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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계백>의 처음은 창대하게 시작하였지만, 끝은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대부분 대한민국 사극의 한계점이다.


처음에 물량공세를 하고 사전제작으로 시청자의 눈을 현혹하지만, 초반 몇편을 제외하면 실시간 시나리오에 생중계 사극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자료조사는 등한시 되고, 제작비의 고갈로 전쟁신은 20명도 안 되는 엑스트라를 동원하거나 후반부로 가면 말로 때우기 일수다
.

<
계백>도 여타 사극의 범주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 사극의 주류는 여성주의 사극을 표방한다.

 

여성 시청자를 끌어들이지 못하는 사극은 시청률에서 고생할 뿐만 아니라 여론을 주도하는 예능이나 드라마에서 이슈화 될 수가 없다.

 

<계백>은 최근 사극 드라마 트랜드에 따라 무왕과 사택비 무진의 3각관계를 핵심으로, 대를 이어 의자왕과 계백 그리고 은고의 삼각관계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대를 이은 사랑은 시청자로 하여금 감정이입에 실패하고 사랑의 합리성이나 개연성 등 동의를 얻는데 실패를 했다.

 

그렇다고 제작자들이 추구하고자 한 백제의 마지막 충신 계백을 보여주었나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저 은고에 목 매이다 끝난 기구한 한 남자의 일생뿐이다.

그렇다고 계백에게 몰입을 할 수 있는 당위성도 부족하다. 의자왕이 한일도 계백이 한일처럼 만들고, 윤충이 한일도 계백이 한일로 만들었지만 전쟁영웅미화 작업도 물거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백제의 마지막 충신이라는 성충과 흥수는 듣보잡 얼치기에 뒤에서 모략이나 꾸미는 간신모리배나 진배없게 만들어 버렸다.

 

<계백>에서 현재 그리고 있는 의자왕은 한성이북을 고구려에 빼앗긴 개로왕의 모습을 의자왕에 투영해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남의 연인을 빼앗는 모습에서는 도미부인을 연상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역사적으로 부활시키겠다는 백제의 계백은 사라지고 시청자의 입맛에 맞춘 계백을 만들려 했지만, 이도 저도 아닌 죽도 밥도 아닌 새까맣게 타다버린 숯덩이 뿐이다.

 

그렇다면, 시청율을 목적으로 만든 계백은 백제 역사를 재조명하였을까? <계백>을 보고 역사이야기를 한다는 자체가 한심할 정도로  허점투성이다. 그렇다고 <계백>에 출연한 배우들이나 시나리오가 충실해서 연기에 몰입할 정도라도 되는가하면 발연기를 하는 배우들 투성이다.

 

<계백>에서 연태후와 은고가 다음 왕위를 선점하기 위한 자기 자식 챙기기가 시작되었는데 참으로 남감한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의자왕은 서자만 41명인 정자왕

백제의 마지막 황태자 부여융은 연태후의 자식도 아니고 은고의 자식도 아닌 것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단지 부여융은 백제가 당나라에 조공한 듣보잡이라고 당당히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최소한 의자왕은 3천궁녀는 아닐지라도 수 많은 비들이 있음을 짐작하고 남는다. 왜냐하면 의자왕에게는 좌평으로 임명된 서자만 41명 이상이 있었다. 좌평에 임명된 서자만 41명이면 어린 왕자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더군다나 이에 딸인 공주들은 얼마나 많았겠는가?

 

657 17년 봄 정월에 왕의 서자 41명을 좌평으로 임명하고, 그들에게 각각 식읍(食邑) 을 주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역대 가장 많은 자식을 둔 왕을 가려도 세종대왕과 비교될 만큼 아니 오히려 역대 최고의 정자왕으로 의자왕을 꼽을 만큼 의자왕에게는 넘쳐나는 게 자식들이었다. 오죽하면 허황된 삼천궁녀라는 말이 있었겠는가? 물론, 삼천궁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헛소리다. 백제 수준에서 가질 수 없는 궁녀의 수 이다. 단지 많았겠다는 이야기 수준에서 벗아날 수가 없다.

 


백제 마지막 비운의 황태자 부여융 
 

그렇지만, 의자왕에게는 서자 41명을 제외하고도 많은 왕자들이 보인다. 정확히 생몰년을 알 수 있는 태자 부여융과 부여효, 부여태, 부여풍(), 부여용, 부여연 등이다.

