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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세종과 미실의 아들로 나오는 하종은 어리숙하면서도 아버지가 다른 나이어린 보종에 대해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또한, 미실의 정부(?)인 설원랑(전노민)에 대해서는 비호감의 감정을 스스럼 없이 분출하고 있다. 왕인 진평에게나 왕비인 마야에게도 맘에 안들면 치받아 버린다.

김정현이 하종 배역을 맡고 있는데, 어쩜저리 어리숙하고, 찌질하게 연기를 잘하는지 보는 내내 웃음을 짓게 한다.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인물중에서 미워할 수 없는 악역중에 일인이라고 하겠다. 


선덕여왕에서 상천관 서리(송옥숙)이 미실(고현정)이 건낸 사약(?)을 먹고 죽는다. 그 뒤를 이어서 서리의 보조 신녀인 설매가 상천관의 지위를 계승하였다. 설매역을 맡은 조명진이 삼성 야구선수 박한이와 결혼을 예정한것 처럼, 김정현도 약속한 연인과 11월 결혼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김정현이 맡은 하종이 어떤인물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갔도록 하겠다. 하종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와 같이 악인이였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비담은 삼국사기에 647년 1월 염종과 난을 일으킨다. 그래서 비담은 악역으로 나올수 밖에 없다. 문제는 비담이 정말 악인이였을까? 아니면 쿠데타에 실패한 정치인이였을까는 역사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엇갈림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정말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쓰여진 기록"이기때문에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까?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많다. 또한,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아무데나 역사는 승자에 의한 기록이기 때문에 생몰년이나 부모까지 바꾸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해석상의 문제가 아니고 기본 인물정보에 대한 팩트이다. 사건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는 상상력을 발휘할 공간이 있다. 하지만 기본팩트는 바꾸면 안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하종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단지, 논란의 중심에 있는 <화랑세기>에서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하종은 세종과 미실사이에 태어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5세 풍월주 사다함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사다함은 미실을 사랑하였다. 세종 또한 미실을 사랑하였다. 미실은 사다함이 전장에 참전을 할때 송전가를 구구절절 읆어, 전장에 나가는 사다함에 "고무신꺼꾸로 신지 않겠다"고 사다함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미실은 사다함이 대가야에 참전을 할때 세종과 결혼을 해버린다. 전장에 나가 돌아온 사다함은 미실이 세종과 결혼한 사실을 알고 낙담하였다. 사다함은 실연의 아픔과 자신의 부하의 죽음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하지만 사다함은 자신의 다음 풍월주을 자신의 연적인 <세종>에게 물려준다. 


이런 사다함을 위해서 세종과 미실은 천주사에 진심으로 사다함에 공양을 들이고 관계를 가진다. 천주사에 관한 설화는 화랑세기에 여러번 등장을 한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천주사에 대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어찌되었던 천주사에서 관계를 가진후 미실은 564년 하종을 낳는다. 이런 연휴로 하종은 어릴적 부터 <사다함> 화신으로 불리웠다.

애송공주(567년생)는 미실과 진평왕의 아버지 동륜태자 사이에 태어났지만, 진흥은 자신의 자식인줄 알았다. 진흥과 미실사이에는 반야공주, 난야공주가 태어나고 572년 즈음 수종전군이 태어난다.

하종은 어머니 미실이 진흥을 섬기고 아이를 낳을때 마다 직위가 상승하고, 하종의 나이 9살인 572년 태자 동륜이 보명궁의 담을 넘어 개에게 물려 죽기 전에는 <전군>의 지위까지 상승하게 된다.  하종은 진흥왕의 자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흥에 의해서 전군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578년 (하종)공은 15살에 화랑에 들어가 역사를 토함공에게 배웠고, 노래를 이화공에게 배웠고, 검술을 문노에게 배웠고, 춤을 미생공에게 배워 모두 그 정수를 얻었다.

드라마에서는 하종이 안하무인, 무식한 캐릭터 이지만, 하종은 역사를 사다함의 형인 토함에게 배우고, 노래를 이화랑(4세풍월주)에 배우고, 검술을 8세 풍월주인 문노에 배웠다. 또한, 춤을 삼촌인 미생(10세 풍월주)에 배웠다. 그러니 하종은 다방면에 능통한 사람이였다는 것이다.


하종은 미모(설원랑/준모)에 장가를 가서, 유모, 영모, 모종을 낳고, 나중에 사도태후의 명으로 진평의 후비였던 사도의 막내딸인 은륜(진흥/사도)과 결혼하여 하희,월희, 효종을 낳는다. 드라마에서 설원랑에 팅팅거리는 것으로 나오지만, 설원랑은 하종의 장인이다. 장인에 틱틱거리는 사위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은륜과 결혼을 하므로서 진흥왕의 부마가 된다.

화랑세기는 보리공이 하종을 평할때 "지금 세상에 하종같은 효자와 충신은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진평에 틱틱거리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하종이 진평보다도 나이가 어리고, 용춘보다도 나이가 어린것으로 나오지만, 하종은 564년생으로 565년생인 진평(백정)보다 나이가 1살이 많다.

또한, 용춘은 576년생이다. 그러니 용춘보다는 12살이나 많았다. 하종은 용춘의 아버지뻘이였고, 사사로이는 용춘의 아버지 금륜의 막내누이인 은륜과 결혼한 상대이니 용춘의 고모부가 하종이다. 그러니 용춘(576년)이 화백회의에서 하종(564년)이나 미생(550년)에게 막말을 하는 행동은 인륜을 저버린 행동이다.


우리의 찌질이 하종은 은륜의 언니인 태양(진흥/사도)가 유혹하여도 넘어가지 않고, 은륜에 충심으로 대접하였다고 한다. 방탕한 은륜을 자신의 아버지 세종이 미실을 섬기듯이 따스하게 감싼다.

한마디로 무골공자이면서, 공직에 나아가서는 청렴하였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매점매석의 주체로 하종을 집어 넣었지만 하종은 첨렴함의 신표인 청백리같은 이였다.


 공은 검소하고 색을 삼갔으며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윗사람을 공경하여 세종(世宗)의 풍모를 크게 가졌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공에게 복종하지 않는 사람도 끝내는 귀부하였다.

 3년간 재위하다가 보리공에게 양보하며 말하기를 “앞선 풍월주들이 큰 성인이었는데도 오히려 3년간 재위하였는데 내가 어찌 감히 오래 머물겠는가?” 하였다. 보리공이 말하기를 “주형(主兄)은 곧 미실 원화의 아들이다. 어찌 뭇 화랑들과 더불어 같은 예로 하겠습니까?” 하였다. 공이 굳이 사양하였다. 보리공이 이에 풍월주의 자리에 올랐다. 보리공은 곧 나(김대문)의 증조이다. 일찍이 나(김대문)의 아버지(오기공)에게 하종공을 칭찬하여 말하기를 “지금 세상에 이 같은 효자·충신은 없다” 하였다.

대개 미실궁주가 삼조(三朝)를 차례로 섬겼는데, 형제가 핏줄이 달라 움직이면 어려움이 많았다. 은륜공주 또한 골을 믿고 방탕하였다. 공은 한결같이 세종공이 미실을 대접하는 것처럼 하고 불문에 부쳤다. 태양공주는 은륜의 형으로 공과 더불어 가까이 살았는데 공을 유혹함이 심하였으나, 공은 한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공의 청렴과 지킴이 이와 같았다고 한다. - 화랑세기 11세 풍월주 하종

한마디로 표현하면 하종은 요즘 뜨고 있는 <엄친아>의 표본이였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가장 최악질 찌질이 하종으로 변한것이다. 물론, 드라마이니 충분히 설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다음의 예를 들어서 표현하자면 전두환이 민주투사로 나오고, 노무현이나 김대중이 쿠데타를 이르킨다는 설정이나, 세종대왕이 연산군보다 더한 폭군으로 나오고, 이순신이 원균을 넘어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기려는 이완용이나 송병준같은 만고의 역적으로 표현한다면 황당하지 않았을까?

단순히 드라마니 괜찮아? 또는 재미를 위해서는 괜찮아. 다큐가 아니니 괜찮아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드라마에서 김정현이 열연하고 있는 <하종>을 위한 변론으로 마치고자 한다.

글쓴이는 하종을 선덕여왕의 대표찌질이로 표현해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하종>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이 글을 보기 전까지는 김정현이 배역을 맡은 <엄친아> <하종>이 정말 <찌질남>의 대표선수인줄 알았을 것이다. 세종이나 이순신이나 전두환이나 이완용이나 송병준은 드라마를 위해서 인물을 변형시키면 안되고 자신들이 모르고, 잘 알려지지 않은 <하종>은 <찌질남>으로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편협한 생각이 아닐까?

2009/10/12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고현정) 언제 죽어 하차해야 하나?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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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gamjastar.tistory.com BlogIcon 또웃음 2009.10.11 1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워할 수 없는 악인 하종이죠.
    하는 짓이 초딩 같습니다.
    그래서 귀엽기까지하다는...^^
    화랑세기에선 그런 모습이었군요. ^^

  3. ECLAT 2009.10.11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드라마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캐러였던.ㅋㅋㅋ
    세종과 하종부자. 너무 찌질하게 나오더라구요ㅠ 아버지닮아서 엄친아에 성격좋고 훈남이었는데.
    갓쉰동님게서 이렇게 제대로 잡아주시네요.ㅎㅎ
    화랑세기에서 김대문이 가장 칭찬했다는 세종의 아들인데...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용.. 각자 개인적인 성향이 다르겠지만.. 김대문이 아버지인 오기에게 전해들었다... 김대문의 증조인 보리가 극찬한 인물이라고 하니요.. ㅋㅋ

  4. ..... 2009.10.11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다른 나이어린 보종이 아니라 동복동생 보종 아닌가요?;; 하종과 보종은 같은배에서 태어났습니다....

  5. Favicon of http://link2u.textcube.com BlogIcon 아홉살인생 2009.10.11 1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의 마지막 부분은 한 번 생각해 볼만한 문제겠군요.

  6. 공수래 2009.10.11 1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춘(576년)이 화백회의에서 하종(564년)이나 미생(550년)에게 막말을 하는 행동은 인륜을 저버린 행동" 이라는 대목은 좀 그렇네요...용춘은 골품제도로 운영됐던 신라에서 하종이나 미생보다 윗사람이었습니다. 족보를 보시면 알수있습니다. 용춘은 무늬만 진골인 성골입니다. 김춘추보다 더 성골에 가깝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라를 개나라로 만든게 성골.진골이예용.. 골이 높다고 해서. 나이 많은 고모부에 하대하고 욕을 할것이라는 상상은 끔찍한거지요.. 왕도 자신의 장인에게는 하대를 못해용.. ㅋㅋ

  7.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10.11 12: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휴일인데 노고를 아끼지 않셨군요...
    연속된 드라마의 잘못된 캐릭터 선정에 대한
    이야기이군요. 엄친아라...
    재미있게
    잘보고 갑니다.
    휴일 잘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인물창조를 하더라도 좀 그럴듯 하게 했음 좋겠다 싶더라구요.. 대남보, 보종, 하종. 정말로 안타까운 인물들인뎅..

  8. 2009.10.11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괜찮

  9. 맑은바람 2009.10.11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선 풍월주들이 큰 성인이었는데도 오히려 3년간 재위하였는데 내가 어찌 감히 오래 머물겠는가?”

    ...단순한 겸양의 표현이라고 보기엔 깊은 격조가 있군요.
    드라마에 묻혀 자칫 간과하기 쉬운 실제 역사를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10. 조예린 2009.10.11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이런 글이 올라왔을까?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11. qillip 2009.10.11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오~ 선덕여왕은 안봐도 님글은 꼬박꼬박 찾아본다는....늘 감사....^^;

  12. 갔도록->갖도록 2009.10.11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거같네요 가지다의 준말 갖다

  13. 와웅 2009.10.11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네요!
    놀라운사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밌게보고갑니당!

  14. Favicon of https://leeesann.tistory.com BlogIcon pennpenn 2009.10.11 19: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 공부 하고 갑니다.
    해박한 역사 지식에 탄복하면서요~

  15. 김정현 2009.10.11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나마 저승에 간 하종이는
    1300년뒤 찌질남으로 변모하지만
    그나마 3,40대 중에서도 꽃미남에 속하고
    연기력도 정상급인(인기가 안습이지만...실력이 중요하지요.only 실력!!)
    김정현이 맡아줬다는데 위안 삼아야죠.
    다만 삼국시대 기록 역사가 부실하고
    화랑세기의 진실여부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화랑세기의 인물까지 갖다붙이는데 한계가 많아 많은 픽션과 변형을 붙였다는게
    아쉽죠. 특히나 극문학의 특성상 반동인물이 필요한데
    거기에 미실을 넣는 과정에서 하종까지 왜곡 시킬수 밖에 없다는건 어쩔수 없나보네요.
    다만 화랑세기의 진실여부와 삼국시대의 기록이 좀 더 많이 발굴된다면
    다른 인물로 변모 될 수도 있었을텐데...
    다만 세상을 뜬지 1300년 후에 후손들이 자신을 묘사한걸 본다면
    하종이 생전 진짜로 인간말종이 아닌 이상은
    너무 안타까워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불쌍한 하종...

  16. Favicon of https://rubygarden.tistory.com BlogIcon 루비™ 2009.10.12 1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종에 대한 멋진 글 잘 읽고 갑니다.
    갓쉰동님이 글에서 늘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17. yoo 2009.10.12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근거로 이야기를 만들때는 당연히 사실을 근거로 해야한다고 생각됩니다...
    이처럼 완전히 반대의 인물로 묘사하는건 억지스럽고 역사를 왜곡하는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역사를 왜곡할거면 선덕여왕과 그밖의 인물이름을 달리 해야겠지요...

  18. conniewon 2009.10.12 1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놀라운사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해박한 지식에 놀랍고, 부럽습니다.

  1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0

  20.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niches/mature.php BlogIcon Mature Pussy 2012.07.12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중에 김영랑의 시처럼 모란이 피기까지는 삼백예순날은 아니더라도

  21. Favicon of http://www.cheaphelmetsonlineshop.com/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놀라운사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여인으로 돌아간 덕만 : 미실과 대적하기 위하여

개양자가 둘로 갈라지는 날 천명과 덕만을 낳았다고 대국민선언을 한다.

마야는 "국조의 예언 전부가 전해지지 않고 "어출쌍생하면 성골남진한다"는 말만 전해져서 "덕만을 버릴수 밖에 없었다고"고 한다. 200년전 실성왕 말년에 사라져서 이제야 발견된 예언의 전말을 모른체 그런 패륜적인 행동을 저질러 결국은 천명까지 잃게 되었다"고 한다.

투덜이 하종에게 세종은 이야기를 한다. "어쩌겠느냐? 황실이 짜고 치는 고스톱을 치는데 어찌하겠느냐?  이에 미생은 이에 맞장구를 친다.

마야는 국조의 예언대로 새로운 하늘을 열 수 있도록 덕만에게 제자리를 찾게 해달라고 대국민 호소를 한다.

용서는 힘이 있을때 하는것

진평은 백성들의 앞으로 나아가 모든 것은 "짐의 죄니라. 그러니 황후와 짐을 용서하라"고 한다. 이상하다. 가해자들이 항상 피해자보고 용서를 하라고 강요를 한다. 용서는 아픔을 당한자의 전유물이다. 누가 강요해서 억지로 하는 것은 여전히 피해자에게 또다른 가해를 가하는 것이다. 그러니 '용서하라'는 말은 가해자가 할 말은 아니다.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이 가해자로서 용서를 구하지도 않지만, 피해자보고 용서하라고 한다. 한국 근현대사에서도 지난날, 김대중 전대통령의 유언인 '민주세력'의 통합을 이야기하는데, 엉뚱하게 수 없는 탄압을 한 세력들인 가해자의 후신을 자처하는 자들이 김대중의 유언을 빗대어 통합을 역설을 한다. 그리고 용서와 화합을 입에 달고 산다. 용서는 힘이 있을때 하는 것이다. 힘이 없을때 하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고, 그저 힘의 지배에 순응하고, 자위하는 행동일 뿐이다김대중은 힘이 있을때 용서를 했다. 사실 "용서하지 않으면 어쩔껀데?"라고 말을 해주고 싶다.


