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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선덕(덕만)의 죽음에 대해서 다둘지 다루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덕만이 632년 왕위에 오르고, 647년 1월 8일 죽을 때까지 17년 동안 신라의 국왕으로 재위를 합니다. 비담의 난이 647년 1월 "여왕이 국정을 재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반란을 일으키는데 이에 가담하는 세력이 염종을 비롯해서 처형된 수뇌부만 30여명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들의 위세가 당시의 진압군 보다도 세력이 컸습니다. 또한, 이들에게는 보다 이로운 하늘의 징조(뜻)가 발생하는데 현재의 유성이 월성(궁)에 떨어지게 됩니다.

유신은 문노의 비급을 받지 못한다

이에 진압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반대로 반란군인 비담측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게 됩니다. 이에 유신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와는 다르게 영특한 잔꾀를 내 세웁니다. 사실 유신은 출생부터가 잔꾀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나옵니다. 오죽하면 고구려의 멸망을 저주한 점쟁이의 화신으로 유신을 내세웠겠습니까? 유신은 우직한 것 보다는 전략과 전술력이 뛰어난 사람이였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유신이 어릴적 17세에 신검을 얻어 단석산에서 바위를 두쪽으로 조각내고, 그 이듬해 18세에 풍월주에 오른때에 선인으로 부터 비급을 전달 받게 됩니다. 비급이란, 병서와 천문지리를 막라한 책이지 않을까 합니다. 


드라마상에서는 비담의 스승으로 나온, 문노가 비급을 비담에 넘기지 않고, 유신에게 주었다는 설정을 합니다. 비담의 개인적인 성격도 바탕이 되겠지만, 북두의 화신이란 운명론에 입각해서 유신에게 주었겠다 싶지만 말입니다. 문노가 어릴적 부터 비담의 성격을 알았을텐데 그에게 물술과 병법을 가르친것도 좀 어설퍼 보기이기는 합니다. 드라마 전개상 이를 기회로 비담이 유신과 척을 지는 계기로 만들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덕만과 천명의 북두의 쌍생도 유신이 북두의 상징을 타고 난것을 차용한 것에 불과 합니다. 그러니 문노가 비급을 유신에 주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8세 풍월주 문노와 그의 아내인 윤궁은 606년 동시에 죽어 버립니다. 그러니 유신이 18세가 되는 612년에는 문노가 비급을 주려고 해도 줄 수가 없었겠지요.
 
공은 건복(建福) 23년(606)에 세상을 떠났으며, 나이가 69세였다. 윤궁낭주는 이해에 공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선(仙)이 되었다. 공보다 10살이 적었다. - 화랑세기 8세 풍월주 문노

아무튼 유신이 떨어진 유성을 연의 꼬리에 횃불을 달아 다시 하늘로 날려보내고, 이를 역천의 기운이 다시 하늘로 돌아갔다는 <프로파간다>로 여론을 다시 진압군으로 돌려세우고 반대로 반란군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유성을 보고 사기가 떨어집니다.

16년(647) 봄 정월에 비담과 염종(廉宗) 등이 말하기를 “여자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 하여 반역을 꾀하여 군사를 일으켰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8일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선덕(善德)이라 하고 낭산(狼山)에 장사지냈다.<당서(唐書)에 이르기를 『정관 21년(647)에 죽었다.』 하고 통감(通鑑)에는 『22년에 죽었다.』고 하였는데, 본사(本史)로써 고찰해 보건대 통감의 기록이 잘못이다.> 삼국사기 27대 신라 선덕(덕만)왕

원년(647) 정월 17일에 비담(毗曇)을 목베어 죽였는데, 그에 연루되어 죽은 사람이 30명이었다. 2월에 이찬 알천(閼川)을 상대등으로 삼고 대아찬 수승(守勝)을 우두주(牛頭州) 군주로 삼았다. 당 태종이 사신을 보내 부절(符節)을 가지고 앞 임금을 광록대부(光祿大夫)로 추증하고, 아울러 왕을 주국(柱國) 낙랑군왕(樂浪郡王)으로 책봉하였다. - 삼국사기 28대 진덕(승만)왕

덕만은 삼국유사의 지기삼사에서 자신의 죽은 날짜를 정확히 예측하고, 자신의 낭산 무덤자리까지 봐두고 있습니다. 이는 재위말년에  덕만의 몸이 좋은 형편은 아니였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후계를 선정하지 않을수 없었을겁니다.

