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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
광개토태왕>에서 담덕은 고국양왕이 죽기전에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삼국사기에 의하면 담덕은 고국양왕이 죽고 나서 왕위에 오른다.

 

광개토태왕에서 고국양왕은 나무아래 의자에서 쓸쓸이 죽어간다.

이 장면은 사극이라면 언제나 나오는 장면이다. 근초고왕에서 근초고왕은 소서노가 심었다는 신단수 아래 의자에게 죽는다.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스스로 독약을 먹고 의자에서 죽는다. 고려 시대를 다룬 드라마에서도 왕은 의자에서 손을 떨구고 죽는다.

 

이는 작가의 상상력의 한계에서 오는 이전 사극 베끼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전 사극 베끼기는 도를 넘은 경우가 많다. 요즘 사극에는 여자 무사가 등장하지 않으면 극이 진행이 되지 않는다.

광개토태왕에서 악연과 설지는 전장을 누비고 다니고 설지는 웬만한 무사를 빰치는 무예실력을 보여준다.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은 날아다닐 정도의 무예실력을 보여주고, 에서 계백의 처가 되는 여인도 여자무사다. 연개소문(갓쉰동)에서는 여성으로 구성된 여성무사집단이 나오기도 한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는 한글(훈민정음)을 창제하는 과정에서 시신을 해부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는 전혀 개연성도 없고 리얼리티도 없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 등장을 하고 세종 이도가 시체해부를 할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장왕설을 내놓고 합리화 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뿌리깊은 나무>는 극중 세종 이도 조차 이를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믿고 따라주면 안되겠니?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런데 왜 <뿌리깊은 나무>는 세종 이도의 훈민정음 창제에 시체해부 장면을 넣었을까? 극의 긴박감과 한글이 시체를 해부정도는 해야 만들어 질 수 있는 문자라서 그랬을까?

한글은 시체해부를 하는 순간 발성기관을 모방했다는 설정은 산으로 간다. 왜냐하면 한글의 발성기관 모방한 상형글자는 자음,모음 모두 해당하기 때문이고, 후음(목구멍)소리는 살아있는 사람의 목을 살펴봐도 쉬이 알 수 있을 만큼 단순한 모양 
이기 때문이다.

 
2011/11/11 - [역사IN드라마/뿌리깊은나무] - 뿌리깊은 나무, 밀본 정기준 집현전 파괴공작 자책골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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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0 - [역사IN드라마/뿌리깊은나무] - 뿌리깊은 나무, 가리온 정기준 시체해부 한글 만든다? 도 넘은 설정

그럼 왜 <뿌리깊은 나무>는 무리수를 두면서 시체해부장면을 넣었을까? 이는 이전 사극 <대왕세종>에서 시신을 해부하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대왕세종에서는 장영실이 해부를 하고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백정이자 밀본의 본원인 가리온(정기준)이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시체를 해부한다는 설정뿐이다.

 

예전 연개소문에서 갓쉰동이 신라의 김유신의 집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장면이 그려진적이 있다. 그런데 계백에서는 계백김유신의 노예가 되어서 전장을 누빈다.

 

더군다나 연개소문에서 북한산성 전투에 참전하는 김유신을 그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선덕여왕에서도 김유신이 북한산성전투에 참전을 하고 있다. 물론, 김유신이 북한산성 전투에 참전한 사실은 없다.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김유신이 북한산성 전투에 참전이 불가능한 것은 생물학적인 나이 때문이다.

 

김유신 595년생이고 북한산성 전투는 603년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603년이면 김유신의 나이는 9살에 불과하다. 그런데 김유신이 나오는 사극마다 김유신은 북한산성전투에 참전이 당연시 되어 극화된다.

김영현의 선덕여왕은 한발 더 나아가 602년 아막성 전투에 김유신, 선덕여왕(덕만)을 총출동시키는 만행까지 저지르며 니들이 9살에 김유신을 등장시키면 우리는 8살에 전장에서 날뛰는 김유신을 만들겠다는 오기라도 있는 듯하다. 북한산성전투를 베끼지 않았다는 설정이지만, 오히려 이전 사극을 베꼈다는 자복과도 같은 설정일 뿐이다.

 

광개토태왕은 474년생으로 48512살에 태자가 되고 491 18살에 왕위에 올랐지만, <광개토태왕>에서는 12살도 안된 담덕이 요동성에서 귀신장군이 되어 나타난다.  

 

이는 작가들이 사서를 보기보다는 이전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고 빼기기 때문에 가능한 설정들이다.

 

세종의 시체해부도 허준유의태의 시신해부로부터 시작하여 일상화 되고 있다. <상도>이후에 모든 극중의 여자들은 상단을 운영하지 않으면 드라마가 만들어 지지 않는다. 서소노도 상단을 운영하고, 주몽도 상단을 운영하고, 장보고의 일대기를 그린 <해신> 드라마에서도 여성이 주인인 상단이 등장한다. 계백에서는 은고가 상단의 주인으로 나온다.

 

<근초고왕>에서는 근초고왕은 고구려의 소금장수 출신인 미천왕을 복제하여 고구려 미천왕의 일대기인지 근초고왕의 도플갱어인지를 모르게 만들어 버렸다.

 

삼국시대를 다룬 드라마는 주몽에서부터 광개토태왕, 근초고왕, 서동요, 선덕여왕, 김수로던 상관없이 강철검을 만들었습니다는 설정이 없다면 이상할 정도로 많이 나온다.

 

더군다나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등 어떠한 사극을 다루던 소나 개나 다들 황제폐하라고 참칭을 한다.
황제국이면 황제국답게 그려야 하는데 한나라, 당나라에 책봉을 받기 위해서 뛰어다니거나 인정을 받지 않았다고 나라의 정보를 팔아먹는 은고 같은 역을 꼭 집어 넣는다.
 



사실 대왕폐하는 가능하다. 무왕이 죽기전 사택적덕의 딸인 왕비는 무왕의 무병장수를 기리는 미륵사 서탑을 세우고 사리봉안기에 "대왕폐하"의 무병장수를 기린다는 말을 집어 넣기도 한다. 그러니 대왕은 폐하라고 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황제폐하, 황후폐하, 이런 말은 쓰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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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7 - [역사IN드라마/광개토태왕] - 광개토태왕 담덕 태왕이면 태종 이방원은 태상황?
2011/11/05 - [역사IN드라마/광개토태왕] - 광개토태왕, 광개토태왕비 깨부수는 담덕 무슨 뜻일까? 엄청난 비밀이
 

광개토태왕도 살아생전에 태왕을 참칭한적도 없고, 단지 왕중의 왕인 <영락대왕>이였을 뿐이다. 담덕이 죽고 사후에 아들 장수왕이 아버지 담덕을 기리기 위해서 "태왕(太王)의 시호를 올린 것 뿐이다. 살아생전 태왕폐하라는 설정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다다량덕웅이 예조에 글을 올려 말하기를,

“받들어 듣건대, 지난해에 태상황께서 세상을 버리셨다 하니, 이는 귀국의 큰 상고(喪故)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금상 전하(今上殿下)께옵서 공경히 오히려 상복중에 계시오니 비통(悲痛)하시고 애모(哀慕)하심이 어떠하오리까. 다시 슬픔을 억제하시고 예절에 좇으시어 큰 효도(孝道)를 온전히 하시옵기를 바랍니다.

세종 5년

 

많은 사람들이 사대주의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조선에서 세종은 정종에게 태상황의 존호를 올리지만, 과한 존호라고 거부되고, 태종 이방원은 태상황(太上皇)으로 불린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방원이 황제중에 황제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사대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조선시대에도 대왕이란 소리는 많이 한다. 세종도 대왕이였고, 숙종도 대왕이였고, 영조도 대왕. 조선의 모든 임금들은 대왕이였다. 

황제국을 만들고 싶다면 완벽한 황제국을 만들던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정한 짝퉁 황제국을 만들 이유는 없다. 물론 역사와는 무관하게 드라마에서도 대리만족을 하고 싶은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마스터베이션을 한다고 없는 역사가 사실이 되지도 않는다.

조선에 들어와서 사대를 하고 이전에는 사대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순한 생각이다. 
 

우리나라 사극의 패턴은 일정하다. 일단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사극을 만든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공주이던 왕이던 상관없이 궁()을 떠나 노예생활이 없으면 안 되고, 여성은 무조건 무사 아니면 상단의 주인이 된다.

한마디로 자신만의 창작 드라마가 아닌 이전 사극 베끼기에 극중 인물 이름만 바꾸면 어느 사극에도 들어 맞는 공장에서 나오는 무한 복제 가능한 드라마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당하는 극중 설정이 개연성이라도 있다면 다행이지만, 극 중 개연성과 리얼리티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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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yeogangyeoho.tistory.com BlogIcon 여강여호 2011.11.14 1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 사극도 허구적 색채가 강한 드라마이긴 하지만 역사적 고증이 병행되어야 하는 독특한 장르가 아닌가 싶네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최근의 사극 열풍은 오히려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주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하나하나 짚어보니 고증을 외면한 장면들이 너무도 많네요.