원망하느냐고 묻는 진평에서 덕만은 당당히 진평을 원망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군주의 자리란 패업을 위해서 자식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식을 버릴정도였다면 그동안 힘을 길렀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실에 휘둘리는 진평을 나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덕만은 여인으로 살기위해 궁으로 돌아온것이 아니라고 한다. 공주의 삶을 누리기 위해 돌아온것이 아니라고 마야와 진평에게 이야기를 한다. 덕만은 이제 패업을 위해서 미실과 대적하겠다고 선언을 한다. 하지만, 덕만은 천하의 미실과 대적하는게 두렵고 확신이 없다.

알고 속이는 건 왜곡 또는 곡학아세, 자신도 모르고 하는 건?

유신은 비담에서 "너에게도 일식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이에 비담은 자신도 "깜쪽같이 속았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보름날 일식이 있다고 믿는 다수의 국민들에 비하면 비담이나 덕만이나 유신이나 알천이나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한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의 원작인 <소설> 선덕여왕의 작가도 몰랐을 것이다.
보름날 <일식>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일식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공표를 했는데, 버젓히 일식이 일어났으니 천신황녀의 지위는 덕만에 넘어가는 것이아니냐고 미실일파는 전전긍긍에 빠진다.

미실은 "덕만이  천하의 미실을 속였다"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덕만은 천하의 미실만 속인게 아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천하도 속이고, 미실도 속이고, 백성도 속이고, 월천도 속이고, 덕만도 자신도 속였다. 드라마를 보는 국민들까지 깜찍하다 못해 끔찍하게 놀려주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보름날을 즈음해서 <일식>은 일어날 수가 없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보름날 일식이 일어나면 안되는 이유를 모르는 것 같다. 2009/08/28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불가능은 없다.  간략히 요약 하면 다음과 같다.

일식은  그림처럼 태양 - 달 - 지구가 나란히 서서 달이 태양을 가리는 때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보름날을 즈음해서 절대로 일식이 일어 날 수 없습니다.

보름날을 즈음해서는 태양 - 지구 - 달 순으로 해서 보름날 지구가 태양을 가려 월식이 일어 나는 겁니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은 옥에 티가 되는 겁니다.


죽지않는 미실: 궁하면 통한다. 위기를 기회로 

천하의 미실은 일식을 맞추지 못해서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미실은 최악에서도 기회로 만들고 자신의 이득을 챙긴다. 상대등인 세종이 덕만을 추인하는데 적극적으로  귀족들뒤에서 밀도록 부축인다. 귀족들에게는 그만한 대가로 "세금을 낮추어 주겠다"고 딜을 한다. 자신의 지지기반을 최대한 확보하는데는 지지세력에 이득을 주면 말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는 않는가 보다.


마야는 덕만의 공주 추인은 "초닷새 오시"에 할려고 한다. 여러날 준비하여 성대하게 해야 하는데 빨리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그런데 덕만은 하루라도 빨리하는것이 좋다고 한다. 보름이 지나 일식이 있고, 어느덧 20여일이 지나야 초닷새가 올텐데  마야는 공주 추인도 준비를 해야한다고 하고, 20여일이나 지났는데 덕만은 늦지 않았으니 좋다고 한다. 역시 위것들은 20여일을 준비하고도 소소하다고 하고, 백성을 생각한다는 덕만은 20여일 준비한 것도 소소하니 과분하다고 한다. 이런 덕만이 왕위에 오르면 백성들 뼈와 살이 남아나지 않겠다.

그런데 여전히 드라마 선덕여왕 안의 대화내용을 살펴보면, 일식의 흥분과 환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니 시간은 일식이 있은 몇일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개념이 어디로 간것인가?


덕만의 잔인한 수:  미실의 컴플렉스를 건들다.

미실은 내부로 부터 무너져 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밖으로 내 보일수가 없다. 미실은 천하의 미실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덕만은 아직도 미실이 두렵다. 실은 미실도 덕만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실은 덕만의 흔들리는 손을 본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덕만이 미실에게 약점을 보인 것이다.

그래서 미실은 덕만의 두손을 잡고, "아직도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냐"고 한다. 이에 덕만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어찌감히 <성골>의 몸에 손을대는 것이냐"고 쏘아 붙힌다. "너 나이가 몇살인데 반말이냐?"고 묻는 것과 한치의 다름이 없다.

어찌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에에서 성골과 진골이 있고, 미실의 컴플렉스인  같은 낮은(?) 신분을 건들인 것이다. 미실은 왜 성골로 태어나지 못했을까 자조한다. 그랬다면 황후도 되고, 그다음 꿈인 왕권도 손에 넣어 왕이 될수도 있었을 텐데라고 말이다. 확실히 덕만은 미실의 아픈곳을 찌른것이다.

그런데 왕의딸인 공주의 신분이 성골인데, 성골이 무슨 소용이고, 진골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다. 미실이 덕만을 이길수 없는데는 성골인 왕의 딸인 공주이기 때문이지 성골이기 때문에 손을 함부로 잡을 수 없는게 아니다. 설마 미실이 왕의딸이 아니여서 콤프렉스라도 있었단 말인가?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는 성골, 진골이 없다고 누누히 말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은 성골을 찾고, 진골을 찾고한다. 너무 우려먹어서 사골국 장사를 하면 대박은 될 것 같다.


미실을 진흥과 동륜과 금륜(진지)와 진평을 모셨다고 한다.

그러니 덕만으로서는 증조할아버지의 비였고, 할아버지 동륜의 비였으며, 작은할아버지 진지의 비였고, 아버지 진평의 비였다. 

진평과 미실사이에는 보화공주가 있다.


위의 그림은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서 진평왕의 비와 그들 사이에 난 후손들을 나타낸것이다. 보화공주는 진평/미실 사이에 태어난다. 보화는 덕만보다 나이가 한참은 많은 언니가 된다. 덕만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가 미실이다. 그런데 감히 성골의 몸에 손을 대냐고 땡강을 부린다. 덕만이 미실이 두려워 막나가도 너무 막나간 것이다. 성골/진골이 존재한다는 통설이 신라사를 좀먹고 있다.

어찌되었던 한마디로 덕만은 미실에게 "천한것이 어디에서 손을 잡느냐"고 한것이다. 이말이면 끝나지 않는가? 신라여인 중에서 왕후를 제외하고 덕만에게 맞설수 있는 여인이나 귀족이 있을 수 있는가? 신라가 막나가는 개나라가 아니라면 말이다.

첨성대는 책력이다? 차라리 해시계

하늘을 관장하는 것은 황실의 책무이다. 하지만 고대로 넘어가면 신관이 이를 주관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신권을 지닌 자가 왕이 되
지만, 이를 전문집단에 이양을 하고,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관을 별도로 둔다. 이는 신라초기에 혁거세를 대신에서 알영이 제를 주관하고 후대에는 공주가 주관을 하였다. 그 후 나을신궁이 만들어진 다음에는 간간히 직접제사를 지내고 평시에는
신관이 관장을 한다.

진평왕시기로 건너오면 법흥왕때 공인된 불교에서 <왕즉불> 사상이 꽃을 한참 피울때이다. 진흥왕시기에 이미 진흥자신이 전륜성왕이 되고 있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신관의 지위는 왕의 보조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되었던 진평이나, 마야나, 미실이나, 공히 다스리는 자로서 하늘의 뜻인 천문의 지식을 공공연하게 백성들에게 알릴수 있도록 월천에게 하늘을 살피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첨성대를 만드는데 많은 난관이 있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천관을 폐하고 천문과 기상을 모든 백성에게 공개할 것이라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정보의 독점을 말하는 것이다. 군대에 있었던 사람들은 별것도 아닌 것들이 급수가 높은 비밀등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세종시대에 사대부들이 훈민정음(한글)을 창제하는데 반대를 했다,

이는 정보의 독점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저놈도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다면, 두놈간에 차별성이 없어지진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쿠텐베르크가 인쇄기술을 발명하기 이전에는 서방세계에서도 교계의 특정한 몇몇이 성경을 독점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란 미명하게 온갖 못된짓을 다하고 다녔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정보의 바다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정보가 어디있는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보를 분석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힘을 기른다. 하지만 우리들은 여전히 정보의 바다속에서 사는 데도 불구하고, 교육은 단순 암기만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보름날 일식도 머 그럴수 있지 드라마인데 하면서 지나쳐 버린다. 사실, 이글을 보지 않는 사람들은 보름날 일식이 있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어찌되었던 격물의 상징이고 사다함의 매화의 실체인 월천을 사이에 두고 유신과 보종의 대결이 임박했으나. 알천이 나타나므로해서 대결의 기회는 사라진다. 조금 아쉽기는 하다. 진선공자인 보종과 유신과의 대결이라.왜 진선공자라고 이야기를 했는지는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2009/08/0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사실은 유신과 보종 너무나 친한 사이 .

월천은 "공주님의 계획을 믿기에 일식을 계산하였다고 한다." 만약, 조선 세종시대라면 월천은 격물을 해보지도 못하고 곤장을 맞아도 숫하게 맞았을 것이다. 감히 보름날 일식을 예측하다니, 당시 신라의 천문지식을 알로봐도 유분수가 있지, 순진한 백성들도 일식은 월초와 그믐에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지금처럼 일식이 보름날에 일어난다고 해도 "그저 멋지네"라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보름날 일식이 있었다면 정말 신라인들은 천지가 개벽하는줄 알았을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덕만이 공주로 인정되기도 전에 진평은 왕위에 있을 수 없다.


조선 세종은 일관이 예측한 일시보다 "1식경 틀렸다"는 이유로 일관에게 곤장을 쳤다. 그만큼 일식은 왕실에 중요한 행사이다. 하늘의 대행자이며
하늘의 아들인 왕이 아버지인 하늘의 계시도 맞출수 없다면 백성들에게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신라시대에도 그랬을까?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마한은 하늘을 살피고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이들은 별을 관찰하였을 것이다. 물론, 일식을 예측까지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시대 세종이 만들어 널리 퍼트렸던 해시계인 <앙부일구>처럼 말이다. 하지만 첨성대는 책력이라고 이야기만 있지 시간을 재는 장치이야기는 없다. 천문대는 당시의 천문지식을 망라한 기념비이다. 신라는 정교한 물시계도 만들줄 알았다. 그러니 차라리 첨성대는 책력을 감춘 해시계라고 하는게 맞다.  이와관련된 2009/08/2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월천대사의 떡밥은 첨성대 글 참조하기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1년이 365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당시의 백성은 없다. 또한, 24절기가 있고, 하늘의 별자리를 28숙으로 나누는 것을 모르는 이들 또한 없다. 농사는 절기를 모르고는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첨성대 달랑 하나 있다고 절기를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제작자(원작자)는 미실의 입을 통해서 시청자에 말하다.

미실은 백성은 일식이 왜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언제 일어나는지만 알려주고 환상을 심어주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덕만은 미실에게 첨성대를 만들어 책력을 백성들에 알려준다면 농사를 짓는데 알수 있
지 않느냐고 이야기를 한다.

첨성대가 책력이 될려면 시간을 계산하고 계절을 계산할 수 있는 시계가 되어야 한다. 단순히 상징으로서의 존재는 의미가 없다.


그런데 미실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일식이 왜 일어나는지 "백성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말은 현재도 통용되는 말이다. 그리고 언제 일어나는지만 알려주고 환상을 심어주면된다고 이야기를 한다.
 
사극 선덕여왕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은 선덕여왕을 시청하면서 일식이 왜 일어나는지 관심이 없다. 그냥 비담이 화형에 처할때 일식이 일어나 주는 극적인 장면을 보여주면 그만인것이다. 미실은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다. 백성은 우매한 존재이고 지배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백성(시청자)에게는 환상을 심어주면 되지, 격물(과학/천문)을 알려줄 필요조차 없다고 말이다.

한마디로 백성인 시청자는 드라마 선덕여왕을 쓴 작가의 소설에 놀아나는 존재라는 말이다. 반면에 덕만은 글쓴이 처럼 정보를 공유해서 백성인 네티즌들이 스스로 농사(생각하는 법) 짓는 법을 알 수 있게 하겠다는 것 뿐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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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9.01 06: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 미실의 말이 정말....시청자에게 한 말은 아니겠지만, 이상하게 딱 맞아떨어지는군요.
    수많은 시청자들은 일식이 보름에 일어날 수 없다는 것엔 관심이 없을 테니 말이지요.
    혹시..그게 전략인가? 싶기도 하네요.

  3.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BlogIcon 펨께 2009.09.01 0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더불어 첨성대에 대한 상세한 지식도 아주 유용하게 읽고...

  4. 2009.09.01 0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2009.09.01 0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2009.09.01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朱雀 2009.09.01 08: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추천하고 갑니다. ^^

  8. Favicon of https://myahiko.tistory.com BlogIcon 무량수won 2009.09.01 08: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헛... 간만에 선덕여왕 포스팅을 했는데 제목이 비슷하네요. ㅡㅡa 속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요. ㅋㅋ

  9.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朱雀 2009.09.01 09: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메인에 소개되었네요. 축하드려요. ^^/

  10.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9.01 09: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오늘 미실과 덕만의 얘기를 듣고 생각하는 바가 많아 생각을 다듬고 있는 중입니다.
    글이 잘 안 써지네요. 미실의 말이 너무 의미심장했나 봅니다.

  11. Favicon of http://www.ilovenews.co.kr BlogIcon 대한민국 황대장 2009.09.01 10: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첨성대...
    전 아는것이 첨성대 그 이름 뿐 이라는 점... ^^;;;

  12. Favicon of http://skagns.tistory.com BlogIcon skagns 2009.09.01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 왜곡이야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신 센스가 돋보인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13. 갓쉰동님 광팬 2009.09.01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과 미실 대립각을 보며 드라마로서는 꽤 긴장감 있지만 현실성으로 볼때는 미실의 손을 들어주고 싶네요. 이 드라마 제목은 선덕여왕이지만 사실상 메인주인공은 미실일듯... 그나저나 이 드라마는 재미면에서는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너무 역사를 왜곡하는게 맘에 걸리네요. 아무리 삼국시대가 사료가 별로 없다지만 이건 태왕사신기에 이은 엄청난 판타지 드라마가 돼버렸어요...몇십년 후에 이 선덕여왕 드라마가 다시 쓰여진다면 좀 더 역사를 기본으로 하는 드라마가 됐으면 싶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01 14: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료가 부족하면 부족한 사료를 인정해야 하는데.. 있는 사료도 내 팽개치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당..

      그 작은 팩트도 지킬수 없는 사극이라니.. 대락난감..

  14.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9.01 18: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반님... 댓글보고 왔는데요...

    제 소설에 나온 양귀비는 수나라 양제의 딸로 현종의 양귀비와 다른 사람이예요...

    귀비는 희빈처럼 후비의 지위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헷갈리지만... 양비가 따로 있는 걸로 알고 있어서요...

    양귀비가 맞는 걸로 알고 있어요... 설명을 해야했을까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15. 이슬 2009.09.02 2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폐륜이 아니라 패륜이죠 ^_^ 잘 읽었습니다 !

  16. 2009.09.07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07 19: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과 악은 종이한창 차이이긴 한데.. 현대사는 분명히 조명이 가능하지요.. 과거 오랜 역사는 비교하고 검토가 필요하지만..

      미실을 좋아하는 이유는 캐릭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성격과 좌절이 있기때문이지 않을가 해요.. 또한 기득권에 대항하는 듯한 모습을 미실에서 찾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은연중에..

      조화되어야 하는 것은 맞는데. 어찌될지 모르겠습니당.. ㅋㅋ

  1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8. Favicon of http://darcyquaife.typepad.com/blog/2012/04/prepackaged-you-surviving-kits-adv.. BlogIcon mre or mountain house 2012.11.01 1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9. Favicon of http://www.meinstartup.com/der-treue-begleiter/75/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s for sale 2012.11.05 1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패륜적인 행동을 저질러 결국은 천명까지 잃게 되었다"고 한다.

  20. Favicon of http://poplicks.com/2007_08_01_poplicks_archive.html BlogIcon portable dog fencing in virginia beach 2012.12.20 1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함 때문에 쉽게 이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전문 소프트웨어인 포토샵만큼은 아니더라도

  21. Favicon of http://survivalfood555.posterous.com/ BlogIcon micro filtered whey 2012.12.31 2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식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공표를 했는데, 버젓히 일식이 일어났으니 천신황녀의 지위는 덕만에 넘어가는 것이아니냐고 미실일파는 전전긍긍에 빠진다.

