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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대왕의 꿈 김춘추 문명왕후(문희) 보라, 김유신 천관녀 사랑보다 진부하지 않았다

 

대왕의 꿈에서 승만왕후는 진평왕이 쓰러지자 섭정을 한다. 김춘추는 승만왕후가 섭정으로 국정을 농단하지도 않았는데 반대를 한다. 그리고 처형장으로 끌려간다. 김유신에게 김춘추를 죽이려 하지만, 김춘추는 충신을 죽일 수 없다며 같이 죽이라고 한다.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승만왕후에 반기를 들자. 모두 진압할 것을 명령한다. 양측간에 피해가 발생하자.

 

아퍼서 누워있던 진평왕이 덕만공주와 함께 나타나 승만왕후를 제압한다. 그리고 승만왕후를 폐위시키려 하지만, 덕만공주가 반대하고 승만왕후가 임신을 하자 폐위를 보류시킨다.


의자왕으로 왕자인 이진우가 등장했다. 그런데 왜 백제의 왕자인 의자 신라 서라벌에 등장을 하는 것일까? 대왕의 꿈에서 처음 의자왕으로 내정되었던 배우는 여성폭력과 거짓말로 드라마 동이에서 하차한 최철호였다. 여론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고 생각한 제작자나 KBS 상부의 지시때문이지 않을까?
 

대왕의 꿈의 시제는 625년으로 이 상황을 그렸다. 실제 승만왕후와 김춘추가 충돌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승만왕후와 김춘추가 깊숙히 관련이 있다고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때 김춘추의 나이는 23살에 불과했다.

문희(문명왕후)는 보라궁주를 찾아가 미안함을 전한다. 보라궁주는 출산을 앞두고 있다가 문희를 보자 김춘추를 잘 모시자고 말한다. 보라궁주가 하열을 하고 출산을 하게 되자, 문희가 보라궁주의 출산을 돕는다. 하지만, 보라는 고타소를 출산 후 죽고 만다.



대왕의 꿈은 문희와 김춘추의 사랑을 너무나 가볍게 처리하고 있다. 문희와 김춘추의 맺음은 신라 사회에 변혁을 가져올 단초를 제공한다. 김춘추와 덕만과 김유신과의 연합체가 구성되는 연결고리다. 하지만, 김유신과 천관녀의 사랑보다도 비중이 낮다. 물론, 김유신과 천관녀의 사랑도 대왕의 꿈에서는 더이상 볼수 없다. 너무나 스토리전개가 어설프다.

김춘추가 승만에 대항하는 모습은 실제와 얼마나 부합될까? 사실 김춘추의 일은 오히려 김춘추의 아버지 김용수/김용춘이 관련이 있다. 승만왕후가 국정을 농단하자 김용춘김용수가 승만왕후에 반기를 들었다. 그래서 승만왕후는 김용수/김용춘 형제를 미워했다.

그런데 승만왕후가 낳은 어린 왕자가 죽는 일이 발생했다. 왕자가 살아 있었다면 덕만공주 대신에 실제 왕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승만왕후는 왕자의 죽음에 용수/용춘 형제가 배후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승만은 김용수 형제를 더욱 미워했다.

 

629년 그래서 김용수를 지방으로 보내 버리고, 김용춘은 진평왕이 고구려 낭비성을 공략할 때 김서현, 김유신 부자와 함께 대아찬으로 종군하여 승만왕후의 눈에서 벗어난다. 김용춘은 낭비성 전투에서 전공을 세우고 돌아와 각각이 된다.

 

이게 대왕의 꿈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의 이야기다. 왜 대왕의 꿈에서 화랑세기를 정통사극에 자료로 활용했는지는 알수가 없다. 현존하는 박창화의 화랑세기는 정교하기는 하지만, 역사책은 아니다. 단지 소설일 뿐이다.

문제는 화랑세기가 아주 정교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교묘히 조합하여 빈틈을 좀처럼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완결성을 갖췄다는 점이다. 오히려 화랑세기의 완결성이 박창화의 화랑세기가 위서 논쟁을 할 필요도 없이 소설임을 증명하고 있다.

 

최소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충돌하는 지점이 많다. 일연선사는 삼국사기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의의를 제기한다. 이 부분은 삼국사(삼국사기)가 잘못 기록 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딴지맨 역할이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삼국사기도 맞고 삼국유사도 맞다는 식으로 줄타기를 한다. 같은 팩트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하는데 삼국유사도 맞도 삼국사기도 맞다. 그리고 삼국유사의 잘못된 부분까지 포괄할 뿐만 아니라 양쪽 사서가 캐치하지 못한 부분까지 보완하기 까지 한다.

 

대표적인 사항이 김춘추의 아버지 김용수/김용춘이 동일 인물인가? 아니면 다른 인물인가에 관한 부분에서 박창화의 화랑세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검토하고 김용수김용춘은 동일인물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고 형제라는 것을 논증하듯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문명왕후와 김춘추의 이야기도 화랑세기는 삼국유사에서 선덕여왕시절에 있었다는 기록에 반하여 무슨 소리 선덕여왕때가 아닌 진평왕 시기 625년에 있었다고 쓰고 있다. 이는 삼국사기가 증명하고 있기도 하다. 단지 진평왕 시기 625년이냐 하는 문제가 남을 뿐이다. 삼국사기만 봐도 김춘추와 문희(문명왕후)의 불쑈는 절대로 선덕여왕시기 벌어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겉보기에 김유신김서현의 장자로 595년에 태어났다. 그런데 선덕여왕 시기(632~647)이라면 보희나 문희의 나이는 적지 않는 나이가 된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 신라 때 지금처럼 만혼시기도 아닌데 보희 문희가 아지/아혜라는 아명을 사용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선덕여왕 초년이라고 해도 37김유신에 결혼하지 않는 10대 중반의 아주 어린 동생들이 있었다고 믿기 어렵다.

 

실제로 김춘추와 문명왕후(문희)사이에 태어난 첫번째 아들 김법민(문무왕)은 김춘추와 문희의 불륜에 의해서 잉태했고불쇼가 아니 였다면 태어나지도 못했다. 문제는 문명왕후(문희)와 김춘추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은 629년생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삼국사기 열전 김인문편에 나온다는 점이다.

 

조금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살피고 연구를 했다면 알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박창화 이전이나 이후에 이를 검증한 학자가 없었다. 무조건 선덕여왕 시기 문희와 김춘추가 불륜의 씨앗을 잉태하고 결혼했다고 믿고 있었고, 선덕여왕이 이들의 매파가 되었다고 가르쳤고 일고 있었을 뿐이다.

 

소설은 박창화처럼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써야 한다. 요즘 사극은 사서연구는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장 기초적인 인물의 생몰연대 조차 지키지 않고 아무 때나 등장하지 않아야 할 인물들이 같은 공간 같은 시기에 등장시킨다.

 

박창화 처럼 역사소설을 쓰면 사서가 되고 위서논쟁이 일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박창화는 역사학자였고, 수 많은 역사소설을 창작했다. 박창화의 역사소설은 모두다 요즘으로 하면 난혼이 난무하는 왜설역사소설이다. 화랑세기도 그 중에 하나일 뿐이다. 박창화가 죽을 때 까지 정교한 역사소설을 쓰고 발표/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명확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설을 발표하지 않아서 화랑세기가 일부에서 사서대접을 받는 기현상이 발생했지만 말이다.

 

실제 박창화가 소설이 아닌 논문으로 발표했다면 아주 훌륭한 역사학자로 이름을 날렸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보다 정확한 역사상식을 갖췄을 것이 명확하다. 김춘추의 아버지가 진짜 누구인지, 문명왕후와 김춘추를 선덕여왕이 아닌 덕만공주가 엮어주었다는 것 등 수 많은 역사상식이 바뀌었을 것이다.

실제로 역사학자들에게 역사연구의 영감을 제공하는 특이한 소설가라고 할 수가 있다. 대체적으로 역사학자의 연구결과에 영감을 얻어 소설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반대되는 기현상은 그만큼 역사학자들이 연구에 등한시 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다시 대왕의 꿈으로 돌아가서 승만왕후와 김춘추가 격돌하고 있지만, 승만왕후와 격돌하는 사람은 김용춘김용수가 되어야 하는데 그의 아들인 김춘추가 전면에 등장하고 김용춘은 꿔다논 보리자루가 되어 버렸다.

아버지의 일이 자식의 일로 바뀌었다. 김일성의 일이 김정일의 일화인 것처럼 미화된 것이고 박정희가 한일이 박근혜가 한일처럼 미화된 것이다. 실제 김춘추가 얼마나 존재감이 없으면 아버지나 삼촌의 일이 되겠는가?

 

그런데 왜 대왕의 꿈에서 진흥왕비인 사도태후와 김유신의 첫사랑 천관녀는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 일까? 물론 사도태후가 죽은 때는 614년이니 대왕의 꿈 시제인 625년에는 볼 수 없는게 당연한다.


강력한 권력을 행사한 인물에 대해서 너무나 쉽게 버려진 다는 게 대왕의 꿈 작가의 역량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더군다나 천관녀와 김유신의 사랑을 그리다 만 것도 너무 어설프기는 마찬가지다. 문희와 김춘추의 사랑도 이야기 꺼리가 많은데 오히려 김유신과 천관녀가 대왕의 꿈 주인공이 아닌가 의심스러운 정도였다. 그런데 주인공 같던 천관녀가 어느 순간 사라진다는 게 드라마 개연성상 있을 수 있는가?

 

대왕의 꿈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천관녀에게는 영모라는 이름이 있다. 영모는 미실의 아들인 하종의 딸이다. 김유신은 영모와 사랑을 했지만 화랑세기의 실제 주인공인 미실의 정적이었던 만호태후가 반대해서 이뤄질 수가 없었다.

 

미실이 만호태후에게 양보를 하고 천관녀 영모와 김유신과 맺어질 수 있었다. 영모 사이에 태어난 김유신의 자식들은 신광/작광/영광/삼광/진광 등 김유신의 광자돌림은 모두 영모의 자식이라고 화랑세기는 말하고 있다. 원술 등 원자돌림만이 김유신과 지소(지조)공주의 소생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또한 화랑세기의 정교함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되기도 한다.

 

재미있게도 김용춘김용수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덕만공주의 남편들이 된다. 천명공주와 맺어진 김용수는 자매와 관계를 맺은 것이다. 김춘추는 덕만공주의 자식이나 마찬가지 설정이다. 천명과 덕만은 남편들을 공유했다는 이야기가 화랑세기에는 수시로 나오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왕의 꿈에서는 화랑세기를 차용 하지만, 감출 것은 감추고 있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난혼의 관계를 공영방송에서 드라마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했음직한 일을 한량아들 김춘추가 했음직하다고 말한다면 이는 김춘추가 그만큼 존재감이 없는 인물이라고 대왕의 꿈 작가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625년이면 김춘추 나이 23살에 불과한데 역사 전면에 등장할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왕족의 아들로 놀고먹던 김춘추가 대외적으로 전쟁에 참전하거나 외교나 국정에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대왕의 꿈은 MBC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사서 (삼국사기/삼국유사)박창화의 화랑세기에 충실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주인공 김춘추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부분을 미화하고 왜곡하고 아전인수식 남의 기록을 김춘추에 가져다 쓰고 있다.

대왕의 꿈이 얼마나 이슈화 되지 않았으면 대왕의 꿈에 내용 기사도 없고, 대왕의 꿈 외적인 최철호가 이슈가 될까? 더군다나 네티즌 리뷰조차 없다. 김춘추가 매력이 없어서도 있지만, 작가의 스토리 전개가 진부하고 낡았을 뿐만 아니라 연출자체도 흥미를 끌지못하고 있다. 수백억 투자한 드라마가 이처럼 이슈가 안되는 것도 아이러니 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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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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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즘드라마 2012.10.24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편부터 봐야지 하고 보는 드라마도 있지만 보통은 주변사람들이 재밌으니 보라고 해서, 지나가다 보니 재밌을것 같아서, 재밌어서 보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드라마는 볼까 하다가 그만뒀죠..
    최수종씨 좋은 배우지만.. 이런 비슷한 배역(왕.. 영웅.. 이런거) 나올때마다 하시니까 그것도 나이도 안맞게.. 좀 거부감이 듭니다.
    꼭 주몽 송일국이 바람의 나라 무휼 역 맡은거랑 비슷해요. 15세에 왕이 된 대무신왕 역을.. 이건 무슨 판타지도 아니고(차라리 판타지로 갔었어야..) 원작만화에선 이름만 따오고.. 제목이 아까운 드라마였죠. 서른이 넘은데다 동안도 아닌 배우가 왕자역할(15세 이하)을 그리도 오래;; 얼마든지 재밌게 만들수 있는 드라마였는데.. 소재가 시대가 너무 아까웠던.
    대조영도 최수종이었고.. 왕건도 최수종.. 김춘추도 최수종.. ;;; 대하사극 전문?! 이제 나이가 꽤 되셔서.. 청년역은 좀 다른 배역에 맡기셨다면 내용에 진정성이 더 있어서 몰입감이 있었을 거에요.ㅠㅠ
    또 여배우들이 예쁘거나 연기 잘하거나 해야 하는데 그런 몰입감, 매력이 넘 부족해요. 문희역을 하는 배우가 너무 안이뻐서 놀란 1인;;; 승만왕후역도 좀 어색하죠.. 이영아 좋아하는 배우라서 뱀파이어검사 잘보고 있는데 승만왕후 역에는 좀 안맞는듯 해요.
    덕만공주는 너무 맥아리 없게 나오고.. 너무 요조숙녀ㅋㅋㅋ 같고.
    드라마는 작가놀음이라는데 드라마 내용이 재미가 없으니 그 재미를 배우들한테서 찾아보려 해도 없고.. 그러니 안보게 되는듯요. 사극이라면 그래도 한번씩은 다 볼까해서 살펴보는데.. 이 드라마는 포기....

  2. 비열한악녀 2012.10.28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열한악녀 승만왕후!
    사도태후 다음으로
    정말꼴도보기싫은인물이다!

  3. Favicon of http://www.submitarticle.us/ BlogIcon Submit It 2012.11.27 14: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인 의자 신라 서라벌에 등장을 하는 것일까? 대왕의 꿈에서 처음 의자왕으로 내정되었던 배우는 여성폭력과

  4. Favicon of http://forum.topnews.in/member.php/64260-modamer BlogIcon womens bag 2013.09.06 1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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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 최수종은 아내인 보라궁주를 화재로 잃어 버릴 뻔 한다.

 

진평왕은 승만왕후에게 속아서 보량군주와 보로전군을 궁밖으로 내 쫓아 낸다.


덕만공주는 김춘추가 화랑도를 겨냥해서 감찰을 강화하자 화랑도와 김춘추의 감찰기관간에 관계를 개선시키고자 축국대회를 개최한다.

 

김춘추는 보희의 눈에 띄었지만, 실제 김춘추와 야합하는 이는 문희였다. 김춘추는 잠에 깨어나 문희를 보고 경악한다. 같은 시간 때 보량은 임신한 상태에서 김춘추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임신한 아이는 김춘추의 딸로 고타소임을 짐작할 수 있다. 고타소의 죽음은 대왕의 꿈에서 김춘추가 어렸을 때부터 삼한일통을 꿈꾸었다고 나오지만, 실질적으로 백제와 원수가 되는 계기가 되고, 김춘추는 이때부터 고구려, , 당나라로 종횡무진 군사원조 외교전을 벌린다.

 

한마디로 대왕의 꿈에서 김춘추가 어릴 때부터 삼한일통을 꿈꿨다는 말은 김영삼이 일제식민지 시대 어릴 때부터 대통령이 꿈이였다고 하는 말처럼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다.

 

대왕의 꿈 작가들은 김춘추를 영웅으로 만들고 싶은 모양이지만, 실제 대왕의 꿈에서 나타난 김춘추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김춘추가 아무생각 없이 살다가 자기의 개인 원수를 갚겠다고 중구난방 천방지축 똘아이 짓을 했다는 것을 증명해줄 뿐이다.

 

더군다나 대왕의 꿈 작가는 아역 김춘추를 내세워 안하무인 천방지축 엉덩이에 뿔난 망아지 로 만들어 버렸다. 한마디로 김춘추는 어릴적부터 미친놈이였다는 것이다.

 

대왕의 꿈은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박창화의 소설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화랑세기에서 빌려온 것은 화랑 풍월주와 화랑제도, 등장인물들이다.

 

김춘추의 처 보라이나 보로전군, 보량군주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화랑세기를 빌려왔다면 박창화의 후손들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다. 하지만, 어떠한 행동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대왕의 꿈에서 김춘추와 김유신이 임신서기석의 맹세처럼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에서 맹세를 하고 석각에 담았다는 묘사를 하였다.

 

 

신라시대 진평왕 시기 임신년은 612년이다. 김유신 나이 17, 김춘추 10살 때 일이다. 김춘추가 대왕의 꿈에서는 신성이 있다고 하지만, 10살에 북한산 정상에 올라가 대망을 꿈꿨다고 믿는 시청자는 작가들 빼고 없을 것이다.

 

그 후 시간이 지나 김춘추가 어른이 되고 승만 왕후가 등장하고 있다. 덕만공주의 어머니 마야는 이제 등장하지 않는다. 대왕의 꿈에서 가장 권력의 정점에 있는 진흥왕비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김유신과 천관녀는 어찌되는 것인가?

 

 



김춘추와 문희의 사랑이 싹트던 때를 역산한다면 진평왕 시기 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그 동안 어떠한 역사학자도 선덕여왕이 김춘추와 문희의 중신애비라고 하였다.

