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갓쉰동 꿈꾸는 삶

설, 추석, 한가위, 중추절과 차례 상차리는 방법 감춰진 진실찾기

차례상 차리는 방법은 지방마다 시대마다 달랐다. 지금도 차례상 차리는 방법에 대해서 설왕설래한다.

그런데 차례상 차리는 방법에는 정도가 있을까? 우리민족 고유의 가장 큰 3대 명절(설,대보름,추석)인 추석을 "추석은 우리것이 아니(였)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로 부터 돌이 날라올지도 모르겠다.

차례상 차리는 방법에서 차례의 유래등 감춰진 진실을 찾아 보려 한다.

설마 추석이 우리것이 아니라니 좋은밥 먹고 헛소리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이다. 그리고 추석의 유래에 대해서 장황설을 늘여놓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나 추석의 유래를 보면 우리것이 아닌것을 설령 우리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우리의 문화에 깊숙히 스며들었으니 우리 민족의 고유의 명절이 된것이 아닌가 이야기를 할것이다.

당연히 현재의 <추석>은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겠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는 없는 특이한 제례문화이다.

 
하지만 정확한 유래를 알고 있는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추석>은 <중추절>, <한가위(가베)>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추석>과 <중추절>과 <한가위>는 서로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1번째, 한가위 유래 (추수감사제와 놀이성격)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때 조상에 감사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2번째, 중추절 유래 ( 승전기념일 + 한가위 )
 
<예기>의 <맹추>,<중추>,<계추> 중에서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유의 한가위인 가베를 중국식 작명법에 의해서 기록한것 뿐이다.<중추>와 중추절은 서로 다른다. 단지, 중추란 한자화된 용어의 차용에 불과하고 중추절은 카니발 성격의 축제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슝베이도 중추절은 신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중추절은 당나라에 유학한 일본의 구법승려 <엔닌의 일기>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서>,<구당서>,<신당서>의 기록에도 신라는 8월15일날 왕앞에서 활쏘고, 말타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한다. 이 당시 중추절은 한가위의 풍습과 전승기념일을 합한 행사가 된다.
 
전승기념일이다 라는 있는 근거를 2009/09/26 - [역사이야기] - 중국 중추절은 신라 진평왕의 고구려 승전기념일?  글에서 <삼국사기>를 근거로 중추절은 진평왕의 603년 8월 대고구려 북한산성전쟁이나 668년 가을 고구려의 멸망을 기념하는 전승기념일이라고 주장했다.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도 고구려가 신라의 <북한산성>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603년 음력 8월이고, 진평왕이 직접 북한산성에 진주하여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왕이 직접 전장에 나아가서 싸우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당시 수와 전쟁에서 이긴 동북아의 패자 고구려를 신라 왕이 직접 통솔하여 물리 쳤다고 하는 의미에서 신라에게는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삼한일통을 한시기도 668년 가을이다.  이때의 승리를 기념해서 축제를 벌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까지 신라로써는 한가위와 전승기념일이 충첩된 날이니 즐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3번째, 추석 유래 [춘조일(春朝日), 추석월(秋夕月)] ( 한가위 + 중추절 + 유교제례 )
 
위에 중추절과 중추는 다른 의미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형식과 내용면에서 추석은 추석제의 미미한 변형이다.
 
네이버 통합검색 화면에는 다음과 같이 추석관련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추석의 유래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추석은 중국의 유교경전인 <예기>에 천자는 이른봄에 태양에 제사를 지내고, 가을에는 저녁 달에 제사를 지낸다해서 비롯되었다. 동지는 태양이 낮은 고도에서 점차 크게 떠올라 시작을 알리는 시기이고 가을 중추에 뜨는 달이 가장 높이 크게 보이는 시기이기 때문에 <춘조일>, <추석월>같은 유래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예전 <네이버> 백과사전(두산백과사전)에서 <추석>의 유래를 검색하면 <예기>의 <조춘일>,<추석월>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달처럼 해처럼 번쩍이는 레슬러 <조춘>선생을 기념하는 날도 아니고 실제는 <춘조일>의 오기이다. 글쓴이도 오랫동안 관심이 없어서 무관심하게 지나갔지만 <조춘일>, <추석월>인줄 알았다. 그래서 추석에 관한 여러가지 자료를 조사할일이 있어서 이곳 저곳 찾다보니 <조춘일>이 <춘조일>의 오기라는 것을 알았다. 
 
네이버에 올려진 백과사전이 잘못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알고 오래전에 수정할려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이유는 예전에 솔거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솔거의 활동시기가 <진흥왕>시기(540년이후)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꼼꼼히 솔거는 <진흥왕>시기 사람이 아니고, 신라의 황금기인 경덕왕(8세기)때 활동한 사람이며, 솔거의 작품인 황룡사 <노송도>와 단속사 <유마상도>, 분황사 <천수관음보살도> 등 잘못이 있으니 수정하였으면 한다고 자세하게 논거를 제시하여 보냈지만 근 한달이 지난후에 솔거관련 기록들은 수정도 하지 않은체 <솔거>라는 항목만 수정을 하고 고맙다는 말도 없었다. 
 
솔거 관련글을 자세히 보실려면   2009/08/02 - [역사이야기] - 덕만에서 솔거까지 역사상식을 깬다
글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현재 추석은 3가지의 유래중에서 어디에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추석의 유래 중 <예기>를 인용하지 않고 있다. 있는 사실을 감추고 유래를 단지 국내에서 찾으려는 또다른 역사왜곡 사례이다.
 
<한가위>나 <중추절>의 행사와 놀이문화는 잊혀지고 단지, 제사(차례)의식만이 남아 있다. 그리고 <한가위>라는 말을 쓰기는 하지만 <추석>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또한 추석이 민족의 3대명절인 <설>,<단오>,<추석>에 진입한 시기를 보면 조선시대 중종?이후 일이다. 
  
조선시대의 추석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추석에 관한 기록은 모두 왕이 조상에 대한 제사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조에 보면 아침에 추석제를 지낸후 저녁 밤늦게까지 대신들과 왕족들을 불러 술마시고, 흥겹게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연산군때에도 추석제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연산군은 자신의 친모인 <윤씨>에게 추석제사를 지내려하나 신하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하지만 효자였던 연산군은 신하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윤씨>의 사당을 세우고 추석제사를 강행한다.

<추석제>를 지낸것은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신라 종묘의 제도에 <추석제>가 있었다고 흔적이 있다. 

37대 선덕왕이후 일년에 여섯 번 5묘에 제사지냈으니, 곧 정월 2일·5일, 5월 5일, 7월 상순, 8월 1일·15일이었다.

그러니 삼국시대부터 신라왕실에서는 추석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추석제를 지키는 것은 김춘추가 당에 구원요청하고 신라의 관제와 복식을 당나라식으로 바꾼 이후부터 일것으로 추측된다. 이때 지낸 제사의 형식은 <유교>형식의 제사일것 이다.
 
또한,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백제 편에 책부원귀를 인용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백제는 매년 네 철의 가운뎃 달[四仲之月]에 왕이 하늘과 오제(五帝)의 신에게 제사지냈다. 그 시조 구태(仇台)의 묘(廟)를 나라의 도성에 세우고 일년에 네 번 제사지냈다.』

고대의 <추석제>는 민간 백성들은 지낼수 없는 황제나 제왕들만이 지내는 제사였기 때문에 왕실에서만 지냈고 민가에 까지는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추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추석제는 기회가 된다면 따로 글을 쓰도록 하겠다. 
  
조상은 사라진 차례와 제사, 르레상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차례를 지냄에 있어서 상차림에 관한 이야기들이 설왕설래 한다. 그 근거는 <예기>일 수 밖에 없는데 <예기>을 보면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너무 많은 제사를 하지 말고, 겸약하고 겸손하게 지내라"라고 하였다.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조상이 평상시 좋아하던것으로 하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홍동백서>,<좌포우혜> 등 조상과는 무관한 형식과 절차 만이 남아 있다. 조상이 왼손잡이던 오른손잡이던 상관하지 않고 숫가락을 놓아야 한다. 왼손잡이가 귀신이 되면 갑자기 오른손잡이로 변하나? 또한, 조상이 살아생전 좋아하던 음식과는 전혀 상관하지도 않고 있다.
 
소주를 좋아하면 소주를,  탁주를 좋아하면 탁주를, 양주를 좋아하면 양주를 올리면 되는 것이 아닐가?. 바나나를 좋아하면 바나나, 파인애애플이면 어떤가?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귀신이 털달린 과일을 좋아라 하지않는다고 해서 죄악시하고, 매운음식과 고추는 귀신을 쫓아내는 벽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해서 고추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음식으로 올려야 한다.
 
실제로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임진왜란 전후라고 전해진다. 유입경로는 명/청이나 일본 양쪽으로 어느쪽이 앞선 시기인지는 아직 확실치는 않다. 조상이 매운음식을 즐기던 즐기지 않던 상관없이 귀신은 고추가루 싫어한다는 믿기지도 않는 낭설에 따라야 한다. 만약, 예기를 만들기 이전에 고추가루가 있었다면 당연히 고추가루가 들어간 음식이 제사상에 올려졌을 지도 모른다. 과일중에 붉은색 과일을 올리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제사나 차례의 주체인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과 조상은 사라지고  단지 제사 형식에 치우치고 있다. 제사 형식과 차례를 규정한 <예기>는 조상이 평상시 좋아라 하는것으로 하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제사나 차례도 중세유럽의 <르레상스>운동처럼 본류를 찾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시대에 따라 민속도, 명절도, 내용도 달라져야.. 
 
현재의 추석은 과거 우리가 알고 있는 한가위나 중추절과 다른 의미이고 <추석>,<한가위>,<중추절>은 서로 믹스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뿐이다. 현재의 추석이 다른 어떠한 민족도 하지 않는 아주 특이한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추석이 고래부터 한민족의 고유의 명절이라고 하기에는 내용도 바뀌고 성격도 바뀐 다양한 문화가 접목이 되어 있어서 문제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부처탄신일, 팔관회가 국가의 중대축제였고, 조선시대에는 유교적인 단오, 한식, 추석, 공자탄신일 등이 중대 행사였다. 현재는 단오, 한식 보다는 실제와는 다르지만 예수의 탄신일이라고 알려진 크리스마스가 중대한 명절 풍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먼훗날 크리스마스가 우리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토착화될 때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고유의 민족의 행사라고 모두들 이야기를 할것이다. 그때 무슨 소리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고유의 명절이 아니고 유대교의 선지자중 일인인 예수라는 인물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에서 유래된것이야 그리고 산타크로스는 예수의 탄생과는 전혀 관계없는 북유럽의 신화에서 나온인물이고, 산타와 산타의 붉은 복장은 코카콜라가 자신들의 상품을 선전하기 위해서 만든 허구야 한다면 벼락 맞을 짓인가?  

 

관련기사
2010/09/16 - [역사이야기] - 동이, 인현왕후 죽은 2달 동안 실제 무슨일이 있었을까?
2010/09/15 - [역사이야기] - 동이, 세자와 연잉군을 불효자 만들어 얻는 이익은 무엇인가?
2010/09/15 - [이슈] - 김연아, 이민호, 무한도전 팬덤과 조공 팬덤 누가 만드나?
2010/09/16 - [이슈] - 김연아 박미희, 이루 태진아 맹모단기를 아십니까?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런 2010.09.17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이런!! 이렇게 내공쌓인 글을 이리 방치 하다니...
    다음이 실수 하고 있군요 ㅋㅋ
    근데 어쩜 사람들이 자극적이거나 달달한 이야기만 좋아하는 것 같으니
    다음도 당연 거기에 영합하는걸지도... 아닌가 그리 선도하는건가?? 에효

    그럼에도 이렇게 새로운 글 내 놓으라고 조르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길...

  2. Favicon of https://peter0317.tistory.com BlogIcon 제로드™ 2010.09.18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꼼꼼하고 열심히 자료를 찾아서 글을 쓰시네요~. 즐거운 추석 되시길..

  3. Favicon of https://vibary.tistory.com BlogIcon 비바리 2010.09.18 19: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명절 즐거이 지내세요.

  4. 2010.09.22 0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Favicon of http://solnebane.com BlogIcon 조용형 2012.01.02 2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팹, 훌륭한 문서입니다

  6. Favicon of http://inoline.com BlogIcon 2012.01.07 0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끌모아 태산

  7. Favicon of http://carbon21.homeunix.com BlogIcon Jordyn 2012.04.04 0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8. Favicon of http://extratime.isa-geek.com BlogIcon 빅토리아 2012.04.06 0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변호사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9. Favicon of http://zonda.is-very-evil.org BlogIcon Aaliyah 2012.05.09 0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에 영어를 하시는 분 계십니까?

  10. Favicon of http://onlyme.hobby-site.org BlogIcon Arianna 2012.05.11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11.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2.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 2012.07.14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해서 눈 속에 덮혀 있다. 그런데 이번 강릉 빙상장은 경기를 보는

  13. Favicon of http://blogskinny.com/ BlogIcon Berrong 2012.09.09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14. Favicon of http://www.frankolenko.com/blog/view/9430/what-supplies-to-enter-case-of-an-em.. BlogIcon emergency first aid guide 2012.11.26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어쩜 사람들이 자극적이거나 달달한 이야기만 좋아하는 것 같으니
    다음도 당연 거기에 영합하는걸지도... 아닌가 그리 선도하는건가?? 에효

  15. Favicon of http://mysbi.tk/blogs/viewstory/168 BlogIcon water canister camping 2012.12.04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명절중 중국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은데 추석이나, 중추절도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중추절과 추석은 별도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이런 와중에 중국의 슝베이 역사학자가 <중추절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이다>라고 <중추절 한반도 기원설>을 주장했었습니다.

사실 <중추절>과 <추석>과 <한가위>는 조금씩 기원의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의 추석의 기원은 중국쪽에서 찾아야 합니다. 


당나라이전 시기에는 중국에서 중추절에 관한 기록이 전무하고, 당나라 중기 말기 시대의 기록인 <초학기>에도 8월 중에 있었던 <중추절>에 관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슝베이가 중추절은 "신라의 것으로 부터 이다"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9세기 중엽에 일본의 승려인 <엔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라는 순례기에 의해서 입니다. <입당구법순례행기>는 9세기의 동아시아의 경제/문화/교통에 관한 중요한 사료입니다.

엔닌이 활동하는 시기는 <장보고>가 청해진에 터를 잡고 3국의 해상을 관할하고 있는 시기와 일치합니다. 엔닌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귀국할때 장보고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귀국하고 있음을 그의 순례행기에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 드라마로 제작된 <해상왕장보고>도 이 사료를 참고했다고 합니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 5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
다.


옛날 가위를 보면 화려하기도 합니다. 일본 국보급 유물들이 있는 <정창원>에서 보관중이 신라시기 금동가위나 신라의 무덤이나 안압지에서 출토된 금동초심지가위, 백제의 무덤에서 나온 가위를 보면 요즘 보는 가위랑 다르게 자르는 곳이 반달모양(송편)입니다.

두개의 면이 하나로 합쳐지면 영락없는 완전한 둥근달 모양이 되기도 합니다.  서로 따로 만든 반달모양의 송편이 나중에 두편이 하나로 합친 모양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면 궁궐이나 실내장면을 보면 무수히 많은 초불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선덕여왕>에서의 촛불들이 당시의 촛불형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신라시대에 최소한 초를 이용해서 불을 밝혔을 것으로 추측되는 유물이 초심지 가위입니다. 초심지 가위는 백제, 신라, 일본에서도 발견됩니다. 
 

조직을 양편으로 나누어 서로 견재를 하여 대결, 화랑이전 원화제도에도 나타납니다. 2명의 공주급 여자를 대표자로 세워 그아래 원화들과 화랑들을 지휘통제하는 역활을 합니다. 한가위의 길삼놀이는 한시적인 행사이고 원화는 상설적인 조직이니 원화들이 한가위때 길삼 놀이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원화의 기원이 이전 유리왕때의 양편으로 나뉘어 길삼놀이던 하던 조직이 상설조직화 되어 원화제도가 되었을 겁니다. 

다만, 원화제도는 원화인 남모와 준정의 다툼으로 540년 진흥왕 원년에 폐지되고, 화랑 풍월주 제도가 생겼다고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말하고 있습니다. 화랑세기에는 남모를 법흥왕과 백제의 보과공주의 소생으로 나옵니다. 서현이 만명과 사랑의 도피를 하듯이 백제 보과공주는 법흥(원종)을 사랑하여 신라로 사랑을 찾아 도피해 옵니다.

어찌되었던, 삼국사기의 초기 편년이 많은 의심을 받고 있지만 이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엔닌이 있는 시기와는 800년의 차이가 나지만 이를 지속적인 행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엔닌의 (839년)기록에 의하면 발해와의 전쟁에 이겨서 8월15일 행사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발해는 698년 에서 926년 까지의 국가이고, 대진국에서 발해라 명한 때는 713년 대조영때이니 신라 성덕왕때 입니다. 발해와 신라의 전쟁기록은 유일하게 733년 겨울 전쟁기사 입니다. 
 

하지만 엔닌이 신라노인의 말을 빌어 기록한 발해와 신라의 전쟁의 승전기록에 대한 문제점은 신라 성덕왕 32년(733년) 가을 7월 발해가 등주를 치자 발해의 배후에 있던 신라에 당의 현종이 발해를 쳐줄 것을 요구하고, 그해 겨울 신라가 발해의 남쪽 경계를 침입하였으나 눈이 많이 내려 수 많은 인명피해만 입고, 철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발해와의 전쟁승전기념일은 될 수 없고 기록과 상호 모순이 되어 채택될 수 없습니다.
 


가끔 신라에 등장하는 말갈이란 표현은 대체적으로 고구려와 말갈을 혼용하여 표기되는바 발해말갈 고구려/말갈을 혼동할 개연성은 다분히 있습니다. 

<구당서>나 <신당서>에 의하면 "신라는 8월 15일이 되면, 왕앞에서 활쏘기, 승마를 하고 , 술과 음식을 나눠먹는다"고 합니다.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도 고구려가 신라의 <북한산성>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603년 음력 8월이고, 진평왕이 직접 북한산성에 진주하여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왕이 직접 전장에 나아가서 싸우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당시 수와 전쟁에서 이긴 동북아의 패자 고구려를 신라 왕이 직접 통솔하여 물리 쳤다고 하는 의미에서 신라에게는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랑세기에는 이때의 전쟁을 한수전쟁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용춘과 비보랑 등 화랑들과 용춘의 부하이며 장인인 대남보가 한수전쟁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웁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진평왕을 허수아비 왕으로 그리고 있지만, 실제의 진평왕은 백제와 고구려에 공세적인 자세를 취하고 <한수전쟁>처럼 직접 군을 이끌고 전쟁에도 참전하는 <전쟁영웅>입니다. 억지로 <미실>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서 전쟁영웅인 진평왕을 허수아비로 만든거지요. 실지로 덕만이 왕이 될수 있었던 이유도 <진평왕>의 절대적인 힘에 의해서 입니다.