역사 기록에는 일식이 있었을까?

신라를 국내 최초로 재현했다는 명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과 덕만이 일식의 대결을 벌렸다. 하지만, 미실의 처참한 패배로 끝나 버렸다. 그런데 역사기록에는 진평왕 시기에 일식이 있었을까?

진평왕 비슷한 시기에 일식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19년(572)에 사신을 북제(北齊)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초하루 경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39년(592) 가을 7월 임신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원성왕
3년(787) 봄 2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몸소 신궁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다. 여름 5월에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가을 7월에 누리가 곡식을 해쳤다. 8월 초하루 신사에 일식이 있었다.


위의 삼국사기 기록을 보더라도 진평왕 시기에 신라나 백제나 고구려에 일식은 없었다. 만약, 미실은 일식이 있다하고 덕만이 일식이 없다는 설정을 하였다면, 극이 더 극적이고 역사에 근접하지 않을까?.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진평왕 시기 일식은 어찌될까?

요즘은 기원전 2000년부터 기원후 3,000년까지 일식기록을 온라인상으로 쉽게 검색할 수 있다. 물론, 상업용 천문관측 및 예측 프로그램과는 차이가 조금은 있지만, 일식이 언제 어느장소에 개기일식인지, 부분일식인지, 환개기.부분일식인지 알 수 가 있다. 다만, 이들 프로그램들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말기 바란다.

지구는 언제나 움직이고, 달 또한 지구로 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현재는 지구로 부터 멀어지고 있지만, 언제 어느순간부터 달이 지구로 가까이 올수도 있고, 지금처럼 년 4cm 뒤로멀어지는 속도보다 더 빨리 멀어질 수도 있다. 대체적으로 천체는 원의 궤도 보다는 타원의 궤도를 돌고 있다.

또한, 지구의 자전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있어서 하루의 길이가 24시간이 아닌 24.xx만큼 더 오래 지속되고 있지만, 이는 현재의 측정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도 그러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어찌되었던 과거의 일식이 역사기록과 다를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고 보기 바란다. 과거로 갈수록 일식의 오차는 커질 수 밖에 없다. 오차를 줄이는 일은 천문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맞겨두도록 하자.

하지만, 좀더 프로그램들이 정확해지고, 발전해진다면, 이해할 수 없는 역사의 기록의 편년의 기준을 정하는데 유용한 천문과학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어찌되었던 온라인 상에 공개된 아래의 일식프로그램으로 금년 7월에 있었던 일식과 삼국사기에 기록된 일식을 비교해 봤다. 그리고 선덕여왕을 시청하는 팬들을 깜짝 놀래줄 것이다. 

전적으로 이 프로그램만으로 살펴봤다는 것만 언급하겠다. 이말은 다른 프로그램으로는 '다른 결과가 나올수도 있다'는 말이다. 관심이 있는 분은 글을 다 읽고 추천도 해주신 다음에 찾아가 보도록 하기 바란다.  
Five Millennium (-1999 to +3000) Canon of Solar Eclipses Database



최근 2009년 7월22일에 있었던 일식을 알고 있을 것이다. 현재 보여주고 있는 프로그램은 이를 정확히 예측한 프로그램이기도 한다. 과거로 갈수록 오차가 커지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최근의 기록은 정확하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을 위 프로그램으로 살펴보았다.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시기에 한반도를 경유한 일식이 여러건이 있었다.


19년(572)가을 9월 초하루 경자에 일식이 있었다. -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삼국사기는 백제가 가을 9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천문프로그램은 7월 22일에 한반도에서 일식을 관측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주의해서 봐야 할 내용은 삼국사기의  달은 음력이고, 당시의 현대와는 다르게 정확성이 떨어지는 책력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생각하고, 천문일식프로그램은 양력이니 이를 감안하고 보시길 바란

다.

사실 그냥 비슷한 연도에 일식을 한반도에서 관찰할 수 있거니 하면서 그림만 보시는게 좋다.

단지 주의해서 볼일은 붉은 선이 지나는 태양(황도)길에 가까이 있을 수록 개기일식에 가깝다는 것이다. 점선정도가 되면 육안으로 충분히 관찰할 수 있었겠다 생각하면 된다.

사실 역사에 기록하고 싶어도 기록을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날씨가 변수가 된다. 비오는 날에나 구름이 잔뜩낀 날에는 태양이 보이기나 했겠나?

기상청에서 항상 하는 말이 있지 않는가? 이번 추석이나 설날에 보름달을 볼 수 있다. 또는 없다. 라고 예보를 해준다.

39년(592) 가을 7월 임신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천문 일식 예측 프로그램상으로는 594년 7월에 일식이 있었다.  프로그램의 정확도가 실증이 된다면, 592년 기록은 594년 여름 6~7월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595년 7월에도 한반도 근처를 지나는 일식은 있었지만 한반도에서 관측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592년부터 599년 까지 593년을 빼고 거의 매년 일식을 관찰할 수 도 있었고, 없을 수도 있
었다.
 
하지만 기록에는 전혀 언급이 없다. 이때 한반도에 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백성들은 하늘이 국왕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역설적이게도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601년, 602년, 604년 606년 거의 매년 일식이 있었지만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기록을 하고 싶어도 기록을 남길수 없었다.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링크한 사이트로 가셔서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이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소설 작가가 의도하였는지 의도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진평왕 시기에 날씨만 좋았다면 볼 수 있는 개기일식에 가까운 일식을 발견하게 된다.



616년 3월 21일 덕만의 일식은 있었다.


616년 진평왕 38년 봄 2월말이나 3월초에 한반도를 경탄하게 만든 2009년 7월 22일 일식과는 비교가 안되게 좋은 일식이 있었다. 
 
어찌되었던 이시기 삼국사기에서 신라는 어떠한 기록을 남기고 있을까?

31년(609) 봄 정월에 모지악(毛只嶽) 아래의 땅이 불에 탔다. 그 넓이가 네 보(步)이고 길이가 여덟 보였으며 깊이가 다섯 자였는데, 10월 15일에 이르러 꺼졌다.
 
35년(613) 봄에 가물었다. 여름 4월에 서리가 내렸다.

36년(614) 봄 2월에 영흥사의 흙으로 만든 불상이 저절로 무너지더니 얼마 안 있어 진흥왕비인 비구니(比丘尼)가 죽었다

37년(615) 겨울 10월에 지진이 일어났다.

49년(627) 봄 3월에 큰 바람이 불고 흙이 비처럼 5일 넘게 내렸다.  8월에 서리가 내려 곡식을 죽였다.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있다.

이제 역사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진평왕 중기에 일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대명력과 천광력을 언급한 사극 선덕여왕의 원작이 되는 <소설> 선덕여왕의 원작자가 이 사실을 알고, 일식을 소설에 넣었을까? 알고 넣었다면 대단한 작가라고 칭찬해줄만 하다.. 하지만 칭찬은 뒤로 미루기로 하자. 추측컨데 소설원작자는 선덕왕때 통설로 천문대라고 알려진 첨성대를 만들었으니, 단순히 책력이 나오고, 일식이 나오고, 월식이 나왔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은 미실에게 "보름날 오시"에 일식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식은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다면 보름날 절대로 일어날 수가 없다. 초승달이 뜨는 날이나, 그믐날을 즈음해서만 일식이 생긴다. 삼국사기 일식 기록에도 초하루, 그믐만이 나온다.
 
그러니 소설원작가의 무지가 보름날 일식을 만든 것이다. 왜 원작자가 무지하다고 하는가? 소설 원작자는 역사책을 전혀 보지 않고, 가장 기초적인 자료수집도 하지 않고, 역사소설을 쓴 흔적들이 너무나도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유신의 등장이며, 천명과 덕만의 출생일이다. 여기서 부터 <소설> 선덕여왕은 꼬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당연히 드라마 선덕여왕도 꼬일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소설을 버리고 다시 극본을 만들어야 할판이니 말이다. 선덕여왕 작가는 덕만과 천명의 출생일을 '임술년'이라고 계속 반복적으로 강조를 하고, 있었다. 임술년은 진흥왕시기와 진평왕시기에 딱 2번 나온다.  

하나는 542년 진흥왕 3년이고, 602년 진평왕 24년이다. 

하지만, 542년 임술년은 진흥왕 나이 8살때이고, 진평왕(567년생)도 태어나기 전이다. 595년생인 유신과 602년생인 덕만과 천명이라? 역사상이나 드라마상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유신과 덕만이 소설의 내용상으로 어울려 보이지 않는가? 문제는 천명의 아들인 춘추가 603년 생이라는 사실이다.
 
비담은 579년생으로 만들고, 덕만은 그보다 2~3살 어린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비담이 첫눈에 덕만에 끌린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에서 어릴때 비담과 덕만은 문노에 의해서 만났다는 설명이 나온다. 그렇다면 천명과 덕만은 580년 초년생이란 이야기가 된다. 소설 안에서도 일관된 시간의 개념이 없다.

어찌되었던, 원작자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삼국사기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616년 진평왕 38년을 즈음해서 일식이 있었다는 과학적인 추론이 가능하다는 것을 소득으로 얻었으면 되었지 않겠는가?
자식들이나 친구랑 대화할 때 이렇게 이야기 해주면 된다. 역사기록에는 없지만, 현대 천문과학으로 살펴보니 616년 진평왕 38년 3월 중순경 신라의 하늘에는 우리생에 마지막인 2009년 7월 일식보다도 멋진 일식이 있었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보름에는 일식이 일어 날 수 없고, 달이 으스름한 초순이나 그믐날에 만 일식이 일어난다. 

이 단락을 쓰기 위해서 수 많은 자료를 검색하고, 프로그램을 일일이 돌리고 했었습니다.

어찌되었던  스포츠처럼 룰을 알고 보는가? 아니면 룰을 전혀 모르고 그냥 연기에 취해서 보는가? 룰을 알고 보면, 연기에도 빠지기 쉽지요. 스포츠의 룰은 경기의 규칙이고, 사극의 룰은 역사적인 팩트 입니다. 팩트를 알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보는 것과 팩트를 모르고 보는 것은 차이가 있겠지요. 스포츠를 보는 것처럼.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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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와우~ 2009.08.27 1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추천!!!

  3. Favicon of http://27m.net BlogIcon 東氣號太 2009.08.27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열혈 시청자의 한사람으로서 이반님의 글은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미실이 일식이 있다고, 덕만이 일식이 없다고 주장했다면 드라마 마지막 부분에서 느낄수 있었던 카타르시스 대신 절정 없이 끝나는 정사와 같은 느낌이었을 것 같네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대신
    시청률은 역사도 바뀌게 한다.... 로;;;

  4. 일식... 2009.08.27 1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름날엔 일식이 없다~그러고보니 옛날옛적 학교에서 그런 얘기를 배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생각 안나는 걸 보니 늙었군요~ㅎㅎ
    하긴 일식은 태양-달-지구가 늘어서서 달이 태양을 가리는 거니까, 보름이 될 수는 없겠네요.그믐이어야겠죠..
    월식은 태양-지구-달이 되서 지구 그림자에 달이 가리는 거니까 보름날이어야 하겠지만요.
    없는 일식/월식을 만들어내는 거야 상관 없지만...
    아예 있을 수 없는 일(보름날 일식)을 만들어 낸 건 좀 심하긴 하네요...

  5. 보름엔 월식이 가능 2009.09.01 2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식은 낮에 달이 하늘에 있어야 하므로 보름일 수 없어...보름엔 달이 밤에 가시권에 들어오기 때문...

  6. 보름엔 월식이 가능 2009.09.01 2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는 요새 초4년들이 배우는 건데...그것도 1학기에...

  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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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Pussy Porn 2012.07.21 2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팬으로서 할수잇다는건 이런 글로만 응원해줄수밖에 없단걸

  10. Favicon of http://rocville.com/?p=Events BlogIcon Ciara 2012.08.11 2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이는 현재의 측정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도 그러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어찌되었던 과거의 일식이 역사기록과 다를 수 있

  11. Favicon of http://www.bnlug.org/ BlogIcon bnlug 2012.10.03 1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되기도 하고, 스스럼 없이 노팬티임을 알리고, 친구에게 하이힐을 신게 하고, 자신을 잡으라거나, 지

  12. Favicon of http://www.fashion-pascher.org/22-veste-franklin-marshall BlogIcon veste franklin marshall pas cher 2012.10.24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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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미실은 일식이 있다하고 덕만이 일식이 없다는 설정을 하였다면, 극이 더 극적이고 역사에 근접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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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운 모든 연정을 끊는 유신

유신(엄태웅)은 덕만(이요원)에 대한 사사로운 연정을 끊고, 마지막으로 덕만에 개인적인 사감을 드러낸것을 용서하라고 하면서, 덕만과 뜨거운 이별의 포옹을 한다. 나이어린 놈이 늙은 덕만 누이를 희롱하다니.. 사실 기록을 검토하다 보면 유신(595년생)이  615년 이후 출생으로 생각되는 덕만 보다 20살은 많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의도하지 않게 가장 합리적인 모습이 유신과 덕만의 관계이다. 드라마상에는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했지만, 덕만만 천명의 출생과 같이 기존통설에 따라 580년대 초반으로 천명과 덕만이 출생한 것으로 인해서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말이다. 화랑세기는 덕만을 천명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동생으로 기술되고 있다.

어찌 되었던 드라마가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왕이기 때문에 여러신하를 낭군으로 둘 수 있었다. 이를 <삼서>제라고 한다. 드라마에서 처럼 유신이 사사로운 모든 연정을 끊을 필요성이 전혀 없었다.

화랑세기는 덕만의 남편으로 용수. 용춘을 비롯해서 을제 대등과 흠반갈문왕까지 최소 4명의 남편을 두고 있었다. 또한, 경주 김씨들이 자신들의 선조라고 주장하는 김인평과 조씨의 조상인 조계룡 또한, 덕만(선덕)여왕의 남편이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심이 있는 분은  2009/07/22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래 낭군에 죽음 당할 뻔한 덕만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선덕공주가 즉위하자 (용춘)공을 지아비로 삼았는데, 공은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물러날 것을 청하였다. 군신(群臣)들이 이에 삼서(三婿)의 제도를 의논하여, 흠반공(欽飯公)과 을제공(乙祭公)이 보좌(副)하도록 하였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18대 실성왕때 사라진 비석

박혁거세의 유지가 담긴 사라진 비석에 대한이야기를 알천의 입을 통해서 드라마는 전하고 있다. 실성왕때 눌지태자가 정변을 일으켰다. 이에 실성이 비석을 가지고 토끼다 절벽아래로 떨어트리고 말았는데, 남은 구절은 "어출쌍생", "성골남진"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니 200년전에 사라진 비석이라는 설정이다.

삼국사기는 417년 18대 실성왕이 왕위에 있은지 17년 5월에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실성이 눌지를 없애려는계략을 꾸민다. 하지만 고구려군에 의해서 실성의 계략을 전해들은 눌지가 실성을 원망하여 돌아와 오히려 실성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삼국사기 딴지맨 일연은 삼국유사에 천만의 말씀, 눌지는 스스로 선것이 아니라 고구려의 지원을 받고, 고구려가 눌지를 세웠다고 기술하고 있다.

의희(義熙) 9년 계축(癸丑; 413)에 평양주(平壤州)의 대교(大橋)가 완성되었다.  왕은 전왕(前王)의 태자(太子) 눌지(訥祗)가 덕망이 있는 것을 꺼려서 이를 죽이고자 했다.  이에 고구려의 군사를 청하여 거짓 눌지에게 맞도록 했다.  그러나 고구려 사람들은 눌지에게 어진 행실이 있음을 알고는 창끝을 뒤로 돌려 실성왕(實聖王)을 죽이고 눌지를 세워 왕을 삼고 돌아갔다. - 삼국유사 18대 실성왕

월천의 지적호기심을 자극한 덕만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서 덕만은 월천에게 자신에게 정광력이 있으니 일식을 예측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월천은 "왜 그래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이는 격물(과학)을 하는 자는 정치에 이용만 당하는데, 미실과 다른 점을 덕만에 알려달라는 말이다. 월천은 562년 대가야 멸망시 자신의 조국인 대가야 사람에게 죽임을 당할 처지에 있었다, 하지만 적국인 신라의 사다함의 구원을 받은 처지이고, 사다함의 유지를 받은 미실의 보호아래 있었다. 그러니 미실을 배반(?)하면서 덕만에 귀부 할 수 있는 명분을 달라는 뜻이다.

