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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서현가문의 장자인 유신을 자신의 아들 하종(11세 풍월주)의 딸 영모(하종/미모: 티아라 큐리 이지현)의 짝으로 생각하고 밀어 붙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정말 미실은 강압적으로 유신의 자신의 손녀사위로 유신을 요구했을까?

또한, 유신은 영모(큐리)를 탐탁찮게 생각했을까?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는 것과 같이 대원신통으로 미실은 신라의 제사를 주관하는 신관의 지위에 있었다. 영모는 할머니 미실과 어머니 미모를 따라 천관직을 계승했다. 물론, 정치적으로 미실은 강력한 파워를 발휘를 한다. 하지만, 서현가문과 비교를 한다면 미실가문은 미천한 가문에 속한다. 


천관녀가 영모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비형랑을 아무리 기다려도 <선덕여왕>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실은 이미 비형랑은 등장하고 있다. 비형랑이 곧 비담이고, 형종이다. 비담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캐고 알아낸 이름이 <형종>이다. 이가 곧 비형랑이니 알아 먹으라는 뜻이다. 그런 미실이 곧 <도화녀>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아무리 천관녀를 기다려도 <선덕여왕>에는 나올 수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왜? 김유신의 첫사랑 <천관녀>는 나오지 않는거야?" 하지 마시고, 영모가 천관녀이구나 생각하면 된다.

위의 이전글은 천관녀가 영모일 수 밖에 없는 이유와 정치와 종교에 의해서 만명(임예진)이 <천관녀>인 영모를 멀리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글은 극히 개인적인 원한관계 때문에 만명이 천관녀 영모를 받아 들이지 못한 이유에 관한 글이다.

미실의 가계

서현의 어머니는 아양공주이다. 아양공주는 진흥왕과 사도(영실/옥진)사이에 태어난다. 사도는 사사로이는 미실의 이모가 된다. 그러니 아양과 미실은 이종사촌간이 된다. 하지만, 서현(무력/아양공주)은 진흥왕의 외손이다. 또한, 만호태후의 딸인 만명(임예진)은 남편이 되는 서현과 도망한 후 결혼하고 유신을 낳았다.

그러니 유신은 만호태후의 외손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미실이 진흥의 후비이고, 진지의 후비이고, 진평의 비가 되었다고 해도, 서현가문을 만만하게 볼 수는 없다. 물론, 서현가문도 미실을 만만한 상대로 여길 수는 없다. 어찌 되었던, 미실은 마야왕후 이전 진평왕의 물러난 왕후였기 때문이다. 


영모의 아버지 하종은 세종/미실 사이에 태어난다. 세종은 지소태후/이사부 사이에 태어났다. 그런데 하종의 정실 부인은 영모의 어머니인 미모(설원랑/준모)가 아니다.

연개소문 미실(서갑숙) 천관녀(박시연)

하종의 정실 부인은 진흥왕/사도왕후 사이에 태어난 은륜공주이다. 하종은 진흥왕의 부마가 되는 것이다. 서현의 아버지 무력이 진흥왕의 부마이였듯이 하종도 진흥왕의 부마인 것이다.


하지만 서현가와 세종/미실가는 사사로이는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 서현의 부인인 만명은 만호태후의 사녀이다. 만호태후(이화랑/지소태후)가 숙흘종(입종/금진)과 관계하여 만명을 낳았다.

만호태후는 처음 동륜태자의 비가 되었다 .하지만, 572년 미실의  꼬임에 빠진 동륜은 아버지 진흥의 후비이고, 고모뻘인 보명(구진/지소)궁의 담장을 넘다가 개에게 물려 죽는 일이 발생한다. 이일로 미실은 궁궐밖으로 쫓겨나고, 화랑의 우두머리인 <원화>지위도 잃게 된다. 만호로 보았을때, 동륜이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면, 진흥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을 것이고, 만호 자신은 왕후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첫번째 남편인 동륜태자가 죽자. 어쩔 수 없이 숙흘종(입종/금진)과 결혼을 하고, 만명을 낳은 것이다. (감깐 상식? 만명은 572년 동륜이 보명궁에서 죽은 이후에 태어나야 한다. )

이런 원한을 가지고 있는 만호는, 미실이 탐탁치 않았음에 분명하다. 만명 또한, 어머니 만호태후의 뜻에 따라, 미실을 좋아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유신이 미실의 손녀인 영모와 그렇고 그런사이가 되었는데 좋아할 수가 없고, 어미로써 유신을 말려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만호는 서현의 어미가 되는 아양공주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서현도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다. 아양은 공주의 신분이였고, 만호는 단지 지소태후의 사녀(지소/이화랑)에 지나지 않아서 만호가 신분상으로 아양을 넘을 수가 없다. 아양은 공주였고, 만호는 서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누이(아양), 올케(만호)사이였다. 고금을 들어서 "올케와 시누이 사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겠는가? 만호태자비와 아양공주도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였던 것 이다. 
사사로이는 만호는 아양의 고모뻘이 된다.


