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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일반적으로 <추석>은 <중추절>, <한가위(가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추석>과 <중추절>과 <한가위>는 서로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동양 삼국에서도 보기 드문 문화가 되었다. 추석이나 설만 되면 귀성을 하는 것 또한, 대가족이 상존하고 도시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시적인  새로운 현대문화로 변형 되었다.

그런데 앞으로도 귀성행렬이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유는 점점 도시화 되고, 삶의 터전이 도시중심으로 변화되고, 핵가족화되면서 찾아갈 고향도 도시이고, 참여할 가족도 극히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 실례가 귀향행렬이고 지금은 제례용품을 직접 조달하기 보다는 집에서 만들었던 송편까지고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는 형태로 변형되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가배(가베), 한가위, 중추절, 추석이 어떻게 변형되고 서로 다른 이질적인 한가위, 중추절, 추석이 하나의 문화를 정착되었는지 유래부터 알아 보도록 하자.

한가위 유래 (추수감사제와 놀이성격)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쌈마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때 조상에 감사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화랑의 원형은 <원화>였다. 원화는 유례(유리)왕 시대의 공주급 여성이 2명이 청백으로 나뉘어 편을 갈라 대결을 하듯이 <원화>를 양편으로 나누어 일상적인 제사와 가배(한가위)를 대비하는 상설기구화(?) 된것이다. 이를 화랑으로 통합하고 신라의 귀족사회를 통합하고, 교육는 기관으로 변형된 것이다.

중추절 유래 ( 승전기념일 + 한가위 )
 
<예기>의 <맹추>,<중추>,<계추> 중에서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유의 한가위인 가배를 중국식 작명법에 의해서 기록한것 뿐이다.<중추>와 중추절은 서로 다른다. 단지, 중추란 한자화된 용어의 차용에 불과하고 중추절은 카니발 성격의 축제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슝베이도 중추절은 신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중추절은 당나라에 유학한 일본의 구법승려 <엔닌의 일기>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서>,<구당서>,<신당서>의 기록에도 신라는 8월15일날 왕앞에서 활쏘고, 말타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한다. 이 당시 중추절은 한가위의 풍습과 전승기념일을 합한 행사가 된다.

이와 관련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9/26 - [역사이야기] - 중국 중추절은 신라 진평왕의 고구려 승전기념일?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진평왕 시기 가배(한가위) 풍속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량(박은빈)은 춘추(유승호)가 선물한 비단과 귀금속들을 가지고, 가배(한가위)에서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써먹겠다고 한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듯 하다.

하지만, 당시 진평왕시기에는 수서, 당서에 따라 낮에는 <한수전쟁>에서 승전을 기념해서, 남성들은 왕앞에서 자신의 무예인 말타기, 활쏘기, 칼싸움 등을 한다. 

왕족이나 귀족 여성들은 비단을 받어서 옷을 만들겠다고 할 수 있다. 편을 나누어 대결중인 여성들간에 한달전부터 준비한 길쌈의 승리한 편이 누가 될까?가 관심사였을 것이다. 김홍도의 풍속화나 신윤복의 단오날 남자들이 여성들이 목욕장면을 훔쳐보듯이 신라시대 한가위(가배)때는 남성들 화랑이나 낭도들 중 누가 이길것인가?에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풍월주 비재는 없었지만, 가배(한가위)배 쟁탈 비재는 충분히 있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추석 유래 [춘조일(春朝日), 추석월(秋夕月)] ( 한가위 + 중추절 + 유교제례 )
 
중추절과 중추는 다른 의미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형식과 내용면에서 추석은 추석제의 변형이다.

추석은 중국의 유교경전인 <예기>에 천자는 이른봄에 태양에 제사를 지내고, 가을에는 저녁 달에 제사를 지낸다해서 비롯되었다. 동지는 태양이 낮은 고도에서 점차 크게 떠올라 시작을 알리는 시기이고 가을 중추에 뜨는 달이 가장 높이 크게 보이는 시기이기 때문에 <춘조일>, <추석월>같은 유래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2009/09/27 - [역사이야기] - 추석, 한가위, 중추절과 차례상의 감춰진 진실찾기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고대의 <추석제>는 민간 백성들은 지낼수 없는 황제나 제왕들만이 지내는 제사였기 때문에 왕실에서만 지냈고 민가에 까지는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유교가 한반도에 유입되던 시기, 집단적인 행사에서 각각의 가정에서 제사를 지내는 때는 이때부터 변형되기 시작했다. 집단적인 조상의 제사와 전쟁기념 축제에서 낮에는 길쌈과 무예대결이 밤에는 제사가 추가 되었고, 왕이나 귀족들이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형태로 변형되기 시작하였고, 추후 각각의 개별 일반백성 가정에서 조상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제사로 확장되었다.

조상은 사라진 차례와 제사

설.추석.제사 차례상차림과 형식이 예를 파괴하다.
  

차례를 지냄에 있어서 상차림에 관한 이야기들이 설왕설래 한다. 그 근거는 <예기>일 수 밖에 없는데 <예기>에는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너무 많은 제사를 하지 말고, 겸약하고 겸손하게 지내라"라고 하였다.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조상이 평상시 좋아하던것으로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은 <홍동백서>,<좌포우혜> 등 조상과는 무관한 형식과 절차 만이 남아 있다. 조상이 왼손잡이던 오른손잡이던 상관하지 않고 숫가락을 놓아야 한다. 왼손잡이가 귀신이 되면 갑자기 오른손잡이로 변하나? 또한, 조상이 살아생전 좋아하던 음식과는 전혀 상관하지도 않고 있다.
 
소주를 좋아하면 소주를,  탁주를 좋아하면 탁주를, 양주를 좋아하면 양주를 올리면 되는 것이 아닐까?. 바나나를 좋아하면 바나나, 파인애플이면 어떤가?


제사와 차례(다례)는 다른 것

엄밀히 이야기해서 제사와 차례는 다르다. 하지만 요즘은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특정인을 기념할때는 제사라고 하고, 조상신 전체를 대상으로 할때는 차례라고 하는 듯하고, 상차림과 행사전반을 <차례>라고 구분하는 듯하다. 하지만 옛 조상들은 엄밀하게 구분하여 지낸것 같다.
 
왕실이나 양반들은 조상의 묘에 특별히 제사와 묘를 관리하는 <수묘인>을 두었는데, 이에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와 <수묘인>의 생활과 음식장만 등 전반적인 묘관리소를  <재실>이라고 불렀다. 왕실에서는 녹을 받은 관리를 두고 왕릉을 보살피고 <전답>에서 나온 물품으로 제사를 치르고 하였다. 
  
제사와 차례를 구분해서 사용하였다고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특별히 제사말고도 차례만을 지낸 기록이 보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차례만 지낸때는 언제일까? <동지다례>라고 해서 동짓날만 다례를 지낸다. 동지에 다례를 지내는 이유는 겨울의 끝이고, 태양이 가장 낮은 곳에서 떠오르는 첫날이며, 실질적인 당해년의 시작과 전년의 끝이다. 그러니 새롭게 시작한다해서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깨끗한 물로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것이 아닐까한다. 산천에 제를 지내는 것은 제왕이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다례를 검색하다 보면 수천개의 <다례>기록이 나온다.  태종 이방원이 태상왕인 이성계와 차마시기 기록으로 부터 철종때까지 차마시기에 관한 무수한 기록들이 널려있다. 외국사신과 차마시기를 했다. 신하와 차마시기를 했다. 왕이 신하의 집을 방문해서도 차마시기를 즐겼다고 한다. 조선이 불가에서 널리 퍼진 차문화을 억압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또한, <차마시기>가 억불숭유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고 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한다


제사가 차례(다례)가 된 이유? 여인의 한이 보인다.


최소한 손님이 찾아오면 차마시기가 일상사였을 것이다. 요즘 사극을 보면 무조건 손님이 찾아오면 술마시는 것을 그리고 있지만, 술상보다 먼저 차를 대접한다. 그러니 사극에서 안주인이나 노비들에게 "주안상을 내와라" 하는 술마시고 놀자판으로 그리는 것은 고증에서 벗어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자주 목격되는 장면중 여러사람이 모여있으면 차를 마시는 장면이나 다기들이 테이블위에 자주 등장한다. 어찌되었던 조선시대 제사는 손님이 찾아오는 것 만큼 다반사이다. 다반사란 말이 차마시고 밥먹는 만큼이란 상시적이고 일상적인 뜻이다. 그래서 차례란? 제사가 흔함의 자조섞인 말의 변형이 이다.

예전에 종가집이나 어느정도 산다는 집은 1년에 지내는 제사가 수십차례이니 일상의 <차마시기> 만큼 흔하디 흔했다. 차를 내오는 것만큼 그집 안주인에게는 흔한일이고 한번의 제사를 지낼려면 수일은 준비해야 하니 일년중에 50~100일은 제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요즘은 제사가 많이 줄고 단촐해 졌다. 처자들이 종가집 장손이나 일반 적으로 맏아들에 시집을 가려하지 않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사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중에 하나였다. 그렇지 않다면, 제사가 차례가 될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한다. 며느리들의 자조적인 말이거나 종손들의 자조섞인 제사상이 차례상으로 변형 되었을 것이다.
 
또한 제사에 참여해야하는 사람도 차마시기 정도에 지나지 않을 만큼 <일상사> 정도로 치부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르신들이 아랫사람들에게 조상을 손님맞이하는 것처럼 성심과 정갈하게 하라는 뜻일 지도 모른다. 어려운듯 하지만 쉽게 정성으로 지내라는 의미일수도 있다.

왜 차례상에 정종을 올려야 하지? 일제의 잔재?

정종은 단순히 일본의 술 제조업체였다. 맥주하면 OB인 시절도 있었고, 소주하면 <진로>인 시절이 있었던 것 처럼, 청주하면 정종회사를 떠올린것이다. 청주(맑은술)을 올리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미료하면 <미원>이 대명사 인 시절도 있었다. 그러니 술을 올리는데 정종을 올린다는 말은 진로를 올린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잘못사용된 예이다.

그렇다면, 우리내 조상들은 차례상에 어떤 술을 올렸을까? 세종실록에 [조전에 평사시 예식 대로 소주로 지냈다] 라고 한다. 맑은 술을 조상에 진상하고 있다.

소주는 왕이 신하나 외국의 사신이나 대마도 도주에게도 하사품으로 주는 물품중에 하나가 되겠다. 일본의 청주는 조선의 소주가 건너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일반인들은 범접하기 힘든 귀하디 귀한 술이다. 이런 귀하디 귀한 술을 제사에 올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집안마다 대대로 내려오는 종주(宗酒)가 있었다. 집안 정통주를 빚어서 제사를 지내고, 필요에 의해서 진상을 하기도 하고, 귀한 손님이 오면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일반인들이 청주와 소주를 제사상에 올리는 시점은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일제시대 이후이다. 제사상에 청주(정종)을 올리는 행위가 일제의 잔재라고는 말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잘못된 행태를 일제의 만행으로 모는 것 처럼 안일한 태도는 없다. 외부세력에 의해서 민족의 고유문화가 침탈되는 것에 분노할 이유는 없다. 이는 일본뿐만 아니고 외부 다른 민족을 지배하려는 자가 보이는 보편적인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스스로 고유문화를 없애는게 더욱 나쁘기 때문이다. 토속주.전통주를 없앤 주범은 아이러니하게도 광복후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고난 후 기업형주류 생산업체와 독재정권의 결탁에 의해서 이니 말이다.


