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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여인으로 돌아간 덕만 : 미실과 대적하기 위하여

개양자가 둘로 갈라지는 날 천명과 덕만을 낳았다고 대국민선언을 한다.

마야는 "국조의 예언 전부가 전해지지 않고 "어출쌍생하면 성골남진한다"는 말만 전해져서 "덕만을 버릴수 밖에 없었다고"고 한다. 200년전 실성왕 말년에 사라져서 이제야 발견된 예언의 전말을 모른체 그런 패륜적인 행동을 저질러 결국은 천명까지 잃게 되었다"고 한다.

투덜이 하종에게 세종은 이야기를 한다. "어쩌겠느냐? 황실이 짜고 치는 고스톱을 치는데 어찌하겠느냐?  이에 미생은 이에 맞장구를 친다.

마야는 국조의 예언대로 새로운 하늘을 열 수 있도록 덕만에게 제자리를 찾게 해달라고 대국민 호소를 한다.

용서는 힘이 있을때 하는것

진평은 백성들의 앞으로 나아가 모든 것은 "짐의 죄니라. 그러니 황후와 짐을 용서하라"고 한다. 이상하다. 가해자들이 항상 피해자보고 용서를 하라고 강요를 한다. 용서는 아픔을 당한자의 전유물이다. 누가 강요해서 억지로 하는 것은 여전히 피해자에게 또다른 가해를 가하는 것이다. 그러니 '용서하라'는 말은 가해자가 할 말은 아니다.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이 가해자로서 용서를 구하지도 않지만, 피해자보고 용서하라고 한다. 한국 근현대사에서도 지난날, 김대중 전대통령의 유언인 '민주세력'의 통합을 이야기하는데, 엉뚱하게 수 없는 탄압을 한 세력들인 가해자의 후신을 자처하는 자들이 김대중의 유언을 빗대어 통합을 역설을 한다. 그리고 용서와 화합을 입에 달고 산다. 용서는 힘이 있을때 하는 것이다. 힘이 없을때 하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고, 그저 힘의 지배에 순응하고, 자위하는 행동일 뿐이다김대중은 힘이 있을때 용서를 했다. 사실 "용서하지 않으면 어쩔껀데?"라고 말을 해주고 싶다.


원망하느냐고 묻는 진평에서 덕만은 당당히 진평을 원망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군주의 자리란 패업을 위해서 자식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식을 버릴정도였다면 그동안 힘을 길렀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실에 휘둘리는 진평을 나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덕만은 여인으로 살기위해 궁으로 돌아온것이 아니라고 한다. 공주의 삶을 누리기 위해 돌아온것이 아니라고 마야와 진평에게 이야기를 한다. 덕만은 이제 패업을 위해서 미실과 대적하겠다고 선언을 한다. 하지만, 덕만은 천하의 미실과 대적하는게 두렵고 확신이 없다.

알고 속이는 건 왜곡 또는 곡학아세, 자신도 모르고 하는 건?

유신은 비담에서 "너에게도 일식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이에 비담은 자신도 "깜쪽같이 속았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보름날 일식이 있다고 믿는 다수의 국민들에 비하면 비담이나 덕만이나 유신이나 알천이나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한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의 원작인 <소설> 선덕여왕의 작가도 몰랐을 것이다.
보름날 <일식>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일식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공표를 했는데, 버젓히 일식이 일어났으니 천신황녀의 지위는 덕만에 넘어가는 것이아니냐고 미실일파는 전전긍긍에 빠진다.

미실은 "덕만이  천하의 미실을 속였다"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덕만은 천하의 미실만 속인게 아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천하도 속이고, 미실도 속이고, 백성도 속이고, 월천도 속이고, 덕만도 자신도 속였다. 드라마를 보는 국민들까지 깜찍하다 못해 끔찍하게 놀려주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보름날을 즈음해서 <일식>은 일어날 수가 없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보름날 일식이 일어나면 안되는 이유를 모르는 것 같다. 2009/08/28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불가능은 없다.  간략히 요약 하면 다음과 같다.

일식은  그림처럼 태양 - 달 - 지구가 나란히 서서 달이 태양을 가리는 때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보름날을 즈음해서 절대로 일식이 일어 날 수 없습니다.

보름날을 즈음해서는 태양 - 지구 - 달 순으로 해서 보름날 지구가 태양을 가려 월식이 일어 나는 겁니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은 옥에 티가 되는 겁니다.


죽지않는 미실: 궁하면 통한다. 위기를 기회로 

천하의 미실은 일식을 맞추지 못해서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미실은 최악에서도 기회로 만들고 자신의 이득을 챙긴다. 상대등인 세종이 덕만을 추인하는데 적극적으로  귀족들뒤에서 밀도록 부축인다. 귀족들에게는 그만한 대가로 "세금을 낮추어 주겠다"고 딜을 한다. 자신의 지지기반을 최대한 확보하는데는 지지세력에 이득을 주면 말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는 않는가 보다.


마야는 덕만의 공주 추인은 "초닷새 오시"에 할려고 한다. 여러날 준비하여 성대하게 해야 하는데 빨리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그런데 덕만은 하루라도 빨리하는것이 좋다고 한다. 보름이 지나 일식이 있고, 어느덧 20여일이 지나야 초닷새가 올텐데  마야는 공주 추인도 준비를 해야한다고 하고, 20여일이나 지났는데 덕만은 늦지 않았으니 좋다고 한다. 역시 위것들은 20여일을 준비하고도 소소하다고 하고, 백성을 생각한다는 덕만은 20여일 준비한 것도 소소하니 과분하다고 한다. 이런 덕만이 왕위에 오르면 백성들 뼈와 살이 남아나지 않겠다.

그런데 여전히 드라마 선덕여왕 안의 대화내용을 살펴보면, 일식의 흥분과 환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니 시간은 일식이 있은 몇일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개념이 어디로 간것인가?


덕만의 잔인한 수:  미실의 컴플렉스를 건들다.

미실은 내부로 부터 무너져 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밖으로 내 보일수가 없다. 미실은 천하의 미실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덕만은 아직도 미실이 두렵다. 실은 미실도 덕만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실은 덕만의 흔들리는 손을 본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덕만이 미실에게 약점을 보인 것이다.

그래서 미실은 덕만의 두손을 잡고, "아직도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냐"고 한다. 이에 덕만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어찌감히 <성골>의 몸에 손을대는 것이냐"고 쏘아 붙힌다. "너 나이가 몇살인데 반말이냐?"고 묻는 것과 한치의 다름이 없다.

어찌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에에서 성골과 진골이 있고, 미실의 컴플렉스인  같은 낮은(?) 신분을 건들인 것이다. 미실은 왜 성골로 태어나지 못했을까 자조한다. 그랬다면 황후도 되고, 그다음 꿈인 왕권도 손에 넣어 왕이 될수도 있었을 텐데라고 말이다. 확실히 덕만은 미실의 아픈곳을 찌른것이다.

그런데 왕의딸인 공주의 신분이 성골인데, 성골이 무슨 소용이고, 진골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다. 미실이 덕만을 이길수 없는데는 성골인 왕의 딸인 공주이기 때문이지 성골이기 때문에 손을 함부로 잡을 수 없는게 아니다. 설마 미실이 왕의딸이 아니여서 콤프렉스라도 있었단 말인가?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는 성골, 진골이 없다고 누누히 말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은 성골을 찾고, 진골을 찾고한다. 너무 우려먹어서 사골국 장사를 하면 대박은 될 것 같다.


미실을 진흥과 동륜과 금륜(진지)와 진평을 모셨다고 한다.

그러니 덕만으로서는 증조할아버지의 비였고, 할아버지 동륜의 비였으며, 작은할아버지 진지의 비였고, 아버지 진평의 비였다. 

진평과 미실사이에는 보화공주가 있다.