  2. 구르믈 2011.11.14 1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 사극은 참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비록 야사일지언정 어느정도 사료에 근거해 드라마를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요즘은 사극의 무늬만 입은 판타지극들이 많아서 어느 시점부터인가 사극을 보지 않고 있습니다. 작가라는 분들이 조금만 공부를 하셔도 될 터인데 공부도 독서도 없이 글을 쓰나 봅니다... 여튼 글 잘 읽고 갑니다.

  3. Favicon of http://wt-1004.tistory.com BlogIcon 일프로 인 코리아 2011.11.14 10: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극 자체가 허구적이긴 하지만 무분별하게 너무 허구 적인 요소를 주입시켜도 안된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허구인지 있었던건지 알고 보는 사람보다 모르고 보는 사람들이 더 많기도 하고 너무 허구성이지나치다면 사극이 아닌 그냥 드라마가 되는거겠지요...ㅎㅎ 긁잘읽고 갑니다 ㅎㅎ
    좋은하루 보내세요^^

  4. Favicon of https://doolbob.tistory.com BlogIcon 둘러앉은밥상 2011.11.14 12: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

  5. 쎄븐맨 2011.11.15 0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피곤하군ᆢ역사에그토록궁금하고관심많은분은 따로공부하면되지 그렇다고 훌령한우리조상들을 나쁜사람으로표방한것도아닌되...

  6. 쎄븐맨 2011.11.15 08: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피곤하군ᆢ역사에그토록궁금하고관심많은분은 따로공부하면되지 그렇다고 훌령한우리조상들을 나쁜사람으로표방한것도아닌되...

  7. Favicon of http://anywander.tistory.com BlogIcon 완더 2011.11.17 10: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퓨전사극들이 점점 사극을 더 재미있게 만들지만...너무 역사적인 사실을 놓치고 있는데 ....이건 아니다 싶기도합니다. 역사가 그랬다는 인식이 남을테니까요

  8. 지나가다 2011.11.28 1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가다 몇 자 적고 갑니다. 사극은 역사를 기반으로한 드라마일 뿐이지 실제 역사를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왜들 똥오줌을 못가리는 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사극이 역사를 많이 왜곡한다구요? 그럼 그런 사극류를 보고 역사를 어설프게 아는 자들이 수도 없이 넘쳐 나겠군요, 이 대한민국에...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왜곡하지 않는 사극이 없을진데,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들 하지 맙시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서 그대로 드라마를 만든다면 드라마로서의 재미가 있겠습니까? 왜 드라마에서 각색을 할까요? 뿌리깊은나무의 경우 왜 드라마는 책내용과 판이하게 다르게 전개될까요? 파격적인 일탈은 예능, 예술 분야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확장하면 과학이나 철학쪽도 마찬가지지요.
    늘 이념으로 싸우왔던게 철학이나 학문 분야였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주류가 되기도 하고..., 지금은 한글을 과학적 문자라 자랑들 하지만, 그 당시에도 그랬습니까?

  9. 지나가다 2011.11.28 1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드라마 가지고 역사적 사실이 어떻고 등등 따지고 들어가면 상당히 피곤해집니다. 다들 그렇게 똑똑하십니까? 또는 그렇게 똑똑해 지고 싶은 것인지요? 그저 드라마는 드라마로 재미있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블로그 주인장께서 쓴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는 이런 글은 참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던 역사적 사실들을 알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선에서 그치는 것이 보기 좋지요. 굳이 드라마와 엮어서 이리 드라마를 비하하는 성격의 글을 쓸 필요까지 있었을까하는 의구심이 드네요. 참신성면에서 보면 좀 그런면이 없어 보이지는 않지만, 상업성 측면에서 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것들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10. Favicon of http://commentperdredupoids.blogs.fr BlogIcon comment mincir 2011.12.11 2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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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사비로 들어온 김춘추를 은고는 암살하려 하지만, 계백이 김춘추를 살려낸다.

 

사실 김춘추가 642 7월 미후성을 비록한 40개성이 함락된 직후 백제의 수도에 당의 복식을 입고 나타날 이유가 없지만, <계백>에서는 못하는 것 없다.

 

오죽하면 <천일의 약속> 작가인 김수현<뿌리깊은 나무>에 대해서 똘복이가 언제 어디서한문을 배웠지 하는 드라마 개연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을까?

 

더군다나 김수현은 자신의 트위터에 상상으로 쓸 수 없는 부분은 철저히 자료조사를 한다며 요즘 드라마의 극중 개연성 뿐만 아니라 무분별하게 상상으로 쓸 수 없는 부분인 역사적인 팩트와는 다른 드라마를 쓰는 작가에 대한 일침을 하였을까?

 

김수현의 일침에 벗어날 대한민국 사극작가는 단 한 사람도 없다.

<
선덕여왕>을 쓴 김영현은 선덕여왕에서 역사와 일치하는 단 하나의 장면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뿌리깊은 나무>에서 조차 역사와 일치하는 단 하나의 장면도 넣지 않았다.

사극을 쓰는 작가가 역사를 공부하지 않고 시나리오를 쓴다는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어떠한 비난이나 비판을 받지 않고 쓸 수 있는 영역이 현대극이 아닌 시대극인 사극류이다.

 

계백도 이에 벗어날 수가 없다.
 

 2011/10/25 - [역사IN드라마/뿌리깊은나무] - 천일의 약속, 김수현 뿌리깊은 나무 개연성 의문, 비난은 마녀사냥

<계백>에서 계백은 전쟁의 신으로 나온다. 노비였을 때부터 고구려의 성을 함락하고, 백제로 귀환하기 전에 노비로서 가잠성도 공취를 한다. 이 당시 가잠성은 백제의 성이었는데 백제가 공취하고 전쟁영웅이 되는 황당설정을 하였었다.

 

 

가을 7월에 왕은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를 쳐서 미후성(獼猴城) 40여 성을 함락하였다. 8월에 장군 윤충(允忠)을 보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였다. 성주 품석(品石)이 처자와 함께 나와 항복하자 윤충은 모두 죽이고 그 머리를 베어 서울[王都]에 전달하고, 남녀 1천여 명을 사로잡아 나라 서쪽의 주·(州縣)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그리고] 군사를 남겨 두어 그 성을 지키게 하였다. 왕은 윤충의 공로를 표창하여 말 20필과 곡식 1천 섬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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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백제 의자왕 2 642


11
(642) 봄 정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가을 7월에 백제 왕 의자(義慈)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나라 서쪽 40여 성을 쳐서 빼앗았다. 8월에 또 고구려와 함께 모의하여 당항성을 빼앗아 당나라와 통하는 길을 끊으려 하였으므로 왕이 사신을 보내 [] 태종에게 위급함을 알렸다. 이 달에 백제 장군 윤충(允忠)이 군사를 이끌고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는데, 도독 이찬 품석(品釋)과 사지(舍知) 죽죽(竹竹용석(龍石) 등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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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신라 선덕왕 11 642


 의자왕은 왕이 된 이듬해 642년 가을 7월 대대적으로 직접 군대를 이끌고 신라의 성을 침략하기 시작하고 미후성을 비롯한 40성을 공취 한다. 하지만, <계백>에서는 계백이 미후성을 비롯한 39개성을 공취 하자, 계백에게 질투심이 있었던 의자왕이 계백의 공을 빼앗기 위해서 숟가락을 얹었다고 그리고 있고, 계백이 모든 일을 하였다고 그렸다.


 

<계백>에선 의자왕은 자신을 군주로 만들어준 계백의 여자인 은고도 빼앗고, 계백의 공을 가로챈 몰렴치에 파렴치한 찌질한 군주다.

 

642년은 삼국시대 전환기가 되는 해이다. 백제가 신라를 압박하자 신라는 이때부터 당나라에 구원을 요청한다. 하지만, 백제는 고구려와 연합하여 신라를 압박하는 정책을 취하여 신라는 누란위기에 처한다.

 

선덕여왕시 엉뚱 대야성 설정


642
8월에는 의자왕은 윤충에게 1만의 군대를 주어 대야성(합천)을 공취하도록 하지만, 대야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대야성 성주는 김춘추의 사위로 품석이었는데 품석은 검일의 아내를 취하는 몰염치한 범죄행위를 한다. <계백>에서 의자왕이 계백의 연인 은고를 빼앗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분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검일은 윤충과 내응하여 대야성 내에서 불을 질러 버린다.

 

대야성에 돌입한 윤충은 품석과 고타소의 목을 베고 모척과 검일을 우대한다. 검일과 모척은 백제에 귀부하여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백제의 선봉에 서서 신라와 맞선다. 백제가 멸망할 때 모척과 검일은 목이 베어 버려진다.

 


하지만, <계백>에서는 못하는 것은 단지 연애뿐인 계백이 대야성의 선봉에 섰다가 질투심에 눈이 먼 의자왕이 흥수에게 계략을 하여 모척을 통해서 검일을 꼬시고 내흥하여 대야성을 함락하게 하고, 신라가 배후를 칠지 모르니 계백은 후방군이나 맡으라고 한다.