명절 증후군을 벗어나고, 없는 부부애도 있게하는 방법

최근에는 많이 변하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명절이나 제사를 준비하는 건 여인들의 몫이였다. 지금도 며느리들이 명절날 시집에 가서 제사상이나 차례상을 차리고 나면, 명절증후군이 생긴다. 이시기를 지나면 부부간에 금이 가는 수가 많고, 이혼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명절은 우리내 어머니이고, 며느리, 누나 동생인 여성들에는 힘들고 힘든 고역이 된다.


추석과 명절이 되면 인터넷에서는 지방 쓰는 방법과 차례상 차리는 법이 검색 순위 상위를 차지한다. 이유는 그만큼 명절날 차례상과 제사에 사용되는 지방쓰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세월은 가고, 문화도 바뀌고 있다.

위에서 추석의 유래부터 차례가 된 이유까지 언급을 했다. 시대에 따라 명절의 내용과 형식이 바뀌고 있다. 남성들이 여성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면, 명절날 스스로 음식이나 설거지 등에 적극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한다. <참여>라는 말을 사용했지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도와주는 행위>는 자신의 일이 아니고 남의 일이기 때문에 사용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명절(제사.차례)는  남의 일이 아닌 남.여구분없이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명절이후 벌어진 명절증후군에서 쉽게 벗어나고 가정이 화목해지는 길이 아닐까 한다. 또한, 문화는 옛것만을 고수하는게 아니다. 시대에 맞게 계승되고, 변형되고 발전되는 것이다.  한쪽은 즐겁고, 다른 한쪽은 준비하느라고 즐겁지 않다면 그건 차라리 없어져야할 구습일 뿐이다. 그러니 현재 남여평등 사회에 맞게 남성들이 스스로 참여하여야 한다. 그래야 즐거운 명절이 되고, 명절증후군이 없고, 가족간에 골이 깊어지지 않고, 이혼하는 가정이 줄어들지 않을까한다. 농담식으로 "밤일을 잘한다"고 아침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따스한 말한마디와 명절날 자발적인 설거지라도 참여한다면, 말은 "사내놈이 무슨 설거지?" 하면서도 아침밥이 달라지고, 없는 <부부애>도 살아나지 않을까 한다.

보름달에는 계수나무와 달토끼가 산다고 합니다.이는 달의 모양을 보고 느끼는 착시일겁니다. 하지만, 어느지역에서는 전갈이라고 하고, 옛 고대에는 태양에 삼족오가 살고 달에는 달토끼보다는 두꺼비가 산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이처럼 달을 볼때 사람마다 지역마다, 현재 자신의 사정에 따라 똑같은 달이 달라 보일 겁니다.

경제 사정이 극히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명절 추석이 즐거운 사람도 있을것이고, 좋아만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없는 회사사정에 월급을 주어야 하고, 상여금을 더주어야 하는데 못주어 안타까워 하는 분들도 계실것이고, 적은 월급에 명절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명절 보름날 떠오른 달이 한없이 따스하게 보이는 분들도 계실것이고, 반면에 한없이 차갑고, 한숨나오게 하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가고 싶어도 개인사정 때문에 귀경을 포기하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명절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글을 보신분이나 추천해주신 분이나, 댓글을 달아 주시는 분이나, 추천없이 그냥 글만 구독하고 가시는 분이나, 이글에 동의하는 분이나, 동의하지 않는 분이나 모두 마음만은 한가위같이 풍성한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글로서 제글을 보시는 분들께 드리는 추석선물이라고 생각해주셈. ^___^
 
즐거운 추석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귀성하는 분들은 차조심 몸조심 ^___^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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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careernote.co.kr BlogIcon 따뜻한카리스마 2010.09.18 08: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모로 어려운 것이 많은 국면이지만 우리 모두 행복한 추석 명절 보내길 기원해봅니다^^ㅎ

  2. Favicon of http://blog.daum.net/design11111 BlogIcon Yujin 2010.09.18 1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따뜻한 말한마디가 가장 중요한것 같습니다^^ have a good day!!

  3. Favicon of http://3rdrate.tistory.com BlogIcon 울트라솔이 2010.09.19 0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에휴 추석이네요!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4.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5.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Pussy Tube 2012.07.21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밝힌 코치는 아이스쇼가 끝난 직후에 발표하겠다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동어반복적인 기사를 송고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6. Favicon of http://blogskinny.com/?p=Recent BlogIcon Margo 2012.08.12 1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운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

  7. Favicon of http://comblank.com/blog/view/16044/what-you-need-to-prepare-a-crisis-food-sou.. BlogIcon emergency first aid 2012.11.26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일반적으로 <추석>은 <중추절>, <한가위(가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추석>과 <중추절>과 <한가위>는 서로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동양 삼국에서도 보기 드문 문화가 되었다. 추석이나 설만 되면 귀성을 하는 것 또한, 대가족이 상존하고 도시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시적인  새로운 현대문화로 변형 되었다.

그런데 앞으로도 귀성행렬이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유는 점점 도시화 되고, 삶의 터전이 도시중심으로 변화되고, 핵가족화되면서 찾아갈 고향도 도시이고, 참여할 가족도 극히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 실례가 귀향행렬이고 지금은 제례용품을 직접 조달하기 보다는 집에서 만들었던 송편까지고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는 형태로 변형되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가배(가베), 한가위, 중추절, 추석이 어떻게 변형되고 서로 다른 이질적인 한가위, 중추절, 추석이 하나의 문화를 정착되었는지 유래부터 알아 보도록 하자.

한가위 유래 (추수감사제와 놀이성격)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쌈마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때 조상에 감사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화랑의 원형은 <원화>였다. 원화는 유례(유리)왕 시대의 공주급 여성이 2명이 청백으로 나뉘어 편을 갈라 대결을 하듯이 <원화>를 양편으로 나누어 일상적인 제사와 가배(한가위)를 대비하는 상설기구화(?) 된것이다. 이를 화랑으로 통합하고 신라의 귀족사회를 통합하고, 교육는 기관으로 변형된 것이다.

중추절 유래 ( 승전기념일 + 한가위 )
 
<예기>의 <맹추>,<중추>,<계추> 중에서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유의 한가위인 가배를 중국식 작명법에 의해서 기록한것 뿐이다.
<중추>와 중추절은 서로 다른다. 단지, 중추란 한자화된 용어의 차용에 불과하고 중추절은 카니발 성격의 축제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슝베이도 중추절은 신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중추절은 당나라에 유학한 일본의 구법승려 <엔닌의 일기>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서>,<구당서>,<신당서>의 기록에도 신라는 8월15일날 왕앞에서 활쏘고, 말타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한다. 이 당시 중추절은 한가위의 풍습과 전승기념일을 합한 행사가 된다.

이와 관련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9/26 - [역사이야기] - 중국 중추절은 신라 진평왕의 고구려 승전기념일?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진평왕 시기 가배(한가위) 풍속도
 

춘추(유승호)의 선물 받는 보량(박은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량(박은빈)은 춘추(유승호)가 선물한 비단과 귀금속들을 가지고, 가배(한가위)에서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써먹겠다고 한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듯 하다. 하지만, 당시 진평왕시기에는 수서, 당서에 따라 낮에는 <한수전쟁>에서 승전을 기념해서, 남성들은 왕앞에서 자신의 무예인 말타기, 활쏘기, 칼싸움 등을 한다. 

왕족이나 귀족 여성들은 비단을 받어서 옷을 만들겠다고 할 수 있다. 편을 나누어 대결중인 여성들간에 한달전부터 준비한 길쌈의 승리한 편이 누가 될까?가 관심사였을 것이다. 김홍도의 풍속화나 신윤복의 단오날 남자들이 여성들이 목욕장면을 훔쳐보듯이 신라시대 한가위(가배)때는 남성들 화랑이나 낭도들 중 누가 이길것인가?에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풍월주 비재는 없었지만, 가배(한가위)배 쟁탈 비재는 충분히 있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추석 유래 [춘조일(春朝日), 추석월(秋夕月)] ( 한가위 + 중추절 + 유교제례 )
 
중추절과 중추는 다른 의미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형식과 내용면에서 추석은 추석제의 변형이다.

추석은 중국의 유교경전인 <예기>에 천자는 이른봄에 태양에 제사를 지내고, 가을에는 저녁 달에 제사를 지낸다해서 비롯되었다. 동지는 태양이 낮은 고도에서 점차 크게 떠올라 시작을 알리는 시기이고 가을 중추에 뜨는 달이 가장 높이 크게 보이는 시기이기 때문에 <춘조일>, <추석월>같은 유래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2009/09/27 - [역사이야기] - 추석, 한가위, 중추절과 차례상의 감춰진 진실찾기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고대의 <추석제>는 민간 백성들은 지낼수 없는 황제나 제왕들만이 지내는 제사였기 때문에 왕실에서만 지냈고 민가에 까지는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유교가 한반도에 유입되던 시기, 집단적인 행사에서 각각의 가정에서 제사를 지내는 때는 이때부터 변형되기 시작했다. 집단적인 조상의 제사와 전쟁기념 축제에서 낮에는 길쌈과 무예대결이 밤에는 제사가 추가 되었고, 왕이나 귀족들이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형태로 변형되기 시작하였고, 추후 각각의 개별 일반백성 가정에서 조상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제사로 확장되었다.

조상은 사라진 차례와 제사

설.추석.제사 차례상차림과 형식이 예를 파괴하다.
  

명절 제사 차례상차림

차례를 지냄에 있어서 상차림에 관한 이야기들이 설왕설래 한다. 그 근거는 <예기>일 수 밖에 없는데 <예기>에는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너무 많은 제사를 하지 말고, 겸약하고 겸손하게 지내라"라고 하였다.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조상이 평상시 좋아하던것으로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은 <홍동백서>,<좌포우혜> 등 조상과는 무관한 형식과 절차 만이 남아 있다. 조상이 왼손잡이던 오른손잡이던 상관하지 않고 숫가락을 놓아야 한다. 왼손잡이가 귀신이 되면 갑자기 오른손잡이로 변하나? 또한, 조상이 살아생전 좋아하던 음식과는 전혀 상관하지도 않고 있다.
 
소주를 좋아하면 소주를,  탁주를 좋아하면 탁주를, 양주를 좋아하면 양주를 올리면 되는 것이 아닐까?. 바나나를 좋아하면 바나나, 파인애플이면 어떤가?


제사와 차례(다례)는 다른 것

엄밀히 이야기해서 제사와 차례는 다르다. 하지만 요즘은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특정인을 기념할때는 제사라고 하고, 조상신 전체를 대상으로 할때는 차례라고 하는 듯하고, 상차림과 행사전반을 <차례>라고 구분하는 듯하다. 하지만 옛 조상들은 엄밀하게 구분하여 지낸것 같다.
 
왕실이나 양반들은 조상의 묘에 특별히 제사와 묘를 관리하는 <수묘인>을 두었는데, 이에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와 <수묘인>의 생활과 음식장만 등 전반적인 묘관리소를  <재실>이라고 불렀다. 왕실에서는 녹을 받은 관리를 두고 왕릉을 보살피고 <전답>에서 나온 물품으로 제사를 치르고 하였다. 
  