위의 그림은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서 진평왕의 비와 그들 사이에 난 후손들을 나타낸것이다. 보화공주는 진평/미실 사이에 태어난다. 보화는 덕만보다 나이가 한참은 많은 언니가 된다. 덕만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가 미실이다. 그런데 감히 성골의 몸에 손을 대냐고 땡강을 부린다. 덕만이 미실이 두려워 막나가도 너무 막나간 것이다. 성골/진골이 존재한다는 통설이 신라사를 좀먹고 있다.

어찌되었던 한마디로 덕만은 미실에게 "천한것이 어디에서 손을 잡느냐"고 한것이다. 이말이면 끝나지 않는가? 신라여인 중에서 왕후를 제외하고 덕만에게 맞설수 있는 여인이나 귀족이 있을 수 있는가? 신라가 막나가는 개나라가 아니라면 말이다.

첨성대는 책력이다? 차라리 해시계

하늘을 관장하는 것은 황실의 책무이다. 하지만 고대로 넘어가면 신관이 이를 주관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신권을 지닌 자가 왕이 되
지만, 이를 전문집단에 이양을 하고,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관을 별도로 둔다. 이는 신라초기에 혁거세를 대신에서 알영이 제를 주관하고 후대에는 공주가 주관을 하였다. 그 후 나을신궁이 만들어진 다음에는 간간히 직접제사를 지내고 평시에는
신관이 관장을 한다.

진평왕시기로 건너오면 법흥왕때 공인된 불교에서 <왕즉불> 사상이 꽃을 한참 피울때이다. 진흥왕시기에 이미 진흥자신이 전륜성왕이 되고 있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신관의 지위는 왕의 보조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되었던 진평이나, 마야나, 미실이나, 공히 다스리는 자로서 하늘의 뜻인 천문의 지식을 공공연하게 백성들에게 알릴수 있도록 월천에게 하늘을 살피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첨성대를 만드는데 많은 난관이 있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천관을 폐하고 천문과 기상을 모든 백성에게 공개할 것이라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정보의 독점을 말하는 것이다. 군대에 있었던 사람들은 별것도 아닌 것들이 급수가 높은 비밀등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세종시대에 사대부들이 훈민정음(한글)을 창제하는데 반대를 했다,

이는 정보의 독점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저놈도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다면, 두놈간에 차별성이 없어지진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쿠텐베르크가 인쇄기술을 발명하기 이전에는 서방세계에서도 교계의 특정한 몇몇이 성경을 독점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란 미명하게 온갖 못된짓을 다하고 다녔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정보의 바다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정보가 어디있는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보를 분석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힘을 기른다. 하지만 우리들은 여전히 정보의 바다속에서 사는 데도 불구하고, 교육은 단순 암기만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보름날 일식도 머 그럴수 있지 드라마인데 하면서 지나쳐 버린다. 사실, 이글을 보지 않는 사람들은 보름날 일식이 있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어찌되었던 격물의 상징이고 사다함의 매화의 실체인 월천을 사이에 두고 유신과 보종의 대결이 임박했으나. 알천이 나타나므로해서 대결의 기회는 사라진다. 조금 아쉽기는 하다. 진선공자인 보종과 유신과의 대결이라.왜 진선공자라고 이야기를 했는지는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2009/08/0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사실은 유신과 보종 너무나 친한 사이 .

월천은 "공주님의 계획을 믿기에 일식을 계산하였다고 한다." 만약, 조선 세종시대라면 월천은 격물을 해보지도 못하고 곤장을 맞아도 숫하게 맞았을 것이다. 감히 보름날 일식을 예측하다니, 당시 신라의 천문지식을 알로봐도 유분수가 있지, 순진한 백성들도 일식은 월초와 그믐에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지금처럼 일식이 보름날에 일어난다고 해도 "그저 멋지네"라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보름날 일식이 있었다면 정말 신라인들은 천지가 개벽하는줄 알았을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덕만이 공주로 인정되기도 전에 진평은 왕위에 있을 수 없다.


조선 세종은 일관이 예측한 일시보다 "1식경 틀렸다"는 이유로 일관에게 곤장을 쳤다. 그만큼 일식은 왕실에 중요한 행사이다. 하늘의 대행자이며
하늘의 아들인 왕이 아버지인 하늘의 계시도 맞출수 없다면 백성들에게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신라시대에도 그랬을까?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마한은 하늘을 살피고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이들은 별을 관찰하였을 것이다. 물론, 일식을 예측까지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시대 세종이 만들어 널리 퍼트렸던 해시계인 <앙부일구>처럼 말이다. 하지만 첨성대는 책력이라고 이야기만 있지 시간을 재는 장치이야기는 없다. 천문대는 당시의 천문지식을 망라한 기념비이다. 신라는 정교한 물시계도 만들줄 알았다. 그러니 차라리 첨성대는 책력을 감춘 해시계라고 하는게 맞다.  이와관련된 2009/08/2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월천대사의 떡밥은 첨성대 글 참조하기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1년이 365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당시의 백성은 없다. 또한, 24절기가 있고, 하늘의 별자리를 28숙으로 나누는 것을 모르는 이들 또한 없다. 농사는 절기를 모르고는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첨성대 달랑 하나 있다고 절기를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제작자(원작자)는 미실의 입을 통해서 시청자에 말하다.

미실은 백성은 일식이 왜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언제 일어나는지만 알려주고 환상을 심어주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덕만은 미실에게 첨성대를 만들어 책력을 백성들에 알려준다면 농사를 짓는데 알수 있
지 않느냐고 이야기를 한다.

첨성대가 책력이 될려면 시간을 계산하고 계절을 계산할 수 있는 시계가 되어야 한다. 단순히 상징으로서의 존재는 의미가 없다.


그런데 미실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일식이 왜 일어나는지 "백성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말은 현재도 통용되는 말이다. 그리고 언제 일어나는지만 알려주고 환상을 심어주면된다고 이야기를 한다.
 
사극 선덕여왕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은 선덕여왕을 시청하면서 일식이 왜 일어나는지 관심이 없다. 그냥 비담이 화형에 처할때 일식이 일어나 주는 극적인 장면을 보여주면 그만인것이다. 미실은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다. 백성은 우매한 존재이고 지배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백성(시청자)에게는 환상을 심어주면 되지, 격물(과학/천문)을 알려줄 필요조차 없다고 말이다.

한마디로 백성인 시청자는 드라마 선덕여왕을 쓴 작가의 소설에 놀아나는 존재라는 말이다. 반면에 덕만은 글쓴이 처럼 정보를 공유해서 백성인 네티즌들이 스스로 농사(생각하는 법) 짓는 법을 알 수 있게 하겠다는 것 뿐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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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9.01 06: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 미실의 말이 정말....시청자에게 한 말은 아니겠지만, 이상하게 딱 맞아떨어지는군요.
    수많은 시청자들은 일식이 보름에 일어날 수 없다는 것엔 관심이 없을 테니 말이지요.
    혹시..그게 전략인가? 싶기도 하네요.

  3.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BlogIcon 펨께 2009.09.01 0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더불어 첨성대에 대한 상세한 지식도 아주 유용하게 읽고...

  4. 2009.09.01 0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2009.09.01 0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2009.09.01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朱雀 2009.09.01 08: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추천하고 갑니다. ^^

  8. Favicon of https://myahiko.tistory.com BlogIcon 무량수won 2009.09.01 08: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헛... 간만에 선덕여왕 포스팅을 했는데 제목이 비슷하네요. ㅡㅡa 속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요. ㅋㅋ

  9.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朱雀 2009.09.01 09: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메인에 소개되었네요. 축하드려요. ^^/

  10.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9.01 09: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오늘 미실과 덕만의 얘기를 듣고 생각하는 바가 많아 생각을 다듬고 있는 중입니다.
    글이 잘 안 써지네요. 미실의 말이 너무 의미심장했나 봅니다.