비담은 덕만의 후계자 였을지도

어찌되었던, 덕만은 삼국사기 본기의 기록상으로는 647년 1월8일에 사망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니 덕만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한 것 처럼 비담이 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사전에 탐지하고 있었을 개연성도 높습니다.

또한, 자신의 사후에 진덕(승만)이 바로 왕위를 승계받아 비담의 난을 진압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비담이 명분으로 내세운 "
여자 임금(女主)이 잘 다스리지 못한다" 동기는 덕만의 뒤를 이어 진덕에게 왕위가 넘어갈것을 알았다는 것이 됩니다.

이전 이찬 칠숙이 진평왕 말년인 631년 반란을 일으키게 된 이유를 칠숙이 진평왕의 사후에 최소한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왕족이였는데 후계로 덕만이 결정되자 반란을 일으켰다는 기사를 송고하였습니다. 2009/07/26 -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셋째는, 왕이 아무 병도 없을 때 여러 신하들에게 일렀다.  "나는 아무 해 아무 날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도利天) 속에 장사지내도록 하라."  여러 신하들이 그게 어느 곳인지 알지 못해서 물으니 왕이 말하였다.  "낭산(狼山) 남쪽이니라."  그 날이 이르니 왕은 과연 죽었고, 여러 신하들은 낭산 양지에 장사지냈다.  10여 년이 지난 뒤 문호대왕(文虎(武)大王)이 왕의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웠는데 불경(佛經)에 말하기를, "사천왕천(四天王天) 위에 도리천(도利天)이 있다"고 했으니 그제야 대왕(大王)의 신령하고 성스러움을 알 수가 있었다. - 삼국유사 선덕왕 지기삼사 중 셋째 도리천과 사천왕사

"왕이 아무 병도 없을 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날이 이르니 왕은 죽었다"다고 하니 덕만이 죽은 시점이 647년 1월 8일에는 이미 죽음을 예감하고 준비를하고 있었다는 뜻이되고, 이미 병으로 골골하다는 반증입니다. 이때가 되면 덕만이 후사를 결정한 후라는 것이죠.

상대등 비담과 염종이 난을 일으키는 이유도 왕위승계에서 진덕(승만)에 밀려서 이지 않을까 합니다. 골골하던 덕만이 자신의 후계로 자신의 남편이였을 것으로 생각하는 작은아버지 국반갈문왕의 자식이며, 의붓딸인 진덕(국반/박월명)을 후계로 낙점한 상태에서 혹시 모르는 왕위를 승만에게 빼앗겼다는 울분이 반란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내몰았지 않았을까요?

"16년 정미(647)는 선덕왕 말년이고 진덕왕 원년이다. 대신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이 여자 임금(女主)이 잘 다스리지 못한다 하여 군사를 일으켜 왕을 폐하려 하니 왕은 스스로 왕궁 안에서 방어하였다. 비담 등은 명활성(明活城)에 주둔하고 왕의 군대는 월성(月城)에 머물고 있었다. 공격과 방어가 10일이 지나도 결말이 나지 않았다. 한밤 중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지니 비담 등은 사병들에게 말하였다. -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53세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는 김유신이 주동적으로 비담의 난을 진압한 것으로 나오지만, 삼국사기 본기 647년 전덕왕 1년 1월 17일 비담의 난을 진압하고 난 2월 사후 전공에 대한 직책의 이동을 보면, 이찬 알천이 비담으로 인해서 공석이 된 상대등이 되고, 대아찬 수승이 우두주 군주가 되는 인사 이동이 있습니다. 유신은 50살인 644년 소판(3등위)이 되고, 압량(독)주 군주가 되었다. 9월에는 상장군(대장군)이였습니다. 

647년 비담이 난을 진압하고도 유신은 여전히 648년 압독(량)주 도독의 직위에 변함이 없었다. (물론, 군주 위에 도독이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습니다.) 그러니 유신은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데 알천이나 수승에 비해서 커다란 전공을 세웠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비담의 반란 대상은 덕만이 아닌 승만(진덕)

삼국사기 본기와 삼국사기 열전과 삼국유사를 비교하건데 비담은 덕만이 왕위에 있을때 반란을 일으킨게 아니고, 덕만이 1월 8일 죽은 바로 그날이나 직후 승만이 왕위를 승계하자 바로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비담의 반란을 일으킨 대상은 직접적으로는 진덕(승만)을 향해서 이지만, 덕만(선덕)을 향해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록은 왕은 스스로 왕성(월성)에서 방어를 하였다"하고,  "공격과 방어가 10일이 지나도 결말이 나지 않았다" 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이때 왕은 덕만(선덕)이 아니고, 승만(진덕)이였던 것이지요.