제사와 차례를 구분해서 사용하였다고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특별히 제사말고도 차례만을 지낸 기록이 보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차례만 지낸때는 언제일까? <동지다례>라고 해서 동짓날만 다례를 지낸다. 동지에 다례를 지내는 이유는 겨울의 끝이고, 태양이 가장 낮은 곳에서 떠오르는 첫날이며, 실질적인 당해년의 시작과 전년의 끝이다. 그러니 새롭게 시작한다해서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깨끗한 물로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것이 아닐까한다. 산천에 제를 지내는 것은 제왕이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다례를 검색하다 보면 수천개의 <다례>기록이 나온다.  태종 이방원이 태상왕인 이성계와 차마시기 기록으로 부터 철종때까지 차마시기에 관한 무수한 기록들이 널려있다. 외국사신과 차마시기를 했다. 신하와 차마시기를 했다. 왕이 신하의 집을 방문해서도 차마시기를 즐겼다고 한다. 조선이 불가에서 널리 퍼진 차문화을 억압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또한, <차마시기>가 억불숭유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고 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한다


제사가 차례(다례)가 된 이유? 여인의 한이 보인다.


최소한 손님이 찾아오면 차마시기가 일상사였을 것이다. 요즘 사극을 보면 무조건 손님이 찾아오면 술마시는 것을 그리고 있지만, 술상보다 먼저 차를 대접한다. 그러니 사극에서 안주인이나 노비들에게 "주안상을 내와라" 하는 술마시고 놀자판으로 그리는 것은 고증에서 벗어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자주 목격되는 장면중 여러사람이 모여있으면 차를 마시는 장면이나 다기들이 테이블위에 자주 등장한다. 어찌되었던 조선시대 제사는 손님이 찾아오는 것 만큼 다반사이다. 다반사란 말이 차마시고 밥먹는 만큼이란 상시적이고 일상적인 뜻이다. 그래서 차례란? 제사가 흔함의 자조섞인 말의 변형이 이다.

예전에 종가집이나 어느정도 산다는 집은 1년에 지내는 제사가 수십차례이니 일상의 <차마시기> 만큼 흔하디 흔했다. 차를 내오는 것만큼 그집 안주인에게는 흔한일이고 한번의 제사를 지낼려면 수일은 준비해야 하니 일년중에 50~100일은 제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요즘은 제사가 많이 줄고 단촐해 졌다. 처자들이 종가집 장손이나 일반 적으로 맏아들에 시집을 가려하지 않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사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중에 하나였다. 그렇지 않다면, 제사가 차례가 될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한다. 며느리들의 자조적인 말이거나 종손들의 자조섞인 제사상이 차례상으로 변형 되었을 것이다.
 
또한 제사에 참여해야하는 사람도 차마시기 정도에 지나지 않을 만큼 <일상사> 정도로 치부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르신들이 아랫사람들에게 조상을 손님맞이하는 것처럼 성심과 정갈하게 하라는 뜻일 지도 모른다. 어려운듯 하지만 쉽게 정성으로 지내라는 의미일수도 있다.

왜 차례상에 정종을 올려야 하지? 일제의 잔재?

정종은 단순히 일본의 술 제조업체였다. 맥주하면 OB인 시절도 있었고, 소주하면 <진로>인 시절이 있었던 것 처럼, 청주하면 정종회사를 떠올린것이다. 청주(맑은술)을 올리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미료하면 <미원>이 대명사 인 시절도 있었다. 그러니 술을 올리는데 정종을 올린다는 말은 진로를 올린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잘못사용된 예이다.

그렇다면, 우리내 조상들은 차례상에 어떤 술을 올렸을까? 세종실록에 [조전에 평사시 예식 대로 소주로 지냈다] 라고 한다. 맑은 술을 조상에 진상하고 있다.

소주는 왕이 신하나 외국의 사신이나 대마도 도주에게도 하사품으로 주는 물품중에 하나가 되겠다. 일본의 청주는 조선의 소주가 건너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일반인들은 범접하기 힘든 귀하디 귀한 술이다. 이런 귀하디 귀한 술을 제사에 올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집안마다 대대로 내려오는 종주(宗酒)가 있었다. 집안 정통주를 빚어서 제사를 지내고, 필요에 의해서 진상을 하기도 하고, 귀한 손님이 오면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일반인들이 청주와 소주를 제사상에 올리는 시점은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일제시대 이후이다. 제사상에 청주(정종)을 올리는 행위가 일제의 잔재라고는 말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잘못된 행태를 일제의 만행으로 모는 것 처럼 안일한 태도는 없다. 외부세력에 의해서 민족의 고유문화가 침탈되는 것에 분노할 이유는 없다. 이는 일본뿐만 아니고 외부 다른 민족을 지배하려는 자가 보이는 보편적인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스스로 고유문화를 없애는게 더욱 나쁘기 때문이다. 토속주.전통주를 없앤 주범은 아이러니하게도 광복후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고난 후 기업형주류 생산업체와 독재정권의 결탁에 의해서 이니 말이다.


명절 증후군을 벗어나고, 없는 부부애도 있게하는 방법

최근에는 많이 변하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명절이나 제사를 준비하는 건 여인들의 몫이였다. 지금도 며느리들이 명절날 시집에 가서 제사상이나 차례상을 차리고 나면, 명절증후군이 생긴다. 이시기를 지나면 부부간에 금이 가는 수가 많고, 이혼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명절은 우리내 어머니이고, 며느리, 누나 동생인 여성들에는 힘들고 힘든 고역이 된다.


추석과 명절이 되면 인터넷에서는 지방 쓰는 방법과 차례상 차리는 법이 검색 순위 상위를 차지한다. 이유는 그만큼 명절날 차례상과 제사에 사용되는 지방쓰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세월은 가고, 문화도 바뀌고 있다.

위에서 추석의 유래부터 차례가 된 이유까지 언급을 했다. 시대에 따라 명절의 내용과 형식이 바뀌고 있다. 남성들이 여성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면, 명절날 스스로 음식이나 설거지 등에 적극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한다. <참여>라는 말을 사용했지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도와주는 행위>는 자신의 일이 아니고 남의 일이기 때문에 사용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명절(제사.차례)는  남의 일이 아닌 남.여구분없이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명절이후 벌어진 명절증후군에서 쉽게 벗어나고 가정이 화목해지는 길이 아닐까 한다. 또한, 문화는 옛것만을 고수하는게 아니다. 시대에 맞게 계승되고, 변형되고 발전되는 것이다.  한쪽은 즐겁고, 다른 한쪽은 준비하느라고 즐겁지 않다면 그건 차라리 없어져야할 구습일 뿐이다. 그러니 현재 남여평등 사회에 맞게 남성들이 스스로 참여하여야 한다. 그래야 즐거운 명절이 되고, 명절증후군이 없고, 가족간에 골이 깊어지지 않고, 이혼하는 가정이 줄어들지 않을까한다. 농담식으로 "밤일을 잘한다"고 아침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따스한 말한마디와 명절날 자발적인 설거지라도 참여한다면, 말은 "사내놈이 무슨 설거지?" 하면서도 아침밥이 달라지고, 없는 <부부애>도 살아나지 않을까 한다.

보름달에는 계수나무와 달토끼가 산다고 합니다.이는 달의 모양을 보고 느끼는 착시일겁니다. 하지만, 어느지역에서는 전갈이라고 하고, 옛 고대에는 태양에 삼족오가 살고 달에는 달토끼보다는 두꺼비가 산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이처럼 달을 볼때 사람마다 지역마다, 현재 자신의 사정에 따라 똑같은 달이 달라 보일 겁니다.

경제 사정이 극히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명절 추석이 즐거운 사람도 있을것이고, 좋아만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없는 회사사정에 월급을 주어야 하고, 상여금을 더주어야 하는데 못주어 안타까워 하는 분들도 계실것이고, 적은 월급에 명절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명절 보름날 떠오른 달이 한없이 따스하게 보이는 분들도 계실것이고, 반면에 한없이 차갑고, 한숨나오게 하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가고 싶어도 개인사정 때문에 귀경을 포기하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명절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글을 보신분이나 추천해주신 분이나, 댓글을 달아 주시는 분이나, 추천없이 그냥 글만 구독하고 가시는 분이나, 이글에 동의하는 분이나, 동의하지 않는 분이나 모두 마음만은 한가위같이 풍성한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글로서 제글을 보시는 분들께 드리는 추석선물이라고 생각해주셈. ^___^

 
즐거운 추석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귀성하는 분들은 차조심 몸조심 ^___^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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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toyvillage.net BlogIcon 라이너스™ 2009.10.01 1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집니다^^
    잘보고가구요. 즐거운 추석되시길빕니다^^

  3. thfql 2009.10.01 1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례의 차 자가 마시는 차라면.. 그냥 차만 올리고 제사를 지내면 어떨지요? 예전에 부처님한테 상 올릴 때도 차를 올렸다는 걸 들은 것 같은데...먹는 건 집에서 먹던지..싸 가지고 오던지.. 아니면 식 때를 피해서 오던지.. 사실 가서 먹고 오는 것도 어떤 땐 미안하기도 하고 부담스럽다. 그만큼 뭔가 보상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뭘 사 가지고 가야 하거나 돈으로 주거나.. 근데 그걸 받는 사람도 부담스러울 거고.. 가벼운 걸로 사 가면 안될 것 같고..요즘 댓글 보면 만들어 놓고 먹을 사람도 없고 버려야 하나..이런 글도 가끔 올라오던데..잘 사는 분들은 더 맛있는 것 사 먹을 기회도 많으니 먹지도 않을 것 같아.. 보통 사람들은 중간 정도.. 못 사는 사람들은 잘 먹는 날.. 정도?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1 1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절에서는 부처님에게 제를 올릴때는 술을 먹지 않으니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다예(다도)가 발전했겟지만요. 그런데 왜 한국기독교나 불교는 술을 멀리 하라고 할까요? 다들 먹던뎅.. ㅋㅋ 그리고 다그런건 아니지만 고승들 치고 곡차좋아하지 않는분 없더군요.. ㅋㅋ

      요즘은 각자 음식을 나눠서 만들거나 장만하는 경우도 있군요.. 미리 가족간에 상의를 하거나, 모임을 할때 물어보거나요..

      저같은 경우도 미리 물어봅니다. 부족한게 무엇인가. 무얼사가면 될까? 하고요.. 그러면 상대방도 편하고 중복되지 않고 좋더군요.. 가족모임 같은경우도 마찬가지..

      먹거리가 남는 문제가 있기는 합니당. ㅋㅋ 처리 곤란할때도 있고, 저희집은 남은 음식으로 비빔밥. 또는 찌개용으로 사용합니당.

    • Favicon of http://f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01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만해선생같은 분들도 곡차를 좋아하셨죠.
      기독교의 경우 청교도논리를 따른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교히의 경우 청교도는 커녕 이미 충분히 세속화되었죠 사실 제사는 양보다는 정성이죠.

  4. Favicon of http://inbusan.tistory.com/ BlogIcon 낭만인생 2009.10.01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갓쉰동의 놀랍고 세심한 관찰력과 연구의 글이군요..
    멋진 추석, 가베?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1 16: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종합편입니당.. ㅋㅋ 이글을 쓸려고.. 떡밥 기사 3개나 투여했다눈.. ㅠ.ㅠ. 이미 제글을 지속적으로 보신분은 논문 중복개제다 라고 할 정도이지요..그런데도 길어용..ㅠ.ㅠ.