어찌되었던, 연개소문에서는 나오지 말아야할 유신이 등장한다는 겁니다. 유신은 595년생이고 한수전쟁은 603년이다. 유신의 나이 9살이 된때가 된다. 유신이 아무리 전쟁광(?)이던 전쟁의신(?)이던 등장할 수 없는 거지요.

KBS <대조영>이나 그전에 MBC에서 정통역사물과 반동북공정을 기치로 내걸어 국민사극으로 각광을 받은 <주몽>에서도 역사적인 기록과 부합되지 않는 장면을 너무 남발해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역사를 희화화 했다고 지탄을 받고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과 하등 다를것이 없다고 지적된 적도 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고구려가 멸망한 시기가 공교롭게도 668년 가을이니 한가위는 이를 기념했을 수도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시기는 추수철이 지난 늦가을인 경우가 많은데 추수철이 지난 가을에 물리쳤다면 먹거리도 많은 시기이니 잔치를 벌이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요.

이전 가베(길삼)과 승전일들이 겹치는 겹경사가 이니 더욱더 풍성한 명절 한가위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현재 8월15일은 광복절이고, 신라에게는 음력 8월 15일이 승전기념일이란 공통점도 있습니다. 

2006년 중국 역사학자 슝베이의 발언으로 촉발된 중추절 <한반도기원설> 주장은 중국내 네티즌의 반발과 포털업체의 발빠른 대응으로 중추절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하고자 하는 네티즌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여 한국은 고구려학을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역사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리때문에 상고시대 고구려를 연구하는 학자가 한국내에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극히 드문 경우 였지만, 이를 기화로 고구려에 대한 연구과 활발하고 한국과 북한간의 학문적 교류가 활성화 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오월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을 시도할때 중국에서는 이를 정부차원에서 발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사실 대부분 민속에 관한 경우 중국으로 부터 수입된것이 많습니다. 단오도 중국으로 부터 건너온 것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단오제를 한국에서 유네스코에 등록을 시도하는 것은 중국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것일 겁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시도하여 고조선에서부터 고구려,발해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을 시도하고 해당 왕조를 중국의 지방민족사로 폄하를 하고 있는 데 한국에서는 삼국사기와 유물을 들어 한민족의 역사를 침탈하는 행위로 받아들이고 분노하는 입장과 비슷할것 같습니다.


사실 단오제의 유네스코등록의 이면에는 동북공정에 대한 반발심리도 작용한것이 사실입니다.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에 등록하려는 것은 '단오'라는 풍속을 등록하려는 것이 아니고. '단오제'라는 축제(카니발)를 등록하는 것 입니다. 조금 미묘한 차이가 있기는 있습니다.

결론은 추석과 다르게 중추절은 신라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이는 신라가 고구려와 전쟁에서 승전한 것을 기념한 승전기념일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현재 중국의 중추절은 신라로 부터 수입된것이 됩니다. 정확히는 대당신라인에 의해서 라는 단서가 붙지만 말입니다.

즐겁고 풍성하며 따스한 추석명절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관련기사
2010/09/20 - [역사이야기] - 추석 차례상에 정종만을 올려야 한다? 사실은
2010/09/18 - [이슈] - 추석,한가위, 명절증후군 초간단 극복하는 방법은
2010/09/17 - [역사이야기] - 추석, 한가위, 중추절과 차례상의 감춰진 진실찾기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09.21 0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잘 몰랐던 역사공부 덕분에 잘 하고 갑니다.~~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3. Favicon of https://muznak.tistory.com BlogIcon 머 걍 2010.09.21 09: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전 죄다 첨 들어보는 내용이네요.
    마음 넉넉한 한가위 보내세요,갓쉰동님^^

  4. Favicon of http://lowr.tistory.com BlogIcon White Rain 2010.09.21 1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 생각해요.
    그 축제, 그 행사 속에 그 나라만의 문화가 스며들기 마련이니까요.
    누가 원조네 아니네..하는 건 자기 만족에 불과한 듯해요.

    참..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세요.

  5. Favicon of https://ilovemytree.tistory.com BlogIcon 걸어서 하늘까지 2010.09.21 11: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풍성하고 즐거운 추석 한가위 되세요^^

  6. Favicon of https://jsapark.tistory.com BlogIcon 탐진강 2010.09.21 1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에서 시작된 것이 중추절이군요

    역사에 대하여 아는 게 중요하지요

    추석 잘 보내세요

  7. Favicon of https://gamjastar.tistory.com BlogIcon 또웃음 2010.09.21 17: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공부 하고 갑니다.
    갓쉰동님 비가 많이 오네요.
    비 피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8. BlogIcon Masdar 2011.09.04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털 블로그는 전반적으로 가볍고 일상적이며, 사진 위주의 콘텐츠가 주를 이룬 반면, 티스토리와 같은 자유도 높은 블로그에는 심층적이고 전문적이며 텍스트 위주의 콘텐츠가 담기는 경향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9. Favicon of http://www.thetotaloffice.biz/ BlogIcon Dubai furniture 2011.09.04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반적으로 후보들이 다루는 주제의 범위가 넓어진 점은 긍정적이다. 아쉬운 점은 마케팅 콘텐츠가 등장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점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콘텐츠의 퀄리트 측면에서도 1~2년 전에 비교해 더 깊고 전.

  10. BlogIcon office chairs 2011.09.04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적인 후보군들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아쉬움을 남긴다. 블로그가 한단계 더 성장하기 위한 새로운 기회 마련이 시급해보인다.

  11. Favicon of http://joesbasement.com BlogIcon 조용형 2012.01.01 0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12. Favicon of http://faultytowers.greece-greece.com BlogIcon Ashlyn 2012.04.03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아침입니다.

  13. Favicon of http://peppa.is-a-nurse.com BlogIcon 사라 2012.04.05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아침입니다.

  14. Favicon of http://colin.is-a-therapist.com BlogIcon 스칼렛 2012.05.08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5.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 2012.07.14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

  16. Favicon of http://rocville.com/?p=News BlogIcon Cordie 2012.09.11 1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톨릭과 개신교를 믿는 기독교 계열이 합세한 세력싸움이란 느낌을 저버릴

  17. Favicon of http://jalmadaya.com/blogs/viewstory/2457 BlogIcon radio am fm sw 2012.11.26 2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밴쿠버 올림픽이 끝나고 오서코치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지만 올림픽을 앞둔 1개월전인 2010년 1월말 4대륙 대회 기간중 김연아는 발목부상 중이였다. 발목부상중인 김연아가 빙상연맹과 ISU와 전주시측의 참여 압력에 굴복하여 부상를 치료 못하고 대회에 참여하였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18. Favicon of http://rxapp.org/blog/view/10935/saving-your-disaster-package-properly BlogIcon survival first aid supplies 2012.12.04 2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해 겨울 신라가 발해의 남쪽 경계를 침입하였으나 눈이 많이 내려 수 많은 인명피해만 입고, 철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9. Favicon of http://rxapp.org/blog/view/10935/saving-your-disaster-package-properly BlogIcon survival first aid supplies 2012.12.04 2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해 겨울 신라가 발해의 남쪽 경계를 침입하였으나 눈이 많이 내려 수 많은 인명피해만 입고, 철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0. Favicon of http://www.bestmattress-reviews.org/adjustable-bed-reviews-reveal-best-brands/ BlogIcon adjustable beds ratings 2013.04.03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해 겨울 신라가 발해의 남쪽 경계를 침입하였으나 눈이 많이 내려 수 많은 인명피해만 입고, 철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추석>은 <중추절>, <한가위(가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추석>과 <중추절>과 <한가위>는 서로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동양 삼국에서도 보기 드문 문화가 되었다. 추석이나 설만 되면 귀성을 하는 것 또한, 대가족이 상존하고 도시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시적인  새로운 현대문화로 변형 되었다.

그런데 앞으로도 귀성행렬이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유는 점점 도시화 되고, 삶의 터전이 도시중심으로 변화되고, 핵가족화되면서 찾아갈 고향도 도시이고, 참여할 가족도 극히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 실례가 귀향행렬이고 지금은 제례용품을 직접 조달하기 보다는 집에서 만들었던 송편까지고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는 형태로 변형되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가배(가베), 한가위, 중추절, 추석이 어떻게 변형되고 서로 다른 이질적인 한가위, 중추절, 추석이 하나의 문화를 정착되었는지 유래부터 알아 보도록 하자.

한가위 유래 (추수감사제와 놀이성격)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쌈마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때 조상에 감사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화랑의 원형은 <원화>였다. 원화는 유례(유리)왕 시대의 공주급 여성이 2명이 청백으로 나뉘어 편을 갈라 대결을 하듯이 <원화>를 양편으로 나누어 일상적인 제사와 가배(한가위)를 대비하는 상설기구화(?) 된것이다. 이를 화랑으로 통합하고 신라의 귀족사회를 통합하고, 교육는 기관으로 변형된 것이다.

중추절 유래 ( 승전기념일 + 한가위 )
 
<예기>의 <맹추>,<중추>,<계추> 중에서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유의 한가위인 가배를 중국식 작명법에 의해서 기록한것 뿐이다.<중추>와 중추절은 서로 다른다. 단지, 중추란 한자화된 용어의 차용에 불과하고 중추절은 카니발 성격의 축제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슝베이도 중추절은 신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중추절은 당나라에 유학한 일본의 구법승려 <엔닌의 일기>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서>,<구당서>,<신당서>의 기록에도 신라는 8월15일날 왕앞에서 활쏘고, 말타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한다. 이 당시 중추절은 한가위의 풍습과 전승기념일을 합한 행사가 된다.

이와 관련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9/26 - [역사이야기] - 중국 중추절은 신라 진평왕의 고구려 승전기념일?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진평왕 시기 가배(한가위) 풍속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량(박은빈)은 춘추(유승호)가 선물한 비단과 귀금속들을 가지고, 가배(한가위)에서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써먹겠다고 한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듯 하다.

하지만, 당시 진평왕시기에는 수서, 당서에 따라 낮에는 <한수전쟁>에서 승전을 기념해서, 남성들은 왕앞에서 자신의 무예인 말타기, 활쏘기, 칼싸움 등을 한다. 

왕족이나 귀족 여성들은 비단을 받어서 옷을 만들겠다고 할 수 있다. 편을 나누어 대결중인 여성들간에 한달전부터 준비한 길쌈의 승리한 편이 누가 될까?가 관심사였을 것이다. 김홍도의 풍속화나 신윤복의 단오날 남자들이 여성들이 목욕장면을 훔쳐보듯이 신라시대 한가위(가배)때는 남성들 화랑이나 낭도들 중 누가 이길것인가?에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풍월주 비재는 없었지만, 가배(한가위)배 쟁탈 비재는 충분히 있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추석 유래 [춘조일(春朝日), 추석월(秋夕月)] ( 한가위 + 중추절 + 유교제례 )
 
중추절과 중추는 다른 의미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형식과 내용면에서 추석은 추석제의 변형이다.

추석은 중국의 유교경전인 <예기>에 천자는 이른봄에 태양에 제사를 지내고, 가을에는 저녁 달에 제사를 지낸다해서 비롯되었다. 동지는 태양이 낮은 고도에서 점차 크게 떠올라 시작을 알리는 시기이고 가을 중추에 뜨는 달이 가장 높이 크게 보이는 시기이기 때문에 <춘조일>, <추석월>같은 유래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2009/09/27 - [역사이야기] - 추석, 한가위, 중추절과 차례상의 감춰진 진실찾기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고대의 <추석제>는 민간 백성들은 지낼수 없는 황제나 제왕들만이 지내는 제사였기 때문에 왕실에서만 지냈고 민가에 까지는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유교가 한반도에 유입되던 시기, 집단적인 행사에서 각각의 가정에서 제사를 지내는 때는 이때부터 변형되기 시작했다. 집단적인 조상의 제사와 전쟁기념 축제에서 낮에는 길쌈과 무예대결이 밤에는 제사가 추가 되었고, 왕이나 귀족들이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형태로 변형되기 시작하였고, 추후 각각의 개별 일반백성 가정에서 조상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제사로 확장되었다.

조상은 사라진 차례와 제사

설.추석.제사 차례상차림과 형식이 예를 파괴하다.
  

차례를 지냄에 있어서 상차림에 관한 이야기들이 설왕설래 한다. 그 근거는 <예기>일 수 밖에 없는데 <예기>에는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너무 많은 제사를 하지 말고, 겸약하고 겸손하게 지내라"라고 하였다.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조상이 평상시 좋아하던것으로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은 <홍동백서>,<좌포우혜> 등 조상과는 무관한 형식과 절차 만이 남아 있다. 조상이 왼손잡이던 오른손잡이던 상관하지 않고 숫가락을 놓아야 한다. 왼손잡이가 귀신이 되면 갑자기 오른손잡이로 변하나? 또한, 조상이 살아생전 좋아하던 음식과는 전혀 상관하지도 않고 있다.
 
소주를 좋아하면 소주를,  탁주를 좋아하면 탁주를, 양주를 좋아하면 양주를 올리면 되는 것이 아닐까?. 바나나를 좋아하면 바나나, 파인애플이면 어떤가?


제사와 차례(다례)는 다른 것

엄밀히 이야기해서 제사와 차례는 다르다. 하지만 요즘은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특정인을 기념할때는 제사라고 하고, 조상신 전체를 대상으로 할때는 차례라고 하는 듯하고, 상차림과 행사전반을 <차례>라고 구분하는 듯하다. 하지만 옛 조상들은 엄밀하게 구분하여 지낸것 같다.
 
왕실이나 양반들은 조상의 묘에 특별히 제사와 묘를 관리하는 <수묘인>을 두었는데, 이에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와 <수묘인>의 생활과 음식장만 등 전반적인 묘관리소를  <재실>이라고 불렀다. 왕실에서는 녹을 받은 관리를 두고 왕릉을 보살피고 <전답>에서 나온 물품으로 제사를 치르고 하였다. 
  
제사와 차례를 구분해서 사용하였다고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특별히 제사말고도 차례만을 지낸 기록이 보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차례만 지낸때는 언제일까? <동지다례>라고 해서 동짓날만 다례를 지낸다. 동지에 다례를 지내는 이유는 겨울의 끝이고, 태양이 가장 낮은 곳에서 떠오르는 첫날이며, 실질적인 당해년의 시작과 전년의 끝이다. 그러니 새롭게 시작한다해서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깨끗한 물로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것이 아닐까한다. 산천에 제를 지내는 것은 제왕이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다례를 검색하다 보면 수천개의 <다례>기록이 나온다.  태종 이방원이 태상왕인 이성계와 차마시기 기록으로 부터 철종때까지 차마시기에 관한 무수한 기록들이 널려있다. 외국사신과 차마시기를 했다. 신하와 차마시기를 했다. 왕이 신하의 집을 방문해서도 차마시기를 즐겼다고 한다. 조선이 불가에서 널리 퍼진 차문화을 억압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또한, <차마시기>가 억불숭유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고 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한다


제사가 차례(다례)가 된 이유? 여인의 한이 보인다.


최소한 손님이 찾아오면 차마시기가 일상사였을 것이다. 요즘 사극을 보면 무조건 손님이 찾아오면 술마시는 것을 그리고 있지만, 술상보다 먼저 차를 대접한다. 그러니 사극에서 안주인이나 노비들에게 "주안상을 내와라" 하는 술마시고 놀자판으로 그리는 것은 고증에서 벗어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자주 목격되는 장면중 여러사람이 모여있으면 차를 마시는 장면이나 다기들이 테이블위에 자주 등장한다. 어찌되었던 조선시대 제사는 손님이 찾아오는 것 만큼 다반사이다. 다반사란 말이 차마시고 밥먹는 만큼이란 상시적이고 일상적인 뜻이다. 그래서 차례란? 제사가 흔함의 자조섞인 말의 변형이 이다.

예전에 종가집이나 어느정도 산다는 집은 1년에 지내는 제사가 수십차례이니 일상의 <차마시기> 만큼 흔하디 흔했다. 차를 내오는 것만큼 그집 안주인에게는 흔한일이고 한번의 제사를 지낼려면 수일은 준비해야 하니 일년중에 50~100일은 제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요즘은 제사가 많이 줄고 단촐해 졌다. 처자들이 종가집 장손이나 일반 적으로 맏아들에 시집을 가려하지 않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사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중에 하나였다. 그렇지 않다면, 제사가 차례가 될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한다. 며느리들의 자조적인 말이거나 종손들의 자조섞인 제사상이 차례상으로 변형 되었을 것이다.
 
또한 제사에 참여해야하는 사람도 차마시기 정도에 지나지 않을 만큼 <일상사> 정도로 치부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르신들이 아랫사람들에게 조상을 손님맞이하는 것처럼 성심과 정갈하게 하라는 뜻일 지도 모른다. 어려운듯 하지만 쉽게 정성으로 지내라는 의미일수도 있다.

왜 차례상에 정종을 올려야 하지? 일제의 잔재?

정종은 단순히 일본의 술 제조업체였다. 맥주하면 OB인 시절도 있었고, 소주하면 <진로>인 시절이 있었던 것 처럼, 청주하면 정종회사를 떠올린것이다. 청주(맑은술)을 올리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미료하면 <미원>이 대명사 인 시절도 있었다. 그러니 술을 올리는데 정종을 올린다는 말은 진로를 올린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잘못사용된 예이다.

그렇다면, 우리내 조상들은 차례상에 어떤 술을 올렸을까? 세종실록에 [조전에 평사시 예식 대로 소주로 지냈다] 라고 한다. 맑은 술을 조상에 진상하고 있다.

소주는 왕이 신하나 외국의 사신이나 대마도 도주에게도 하사품으로 주는 물품중에 하나가 되겠다. 일본의 청주는 조선의 소주가 건너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일반인들은 범접하기 힘든 귀하디 귀한 술이다. 이런 귀하디 귀한 술을 제사에 올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집안마다 대대로 내려오는 종주(宗酒)가 있었다. 집안 정통주를 빚어서 제사를 지내고, 필요에 의해서 진상을 하기도 하고, 귀한 손님이 오면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일반인들이 청주와 소주를 제사상에 올리는 시점은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일제시대 이후이다. 제사상에 청주(정종)을 올리는 행위가 일제의 잔재라고는 말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잘못된 행태를 일제의 만행으로 모는 것 처럼 안일한 태도는 없다. 외부세력에 의해서 민족의 고유문화가 침탈되는 것에 분노할 이유는 없다. 이는 일본뿐만 아니고 외부 다른 민족을 지배하려는 자가 보이는 보편적인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스스로 고유문화를 없애는게 더욱 나쁘기 때문이다. 토속주.전통주를 없앤 주범은 아이러니하게도 광복후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고난 후 기업형주류 생산업체와 독재정권의 결탁에 의해서 이니 말이다.


