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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공주의 남자를 비롯해서 계백에서도 기본적인 팩트를 무시하는 작가의 자의적인 망상 사극이 철찬리에 방송중이다.


드라마 <계백>에서 당나라 사신으로 공손사가 등장한다.


공손사는 631년 봄 당나라 광주자사였지만, 고구려 사신으로 간다. 수나라와 대결한 고구려가 수나라를 물리치고 경관을 설치였었다. 고구려에 간 공손사는 경관을 없애 줄 것을 청원하고 고구려는 당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경관해체작업에 동의를 하고 없애준다.


이런 공손사가 백제 사신으로 오면서 자신이 한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냥 공손사의 말은 스쳐 지나면 된다. 단지, 계백에서 현재 시제가 언제인지만 알면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드라마 계백의 시제는 631년이라고 친절히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백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몇 살 정도인지 대충 나오게 된다.


의자왕(왕자)는 삼국유사를 기준으로 600년 전후에 출생한 것으로 나오니 30대 중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 계백과 은고는 612년 선화왕후가 죽은 시점에 태어났으니 631년이면 딱 20살이 된다.


그런데 이때 의자왕과 연문진의 딸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태어난다. 드라마 계백에서 의자왕이 낳은 첫 아들일 것이다. 의자왕은 첫 아들을 631년에 낳았다? 라고 믿는다면 대단한 착각에 빠지지 시작한다.


왜냐하면 의자왕의 3째 아들로 추측되는 부여융은 자신의 흔적을 묘지명에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부여융은 660년 백제가 망하자 의자왕과 왕비와 여러 왕자들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갔다가 웅진도독이 되어 백제부흥운동을 진압한다. 백제 부흥운동 진압에 실패한 부여융은 다시 당나라로 돌아간다. 당나라는 고구려가 망한 후 요동지역 건안성에 웅진도독부를 만들고 웅진도독에 백제왕으로 부여융을 세운다.


백제 멸망 후 백제는 신라와 (발해)말갈에 망했다고 한 기록이 증명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부여융은 682는 장안에서 죽고 북망산에 묻히고 묘지명을 남긴다. 묘지명에 의하면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나 682년에 죽어 68세에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부여융이 첫째아들인지 셋째 아들인지는 아직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부여효, 부여융, 부여태 중 둘째가 부여태라는 것만 알 수가 있다. 하지만, 드라마 계백에서 615년에 태어난 부여융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다.

 

문제는 631년경에 의자의 첫아들이 태어났다면 근본적으로 부여융은 아비, 어미가 누군지 모르는 자식이 된다. 부여융에게 아버지 어머니를 찾아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30살이 다되어서 의자가 첫 번째 결혼한다는 것도 황망한데 이미 태어난 부여융을 16년이 지난 후 태어나게 만든 작가의 황당한 창작의 자유는 지켜줄 의무가 없다. 이는 비판받아 마땅한 부분이다.


 

드라마 계백에서는 계백이나 교기나 의자나 내시나 면도하고 나온다. 이들의 나이를 알 수가 없다. 배우들에게 수염을 다는 일은 시간적으로 오래 걸린다. 더불어 여배우와 키스신은 여배우에게는 곤욕이다. 털이 난 남자들과 키스를 해본 여성이라면 쉬이 알 수가 있을 것이다.


특히 요즘 드라마 키스신은 직접접촉을 하고 비비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의 실제 키스와는 다르게 드라마 키스신을 찍을 때 다양한 화면을 잡는다. 멀리서 줌인, 줌아웃, 바디컷, 롱컷, 여배우 화면, 남자화면 등 요란스럽다. 이때 마다 여배우는 수염과 전쟁을 해야 한다.