  5. Favicon of https://sapzzil.kr BlogIcon sapzzil 2009.10.01 16: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추석 되세요~~

  6. 2009.10.01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BlogIcon 펨께 2009.10.01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어딜 다녀오느라 방문이 좀 늦은것 같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제사상을 잘 차릴줄 모르지라 그냥 인터넷으로 본적은 있는데...
    좋은 정보인것 같네요.
    풍성한 한가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8. 갓쉰동 최고 2009.10.01 2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절일을 비롯한 가사일들이 여인들의 임무로 변한 것은 조선시대 정도전이 혼례풍습중 장가가는풍습을 지적하고 이후 4대임금인 세종대왕이 자신의 딸인 숙신옹주를 친영례의예로 혼인을시키고나서 장가가는것이 시집가는 것으로 처가살이가 시집살이로 변한 이후부터였습니다. 그이후 여성은 출가외인이라는 이유로 재산분배에서 밀려나고 절정을 지켜야하는 등 부당한 처우를당하고 삼종지도 칠거지악등 맗도 되지않는 법도들이 적용되었죠. 그리고 제사자체는 여러 그림에서들어나듯이 조선 중기까지는 자식을이 돌아가면서 제사를받들었고 남편들도 가사를 담당했던만큼 제사자체에 여성의 한이담김 것이아닌 유교적 이상을 꿈꾼 조선의 남존여비사상에 입각한 여성차별에의한 풍습이 여성들로 하여금 명정에 한을 맺히게 하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0.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Pussy.Org 2012.07.12 1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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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Favicon of http://www.gobet1x2.com BlogIcon go bet 1x2 2012.09.03 1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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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Favicon of http://artomania.lt BlogIcon artomania 2012.09.10 1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

  14. Favicon of http://www.webistudio.com/proothisi-istoselidon/ BlogIcon proothisi istoselidon 2012.09.11 1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는 것이라면 그래도 존일 같은데요.. 독점출판 계약

  15. Favicon of http://reklamasvarbu.blog.com BlogIcon http://reklamasvarbu.blog.com 2012.09.16 1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 감사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

  16. Favicon of http://www.tutoringhut.com/blog BlogIcon Virtual Classroom mathematics 2012.09.18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족도 극히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 실례가 귀향행렬이고 지금은 제례용품을 직접 조달하기 보다는

  17. Favicon of http://www.pvcverticalblinds.co.uk/vertical-blinds-replacement-slats.html BlogIcon Vertical Blinds Replacement Slats 2012.09.20 1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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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Favicon of http://www.pvcverticalblinds.co.uk/vertical-blinds-replacement-slats.html BlogIcon Vertical Blinds Replacement Slats 2012.09.20 1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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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20. Favicon of http://nizonty.x10.mx/blogs/viewstory/618 BlogIcon emergency water storage tanks 2012.11.26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조금만 오서의 인터뷰나 메일만 확인해도 오서의 거짓말은 그냥 들통나고 만다. 하지만, 한국의 발기자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한 발기자가 글을 쓰면 카피앤패스트 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급수가 높은 발기자들은 위치만 위로 아래로 순서만 바꾸어 조절만 한다. 이들에게 분석기사를 바라는 것은 지구가 멸망하는 날이 되어도 오지 않을 것이다.


  21. Favicon of http://www.fb.arjanbongers.nl/blog/view/45519/excellent-guidelines-for-emergen.. BlogIcon post apocalypse survival gear 2012.12.06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쌈마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역사 기록에는 일식이 있었을까?

신라를 국내 최초로 재현했다는 명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과 덕만이 일식의 대결을 벌렸다. 하지만, 미실의 처참한 패배로 끝나 버렸다. 그런데 역사기록에는 진평왕 시기에 일식이 있었을까?

진평왕 비슷한 시기에 일식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19년(572)에 사신을 북제(北齊)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초하루 경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39년(592) 가을 7월 임신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원성왕
3년(787) 봄 2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몸소 신궁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다. 여름 5월에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가을 7월에 누리가 곡식을 해쳤다. 8월 초하루 신사에 일식이 있었다.


위의 삼국사기 기록을 보더라도 진평왕 시기에 신라나 백제나 고구려에 일식은 없었다. 만약, 미실은 일식이 있다하고 덕만이 일식이 없다는 설정을 하였다면, 극이 더 극적이고 역사에 근접하지 않을까?.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진평왕 시기 일식은 어찌될까?

요즘은 기원전 2000년부터 기원후 3,000년까지 일식기록을 온라인상으로 쉽게 검색할 수 있다. 물론, 상업용 천문관측 및 예측 프로그램과는 차이가 조금은 있지만, 일식이 언제 어느장소에 개기일식인지, 부분일식인지, 환개기.부분일식인지 알 수 가 있다. 다만, 이들 프로그램들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말기 바란다.

지구는 언제나 움직이고, 달 또한 지구로 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현재는 지구로 부터 멀어지고 있지만, 언제 어느순간부터 달이 지구로 가까이 올수도 있고, 지금처럼 년 4cm 뒤로멀어지는 속도보다 더 빨리 멀어질 수도 있다. 대체적으로 천체는 원의 궤도 보다는 타원의 궤도를 돌고 있다.

또한, 지구의 자전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있어서 하루의 길이가 24시간이 아닌 24.xx만큼 더 오래 지속되고 있지만, 이는 현재의 측정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도 그러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어찌되었던 과거의 일식이 역사기록과 다를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고 보기 바란다. 과거로 갈수록 일식의 오차는 커질 수 밖에 없다. 오차를 줄이는 일은 천문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맞겨두도록 하자.

하지만, 좀더 프로그램들이 정확해지고, 발전해진다면, 이해할 수 없는 역사의 기록의 편년의 기준을 정하는데 유용한 천문과학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어찌되었던 온라인 상에 공개된 아래의 일식프로그램으로 금년 7월에 있었던 일식과 삼국사기에 기록된 일식을 비교해 봤다. 그리고 선덕여왕을 시청하는 팬들을 깜짝 놀래줄 것이다. 

전적으로 이 프로그램만으로 살펴봤다는 것만 언급하겠다. 이말은 다른 프로그램으로는 '다른 결과가 나올수도 있다'는 말이다. 관심이 있는 분은 글을 다 읽고 추천도 해주신 다음에 찾아가 보도록 하기 바란다.  
Five Millennium (-1999 to +3000) Canon of Solar Eclipses Database



최근 2009년 7월22일에 있었던 일식을 알고 있을 것이다. 현재 보여주고 있는 프로그램은 이를 정확히 예측한 프로그램이기도 한다. 과거로 갈수록 오차가 커지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최근의 기록은 정확하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을 위 프로그램으로 살펴보았다.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시기에 한반도를 경유한 일식이 여러건이 있었다.


19년(572)가을 9월 초하루 경자에 일식이 있었다. -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삼국사기는 백제가 가을 9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천문프로그램은 7월 22일에 한반도에서 일식을 관측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주의해서 봐야 할 내용은 삼국사기의  달은 음력이고, 당시의 현대와는 다르게 정확성이 떨어지는 책력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생각하고, 천문일식프로그램은 양력이니 이를 감안하고 보시길 바란

다.

사실 그냥 비슷한 연도에 일식을 한반도에서 관찰할 수 있거니 하면서 그림만 보시는게 좋다.

단지 주의해서 볼일은 붉은 선이 지나는 태양(황도)길에 가까이 있을 수록 개기일식에 가깝다는 것이다. 점선정도가 되면 육안으로 충분히 관찰할 수 있었겠다 생각하면 된다.

사실 역사에 기록하고 싶어도 기록을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날씨가 변수가 된다. 비오는 날에나 구름이 잔뜩낀 날에는 태양이 보이기나 했겠나?

기상청에서 항상 하는 말이 있지 않는가? 이번 추석이나 설날에 보름달을 볼 수 있다. 또는 없다. 라고 예보를 해준다.

39년(592) 가을 7월 임신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천문 일식 예측 프로그램상으로는 594년 7월에 일식이 있었다.  프로그램의 정확도가 실증이 된다면, 592년 기록은 594년 여름 6~7월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595년 7월에도 한반도 근처를 지나는 일식은 있었지만 한반도에서 관측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592년부터 599년 까지 593년을 빼고 거의 매년 일식을 관찰할 수 도 있었고, 없을 수도 있
었다.
 
하지만 기록에는 전혀 언급이 없다. 이때 한반도에 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백성들은 하늘이 국왕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역설적이게도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601년, 602년, 604년 606년 거의 매년 일식이 있었지만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기록을 하고 싶어도 기록을 남길수 없었다.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링크한 사이트로 가셔서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이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소설 작가가 의도하였는지 의도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진평왕 시기에 날씨만 좋았다면 볼 수 있는 개기일식에 가까운 일식을 발견하게 된다.



616년 3월 21일 덕만의 일식은 있었다.


616년 진평왕 38년 봄 2월말이나 3월초에 한반도를 경탄하게 만든 2009년 7월 22일 일식과는 비교가 안되게 좋은 일식이 있었다. 
 
어찌되었던 이시기 삼국사기에서 신라는 어떠한 기록을 남기고 있을까?

31년(609) 봄 정월에 모지악(毛只嶽) 아래의 땅이 불에 탔다. 그 넓이가 네 보(步)이고 길이가 여덟 보였으며 깊이가 다섯 자였는데, 10월 15일에 이르러 꺼졌다.
 
35년(613) 봄에 가물었다. 여름 4월에 서리가 내렸다.

36년(614) 봄 2월에 영흥사의 흙으로 만든 불상이 저절로 무너지더니 얼마 안 있어 진흥왕비인 비구니(比丘尼)가 죽었다

37년(615) 겨울 10월에 지진이 일어났다.

49년(627) 봄 3월에 큰 바람이 불고 흙이 비처럼 5일 넘게 내렸다.  8월에 서리가 내려 곡식을 죽였다.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있다.

이제 역사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진평왕 중기에 일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대명력과 천광력을 언급한 사극 선덕여왕의 원작이 되는 <소설> 선덕여왕의 원작자가 이 사실을 알고, 일식을 소설에 넣었을까? 알고 넣었다면 대단한 작가라고 칭찬해줄만 하다.. 하지만 칭찬은 뒤로 미루기로 하자. 추측컨데 소설원작자는 선덕왕때 통설로 천문대라고 알려진 첨성대를 만들었으니, 단순히 책력이 나오고, 일식이 나오고, 월식이 나왔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은 미실에게 "보름날 오시"에 일식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식은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다면 보름날 절대로 일어날 수가 없다. 초승달이 뜨는 날이나, 그믐날을 즈음해서만 일식이 생긴다. 삼국사기 일식 기록에도 초하루, 그믐만이 나온다.
 
그러니 소설원작가의 무지가 보름날 일식을 만든 것이다. 왜 원작자가 무지하다고 하는가? 소설 원작자는 역사책을 전혀 보지 않고, 가장 기초적인 자료수집도 하지 않고, 역사소설을 쓴 흔적들이 너무나도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유신의 등장이며, 천명과 덕만의 출생일이다. 여기서 부터 <소설> 선덕여왕은 꼬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당연히 드라마 선덕여왕도 꼬일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소설을 버리고 다시 극본을 만들어야 할판이니 말이다. 선덕여왕 작가는 덕만과 천명의 출생일을 '임술년'이라고 계속 반복적으로 강조를 하고, 있었다. 임술년은 진흥왕시기와 진평왕시기에 딱 2번 나온다.  

하나는 542년 진흥왕 3년이고, 602년 진평왕 24년이다. 