 

더불어 은고는 의자왕의 유일한 왕자는 연태후의 부여태와 은고의 부여효 밖에 없다고 말한다. 연태후와 부여태만 사라진다면 자신이 황후가 되고 부여효가 태자가된다고 연태후를 암살하려다 실패한다.
 

그런데, 계백이 은고의 계략임을 알고 은고를 찾아가서 반란죄에 해당하는 은고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황비를 안기까지 한다. 언제부터 의자왕에게는 달랑 2명의 왕자만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더군다나 좌평도 세작의 끄나풀이라고 잡아들여서 고문하는 계백이 그보다 중대한 반란 역모를 눈감고 있다는 설정은 계백에게 전쟁영웅이나 충신 계백다움도 없다

 

삼국사기에는 부여태는 둘째아들로 나오고 부여효는 태자로 나온다. 하지만어느새 부여효가 둘째가 되고 부여태는 장자가 되어버렸다.

 

왕의 둘째 아들 태 () 스스로 왕이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굳게 지켰다. 태자의 아들 문사가 왕의 아들 융 에게 이르기를 "왕께서는 태자와 함께 나가버렸고, 숙부는 자기 마음대로 왕 노릇을 하고 있으니 만일 당 나라 군사가 포위를 풀고 가버리면 우리들이 어떻게 안전할 수 있겠는가?"라 하고,

마침내 측근들을 데리고 밧줄을 타고 성을 빠져 나가고 백성들도 모두 그를 뒤따르니, ()가 이를 만류하지 못하였다. 소정방 이 군사들을 시켜 성에 뛰어 올라 당 나라 깃발을 세우게 하자, ()는 다급하여 성문을 열고 목숨을 살려주기를 요청하였다


이때 왕과 태자 효 가 여러 성과 함께 모두 항복하였다소정방 이 왕과 태자 효 (), 왕자 태 (), (), (및 대신(大臣)과 장사(壯士) 88명과 주민 1 2 8 7명을 당나라 서울로 호송하였다

삼국사기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義慈挾太子隆走北鄙, 定方圍之. 次子泰自立爲王, 率衆固守, 義慈孫文思: 「王·太子固在, 叔乃自王, 若唐兵解去, 如我父子何?」 與左右縋而出, 民皆從之, 泰不能止. 定方令士超堞立幟, 泰開門降, 定方執義慈·隆及小王孝演·酋長五十八人送京師,

신당서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당 나라의 군사들이 이긴 기세를 몰아서 성에 들이 닥치니 왕이 [패배를] 면하지 못함을 알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 성충 의 말을 듣지 않아 이지경에 이른 것을 후회한다.” 하고 마침내 태자 융 隆 ;
(혹은 효()라고 하나 오류이다 ) 과 함께 북쪽 지역으로 달아났다. 소정방 이 도성을 포위하자 왕의 둘째 아들 태()가 스스로 왕이 되어 무리를 거느리고 굳게 지키니

삼국유사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문제는 백제가 멸망하고 소정방은 정림사지에 대당평제비를 세우고 떠난다. 이때 부여융이 태자로 나오고 있고, 일본서기나 유인원의 비문에도 부여융이 태자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삼국사기의 이야기는 잘못된 전승이라고 하겠다.
신당서에는 부여문사는 부여태의 아들로 부여태가 왕을 참칭하자 우리부자는 어찌될까(如我父子何?)하고 아버지 부여태를 버리고 소정방에 항복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삼국사기에는 태자 부여융이 웅진이 아닌 사비성에 나타날까? 이는 부여
()()이 비슷해서 판각이나 전승과정에서 오류가 생긴것이다.
 

644년 정월 왕의 아들 융 (을 태자로 삼았다.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어쨌든, 부여태와 부여효가 615년생 부여융보다 비슷한 나이 이거나 많았을 것이다. <계백>의 시제는 643~4년으로 치닫고 있다. 이때 부여효, 부여태의 나이는 최소한 20살은 넘어야 정상이란 뜻이다.  644년 부여융의 태자책봉을 어떻게 다룰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다.