 

한번 키스신을 찍고 나면 여배우들 입술과 얼굴은 피부트러블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충분히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어짜피 고증과는 하등 상관없는 의상을 입고, 역사와는 무관한 계백과 의자가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여배우를 위해서 남자배우 수염이 없다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사실 글쓴이는 계백에서 양복을 입고 나오고 쫄쫄이를 입고 나오던 상관하지 않는다. 말 대신에 스포츠카를 타고나오던 BMW를 타고 나오거나 탱크를 몰고 나오던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를 재조명, 재해석했다거나 재미를 위해서 있는 기록을 바꾸었다고 당당히 말은 하지 않았음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드라마 계백에서 교기는 계백과 흥수의 계략에 말려들어서 왕의 지위에서 서민으로 강등이 된다. 그리고 사택비는 위제단을 동원해서 무왕을 암살한다. 무왕은 계백의 도움으로 살아나 국상으로 위장되어 상여를 움직이는 와중에 사택비 일당을 일망타진한다.

 


 

631년 역모에 실패한 사택비와 교기와 사택적덕은 당당하게 궁을 나선다. 그렇다면 사택비와 교기와 사택적덕은 어디로 갔을까? 의자와 무왕에 의해서 살아남은 사택비와 교기가 추후 반란을 획책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문제는 드라마 계백에서 그냥 어물쩡 넘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다. 계백은 역사와 100% 무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교기와 의자왕의 모후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기록은 일본의 일본서기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교기와 교기 형제들이 반란을 시도하다 실패한 때는 의자가 왕이 된 후이다. 642년 정월(1월) 백제의 사신로 갔던 왜인은 왜에 들어가 백제에서 대란이 있었다 알린다. 조문사로 참석한 백제 사신은 백제에서 왕의 모후가 죽었고, 교기와 교기의 누이동생 들이 섬으로 추방되었다고 알려준다. 


642년 봄 정월, 백제에 사신으로 갔던 大仁 阿曇連比羅夫가 筑紫로부터 驛馬를 타고 달려와 “백제국이 천황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弔問使를 받들어 보냈는데, 저는 조문사를 따라 함께 筑紫國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장례식에 奉仕하고자 하여 혼자서 먼저 왔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는 지금 매우 어지럽습니다”라고 하였다. -일본서기 황극 원년


642년 2월, 금년 정월에 국왕의 어머니가 죽었고 또 아우 왕자 翹岐와 누이동생 4명, 內佐平 岐味 그리고 이름높은 사람 40여명이 섬으로 추방 되었습니다” -일본서기 황극 원년 2월



그런데 642년 봄 섬으로 쫓겨난 교기와 그의 가족들이 왜에 등장을 한다. 더불어 의자왕의 모후가 대란전후에 죽었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의자왕이 모후가 죽자 교기가 반란을 했던지, 아니면 교기 일행이 의자왕의 모후를 죽이고 반란을 시도 했을 지도 모른다.  반란에 실패한 교기는 왜로 쫓겨난다. 백제에서 섬은 왜를 뜻한다.  왜왕 황극은 642년 2월 12일 교기를 받아들인다.

  

642년 2월 12일 庚戌 翅岐를 阿曇山背連의 집에 안치하였다.


641년 3월 무왕이 죽자 태자 의자가 왕이 된다. 

의자왕(義慈王)은 무왕의 맏아들이다. 웅걸차고 용감하였으며 담력과 결단력이 있었다. 무왕이 재위 33년(632)에 태자로 삼았다. 어버이를 효성으로 섬기고 형제와는 우애가 있어서 당시에 해동증자(海東曾子)라고 불렀다. - 삼국사기 백제 무왕 0년


632년. 무왕 33년 三十三年 春正月 封元子義慈爲太子



위의 기록에서 의자왕은 무왕의 맏아들이라고 했지만, 약간의 해석상에 문제가 있다. 대부분 맏아들은 장자(長子)라고 한다. 하지만, 원문에는 원자(元子)라고 기술하고 있다.