 

이에 계백을 비롯한 부하들은 다 넘어온 대야성의 공을 의자왕이 빼았었다고 투덜거린다. 그런데 이상하다. 백전백승 전신인 계백이 대야성을 3일 동안 공격하고도 공취를 못하다니. 달랑 40명으로 서곡성을 공취한 계백의 운도 다했나 보다..

 

의자왕은 김품석과 고타소를 불러다가 목을 베어버리라고 하자, 계백이 쌍심지를 들고 왕명에 반항을 한다. 신은 황명을 받들 수 없습니다 항복하지 않는 적장의 목을 베는 것은 전쟁에서 예의다. 당시에도 제네바협정은 없었을지라도 전쟁의 룰이 있었다. 항복한 장수는 우대하고 군사에게도 우대를 하고 자국의 신민으로 삼는다. 설마 고타소와 품석이 신라를 배신하고 백제에 귀부라도 했겠는가?

 


더군다나 의자왕은 뜸금 없이 겨우 품석과 고타소를 죽이면서
할아버지의 원수를 들먹인다.

 

의자왕이 들먹인 할아버지는 누구일까? 아마도 성왕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대부분 광개토태왕이 백제에 원수를 진 이유가 고국원왕(사유)가 백제 근초고왕에게 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철천지 원수로 치자면 모용씨의 연나라다. 미천왕의 무덤은 파헤쳐지고 국내성은 박살나고 미천왕비는 연나라에 끌려가는 수모까지 당했었다. 단순히 눈먼 화살에 맞았다고 원수가 되기나 했겠나?

 

반면에 백제는 한강 유역을 백제의 배신으로 빼앗기고 성왕까지 죽었으니 백제의 원수는 철천지 원수인 것을 사실이다. 그래서 위덕왕시기부터 백제는 끝없이 신라를 공격한다. 그런데 무왕이 신라 진평왕 3째 딸 선화공주와 결혼한다는 설정은 어설퍼 보인다. 오죽하면 삼국유사를 쓴 일연조차 미륵사 연기조사를 채록하고 의심스럽다고 했겠는가?
 


삼국사기 백제왕력으로 보면 성왕->위덕왕(창왕)->혜왕(성왕2자)->법왕->무왕->의자왕 순이 된다.

 

삼국사기 계보라면 의자왕의 할아버지는 법왕이 된다. 무왕이 위덕왕의 형제라면 의자왕의 할아버지는 성왕이 된다. 하지만, 어떠한 사료에도 무왕이 위덕왕이 형제라는 자료는 없다. 북사만이 중간 생략이 된채 무왕이 위덕왕의 아들로 추측할 뿐이다.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의자왕의 "할아버지 원수"는 위덕왕(창왕)이 되는데 무슨 원수를 갚겠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성왕을 뜻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계백>에서 의자왕이 대야성에 나타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실제는 항복한 신라군과 백성 수천 명은 백제의 서쪽 주군에 나눠져 배치된다. 설령 의자왕이 <계백>에서처럼 직접 군을 이끌고 대야성을 공격했더라도 <계백>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키높이 구두신은 이서진?


<계백>에서는 계백같이 않은 계백 하나 살리자고 정확히는 계백이 아닌 주인공 이서진 하나 살리자고 수없이 많은 백제의 장군들을 모욕하고 있고, 의자왕을 모욕하고 있다. 더군다나 실제 의자왕의 비인 은고를 정체를 알 수 없는 계백의 연인으로 만들어 대야성의 품석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은고가 계백을 찾으려는 일념으로 백제를 멸망의 길로 이끈다는 스토리가 <계백>의 물밑에 흐르는 설정이다.

 


막장극의 대표주자로 김수현을 지목하지만, 실제 김수현 작품에는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불륜드라마로 따져도 김수현보다는 <계백>의 작가나 <공주의 남자> 작가를 따라올 자는 없다. 최소한 김수현은 상상력을 발휘할 부분에 상상력을 발휘하지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할 부분에 대한 자료조사는 충실히 한다.

하지만, 사극작가들은 자료조사 자체도 안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할 부분까지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글을 쓰고 창작의 자유라거나 시청자가 원해서라고 자신들의 무능을 시청자들에 전가하기 까지 한다.

 


어쨌든 <계백>에서 무왕의 충신으로 나오는 윤충은 의자왕자가 가잠성을 점령하는 시점에 홀연히 사라지고 의자왕자가 사택비와 싸울때도 나타나지 않고, 정말 나타나야 할 때는 사라지고 없다. 사실 윤충이 <계백>에 등장하는 이유는 대야성 때문이다. 그런데 대야성의 주인공인 윤충이 드라마 <계백>에는 나오지 않을 만큼 개연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제작자 멋대로 고증없이 극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하겠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사실 계백은 그리 뛰어난 장수는 아닌 듯 하다. 왜냐하면, 대부분 정예기병으로 채워졌을 중앙군 오천의 결사대를 가지고도 황산벌에서 식량배달 수송부대나 다름없던 오만의 신라 잡병들의 4번 공격을 막고 죽기 때문이다.

 
실제 백제에는 명장들이 많이 있었다. 백제 부흥군을 이끈 무왕의 조카이자 의자왕의 사촌인 부여복신이 있었고, 여자신(여자진)도 있었다. 2차 대전에서 일본의 왕은 히로시마와 나카사기에서 원자폭탄을 맞고 항복한다. 이에 태평양에 있던 일본군과 중국, 만주, 한반도에 있던 일본군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다.

 

마찬가지로 의자왕이 항복하자 백제군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다. 하지만, 복신과 여자신은 무기가 없는 상황에서 당군과 신라군을 몰아내고 백제의 대부분의 성을 회복한다.

 

백제 부흥군을 막는데 당은 30만의 대군을 동원한다. 660 13만 당군 보다 더 많은 병사들이 부흥군과 싸운 것이다.

 

<계백>의 작가는 계백이 백제의 삼충신으로 성충과 흥수와 함께 계백이 추앙 받은 이유는 백제가 멸망에 즈음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신라군에 맞섰다가 죽었기 때문이지 전투를 잘했기 때문에 추앙 받는 존재가 아님을 모르는 듯 하다.
 
임진왜란 시 신립은 충주의 탄금대에서  왜군을 맞아 싸우지만, 조선 군의 유리한 전술을 마다하고 왜군에 유리한 전투를 하다 패전하고 만다. 신립을 전쟁영웅으로 추앙하지는 않는다 단지 전쟁에 죽은 충신으로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원균이 칠전량 전투에서 조선 수군을 몰살시키지만, 이를 전쟁영웅이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균은 이순신보다 높은 등급의 공신이 되었다가 이순신의 등급이 원균과 동급이 된다. 어쨌든 원균도 충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만약 <계백>처럼 전쟁의 신은 아닐지라도 적군의 사기를 높이는 전략을 구사하는 전술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신라군은 백강의 당군과 신라군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신라군과 당군은 식량난에 고립되어 철군할 수밖에 없었다.

 

계백은 겨우 5천의 군대를 지휘했었다. 단독으로 오천의 군대를 통솔한 것이 아니라 달솔 상영과 그 위에 좌평도 있었다. 백강전투에서 당군 13+신라군 100척 군사와 2차례 전투중 죽은 백제군사만 해도 수만이었다. 그러고도 백제의 주력군은 백강전투에 투입되었고, 당 신라연합군은 사비성을 중심으로 하루거리에 진을 치고 백제와 대치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기술은 다음기회에..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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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meetthetanners.com BlogIcon 김성환 2012.01.04 2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박 겉 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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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일을 나의 친구를 계속, 이거 정말 끝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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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제 말하면 온다이해가 안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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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의 신으로 나온다. 노비였을 때부터 고구려의 성을 함락하고,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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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한 세조를 비난하기 위한 또 하나의 좋은 소스를 제공한다. 세조가 나쁜놈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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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에서 무왕이 드디어 선화공주의 아들인 의자왕자를 세자로 내세운다.

의자가 세자가 된때는 무왕 33년 632년, 정월 이었다. 의자왕자는 30살이 넘어서 세자가 된것이다. 

그런데, 의자왕은 무왕의 큰아들이였을까? 대부분 태자는 성년이 되기 전에 미리 찜해두는게 관례이다.

그래야 왕실이 안정이 되고 후계싸움이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무왕은 의자왕을 30살이 넘도록 두고 보고 있다가 즉위 33년이 된 때에 의자를 태자로 책봉한 것이다.

그래서 <계백>처럼 왕자들간에 싸움이 있었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백제의 왕자나 태자들은 대부분 왜에 출장을 가는 경우가 많다. 백제 태자들을 찾는건 삼국사기에서 보다 일본서기에서 찾는게 더 빠르고 여러왕자들을 볼수가 있다. 660년 백제가 멸망한후 백제부흥군을 이끄는 부여풍(장)은 당시에 왜에 있다가 귀국한다.