그 왕() 부여의자(扶餘義慈) 및 태자(太子) () 이외 왕자(王子) ()() 13인은 대수령(大首領) 대좌평(大佐平) 사탁천복(千福), 국변성(國辯成) 이하 700여 인과 함께 이미 궁궐에 들어가 있다가 모두 사로잡히니

-    소정방 대당평제비 660 8

[百濟王 義慈, 그 妻 恩古, 그 아들 隆 등, 그 신하 佐平 千福, 國辨成, 孫登 등 모두 50여 명이 가을 7 13일에 蘇將軍에게 사로잡혀 唐에 보내졌다
-
일본서기 660

 

위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태자 융이 첫째, 부여태 둘째, 부여효 셋째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부여융은 의자가 왕이 된 4년 후 태자로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지 왕의 아들 융을 태자로 세웠다 하니 장자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부여효가 둘째이고, 부여태가 장자, 부여 융이 삼자일 수가 있다.


실질적인 백제의 마지막왕 부여풍장


하지만
, 일본서기에 부여풍장이 631년 무왕 시절에 왜국으로 가고 있음으로 부여풍이 장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하겠다.

 

 

드라마 <계백>의 작가는 계백을 영웅 만들자고 백제의 수 많은 왕자들을 듣보잡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고, 백제 부흥군 하면 떠올리는 무왕의 조카 부여복신(귀실복신)이나 부여 융, 부여풍까지 의자왕의 자식이 아닌 어미애비도 없는 후레자식으로 만들어 버렸다.

 

백제를 이끌었던 장군들은 의자왕 초기 윤충이었고, 중반에는 <계백>에서 듣보잡 장군으로 나오는 은상과 의직이었다.

백제의 오천결사대에는 달솔 계백말고도 상관인 좌평 충상과 달솔 상영 등 고위급만 해도 20여명이 있었고, 이들은 신라에 항복한다. 다만 계백만이 항복하지 않고, 죽었기 때문에 계백이 전쟁영웅은 아닐지라도 충신으로 성충, 흥수와 함께 백제 삼충신으로 추앙 받는 것이다.

 

계백에서 의자왕의 양자로 당에 볼모로 가있다는 부여융만 해도 615년에 태어났다. 하지만, <계백>에서는 계백과 은고와 의자왕의 삼각관계 때문에 양자로 없는 자식취급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부여융은 백제가 망하자 태자로서 당나라에 끌려간다.

 

부여풍()만 하더라도 일본서기에 수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3,631) 3월 庚申 초하루 백제왕 義慈 왕자 豊章 들여 보내어 볼모로 삼았다

643년 이해 백제 太子 餘豊이 벌통 4개를 가져와 三輪山에 놓아 길렀으나 끝내 번식시키지 못하였다.

 

650, 白雉 元年 2월 庚午 초하루 戊寅 穴戶國司 草壁連醜經이 흰 꿩을 바치며, 國造首의 同族 贄가 정월 9일에 麻山에서 잡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그것을 百濟君에게 물으니, 백제군이 後漢明帝 永平 11(68)에 흰 꿩이 여기저기에 나타났습니다라고 하였다.

중략

좌우의 대신들은 백관과 百濟君 豊璋· 아우 塞城· 忠勝 ·高麗의 侍醫 毛治· 新羅의 侍學士 등을 거느리고 中庭에 이르렀다.···

- 일본서기 부여풍() 발췌

 

위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부여풍은 631년 왜국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643년 부여풍은 태자라 불리웠고 650년에는 백제군이 되었다 661년 백제의 실질적인 마지막 왕이 된다.

 

삼국시대의 역사기록은 소략하다. 그만큼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할 영역이 많다. 더군다나 역사기록에 부합하게 드라마를 쉽게 만들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등장인물의 생몰년과 몇몇 기록만 일치 시키면 나머지는 작가의 상상력 영역으로 만들수 있을 만큼 삼국시대 사극은 드라마 작가나 제작자에게는 손집고 헤엄치기다.

반면에 <공주의 남자>, <뿌리깊은 나무>처럼 조선시대 사극은 기록이 풍부해서 좋은 점도 있지만,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할 공간이 그만큼 줄어들고 작가와 제작자가 공부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만들기 힘든것이 사실이다
.

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는 부분까지 기존 기록을 무시하고 소중히 다뤄야할 자료를 폐기까지 하면서 "백제를 재조명"했다는 제작자의 말이 얼마나 부질없는 공염불이 되겠는가
?