사도와 미실이 공모하여 진지왕(금륜)를 폐위시키고, 만호의 아들인 진평을 왕위에 오르게 한다.  이때, 어느정도 만호와 미실은 앙금을 풀었던 것 같다. 이와 더불어 만호와 아양사이에 역전현상이 벌어진다. 권력의 중심축이 만호태후로 쏠렸다.

미실과 만호처럼 만호와 아양 사이에 사적인 감정과 공적인 감정이 뒤섞여서 579년 진평이 왕위에 오른 이후에도 아양/무력의 자식인 서현을 싫어 했었던 것이다.

만호는 만명이 서현을 만나는데 탐탁치 않았을 뿐만 아니고, 만명을 집에 가두어 버린다. 서현은 갇혀있는 만명을 구출해서 자신의 임지인 만노군으로 토끼고, 유신을 낳고, 서라벌로 돌아온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없다고, 만호도 자식까지 낳은 딸을 용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반대하는 부모를 둔 사랑하는 연인들이 시도하는게 얼라를 임신하는 방법이다. 

기존 통설처럼 만호태후가 성골이고, 서현이 진골이기 때문에 서현을 멀리한 것이 아니다. 만호 자신도 성골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만호(지소/이화랑)는 지소태후의 사녀에 불과하고, 통설에 따르면 만호의 아비인 이화랑은 성골축에도 끼지 못했다. 만호 자신의 남편이 되는 숙흘종도 입종/금진의 자식이다. 금진은 위화랑의 여식이다. 금진은 성골.진골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근본도 없는 천한것이 된다. 당연히 만호태후 자신이 성골축에도 못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호는 태자비가 되고, 태후가 되었다.

이들사이에 무슨 만명이 성골이고, 서현이 진골이기 때문에 서현을 멀리 하겠는가?  한마디로 성골,진골로 나누어 서현을 멀리했다거나 가야계이기 때문에 멀리했다는 소리를 하면 개 풀뜯어 먹는 소리하고 있네하면 된다.

어째든, 뒤끝이 없는 만호태후는 서현/만명을 받아들이고 공식적인 외손으로 유신도 받아들인다.


이렇게 만호의 성격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만명이 왜 천관녀 <영모>를 멀리 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만호는 사적인 일에 감정을 이입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듯 보인다. 서현을 사위로 받아 들일수 없는 이유는 단지, 만호 자신이 아양공주와 사이가 나뻐서 일 뿐이다.

그런 만호태후의 성격을 알고 있는 만명으로서는 유신이 만호의 사적인 원수에 가까운 미실집안과 관계를 가진다고 생각하니 이루워질 수 없는 사랑으로 여겼을 것이다. 자신도 어머니 만호를 피해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렸지만, 만명 자신의 아들인 유신이 <영모>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는데 반대 했던 것이다. 자신이나 서현처럼 또다시 변방으로 떠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자 하는 어미는 없다.

그래서 유신에게 "너는 할일 많다"그런데 어찌 사사로이 원수의 집안이고 "<천관녀>에 불과한 <영모>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냐? 썩 정을 끊어라" 라고 한것이다.


사실 <천관녀>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보이지 않고, 이규보의 파한집, 동경잡기, 신동국여지승람에만 보인다.

자신의 집으로 술취해 말을 타고온 유신이 자신과의 정을 끊기 위해서 아무런 죄도 없는 말의 머리를 동강내는 모습을 본 천관녀 영모로써는 유신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천관녀 영모는 유신의 무정함에 노래를 지어 불렀고, 유신은 그 이후 산속으로 들어가 무술 수련에 열중한다.