백제와 왜는 이웃국가하라고 하기에는 친밀도가 지나치다. 오히려 2국가 1체제가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어쨌든, <계백>에서 사택비와 사택가문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 의자왕자는 태자가 되고, 연인관계로 설정된 계백과 은고를 때어 놓을 생각을 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의자도 계백만큼 은고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오고, 정란에 성공한후 제일 먼저 은고에게서 눈을 때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은고와 계백의 사랑은 허구이지만, 왜 계백이 황산벌 싸움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백제를 위해서 싸우기보다는 초연한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공주의 남자나 계백이나 광개토태왕은 의복 고증은 하지 않는 걸까? 그리고 왜 계백에서는 왜인들 복장같은 모습이 너무 많이 보여주는 걸까? 더군나 공주의 남자나 계백이나 무사 백동수는 주인공들이 나이도 먹지 않는 걸까? 최소한 개연성있게 수염좀 그리고 나오면 안되나? 무슨 작당들을 했나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반란 실패한 사택비 죽고, 교기 왜로 쫓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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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어려운때를 같이 하여 창업을 할수는 있지만, 수성은 같이 하면 안된다는 고사가 여럿있다. 오왕 부차와 오자서는 어려울 때를 같이하여 초나라와 월나라 구천을 복속시켰지만, 오자서는 버림을 받았다.

한왕 유방이 한신을 받아들어서 초나라 항우를 무찌르고 중원을 통일했지만, 한신은 결국에 사냥이 끝난 개처럼 삶아지는 고초를 당했다. 월왕 구천은 범려를 받아 들여서 오왕 부차를 이겼지만, 범려는 구천이 고생과, 창업은 할수 있지만, 수성은 같이 할 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제나라로 도망하여 이름을 숨기고 살아간다.

어쨌든, 은고와 계백이 사랑하는 관계일수 없는 허구이다. 계백에서는 내신좌평 연씨의 딸을 맞이하여  부여효나 부여태를 낳은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 당나라로 끌려가는 이는 의자왕의 처 은고이다. 처란 첩이나 후비와는 다르다. 한마디로 정비라는 뜻이다. <계백>에서 이제 태자비 연씨를 버린다는 설정을 해야만 할것이다. 의자왕 때 백제가 망한건 의자가 자신의 동지들을 끊임없이 없애서 라는 식상한 구성을 할것 같아서 조금 우려스럽다.

<계백>에서 무왕과 의자가 공모하여 선화공주의 원수를 갚고 사택비를 쫓아낸다는 설정은 개연성이 있을까? 물론, 사택비가 살려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무왕의 장수를 빌기위애서 639년 잠시 등장하고, 의자를 몰아내고 교기를 다시 백제왕에 앉힐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으로 그려질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선화공주와 사택비의 기록들로 진실찾기를 해보려고 한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무왕인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3번째 딸 선화공주가 이쁘다는 소문이 백제까지 퍼져 있자, 선화공주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고자 신라 경주에 들어간다.


그리고 <마>로 서라벌 어린이들을 꾀어 서동과 잠자리를 했다는 음담패설 참요를 가르친다. 서라벌의 음담패설은 진평왕의 귀에 들어가고 진평왕은 진노하여 선화공주를 궁밖으로 유배를 보내 버린다.


서동은  유배를 떠나는 선화을 꾀어 정을 통하고 백제로 돌아온다.  신망을 얻은 서동은 법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는 것이 골자이다.


그런데 일연은 어디서 서동(무왕)과 선화공주의 이야기를 들었을까? 일연은 중으로 고려의 국사였다. 그래서 전국각지에 퍼져있는 절의 창건에 관한 설화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었다. 서동과 선화공주에 관한 설화는 미륵사 청건에 관한 연기설화 기록을 보고 자신의 견해를 삽입하여 기록한 것이다.


일연은 요즘으로 치면 채록가가 아닌 역사학자의 풍모를 보여준다. 삼국사(삼국사기)의 오류를 지적하거나 또 다른 이설이 있다고 딴지맨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미륵사 창건설화의 무왕과 선화공주의 서동요도 일연특유의 역사지식과 비판의식을 보여준다. 옛 기록에 미륵사 관련 무왕과 선화공주이야기가 있는데 그 곳에 나오는 “무왕”은 백제의 왕으로 기록했는데 백제에는 “무강왕”이 없다. 그러니 알 수가 없다고 말이다.


일연은 3개의 사서를 통해서 서동과 선화의 국경을 넘는 사랑의 이야기를 분석하고 있다.

첫 번째는 미륵사 연기설화인 옛기록(고기)에는 백제 무강왕에 대한 기록이었다는 것이다. 일연은 이때 백제에는 무강왕이 없다는 말로 무왕에 대한 설화가 아닐까 추측한다.


더불어 서동의 출자가 과부인 어머니와 사비(부여) 남쪽 연못가에 살고 있던 과부인 어머니와 용이 통정을 해서 서동을 낳았다고 말을 하는데 <삼국사>에는 무왕(장)이 법왕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과부의 아들이라고 하니 자세히 알 수 없다고 한발을 뺀다.


일연은 삼국사기와 견해가 달리하면 자신의 견해를 철저히 밝히고 자신은 이렇게 생각한다고 명확하게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서동(무왕)과 선화공주와의 사랑에 대해서는 자신도 모르겠다 말을 한 것이다.



미륵사는 일연이 살고 있던 고려 말엽에도 보존되어 있었고 그 후 조선시기에도 사찰이 유지되 있었다.  미륵사는 3당 3탑으로 조성되어 있었고, 3탑 중에서 무너져 내린 좌측 탑만이 현재까지 남아 있었다. 무너진 좌측탑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탑이 세워진 시기를 알 수 있는 사리장엄구 금판 기록물이 발견되었다.


사리장엄 봉안기에는 서탑이 639년에 조성하였고, 삼국유사의 기록과는 다르게 사택적덕의 딸인 사택왕비가 무왕의 장수를 기원하며 탑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사찰을 조성하는데 수십 년이 걸린다. 신라의 황룡사의 경우 조성하는데 14여년이 걸렸다. 그만큼 사찰을 만드는데 한두 해만에 만들어 지지 않는다.


탑과 불당을 같이 조성했다면 미륵사는 무왕 말년인 639년에 무왕이 늙어서 왕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서 사택비가 조성한 것이 되고, 미륵사 전체윤곽이 완성된 후 탑만 후에 조성되었다면, 완성시기는 639년 이후가 될 것이다.


문제는 동탑이나 서탑이 처음부터 설계에 반영된 듯한 균형미를 갖춰져 있으니 미륵사 창건과 동시에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신라 황룡사 9층목탑처럼 중앙탑은 후에 조성이 가능해도 한쪽으로 치우친 서탑이나 동탑만 별도로 만들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뜻이다


본찰(미륵사)를 창건한건 선화공주이고, 단지 서탑만이 사택비가 만들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중앙탑과 동탑은 또 다른 무왕의 비가 시주를 해서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그중에 선화공주가 시주한 자금으로 만든 탑도 있을 수 있다.


그러니 무왕의 왕비는 사택비이지 선화공주는 단순히 설화에 지나지 않고, 선화공주가 무왕과 결혼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삼국유사에는 절 이름이 미륵사가 아닌 국사에는 왕흥사라고 했다는 대목도 있다는 것이다. 


선화가 만든 절은 왕흥사이고 미륵사는 사택비가 만든 절일 가능성도 있다. 사택지적비에 의하면 사택가문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절을 만들만큼 부유했다.


그러니 미륵사는 사택가문이, 600년(법왕 2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왕흥사는 무왕과 선화가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신라의 경우 진흥왕 14년 553년 황룡사를 창건하기 시작해  567년 완공한다. 진흥왕 35년(574년) 장육상은 별로도 만들어지고, 황룡사 9층탑은 선덕여왕시기에 조성이 된다. 한마디로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


 

그런데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무왕은 법왕의 아들이라고 하고, 수서에는 무왕은 법왕의 아들로, 북사에는 위덕왕(창)의 뒤를 이었다고 나온다. 뒤를 이은 것과 아들은 엄연히 다르다. 북사에 위덕왕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무왕과 법왕은 형제간이 된다. 무왕처럼 다양한 출자도 보기 드물다.


수서에서는 위덕왕(창)->법왕(선)->무왕(장)으로 이어진다. 무왕의 출자가 다양한 이유는 중원의 나라들과 교류를 할 때 위덕왕(창)이후 단명한 왕들(혜왕, 법왕)이 있었기 때문에 교류를 하지 않은 왕을 몰랐을 수도 있다. 수서, 삼국사기에 이하면 무왕은 법왕의 아들임에는 변함이 없다.


삼국사기에는 무왕이 왕위를 이을 때 단순히 법왕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법왕에게 여러 왕자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무왕은 왕위계승권에서도 멀어져 있었다.