명절 증후군을 벗어나고, 없는 부부애도 있게하는 방법

최근에는 많이 변하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명절이나 제사를 준비하는 건 여인들의 몫이였다. 지금도 며느리들이 명절날 시집에 가서 제사상이나 차례상을 차리고 나면, 명절증후군이 생긴다. 이시기를 지나면 부부간에 금이 가는 수가 많고, 이혼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명절은 우리내 어머니이고, 며느리, 누나 동생인 여성들에는 힘들고 힘든 고역이 된다.


추석과 명절이 되면 인터넷에서는 지방 쓰는 방법과 차례상 차리는 법이 검색 순위 상위를 차지한다. 이유는 그만큼 명절날 차례상과 제사에 사용되는 지방쓰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세월은 가고, 문화도 바뀌고 있다.

위에서 추석의 유래부터 차례가 된 이유까지 언급을 했다. 시대에 따라 명절의 내용과 형식이 바뀌고 있다. 남성들이 여성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면, 명절날 스스로 음식이나 설거지 등에 적극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한다. <참여>라는 말을 사용했지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도와주는 행위>는 자신의 일이 아니고 남의 일이기 때문에 사용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명절(제사.차례)는  남의 일이 아닌 남.여구분없이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명절이후 벌어진 명절증후군에서 쉽게 벗어나고 가정이 화목해지는 길이 아닐까 한다. 또한, 문화는 옛것만을 고수하는게 아니다. 시대에 맞게 계승되고, 변형되고 발전되는 것이다.  한쪽은 즐겁고, 다른 한쪽은 준비하느라고 즐겁지 않다면 그건 차라리 없어져야할 구습일 뿐이다. 그러니 현재 남여평등 사회에 맞게 남성들이 스스로 참여하여야 한다. 그래야 즐거운 명절이 되고, 명절증후군이 없고, 가족간에 골이 깊어지지 않고, 이혼하는 가정이 줄어들지 않을까한다. 농담식으로 "밤일을 잘한다"고 아침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따스한 말한마디와 명절날 자발적인 설거지라도 참여한다면, 말은 "사내놈이 무슨 설거지?" 하면서도 아침밥이 달라지고, 없는 <부부애>도 살아나지 않을까 한다.

보름달에는 계수나무와 달토끼가 산다고 합니다.이는 달의 모양을 보고 느끼는 착시일겁니다. 하지만, 어느지역에서는 전갈이라고 하고, 옛 고대에는 태양에 삼족오가 살고 달에는 달토끼보다는 두꺼비가 산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이처럼 달을 볼때 사람마다 지역마다, 현재 자신의 사정에 따라 똑같은 달이 달라 보일 겁니다.

경제 사정이 극히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명절 추석이 즐거운 사람도 있을것이고, 좋아만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없는 회사사정에 월급을 주어야 하고, 상여금을 더주어야 하는데 못주어 안타까워 하는 분들도 계실것이고, 적은 월급에 명절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명절 보름날 떠오른 달이 한없이 따스하게 보이는 분들도 계실것이고, 반면에 한없이 차갑고, 한숨나오게 하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가고 싶어도 개인사정 때문에 귀경을 포기하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명절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글을 보신분이나 추천해주신 분이나, 댓글을 달아 주시는 분이나, 추천없이 그냥 글만 구독하고 가시는 분이나, 이글에 동의하는 분이나, 동의하지 않는 분이나 모두 마음만은 한가위같이 풍성한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글로서 제글을 보시는 분들께 드리는 추석선물이라고 생각해주셈. ^___^
 
즐거운 추석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귀성하는 분들은 차조심 몸조심 ^___^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careernote.co.kr BlogIcon 따뜻한카리스마 2010.09.18 08: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모로 어려운 것이 많은 국면이지만 우리 모두 행복한 추석 명절 보내길 기원해봅니다^^ㅎ

  2. Favicon of http://blog.daum.net/design11111 BlogIcon Yujin 2010.09.18 1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따뜻한 말한마디가 가장 중요한것 같습니다^^ have a good day!!

  3.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09.19 0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에휴 추석이네요!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4.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5.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Pussy Tube 2012.07.21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밝힌 코치는 아이스쇼가 끝난 직후에 발표하겠다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동어반복적인 기사를 송고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6. Favicon of http://blogskinny.com/?p=Recent BlogIcon Margo 2012.08.12 1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운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

  7. Favicon of http://comblank.com/blog/view/16044/what-you-need-to-prepare-a-crisis-food-sou.. BlogIcon emergency first aid 2012.11.26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김유신의 아내는 영모(하종/미모)이다. 드라마상 미실은 영모를 두번에 걸처서 유신과 짝을 만들려고 노력을 한다. 한번은 아막성 전투가 끝나고, 김서현가문이 서라벌로 입성할때, 가야파를 축출하는 과정에서 월식과 <가(伽)>의 파자를 사용한다. 그리고 김서현으로 하여금, 영모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도록 한다. 두번째는 풍월주 비재가 끝난후 또다시 가야파를 역모로 몰아 세운다. 그리고 영모의 혼사와 딜을 한다. 왜 미실이 가야파를 축출하려는 이유는 없다. 단지 극적으로 영모를 김유신과 짝을 맺어주어야 한다는 것만이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가야파는 화랑 깊숙히 개입하고 있었다. 문노가 풍월주에 오르는 579년 순간 부터이고, 김서현이 풍월주의 부재로 있었고, 또한, 천주공 또한 가야파로 있었다. 미생이 풍월주로 있었던 10세 풍월주시기에 가야파는 대원신통과 진골정통 사이에 또다른 신진 파벌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유신이 가야파를 위해서 정략적으로 영모와 결혼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만약, 있었다면 유신시대가 아닌, 유신의 아버지인 김서현 시대에 정략결혼이 있어다면 좀더 합리적이지 않을까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김서현 시대의 일을 <아들인> 유신의 일이 했음직한 일로 꾸미기 시작하면서 시대적 배경과 인물들이 꼬이기 시작해서 드라마가 산으로 간 케이스이다.


사실 이글을 쓰는 목적은 영모와 김유신의 결혼이나 드라마의 <선덕여왕> 원작의 부실함을 꼬집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영모가 왜 김유신과 결혼할 수 밖에 없었는가와 앞으로 명절증후군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종교적인 문제를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다.

김유신은 어릴적 첫사랑 천관녀를 잊지 못하고 술로 지새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와중에 어머니 문명의 꾸지람을 듣고, 천관녀를 잊지 못하여 술을 먹다 잠시 잠든 사이 일상적으로 말이 발길을 <천관녀>의 집으로 향했는데, 김유신은 자신의 말의 머리를 처서, 굳건한 의지를 표현햇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이다.

이 일화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전하지 않고, 단지, 파한집이나 신동국여지승람 등 에만 전하는 이야기다. 그러니 삼국유사와 삼국사기가 있은 후에서 삼국에 관한 기록들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김유신의 어머니는 <천관녀>를 멀리 하도록 하였을까? 단순히 <천관녀>가 미천한 가문이였기 때문에? 물론, 충분히 서현가문만으로 본다면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라시대 하늘을 보는 직책은 낮은 신분의 여인이 할 일은 아니다. 그러니 천관녀의 직위도 일정정도 신라에서는 존경을 받는 집안의 자식일 것이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많은 사람들이 <선덕여왕>에서 유신의 첫사랑 천관녀가 등장하지 않는것이냐?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역사왜곡이 심하다고 한다. 하지만, 글쓴이는 <선덕여왕>을 보면서 유신의 첫사랑 <천관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드라마 원작자가 어떻게 극을 전개하는 가는 상관없이 말이다. 드라마 전개상 선덕여왕 원작자는 <천관녀>도 없고, 영모도 단지 정략적인 결혼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고 영모와 천관녀는 다른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현존하는 화랑세기에서 행간을 읽다 보면 화랑세기에는 없는 <천관녀>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고 이전글에서 3가지의 이유를 들어서 이야기를 했다. 첫째는 종교적인 문제이고, 둘째는 정치적인 문제이고, 셋째는 개인간의 극히 사적인 문제라고 언급을 했다. 그렇다면 천관녀는 누구일까?  당연히 <영모>가 천관녀 이다. 이와관련된 기사는 다음과 같다.



화랑세기에는 파벌의 중심축에는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이 양대 축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권력의 중심은 진골정통이 차지하고 있었다. 진골정통은 왕실이 미는 신흥종교이고, 대원신통은 신라가 개국하는 시점에서 부터 왕비 알영이 맡고 있었고, 신라왕실에서 주관하던 신라고유의 <신도>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신흥종교인 불교가 유입이 되기 시작한다. 그것도 가장 먼저 왕실로 부터 수입되어 불교와 신도간에 치열한 대립이 생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김미추는 소문국녀의 후손인 "옥모의 후손이 아니면 왕후로 받아 들이지 말라는 유지를 남겼다". 마치 고려의 훈요십조를 보는 듯하지 않는가? 물론, 훈요십조는 정치적 암투의 소산이라는 설이 다수설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유지를 보는 듯 하지 않는가? 어찌되었던, 김미추는 신라에서 가장 먼저 불교를 수용하려고 노력했던 왕이다. 하지만 이는 잘 이루어 지지는 않았다.

그후 법흥왕때 이차돈의 순교로 정식으로 신라의 왕실에서 불교를 공인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래서 그후 왕실에서는 당당히 불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기존의 신교와는 약간의 거리감을 두기도 한다. 하지만, 불교가 신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므로 해서 신라에는 독톡한 신라만의 불교가 정립되는 것이다.

이와중에서 신라의 제사를 주관하는 신도의 최고집안인 옥진->묘도->미실로 이어진 가문과 지소태후->만호태후->만명으로 이어지는 진골정통의 최측근 왕족간에 종교적 알력이 김유신의 첫사랑인 천관녀 영모를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으로 만들뻔 하였다. 하지만 미실가문이 화랑을 장악하고 있었던 관계로 유신을 적극적으로 풍월주에 오르게 한다. 그리고 만호태후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취한다. 이에 만호태후는 미실의 제스처에 화답으로 <영모>를 유신의 짝으로 인정하게 된다.

호림공이 풍월주의 지위를 물려주겠다고 청하였다. 공은 사양을 하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에 15세 풍월주가 되었다. (만호)태후가 하종공의 딸 영모(令毛)를 아내로 맞이하도록 명하여 미실궁주를 위로하려고 하였다. 영모는 곧 유모(柔毛)의 동생이었다. 형제가 모두 선화(仙花)의 아내가 되었다. 그 때 사람들이 영화롭게 여겼다. 곧 건복(建福) 29년 임신년(612)이었다. 공이 풍월주의 위에 올랐다. - 화랑세기 15세 풍월주 유신

사랑의 아픔은 섹스피어에서 로미오와 줄리엣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현가문과 미실가문에서 유신과 천관녀인 영모사이에도 종교적인 문제와, 정치적인 문제와, 가문의 개인적인 호불호 때문에 가슴아픈 사랑이 있었다.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불행한 결말을 맺었지만, 김유신과 천관녀 영모는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을 맺고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매년 명절때 마다 벌어지는 일이 있다. 이는 종교적인 문제의 충돌이다. 차례와 제사상에서 벌어지는 종교적인 문제는, 차례상을 차리는 문제부터, 절을 하는 문제와, 제사음식을 먹는 문제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유별난 신흥종교가 있다. 이 신흥종교는 제사를 지내는 행위는 자신을 믿는 신에 대한 모독으로 여긴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여기서 <알 수 없다>는 말은 해당하는 종교의 경전을 살펴보면 그들도 자신들 나름의 제사를 지내고, 우상숭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스스로 이율배반을 저지르고 있다.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초기 불교가 한국식으로 정립된것과 다르게 이상하게 한국의 실정과도 다르고 그들의 원전과도 다르게 이질적으로 변형된 종교이기 때문에 <알 수 없다>라고 이야기를 한것이다. 이는 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러니 해당종교를 믿는 사람은 너무 흥분지수를 높일 필요성은 없는 것 같다.

현재의 한국 신흥종교는 극히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불교가 기존 질서와 환경과 문화를 포용하였을때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는 것만 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말의 전부이다. 어찌 되었던, 예나 지금이나 새로운 종교의 유입은 사랑하는 사람들간에 도 사랑을 이룰수 없도록 하고, 가족내 불화를 자초한다. 종교가 가진 무서운 점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명절증후군 중에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많은 가정이 그러하듯이 저희집 같은 경우도 동생과 제수는 종교가 다르다. 하지만, 각자 종교를 인정하고 수용한다. 물론, 사람속은 알수는 없지만,  명절날 종교 갈등으로 인한 명절증후군은 최소한 없는 것 같다.  어찌되었던 명절날 종교로 인한 증후군을 해소하는 방법은 서로간에 상대를 인정하고, 양보와 포용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즐거운 명절이 되셨습니까? 명절 증후군 없이 좋은 한주를 만드시길 바랍니다. ^___^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10.05 09: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포스팅이 늦으셨네요...
    근데 천관녀와 영모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천관녀가 나중에 김유신을 만났지만, 김유신을 뿌리쳤다고 하는 이야기를 읽었는데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한 주 시작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5 16: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ㅋㅋ
      김유신이 영모를 뿌리친 이유에 대한 설명이지요.. 그리고 영모인 천관녀는 유신을 향해서 시를 한편 짓지요.. 아마도 진달래꽃이 아닐까요.. 김소월의.. ㅋㅋ
      이를 안 미실가와 서현가가 화해를 하는 거지요.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듯이.. ㅋㅋ

  3. 둔필승총 2009.10.05 0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분석 잘 봤습니다.
    덕분에 활기차게 스타트하겠습니다.

    늘 행복하세요~~

  4. Favicon of http://blog.daum.net/moneyball BlogIcon 배리본즈 2009.10.05 0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절 잘 보내셨나요?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5. Favicon of http://3012.textcube.com BlogIcon 3012 2009.10.05 1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을 보지않아 지금 내용전개는 잘모르지만.....

    글 잘 읽고 가요 ^^

  6.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10.05 1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도 추석 잘 보내셨지요? ^^

  7.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10.05 1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극히 정말 지극적으로 공감하는 바 큽니다.
    내용은 사적인 이야기라 기술하기 힘들지만 ㅎㅎㅎ
    그나저나
    와인으로 우리는 해소 한답니다. ㅋ
    술을 즐겨 안하시니 언제 즐겨 하실만한
    와인 준비해드릴테니 연락 주시면 좋고요 ㅎㅎㅎ
    추석명절 잘 보내셨지요? ㅎㅎ
    이번주도 멋지게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5 16: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와인으로 위로를 하시다니.. 대단한 내공이셈.. ㅋㅋ
      말씀만이라도 ㄳ 합니당.. 눈으로 마시는 와인이 있다면 좋겠어용.. 카프리처럼.. ㅋㅋ

      추석은 언제나 존거지요.. 다른 추석보다는 좀더 많은 일을 했지만.. ㅋㅋ.

  8. Favicon of https://iconiron.tistory.com BlogIcon 레오 ™ 2009.10.05 1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은 죽었다 ..그러니 자유롭게 살아라' ..이런 구호를 외치는 단체도 있답니다 ^^
    즐거운 10월 되세요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5 16: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단체가 있지용.. ㅋㅋ 저는 신은 죽었다기 보다는 신은 없다 주의이니.. 있다면,,각자의 마음속에 인간이 만든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존 10월을 만드셈.. ^___^

  9. Favicon of http://blog.daum.net/okyhok BlogIcon 김윤희 2009.10.05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의 종교적인 문제를 양보와 이해라는 주제로 명절증후군을 해소하려는 갓쉰동님의 놀라운 풀이가 예사롭지 않으신 분이네요...
    즐거운 가을 날 되세요~

  10.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10.05 1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추석 잘 보내셨나요?
    스위스에도 보름달이 예쁘게 떴었답니다^^

  11. Favicon of http://blog.daum.net/duck52 BlogIcon 기서맘 2009.10.05 1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에 항상 감탄하고 갑니다.^^*
    추석은 끝났지만, 추석의 풍성함은 늘 함께하시는 10월 되셨으면 합니다.

  12. 보종보종^^ 2009.10.05 2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배타적이죠.

    그게 성리학을 강요했던 분위기가 그리로 간거 같아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얘기가 나왔듯이 그 신흥종교가 죽어야 나라가 살지 않을까... 그런생각도 듭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6 17: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설적이게도 그책은 공자가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 같았어용..ㅋㅋ
      신흥종교가 좀 티를 내기는 합니다.. 전혀 현대개념에 맞지 않지요.. 다시 예수가 나와야지 않을까해요..그 종교는.. ㅋㅋ

  13.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10.05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석 잘 보내셨나요?
    저희도 양쪽 어른들이 서로 다른데 이해하고 존중하고 살고 있네요.
    잘 보고 갑니다.

  14. Favicon of https://leeesann.tistory.com BlogIcon pennpenn 2009.10.06 06: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인 사실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군요~
    마지막 문장에 공감합니다.

  15. sunny 2009.10.10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유별난 신흥종교가 있다. 이 신흥종교는 제사를 지내는 행위는 자신을 믿는 신에 대한 모독으로 여긴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여기서 <알 수 없다>는 말은 해당하는 종교의 경전을 살펴보면 그들도 자신들 나름의 제사를 지내고, 우상숭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스스로 이율배반을 저지르고 있다.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초기 불교가 한국식으로 정립된것과 다르게 이상하게 한국의 실정과도 다르고 그들의 원전과도 다르게 이질적으로 변형된 종교이기 때문에 <알 수 없다>라고 이야기를 한것이다. 이는 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러니 해당종교를 믿는 사람은 너무 흥분지수를 높일 필요성은 없는 것 같다.

    현재의 한국 신흥종교는 극히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불교가 기존 질서와 환경과 문화를 포용하였을때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는 것만 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말의 전부이다.
    ---------------------------------------------------------------------------


    여기서 신흥종교라함은 기독교를 지칭하신 것이지요?
    제사를 드리지 말라함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외외...(여기서 제사라 함은 현대적의미로 예배를 말하겠지요)
    다른 신이나 귀신에게 제사를 드리지 말라 하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조상께 제사를 드리는 것을...
    초기 기독교 유입시..(아무래도 서양에서 들어온 종교이다보니 그럴수도 있었겠지만)
    조상에 대한 효로써의 의미가 아닌...조상신을 숭배하는 관점으로 보았기때문에....금한 것일테지요.

    어쨌든 성경에는...하나님 외에 나무든...돌이든...다른 무엇에도 절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절은... 사람간의 인사로서의 절이 아닌...
    (명절때 부모님께 절을 드리는 것은...기독교에서도 허용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대상으로서 절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사가 단순히 효로써의 예를 갖춘다는 의미도 있지만..
    일부는...조상귀신이 밥을 먹으러 온다는...전설의 고향같은데서 보면 말이죠...
    그리고 자손들은 조상의 혼께 자손들의 길흉화복을 빌죠.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에서는.. 제사는 단지 돌아가신 조상에 대한 효를 갖추는 그 예는 존중하나...
    그 예를 넘어서는...부분...
    돌아가신분이 귀신이 되어서...자손들이 차려놓은 밥을 먹으러 오고...자손들의 길흉화복을 좌지우지
    한다는...그런 미신적인 요소에 배타적인 듯 합니다.
    따라서 그런 형식적인 부분이 조상에 대한 예를 갖추는 것과 상관이 없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조상을 공경하지 말라는 것이 아닌,,,
    그 제사의 형식을 문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교의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불교, 유교, 기독교...모두 외국에서 유입된 사상과 종교입니다.