이때
유신이 대단한 포부를 가지고, 무술 수련을 했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천관녀 영모를 잊지 못해서, 단석산과 중악에 올라가 열심히 바위를 쳤을 것이다. 사랑의 열병을 앓아본 사람은 유신이 왜 산에 올라가 바위치기를 했는지 알 수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아무생각없이 무조건 바위를 치거나, 가문의 선택의 기로에서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바위를 쳤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역사속 비련의 주인공이 될뻔한 <천관녀> 영모는,  할머니 미실이 만호태후에 사과하는 제스쳐를 취하므로 해서, 만호태후의 외손주이고 서현/만명의 자식 유신의 처가 된것이다.

호림공이 풍월주의 지위를 물려주겠다고 청하였다. 공은 사양을 하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에 15세 풍월주가 되었다. (만호)태후가 하종공의 딸 영모(令毛)를 아내로 맞이하도록 명하여 미실궁주를 위로하려고 하였다. 영모는 곧 유모(柔毛)의 동생이었다. 형제가 모두 선화(仙花)의 아내가 되었다. 그 때 사람들이 영화롭게 여겼다. 곧 건복(建福) 29년 임신년(612)이었다. 공이 풍월주의 위에 올랐다. - 화랑세기 15세 풍월주 유신

유신과 영모는 수 많은 자식들을 낳는다. 문제는 영모의 자식들이 580년 신문왕 원년 진공.흠돌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었다. 역모에 연루가 되면 구족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기록이 사라진다. 이찬 칠숙과 석품도 631년 반란을 일으키고 기록이 사라졌다. 647년 상대등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키고 기록이 사라졌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진공, 흠돌의 반란사건후, 김유신도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질뻔 하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기회에 송고할 예정이다. 또한, 유신의 부인이 되는 조카 지조부인(춘추/문희) 때문에 영모의 기록이 공식적으로 사라진것이다. 


이처럼 현존하는 화랑세기의 이면에는 천관녀 영모(이지현:큐리)와 유신의 감춰진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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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9.25 0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朱雀 2009.09.25 08: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4.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9.25 08: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사서에는 수많은 진실들이 숨어있는데... 최근에 역사학자들이 외면하는 경향이 있지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5. Favicon of http://potatobook.tistory.com/ BlogIcon 감자꿈 2009.09.25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관녀에 대한 의문을 싸악 씻고 갑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 2009.09.25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분 글도 역사기록을 토대로 한 추측인데 맹신하지는 마세요. 예전에 동양사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거기서 고대사와 핵심은 얼마나 그럴듯하게 창작하는데 있다고 들었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5 18: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냥 이런 견해도 있다고 생각해주셈..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5 18: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얼마나 그럴사 하게 포장하는가의 문제지요.. 논리적으로..어찌되었던. 아직은 논리적인 오류가 없다고 봅니당..

  6.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9.25 1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저는 갓쉰동님의 글을
    쭉 봐와서 그런가요?
    이미 감 잡고 있었다는 ㅋ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멋진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5 18: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시 영웅님은 눈치가 입신의 경지에.. ㅋㅋ 역시 밑밥을 계속 떨구어서 쉬이 아시는군용..

      그런데 문제는 75%가 새로들어오는 사람이라성.. 25%는 지루할 수도 있을 겁니당.. 감질맛 나게 해성.. ㅋㅋ

  7. 21야영장 2009.09.25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당,,,드라마 선덕여왕처럼

    갓쉰동님 글도 기다려진다는...

  8. 메뚜기 2009.09.25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계속 읽으렵니다.
    고맙고요.......

  9. 동글동글 2009.09.25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영모가 천관녀이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었는데ㅎㅎㅎ
    흥미롭게 읽었습니다....재밌는글 감사해요.

  10. 2009.09.25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5 18: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석과 흠돌과 신목과 문노와 흠운에 관한 글을 예전에 쓴게 있습니당.. 나중에 좀 정리를 해서 다시 올리겠습니당..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빠른시기에 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당.. 추석이 지난다음이 되지 않을까 합니당.

      보량은 춘추가 미생을 속이기 위한 술수 같은데용.. 저는 그렇게 봤습니당. 만약, 정말 보량을 춘추의 처로 만든다면 대락난감이지요.. ㅋㅋ

  11. 오호라 2009.09.25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역사는 재밌어요~~ 진실은 어디에..인 부분들도 있겠지만.. 잘 읽고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5 18: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누가 더 합리적이냐의 문제일 뿐입니당.. 그것도 현재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어필할 것인가의 문제구요..