하지만 덕만은 지적호기심이 강한 과학자 월천의 심리를 간파하고 있다.

덕만은 격물을 하시는 분은 <지적호기심>이 있으니 정광력을 보게 된다면 일식이 있는지 계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사실 과학을 하는 사람은 지적호기심이 크다.  글쓴이도 과학을 좋아라 하고, 공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지적호기심으로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상고사는 역사의 기록이 소략하여 미싱링크가 많다. 그래서, 소설가는 상상력을 발휘할 만한 여백이 그 만큼 많아지는 것이다. 또한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자료의 부족이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에 지적호기심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의 미스테리를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실증사학이다. 하지만, 현재 실증사학을 주장하는 자들은 문헌사학을 하지만, 그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이 결여되어 잘못된 통설을 남발하고 있다.

신라사의 가장 잘못된 통설은 성골과 진골, 화랑이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기존 통설을 뿌리채부터 부정하고 있다. 사실, 삼국사기를 세밀히 살핀다면, 성골/진골의 허구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출고된 기사를 본 분들이라면, 글쓴이가 성골/진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추후, 성골/진골의 시발점인 삼국사기의 기록을 토대로 성골/진골은 없었다고 이야기를 할 것이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프로파간다를 프로파간다로 깨는 덕만

덕만은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으로 인해서 버려진 운명을 또다른 예언으로 운명을 헤쳐 나가려 한다. 하지만, 덕만은 어출쌍생이 나머지 비문의 뒷글 어귀에 있는 없어진 내용을 찾기 보다는 자신이 바람이 되어 내용을 조작하려는 마음을 품는다. 이런 것이 대국민 <프로파간다:선동, 선전, 언론조작 등 모든 언론 대응법을 말한다>에 해당한다.


베라의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은 진실에는 별반 관심이 없다. 그저 기자(?)들이 작문한 떡밥에 의해서 움직일 뿐이다. 그러니 덕만은 일식과 어출쌍생, 성골남진으로 미실과 대적하고 신라를 접수하려는 마각(?)을 들어낸다. 

월천은 덕만에 미실과 다른 점이 무엇이며 자신의 안위를 지켜줄 수 있는지 끊임없이 답을 요구하지만, 덕만은 아직까지 월천에 답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단지, 일식을 계산하는 일은 덕만 자신의 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위해서 꼭필요한 일이라고 한다. 
 
미실은 신라를 접수하기 위해서 천심과 민심을 여론조작의 과정을 밟는다. 죽은새와 궁성현판이 떨어트리고, 혁거세가 태어났다고 알려진 <나을신궁>앞의 '나정'에서 핏물이 솟구치게 하는 쑈를 펼친다. 이는 새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짐승이니 황실에 불길한 징조라고 한다. 현판이 떨어졌다는 것은 신국에 위기가 있다는 뜻이다.

진평왕시기에도 불길한 징조에 대한 기록이 있기는 하다.

587년 "여름 5월 뇌성과 벼락이 치고, 별들이 비오듯 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즘 같으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유성비를 보는 장관이기 때문에 카메라를 장착하고 때를 기다렸겠지만, 당시에는 하늘에 변고가 생겼다고 생각하고, 왕은 자신의 부덕함을 탓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신라사를 보면 현판이 떨어지는 현상과 번개를 맞고 문이 무너지고 불타는 경우가 많다.

덕만은 미실의 '죽은 새'와 '현판 조작사건', '나정의 핏물', '비문조작'으로 대응하
려고 한다. 

죽은 새가 살아나 날아가는 현상을 보여준다면 미실의 권능은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런데 이게 어디선가 많이 봐왔던 장면 같지 않는가? 일종의 데자뷰인데, 사실은 김유신이 비담을 진압할 때 써먹던 떨어진 유성이 다시 하늘로 올랐다는 것을 차용한 듯 하고, 김유신이 당과 연합해서 백제를 칠 때, 계백의 5천 결사대에 발이 묶여, 소정방과 만나기로 약속한 기일을 맞출 수가 없었다. 

소정방은 김유신을 자신이 부릴수 있는 호기라고 생각하고 김유신을 압박하였다. 하지만, 김유신은 백제를 치기전에 당군과 대항하겠다며 17세에 단석산에서 얻은 신검을 꺼내 하늘을 찌르니 새가 떨어지고 오히려 소정방의 기세가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김유신은 소정방과 기싸움에서 승리한다. 단석산 신검에 관해 관심이 있다면 2009/08/19 - [역사이야기] - 유신, 덕만의 꼬임에 넘어가다, 그리고 선덕여왕의 비밀들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미생과 신관녀(설매)는 서로 밤하늘에 빛나는 흰새를 보고 "어떻게 했는가?"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이는 미실에 대항하는 덕만의 계략이다. 덕만은 사막에 묻힌 사람의 뼈를 많이 봤다고 한다. 사람의 뼈에는 '인'이 있는데, '인"이 밤에 발광하는 것이다. 공동묘지의 도깨비불이 보이는 현상을 새의 날개에 칠해서 밤에도 발광하는 새로, 죽은 새가 하늘로 다시 올라갔다는 조작을 간단히 간파해 버린 것이다.


비담은 신국의 변이 있어 나정에서 신국을 위해 기도를 드린다. 그러면서 국민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돋보기로 종이를 태워버린다. 또한, 덕만은 비담과 작당하여 미실이 쓴 방법 그대로 땅속에서 불상이 튀어 나오게 하듯이 나정 앞에서 비문이 솟아오르게 한다. 내용은 200여년전에 사라진 혁거세 거서한 비문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이다"의 다음구절이 된다. 

개양귀천: 낳은 양이 하늘로 돌아면,  
일유식지: 일식이 있을 것이다.  
개양자립: 개양이 스스로 서니, 
계림천명 : 계림이 하늘의 명으로 ,
신천도래: 새로운 하늘이 도래할 것이다.


덕만은 서서히 미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미실 당신이 대국민 조작을 한다면, 나도 충분히 미실과 같이 할 수 있다는 표현이다. 미실 또한 덕만의 조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서로 조작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순간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게된다. 덕만이 조작이면 미실 또한 조작이란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실과 덕만은 서로의 수를 계산하면서 어떻게 대국민 프로파간다를 하고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까? 고민을 하고 수 싸움을 하는 것이다.

현대에도 프로파간다는 존재한다.

최근 <미수다>에 출연중인 독일인 베라가 시애틀의 잠못드는 밤을 패러디한  <잠못드는 서울>을 독일어판으로 출판하였다. 논란의 대상은 일반적으로 베라의 말에는 관심이 없고, 단순이 언론찌라시 소설가들이 작문한 내용을 근거로 베라를 비난하기에 바쁘다,  베라의 글을 왜곡해서 번역했다는 블로거의 첫 번째 글이나, 그나마 바르게(?)하게 번역했다는 두 번째의 글을 봐도 베라를 비난할 만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찌라시 언론사에 있는 한 언론인(?)인 블로거는 베라가 당연히 할 말을 했고, 그정도는 용납되어야 하지 않는가라면서 국민들을 비판하면 안되냐? 네티즌들이 문제라는 류의 글을 올렸다. 처음에 글을 읽고, 같은 언론에 종사하는 자로서 자성의 모습이나, 같은 언론인으로서 언론인을 비판한 글인줄 알았다. 하지만, 오히려 찌라시 언론의 작문을 비판하기는 커녕 찌라시 언론에 놀아난 네티즌을 비판하고 있다.

최우선 비판의 대상은 찌라시 작가들이고, 이를 용인한 작가양성소(언론사?)이고, 이를 동료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용납한 찌라시연합회(기자연합회)이지, 찌라시의 낚시에 당해서 악플을 다는 국민이 될 수 없다. 네티즌이 비판받을 점은 무분별하게 찌라시를 기사로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찌라시 작가의 일원이 할만은 아니다. 요즘 언론사 찌라시들은 얼굴도, 거울도 안 보는가 보다. 뻔뻔하기가 가히 당할 자들이 없다.



블러핑을 가지고 올인하는 덕만 

덕만은 비담에게 미실을 만나서 밀계를 할 것을 지시한다. 이에 비담은 덕만에게 자신의 어머니인 미실에 대해서 묻는다. "미실이라는 사람 그렇게 무서워?" 그러자 덕만은 미실은 "내속을 들여다 보는 것 같거든, 그러니 비담은 너의 속을 보이지 말라"한다. 그리고 비담의 얼굴을 분장하여 전혀 알 수 없도록 망가트리고, 가면을 씌어 적진 속에 들어 보낸다.

또한, 위기가 발생하더라고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 나오라고 한다. 덕만의 비정한 면을 보이는 듯하다. 이제 덕만은 미실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적을 치는 방법 중에 가장 좋은 방법이 적의 수단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증오하면서 닮아 가면 안된다 덕만..

진평왕 비슷한 시기에 일식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19년(572)에 사신을 북제(北齊)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초하루 경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39년(592) 가을 7월 임신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원성왕
3년(787) 봄 2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몸소 신궁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다. 여름 5월에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가을 7월에 누리가 곡식을 해쳤다. 8월 초하루 신사에 일식이 있었다.

덕만은 미실이 월천도 빼앗기고, 상천관도 죽여 없는 상황에서 월천이 일식을 계산했을지 안했을지 불안한 점을 파고든다. 미실에게 비문의 <일유식지> 부분으로 일식이 있겠다는 것을 믿게 하고, 비담에게 일식이 적혀 있는

서찰을 이용해서 확실하게 "돌아오는 보름날 오시에 일식이 있다"는 것을 믿게 만들고, 미실이 일식이 있다는 날에 일식이 없음으로 해서 미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다.

이제 죽이려드는 미실과 속이려 드는 비담의 모자상봉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왜? 우리의 알천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띄워야할 월야의 분량이 적은거양 ㅠ.ㅠ. 미실과 비담의 관계를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2009/08/04 - [역사이야기] - 카리스마 비담, 미실이 버린 아들? 사실은 기사를 일독하기 바란다.


진평왕시기에 있었던 하늘의 뜻 (천명)

끝으로 당시에 하늘의 뜻으로 알았음직한 기록중 진평왕 시기의 기록을 살펴보는 것도 잼있지 않을까한다.

7
년(585) 봄 3월에 가물었으므로 왕이 정전(正殿)에 [거처하기를] 피하고 평상시의 반찬 가짓수를 줄였으며, 남당(南堂)에 나아가 몸소 죄수의 정상을 살폈다.


8년(586)  여름 5월에 천둥과 벼락이 치고 별이 비오듯이 떨어졌다.

11년(589) 봄 3월에 원광법사(圓光法師)가 불법(佛法)을 배우러 진나라에 들어갔다. 가을 7월에 나라 서쪽에 홍수가 나서 민가 30,360호가 떠내려가거나 물에 잠겼고 죽은 사람이 200여 명이었다. 왕이 사자(使者)를 보내 그들을 진휼하였다.

18년(596) 봄 3월에 고승 담육(曇育)이 불법을 배우러 수나라에 들어갔다.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겨울 10월에 영흥사에 불이 났는데, 불길이 번져 가옥 350채를 태웠으므로 왕이 몸소 나아가 진휼하였다.

31년(609) 봄 정월에 모지악(毛只嶽) 아래의 땅이 불에 탔다. 그 넓이가 네 보(步)이고 길이가 여덟 보였으며 깊이가 다섯 자였는데, 10월 15일에 이르러 꺼졌다.
 
35년(613) 봄에 가물었다. 여름 4월에 서리가 내렸다.

36년(614) 봄 2월에 영흥사의 흙으로 만든 불상이 저절로 무너지더니 얼마 안 있어 진흥왕비인 비구니(比丘尼)가 죽었다

37년(615) 겨울 10월에 지진이 일어났다.

49년(627) 봄 3월에 큰 바람이 불고 흙이 비처럼 5일 넘게 내렸다.  8월에 서리가 내려 곡식을 죽였다.

50년(628) 여름에 크게 가물었으므로 시장을 옮기고, 용을 그려 비내리기를 빌었다. 가을과 겨울에 백성들이 굶주려 자녀를 팔았다.

52년(630) 대궁(大宮) 뜰의 땅이 갈라졌다.

53년(631) 봄 2월에 흰 개가 궁궐 담장에 올라갔다. 5월 흰 무지개가 궁궐 우물에 들어가고 토성이 달을 범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26대 진평왕 579 - 632년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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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25 07: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국, 덕만도 미실이 했던 방법을 그대로 답습함으로써, 여론의 힘을 빌리려 하는 걸 보면
    덕만이나 미실이나 권력을 쥐게 되면 누가 나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그 기준이
    참 모호해지죠. 덕만이 이 모순된 자기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지가...관전 포인트...^^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5 07: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프로파간다를 이야기했고, 마각(?)이란 표현을 쓴건뎅.. 캐치를 하셧군요..

      작가가 어떻게 풀어갈까 궁금합니당.. ㅋㅋ

  2.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朱雀 2009.08.25 08: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추천 누르고 갑니다.
    앞으로도 자주 자주 올려주세요. 제 하루의 낙 중에 하나입니다. ^^

  3. Favicon of http://www.ilovenews.co.kr BlogIcon 대한민국 황대장 2009.08.25 0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런 포스트를 작성하시려면 엄청난 노고가 필요할 듯...
    저야 그냥 아는대로 설래발래 쓰는 글인데도 시간이 걸리는데요.
    자료 찾고 또 풀어가시려면...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5 1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는 직접 블로그 입력창에서 글을 쓰는데. 도대체 몇페이지 정도 될까하고,, 워드에서 봤답니다..

      그림 없이.. 딱 5페이지더군요.. 이정도 길이면 글을 읽기에 불편한 글이지요.. ㅋㅋ

      암튼 쓰는데는 별로 시간이 안걸리는뎅.. 자료를 찾는데 시간을 보내기는 합니다..

      저의 전공으로 돌아갈까 생각중.. 저의 전공은 이슈에 대한 시사성 글인뎅.. 그런글은 단10분이면 족하자 잖아요..

      암튼 오늘도 별로 호흥(추천)을 못받는 군요.. 도도한 네티즌들 때문에.. 그들은 손가락에 황금 기부스를 해서 손가락이 천금과 같이 무겁습니다.. ㅋㅋ

  4. 뚜벅이 2009.08.25 0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식은 일어난다.

    비담은 일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미실에게 일식이 있을거라고 믿게 만들러 들어간다.
    비담의 목적은 미실에게 "일식이 일어날 것이다." 라고 속게 만드는 것.
    그러나 미실은 비담의 속내를 간파하고 "일식은 없다"라고 선언할 것이다.
    더불어 그 비석의 이야기가 허구임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석에는 일식이 있을거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정적인 순간에 일식이 일어나서 미실이 하늘의 뜻을 받고 있지 않음을 증명하고,
    비석의 예언 처럼 또 하나의 계명인 덕만이 나설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ㅎㅎㅎ
    믿거나 말거나... ^^

    결국 덕만은 미실을 속이기 위해 비담부터 속인 것이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가겠지만, 이것이 후일 비담이 덕만에게 등을 돌리게 되는...
    즉, 자신의 목숨이 이용당했다는 것 때문에 인간적인 신뢰를 잃게 만드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5 1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뚜벅이님 저의 생각도 비슷하긴 하지만 ㅋㅋ
      일식은 있지만 한참 비담이 죽어가는 순간..에..

      비담을 화형을 시키는 장면도 잼있어요.. 김유신의 불쇼가 을 차용한 것 같거든요.. 문희와 춘추를 엮어주는..

      시간차 공격은 조선 세종의 일식사건을 차용하는 것 같공..

      암튼 이런류는 오늘 보고 나면 쓰게 되겠지요.. ㅋㅋ

    • 뚜벅이 2009.08.25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 생각도 그 때일듯 합니다.

      1. 비담은 최선을 다해서 미실에게 일식이 일어난다고 믿게 하려 한다.
      2. 미실은 비담의 속내를 간파하고 일식이 없다고 확신한다.
      3. 미실은 공개적으로 덕만등에 과시하기 위해 비담을 묶어 놓고 비담의 말처럼 일식이 일어나면 살려주고, 일식이 일어나지 않으면 죽인다고 협박한다.
      4. 비담이... 그 상황에서 어찌 할지는 좀 미지수구 ^^
      5.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일식이 일어나고, 비담은 목숨을 구한다.