    전통은...새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제 기독교 역사가 100년이 넘었는데...신흥종교라 함은...조금 듣기에 거북합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보다도 긴것 같네요.


    기독교는.. 하나님이라는 유일신을 대상으로 숭배하는 종교로서...
    즉...다른 신들의 존재에 대해서 배타적인 종교가 맞습니다.

    그러나...배타적이라고 해서 한국실정을 무시하고 전통을 말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단, 종교적인 관점에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과
    다른 신을 함께 모실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특성을...배타적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에 반해서....

    불교는 특정 대상을 숭배하는 종교라기 보다는...
    한 개인 수양을 쌓음으로써...어떤 경지에 이를수 있다는 ...어떤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이 아닐까요?

    석가모니는 자신을 신격화 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석가모니 자신이 신이 아니라고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석가모니를 신격화하는.. 불교 역시 알수가 없는건 마찬가지이지요.
    (유교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효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조상을 신의 경지에 올려두었습니다.... )

    기독교가 제사등에 대해 터부시하는 것 마찬가지로...
    유교/ 불교 역시 타 종교에 대해서 배타적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왔을때...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의 목숨을 빼았았습니까?


    기존질서와 환경 문화를 포용하였으나.....
    새로운 사상을 쉽게 포용 하지는 못하였던것 같습니다.

    • 딸기공주 2009.10.13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와.............................
      정말 글 잘 쓰셨네요. 내가 달고 싶었던 댓글을 유감 없이 표현 하시고 너무나 박식한 내용 살짝 퍼가요. 그리고 나쁜 글에 좋은 댓글들 부탁해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14 00: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생각하시는 군요.. 어쩌겠어용..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건 사실인뎅.. ㅋㅋ

  16. 신천지인 김덕호 2009.11.27 1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MBC문화방송 PD수첩이 지금까지 한국사회 끼친영향은 굉장하다
    진실을 밝혀내고 그늘에 묻힌것을 밖으로 들어내고 외롭고 힘없는 자들의 대변해온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99이사실이고 1가 거짓이면 그하나의 거짓은 사실로 시청자한테 인식되고 만다
    그 하나가 라는게 문제다 국민의 건강을 내세운 [광 우 병]보도 미스테리의[ 황우석박사]모든것을 흥미위주의 제작과 사실무근 이라는 사실이다
    마치 mbc가 사회의 정의가,자신들이 피해을 받고있다고 착각하는 그차체가 잘못된 것이다
    사실을 숨기고 있는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살아진 mbc PD수첩의 제작진은
    스스로를 합리하 시키는 일을 중단해야 된다
    조그만 종교단체 하나 정도는 방송을 방영하면 무너져 버릴것 같다는 제작의 의도는 너무나 큰 오산 이었던 같습니다
    거짓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거짓제보를 확인도 안하고 제보자의 제보만 믿고 제작한 pd수첩은 제보자의 탓 으로만 돌리지 말고 그거짓 제보에 의해 제작되어 많은 사람이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헌법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 임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비난하고 타종교 단체와 결합하여 비겁한 방송을 제작해온 mbc는 반성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것이다.
    신천지가 사회적으로 피해를 준것은 없다
    그들이 주장하는 피해는 자기 성도(교인)가 줄어가는 탓을 신천지로 돌리기 때문이다 자기성도 관리, 즉 자신들이 성경 말씀부족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신천지가
    감언이설 ,이단론 등으로 현혹한다는 말은 어른한테 눈깔사탕 줄테니 우리교회
    가자고 하는 것과 같다 스스로 판단의식을 가지고있는 성인들이 그런 단순한 눈속임으로 자신의 신앙을 그렇게 쉽게 판단치 않을 것이며
    수만이 넘는 신천지인 들은 지각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신앙을 선택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잘못을 인정하고 보다나은 방송인이 되기위한 첫걸음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잘 알지도 못하고 괜히 신천지를 비방하는 분들은 자신의 글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며 알고싶으면 신천지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 한번 해보십시오
    거기에서 천국을 만날 것입니다.

  1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8. Favicon of http://hannahnaldo.typepad.com/blog/2012/04/survival-sets-how-to-pick-the-best.. BlogIcon mre vs mountain house 2012.11.01 1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9. Favicon of http://www.millionaire.it/content/view/1841/67/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 blinking green 2012.11.05 16: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로 몰아 세운다. 그리고 영모의 혼사와 딜을 한다. 왜 미실이 가야파를 축출하려

  20. Favicon of http://poplicks.com/v1/labels/QOTW.html BlogIcon portable fences for dogs 2012.12.20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함 때문에 쉽게 이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전문 소프트웨어인 포토샵만큼은 아니더라도

  21. Favicon of http://survivalfood555.webnode.com/ BlogIcon micro filter gutter guard 2012.12.31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유신이 가야파를 위해서 정략적으로 영모와 결혼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성골은 있었을까?


드라마 선덕여왕 38회에서 명절 추석맞이 대 바겐세일 떡밥을 무차별적으로 투하 하였다. 견적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무분별하다. 일단 드라마 <선덕여왕>의 리뷰를 작성하면서 무엇이 떡밥들인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혹시 모르는 떡밥이 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문노를 죽인 범인이 밝혀졌다. 비담이 물어본다.  "저 어린 놈<춘추(유승호)>이 문노를 죽이도록 사주했다는 말이냐?" 염종은 춘추가 배후가 아니라고 한다. 전회의 예고 장면은 떡밥이였다. 그러니 시청자들에게 오해를 풀라는 뜻이다. 춘추가 삼한지세를 읽어 본 이유는 자신이 그저 읽어 보라고 했을 뿐이라고 한다. 이유는 염종이 삼한지세의 주인으로 <춘추>를 낙점했기 때문이다.


비담은 염종에게 춘추를 보고 "덜떨어진게 왕족?"이라고 물어본다. 염종은 "덜떨어진건 모르겠는데, 왕족은 맞어, 진지제가 폐위되어 족강이 되지 않았다면 성골은 확실하다"고 한다. 정말? 춘추는 할아버지 "진지(금륜)이 족강이 되어, 성골이 되지 못했을까?

만약, <선덕여왕> 원작자가 <화랑세기>를 <사서>로 믿고 있었다면, 춘추가 족강이 되어 성골이 되지 못했다고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라사의 용가리 통뼈가 무슨 성골.진골인줄 안다. <화랑세기>는 성골.진골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으로 <불교>와 <선도>의 종교적인 분류만이 있을 뿐이다. 진골정통은 <불교>를, 대원신통은 신라고유의 <선도>를 믿는 다는 차이다. 그리고 <골>은 왕족과 귀족 등으로만 구분하고 있을 뿐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살펴봐도 <진지(금륜)>이 폐위되었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이 <족강>이 되어 <진골>이 되었다고 언급이 되어 있지도 않고, 춘추 이전의 왕들과 춘추이후의 왕을 구분하는데 단순히 2분법적으로 나누고 있을 뿐이다.

만약, <춘추>이전의 왕들을 <성골>로 나눴다면, 눌지이후의 왕들은 모두다 <진골>일 수 밖에 없다. 그이유는 눌지이전의 왕은 실성왕이다. 눌지가 고구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실성왕을 폐위시키고, 쿠데타를 성공시켰다.

문제는 눌지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자비왕은 실성왕의 딸인, 눌지왕비의 소생이다. 자비는 곧 폐위된 왕의 외손이 된다. 통설에 따르면, 실성왕녀인 눌지왕비는 <족강>이 되어 <진골>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용춘의 예에 따라 그의 후손인 <자비왕>도 마찬가지로 <진골>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눌지 자신은 성골 진골 그런게 무슨 개뼈다귀냐는 듯이 상관하지 않고, 자비왕(눌지/실성왕녀)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458년 자비 마립간(慈悲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눌지왕의 맏아들로 어머니 김씨는 실성왕의 딸이다. - 자비왕 원년


또한, 진흥왕도 법흥왕의 아들이 아니다. 그러니 성골로서 왕이되지 못했다. 지증왕도 성골로 왕위를 이어 받지는 못했다. 단지 왕족으로서 전왕인 소지(비처)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받았을 뿐이다.

진평왕은 머리가 어떻게 되서 자신의 딸인 천명공주를 폐위된 진지(금륜)의 자식(용수와 용춘)에게 시집을 보냈겠는가? 천명을 족강시키기 위해서? 아니면 전왕의 자식들과 화해할려고?

단순히 성골은 <성조(聖祖>나 <성조(聖朝)>의 다른 말이다. 왕보다 성스러운 존재가 어디에 존재하겠는가? 그런데 갑자기, 왕이나 왕의 자제를 성골 밑의 진골이라고 생각하는 발상자체가 웃기는 것이다. 좀더 정확한 <성골>의 의미는 현재 왕의 피와 살과 뼈를 이어 받는 자이다. 또한, 삼국사기가 인용한 당나라 영호징의 <신라기>에도 <왕족>을 <1골>이고, 귀족을 <2골>이라고 이야기 했다.

당나라 영호징(令狐澄)의 신라기(新羅記)에 말하기를 『그 나라의 왕족은 제1골(第一骨)이라 하고 나머지 귀족은
제2골(第二骨)이라 한다.』- 654년 3월 진덕왕 8년

영호징의 신라기에도 왕족은 제1골인 진골이고, 나머지 귀족들는 제2골일 뿐이다. 성골은 누구냐고? 당연히 현재왕의 뼈를 이어 받는 왕자와 공주들이다.

그러니 당연히 춘추는 진평(백정)이나 선덕(덕만)이나 진덕(승만)의 피와 살을 이어 받지 못했던 왕족으로 왕이 되었다. 그리고 춘추 자신이 <성골>이 된것이다. 문무는 김춘추왕의 뼈를 이어 받았으니 당연히 <성골>로서 왕이 된것이다.   신라사 연구의 가장 커다란 통설의 실패작은 <성골>, <진골>을 구분하는데 있다. 그런데 이런 성골/진골론을 "무슨 귀신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그런건 없다"고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말을 하고 있다.

사실 화랑세기를 위작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내면을 보면 개나라 족보때문이 아닌 <성골/진골>를 나눈 그동안의 신라사 연구 성과(?)가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 추후 이와 관련해서는 기회가 된다면 자세하게 포스팅할 예정이다.

비담과 춘추는 어떤 사이?


드라마 <선덕여왕> 상에서 비담과 춘추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용춘과 비담의 가계도


위의 가계도에서 알수 있듯이 비담은 춘추의 작은아버지가 된다. 비담은 춘추가 자신의 조카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춘추는 모르고 있다. 그래서 비담은 당연히 춘추에게 반말을 한다. 하지만, 비담의 정체를 모르는 관계로 "왜 반말하냐"고 반문을 한다. 이에 비담은 난 덕만공주에게도 반말하는 사이라고 얼버무린다.


염종이 용춘대신 춘추를 선택한 이유는?

염종은 삼한지세의 주인을 유신이 아닌 춘추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유는 전왕(진지)의 손이기 때문이다. 그냥 용춘이나 용수에게 주면 간단할 것을 왜 춘추가 되어야 한다고 했을까? 당연히 춘추가 진덕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염종이 춘추를 <삼한지세>의 주인으로 설정한 것이 너무나 드라마 <원작자>의 "작위적인 냄새가 난다"는 뜻이다.

언제 춘추를 키워 왕으로 만들겠는가? 이미 권력의 정점에 있는 용수나 용춘을 밀면 쉬운데 말이다. 염종이 춘추를 조정하기 위해서라는 변명은 좀 아니올시다가 되시겠다. 이에 비담은 염종의 말을 듣고 속으로 그렇다면, 진지왕의 아들인 나 비담이 삼한지세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게 맞다는 듯이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비담의 남발하는 썩소만큼이나 처음에는 산듯한 한 느낌의 염종(엄효섭)의 연기가 너무나 오버스럽고, 작위적이라서 점차 거슬린다. 물론, 나만의 느낌일 뿐이다.

경제는 심리다.

덕만(이요원),알천(이승효),소화(서영희)

미실을 비롯한 보종, 하종 수품 등 귀족들이 매점매석을 통해서 자영농과 소작농 들을 자신들의 노비로 만들기프로젝트를 감행한다. 이에 덕만은 시장조사를 통해서 그 우두머리가 미실임을 알아 낸다.

그런데 시장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동시(東市)>와 <서시(西市)>를 두루 살펴보는 장면이 나온다. 황실의 곡식창고를 열고, 또한, 군량미까지도 풀어버리겠다고 미실을 협박을 한다.현재도 외환이나 금리나 부동산에 개입을 할때, 구두개입부터 한다.

또한, 독과점이 발생했을때 법으로 제재를 가하기도 하지만, 구두개입을 통해서 오버슈팅이 되는 것을 방지를 하고, 급격히 시장이 냉각되었을 때는 구두개입을 통해서 부양책을 펴기도 한다. 경제는 <심리>이기 때문이다.  덕만은 역시 왕이 될 자질이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가 드라마 선덕여왕에 대한 평이다.

동시와 서시가 있었을까?

드라마 원작자는 <동시>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당연히 동시가 있으니 <서시>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하지만, 천만의 만만의 콩떡이 되시겠다.

490년 처음으로 서울에 시장을 열어 사방의 재화를 유통시켰다. - 소지왕 12년
동시전(東市典)은 지증왕 9년(508)에 설치하였다.감독관은 2명이었다. 관등이 나마에서 대나마까지인 자로 임용하였다. 대사(大舍)는 2명이었는데 경덕왕이 주사(主事)로 고쳤으나 후에 다시 대사로 일컬었다. - 삼국사기 잡기

4년(695) 자월(子月)을 정월로 삼았다. 개원(愷元)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겨울 10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중시 원선(元宣)이 늙어서 관직에서 물러났다. 서시(西市)와 남시(南市)의 두 시장을 설치하였다. - 효소왕

흉년기록을 살피고 있는 덕만

동시는 490년 소지왕 12년에 처음 만들어지고, 508년에 <동시>에 관리를 두어 감독케 하였다. 하지만, <서시(西市)>와 남시(南市)는 695년 효소왕 4년에 처음 만들어진다.

그러니 612년 즈음해서 서시(西市)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덕만이 찾은 자료는?

또한, 덕만이 미실과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해답을 얻는다. 미실은 질문을 하고 덕만은 대답을 한다. 그리고 덕만이 답을 찾아 갈수 있도록 인도를 한다. 한마디로 미실은 덕만의 스승이다. 미실에게서 답을 찾을수 있는 힌트를 얻은 덕만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책을 살핀다. 

"이겁니다. 이거였어.. "흉년이 있던 진지제 2년 가을,3년 7월 건복2년, 13년, 28년 흉작이 있던해에 귀족들의 토지와 노비가 증가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미실에 대항할 해법을 찾아 낸다. 시장에는 시장으로 장사에는 장사로 대응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극히 단순하고 심플하게 대응 방법을 찾는다. 사극은 현재의 상황을 사극을 빙자해서 세태풍자를 하는 목적성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원작>의 부실함이 드러난다. 진지왕시기 흉년에 관한 기록은 한줄도 없다. 건복원년은 드라마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비담이 태어났다고 하는 해이다. 이때가 드라마는 진지왕때라고 한다.

하지만, 건복원년은 진평왕 6년에 해당하는 584년이다. 어찌되었던 건복 28년은 611년이다. 611년 흉년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6년(584) 봄 2월에 연호를 건복(建福)으로 바꾸었다. - 진평왕 6년

진평왕 시기 화폐로 철정이 사용되고 있었을까?

철정(덩이쇠)


드라마상 진평왕 시기 화폐의 교역을 여전히 <철정(덩이쇠)>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정이 교역품으로 사용되기는 했지만, 내부적으로 화폐로 사용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특히 철의 사용이 일상화된 612년 진평왕 34년인 시대에 200~400년대의 상고시대에 교역품으로 사용되어진 철정이라니. 그 무거운 철정을 시장의 화폐로 무엇에 쓰겠는가?

그렇다면 당시에는 무엇을 가지고 화폐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었을까? 이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드라마 <선덕여왕>덕분에 글쓰는 양이 늘어난다. 이를 좋다고만 해야 하나?


김춘추(유승호),염종(엄효섭), 보량(박은빈)

설원랑(전노민)의 집에서 춘추(유승호)와 보량(박은빈)의 데이트가 밤새는 줄도 모른다. 춘추는 사람과 이름을 연결시키지 못한다. 한번만 봐도 내용을 꽤뚫는 춘추에게도 약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보량과 춘추의 대화가 의미 심장하다. 춘추는 보량에게 마당에 있는 자가 김인문이냐고 물어본다. 

보량은 이찬 임용지(?)라고 한다. 백제가 가잠성 을 쳤을때 부장군으로 참전하여 승리하여 병부의 재령까지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한산주도독을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찬이 한산주 도독(3~4등위)의 직위를 할 이유가 없다. 이찬은 2등위에 해당하는 고위관리이다. 파진찬(4등위)이라면 모를까?

그리고 김인문은 하슬라주 군주라고 한다. 김인문을 잘 기억해두기 바란다. 김인문(629~694년)은 김춘추와 문희사이에서 장자 법민(문무)의 뒤를 이어 태어난 두번째 아들 이름과 같다.  김인문이 김춘추와 문희가 언제 만나 관계를 하고 법민을 낳았는지를 알려주는 <네비게이터>이다. 김인문이 태어난 629년은 진평왕 51년이다. 덕만이 왕이 되는 632년 이전 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당연히 덕만이 공주일때 춘추와 문희의 매파였다는 뜻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백제가 침입한 가잠성 전투에서 신라가 이겼을까?
611년 겨울 10월에 백제 군사가 가잠성(椵岑城)을 포위하여 100일이나 지속되었다. 현령(縣令) 찬덕(讚德)이 굳게 지켰으나 힘이 다하여 죽고 성은 함락되었다.

기록상 가잠성은 백제의 승리로 결말이 난다. 극에 몰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고도의 mbc 안티사극 전술이 아니라면,  추석 명절을 기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진과 원작자나 극본을 쓰는 사람들의 설정이 얼마나 어설픈지 한번이라도 고증을 받을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그동안 고증이 없었다면 정말 큰일이고 고증을 받은 수준이 이모양이라면 고증을 한 전문가를 바꿀 필요성이 있다.