원자와 장자는 엄연한 차이점이 있는 단어이다. 원자는 정통성이 있는 정비의 맏아들이나 당시까지 살아 있는 정비의 맏아들을 가르키는 경우이거나 태자가 되기 전 단계에서 정통성을 부여하는 아들을 뜻한다. 무조건 원자를 맏아들로 번역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어쨌든, 삼국사기에 의자왕은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와 우애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애가 깊었던 의자왕은 교기 일당을 참형하는 방법보다는 백제와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던 왜로 추방하는 것으로 난을 진압하는 것이다.


642년 2월에 왕은 주·군(州郡)을 순행하면서 위무하고 죄수를 살펴서 사형할 죄[死罪] 이외에는 모두 용서해 주었다. - 삼국사기 백제 의자왕 2년 642년 2월


난을 진압한 의자는 대대적인 사면을 행한다. 이 사면에는 반란에 가담한 세력도 있을 것이 자명하다.


위의 기록들에서 알 수 있듯이 639년에 사택비는 무왕을 위해서 미륵사 서탑을 만들고 사리봉안기를 쓴다. 사리봉안기에는 무왕의 무병장수를 빌고 있다.  639년에 무왕은 늙어 병들고, 힘이 없었음에 틀림이 없고, 태자 의자가 대신 정치를 하였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태자 의자가 641년 3월 무왕이 죽고 왕이 된후, 641년 11월 사택지적이 죽고, 왜에서는 이때  대란이 있었다고 말을 하고 있다. 642년 정월에 의자왕의 모후가 죽고, 교기를 비롯한 교기의 여자 형제들과 대신들이 섬(왜)으로 추방된다.
 
의자왕의 어머니는 최소한 642년 정월까지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사실이지 않는가? 삼국유사를 쓴 일연도 감히 선화공주와 무왕이 사랑했는지 알수가 없다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만, 많은 드라마에서 의자왕의 어머니로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로 그리고 있다.

더군다나 의자와 어머니인 사택비를 계모이고 적대적인 관계로 까지 그리고 있다. 너무 막나갔다는 생각을 감출수가 없다.

위의 여러정황 기록으로 의자왕의 어머니가 신라 선화공주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지만, 삼국사기에 의자왕의 어머니가 선화가 아님을 증거하는 또다른 결정적인 기록이 있다. 이는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겠다.

2011/09/20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2011/09/19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광개토태왕, 계백, 사극 문헌고증 철저히 파괴해야 시청률 오른다?
2011/09/17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단종복위 위해 불구대천원수인 이개 성삼문 등 사육신과 동침한다?
2011/09/17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적과동침 실패. 단종 죽인건 사육신 충신인가? 배신 아이콘인가?
2011/09/14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계백 백제 패망후 왜 건너가 천황 될지도?
2011/09/06 - [역사이야기] - 계백, 동명제 초혼관 의자, 교기와 흥수는 왜 왜색풍 옷을 입었나? 사실은
2011/09/05 - [역사이야기] - 광개토태왕, 광개토태왕이 없다. 사갈현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대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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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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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에 후에 의자왕의 처(왕비)가 되는 은고가 등장한다.


드라마 계백에서 은고는 612년 선화황후가 자살한 해에 태어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이해에 계백도 태어났다.


드라마 <계백>에서 계백은 은고를 사랑하고, 은고도 계백을 사랑한다. 계백의 아버지 무진은 사택비를 사랑하고, 사택비도 무진을 사랑했다. 하지만, 사택비는 사택적덕의 명에 의해서 무왕과 결혼한다.

 

마찬가지로 은고는 계백을 사랑했지만, 사택비의 명으로 의자왕의 후비가 되는 것으로 그리지 않을까 한다.


의자는 628년 가잠성 전쟁에서 공을 세운 후 연좌평의 딸과 결혼 한다.


계백이 황산벌 전투에 참가할 때 처.자식을 죽이고 출전한 이유가 밝혀지는 대목이다. 계백의 작가진은 계백이 처.자식을 쉽게 죽일 수 있었던 원인을 은고에서 찾는 듯하다. 계백에게는 사랑하는 이는 은고이지 처.자식은 아니었다.