물론, 위에서 언급했지만, 덕만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분명히 있어 보이기는 합니다. 덕만이 죽고, 내심 비담 자신이 왕위를 승계할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 승만에 왕위가 넘어가 버렸으니 말입니다. "설마 덕만에 이어서 또다시 여자인 승만이 왕위를 잇게 되겠어"라는 설마가 사람을 잡아 버린 비담으로서는 모험을 택하도록 하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덕만이 비담을 후사로 지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비담에 가담하는 세력이 많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비담은 알천 등에게 뒤통수를 재대로 맞은 것이 됩니다.

비담과 알천의 권력 투쟁

어찌보면 알천이 이찬에서 바로 상대등이 되는 것으로 봐서, 덕만이 죽고, 상대등 비담 모르게 승만을 왕위에 잇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유신과 비담의 다툼을 예고한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역사에서는 비담과 알천의 권력다툼에서 알천이 승리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647년 알천은 진덕(승만)을 세우는데 같은 편이였던 유신과 춘추가 654년 진덕 사후 알천을 비토하고 말지만 말입니다. 정치(권력)에서 아도 없고 적도 없다는 말이 진리에 가깝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비담) 너는 언제 죽을것 같으냐?"고 물었을때 "폐하(진평왕)보다 3일 먼저 죽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함으로 자신을 죽일려면, 미실이 반란을 일으켜 진평을 죽이기 전까지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어찌되었던, 비담은 덕만이 647년 1월 8일 죽고, 비담은 17일날 죽으니 비담은 "폐하보다 10일 후에 죽는다"고 하는게 잠언적인 내용도 포함하고 있으니 더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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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31 08: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맞아요. 그러고보니 비담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진덕여왕 때문인 것 같아요. 처음엔 저도 오로지 덕만을 배신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3. Favicon of http://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2009.08.31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봤습니다.
    근데 최근 어느 학자는 선덕여왕이 죽은 게 아니라 김유신 세력에 의해 폐위되었다는 주장을 펴든데, 이에 대해 이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갑자기 궁금해져서 묻습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죽은건 맞지요.. 그렇지 않다면.. 죽은장소를 알려줄 이유가 없지요.. 그리고 삼국유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이미 덕만은 죽기전에 병이 심각한 같거든요.. 유언이 낭산아래 뭍어 달라.. 였으니..

      대구 지역에 있는 부인대에 선덕여왕의 위패를 모셨다는 내용을 가지고 설정한 것 같습니당..

      죽어도 부인대를 만들수는 있거든요..

  4.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31 09: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언제나 봐도
    중후한 맛이 나는 멋진 포스팅...
    잘보고 갑니다.
    8월 마무리 잘 하시고
    멋진 9월 맞이하시길 바라며...

  5. ^^ 2009.08.31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드라마를 다시 쓴다면 작가에 따라서 알천랑을 권력지향적인 야심가로 표현할 수도 있었겠네요. 유신랑이 덕만공주와 비슷한 또래라는 설정부터 약간 병맛설정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6. 2009.08.31 0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알천랑 2009.08.31 0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천랑이 진덕여왕 사후에 왕위계승자로 지목되었는데 거절하고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알천이 권략지향적인 야심가는 아닐 것 같아요. 그후 알천랑은 상대등 벼슬도 그만두고 가족들과 오래오래 살았다고 하더군요. 윗글에서는 진덕여왕 사후에 스스로 물러난게 아니라 밀려난거라고 되어 있는데 기록들이 조금씩 다른가봐요.

    • 두모 2009.08.31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덕여왕 사후 알천이 서열1위 였던 건 맞는것 같아요.
      근데 나이가 많아서 사양해서, 김춘추가 왕위에 올랐다죠.

      이에 다른 이야기는 그 시절 왕위 계승에 최소 3번 고사하는게 관례인데, 한 번 고사한 것을 그대로 관철시키고 김춘추가 왕위에 올랐다는 것...

      병권을 쥔 김유신과 겹 혼인 사이인 김춘추의 결탁으로 생각되는 것.