  12. Favicon of http://myeurope.tistory.com BlogIcon 유리-MyEurope 2009.09.25 23: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에는 상관없는글이지만...저 시대 옷...봐도봐도 정말 아름답고 예뻐요~
    저런옷 하나 장만하고 싶네요 ㅋㅋㅋ^^

  13. 고양이 2009.09.26 0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갑순님이 아니라 서갑숙 이어요 ㅋ

    갑자기 갑돌이 여자친구로 만들어버리셨넹

  14. Favicon of http://momnpapa.textcube.com BlogIcon 파아란기쁨 2009.09.26 0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반님은 이런 정보를 어떻게 다 구하시는지 정말 대단하세요...^^

    요즘 선덕여왕을 좋아해서 자주 보고 있는데...

    이반님 정보 보면서 많은 도움 받고 있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15. abgp123 2009.09.26 0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표적인 친일파이자 조선총독부 촉탁이었던
    화랑세기의 저자 박창화가 지하에서
    기뻐 대소할 일이군요!

    화랑세기는 위서로 역사적 가치가 없습니다.
    박창화의 저작물치고 세미포르노 아닌게 없던데
    딱 일본 제국주의 입맛이라니!

  16. 레아 2009.10.18 1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명공주는 성골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갈문왕입종은 지소태후의 남편으로 지소태후의 아버지인 법흥왕의 동생으로 진흥왕의 아버지이고 만명공주의 할아버지인 동시에 만호태후의 아버지이고 만호는 지소태후의 딸이 아닙니다.

  17. 레아 2010.02.13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만명공주는 성골이 아닙니다. 제가 잘못알고 있었어요. 당시 신라는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이라는 모계신분이 있었는데 만명은 어머니인 만호태후를 따라서 진골정통이었죠. 그리고 영모는 천관녀가 아닙니다. 당시 대원신통가문은 궁정에서 치루는 제사보다는 정치에 더 힘을 쓰고 있었고 물론 정치외 신관제사는 어떤면에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긴 하지만 그래도 엄격히 구분되어 관장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천관녀에 대해서 기록 조차도 이견이 분분합니다. 신녀라는 이야기도 있고 혹은 그냥 기생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18. 레아 2010.02.13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논란은 김대문이 지었다는 화랑세기의 원전이 발견이 되면 박창화의 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가려 질텐데 그에 관한 자료도 일본의 서릉부에 있어서 구하기 어렵답니다.

  1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20.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21. Favicon of http://ford.grupocaiuas.com.br/concessionaria-ford BlogIcon concessionaria ford 2013.03.20 0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멋지다이 개봉된! 나는 이브 전에 이런 것을 읽을 가정 없다. 그래서이 주제에 대한 몇 가지 원래 생각을 가진 누군가를 찾을 수 좋네요. 정말이 일을 시작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웹사이트는 웹에서 필요한 것을, 약간독창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인터넷에 새로운 무언가를 가져다 유용 일자리!

글쓴이는 그 동안 다음 아래와 같은 선덕여왕의 공주시절에 있었던 기록을 하나 하나 추척해 들어 갔으며,
선덕왕의 <지기3사>중 첫번째 '사건인 모란씨 서되'는 진평왕의 노년인 627년 진평왕 49년에 있었던 일이라고, 그 동안 아무도 알지 못했던, 모란이 신라에 수입된 년도와 년을 특정하여 기사로 송고하였다.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또한, <지기삼사>에 얽킨 영묘사 옥문지사건과 영묘사의 창건과정을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에서 소상히 이야기 했으며, 영묘사가 만들어 지는 과정에 영묘사에 화재사건이 발생하여, 삼국사기가 선덕왕 3년 635년에 영묘사가 완성되었다는 기사와 <삼국유사>의 3년 635년에 영묘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이중적인 기록이 나온 배경에는 <지귀요탑>과 <혜공의 이적>과도 관련이 있다고 했다. 영묘사가 1차 완성 시기는 선덕왕 3년이며, 이즈음 일어난 화재사건을 <지귀요탑>이 원인되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에서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선덕여왕이 김춘추와 문희를 연결시켜 준것이 아니라, 덕만이 공주시절 김춘추와 문희의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였으며, <김유신의 불쑈>을 한 시기는 김춘추/문희 사이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의 출생일을 근거로 628년 이전에 벌어진 사건임도 증명하였다.

그럼 이들 사건들을 연표로 작성해 보자.
 