어찌되었던 덕만(이요원)도 어찌하지 못하고, 유신(엄태웅)도 어찌하지 못한, 천둥벌거숭이 김춘추에게도 천적이 존재하게 된다. "귀신도 부릴줄 안다"는 비담(비형랑:형종)이다. 비담의 귀신 수하인 길달은 염종이 아닐까 했는데,  춘추가 비담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니 길달이 춘추가 되는건가?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9.30 08: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김춘추가 범인이 아니었군요.
    근데, 염종과 비담이 어떻게 손을 잡게 되는지 궁금하군요.
    오늘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2. Favicon of https://fotolife.tistory.com BlogIcon ageratum 2009.09.30 11: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뒤늦게라도 선덕여왕을 보기 사작해야할거 같아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3.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9.30 1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로나온 떡밥들....
    천만의 만만의 콩떡이군요 ㅎㅎㅎ
    언제나 진지한 그렇지만 재미있는 역사 사실들
    고맙습니다.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9월 마무리 잘하셔
    멋진 10월 만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4. 2009.09.30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공갈기동대 2009.09.30 17: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밀한 분석에 감탄 만발일 뿐 입니다.....

    그리고, 포스팅을 보고 나니 생각나는 건데....

    드라마 속의 철정이라는게......

    과거의 교역수단이었던 "은괴" 같네요?......

  6. Favicon of http://potatobook.tistory.com/ BlogIcon 감자꿈 2009.09.30 1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을 무서워하는 춘추의 모습이 정말 재밌었어요.
    제목 보고 웃음이 나왔네요.
    잘 읽고 갑니다. ^^

  7.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朱雀 2009.09.30 2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침엔 정신없어서 이제야 읽고 갑니다. ^^/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8. Favicon of https://azcaprice.tistory.com BlogIcon 아르제크 2009.09.30 23: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변함없는 좋은 분석입니다^_^
    특히나 성골진골과 김춘추 족강 운운에 대해서는 꼭 화랑세기가 아니더라도, 기존 정설이라고 하는 해석이 (갓쉰동님 분석과 동일한 논리에 의해서) 맞지 않는 것 같기 때문에 실제 사학계에서도 재고찰이 필요한 문제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1 03: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답은 심플한곳에 있는데.. 너무 심취들을 하더군요.. 기존설을 다 합치면 당시 신라인들은 머리아폈을 것 같아용.. ㅋㅋ

  9. 갓쉰동 최고 2009.10.01 2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왕실은1골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귀족들에해당하는 등급이 2골이었죠.
    이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등장합니다. 현재 진보사학계를 이끌면서 참된 역사교육을 목표로 주류학게와싸운다는 역사교사들이 모인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도 한국사새로보기나 살아있는 한국사교과서를 통해서 등장하엿죠. 그러나 진평왕이 덕만을 즉위시키기위해서 골품제를 정했고 이후 무열왕계가 중앙집권을하는 과정에서 정통성을 확립하기위해서 강화시켰다는 섫이있습니다. 그래서 그이후 왕족은 성골과 진골로 나뉘어지고 귀족들사이에서도 왕족출신의 제1귀족을 진골 2귀족을 6두품등의 형식으로 니누었습니다.
    한마디로 조선시대에 양천제를 시행하였으나 양반들이 특권을 부여하기위해서 반상제를 시행한것과 비슷한것으로 이해하시면 쉬울듯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토요일에 방영하는 kbs역사스페셜을 참조하시고 관련서적을 참조하시면 좋을듯합니다.
    관련서적은 삼국사기는 비록 욕을 먹기는 하지만 가장 대중적인 이병도 진단학회장것을
    삼국유사는 불교관련서적인 만큼 동국대 사학과 이재호님이나 스님들께서 번역하신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화랑세기는 참조자료로만 사용하시는 것을 권하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함께 분석하기를 권합니다. 추천을 하자면 서강대 이종욱총장님이나 국민대사학과 여성구님것을 추천합니다.
    저는 다 소장하고있습니다. 이쪽이 원전해석은 가장 잘 되어있죠.

  10.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1.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Pussy.Org 2012.07.12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자비왕은 실성왕의 딸인, 눌지왕비의 소생이다.

  12. Favicon of http://www.gobet1x2.com BlogIcon gobet1x2 2012.09.03 1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후의 왕들은 모두다 <진골>일 수 밖에 없다. 그이유는 눌지이전의 왕은 실성왕이다. 눌지가 고구려의 지원을 등에 업

  13. Favicon of http://9blogtips.com/10-best-online-english-spelling-grammar-checkers-writing-.. BlogIcon online grammar checker 2012.09.08 2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유의 한가위인 가배를 중국식 작명

  14. Favicon of http://www.bean-bags-r-us.com.au BlogIcon bean bags 2012.09.16 05: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손이 된다. 통설에 따르면, 실성왕녀인 눌지왕비는 <족강>이

  15. Favicon of http://www.afrobond.com/blogs/viewstory/2020 BlogIcon survival food storage buckets 2012.11.26 2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조금만 오서의 인터뷰나 메일만 확인해도 오서의 거짓말은 그냥 들통나고 만다. 하지만, 한국의 발기자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한 발기자가 글을 쓰면 카피앤패스트 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급수가 높은 발기자들은 위치만 위로 아래로 순서만 바꾸어 조절만 한다. 이들에게 분석기사를 바라는 것은 지구가 멸망하는 날이 되어도 오지 않을 것이다.


  16. Favicon of http://village2.altermedia.info/blog/view/197280/emergency-food-items-101 BlogIcon water canister filter 2012.12.06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약, <선덕여왕> 원작자가 <화랑세기>를 <사서>로 믿고 있었다면, 춘추가 족강이 되어 성골이 되지 못했다고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라사의 용가리 통뼈가 무슨 성골.진골인줄 안다. <화랑세기>는 성골.진골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17. Favicon of http://www.cheaphelmetsonlineshop.com/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조금만 오서의 인터뷰나 메일만 확인해도 오서의 거짓말은 그냥 들통나고 만다. 하지만, 한국의 발기자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한 발기자가 글을 쓰면 카피앤패스트 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급수가 높은 발기자들은 위치만 위로 아래로 순서만 바꾸어 조절만 한다. 이들에게 분석기사를 바라는 것은 지구가 멸망하는 날이 되어도 오지 않을 것이다.

  18. Favicon of http://www.gomonews.com/guest-post-the-important-advantages-of-using-vpn-servi.. BlogIcon VPN services advantages 2013.01.27 1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기에 시간 때 약 상태, 하지만 다른 사람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당신과 다른 두 명의 서로 다른 개인 됩니다.

  19. Favicon of http://www.dailykos.com/user/lhaizza BlogIcon daily kos 2013.05.05 2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사이트를 찾아 정말 기쁘다. 그것은 나에게 내가 사용하는 수 많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멋진 아이디어를 공유 작성자에게 엄지 손가락.

제사와 차례는 엄밀히 이야기해서 조금 차이가 있다. 그러나 추석은 제사였지 차례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설날이나 추석, 한식 등 명절에는 조상에 차례를 지낸다고 한다. 차례를 말할때 한자로 다(茶)례로 쓰고 읽기는 <차례>라고 한다. 차마시는 다도는 같이 차다(茶)를 쓰면서 <다>라고 읽는다. 그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다. 유사한 사례로 수레차(車)를 수레거(車)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37대 선덕왕이후 일년에 여섯 번 5묘에 제사지냈으니, 곧 정월 2일·5일, 5월 5일, 7월 상순, 8월 1일·15일이었다. - 삼국사기 제사 신라

요즘 드라마 <선덕여왕> 때문에 오해가 있는 분을 위해서 신라의 제사기록은 27대 선덕여왕이 아니고, 780년 37대 선덕왕때 일이다. 신라는 1년에 6번의 제사를 지냈는데 그중 8월 15일 한가위 날에도 제사를 지냈다. 일본승려 엔닌의 기록이나 수서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라에게는 8월 15일은 지금의 광복절 만큼 중요한 날로 기념하고 있다. 추수감사제로 중요한 날이 이날 하필 전승기념일까지 겹쳤다면 겹경사가 아닌가? 만약, 8월15일 광복절이 음력 8월15일이 되었다면 안봐도 DVD가 아닐까한다. 
 
관련글: 전승기념일이다 라는 있는 근거를 2009/09/26 - [역사이야기] - 중국 중추절은 신라 진평왕의 고구려 승전기념일? 글에서 <삼국사기>를 근거로 중추절은 진평왕의 603년 8월 대고구려 북한산성전쟁이나 668년 가을 고구려의 멸망을 기념하는 전승기념일이라고 주장했다.  

엄밀히 이야기해서 제사와 차례는 다르다. 하지만 요즘은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특정인을 기념할때는 제사라고 하고, 조상신 전체를 대상으로 할때는 차례라고 하는 듯하고, 상차림과 행사전반을 <차례>라고 구분하는 듯하다. 하지만 옛 조상들은 엄밀하게 구분하여 지낸것 같다.
 
왕실이나 양반들은 조상의 묘에 특별히 제사와 묘를 관리하는 <수묘인>을 두었는데, 이에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와 <수묘인>의 생활과 음식장만 등 전반적인 묘관리소를  <재실>이라고 불렀다. 왕실에서는 녹을 받은 관리를 두고 왕릉을 보살피고 <전답>에서 나온 물품으로 제사를 치르고 하였다. 
  
제사와 차례를 구분해서 사용하였다고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특별히 제사말고도 차례만을 지낸 기록이 보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차례만 지낸때는 언제일까? <동지다례>라고 해서 동짓날만 다례를 지낸다. 동지에 다례를 지내는 이유는 겨울의 끝이고, 태양이 가장 낮은 곳에서 떠오르는 첫날이며, 실질적인 당해년의 시작과 전년의 끝이다. 그러니 새롭게 시작한다해서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깨끗한 물로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것이 아닐까한다. 산천에 제를 지내는 것은 제왕이 만이 할수 있는 일이다.

어찌 되었던, 새해의 시작이란 의미가 강하고, 동지때가 되면 먹거리가 떨어질때 이니 하늘맞이로 차릴것은 없으니 차례로 대신한 것이 아닐까? 아니면 벽사의 의미가 강하지 않았을까한다. 민가에서의 <정안수>떠 놓고 하늘에 비는 것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현재까지 알려지기로는 보성의 차밭이 유명하지만 처음 차가 들어와 재배된 시기은 신라시대 말엽이 아닐까 한다. 물론, 차와, 다례예법은 그보다 오래 되었을 것이다. 도교 선의 용도로 사용되어진 차가 불가의 선종과 결합하여 다예가 되고 다도(차도)가 되었다. 그런 많은 사람들은 <차도(다도)>를 산사의 암자에서나 선을 행하면서 먹는 것으로 치부를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차마시는 것을 일상처럼 하고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다례를 검색하다 보면 수천개의 <다례>기록이 나온다.  태종 이방원이 태상왕인 이성계와 차마시기 기록으로 부터 철종때까지 차마시기에 관한 무수한 기록들이 널려있다. 외국사신과 차마시기를 했다. 신하와 차마시기를 했다. 왕이 신하의 집을 방문해서도 차마시기를 즐겼다고 한다. 조선이 불가에서 널리 퍼진 차문화을 억압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또한, <차마시기>가 억불숭유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고 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한다.

제사가 차례로 바뀐 이유?
 

천명과 미실사이에 있는 다기


최소한 손님이 찾아오면 차마시기가 일상사였을 것이다. 요즘 사극을 보면 무조건 손님이 찾아오면 술마시는 것을 그리고 있지만, 술상보다 먼저 차를 대접한다. 그러니 사극에서 안주인이나 노비들에게 "주안상을 내와라" 하는 술마시고 놀자판으로 그리는 것은 고증에서 벗어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자주 목격되는 장면중 여러사람이 모여있으면 차를 마시는 장면이나 다기들이 테이블위에 자주 등장한다. 물론, 당시에는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화려한 칠보채색자기는 등장하면 안되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던 조선시대 제사는 손님이 찾아오는 것 만큼 일상사이다. 그래서 차례란? 제사가 흔함의 자조섞인 말의 변형이 아닐까?

최근에는 많이 변하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명절이나 제사를 준비하는 건 여인들의 몫이였다. 지금도 며느리들이 명절날 시집에 가서 제사상이나 차례상을 차리고 나면 명절증후군이 생긴다. 이시기를 지나면 부부간에 금이 가는 수가 많고, 이혼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명절은 우리내 어머니이고, 며느리, 누나 동생인 여성들에는 힘들고 힘든 고역이 된다.

제사, 차례 상차림


예전에 종가집이나 어느정도 산다는 집은 1년에 지내는 제사가 수십차례이니 일상의 <차마시기> 만큼 흔하디 흔했다. 차를 내오는 것만큼 그집 안주인에게는 흔한일이고 한번의 제사를 지낼려면 수일은 준비해야 하니 일년중에 50~100일은 제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요즘은 제사가 많이 줄고 단촐해 졌다. 처자들이 종가집 장손이나 일반 적으로 맏아들에 시집을 가려하지 않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사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중에 하나였다. 그렇지 않다면, 제사가 차례가 될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한다. 며느리들의 자조적인 말이거나 종손들의 자조섞인 제사상이 차례상으로 변형 되었을 것이다.

 
또한 제사에 참여해야하는 사람도 차마시기 정도에 지나지 않을 만큼 <일상사> 정도로 치부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르신들이 아랫사람들에게 조상을 손님맞이하는 것처럼 성심과 정갈하게 하라는 뜻일 지도 모른다. 어려운듯 하지만 쉽게 정성으로 지내라는 의미일수도 있다.

현재 이글을 올린  포스팅한 기사가도 다음 뷰 사는이야기/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이다. 차례란, 일상다반사<茶飯事>사 처럼 차나 밥먹는 것 만큼 일상적인 일이다. 옛날 여성들에게는 제사가 일상다반사 인것이다.

추석, 한가위, 중추절 처럼 
모든 문화 유래에는 한가지로만 이루워진 것이 없고,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융화되어서 생긴것이니 한가지로 유래를 찾는것은 맞지 않는것 같다. 

위에서 언급을 했지만 시대에 따라 명절의 내용과 형식이 바뀌고 있다. 남성들이 여성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면, 명절날 스스로 음식이나 설거지 등에 적극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한다. 그것이 명절이후 벌어진 명절증후군에서 쉽게 벗어나고 가정이 화목해지는 길이 아닐까 한다.

2009/09/27 - [역사이야기] - 추석, 한가위, 중추절과 차례상의 감춰진 진실찾기
2009/09/26 - [역사이야기] - 중국 중추절은 신라 진평왕의 고구려 승전기념일?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Favicon of http://www.nanjang.go.kr BlogIcon 문화메타블로그 난장 2009.10.01 1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문화메타블로그 난장의 운영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문화메타블로그의 글들 중
    우수한 포스팅을 모아 오픈캐스트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
    갓쉰동님의 글이 우수하여 문화메타블로그 난장 오픈캐스트
    http://opencast.naver.com/NJ555 에 실었습니다.
    우수한 포스팅을 난장에 제공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링크는 블로그로 바로 걸리기 때문에, 트래픽은 바로 이곳으로
    연결됩니다.
    구독하시면, 추후 난장의 좋은 포스팅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갓쉰동님의 글이 또 실릴수도 있겠지요? :)

    난장에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

    * 난장 이야기 추석 특집호를 만들다 보니, 갓쉰동님의 포스팅이 좋아
    두개나 싣게 되었습니다. 영광입니다 :)

  3. 미나 2009.12.18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례는 간단하게 차나 마시면서 지내는 것이랍니다.

  4. Favicon of http://getreadylosangeles.com BlogIcon 김용대 2012.01.01 0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끌모아 태산

  5. Favicon of http://bikexcapes.com BlogIcon 고명진 2012.01.07 04: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큰 최고야, 당신은 날 계몽있다

  6. Favicon of http://james1950.garmanage.com BlogIcon 사만다 2012.04.04 0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가 안갑니다.

  7. Favicon of http://edward.is-a-hard-worker.com BlogIcon 새디 2012.04.06 0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8. Favicon of http://hollywood.blogdns.org BlogIcon 줄리아나 2012.05.11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은 오해였습니다.

  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0.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1.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2.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niches/granny.php BlogIcon check this out 2012.07.14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수는 극히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시위를 하였고 경찰들이 폭력진압이였을 뿐이다

  13. Favicon of http://hubshout.com/?As-A-Web-Design-Reseller,-You-Can-Achieve-Great-Things-In.. BlogIcon Neeper 2012.09.29 1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을 초월한다. 한신이 동네 불량배들에게 몹쓸 짓을 다 당하고,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가면서도, 인내하듯이 비담도 김서현의 부하들에 죽도록 맞아 가면서 참았다. 하지만, 식탐, 정확히

  14. Favicon of http://marizmonroy.livejournal.com/1764.html BlogIcon n100 respirator protection 2012.11.01 1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이 마흔일곱의 나이에 등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네요. 젊은 나이에 성조황고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

  15. Favicon of http://grasshopperherder.com/business-model-canvas-for-puppies-part-i/ BlogIcon puppy fence panels 2012.11.07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적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수많은 새로운 브랜드 이름은 다른 가전 제품과 함께

  16. Favicon of http://www.cheaphelmetsonlineshop.com/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수는 극히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시위를 하였고 경찰들이 폭력진압이였을 뿐이다

  17. Favicon of http://www.cheaphelmetsonlineshop.com/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수는 극히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시위를 하였고 경찰들이 폭력진압이였을 뿐이다

  18. Favicon of http://mackhuise.posterous.com/survival-kits-for-any-situations BlogIcon hurricane survival kit hawaii 2012.12.10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아무리 미국이 광우병내성을 지니고 있더라도 유전적 결함으로 자연발생적으로 발견되어야 하는 광우병소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도축되기전에 소멸되었거나 도축과정에 은폐되거나 검역과정에 통과되어 전세계 식탁에 올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19. Favicon of http://mackhuise.posterous.com/survival-kits-for-any-situations BlogIcon hurricane survival kit hawaii 2012.12.10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아무리 미국이 광우병내성을 지니고 있더라도 유전적 결함으로 자연발생적으로 발견되어야 하는 광우병소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도축되기전에 소멸되었거나 도축과정에 은폐되거나 검역과정에 통과되어 전세계 식탁에 올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20. Favicon of http://twokittiesandapuppy.blogspot.com/2008/07/pet-rentals.html BlogIcon portable dog fence for camping 2012.12.22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야 하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다. 단지, 광우병소의 총노출수와 환자수 만을 알 수 있다. 이를 기준으

우리의 명절중 중국에서 비롯된것들이 많은데 추석이나, 중추절도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중추절과 추석은 별도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이런 와중에 중국의 슝베이 역사학자가 <중추절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이다>라고 <중추절 한반도 기원설>을 주장하였습니다.

사실 <중추절>과 <추석>과 <한가위>는 조금씩 기원의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의 추석의 기원은 중국쪽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에 관한 포스트는 한가위 맞이 시리즈 글로 올리려고 한다.