하지만, 542년 임술년은 진흥왕 나이 8살때이고, 진평왕(567년생)도 태어나기 전이다. 595년생인 유신과 602년생인 덕만과 천명이라? 역사상이나 드라마상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유신과 덕만이 소설의 내용상으로 어울려 보이지 않는가? 문제는 천명의 아들인 춘추가 603년 생이라는 사실이다.
 
비담은 579년생으로 만들고, 덕만은 그보다 2~3살 어린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비담이 첫눈에 덕만에 끌린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에서 어릴때 비담과 덕만은 문노에 의해서 만났다는 설명이 나온다. 그렇다면 천명과 덕만은 580년 초년생이란 이야기가 된다. 소설 안에서도 일관된 시간의 개념이 없다.

어찌되었던, 원작자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삼국사기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616년 진평왕 38년을 즈음해서 일식이 있었다는 과학적인 추론이 가능하다는 것을 소득으로 얻었으면 되었지 않겠는가?
자식들이나 친구랑 대화할 때 이렇게 이야기 해주면 된다. 역사기록에는 없지만, 현대 천문과학으로 살펴보니 616년 진평왕 38년 3월 중순경 신라의 하늘에는 우리생에 마지막인 2009년 7월 일식보다도 멋진 일식이 있었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보름에는 일식이 일어 날 수 없고, 달이 으스름한 초순이나 그믐날에 만 일식이 일어난다. 

이 단락을 쓰기 위해서 수 많은 자료를 검색하고, 프로그램을 일일이 돌리고 했었습니다.

어찌되었던  스포츠처럼 룰을 알고 보는가? 아니면 룰을 전혀 모르고 그냥 연기에 취해서 보는가? 룰을 알고 보면, 연기에도 빠지기 쉽지요. 스포츠의 룰은 경기의 규칙이고, 사극의 룰은 역사적인 팩트 입니다. 팩트를 알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보는 것과 팩트를 모르고 보는 것은 차이가 있겠지요. 스포츠를 보는 것처럼.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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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와우~ 2009.08.27 1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추천!!!

  3. Favicon of http://27m.net BlogIcon 東氣號太 2009.08.27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열혈 시청자의 한사람으로서 이반님의 글은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미실이 일식이 있다고, 덕만이 일식이 없다고 주장했다면 드라마 마지막 부분에서 느낄수 있었던 카타르시스 대신 절정 없이 끝나는 정사와 같은 느낌이었을 것 같네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대신
    시청률은 역사도 바뀌게 한다.... 로;;;

  4. 일식... 2009.08.27 1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름날엔 일식이 없다~그러고보니 옛날옛적 학교에서 그런 얘기를 배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생각 안나는 걸 보니 늙었군요~ㅎㅎ
    하긴 일식은 태양-달-지구가 늘어서서 달이 태양을 가리는 거니까, 보름이 될 수는 없겠네요.그믐이어야겠죠..
    월식은 태양-지구-달이 되서 지구 그림자에 달이 가리는 거니까 보름날이어야 하겠지만요.
    없는 일식/월식을 만들어내는 거야 상관 없지만...
    아예 있을 수 없는 일(보름날 일식)을 만들어 낸 건 좀 심하긴 하네요...

  5. 보름엔 월식이 가능 2009.09.01 2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식은 낮에 달이 하늘에 있어야 하므로 보름일 수 없어...보름엔 달이 밤에 가시권에 들어오기 때문...

  6. 보름엔 월식이 가능 2009.09.01 2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는 요새 초4년들이 배우는 건데...그것도 1학기에...

  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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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Pussy Porn 2012.07.21 2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팬으로서 할수잇다는건 이런 글로만 응원해줄수밖에 없단걸

  10. Favicon of http://rocville.com/?p=Events BlogIcon Ciara 2012.08.11 2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이는 현재의 측정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도 그러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어찌되었던 과거의 일식이 역사기록과 다를 수 있

  11. Favicon of http://www.bnlug.org/ BlogIcon bnlug 2012.10.03 1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되기도 하고, 스스럼 없이 노팬티임을 알리고, 친구에게 하이힐을 신게 하고, 자신을 잡으라거나, 지

  12. Favicon of http://www.fashion-pascher.org/22-veste-franklin-marshall BlogIcon veste franklin marshall pas cher 2012.10.24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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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미실은 일식이 있다하고 덕만이 일식이 없다는 설정을 하였다면, 극이 더 극적이고 역사에 근접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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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담과 미실의 샅바싸움


미실은 비담에게 "하늘과 교통하는 자라면 자신의 운명이 어찌되는지 아느냐? 니놈은 언제 죽게 될것 같으냐?" 라고 묻는다. 이대목에서 떠오르는 장면은 덕만이 사막에서 생과 사를 선택하는 것으로 죽음의 처지에 처하게 된다. 이때 덕만은 장기알을 먹어 버려 죽음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비담은 "신국의 폐하보다 3일이 모자를 운명"이라고 한다. 이는 미실이 진평을 죽이지 않는다면, 비담은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보기 좋게 미실과 비담의 기싸움은 비담의 승리로 끝났다. 이는 미실이 흔들리는 단초를 제공한다.

덕만의 미실 흔들기 4단콤보 

1단 콤보 비담의 미실흔들기

미실은 이미 신궁에서 제사를 지낼때, 화주를 이용해서 불을 지핀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비담이 화주(돋보기)를 이용해 불을 지핀것을 미실은 간파하고 있다. 비담과 미실은 격물(과학)을 이용하여 혹세무민하는 것을 순순히 인정한다. 하지만, 비담은 "미실 당신은 까발릴 수 없다"고 당당히 말을 한다. 자신의 거짓이 들통나면, 미실 또한 들통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담은 미실이 덕만과 유신에게 했던 말을 고대로 미실에 돌려준다. 그래서 미실은 그동안 자신을 압박한 존재가 덕만과 유신이 꾸민이란 사실을 간파하게 된다. 

내부적으로 미생(정웅인)과 신녀인 설매(조명진)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므로 해서 자중지란에 빠진다.

처음 덕만은 미실이 사람을 꽤뚫는다는 이유로 비담을 변장을 시킨다. 하지만, 비담은 덕만의 계략을 벗어 던지고, 가면을 벗어 버린다. 모자간에 기 싸움이 시작하는 순간이다. 비담은 미실의 심기를 건든다. 허패와 진패의 갈림길에서 미실은 고민을 거듭한다. 


덕만의 모든 계략은 미실의 권위를 낮추는데 모든 패를 던진것이다.


설원랑은 "덕만은 잃어버릴것이 없지만, 미실은 잃어버린 것이 많다"고 고언을 하며, 덕만의 놀음에 놀아나지말고, 미실의 마당에서 놀게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미실은 비담의 생각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비담이 미실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실은 정말 자신의 아들을 몰라 봤을까?


2단 콤보 죽방과 고도

미실이 여론조작을 하던 방법대로 덕만은 죽방과 고도를 군중에 침투시켜서 언론조작을 감행한다. 그리고 내기를 한다. 이는 야바위꾼들이 주로 사용하는 숫법이다. 여론조작전에 뛰어든 죽방과 고도가 밑바닥 여론을 조작하고 세상이 미실에 묻고 있다, 그러니 "세상을 향해서 반신임을 증명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백성들을 흔들어 놓는다.  


3단 콤모 서현과 용춘 그리고 진평

유신의 말을 전달 받은 서현과 용춘은 세종과 설원랑을 상대로 미실이 하늘의 뜻을 살피도록 압박을 한다. 그리고 진평으로 하여금 미실이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살피게 한다.  


4단 콤보 유신의 서찰 

덕만은 유신에게 정광력이 적혀있는 내용을 가지고 미실을 만나게 한다. 이는 미실을 농락하는 또다른 패를 던져준다. 하지만, 미실은 생각의 흩림을 막기위해서 유신을 만나기를 거부한다.  이미 이때부터 미실은 덕만에 지고 들어 가는 것이다.

처음 미실은 유신에 받은 서찰을 "태워버리라"고 한다. 하지만, 하지만 변심하여 서찰의 내용을 보고 신관(신녀) 설매을 불러 정광력의 유무를 파악하게 한다. 미실은 덕만이 판 함정에서 그로기상태로 점점 미실은 수렁에 빠지고 있다. 또한, 신녀 설매(조명진)와 미생과 설원랑, 세종 등 주변인물들이 미실의 결정을 흔들어 버리고 있다.

흔들리는 미실

설원랑은 "사람을 흔들면, 군이 흔들리고, 나라가 흔들릴 것"이라 한다. "미실의 통찰력을 믿는다"한다. 그러면서 모든 답은 세주인 미실에 있다고 하면서 "혼자 결정하여야 한다"고 한다. 미실은 통찰력이고, 덕만은 총명함이고, 궁예는 관심법이다.

이는 다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는 제왕학 중에 하나인 것이다. 요즘도 미아리 근처에 가면 미실처럼 관심법과 통찰력을 발휘하는 분들이 돈을 쓸어 담고 있다.


이에 미실은 유신을 만나겠다고 한다.  그리고 유신의 맘을 떠본다. 천명과의 국혼이 천명의 죽음으로 물거품이 되자 덕만에 장가를 들어 부마가 되려 하느냐고 유신을 자극한다. 하지만, 역사의 기록과는 다르게 우직한 유신은 모든 것을 덕만공주에 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신은 모든 사실을 순순히 이야기 해준다. 이는 거짓말을 했을때 심리적인 동요로 눈이 흔들리게 되기 때문에 사실을 말하므로 해서, 미실을 흔드는 것이다. 이는 미실은 자신과도 같이 덕만과 유신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럴때는 진실만을 말하므로 해서 미실이 흔들린다. 미실은 유신을  마지막으로 떠본다. 유신에게 "일식이 없다", "덕만의 이번 계략은 실패했다"고 덕만에게 전해 달라고 한다.

미실은 일식이나 월식을 관찰하는 격물(과학/천문)은 오차가 항상 있다고 이야기를 한 것을 떠올린다. 그런데 비담은 확정적으로 말한다. 편지속의 월천은 "확정적으로 말했다"는 것을 근거로 덕만의 서찰이 거짓이라고 확신한다. 미실은 돌다리를 두들리는 심정으로 비담을 상대로 죽일 것이라고 역공작을 벌린다.
 
미실과 덕만의 머리 싸움이 전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형장으로 끌려가는 비담은 탈출을 감행한다. 이는 덕만이 비담에 지시를 한것이기도 하지만, 덕만은 비담을 탈출하게 만드므로 해서 미실에게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한 패이다.


미실은 도망가는 비담을 잡은후 "일식이 일어난다면, 비담 니가 어찌 도망을 가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일식이 없다"고 확신한다.
미실은 진평과 마야에게  "일식이 없다"고 보고를 하며, 비담은 혹세무민 하는 자라고 하면서  하늘에 보고를 한다고 한다. 미실은 "천신왕녀의 이름으로 공표를 하겠다"고 한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 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쉬이 넘어 간다. 의외로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면, 둘중에 하나이다. 아주 우매한 자이거나, 아주 자기애가 강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사람이다. 특히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광신에 빠지기 쉽다. 사기를 당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미실은 자기의 능력을 과신하고, 서서히 덕만의 함정에 빠진다.


꽃놀이 패를 들고 있던 덕만

미실의 생각대로 보름 오시에 일식은 없었다. 하지만, 다음날 비담을 화형을 하려는 순간 일식이 일어난다.