      어쨌던 알천은 탐욕이 많은 사람은 아닌게 분명하네요.
      곧 진주로 낙향해서 성(진주 소씨)도 바꾸고 일가를 크게 일으켰다는데...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2: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통설에는 알천이 춘추를 옹립했다고 합니다.. 김유신 열전에 보면 알천과 더불어 춘추를 옹립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권력이란.. 맘만한 것은 아니지요.. 척했는데.. 턱하고 믿어 버린 케이스..

      춘추는 3번을 거절하거든요.. 알천과는 다르게.. ㅋㅋ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겹혼은 춘추가 왕위에 오른 이듬해.. 655년에 하지요.. 지조와..

  8.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31 1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반님,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만약 선덕여왕이 진덕여왕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이 사실이라면, 비담 등이 반발할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진덕 또한 명군이라고 하니 비담이 개인적인 욕심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 같아요...

    이반님,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고... 행복한 가을을 맞이하시길...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2: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명군이기 때문에 쿠데타가 아니라는 설정은 아닌것 같아요..

      좀 논란거리인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비담이 우선권이 있엇는가? 아니면 승만인가?

      물론, 저는 승만이 우선권이 있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이유는 승만은 왕성(월성)에 있고 비담은 명활성에서 있지요.. 이것도 비담이 월성에 들어가지 못해서 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스터리..

  9. 천년왕국 2009.08.31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 1000년 동안 한국이 발전을 했는가?
    고구려 백제 신라 시기에는 우리 나라는 무한한 발전을 했었다.
    만주를 포함 광활한 대지를 안았는데 유독 신라시기에는 조그만 땅덩어리에 갖혀 살았다.
    이후 고려시대에도 북벌을 추진하고자 하는 모습이 보였고 조선시대에는 몇번씩 만주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유독 신라시대에만 만주는 커녕 지금의 북한땅도 제대로 차지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신라라는 나라 자체가 배타적이고 독선적이어서 타지방 타민족을 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한반도 땅덩어리 하나 품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러한 이유로 만주로의 진출은 신라정신의 붕괴를 뜻하는 건 아니었을까?
    앞으로 제2의 신라시대가 절대 오지말아야 할 이유다.

    • 두모 2009.08.31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라 시기에 북으로 발전이 어려웠던 것은, 중국의 당이 워낙 강했던 시기이고, 발해까지 있었기 때문이오.

      우리 역사에 그나마 강한 시기는 중국이 분열하고 약해질 때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를 역사로 보셈.. 그리고 환상은 금물..

      두모님 맞습니당..
      그런데 꼭 강한상대 옆에 있다고 해당국이 강한 건 아니지요.. 미국옆에 있다고 캐나다나 맥시코가 강한건 아니듯..

      중국옆에 있는 네팔이나 몽골, 부탄이 강국은 아니잖아요.

    • aa 2009.09.01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로마까지 세력을 떨치던 신라가 통일후 그렇게 된건... 백제인들의 떼쓰기와 발목잡기로 그리된걸로 아뢰오..진정한 불행은 백제인을 우리민족으로 통합한거 부터 시작이오

    • 스카 2009.09.08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에 모순이 있어 한말씀 드립니다.
      신라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 북벌을 못했다...
      3국시기에는 포용력이 좋아 북벌도 여러번하고 만주도 쳤다...??
      이게 무슨 소립니까? 그리고 영토확장만이 능사는 아닐것이라 생각됩니다. 태평성대가 영토확장보다 훨씬 좋은거 아닌가요? 전 영토확장만이 능사라고 생각하스는 님의 제국주의에 공감하진 못하겠습니다.

  10.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31 1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그래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비담이 선덕여왕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드라마와 연관지어서 기뻐요,.
    진덕에 대한 반란이었다면 비담은 끝까지 덕만 곁에 있겠네요. 선덕 사후에 난을 일으켰다니...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쿠데타 명분이 여자가 왕이 되는것이니.. 선덕에 대한 불만도 있지 않았을까요?

    • 스카 2009.09.08 15: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끝까지 덕만의 편이었다면 더욱이 덕만에 대한 불만이 많았겠지요. 자신이 왕이 될꺼라 믿어의심치 않았을 수도 있으니... 물론 난을 일으키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비담 본인의 권력욕일테지만요.