당나라이전 시기에는 중국에서 중추절에 관한 기록이 전무하고, 당나라 중기 말기 시대의 기록인 <초학기>에도 8월 중에 있었던 <중추절>에 관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슝베이가 중추절은 "신라의 것으로 부터 이다"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9세기 중엽에 일본의 승려인 <엔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라는 순례기에 의해서 입니다. <입당구법순례행기>는 9세기의 동아시아의 경제/문화/교통에 관한 중요한 사료입니다. 엔닌이 활동하는 시기는 <장보고>가 청해진에 터를 잡고 3국의 해상을 관할하고 있는 시기와 일치합니다. 엔닌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귀국할때 장보고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귀국하고 있음을 그의 순례행기에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 드라마로 제작된 <해상왕장보고>도 이 사료를 참고했다고 합니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압지 출토, 금동초심지가위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 5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옛날 가위를 보면 화려하기도 합니다. 일본 국보급 유물들이 있는 <정창원>에서 보관중이 신라시기 금동가위나 신라의 무덤이나 안압지에서 출토된 금동초심지가위, 백제의 무덤에서 나온 가위를 보면 요즘 보는 가위랑 다르게 자르는 곳이 반달모양(송편)입니다.

두개의 면이 하나로 합쳐지면 영락없는 완전한 둥근달 모양이 되기도 합니다.  서로 따로 만든 반달모양의 송편이 나중에 두편이 하나로 합친 모양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면 궁궐이나 실내장면을 보면 무수히 많은 초불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선덕여왕>에서의 촛불들이 당시의 촛불형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신라시대에 최소한 초를 이용해서 불을 밝혔을 것으로 추측되는 유물이 초심지 가위입니다. 초심지 가위는 백제, 신라, 일본에서도 발견됩니다. 
 

조직을 양편으로 나누어 서로 견재를 하여 대결, 화랑이전 원화제도에도 나타납니다. 2명의 공주급 여자를 대표자로 세워 그아래 원화들과 화랑들을 지휘통제하는 역활을 합니다. 한가위의 길삼놀이는 한시적인 행사이고 원화는 상설적인 조직이니 원화들이 한가위때 길삼 놀이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원화의 기원이 이전 유리왕때의 양편으로 나뉘어 길삼놀이던 하던 조직이 상설조직화 되어 원화제도가 되었을 겁니다. 

다만, 원화제도는 원화인 남모와 준정의 다툼으로 540년 진흥왕 원년에 폐지되고, 화랑 풍월주 제도가 생겼다고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말하고 있습니다. 화랑세기에는 남모를 법흥왕과 백제의 보과공주의 소생으로 나옵니다. 서현이 만명과 사랑의 도피를 하듯이 백제 보과공주는 법흥(원종)을 사랑하여 신라로 사랑을 찾아 도피해 옵니다.

어찌되었던, 삼국사기의 초기 편년이 많은 의심을 받고 있지만 이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엔닌이 있는 시기와는 800년의 차이가 나지만 이를 지속적인 행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엔닌의 (839년)기록에 의하면 발해와의 전쟁에 이겨서 8월15일 행사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발해는 698년 에서 926년 까지의 국가이고, 대진국에서 발해라 명한 때는 713년 대조영때이니 신라 성덕왕때 입니다. 발해와 신라의 전쟁기록은 유일하게 733년 겨울 전쟁기사 입니다. 
 

하지만 엔닌이 신라노인의 말을 빌어 기록한 발해와 신라의 전쟁의 승전기록에 대한 문제점은 신라 성덕왕 32년(733년) 가을 7월 발해가 등주를 치자 발해의 배후에 있던 신라에 당의 현종이 발해를 쳐줄 것을 요구하고, 그해 겨울 신라가 발해의 남쪽 경계를 침입하였으나 눈이 많이 내려 수 많은 인명피해만 입고, 철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발해와의 전쟁승전기념일은 될 수 없고 기록과 상호 모순이 되어 채택될 수 없습니다.

 가끔 신라에 등장하는 말갈이란 표현은 대체적으로 고구려와 말갈을 혼용하여 표기되는바 발해말갈 고구려/말갈을 혼동할 개연성은 다분히 있습니다. 

<구당서>나 <신당서>에 의하면 "신라는 8월 15일이 되면, 왕앞에서 활쏘기, 승마를 하고 , 술과 음식을 나눠먹는다"고 합니다.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도 고구려가 신라의 <북한산성>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603년 음력 8월이고, 진평왕이 직접 북한산성에 진주하여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왕이 직접 전장에 나아가서 싸우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당시 수와 전쟁에서 이긴 동북아의 패자 고구려를 신라 왕이 직접 통솔하여 물리 쳤다고 하는 의미에서 신라에게는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랑세기에는 이때의 전쟁을 한수전쟁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용춘과 비보랑 등 화랑들과 용춘의 부하이며 장인인 대남보가 한수전쟁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웁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대남보는 미생의 아들이고 천명을 죽이는 역할이였지만 전혀 기록에 부합하지도 않습니다. 대남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8/12 - [역사이야기] - 천명 죽음, 대남보 천명 쏘고, 선덕여왕 국민 쏘다 기사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진평왕을 허수아비 왕으로 그리고 있지만, 실제의 진평왕은 백제와 고구려에 공세적인 자세를 취하고 <한수전쟁>처럼 직접 군을 이끌고 전쟁에도 참전하는 <전쟁영웅>입니다. 억지로 <미실>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서 전쟁영웅인 진평왕을 허수아비로 만든거지요. 실지로 덕만이 왕이 될수 있었던 이유도 <진평왕>의 절대적인 힘에 의해서 입니다.

연개소문

어찌되었던, 연개소문에서는 나오지 말아야할 유신이 등장한다는 겁니다. 유신은 595년생이고 한수전쟁은 603년이다. 유신의 나이 9살이 된때가 된다. 유신이 아무리 전쟁광(?)이던 전쟁의신(?)이던 등장할 수 없는 거지요.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한술 더 떠서 8살 유신이 602년 아막성 전투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KBS <대조영>이나 그전에 MBC에서 정통역사물과 반동북공정을 기치로 내걸어 국민사극으로 각광을 받은 <주몽>에서도 역사적인 기록과 부합되지 않는 장면을 너무 남발해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역사를 희화화 했다고 지탄을 받고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과 하등 다를것이 없다고 지적된적도 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고구려가 멸망한 시기가 공교롭게도 668년 가을이니 한가위는 이를 기념했을 수도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시기는 추수철이 지난 늦가을인 경우가 많은데 추수철이 지난 가을에 물리쳤다면 먹거리도 많은 시기이니 잔치를 벌이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요. 이전 가베(길삼)과 승전일들이 겹치는 겹경사가 이니 더욱더 풍성한 명절 한가위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현재 8월15일은 광복절이고, 신라에게는 음력 8월 15일이 승전기념일이란 공통점도 있습니다. 

2006년 중국 역사학자 슝베이의 발언으로 촉발된 중추절 <한반도기원설> 주장은 중국내 네티즌의 반발과 포털업체의 발빠른 대응으로 중추절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하고자 하는 네티즌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여 한국은 고구려학을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역사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리때문에 상고시대 고구려를 연구하는 학자가 한국내에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극히 드문 경우 였지만, 이를 기화로 고구려에 대한 연구과 활발하고 한국과 북한간의 학문적 교류가 활성화 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오월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을 시도할때 중국에서는 이를 정부차원에서 발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사실 대부분 민속에 관한 경우 중국으로 부터 수입된것이 많습니다. 단오도 중국으로 부터 건너온 것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단오제를 한국에서 유네스코에 등록을 시도하는 것은 중국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것일 겁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시도하여 고조선에서부터 고구려,발해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을 시도하고 해당 왕조를 중국의 지방민족사로 폄하를 하고 있는 데 한국에서는 삼국사기와 유물을 들어 한민족의 역사를 침탈하는 행위로 받아들이고 분노하는 입장과 비슷할것 같습니다.


사실 단오제의 유네스코등록의 이면에는 동북공정에 대한 반발심리도 작용한것이 사실입니다.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에 등록하려는 것은 '단오'라는 풍속을 등록하려는 것이 아니고. '단오제'라는 축제(카니발)를 등록하는 것 입니다. 조금 미묘한 차이가 있기는 있습니다.

결론은 추석과 다르게 중추절은 신라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이는 신라가 고구려와 전쟁에서 승전한 것을 기념한 승전기념일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현재 중국의 중추절은 신라로 부터 수입된것이 됩니다. 정확히는 대당신라인에 의해서 라는 단서가 붙지만 말입니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fmpenter.com BlogIcon 바람나그네 2009.09.26 0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주말되세요^^

  2. 임현철 2009.09.26 0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우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3.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9.26 0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예전에 학교에서 한국 중세사 배울때 교수님께서 얘기해주신 기억이 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역시 갓신동님은 멋져!

  4. Favicon of https://greensol.tistory.com BlogIcon 여행사진가 김기환 2009.09.26 1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흥미로운 가설입니다.
    고대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데...
    사실 드라마는 거의 안보는 편이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정말 좋아한답니다.

    많은 공부...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6 14: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설 검증은 끝났는데.. 문제는 문무왕때인가 진평왕때를 이르는가는 모르겠음. 668년 문무왕 때일 가능성도 농후하기 때문에 문무왕때의 가능성도 열어 놓았습니당..

  5.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9.26 1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추절이 그런 연유에서 그참...
    추석은 중국 유입이라 하여 한가위로
    부르자 하든때도 있었는데...
    또다른 공부를 하게 하시는군요.
    제가 머리통이 좀 크서 케파가 되니
    갓쉰동님 글 잘 저장해두지 ㅎㅎㅎ
    배우는게 엄청 많습니다. ㅋ
    (물론 공짜지요 ㅎㅎㅎ 대신
    와인사라고 하시면 언제든지 O.K 입니다.)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길 빕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6 14: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가위는 물건너 가고 추석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음 포스팅은 추석에 관한 글로.. ㅋㅋ

      제가 술을 못먹음.. ㅠ.ㅠ. 안타깝게도용..ㅠ.ㅠ

      주말이네용.. 즐거운 주말 보내셈..

  6. ㅇㅅㅇ 2009.09.26 1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의 단오, 중국의 그것과 다른 겁니다.
    이름만 같고 기원이 다릅니다.
    본래 수릿날이란 이름으로 불리웠습니다.

  7. Favicon of https://jsapark.tistory.com BlogIcon 탐진강 2009.09.26 2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훌륭하게 정리를 해주셨군요.
    멋진 글 잘 봤습니다.
    좋은 주말되세요.

    ps; 200만 돌파를 했군요.
    축하드립니다.

  8. Favicon of http:// bldg.daum.net / uri - modu BlogIcon 시림, 김 재덕 2009.09.27 0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l^*...............
    벼 베는 초생달
    송편 담는 쟁반달
    가져담는 사랑 손길
    한가위 저~달처럼

    사랑으로...
    기다림에

  9. 그레이트코리아 2009.09.27 1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 매우 훌륭한 증명이며 , 자료입니다.


    이글 보고 반발하는 중국계사람들의 댓글이 보이네요.


    중공은 과거나 현재나 남의나라 역사,문화,유물을 왜곡하고, 기록하는데 주안점을 뒀죠.

    현재의 중공이 공정이란 미명하에 하는 작태를 봐도 충분히 알수가 있죠.

    중공인들이 바보가 된 이유가. 자신들의 역사와,문화는 주변국에서 영향을 받앗다는건 순전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다른나라에 자신들이 전파시켰다고 하느 순 거짓말만 교육받는게 중공의 역사교육입니다.


    사마천의 사기란 것도 역사의 진실에 거짓을 주객을 전도하여 버무린 거짓 역사기록일 정도니깐요.
    -일본사학자.오향청언-

    만주원류고,송막기문,금사.대금국지 ..등등에서도 금,.후금(청나라)가 명백히 한민족의 역사임에도
    자국사라고 거짓말하는게 중공이고, 몽골이 버젓히 있는데도 원나라 징기스칸이 자국사라고 하는 것들이 중공인들의 사고입니다.

  10. esbi 2009.09.28 0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의 글들을 모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작성하는데에 시간과 노력이 참 많이 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하지만 님의 글들에는 님의 가설과 학계에서 인정되는 통설이 한데 섞여 약간은 혼란스럽군요. 이를 구분하여 기술하셨더라면 더욱 훌륭한 포스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님께서는 '증명' 하였다고 하여 '~~으로 증명되었다' 혹은 '~~이다' 라고 단정적인 표현을 쓰시는데, 이보다는 완곡한 표현을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사실 '증명'이라고 할 수도 있을 만한 엄밀한 '추론'도 있습니다만 (특히 모란의 도입시기는 매우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추측'도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칠숙이 왕족으로서 왕위계승 상위권자였다는 것 등).
    님의 노력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나, 님 가설의 설득력은 님의 단정적 어법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어찌되었건 님의 글 덕분에 인터넷 서핑이 즐겁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8 07: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그렇지요..되도록이면 확정적으로 쓰지 않을 려고 하는 편인데.. 그런 면이 보였나 봅니당.. 물론, 독자에 의해서 평가될수도 있지만, 저는 독자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 편이라서요.. ㅋㅋ 제가 한 회의주의자 거든요.. 그래서 역사를 취미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요..

  11. 우리나라 역사는 2009.09.29 1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어디로 증발한 것일까요?
    중국에 남은 증거, 일본에 사라져버린 증거,
    심지어는 우리나라 사가의 손에서 중국사대주의에 의해 쓰여진 증거들 뿐.

    "우리의 역사를 왜곡되게, 아름답게 꾸미고자 함이 아니라 "
    우리의 존재 자체를 증명하고자
    처절하게 남은 역사를 추론하고 유물을 뒤지고...

    저는 솔직히 국사라는 과목을 머리아파했지만,
    중국이던 일본이던 가끔 한국을 모욕할때마다
    님처럼 역사적 지식이 해박했더라면
    나서서 이러저러한 증거로 너희들 말은 틀리다..라고 당당히 말해보고 싶을때가 많습니다.
    다만, 지식이 얕은 것이 부끄럽고 한스러울 뿐이죠.

    그런 의미에서 갓쉰동님처럼 해박한 역사지식이 마냥 부러울뿐입니다.

    우리 후손들이 우리나라를 당당해하지는 못해도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존감이 없는 나라야말로 암울한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님의 글을 잘 읽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9 1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근에 마한(전북)지역에 발굴이 있었지요.. 그것에서 사국 교류에 관한 유물들이 대량 출토되었답니다..

      저야 4세기이후까지도 마한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존 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12.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check this out 2012.07.14 14: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이 진평왕의 맏딸이고, 천명이 두번째 딸이

  13. Favicon of http://www.glowtrend.com/apps/developer/ BlogIcon social site 2012.09.11 1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종적인 고시를 함에 있서서 실질적인 재협상에 준하는 협상을 했다는 김종훈에 따르더라도 협상을 하였다면 행정절차법에

  14. Favicon of http://hubshout.com/ BlogIcon Gennie 2012.09.29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라고 묻는다. 이대목에서 떠오르는 장면은 덕만이 사막에서 생과 사를 선택하는 것으로 죽음의 처지에 처하게 된다. 이때 덕만은 장기알을 먹어 버려 죽음에서 벗어난

  15. Favicon of http://www.loveofflute.com/blogs/viewstory/11934 BlogIcon military mre 2012.11.26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언제부터 피겨가 정확히 채점하는 스포츠였나? 항상 일본의 눈치를 보고, 유럽과 미국의 눈치를 보는 스포츠 강대국의 놀음에 지나지 않았다. 피겨 변방국 출신의 미천한 나라에서 온 김연아가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이너서클에 들어와 물을 흐려놓았다고 생각하고 있는게 현재의 피겨이다.

  16. Favicon of http://www.neighborhoodspecialistcouncil.com/2012/04/disaster-success-kits-for.. BlogIcon dried kidney beans how to cook 2012.12.06 2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중추절>과 <추석>과 <한가위>는 조금씩 기원의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의 추석의 기원은 중국쪽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에 관한 포스트는 한가위 맞이 시리즈 글로 올리려고 한다.

우리민족 고유의 가장 큰 3대 명절(설,대보름,추석)인 추석을 "추석은 우리것이 아니(였)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로 부터 돌이 날라올지도 모르겠다.

설마 추석이 우리것이 아니라니 좋은밥 먹고 헛소리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이다. 그리고 추석의 유래에 대해서 장황설을 늘여놓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나 추석의 유래를 보면 우리것이 아닌것을 설령 우리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우리의 문화에 깊숙히 스며들었으니 우리 민족의 고유의 명절이 된것이 아닌가 이야기를 할것이다.

당연히 현재의 <추석>은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겠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는 없는 특이한 제례문화이다.

 
하지만 정확한 유래를 알고 있는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추석>은 <중추절>, <한가위(가베)>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추석>과 <중추절>과 <한가위>는 서로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1번째, 한가위 유래 (추수감사제와 놀이성격)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때 조상에 감사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2번째, 중추절 유래 ( 승전기념일 + 한가위 )
 
<예기>의 <맹추>,<중추>,<계추> 중에서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유의 한가위인 가베를 중국식 작명법에 의해서 기록한것 뿐이다.<중추>와 중추절은 서로 다른다. 단지, 중추란 한자화된 용어의 차용에 불과하고 중추절은 카니발 성격의 축제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슝베이도 중추절은 신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중추절은 당나라에 유학한 일본의 구법승려 <엔닌의 일기>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서>,<구당서>,<신당서>의 기록에도 신라는 8월15일날 왕앞에서 활쏘고, 말타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한다. 이 당시 중추절은 한가위의 풍습과 전승기념일을 합한 행사가 된다.
 
전승기념일이다 라는 있는 근거를 2009/09/26 - [역사이야기] - 중국 중추절은 신라 진평왕의 고구려 승전기념일?  글에서 <삼국사기>를 근거로 중추절은 진평왕의 603년 8월 대고구려 북한산성전쟁이나 668년 가을 고구려의 멸망을 기념하는 전승기념일이라고 주장했다.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도 고구려가 신라의 <북한산성>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603년 음력 8월이고, 진평왕이 직접 북한산성에 진주하여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왕이 직접 전장에 나아가서 싸우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당시 수와 전쟁에서 이긴 동북아의 패자 고구려를 신라 왕이 직접 통솔하여 물리 쳤다고 하는 의미에서 신라에게는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삼한일통을 한시기도 668년 가을이다.  이때의 승리를 기념해서 축제를 벌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까지 신라로써는 한가위와 전승기념일이 충첩된 날이니 즐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3번째, 추석 유래 [춘조일(春朝日), 추석월(秋夕月)] ( 한가위 + 중추절 + 유교제례 )
 
위에 중추절과 중추는 다른 의미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형식과 내용면에서 추석은 추석제의 미미한 변형이다.
 
네이버 통합검색 화면에는 다음과 같이 추석관련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추석의 유래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네이버 추석의 유래 초춘일, 추석월? 실제는 춘조일, 추석월


추석은 중국의 유교경전인 <예기>에 천자는 이른봄에 태양에 제사를 지내고, 가을에는 저녁 달에 제사를 지낸다해서 비롯되었다. 동지는 태양이 낮은 고도에서 점차 크게 떠올라 시작을 알리는 시기이고 가을 중추에 뜨는 달이 가장 높이 크게 보이는 시기이기 때문에 <춘조일>, <추석월>같은 유래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예전 <네이버> 백과사전(두산백과사전)에서 <추석>의 유래를 검색하면 <예기>의 <조춘일>,<추석월>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달처럼 해처럼 번쩍이는 레슬러 <조춘>선생을 기념하는 날도 아니고 실제는 <춘조일>의 오기이다. 글쓴이도 오랫동안 관심이 없어서 무관심하게 지나갔지만 <조춘일>, <추석월>인줄 알았다. 그래서 추석에 관한 여러가지 자료를 조사할일이 있어서 이곳 저곳 찾다보니 <조춘일>이 <춘조일>의 오기라는 것을 알았다. 
 