  11. Favicon of http://www.ilovenews.co.kr BlogIcon 대한민국 황대장 2009.09.01 10: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첨성대...
    전 아는것이 첨성대 그 이름 뿐 이라는 점... ^^;;;

  12. Favicon of http://skagns.tistory.com BlogIcon skagns 2009.09.01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 왜곡이야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신 센스가 돋보인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13. 갓쉰동님 광팬 2009.09.01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과 미실 대립각을 보며 드라마로서는 꽤 긴장감 있지만 현실성으로 볼때는 미실의 손을 들어주고 싶네요. 이 드라마 제목은 선덕여왕이지만 사실상 메인주인공은 미실일듯... 그나저나 이 드라마는 재미면에서는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너무 역사를 왜곡하는게 맘에 걸리네요. 아무리 삼국시대가 사료가 별로 없다지만 이건 태왕사신기에 이은 엄청난 판타지 드라마가 돼버렸어요...몇십년 후에 이 선덕여왕 드라마가 다시 쓰여진다면 좀 더 역사를 기본으로 하는 드라마가 됐으면 싶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01 14: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료가 부족하면 부족한 사료를 인정해야 하는데.. 있는 사료도 내 팽개치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당..

      그 작은 팩트도 지킬수 없는 사극이라니.. 대락난감..

  14.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9.01 18: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반님... 댓글보고 왔는데요...

    제 소설에 나온 양귀비는 수나라 양제의 딸로 현종의 양귀비와 다른 사람이예요...

    귀비는 희빈처럼 후비의 지위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헷갈리지만... 양비가 따로 있는 걸로 알고 있어서요...

    양귀비가 맞는 걸로 알고 있어요... 설명을 해야했을까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15. 이슬 2009.09.02 2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폐륜이 아니라 패륜이죠 ^_^ 잘 읽었습니다 !

  16. 2009.09.07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07 19: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과 악은 종이한창 차이이긴 한데.. 현대사는 분명히 조명이 가능하지요.. 과거 오랜 역사는 비교하고 검토가 필요하지만..

      미실을 좋아하는 이유는 캐릭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성격과 좌절이 있기때문이지 않을가 해요.. 또한 기득권에 대항하는 듯한 모습을 미실에서 찾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은연중에..

      조화되어야 하는 것은 맞는데. 어찌될지 모르겠습니당.. ㅋㅋ

  1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8. Favicon of http://darcyquaife.typepad.com/blog/2012/04/prepackaged-you-surviving-kits-adv.. BlogIcon mre or mountain house 2012.11.01 1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9. Favicon of http://www.meinstartup.com/der-treue-begleiter/75/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s for sale 2012.11.05 1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패륜적인 행동을 저질러 결국은 천명까지 잃게 되었다"고 한다.

  20. Favicon of http://poplicks.com/2007_08_01_poplicks_archive.html BlogIcon portable dog fencing in virginia beach 2012.12.20 1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함 때문에 쉽게 이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전문 소프트웨어인 포토샵만큼은 아니더라도

  21. Favicon of http://survivalfood555.posterous.com/ BlogIcon micro filtered whey 2012.12.31 2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식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공표를 했는데, 버젓히 일식이 일어났으니 천신황녀의 지위는 덕만에 넘어가는 것이아니냐고 미실일파는 전전긍긍에 빠진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진면목인 색공에 관련된 사항을 밝힐 수 없는 나름의 속사정이 있지만, 그래도 화랑세기에 나온 미실의 성격을 고현정이 잘 묘사한 것 같다.

능숙히 사람을 다루는 경지가 과히 화랑세기에 나타난 미실의 정치적인 면이다. 또한, 예술적이 소양을 '소엽도'를 그리는 행동으로 단순이 색공만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 예술과 정치력, 정치술수 등 이 뛰어남을 나타내 주었다.

화랑세기에는 미실이 정치,색공,술수 뿐만 아니라 글에도 조예가 깊어서 수많은 저술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쟁에 출전하는 사다함에게 사랑의 세레나데와 님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절절한 환송시를 쓰기도 한다.


풍랑가
- 미실
바람이 불(분)다고 하되, 임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친다고 하되, 임 앞(에) 치지 말고
빨리 빨리 돌아오라, 다시 만나 안고보고
아흐, 임이여, 잡은 손을 차마 물리라뇨.


한마디로 조선의 제일기녀 황진이도 울고갈 절세가인이 아닐 수 없다. 낮에는 요조숙녀, 밤에는 요부가 되는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다.

화랑세기에는 미실이전에 3명의 유명한 여인이 등장한다. 첫째는 덩치의 풍만함이 1세 풍월주의 누나인 벽화이고, 미모는 미실의 할머니인 옥진이요, 색공은 미실의 이모할머니인 금진이다. 더 나아가 이들을 휘어 잡고 있던 법흥왕의 딸이고 진흥의 어머니가 되는 지소태후이다.  

팜므파탈적인 모습을 보여준 미실과 비견되는, 또는 미실을 능가하는 여인들을 살펴볼려고 한다.

미실의 남자들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보는 미실의 남자들


미실은 3황인 진흥과 진지,진평과  왕자 동륜 등  진흥의 손자인 진평왕까지 3대에 걸친 신라 왕들에 멸사봉공(?) 봉사를 하고 있다. 또한,  풍월주인 5세 사다함, 6세 세종, 7세 설원랑과 관계를 가지고, 자신의 동생 미생까지도 관계를 가지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기도 한다. 확실히 다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대략 확인한 사람은 남편 6세 풍월주인 세중을 비롯해서 8명의 남자들이 미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미실과 남편인 세종사이에는 11세 풍월주인 하종을 낳는데, 화랑세기에는 하종의 생김새가 사다함을 빼어 닮았다고 한다. 사실 세종과 미실사이에는 하종을 제외하고 전혀 후사가 없다. 미실은 설원랑을 통해서 보종을 낳고, 다른 수 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하여 자식들을 두고 있는데, 의심스러운 하종을 제외한다면, 전혀 자식이 없는 것이다.

미루어 짐작컨데 세종은 생산력이 없는 씨 없는 수박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끝까지 미실을 지킨 사람은 세종이라고 한다. 그러니 세종의 미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미실 또한, 세종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 시늉까지 했다고 한다.

어찌 되었던, 금진의 아들들인 사다함과 설원랑은 미실과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사다함의 매화(책력)사건으로 서현의 지지세력인 가야파를 월식과 "伽"의 파자인 "人 力 口"로 서현과 벌려 놓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나서 서현부자에 세종/미실의 아들인 11세 하종/미모(설원랑/준모)의 자식인 '영모'를 유신과 결혼시키는 전략을 세운다. 영모는 미실/세종의 아들 하종의 딸이니 미실로써는 유신은 손녀사위가 되는 것이다.

화랑세기에는 유신과 영모에 대한 기록이 소략하다. 단지, 하종의 딸인 영모를 아내로 맞이하고 18세에 영모를 화주로, 유신은 장기 집권한 14세 풍월주 호림를 상선으로 밀어내고 612년 15세 풍월주에 오른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지소태후의 남자들

(c) kbs 사극 천추태후

그런데, 미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미실의 선대에 활약한 여성이 있다. 그는 다름이 아닌 법흥왕의 딸이고, 입종의 아내이며, 진흥왕(심맥부)의 어머니인 지소태후이다.

아버지 법흥이 후계로 점찍은 이는 비대이다. 비대는 법흥과 옥진(위화랑/오도) 사이에 난 아들이다.

지소는 자신의 어린 아들 진흥을 왕위에 오르게 하기 위해서, 비대의 어머니인 옥진의 아버지이고, 자신의 정부인 위화랑에서 압력을 가하고, 법흥의 다른 공주들과 모랑(법흥/보과) 등을 이용해 비대를 끌어 내린다.