 

 

그런데 박창화는 자신의 화랑세기에서 무슨 소리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준 사람은 진평왕 시기 덕만공주일 수밖에 없다며 글을 남겼다. 더불어 김법민은 626년생이라고 목을 박았다.

 

사실 글쓴이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을 가지고 김춘추와 문희의 사랑이 이뤄진 때는 진평왕 시기 덕만공주라고 논리적 논증을 하여 증명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 대한 상식중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우리가 대표적으로 잘 알고 있는 김유신과 김춘추와 문희에 관한 이야기 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니 관련 원글을 인용하지는 않겠다
.

보희가 오줌발 꿈을 꾸고, 문희가 꿈을 산다. 그리고 문희는 춘추와 결혼하고, 왕비로 등극한다. 문희로서는 언니 보희의 꿈을 산 대가로 왕비를 얻었으니 요즘으로 치면 로또 대박을 이르킨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꿈을 사고파는 데 주저하거나 꿈을 산 대가로 로또나 복권을 사고, 대리 소개팅을 나가기도 한다. 한마디로 꿈에 대한 <문희증후군>이지 않을까 한다
.

유신이 김춘추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공작을 한다. 그리고 처음 맞 누이인 보희를 엮어 주려고 했지만 보희는 때마침 아퍼서 춘추와 관계를 할 수 없었다. 때마침 아퍼서 관계를 할 수 없는 아픔이라면 츠자들과 결혼한 남자는 츠자가 아픈 원인을 캐치했을 것이다. (요건 다른 식으로 포스팅 할까 한다
)

 


그래서 대타인 문희가 춘추와 관계를 하였다. 하지만 사단이 일어 났다. 춘추는 임신한 문희를 자신의 처로 받아드리려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요즘 처럼 성이 개방화된 사회에서도 여자를 임신 시켜놓고,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파렴치한 같은 행동을 김춘추는 한것이다. .당시 많은 처/첩을 거느린 신라 사회에서 문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러니 당시 신라사회로 봤을 땐 김춘추는 지탄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

이에 공작의 달인인 김유신은 경주 한복판에 장작더미를 올려 놓고 문희를 죽이려는 시늉을 한다. 이는 김춘추에게 협박하기 위한 것이다. 남산에 놀이를 하려 가던 선덕여왕이 이 광경을 보고, 말리며, 김춘추에게 문희를 책임지도록 하였다그래서 문희의 성공시대와 김유신가의 성공시대가 열린 것이다
.

대략, 간략하게 요약하면 문희의 꿈이 미치는 효과를 이야기 했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

우리가 역사에 대한 상식에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살펴보자. 역사를 조금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잘못된 상식을 전파하는 첨병으로 할동 하고 있다. 그러니 잘못된 상식이 고착화 되어 버린다. 그리고 잘못된 상식이 역사가 된다. 소설 삼국지를 읽고 그 것이 중국 삼국 사이에 진짜 있었던 일처럼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

문희 사건에서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

문희, 보희, 김유신, 김춘추, 선덕여왕 그리고 사건 결과로 잉태된 문희 뱃속의 김법민(문무)이다
.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선덕여왕이 문희와 김춘추를 엮어 주었다는 말이 상식이 되고 정설이 되고 사실화 되었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잘못된 상식이고 잘못된 역사지식이다
.

그럼 얼마나 잘못된 상식인지 문희의 뱃속의 김법민으로 부터 추적을 시작해 보자.

문무왕(文武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법민(法敏)이고 태종무열왕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문명왕후(文明王后)인데, 소판(蘇判) 서현(舒玄)의 막내딸이고 유신(庾信)의 누이이다.

그 언니[]가 꿈에 서형산(西兄山) 꼭대기에 올라앉아서 오줌을 누었더니 온 나라 안에 가득 퍼졌다. 꿈에서 깨어나 동생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동생이 웃으면서내가 언니의 이 꿈을 사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비단치마를 주어 꿈값을 치루었다. 며칠 뒤 유신이 춘추공(春秋公)과 축국(蹴鞠)을 하다가 그만 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떼었다.

유신이 말하기를우리 집이 다행히 가까이 있으니 청컨대 가서 옷고름을 답시다.”라 하고는 함께 집으로 갔다. 술상을 차려 놓고 조용히 보희(寶姬)를 불러 바늘과 실을 가지고 와서 [옷고름을] 꿰메게 하였다. 그의 언니는 무슨 일이 있어 나오지 못하고, 동생이 나와서 꿰메어 주었다. 옅은 화장과 산뜻한 옷차림에 빛나는 어여쁨이 눈부실 정도였다. 춘추가 보고 기뻐하여 혼인을 청하고 예식을 치루었다. 곧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법민(法敏)이다. - 삼국사기 문무왕 원년


   

삼국사기는 "춘추가 기뻐하여 혼인을 청하고 예식을 치루었다. 곧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법민" 즉 문무왕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연선사는 "웃기지 마라, 기뻐하며 혼인을 청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임신한 문희를 김춘추가 살살 피하다. 선덕여왕 때문에 할 수 없이 결혼했다"라고 까발리고 있다. 이처럼 삼국유사는 삼국사기가 하지 않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래서 삼국유사는 참으로 소중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춘추공은 유신의 뜻을 알고 드디어 아지와 관계하고 이로부터 자주 왕래했다.  유신은 그 누이가 임신한 것을 알고 꾸짖었다.  "너는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아이를 배었으니 그게 무슨 일이냐."  그리고는 온 나라 안에 말을 퍼뜨려 그 누이를 불태워 죽인다고 했다.  

어느 날 선덕왕(善德王)이 남산(南山)에 거동한 틈을 타서 유신은 마당 가운데 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질렀다.  연기가 일어나자 왕이 바라보고 무슨 연기냐고 물으니, 좌우에서 아뢰기를, "유신이 누이동생을 불태워 죽이는 것인가 봅니다"했다.  왕이 그 까닭을 물으니, 그 누이동생이 남편도 없이 임신한 때문이라고 했다.  왕이 "그게 누구의 소행이냐"고 물었다.  이때 춘추공은 왕을 모시고 앞에 있다가 얼굴빛이 몹시 변했다.  왕은 말한다.  "그것은 네가 한 짓이니 빨리 가서 구하도록 하라."  춘추공은 명령을 받고 말을 달려 왕명(王命)을 전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고 그 후에 버젓이 혼례를 올렸다. - 삼국유사


여기서 김법민의 태어난 때를 알 수 있는 힌트가 나온다. 선덕여왕(632~647) 재위시절이다. 그렇다면 김법민(문무)는 왕위에 오른 661년에 선덕여왕 초년에 태어났다면 30살이고, 선덕여왕 말년에 태어났다면 14살이 된다.

하지만, 위사실로는 법민의 나이를 유추할 수 가 없다. 그래서 김춘추의 자식중 김법민의 바로 첫번째 동생인 김인문의 기록을 살펴보자. 김인문의 출생을 알 수 있는 기사가 나온다.

"김인문(金仁問)은 자()는 인수(仁壽)이고, 태종대왕의 둘째 아들이다. 어려서 학문을 시작하여 유가(儒家)의 책을 많이 읽었고, 겸하여 장자(莊子노자(老子불교의 책도 읽었다. 또한 예서(隷書)와 활쏘기·말타기·향악(鄕樂)[주석300]을 잘 하였는데, 행동의 법도가 수수하고 세련되었으며, 식견과 도량이 넓어 당시 사람들이 추앙하였다. 영휘(永徽 2(진덕왕 5: 651), 인문의 나이 23세에 왕명을 받아 대당에 들어가 숙위하였다. - 삼국사기 열전 김인문


김법민의 아우인 "김인문은 영휘(永徽 2(진덕왕 5: 651), 인문의 나이 23세에 왕명을 받아 대당에 들어가 숙위하였다." 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김인문은 629년생이 된다.

김인문이 김법민과 터울이 없는 연년생이라고 해도 김법민은 628년 이전 출생하여야 한다. 물론, 김인문이 늦은 629년생이고, 법민이 629년 정월 생이라면 같은 나이가 될 수 있다. 내 친구도 11개월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자식들을 둔 사람도 있다. 최근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천명과 덕만이 쌍둥이  일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렇다고 해도 김법민은 629년 이전 생임은 분명해 보인다
.

이제 결론으로 들어가 보자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종합해보면 장작더미 위에 놓인 김법민, 문희 모자를 살려준 사람은 선덕여왕이 아닌 공주 덕만이 될 수 밖에 없다선덕(덕만) 632년에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니
둘째 김인문도 진평왕시기에 태어났는데 맏아들 김법민(문무왕)이야 오죽 겠는가? 629년은 진평왕 51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김춘추의 나이는 언제였을까? 605년생인 김춘추이니 최소 21~24살때의 일이다.

그런데 왜 대왕의 꿈에서 덕만공주의 지기삼사는 나오지 않는것일까? 덕만이 왕이 될 결정적인 이유가 지기삼사중 모란꽃이야기 인데 말이다. 아무리 김춘추가 주인공이더라도 할 일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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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서 육지로] 사랑하는 부모님께

대왕의 꿈에서 김유신과 신관을 지키는 천관녀와의 사랑이 그려지고 있다. 천관녀는 비형랑이 전쟁고아를 주어서 기른것으로 회상한다. 그리고   신분의 벽때문에 김유신을 멀리한다. 하지만, 김유신은 죽도록 천관녀를 사랑하겠노라며 천관녀를 흔들다. 

 

그리고 천관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자신이 신관을 떠나면 술을 따르고 술을 따르는 기녀가 될 것인데 그래도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김유신의 첫사랑(?) 천관녀와의 사랑은 너무나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천관녀가 이름일까? 미안한 이야기 지만 천관녀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하늘을 보고 천문을 연구하며 왕에게 보고하는 요즘의 천문대나 기상청에서 근무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관리인 천관의 딸이라는 뜻이지 천관녀가 이름이 될 수 없다.

 

이를 재대로 분석한 박창화는 화랑세기에 천관녀를 등장시킨다. 화랑세기에는 천관녀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 하지만, 천관녀대신에 영모에 대한 언급을 한다.

 

 

 

김유신과 영모는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영모는 미실의 아들 하종과 설원랑의 딸 미모의 딸인데 김유신의 할머니 만호태후가 반대하여 어머니 만명부인도 영모를 인정할 수가 없었다.

 

화랑세기에서는 대원신통(신도)과 진골정통(불교)의 파맥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만명은 진골정통(불교)고 영모는 미실의 계통을 이은 대원신통(신도)다 요즘도 종교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김유신은 할머니 만호태후, 어머니 만명부인의 반대로 괴로워하다 영모를 잊으려 노력하지만, 술 취해 집에 가는 길에 말은 습관적으로 영모가 살고 있는 하종의 집으로 간다. 이에 김유신은 말의 머리를 자르지만 이에 놀란 영모의 할머니 미실이 만호태후에게 사과를 하고 영모를 손주며느리로 받아들이게 한다. 박창화의 화랑세기가 천관녀를 해석하는 방법이다.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김유신의 첫 부인을 자신의 누이(문희)와 김춘추의 딸 지소()공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박창화김유신에게 원술랑 위에 형들이 있음을 간파하고 천관녀를 이름이 아닌 천관(대원신통) 신라의 토속종교인 신도와 연결시키고 이름을 부여한다. 김유신의 자신들에게는 <광>자 돌림의 자식들이 있고 <원>자돌림의 자식들도 있다. 원술은 지소공주 사이의 첫번째 아들일 뿐이다.

 

 

지금까지 나온 소설 중에서 박창화의 화랑세기보다 정밀한 역사소설을 본적이 없다. 역사학도였던 박창화만이 구성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이다. 글쓴이는 mbc <선덕여왕>에서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였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선덕여왕>이 얼마나 잘못된 설정을 하였는지 화랑세기를 인용해서 비판한적이 있다.

 

하지만, 정통사극이라면 화랑세기를 인용해서 비판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당연히 대왕의 꿈에서 미실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미실이 등장했다면 정통사극 대왕의 꿈에 대해서 엄청난 비판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KBS 대왕의 꿈에서도 박창화의 화랑세기를 적극 인용하면서 화랑세기를 감추는 이중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대왕의 꿈 작가들이 대 놓고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는 이유는 화랑세기가 위서이기 때문이 아니다. 저작권료를 지불하기 싫기 때문이다.

 

사실 박창화는 화랑세기를 한번도 사서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단지 발견자들 중 화랑세기의 정교함에 놀라서 박창화의 화랑세기는 신라에 살았어야만 알 수 있는 내용이 많다며 사서로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소설 삼국지가 삼국시대 역사는 아니다. 저작권은 저작자 사후 50년까지 보호받는다. 삼국시대 사극 작가나 소설가들, 제작자들은 박창화의 후손들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해야만 한다.

 

대왕의 꿈에서 천관녀(이세영)김유신의 달달한 사랑이야기를 너무나 평이한 에피소드로 만들었다. 좀더 달달하게 그렸다면 여성시청자들을 대왕의 꿈에 끌어들일 수 있었는데 아쉬운 점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김유신은 지소공주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결혼해서 장성한 아들들과 전쟁에 참전하고 있다. 더불어 천관녀는 이름이 아닌 김유신이 천관녀와의 사랑에 실패해서 늙어 죽을 때까지 결혼도 하지 않다가 환갑 때 어린 조카 지소()공주와 결혼했다는 설정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최소한 역사소설을 쓸려면 위서논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박창화 <화랑세기>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오죽하면 화랑세기가 위서라고 인정하는 학자들조차 화랑세기에서 영감을 얻으라고 했을까? 그만큼 화랑세기는 소설이상의 역사학자보다 더한 역사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요즘 역사서는 보지 않고, 단지 이전 사극이나 소설을 보고 약간 변형해서 글을 쓰는 작가들과는 판이하다.

 

 

어쨌든 대왕의 꿈에서 김유신은 611년 가잠성 전투에 참전을 하고 돌아온다. 하지만, 사실은 김유신은 가잠성 전투에서 신라가 대패했다는 말을 듣고 산으로 들어가 수련을 한다. 611년이면 16살에 불과했을 텐데 대왕의 꿈보다는 역사가 현실적이지 않는가?

 

건복 29년(진평왕 34년: 612)에 이웃 나라 적병이 점점 닥쳐오자, 공은 장한 마음을 더욱 불러일으켜 혼자서 보검(寶劍)을 가지고 열박산(咽薄山) 깊은 골짜기 속으로 들어갔다. 향을 피우며 하늘에 고하여 빌기를 중악에서 맹서한 것처럼 하고, 이어서 “천관(天官)께서는 빛을 드리워 보검에 신령을 내려 주소서!”라고 기도하였다.


어찌되었던 유신도 말년에 천관녀 <영모>를 위해서 천관사를 짓는다. 사실 영모를 위해서 사찰을 지었는지, 33天의 현신이라고 믿었던 유신이 , 유신에게 도움을 준 실질적인 하늘 <천관>을 위해서 천관사를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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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oolrichparkaoutlete.com BlogIcon Woolrich Online Shop 2012.11.29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 을 아주 좋아 한 다

  2. Favicon of http://https://www.rebelmouse.com/textyourexback/ BlogIcon source 2013.02.11 0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왕의 꿈 작가들이 대 놓고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는 이유는 화랑세기가 위서이기 때문이 아니다. 저작권료를 지불하기 싫기 때문이다.

  3. Favicon of http://www.Ordained-Ministers.com BlogIcon become online 2013.09.07 0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거로 간 김희선도 편지의 내용이 미래를 바꿀 수 있기에 최대한 자제한 듯 합니다.
    그동안 나왔던 편지의 경고도 모두 최영의 위험에 관해서만 경고했죠~
    이번 사건은 김희선 자신의 일이었기 때문에 경고를 안한듯 합니다~

 

대왕의 꿈이나 대부분의 사극에서 김춘추의 아버지를 김용춘이라고 하고 김용춘김용수를 다른 이름을 가진 동일 인물이라고 한다.

 

물론, 그런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릴 적 이름과 성인이 되었을 때 이름은 다른 경우가 많다. 글쓴이도 2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조카도 집에서 부르는 이름과 가족등록부에 올라있는 이름이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글쓴이(갓쉰동)이 다른 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예전에도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김용춘김용수는 동일인물이 절대로 될 수 없는 기록들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용수와 용춘의 기록들을 다 뽑아 보자. 그럼 확실히 이들이 동일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622년 진평 44(622) 2월에 이찬 용수(龍樹)를 내성 사신(內省私臣)으로 삼았다. - 삼국사기 진평왕 44

629
51(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였다. - 삼국사기 진평왕 51


635
년 선덕 4 10월에 이찬 수품(水品)과 용수(龍樹) <또는 용춘(龍春)이라고도 하였다.>를 보내 주·현을 두루 돌며 위문하였다.- 삼국사기 선덕왕 4

643년 선덕 3 16일에 자장 돌아와 탑을 세워야 한다고 선덕왕에 보고, 이후 이간(伊干) 용춘(龍春; 혹은 용수龍樹)이 그 역사를 주관하는데 거느리고 일한 소장(小匠)들은 200 명이나 되었다. - 삼국유사 황룡사 9층 목탑

654
3월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라고도 하였다.>의 아들이다. - 삼국사기 29대 춘추

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 삼국유사 29대 춘추

654
년 태종 원년(654) 여름 4월에 왕의 죽은 아버지를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추봉(追封)하고 어머니를 문정태후(文貞太后)로 삼았다 - 삼국사기 김춘추 1 4

 

삼국사기는 춘추의 아비로 용춘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고, 삼국유사는 용수를 춘추의 아비라고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로 다르게 말을 하니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용수와 용춘을 철저히 분리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용수를 별도로 한번 언급하고 있고, 용춘을 한번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은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통설이 용춘(용수) 또는 용수(용춘)으로 이들을 같은 동일인으로 취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용춘(金龍春) 생몰년 미상. 신라시대 왕족. 일명 용수(龍樹). 진지왕의 아들이며 태종무열왕의 아버지. 어머니는 지도부인(知道夫人) 박씨이고, 부인은 진평왕의 딸인 천명부인(天明夫人) 김씨이다.
아버지 진지왕의 신분은 성골이나, 왕위에 재위한 지 4년 만인 579년에 폐위당하였으며, 용춘의 아들인 김춘추의 신분은 진골로 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표로 만들면 다음과 위와 같다.