      이렇게 되지 않을까요? ^^

      디테일이야... 오늘 보면 알겠죠. 어차피 사실의 추리가 아니라 작가의 생각을 추측하는 거니까... 틀리면 생각이 다른거구요 ㅋ (책임회피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5 1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그냥 상상해보는거지요.. 소설을 일부러 읽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허접해서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지만..

      읽고 나면 스포의 유혹을 느끼거든요.. ㅋㅋ

  5.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朱雀 2009.08.25 11: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오늘도 메인에 뜨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정성과 정보가 가득 들어간 글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시길~^^/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5 11: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가요? 요즘은 안보내주던뎅.. 왠일이래용.

      저야 ㄳ 할 따름이지만.. 제글은 메인에나 노출되야 그나마 추천이.. ㅠㅠ.. ㅋㅋ;;;


      주작님도 행복한 날 되시길..

  6. Hiro 2009.08.25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뚜벅이님같은 생각을 했었는데..^^ 보름날 오시에 일식이 일어날 것 같단 말이죠.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계속 지켜보게 되네요.
    어제 조금 아쉬웠던 거라면, 덕만이 월천을 설득하면서 자신은 미실과 어떻게 다른지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덕만 스스로도 자신이 미실과 다른점을 말하지 못한다면, 단지 공주이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화랑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아직까지는 덕만이 목적도 분명치 않고, 공주가 되어서 복수하겠다는 마음에 휩싸인 것처럼 보여 조금 불안합니다.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정말 영양가 있는 포스팅이에요.ㅎㅎ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5 1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이제 미실의 마지막 반격을 기대해 볼 차례 같습니당.. ㅋㅋ

      영양가가 너무 많음 안되는뎅.. 적당해야지용.. 과식은 금물.. ㅋㅋ

    • 이클립스 2009.08.25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식이 일어난다에 한 표 걸면...

      지금 감금상태의 월천대사가 소일거리로 일식을 계산할 것 같습니다.
      덕만에게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제 버릇 개 줍니까??
      덕만은 몰카로 그 장면을 목격하고
      비밀파일을 입수하게 되죠. 어러면 궂이 설득이 필요없을지도...

      요즘 더위먹어서.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5 13: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용.. 왜 덕만은 월천을 멋찌게 꼬시지 못했을까요?
      어린 유신도 꼬셨는뎅.. ㅋㅋ

  7.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25 12: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과 덕만공주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군요...

    근데... 제 생각에는 덕만공주 나이가 왕이 될 때는 20대 중반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당태종이 덕만공주가 나이가 많은데... 짝이 없다고 우롱했다는 부분을 생각하면요...

    뭐... 하나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5 13: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태종이 덕만이 나이가 많아 우롱했다는 부분은 없거든요..

      태종 즉위사절단인 신라에만 주었다는 것도 억지지요.. 예전에 썼지만.. 덕만의 자격지심이지요..죽을때..

      암튼 권력을잡을때 20살 안팍이였을 것으로 추측은 됩니다.. 아무리 많이 먹어동..

  8.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25 13: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내용이야
    이미 탄탄한 블로그로 정평이 나 있으니...
    "갓쉰동"
    무척 좋은데...
    "이반의꿈"
    못지않게 좋군요.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9.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25 14: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이곳에서 먼저 공부를 하고 글을 썼어야 했어요.ㅜㅜ
    저도 덕만과 유신이 굳이 이별을 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했는데(둘이 사랑못할 이유는 또 딱히 없거든요)
    아무리 드라마라도 그런 무리수는 두고 싶지 않았나 봐요.
    덕만이나 미실이나, 예전이나 오늘이나 여론이 큰 힘인 것만은 분명하죠?

  10. Favicon of https://manzzang.tistory.com BlogIcon 도희. 2009.08.25 15: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ㅎㅎ

  11. 오타 수정요 2009.08.25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장을 다시 한번 손보셔야 할듯. 너무 오타가 많아서 읽기가 거북하네요. 조사나 어미를 왜 그렇게 신경않쓰셨는지 ㅡㅡ;

  12.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3. Favicon of http://nextgenerationpestcontrol.com BlogIcon Green Pest Control - Next Gen 2012.09.05 0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 조금의 지원만 있다면 어떤 종목에서던 세계최고 수준의 도달할 수 있다. 물론, 개인의 역량

'선덕여왕' 설원랑(전노민)은 '찬유' 백성희(김미숙)

한때 부드러운 이미지로 특히 아줌마들의 선망이고, 로망이였던 전노민이 mbc 사극 <선덕여왕>에서 설원랑(전노민)으로 악역을 자처하고 나섰다. 부드러우면서 차갑고, 치밀하고, 전략적인 악인이다.

여배우 김미숙이 <찬란한 유산>에서 따스한듯 하면서도 차갑고, 치밀하면서도 차분한 백성희 역으로 호평을 받았다면 전노민도 김미숙과 같은 부드러우면서 차갑고, 냉철한 악역을 보여주고 있다. <선덕여왕>에서 설원랑(전노민)은 미실(고현정)의 충복이며, 정부로 나온다. 또한, 미실이 하는 일이라면 쌈심지를 켜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기록이 말한 설원랑은 누구?

하지만 역사의 기록에는 설원랑이 음악에 조예가 깊은 듯 하게 나온다. 음악에 조예가 깊다고 해도 악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삼국사기> 악지 피리(삼죽)로 만든 <사내기물악>을 만들었다.
 

날현인(捺絃引)은 진평왕 때의 사람인 담수(淡水)가 지은 것이고, 사내기물악(思內奇物樂)은 원랑도(原郞徒)가 지은 것이었다 - 삼국사기 악지 삼죽(피리)


삼국유사에는 남모와 준정이 원화로 있다가 준정이 남모를 투기하여 술을 먹인 후 산개울에서 돌로 처 죽여 버린다. 이에 진흥왕이 원화를 없애고, 이름을 화랑으로 고치고, 화랑의 국선으로 설원랑을 세웠다고 한다. 
진흥왕 원년(540)에 진흥(심맥종)은 7살 어린 코흘리개 였다. 그러니 진흥왕이 한일이 아니라 어미인 지소태후가 한일 임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는 시집안간 처녀로 원화를 삼았다고 하지만, 화랑세기에는 원화의 대장 남모(법흥/보과)는 2세 풍월주인 남모와 결혼을 한 상태였고, 준정(삼산/?) 영실과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삼국유사와 화랑세기는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풍월주, 화랑, 원화, 국선에 대해서도 조금씩 차이가 난다.


여러 해가 되자 왕은 또 나라를 일으키려면 반드시 풍월도(風月道)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시 영을 내려 양가(良家)의 남자 중에 덕행(德行)이 있는 자를 뽑아 이름을 고쳐 화랑(花娘(郞))이라 하고, 비로서 설원랑(薛原郞)을 받들어 국선(國仙)을 삼으니, 이것이 화랑(花郞) 국선(國仙)의 시초이다.  그런 때문에 명주(溟洲)에 비(碑)를 세우고, 이로부터 사람들로 하여금 악한 것을 고쳐 착한 일을 하게 하고 웃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에게 유산하게 하니 오상(五常)·육예(六藝)와 삼사(三師)·육정(六正)이 왕의 시애에 널리 행해졌다
(<국사國史>에 보면, 진지왕眞智王 대건大建 8년 경庚(병丙)신申에 처음으로 화랑花郞을 받들었다 했으나 이것은 사전史傳의 잘못일 것이다). - 삼국유사 미륵선화(彌勒仙花)·미시랑(未尸郎)·진자사(眞慈師)

삼국유사에 의하면 국선으로 설원랑의 세우고 명주(강릉)에 비를 세웠다고 하니, 만약, 강릉에서 이 비를 찾는다면, 확실히 <화랑세기>진위 논쟁이 종지부를 찍을 지 모른다. 강릉 한송정 근처가 화랑들이 옛부터 놀던 터라고 하니, 그곳에 사시는 분이나, 강릉쪽으로 휴가를 가는 분들은 찾아보는 것도 잼있지 않을까?

화랑세기가 말하는 7세 풍월주 설원랑

8세 풍월주가 되는 문노는 무를 숭상하고 전쟁에 나아가 전공을 세우는 것을 명예로 생각하지만, 7세 풍월주 설원랑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기록한 것 처럼, 산으로 들로 유람을 즐기고, 선도에 심취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화랑세기는 설원랑의 화랑들을 운상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한, 문노와 설원랑은 서로 대립적 이나 미실에 대해서 만큼은 문노나 설원랑이나  충성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많은 차이가 보인다.

어찌되었던 <화랑세기>에 의하면, 구리지의 양자였던, 설성이 사다함의 어미인 금진과 관계를 하여 설원랑을 낳았다. 설원랑(설성/금진)은 사다함 보다 3살이 어렸다. 사다함이 546년 생이니  설화랑은 549년 생이 된다. 설화랑과 사다함은 동복형제가 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572년 진평의 아버지인 동륜태자(진흥/사도)가 미실의 공작으로 보명궁에서 개에게 물려 죽고, 미실의 원화가 폐지 되었다. 

미실의 남편인 세종(이사부/지소)은 6대 풍월주에 다시 오르지만, 미실이 자신도 원화에서 떨어졌는데, 세종이 다시 풍월주에 오르는 것을 옳지 못하다고 하여 이내 그만 두고, 풍월주의 지위를 설원랑에 양보한다.

그러니 572년 즈음해서 설원랑이 풍월주에 올랐다고 보여진다. 이로써 572년 '설화랑이 국선이 되었다'는 삼국유사 기록과 화랑세기의 기록이 일치를 보는 것이다. 


설원랑은 "아버지인 설성의 지위가 한미하다"는 이유로 화랑들을 통솔할 수가 없었다. 이에 미실은 설원랑에게 3세 풍월주인 모랑(법흥/보과)의 미망인 준화에게 장가를 들도록 하였다.  준화는 위화랑과 준실 사이에 난 4세 풍월주 이화랑(위화랑/준실)의 누나이다.

3세 풍월주 모랑은 법흥과 백제공주인 보과 사이에서 난 사람이고, 모랑의 누나가 첫번째 원화였던 남모(법흥/보과)였다. 남모가 준정에 죽고 나서 1차 원화가 폐지되었다. 

이해 540년 화랑이 만들어 졌는데 이때 위화랑이 1세 풍월주에 오르고, 2세 풍월주에 미실과 미생의 아버지인 미진이 오른다.


미실이 설원랑에게 준화를 천거한 이유는 준화가 3세 풍월주 모랑의 아내이자 화랑의 화주였기 때문이며, 준화의 아버지인 1세 위화랑과 동생인 4세 이화랑의 권위를 업고 가기 위해서 였다. 또한, 모랑의 재산을 상속받은 유일한 상속자 였으니, 법흥왕의 자식으로 얼마나 재산이 많았겠는가? 준화와 결혼하는 순간, 모랑의 재산은 설원랑에 귀속된다.

위에서 언급을 했지만 설원랑은 549년생이다. 모랑은 555년  비사벌을 여행하다 죽었다. 이해에 지소태후는 만호(이화랑/지소)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평(동륜/만호)의 어머니이자, 만명(숙흘종/만호)의 어머니인 만호(이화랑/지소)는 555(6)년 생이다. 이것도 재미있는 기사거리가 될것이다. 만호는 어릴적에 3명의 자식을 두었다. 그리고 미망인으로 숙흘종과 금륜(진지)과 관계를 가졌다.

어찌되었던 준화는 20살에 과부가 되어 18년 동안 재가를 하지 않고, 독수공방 긴긴밤을 딸인 준모와 함께 지냈다. 준화는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다가, 572년 38살에 미실의 중매로 영계 설원랑과 결혼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설원랑이 7세 풍월주에 오른때는 555년으로 부터 18년이 지난 572년이 된다. 이때 설원랑(549년생)은 24살이 되고, 준화(536년생)는 38살이 된다. 설원랑의 어머니는  금진(위화랑/오도)이고, 준화(위화랑/준실)는 금진과 이복자매가 된다. 그러니 준화는 사사로이는 설원랑의 이모가 된다.

둘의 나이 차이는 14살차이가 난다. 나이 어린 신랑을 둔 준화는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고, 설화랑은 준화에 주눅이 들어 생활하지 않았을까? 


제비나 여자 연예인의 롤모델 설원랑

어찌되었던 나이 많은 재벌 명문귀족의 미망인과 결혼해서 인생역전 지위가 급상승하는 것이다.

설원랑은 요즘 재벌가에 시집가는게 로망인 여자 연예인이나, 재벌 츠자나 재산많은 미망인을 꼬셔서 인생역전을 노리는 제비들이나 총각들의 인생의 롤모델이 되는 산 증인이다. 

모랑(법흥/보과)의 재산을 상속받은 미망인 준화는 설원랑에 날개를 달아준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자신의 어머니인 금진(위화랑/오도)의 이복자매인 준화(위화랑/준실)와 결혼을 하고, 풍월주로써 화랑을 제어할 수 있었다. 물론, 준화의 전남편인 모랑(법흥/보과)의 유무형의 재산을 물려 받았으니 살아가는데도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신라를 세운 6부귀족인 고야촌장 호진의 후손인 설원랑도 어미인 금진(위화랑/오도)의 권능으로도 왕족과 귀족출신들이 많은 화랑들을 어찌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설원랑은 모랑(법흥/보과)의 미망인 준화(위화랑/준실)와 결혼을 하고, 미실과 관계를 하면서 신라시대에 입지전적인 인물이 된다.  

 


 손녀사위 유신, 원효와 설총의 직계조상 설원랑

설원랑과 준화 사이에는 설웅,잉피, 정금을 낳는다. 잉피는 담날을 낳고, 담날이 원효대사를 낳는다. 원효는 요석공주와 관계를 하여 설총을 낳는다.


하지만, 설원랑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준화의 딸인 준모(모랑/준화)와 관계를 하여 미모를 낳는다.  미모가 11세 풍월주 하종(세종/미실)과 결혼하여 영모를 낳고, 영모(하종/미보)가 18세인 유신(595년생)과 612년 결혼을 하고, 유신은 15세 풍월주에 오르고, 영모는 화랑의 화주가 된다. 
 
579년 나이가 어린 진평왕과 관계에 실패한 미실이 설원랑과 관계를 하여, 드라마에서는 설원랑과 함께 미실의 충실한 충복인 악역으로 나오지만, 진성공자 16세 풍월주인 보종(579~580)을 낳는다. 좀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사실은 유신과 보종 너무나 친한 사이 글을 참조 하길 바란다.

신라 계급 골품에 한계를 느낀 귀족 설계두

신라의 골품에 치를 떠는 인물이 있다. 이도 설원랑과 같은 6부귀족이며 같은 설씨이다.
설원랑보다 후대에 설계두가 있었는데 설계두는 신라의 신분사회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명예를 얻고, 직위를 얻는데 한계가 있다 느끼고 당나라로 이민을 간다. 그리고 대고구려 전쟁에 참여하고, 645년 주필산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다. 이에 당나라가 고구려에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후대의 바다의 왕자 장보고를 보는 것 같지 않는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도 설계두가 참여한 주필산 전투에 관한 일화가 있다. 수나라 사신단이 황칠을 찾는 장면이 나온다. 황칠은 명광개(황금갑옷)을 만드는 재료이다. 주필산 전투에 참여한 고구려와 당나라는 황금갑옷을 입고 전투에 참여했다. 이에 관심이 있는 분은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신라에서 백제 특산물 황칠을 찾는 수나라 기사를 읽어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설계두에 관한 글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포스팅 할 예정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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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08 07: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원랑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알게 되다니...
    그나저나 설원랑 후손이 원효대사라니...
    좋은 정보와 재미 얻고 갑니다.

  2. Favicon of http://starculture.tistory.com BlogIcon 아이러니♡ 2009.08.08 07: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비들의 산증인.. 상당히 웃기네요 ㅋㅋ
    설원랑을 이렇게 자세하게 옮겨주실줄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3.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08 08: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군요.
    근데, 조금은 복잡하네요... ㅋㅋ

    설원랑이 그 유명한 원효대사의 조상이라니... 몰랐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4.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08 08: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리고 제 소설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충고까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참고하겠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5. 2009.08.08 1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08 11: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설원랑 이야기네요. 원효대사가 손자라니!!! 이 무궁한 이야기보따리를 책으로 발간하시는 게 어떠할런지요? 선덕여왕이 보다 헷갈리면 여기와서 인물정리하고 가느라 들락날락 바쁩니다.