법흥과 입종이 죽은 후 자신의 어린아들 진흥(입종/지소)를 왕위에 오르게 했다.

또한, 법흥이 후계자로 내세운 자신의 두번째 남편인 영실을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방해한 정치력이 뛰어난 철의 여인이다. 지금 kbs 사극 채시라가 열연하고 있는 고려의 <천추태후>보다도 앞선,  신라를 여인천하로 만든 실질적인 여왕이다.

7세에 왕위에 오른 후 진흥왕이 했다고 알려진 전반기 대부분 사건들은 지소에 의해서 결정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소태후의 남자들



지소태후는 화랑 풍월주를 만들면서 1세 위화랑으로 시작해서, 2세 미진부는 아시공의 아들로 법흥/벽화사이에 태어난 삼엽공주가 어머니가 된다. 그러니 자신의 조카가 된다. 또한, 3세 모랑은 법흥/보과 사이에 태어난 남모의 동생이다. 남모가 준정에 의해서 죽고, 모랑이 옥진의 딸인 묘도와 결혼해서 미실을 낳는다. 지소는 법흥왕과 보과사이에 태어난 3세 모랑과도 관계를 맺으니 자신의 동생과 관계를 가진것을 알 수 있다. 4세 이화랑은 1세 위화랑의 아들이다.

이처럼 1세 풍월주에서 4세 풍월주까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들 면면을 보면 사적으로 자신의 동생이고, 동생의 남편이고, 조카고, 아버지 법흥의 비인 형제와 관계를 가지고, 그의 아들을 통해서 자식을 낳기도 한다.


진흥말년부터 진평왕 초기까지가 미실의 시대였다면, 법흥왕 때 후기부터 진흥왕 중기까지는 지소태후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너무나 잘알려진 유신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 속의 서현의 아내는 만명이다. 만명은 동륜의 아내인 만호태후의 소생이다.  만호태후는 아버지 숙흘종/지소태후의 사이에 태어났다. 

이를 간략히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다.

입종/금진(위화랑/오도) -> 숙흘종/지소 -> 만호/? - > 만명/서현 -> 유신

<미실의 남자편>에서 미실은 자신의 손녀인 영모를 유신과 결혼시킨다고 했다. 이를 간략히 정리하면, 
이사부/지소->세종/미실->하종/미모(설화랑/준모)->영모

김유신이나 영모는 지소의 후손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미실이 서현을 쫓아내려고 음모를 꾸미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서현이나 유신이 껌씹는듯한 표정을 짓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뒤를 이어 16세 풍월주에 오르는 이는 보종이다. 보종은 설원랑의 아들이다. 보종은 사사로이는 유신의 처삼촌이 된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이사부(태종)를 통해서 미실의 남편인 세종을 낳는다. 그리고 사다함과 세종이 같이 사랑한 미실을 세종과 결혼 시켜 미실을 자신의 며느리로 만들어 버린다. 또한, 자신의 아들인 진흥왕의 아내인 사도의 아버지인 영실과도 관계를 하여 딸을 두기도 한다. 

이처럼 지소태후는 미실이 활동한 바로 전왕 단계에 신라는 미실이 국정에 깊숙히 개입된 것 보다도 더 깊숙이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 그러니 진평왕의 딸인 덕만이 왕이 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다. 왕은 있었으되, 신라를 움직이는 힘은 지소->사도(진흥비)-> 미실로 넘어온 전력이 있고, 진지왕(금륜)을 몰아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것도 진흥비인 사도비와 미실이니,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드린 신라귀족 사회라면, 덕만의 왕위 계승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금진의 남자들 
 


사다함어미니 금진의 남자들


지소태후와 동시대에 사다함의 어머니인 금진이란 여인이 있다. 색공으로는 금진을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수 많은 남자들을 거닐고 있다. 사다함은 처음에 어머니 금진이, 남자들이 많은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어머니를 멀리 했다고 한다. 금진은 미실의 작은 할머니가 된다. 그래봐야 나이차이는 30년 안팍이겠지만 말이다.  미실의 어머니 묘도는 옥진의 딸이다. 옥진의 동생은 금진이다. 이들은 모두 1세 위화랑이 오도를 통해서 낳은 딸들이다.

어찌 되었던 금진이 처음 법흥비가 되어 관계를 가진다. 540년 법흥왕이 죽고, 나서 금진을 끔찍히 사랑한  법흥/옥진(위화랑/오도)의 소생인 비대공의 아들인 구리지와 관계를 맺어 토함, 색달, 사다함을 낳는다. 금진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설성을 통해서 설원랑을 낳는다. 그러니 지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설원랑은 사다함의 동생인 것이다.

또한, 금진은 입종과 관계하여 숙흘종을 낳는다. 숙흘종은 지소태후와 사이에서 만호를 낳고, 만호는 동륜과 사이에 진평왕과 그의 형제를 낳고, 사사로이 낳은 딸인 만명이 서현과 결혼을 하여 유신을 낳았다.  그러니 지소태후와 금진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해서 신라를 여인천하를 구축하는데 커다란 역활을 한다.

지소와 금진이 세우고, 사도와 미실이 구축하고, 만호 다듬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위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지소와 금진이 여인천하의 시대의 서막을 열고, 미실과 진흥비인 사도가 확실한 여인천하를 구축하고, 진평왕 초년에 진평왕의 모후인 만호태후가 섭정을 한다.

이를 바탕으로 몇십년후 덕만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신라에서 덕만의 바로 윗대는 여인이 국정 깊숙히 관여하는 것에 관대 했을 뿐만 아니라, 왕실과 귀족 전체가 지소/금진/사도/미실/만호 등과 피로써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덕만의 어미인 마야의 출자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다. 단지 갈문왕 복승의 딸로 되어 있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마야의 세계를 밝히고 있다.
입종/지소->송화/복승->마야/진평->천명,덕만,천화

그러니 칠숙과 석품같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진평왕의 뒤를 이어서 덕만이 왕이 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을 것이다.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어쩌면 덕만이 왕이 되는데 문제가 될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책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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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hfql 2009.07.31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나 영화 한 두 개 더 나올 수 있는 소스가 얼마든지 있군요. 남자들만 나오는 메마른 사극말고...아름다운 여자가 중앙에 있는 재밌는 이야기.. 오래 살고 볼 일이야..이런 시대가 다 오는구나..이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

  3. 신라 2009.07.31 15: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
    중국의 문화가 우리를 변화시키기 이전의 순수 한국인의 문화가 더욱 새롭고, 왠지 시원스럽네요.
    멋집니다.

  4. 표면수 2009.07.31 15: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간에 고구려가 통일 했음 역사가 바꾸었다하는데 그말이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신라가 망할만 하네요...

    • .. 2009.07.31 16:00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구려또한, 남성과 더불어 여성들의 사랑과 성문화가, 조선이후부터 지금처럼 비정상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국여왕이나 유럽귀족의 왕실문화만 봐도 우리나라 고대 신라나 고구려 문화와 비슷하더군요.
      중국의 병적인 사상과 문화가 고유 한국인들을 망가뜨린 것 아닌가 아쉽고 원망스럽네요.
      백제는 과연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1 0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꼭 그렇게 까지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음.. ㅋㅋ

  5. GM 2009.07.31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자라면 마음속깊이..자신이 사랑하고 원하는 남성의 자식을 모두 낳아보고 싶은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저런 가족의 형태가 더 자연스럽지 않나?
    다부다처제.
    음성적으로 이미 다부다처하며 죄의식느끼는 것 보단, 훨씬 자연스럽고 모던하다.
    우리 조상들 참 멋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1 0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연스럽지요..