 

 

삼국사기에 용수가 등장한 때는 6222등급인 이찬 내성사신이다. 삼국사기에 용춘은 629 8월 고구려 낭비성을 공격할 때 대장군으로 파진찬(4)이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도 용춘과 함께 대장군으로 부장군 김유신과 함께 참전하는 기록이다.

용수는 이찬(2)급이고 용춘은 629년에 대장군 파진찬(4)위에 해당한다고 기록한 것이다. 용수와 용춘이 동일 인물이라면 2 등위 이찬이 7 6개월 후에 4등위 파진찬이 되었다는 뜻인데 이는 국무총리가 장군이 되어서 전장에 참여하는 꼴이 된다. 또는 장군이 계급이 강등되어 일개 사병으로 참전하는 꼴이다. 이순신처럼 백의종군을 하려면 충분히 그만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

 

635년 용수 혹은 용춘이 이찬 수품과 함께 주군을 위무하고 있다. 만약, 용수와 용춘이 동일인물이라면 622년 이찬(2등급)에서 629년 파진찬(4등급)으로 강등되고 635년 이찬(2등급)으로  직위가 강등되었다고 승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결론은 김용수김용춘은 별개의 인물이라는 뜻이다. 또한, 용수는 내성사신과 황룡사9층목탑 관리자처럼 문에 치중한 인물이고 용춘은 파진찬 대장군으로 무에 치중한 인물이다.

 

삼국사기도 용수와 용춘을 별개의 인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635 1월 주.군을 순시하는 자가 용수인지 용춘인지를 알 수 없다고 하고 있으며, 용춘이 춘추의 아비인 것 같은데 용수라고 하는 기록도 있다는 것을 남겨 두었다.

 

일단 용수와 용춘은 별개의 인물임이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용수와 용춘이 형제라면 누가 형일까? 직급으로 봐서 용수가 형이고 용춘이 동생일 수 밖에 없다.

 

김용수의 아버지 진지왕(사륜/금륜)은 진흥왕(24)의 둘째 아들로 신라 25대왕 576~579년까지 재위하다 폐위되었다. 진흥왕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던 동륜태자의 아들 진평왕은 나이가 어려 왕이 되지 못하고 작은아버지 진지왕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성인이 되자 진평왕을 지지하는 세력이 진지왕을 몰아내고 왕권을 회복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왕의 꿈처럼 진평왕이 무능한 왕은 아니다. 기록에도 진평왕은 기골이 장대하고 고구려가 북한산성을 공격하자 직접 전쟁을 수행할 만큼 강골기질을 갖고 있었다.

 

어쨌든, 진지왕이 죽은 때는 비형랑과 도화녀의 전설 때문에 폐위된 이후 얼마간 생존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도 김용수나 용춘은 비형랑보다는 형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용수 용춘 형제는 진지왕이 폐위되고 비형랑이 태어나기 전 늦어도 579~582년 이전 임을 알 수 있다.

 

<대왕의 꿈>이나 MBC <선덕여왕>박창화의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고 있지만, 선덕여왕은 퓨전사극이기에 화랑세기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특히 미실을 등장시킨 점은 선덕여왕 드라마가 정통사극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반면에 KBS <대왕의 꿈>은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여 몇몇 인물과 화랑의 체계를 따 왔지만, 미실도 등장하지 않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실 화랑세기는 박창화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창작한 요즘에도 보기 드문 정교한 소설이다.

 

화랑세기는 용수와 용춘을 별도 인물로 보고 있고, 진평왕의 딸 천명이 용춘을 좋아했지만, 용수와 혼례를 하고 잠자리는 용춘과 했다며 김춘추를 김용춘과 천명공주의 아들로 만들었다. 그리고 용수가 일찍 죽자 동생 김용춘과 합법적으로 결혼시키고 김춘추를 김용춘의 자식으로 만들었다. 결국 김춘추를 생물학적, 법적으로 김용춘의 자식으로 만들었다. 화랑세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교묘히 절충해서 두 사서에 위반되지 않게 창조를 하고 있다. 소설로서 이보다 정교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그렇다면 김춘추는 김용수김용춘 중 누구의 아들일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보더라도 누구의 자식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김춘추의 어머니 천명공주만이 아는 사실일지 모른다. , 김용수김용춘과는 직급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을까? 622년 이찬(2)이 된 용수와 7년 후인 629년 파진찬(4)급으로 나온 김용춘이니 말이다.

 

진흥왕은  534년생으로 7살인 540년에 왕위에 올랐다. 진평왕의 아버지 동륜태자는 566년 태자가 되었다가 572년 죽었다 진평왕은 57915살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니 진평왕은 565년생이다. 진흥왕 32살에 원손인 진평왕(백정)이 태어난 것이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 564년생으로 추측된다. 김서현629년 용춘과 같은 대장군이지만, 직급은 1단계 높은 소판(3등급)급 대장군이었다. 김서현과 진평왕은 비슷하거나 동년배이지 않았을까? 더불어 김용수는 진흥왕의 둘째인 진지왕(사륜/금륜)의 아들이므로 진평왕(백정)이나 김서현보다 어린 565년 이후에 태어났을 것이다. 결국엔 김용춘김서현보다 나이가 한참은 적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천명공주는 580년 전후에 태어났을 것이다. 602년생 김춘추와 천명공주의 나이를 추측할 때 아버지나 삼촌뻘인 김용수보다는 비슷한 연배의 김용춘와 결혼하고 김용춘이 김춘추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왜 대왕의 꿈의 시대배경은 609년으로 춘추나이 7~8살인데 채상우(99년생)으로 14살 중학생이 유치원 아역을 하고, 천명공주는 많아봐야 20 중후반 인데 조경숙은 1962년생으로 51살이 나오고, 김용춘은 많아봐야 30대 초반 밖에 안되었을 텐데 정동환:1949년생 64세가 나올까? 

 

좀더 개연성 있는 사극보기가 그렇게 힘든 것인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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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ornets 2012.09.24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평왕이 565년생이라는 기록은 어디에 있나요?


드라마 계백에서 드디어 의자왕(조재현)의 후손이 태어난다.


그런데 연씨에게서 태어나는 후손은 분명이 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아들이  부여융이 될지 부여효가 될지 부여태가 될지 궁금해진다. 사실 <계백>에서 역사를 찾는다는게 힘들기 때문에 맞추기도 힘들지 모른다.


분명히 드라마 <계백>은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의 삼국유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일본서기, 박창화의 화랑세기, 삼국지연의를 인용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모두 비틀어 버려서 알 수가 없다. 이를 작가는 작가의 창작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저작권을 주어야할 사람이라도 있는 듯이 약간 달리하고 있다.


계백에서 등장하는 인물 중 은고의 심복 임자는 조선상고사에서 빌려오고, 선화는 삼국유사에서, 사택적덕과 사택비는 미륵사 서탑의 사리함봉안기에서 빌려온 인물이다. 교기와 기미, 은고는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인물이다.


연문진의 딸 연씨가 낳은 아들이 누구일까 궁금하지 않는가? 시금석이 되는 인물은 백제가 패망하고 의자왕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갔다, 백제로 돌아와 웅진도독이 되었다가 요동 고구려 옛성 건안성에서 백제왕이 된 부여융이다.
 


644년 봄 정월, 왕자 융(隆)을 태자로 삼고 크게 사면하였다. - 삼국사기 백제


백제가 멸망할 시의 태자는 부여융이다. 삼국사기에도 644년 의자왕 4년 부여융을 태자로 삼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때 부여융의 묘지명에 따르면 나이는 30살이었다.
 

그 왕(王) 부여의자(扶餘義慈) 및 태자(太子) 융(隆) 이외 왕자(王子) (餘)효(孝) 13인은 대수령(大首領) 대좌평(大佐平) 사탁천복(沙吒千福), 국변성(國辯成) 이하 700여 인과 함께 이미 궁궐에 들어가 있다가 모두 사로잡히니 말가죽을 버리게 하고 우거(牛車)에 실어다가 잠시 있다가 사훈(司勳)에 올리고 이에 청묘(淸廟)에 드렸다 - 대당탕평제비 660년 8월 15일


그런데 삼국사기  660년 7월 백제 멸망당시를 되돌아 보면 부여효가 태자로 나온다.


드디어 (의자가) 태자 효(孝)와 함께 북쪽 변경(웅진성)으로 달아났다.

정방이 [사비]성을 포위하니 왕의 둘째 아들 태(泰)가 스스로 왕이 되어 무리를 거느리고 굳게 지켰다. 태자의 아들 문사(文思)가 왕자 융(隆)에게 말하였다. “왕과 태자가 [성을] 나갔는데 숙부가 멋대로 왕이 되었습니다. 만일 당나라 군사가 포위를 풀고 가면 우리들은 어찌 안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드디어 측근들을 거느리고 밧줄에 매달려 [성밖으로] 나갔다. 백성들이 모두 그들을 따라 가니 태(泰)가 말릴 수 없었다. 정방이 군사로 하여금 성첩(城堞)에 뛰어 올라가 당나라 깃발을 세우게 하였다.


태는 형세가 어렵고 급박하여 문을 열고 명령대로 따를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왕과 태자 효가 여러 성과 함께 모두 항복하였다. 정방이 왕과 태자 효(孝)·왕자 태(泰)·융(隆)·연(演) 및 대신과 장사(將士) 88명과 백성 12,807명을 당나라 서울[京師]로 보냈다. - 삼국사기 백제 660년



위의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삼국사기 644년 의자왕이 부여융을 태자로 삼았다는 말이 의심스럽게 된다. 하지만, 멸망 직후 태자는 부여융이 분명해 보인다. 일본서기에도 부여융이 태자로 기술되고 있다.
 

[百濟王 義慈, 그 妻 恩古, 그 아들 隆 등, 그 신하 佐平 千福, 國辨成, 孫登 등 모두 50여 명이 가을 7월 13일에 蘇將軍에게 사로잡혀 唐에 보내졌다. 일본서기 660년 7월 13일, 아들 융 등


11월 1일에 將軍 蘇定方 등이 사로잡은 百濟王 이하 太子 隆 등 여러 왕자 13명, 大佐平 沙澤千福·國辨成 이하 37명, 모두 50여 명을 朝堂에 바쳤다 - 일본서기 660년 11월 1일 태자 융



7월 13일자를 기준으로 해서 일본서기는 의자왕의 아들 융이라 하고 11월 1일자 기사에서는 태자 융으로 기록하고 있다.

660년 8월 15일 만든 대당평제비와 삼국사기, 일본서기의 태자 기록을 준용한다면 삼국사기 백제 멸망당시 태자는 부여융이라고 바뀌어 있다. 그렇게 된다면 태자의 아들 문사는 부여융의 아들인가? 아니면 부여 효의 아들인가가 불분명해진다. 왜냐하면 태자 부여효의 아들 문사가 왕자 융에게 의자왕과 태자 부여효가 웅진성으로 갔는데 숙부가 멋대로 왕이 되었다.라고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와 일본서기, 대당평제비 등 옛 기록을 모두 합리적인 기록이라고 한다면 처음 부여융이 644년 태자가 되었다 어느 시점에 부여융은 태자에서 쫓겨났고, 부여효가 태자가 되었다가 백제멸망과 더불어 융이 태자로 복귀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부여효와 부여융 중에 정확히 누가 맏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단지 부여태가 둘째아들이라는 사실만 들어나고 있다.


삼국사기 644년 기록으로 미루어 부여융이 첫째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일본서기에는 왕비 은고가 국정 전반을 장악하고 국정을 농단했기 때문에 백제가 망했다 기록하고 있다. 어쩌면 부여융은 은고의 자식이 아니고 부여효는 은고의 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드라마 <계백>에서 은고를 계백의 첫 번째 부인으로 그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는 대단히 개연성있고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드라마 계백에서 첫 번째 부인으로 나오는 연씨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의자의 첫 번째 아들이 된다. 그렇다면 연씨가 낳은 큰아들이 부여융이 된다.
 


그런데 드라마 계백에서 계백과 은고는 612년에 태어난 것으로 그리고 있고, 부여융 묘지명에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났다고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계백은 신성이 있어서 신라 생구가 되어 629년 고구려 낭비성 전쟁에도 참전을 해서 신라가 대승을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리고 곧바로 김유신과 함께 628년 신라 가잠성에 침입한 백제를 도와 백제가 승리하는데 공을 세운다. 하지만, 가잠성 전투는 백제가 대패한 전쟁이었다.


이제 다시 과거로 여행을 하여 의자왕이 왕자시절 반란을 일으키다 사택비에 들켜서 처형된  연내신좌평과 자신의 부인도 참형을 당할 것을 염려하여 첫째 부인 연씨를 위해서 같이 중이 된다. 그리고 임신한 연씨는 드디어 출산을 한다.
 


자신의 복수나 영달을 꾀하는 의자가 아닌 연줄이 끊어진 부인을 위한 의자왕자를 보고 마음이 열린 계백과 성충과 흥수는 의자와 피로써 형제결의를 한다.


너무나 많이 보았던 장면이 아닌가? 삼국지연의에서 나오는 유비와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에서 한명이 추가된 4명의 형제결의다. 이들이 형제가 되었다가 결국에는 의자왕이 권력에 맛들여 성충, 계백, 흥수를 배신했다는 배신장면을 극적이게 묘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나 식상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복숭아꽃잎이 날리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이다. 삼국지연의는 현재 드라마 계백의 배경이 되는 삼국시대 630년대에는 알려지지도 않았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명나라 1522년 초판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드라마 <계백>은 630년 초반을 그리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부여융은 615년 태어났다. 부여융은 의자가 15세 전후에 낳은 첫째 아들일 것이다. 어쨌든, 615년이면 의자왕은 15살 전후이고, 계백과 은고는 3살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계백은 나이를 먹고 늙어만 간다. 늙어가지만, 늙은 티가 하나도 나지 않는다.


전화박스를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영국의 닥터는 시간여행을 다룬 SF드라마다. 그런데 사극 <계백>에서 타임머신도 타지 않고 시간을 넘나들고 역사도 바꾸고 있다.

어쩌면 <계백>에서 생구인데도 불구하고 굽있는 2000년대 첨단가죽신을 신고, 면도하는 의자,교기,계백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계백의 가죽신이 타임머신이거나 계백이 타고 있는 말이 타임머신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손오공이 수염을 뽑듯이 계백이 수염을 하나씩 뽑을 때 마다 시간여행을 하는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뒤죽박죽 사극이 아닐 수 없다. 타임머신도 없이 과거로 미래로 자유롭게 여행을 하고 있다.


드라마 계백에서 황산벌에서 살아남은 계백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고구려가 망할 때 고구려를 위해서 용병으로 참가하는 계백을 만난다고 해도 하등에 이상할 것이 없는 드라마가 <계백>이다. 어쩌면 계백이나 의자왕이 백제가 패망후 당나라로 가지않고, 왜로 건너가 천황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 드라마 계백에는 불가능이 없다. 충분히 드라마 계백에서는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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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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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는 왜 알천에게 아저씨라고 했을까?


드라마 <계백>에서 의자(조재현)는 은고(송지효)와 함께 계백(이서진)과 생구(포로)들을 구출하려고 가잠성에 침투한다.

하지만, 독개(윤다훈)에게 정체가 들통나 의자는 은고를 탈출시키지만, 김유신(박성웅)에게 잡히고 만다.

의자는 신라의 가잠성 성주 알천에게 잡혀 무릎을 꿇고 알천에게 아저씨라고 말을 한다.


알천은 사사로이 사촌인 선화의 자식이니 아저씨가 되겠지만, 사택비(오연수)가 선화를 죽였다며 더 이상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라고 한다.

아저씨에게도 배척되는 의자왕자가 되겠다. 불쌍한 건 의자이고 원수는 사택비지 의자는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도 의자는 알천에게 아저씨라는 말을 한다.


한마디로 의자와 알천은 인척관계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삼촌이나 오촌의 관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뜸금없이 의자와 알천의 계보가 나왔을까? 사실 알천의 출자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다. 단지 인터넷에 떠다니는 김대문의 화랑세기가 아닌 박창화의 화랑세기에 알천이 선화의 아버지인 진평왕과 인척관계라고 해서 나온 이야기이다.
 

알천(閼川, 생몰년 미상. 활동연대 636년 ~ 654년)은 신라 선덕·진덕여왕, 태종무열왕 때의 귀족으로 화백회의 의장인 상대등(上大等)을 역임하였다. 진덕여왕 사후에 섭정으로 추대되었으나 태종 무열왕에게 양보하였다. 진골이며 섭정으로 지목되었던 것으로 보아 김알지의 후손인 김씨라 보는 것이 신빙성이 있다.[1] 진위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 따르면 진흥왕의 아우 숙흘종과 보리부인의 아들이라고 한다. - 위키백과


 

알천 위키백과 계보도


위키백과에 알천은 화랑세기를 인용해서 입종갈문왕의 아들인 숙흘공의 아들로 되어 있다. 하지만, 박창화의 화랑세기에 알천의 부모 내력을 알 수 있는 내용은 한구절도 없다.