  7.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8 13: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원랑....
    나중에 다시 공부하겠습니다.
    어젠 고교 동창이랑
    오랫만에 와인에 푹빠져 아직
    비몽사몽입니다.

    그나저나
    방학도 없나요?
    지금껏 공부한 거 시험치자고 하니
    시험도 없고...
    그래도 방학은 ㅋ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8. 감사합니다 2009.08.08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볼 때 마다 설원랑 캐릭터 매력있다고 생각했는데 님 덕분에 좋은 정보 얻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9 11: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설원랑 캐릭이 잼있어요. .정말.. 눈빛연기도 죽이공..낮은 톤에서 나오는 악역이 더 무섭긴 하지요.. 내공이 보임.. 고현정과 같이..

  9. Favicon of http://fiat.gruposinal.com.br/concessionaria-fiat BlogIcon concessionaria fiat 2012.04.26 05: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난 그냥이 게시물에 여기 당신이 가진 위대한 정보에 대한 큰 엄지손가락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더 빨리 귀하의 블로그에 돌아올 것이다.

  10.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200

(C) mbc 사극 드라마 선덕여왕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수 많은 여인들이 나온다. 현재 고현정이 맡고 있는 미실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권력욕, 천재성을 두루 갖춘 주인공으로 내세울수 있는 최상의 캐릭터다.

하지만 미실 전에 지소, 금진, 옥진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지소는 법흥왕의 딸로서 작은아버지 입종에 시집을 가서 진흥을 낳는다. 하지만 진흥이 왕이 되기 위해서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법흥은 진흥보다는 지소의 두번째 남편인 영실이나, 미진(법흥/벽화)를 후계로 점지 했었다. 하지만, 지소의 반대로 법흥은 진흥을 자신의 후사로 결정할 수 밖에 없었고, 영실도 법흥의 후계가 되지를 못했다. 만약, 영실이 왕이 되었다면, 김씨에서 박씨로 성씨가 교체되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이전 여왕은 있었다. 첫번째는 누구?! 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번편은 금진/옥진 자매중 사다함의 어머니로 유명한, 금진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사다함의 죽음에 관한 비화

(C) MBC 선덕여왕, 사다함(박재정)

금진은 수 없이 많은 남성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지소와 미실과는 다르게 권력욕보다는 색욕이 강한 여성이였다. 사다함의 부장이였던, 무관이 금진과 사통하는 일이 발생한다. 금진과 무관의 관계는 사다함에 들키게 되고, 무관은 월성 담장을 넘어 도망치다 성을 보호하려 만들어놓은 해자(물웅덩이)에 빠져 죽고 만다.

사다함은 무관의 죽음에 비관하여  죽고 만다. 사다함이 죽게 되는 여러 이유 중에는 미실을 사랑하였으나, 미실은 세종에게 시집을 가벼렸다. 그리고 자신의 충직한 부관인 무관이 자신의 어미와 사통하다. 죽음에 이르게 된것이다. 사다함이 어머니의 색욕에 의해서 죽게되는 운명에 처한다. 사다함의 죽음에는 결국 어머니에 의한점이 많다.


금진의 남자들


이전글에서 지소의 남성편력을 상세히 이야기 했지만, 금진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알고 미실의 팜므파탈은 지소나 금진에 비하면 하수에 가깝다.

사실 사다함은 금진의 남편편력에 대해서 증오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미를 어미라 부르지 않던 사다함에게 이사부는 신도의 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에 사다함은 깨달음을 얻어  무관이 죽을 시점에는 어머니의 남성편력에 대해서 달관의 경지에 도달할 때 였다. 무관으로서는 이전 사다함이 어머니의 편력을 미워한 사실을 알고 있던터라 사다함에 들키자 무작정 도망을 치다 죽어버린 것이다.

상상을 해보자.  달이 밝지 않은 월성에서 도망자와 추적자..사다함이 무서워 무작정 도망가는 무관과 오해를 풀어주려던 사다함과, 자신을 죽일 것 같은 사다함.  "도망가지 마라 무관~, 괜찬다 무관", 말은 도망가지 말라고 하지만, 잡히면 죽을 것 같은 무관. 561년 가야정벌에서 가야인을 안심시키고 한번의 진공(공격)으로 가야를 무너트린 사다함의 계략을 잘고 있던 무관으로써는 당연히 오해를 살만 하지 않던가? 

구리지와 결혼을 하기전에는 금진은 법흥의 후비였지만, 법흥과 사이에는 후사를 보지 못했다. 540년 법흥이 죽고 나자. 구리지와 결혼을 하여 토함과 새달 그리고 5세 풍월주 사다함을 낳는다. 

법흥의 아우이며 지소의 남편인 입종을 통해서는 숙흘종을 낳는다. 숙흘종은 만호(지소/이화랑)의 사이에서 만명을 낳고, 만명이 김서현과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후 김유신을 낳는 것이다. 진흥을 통해서는 난성공주를 낳고, 누군지를 알 수 없는 상대에게서 준영을 낳는다. 

금진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남편의 양자인 설성과 관계해서 7세 풍월주인 설원랑을 낳는다.

 입종은 법흥과 같은 해인 540년 죽었다고 화랑세기는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금진의 첫째 아들은 숙흘종이 아닌가 한다. 이들의 순서는 설원랑이 사다함(546년생)보다 3살 어리다고 기록하였으니, 숙흘종(입종), 토함(구리지), 색달(구리지), 사다함(구리지), 설원랑(설성:549년생):(그림에는 548년생으로 나왔지만 오류), 난성(진흥), 준영(?) 이며 금진의 동복 형제자매가 되고, 순서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를 닮아 끈질긴 구리지

구리지는 이름이 현재에 봐도 조금 머시기 한 이름이 아닌가? 너~ 먼가 구리지..한마디로 하면 너 똥냄새 난다는 말이다. 
사실 구리지는 그의 아비인 비량이 법흥의 비였던 벽화(섬신/벽아)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머지 벽화와 화장실에서 관계를 해서 낳은 아들이다. 그래서 이름이 '구린내'를 뜻하는 구리지가 된 것이다. 

구리지는 아버지인 비량의 피를 이어 받아 끈질김이 있었다. 처음 금진이 법흥의 비가 되었을때, 한눈에 반해 사모하는 마음이 깊었다. 그래서 구리지는 '천주사'에서 5년동안을 금진을 자신에게 달라고 빌고, 빌었다. (천주사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그리고 마침 법흥과 입종이 죽자. 금진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구리지가 취한게 아니고 실은 금진이 구리지를 간택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던, 구리지는 "열번찍어 안넘어가는 여자 없다"는 고사를 만들어(?)낸 인물이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요즘도 여성에 대한 허황된 환상에 빠져 열번찍어 보는 경우도 있지만, 한결같이 5년동안 빌고비는 행위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성이지 않을까 한다. 미인을 얻는자는 그만한 대가를 치루게 되는 모양이다. 금진은 구리지에 만족하지 않고, 그후에도  수 없이 많은 남성을 자신의 남자로 만들고, 그로 인해 자식인 사다함까지 죽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으니 말이다. 

 

금진의 후손들

위의 금진의 남자들과 후손들을 보면 금진과 유신과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금진 할미를 둔 덕만과 유신

금진/입종(법흥/연제) -> 숙흘종/만호(지소/이화랑) ->만명/서현 -> 유신 .
지소/이화랑->만호/동륜[진흥/사도(영실/옥진)] -> 진평/마야 [복승/송화(지소/영실)]-> 천명,덕만,천화

이로써 덕만과 유신은 만호를 할머니로 둔 사이가 된다.

설원랑과 미실의 손녀 사위 유신

또한, 설원랑과 유신은 금진의 자손이 된다. 또한, 설원랑이 준모(모랑/준화)를 통해서 낳은 미모가 미실/세종이 낳은 하종/미모과 결혼하여 영모를 낳는다. 영모는 유신이 풍월주에 오르는 18세가 되기 바로 전에 결혼을 한다. 

그러니 유신은  설원랑의 손녀사위가 되는 것이다. 또한 유신은 미실의 손녀사위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미실과 설원랑은 김서현 가문과 척을 진적이 없고, 끈끈한 핏줄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과 전혀 다른 성격의 보종(미실/설원랑)

 

보종

15세 풍월주 유신에 이어서 16세 풍월주에 오르는 이도 설원랑/미실의 아들인 보종이 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보종은 청아하고, 정이 많고,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아는 사람으로 나온다. 보종은 유신이 어려움에 처했을때나 병이 났을때, 치료를 해주는 유신의 주치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드라마처럼 약역전담 처리반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유신공이 병이 나자 공이 문득 몸소 치료하며 “우리 공은 국가의 보배이니 나의 의술을 숨길 수 없습니다” 하였다. 이로써 그가 편작(扁鵲)243)의 학(의학)을 갖추었음을 모두 알게 되었다. - 화랑세기 16세 보종

또하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하종과 보종이 나오고 하종이 보종의 형으로 나오지만, 비슷한 연배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는 하종은 563~4년생이고 보종은 580(?)년생이다. 유신은 595년생이다. 당시 기준으로 하면 하종은 유신의 할아버지뻘이고, 보종의 아버지 뻘이다. 그리고 11세 풍월주 하종의 딸인 영모가 유신과 결혼을 하니 유신은 하종의 사위가 되는 것이다.

남성 기능 장애자 세종 (댓글로 지적을 받아 삭제 해야 하나 남겨둡니다.)
 

세종

이전글에서 하종은 세종의 자식이 아닌, 미실과 사다함의 자식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하종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다함을 닮았다고 하며, 세종은 미실과는 다르게 하종을 제외하고는 후사가 없다. 세종에게 남성기능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하종은 사다함의 자식이 될 수 밖에 없다.

( 세종과 미실사이에는 하종 이외에 옥종이 있었습니다)

금진의 아들인 설원랑 편에서도 언급을 하겠지만 설원랑 가문은 진평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진평의 아들들 중 한명을 생산하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전혀 언급이 되어 있지 않는 왕자들이다. 승만왕후 소생은 일찍 죽고, 나머지 진평왕의 아들인 보로전군 이야기도 나온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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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daybreak81.tistory.com BlogIcon 사자의새벽 2009.08.03 0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정말 선덕여오앙에 대해 이렇게 심도있게 쓴글 처음입니다.
    돈이라도 드리고 싶네요 ㅋ
    갓쉰동님 좋은 한주 되세요!! 글 잘 봤습니다.

  2. Favicon of https://preciousness.tistory.com BlogIcon ♡ 아로마 ♡ 2009.08.03 0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전문 블로거로 임명 합니다~
    ^^

  3.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3 10: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역사전문 블로그로 말씀드리고 싶군요.
    한때 역사선생님이 되실려고 하셨기도 하고...
    잘 공부합니다.
    더불어 좋은글도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이번주도 행복한 한주 되시길 바랍니다.

  4. 희망 2009.08.03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춤법에좀 신경을 쓰시면서 글을 쓰면 좋겠네요.
    전문적이고 역사적인 글이 맞춤법 하나 틀리면서 얼마나 신뢰성을 잃는지 아신다면..

    띄어쓰기나 잘 쓰지 않은 표현을 틀린다면 몰라도
    세발의 피, 거늘이다 는 조금 알아두셔야 할듯 합니다.

  5. BlogIcon agkrihl 2009.08.03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치게 본인의 입맛에 맞추신듯... 내용을 미묘하게 누락하셨네요...

    화랑세기 필사본에 따르면 미실은 세종공과의 사이에서 하종외에 옥종공을 낳았습니다...

    하종공에 대해서도 하종이 사다함을 닮았으나 세종의 아들이라고 못을 밖고 있으며,

    사다함이 금진의 아들이고,

    미실이 금진의 언니인 옥진의 외손녀로 외모가 옥진과 닮아있었다 하니...

    미실의 아들이 사다함을 닮았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6. 뇽자 2009.08.04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너무 좋아 하는데...~~

    이렇게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을 줄이야 .....

    여튼 좋은 글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8. Favicon of http://garnertondy.multiply.com/journal/item/2/The_5_Most_Favored_Emergency_Su.. BlogIcon pilot crackers alaska 2012.11.01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9. Favicon of http://www.e-news.name/louer-un-chien/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 2012.11.05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문 블로거입니다. 내 피드에 가입하여 큰 게시물의 여분의 탐구에에 남아

  10. Favicon of http://poofygoo.blogspot.com/2008/07/do-you-believe-in-coincidences.html BlogIcon portable dog fencing camping 2012.12.20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11. Favicon of http://bhuokit.beep.com/ BlogIcon food supplies for restaurants 2012.12.31 1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다함이 어머니의 색욕에 의해서 죽게되는 운명에 처한다. 사다함의 죽음에는 결국 어머니에 의한점이 많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진면목인 색공에 관련된 사항을 밝힐 수 없는 나름의 속사정이 있지만, 그래도 화랑세기에 나온 미실의 성격을 고현정이 잘 묘사한 것 같다.

능숙히 사람을 다루는 경지가 과히 화랑세기에 나타난 미실의 정치적인 면이다. 또한, 예술적이 소양을 '소엽도'를 그리는 행동으로 단순이 색공만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 예술과 정치력, 정치술수 등 이 뛰어남을 나타내 주었다.

화랑세기에는 미실이 정치,색공,술수 뿐만 아니라 글에도 조예가 깊어서 수많은 저술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쟁에 출전하는 사다함에게 사랑의 세레나데와 님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절절한 환송시를 쓰기도 한다.


풍랑가
- 미실
바람이 불(분)다고 하되, 임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친다고 하되, 임 앞(에) 치지 말고
빨리 빨리 돌아오라, 다시 만나 안고보고
아흐, 임이여, 잡은 손을 차마 물리라뇨.


한마디로 조선의 제일기녀 황진이도 울고갈 절세가인이 아닐 수 없다. 낮에는 요조숙녀, 밤에는 요부가 되는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다.

화랑세기에는 미실이전에 3명의 유명한 여인이 등장한다. 첫째는 덩치의 풍만함이 1세 풍월주의 누나인 벽화이고, 미모는 미실의 할머니인 옥진이요, 색공은 미실의 이모할머니인 금진이다. 더 나아가 이들을 휘어 잡고 있던 법흥왕의 딸이고 진흥의 어머니가 되는 지소태후이다.  

팜므파탈적인 모습을 보여준 미실과 비견되는, 또는 미실을 능가하는 여인들을 살펴볼려고 한다.

미실의 남자들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보는 미실의 남자들


미실은 3황인 진흥과 진지,진평과  왕자 동륜 등  진흥의 손자인 진평왕까지 3대에 걸친 신라 왕들에 멸사봉공(?) 봉사를 하고 있다. 또한,  풍월주인 5세 사다함, 6세 세종, 7세 설원랑과 관계를 가지고, 자신의 동생 미생까지도 관계를 가지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기도 한다. 확실히 다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대략 확인한 사람은 남편 6세 풍월주인 세중을 비롯해서 8명의 남자들이 미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미실과 남편인 세종사이에는 11세 풍월주인 하종을 낳는데, 화랑세기에는 하종의 생김새가 사다함을 빼어 닮았다고 한다. 사실 세종과 미실사이에는 하종을 제외하고 전혀 후사가 없다. 미실은 설원랑을 통해서 보종을 낳고, 다른 수 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하여 자식들을 두고 있는데, 의심스러운 하종을 제외한다면, 전혀 자식이 없는 것이다.

미루어 짐작컨데 세종은 생산력이 없는 씨 없는 수박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끝까지 미실을 지킨 사람은 세종이라고 한다. 그러니 세종의 미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미실 또한, 세종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 시늉까지 했다고 한다.

어찌 되었던, 금진의 아들들인 사다함과 설원랑은 미실과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사다함의 매화(책력)사건으로 서현의 지지세력인 가야파를 월식과 "伽"의 파자인 "人 力 口"로 서현과 벌려 놓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나서 서현부자에 세종/미실의 아들인 11세 하종/미모(설원랑/준모)의 자식인 '영모'를 유신과 결혼시키는 전략을 세운다. 영모는 미실/세종의 아들 하종의 딸이니 미실로써는 유신은 손녀사위가 되는 것이다.