  11. Favicon of http://l7044337@hanmail.net BlogIcon 재밌네요 2009.08.31 1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식의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봅니다. 역사란게 원래 승자의 것이기에 누구의 반란인지는 중요한게 아니겠죠^^ 근데 화랑세기는 위작에 의심이 가는 역사서라 ㅋㅋ 암튼,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12. Favicon of https://boskim.tistory.com BlogIcon 털보작가 2009.08.31 1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갑니다.
    오늘밤 선덕여왕이 기대됩니다.

  13. Favicon of https://skagns.tistory.com BlogIcon skagns 2009.08.31 15: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덕분에 앞으로 선덕여왕의 이야기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많이 될 거 같습니다.
    참~ 그리고 노란펜 축하드립니다. ㅋ

  14. 드라마 선덕여왕은 2009.08.31 1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 역사와는 전혀 상관 없는 판타지물이죠. 때문에 드라마에 나오는 비담의 역활과 선덕여왕과의 관계도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것일 뿐입니다. 굳이 실제 역사와 비교해 보기보다는 판타지 자체를 즐기고 마는게 나을듯합니다. 이런 식의 비교는 일부 시청자들이 드라마의 허구와 실제 역사를 혼돈케 하고 있는것으로 보입니다.

  15. 하루 2009.08.31 2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 사실을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바꾸거나 버리곤 하는데 이런 식으로 굳이 스스로 역사서를 들추지 않아도 알게되니 참 좋군요. 역사에 보다 충실한 드라마였다면 어떠헸을지도 궁금합니다.

  16. 착한아이 2009.08.31 2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17. 선덕여왕 2009.09.08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18. 지나가던 이 2009.09.15 0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의 난이 선덕이 아닌 진덕여왕을 향한 것이라고 하는 자료가 있네요. 야후 인명사전이네요.

    http://kr.dictionary.search.yahoo.com/search/dictionaryp?&p=%EC%97%BC%EC%A2%85&subtype=enc&pk=11757600&field=id

  19. 2009.09.17 0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21. Favicon of http://nextgenerationpestcontrol.com BlogIcon Complete Residential Pest Control Solutions 2012.09.05 0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게 됩니다. 이에 유신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와는 다르게 영특한 잔꾀를 내 세웁니다.


월천대사의 떡밥 첨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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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만은 미실과 다르게 월천을 꼬신 떡밥은 첨성대였다. 이는 대가야처럼 비공개적으로 하늘을 살피지 않고, 미실처럼 격물을 이용해서 하늘의 뜻으로 혹세무민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하늘을 살피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첨성대는 정말 하늘을 별을 살피고, 천문을 관찰하는 관측소 였을까?

좁디 좁은 첨성대의 꼭대기 창으로 하늘을 보면 얼마나 볼것인가? 첨성대는 실지로 하늘과 신라를 연결하는 통로인것이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는 나정(#)에서 태어났다. 혁거세의 부인인 알영은 알천의 우물(#)에서 닭의 부리 모양의 허물을 벗고, 환골탈태하였다. 그래서 나정에 신궁을 짓고 제사를 지내는 신라, 어찌보면 고구려의 상징이라고 보기보다는 신라 신국의 건국 상징이 #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그만큼 우물(#)은 신라에게는 땔 수 없는 상징이 된다.

 

 

또한, 북두칠성은 국자 모양이다. 은하수의 우물(#)을 퍼올리는 국자. 이 또한, (#)의 상징이 된다. 첨성대의 상단 (#) 모양도 하늘과 통하는 우물을 상징하고 있다. 글쓴이는 첨성대를 별을 관찰하는 용도가 아닌 하늘과 통하는 우물이며, 하늘을 담는 그릇이고 거울이다.  즉 신라의 나정을 상징화 했다고 생각한다.

 

돼지가 우물에 빠지 듯 삼국사기 곳곳엔 우물에서 용이 하늘로 올랐다는 기사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우물과 용과 북두는 하나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선덕여왕에서 선덕과 천명과 유신은 북두의 정기를 타고난 상징들이 아닌가?

 

(#) 문양을 신라의 상징으로 만든 선덕여왕의 역발상이 참으로 재밌다.


사극으로 인해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를 알아가는 과정이니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공부재료가 될 것 같다.  몰랐던 부분이나 잘못알고 있던 부분을, 잠시 잊고 있었던 부분을 알아가는 과정이 기쁠때가 있다.

 

선덕여왕에서 연기자들의 톡톡튀는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선덕여왕의 다음 행보가 어떻게 전개되어 나타날지 자못 궁금해 진다. 그래서 사극은 나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준다.

