외에서 명나라 사신을 영접한 것으로 그리고 있고, 유승부 한사람만이 별운검으로 왕의 좌우에서 시위한 것으로 그리고 있지만, 실제는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과 유응부, 박쟁이 모두 별운검이었다. 하지만, 세조(수양대군)이 전내가 좁다는 이유로 별운검을 없앴다. 이때 성삼문은 의정부에 건의하여 없앨 수 없다고 말하지만, 세조가 신숙주에서 전내를 살펴보게 하고 별운검을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고 하였다.
 


드라마는 극적인 요소를 집어넣으려고 야외로 설정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야외 화면 빨이 살기 때문이다. 계유정란 장면에서도 전혀 다른 현장재현 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공주의 남자에서 세조 2년 1456년 6월 2일의 일을 6월 1일 당일에 일어난 일로 그리고 있다. 실제는 6월 1일 세조와 의경세자(숭)과 예종이 되는 해왕대군(황)을 죽이고 단종 복위를 꿈꾸었지만, 실패하고 후일에 세조(수양대군)이 농사일을 살피려고 출궁할 때 노상에서 거사를 하려고 하였었다. 하지만, 6월 2일 김질이 장인인 정찬손과 함께 세조를 찾아가 전일의 사건을 고변하므로서 수양척살과 단종복위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육신 만고의 충신인가? 단종 죽음 이르게한 배신의 아이콘인가?

재미있게도 단종을 죽이는 단초를 제공한 이도 성삼문이었다. 상왕 단종의 존재는 수양대군을 왕으로 옹립한 세력에게는 커다란 위험부담이었다. 세조(수양대군)이 죽고 나서 의경세자나 왕자 황에게 대립할 수 있는 존재는 어린 상왕 단종이고, 세조에 반기들만 한 세력들이 사육신처럼 들고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상왕(단종)이 연루가 되지 않았더라도 단종을 엮어서 없앨 궁리를 하는 자들에게 성삼문,권자신은 다음과 같이 수괴가 단종이라고 말한다.
 

좌승지(左承旨) 구치관(具致寬)에게 명하여 의금부(義禁府)에 가서 성삼문(成三問) 등에게 묻기를,

“상왕(上王)께서도 역시 너희들의 역모에 참여하여 알고 있는가?”

하니, 성삼문이 대답하기를,

“알고 있다. 권자신(權自愼)이 그 어미에게 고(告)하여 상왕께 알렸고, 뒤에 권자신·윤영손(尹令孫) 등이 여러 번 약속을 올리고 기일을 고하였으며, 그날 아침에도 권자신이 먼저 창덕궁(昌德宮)에 나아가니, 상왕께서 긴 칼을 내려 주셨다.”

하였다. 구치관이 또 권자신에게 물으니, 권자신의 대답도 성삼문과 같았다.

- 세조 2년 1456년 6월 7일


자신들의 행위가 단종(상왕)이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칼까지 내려주어 정당성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단종(상왕)보고 같이 죽자는 소리다. 만고의 충신이 만고의 역신이라 불러도 할말이 없을 정도이다.


단종과 사육신들이 세조척살의 실패는 계유정란으로 김종서의 며느리와 자식들은 자신들이 하지도 않는 일에 쓰나미를 당한다.

큰아들 김승규의 아내 내은비와 딸 내은금, 첩의 딸 한금이 정인지에 하사되고 딸 숙희는 강곤에게 주어진다. 공주의 남자에서 강곤에서 하사된 김승규의 아내와 아강은 계유정란 때 강곤에서 주었다가, 세령공주와 신면이 빼돌려 돌보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사육신들의 반정(단종복위)실패 여파로 강곤과 정인지에 하사된 것이다.
 

 김승규(金承珪)의 아내 내은비(內隱非)·딸 내은금(內隱今)·첩의 딸 한금(閑今)은 영의정(領議政) 정인지(鄭麟趾)에게 주고,

..중략..

성삼문(成三問)의 아내 차산(次山)·딸 효옥(孝玉), 이승로(李承老)의 누이 자근아지(者斤阿只)는 운성 부원군(雲城府院君) 박종우(朴從愚)에게 주고, ..중략...

김승벽(金承壁)의 아내 효의(孝義)는 예조 참판(禮曹參判) 홍윤성(洪允成)에게 주고

이하 생략..

- 세조 2년 1456년 9월 7일 난신에 연루된 부녀들을 대신에게 나눠주다.