화랑세기에는 유신과 영모에 대한 기록이 소략하다. 단지, 하종의 딸인 영모를 아내로 맞이하고 18세에 영모를 화주로, 유신은 장기 집권한 14세 풍월주 호림를 상선으로 밀어내고 612년 15세 풍월주에 오른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지소태후의 남자들

(c) kbs 사극 천추태후

그런데, 미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미실의 선대에 활약한 여성이 있다. 그는 다름이 아닌 법흥왕의 딸이고, 입종의 아내이며, 진흥왕(심맥부)의 어머니인 지소태후이다.

아버지 법흥이 후계로 점찍은 이는 비대이다. 비대는 법흥과 옥진(위화랑/오도) 사이에 난 아들이다.

지소는 자신의 어린 아들 진흥을 왕위에 오르게 하기 위해서, 비대의 어머니인 옥진의 아버지이고, 자신의 정부인 위화랑에서 압력을 가하고, 법흥의 다른 공주들과 모랑(법흥/보과) 등을 이용해 비대를 끌어 내린다.

법흥과 입종이 죽은 후 자신의 어린아들 진흥(입종/지소)를 왕위에 오르게 했다.

또한, 법흥이 후계자로 내세운 자신의 두번째 남편인 영실을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방해한 정치력이 뛰어난 철의 여인이다. 지금 kbs 사극 채시라가 열연하고 있는 고려의 <천추태후>보다도 앞선,  신라를 여인천하로 만든 실질적인 여왕이다.

7세에 왕위에 오른 후 진흥왕이 했다고 알려진 전반기 대부분 사건들은 지소에 의해서 결정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소태후의 남자들



지소태후는 화랑 풍월주를 만들면서 1세 위화랑으로 시작해서, 2세 미진부는 아시공의 아들로 법흥/벽화사이에 태어난 삼엽공주가 어머니가 된다. 그러니 자신의 조카가 된다. 또한, 3세 모랑은 법흥/보과 사이에 태어난 남모의 동생이다. 남모가 준정에 의해서 죽고, 모랑이 옥진의 딸인 묘도와 결혼해서 미실을 낳는다. 지소는 법흥왕과 보과사이에 태어난 3세 모랑과도 관계를 맺으니 자신의 동생과 관계를 가진것을 알 수 있다. 4세 이화랑은 1세 위화랑의 아들이다.

이처럼 1세 풍월주에서 4세 풍월주까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들 면면을 보면 사적으로 자신의 동생이고, 동생의 남편이고, 조카고, 아버지 법흥의 비인 형제와 관계를 가지고, 그의 아들을 통해서 자식을 낳기도 한다.


진흥말년부터 진평왕 초기까지가 미실의 시대였다면, 법흥왕 때 후기부터 진흥왕 중기까지는 지소태후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너무나 잘알려진 유신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 속의 서현의 아내는 만명이다. 만명은 동륜의 아내인 만호태후의 소생이다.  만호태후는 아버지 숙흘종/지소태후의 사이에 태어났다. 

이를 간략히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다.

입종/금진(위화랑/오도) -> 숙흘종/지소 -> 만호/? - > 만명/서현 -> 유신

<미실의 남자편>에서 미실은 자신의 손녀인 영모를 유신과 결혼시킨다고 했다. 이를 간략히 정리하면, 
이사부/지소->세종/미실->하종/미모(설화랑/준모)->영모

김유신이나 영모는 지소의 후손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미실이 서현을 쫓아내려고 음모를 꾸미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서현이나 유신이 껌씹는듯한 표정을 짓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뒤를 이어 16세 풍월주에 오르는 이는 보종이다. 보종은 설원랑의 아들이다. 보종은 사사로이는 유신의 처삼촌이 된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이사부(태종)를 통해서 미실의 남편인 세종을 낳는다. 그리고 사다함과 세종이 같이 사랑한 미실을 세종과 결혼 시켜 미실을 자신의 며느리로 만들어 버린다. 또한, 자신의 아들인 진흥왕의 아내인 사도의 아버지인 영실과도 관계를 하여 딸을 두기도 한다. 

이처럼 지소태후는 미실이 활동한 바로 전왕 단계에 신라는 미실이 국정에 깊숙히 개입된 것 보다도 더 깊숙이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 그러니 진평왕의 딸인 덕만이 왕이 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다. 왕은 있었으되, 신라를 움직이는 힘은 지소->사도(진흥비)-> 미실로 넘어온 전력이 있고, 진지왕(금륜)을 몰아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것도 진흥비인 사도비와 미실이니,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드린 신라귀족 사회라면, 덕만의 왕위 계승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금진의 남자들 
 


사다함어미니 금진의 남자들


지소태후와 동시대에 사다함의 어머니인 금진이란 여인이 있다. 색공으로는 금진을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수 많은 남자들을 거닐고 있다. 사다함은 처음에 어머니 금진이, 남자들이 많은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어머니를 멀리 했다고 한다. 금진은 미실의 작은 할머니가 된다. 그래봐야 나이차이는 30년 안팍이겠지만 말이다.  미실의 어머니 묘도는 옥진의 딸이다. 옥진의 동생은 금진이다. 이들은 모두 1세 위화랑이 오도를 통해서 낳은 딸들이다.

어찌 되었던 금진이 처음 법흥비가 되어 관계를 가진다. 540년 법흥왕이 죽고, 나서 금진을 끔찍히 사랑한  법흥/옥진(위화랑/오도)의 소생인 비대공의 아들인 구리지와 관계를 맺어 토함, 색달, 사다함을 낳는다. 금진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설성을 통해서 설원랑을 낳는다. 그러니 지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설원랑은 사다함의 동생인 것이다.

또한, 금진은 입종과 관계하여 숙흘종을 낳는다. 숙흘종은 지소태후와 사이에서 만호를 낳고, 만호는 동륜과 사이에 진평왕과 그의 형제를 낳고, 사사로이 낳은 딸인 만명이 서현과 결혼을 하여 유신을 낳았다.  그러니 지소태후와 금진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해서 신라를 여인천하를 구축하는데 커다란 역활을 한다.

지소와 금진이 세우고, 사도와 미실이 구축하고, 만호 다듬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위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지소와 금진이 여인천하의 시대의 서막을 열고, 미실과 진흥비인 사도가 확실한 여인천하를 구축하고, 진평왕 초년에 진평왕의 모후인 만호태후가 섭정을 한다.

이를 바탕으로 몇십년후 덕만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신라에서 덕만의 바로 윗대는 여인이 국정 깊숙히 관여하는 것에 관대 했을 뿐만 아니라, 왕실과 귀족 전체가 지소/금진/사도/미실/만호 등과 피로써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덕만의 어미인 마야의 출자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다. 단지 갈문왕 복승의 딸로 되어 있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마야의 세계를 밝히고 있다.
입종/지소->송화/복승->마야/진평->천명,덕만,천화

그러니 칠숙과 석품같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진평왕의 뒤를 이어서 덕만이 왕이 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을 것이다.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어쩌면 덕만이 왕이 되는데 문제가 될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책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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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hfql 2009.07.31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나 영화 한 두 개 더 나올 수 있는 소스가 얼마든지 있군요. 남자들만 나오는 메마른 사극말고...아름다운 여자가 중앙에 있는 재밌는 이야기.. 오래 살고 볼 일이야..이런 시대가 다 오는구나..이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

  3. 신라 2009.07.31 15: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
    중국의 문화가 우리를 변화시키기 이전의 순수 한국인의 문화가 더욱 새롭고, 왠지 시원스럽네요.
    멋집니다.

  4. 표면수 2009.07.31 15: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간에 고구려가 통일 했음 역사가 바꾸었다하는데 그말이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신라가 망할만 하네요...

    • .. 2009.07.31 16:00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구려또한, 남성과 더불어 여성들의 사랑과 성문화가, 조선이후부터 지금처럼 비정상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국여왕이나 유럽귀족의 왕실문화만 봐도 우리나라 고대 신라나 고구려 문화와 비슷하더군요.
      중국의 병적인 사상과 문화가 고유 한국인들을 망가뜨린 것 아닌가 아쉽고 원망스럽네요.
      백제는 과연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1 0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꼭 그렇게 까지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음.. ㅋㅋ

  5. GM 2009.07.31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자라면 마음속깊이..자신이 사랑하고 원하는 남성의 자식을 모두 낳아보고 싶은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저런 가족의 형태가 더 자연스럽지 않나?
    다부다처제.
    음성적으로 이미 다부다처하며 죄의식느끼는 것 보단, 훨씬 자연스럽고 모던하다.
    우리 조상들 참 멋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1 0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연스럽지요..

    • 여자들의 로망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저렇다면 짐승과 다를봐 없죠 2009.08.01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숭이인가 침팬지인가는 발정기때 암컷이 일명 돌림빵을 스스로 자처합니다. 왜냐하면 원하지 않는 수컷과의 교배를 거부하거나 하면 나중에 태어난 영아에 대한 살해를 하기때문이죠. 누구의 자식인지 모르게 함으로써 새끼를 보호하려는...
      모계가 부계로 바뀐것은 인간이 진화했다는 증거입니다. 부계사회에 문제가 점점 발생하여 다시 모계사회가 되기 전까진 지금의 남성주도적 문명사회가 맞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2 1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걸 인간의 진화를 볼 수가 있나요? 그저 문화의 변천 같은뎅..

    • 이피 2009.10.10 1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계중심이냐 모계중심이냐 어느쪽이 더 진화했다의 문제는 그닥 중요하지 않은것같은데요 현재 남성중심적 사회가 이전의 여성중심 사회보다 더 진보한것 같지도 않구요이건 단순히 얼마만큼의 권력을 가졌고 그에따라 얼마만큼의 이성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느냐의 문제같아요

  6. 다믈 2009.07.31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저 막연하게 국사책에서 삼국시대를 공부했었는데
    이런 자료를 보니 우리 역사에 대해 새로운 면을 보게 하는군요.
    아무튼 굉장하십니다. 님의 그 체계적인 분석력이..
    우리나라는 너무나 우리의 역사에 대하여 무지한 것 같습니다.
    특히 고대사에서는..
    현대적인 시각(특히 유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흥미로운 역사적인 내용이군요.
    (작금에서는 아마 X멍 동서라고 놀렸겠죠. ㅋㅋ)
    아마 신라가 여인국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고려시대까지도 성에 대해선 관대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엄청 날 줄을 몰랐습니다.
    모계사회가 이런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당시에는 일부일처제라는 것이 제도화되지 않고
    지배층이나 권력자는 축첩이 일상화 되었던가 봅니다.
    좋은 자료 잘 읽고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1 09: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도움이 되셨다면 ㄳ ^___^
      음.. 화랑세기에 대한 진위는 저는 유보입니당.. 하지만 연구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입니다..

  7. 비단이 2009.08.01 0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시대와 다르게 신라, 고려는 관계도 이해가 힘들었는데
    도움이 되네요 감사하빈다.

  8. 오예 2009.08.01 0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여?
    제가 요즘 화랑세기에 관심이 많아서
    책을 하나 보려고 하는데여
    추천좀 해주세여
    혹시 이런 분석(선덕여왕의 나이같은거)이 들어가있는
    책이 있나여?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1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없는 것 같습니당..

      좀 어려워요.. 화랑세기.. 원본과 같이 있는 책을 볼려면.. 이종욱 교수의 책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절판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연합뉴스의 김태식 기자의 책을 참고해 보심. 잼있을 겁니다. 김태식 기자는 나름대로 화랑세기가 진본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썼으니요.. 요즘은 어떤생각인지 모르겠음..

  9. 해와달 2009.08.01 0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여왕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 같지 않아요.
    여자가 권력을 잡게 되는 일은 조선시대 때도 있지 않았나요?
    하지만 원칙은 남자가 왕이 되는 것이죠.
    신라 때는 조선때보다 남녀 구별이 덜했을 테니
    여왕이 탄생할 수는 있었어도, 결코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1 0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늘 포스팅 한글이 왜 쉬었나에 관한 시리즈글 서막입니다..

      자연스럽게 보는 사람과 아닌사람이 충돌을 했지요.. 왕위계승을 놓고.. 칠숙과 석품이 반대파 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10. 한계레 2009.08.01 0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 브라질에서도 선덕여왕에 관한 쉰동님의 글을 모두 읽었지요.정말 정말 해박한 지식에 놀라울 따름입니다.처음 부터 감동 받았는데 계속 보며 쉰동님께 감사를 표하며 몇자 적고 갑니다~~참고로 다음 2세 교육을 위해서 퍼 갑니다..............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되세용~~~~~~~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1 08: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에게도 팬이 있었군요 ^___^

      그런데 RSS보면 2명이 저를 관찰하고 있더라구요.. 소스가 다른 모양입니다.. 보는 사람마다.. ㅋㅋ

      언제든지 펌하셔도 됩니다..

      글마다 조금차이가 있을 겁니다.. 오류가 좀 있는 것 같음..

      일일이 수정을 못하니..최종본 위주로.. 생각을 보시면..

  11. Favicon of http://king.qqo.kr BlogIcon 선덕여왕다시보기 2009.08.01 0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엄척나네요.
    이렇게 몇시간을 걸처서 쓰기가 대단히 힘드실텐데.
    또한 자료를 일일이 수집을 한 시간까지 합하면 시간은 더 할턴데.
    진짜 값어치가 있는 글이네요.
    미실이 저렇게 남자가 많았다니 참 대단한 미실이네요.
    선덕여왕에서 제일로 인상깊은 것이 미실 웃는것입니다.
    미실이 우스면 저두 웃기더라구요.
    하여간 글 잘 읽었습니다.

  12. 옹이가 2009.08.01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마디로 콩가루 족보군요 ,,,현실로 봐서는 이해가 안되지만 그 시대의 흐름이 그래다면 이해 해야지요

  13. Caren 2009.08.02 1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세기가 위작일지라도 재밌는 내용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정리하시느라 수고하셨어요.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세종은 미실과의 사이에 아들이 둘 이었어요. 진흥왕과 잠시 헤어지고 다시 세종에게 돌아갔을 때 세종의 둘째 아이를 가져서 진흥왕의 후궁으로 다시 들어갔거든요. 그 아이는 진흥왕의 마복자가 되었다고...ㅎㅎ

  14. Favicon of http://blog.naver.com/homosilentio BlogIcon 깡삿갓 2009.10.24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래간만 입니다. 핸폰 넘버를 네이버 내 블로그로 쪽지 보내주세요. 아니면 여기에 그냥 올려주시던지요.

    ^^v

  15. 레아 2010.02.14 1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종이 씨없는 수박이라뇨 무슨 그런 말씀을 ~ 화랑세기에 보면 하종과 터울져서 세종이 미실과의 사이에 옥종이라는 아들을 또 낳았고 화랑세기에서 하종이 사다함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들었다는 것을 사실이지만 화랑세기에 보면 소문이 그래서 사람들이 하종을 사다함의 분신으로 여길뿐 사실은 세종의 아들이라고 하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만호는 지소가 숙흘종과 사이에서 낳은 딸이 아닙니다. 숙흘종의 딸은 만명공주이고 만명공주의 어머니는 만호태후인데 만약 만호태후가 숙흘종의 딸이라면 아버지와 딸이 관계해서 딸을 낳은 것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족내혼이 성행하던 신라에서는 아버지와 딸이 관계를 맺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만호의 아버지가 숙흘종이라는 이야기는 처음듣는데요. 갈문왕 입종이라거나 이화랑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말입니다.

  16. 레아 2010.02.14 1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송공주라고 동륜태자와 관계해서 낳은 딸이랍니다.