네이버에 올려진 백과사전이 잘못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알고 오래전에 수정할려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솔거가 진흥왕때 사람? 천만에


이유는 예전에 솔거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솔거의 활동시기가 <진흥왕>시기(540년이후)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꼼꼼히 솔거는 <진흥왕>시기 사람이 아니고, 신라의 황금기인 경덕왕(8세기)때 활동한 사람이며, 솔거의 작품인 황룡사 <노송도>와 단속사 <유마상도>, 분황사 <천수관음보살도> 등 잘못이 있으니 수정하였으면 한다고 자세하게 논거를 제시하여 보냈지만 근 한달이 지난후에 솔거관련 기록들은 수정도 하지 않은체 <솔거>라는 항목만 수정을 하고 고맙다는 말도 없었다. 
 
솔거 관련글을 자세히 보실려면   2009/08/02 - [역사이야기] - 덕만에서 솔거까지 역사상식을 깬다
글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현재 추석은 3가지의 유래중에서 어디에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추석의 유래 중 <예기>를 인용하지 않고 있다. 있는 사실을 감추고 유래를 단지 국내에서 찾으려는 또다른 역사왜곡 사례이다.
 
<한가위>나 <중추절>의 행사와 놀이문화는 잊혀지고 단지, 제사(차례)의식만이 남아 있다. 그리고 <한가위>라는 말을 쓰기는 하지만 <추석>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또한 추석이 민족의 3대명절인 <설>,<단오>,<추석>에 진입한 시기를 보면 조선시대 중종?이후 일이다. 
  
조선시대의 추석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추석에 관한 기록은 모두 왕이 조상에 대한 제사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조에 보면 아침에 추석제를 지낸후 저녁 밤늦게까지 대신들과 왕족들을 불러 술마시고, 흥겹게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연산군때에도 추석제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연산군은 자신의 친모인 <윤씨>에게 추석제사를 지내려하나 신하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하지만 효자였던 연산군은 신하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윤씨>의 사당을 세우고 추석제사를 강행한다.

<추석제>를 지낸것은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신라 종묘의 제도에 <추석제>가 있었다고 흔적이 있다. 

37대 선덕왕이후 일년에 여섯 번 5묘에 제사지냈으니, 곧 정월 2일·5일, 5월 5일, 7월 상순, 8월 1일·15일이었다.

그러니 삼국시대부터 신라왕실에서는 추석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추석제를 지키는 것은 김춘추가 당에 구원요청하고 신라의 관제와 복식을 당나라식으로 바꾼 이후부터 일것으로 추측된다. 이때 지낸 제사의 형식은 <유교>형식의 제사일것 이다.
 
또한,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백제 편에 책부원귀를 인용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백제는 매년 네 철의 가운뎃 달[四仲之月]에 왕이 하늘과 오제(五帝)의 신에게 제사지냈다. 그 시조 구태(仇台)의 묘(廟)를 나라의 도성에 세우고 일년에 네 번 제사지냈다.』

고대의 <추석제>는 민간 백성들은 지낼수 없는 황제나 제왕들만이 지내는 제사였기 때문에 왕실에서만 지냈고 민가에 까지는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추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추석제는 기회가 된다면 따로 글을 쓰도록 하겠다. 
  
조상은 사라진 차례와 제사, 르레상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추석 차례상


차례를 지냄에 있어서 상차림에 관한 이야기들이 설왕설래 한다. 그 근거는 <예기>일 수 밖에 없는데 <예기>을 보면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너무 많은 제사를 하지 말고, 겸약하고 겸손하게 지내라"라고 하였다.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조상이 평상시 좋아하던것으로 하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홍동백서>,<좌포우혜> 등 조상과는 무관한 형식과 절차 만이 남아 있다. 조상이 왼손잡이던 오른손잡이던 상관하지 않고 숫가락을 놓아야 한다. 왼손잡이가 귀신이 되면 갑자기 오른손잡이로 변하나? 또한, 조상이 살아생전 좋아하던 음식과는 전혀 상관하지도 않고 있다.
 
소주를 좋아하면 소주를,  탁주를 좋아하면 탁주를, 양주를 좋아하면 양주를 올리면 되는 것이 아닐가?. 바나나를 좋아하면 바나나, 파인애애플이면 어떤가?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귀신이 털달린 과일을 좋아라 하지않는다고 해서 죄악시하고, 매운음식과 고추는 귀신을 쫓아내는 벽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해서 고추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음식으로 올려야 한다.
 
실제로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임진왜란 전후라고 전해진다. 유입경로는 명/청이나 일본 양쪽으로 어느쪽이 앞선 시기인지는 아직 확실치는 않다. 조상이 매운음식을 즐기던 즐기지 않던 상관없이 귀신은 고추가루 싫어한다는 믿기지도 않는 낭설에 따라야 한다. 만약, 예기를 만들기 이전에 고추가루가 있었다면 당연히 고추가루가 들어간 음식이 제사상에 올려졌을 지도 모른다. 과일중에 붉은색 과일을 올리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제사나 차례의 주체인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과 조상은 사라지고  단지 제사 형식에 치우치고 있다. 제사 형식과 차례를 규정한 <예기>는 조상이 평상시 좋아라 하는것으로 하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제사나 차례도 중세유럽의 <르레상스>운동처럼 본류를 찾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시대에 따라 민속도, 명절도, 내용도 달라져야.. 
 
현재의 추석은 과거 우리가 알고 있는 한가위나 중추절과 다른 의미이고 <추석>,<한가위>,<중추절>은 서로 믹스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뿐이다. 현재의 추석이 다른 어떠한 민족도 하지 않는 아주 특이한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추석이 고래부터 한민족의 고유의 명절이라고 하기에는 내용도 바뀌고 성격도 바뀐 다양한 문화가 접목이 되어 있어서 문제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부처탄신일, 팔관회가 국가의 중대축제였고, 조선시대에는 유교적인 단오, 한식, 추석, 공자탄신일 등이 중대 행사였다. 현재는 단오, 한식 보다는 실제와는 다르지만 예수의 탄신일이라고 알려진 크리스마스가 중대한 명절 풍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먼훗날 크리스마스가 우리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토착화될 때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고유의 민족의 행사라고 모두들 이야기를 할것이다. 그때 무슨 소리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고유의 명절이 아니고 유대교의 선지자중 일인인 예수라는 인물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에서 유래된것이야 그리고 산타크로스는 예수의 탄생과는 전혀 관계없는 북유럽의 신화에서 나온인물이고, 산타와 산타의 붉은 복장은 코카콜라가 자신들의 상품을 선전하기 위해서 만든 허구야 한다면 벼락 맞을 짓인가?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www.tsori.net BlogIcon Boramirang 2009.09.27 0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류문화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목소리 큰 놈'이 진실로 변하는 시대 같습니다. 우리가 배워왔던 적지않은 역사속 이야기들은 왜곡된 채 생존하고 있고 진실인양 호도되는 부분이 적지않지요. 글 잘 보고 갑니다. ^^

  2. 2009.09.27 0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2009.09.27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9.27 0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요.

  5.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9.27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갓쉰동님 말씀처럼 우리것이 아니라 해도
    이미 우리에게 스며진 풍습이니 고유명절이라해도
    무방하지만 정확한 유래를 안다는 것
    나쁠것도 없지만 중요하다는 ㅎㅎㅎ
    요즈음은 많이 바뀌어 생전에 좋아하시는 것도
    상위에 놓더군요 저만해도 ㅎㅎ
    오늘이 어머님 돌아가신지 딱 1 년인데...
    팔순부친이 생전에 좋아하시든 밀크 카라멜을 ....
    그렇죠 먼 후일 크리스마스도 그렇게
    되리라 봅니다.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휴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7 1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1주기기 시군요..

      저의집도 아버지께서 살아생전 좋아하던 소주와 담배가 주로 올라갑니당.. 무척 좋아라 하셔서..

      다음 포스트로 차례를 지낼때 어떤 술이 올라갔을까?를 포스팅할까 합니당.. ^___^

  6. 2009.09.27 1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7 1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당. 님의 주장이 당초= 고추라는 말때문에 생긴 오해 같은데요.. 고추는 아메리카가 원산지입니다..
      물론, 고추랑 비슷한 놈이 인도에도 있지만 말이지요.
      시기적으로 맞지 않잖아요.. 설마, 님은 아메리카를 삼국이전시기에 한반도 사람이 발견했다는 주장을 하시는 겁니까? 유의태와 허준은 허구지요.. ㅋㅋ

    • 고추의유래 2009.09.27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익숙하지 않다 보니 엉뚱한 곳에 댓글을 달았었네요.
      아래 병신꺼져님 미안합니다. 병신눈에는 병신만 보이는지라..
      ---------------------------------------------------
      여긴 엉뚱한곳에 달았던 글
      비약이 상당히 심하시군요?
      님도 지금 자신의 주장만 맞다고 하는 오류를 범하시는겁니다. ㅋㅋㅋㅋㅋ

      고추가 임진왜란이 전후가 아니라는걸 말씀드린겁니다.

      -----------------------------------------------
      <여긴 추가글>
      한반도 사람이 발견했다라는 주장이 어디에 있나요?
      거슬러 오라간다는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각설하고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7 12: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국시대까지 올라갈수 없다는 말씀을 드린거지요.. 그렇지 않다면 고추의 원산지가 아메리카에서 아시아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고, 그렇지 않다면, 삼국시대 근처에서 아메리카를 발견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건데요..

      제가 그래서 인도고추를 말씀하시는가? 하는 반문을 드린건데요. 그것도 고추로 말을 해야하는가? 하는 겁니다.

      암튼 ㄳ 합니당.. ㅋㅋ

    • 갓쉰동최고 2009.09.29 0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추과에 해당하는 식물이 무조건 아메리카대륙에만 있으라는법은 없죠. 유리의경우도 4세기에 들어오고 동방기독교도 삼국시대에 들어온것을 보면 서역을통해서 고추과의 식물이 들어왔을 가능성은 있지요. 그러나 현재는 아메리카산이 정설이니 연구를 꾸준히 해봐야겠죠.

    • 갓쉰동최고 2009.09.29 0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다고해서 원산지는 바뀌지 않을 듯합니다.
      기후나 풍토만 맞으면 여러곳에서 제배가 가능할테니까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9 08: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사품종은 있었겠지용.. 동방기독교가 삼국시대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설을 알고 있는 것 보니 내공이 상당하시군요.. ㅋㅋ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9 08: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산지도 바귈수 있는게 과학이니.. 좀더 기둘려 봐야지요. 하지만, 현재의 고추는 아메리카.. ㅋㅋ

  7. Favicon of https://greensol.tistory.com BlogIcon 여행사진가 김기환 2009.09.27 11: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8. Favicon of https://jejuin.tistory.com BlogIcon 광제 2009.09.27 13: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관심있게 보고갑니다..
    일요일 잘 보내시구요^^

  9. 우리것은 소중한것 2009.09.27 1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인은

    고구려 300년도 넘게 고구려 식민지배 당했다

    300년이면 문화가 비슷해 지기도 한다.

    그런데

    누구의 것인가? 하는것은 고려가 지금의 중국보다

    잘사는.발전된.우수한 생활문화.문화적 자존심

    지금의 중국보다 고려가 훨씬 발전된 국가였다. (고려도경 검색하면 중국인이 고려방문한 동영상 있음)

    못사는 나라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잘사는 나라를 (고려) 부러워하고. 따라기 마련이다.

    고려시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중국사람이 한국사람을 따라하는 습성때문에

    이런문제가 발생한것 같다.

    근데 한국사람이면서 중국사람의 주장에 맞다고 박수치는 인간은 뭐냐? 그냥 짱깨 냐?

  10. 우리것은 소중한것 2009.09.27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려도경은

    지금의 중국공무원이 고려를 방문하고 기록한 문서이다.

    그러면 지금의 중국이 왜 고구려 방문한 기록 문서는 없냐?

    그 이유는 식민지배 당했기 때문에 방한하는것 자체가 불가능 했고

    식민지 생활했던 지금의 중국인들이

    지배했던 고려사람의 풍습을 많이 배웠을것이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8 07: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댓글로 두개의 답글을 대신할께요..
      저는 대륙사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역사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당.. 이점 양지해주시길 바랍니다..

  11. ksmjdp3569 2009.09.27 16: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만 제가 걱정하는 문제는 우리나라 역사가 많이 왜곡 되어있다는 사실을 기준으로 한다면 님께서 참고하신 자료가 혹시 왜곡되어 있는 자료를 근거로 한것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저의 이런 쓸데없는 걱정은 웬지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삼국시대는 한반도에 없었다 이런얘기를 들었을때 그때 별 개념치 않고 들었는데 기억에 없음 이제와서 중국의 하는일이나 일본이 대한민국 잘되는 꼴을 못보는 형태의 일들을 볼때 우리나라 역사를 새로 정립해야 하는게 아닌지... 하는 엉뚱한 생각을 가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8 07: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쎙요. 제글은 주장하는 바의 원출처는 꼭 밝히는데요...

      님의 생각이 어떠하지는 모르겠으나..저는 삼한이 한반도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면 머리를 쥐어 박고 싶어용.. 이정도로 정리를 하지요.. ㅋㅋ

  12. Favicon of http://fucking.china.chink BlogIcon 천멸중공 2009.09.27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 매우 훌륭한 증명이며 , 자료입니다.


    이글 보고 반발하는 중국계사람들의 댓글이 보이네요.


    중공은 과거나 현재나 남의나라 역사,문화,유물을 왜곡하고, 기록하는데 주안점을 뒀죠.

    현재의 중공이 공정이란 미명하에 하는 작태를 봐도 충분히 알수가 있죠.

    중공인들이 바보가 된 이유가. 자신들의 역사와,문화는 주변국에서 영향을 받앗다는건 순전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다른나라에 자신들이 전파시켰다고 하느 순 거짓말만 교육받는게 중공의 역사교육입니다.


    사마천의 사기란 것도 역사의 진실에 거짓을 주객을 전도하여 버무린 거짓 역사기록일 정도니깐요.
    -일본사학자.오향청언-

    만주원류고,송막기문,금사.대금국지 ..등등에서도 금,.후금(청나라)가 명백히 한민족의 역사임에도
    자국사라고 거짓말하는게 중공이고, 몽골이 버젓히 있는데도 원나라 징기스칸이 자국사라고 하는 것들이 중공인들의 사고입니다.

  13.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9.27 1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역사의 몰랐던 정보를 배우고 가네요.
    주말 마무리 잘 하시고 또 힘찬 한주 맞으시길...

  14. Favicon of http://blog.daum.net/duck52 BlogIcon 기서맘 2009.09.27 2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좋은 자료...너무 쉽게 잘 보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15. Favicon of https://sapzzil.kr BlogIcon sapzzil 2009.09.28 0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그렇군요...잘 배우고 갑니다..^^

  16. Favicon of https://gamjastar.tistory.com BlogIcon 또웃음 2009.09.28 13: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배'가 거기에서 유래되었군요.
    그럼 죄송한데요.
    왜 추석엔 '햅쌀'과 '햇곡식, 햇과일'을 먹을까요?
    추석이 추수 때이니까 그 해에 새로 난 것을 먹는 것일까요? ^^;;;

  17. Favicon of http://www.gobet1x2.com BlogIcon betting tips 2012.09.03 15: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만약 춘추가 대립할 사람을 찾는다면 자신의 아버지라고 생각되는 용수와 용춘과의 대립이 되어야 한다.덕만과 결혼을 유지했다면 덕만의

일반적으로 <추석>은 <중추절>, <한가위(가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추석>과 <중추절>과 <한가위>는 서로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동양 삼국에서도 보기 드문 문화가 되었다. 추석이나 설만 되면 귀성을 하는 것 또한, 대가족이 상존하고 도시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시적인  새로운 현대문화로 변형 되었다.

그런데 앞으로도 귀성행렬이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유는 점점 도시화 되고, 삶의 터전이 도시중심으로 변화되고, 핵가족화되면서 찾아갈 고향도 도시이고, 참여할 가족도 극히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 실례가 귀향행렬이고 지금은 제례용품을 직접 조달하기 보다는 집에서 만들었던 송편까지고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는 형태로 변형되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가배(가베), 한가위, 중추절, 추석이 어떻게 변형되고 서로 다른 이질적인 한가위, 중추절, 추석이 하나의 문화를 정착되었는지 유래부터 알아 보도록 하자.

한가위 유래 (추수감사제와 놀이성격)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쌈마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때 조상에 감사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화랑의 원형은 <원화>였다. 원화는 유례(유리)왕 시대의 공주급 여성이 2명이 청백으로 나뉘어 편을 갈라 대결을 하듯이 <원화>를 양편으로 나누어 일상적인 제사와 가배(한가위)를 대비하는 상설기구화(?) 된것이다. 이를 화랑으로 통합하고 신라의 귀족사회를 통합하고, 교육는 기관으로 변형된 것이다.

중추절 유래 ( 승전기념일 + 한가위 )
 
<예기>의 <맹추>,<중추>,<계추> 중에서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유의 한가위인 가배를 중국식 작명법에 의해서 기록한것 뿐이다.
<중추>와 중추절은 서로 다른다. 단지, 중추란 한자화된 용어의 차용에 불과하고 중추절은 카니발 성격의 축제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슝베이도 중추절은 신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중추절은 당나라에 유학한 일본의 구법승려 <엔닌의 일기>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서>,<구당서>,<신당서>의 기록에도 신라는 8월15일날 왕앞에서 활쏘고, 말타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한다. 이 당시 중추절은 한가위의 풍습과 전승기념일을 합한 행사가 된다.

이와 관련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9/26 - [역사이야기] - 중국 중추절은 신라 진평왕의 고구려 승전기념일?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진평왕 시기 가배(한가위) 풍속도
 

춘추(유승호)의 선물 받는 보량(박은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량(박은빈)은 춘추(유승호)가 선물한 비단과 귀금속들을 가지고, 가배(한가위)에서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써먹겠다고 한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듯 하다. 하지만, 당시 진평왕시기에는 수서, 당서에 따라 낮에는 <한수전쟁>에서 승전을 기념해서, 남성들은 왕앞에서 자신의 무예인 말타기, 활쏘기, 칼싸움 등을 한다. 