공주의 남자는 미래에 일어나는 일을 계유정란에 있었던 일로 퉁을 치고 있다. 과거나 현재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미래가 과거를 바꾼다는 말은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처음 보는 황당 SF 설정이다.


어쨌든, 드라마에서는 1456년 6월 1일 김질이 한명회에 잡혀서 일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공주의 남자가 사육신을 동원해서 세조를 척살하려는 장면을 넣은 이유는 김승유가 세조를 척살하는데 관여를 했다고 설정하고 싶은 과욕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역사와는 하등 상관없는 흐름으로 전개를 하였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은 계유정란 후 김종서일파를 죽이는데 적극적이였고, 경혜공주의 부마 영양위 정종(이민우)은 계유정란의 공신으로 영양위가 되었다. 한마디로 김종서 일가에게 사육신, 정정은 불구대천지 원수였다. 또한, 사육신들 대부분은 단종을 폐위하고 수양을 옹립하는데 적극적일뿐 아니라 공신이 되기도 한다.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이민우)은 세조척살을 앞둔 전날밤 처음으로 경혜공주(홍수현)와 합방하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공주의 남자를 보면 정종은 참으로 불쌍한 영혼이 아닐 수 없다. 1450년 결혼 한지 7년이나 1456년 5월 말이 되어서 첫날밤을 보냈다니 말이다. 경혜공주를 너무나 끔찍이 사랑해서 지켜준다는 설정은 좋으나 경혜공주의 이런 모습은 소박이나 이혼사유가 된다. 한마디로 개연성 무시의 한 장면이다. 무슨 오빠 믿지 손만 잡고 잘께도 아니고 말이다.



어쨌든, 정종은 김승유를 찾아가 수양대군(세조)의 척살에 실패해서 “김승유 너가 살아남는다면 경혜공주를 자신이 돌본 것처럼 돌봐 달라”고 한다. 정종은 오지랖도 넓다. 자신을 원수로 생각하는 승유를 찾아가 경혜공주를 돌봐달라고 말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원수인지도 모르는 승유는 넙죽 경혜공주를 돌보겠다고 한다. 언제부터 공주의 남자가 엽기 스릴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정종이 단종(상왕)을 찾아가 세조를 척살할 것이라고 말을 하고, 사육신과 회합을 하는 장면이 있고, 세조척살에 실패를 하자, 사육신들과 함께 끌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리 드라마에서 불가능은 없다고 하지만, 공주의 남자의 구성은 정말 너무한 구석이 많다. 불구대천지 원수인 사육신 중의 한명인 이개가 김승유의 스승으로 나오고, 또 다른 계유정난공신인 정종이 친구가 된다.


더군다나 김승유가 사육신과 회합을 하는데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들이 김종서를 죽인 것에 반성을 하거나 하는 대목은 없이 대호의 아들이 동참했다며 김종서가 지하에서도 자랑스러워 하였을 거라고 대사를 치게 만들어 버렸다.


 


드라마란 허구를 개연성 있게 끌고 가야 한다. 하지만, 공주의 남자에서 개연성은 전혀 무시되고 있다. 단지, 김승유와 세령공주의 사랑 놀음 밖에 없다. 더불어 오지랖 넓게 안 끼는 곳이 없다. 그냥 사랑 놀음만 하면 안되나? 역사의 현장에서 오물은 투척하지 말고 말이다.


정종은 사육신들과 모의를 하고, 창덕궁 연회장에서  "상왕전하 제가 상왕을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정종은 사육신과 세조 척살과 단종복위를 할 수 있었을까? 이는 세령이 신면이 쏜 화살을  우사인 볼트처럼 미리 달려가 승유대신 맞는 것보다 어렵다. 왜냐하면 정종이 1456년 6월 1일 창덕궁 연회에 참석할 수 없고, 사육신들과 회합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종은 1456년 6월 11일(윤) 세조에게 성삼문이 넘겨준 옥새를 받는 날 금성대군과 연루되어 유배를 떠나야 했다.  다만 당시 경혜공주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정종의 유배를 늦추는 기지(꼼수?)를 발휘한다. 꼼수인줄 알고 있던 세조는 대신들의 유배를 보내라는 간언에도 정종의 유배를 늦추어 준다.


그리고 정종은 양근으로 수원으로 유배를 떠난다. 사육신들의 단종복위 사건으로 관련도 없는 정종도 고신을 당하고 재산도 빼앗기는 피해를 입는다. 사육신의 세조 척살 단종복위 사건이 일어난후 1456년 6월 27일 정종은 전라도 광주로 옮겨진다. 