사실 660년 7월 10일 황산벌 전투가 백제의 마지막 전쟁은 아니었다. 당나라 소정방이 이끈 수륙양군 13만명에 의해서 사비하에서 1차 패전을 당하여 수많은 군사들이 죽고 흐터졌고, 2차 사비성 전투에서 수만의 군인들이 전사를 하였다. 또한, 3차 웅진성에서 항복하기 까지 3일간의 기나긴 전투가 있었다.


어쨌든, 의자는 629년 결혼을 하여 첫부인을 맞이한 것으로 그리고 있고, 은고가 언제 의자와 결혼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재 드라마 설정 상 은고와 계백은 629년 18살이고 의자왕자와 교기는 30살 안팍이다. 


그런데 드라마 작가가 간과한 것이 있다. 태자 부여 융에 관한 것이다.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나 682년 68세의 나이로 복망산에 뭍힌다.


드라마 <계백>의 작가는 부여융이 첫부인 연씨의 소생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듯하다. 더불어 부여융은 당연히 은고의 자식도 아니다. 왜 <계백>의 작가는 부여풍을 죽이는 무리수를 두었을까? 단지 계백과 은고의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불어 부여융은 의자의 3번째 아들로 짐작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660년 태자는 부여효라고 말을 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정방이 왕과 태자 효(孝)·왕자 태(泰)·융(隆)·연(演) 및 대신과 장사(將士) 88명과 백성 12,807명을 당나라 서울[京師]로 보냈다. - 삼국사기 백제 660년


 

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소정방의 대탕백제비에는

 

그 왕(王) 부여의자(扶餘義慈) 및 태자(太子) 융(隆) 이외 왕자(王子) (餘)효(孝) 13인은 대수령(大首領) 대좌평(大佐平) 사탁천복(沙吒千福), 국변성(國辯成) 이하 700여 인과 함께 이미 궁궐에 들어가 있다가 모두 사로잡히니 -소정방 탕백제비




 11월 1일에 將軍 蘇定方 등이 사로잡은 百濟王 이하 太子 隆 등 여러 왕자 13명, 大佐平 沙澤千福·國辨成 이하 37명, 모두 50여 명을 朝堂에 바쳤다. 급히 인도하여 천자에게 나아가니, 천자는 은혜로운 칙명으로 보자마자 풀어주었다. - 660년 일본서기 제명 6년


[百濟王 義慈, 그 妻 恩古, 그 아들 隆 등, 그 신하 佐平 千福, 國辨成, 孫登 등 모두 50여 명이 가을 7월 13일에 蘇將軍에게 사로잡혀 唐에 보내졌다. 아마도 이것은 까닭 없이 무기를 들고 다닌 징험일 것이다].



기록하고 있고, 일본서기에도 소정방의 탕제비와 같이 태자가 융으로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에도 644년 의자왕 4년  “왕자 융(隆)을 태자로 삼고 크게 사면하였다.”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 부여융의 나이는 30살이었다.


의자왕에게는 여러 왕후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 된다.  백제에는 부인(夫人)을 왕후로 기록한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일본서기에는 백제가 망한 이유를 의자왕의 대부인(大夫人)이 권력을 농단했기 때문이라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자의 입을 빌려서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왜로 축출된 교기 일파의 입을 통해서 일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百濟가 스스로 망하였다. 임금의 大夫人이 요사스럽고 간사한 여자로, 무도하여 마음대로 국가의 권력을 빼앗고 훌륭하고 어진 신하들을 죽였기 때문에 이러한 화를 불렀다. 삼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삼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 하였다 - 660년 일본서기 제명 6년




일본서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659년 삼국사기 기록에도 보인다. “의자왕 19년(659) 봄 2월에 여러 마리의 여우가 궁궐 안으로 들어왔는데 흰여우 한 마리가 상좌평(上佐平)의 책상[書案] 위에 앉았다.”