최소한 지킬 것은 지키는 사극을 보고 싶다
. 최소한 <계백>의 전개성 등장시키지 않더라도 없는 자식취급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백제의 마지막을 재조명해서 극화하겠다고 100억을 쏟아부은 드라마라면 말이다. 100억 들여서 백제사를 재조명해도 시원찮을 판에 망칠 일 있나?

최소한 역사와 드라마는 구분하고 볼수 있는 안목이 있는 시청자가 되길 소망하며..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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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234 2011.11.02 1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작가때문에 계백을 보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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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백을 보면서 얼굴을 찌푸리는 장면중 하나는 연개소문이 직접 계백의 군영을 찾아가는 장면인데요
    상식적으로 연개소문은 고구려태왕과 맞먹는 권력자입니다.그린데 백계 장수하나를 찾아가는 일을 어느 역사에도 존재하지 않은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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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Favicon of http://dalerippey.livejournal.com/931.html BlogIcon katadyn hiker 2012.12.19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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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아가 쇼트 7위에서 프리 1위를 하여 종합 2위를 한것도 대단하다고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내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동주선생이 비형랑 설화에서 나오는 비형랑이 아닐까하는 이야기 네티즌 사이에서 오가고 있다.

선덕여왕에서도 비형량을 모티브로 만든 등장인물이 나온다. 다름이 아닌 비담을 비형랑에서 모티브로 해서 창조한 것이다.

[역사이야기] - 용춘의 아내는 왜 우물에 몸을 던졌을까?
 글에서 이야기 했듯이 용춘의 대씨녀의 예에서 보듯이 화랑세기에는 난삽한 성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 시대에도 귀감이 될만한 이야기도 곳곳에 숨어 있다. 이름하여 숨어있는 일인치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약간의 서비스를 하자면, 드라마상 비담과도 관련이 있고, 용수. 용춘과도 관련이 있다.

비담(김남길)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이 아들은 덕만의 최대의 지지세력이 될 수 있었다.


용수와 용춘은 덕만의 최대 지지세력이다. 용춘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형제가 있다. 드라마상 비담도 용춘의 동생이다. 그는 다름 아닌 또다른 '비'자 돌림의 비형랑이다.  


비형량은 어릴때 용수. 용춘 형제와 같이 진평왕에 의해서 궁궐에서 지내게 되고, 진평왕을 아버지로 알고 지냈다. 비담의 과 비형랑의 진실을 알고 싶다면 2009/08/04 - [역사이야기] - 카리스마 비담, 미실이 버린 아들? 사실은 을 일독하기 바란다. 요약한다면, "같은 <비>를 쓴다고 진지(금륜)형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글이다.

화랑세기의 숨은 일인치 정절의 화신 도화녀

화랑세기에 의하면 용춘이 13세 풍월주가 되는데 비형랑의 자신의 무리들을 용춘을 위해서 많은 일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비형랑은 누구의 자식일까? 일반적으로 많이 알고 있듯이 비형랑은 진지(금륜)의 아들이다. 금륜이 폐위되고 3년이 지난후 조선시대라면 열녀문이 세워졌을 '도화녀'라는 미망인과 관계를 하여 비형랑이 태어난 것이다.

화랑세기는 단순히 13세 풍월주 용춘(596~603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서제인 비형랑(鼻荊郞)과 함께 힘써 낭도를 모았다. 그러자 대중이 따랐고 3파가 모두 추대하고자 하였으므로, 서현랑이 위를 물려주었다고 한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화랑세기에는 비형랑의 나이를 추측할 수 없다. 하지만, 삼국유사에는 비형랑이 언제 태어 났는지, 증거가 나온다.

이보다 먼저 사량부(沙梁部)의 어떤 민가(民家)의 여자 하나가 얼굴이 곱고 아름다워 당시 사람들은 도화랑(桃花郞)이라 불렀다.  왕이 이 소문을 듣고 궁중으로 불러들여 욕심을 채우고자 하니 여인은 말한다.  "여자가 지켜야 하는 것은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일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있는데도 남에게 시집가는 일은 비록 만승(萬乘)의 위엄을 가지고도 맘대로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왕이 말한다.  "너를 죽인다면 어찌하겠느냐."  여인이 대답한다.  "차라리 거리에서 베임을 당하더라도 딴 데로 가는 일은 원치 않습니다."  왕은 희롱으로 말했다.  "남편이 없으면 되겠느냐."  "되겠습니다."  왕은 그를 놓아 보냈다.