공주의 남자에서처럼 사건현장에 있었다면 정종과 경혜공주는 도플갱어 일지 모른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불가능이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 작가들이 얼마나 실존인물 김승유와 세령의 사랑이 핏빛사랑이 아니였으면 역사를 파괴하면서까지 둘의 사랑을 핏빛으로 만들려 했을까? 그만큼 작가들 스스로 자신들의 작품을 억지로 역사파괴를 해야할 만큼 자신이 없었는가 보다..

실시간 생방송 사극용 쪽대본 시나리오가 개연성있고 치밀할 수가 없는건 당연하다. 가장 기본이 되는 뼈대에 해당하는 사건과 인물간 관계를 제대로 만들어 낼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인 사실을 충분히 살리고 허구적인 모습을 극중에 녹였다면 충분히 현재 공주의 남자의 실시간 생방송 사극보다 치밀하고 개연성 있고 극에 몰입할수 있는 비극적인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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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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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탁 아동 가족 되기 위해 가까운 또는 먼 친척 그의 중 보를 걸릴 수 있습니다. 그들의 아이 입양 수 있도록 그들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12. Favicon of http://www.texasdivorceonline.net/ BlogIcon texas divorce process 2013.01.29 2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로 환경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또한 사회 및 사회와. 당신은 알고이 알고 있어야합니다.

  13. Favicon of http://www.kingglock.com/Content.aspx?PAGE=Glock%20Triggers BlogIcon glock trigger 2013.01.31 14: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통령은 아마 다른 나라에서 손님의 배달 걸릴. 대통령과 사냥의 u에는 일반적으로 좋은 개인. s입니다. 대통령 또는 총리에 비해. 그들은 그들이 나 일단 협력을 해야한다.

  14. Favicon of http://www.highadventureair.com/bear_viewing.htm BlogIcon Bear Viewing Alaska 2013.03.01 1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 가지 들 신화에 같아요. 신화 하지 순전히 1 건을 연결 하지만 그림으로 서 몇 가지 외에도 가정에 연결 그것. 몇 가지 들 가정 홍보 또는 저당 집에서 무엇을 할 그들의 운을 좌우할 것 이다.

  15. Favicon of http://www.gourmetflyfishing.com/deschutes-river BlogIcon Deschutes River Fishing 2013.03.02 1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 니 싱 사람들이 구성 요소를 가해자로 알려져 있다. 그것 때문에 그들은 없어진다 걸릴 사람들이 정확 하 게 있다. 모든 권리에 관한 사람들 생활 제어 하기 때문에 낮은 경우 될 것입니다.

  16. Favicon of http://www.quotemeaprice.com/annuity/ BlogIcon settlement annuity 2013.03.25 0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재는 사람에게 마음을 줄 수 있습니다. 그들은 평면에서 작동하거나 현재를 얻을 복잡 가르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자신의 원하는 건 아닙니다.

  17. Favicon of http://www.litzenguideservice.com BlogIcon Bear Hunting Alaska 2013.03.28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생 자신의 학교에 대 한 신문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의 기능을 증가 시킬 수 있습니다. 신문은 자신의 학생의 유연성을 탐색할 수도 있습니다.

  18. Favicon of http://www.eyewitnesspi.ca BlogIcon Surrey Private Investigator 2013.03.28 1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들이 인식 하는 인간의 존재 후면 몸에서 볼 힘든 이다. 후면 바디 미스 개념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끔찍한 생각 얻을 인간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19. Favicon of http://www.fireweedlodge.com BlogIcon Alaska Fishing Lodge 2013.03.29 2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시물이 사람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것을 알려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일지 또는 미디어에 출시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좋아, 사람들은 쉽게 블로그 사이트에 쉽게 제출할 수 있습니다.

  20. Favicon of http://www.skagwayadventures.com BlogIcon Skagway AK 2013.03.30 2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개인은 전자 디지털 카메라 유형에 사진을 찍어. 정말 채택하고 삭제 자연스럽게입니다. 따라서, 개인은 더 많은 이미지를 전달 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21. Favicon of http://thehugehouse.org/cheap-dining-room-sets/cheap-dining-room-sets/ BlogIcon cheap dining room sets 2013.05.03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장에 많은 항목의 가격에서가 한 가지는 많은 예측 될 수 있습니다. 발생 존재 하는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를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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