왕족이나 귀족 여성들은 비단을 받어서 옷을 만들겠다고 할 수 있다. 편을 나누어 대결중인 여성들간에 한달전부터 준비한 길쌈의 승리한 편이 누가 될까?가 관심사였을 것이다. 김홍도의 풍속화나 신윤복의 단오날 남자들이 여성들이 목욕장면을 훔쳐보듯이 신라시대 한가위(가배)때는 남성들 화랑이나 낭도들 중 누가 이길것인가?에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풍월주 비재는 없었지만, 가배(한가위)배 쟁탈 비재는 충분히 있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추석 유래 [춘조일(春朝日), 추석월(秋夕月)] ( 한가위 + 중추절 + 유교제례 )
 
중추절과 중추는 다른 의미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형식과 내용면에서 추석은 추석제의 변형이다.

추석은 중국의 유교경전인 <예기>에 천자는 이른봄에 태양에 제사를 지내고, 가을에는 저녁 달에 제사를 지낸다해서 비롯되었다. 동지는 태양이 낮은 고도에서 점차 크게 떠올라 시작을 알리는 시기이고 가을 중추에 뜨는 달이 가장 높이 크게 보이는 시기이기 때문에 <춘조일>, <추석월>같은 유래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2009/09/27 - [역사이야기] - 추석, 한가위, 중추절과 차례상의 감춰진 진실찾기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고대의 <추석제>는 민간 백성들은 지낼수 없는 황제나 제왕들만이 지내는 제사였기 때문에 왕실에서만 지냈고 민가에 까지는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유교가 한반도에 유입되던 시기, 집단적인 행사에서 각각의 가정에서 제사를 지내는 때는 이때부터 변형되기 시작했다. 집단적인 조상의 제사와 전쟁기념 축제에서 낮에는 길쌈과 무예대결이 밤에는 제사가 추가 되었고, 왕이나 귀족들이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형태로 변형되기 시작하였고, 추후 각각의 개별 일반백성 가정에서 조상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제사로 확장되었다.

조상은 사라진 차례와 제사

설.추석.제사 차례상차림과 형식이 예를 파괴하다.
  

명절 제사 차례상차림

차례를 지냄에 있어서 상차림에 관한 이야기들이 설왕설래 한다. 그 근거는 <예기>일 수 밖에 없는데 <예기>에는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너무 많은 제사를 하지 말고, 겸약하고 겸손하게 지내라"라고 하였다.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조상이 평상시 좋아하던것으로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은 <홍동백서>,<좌포우혜> 등 조상과는 무관한 형식과 절차 만이 남아 있다. 조상이 왼손잡이던 오른손잡이던 상관하지 않고 숫가락을 놓아야 한다. 왼손잡이가 귀신이 되면 갑자기 오른손잡이로 변하나? 또한, 조상이 살아생전 좋아하던 음식과는 전혀 상관하지도 않고 있다.
 
소주를 좋아하면 소주를,  탁주를 좋아하면 탁주를, 양주를 좋아하면 양주를 올리면 되는 것이 아닐까?. 바나나를 좋아하면 바나나, 파인애플이면 어떤가?


제사와 차례(다례)는 다른 것

엄밀히 이야기해서 제사와 차례는 다르다. 하지만 요즘은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특정인을 기념할때는 제사라고 하고, 조상신 전체를 대상으로 할때는 차례라고 하는 듯하고, 상차림과 행사전반을 <차례>라고 구분하는 듯하다. 하지만 옛 조상들은 엄밀하게 구분하여 지낸것 같다.
 
왕실이나 양반들은 조상의 묘에 특별히 제사와 묘를 관리하는 <수묘인>을 두었는데, 이에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와 <수묘인>의 생활과 음식장만 등 전반적인 묘관리소를  <재실>이라고 불렀다. 왕실에서는 녹을 받은 관리를 두고 왕릉을 보살피고 <전답>에서 나온 물품으로 제사를 치르고 하였다. 
  
제사와 차례를 구분해서 사용하였다고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특별히 제사말고도 차례만을 지낸 기록이 보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차례만 지낸때는 언제일까? <동지다례>라고 해서 동짓날만 다례를 지낸다. 동지에 다례를 지내는 이유는 겨울의 끝이고, 태양이 가장 낮은 곳에서 떠오르는 첫날이며, 실질적인 당해년의 시작과 전년의 끝이다. 그러니 새롭게 시작한다해서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깨끗한 물로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것이 아닐까한다. 산천에 제를 지내는 것은 제왕이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다례를 검색하다 보면 수천개의 <다례>기록이 나온다.  태종 이방원이 태상왕인 이성계와 차마시기 기록으로 부터 철종때까지 차마시기에 관한 무수한 기록들이 널려있다. 외국사신과 차마시기를 했다. 신하와 차마시기를 했다. 왕이 신하의 집을 방문해서도 차마시기를 즐겼다고 한다. 조선이 불가에서 널리 퍼진 차문화을 억압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또한, <차마시기>가 억불숭유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고 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한다


제사가 차례(다례)가 된 이유? 여인의 한이 보인다.


최소한 손님이 찾아오면 차마시기가 일상사였을 것이다. 요즘 사극을 보면 무조건 손님이 찾아오면 술마시는 것을 그리고 있지만, 술상보다 먼저 차를 대접한다. 그러니 사극에서 안주인이나 노비들에게 "주안상을 내와라" 하는 술마시고 놀자판으로 그리는 것은 고증에서 벗어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자주 목격되는 장면중 여러사람이 모여있으면 차를 마시는 장면이나 다기들이 테이블위에 자주 등장한다. 어찌되었던 조선시대 제사는 손님이 찾아오는 것 만큼 다반사이다. 다반사란 말이 차마시고 밥먹는 만큼이란 상시적이고 일상적인 뜻이다. 그래서 차례란? 제사가 흔함의 자조섞인 말의 변형이 이다.

예전에 종가집이나 어느정도 산다는 집은 1년에 지내는 제사가 수십차례이니 일상의 <차마시기> 만큼 흔하디 흔했다. 차를 내오는 것만큼 그집 안주인에게는 흔한일이고 한번의 제사를 지낼려면 수일은 준비해야 하니 일년중에 50~100일은 제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요즘은 제사가 많이 줄고 단촐해 졌다. 처자들이 종가집 장손이나 일반 적으로 맏아들에 시집을 가려하지 않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사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중에 하나였다. 그렇지 않다면, 제사가 차례가 될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한다. 며느리들의 자조적인 말이거나 종손들의 자조섞인 제사상이 차례상으로 변형 되었을 것이다.
 
또한 제사에 참여해야하는 사람도 차마시기 정도에 지나지 않을 만큼 <일상사> 정도로 치부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르신들이 아랫사람들에게 조상을 손님맞이하는 것처럼 성심과 정갈하게 하라는 뜻일 지도 모른다. 어려운듯 하지만 쉽게 정성으로 지내라는 의미일수도 있다.

왜 차례상에 정종을 올려야 하지? 일제의 잔재?

정종은 단순히 일본의 술 제조업체였다. 맥주하면 OB인 시절도 있었고, 소주하면 <진로>인 시절이 있었던 것 처럼, 청주하면 정종회사를 떠올린것이다. 청주(맑은술)을 올리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미료하면 <미원>이 대명사 인 시절도 있었다. 그러니 술을 올리는데 정종을 올린다는 말은 진로를 올린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잘못사용된 예이다.

그렇다면, 우리내 조상들은 차례상에 어떤 술을 올렸을까? 세종실록에 [조전에 평사시 예식 대로 소주로 지냈다] 라고 한다. 맑은 술을 조상에 진상하고 있다.

소주는 왕이 신하나 외국의 사신이나 대마도 도주에게도 하사품으로 주는 물품중에 하나가 되겠다. 일본의 청주는 조선의 소주가 건너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일반인들은 범접하기 힘든 귀하디 귀한 술이다. 이런 귀하디 귀한 술을 제사에 올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집안마다 대대로 내려오는 종주(宗酒)가 있었다. 집안 정통주를 빚어서 제사를 지내고, 필요에 의해서 진상을 하기도 하고, 귀한 손님이 오면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일반인들이 청주와 소주를 제사상에 올리는 시점은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일제시대 이후이다. 제사상에 청주(정종)을 올리는 행위가 일제의 잔재라고는 말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잘못된 행태를 일제의 만행으로 모는 것 처럼 안일한 태도는 없다. 외부세력에 의해서 민족의 고유문화가 침탈되는 것에 분노할 이유는 없다. 이는 일본뿐만 아니고 외부 다른 민족을 지배하려는 자가 보이는 보편적인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스스로 고유문화를 없애는게 더욱 나쁘기 때문이다. 토속주.전통주를 없앤 주범은 아이러니하게도 광복후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고난 후 기업형주류 생산업체와 독재정권의 결탁에 의해서 이니 말이다.


명절 증후군을 벗어나고, 없는 부부애도 있게하는 방법

최근에는 많이 변하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명절이나 제사를 준비하는 건 여인들의 몫이였다. 지금도 며느리들이 명절날 시집에 가서 제사상이나 차례상을 차리고 나면, 명절증후군이 생긴다. 이시기를 지나면 부부간에 금이 가는 수가 많고, 이혼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명절은 우리내 어머니이고, 며느리, 누나 동생인 여성들에는 힘들고 힘든 고역이 된다.


추석과 명절이 되면 인터넷에서는 지방 쓰는 방법과 차례상 차리는 법이 검색 순위 상위를 차지한다. 이유는 그만큼 명절날 차례상과 제사에 사용되는 지방쓰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세월은 가고, 문화도 바뀌고 있다.

위에서 추석의 유래부터 차례가 된 이유까지 언급을 했다. 시대에 따라 명절의 내용과 형식이 바뀌고 있다. 남성들이 여성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면, 명절날 스스로 음식이나 설거지 등에 적극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한다. <참여>라는 말을 사용했지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도와주는 행위>는 자신의 일이 아니고 남의 일이기 때문에 사용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명절(제사.차례)는  남의 일이 아닌 남.여구분없이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명절이후 벌어진 명절증후군에서 쉽게 벗어나고 가정이 화목해지는 길이 아닐까 한다. 또한, 문화는 옛것만을 고수하는게 아니다. 시대에 맞게 계승되고, 변형되고 발전되는 것이다.  한쪽은 즐겁고, 다른 한쪽은 준비하느라고 즐겁지 않다면 그건 차라리 없어져야할 구습일 뿐이다. 그러니 현재 남여평등 사회에 맞게 남성들이 스스로 참여하여야 한다. 그래야 즐거운 명절이 되고, 명절증후군이 없고, 가족간에 골이 깊어지지 않고, 이혼하는 가정이 줄어들지 않을까한다. 농담식으로 "밤일을 잘한다"고 아침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따스한 말한마디와 명절날 자발적인 설거지라도 참여한다면, 말은 "사내놈이 무슨 설거지?" 하면서도 아침밥이 달라지고, 없는 <부부애>도 살아나지 않을까 한다.

보름달에는 계수나무와 달토끼가 산다고 합니다.이는 달의 모양을 보고 느끼는 착시일겁니다. 하지만, 어느지역에서는 전갈이라고 하고, 옛 고대에는 태양에 삼족오가 살고 달에는 달토끼보다는 두꺼비가 산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이처럼 달을 볼때 사람마다 지역마다, 현재 자신의 사정에 따라 똑같은 달이 달라 보일 겁니다.

경제 사정이 극히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명절 추석이 즐거운 사람도 있을것이고, 좋아만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없는 회사사정에 월급을 주어야 하고, 상여금을 더주어야 하는데 못주어 안타까워 하는 분들도 계실것이고, 적은 월급에 명절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명절 보름날 떠오른 달이 한없이 따스하게 보이는 분들도 계실것이고, 반면에 한없이 차갑고, 한숨나오게 하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가고 싶어도 개인사정 때문에 귀경을 포기하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명절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글을 보신분이나 추천해주신 분이나, 댓글을 달아 주시는 분이나, 추천없이 그냥 글만 구독하고 가시는 분이나, 이글에 동의하는 분이나, 동의하지 않는 분이나 모두 마음만은 한가위같이 풍성한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글로서 제글을 보시는 분들께 드리는 추석선물이라고 생각해주셈. ^___^

 
즐거운 추석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귀성하는 분들은 차조심 몸조심 ^___^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Favicon of https://toyvillage.net BlogIcon 라이너스™ 2009.10.01 1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집니다^^
    잘보고가구요. 즐거운 추석되시길빕니다^^

  3. thfql 2009.10.01 1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례의 차 자가 마시는 차라면.. 그냥 차만 올리고 제사를 지내면 어떨지요? 예전에 부처님한테 상 올릴 때도 차를 올렸다는 걸 들은 것 같은데...먹는 건 집에서 먹던지..싸 가지고 오던지.. 아니면 식 때를 피해서 오던지.. 사실 가서 먹고 오는 것도 어떤 땐 미안하기도 하고 부담스럽다. 그만큼 뭔가 보상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뭘 사 가지고 가야 하거나 돈으로 주거나.. 근데 그걸 받는 사람도 부담스러울 거고.. 가벼운 걸로 사 가면 안될 것 같고..요즘 댓글 보면 만들어 놓고 먹을 사람도 없고 버려야 하나..이런 글도 가끔 올라오던데..잘 사는 분들은 더 맛있는 것 사 먹을 기회도 많으니 먹지도 않을 것 같아.. 보통 사람들은 중간 정도.. 못 사는 사람들은 잘 먹는 날.. 정도?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1 1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절에서는 부처님에게 제를 올릴때는 술을 먹지 않으니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다예(다도)가 발전했겟지만요. 그런데 왜 한국기독교나 불교는 술을 멀리 하라고 할까요? 다들 먹던뎅.. ㅋㅋ 그리고 다그런건 아니지만 고승들 치고 곡차좋아하지 않는분 없더군요.. ㅋㅋ

      요즘은 각자 음식을 나눠서 만들거나 장만하는 경우도 있군요.. 미리 가족간에 상의를 하거나, 모임을 할때 물어보거나요..

      저같은 경우도 미리 물어봅니다. 부족한게 무엇인가. 무얼사가면 될까? 하고요.. 그러면 상대방도 편하고 중복되지 않고 좋더군요.. 가족모임 같은경우도 마찬가지..

      먹거리가 남는 문제가 있기는 합니당. ㅋㅋ 처리 곤란할때도 있고, 저희집은 남은 음식으로 비빔밥. 또는 찌개용으로 사용합니당.

    • Favicon of http://f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01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만해선생같은 분들도 곡차를 좋아하셨죠.
      기독교의 경우 청교도논리를 따른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교히의 경우 청교도는 커녕 이미 충분히 세속화되었죠 사실 제사는 양보다는 정성이죠.

  4. Favicon of http://inbusan.tistory.com/ BlogIcon 낭만인생 2009.10.01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갓쉰동의 놀랍고 세심한 관찰력과 연구의 글이군요..
    멋진 추석, 가베?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1 16: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종합편입니당.. ㅋㅋ 이글을 쓸려고.. 떡밥 기사 3개나 투여했다눈.. ㅠ.ㅠ. 이미 제글을 지속적으로 보신분은 논문 중복개제다 라고 할 정도이지요..그런데도 길어용..ㅠ.ㅠ.

  5. Favicon of https://sapzzil.kr BlogIcon sapzzil 2009.10.01 16: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추석 되세요~~

  6. 2009.10.01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BlogIcon 펨께 2009.10.01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어딜 다녀오느라 방문이 좀 늦은것 같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제사상을 잘 차릴줄 모르지라 그냥 인터넷으로 본적은 있는데...
    좋은 정보인것 같네요.
    풍성한 한가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8. 갓쉰동 최고 2009.10.01 2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절일을 비롯한 가사일들이 여인들의 임무로 변한 것은 조선시대 정도전이 혼례풍습중 장가가는풍습을 지적하고 이후 4대임금인 세종대왕이 자신의 딸인 숙신옹주를 친영례의예로 혼인을시키고나서 장가가는것이 시집가는 것으로 처가살이가 시집살이로 변한 이후부터였습니다. 그이후 여성은 출가외인이라는 이유로 재산분배에서 밀려나고 절정을 지켜야하는 등 부당한 처우를당하고 삼종지도 칠거지악등 맗도 되지않는 법도들이 적용되었죠. 그리고 제사자체는 여러 그림에서들어나듯이 조선 중기까지는 자식을이 돌아가면서 제사를받들었고 남편들도 가사를 담당했던만큼 제사자체에 여성의 한이담김 것이아닌 유교적 이상을 꿈꾼 조선의 남존여비사상에 입각한 여성차별에의한 풍습이 여성들로 하여금 명정에 한을 맺히게 하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0.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Pussy.Org 2012.07.12 1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는 가정 실제로 눈부신입니다. 효과적으로 당신의 선택을 사

  11. Favicon of http://www.gobet1x2.com BlogIcon go bet 1x2 2012.09.03 1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출생을 비밀을 추적하던 비담은 자신의 어릴적 이름이 형종이란 사실과

  12. Favicon of http://9blogtips.com/10-best-online-english-spelling-grammar-checkers-writing-.. BlogIcon grammar checker online 2012.09.08 2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유의 한가위인 가배를 중국식 작명

  13. Favicon of http://artomania.lt BlogIcon artomania 2012.09.10 1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

  14. Favicon of http://www.webistudio.com/proothisi-istoselidon/ BlogIcon proothisi istoselidon 2012.09.11 1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는 것이라면 그래도 존일 같은데요.. 독점출판 계약

  15. Favicon of http://reklamasvarbu.blog.com BlogIcon http://reklamasvarbu.blog.com 2012.09.16 1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 감사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

  16. Favicon of http://www.tutoringhut.com/blog BlogIcon Virtual Classroom mathematics 2012.09.18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족도 극히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 실례가 귀향행렬이고 지금은 제례용품을 직접 조달하기 보다는

  17. Favicon of http://www.pvcverticalblinds.co.uk/vertical-blinds-replacement-slats.html BlogIcon Vertical Blinds Replacement Slats 2012.09.20 1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때 조상에 감사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

  18. Favicon of http://www.pvcverticalblinds.co.uk/vertical-blinds-replacement-slats.html BlogIcon Vertical Blinds Replacement Slats 2012.09.20 1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때 조상에 감사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

  19. Favicon of http://www.comcast-deals.info/comcast/basic-cable-package/ BlogIcon Comcast Basic Cable Package 2012.09.24 2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20. Favicon of http://nizonty.x10.mx/blogs/viewstory/618 BlogIcon emergency water storage tanks 2012.11.26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조금만 오서의 인터뷰나 메일만 확인해도 오서의 거짓말은 그냥 들통나고 만다. 하지만, 한국의 발기자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한 발기자가 글을 쓰면 카피앤패스트 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급수가 높은 발기자들은 위치만 위로 아래로 순서만 바꾸어 조절만 한다. 이들에게 분석기사를 바라는 것은 지구가 멸망하는 날이 되어도 오지 않을 것이다.


  21. Favicon of http://www.fb.arjanbongers.nl/blog/view/45519/excellent-guidelines-for-emergen.. BlogIcon post apocalypse survival gear 2012.12.06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쌈마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전버튼 1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 시사 사회 문화 스포츠 평론
갓쉰동
12-01 08:49
Yesterday34
Today16
Total12,307,061

최근에 달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