어찌되었던 위키에서 나와 있는 숙흘공과 보리의 아들 알천이라면 진평왕의 외손자인 의자와는 인척관계일 수 있다.


만약, 알천이 숙흘공의 아들이라면 오히려 알천은 김유신과 인척관계가 있다.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은 숙흘종과 만호부인 사이에 태어났다. 그러니 알천과 만명은 배다른 남매가 된다. 김유신에게는 알천은 외삼촌이 된다.


하지만, 드라마 <계백>에서 알천은 김유신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의자에게 알천이 아저씨라면 김유신은 이웃사촌보다 더 가까운 존재이다. 하지만, 의자는 김유신에게 형님소리는 하지 않는다.


모계로본 의자왕과 김유신 가계도


만호태후는 진흥왕의 아들 동륜태자 사이에서 진평왕을 낳는다. 동륜태자가 진평(백정)을 낳고 일찍 죽자 숙흘종 사이에 만명을 낳은 것이다. 만명과 진평왕은 어머니가 같은 동복 남매간이다. 선화는 진평왕의 딸이고 김유신은 만명의 딸이니 할머니가 같다. 선화와 김유신은 사촌간이다.


한마디로 의자에게 아저씨는 알천이 아니라 김유신이 된다. 오히려 알천보다 김유신과 의자가 더 가까운 사이인 김유신에게 의자는 조카가 되고 의자에게는 아저씨가 된다. 하지만, 김유신과 의자는 전혀 모르는 사이처럼 나온다. 사택비에 핍박받은 조카의자가 가잠성에 잡혔는데 의자 너 누구니 하듯 개가 닭쳐다 보듯 한다.


그런데 정말 알천은 의자의 아저씨일까? 위키에 나와 있는 계보라면  의자와 알천은 먼 친척인 할아버지 뻘이다. 계백에서 의자가 알천에게 아저씨라고 하면 안된다.



문제는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위키의 알천에 대한 정보가 잘못되었다.


인터넷 위키에서 입종의 아들인 숙흘종과 보리의 아들이 알천이라고 했지만,  보리는 세속오계를 만든 원광법사의 동생이다. 또한, 보리는 15대 풍월주인 김유신보다 위대인 12대 풍월주였다. 보리는 이화랑과 숙명공주 사이에 태어나 후에 만룡과 결혼한다. 보리는 화랑세기를 만든 김대문의 증조할아버지가 된다.


위키에 떠도는 알천의 출자는 남자인 숙흘종과 남자인 보리 사이에 알천이 태어났다고 하는 꼴이다.


알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남자없이 빛으로 태어난 동명도 있고, 예수도 있으니 남자와 남자 사이에 태어나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드라마 인데 여자와 여자사이에 태어나던 남자와 남자 사이에 태어나던 알에서 태어나던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알천은 김춘추와 왕위 쟁탈전에서 패해서 진주로 낙향해서 진주소씨의 선조가 된다. 알천은 사로국 6촌장의 소벌도리의 후손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알천이 진덕여왕시절 6두품의 최상위 등급인 이찬으로 국정을 장악했다고 해서 김알지의 후손이 아닐까 추측하기는 한다.

어쨌든 드라마 <계백>에서 왜 알천이 가잠성 성주로 등장했을까? 알천은 636년 선덕여왕 5년 시절 경주 인근 여근곡에 침투한 백제 우소의 별동대를 소탕한 전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계백과 김유신이 황산벌 싸움은 한다고 해서 계백이 김유신의 생구(포로)가 되어 어릴적 부터 김유신을 알고 지냈다는 둘간에 운명적인 만남과 끊임없이 트러블이 있었다는 설정을 한것 처럼 말이다.
 



<계백>에서 우소를 따라 여근곡까지 침투한 인물 중에 계백이 있고 알천과 대립하는 구도를 그리고자 하는 미끼이지 않을까한다. 그리고 알천과 의자는 사적으로는 인척관계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도 의자와 알천의 전혀 개연성도 없는 친인척 설정은 최소한 피해야 하지 않을까?  차라리 의자와 김유신의 인척관계 설정이라면 모를까? 알천과 의자의 대화를 의자와 김유신과의 대화였다면 그나마 개연성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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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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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campusvt.com BlogIcon 김성환 2012.01.07 0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빈 수레가 요란하다

  3. Favicon of http://elaine-c-smith.northcarolinabass.com BlogIcon 사만다 2012.04.03 2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가 안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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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와 알천의 계보가 나왔을까? 사실 알천의 출자에 대해서 아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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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뜸금없이 의자와 알천의 계보가 나왔을까? 사실 알천의 출자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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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이트를 찾아 정말 기쁘다. 내가 즐길 여기 게시 된 기사를 읽어 않습니다, ​​그들은 매우 유용하고 유익한 정보입니다.

최근 KBS1로 바뀐  미수다(미녀들의 수다)에서 초복 날을 맞이해서 각국의 보양식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중국의 경우는 양뇌를 먹는다고 하고, 홍콩에서는 개구리를 사브사브 식으로 먹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사슴고기를 먹고 다양한 보양식 문화를 소개시켜주고 있다.

또한, 한국의 복날(초복,중복,말복) 보양식뿐만 아니고 일반적으로 먹는 보양식에 대해서 삼계탕과 개고기를 맛나게 먹는 서양인을 조명시키므로 해서 개고기는 한국의 식문화이고 실제 외국인도 개고기를 먹어본다면 맛있을 것이라는 쪽으로 진행을 하였다. 서양인들이 뽑은 한국의 3대 보양식으로는 삼계탕, 김치, 비빔밥이라는 정보도 제공하였다.

이는 각국의 식문화를 간섭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과도 같은 것이다. 여기까지는 일반론적인 접근이니 별다른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중국 산동성에서 양고기 뇌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할때 한국의 출연자들의 반응이다. 어떻게 양의 뇌를 먹을까하는 찡그리는 장면을 목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열심히 개고기는 동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식문화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양고기나 개구리 사브사브, 캐냐의 악어고기에서 야만시하는 것은 처음 미수다에서 의도한 방향이 아닌 것이다.

미수다에 출연한 출연자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음식에 대한 이중성과 편협함이 미수다를 통해서 노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의 식문화를 존중받으려면 남의 식문화도 존중해주어야 한다. 고기에는 등급이 없다.


사실 지구 환경을 헤치고, 자연을 헤치는  대표적인  식문화는 집단 사육을  해서 쇠고기를 먹는 문화이다. 쇠고기 1kg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타고기의 생산과는 현격한 차이로 과도한 에너지를 낭비되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야만적이라고 꼭집어 말한다면 현재 자연을 파괴하면서 쇠고기를 먹는 문화이다.

어쨌든, 같은 국가내에서도 지방마다 개인마다 각각의 식문화는 다르다. 보양식으로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슴고기를 먹는사람, 뱀을 먹는 사람, 토끼고기를 먹는사람, 삼계탕을 먹는 사람, 오리고기를 먹는사람, 지렁이, 굼뱅이, 잉어, 뀌뚜라미, 미꾸라지  등 다양한 먹거리가 존재한다. 그 나라나 토양과 산물과 종교에 따라 먹는 문화가 결정되는 것 뿐이다.

최근 개고기에 대해서 가장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프랑스에 대해서 니들도 1800년대까지만 해도 개고기 엄청 먹었거든이라고 지적하는 책도 출판된적이 있다. 사실 프랑스인의 다수가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야만시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한국인 뿐만 아니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을 넘어서 한국의 보양식 문화의 대표적인 개고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개를 좋아한 한민족


개와 인간의 근친도는 다른 어떠한 동물의 근친도 보다는 가깝다고 합니다. 최근 발굴된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개의 근원은 북동아시아에서 수십만년전 어린 늑대를 키우면서 부터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가졌겠다.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지 개의 관점이 아닌 인간의 관점입니다)

그 늑대에서 파생된 개가 서로 인간에 의해서 길들여 지고 하는 과정에서 수 없이 교합되고 파생되는 과정을 걸쳐서 수천종의 개로 진화 되거나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진화?되어 왔습니다. 저는 진화 되었다고 보는 입장이 아니고 늑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본능을 잃어 버렸으니 퇴화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모양과 성향이 만들어 졌다고 봐야겠지요. 그래서 개가 개답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역사적으로 개를 좋아라 하는 민족이 있습니다. 그것이 공교롭게도 한민족이라고 합니다. 한민족의 범위를 규정하는것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이는 여기서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여의 관제에 보면 개를 관직명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우리 놀이문화였던 윷놀이에도 개가 들어갑니다. 일설에는 윷놀이가 부여의 관직명을 딴 놀이라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김수로 세운 국가는 가야이다. 가야의 연원은 구야에서 찾는다. 구야에서 구(狗)는 말 그대로 개를 말한다.  개를 가이, 개아지, 강아지, 가아지 라고 하는 것을 보면 가야라는 나라들도 국가명을 개를 위주로해서 국가명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극히 드문 사람중에 하나입니다. 실지로 가야에서 신라에 개를 공급하기 했다고 합니다.

그 개가 지금은 얼마 남아 있지 않는 귀신을 쫓는 다는 삽살개 라는 이들도 있습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의 한국의 3세기의 가야지역에 있는 국가 명을 살펴 보면 구야한국, 개야국 등 개를 표현하는 국가명칭을 사용하기도 하니 <개나라>라고 할만 할것 같습니다.

진평왕의 아버지 동륜은 개에게 죽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기본 텍스트가 되고 있는 화랑세기에도 개가 등장합니다. 진평왕의 아버지는 동륜태자인데, 미실궁주의 꾐에 빠져 동륜태자가 보명궁주를 어찌해볼 요량으로 보명궁으로  찾아갑니다. 그런데 보명궁에 살던 개한테 물려 죽고 맙니다.

아마도 신라왕실이나 귀족들이  귀신을 쫓는 개라고 길렀다는 삽삽개이거나 지금은 꼬리가 없어 재수없다고 천시를 받다 멸종위기에 있는 동견, 경주견,땡견,동동개,동개 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개을 먹는 행위는 야만이다

 개를 먹는 행위는 "야만이다"라고 하는데 일부 동의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문화생활이 미숙한 야만이지 개를 먹는 행위자체는 아니지 않을까 합니다. 야만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고 문화마다 다릅니다.

문화는 야만이다 원시라고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습니다. 한쪽의 일방의 이런 주장은 문화에 대한 몰이해로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불거진 것이고, 타문화를 야만시하는 것 자체가 미숙한 문화인식이지 않을까합니다. 저의 생각은 개는 개답게 살권리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많습니다.

 개를 먹는 이유있는 식문화

대체적으로 개고기를 먹는 지역을 살펴보면 중국의 만주지역,남부지역, 한반도, 베트남 등 쌀을 재배하는 농경지역이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뭄이와 먹거리가 떨어진 때에 농사를 지어야 하는 소를 잡아 먹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반대로 목축을 하는 지역에서 남아도는 소나 양을 먹으면 되었으니 가축을 돌보는 개를 잡아 먹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농경문화에는 소가 수십명의 몫을 일꾼역할을 하고 목축문화에서는 개가 수십명의 몫을 하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개고길 먹는데 보양식이 되었을까하는 건데 춘궁기나 가뭄이나 흉년에 개를 먹어 보니 회복이 빠르다는 것을 먹어서 몸으로 체득한것이겠지요. 산삼을 먹을수도 없고, 밥도 못먹는 그런상황에서 값비싼 것을 사먹을 수도 없는 사람들이 먹었으니 "쌍놈문화"인것은 확실할것 같아요.

다른 것을 사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는 가난한 자들의 식문화이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식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배척되야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극히 일부 양반을 빼고는 개고기로 충족해야만 했으닌 까요. 인간은 감정의 동물인데 자기들이 키우고 먹이고 했던 개나 기타 소나 닭이나 양 등 동물을 잡아 먹는 행위를 할때 과연 마음이 그리 좋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극히 일부의 몬도가네주의자들을 빼곤 말입니다.

 복날에 가장 많이 먹는 먹거리가 개, 양, 닭, 오리,미꾸라지(추어) 였다고 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부족한 단백질공급원이기도 하지만. 체내의 흡수율이 가장 빠른 오메가3로 알려진 불포화지방산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얼마나 흡수력이 빠르면 먹고 난 후 바로 코나 얼굴에 개기름이 낀다고하겠습니까?

어찌되었던 지방이 많으면 인간이 비만이 되지만 불포화 지방산은 인간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요소이지만,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지방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외부에서 공급을 해야한다는 것이지요.

불포화지방산을 평상시에는 식물로부터 공급했지만 먹거리가 떨어지는 여름 한낮의 뙤약볕에는 공급할 것이 개고기나 기타 여러동물 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아마도 가장 배고플때는 개도 먹일것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식문화로 정착이 되었겠지요.

정형외과의사들이 수술한 환자들에게 권하는 것이 개고기, 우족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원기를 회복하는데는 개만한것이 없다는 반증입니다. 2개의 심장을 가졌다는 맨체스터 박지성의 응원가가 오죽하면 개고기송이겠습니까? 개고기를 먹어서 잘뛴다는 생각을 서양인들도 은연중에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요. 박지성은 개고기를 먹지만 첼시 니들은 쥐고기도 먹잖아라는 첼시비아냥 응원곡이지만 말이다.

이것도 못살던 시대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이야기 입니다. 지금은 과도한 영양공급으로 인해 개고기를 먹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것이 누천년동안 입으로 맛으로 전해져 내려온것은 어쩔수가 없습니다. 인정하고 말아야지요. 지금은 오히려 과도한 단백질과 지방의 섭취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비만형으로 바뀌고, 다이어트를 해야할 정도인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재밌는 사실은 보신용으로 알려진 음식 모두가 흡수률이 좋은  불포화지방산이 많고, 고유의 비릿한 노린내가 난다는 겁니다.

 어찌 되었던, 아버지 세대에는 먹었지만, 제 주위만 보더라도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없습니다. 차츰 그 식문화가 줄어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고 개고기 먹는것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것 또한 사실이 아닐까합니다. 채식을 하자는 문화로 넘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지방과 단백질과 탄수화물, 섬유질 등 한국의 식패턴이 세계인들이 추구해야할 가장 이상적인 식습관을 보였다는 외국의 보고도 있더군요. 하지만, 그안에 개고기는 없습니다. 그냥 예전의 못사는 흔적일 뿐이지요. 그것을 아프게 받아 들일 필요는 있을것 같아요. 

현재의 산업화된 개고기가 예전의 개고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위생적이고 약물로 찌든 개는 더이상 고기로써 가치가 없겠지요. 항생제 등 약범벅 소고기/닭고기/돼지고기를 먹을 사람이 없듯이 개고기(단고기)를 먹을 사람이나 먹지 않을 사람을 위해서 법으로 제도화해서 관리통제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본성을 찾은 호주견 딩고


이 단f락 이후를 쓰기 위해서 위의 잡설을 늘어 놓았습니다. 그럼 개답다는 것은 어떤것일까요? 옛 초원을 누비며 자연을 자유롭게 살아가면서 야성을 회복하는 것이 아닐까요? 개의 목에 목줄을 메고, 개를 기르기 위해서 목젖을 따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고, 보기싫다고 거세를 하고, 땀샘이 없는 개에게 귀찮은 옷을 입히고, 개의 털을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자르고, 보기 좋으라고 개털이 수북한 종자로 개량(?)하고,  인간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똥개훈련을 시키듯 꼬리를 흔들게 하는것이 개다운 것일까요? 
.

호주가 유럽인에 의해서 발견된 후  양과 소를 방목하면서 양과 개를 돌보는 목동 개들를 같이 사육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부의 개가 인간을 통제와 관리 보호? 속에서 벗어나 야성의 본능을 찾아 들개로 복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인간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오수견이 개가 아니라 호주의 딩고라 불리는 들개가 진정 개다운 것일 겁니다.

인간에 의해서 품종개량이 되는 것을  배제한 호주의 본성을 찾은 딩고처럼 개의 원시성을 회복되는 것이 참다운 개다운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자연으로 돌아간 개가 개다운 것이 아닐까..

개고기 먹는 것을 매도하는 것도 반대하지만, 개고기를 찬양하는 것도 반대합니다. 또한, 개에 대한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몬도가네식 개를 먹는 사람이나 개를 개답게 하지 않고 애완견를 사랑하다고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합니다. 너도 개고기를 찬양한것 아닌가? 물어본다면 그동안의 역사와 있는 사실을 일부러 감정과 감성을 배제하고 무미건조하게 나열했을 뿐입니다. 

개를 애완견으로 또는 반려동물로 가족으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인간보다 더 인간대접을 받고, 일부는 가족처럼 인간에게 너무나 가까이 와버린 개를 놓아 준다는 주장은 현재로서는 개고기를 먹지말자, 먹자라는 주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무책임할것 같기는 하지만. 정말 개를 위한다면, 인간의 의지와 통제와 관리와 보호로 부터 벗어나 개가 개다울 수 있도록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일겁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인간으로 부터 버려진 유기견들이 자연으로 돌아가 치열한 삶을 이여가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 본능을 찾아가는 개는 더이상 개라고 불리지 않겠지요? 늑대개가 될려나요?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0.07.19 0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zzzz 2010.07.19 1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형적인 예수쟁이들의 주장일 뿐.....

  3. d1 2010.07.19 1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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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나게 먹는 서양인을 조명시키므로 해서 개고기는 한국의 식문화이고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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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연한 올림픽 참피언이, 우리 자식도 투자를 하면 김연아처럼 할수 있을 것 같았지만, 하면 할수록 김연아의 존재가 다가갈수 없는 넘사벽의 존재라는 것을 실감한것이다. 이런 피겨맘이 많아진다면 피겨는 다시 암흑기로 접어들지 모른다.

