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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복신

계백, 대야성 윤충 공 가로챈 의자왕과 계백 전쟁영웅? 김수현 일침 에서 사비로 들어온 김춘추를 은고는 암살하려 하지만, 계백이 김춘추를 살려낸다. 사실 김춘추가 642년 7월 미후성을 비록한 40개성이 함락된 직후 백제의 수도에 당의 복식을 입고 나타날 이유가 없지만, 에서는 못하는 것 없다. 오죽하면 작가인 김수현은 에 대해서 똘복이가 언제 어디서한문을 배웠지 하는 드라마 개연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을까? 더군다나 김수현은 자신의 트위터에 “상상으로 쓸 수 없는 부분은 철저히 자료조사를 한다”며 요즘 드라마의 극중 개연성 뿐만 아니라 무분별하게 상상으로 쓸 수 없는 부분인 역사적인 팩트와는 다른 드라마를 쓰는 작가에 대한 일침을 하였을까? 김수현의 일침에 벗어날 대한민국 사극작가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을 쓴 김영현은 선덕여왕에서 역사와 일치하는 단 하나의 장면도 .. 더보기
계백, 부여복신, 무왕과 의자왕 어머니 선화공주 사랑 없었다 증언하다? 에서 무왕이 드디어 선화공주의 아들인 의자왕자를 세자로 내세운다. 의자가 세자가 된때는 무왕 33년 632년, 정월 이었다. 의자왕자는 30살이 넘어서 세자가 된것이다. 그런데, 의자왕은 무왕의 큰아들이였을까? 대부분 태자는 성년이 되기 전에 미리 찜해두는게 관례이다. 그래야 왕실이 안정이 되고 후계싸움이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무왕은 의자왕을 30살이 넘도록 두고 보고 있다가 즉위 33년이 된 때에 의자를 태자로 책봉한 것이다. 그래서 처럼 왕자들간에 싸움이 있었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백제의 왕자나 태자들은 대부분 왜에 출장을 가는 경우가 많다. 백제 태자들을 찾는건 삼국사기에서 보다 일본서기에서 찾는게 더 빠르고 여러왕자들을 볼수가 있다. 660년 백제가 멸망한후 백제부흥군을 이끄는 부여풍(장)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