    • 여자들의 로망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저렇다면 짐승과 다를봐 없죠 2009.08.01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숭이인가 침팬지인가는 발정기때 암컷이 일명 돌림빵을 스스로 자처합니다. 왜냐하면 원하지 않는 수컷과의 교배를 거부하거나 하면 나중에 태어난 영아에 대한 살해를 하기때문이죠. 누구의 자식인지 모르게 함으로써 새끼를 보호하려는...
      모계가 부계로 바뀐것은 인간이 진화했다는 증거입니다. 부계사회에 문제가 점점 발생하여 다시 모계사회가 되기 전까진 지금의 남성주도적 문명사회가 맞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2 1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걸 인간의 진화를 볼 수가 있나요? 그저 문화의 변천 같은뎅..

    • 이피 2009.10.10 1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계중심이냐 모계중심이냐 어느쪽이 더 진화했다의 문제는 그닥 중요하지 않은것같은데요 현재 남성중심적 사회가 이전의 여성중심 사회보다 더 진보한것 같지도 않구요이건 단순히 얼마만큼의 권력을 가졌고 그에따라 얼마만큼의 이성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느냐의 문제같아요

  6. 다믈 2009.07.31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저 막연하게 국사책에서 삼국시대를 공부했었는데
    이런 자료를 보니 우리 역사에 대해 새로운 면을 보게 하는군요.
    아무튼 굉장하십니다. 님의 그 체계적인 분석력이..
    우리나라는 너무나 우리의 역사에 대하여 무지한 것 같습니다.
    특히 고대사에서는..
    현대적인 시각(특히 유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흥미로운 역사적인 내용이군요.
    (작금에서는 아마 X멍 동서라고 놀렸겠죠. ㅋㅋ)
    아마 신라가 여인국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고려시대까지도 성에 대해선 관대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엄청 날 줄을 몰랐습니다.
    모계사회가 이런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당시에는 일부일처제라는 것이 제도화되지 않고
    지배층이나 권력자는 축첩이 일상화 되었던가 봅니다.
    좋은 자료 잘 읽고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1 09: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도움이 되셨다면 ㄳ ^___^
      음.. 화랑세기에 대한 진위는 저는 유보입니당.. 하지만 연구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입니다..

  7. 비단이 2009.08.01 0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시대와 다르게 신라, 고려는 관계도 이해가 힘들었는데
    도움이 되네요 감사하빈다.

  8. 오예 2009.08.01 0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여?
    제가 요즘 화랑세기에 관심이 많아서
    책을 하나 보려고 하는데여
    추천좀 해주세여
    혹시 이런 분석(선덕여왕의 나이같은거)이 들어가있는
    책이 있나여?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1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없는 것 같습니당..

      좀 어려워요.. 화랑세기.. 원본과 같이 있는 책을 볼려면.. 이종욱 교수의 책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절판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연합뉴스의 김태식 기자의 책을 참고해 보심. 잼있을 겁니다. 김태식 기자는 나름대로 화랑세기가 진본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썼으니요.. 요즘은 어떤생각인지 모르겠음..

  9. 해와달 2009.08.01 0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여왕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 같지 않아요.
    여자가 권력을 잡게 되는 일은 조선시대 때도 있지 않았나요?
    하지만 원칙은 남자가 왕이 되는 것이죠.
    신라 때는 조선때보다 남녀 구별이 덜했을 테니
    여왕이 탄생할 수는 있었어도, 결코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1 0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늘 포스팅 한글이 왜 쉬었나에 관한 시리즈글 서막입니다..

      자연스럽게 보는 사람과 아닌사람이 충돌을 했지요.. 왕위계승을 놓고.. 칠숙과 석품이 반대파 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10. 한계레 2009.08.01 0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 브라질에서도 선덕여왕에 관한 쉰동님의 글을 모두 읽었지요.정말 정말 해박한 지식에 놀라울 따름입니다.처음 부터 감동 받았는데 계속 보며 쉰동님께 감사를 표하며 몇자 적고 갑니다~~참고로 다음 2세 교육을 위해서 퍼 갑니다..............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되세용~~~~~~~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1 08: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에게도 팬이 있었군요 ^___^

      그런데 RSS보면 2명이 저를 관찰하고 있더라구요.. 소스가 다른 모양입니다.. 보는 사람마다.. ㅋㅋ

      언제든지 펌하셔도 됩니다..

      글마다 조금차이가 있을 겁니다.. 오류가 좀 있는 것 같음..

      일일이 수정을 못하니..최종본 위주로.. 생각을 보시면..

  11. Favicon of http://king.qqo.kr BlogIcon 선덕여왕다시보기 2009.08.01 0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엄척나네요.
    이렇게 몇시간을 걸처서 쓰기가 대단히 힘드실텐데.
    또한 자료를 일일이 수집을 한 시간까지 합하면 시간은 더 할턴데.
    진짜 값어치가 있는 글이네요.
    미실이 저렇게 남자가 많았다니 참 대단한 미실이네요.
    선덕여왕에서 제일로 인상깊은 것이 미실 웃는것입니다.
    미실이 우스면 저두 웃기더라구요.
    하여간 글 잘 읽었습니다.

  12. 옹이가 2009.08.01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마디로 콩가루 족보군요 ,,,현실로 봐서는 이해가 안되지만 그 시대의 흐름이 그래다면 이해 해야지요

  13. Caren 2009.08.02 1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세기가 위작일지라도 재밌는 내용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정리하시느라 수고하셨어요.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세종은 미실과의 사이에 아들이 둘 이었어요. 진흥왕과 잠시 헤어지고 다시 세종에게 돌아갔을 때 세종의 둘째 아이를 가져서 진흥왕의 후궁으로 다시 들어갔거든요. 그 아이는 진흥왕의 마복자가 되었다고...ㅎㅎ

  14. Favicon of http://blog.naver.com/homosilentio BlogIcon 깡삿갓 2009.10.24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래간만 입니다. 핸폰 넘버를 네이버 내 블로그로 쪽지 보내주세요. 아니면 여기에 그냥 올려주시던지요.

    ^^v

  15. 레아 2010.02.14 1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종이 씨없는 수박이라뇨 무슨 그런 말씀을 ~ 화랑세기에 보면 하종과 터울져서 세종이 미실과의 사이에 옥종이라는 아들을 또 낳았고 화랑세기에서 하종이 사다함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들었다는 것을 사실이지만 화랑세기에 보면 소문이 그래서 사람들이 하종을 사다함의 분신으로 여길뿐 사실은 세종의 아들이라고 하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만호는 지소가 숙흘종과 사이에서 낳은 딸이 아닙니다. 숙흘종의 딸은 만명공주이고 만명공주의 어머니는 만호태후인데 만약 만호태후가 숙흘종의 딸이라면 아버지와 딸이 관계해서 딸을 낳은 것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족내혼이 성행하던 신라에서는 아버지와 딸이 관계를 맺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만호의 아버지가 숙흘종이라는 이야기는 처음듣는데요. 갈문왕 입종이라거나 이화랑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말입니다.

  16. 레아 2010.02.14 1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송공주라고 동륜태자와 관계해서 낳은 딸이랍니다.