이 해에 왕은 폐위되고 죽었는데 그 후 2년 만에 도화랑(桃花郞)의 남편도 또한 죽었다.  10일이 지난 어느 날 밤중에 갑자기 왕은 평시(平時)와 같이 여인의 방에 들어와 말한다.  "네가 옛날에 허락한 말이 있지 않느냐.  지금은 네 남편이 없으니 되겠느냐."  여인이 쉽게 허락하지 않고 부모에게 고하니 부모는 말하기를, "임금의 말씀인데 어떻게 피할 수가 있겠느냐"하고 딸을 왕이 있는 방에 들어가게 했다.  왕은 7일 동안 머물렀는데 머무는 동안 오색(五色) 구름이 집을 덮었고 향기는 방안에 가득하였다.  7일 뒤에 왕이 갑자기 사라졌으나 여인은 이내 태기가 있었다.  달이 차서 해산하려 하는데 천지가 진동하더니 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이름을 비형(鼻荊)이라고 했다. - 삼국유사 도화녀와 비형랑


진지왕이 도화녀를 취하려 했지만, 도화녀는 "남편이 있다"는 말로써 진지왕의 성상납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임금이 하고자 하는 일에 거부를 하고 있으니, 남편에 대한 정절의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당대 신라는 남편이 있더라도 미실처럼 남자를 취하는 데에 부끄럼이 없었다. 그런데도 비형랑의 어머니는 "남편이 있는 몸이니 허락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음란하다고 알려진 금륜(진지)는 의외로 신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순순히 도화녀를 풀어준다. 왕의 권능으로 남편을 귀향을 보내거나, 죽여버리고 도화녀를 취할 수도 있었고, 도화녀 또한, 화랑세기에 의하면, 진지와 관계를 가지므로 해서 자신과 가문의 지위를 상승할 수 있는 계기를 발로 차버린 것이다.


춘향전의 원형 두가지, 도화녀와 도미 

"수청을 들겠느냐? 아닙니다. "저는 낭군이 있는 부녀자 이니 정절을 지키겠나이다.", "수청을 들지 않겠다면, 옥에 들어가 있어라"라고 하는 춘향전의 변학도와 춘향과의 대화의 원형을 보는 것 같지 않는가?

용춘(도이성)

이와 유사한 일은 삼국사기 열전에도 기록되어 있다. 다름 아닌 <도미부인>의 전설이다. 도미는 백제에서 아름답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경국지색이였다. 이때, 개로왕은 도미를 취하려고 하였지만, 도화녀처럼 남편이 있으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개로는 그렇다면 진지왕과 같이 "남편이 없으면 되겠느냐"하고 물어보지만, 진지(금륜)과는 다르게 도미의 남편의 눈을 뽑아 버리고, 추방시켜버린다. 남편이 사라진 도미에게 이제 남편이 없으니 성은을 받겠느냐? 하니 도미가 지금은 "그날이 도래 했으니 날짜가 조금 지나면 월경도 끝나게 된다. 그러니 깨끗한 몸으로 왕의 성은을 받겠다"고 위기를 모면한다. 이에 개로는 도미의 말에 속아 도미를 놓아 준다. 도미는 그길로 자식들을 이끌고 고구려로 도망 한다.


진지왕과 개로왕과는 여인을 취하는 방법에 천지차이가 있다. 진지왕은 도화녀가 남편이 없을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개로는 변학도 마냥 춘향의 주변을 가지치기를 하고, 춘향을 압박하듯이 도미를 취하려하고 있다. 이런 진지가 음탕하고, 난삽하였다면, 진지의 폐위의 명분이 다른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어찌되었던 삼국유사에 의하면 진지(금륜)이 폐위되어 죽고, 2년후 도화녀는 진지왕의 요구를 거부할 명분이였던, <남편>이 사라짐으로 해서 금륜과 관계를 하여 <비형랑>을 낳은 것이다. 화랑세기는 진지는 폐위되어 죽지 않고 유폐되었다가 2년 동안 도화녀가 홀몸이 될때까지 기다려 관계를 가지고 비형랑을 낳았다고 한다.

화랑세기에는 진지왕의 순수(?)한 사랑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열병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이에 관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물론, 호흥이 없다면,글을 쓸까 말까 고민을 하겠지만 말이다.