  10. Favicon of http://tailsmagazines.wordpress.com/tag/legislation/ BlogIcon rechargeable shock collars for dogs 2012.12.22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어난 칠숙과 석품의 난으로 바꾸어 버렸다. 극중에서 16년의 세월을 압축해서 같은 해에 일어난 일로 극화해버린

  11. Favicon of http://www.starryinteractive.com/freeze-dried-food-an-important-choice-for-une.. BlogIcon how do i purify water with bleach 2013.01.02 1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까지는 일반론적인 접근이니 별다른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MBC 사극 <선덕여왕>은 대부분의 모티브와 등장인물들을 <화랑세기>에 의존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문노>,<미실>, <하종>,<보종>,<미생>,<세종>과 화랑들이다. 아직까지 화랑세기의 진위논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또한,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화랑세기는 새로운 역사물을 만들 때 소설의 영감을 받기도 한다. 

글쓴이도 또한, 역사를 해석할 때 화랑세기를 참고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빈틈을 찾아 합리적인 해석을 찾기도 한다. 어찌 되었던 <화랑세기>의 위작여부에 상관없이 우리 사학계와 문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화랑세기>를 보기전에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로 미쳐 깨닫지 못했고, 이들 사서로 합리적인 해석이 불가능했던 것이 화랑세기를 읽고 나서 그 미싱링크를 찾아낸 적이 있다.  

미싱링크를 찾은 다음 화랑세기를 보지 않고, 다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다시 읽었을때도 화랑세기가 있고, 없고에 상관없이 합리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것중에 하나가, <만파식적>에 관한 재해석이다. 글쓴이는 화랑세기의 도움으로 만파식적이 가지고 있던 의문부분을 상당수 해결할 수 있었다.
삼국사기에는 효소왕(이홍, 이공)의 나이를 추측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신문왕5년 687년 원자가 태어났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효소왕(이홍,이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삼국유사> <만파식적>을 읽다 보면 이해가 되지 않고 미궁속으로 빠진다.

682년 임오(壬午) 5월 초하루(다른 책에는 천수天授 원년元年이라 했으나 잘못)에 해관(海官) 파진찬(波珍飡) 박숙청(朴夙淸)이 아뢰었다.  “동해 속에 있는 작은 산 하나가 물에 떠서 감은사를 향해 오는데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합니다.” 

일연은 <삼국사기>를 읽고 <삼국사기>에서 일부러 빼버린 이야기나 삼국사기가 흘려버린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유사>를 작성했다. 또한, <삼국사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주석을 달면서 다른 이설도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하고 있다. 

일연은 <삼국유사><만파식적>의 사건이 682년 임오년 5월 또는 천수 원년(690)년때 일어난 사건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한 682년 5월과 690년 5월중 일연은 <만파식적>이야기가 682년 5월에 있었던 일이라고 하고 있다.  이로써 687년 이홍(이공)이라고 추측되는 <원자>를 이홍(효소왕)으로 보고 있지 않음이 확실해 진다.

그렇지 않다면, 682년이면 이홍(이공)이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데 690년이 틀렸다고 확신에 차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682년 이미 이홍(이공)이 생존하고 있었고  <이홍>이 682년에 이미 태자가 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일연은 <만파식적>을 빌어서 <삼국사기> 신문왕 때의 기록이 잘못되었다고 언급하고 있지도 않다. 이는 후대의 많은 이들이 <원자>가 꼭 맏아들이란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를 읽다 보면 꼭 원자 = 장자가 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원자=맏아들이라고 하지도 않고 있다. 장자 = 원자 일 수 도 있지만, 원자 =/= 장자가 아닌 경우도 많다. 장자는 장자라고 별도로 기록하고 있다. 이를 구별하지 못한 후학들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원자 = 장자 의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버지 문무대왕(文武大王)을 위하여 동해(東海) 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세웠다(절 안에 있는 기록에는 이렇게 말했다.  문무왕文武王이 왜병倭兵을 진압하고자 이 절을 처음 창건創建했는데 끝내지 못하고 죽어 바다의 용龍이 되었다.  그 아들 신문왕神文王이 왕위王位에 올라 개요開耀 2년(682)에 공사를 끝냈다.  금당金堂 뜰 아래에 동쪽을 향해서 구멍을 하나 뚫어 두었으니 용龍이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대개 유언遺言으로 유골遺骨을 간직해 둔 곳은 대왕암大王岩이고, 절 이름은 감은사感恩寺이다.  뒤에 용龍이 나타난 것을 본 곳을 이견대利見臺라고 했다).

 그렇다면, 감은사는 문무왕(661년~681년 7월)때 공사를 시작해서 682년 5월 이전에 완공되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신문왕이 동해쪽의 관리가 보고한 내용을 살피려 감은사에 갔다. 거북모양의 바위섬에서 있는 용으로 부터 <검은옥대>와 대나무를 가지고 오는 도중 이공태자가 성을 지키고 있다가 말을 타고, 신문왕을 맞이 했다는 이야기다. 

이공(효소) = 원자 = 장자 라는 확신을 가지고 <삼국사기>의 기록을 재정립해 보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만파식적>의 이야기가 어느때 발생한 때인지를  추적한다면
 

682년 5월 금성이 달을 침입했다. <만파식적> 1 <삼국유사>
687년 2월 원자가 태어났다. (맏아들 이공이 태어났다)
690년 5월 만파식적  2 <삼국유사>
691년 3월 왕자 이공이 태자가 되다.  5살(만 3살)
692년 봄 대나무가 말랐다. 7월 신문왕이 죽음, 효소(이공)의 나이는 6살(만 4살 몇개월)에 왕위에 올랐다.


<만파식적 1> 일연은 <삼국유사>는 태어나지도 않은 이공(효소)왕을 태자로 등장시켜 690년이 아닌 682년 5월이라고 하고 있다. 일연은 <원자>와 이공은 다른 인물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연>은 <김흠돌반란사건>을 염두해 두고 <만파식적>을  이야기한것 같다. 반란으로 민심이 어수선한 것을 <만파식적>으로 일시에 해소시켰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일연은 690년의 <만파식적 2>의 이설을 배격하고 있다.

보다 합리적인해석은 이공(효소왕)이 태자였고 이설인 천수원년(690년)설을 따르면 이공이 태자가 되기 전이니 천수년간중 691~693년 사이가 되어야하고, 그런데 신문왕은 692년 7월에 죽음으로  691년 5월 ~692년 5월사이에 있었던 일이 된다.

좀더 그 시기를 줄인다면, <삼국사기> 신문왕 12년 (692년) 봄 기사에 <대나무가 말랐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만파식적>의 대나무와 연결이 되는내용이다.. 봄에 대나무가 말랐을 정도면 봄가뭄이 심했다고 할수 있는데 그렇다면 단순히 봄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심했다라고 기록하면 되었을 것인데도 <대나무가 말랐다>라고만 기록하고 있다.

제14대 유리왕(儒理(禮)王) 때 이서국(伊西國) 사람들이 금성(金城)을 공격해 왔다.  신라에서도 크게 군사를 동원했으나 오랫동안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이상한 군사가 와서 신라군을 도왔는데 그들은 모두 댓잎을 귀에 꽂고 있었다.  이들은 신라 군사와 힘을 합해서 적을 격파했다.  그러나 적군이 물러간 뒤에는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댓잎만이 미추왕의 능 앞에 쌓여 있을 뿐이었다.  그제야 선왕(先王)이 음(陰)으로 도와 나라에 공을 세웠다는 것을 알았다.  이리하여 그 능을 죽현능(竹現陵)이라고 불렀다. - 삼국유사 죽현능

신라에서 대나무의 상징은 김씨계의 첫 왕인 <김미추>를 상징한다. 김미추가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서고국이 경주를 침입할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죽엽군들이 나타나 위기의 신라를 구원한다. 그리고 조사를 해보니 <미추릉>의 주위에 있던 대나무 잎들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죽엽군은 <김미추>가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서 보낸 <음병>이라고 믿었고, 미추릉을 <죽현릉>이라고 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이처럼 대나무는 <신라>에서는 신성시 하는 신물 중에 하나이다. 그러니 692년 봄 <대나무가 말랐다>라는 이야기는 단순한 대나무가 아닌, <김미추릉>에 있던 대나무가 말랐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미추릉에 있던 대나무가 말랐다는 것은 곧 신라를 지탱해주던 김미추계에 이상이 발생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만파식적>에 2개의 대나무가 낮에는 둘로 갈라지고, 밤에는 하나가 되어 바람이 불고, 어둠이 밀려왔다고 했으니, 신라의 변고를 말하고 2개의 세력이 충돌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만파식적>과 <삼국사기>
692년 봄 <대나무가 말랐다>는 신문왕 말년에 신라왕실의 혼란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692년 신문왕 말년 이런 혼란을 <만파식적>으로 잠재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공태자가 6살에 신문왕이 궁을 비운틈에 왕궁을 지키고, 말을 몰아서 왕을 영접하고, 검은옥대에 주렁주렁 달린 옥들이 용이라고 하였다고 하고 있다. 여전히 석연치 않는 부분은 만 4살 조금 넘은 나이에 왕을 대신해서 왕성을 지키고, 신문왕이 모르던 사실을 알려줄 정도의 지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대다수 나이가 어린왕자가 왕위에 오르면 어린왕의 모후가 섭정을 한다. 그리고 섭정을 하는 모후(태후)의 기록이 왕의 기록으로 남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이공태자의 기록도 이공의 모후인 신목(왕후)의 행동이 아닐까?

신목은 요석공주의 소생으로 설총의 누이로 추측되는 인물이다. 설총에게 <검은옥대>와 <만파식적>에 관한 이야기를 미리 듣고 신문왕에 이야기를 했을 수 있지 않을까? 이는 이공이 687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기록을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추측한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신문왕과 <이공>태자에 관한 이야기라면 어찌 될까?

미궁속에 빠지게하는 <원자>== <장자>라는 올가미를 풀어버린다면..

합리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은 687년 2월 태어났다는 <원자>가 이공태자일 필요성도 없고 <원자> = /= <장자> 라면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일연도 <원자>=이공(효소)라고 하지 않았다.

신목이 신문왕비가 되는 나이를 보면 아버지 김흠운이 655년 정월에 사망할 시점을 신목의 출생 한때라고 하더라도 신문왕 즉위년(681년)이면 27세가 된다. 그런데 33살 이상인 687년에 첫번째 원자를 낳았다? 그리고 흥광(성덕왕)을 낳고, 728년 당나라에 숙위하는 김사종을 낳았다?

신라사회에는 13~15세 정도면 결혼하고 15~6세면 자식 한둘은 낳고 있다, 그런데 유독 신목만 당시 조혼이 성행한 신라사회에서 첫결혼은 28세에 한다? 신목이 과부가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상황이거나 신문왕과 이전부터 사실혼 (후비)관계에 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또한, <삼국유사> 일연은 <만파식적>에서 682년 5월에 있었거나 690년 (천수 원년) 두가지 설을 전하고 있다.

<일연>은 <김흠돌반란사건>을 염두해 두고 <만파식적1>을  이야기한 것 같다. 반란으로 민심이 어수선한 것을 이듬해 5월 수습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682년 5월 태백이 달을 침입했다고 했으니 682년 5월 전해져온 이야기 일 수 있다.

또한, 일연은 왕자와 태자를 혼동해서 소급적용하는 경우가 있고, 김춘추와 김문희와의 관계에서 처럼 선덕공주가 분명한데도 선덕여왕이 춘추와 문희를 연결시켰다고 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 만파식적 1> 682년 5월과 <만파식적 2> 690년 ~ 692년 5월 <만파식적 2>설도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을 보다 합리적으로 해석한다면 687년에 태어난 <원자>를 꼭 <이홍>이라고 볼 필요가 없다. 원자란 꼭 맏아들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일연 또한  687년 <원자>가 태어났음을 알고 서도 690년 <만파식적 2설>  682년 <만파식적 1설> 설>이 맞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일연 또한 원자 = 장자라고 보지 않았을 뿐더러, 원자 = 이공(효소왕)이라고 보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이공(효소왕)은 신문왕이 즉위한 후 682년에 충분히 말을 타고 돌아 다닐수 있고, 왕이 성을 비운사이 성을 지킬정도이며, 왕에게 지혜를 알려줄 정도의 나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늦은 나이라고 해도 10세이상은 되었다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가지 삼국사기도 원자 = 이공(효소)로 보지 않고 있다는 정황 증거가 발견된다. <삼국사기>는 단순히 689년 <왕자 이홍을 태자로 삼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여러 왕자 중 이홍을 태자로 삼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로써 원자가 꼭 이홍(이공)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된다.

삼국사기에서 모든 원자들이 장자인 경우가 없다. 또한, 장자와 원자를 구별해서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원자>==<장자>의 설은 장자가 원자가 될 수도 있지만 꼭 동일하지는 않는 것이다. 정비소생 이거나 후비소생이라도 장자는 될 수 있다. <원자>란 <왕>과 정비인<왕비>의 소생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원자>란 적통을 이어갈 사람으로 해석하거나, 정식왕과 정식 왕비사이에 태어난 첫번째 왕자라고 한다면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신문왕이 왕이 된후 늙은 신목을 받아 들여 낳은 첫아이가 이공(효소)가 아니라는 또다른 증거가 있다.

<화랑세기>에는 <김흠돌>이 반란을 일으키는 여러 원인중의 하나를
정명태자(신문왕)와 신목사이에 이공(효소왕)이 태어나 태자비였던 흠돌의 딸이 배척되고 흠돌의 권력이 무너질것을 두려웠다고 하고 있다. 좀더 소상히 설명하면,

신목은 김흠운의 딸이다, 655년 아버지 김흠운이 죽자, 춘추(태종)가 손자인 소명태자에 시집을 보내려 했으나 소명태자가 655년 이전 어린 나이에 일찍 죽었다. 그런데 신목은 다른 곳에 시집가지 않고 소명태자의 제사를 주관하는 <소명제주>가 되어 자의왕후가 좋아했다고 한다. 그후 소명궁에 살고 있던 신목은 665년 태자가 된 정명(신문왕)태자와 눈이 맞아 <이공>을 낳았다고 한다.(15세 전후) 이때 자식이 없던 태자비 흠돌녀가 투기를 했다고 한다. 뒷배경이였던 문명태후가 죽은 후 김흠돌은 681년 7월 문무왕이 죽고 난후 8월 8일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반란에 실패해 김흠돌은 죽고, 흠돌녀는 정식 왕비도 되기전에 궁에서 축출 된다. <화랑세기>

이로서  문무에게는 정명(신문왕)의 형으로 추측되는 소명이 661~665년 사이 태자가 되었지만, 결혼을 약속한 소명을 두고 일찍죽었다. 665년 정명이 대신에 태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목은 결혼을 약속한 소명태자가 죽자 소명태자와 영혼결혼식을 하고 소명태자가 살고 있던 소명궁에서 생활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665년 이후 소명의 동생인 정명이 태자가 되자 정명과의 사이에 이공을 낳았다고 하겠다. 

이로써 이공(효소)는 빠르면 665년 이후에 태어났고 늦어도 문명태후가 죽기전에 태어났다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682년 5월 <만파식적 1>이 성립하려면 이공(효소)는 10세 초중반이 됨으로 666~672년생이 되어야 한다.

683년 5월 신목이 신문왕의 정비인 (부인)이 되어 687년 2월에 낳은 첫아들이 <원자>가 되는 것이다.
이를 연표로 작성하면 다음과  같다.

626년 문무(법민) 생
654년 문무(법민) 28세 왕자
655년 1월 문무(법민) 29세 입태자
655년 신목태후 아버지 김흠운 사망 및 신목태후 출생(?)
661년 7월 문무 36세 왕
661년 ~ 665년 소명태자 사망, 신목 소명제주 <화랑세기>
665년 신문(정명) 입태자
666~672년 신문(정명)/신목의 장자 효소(이공) 태어남 <유사><만파식적 1><화랑세기>
666~680년 신문(정명)/신목의 장자 효소(이공) 태어남, <만파식적 2><화랑세기>
681년 7월 문무(법민) 56세 사망
681년 7월 신문(정명) 왕위 계승
681년 8월 김흠돌 반란
682년 5월 만파식적 사건 1 <삼국유사> 효소(이공,이홍) (10세~17세)
683년 5월 신목 신문왕의 부인이 됨
687년 2월 원자 태어남
690년 5월 만파식적 사건 2 <삼국유사>
691년 신문왕 11년 봄 3월 1일에 왕자 이홍(理洪)을 태자로 봉하였다.
692년 7월 신문(정명)왕 죽음
692년 7월 효소(이공,이홍) 왕위계승 (10세~27세), <만파식적 1> 이면 (20세~27세)
700년 6월 이찬 경영 반란
700년 7월 신목태후 사망  <황복사 3층석탑 은합>
702년 7월 성덕(흥광,융기) 신문왕 2자 왕위계승
728년 성덕왕 27년 7월 왕의 동생 김사종(3자~4자) 당나라 숙위

682년 5월 <만파식적 1> 이공(효소왕)은 (10세~17세)전후가 되고, 692년 5월 <만파식적 2> 이공(효소왕)은  (20세~27세)전후가 된다. 그러므로 <삼국유사>의 <만파식적>은 <1><2>에 상관없이 합리적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687년 2월에 태어난 <원자>를 단지 맏아들로 해석해 <원자>==이공(효소왕)이니 이공(효소왕)은 692년 6세에 왕위를 계승했을 것이다. 그러니 <신목>태후가 섭정을 하였을 것이라 추측하였고, 700년 7월에 신목태후가 죽은 줄도 모르고 702년 이공(효소왕)을 대신에 왕위에 오른 동생 흥광(성덕)왕도 692년 죽은 신문왕의 유복자일 가능성이 있으니 11살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신목태후가 섭정하였을 것이라 주장하는 사태까지 발전하였다.

