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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륜

대풍수 영지 이진과 이승연, 시청률 한자리도 아까운 200억 사극 부제: 덕흥군의난 허술종결자 이성계 지진희 연기변신 아깝다 대풍수에서 덕흥군의 난을 묘사하고 있다. 덕흥군은 공민왕의 작은 아버지이다. 공민왕이 1356년 기철 일당을 몰아내자 기철의 누이이던 원의 기황비가 복수하기 위해 공민왕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반란을 일으키다 실패한 최유의 간계에 1363년 겨울 심양왕 덕흥군을 고려왕에 봉하고 드디어 원의 1만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침공한다. 그런데 대풍수 공민왕은 몽진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 최영의 말을 듣고 신료들을 실험한다. 그리고 덕흥군에 부용하려는 내부의 적을 색출하려 한다. 문제는 공민왕은 이미 고려왕이고 원이 고려왕을 뽑았다고 해서 고려의 신하들이 덕흥군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이미 고려와 원은 적대적인.. 더보기
대풍수 이성계 제왕사주 하지만 자미원국 알고보면 오마주 세종대왕? 대풍수 이성계는 제왕 사주를 타고 났다고 한다. 공민왕은 이성계의 아버지 묘자리가 제왕지지 라는데 이를 확인하려 하지만 무학은 사실이 아니라고 보고하도록 한다. 대풍수에서 공민왕은 원에서 돌아와 왕이 된다. 그리고 풍수를 보던 서운관 일관 동륜(최재웅)에게 자미원국을 찾아 보도록 한다. 자미원국은 고려의 국운을 상승시킬 땅이며 세계를 호령할 만한 인물이 태어날 땅이다. 그래서 원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동륜에게 자미원국을 찾아보도록 한다. 동륜은 자미원국을 찾았지만, 50년 뒤에 임자가 나타난다는 석판을 발견하고 봉인 한다. 대풍수에서 동륜이 찾은 자미원국은 좌청룡, 우백호, 현무, 주작이 둘러싼 명당이라고 말한다. 자미원국을 처음 발견한 이는 동륜 이전에 공민왕이 누군가를 시켜 자미원국을 찾을 것을 알고.. 더보기
신의와 다른 대풍수 무엇을 말하려하는가? 신의는 공민왕 시기 최영과 현시대에서 타임 슬립한 김희선(유은수)와의 사랑과 공민왕이 개혁군주가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대풍수는 신의와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풍수에서 자미원국을 모태로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신의에서는 공민왕를 개혁군주로 대풍수에서는 서로 다른게 그리고 있다. 같은 노국공주라도 한쪽은 비운의 주인공이지만 대의를 알고 사랑스럽게, 한쪽은 불운한 하지만 자신만 챙기는 왕비로, 신의는 최영은 대쪽같고 사랑스럽고, 대풍수는 그저 그런 정치술이 있는 장군으로 그린다. 신의에서 이성계는 죽을 운명이지만, 김희선으로 인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김희선이 사랑한 이민호(최영)을 죽이는 운명을 갖는다. 실제 죽이는 역사가 될.. 더보기
내여자친구는 구미호와 선덕여왕, 비담과 동주선생 비형랑 설화 내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동주선생이 비형랑 설화에서 나오는 비형랑이 아닐까하는 이야기 네티즌 사이에서 오가고 있다. 선덕여왕에서도 비형량을 모티브로 만든 등장인물이 나온다. 다름이 아닌 비담을 비형랑에서 모티브로 해서 창조한 것이다. [역사이야기] - 용춘의 아내는 왜 우물에 몸을 던졌을까? 글에서 이야기 했듯이 용춘의 대씨녀의 예에서 보듯이 화랑세기에는 난삽한 성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 시대에도 귀감이 될만한 이야기도 곳곳에 숨어 있다. 이름하여 숨어있는 일인치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약간의 서비스를 하자면, 드라마상 비담과도 관련이 있고, 용수. 용춘과도 관련이 있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이 아들은 덕만의 최대의 지지세력이 될 수 있었다. 용수와 용춘은 덕만의 최대 지.. 더보기
중복 삼계탕 개고기 보양식를 바라보는 이중성과 편협함 최근 KBS1로 바뀐 미수다(미녀들의 수다)에서 초복 날을 맞이해서 각국의 보양식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중국의 경우는 양뇌를 먹는다고 하고, 홍콩에서는 개구리를 사브사브 식으로 먹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사슴고기를 먹고 다양한 보양식 문화를 소개시켜주고 있다. 또한, 한국의 복날(초복,중복,말복) 보양식뿐만 아니고 일반적으로 먹는 보양식에 대해서 삼계탕과 개고기를 맛나게 먹는 서양인을 조명시키므로 해서 개고기는 한국의 식문화이고 실제 외국인도 개고기를 먹어본다면 맛있을 것이라는 쪽으로 진행을 하였다. 서양인들이 뽑은 한국의 3대 보양식으로는 삼계탕, 김치, 비빔밥이라는 정보도 제공하였다. 이는 각국의 식문화를 간섭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과도 같은 것이다. 여기까지는 일반론적인 접근이니 별다른 의미.. 더보기