화랑세기는 단순히 비형랑을 용춘의 서제이며, 비형랑이 용춘을 도와 풍월주에 이르게 하였다고 짧게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와 화랑세기를 따른다면, 용춘은 진지왕이 폐위되기 1년전인 578년에 태어났고, 비형량은 금륜이 579년 폐위된후, 도화녀가 미망인이 되는 2년을 기달려 관계를 하고 태어 났으니 비형랑은 581년생이 된다. 용춘이 13세 풍월주에 오른때가 596년이니 18세에 풍월주가 되고, 비형랑은 15세가 되어 용춘을 도운것이다. 비형랑은 어릴적 부터 귀신을 다룰줄 알았다. 그래서 15세에 집사가되어 진평왕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비담의 형제들

임종(강지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나오지 않는 용춘의 좌우쌍포가 한명은 대남보이고, 또다른 한명은 귀신같은 비형랑인것이다.  이제 드라마상 용춘의 형제들이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나이순으로 정리하면 용수. 용춘, 비담, 비형랑은 모두 진지(금륜)의 소생이다. 용춘의 어머니의 소생으로는 17세 풍월주인 염장(천주/지도)도 있다.

귀신도 부릴줄 알만큼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비형랑이 선덕여왕에 등장했다면, 극의 재미가 극대화 되지 않았을까? 설마 비형랑이 귀신도 부릴줄 알았겠는가?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다들 이렇게 말을 하지 않는가? "귀신같은 놈" 이라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용춘의 그림자 같은 임종이 등장한다. 그런데 삼국유사에 의하면 임종은 비형랑이 15세가 되는 596년경에 직위가 <각간>에 이르렸다. 그러니 임종은 용춘보다는 나이가 많았다고 볼수 있다. 화랑세기에도 임종은 문노가 풍월주가 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세우고, 후에, 17세 풍월주 염장의 아버지인 천주공(진흥/문화)를 풍월주로 하고, 김유신의 아버지인 서현을 부제로 하여, 화랑을 개혁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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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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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22 1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형랑 캐릭터가 드라마에 나왔다면 매우 매력적이었을 것 같은데요. 아마 내용이 너무 산만해질까 싶어서 빼버린 건 아닌지..뭐 그건 작가 맘이겠지만 말이죠. 그나저나 화랑들도 꽤나 복잡한 가계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당시엔 어떻게 구분이나 잘 했을런지....^^ 미생공은 자기 자식이 누군지 못 알아볼 정도라는데 말이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2 1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담이 비형랑의 역할 모델이 아닐까요? 출생만.. ㅋㅋ
      그들 나름의 찾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미생은 화랑세기에 의하면,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있으면 다 받아 드렸다고 합니다.. 관계를 하지 않더라도..

      당대 재벌 미생이니,, 마이클 잭슨이 떠오른다눈.. ㅋㅋ

  2.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22 11: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미의 전설"
    처음 듯는 이야기이군요...
    물론 비형량 이야기도....
    글쎄요,
    서두에 말씀하신것처럼
    난잡한(난삽 ㅋ) 성관계...
    저는 순결무구한 그런 관계에 혹한다는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멋진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2 12: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순결무구한 것이면 좋겠지만.. 예전에 읽었던 기억에 의존하면 서양쪽에서 아버지가 다른 형제가 약30%정도 된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것 같아요.. 어머니의 남편이 아버지 인줄 알았는데 옆집 아저씨가 아버지더랑..머 뻐꾸기가 둥지를 튼거라는 것이겠지요..

      삼국사기에 도미는 열전에 오르고, 도화녀는 열전에 오르지 않으니 일연이 도미랑 비슷한 여자가 신라에도 있었다라고 이야기를 ㅐ주는 거겟지요..

  3.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22 1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족보는 왜 이렇게 복잡한지! 제가 좋아하는 비담이 나와서 더욱더 열심히 공부했답니다.

  4. 갓쉰동님 팬 2009.08.22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곳애서는 비형랑이 외국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귀신같은 재주는 그만큼 신라사회에서 뛰어난 인물이었다는 반증도 되구요. 선덕여왕에서 비형랑이 나왔으면 꽤 재밌지 않을까 싶네요^^ 하여튼 요즘 갓쉰동님 글 올라오길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나저나 용춘에 대해 드라마에서는 너무 홀대하는 것 같아 아쉽네요 ㅎㅎ(내스탈~)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3 1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형에서 비가 코비를 쓰니 코가 클것이다는 것 때문이겠지요.. 처형과 연결하고 싶은 생각도 있는것같고..