627년 11월 모란씨가 당나라로 부터 들어왔다.
628년 이전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주어었다.
628~635년 사이 지귀심화(지귀요탑)에 의해 영묘사에 화재가 발생하여 혜공이 영묘사 사찰 일부를 보호하고, 진화되었다. 


 모란씨 사건과 <지귀심화> 사건들을 살펴 보면, 나이가 어리지 않으면 도저히 일어 날 수 없는 상황이 전개 된다. 대표적으로 <지귀심화>같은 경우 젊은 남자 지귀가 일반적으로 그동안 알고 있는 선덕왕 원년 632년에 45살 이상이 된 여자를 보고, <상사병>에 걸려 마음에 불이 일어나 자연발화(SHC) 상태로 까지 발전할 수 있는가 이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더 나아가 삼국유사에 의하면 영묘사에 화재가 발생한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는 635년 영묘사가 완성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삼국사기를 따른다면 영묘사 화재사건은 635년 이후에 발생한 사건이 된다. 이때 덕만의 나이는 635년 선덕왕 4년으로 48세를 넘어야만 한다. 이는 더더욱 지귀의 화재사건이 성립될 수 없다. 물론, 요즘처럼 나이가 많지만, 젊음을 유지하는 연예인들이 있다. 이들을 보면 팔팔한 청춘에 불을 댕길만한 미모를 지니기도 했다.

불세출의 잉그리트 버그만이나, 엘리자베스테일러 등은 나이가 일정하게 먹고 나서도 황홀할 정도의 미모를 자랑했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경우 나이를 먹고, 젊은날의 모습을 깡그리 없애 버렸지만 말이다. 이처럼 나이를 먹고 미모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어기는 것이다. 요즘처럼 성형기술이 뛰어나 성형을 하거나 보톡스를 맞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래도 달리는 세월을 잡을 수 없는게 자연의 섭리이다.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지껏 덕만이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고, 인정하는 이유는 다음 3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삼국사기의 선덕왕 원년 즉위할때의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다.
둘째는 신하들이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셋째는 동생이라고 추측되는 천명이 춘추를  603년에 낳았다.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라는 것이다. 만약, 천명이 덕만의 동생이 아니고, 언니라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할머니(姑) 덕만이 아닌, 시어미(姑) 정도의 나이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증거를 잡는 과정이 지귀, 모란씨, 영묘사 건축중에 벌어진 화재 사건이다.

또하나는 천명이 덕만의 언니인지 동생인지 상관없이 왕위를 잇지 못한 이유중에 천명이 진평왕의 정비인 마야부인의 소생이 아니라면 어찌될까? 

  의심스런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다름이 아니라 김춘추가 왕이 될때 그의 가계 내력을 기록한 것이다.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사기 신라 춘추왕 원년
.
김춘추의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이라고 했다.

 

진평 계보도

우리는 덕만이 진평왕과 마야부인(복승의딸) 사이에 태어났고, 장녀라는 기록을 읽었다. 춘추의 기록을 살피고 우리는 감각적으로, 또는 단순히 천명과 덕만은 형제이겠거니 한다. 그러나 같은 어머니(동복)을 두었을까? 하는 의심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진평왕은 아들이 없다. 그러니 여러 부인들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설령 아들이 있다고 해도 후비를 여럿 두는 것은 왕실의 기본 상식에 속한다. 진평 또한 손씨인 승만을 후비로 두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천명이나 덕만을 마야부인의 소생으로 알고 있을까? 더불어 삼국유사에 나온 선화공주 또한 마야의 소생으로 만들었을까? 이 함정에서 벗어난다면, 어찌 될까?


진평은 천명의 어머니를 통해서 천명을 낳고, 마야부인을 통해서 덕만을 낳았다. 진평은 적통을 이을 후손을 보기 위해서 여러 부인들을 두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장 일반적인 왕실의 살아가는 방법이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정식 왕후의 소생이 적통을 잇는다. 그리고 그 왕후와의 사이에 난 자식에게 대권이 넘어간다. 왕후가 아닌 후비사이에 태어난 왕자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왕후 사이에 태어난 적통왕자들이 없을 경우에 왕위계승권이 주어진다.

그러니 천명과 덕만은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열려 있다. 오히려 이복자매간일 가능성이 더 많다. 또한, 천명이 덕만보다 손위언니에 해당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기록 어디를 봐도 천명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단지,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 으로만 나온다. 