 

무왕(武王)은 이름이 장(璋)이고 법왕(法王)의 아들이다. 풍채와 거동이 빼어났고 뜻과 기개가 호방하고 걸출하였다. 법왕이 즉위한 이듬해에 죽자 아들이 왕위를 이었다.

武王 諱璋
法王之子 風儀英偉 志氣豪傑 法王卽位翌年薨 子嗣位

- 삼국사기, 백제 무왕 즉위년, 600년 


단순히 왕의 아들로 표현한 건 또다른 왕자들이 있었고, 서동(무왕)은 큰아들도 아니고 둘째아들도 아니다. 법왕에게 무왕(서동) 말고도 또 다른 왕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무왕 28년 627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고 백제가 660년 멸망한 후 백제 부흥운동을 주도한 <복신>의  기록으로 쉬이 알 수 있다.

 

무왕 28년(627년) 가을 8월에 왕의 조카 복신(福信)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니, 태종은 [백제가] 신라와 대대로 원수가 되어 서로 빈번히 침략·토벌한다라고 하면서 왕에게 조서[璽書]를 내려 말하였다.

- 삼국사기 백제 무왕 28년(627년)


복신은 무왕의 조카다. 무왕의 조카가 될려면 무왕(장)과 형제가 되는 법왕의 아들들이 있어야 한다.


드라마 계백에서 언제 부여복신이 등장할까 유심이 살폈지만, 부여복신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다큰 의자왕자의 많은 자식들도 없다. 의자와 계백과 은고의 삼각관계와 사택비와 무왕의 싸움으로  등장해야할 인물들이 사라졌다. 극초반 등장했던 윤충도 가잠성이후 홀연히 사라졌다.

삼국유사에서 단순히 무왕(서동)이 과부의 자식으로 용과 사통해서 낳은 자라면 복신의 아버지는 무왕과 같이 용의 자식일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용으로 형상화된 왕족이나 왕의 자식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면 복신의 아버지와 무왕은 이복형제간일수도 있다. 

 

불교와 밀접한 백제의 왕은 위덕왕과 법왕이 있고, 신라에는 법흥왕, 진흥왕이 있다. 법왕은 단순히 왕위를 2년 재위했지만, 위덕왕의 왕자시절부터 불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위덕왕의 뜻에 따라 사찰건립을 주도 하였을 것이다. 법왕이 위덕왕의 명으로 오랜시간 동안 익산 미륵사 만들기 위해서 웅진과 사비를 왕래하다 서동의 어미와 눈이 맞아서 사통했고, 서동을 낳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복신의 예에서 보듯이 삼국유사의 무왕과 선화공주는 단순한 미륵사 연기설화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는 어쨌든, 627년 당나라 사신으로 가는 무왕의 조카 부여복신의 존재는 삼국유사의 한미한 과부의 아들 마동과 신라 선화공주의 사랑을 방해하는 첫 번째 방해물이다.


두 번째는 일본서기의 642년 정월 의자왕 모후의 사망기사와 와 미륵사 사리장엄 봉안기이다.


왜 여왕인 황극 천황기에 의자왕의 어머니가 언제 죽었는지는 알 수 있다.
 

일본서기, 황극, “금년(642년) 정월 국왕의 어머니가 죽었다“


라고 왜에 사신으로 온 백제 사신의 입을 빌려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국왕은 641년 무왕의 뒤를 이은 의자왕을 지칭한다.


세 번째는 일연이 미륵사 연기설화를 채록하고 일연 자신이 의심스럽다고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고, 여타 기록과 부합하지 않는 곳이 너무나 많다. 더군다나 양국이 결혼동맹이 이뤄졌음에도 백제와 신라는 무왕 초년부터 의자왕 시기까지 신라와 너무나 빈번한 전쟁을 한다. 재벌간에 결혼을 하는 이유도 국가간의 혼인과 다름이 없다. 화친과 교린이 목적이지 싸우기 위해서는 아니다. 더군다나 삼국유사에도 서동과 선화의 사랑후 서로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전쟁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삼국유사, 일본서기와 미륵사 사리장엄 봉안기에 의하면 의자왕의 어머니는 신라 진평왕의 3째딸 선화공주가 아닌  미륵사 사리장엄구 봉안기에 기록된 사택비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다면 서동요 설화는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힌트는 백제와 신라간의 결혼에서 찾을수 있다. 백제와 신라간의 결혼은 4번 나온다.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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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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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를 비롯해서 계백에서도 기본적인 팩트를 무시하는 작가의 자의적인 망상 사극이 철찬리에 방송중이다.


드라마 <계백>에서 당나라 사신으로 공손사가 등장한다.


공손사는 631년 봄 당나라 광주자사였지만, 고구려 사신으로 간다. 수나라와 대결한 고구려가 수나라를 물리치고 경관을 설치였었다. 고구려에 간 공손사는 경관을 없애 줄 것을 청원하고 고구려는 당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경관해체작업에 동의를 하고 없애준다.


이런 공손사가 백제 사신으로 오면서 자신이 한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냥 공손사의 말은 스쳐 지나면 된다. 단지, 계백에서 현재 시제가 언제인지만 알면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드라마 계백의 시제는 631년이라고 친절히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백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몇 살 정도인지 대충 나오게 된다.


의자왕(왕자)는 삼국유사를 기준으로 600년 전후에 출생한 것으로 나오니 30대 중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 계백과 은고는 612년 선화왕후가 죽은 시점에 태어났으니 631년이면 딱 20살이 된다.


그런데 이때 의자왕과 연문진의 딸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태어난다. 드라마 계백에서 의자왕이 낳은 첫 아들일 것이다. 의자왕은 첫 아들을 631년에 낳았다? 라고 믿는다면 대단한 착각에 빠지지 시작한다.


왜냐하면 의자왕의 3째 아들로 추측되는 부여융은 자신의 흔적을 묘지명에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부여융은 660년 백제가 망하자 의자왕과 왕비와 여러 왕자들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갔다가 웅진도독이 되어 백제부흥운동을 진압한다. 백제 부흥운동 진압에 실패한 부여융은 다시 당나라로 돌아간다. 당나라는 고구려가 망한 후 요동지역 건안성에 웅진도독부를 만들고 웅진도독에 백제왕으로 부여융을 세운다.


백제 멸망 후 백제는 신라와 (발해)말갈에 망했다고 한 기록이 증명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부여융은 682는 장안에서 죽고 북망산에 묻히고 묘지명을 남긴다. 묘지명에 의하면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나 682년에 죽어 68세에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부여융이 첫째아들인지 셋째 아들인지는 아직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부여효, 부여융, 부여태 중 둘째가 부여태라는 것만 알 수가 있다. 하지만, 드라마 계백에서 615년에 태어난 부여융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다.

 

문제는 631년경에 의자의 첫아들이 태어났다면 근본적으로 부여융은 아비, 어미가 누군지 모르는 자식이 된다. 부여융에게 아버지 어머니를 찾아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30살이 다되어서 의자가 첫 번째 결혼한다는 것도 황망한데 이미 태어난 부여융을 16년이 지난 후 태어나게 만든 작가의 황당한 창작의 자유는 지켜줄 의무가 없다. 이는 비판받아 마땅한 부분이다.


 

드라마 계백에서는 계백이나 교기나 의자나 내시나 면도하고 나온다. 이들의 나이를 알 수가 없다. 배우들에게 수염을 다는 일은 시간적으로 오래 걸린다. 더불어 여배우와 키스신은 여배우에게는 곤욕이다. 털이 난 남자들과 키스를 해본 여성이라면 쉬이 알 수가 있을 것이다.


특히 요즘 드라마 키스신은 직접접촉을 하고 비비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의 실제 키스와는 다르게 드라마 키스신을 찍을 때 다양한 화면을 잡는다. 멀리서 줌인, 줌아웃, 바디컷, 롱컷, 여배우 화면, 남자화면 등 요란스럽다. 이때 마다 여배우는 수염과 전쟁을 해야 한다.


 

한번 키스신을 찍고 나면 여배우들 입술과 얼굴은 피부트러블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충분히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어짜피 고증과는 하등 상관없는 의상을 입고, 역사와는 무관한 계백과 의자가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여배우를 위해서 남자배우 수염이 없다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사실 글쓴이는 계백에서 양복을 입고 나오고 쫄쫄이를 입고 나오던 상관하지 않는다. 말 대신에 스포츠카를 타고나오던 BMW를 타고 나오거나 탱크를 몰고 나오던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를 재조명, 재해석했다거나 재미를 위해서 있는 기록을 바꾸었다고 당당히 말은 하지 않았음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드라마 계백에서 교기는 계백과 흥수의 계략에 말려들어서 왕의 지위에서 서민으로 강등이 된다. 그리고 사택비는 위제단을 동원해서 무왕을 암살한다. 무왕은 계백의 도움으로 살아나 국상으로 위장되어 상여를 움직이는 와중에 사택비 일당을 일망타진한다.