      양도라는 인물도 외부에서 들어온 인물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당..

      추천은 계속 하시는 거지요? ㅋㅋ

  5. 2009.08.22 15: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22 17: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이 반란을 일으켜도 구족이 죽지 않았겠네요... 왕족이니...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추천수나 조회수가 적네요...

    제 글도 그래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3 10: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담이 반란을 일으켜서 9족이 죽었을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지요. 단 비담의 인척중 가담히지 않고,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포함되어 있다면요..

      형제가 다른 생각을 가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태백산맥이 그런 점을 잘 묘사한것 같아요.. 형제둘이 한쪽은 반공, 한쪽은 친공.. 생존의 법칙이지 않을까함..

  7. 효비 2009.08.23 0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미의 전설...왠지 유교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네요.^^;; 저 당시에는 아직 그런게 형성이 안됐을 텐데 말이죠. 역사를 잘 모르겠지만;;; 정말 재밌게 보고 가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3 10: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꼭 유교적인 것은 아닌뎅.. 유교는 체계화 시킨 것이겠지요..

      개로왕이전에도 유교는 이미 들어와 있었어요.. 그런니 영향을 받았을 수도..

  8. 비단길 2009.10.11 1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저도 거칠부 연구하는 과정에서
    진지왕 폐위와 관련 정치적 모티브가 작용하고
    또 이것이 신라 상대의 역사을 흐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짐작 정도 했는데

    비형랑 출생 관련 이야기와 함께
    연도까지 잘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9. Favicon of http://thehamletnews.com BlogIcon 김성환 2012.01.01 2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은 감사의 말씀을 매우 짧은 주석입니다

  10. Favicon of http://bellydancespringfield.com BlogIcon 고명진 2012.01.07 0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11. Favicon of http://stevie-wonder.is-leet.com BlogIcon 줄리아나 2012.05.08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가 안갑니다.

  12. Favicon of http://edward.is-a-hard-worker.com BlogIcon 백합 2012.05.10 2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속이고 있군요.

  13.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Pussy.Org 2012.07.21 2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순히 정부가 입국을 만류했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닐뿐만 아니라 샘물교회 교인들이 아니라도 누구나 될 수 있었던 상황입니다.

  14. Favicon of http://hubshout.com/?SESEO-Resellers-Make-Money-From-Providing-Clients-With-Vi.. BlogIcon Benedict 2012.08.04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요즘 시대에도 귀감이 될만한 이야기도 곳곳에 숨어 있다. 이름하여 숨어있는 일인치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약간의 서

  15. Favicon of http://www.wagsandwhiskerspetboutique.com BlogIcon invisible dog fence prices 2012.11.03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티즌 악플러들은 뻘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만약, 일본이 진다면 일본 악플러들의 만행이 만만치 않을것 같다. 반면에 일본이 파라과이를 이긴다면 한국내의 악플러들이 허정무 감독과 대한민국 대표팀을 공격할 것 또한 자명해 보인다.

  16. Favicon of http://marianadike.multiply.com/journal/item/3/Greatest_In_Survival_Products_A.. BlogIcon how long does dehydrated vacuum sealed food last 2012.11.07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시대에도 귀감이 될만한 이야기도 곳곳에 숨어 있다. 이름하여 숨어있는 일인치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약간의 서비스를 하자면, 드라마상 비담과도 관련이 있고, 용수. 용춘과도 관련이 있다.

  17. Favicon of http://maddogblog.com/2007/07/rent-mutt.html BlogIcon canine fence employees 2012.11.23 0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아레스가 퇴장을 건 승부가 없었다면 우루과이는 8강에 만족하고 짐을 싸고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승부차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루과이는 이기고 들어갔고, 가나는 이미 지고 들어가는 승부였다.

  18. Favicon of http://sanbor.typepad.com/blog/2012/04/seventy-two-survival-kit-whats-on-your-.. BlogIcon best survival radio buy 2013.01.02 1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만, 경기 2주를 남겨두고 경기도 과천 빙상장에서 연습도중 다른 사람과 충돌하여 심각한 발목 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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