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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

계백, 부여복신, 무왕과 의자왕 어머니 선화공주 사랑 없었다 증언하다? 에서 무왕이 드디어 선화공주의 아들인 의자왕자를 세자로 내세운다. 의자가 세자가 된때는 무왕 33년 632년, 정월 이었다. 의자왕자는 30살이 넘어서 세자가 된것이다. 그런데, 의자왕은 무왕의 큰아들이였을까? 대부분 태자는 성년이 되기 전에 미리 찜해두는게 관례이다. 그래야 왕실이 안정이 되고 후계싸움이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무왕은 의자왕을 30살이 넘도록 두고 보고 있다가 즉위 33년이 된 때에 의자를 태자로 책봉한 것이다. 그래서 처럼 왕자들간에 싸움이 있었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백제의 왕자나 태자들은 대부분 왜에 출장을 가는 경우가 많다. 백제 태자들을 찾는건 삼국사기에서 보다 일본서기에서 찾는게 더 빠르고 여러왕자들을 볼수가 있다. 660년 백제가 멸망한후 백제부흥군을 이끄는 부여풍(장)은.. 더보기
계백, 의자왕, 반란 실패한 사택비 죽고, 교기 왜로 쫓겨난다? 공주의 남자를 비롯해서 계백에서도 기본적인 팩트를 무시하는 작가의 자의적인 망상 사극이 철찬리에 방송중이다. 드라마 에서 당나라 사신으로 공손사가 등장한다. 공손사는 631년 봄 당나라 광주자사였지만, 고구려 사신으로 간다. 수나라와 대결한 고구려가 수나라를 물리치고 경관을 설치였었다. 고구려에 간 공손사는 경관을 없애 줄 것을 청원하고 고구려는 당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경관해체작업에 동의를 하고 없애준다. 이런 공손사가 백제 사신으로 오면서 자신이 한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냥 공손사의 말은 스쳐 지나면 된다. 단지, 계백에서 현재 시제가 언제인지만 알면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드라마 계백의 시제는 631년이라고 친절히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백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몇.. 더보기
계백, 예수가 된 의자왕? 왜곡 달인 조선일보에도 욕먹는 사극 안타깝다 조선일보가 황원갑(소설가, 역사연구가)의 이름을 빌려서 'TV 사극, 역사왜곡 정도가 지나치다‘라는 기사를 송고했다. 주된 내용은 “시청률이 중요하고 재미를 앞세우는 드라마라도 역사는 몇사람이 입맛대로 비틀거나 뒤집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가볍게 여기고 변곡하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올바른 역사교육에 역행하는 범죄와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이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런 기사가 조선일보의 지면을 통해서 나왔다는 것이 스스로의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이다. 조선일보는 사실보도가 생명인 기사에서 소설가도 아니고 드라마 작가도 아닌데 근현대사를 왜곡하는데 앞장을 섰고, 자신들의 조선일보 역사도 왜곡하였다. 참으로 조선일보의 눈에도 최근 사극의 역사왜곡은 도가 지나쳤나보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을 .. 더보기
계백, 의자왕 어머니 선화황후 아닌 사택비 가능성 더 높다. 황산벌 전투의 신화를 이룬 백제의 계백의 일대기를 그린 사극 이 MBC에서 방영되고 있다. 시제는 612년 백제의 이야기로 계백의 탄생비화를 다루고 있다. 드라마 은 계백의 탄생시기를 612년으로 설정하였고, 계백이 태어난 해에 선화공주가 죽은 해라고 말을 하고 있다. 이때 드라마에서 무왕과 선화의 아들인 의자가 10대 안팍의 나이로 설정을 하였고, 사택비의 아들인 이복형제(?)인 교기는 왕자 의자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으로 그리고 있다. 정말 무왕과 선화공주와의 사랑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정확히 선화공주가 언제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선화공주에 공주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 조차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백제의 역사를 알려고 하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일.. 더보기
천명때문에 천륜과 인륜을 저버린 마야, 진짜 이유는? 마야는 천명의 죽음에 미실이 관련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미실에게 "혼자서 외로움에 떨고, 가진것을 모두 빼앗기고, 너년의 이름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저주를 한다. 드라마 은 미실의 이름이 역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남지 않은 이유가 마야의 저주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실과 덕만은 만다면 안되는 존재이다. 죽은 미실을 덕만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귀신 미실을 만나는 방법밖에 없다. 어찌 되었던, 덕만/천명의 대척점에 미실로 설정을 하였으니 어쩔수 없다고 치자. 마야가 미실과 맘먹을 수 있는 군번이였을까? 물론, 마야가 왕후이고, 미실이 일반 궁주이며, 후비라면, 미실의 나이에 상관없이 어린 마야가 저주의 말을 해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미실의 아들인 11세 .. 더보기
화랑세기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도 있다. 법흥왕과 백제 보과공주의 사랑 뒤바뀐 역할모델 선화공주->법흥, 서동->보과공주 백제 30대 법왕의 아들(?) 서동과 신라 27대 진평왕의 3째 딸인 선화공주와의 사랑이야기는 시대적 배경으로 보면 599년부터 600년 사이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의 미담이 될것입니다. 역사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백제와 신라의 왕자 공주의 혼인관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라 법흥왕과 동성왕의 딸인 보과공주와의 사랑이야기 어찌보면 왕자와 공주가 서로 바뀌지만 유사점이 많습니다. 동성왕(493년) 때 신라 이찬 비지의 딸을 왕비를 맞이 하는 결혼동맹을 하여 신라와 유대를 강화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나 비슷한 시기에 신라 지증왕(437~514)의 아들인 원종 법흥왕(23대 : 514~540)이 왕자 시절 백제의 수도인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