 


 

631년 역모에 실패한 사택비와 교기와 사택적덕은 당당하게 궁을 나선다. 그렇다면 사택비와 교기와 사택적덕은 어디로 갔을까? 의자와 무왕에 의해서 살아남은 사택비와 교기가 추후 반란을 획책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문제는 드라마 계백에서 그냥 어물쩡 넘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다. 계백은 역사와 100% 무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교기와 의자왕의 모후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기록은 일본의 일본서기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교기와 교기 형제들이 반란을 시도하다 실패한 때는 의자가 왕이 된 후이다. 642년 정월(1월) 백제의 사신로 갔던 왜인은 왜에 들어가 백제에서 대란이 있었다 알린다. 조문사로 참석한 백제 사신은 백제에서 왕의 모후가 죽었고, 교기와 교기의 누이동생 들이 섬으로 추방되었다고 알려준다. 


642년 봄 정월, 백제에 사신으로 갔던 大仁 阿曇連比羅夫가 筑紫로부터 驛馬를 타고 달려와 “백제국이 천황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弔問使를 받들어 보냈는데, 저는 조문사를 따라 함께 筑紫國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장례식에 奉仕하고자 하여 혼자서 먼저 왔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는 지금 매우 어지럽습니다”라고 하였다. -일본서기 황극 원년


642년 2월, 금년 정월에 국왕의 어머니가 죽었고 또 아우 왕자 翹岐와 누이동생 4명, 內佐平 岐味 그리고 이름높은 사람 40여명이 섬으로 추방 되었습니다” -일본서기 황극 원년 2월



그런데 642년 봄 섬으로 쫓겨난 교기와 그의 가족들이 왜에 등장을 한다. 더불어 의자왕의 모후가 대란전후에 죽었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의자왕이 모후가 죽자 교기가 반란을 했던지, 아니면 교기 일행이 의자왕의 모후를 죽이고 반란을 시도 했을 지도 모른다.  반란에 실패한 교기는 왜로 쫓겨난다. 백제에서 섬은 왜를 뜻한다.  왜왕 황극은 642년 2월 12일 교기를 받아들인다.

  

642년 2월 12일 庚戌 翅岐를 阿曇山背連의 집에 안치하였다.


641년 3월 무왕이 죽자 태자 의자가 왕이 된다. 

의자왕(義慈王)은 무왕의 맏아들이다. 웅걸차고 용감하였으며 담력과 결단력이 있었다. 무왕이 재위 33년(632)에 태자로 삼았다. 어버이를 효성으로 섬기고 형제와는 우애가 있어서 당시에 해동증자(海東曾子)라고 불렀다. - 삼국사기 백제 무왕 0년


632년. 무왕 33년 三十三年 春正月 封元子義慈爲太子



위의 기록에서 의자왕은 무왕의 맏아들이라고 했지만, 약간의 해석상에 문제가 있다. 대부분 맏아들은 장자(長子)라고 한다. 하지만, 원문에는 원자(元子)라고 기술하고 있다.


원자와 장자는 엄연한 차이점이 있는 단어이다. 원자는 정통성이 있는 정비의 맏아들이나 당시까지 살아 있는 정비의 맏아들을 가르키는 경우이거나 태자가 되기 전 단계에서 정통성을 부여하는 아들을 뜻한다. 무조건 원자를 맏아들로 번역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어쨌든, 삼국사기에 의자왕은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와 우애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애가 깊었던 의자왕은 교기 일당을 참형하는 방법보다는 백제와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던 왜로 추방하는 것으로 난을 진압하는 것이다.


642년 2월에 왕은 주·군(州郡)을 순행하면서 위무하고 죄수를 살펴서 사형할 죄[死罪] 이외에는 모두 용서해 주었다. - 삼국사기 백제 의자왕 2년 642년 2월


난을 진압한 의자는 대대적인 사면을 행한다. 이 사면에는 반란에 가담한 세력도 있을 것이 자명하다.


위의 기록들에서 알 수 있듯이 639년에 사택비는 무왕을 위해서 미륵사 서탑을 만들고 사리봉안기를 쓴다. 사리봉안기에는 무왕의 무병장수를 빌고 있다.  639년에 무왕은 늙어 병들고, 힘이 없었음에 틀림이 없고, 태자 의자가 대신 정치를 하였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태자 의자가 641년 3월 무왕이 죽고 왕이 된후, 641년 11월 사택지적이 죽고, 왜에서는 이때  대란이 있었다고 말을 하고 있다. 642년 정월에 의자왕의 모후가 죽고, 교기를 비롯한 교기의 여자 형제들과 대신들이 섬(왜)으로 추방된다.
 
의자왕의 어머니는 최소한 642년 정월까지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사실이지 않는가? 삼국유사를 쓴 일연도 감히 선화공주와 무왕이 사랑했는지 알수가 없다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만, 많은 드라마에서 의자왕의 어머니로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로 그리고 있다.

더군다나 의자와 어머니인 사택비를 계모이고 적대적인 관계로 까지 그리고 있다. 너무 막나갔다는 생각을 감출수가 없다.

위의 여러정황 기록으로 의자왕의 어머니가 신라 선화공주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지만, 삼국사기에 의자왕의 어머니가 선화가 아님을 증거하는 또다른 결정적인 기록이 있다. 이는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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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계백에서 드디어 의자왕(조재현)의 후손이 태어난다.


그런데 연씨에게서 태어나는 후손은 분명이 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아들이  부여융이 될지 부여효가 될지 부여태가 될지 궁금해진다. 사실 <계백>에서 역사를 찾는다는게 힘들기 때문에 맞추기도 힘들지 모른다.


분명히 드라마 <계백>은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의 삼국유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일본서기, 박창화의 화랑세기, 삼국지연의를 인용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모두 비틀어 버려서 알 수가 없다. 이를 작가는 작가의 창작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저작권을 주어야할 사람이라도 있는 듯이 약간 달리하고 있다.


계백에서 등장하는 인물 중 은고의 심복 임자는 조선상고사에서 빌려오고, 선화는 삼국유사에서, 사택적덕과 사택비는 미륵사 서탑의 사리함봉안기에서 빌려온 인물이다. 교기와 기미, 은고는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인물이다.


연문진의 딸 연씨가 낳은 아들이 누구일까 궁금하지 않는가? 시금석이 되는 인물은 백제가 패망하고 의자왕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갔다, 백제로 돌아와 웅진도독이 되었다가 요동 고구려 옛성 건안성에서 백제왕이 된 부여융이다.
 


644년 봄 정월, 왕자 융(隆)을 태자로 삼고 크게 사면하였다. - 삼국사기 백제


백제가 멸망할 시의 태자는 부여융이다. 삼국사기에도 644년 의자왕 4년 부여융을 태자로 삼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때 부여융의 묘지명에 따르면 나이는 30살이었다.
 

그 왕(王) 부여의자(扶餘義慈) 및 태자(太子) 융(隆) 이외 왕자(王子) (餘)효(孝) 13인은 대수령(大首領) 대좌평(大佐平) 사탁천복(沙吒千福), 국변성(國辯成) 이하 700여 인과 함께 이미 궁궐에 들어가 있다가 모두 사로잡히니 말가죽을 버리게 하고 우거(牛車)에 실어다가 잠시 있다가 사훈(司勳)에 올리고 이에 청묘(淸廟)에 드렸다 - 대당탕평제비 660년 8월 15일


그런데 삼국사기  660년 7월 백제 멸망당시를 되돌아 보면 부여효가 태자로 나온다.


드디어 (의자가) 태자 효(孝)와 함께 북쪽 변경(웅진성)으로 달아났다.

정방이 [사비]성을 포위하니 왕의 둘째 아들 태(泰)가 스스로 왕이 되어 무리를 거느리고 굳게 지켰다. 태자의 아들 문사(文思)가 왕자 융(隆)에게 말하였다. “왕과 태자가 [성을] 나갔는데 숙부가 멋대로 왕이 되었습니다. 만일 당나라 군사가 포위를 풀고 가면 우리들은 어찌 안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드디어 측근들을 거느리고 밧줄에 매달려 [성밖으로] 나갔다. 백성들이 모두 그들을 따라 가니 태(泰)가 말릴 수 없었다. 정방이 군사로 하여금 성첩(城堞)에 뛰어 올라가 당나라 깃발을 세우게 하였다.


태는 형세가 어렵고 급박하여 문을 열고 명령대로 따를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왕과 태자 효가 여러 성과 함께 모두 항복하였다. 정방이 왕과 태자 효(孝)·왕자 태(泰)·융(隆)·연(演) 및 대신과 장사(將士) 88명과 백성 12,807명을 당나라 서울[京師]로 보냈다. - 삼국사기 백제 660년



위의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삼국사기 644년 의자왕이 부여융을 태자로 삼았다는 말이 의심스럽게 된다. 하지만, 멸망 직후 태자는 부여융이 분명해 보인다. 일본서기에도 부여융이 태자로 기술되고 있다.
 

