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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천

뎬무 태풍 현재위치로 본, 태풍이 나쁘다건 편견 부제: 일본에 가미가제(신풍)가 있다면? 신라에도 신풍은 있었다. 태풍 뎨무가 시시각각 제주도를 넘어 태풍 현재위치는 한반도 남부로 이동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태풍 현재위치가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오를정도로 관심사이고 태풍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지만, 정말 태풍이 공포의 대상으로만 되었을까? 하는 것이 이글의 골자이다. 태풍에 대해서 알고보면 태풍의 진로나 태풍의 현재위치에 따라 태풍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은 넓어지지 않을까 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선덕여왕은 자신의 죽을 날을 예측하고, 도리천에 뭍어 달라고 예언을 햇다. 하지만, 도리천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불경에 나오는 도리천을 현세에서 찾으니, 신하들은 난감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물었다, 왕이시여, 불(佛)의 정토에 있다는 .. 더보기
드라마 선덕여왕, 문무왕비 발견을 예견하다? 실성왕 말년 412년에 고구려의 지원을 받은 눌지가 반란을 일으켰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눌지가 반란을 일으키는 와중 실성이 궁성에서 혁거세의 유언비를 가지고 도망을 치다가 비(碑)가 절벽 아래로 떨어졌지만, 앞부분만이 발견되어 전해지고, 뒷부분은 200년 동안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덕만은 좋게 말해서 '꾀'를 내고, 나쁘게 말해서는 '비문조작'을 통해서 자신이 라고 선언한다. 그 후 덕만은 공주의 신분을 회복하고 미실과 본격적인 정치력 대결을 벌린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드라마 선덕여왕이 예언이라도 한것처럼 조선 후기 정조 1796년에 발견되었다, 다시 사라져 발견되지 않던 문무왕비문이 2009년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만에 발견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드라마상에서는 혁거세 유언의 가 사라졌.. 더보기
경주 첨성대는 선덕여왕 2년에 세워졌다. -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편 선덕여왕 원작자 두사람은 무슨생각으로 역사소설을 쓰나? 신라에는 두개의 궁궐이 있었다. 하나는 명활성이고, 하나는 반월성(월성)이다. 이 두성은 때에 따라서 번갈아 궁궐로 사용되였다. 하지만, 진평왕시기에는 반월성(월성)이 궁궐이였다. 647년 1월 8일 덕만이 죽고나서 비담이 반란을 일으킨 장소는 명활성이다. 반란군을 진압하는 정부군의 지휘부는 궁궐인 월성이였다. 이곳에서 진덕(승만)이 10여일을 비담에 시달렸다. 김유신열전에 김유신이 로 비담의 군대의 사기를 떨어트리기도 했다. 이와관련해서는 2009/08/3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이 덕만을 배신했다고?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예전 보름날에 연을 날릴때 불을 연의 꼬리에 달고 날리는 풍습이 있었다. 액운을 하늘로 다시 보낸다는.. 더보기
선덕여왕, 비담의난 덕만을 배신했다고? 사실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선덕(덕만)의 죽음에 대해서 다둘지 다루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덕만이 632년 왕위에 오르고, 647년 1월 8일 죽을 때까지 17년 동안 신라의 국왕으로 재위를 합니다. 비담의 난이 647년 1월 "여왕이 국정을 재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반란을 일으키는데 이에 가담하는 세력이 염종을 비롯해서 처형된 수뇌부만 30여명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들의 위세가 당시의 진압군 보다도 세력이 컸습니다. 또한, 이들에게는 보다 이로운 하늘의 징조(뜻)가 발생하는데 현재의 유성이 월성(궁)에 떨어지게 됩니다. 유신은 문노의 비급을 받지 못한다 이에 진압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반대로 반란군인 비담측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게 됩니다. 이에 유신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와는 다르게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