 
진평왕(眞平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백정(白淨)이고 진흥왕의 태자 동륜(銅輪)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만호부인(萬呼夫人)으로 갈문왕 입종(立宗)의 딸이다. 왕비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으로 갈문왕 복승(福勝)의 딸이다. 왕은 태어날 때부터 기이한 용모였고 신체가 장대하고 뜻이 깊고 굳세었으며, 지혜가 밝아 사리에 통달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진평왕

만약, 마야 또한, 왕후가 아닌 여러 후비 중의 일인 부인일 경우를 설정할 수 있으나, 마야의 아버지는 복승갈문왕이라고 했다.

<갈문왕>은 왕의 형제나, 왕후의 아버지나 미추나 지증이나 진흥이나 진평이나 춘추 같이 왕의 아들(왕자)로 태어나지 않고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의 아버지를 갈문왕으로 봉한다.

그러니 마야는 정식왕후에 등극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정식 왕후의 후생인 덕만은 장녀일까? 아닐까? 삼국사기나 일반적인 왕실의 왕위계승과 순위를 정할때 장녀는 공식(정식) 왕후사이에 태어난 사람을 일컸는 경우가 많다. 천명의 어미는 정식왕후 였지만 후에 일찍 죽고 복승의 딸인 마야가 정식왕후가 되었다면, 왕위 승계서열은 현재의 왕후소생이 된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진평왕에게는 정비인 마야부인과 후비인 손씨 승만부인이 있었다. 승만 손씨에는 후사가 없었다고 하니, 천명은 승만의 소생은 아닐것이고, 또 다른 후비의 소생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진평이 죽은 후에 천명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용수.용춘이 생존하고 있었다. 충분히 선대의 선례에 따라서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용수.용춘은 왕위계승권에 없었다. 그러니 천명이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님이 증명된다.

신라사회는 대체적으로 사위가 왕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덕만의 경우는 사위가 왕이 되지 않았다. 이는 덕만에게는 남편이 없었거나, 싱글인 상태였거나, 당시 남편이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덕만은 632년 왕위를 이은 634년에 비로서 '음갈문왕'과 결혼을 한다.

글쓴이는 합리적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사실을 바탕으로 천명과 덕만은 배다른 이복 자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춘추의 어미 천명을 기준으로 동복 자매라는 증거가 없는한 덕만의 나이를 추론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왕실의 상식에 벗어 난다.

이제 덕만이 진평의 뒤를 이어 왕위를 승계할때 나이는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덕만의 기록들을 지기삼사 중 첫번째인 <모란씨>와 <춘추, 문희 중매>, <지귀요탑>,<영묘사화재> 사건 등을 종합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나이 많은 여왕일 하등의 이유가 없어진다. 

<성조황고>의 <황고>를 들어서 덕만이 나이가 많지 않았을까 한다면? 현재의 기준으로 한다면 "맞습니다"라고 해줄만 하다. 하지만, 신라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덕만은 충분히 <황고>소리를 듣고도 남을 나이에 왕위를 계승했다.

우리는 자신보다 나이가 조금 어린 사람에게 농담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내가 만약, 첫사랑에 실패만 하지 않았어도 너만한 아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당시 신라 사회는 첫사랑에 실패할때 결혼하고,20대에는 나이에 자식을 한둘과 30대에는 손자.손녀를 두는게 상식에 속할때이니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초경이 지나면 성인이 되어 "결혼을 시켜야 겠다"하고, 불알에 털나면 "장가가도 되겠네"하는 상식을 지니고 있는 시대와 30대가 넘어도 결혼은 무슨 소리하며,  오히려 노처녀.노총각이라고 놀리면, 시대에 덜떨어진 사람 취급 받는 세대와는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 세대만으로도 10대후반에 결혼하고, 20대 초반.중반에 결혼하면, 만혼이며 노처녀 소리를 들었다. 우리 어머니도 26살 늙은 아버지와  20살에 결혼하셨다. 

이번에도 글이 늘어지고 길어졌다. 이번 편으로 덕만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늙은 할매로 권력을 잡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결정타가 한 두편이 더 남아 있다.