  17. 서술성모 2010.08.21 0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갓쉰동님 올려주시는 글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위에 쓰신 글 중 오류가 있어 감히 몇자 적습니다.
    레아님 말씀처럼 세종은 하종이외에 옥종공이라는 아들을 두게 되니 씨없는 수박이라는것은 당치도 않은 말씀이구요^^; 동륜태자사건때 미실이 궁밖으로 나가 해궁에 있으면서 세종과 함께하는데 이 때 옥종을 임심하게 됩니다. 임신 중 진흥제가 다시 불러 입궁하는데 이때 세종의 아들인 옥종공을 임신한지 수개월되었다고 나옵니다 해산후 입궁하겠다는 미실의 말에 허락지않고 입궁 후 출산하고 옥종공을 제의 마복자로 삼게되는거구요
    만호태후역시 숙흘종이 딸이 아닙니다. 레아님 쓰신것처럼 입종이나 이화랑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화랑조에 태후가 만호낭주를 임신하여 출산을 기다렸다 떠났다 라는 대목으로 보아 이화랑의 딸이 아닐까 합니다. 지소+(이화랑)= 만호태후 이고 만호태후는 정숙태자와의 사이에서는 만룡을, 숙흘종과이 사이에서는 유신의 어머니인 만명을 낳게 됩니다. 그래서 유신은 만호의 외손자가 되는것이구요
    숙흘종은 만명의 아버지이니, 만호의 남자들 중 하나가 되는것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10.08.21 17: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제가 잘못알고 있었더라구요.. 댓글로 이를 지적하는 분도 있었고, 이를 수용해서 다른글을 쓰기도 햇지요... 지적 ㄳ합니당... ^____^

  18.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9. Favicon of http://kathviera.posterous.com/build-the-most-perfect-survival-kit-custom-ki BlogIcon food storage supplies utah 2012.11.01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20. Favicon of http://www.neuronwork.com/?m=200805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 troubleshooting 2012.11.05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우 전문 블로거입니다. 내 피드에 가입하여 큰 게시물의 여분의 탐구에에 남아있

  21. Favicon of http://pressabout.us/flexpetz.com BlogIcon great website designs 2012.12.20 1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함 때문에 쉽게 이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전문 소프트웨어인 포토샵만큼은 아니더라도


사다함이 미실에 전해준 매화의 정체가 밝혀 졌다. 매화는 가야에서 사용된 '책력'이였다. 미실이 남송의 <대명력>을 들여와 사다함의 매화를 결합하여 신라만의 책력을 만들려 하고 있다. 이는 곳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신라를 없애고 미실의 나라를 개국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며, 천제가 되고 싶은 욕망의 상징이다. 그 만큼 책력은 중요하다.  칭제를 한 신라는 신라 나름의 책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칭제를 할 수 없고, '연호'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대명력은 무엇일까? 잠시 살펴보자.

 대명력(大明曆)  

남북조의 송(宋)나라 대명(大明) 6년(462)에 조충지에 의해 완성되었다. 1회귀년의 길이를 365.2428일로 정하였는데 이는 현대의 측정치와 약 0.0006일, 즉 일년에 52초의 차이가 난다. 이 값은 통천력(1199) 이전의 제일 좋은 수치이다. 대명력은 우선 세차(45년 11월이 1도 차이가 나고, 현대의 측정치는 70여년에 1도 차이가 난다)를 역법의 계산에 사용하여 역법 계산의 정확성을 높혔다. 이미 19년 7윤의 옛 치윤법을 버리고 조충지는 391년 144윤의 새로운 치윤법을 사용하여 이를 천상에 더 부합하도록 했고 교점월의 일수를 27.21223일로 정확하게 측정하였다 이 값은 현대의 27.21222일과 다만 1초의 차이가 있다. 목성(중국 고대는 "세성"으로 불렀다)의 공전주기는 12×84/85=11.858년으로 측정하여 현대의 측정치 11.862년과 아주 근접하다. 조충지의 생전에는 대명력을 실시하지 못했으나 훗날 그의 아들인 조항의 노력으로 그가 죽은 후 10년, 즉 양(梁)의 천감(天監) 9년(510)에 정식으로 시행되었고 80년간 사용되었다.


설원랑과 세종이 모르는 '매화'를 찾아 미실을 미행한다. 그런데 미실이 미행 사실을 알고, 미실이 설원랑에게 당신이 지난 여름에 한일을 알고 있다고 하듯이 "건봉2년에 한일을 알고 있다"고 협박한다.
미실이 건봉2년을 언급하다니 대단한 미실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잠시 나의 귀를 의심하였다.

미실이 설원랑에게 언급한 건봉2년은 언제 일까? 미실이 살아있고 설원랑이 젊어서 정당하지 못한 일을 말함일 것이다. 그렇다면 600년 이전 상황이 된다. 그런데 년표를 아무리 뒤져 봐도 550~600년 사이에 건봉2년은 없다.

그렇다면 건봉 2년은 없는 것일까? 아니다. 건봉2년은 분명히 존재한다.

AD667 정묘丁卯
신   라 :  문무왕 7년
고구려 :  보장왕 26년
건봉2년


건봉2년은 667년이 된다.  백제가 멸망하고,  백제 부흥운동이 막바지에 도달할 시점이다. 이정도 되면, 드라마 <선덕여왕>은 막가자는 이야기다. 죽었던(?) 칠숙도 살아나고, 그와 더불어 유모인 소화도 살아 났다. 나이어린 김유신(595년생)이 아막성(602년)전투에도 참전한다. 606년에 죽어야할 미실은 멀쩡히 살아있다. 그렇다면 606년 이전 상황일 것이다. 사신단의 정체는 '수나라'이다. 수나라는 618년 망한다. 그러니 최소한 시대적 배경은 618년 이전이 되어야 한다. 이제 선덕여왕에서 남은 건 타임머신 밖에 없다. 좀더 정교한 사극을 바란 나의 불찰일지 모른다. 이제 바라는 것은 사극이 사기극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래도 사극으로 배우는 역사 시리즈는 계속 될것이다. 사실 사극이 역사적인 팩트를 벗어날때 배우는 재미가 배가 되기 때문이다. 바른 역사를 보여준다면 이야기 거리가 없지 않겠는가? 단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구조만 따라, 연기를 잘하네 못하네만 주절거리면 그 뿐이니 글쓴이의 취미와는 맞지 않는다.  그래서 <선덕여왕>이 끝날때 까지 글은 계속 될것같다. 하지만 역사에 관심이 없는 분들이 많은 <다음>에서는 기운빠지는 일이 될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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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락지기 2009.07.10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을 열심히 보고 있는 사람이에요
    화랑세기를 읽고 싶은데 제법 책이 다양하더군요
    혹시 추천하실 만한 쉬운 화랑세기 없으신지요?
    역사를 많이 아시는 분들의 이런 딴지도 참 재미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더 많이 올려주시길 바래요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10 20: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종욱 교수의 화랑관련 책이 좋지요..
      또하나는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가 쓴 화랑세기 또하나의 신라..



      자신만의 관점으로 살펴 보시길 바랍니다.. 저자의 목소리를 전적으로 믿지 마시구요..

  2.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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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인 그래서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당신 발표 그러나 나와 쉬운 찾아내십시오. 그것은 저를 위해 너무 복잡하고 아주 넓게 보인다. 나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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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5. Favicon of http://forum.webuser.co.uk/showthread.php?t=74123 BlogIcon portable dog fence for rv 2012.11.05 15: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된 시간 이해력에게 문제를 가지려고 생각합니다. 보고는 의심없이 작은

  6. Favicon of http://pfotenhieb.cadmos.de/2010/11/05/ashera/ BlogIcon wireless pet fences reviews 2012.12.20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7. Favicon of http://freezedryfoods.weebly.com/ BlogIcon food supplies for hurricane 2012.12.31 19: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 추천하실 만한 쉬운 화랑세기 없으신지요?
    역사를 많이 아시는 분들의 이런 딴지도 참 재미있습니다

박창화가 필사했다는 김대문의 <화랑세기>는 화랑 풍월주의 계보와 풍월주들의 활약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8대 풍월주인 문노는 화랑의 체계를 세운인물이고, 전쟁에 나아가 무수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문노의 출신은 나물왕의 후손인 비조부의 아들로 대가야국의 외손이다.

 

8세 문노(文弩:538생)는 비조부공(比助夫公) 아들이다. 어머니는 가야국(加耶國) 문화공주(文華公主)인데 문화공주는 야국왕(野國王)이 바친 여자(貢女)라고 한다.