대체적으로 여우는 여인으로 비정하여 흰여우는 늙은여인으로 비정되고 국정전반을 다루는 최고위칭인 상좌평의 책상에 앉았다는 뜻은 늙은 여우가 국정을 농단했다는 은유적인 표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인이 의자왕의 정비라고 할 수 있을까? 의자왕의 어머니는 아니였을까? 아니면 의자왕의 생모는 아니지만, 무왕의 정비였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왕의 어미는 <대왕대비> 또는 <대비>라 한다. 또는 태비나 태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대비가 왕의 생모일 필요는 없다.


의자왕의 생모는 642년  “금년 정월에 국왕의 어머니가 죽었고 또 아우 왕자 교기(翹岐)와 누이동생 4명, 內佐平 岐味 그리고 이름 높은 사람 40여명이 섬으로 추방 되었습니다”라며  일본서기 황극 1년 기록이 있다. 무왕 말년인 639년 미륵사 서탑의 황금사리장엄 봉안기에는 사택비가 무왕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면서 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보인다.


무왕이 늘그막에 사택비를 왕비로 얻었다면 국가의 권력을 빼앗고 어진 신하를 죽였다고 할 충분한 개연성 있는 이야기다. 현재 드라마 계백에서 나오는 사택비의 현신이 일본서기에 기록된 대부인의 모습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


어쨌든, 일본서기에만 나오고, 의자왕을 따라 당나라로 끌려간 의자왕의 처(왕비) <은고>는 660년 나이가 아주 어렸거나, 은고가 부여융의 어머니였다면 최소한 615년생인 30살 셋째 아들인 부여융을 644년에 태자로 만들 만큼 600년 전 후 태어난 의자왕과 비슷한 연배였을 것이다.


첫째 부여효와 둘째 부여태 그리고 백제부흥운동을 하던 부여풍(장) 등 의자왕에게는 좌평으로 임명된 서자만 41명이 있다. 그리고 그중 극히 일부인 13명의 왕자만 백제가 망한후 당나라로 끌려갔다. 나머지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  부여풍을 비롯한 몇명의 왕자들은 백제부흥운동을 위해서 왜로부터 귀국한다.


그런데 왜 드라마 <계백>에서 은고를 <계백>의 첫사랑으로 묘사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더불어 3째 아들인 부여융까지 없는 자식으로 치부하면서 의자왕자를 결혼하지 않은 미혼의 상태로 만들었는지도 이해가 안 된다.


만약, 국정을 농단한 대부인이 태비(무왕의 비)가 아닌 의자왕의 정비이거나 설령 은고였다고 한다면 어떻게 3째 아들인 부여융이 태자로 만들었을까? 궁금했을 것 같다. 아무리 요즘 사극이 역사파괴사극 전성시대라고 해도 말이다.
 


드라마 <계백>에서 은고가 계략을 꾸며 생구와 계백과 성충을 탈출시키려고 사비성 백성들에게 제갈량이 위기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는 풍등(일명:공명등) 삐라를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참으로 밤하늘에 아름다운 장면일수 있으나 너무 티가 나는 장면이 아닌가 한다.


풍등은 색종이로 만들었을 것이 분명한데 보기에는 색종이가 아닌 반짝반짝 빛에 반사되고 부풀은 모습은 종이로서는 도저히 나올수 없는 비닐봉다리의 향기가 난다. 특히 김유신의 연을 연상시키는 삐라연과 풍등을 이용하는데 풍등에 대해서 백성이나 장사치나 아무도 모른다는 설정은 어설프지 않을까?


풍등은 화재위험이 많은 물건이다. 제갈량이나 장자방(장량) 보다 머리 좋게 나오는 은고는 사비성을 몽땅 태워버리는 무서운 계책을 세웠거나 아무생각이 없는 불장난을 한 것이다.