다음편 예고는 삼국유사 왕력편에 기록된 덕만의 남편인 '음'갈문왕에 관한 포스팅을 할 것이다.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우리가 알고 있는 덕만의 나이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을 할 것이다.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와는 다르게 미실의 충복 칠숙과 석품이 왕위계승전에 뛰어든 이유를 설명할 것이다. 사실 미실이 죽은 606년에서 미실의 추종자로 설정된 칠숙이 반란을 일으키는 631년과는 너무나 떨어져 있지 않는가? 또하나는 칠숙과 석품의 반란을 진압한 세력이 진평왕으로 나오지만 실제는 덕만이 진압의 중추였을지 모른다는 것을 이야기하려 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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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hangadak.com BlogIcon 한가닥 2009.07.25 0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상에서는 쌍둥이 자매로 나오던데 ..드라마는 약간의 비현실도 존재하니까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5 0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비현실성..

      일부러 화랑세기는 인용하지 않았음..

      화랑세기 읽으면 읽을수록 대단한 책 같아요..ㅋㅋ

      천명이 언니다.. 나이차이는나오지 않았지만..

      박창화가 지었다면 대단한 천재같아요..

  2.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5 0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인 관점...
    보면 볼수록 흥미진진합니다 ㅎㅎㅎ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제가 봐도 흥미진진 하긴합니다..

      IT세상이 된후.. 더 쉽게 연구를할수 있어요..

      검색이 되니..

      예전에는 어떻게 연구를 했을까 생각하니..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심이 우러나와요..

      그래서 단편적인 것도 있겠고 오류가 있을 확율이 있겠지만..

  3. 2009.07.25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심전심이 맞을것 같음..

      그래서 베스트 선정은 전적으로 다음측에서 해야 한다고 봐요.. 열린편집자 제도 폐지하고..

      이시간에 올리면 조회수가 안나와요.. 몇번 실험을 해봤지만, 이시간에 다음 편집자가 저랑 코드가 맞지 않는 모양입니다.. ㅠ.ㅠ.

      대부분 아침에 올린글이 저녁이나 되어서 베스트 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ㅠ.ㅠ.

      벌써 3건정도..

      저녁타임에 저랑 코드가 맞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음..

      3교대라면.. 어쩌면.. 잘봐준 분이 베스트관리자 일수도..

    •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5 1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는 말씀 같아요...
      와인이야기...
      오전 10시에서 12사이 올리면
      냉큼 베스트 오르는데,
      그 이외시간 올리면 잘 안오르다
      다음날 보면 올라가 잇더군요 ㅎㅎㅎ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7: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 다음 편집자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신세가 되었는지.. 난감..

      알아서 기어야 하낭..

      그래서 제가.. 개정된 미디어업 통과를 반대합니다..

      저 같은 경우도 밥과 연관이 없는데도 눈치를 살살보는 것 같은데..

      밥이 걸려있는 기자들은 어떻겠어요.. 현재도 충분히 많이 눈치를 보고 있는데.. 광고주를..

  4. 2009.07.25 1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Favicon of http://blog.daum.net/wlalsdl1 BlogIcon 아르테미스 2009.07.25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그냥 재밌게 보고 있어요~ㅎㅎ

    갓쉰동님~ 뵐수록 대단한데요~
    어찌 이 어려운 내용들을 ^^;;

    즐겁게 주말 보내세요~

  6. 역사맨 2009.07.28 0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이복동생일 가능성도 있군여
    제가 천명공주를 백과사전에 검색했었는데
    이렇게 나오더군여
    (신라 진평왕과 마야왕후 김씨의 딸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그녀가 차녀라고 하고 《화랑세기》에는 그녀가 장녀라고 하여 어느 쪽이 맞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선덕여왕과 친자매간임은 분명하다. 그녀 역시 진평왕의 왕위를 계승할 권리가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자매인 덕만이 총명했던 탓에 왕위를 양보해야만 했다)

    그리고 또 여기에서는
    <화랑세기>의 13세(世) 용춘공 기사에서는 선덕공주(덕만공주) 위에 천명공주가 있었다고 알려주고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적자가 없는 진평왕이 처음에는 금륜왕(진지왕)의 아들인 용수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그를 천명공주와 결혼시켰지만, 나중에는 선덕공주가 왕위를 이를 만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판단되자 천명공주에게 지위를 양보하도록 권유했다고 한다.
    출처 : 오마이뉴스

    위에 두글을 봤을때 화랑세기에 천명공주와 용수에게도
    계승권이 있었다는거 아닌가여?
    그렇다면 이복자매일 가능성도 줄어들게 되고?

  7. Favicon of http://fiat.gruposinal.com.br/concessionaria-fiat BlogIcon concessionaria fiat 2012.04.26 0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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