[百濟王 義慈, 그 妻 恩古, 그 아들 隆 등, 그 신하 佐平 千福, 國辨成, 孫登 등 모두 50여 명이 가을 7월 13일에 蘇將軍에게 사로잡혀 唐에 보내졌다. 일본서기 660년 7월 13일, 아들 융 등


11월 1일에 將軍 蘇定方 등이 사로잡은 百濟王 이하 太子 隆 등 여러 왕자 13명, 大佐平 沙澤千福·國辨成 이하 37명, 모두 50여 명을 朝堂에 바쳤다 - 일본서기 660년 11월 1일 태자 융



7월 13일자를 기준으로 해서 일본서기는 의자왕의 아들 융이라 하고 11월 1일자 기사에서는 태자 융으로 기록하고 있다.

660년 8월 15일 만든 대당평제비와 삼국사기, 일본서기의 태자 기록을 준용한다면 삼국사기 백제 멸망당시 태자는 부여융이라고 바뀌어 있다. 그렇게 된다면 태자의 아들 문사는 부여융의 아들인가? 아니면 부여 효의 아들인가가 불분명해진다. 왜냐하면 태자 부여효의 아들 문사가 왕자 융에게 의자왕과 태자 부여효가 웅진성으로 갔는데 숙부가 멋대로 왕이 되었다.라고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와 일본서기, 대당평제비 등 옛 기록을 모두 합리적인 기록이라고 한다면 처음 부여융이 644년 태자가 되었다 어느 시점에 부여융은 태자에서 쫓겨났고, 부여효가 태자가 되었다가 백제멸망과 더불어 융이 태자로 복귀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부여효와 부여융 중에 정확히 누가 맏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단지 부여태가 둘째아들이라는 사실만 들어나고 있다.


삼국사기 644년 기록으로 미루어 부여융이 첫째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일본서기에는 왕비 은고가 국정 전반을 장악하고 국정을 농단했기 때문에 백제가 망했다 기록하고 있다. 어쩌면 부여융은 은고의 자식이 아니고 부여효는 은고의 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드라마 <계백>에서 은고를 계백의 첫 번째 부인으로 그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는 대단히 개연성있고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드라마 계백에서 첫 번째 부인으로 나오는 연씨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의자의 첫 번째 아들이 된다. 그렇다면 연씨가 낳은 큰아들이 부여융이 된다.
 


그런데 드라마 계백에서 계백과 은고는 612년에 태어난 것으로 그리고 있고, 부여융 묘지명에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났다고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계백은 신성이 있어서 신라 생구가 되어 629년 고구려 낭비성 전쟁에도 참전을 해서 신라가 대승을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리고 곧바로 김유신과 함께 628년 신라 가잠성에 침입한 백제를 도와 백제가 승리하는데 공을 세운다. 하지만, 가잠성 전투는 백제가 대패한 전쟁이었다.


이제 다시 과거로 여행을 하여 의자왕이 왕자시절 반란을 일으키다 사택비에 들켜서 처형된  연내신좌평과 자신의 부인도 참형을 당할 것을 염려하여 첫째 부인 연씨를 위해서 같이 중이 된다. 그리고 임신한 연씨는 드디어 출산을 한다.
 


자신의 복수나 영달을 꾀하는 의자가 아닌 연줄이 끊어진 부인을 위한 의자왕자를 보고 마음이 열린 계백과 성충과 흥수는 의자와 피로써 형제결의를 한다.


너무나 많이 보았던 장면이 아닌가? 삼국지연의에서 나오는 유비와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에서 한명이 추가된 4명의 형제결의다. 이들이 형제가 되었다가 결국에는 의자왕이 권력에 맛들여 성충, 계백, 흥수를 배신했다는 배신장면을 극적이게 묘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나 식상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복숭아꽃잎이 날리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이다. 삼국지연의는 현재 드라마 계백의 배경이 되는 삼국시대 630년대에는 알려지지도 않았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명나라 1522년 초판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드라마 <계백>은 630년 초반을 그리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부여융은 615년 태어났다. 부여융은 의자가 15세 전후에 낳은 첫째 아들일 것이다. 어쨌든, 615년이면 의자왕은 15살 전후이고, 계백과 은고는 3살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계백은 나이를 먹고 늙어만 간다. 늙어가지만, 늙은 티가 하나도 나지 않는다.


전화박스를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영국의 닥터는 시간여행을 다룬 SF드라마다. 그런데 사극 <계백>에서 타임머신도 타지 않고 시간을 넘나들고 역사도 바꾸고 있다.

어쩌면 <계백>에서 생구인데도 불구하고 굽있는 2000년대 첨단가죽신을 신고, 면도하는 의자,교기,계백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계백의 가죽신이 타임머신이거나 계백이 타고 있는 말이 타임머신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손오공이 수염을 뽑듯이 계백이 수염을 하나씩 뽑을 때 마다 시간여행을 하는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뒤죽박죽 사극이 아닐 수 없다. 타임머신도 없이 과거로 미래로 자유롭게 여행을 하고 있다.


드라마 계백에서 황산벌에서 살아남은 계백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고구려가 망할 때 고구려를 위해서 용병으로 참가하는 계백을 만난다고 해도 하등에 이상할 것이 없는 드라마가 <계백>이다. 어쩌면 계백이나 의자왕이 백제가 패망후 당나라로 가지않고, 왜로 건너가 천황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 드라마 계백에는 불가능이 없다. 충분히 드라마 계백에서는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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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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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에 후에 의자왕의 처(왕비)가 되는 은고가 등장한다.


드라마 계백에서 은고는 612년 선화황후가 자살한 해에 태어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이해에 계백도 태어났다.


드라마 <계백>에서 계백은 은고를 사랑하고, 은고도 계백을 사랑한다. 계백의 아버지 무진은 사택비를 사랑하고, 사택비도 무진을 사랑했다. 하지만, 사택비는 사택적덕의 명에 의해서 무왕과 결혼한다.

 

마찬가지로 은고는 계백을 사랑했지만, 사택비의 명으로 의자왕의 후비가 되는 것으로 그리지 않을까 한다.


의자는 628년 가잠성 전쟁에서 공을 세운 후 연좌평의 딸과 결혼 한다.


계백이 황산벌 전투에 참가할 때 처.자식을 죽이고 출전한 이유가 밝혀지는 대목이다. 계백의 작가진은 계백이 처.자식을 쉽게 죽일 수 있었던 원인을 은고에서 찾는 듯하다. 계백에게는 사랑하는 이는 은고이지 처.자식은 아니었다.


사실 660년 7월 10일 황산벌 전투가 백제의 마지막 전쟁은 아니었다. 당나라 소정방이 이끈 수륙양군 13만명에 의해서 사비하에서 1차 패전을 당하여 수많은 군사들이 죽고 흐터졌고, 2차 사비성 전투에서 수만의 군인들이 전사를 하였다. 또한, 3차 웅진성에서 항복하기 까지 3일간의 기나긴 전투가 있었다.


어쨌든, 의자는 629년 결혼을 하여 첫부인을 맞이한 것으로 그리고 있고, 은고가 언제 의자와 결혼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재 드라마 설정 상 은고와 계백은 629년 18살이고 의자왕자와 교기는 30살 안팍이다. 


그런데 드라마 작가가 간과한 것이 있다. 태자 부여 융에 관한 것이다.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나 682년 68세의 나이로 복망산에 뭍힌다.


드라마 <계백>의 작가는 부여융이 첫부인 연씨의 소생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듯하다. 더불어 부여융은 당연히 은고의 자식도 아니다. 왜 <계백>의 작가는 부여풍을 죽이는 무리수를 두었을까? 단지 계백과 은고의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불어 부여융은 의자의 3번째 아들로 짐작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660년 태자는 부여효라고 말을 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정방이 왕과 태자 효(孝)·왕자 태(泰)·융(隆)·연(演) 및 대신과 장사(將士) 88명과 백성 12,807명을 당나라 서울[京師]로 보냈다. - 삼국사기 백제 660년


 

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소정방의 대탕백제비에는

 

그 왕(王) 부여의자(扶餘義慈) 및 태자(太子) 융(隆) 이외 왕자(王子) (餘)효(孝) 13인은 대수령(大首領) 대좌평(大佐平) 사탁천복(沙吒千福), 국변성(國辯成) 이하 700여 인과 함께 이미 궁궐에 들어가 있다가 모두 사로잡히니 -소정방 탕백제비




 11월 1일에 將軍 蘇定方 등이 사로잡은 百濟王 이하 太子 隆 등 여러 왕자 13명, 大佐平 沙澤千福·國辨成 이하 37명, 모두 50여 명을 朝堂에 바쳤다. 급히 인도하여 천자에게 나아가니, 천자는 은혜로운 칙명으로 보자마자 풀어주었다. - 660년 일본서기 제명 6년


[百濟王 義慈, 그 妻 恩古, 그 아들 隆 등, 그 신하 佐平 千福, 國辨成, 孫登 등 모두 50여 명이 가을 7월 13일에 蘇將軍에게 사로잡혀 唐에 보내졌다. 아마도 이것은 까닭 없이 무기를 들고 다닌 징험일 것이다].