<삼국유사>의 만파식적 이야기를 가공의 이야기 알고 있었으며 단지 690년 설을 추종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화랑세기를 인용하는 많은 사람들도 <원자>를 <이공(효소왕)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를 자신의 틀속에 갇어 놓고 자신의 입맛(가설)에 맞지 않는다 하여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화랑세기> 중 하나 또는 모두가 잘못되었다고 하였다.

좀더 <원자>를 확대 해석한다면 <원자>는 신문왕과 신목의 아들인 태자 이홍(효소왕)의 아들일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 다음 기록을 본다면 이때 원자는 효소왕의 아들이 아닌 효소왕의 동생인 성덕왕일 가능성이 많다.

<삼국사기>에는
702년 성덕왕 즉위년 "신문왕의 둘째 아들이고 효소왕의 친동생이다. 효소왕이 죽고 아들이 없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세웠다."

흥광(성덕왕) 이 687년에 태어난 <원자>라면, 702년 성덕왕은 왕위에 오를때 나이가 16세로 추측 된다.
 

728년 성덕왕 27년(728) 가을 7월에 왕의 아우 김사종(金嗣宗)을 당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아울러 글을 올려 자제들의 국학(國學) 입학을 청하니, 조칙으로 이를 허락하고 김사종에게 과의(果毅)의 관작을 주고 머물러 숙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하지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화랑세기> 공히 받아 들이거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으로도 충분히 <만파식적>의 시기를 680년이던 690년 이후 이던지 상관없이 이공(효소)가 만파식적에 중추적인 등장인물이 될려면 충분한 나이가 되어야함을 예측할 수 있다.

이로 미루어 이공(효소왕)은 22세~27세에 왕위를 계승하였고, 흥광(성덕) 또한 692년 7월 죽은 신문왕의 유복자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원자>가 흥광(성덕왕)이라면, 655년 이전 출생인 신목은 688년 이면 34살~39살 이상으로 728년에 당나라에 숙위하러간 성덕왕의 동생 김사종은 신문, 신목사이에 태어났던 신문과 다른 후비 사이에 태어났던 688년~693년 사이에 태어나야 한다.

만약, <원자>가 사종이라면 흥광은 신문왕이 왕이 되는 681년 7월 이전 이미 태어났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고, 22세 전후에 왕위에 올랐음을 예측할 수도 있다.

글쓴이는 아직까지 화랑세기를 사서로서 인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화랑세기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보다는 후대에 만들어진 위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이유는 삼국사기와 사국유사의 기록중 한쪽에 손을 들어주는게 아니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사이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고, 삼국사기도 맞고, 삼국유사도 맞다는 류의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이설이 있는데 둘다 맞는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앞서 만들어 졌다는 사서가 후대 사서를 본듯한 내용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만파식적이나 선덕여왕시기 등 화랑세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으로 해석 불가능한 역사적인 미스터리를 해결하는데 충분한 동기부여를 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드라마 선덕여왕은 화랑세기를 재조명 하는 데 커다란 공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화랑세기를 위서로 인정하는 많은 분들은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인해서 위서 화랑세기가 사서로 인정되는게 달갑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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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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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rubygarden.tistory.com BlogIcon 루비™ 2009.12.31 17: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해는 선덕여왕 드라마로 인해 많이 즐거웠고
    갓쉰동님의 해박하신 포스팅으로 인해 제 식견이 무지 넓어졋던 한해였답니다.
    이제 한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네요..
    2009년 한해 동안 많은 사랑 베풀어주신 것 감사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최고로 멋진 2010년 되세요~~!!

  3. Favicon of http://phsminister@hanmail.net BlogIcon 청석 2010.01.01 0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밝아오는 경인년 새해에 더욱 님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 오길 바라며 더욱 님의 블로 그가 번성하길 기원합니다.
    그동안 저에게 관심 보여준 님 에게 새해 인사드립니다.

  4. Favicon of http://blog.daum.net/bada0101 BlogIcon 영혼울림 2010.01.01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대단하십니다.
    늘 깊은 지식과 분석 접근력에 감동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5.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10.01.02 2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 블로그 대박나시고, 원하시는 소원들이 성취되시길 기원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6. Favicon of http://silim1009.tistory.com BlogIcon 시림 (詩琳) 2010.01.08 17: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빛....
    태어나
    길 걸었으며
    그 곳에
    내 희망
    나에 꿈 이루었지

    행복은 곁에 있어요
    사랑으로...
    기다림에

  7.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BlogIcon 펨께 2010.01.08 1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잘 지내시는지요?
    좋은 주말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8.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niches/wet.php BlogIcon click here 2012.07.14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듯이 한가하게 주식이야기와 남북정

  9. Favicon of http://www.free-brazzers.com/ BlogIcon Brazzers membership 2012.09.08 0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특이한 명함의 아이디어는 관심을 끌 것입니다. 나 같은 경우는 음악 카드 많은 아주 좋은 그리고 어둠 속에서 몇도 빛이 아르 보았다. 기회로 카드를 볼 수와없는 의무 있습니다.

  10. Favicon of http://www.saucylondon.com/ BlogIcon london escort 2012.09.19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녹색 지붕 시도는 매우 큰 수 있습니다. 날씨가 더운 때 그들은 차가운 공기를 제공합니다.

  11. Favicon of http://rocville.com/?p=News BlogIcon Albert 2012.10.01 2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륙에서 최고 수준의 팀이 진출하는 것이다. 월드컵에 준비를 철저히 하고 상대팀에 대한 분석을 철저히 하였는지와 당일의 컨디션에 따

  12. Favicon of http://jaysxlist.com/index.php?montreal_massage___massage_montreal BlogIcon montreal massage parlor 2012.10.03 1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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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Favicon of http://theblogtest.com/ BlogIcon theblogtest 2012.10.03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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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Favicon of http://www.fashion-pascher.org/20-polo-franklin-marshall BlogIcon Polo franklin marshall 2012.10.24 2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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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Favicon of http://iweed.info/blogs/viewstory/11570 BlogIcon midland weather alert radio wr-120ez 2012.11.19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

  17. Favicon of http://brianloemy.livejournal.com/1047.html BlogIcon 5 gallon water bottle holder 2012.12.19 1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가적으로 누가 집회를 주관했는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또한, 집회시간에서도 시위자수가 달라 집니다. 동원이냐 자발적이냐에 따라 해당숫자는 천양지차가 발생합니다.

  18. Favicon of http://www.agathaandlouiseblog.com/2007/07/flexpetz-shared.html BlogIcon invisible electric dog fence 2012.12.26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화랑세기는 새로운 역사물을 만들 때 소설의 영감을 받기도 한다.

  19. Favicon of http://finance.abc11.com/abclocal.wtvd/news/read/22360046/survival BlogIcon survival radio transceiver 2013.01.05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20. Favicon of http://www.bestmattress-reviews.org/adjustable-bed-reviews-reveal-best-brands/ BlogIcon adjustable bed reviews 2013.04.03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21. Favicon of http://www.bestmattress-reviews.org/adjustable-bed-reviews-reveal-best-brands/ BlogIcon adjustable bed reviews 2013.04.03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 53회에서는 별다른 에피소드가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대사는 의자에 앉아서 노닥거리는 걸로 소일하고 있다. 54회에는 백제의 계백(최원영)이 등장한다고 한다. 이유는 없다. 계백이 백제 멸망기에 유신과 국운을 걸고 황산벌에서 전투를 하였다는 것 말고, 640년 전 후 계백이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김유신은 너무나 뻔한 스토리인 이순신이 전장에서 전공을 세웠지만 원균의 모략으로 백의종군을 하였듯이 전공을 세운 김유신이 비담의 농간으로 백의종군한다는 드라마 패러디 수준의 이야기를 엮어갈 모양이다. 좋게 말하면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들은 사극을 만들때 역사책은 안보고 기존의 사극드라마 패러디 하기에 급급하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기존 사극 빼끼기 수준의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선덕여왕 즉위 전후 10년사이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알면 한가히 농담따먹기 수준의 사극은 안 봐도 되지 않을까 한다. 내실을 기해달라는 뜻이다.

선덕여왕은 즉위부터 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미실에 의한, 미실을 위한, 미실 만을 위한 드라마 였으니 번외편 선덕여왕에 힘이 실리지 않는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순신의 백의종군?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위 계승권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칠숙은 진평왕이 덕만을 차기 왕위에 올리려는 생각을 간파하고 석품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진평왕은 칠숙의 난을 사전에 감지하여 칠숙의 난을 조기에 진압하였다.


그런데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는 칠숙이 난을 일으킬것이란 사전모의를 17세 풍월주인 염장이 알고, 덕만에게 알렸고, 덕만과 염장이 칠숙과 석품의 난을 진압하는데 혁혁한 공로가 있었다고 전한다. 삼국사기에서 진평왕이 사전에 칠숙의 난이 있음을 감지한건 염장과 덕만의 진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염장은 극중에서 악역인 보종을 업어 키우듯이 하였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염장이 등장할 수 없는 것이다. 악역이 아닌 보종을 악역으로 만들었는데, 그와 가장 가까이 지낸 염장이 덕만의 편이였다는 설정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생과 비슷한 연배인 적대적인 대남보를 미생의 아들로 만드는 설정인데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지만 말이다. 대남보를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진평왕의 말년에 관한 기록은 참으로 애매한 부분이 있다. 김부식은 <고기>의 기록을 토대로 진평왕이 632년 정월에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진평왕의 죽음에는 다른 이설도 있다 당서에는 칠숙의 난이 있은 직후 631년 죽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일연은 삼국사기에 대한 이설을 가장 많이 기록하고 있다. 어찌보면 일연은 삼국사기 딴지맨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일연은 삼국유사 왕력편에 아주 재미 있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덕만에게는 왕위에 오르기전에 남편이 있었고, 남편의 이름은 <음갈문왕>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삼국사기에는 632년 정월 부터 17년간 재위하였지만, 삼국유사는 634년 연호를 인평으로 바꾸고 647년 1월 8일경 비담이 난을 일으키는 바로 전후 덕만이 죽을때까지 14년간 재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진평왕 말년인 625년 전후에 덕만의 어미인 마야황후가 죽고, 계모로 승만황후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승만에 대한 기록은 더이상 발견할 수 없지만, <화랑세기>에는 진평왕 말년에 황후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것을 알 수 있다. 덕만과 비슷한 나이 어린 승만은 아들을 낳고, 승만 자신의 아들로 하여금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을 만들려고 하였지만, 승만의 아들은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해서 죽어 버렸다.

이때, 덕만의 대부였으며, 남편인 용춘과 용수는 승만의 미움을 받아 지방으로 좌천되고 629년 낭비성 전투의 공적으로 서라벌 정치 중심에 발을 내딛는다.

정상적인 드라마라면 칠숙과 미천한 6부 귀족 출신인 손승만과 덕만의 왕위 쟁탈전을 그려야 합리적이다. 또한, 왕족이고 황후였던 미실이 등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진골, 성골의 허구는 6부 귀족 출신인 황후 손씨에 의해서 여지없이 깨지는 만큼 중요인물이다. 어쩌면 미실은 손 승만황후에 비하면 욕심도 없었을 것이다.

아들을 잃은 승만왕후와 왕위 승계에 불만을 품은 이찬 칠숙이 동상이몽이나 내연의 관계를 유지하였을 수도 있다. 631년 이찬 칠숙의 난은 승만왕후와 칠숙의 협력에 의해서 일어나지 않았을까하는 의심을 하게 되는것이다. 칠숙과 관련기사

2009/10/2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의난은 칠숙의난? 사실은
2009/10/2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의난이 칠숙의난이면, 김춘추 문희 결혼은 없다.
2009/07/26 -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가 위서가 아니라고 한다면,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덕만과 545~548년 생인 미실은 같은세대가 아니다. 미실은 614년 사도태후가 죽은 해를 전후에 죽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덕만은 여러 기록의 증거로 610년~615년 전후에 태어났을 것임으로 덕만의 할머니 진흥왕비인 사도태후와 미실은 영흥사에 들어가 비구니로 말년을 보냈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숙명적 라이벌로 그려진 덕만과 미실이 조우할 수 있는 때는 꼬꼬마 덕만과 70살 전후 미실이 아주 늙었을 때  잠깐 보지 않았을까 한다. 미실이 언제 죽었는지 알고 싶다면

2009/11/0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고현정 하차로 본 미실 최후 미실의 난, 비담(김남길) 존재감 사라진 진짜 이유?
2009/10/12 - [역사이야기] - 삼국사기, 화랑세기 기록으로 본 선덕여왕 미실(고현정) 언제 하차해야 하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 살펴보면 덕만은 631년 5월 칠숙이 난을 진압한 이후 진평왕을 대신해서 섭정을 하였고, 진평왕이 칠숙의 난 즈음해서 죽고 상중에 왕위에 오르지 않고, 김정일 처럼 유흔 통치를 하며, 일연이 말한대로 634년 정식으로 왕위에 올랐을 수도 있다.

덕만이 왕위에 오르면서 가정 먼저 한일은 대신 을제를 국정전반을 총괄하게하고, 여름 가뭄이 있자 가을 추수철에 사자를 지방에 보내서 굶주린 백성들에게 구휼미를 주고, 혼자 살아갈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진휼하였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대신 을제는 용춘과 더불어 덕만의 남편이 되는 인물이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진평왕의 대등으로 나오는 신구가 했던 인물이다.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여름 5월부터 가물다가 6월에 이르러서야 비가 왔다. 겨울 10월에 사자(使者)를 보내 나라 안의 홀아비와 홀어미, 부모없는 어린 아이와 늙어 자식없는 사람 그리고 혼자 힘으로 살아갈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문하고 진휼하였다.

또한, 삼국유사에 의하면 분황사와 영묘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또한,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부에 의하면 이때 선덕여왕 2년 첨성대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첨성대가 612년 이후 바로 만든것으로 나오지만, 632년 즈음에 만들었다는 뜻이고, 공주시절이 아닌 덕만이 왕일때 만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또한, 덕만의 가장 치적은 불사를 하고, 백성들에게 조세를 감면하고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서 진휼한 것을 알 수 있다. 덕만이 죽고 시호가 <선덕>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2009/09/03 - [역사이야기] - 경주 첨성대는 선덕여왕 2년에 세워졌다. -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편
2009/09/02 - [역사이야기] - 덕만은 첨성대로 신권을 버렸을까? 사실은


633년에는 신궁에 직접 나아가 제사를 지내고, 죄인들을 사면하고, 주.군의 세금도 면제해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경주에 지진도 있었고, 5월에는 백제가 서쪽 변방을 침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천신황녀의 지위를 버렸다고 했지만, 덕만은 신라 고유의 종교인 신도와 불교를 융합하여 새로운 신라를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해에는 백제가 변방을 침범하였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이 전쟁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하고 군의 주축이 된 서현이나 10화랑들의 활약이 있어야 한다.

634년 덕만이 왕이 된 3년에는  전왕인 아버지 진평이 사용하던 연호를 <건복>에서 <인평>으로 바꾸고 직접적인 신국의 황제가 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삼국유사 일연은 이해를 기준으로 14년간 치세하였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635년에는 또다시 이찬 수품과 용수 혹은 용춘을 주군에 내려보내 백성들의 살림을 살피고 진휼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알천 이승효가 비담 김남길에 이어서 신종플루에 걸려 집중 격리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이는 이들과 같이 연기한 배우들 또한 위험하다는 뜻이다. 드라마가 산으로 들로 바다로 가버린 점이 있으니 이참에 극중리얼리티나 극의 완성도를 위해서 휴지기를 가지고, 좀 더 완성도 높은 극본을 보기를 바란다.
또한, 알천이나 비담의 예처럼 선덕여왕의 배우들은 한가지 이상 선덕여왕을 찍으면서 병을 얻었을 것이다. 이는 당일치기 쪽대본으로 극을 만드는데 기인한 점이 많다. 그러니 처음 유신보다 20살은 많은 알천이 선덕여왕 극중에 왜 나와야 하는지 조차 잃어버리고, 나침판 없이 항해하듯 하는 것이다.

어쨌든, 미실의 난중에 가장 극에서 비중있게 나와야 하는 비담의 예처럼 알천의 극중 비중이 떨어진 이유가 신종플루 같지는 않다. 선덕여왕에서 미실을 위한 미실 드라마를 찍은 것처럼, 비담의 선덕여왕을 찍고 있다는 것이 알천의 예에서도 금방 들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덕만 시기 가장 화려한 생을 보낸 알천이 병풍이 되다


636년에는 병이 있었지만, 의술과 기도로도 효험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이해에는 선덕여왕의 <지기삼사>의 하나인 옥문곡에 두꺼비가 울어서 백제의 침입을 알고 알천과 필탄을 보내 백제가 독산성에 숨어 있던 백제군을 섬멸한다.