PS 왜 '#'은 고구려의 상징문양이고, 광개토대왕의 상징인데 신라의 상징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광개토태왕의 호우십우총에서 나온 배(그릇)를 빼고, 고구려 한강방어선인 아차산성에서 나온 '#' 질그릇 빼면, 또다른 것 있던가요? 천신족의 상징이 하늘을 비추는 거울인 우물일 수 있다는 생각도 있겠지요. 물론,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고구려는 광개토왕 남진 이후 실질적으로 신라를 약 50~70여년 정도는 지배하고 있었으닌까요  

재미가 있거나 도움이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추천해주시고, 따끈한 최신 기사도 추천해 드립니다.
2009/08/2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덕만의 꽃놀이패 일식, 개고생하는 비담
2009/08/2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일식 없다는데 정말 없었을까?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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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26 10: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이반의꿈님, 트랙백 좀 걸고 갈께요...

    트랙백의 힘이 강한 것 같아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3. Favicon of http://www.ilovenews.co.kr BlogIcon 대한민국 황대장 2009.08.26 1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알면 사극이 잘 보이는군요...
    마냥부럽기만 하는요.
    부러움을 안고 갑니다 ㅋ

  4.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26 12: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재미있다는 오늘은 ㅋ
    다음편 빠른 송고 부탁드립니다.
    뭐....
    이반의꿈님이야 어깨가 녹아나든 말든 ㅎㅎ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면서....

  5. soojinoppa 2009.08.26 1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디 너무 자주. 월식 일식이 나타 나지 않나요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6 13: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주 일어나진 않지요.. 자주 일어난다면 기록할 이유도 없거든요.. 이번 8월 초(?)에 있었던 개기일식도 70만에 온건데용.. ㅋㅋ

      물론, 지구 어디선가는 일식과 월식이 있지요..

  6. dragon 2009.08.26 1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첨성대의 콜라병모양의 섹시한 허리선은 태양의 황도대와 일치함!

  7. 콜라는 리필 2009.08.26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대신 井로 교체 건의 합니다.

    우물의 한자는 샾(#)이 아니라

    우물 정(井)자 입니다.

  8. 주워들은 지식 2009.08.26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국사공부할때 선생님이 첨성대는 하늘을 관측하는거라 들었습니다.
    어떻게 관측을 하느냐면
    그 위로 올라가서 하늘을 보는게 아니라
    첨성대 안에서 위를 올려다 보면
    하늘이 사각틀 안에 보이게 되지요
    그 정해진 사각특 안에서 별의 이동을 보고 관측하는거라 들었거든요..
    그냥 하늘만 봐서는 별이 이동하는지 마는지 알기 어렵지만
    오늘 첨성대 안에서 본 사각틀 안의 별의 위치와
    다음날 보는 별의 위치들을 계속 표시하다 보면
    별의 이동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6 13: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올라가고 내려가고 개고생이죠.. 매일..

      그런데 문이 없잖아요.. 첨성대에는.. 그러니 문을 만들 필요성이 없는 구조물이였다는 말이지요.. 가끔 들어가서 청소만 하면 끝나는 구조물..

  9. dmdma 2009.08.26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첨성대 꼭대기엔 뭔가를 설치한듯한 흔적도 있다고 하더군요. 관측용 이라면 뭔가 특별한 기구가 꼭대기에 있었을 겁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6 1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흔적이 있기는 합니다.. 창처럼 생긴곳에 사다리를 걸었음직한 흔적..

      그 흔적이 첨성대가 천체관측용이 아니라는 증거가 됩니다..

      천체관측을 사다리 걸고 들어가서 사다리 걸고 내려가서 관찰을 하겠습니깡..

      해시계나 달시계라고 하면 그럴뜻하지만..

      신라에는 아주 정교한 물시계가 있다는 기록도 있거든요.. 그리고 움직이는 만불상도 있었구요.

  10. 호오 2009.08.26 1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첨성대의 역할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실물을 보고 이 높지도 않은 건물에 문도 없는데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천문관측에 쓰였다는 것일까 궁금하였지요. 현대인이 모르는 다른 용도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라의 석굴암의 불상의 이마에 박힌 보석도 일출 시 특별한 용도가 있다는 설도 있었는데... 규모는 작지만 마치 피라미드 같은 미스테리가 있는 것 같아요.