기록하고 있고, 일본서기에도 소정방의 탕제비와 같이 태자가 융으로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에도 644년 의자왕 4년  “왕자 융(隆)을 태자로 삼고 크게 사면하였다.”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 부여융의 나이는 30살이었다.


의자왕에게는 여러 왕후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 된다.  백제에는 부인(夫人)을 왕후로 기록한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일본서기에는 백제가 망한 이유를 의자왕의 대부인(大夫人)이 권력을 농단했기 때문이라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자의 입을 빌려서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왜로 축출된 교기 일파의 입을 통해서 일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百濟가 스스로 망하였다. 임금의 大夫人이 요사스럽고 간사한 여자로, 무도하여 마음대로 국가의 권력을 빼앗고 훌륭하고 어진 신하들을 죽였기 때문에 이러한 화를 불렀다. 삼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삼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 하였다 - 660년 일본서기 제명 6년




일본서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659년 삼국사기 기록에도 보인다. “의자왕 19년(659) 봄 2월에 여러 마리의 여우가 궁궐 안으로 들어왔는데 흰여우 한 마리가 상좌평(上佐平)의 책상[書案] 위에 앉았다.”

대체적으로 여우는 여인으로 비정하여 흰여우는 늙은여인으로 비정되고 국정전반을 다루는 최고위칭인 상좌평의 책상에 앉았다는 뜻은 늙은 여우가 국정을 농단했다는 은유적인 표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인이 의자왕의 정비라고 할 수 있을까? 의자왕의 어머니는 아니였을까? 아니면 의자왕의 생모는 아니지만, 무왕의 정비였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왕의 어미는 <대왕대비> 또는 <대비>라 한다. 또는 태비나 태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대비가 왕의 생모일 필요는 없다.


의자왕의 생모는 642년  “금년 정월에 국왕의 어머니가 죽었고 또 아우 왕자 교기(翹岐)와 누이동생 4명, 內佐平 岐味 그리고 이름 높은 사람 40여명이 섬으로 추방 되었습니다”라며  일본서기 황극 1년 기록이 있다. 무왕 말년인 639년 미륵사 서탑의 황금사리장엄 봉안기에는 사택비가 무왕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면서 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보인다.


무왕이 늘그막에 사택비를 왕비로 얻었다면 국가의 권력을 빼앗고 어진 신하를 죽였다고 할 충분한 개연성 있는 이야기다. 현재 드라마 계백에서 나오는 사택비의 현신이 일본서기에 기록된 대부인의 모습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


어쨌든, 일본서기에만 나오고, 의자왕을 따라 당나라로 끌려간 의자왕의 처(왕비) <은고>는 660년 나이가 아주 어렸거나, 은고가 부여융의 어머니였다면 최소한 615년생인 30살 셋째 아들인 부여융을 644년에 태자로 만들 만큼 600년 전 후 태어난 의자왕과 비슷한 연배였을 것이다.


첫째 부여효와 둘째 부여태 그리고 백제부흥운동을 하던 부여풍(장) 등 의자왕에게는 좌평으로 임명된 서자만 41명이 있다. 그리고 그중 극히 일부인 13명의 왕자만 백제가 망한후 당나라로 끌려갔다. 나머지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  부여풍을 비롯한 몇명의 왕자들은 백제부흥운동을 위해서 왜로부터 귀국한다.


그런데 왜 드라마 <계백>에서 은고를 <계백>의 첫사랑으로 묘사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더불어 3째 아들인 부여융까지 없는 자식으로 치부하면서 의자왕자를 결혼하지 않은 미혼의 상태로 만들었는지도 이해가 안 된다.


만약, 국정을 농단한 대부인이 태비(무왕의 비)가 아닌 의자왕의 정비이거나 설령 은고였다고 한다면 어떻게 3째 아들인 부여융이 태자로 만들었을까? 궁금했을 것 같다. 아무리 요즘 사극이 역사파괴사극 전성시대라고 해도 말이다.
 


드라마 <계백>에서 은고가 계략을 꾸며 생구와 계백과 성충을 탈출시키려고 사비성 백성들에게 제갈량이 위기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는 풍등(일명:공명등) 삐라를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참으로 밤하늘에 아름다운 장면일수 있으나 너무 티가 나는 장면이 아닌가 한다.


풍등은 색종이로 만들었을 것이 분명한데 보기에는 색종이가 아닌 반짝반짝 빛에 반사되고 부풀은 모습은 종이로서는 도저히 나올수 없는 비닐봉다리의 향기가 난다. 특히 김유신의 연을 연상시키는 삐라연과 풍등을 이용하는데 풍등에 대해서 백성이나 장사치나 아무도 모른다는 설정은 어설프지 않을까?


풍등은 화재위험이 많은 물건이다. 제갈량이나 장자방(장량) 보다 머리 좋게 나오는 은고는 사비성을 몽땅 태워버리는 무서운 계책을 세웠거나 아무생각이 없는 불장난을 한 것이다.


30살이 다된 의자나 교기나 계백은 수염없는 내시들로 나오고, 동명제나 일반복식이 왜색풍 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2011/09/06 - [역사이야기] - 계백, 동명제 초혼관 의자, 교기와 흥수는 왜 왜색풍 옷을 입었나? 사실은

계백은 생구(포로)때부터 가죽신을 신고 나온다. 그것도 키높이 첨단 밑창굽 가죽신을 말이다. 어떤 나라 생구가 가죽신을 신었겠는가? 맨발이나 짚신을 신었다면 모를까?


어쨌든, 잃어버린 의자왕의 자식들을 찾아주고 싶은 심정이 가득하다. 작위를 받는 서자만 41명이면 의자왕에게는 얼마나 많은 자식들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계백>에서는 단 한명의 자식도 나오지 않는 게 가능하기나 하고, 손자 볼 나이에 총각행세가 가당키나 한가? 은고가 자식같은 계백과 사랑을 할수 있었을까?

2011/08/3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계백, 광개토태왕, 백동수 남주 수염없는 이유 키스신, 여배우 위한 배려인가?

 


나이 파괴, 역사파괴극은 <계백> 뿐만 아니다. 3사 공히 방송하고 있는 <무사 백동수>와 <공주의 남자>, <계백>, <광개토태왕> 등 주인공들의 나이를 파괴하고, 주인공과 주변인들은 수염 없는 내시들로 만들고, 죽은자들이 산자와 사랑에 빠지고, 아버지 세대와 사랑놀음에 싸움질도 하고 있다.
 
2011/09/0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찌질남 민폐 제작자 인증. 사육신 성삼문 단종 폐위 일등공신

2011/09/06 - [역사이야기] - 계백, 동명제 초혼관 의자, 교기와 흥수는 왜 왜색풍 옷을 입었나? 사실은
2011/09/05 - [역사이야기] - 광개토태왕, 광개토태왕이 없다. 사갈현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대표로?
2011/09/04 - [역사이야기] - 광개토태왕, 동북공정, 독도침탈보다 부끄러운 고구려 창조하기?
2011/09/03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종서 후손중 김승유 제외하고 절손되었을까? 사실은
2011/09/0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우사인 볼트 보다 빠른 세령공주 불가능에 도전하다?
2011/09/0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스토커 김승유가 죽어야 드라마가 산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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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arden0817.tistory.com BlogIcon garden0817 2011.09.07 07: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요즘 드라마를 안봐서 ㅎ
    아무튼 좋은하루되세요~

  2. Favicon of http://jobyoung.tistory.com BlogIcon 비오는 영동대교 2011.09.07 1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정보네요... 잘 읽고 갑니다

  3. Favicon of http://campusvt.com BlogIcon 원숭이 2012.01.02 0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는말이 고와야 오는말이 곱다

  4. Favicon of http://adamsfamilypainting.com BlogIcon 이청용 2012.01.07 0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5. Favicon of http://john.is-a-liberal.com BlogIcon 테일러 2012.04.05 2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속이고 있군요.

  6. Favicon of http://stevie-wonder.is-leet.com BlogIcon 오브리 2012.05.09 0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가 안갑니다.

  7. Favicon of http://undermybed.endofinternet.org BlogIcon 릴리안 2012.05.11 0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유대인 음식만 먹습니다.

  8.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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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드라마 작가가 간과한 것이 있다. 태자 부여 융에 관한 것이다.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나 682년 68세의 나이로 복망산에 뭍힌다.

  12. Favicon of http://kimmyfresvo.blog.com/2012/04/24/office-emergency-kits-should-the-unimag.. BlogIcon food barstow ca 2012.12.25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식을 쉽게 죽일 수 있었던 원인을 은고에서 찾는 듯하다. 계백에게는 사랑하는 이는 은고이지 처.자식은 아니었다.

  13. Favicon of http://www.euphoricarythmia.com/showthread.php?p=428087 BlogIcon invisible fence wire type 2012.12.29 16: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나 682년 68세의 나이로 복망산에 뭍힌다.

  14. Favicon of http://hondacarros.grupocaiuas.com.br/novo-fit BlogIcon honda fit 2013.01.10 0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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