 

공은 건복(建福) 23년(606)에 세상을 떠나니 69세였다. (윤공)낭주는 이 해에 공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선(仙)이 되었다. 공보다 10살이 적었다.

 

하지만, 문노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김흠운열전>에 잠시 모습을 보일 뿐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서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 <화랑세기>에는 화랑의 계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된다. 문노를 빼고 나면 화랑세기 자체가 성립할 수 없도록 되어 있으며 문노의 세계가 잘못되었다면 화랑세기가 위서로 몰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김부식이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인용하고 있는데 <삼국사기>에서 문노가 빠졌다고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필사본 <화랑세기>가 위서임을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김춘추의 사위 김흠운은 문노의 제자?

 

그래서 문노와 김흠운의 관계를 규명함으로서 화랑세기의 진위논란에 한발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삼국사기> 김흠운 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흠운(金歆運)은 나밀왕(奈密王)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잡찬 달복(達福)이다. 흠운이 어려서 화랑 문노(文努)의 아래에서 놀았는데 당시의 무리들이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흠운이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격동하여 그와 같이 되려고 하니 동문의 승려 전밀(轉密)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영휘(永徽) 6년(무열왕 2: 655) 태종대왕이 백제가 고구려와 더불어 변방을 막자 이를 치고자 하여 군사를 출동할 때에 흠운을 낭당(郎幢) 대감으로 삼았다. 이에 그는 집안에서 자지 않고 비바람을 맞으며, 병졸과 더불어 고락을 함께 하였다. 백제 땅 양산(陽山) 아래에 군영을 설치하여 조천성(助川城)을 공격하고자 하였는데 백제인들이 밤을 틈타서 민첩하게 달려와 새벽녘에 성루를 따라 들어오니 우리 군사가 놀라 엎어지고 자빠져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적들이 혼란을 타서 급하게 공격하니 날으는 화살이 비오듯 모여졌다.


흠운이 말을 비껴타고 창을 잡고 대적하니 대사(大舍) 전지(詮知)가 달래어 말하였다.
“지금 적이 어둠 속에서 일어나 지척을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이니 공이 비록 죽는다고 하여도 알아줄 사람이 없습니다. 하물며 공은 신라의 귀한 신분[貴骨]으로서 대왕의 사위[半子]인데 만약 적군의 손에 죽으면 백제의 자랑하는 바가 될 것이고 우리들의 깊은 수치가 될 것입니다.”


흠운이 말하기를 “대장부가 이미 몸을 나라에 바치겠다고 하였으면 사람이 알아주고 모르고는 한가지이다. 어찌 감히 이름을 구하랴?” 하고는 꿋꿋하게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따르던 자들이 말고삐를 잡고 돌아가기를 권하였으나 흠운이 칼을 뽑아 휘두르며 적과 싸워 몇 사람을 죽이고 그도 죽었다. 이에 대감 예파(穢破)와 소감(少監) 적득(狄得)이 서로 더불어 함께 전사하였다. 보기(步騎) 당주 보용나(寶用那)가 흠운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말하였다.


“그는 귀한 신분에 영화로운 자리에 있어 사람들이 아끼는 바인데도 오히려 절조를 지켜 죽었으니 하물며 나 보용나는 살아 있더라도 별 이익이 되지 않고 죽어도 별 손해가 되지 않는 존재이다.” 드디어 적에게 덤벼들어 서너 명을 죽이고 그도 죽었다. 대왕이 이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였고 흠운과 예파에게는 일길찬, 보용나와 적득에게는 대나마의 관등을 추증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이 [전투상황]을 듣고 양산가를 지어 애도하였다.

 

여기서 김흠운과 문노와의 관계가 조금 의심스런 점이 발견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문노는 법흥왕 25년 538년생이고, 몰년은 진평왕 28년 606년으로 69세에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삼국사기> 김흠운열전에는 김흠운이 어릴적에 화랑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하고 655년 정월 고구려, 백제, 말갈 연합군이 신라를 공격하여 30여개 성을 빼았다. 이에 신라는 군을 모집해서 백제의 양산에서 조천성를 공격하다 오히려 백제군에 의해서 신라가 처참히 깨지고 김흠운도 죽은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만약, <화랑세기>의 기록과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라 김흠운이 어릴적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고 한다면, 김흠운은 문노가 죽은 606년 이전에 나이가 최소 10~15세 전후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655년 죽었을 때 나이는 60세 전후의 노장이 될 수밖에 없다. 김흠운의 나이때로 보았을 때 595년생인 김유신과 동년배여야 한다. 그런데 김흠운이 움직이는 군대가 <낭당대감>이다. 낭당대감이란 화랑의 무리를 이끄는 총관의 다른 표현이거나 낭당총관의 밑이다. 김흠운의 신분이 나물왕의 8대손이고 달복공의 아들이며 태종대왕의 반자(사위?)라고 했으니 귀한 집 자손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김흠운의 죽은 시점의 나이와 신라의 계급적인 특성으로 보았을때 60대의 노장이 화랑을 이끄는 낭당대감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죽고 난 후 추증된 일벌찬이 신라의 관등으로 7등급에 해당 할 수 없다..  또 한가지 간과하지 못한 것은 화랑이랑 신라귀족 자제들의 집단이므로 문노가 늙어 죽을 때 인 69세(606년)까지 화랑을 이끌었다고 볼 수 없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8대 풍월주인 문노가 582년 비대전군의 아들인 비보랑에 풍월주의 지위를 물려주었다고 하였음으로 문노는 582년 이후 화랑의 계보상 상선이 되었음을 의미하고, 화랑의 지위에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는 김흠운의 기록은 문노가 화랑이였을 때 김흠운이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고 해석한다면 김흠운의 나이는 655년 80세 이상의 노령이 됨으로 더더욱 <삼국사기>와 <화랑세기>가 충돌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김흠운이 죽은 시점에 화랑을 이끄는 낭당대감이고 죽은 후 일벌찬이 되었다면 655년 나이가 10대 후반에서 20~30세 전후여야 합당하다. 또한 달복공의 또 다른 아들이고 김유신의 사위인 흠돌이 처음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661년 7월 고구려 공격군으로 대장군 김유신과 대당장군 흠돌의 기록을 상기해 볼 때 흠돌과의 나이 차이가 많을 수 없어야 한다.

 

또한, 흠돌은 김유신의 딸인 진광에 장가가서 김유신의 사위가 되는 인물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652년 26대 풍월주 진공의 부제가 되고 657년 27대 풍월주에 오른 인물이다. <화랑세기>와 <삼국사기>에 의하면 김흠운은 흠돌보다는 나이가 적었다고 보아야 합당하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달복공은 김서현의 막내이고 김유신의 막내동생인 정희에 장가를 들어 흠돌을 낳았다고 하였다. 미루어 짐작컨데 김흠운도 정희의 소생일 가능성이 많다.

 

김흠돌은 김유신의 딸인 진광에 장가들고, 김흠운은 <삼국사기>에 655년 당시 대왕(김춘추2년)의 반자(사위?: 반만 자식이라 했으니 사위일 것이다)라고 했으니 김춘추는 문희에 장가를 들기전에 고타소랑을 제외하고도 또 다른 자식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김서현의 3녀인 문희(문명왕후)의 소생인 지조가 김유신의 부인이 되는 시점이 655년 12월 유신의 한갑 때이니 김흠운의 처는 문희의 소생이 될 수 없음이 명확해진다. 김춘추는 542년 대야성에서 딸인 고타소랑과 사위인 품석을 잃고 655년 백제의 양산 조천성 전투에서 또 다른 사위인 김흠운을 잃었다고  하겠다. 2명의 사위를 백제에 잃었으니 김춘추의 속이 어찌 되었을 지는 미루어 짐작하겠다. 그 후 김춘추는 당에 구원병을 청하고 고구려와 백제를 적극 공략한다.