월천은 격물에는 오차가 있고 일식은 2일 정도의 오차가 있다고 했다. 그러니 미실이 보름날 일식이 있다고 선언하는 순간 어출쌍생, 성골남진. 개양자립, 예언이 이뤄진다. 만약, 미실이 일식을 인정하면, 개양자로 덕만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식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당장에는 미실의 승리자가 된다. 

다음날 일어난다면 미실의 권능은 땅에 떨어진다. 일식이 일어나도 미실은 지고, 일식이 일어나지 않아도  미실은 지는 패를 쥐고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덕만은 꽃놀이패를 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래도 이기고, 저래도 이기는데 덕만은 왜 그리 머리를 굴리고, 알천을 비롯해서 유신과 비담에게 개고생을 시켰을까?


적을 속이려면 아군을 속여라, 내가 먹자니 먹잡을 것 없고, 남주자니 아깝다, 계륵이 떠오르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를 속여라"는 병법을 덕만은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지에서 계륵이란 고사가 있다.


조조는 한중을 차지하기위해서 군을 움직이지만, 촉은 재갈량의 계략으로 지구전으로 끌고 간다. 이에 조조는 교착상태에 빠진 전황을 바꿀수 없다고 생각하고 무심결에 "계륵"이라는 말을 한다. 이에 조조의 속내를 간파한 양수 만이 조조가 한중땅을 치지 않고, 철수할 것을 간파하고, 짐를 꾸려 철군준비를 한다.

이에 조조는 양수조차 속일 수 없다면 재갈량이나 유비도 속일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양수를 참형에 처해버린다. 양수를 죽임으로서 자신의 철군계략이 적에게 알려지지 못하게 한것이다. 이방법은 이미 드라마 선덕여와에서도 나왔다. 속함성, 아막성 전투에서 설원랑이 군을 이끌고, 속함성으로 진군한다. 그러다, 백제의 척후병이 이를 확인한후 바로 회군한다. 그런데 설원랑의 부장을 비롯해서 신라군은 이를 황당해 한다. 적을 속이기 위해서 아군을 속인 것이다.


만약 미실이 현대에 태어났다면, 심리학자로 대성하지 않았을까?  미실이 사람의 심리와 눈빛과 목소리를 가지고 거짓유무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담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자를 먼저 미실에 접근을 시키고 그다음 수로 순박한 유신을 적진속에 잠입을 시켜서 확신을 주게 만든다. 또한, 자기애가 강한 비담이 탈출할하라는 지시로 미실을 믿게 만든것이다. 

천하의 미실을 속이기 위해서 비담도 속이고, 유신도 속여야 하는 것이다. 덕만에게 장기판의 말로쓰겠다고 했다. 유신은 28편에서 확실이 장기판의 졸로 덕만의 말이 되어 움직였다. 뜨는 덕만과 지지 않으려 하는 미실의 싸움은 전입가경으로 치달리고 있다.

과거에는 미실처럼 눈빛이나 얼굴표정으로만 거짓을 판단하였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시대 사극처럼 '니죄를 니가 알렸다'는 식으로 고신(고문)을 하지도 않았다. 이는 별도로 포스팅을 할 것이다. 


역사 기록에는 일식이 있었을까?

그렇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와 같이 역사적 기록으로 일식은 있었을까?  이전 기사를 꾸준히 본사람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하지만, 처음 기사를 보시는 분들을 위해서 일식에 관한 기록들을 모두 뽑아 보았다.

진평왕 비슷한 시기에 일식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19년(572)에 사신을 북제(北齊)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초하루 경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39년(592) 가을 7월 임신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원성왕
3년(787) 봄 2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몸소 신궁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다. 여름 5월에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가을 7월에 누리가 곡식을 해쳤다. 8월 초하루 신사에 일식이 있었다.

위의 삼국사기 기록을 보더라도 진평왕 시기에 신라나 백제나 고구려에 일식은 없었다. 만약, 미실은 일식이 있다하고 덕만이 일식이 없다는 설정을 하였다면, 극이 더 극적이고 역사에 근접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우리는 스포츠를 볼때 경기의 룰을 알고 보면, 스포츠의 재미가 배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극을 볼때, 역사를 알고 본다면, 사극이 좀더 재미가 있습니다.  사극으로 인해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를 알아가는 과정이니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공부재료가 될 것 같다.  몰랐던 부분이나 잘못알고 있던 부분을, 잠시 잊고 있었던 부분을 알아가는 과정이 기쁠때가 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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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26 1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고생이라는 표현이 재미있네요...

    원래 병법에서 작전은 병사들도 모르게 하지요.

    거짓 패배 작전을 쓰는데, 병사들이 안다면 적이 속지 않을테니까요.

    근데, 문제는 병사들이 진짜 퇴각이라고 생각하면 대오가 흐트러져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군대의 군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6 1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설원랑이 속함성, 아막성 전투에서도 써먹었지요.

    • 재석 2012.05.04 0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블로그 구경 잘하고 갑니다....^^블로그 잘 보고 갑니다....^^재미있는 동영상 자료 많은곳. 연예인 방송 노출 사고 등등.. 화제의 연예인[H양] [K양] 동영상 풀버전.짤리기 전에 보셈.아직 못보신 분들은 여기서 보셈 http://xv.dq.to

  2. Favicon of http://www.cyworld.com/ajihompy BlogIcon 아지아빠 2009.08.26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이곳에 와서 글을 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네요..ㅎㅎ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6 1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글을 열독하시는 분이시군요.. ㄳ 합니당..

      방송하지 않는 평일날도 포스트는 계속됩니당.. ^____^

      추천 많이 해주셈. ㅋㅋ

  3.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26 1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에는 공부 안시키시네요 ㅎㅎ
    이 글도 너무 재미있어요. 그런데 아마 이번에 미실이 이겼더라면 덕만이 궁으로 들어가는 길이 막히니 어떻게든 들어가게 해주려고 일식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4.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26 12: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컨셉 수정하셨나 봅니다.
    연속 공부 안시키고 즐겁게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면서....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handmaken BlogIcon 지인 2009.08.26 1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 기록은 둘째치더라도.. 보름날 일식이 생기는 걸 보고 웃을 수 밖에 없었죠. 어찌 보름에 일식이 생길 수 있단 걸까요..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6 13: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그것 보고 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가 공부를 엄청 안하고 소설을 썼어요..

      드라마 제작팀이 역사를 알겠습니까? 작가의 책임이지요..

  6. Favicon of https://qlcanfl.tistory.com BlogIcon 빛무리~ 2009.08.26 14: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젠 갓쉰동님이 아니라 쭈~욱 이반님인 건가요?
    분위기가 좀 달라지셨어요. 아버님이 글 쓰시다가 아드님한테 바통 넘기신 것 같아요 ㅎㅎㅎ

  7. Favicon of https://easygoing39.tistory.com BlogIcon 카타리나^^ 2009.08.26 1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이 일식을 맞췄다면......역시 덕만을 인정하기는 하겠지만
    천신황녀(맞나? ㅎㅎ)로서의 위상은 그대로 남았을꺼예요
    물론.....그럼으로 인해 백성들은 역시나 미실을 경외시했겠죠...
    그럼 앞으로도 왕실에서는 미실을 가볍게 볼수는 없었을텐데...
    지금까지 보아온 미실이라면 충분히 꿰뚫어볼꺼란 생각을 했답니다
    저도 일식이 일어난다가 맞다고 생각할정도였는데..
    미실의 통찰력이 갑자기..뚝~ 떨어진 기분이 드는것은 왜인지...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6 16: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충분히 카타리나님의 말씀이 맞습니당.. 그런 면도 있겠네용.
      늙어서 그러지 않을까요..

      설원랑이 속함성 전투가 있은지 몇년이 지났다고 했으니.. ㅋㅋ

    • Favicon of https://easygoing39.tistory.com BlogIcon 카타리나^^ 2009.08.26 16: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 역시 나이일까요?

      비석을 새겨진 그 예언을 다시 한번만 봤어도
      그리 당하지 않았을텐데...
      미실아....힘내라 힘~
      (저 미실 편애모드인 사람입니다 ㅋㅋㅋ)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6 16: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실이 점점 불쌍해지요.. ㅋㅋ

      하늘에 태양은 둘일수 없당..

      현재 기점으로 아직 진평왕의 할머니인 사도태후도 죽지 않을 시점일텐뎅..

  8. 이선재 2009.09.05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이 월천대사한테 쪼끔만 더 잘해줬더라면... 첨성대에 홀딱 넘어간 대사님 ㅜㅜ

  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0.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check this out 2012.07.14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이 진평왕의 맏딸이고, 천명이 두번째 딸이

  11. Favicon of http://hubshout.com/?SEO-Reseller-Program&AID=84 BlogIcon Gennie 2012.09.29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라고 묻는다. 이대목에서 떠오르는 장면은 덕만이 사막에서 생과 사를 선택하는 것으로 죽음의 처지에 처하게 된다. 이때 덕만은 장기알을 먹어 버려 죽음에서 벗어난

  12. Favicon of http://hondamotos.grupocaiuas.com.br/biz-125 BlogIcon biz 125 2013.03.21 0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웹상에서 최고의 블로그 중 하나에 대한 경연 대회에 참여한다. 이 사이트를 추천!

부제 : 광복절, 신라의 전승기념일
진평왕은 미실의 치마폭에 있었을까?

mbc 선덕여왕, 진평왕(조민기)

mbc 사극 선덕여왕에서는 진평왕(조민기)이 미실(고현정)의 치마폭에 휘둘려 나약한 군주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의 역사는 진평왕을 전쟁영웅으로 기록하고 있다. 선덕여왕의 모본으로 삼고 있는 현존하는 화랑세기에도 진평왕이 나약하다는 내용은 없다. 또한, 진평왕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의 침략을 막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 <선덕여왕>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예전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는 나오는 내용이다.  선덕여왕은 602년 <아막성>전투를 통해서 신라의 화랑들의 활약상을 보여주었다.
 

알천(이승효)

이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다음 기사를 참조 하시길 바란다.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화랑 신화창조의 성지 아막성, 광개토태왕의 # , 이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뜬 사람은 알천 역을 맡았던 이승효이다. 연개소문에서는 화랑들의 활약상과 더불어 김유신(엄태웅)을 당시 전쟁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물론, 연개소문에서 김유신(595년생)이 603년에 9살로 전쟁이 참여하여 화랑의 무서움을 보여주었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8살로 아막성 전투에 참여하였다. 드라마 연개소문의 기록을 1년 갱신한 신기록이 되시겠다.


용춘(도이성)

그럼, 진평왕이 화랑과 군대를 이끌고 참여한 전쟁은 언제 였을까? 602년 백제의 침입을 막은 전쟁이 아막성 전투였다면, 603년 전쟁은 고구려가 자신들의 한강유역인 구토를 회복하는 전쟁이고, 신라는 지키지 않으면, 교역로를 잃는 신라의 명운이 걸린 전쟁이였다. 삼국사기는 이 전쟁을 북한산성 전쟁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화랑세기는 <한수>전쟁으로 기록하고 있다. 


화랑세기 13세 풍월주인 용춘는 형과 같이 따르던 9세 풍월주인 비보를 따라 603년 한수 전쟁을 참여하고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이때 용춘과 전쟁에 참여하여 공을 세운이가 <선덕여왕>에서는 천명을 독화살로 죽이는 미생의 아들 대남보(류상욱)이다. 