  11. ? 2009.08.26 16: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역사스페셜에 나왔던 첨성대 편 찾아서 봐보세요
    천체관측 하던 곳 맞음
    사다리 타고 창으로 들어간 다음 그 안에서 다시 사다리 타고 위로 올라가는 거임 내려가는게 아니라
    그 창문 위치까지 자갈이랑 모래로 쌓여있거든요
    그걸 밖에서 한번네 올라가면 위험할 수도 있고 하여튼 역사스페셜 첨성대편 있음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6 16: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이미 다 봤는데용.. 올라가면 내려가야 겠지요..
      첨성대의 구조가 그렇습니다. 보시는 보와 같이 몸하나 들어갈 정도의 창문이 2개 나 있으니요..

      그 당시도 합리적으로 생각한답니다. 물론, 그 당시 기준이지만,. 매일 관찰해야할 하늘을 .. 문도 만들지 않고, 사다리를 타고 기어 올라 다녔겠습니까?

    • ? 2009.08.26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땅밑으로로 단이 쌓여있고 창문 높이까지 자갈과 모래가 들어있어 지금까지 보존되어있다고 하는데 보존을 위해서 그랬을 지도 모르겠죠 좀 불편해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ㅋ
      하지만 첨성대가 생겨난 후에 300년동안의 천채 관측량이 그 전 700년동안의 관측량보다 몇 배 이상 증가했다고 하니까요.. 혹시 미래에 타임머신이라도 나오면 밝혀지겠죠 뭐 ㅋㅋㅋ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7 1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그럴수도용..

  12. 이혜인 2009.08.27 0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루에도 많은 블로그를 거치지만
    댓글을 다는건 처음이네요

    역사에 관심도 없고 무지한데
    드라마 선덕여왕에 반해 삼국사기까지 질렀답니다.
    지르긴했지만 책만으로는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고
    인터넷 자료는 방대하니
    다시 호기심과 흥미가 떨어지고 있을때
    좋은 블로그를 찾은듯 해 기분이 좋습니다.

    개인의 블로그라도 이런 수고로움 하기 힘드실텐데
    좋은글 감사합니다!
    앞으로
    재밌는글 많이 부탁드려요~~

  13. 잘봤습니다. 허나 2009.08.27 0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집이 좀 있으시네요. 본인의 의견이 모두 맞다는 내심을 좀 고치셨으면..

  14.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5.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6.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visit website 2012.07.14 1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징이라기 보다는 광개토대왕의 상징이었지요. 중국에서는 장수들의 깃

  17. Favicon of http://rocville.com/?p=Events BlogIcon Gennie 2012.09.29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사기 곳곳엔 우물에서 용이 하늘로 올랐다는 기사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우물과 용과 북두는 하나의 상징처럼 느

  18. Favicon of http://www.fishoilfordogs.org BlogIcon electric fence for dogs cruel 2012.11.03 1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넌 악플 중에서도 최저인게
    단순히 보지말라는 수준을 넘어
    글쓴이를 드라마 인기에 편승하는 장사꾼으로 매도하면서 아무런 근거도 내세운게 없쟎아.
    말만 부드러우면 그냥 막 까도 인격이 생기나부네?

  19. Favicon of http://www.fishoilfordogs.org BlogIcon electric fence for dogs cruel 2012.11.03 1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넌 악플 중에서도 최저인게
    단순히 보지말라는 수준을 넘어
    글쓴이를 드라마 인기에 편승하는 장사꾼으로 매도하면서 아무런 근거도 내세운게 없쟎아.
    말만 부드러우면 그냥 막 까도 인격이 생기나부네?

  20. Favicon of http://demylaoag.blogspot.com/2012/04/nation-preparedness-month-survival-kits... BlogIcon powdered eggs backpacking 2012.11.06 2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북두칠성은 국자 모양이다. 은하수의 우물(#)을 퍼올리는 국자. 이 또한, (#)의 상징이 된다. 첨성대의 상단 (#) 모양도 하늘과 통하는 우물을 상징하고 있다.

  21. Favicon of http://pfotenhieb.cadmos.de/2010/11/05/ashera/ BlogIcon inground invisible fence reviews 2012.11.23 0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아레스가 퇴장을 건 승부가 없었다면 우루과이는 8강에 만족하고 짐을 싸고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승부차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루과이는 이기고 들어갔고, 가나는 이미 지고 들어가는 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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