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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풍

계백 도넘은 백제사 망치기 시청률 낮은게 다행스럽다. 은 그 동안 의자왕, 계백, 은고의 삼각관계에 힘을 소진하여 백제의 마지막을 어떻게 만들어갈까 궁금했는데 역시나 연장을 하고 나서 극의 완성도가 더욱 나뻐졌다. 배우들의 연기는 눈에 띄게 허술해졌다. 조미압(조미갑)의 연기와 효민이 맡은 초영(?)의 연기 눈을 뜨고 봐줄 수가 없을 정도여서 은 그 동안 보여주었던 전투신에서 학예회 수준의 전투라고 비아냥 받았는데 정말 이들의 연기는 학예회 수준에서나 볼 수 있었던 보기 드문 경우이다. 어쨌든, 은 은고(송지효)는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으로 신라에 도망을 갔다가 돌아왔다. 은고는 백제가 망한후 당나라에 끌려간다. 그러나 에서 은고가 신라에 망명을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에서 은고를 처형하라는 상소를 계백과 흥수가 막는다. 이유는 전시 중에 내.. 더보기
계백, 의자왕 서자만 41명인 정자왕, 백제 비운의 마지막 태자 부여융 양자? 사실은 의 처음은 창대하게 시작하였지만, 끝은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대부분 대한민국 사극의 한계점이다. 처음에 물량공세를 하고 사전제작으로 시청자의 눈을 현혹하지만, 초반 몇편을 제외하면 실시간 시나리오에 생중계 사극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자료조사는 등한시 되고, 제작비의 고갈로 전쟁신은 20명도 안 되는 엑스트라를 동원하거나 후반부로 가면 말로 때우기 일수다. 도 여타 사극의 범주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 사극의 주류는 여성주의 사극을 표방한다. 여성 시청자를 끌어들이지 못하는 사극은 시청률에서 고생할 뿐만 아니라 여론을 주도하는 예능이나 드라마에서 이슈화 될 수가 없다. 은 최근 사극 드라마 트랜드에 따라 무왕과 사택비 무진의 3각관계를 핵심으로, 대를 이어 의자왕과 계백 그리고 은.. 더보기
계백, 의자왕, 반란 실패한 사택비 죽고, 교기 왜로 쫓겨난다? 공주의 남자를 비롯해서 계백에서도 기본적인 팩트를 무시하는 작가의 자의적인 망상 사극이 철찬리에 방송중이다. 드라마 에서 당나라 사신으로 공손사가 등장한다. 공손사는 631년 봄 당나라 광주자사였지만, 고구려 사신으로 간다. 수나라와 대결한 고구려가 수나라를 물리치고 경관을 설치였었다. 고구려에 간 공손사는 경관을 없애 줄 것을 청원하고 고구려는 당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경관해체작업에 동의를 하고 없애준다. 이런 공손사가 백제 사신으로 오면서 자신이 한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냥 공손사의 말은 스쳐 지나면 된다. 단지, 계백에서 현재 시제가 언제인지만 알면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드라마 계백의 시제는 631년이라고 친절히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백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몇.. 더보기
은고 사비성 태울만큼 계백 사랑했을까? 공주의 남자 비롯한 역사파괴 끝은 어디까지? 에 후에 의자왕의 처(왕비)가 되는 은고가 등장한다. 드라마 계백에서 은고는 612년 선화황후가 자살한 해에 태어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이해에 계백도 태어났다. 드라마 에서 계백은 은고를 사랑하고, 은고도 계백을 사랑한다. 계백의 아버지 무진은 사택비를 사랑하고, 사택비도 무진을 사랑했다. 하지만, 사택비는 사택적덕의 명에 의해서 무왕과 결혼한다. 마찬가지로 은고는 계백을 사랑했지만, 사택비의 명으로 의자왕의 후비가 되는 것으로 그리지 않을까 한다. 의자는 628년 가잠성 전쟁에서 공을 세운 후 연좌평의 딸과 결혼 한다. 계백이 황산벌 전투에 참가할 때 처.자식을 죽이고 출전한 이유가 밝혀지는 대목이다. 계백의 작가진은 계백이 처.자식을 쉽게 죽일 수 있었던 원인을 은고에서 찾는 듯하다. 계백에게는 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