637년에는 알천은 대장군의 반열이 오른다. 대장군은 3.4등위만 누릴수 있는 병과에서는 최고등위에 해당한다. 알천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유신이 대장군이 되기 훨씬 이전에 대장군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실질적으로 덕만의 최측근은 비담 아니고 유신도 아니고 용춘.용수와 알천, 염장 그리고 너무 일찍 조로환자로 만든 을제였다

알천의 전공을 빼앗은 유신과 생각없는 덕만


638년 선덕왕 7년 11월 고구려가 칠중성을 공략할 때 대장군 알천은 군사를 이끌고 가서 칠중성 벌판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때도 유신은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알천 대신 있지도 않은 전쟁에서 승리한 유신이 돌아와서 비담의 정적으로 팽당하는 꼴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비담과 알력싸움을 하는 대상이 있다면 칠중성에서 대승을 하고 돌아온 알천과 비담이 정치쌈을 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그동안 병풍배우로 전락한 알천과 필탄이 활약할 수 있는 토대를 박살내고 왜 알천과 필탄이 드라마에 등장하여야 하는지도 모르게 병풍배우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아무런 활약도 없이 그저 도망가는 왜인의 조총의 유탄에 맞고 죽었다는 것 만큼 어설픈 설정이고, 백전백승의 이순신이 꼬랑지를 내리고 도망다녔다는 것 만큼 황당하다.  왜 드라마 선덕여왕에 알천과 필탄이 극에 나와야 하는지도 모를 정도가 되어 버렸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덕만의 내치는 잘 하였지만, 국방에 관한 외치는 하지 못하고 수세에 몰렸다는 이유로 덕만을 높이 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이미 백제로 부터 핍박을 받고 서쪽 변경을 빼앗기는 곤혹을 치렸었다. 그러니 덕만이 단순히 여인이기 때문에 외침이 많았다는 설은 낭설에 가깝다고 할것이다. 또한, 알천의 예가 보여주듯이 고구려의 침입에 적극적으로 보복전쟁도 수행하고 있다.

왜산 수노?


덕만이 왕이 되고 한일이라고는 비담의 농간에 놀아나 복야회를 치고, 자신의 충신인 유신을 버리는 것 말고 한일이 없다. 사실 복야회가 등장한다면 복야운동을 한 왜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 왜인들이 등장해야 하지만 한명의 왜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복야회나 신라의 미실이나 신라 병사들은 왜국에서 수입한 <수노>를 가지고 열심히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신라의 첨단 무기인 수노를 <왜>에서 수입하는 드라마라는 설정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수노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09/0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당.일본 떨게한 신라 비밀병기?
2009/11/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고현정 미실 최후 자살 죽음장소, 대야성 선택이유? 수노(手弩)는 왜(일본)산 최고?

어찌되었던 덕만이 사람을 얻어 왕이 되고, 신진 세력을 키우는데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없다. 최소한 <대왕세종>처럼 사람을 키우고, 새롭운 선진물물을 받아들이고, 월천으로 대변되는 격물을 어떻게 만들고 하늘을 살폈는지는 보여주어야 하지만 어떠한 노력도 없다. 실제로 덕만은 신진세력을 키우기 위해서 당나라에 우리 신라 귀족가문의 자제를 당신 나라의 대학(?)에서 수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도 요청도 한다. 진평왕과 덕만시기에는 당나라 유학 전성시대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난에 이어서 642년 대야성 전투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642년 7월 백제는 대대적으로 신라를 침공해서 신라의 서쪽 40개성을 함락시킨다. 다음달 8월에 고구려와 연합해서 당으로 통하는 길목인 당항성을 침공할 기세를 보여준다. 백제의 윤충은 경남 합천 대야성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대야성은 백제의 침공에서 끝물이였다. 대야성이 중요하게 된 이유는 김춘추의 여식인 고타소가 죽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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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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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kmc10314.tistory.com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1.24 14: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갓쉰동님 저하고 비슷한 생각 두가지를 하셨네요...
    그래도 알천이 진덕여왕때 상대등인데.. 오늘 두 마디 했고요.
    "춘추공께서 오셨습니다." / "폐하.... 인강전에..."

    그리고 이 시점에 계백이 왜 나오는지.....

    저는 원래 드라마는 드라마 / 역사는 역사로 보는 사람이긴한데요.
    진덕여왕을 넣지도 않고 계백을 넣는다는 것이 웃겨서요.
    진덕여왕은 나오야 하는 인물이고, 계백은 나오지 말아야 하는 인물인데....

    하기사 뭐 선덕여왕 제작진측에 역사대로 만들어줄 것을 기대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사극에 바라는 작은 소원이 있다면 그저 최소한 TV 시청에
    "15세 미만 관람불가 (솔까말 이거 누가 지킵니까? ㅋㅋ)" 대신에
    "이 드라마는 역사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극입니다. 실제 역사와는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라는 식의 자막을 까는 편이 더 현명할 듯 싶네요...

    그 점과 관련해서 트랙백하나 걸구가요 ㅋ

  3. Favicon of http://minjine.kr/story BlogIcon 뽀글 2009.11.24 15: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과 드라마는 확실히 차이가 있군요^^;; 저도 책으로 다시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알천에 대해서도 알아볼겸~^^

  4. Favicon of http://yim3204.tistory.com BlogIcon 분홍별장미 2009.11.24 15: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요즘 너무 바빠서 미실죽기전편까지만 보았네요..
    한번 몰아서 봐야겠어요 ^^;;;;

  5. Favicon of https://rubygarden.tistory.com BlogIcon 루비™ 2009.11.24 15: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와서 선덕여왕 보는게 시들막해졌어요.
    얼토당토 않은 내용이 너무나 많으니..
    아무리 99%를 픽션으로 만들었더라도 너무 심하다 싶어서요.
    하긴...뭐 애초에 덕만과 유신 러브라인 설정한 것 부터가
    드라마가 산으로 갈 운명을 타고 났는지도...
    언제나 도움 되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6. Favicon of http://blog.daum.net/hls3790 BlogIcon 옥이 2009.11.24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두...요새 산으로 간다는 생각을 합니다...그래서 선덕여왕만 보던 옥이가 이제 선덕여왕 안보려고요...
    미실이 죽은뒤...정말 이상해집니다..
    행복한 저녁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1.24 2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실때부터도 이상했었음.. 워낙 고현정에 집중이 되서 안보인거지요.. 이제 대들보가 없어졌으니.. 잘보이는 것임.. ㅋㅋ

  7. Favicon of http://rindarinda.tistory.com BlogIcon rinda 2009.11.24 17: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로는 알천이 대단한 일을 했군요.
    드라마에서는 그저 꽃미남 중 한 사람일 뿐이니 참;;
    허구가 심하게 많아지니 점점 챙겨볼 생각이 없어집니다ㅎㅎ

  8. Favicon of https://sapientis.tistory.com BlogIcon 백두 대간 2009.11.24 18: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참 할 말이 없네요, 이젠.

  9. Favicon of http://shinlucky.tistory.com BlogIcon shinlucky 2009.11.24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픽션은 픽션이고,
    그나저나 이렇게 진짜 사실과 비교해보는게 전 더 재미있습니다. ^_^

  10. Favicon of https://pplz.tistory.com BlogIcon 좋은사람들 2009.11.24 2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이 요즘 예전이랑 달라진걸 부쩍 느끼네요.~ 줏대가 없어졌어요~

  11. 갓쉰동님 광팬 2009.11.25 0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순신의 백의종군장면은 비극적이고 처절한데 김유신의 백의종군은 폭소만 나오네요 ㅎㅎ 역사상의 선덕여왕이 드라마에서처럼 치졸하고 생각없고 자기편만 챙기는 작은 그릇의 여인이라면 왜 드라마로 만들었는지 의문이네요. 드라마가 사실이라면 선덕여왕은 우리가 그닥 존경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고 드라마가 거짓이라면 작가는 저승에서 선덕여왕에게 크게 혼날겁니다^^;; 뭐... 작가의 농간 덕분에 미실이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저따위 설정으로나마 알 수 있었지만요...

  12. 사람들의 착각 2009.11.25 0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유신이 활약한 시기는 대야성이 깨진 시기인데.....ㅋㅋ
    다들 착각하고 있더군요.
    대야성함락 전후로 나누어 서현, 용춘. 용수, 알천, 염장, 을제, 필탄이 주요인사였고
    대야성함락후에 유신, 임종, 술종, 호림이 새로 가담했죠.
    그런데 사람들이 선덕여왕치세 처음부터 김유신이 활약하는 줄 알고 있더군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1.25 1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유신의 활약은 628년 낭비성 전트부터지요.. 이때 김유신의 존재가 부각되기도 하지만, 선덕여왕에선 나오지도 않았음..

  13. 산으로 가다가 2009.11.25 0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은 다시 바다로 가고 있더군요.
    스토리는 둘째치고라도...
    아직도 이요원씨의 발연기는 계속 되더이다.
    여왕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허겁지겁하는 모습이 너무 짜증납니다.
    어쩔줄 몰라서 고민하는 것이 얼굴에 다 나오고...
    카리스마가 전혀 없어요.

    미실의 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최소한 평균치는 해야 할 것 아닙니까?

  14. Favicon of http://killerich.iptime.org BlogIcon killerich 2009.11.25 0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저도 드라마봐야겠어요^^..;;
    선덕여왕 아직까지 한번도 안 봤어요..;; 외계인같죠TT

  15.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montreal florist 2009.11.25 0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설도 재밌다니깐여

  16.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11.25 06: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가 갑자기 맥이 빠졌어요.
    마치 삼국지에 유비,관우, 장비가 없는 느낌이네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17. Favicon of https://leeesann.tistory.com BlogIcon pennpenn 2009.11.25 09: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전문지식에 탄복하고 갑니다.

  18. Favicon of http://daum.net/jmk BlogIcon 하-하 2009.11.25 1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공부 잘 하였습니다.님께서 역사의 잔실을 알려주어 가마사합니다.

  19. Favicon of http://daum.net/jmk BlogIcon 하-하 2009.11.25 1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덕 등장은 시청률 흥미 없을테고, 완전 시청률/흥미땜에 계백 등장시킨것응 좋은데, 어찌 계백 캐릭터를 그리 어리숙하게 맹그러 버렸을까? 기막힌 발상이네.

  20. Favicon of https://smilecap.tistory.com BlogIcon 스마일맨 민석 2009.11.25 14: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아직 못봤는데...
    한번 봐야겠어요 ㅎ

  21. 은루히 2009.12.02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요원씨의 연기력도 문제 겠지만
    제일 큰 문제는 제작진 이라고 말하고 싶으나
    그냥 전 닥치고 볼렵니다...(먼산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2.02 01: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살펴보면 죽은자들 천국입니다.. 산자들보다는.. ㅋㅋ

      이요원은 저는 그정도면 선방했다고 봐용.. 가장 문제는 작가이고 그다음은 감독과 제작자지요..

      저는 개콘 보듯이 봅니당.. 너무 웃겨성.. ㅋㅋ

성골 남자의 씨가 마른 이유는 진평왕이 딸만을 낳았는데, 그 후 왕위를 이을 왕제가 없었다. 그런데 정말 그러할까? 삼국사기에는 진평왕 원년 왕위에 오른 후 진평왕의 동모제(?)인 동생 둘을 갈문왕에 봉하고 있다. 복승의 딸이고 진평왕의 비이며, 덕만과 천명의 어미인 마야부인 또한 성골이다. 그렇다면 복승도 성골이라는 의미다. 진평왕은 어린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진평왕의 동생들에게는 남자 아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춘추가 왕이 되기전에 왕의 우선 순위는 알천이였다. 알천이 나이가 많아, 춘추에 왕위를 양보하게 되었다. 실제는 유신계와 춘추의 어미인 천명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정말 진골위에 성골은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를 하면 천만에 만만의 콩떡이 되시겠다. 이는 후대에 만들어진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그리고 지금까지 나온 고고학 유물이나 기록 어디에도 <성골>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진골>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사학을 전공하는 자들이 성골, 진골을 나누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런데 이들의 성골과 진골을 나누는 기준이 서로 다르다.

어떤이는 왕족과 왕족간의 근친혼을 성골이라고하고 귀족과의 결혼을 하게 되면 성골에서 진골로 떨어진다(족강)고 한다. 물론, 신라 중기 이후 후대로 넘어가면 근친혼이 사라지기는 한다. 그렇다고 성골이 씨가 마르고 진골만이 남게 되겠는가? 어찌 되었던 왕족과 왕족의 결혼은 계속 되고 있는데 말이다.  

성골과 진골이 있다면, 그 기준은 간단명료해야 한다. 그런데 전공자 마다, 분류가 다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를 성골과 진골을 구이 나누고자 하는 이유가 나누기를 좋아하고, 분류하기를 좋아하는 학자적인(?) 학구열일까? 아니면 성골, 진골의 분류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았기 때문일까?  

글쓴이의 견해는 성골이 진골이고, 진골이 성골이라는 생각이다. 춘추는 삼국 중 백제를 굴복시킨 첫 왕이고 그의 아들인 문무왕때 어찌되었던 백제와 고구려를 굴복시켰다. 신라로 볼때는 새로운 시대의 만든이다. 그러니 당대에 이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또한, 춘추를 이은 문무나 신문왕은 기존질서와 이전 왕대와 차별화를 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도 국민의 정부, 문민정부, 참여정부 등 1공화국, 2공화국, 3공화국, 5공, 6공을 나누듯이 말이다. 우리가 시대를 구분하고자 하듯이 당대나 후대 고려사람들의 관점에서 분류하고 싶은 것이다. 신라를 나눌때 상대, 중대, 후대로 나누기도 한다. 또는 삼한일통이전과 이후로 나누기도 한다. 성골과 진골을 나누는 일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조심히 들여다 보면, 성골이 진골이요, 왕족임을 알 수 있다. 성골진골의 분류체계가 확립된 시기는 춘추(태종)시기가 아닌 고려시대의 분류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이를 제시하고자 한다.  

국인이 말하다.  국인(나라사람)은 누구를 말하는가?  

8년(654) 봄 3월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진덕(眞德)이라 하고 사량부(沙梁部)에 장사지냈다.  

國人謂始祖赫居世至眞德二十八王 謂之聖骨 自武烈至末王 謂之眞骨 唐令狐澄新羅記曰 『其國王族 謂之第一骨 餘貴族第二骨』

나라 사람들은 시조 혁거세로부터 진덕왕까지의 28왕을 일컬어 성골(聖骨)이라 하고, 무열왕부터 마지막 왕까지를 일컬어 진골(眞骨)이라 하였다. 당나라 영호징(令狐澄)의 신라기(新羅記)에 말하기를 『그 나라의 왕족은 제1골(第一骨)이라 하고 나머지 귀족은 제2골(第二骨)이라 한다.』- <삼국사기> 28대 진덕왕 말년

지금까지 "진덕왕까지 28왕을 일컬어 성골이라고 하고, 무열왕 부터 마지막 왕까지를 진골이라고 하였다"는 기준을 넘어 설 수 없다. 이 기준을 넘어서는 분류는 존재하면 안된다. 이는 하나의 선언이고, 기준이고, 명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국인>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보아야 한다. 그냥 읽으면 신라의 사람으로 읽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일반적인 국인론이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진덕>왕 사후에 기록된 <국인>에 대해서 알아보자.  

나라 사람들은 시조 혁거세로부터 진덕왕까지의 28왕을 일컬어 성골(聖骨)이라 하고, 무열왕부터 마지막 왕까지를 일컬어 진골(眞骨)이라 하였다. 

이말의 주체가 되는 <나라사람들 :<국인(國人)>은 진덕왕 말년 당시의 나라사람들이 될 수 없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다음에 기술된 "무열왕부터 마지막 왕까지를 일컬어 진골이라고 한다."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다시 말하면 신라가 망한후 고려 <김부식>시기의 학자층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 초기 이승만 대통령시기 사람들이 현재 대통령이 노무현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허황된 말이다. 현재의 사람은 과거 이승만, 박정희, 최규화,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을 말할 수 있지만, 그 당시의 사람은 미래가 어찌되었는지 알수 없는 것과 같다.  

이처럼 여기서 말하는 <국인>이란 신라가 끝나고, 고려시대 김부식때의 사람들 좁히면 당시 귀족일단이나 식자층이 그렇게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더욱 좁히면 신라 출신자들이 하는 이야기이다. 또한, 김부식은 당시의 진덕왕때 사람들이나 신라사람들이 이야기 했다고 하지 않고 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국인>을 신라 진덕왕시기의 사람들로 인식을 함으로서 비져진 코미디이다.  

영호징은 말한다. 성골, 진골은 없다 

또한, 많은 이들이 영호징의 <신라기>를 성골, 진골이 있었음을 증명하려 한다. 하지만 영호징이 말한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나라 영호징(令狐澄)의 신라기(新羅記)에 말하기를 『그 나라의 왕족은 제1골(第一骨)이라 하고 나머지 귀족은 제2골(第二骨)이라 한다.』其國王族 謂之第一骨 餘貴族第二骨』

왕족은 1골이고, 귀족은 2골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왕족은 성골이라는 말이 없다. 왕족은 그저 1골이고 귀족은 2골이라고 한다. 하지만, 성골, 진골이 있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1골은 성골이고, 2골은 진골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진골출신 춘추가 왕이 되었으니 진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일단 왕이 되었다면, 그 일족은 귀족이 아닌 왕족이 되는 것이다. 또한, 그의 후손들도 제 1골인 왕족이 되는 것이다. 왕족이 귀족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춘추는 진지왕의 손자인 왕족으로 왕이 된것이다. 유신 또한 신라왕족 출신이다.

신라는 남자중심이 아닌 남.여 공히 그들이 결혼한 상대는 왕족으로 편입되고 있다. 또한, 여 왕족에 장가간 많은 사람들이 왕이 된다. 신라는 왕족들에게서는 남.여 차별적이 요소가 전혀 없다. 오히려 사위로 왕이된 석탈해나 김미추 시대의 진정한 왕은 왕후로 기록된 여왕이였지 않는가 하는 의심이 든다.  