찌질남 하종(김정현)알고 보면 엄친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세종과 미실의 아들로 나오는 하종은 어리숙하면서도 아버지가 다른 나이어린 보종에 대해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또한, 미실의 정부(?)인 설원랑(전노민)에 대해서는 비호감의 감정을 스스럼 없이 분출하고 있다. 왕인 진평에게나 왕비인 마야에게도 맘에 안들면 치받아 버린다. 김정현이 하종 배역을 맡고 있는데, 어쩜저리 어리숙하고, 찌질하게 연기를 잘하는지 보는 내내 웃음을 짓게 한다.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인물중에서 미워할 수 없는 악역중에 일인이라고 하겠다. 선덕여왕에서 상천관 서리(송옥숙)이 미실(고현정)이 건낸 사약(?)을 먹고 죽는다. 그 뒤를 이어서 서리의 보조 신녀인 설매가 상천관의 지위를 계승하였다. 설매역을 맡은 조명진이 삼성 야구선수 박한이와 결혼을 예정한것 처럼, 김정현.. 더보기
미실(고현정) 아들, 용춘 동생, 카리스마 비담(김남길)의 또다른 비밀 카리스마 비담, 치킨비담이 된 이유? 이글은 [역사이야기] - 카리스마 비담, 미실이 버린 아들? 사실은 에서 다하지 못한 후편에 속한다. 끊임없이 샘솟는 샘처럼 노천 노다지광산에서 황금덩이를 줍기만 하면 된다. , 카리스마 있게 등장한 비담의 출생의 비밀과 비밀에 따른 여러 가지 이야기로 구성하였다. 비담(김남길)이 왜 닭에 대한 식탐이 강한지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닭에 어느 정도 암시가 숨어 있는 듯 하다. 닭은 계이며, 신라의 다름 이름은 계림이다. 닭(신라) 잡아 먹는 비담이라. 647년 비담이 상대등으로 반란을 하는 미래에 닭(신라)잡아 먹는 반란을 암시하니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선덕여왕 원작자 주위에 닭을 못 먹어서 죽은 귀신이 있거나, 닭고기 치킨 PPL이 아닐까? 이도 아니라면,.. 더보기
선덕여왕 이전 여왕은 있었다. 첫번째는 누구?!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글에서 덕만이 왕위에 쉽게 오를 수 있는 배경으로 덕만 선대에 있었던, 지소, 금진, 사도, 미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지소는 법흥의 딸이고, 법흥의 동생인 입종에 시집을 간다. 법흥이 죽고 나자, 7살의 어린 진흥(심맥종)이 왕위에 오르지만, 실질적인 전권을 행사하고,수렴청정을 하는 지소(법흥/보도)라고 했었다. 또한, 지소에게는 입종말고도, 진흥왕비인 사도의 아버지인 영실을 두번째 남편으로 두고 있었다. 이런 기록들은 현존하고 있는 의 기록들의 단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미실의 선대 여인에 대한 이야기기들이 빠져있다. 미실이 존재하게 된 이유는 지소와 옥진, 금진이 있었기 때문에 미실이 살아갈 수 있었고.. 더보기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진면목인 색공에 관련된 사항을 밝힐 수 없는 나름의 속사정이 있지만, 그래도 화랑세기에 나온 미실의 성격을 고현정이 잘 묘사한 것 같다. 능숙히 사람을 다루는 경지가 과히 화랑세기에 나타난 미실의 정치적인 면이다. 또한, 예술적이 소양을 '소엽도'를 그리는 행동으로 단순이 색공만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 예술과 정치력, 정치술수 등 이 뛰어남을 나타내 주었다. 화랑세기에는 미실이 정치,색공,술수 뿐만 아니라 글에도 조예가 깊어서 수많은 저술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쟁에 출전하는 사다함에게 사랑의 세레나데와 님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절절한 환송시를 쓰기도 한다. 풍랑가 - 미실 바람이 불(분)다고 하되, 임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친다고 하되, 임 앞(에) 치지 말고 빨리 빨리.. 더보기
선덕여왕, 덕만과 천명은 이복자매 글쓴이는 그 동안 다음 아래와 같은 선덕여왕의 공주시절에 있었던 기록을 하나 하나 추척해 들어 갔으며, 선덕왕의 중 첫번째 '사건인 모란씨 서되'는 진평왕의 노년인 627년 진평왕 49년에 있었던 일이라고, 그 동안 아무도 알지 못했던, 모란이 신라에 수입된 년도와 년을 특정하여 기사로 송고하였다.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또한, 에 얽킨 영묘사 옥문지사건과 영묘사의 창건과정을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에서 소상히 이야기 했으며, 영묘사가 만들어 지는 과정에 영묘사에 화재사건이 발생하여, 삼국사기가 선덕왕 3년 635년에 영묘사가 완성되었다는 기사와 의 3년 635년에 영묘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이중적인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