 

어찌 되었던 김흠운에 대해서 <삼국사기>와 <화랑세기>는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지어낸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 들여다 보면 <화랑세기>와 <삼국사기>는 충돌되지 않고 있다고 봐야한다. <화랑세기> 27대 김흠돌 풍월주의 기록에 보면 당시 화랑의 적통이 문노에서 이어져온 가야파가 실권을 잡고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8대 풍월주  문노는 화랑의 세계에서는 가야파의 종주가 되는 인물이다. 또한, 문노파는 무를 숭상하고 전쟁에 나아가 공을 세우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여겼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화랑세기>와 <삼국사기>는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흠운이 어려서 화랑 문노(文努)의 아래에서 놀았는데 당시의 무리들이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흠운이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격동하여 그와 같이 되려고 하니 동문의 승려 전밀(轉密)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흠운이 어려서 화랑 문노의 아래에서 놀았는데.. >이부분이 흠운과 문노를 갈라놓은 지점이다. 흠운이 어려서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면  <화랑세기>에 기록된 8대 문노는 538년에서 606년 사이에 활동한다면 김흠운이 655년 죽었을 때 나이가 얼마인데..60에서 80대인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화랑세기>가 위서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버린다. <화랑세기>는  문노에 의해서 씨줄과 날줄이 얼키고 설켜 있으니 <화랑세기>는 박창화의 정교한 창작품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歆運少遊花郞文努之門 時 徒衆言及某戰死 留名至今 歆運慨然流涕 有激勵思齊之貌 同門僧轉密曰 “此人若赴敵 必不還也”

<< 당시의 무리들이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흠운이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격동하여 그와 같이 되려고 하니 동문의 승려 전밀(轉密)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당신의 무리들이>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

 

문노가 화랑으로 활동하는 시점인 538년부터 ~ 576년~582~606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노는 대가야의 외손이다. 하지만 이사부와 사다함에 의해서 외가인 대가야가 562년에 망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562년 문노의 나이 25살인 점을 고려해볼 때 사다함과 같이 출전했을 수도 있으나, 화랑세기에 의하면 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어쩌면 대가야가 힘 한번 써 보지도 못하고, 신라에 멸망한 이유는 가야제국들과 신라가 혼맥으로 이뤄져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대가야는 물론, 금관가야도 신라와 혼맥으로 이뤄져 있었다. 삼국지위지 동이전에도 변한과 진한인들이 서로 잡거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마디로 가야국들이 신라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것 같다.


<삼국사기>에도 있지만 사다함과 그 일파들을 말하는 것이고 무를 추종하는 문노의 계파로  전쟁에 나아가 백제와 고구려를 상대로 전쟁을 하고 죽은 수많은 화랑들을 말한다.



당시의 무리란?

 

655년 전 김흠운에 속한 화랑의 무리를 말한다.

 

좀더 들어가면 <화랑세기>에는 652년 김흠돌이 화랑의 부제였을 시점이니 형으로 추정되는 김흠돌에게서 위대한 화랑들에 대해서 들었을 수도 있고, 652년 26대 풍월주였던 김진공의 무리들에게 들었을 수도 있다.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한 것은 <김흠운이 어렸을 때 문노를 따르고> 하였다는 것은 문노가 추구하는 무를 숭상하고 전쟁에 나아가 공을 세우거나 죽는 것을 계승하여 따랐다는 의미 밖에는 없다.


602년 아막성 전투에서 원광법사에 사사받은 취산과 추항이 화랑으로 참전하여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장렬히 전사하였다. 김흠운 싸움에 임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화랑의 세속오계 중 하나인 <임전무퇴>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留名至今" (유명지금) : 지금까지 이름을 남기다.

흠운이 배울 시점까지 이름을 남겼다는 것은 문노와 흠운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는 의미이지 문노에게 직접 사사를 받았다는 의미는 더더욱 될 수 없다. 


해석상의 문제

  

歆運少遊花郞文努之門 時 徒衆言及某戰死

많은 사람들이 위의 내용을 “흠운이 어릴적 화랑 문노의 문하에 있었는데, 당시 따르는 화랑들이 말하길 전쟁에 나아가 전사하였다.”는 식으로 번역을 한다.

하지만, 遊花郞, 文努之門 유화랑(遊花郞)과 문노지문(文努之門) 사이를 끊어 읽어야 한다.


歆運少遊花郞, 文努之門 時 徒衆言及某戰死

흠운은 어릴적 화랑에 있었다. 문노의 화랑 때 전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따르는 무리들이 이야기를 전했다.

 

PS. 문노는 내물왕의 후손인 비조부의 아들로 나온다. 사다함도 내물왕의 6대손인 구리지의 아들이니 7대손이다. 김흠운도 내물왕7대손인 잡찬 달복의 아들인  8대손으로 나온다.

한마디로 내물왕을 빼고는 신라를 말할 수 없고, 세종대왕 만큼이나 자손을 많이도 낳았다.

 

 

여전히 진위를 알 수 없는 화랑세기

 

글쓴이는 문노와 김춘추의 아들이 김흠운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화랑세기의 진위를 살펴보고자 했다. 하지만, 화랑세기와 삼국사기가 충돌될것 같았던 기록들이 여전히 잘 끼워 맞춘것 처럼 빈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찌되었던 신문왕비가 되는 신목왕후가 김흠운의 2녀가 된다는 기록과 <화랑세기>문노와 <삼국사기>와는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문노와 김흠운의 관계로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조한 위서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김부식이 고의이던 자료의 부족을 느꼈는지 관계없이 문노가 <삼국사기>에 이름만 남긴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자의태후는 681년 8월 <김흠돌의 난>이 있고 나서 군사 지향적인 화랑을 폐기한 것은 분명하다. 그 후 화랑의 형태는 산천 유람하고 선도와 문에 힘쓰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고 역사적 자료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미실과 덕만의 하늘살핌 대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을 죽이기 위해서 터미네이터처럼 따라다니다. 덕만에 의해서 죽은 줄 알았던 칠복이 사신단과 함께 온 상인들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들 사신단은 수나라일까? 당나라 사신단일까? 역사를 종횡무진 필요할때 마다 이동하는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보았을때 알 수 없다가 정답이다.

칠복으로 인해 덕만의 정체가 미실에 보고되니 흥미가 배가 되지 않을까한다.  김유신의 아버지 서현이 아막성 전투에서 살아난 이유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에 의해서 구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 문노를 따르는 무리이거나 덕만이 비를 내리게 해준 가야의 유민이였을 가능성이 있다. 칠복이 돌아 왔으니 문노도 나타날때가 되었다.

 

사다함이 미실에게 전해준 ‘매화’가 ‘책력’이라면, 작가는 당시 신라시대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늘에 제를 올리고, 하늘을 살피는 것은 왕에게는 필수 불가결한 사항이다. 이를 서포터즈 하는 역할이 천관의 역할이다. 미실이 하는 일이 하늘과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역할이니 책력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를 갖추게 해준 이가 사다함이라고 한 것이다. 미실이 신라의 국정에 깊이 개입하는 계기가 진흥이 기후제를 지냈지만 비가 오지 않았다. 미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니 비가 오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덕만이 만노군에서 가야의 유민들에게 잡혀 하늘에 기우제를 지낼 때 잠깐 비춰진 것이 책력이였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 같지 않는가? 드라마 <대왕세종>에서 하늘을 살피는 책력을 만들려고 했다. 이때 보조자료로 사용된 것이 회회력과 칠정산이였다. 책력은 황제(제왕)도였다. 덕만이 가져온 책력이 미실이 받은 책력보다는 우위에 서게 되는 것인가? 아무튼 미실과 덕만의 ‘하늘살핌’ 대결을 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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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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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ayinme.tistory.com BlogIcon 사용인 2009.07.07 17: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

  2.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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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4: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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