또한, 영호징은 통일신라 이후의 사람이다. 그러니 영호징이 말한 제1골은 진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2골인 귀족은 신라의 6두품을 이르며 6부족(씨성)에 해당할 뿐이다. 그래서 신라는 왕족(진골)과 6두품에 복식이나 집이나 가마 등 각 계급과 직제에 맞춘 규정이 있었다.  

성스런 진골만 있을 뿐이다.  

만약, 춘추 이전이 성골이라면, 왕족 출신도 아닌 석탈해, 김미추가 왕이 되었다. 그런데 석탈해는 성골이고, 왕족인 김춘추는 진골이라는 말이 되는데, 이는 논리적 모순이다. 그렇지만 김씨계 왕들을 성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또한,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삼국사기에 김부식이 말한 <성골>을 제외하고, <성골>이라는 단어는 더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진골>출신은 수 없이 등장하지만 말이다. 하물며 있지도 않은 성골이 진골의 상위계급이라니 있을 수 없다.  

단지, '성스러운 진골(聖而 .. 眞骨)'만 있을 뿐이다.

 만약, 성골 진골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분들은 알려주기 바란다. 글쓴이는 아직 이를 정확히 구분하는 이를 본적이 없다. 춘추 이전 28왕 그들 스스로 성골은 있지 않다고 증명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있다면 단지 시대 구분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을 뿐이다.

 어찌 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안은 <뼈대>가 있는 집안이라는 말을 한다. 이 또한 신라시대부터 내려온 뼈속깊이 새겨진 흔적이 아닐까?

그렇다면 성골은 없다는 말인가? 왕즉성조(골)

성골은 당대의 왕의 자제를 말한다. 진평왕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그들이 성골이고, 딸들만 있다면 그 공주들이 성골이다. 그럼 진평왕은 성골일까? 왕보다 성스런 존재가 있을 수 있는가? 왕위에 왕없다는 말이다. 그 무엇보다도 존귀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진평왕은 성골로써 왕위에 올랐을까? 아니다. 단지 진흥왕의 손자로 왕위에 올랐다. 진흥왕시기에는 진평(백정)은 성골이였다. 하지만, 진지(금륜)이 왕이 되었을때는 제1골인 진골(왕족)이였다. 진평(백정)은 진지왕의 방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진지왕이 되는 순간 방계가 되는 것이다. 진지왕이 폐위되고, 진평왕이 왕이 되었을때 비로서 성조(聖朝)이자 성골이 되었다.

진지왕의 후손인 용수.용춘 또한 진지왕의 폐위여부와는 상관없이 진평왕이 왕이 되는 순간, 진평왕의 방계인 왕족(진골)이 되는 것이다.

춘추도 진골(왕족:1골)로 왕위에 올라 성골(성조)가 되었다. 그러니 법민도 아버지 춘추가 왕이 되므로 해서 왕족(진골)에서 성골이 된것이다.

만약, 당대 왕이 성조이자 성골이 아니고, 기존 통설에 따라 진지왕의 폐위되어 용춘.용수가 족강이 되었다면,  실성왕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눌지왕의 후손들은 전부 진골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유는 눌지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된이는 자비왕이다. 자비왕은 실성왕의 딸의 아들로써 왕이 된다. 기존 통설의 폐위되면 족강되어 진골이 된다는 설의 최대 헛점이 되는 것이다. 누구도 지비왕부터 성골이 아닌 진골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지증왕은 소지왕의 뒤를  이어 왕위 되었다. 그런데 지증왕은 소지왕의 6촌에 불과하다. 지증왕은 단지 왕족으로 왕이 된것이다. 법흥왕의 뒤를 이어 왕이된 진흥왕 조차도 왕족으로 왕이 된것이다. 진흥왕은 법홍왕의 조카이자 외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성골.진골을 복잡하게 만든건 기존통설을 만든자들이다. 신라를 요상하고 이상한 나라로 만든이들은 신라가 아닌 현대 신라사를 연구하는 자들이 만든것이다. 신라는 당시에 있던 다른 나라와 같이 보통의 국가에 지나지 않았다. 족친혼은 신라만의 고유한 것도 아니고, 동양의 몇나라를 제외하면 일상화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성골(성조)은 당대왕과 자제이고, 왕의 적통이 이동하면 성골이였던 자들은 자동으로 왕족이 되는 것이다. 이는 어느 왕조나 마찬가지이고, 같은 왕조내에서나 다른 나라의 역사에도 마찬가지이다. 진골은 왕족의 다른말일 뿐이다.


그래서 덕만은 진평왕의 딸로 성조황고가 된것이다. 그래서 일연은 삼국유사에 진평왕시기 <성골남진>이 되었다고 한것이고, 삼국사기는 진덕(승만)에 성골이 없다고 한것이다. 덕만과 진덕(승만)은 그저 무자식이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논란이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는 진평왕에 성골남진이 되지 않았고 덕만은 많은 왕자와 많은 공주를 물리치고 왕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덕만에게는 당시의 왕자와 공주보다도 왕이 될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실성왕, 눌지왕, 자비왕, 지증왕, 진평왕이던, 선덕왕이던, 진지왕이던, 김춘추왕이던 어느왕이나 왕이 되기전 성골로써 왕이 되었건, 진골로써 왕이 되었건 상관없이 계급위에 있는 존재하는 성조이자 성골이다. 그러니 <왕즉성조>이다. 그렇지 않다면 왕이 일개 왕족(진골)과 동등하다는 말인가? 그러면서 김춘추시기 이후에 왕권이 강화되었다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기존 통설에 따르면 일개 왕족(진골)과 동등한 왕이 말이다.

요즘 화랑세기를 <사서>로 인정하는 자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화랑세기를 사서로 인정하는 하는 자들도 기존 통설에 벗어 나지 못하고 <성골><진골>의 환상에 빠져 있는 자들이 있다. 도대체 화랑세기를 사서로 인정하면서 성골이 진골의 상위개념이고, 폐위되면 그의 후손은 족강이 되어 진골이 된다거나, 궁을 벗어나면 성골의 지위를 잃게 된다는 황당한 설을 내 놓기도 한다. 화랑세기는 성골.진골을 나누지 않고 있다.

용수.용춘을 두고 춘추가 전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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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백회의에 난입한 춘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춘추의 실질적인 생부인 용춘을 두고, 춘추의 생부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다음 2009/09/21 - [역사이야기] - 천명만 알 수 있는 김춘추의 생부(용수?,용춘?)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춘추가 10살로 전면에 등장해서 덕만과 왕위다툼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무지의 소산이다. 용수와 용춘은 612~3년 전후인 드라마 시점에서 누구도 누리지 못한 권력을 쥐고 있다. 그런데 젖비린내나는 춘추가 그의 아버지를 뒤로 하고 전면에서 "내가 왕이로 소이다"라거나 "비담을 죽여버리겠다"고 공언을 한다는 생각이 끔찍하다.

또한, 당시 왕위 승계서열상 춘추는 열손가락으로 치면 등위권에도 들지 못한다. 2진법으로 샌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2진법으로 숫자를 샌다면 10손가락은 1024개까지 숫자를 샐수 있다) 한마디로 춘추가 화백회의 중간에 등장한다는 발상자체가 이승만 정권때 이명박이나 전두환이나 박정희가 나와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무슨 선거고 투표냐? 내가 왕(대통령)이라고  하는 꼬라지와 같다.

물론, 드라마를 아무 생각없이 보면 극적인것 처럼 보이긴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가 미실을 통해서 공언한것 처럼 "백성(시청자)는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을 뿐만 아니고 버거워 할 뿐이다." 또한 마약에 취한것 처럼 사실을 알려주면 어린아이 처럼 오히려 성질부터 부린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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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potatobook.tistory.com/ BlogIcon 감자꿈 2009.10.08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으면서도 복잡한 구성을 매번 이렇게 정리하시는 걸 보면
    항상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저는 추천과 댓글 3위 안에 들었습니다. ^^

  3. 목만치 2009.10.08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학도가 되려고 생각 중이였다가 요새 고민중이였는데 요새 매일 님의 글을 보고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서 이제는 꼭 하고 싶어졌어요 고마워요 ㅋ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8 12: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앗 배고픈 직종을 선택하시려 하다니 제가 님의 밥줄을 끊어 놓는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그냥 취미생활로 하시는게 좋을 것 같은데요.. 아니면 제2전공정도로..

      추천은 계속 하고 있지요? ㅋㅋ
      글쓴이인 저는 추천이 밥입니당.. ㅋㅋㅋ

  4.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10.08 1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춘추가 골품제도를 부정하는 말을 하길래 그 골품때문에 머리가 아프더라구요~
    갓쉰동님 글 읽고 골품 조금 정리하고 갑니다. ^^

  5.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BlogIcon 모과 2009.10.08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잊었던 신라의 역사를 상기 시켜 주었습니다.
    왕족(진골) ...ㅎㅎ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8 1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양반, 왕족이렇게 구분한 것과 같지요. 조선시대에..
      조선이 하늘에서 떨어진 용가라 통뼈가 아니기 때문에 신라부터 있었던 계급적인 구성을 이어 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도 자신의 조상이 뼈(골)이 있는 집안이는 말이 전해지고 있었던거지요. 요런것이 신라의 흔적이지요..

  6. Favicon of https://leeesann.tistory.com BlogIcon pennpenn 2009.10.08 15: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고~
    골치아프네요~
    이를 어찌 정리하셨는지 대단한 역사학자이십니다.

  7. 상록수 2009.10.08 16: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시원한 글..재미 있습니다.
    춘추가 덕만과 싸워서 왕이 되겠다하니 너무 한다 싶더군요.
    드라마가 나이를 초월한것이~~...
    좋은 글 고맙습니당.

  8. Favicon of https://sapientis.tistory.com BlogIcon 백두 대간 2009.10.08 17: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쓰예요, 나이쓰~~~ ^^

  9. lethe4me 2009.10.08 1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고, 새로운 이야기였습니다..^^
    결국 1골과 2골의 이름보다 진골과 성골의 이름을 택하셨네요.

    화랑세기를 사서로 어느정도로만 인정하신다면,
    약간은 화랑세기와는 벗어나는 듯,
    하지만, 유일하게 믿을 근거로 가지는 삼국사기와 유사로 판단할땐,
    설득력있고, 재미있는 이야기인거 같아요..^^

    (진골, 성골이 없었다는 점에서는 절대 공감합니다..^^)

    진골 성골을 이야기하면서 꼭나와야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죠..^^
    모계와 부계..
    그것도 한번 정리해주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8 22: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도 지롤을 해서용. ㅋㅋ 이미 알고 있는 단어를 쓴것이고.. 표안에 친절히 그려 넣었지용.. 왕을 계급에 추가하는 멍청이들이 있는데 어쩌겠어용..

  10. 아.. 헷갈려요 2009.10.08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교에서 배운 국사랑 달라서 헷갈려요.
    학교에선 춘추가 왕이 된 이후로, 귀족들이 서로 왕이 되려고 왕을 죽이고,
    왕이 그 후로 자주 교체되었는데.. 그 이유가 진골이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춘추가 보여줌으로서
    이제껏 성골이 왕이었기에 그저 바라만 봐야했던 진골귀족들이 자기들이 왕이 되려고 음모를 꾸며서,
    왕이 자주 교체되었다는데... 그럼 그건 그 국사선생님이 잘못가르쳐 준건가요?
    김춘추 이후로 왕이 자주 교체된 것은 신라 말기라서 그랬던 건가요?
    가르쳐주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8 2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연구하지 않고, 남의 글을 그냥 외워서 그래용.. 선생이..
      외부의 적이 없으면 반란이 자주 일어나지요.. 배부르면 딴생각을 하듯이.. 투쟁의 대상이 내부로 향하는게 일반적이닌까요..

      춘추 이후 왕이 자주 바뀌지도 않았어용..
      춘추이후 654년 26(?) 인데.. 약 935년 망할때까지.. 평균년으로 하면 약 15년 정도는 되는데용.. 말왕과 최소의 시작왕을 빼면 적은 년수는 아니지요.. 오히려 이전왕으 재위기간이 비정상적이라고 보시는게..

  11. Favicon of http://smallstory.tistory.com BlogIcon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10.08 23: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갓쉰동 님이시네요. 잘 보고 갑니다.
    !

  12. Favicon of http://myeurope.tistory.com BlogIcon 유리-MyEurope 2009.10.09 0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친혼이 저 시대 전까지 있었다면...유럽보다는 일찍 멈춘 결과가 되는건가요?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9 1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4촌밖은 아직도 결혼하지 않나요?

      고려시대까지는 근친혼은 계속 지속된것으로 생각되며..
      그당시에도 근친혼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던것 같습니당.. 진흥왕도 그렇고.. 양도도 그렇고,..

  13. 이리닷컴 2009.10.09 1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란 소통하는게 역사라고 배웠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그 소통은 아무래도 당시의 사람들의 이해력과 원하는 포인트를 맞혀가는게 그게 현재로서의
    역사적 사실인 즉 성골 진골 6두품 5두품 이렇게 구분 지었지 않나 생각듭니다

  14. 갓쉰동 최고 2009.10.09 2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역사학도를 꿈꾸지만 님의 역사학과를 보는 시선은 불편합니다.
    밥벌이가 힘든 학문이니 취미로 삼거나 제2의 전공으로 삼아라.
    물론 경제적으로 봤을때 역사학과나 철학과같은 기초학문을 바탕으로하는 학과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적성에 맞지않는 다른학과를 선택하고 전공하는것도 옳지않습니다.
    뿐만아니라 님의 논리대로 경제성을 중시한다면 우리나라에는 법학 의학 경영학 등 일부 실용학문의 전공자들만히 가득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초학문은 부실하게 되며 님과같은 분들이 참고할 연구서적을 비롯한 자료들도 부족해 지고 나아가 우리나라의 학문의 근본이 흔들리겠죠.
    경제성에 근거해서 다른사람의 전공을 비난하는것은 옳지 않다고봅니다. 그리고 오히려 님과같은 분들의 포스팅은 자칫 상아탑에만 갇혀있다고 생각될수있는 기초학문들의 실용화를 위해서 좋은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 건 밥을 먹고살아야 해요.. 늘 배고픈 학문이라고 말을 하잖아요. 그들 스스로.. 그것도 그 학계에서는 제일 잘나가는 사람들 조차 그렇다면 대다수는 정말 힘들어요.. 학계라도 진출하는 극히 일부조차도요..

      요즘은 모든 학문이 서로 영향을 주고, 믹스되고 있어용.. 의학과 사학, 고고학, 천문학, 등과도 교류가 되고요. 물리학과. 재료학이 역사와 연관이되기도 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겁니다.. 그러니 정통역사학을 연구하지 않지 않더라도 충분히 역사와 연관해서 연구를 할수 있습니다. 그것도 학문을 하는 사람이야기고,, 모두 그 학과를 전공한다고 해서. 그 곳에서 밥벌이는 못해요.. 그점을 간과하지 말라는 뜻이였습니다.

      그러니 제2 전공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각오가 되어 있다면 제가 2전공을 하라고 해도, 전공을 할겁니다. 다만, 다른식으로 역사를 연구할 수 도 있는 방법이 있다는 선택을 주는 겁니다.



      님이 예로 제시한 법학이나 의학이나 경영학도 역사를 연구할 수는 있다는 거지요. 온리 역사학이 아니여도 된다는 뜻입니다..

  15. Favicon of http://f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09 2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님은 단순히 역사를 취미의 하나로 생각합니다만 저는 역사를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닌 경제 정치 과학 예술등 전분야에 뿌리이며 나아가 우리사회를 바꿀수도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삼국유사나 사기의 글귀를 풀어 옛날에 이렜었다가 아닌 진짜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나아가 미래를 계획하는 또 모든 학문과 사회의 뿌리로서의 역할 말입니다.

  16. 갓쉰동 최고 2009.10.10 1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요즘은 골품제자체를 진성골제로 나누어서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교과서의 골품제 다음이 골품제 설명에서는요. 관한 네용입니다.
    신라에는 혈연에 따라 사회적 제약이 가해지는 골품제도가 있었다. 골품은 신라사회에서 개인의 사회활동과 정치활동의 범위까지 엄격히 제한하였다. 이하 중략 - 국사교과서 197~198쪽

    이처럼 골품제를 설명할때 보편적으로는 신분제를 뜻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56쪽에 있는 태종무열왕은 최초의 진골왕으로의 부분은 왕실내의 진 성골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서 주장하는 느낌이 드네요.

    그리고 화백회의의 경우 지금의 의회제가 아닌 초기 영국식 의회제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귀족 중심에 왕의 탄핵권도 갖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위엣분이 들으신 수업내용은 왕이 자주 바뀌었다기 보다는 내물왕계와 무열왕계의 왕위 다툼이 치열했다는 설명일겁니다. 사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골과 품을 나눠서 봅니당.. 물론,골이 우선하지만요.. 그거야 지금도 마찬가지지요.. 지금도 계급사회로 가고 있거든요..

  1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8. Favicon of http://litorowley.typepad.com/blog/2012/04/greatest-in-survival-products-and-s..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arizona 2012.11.01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9. Favicon of http://patapete.wordpress.com/tag/cats/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canada 2012.11.06 1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자 아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춘추가 왕이 되기전에 왕의 우선 순위는 알천이였다

  20. Favicon of http://stephenthedog.com/?m=200707 BlogIcon underground electric dog fence 2012.12.22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 기능을 갖춘 스크린 캡쳐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프로그램 없이도 웹페이지를 가장 빠르

  21. Favicon of http://survivalfoods.livejournal.com/ BlogIcon family food survival kits 2013.01.02 16: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는 삼한일통이전과 이후로 나누기도 한다. 성골과 진골을 나누는 일환도 이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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