대남보(류상욱)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역사이야기] - '천명', 대남보의 독화살에 죽었다?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시리즈 글을 보지 않는 분을 위해서 간략히 소개하자면, 대남보는 용춘의 심복이며, 그림자 무사였다.

또한, 대남보(류상욱)의 딸은 용춘(도이성)과 관계해서 3명의 자식을 낳고, 그 의 후손인 용태가  춘추와 관계하여 인태각간을 낳는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은 미실과 대척점에 있는 용춘의 충복을 미생(정웅인)의 아들로 만들어, 덕만을 죽이려 하다가 천명을 죽이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남보는 그 아들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도록 타일렀다. 세 아들은 모두 충절을 숭상하였다. 건복(建福) 20년(603) 공과 비보랑이 제(帝)를 좇아 한수(漢水)의 전쟁에 나갔다. 남보에게 공으로 대나마를 주었으나 받지 않았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603년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위의 기사와 이 기사를  [역사이야기] - 천명 죽음, 대남보 천명 쏘고, 선덕여왕 국민 쏘다  참조하기 바란다. 


8월 15일은 광복절, 신라는 전승기념일

그럼 왜 신라는 8월 15일을 전승기념일이라고 기념하였을까? 그 해답은 해상왕 장보고와 동시대에 살고, 장보고와 연관되어 있던 일본의 엔닌이라는 승려가 기록한  <입당구법순례행기>이다.

1. 우리의 명절중 중국에서 비롯된것들이 많은데 중추절도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중추절과 추석은 별도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이런 와중에 중국의 슝베이 역사학자가 <중추절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이다>라고 <중추절 한반도 기원설>을 주장하고 있으니 경청동지할 일이긴 합니다. 
  
사실 <중추절>과 <추석>과 <한가위>는 조금씩 기원의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의 추석의 기원은 중국쪽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들 간에 차이점에 대해서는 한가위를 즈음해서 포스팅 할 예정이다.

당나라 이전 시기에는 중국에서 중추절에 관한 기록이 전무하고, 당나라 중기 말기 시대의 기록인 <초학기>에도 8월 중에 있었던 <중추절>에 관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슝베이가 중추절은 "신라의 것으로 부터 이다"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9세기 중엽에 일본의 승려인 <엔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라는 순례기에 의해서 입니다. <입당구법순례행기>는 9세기의 동아시아의 경제/문화/교통에 관한 중요한 사료입니다.

엔닌이 활동하는 시기는 <장보고>가 청해진에 터를 잡고 3국의 해상을 관할하고 있는 시기와 일치합니다. 엔닌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귀국할때 장보고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귀국하고 있음을 그의 순례행기에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 드라마로 제작된 <해상왕장보고>도 이 사료를 참고했다고 합니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 5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안압지출토 금동 초심가위

옛날 가위를 보면 화려하기도 합니다. 일본 국보급 유물들이 있는 <정창원>에서 보관중이 신라시기 금동가위나 신라의 무덤이나 안압지에서 출토된 금동초심지가위, 백제의 무덤에서 나온 가위를 보면 요즘 보는 가위랑 다르게 자르는 곳이 반달모양(송편)입니다. 두개의 면이 하나로 합쳐지면 영락없는 완전한 둥근달 모양이 되기도 합니다.  서로 따로 만든 반달모양의 송편이 나중에 두편이 하나로 합친 모양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조직을 양편으로 나누는 것은 원화제도에도 나타납니다. 2명의 공주급 여자를 대표자로 세워 그아래 원화들과 화랑들을 지휘통제하는 역활을 합니다. 한가위의 길삼놀이는 한시적인 행사이고 원화는 상설적인 조직이니 원화들이 한가위때 길삼 놀이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원화의 기원이 이전 유리왕때의 양편으로 나뉘어 길삼놀이던 하던 조직이 상설조직화 되어 원화제도가 되었을 겁니다. 
 
삼국사기의 초기 편년이 많은 의심을 받고 있지만 이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엔닌이 있는 시기와는 800년의 차이가 나지만 이를 지속적인 행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엔닌의 (839년)기록에 의하면 발해와의 전쟁에 이겨서 8월15일 행사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발해는 698년 에서 926년 까지의 국가이고, 대진국에서 발해라 명한 때는 713년 대조영때이니 신라 성덕왕때 입니다. 발해와 신라의 전쟁기록은 유일하게 733년 겨울 전쟁기사 입니다.

 
하지만 엔닌이 신라노인의 말을 빌어 기록한 발해와 신라의 전쟁의 승전기록에 대한 문제점은 신라 성덕왕 32년(733년) 가을 7월 발해가 등주를 치자 발해의 배후에 있던 신라에 당의 현종이 발해를 쳐줄 것을 요구하고, 그해 겨울 신라가 발해의 남쪽 경계를 침입하였으나 눈이 많이 내려 수 많은 인명피해만 입고, 철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발해와의 전쟁승전기념일은 될 수 없고 기록과 상호 모순이 되어 채택될 수 없습니다.
 
가끔 신라에 등장하는 말갈이란 표현은 대체적으로 고구려와 말갈을 혼용하여 표기되는바 발해말갈 고구려/말갈을 혼동할 개연성은 다분히 있습니다.
 
<구당서>나 <신당서>에 의하면 신라는 8월 15일이 되면 왕앞에서 활쏘기, 승마를 하고 , 술과 음식을 나눠먹는 다고 합니다. 
 

sbs 사극 연개소문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도 고구려가 신라의 <북한산성>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603년 음력 8월이고, 진평왕이 직접 북한산성에 진주하여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왕이 직접 전장에 나아가서 싸우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당시 수와 전쟁에서 이긴 동북아의 패자 고구려를 신라 왕이 직접 통솔하여 물리 쳤다고 하는 의미에서 신라에게는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극 <연개소문>에서는 김유신이 화랑들을 이끌고 고구려군을 무찌르는 장면이 나오지만 김유신은 595년생입니다. 603년 북한산성 전투때 김유신의 나이는 우리나라 나이로 9살이 되니 사실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재미를 위한 허구가 항당한 SF물이 되어 버립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시기가 공교롭게도 668년 가을이니 한가위는 이를 기념했을 수도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시기는 추수철이 지난 늦가을인 경우가 많은데 추수철이 지난 가을에 물리쳤다면 먹거리도 많은 시기이니 잔치를 벌이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요. 이전 가베(길삼)과 승전일들이 겹치는 겹경사가 이니 더욱더 풍성한 명절 한가위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공교롭게도 8월15일은 광복절이고 신라에게는 음력 8월 15일이 승전기념일이란 공통점도 있습니다. 

광복절을 맞이 하여, 신라는 8월 15일을 어떻게 기념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재미가 있고 도움이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이 기사도 추천합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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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blog.daum.net/timur12/ BlogIcon 베르세르게케르 2009.08.14 1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평왕이 그런 인물이었군요.

    하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봐도 용맹한 전쟁군주로 나오지, 드라마에서처럼 미실이라는 여자한테 농락당하는 나약한 사람으로는 나오지 않으니까요.

    어찌보면 진흥왕과 더불어 신라가 강대국으로 도약하는 기틀을 다진 임금인데, 드라마에서는 그런 부분이 쏙 빠져 보는 내내 매우 아쉬웠습니다.

    좋고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제 블로그에도 재미있는 글들을 많이 올리고 있으니, 심심할 때 한 번 놀러오세요~ ^ ^

  3.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14 1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포스팅 읽을 때 마다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는 기분..
    앞으로는 이반님이라고 불러야 하남요? ㅎㅎ 참 버리기 아까운 닉네임인데 말이에요.

  4. 천지개벽 2009.08.14 1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mbc제작이라 그렇지요

    이드라마의 제작목적은 신라시대가 여성스럽고 나약한 이미지로 만들려는 의도!

    통상의 사극 남자출연자들이 어떤지 보면 알긋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3: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목적성이 있어서 그런거지요..
      강력한 진평과 강력한 미실의 대결이 더 흥미로울텐데요.

      요즘 트랜드가 여성의 강조이니.. 이해할 측면도 있음..

      천추태후도 그렇구요..

  5. Favicon of http://www.taijimania.co.kr BlogIcon 아지아빠 2009.08.14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주 들어와서 매번 잼나게 읽고 가는데 이제서야 RSS 구독을 하게 되었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6.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14 1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이라고 해서 저도 50이신 줄 알았어요... ㅋㅋ

    이반은 톨스토이의 소설 바보 이반인 줄 알았는데... ㅋㅋ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다닌까요.. ㅋㅋ
      이반은 바보 이반도 있음.. 바보스러움.. 오직 한길만 가는.. 머 그런뜻이 있지요..
      러시아나 불가리아에서는 차르(황제)였더군요.. ㅋㅋ

      한국에서 이반은 여성주의,,또는 동성애를 뜻하기도 하지요..
      일반에 합류하지 않은 이류,, 이반..

  7. 2009.08.14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x님 출현햇당.. ㅋㅋ
      메인에 떳나요.. 갑자기 트랙픽 폭탄이 터져서 살펴 봤는데 없던데요.. ㅋㅋ

      그런데 추천 안하는 사람 무지 많아요.. 글값좀 내 달라는뎅..

      추천하면 안된다는 좌우명을 가지고 사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지 첨 알았음... ㅋㅋ

  8. 흠... 2009.08.14 1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민기 인데.....

  9. Favicon of http://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2009.08.14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 메인 문화/연예 부분에 '전쟁영웅 진평왕?'이란 문구와 함께 그림으로 크게 나오셨답니다. ^^
    축하드려요. 늘 그렇지만 당연히 추천하고 갑니다.

    그동안 트랙백을 걸고 싶어도 소스가 없어서 '아! 갓쉰동님이 싫어하시나 보네'했답니다.
    앞으로 관련글 쓰게 되면 마구마구 트랙백 걸겠습니다.
    ㅎㅎㅎ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방금 확인했습니당.. 역시 제목은 다음이 잘만듭니당. ㅋㅋ

      저도 왜 트랙백을 안해주낭. 해서 다른데 트랙백도 못걸고 있었습니당.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해서리.. ㅠ.ㅠ. ㅋㅋ;;

      이제 그동안 못한것 까지 맘껏하셈.. ㅋㅋ

  10. 작은이 2009.08.14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이렇게 배우고 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외국에 살면서 드라마로 확인하는 역사가 이렇게 다르다는걸 또 확인하며..
    걱정이예요. 드라마 보는 것으로 역사를 기억하는 우리 꼬마들..
    드라마 만드시는 분들 외국에 사는 어린 친구들도 좀 생각해 주시면서 만들면 인기가 없어져서 안될까요?
    그래도 한국 역사 알리기 위해 만드는 거면 좀 작가님들 PD님들 공부 좀 하시고 만들어 주세요...
    아님 갓쉰동님에게 조언을 좀 얻으시든지.. ㅠ.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5: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항상 조심스럽게 쓰고 있습니다.. 제가 잘못된 이야기를 하면, 잘못알게 되닌까요.. 그래서 글쓰기 어려워 지내요.. 확인 작업을 거치게 되고,, 오타는 그냥 무시해주셈.. ㅋㅋ

  11. BlogIcon TISTORY 2009.08.14 1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TISTORY입니다.



    티스토리 메인에서 '8.15 광복절'을 주제로 회원님의 글을 소개해드렸습니다.^^
    혹시 노출과 관련하여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tistoryblog@hanmail.net 메일을 통해 말씀해주세요!