30살이 다된 의자나 교기나 계백은 수염없는 내시들로 나오고, 동명제나 일반복식이 왜색풍 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2011/09/06 - [역사이야기] - 계백, 동명제 초혼관 의자, 교기와 흥수는 왜 왜색풍 옷을 입었나? 사실은

계백은 생구(포로)때부터 가죽신을 신고 나온다. 그것도 키높이 첨단 밑창굽 가죽신을 말이다. 어떤 나라 생구가 가죽신을 신었겠는가? 맨발이나 짚신을 신었다면 모를까?


어쨌든, 잃어버린 의자왕의 자식들을 찾아주고 싶은 심정이 가득하다. 작위를 받는 서자만 41명이면 의자왕에게는 얼마나 많은 자식들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계백>에서는 단 한명의 자식도 나오지 않는 게 가능하기나 하고, 손자 볼 나이에 총각행세가 가당키나 한가? 은고가 자식같은 계백과 사랑을 할수 있었을까?

2011/08/3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계백, 광개토태왕, 백동수 남주 수염없는 이유 키스신, 여배우 위한 배려인가?

 


나이 파괴, 역사파괴극은 <계백> 뿐만 아니다. 3사 공히 방송하고 있는 <무사 백동수>와 <공주의 남자>, <계백>, <광개토태왕> 등 주인공들의 나이를 파괴하고, 주인공과 주변인들은 수염 없는 내시들로 만들고, 죽은자들이 산자와 사랑에 빠지고, 아버지 세대와 사랑놀음에 싸움질도 하고 있다.
 
2011/09/0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찌질남 민폐 제작자 인증. 사육신 성삼문 단종 폐위 일등공신

2011/09/06 - [역사이야기] - 계백, 동명제 초혼관 의자, 교기와 흥수는 왜 왜색풍 옷을 입었나? 사실은
2011/09/05 - [역사이야기] - 광개토태왕, 광개토태왕이 없다. 사갈현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대표로?
2011/09/04 - [역사이야기] - 광개토태왕, 동북공정, 독도침탈보다 부끄러운 고구려 창조하기?
2011/09/03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종서 후손중 김승유 제외하고 절손되었을까? 사실은
2011/09/0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우사인 볼트 보다 빠른 세령공주 불가능에 도전하다?
2011/09/0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스토커 김승유가 죽어야 드라마가 산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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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arden0817.tistory.com BlogIcon garden0817 2011.09.07 07: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요즘 드라마를 안봐서 ㅎ
    아무튼 좋은하루되세요~

  2. Favicon of http://jobyoung.tistory.com BlogIcon 비오는 영동대교 2011.09.07 1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정보네요... 잘 읽고 갑니다

  3. Favicon of http://campusvt.com BlogIcon 원숭이 2012.01.02 0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는말이 고와야 오는말이 곱다

  4. Favicon of http://adamsfamilypainting.com BlogIcon 이청용 2012.01.07 0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5. Favicon of http://john.is-a-liberal.com BlogIcon 테일러 2012.04.05 2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속이고 있군요.

  6. Favicon of http://stevie-wonder.is-leet.com BlogIcon 오브리 2012.05.09 0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가 안갑니다.

  7. Favicon of http://undermybed.endofinternet.org BlogIcon 릴리안 2012.05.11 0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유대인 음식만 먹습니다.

  8.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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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드라마 작가가 간과한 것이 있다. 태자 부여 융에 관한 것이다.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나 682년 68세의 나이로 복망산에 뭍힌다.

  12. Favicon of http://kimmyfresvo.blog.com/2012/04/24/office-emergency-kits-should-the-unimag.. BlogIcon food barstow ca 2012.12.25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식을 쉽게 죽일 수 있었던 원인을 은고에서 찾는 듯하다. 계백에게는 사랑하는 이는 은고이지 처.자식은 아니었다.

  13. Favicon of http://www.euphoricarythmia.com/showthread.php?p=428087 BlogIcon invisible fence wire type 2012.12.29 16: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나 682년 68세의 나이로 복망산에 뭍힌다.

  14. Favicon of http://hondacarros.grupocaiuas.com.br/novo-fit BlogIcon honda fit 2013.01.10 0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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