    앞으로도 재미있고 유익한 글로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2. Favicon of http://djtlsfudnf.tistory.com BlogIcon 어신려울 2009.08.14 16: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날씨가 너무나 더워 암것도 하기 싫어지네요...
    더위식히고 올께요.ㅎㅎ

  13. Favicon of http://blog.daum.net/doong2009 BlogIcon 둥둥 2009.08.14 2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시대 책을 한두권만 읽어봐도 지금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완전히 다름을 알게 되더라구요 드라마다 보니 픽션이 어느정도
    가미되는거야 이해해야겠지만 이 드라마 보고자란 사람들은 나중에는
    선덕여왕과 김유신이 사랑한 사이라고 믿을것 같네요
    선덕여왕 이야기가 나와서 써본 글입니다..ㅋㅋ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5 09: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쩌면 드라마가 당시 현실이였지동..
      단, 덕만이 나이가 유신보다 어리다는 전제가 깔린다면요..

      저는 덕만이 어렸을때 왕위에 올랐다고 보는 입장이니.. 유신이 더 나이가 많았겠지요.. ㅋㅋ

      애들이 걱정이긴 해요.. 삼국지를 읽고 중국의 삼국시대가 그랬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있으니.. ㅋㅋ

  14. Favicon of http://hwa2jin.textcube.com BlogIcon 참좋은미시 2009.09.13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이가 주인공이라 부각을 시켜야하기 때문이겠죠.
    전 개인적으로 김유신과 사랑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15. Favicon of http://1035.tistory.com/ BlogIcon toy 2009.09.13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사와 야사, 논란까지 있는 화랑세기까지.. 폭넓은 역사적 인식이 대단하시네요..
    거의가 선덕여왕에 관련된 걸 보면 갓쉰동님도 선덕여왕 광팬이신듯..ㅎㅎ..
    월요일 저녁이 빨리 왔으면 좋겠지만 일요일이 빨리 지나가는 건 너무 싫어요~ㅎㅎ

  16.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8. Favicon of http://biancalaowe.livejournal.com/821.html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5 gallon 2012.11.01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9. Favicon of http://365ideasdenegocio.blogspot.com/2011/11/se-alquilan-perros.html BlogIcon petsafe invisible fence for cats 2012.11.06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대사관 공보참사관 집에서 열린 오찬에는 정부 관계자들과 인터넷 업체

  20. Favicon of http://strandkurv.blogspot.com/2008/05/lejes-hund-ah-og-i-gr-glemte-jeg-at.html BlogIcon innotek electric dog fence 2012.12.22 1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 기능을 갖춘 스크린 캡쳐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프로그램 없이도 웹페이지를 가장 빠르

  21. Favicon of http://emergencyfood.xanga.com/ BlogIcon what is a julian date on food 2013.01.02 16: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사기는 이 전쟁을 북한산성 전쟁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화랑세기는 <한수>전쟁으로 기록하고 있다.


1. 우리의 명절중 중국에서 비롯된것들이 많은데 중추절도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중추절과 추석은 별도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이런 와중에 중국의 슝베이 역사학자가 <중추절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이다>라고 <중추절 한반도 기원설>을 주장하고 있으니 경청동지할 일이긴 합니다.
 


 
사실 <중추절>과 <추석>과 <한가위>는 조금씩 기원의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의 추석의 기원은 중국쪽에서 찾아야 합니다.

당나라이전 시기에는 중국에서 중추절에 관한 기록이 전무하고 당나라 중기 말기 시대의 기록인 <초학기>에도 8월 중에 있었던 <중추절>에 관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슝베이가 중추절은 "신라의 것으로 부터 이다"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9세기 중엽에 일본의 승려인 <엔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라는 순례기에 의해서 입니다. <입당구법순례행기>는 9세기의 동아시아의 경제/문화/교통에 관한 중요한 사료입니다. 엔닌이 활동하는 시기는 <장보고>가 청해진에 터를 잡고 3국의 해상을 관할하고 있는 시기와 일치합니다. 엔닌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귀국할때 장보고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귀국하고 있음을 그의 순례행기에 알수 있습니다.
이전에 드라마로 제작된 <해상왕장보고>도 이 사료를 참고했다고 합니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 5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안압지 출토 :금동심지가위)

 

 

 
옛날 가위를 보면 화려하기도 합니다. 일본 국보급 유물들이 있는 <정창원>에서 보관중이 신라시기 금동가위나 신라의 무덤이나 안압지에서 출토된 금동초심지가위, 백제의 무덤에서 나온 가위를 보면 요즘 보는 가위랑 다르게 자르는 곳이 반달모양(송편)입니다. 두개의 면이 하나로 합쳐지면 영락없는 완전한 둥근달 모양이 되기도 합니다.  서로 따로 만든 반달모양의 송편이 나중에 두편이 하나로 합친 모양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조직을 양편으로 나누는 것은 원화제도에도 나타납니다. 2명의 공주급 여자를 대표자로 세워 그아래 원화들과 화랑들을 지휘통제하는 역활을 합니다. 한가위의 길삼놀이는 한시적인 행사이고 원화는 상설적인 조직이니 원화들이 한가위때 길삼 놀이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원화의 기원이 이전 유리왕때의 양편으로 나뉘어 길삼놀이던 하던 조직이 상설조직화 되어 원화제도가 되었을 겁니다. 
 
삼국사기의 초기 편년이 많은 의심을 받고 있지만 이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엔닌이 있는 시기와는 800년의 차이가 나지만 이를 지속적인 행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엔닌의 (839년)기록에 의하면 발해와의 전쟁에 이겨서 8월15일 행사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발해는 698년 에서 926년 까지의 국가이고, 대진국에서 발해라 명한 때는 713년 대조영때이니 신라 성덕왕때 입니다. 발해와 신라의 전쟁기록은 유일하게 733년 겨울 전쟁기사 입니다.

 
하지만 엔닌이 신라노인의 말을 빌어 기록한 발해와 신라의 전쟁의 승전기록에 대한 문제점은 신라 성덕왕 32년(733년) 가을 7월 발해가 등주를 치자 발해의 배후에 있던 신라에 당의 현종이 발해를 쳐줄 것을 요구하고, 그해 겨울 신라가 발해의 남쪽 경계를 침입하였으나 눈이 많이 내려 수 많은 인명피해만 입고, 철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발해와의 전쟁승전기념일은 될 수 없고 기록과 상호 모순이 되어 채택될 수 없습니다.
 
가끔 신라에 등장하는 말갈이란 표현은 대체적으로 고구려와 말갈을 혼용하여 표기되는바 발해말갈 고구려/말갈을 혼동할 개연성은 다분히 있습니다.
 
<구당서>나 <신당서>에 의하면 신라는 8월 15일이 되면 왕앞에서 활쏘기, 승마를 하고 , 술과 음식을 나눠먹는 다고 합니다.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도 고구려가 신라의 <북한산성>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603년 음력 8월이고, 진평왕이 직접 북한산성에 진주하여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왕이 직접 전장에 나아가서 싸우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당시 수와 전쟁에서 이긴 동북아의 패자 고구려를 신라 왕이 직접 통솔하여 물리 쳤다고 하는 의미에서 신라에게는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sbs: 연개소문)
사극 <연개소문>에서는 김유신이 화랑들을 이끌고 고구려군을 무찌르는 장면이 나오지만 김유신은 595년생입니다. 603년 북한산성 전투때 김유신의 나이는 우리나라 나이로 9살이 되니 사실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재미를 위한 허구가 항당한 SF물이 되어 버립니다.  
 
KBS <대조영>이나 그전에 MBC에서 정통역사물과 반동북공정을 기치로 내걸어 국민사극으로 각광을 받은 <주몽>에서도 역사적인 기록과 부합되지 않는 장면을 너무 남발해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역사를 희화화 했다고 지탄을 받고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과 하등 다를것이 없다고 지적된적도 있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시기가 공교롭게도 668년 가을이니 한가위는 이를 기념했을 수도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시기는 추수철이 지난 늦가을인 경우가 많은데 추수철이 지난 가을에 물리쳤다면 먹거리도 많은 시기이니 잔치를 벌이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요. 이전 가베(길삼)과 승전일들이 겹치는 겹경사가 이니 더욱더 풍성한 명절 한가위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공교롭게도 8월15일은 광복절이고 신라에게는 음력 8월 15일이 승전기념일이란 공통점도 있습니다.

2. 2006년 중국 역사학자 슝베이의 발언으로 촉발된 중추절 <한반도기원설> 주장은 중국내 네티즌의 반발과 포털업체의 발빠른 대응으로 중추절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하고자 하는 네티즌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여 한국은 고구려학을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역사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리때문에 상고시대 고구려를 연구하는 학자가 한국내에는 손가락으로 셀정도로 극히 드문 경우 였지만, 이를 기화로 고구려에 대한 연구과 활발하고 한국과 북한간의 학문적 교류가 활성화 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최근년 한국에서 오월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을 시도할때 중국에서는 이를 정부차원에서 발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사실 대부분 민속에 관한 경우 중국으로 부터 수입된것이 많습니다. 단오도 중국으로 부터 건너온 것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단오제를 한국에서 유네스코에 등록을 시도하는 것은 중국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것일 겁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시도하여 고조선에서부터 고구려,발해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을 시도하고 해당 왕조를 중국의 지방민족사로 폄하를 하고 있는 데 한국에서는 삼국사기와 유물을 들어 한민족의 역사를 침탈하는 행위로 받아들이고 분노하는 입장과 비슷할것 같습니다.


사실 단오제의 유네스코등록의 이면에는 동북공정에 대한 반발심리도 작용한것이 사실입니다.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에 등록하려는 것은 '단오'라는 풍속을 등록하려는 것이 아니고. '단오제'라는 축제(카니발)를 등록하는 것 입니다. 조금 미묘한 차이가 있기는 있습니다.
 



앞으로도 현재와 같은 지역구도하에서 한중일간 문화유산(축제/유적)들을 선점하고 등록하려는 경쟁이 치열할 것은 안봐도 DVD일것 같습니다.

한국과 북한 또는 러시아와 공동대응하는 전략이 절실합니다.

 
역사는 돌고 도는가 봅니다. 동북공정은 매년 반복되고 있었지만 재대로 대처하지 못한것을 보면 말입니다. 다행이 국가적인 사업으로 고대역사 왜곡에 관한 기관을 설립한다는데 위안을 삼아야 할까 봅니다.
 
3. 한가위가 다가오지만 어떤이에게는 따스하고 풍성한 달로 다가오고.. 남북회담까지 연기가 될만큼 수해로 인해 피해를 입은 북한의 사람들과 <비정규직보호법>때문에 직업을 잃어 버리고, 생계를 걱정하고, 생존권까지 박탈당한 어떤이들에게는 외로움과 설움으로 다가오는 차갑고도 눈물나는 달이 될겁니다. 

 (북한 수해 현장: 로이터)
 
또한, 망국으로 인해 고국으로 부터 버림받고 지금까지 고통을 받고 있는 우토로의 주민들에게는 그동안도 고국의 고향을 그리는 망향의 한숨의 달이 였을겁니다. 하지만 이번 한가위의 달만은 고국에서 커다란 선물을 주고, 우토로 주민들에게 만이라도 진정한 광복절, 승전기념일 같은 한가위가 되었으면 합니다.


 
달속에 있다는 두껍이, 토끼, 전갈, 게가 알겠지요.. 달뒤에 있는 숨은 뜻을 그 누가 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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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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