  17. 서술성모 2010.08.21 0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갓쉰동님 올려주시는 글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위에 쓰신 글 중 오류가 있어 감히 몇자 적습니다.
    레아님 말씀처럼 세종은 하종이외에 옥종공이라는 아들을 두게 되니 씨없는 수박이라는것은 당치도 않은 말씀이구요^^; 동륜태자사건때 미실이 궁밖으로 나가 해궁에 있으면서 세종과 함께하는데 이 때 옥종을 임심하게 됩니다. 임신 중 진흥제가 다시 불러 입궁하는데 이때 세종의 아들인 옥종공을 임신한지 수개월되었다고 나옵니다 해산후 입궁하겠다는 미실의 말에 허락지않고 입궁 후 출산하고 옥종공을 제의 마복자로 삼게되는거구요
    만호태후역시 숙흘종이 딸이 아닙니다. 레아님 쓰신것처럼 입종이나 이화랑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화랑조에 태후가 만호낭주를 임신하여 출산을 기다렸다 떠났다 라는 대목으로 보아 이화랑의 딸이 아닐까 합니다. 지소+(이화랑)= 만호태후 이고 만호태후는 정숙태자와의 사이에서는 만룡을, 숙흘종과이 사이에서는 유신의 어머니인 만명을 낳게 됩니다. 그래서 유신은 만호의 외손자가 되는것이구요
    숙흘종은 만명의 아버지이니, 만호의 남자들 중 하나가 되는것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10.08.21 17: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제가 잘못알고 있었더라구요.. 댓글로 이를 지적하는 분도 있었고, 이를 수용해서 다른글을 쓰기도 햇지요... 지적 ㄳ합니당... ^____^

  18.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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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20. Favicon of http://www.neuronwork.com/?m=200805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 troubleshooting 2012.11.05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우 전문 블로거입니다. 내 피드에 가입하여 큰 게시물의 여분의 탐구에에 남아있

  21. Favicon of http://pressabout.us/flexpetz.com BlogIcon great website designs 2012.12.20 1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함 때문에 쉽게 이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전문 소프트웨어인 포토샵만큼은 아니더라도


사다함이 미실에 전해준 매화의 정체가 밝혀 졌다. 매화는 가야에서 사용된 '책력'이였다. 미실이 남송의 <대명력>을 들여와 사다함의 매화를 결합하여 신라만의 책력을 만들려 하고 있다. 이는 곳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신라를 없애고 미실의 나라를 개국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며, 천제가 되고 싶은 욕망의 상징이다. 그 만큼 책력은 중요하다.  칭제를 한 신라는 신라 나름의 책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칭제를 할 수 없고, '연호'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대명력은 무엇일까? 잠시 살펴보자.

 대명력(大明曆)  

남북조의 송(宋)나라 대명(大明) 6년(462)에 조충지에 의해 완성되었다. 1회귀년의 길이를 365.2428일로 정하였는데 이는 현대의 측정치와 약 0.0006일, 즉 일년에 52초의 차이가 난다. 이 값은 통천력(1199) 이전의 제일 좋은 수치이다. 대명력은 우선 세차(45년 11월이 1도 차이가 나고, 현대의 측정치는 70여년에 1도 차이가 난다)를 역법의 계산에 사용하여 역법 계산의 정확성을 높혔다. 이미 19년 7윤의 옛 치윤법을 버리고 조충지는 391년 144윤의 새로운 치윤법을 사용하여 이를 천상에 더 부합하도록 했고 교점월의 일수를 27.21223일로 정확하게 측정하였다 이 값은 현대의 27.21222일과 다만 1초의 차이가 있다. 목성(중국 고대는 "세성"으로 불렀다)의 공전주기는 12×84/85=11.858년으로 측정하여 현대의 측정치 11.862년과 아주 근접하다. 조충지의 생전에는 대명력을 실시하지 못했으나 훗날 그의 아들인 조항의 노력으로 그가 죽은 후 10년, 즉 양(梁)의 천감(天監) 9년(510)에 정식으로 시행되었고 80년간 사용되었다.


설원랑과 세종이 모르는 '매화'를 찾아 미실을 미행한다. 그런데 미실이 미행 사실을 알고, 미실이 설원랑에게 당신이 지난 여름에 한일을 알고 있다고 하듯이 "건봉2년에 한일을 알고 있다"고 협박한다.
미실이 건봉2년을 언급하다니 대단한 미실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잠시 나의 귀를 의심하였다.

미실이 설원랑에게 언급한 건봉2년은 언제 일까? 미실이 살아있고 설원랑이 젊어서 정당하지 못한 일을 말함일 것이다. 그렇다면 600년 이전 상황이 된다. 그런데 년표를 아무리 뒤져 봐도 550~600년 사이에 건봉2년은 없다.

그렇다면 건봉 2년은 없는 것일까? 아니다. 건봉2년은 분명히 존재한다.

AD667 정묘丁卯
신   라 :  문무왕 7년
고구려 :  보장왕 26년
건봉2년


건봉2년은 667년이 된다.  백제가 멸망하고,  백제 부흥운동이 막바지에 도달할 시점이다. 이정도 되면, 드라마 <선덕여왕>은 막가자는 이야기다. 죽었던(?) 칠숙도 살아나고, 그와 더불어 유모인 소화도 살아 났다. 나이어린 김유신(595년생)이 아막성(602년)전투에도 참전한다. 606년에 죽어야할 미실은 멀쩡히 살아있다. 그렇다면 606년 이전 상황일 것이다. 사신단의 정체는 '수나라'이다. 수나라는 618년 망한다. 그러니 최소한 시대적 배경은 618년 이전이 되어야 한다. 이제 선덕여왕에서 남은 건 타임머신 밖에 없다. 좀더 정교한 사극을 바란 나의 불찰일지 모른다. 이제 바라는 것은 사극이 사기극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래도 사극으로 배우는 역사 시리즈는 계속 될것이다. 사실 사극이 역사적인 팩트를 벗어날때 배우는 재미가 배가 되기 때문이다. 바른 역사를 보여준다면 이야기 거리가 없지 않겠는가? 단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구조만 따라, 연기를 잘하네 못하네만 주절거리면 그 뿐이니 글쓴이의 취미와는 맞지 않는다.  그래서 <선덕여왕>이 끝날때 까지 글은 계속 될것같다. 하지만 역사에 관심이 없는 분들이 많은 <다음>에서는 기운빠지는 일이 될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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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락지기 2009.07.10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을 열심히 보고 있는 사람이에요
    화랑세기를 읽고 싶은데 제법 책이 다양하더군요
    혹시 추천하실 만한 쉬운 화랑세기 없으신지요?
    역사를 많이 아시는 분들의 이런 딴지도 참 재미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더 많이 올려주시길 바래요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10 20: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종욱 교수의 화랑관련 책이 좋지요..
      또하나는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가 쓴 화랑세기 또하나의 신라..



      자신만의 관점으로 살펴 보시길 바랍니다.. 저자의 목소리를 전적으로 믿지 마시구요..

  2.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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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인 그래서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당신 발표 그러나 나와 쉬운 찾아내십시오. 그것은 저를 위해 너무 복잡하고 아주 넓게 보인다. 나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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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5. Favicon of http://forum.webuser.co.uk/showthread.php?t=74123 BlogIcon portable dog fence for rv 2012.11.05 15: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된 시간 이해력에게 문제를 가지려고 생각합니다. 보고는 의심없이 작은

  6. Favicon of http://pfotenhieb.cadmos.de/2010/11/05/ashera/ BlogIcon wireless pet fences reviews 2012.12.20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7. Favicon of http://freezedryfoods.weebly.com/ BlogIcon food supplies for hurricane 2012.12.31 19: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 추천하실 만한 쉬운 화랑세기 없으신지요?
    역사를 많이 아시는 분들의 이런 딴지도 참 재미있습니다

박창화가 필사했다는 김대문의 <화랑세기>는 화랑 풍월주의 계보와 풍월주들의 활약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8대 풍월주인 문노는 화랑의 체계를 세운인물이고, 전쟁에 나아가 무수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문노의 출신은 나물왕의 후손인 비조부의 아들로 대가야국의 외손이다.

 

8세 문노(文弩:538생)는 비조부공(比助夫公) 아들이다. 어머니는 가야국(加耶國) 문화공주(文華公主)인데 문화공주는 야국왕(野國王)이 바친 여자(貢女)라고 한다.

 

공은 건복(建福) 23년(606)에 세상을 떠나니 69세였다. (윤공)낭주는 이 해에 공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선(仙)이 되었다. 공보다 10살이 적었다.

 

하지만, 문노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김흠운열전>에 잠시 모습을 보일 뿐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서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 <화랑세기>에는 화랑의 계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된다. 문노를 빼고 나면 화랑세기 자체가 성립할 수 없도록 되어 있으며 문노의 세계가 잘못되었다면 화랑세기가 위서로 몰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김부식이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인용하고 있는데 <삼국사기>에서 문노가 빠졌다고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필사본 <화랑세기>가 위서임을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김춘추의 사위 김흠운은 문노의 제자?

 

그래서 문노와 김흠운의 관계를 규명함으로서 화랑세기의 진위논란에 한발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삼국사기> 김흠운 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흠운(金歆運)은 나밀왕(奈密王)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잡찬 달복(達福)이다. 흠운이 어려서 화랑 문노(文努)의 아래에서 놀았는데 당시의 무리들이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흠운이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격동하여 그와 같이 되려고 하니 동문의 승려 전밀(轉密)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영휘(永徽) 6년(무열왕 2: 655) 태종대왕이 백제가 고구려와 더불어 변방을 막자 이를 치고자 하여 군사를 출동할 때에 흠운을 낭당(郎幢) 대감으로 삼았다. 이에 그는 집안에서 자지 않고 비바람을 맞으며, 병졸과 더불어 고락을 함께 하였다. 백제 땅 양산(陽山) 아래에 군영을 설치하여 조천성(助川城)을 공격하고자 하였는데 백제인들이 밤을 틈타서 민첩하게 달려와 새벽녘에 성루를 따라 들어오니 우리 군사가 놀라 엎어지고 자빠져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적들이 혼란을 타서 급하게 공격하니 날으는 화살이 비오듯 모여졌다.


흠운이 말을 비껴타고 창을 잡고 대적하니 대사(大舍) 전지(詮知)가 달래어 말하였다.
“지금 적이 어둠 속에서 일어나 지척을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이니 공이 비록 죽는다고 하여도 알아줄 사람이 없습니다. 하물며 공은 신라의 귀한 신분[貴骨]으로서 대왕의 사위[半子]인데 만약 적군의 손에 죽으면 백제의 자랑하는 바가 될 것이고 우리들의 깊은 수치가 될 것입니다.”


흠운이 말하기를 “대장부가 이미 몸을 나라에 바치겠다고 하였으면 사람이 알아주고 모르고는 한가지이다. 어찌 감히 이름을 구하랴?” 하고는 꿋꿋하게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따르던 자들이 말고삐를 잡고 돌아가기를 권하였으나 흠운이 칼을 뽑아 휘두르며 적과 싸워 몇 사람을 죽이고 그도 죽었다. 이에 대감 예파(穢破)와 소감(少監) 적득(狄得)이 서로 더불어 함께 전사하였다. 보기(步騎) 당주 보용나(寶用那)가 흠운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말하였다.


“그는 귀한 신분에 영화로운 자리에 있어 사람들이 아끼는 바인데도 오히려 절조를 지켜 죽었으니 하물며 나 보용나는 살아 있더라도 별 이익이 되지 않고 죽어도 별 손해가 되지 않는 존재이다.” 드디어 적에게 덤벼들어 서너 명을 죽이고 그도 죽었다. 대왕이 이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였고 흠운과 예파에게는 일길찬, 보용나와 적득에게는 대나마의 관등을 추증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이 [전투상황]을 듣고 양산가를 지어 애도하였다.

 

여기서 김흠운과 문노와의 관계가 조금 의심스런 점이 발견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문노는 법흥왕 25년 538년생이고, 몰년은 진평왕 28년 606년으로 69세에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삼국사기> 김흠운열전에는 김흠운이 어릴적에 화랑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하고 655년 정월 고구려, 백제, 말갈 연합군이 신라를 공격하여 30여개 성을 빼았다. 이에 신라는 군을 모집해서 백제의 양산에서 조천성를 공격하다 오히려 백제군에 의해서 신라가 처참히 깨지고 김흠운도 죽은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만약, <화랑세기>의 기록과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라 김흠운이 어릴적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고 한다면, 김흠운은 문노가 죽은 606년 이전에 나이가 최소 10~15세 전후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655년 죽었을 때 나이는 60세 전후의 노장이 될 수밖에 없다. 김흠운의 나이때로 보았을 때 595년생인 김유신과 동년배여야 한다. 그런데 김흠운이 움직이는 군대가 <낭당대감>이다. 낭당대감이란 화랑의 무리를 이끄는 총관의 다른 표현이거나 낭당총관의 밑이다. 김흠운의 신분이 나물왕의 8대손이고 달복공의 아들이며 태종대왕의 반자(사위?)라고 했으니 귀한 집 자손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김흠운의 죽은 시점의 나이와 신라의 계급적인 특성으로 보았을때 60대의 노장이 화랑을 이끄는 낭당대감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죽고 난 후 추증된 일벌찬이 신라의 관등으로 7등급에 해당 할 수 없다..  또 한가지 간과하지 못한 것은 화랑이랑 신라귀족 자제들의 집단이므로 문노가 늙어 죽을 때 인 69세(606년)까지 화랑을 이끌었다고 볼 수 없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8대 풍월주인 문노가 582년 비대전군의 아들인 비보랑에 풍월주의 지위를 물려주었다고 하였음으로 문노는 582년 이후 화랑의 계보상 상선이 되었음을 의미하고, 화랑의 지위에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는 김흠운의 기록은 문노가 화랑이였을 때 김흠운이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고 해석한다면 김흠운의 나이는 655년 80세 이상의 노령이 됨으로 더더욱 <삼국사기>와 <화랑세기>가 충돌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김흠운이 죽은 시점에 화랑을 이끄는 낭당대감이고 죽은 후 일벌찬이 되었다면 655년 나이가 10대 후반에서 20~30세 전후여야 합당하다. 또한 달복공의 또 다른 아들이고 김유신의 사위인 흠돌이 처음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661년 7월 고구려 공격군으로 대장군 김유신과 대당장군 흠돌의 기록을 상기해 볼 때 흠돌과의 나이 차이가 많을 수 없어야 한다.

 

또한, 흠돌은 김유신의 딸인 진광에 장가가서 김유신의 사위가 되는 인물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652년 26대 풍월주 진공의 부제가 되고 657년 27대 풍월주에 오른 인물이다. <화랑세기>와 <삼국사기>에 의하면 김흠운은 흠돌보다는 나이가 적었다고 보아야 합당하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달복공은 김서현의 막내이고 김유신의 막내동생인 정희에 장가를 들어 흠돌을 낳았다고 하였다. 미루어 짐작컨데 김흠운도 정희의 소생일 가능성이 많다.

 

김흠돌은 김유신의 딸인 진광에 장가들고, 김흠운은 <삼국사기>에 655년 당시 대왕(김춘추2년)의 반자(사위?: 반만 자식이라 했으니 사위일 것이다)라고 했으니 김춘추는 문희에 장가를 들기전에 고타소랑을 제외하고도 또 다른 자식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김서현의 3녀인 문희(문명왕후)의 소생인 지조가 김유신의 부인이 되는 시점이 655년 12월 유신의 한갑 때이니 김흠운의 처는 문희의 소생이 될 수 없음이 명확해진다. 김춘추는 542년 대야성에서 딸인 고타소랑과 사위인 품석을 잃고 655년 백제의 양산 조천성 전투에서 또 다른 사위인 김흠운을 잃었다고  하겠다. 2명의 사위를 백제에 잃었으니 김춘추의 속이 어찌 되었을 지는 미루어 짐작하겠다. 그 후 김춘추는 당에 구원병을 청하고 고구려와 백제를 적극 공략한다.

 

어찌 되었던 김흠운에 대해서 <삼국사기>와 <화랑세기>는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지어낸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 들여다 보면 <화랑세기>와 <삼국사기>는 충돌되지 않고 있다고 봐야한다. <화랑세기> 27대 김흠돌 풍월주의 기록에 보면 당시 화랑의 적통이 문노에서 이어져온 가야파가 실권을 잡고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8대 풍월주  문노는 화랑의 세계에서는 가야파의 종주가 되는 인물이다. 또한, 문노파는 무를 숭상하고 전쟁에 나아가 공을 세우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여겼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화랑세기>와 <삼국사기>는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흠운이 어려서 화랑 문노(文努)의 아래에서 놀았는데 당시의 무리들이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흠운이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격동하여 그와 같이 되려고 하니 동문의 승려 전밀(轉密)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흠운이 어려서 화랑 문노의 아래에서 놀았는데.. >이부분이 흠운과 문노를 갈라놓은 지점이다. 흠운이 어려서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면  <화랑세기>에 기록된 8대 문노는 538년에서 606년 사이에 활동한다면 김흠운이 655년 죽었을 때 나이가 얼마인데..60에서 80대인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화랑세기>가 위서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버린다. <화랑세기>는  문노에 의해서 씨줄과 날줄이 얼키고 설켜 있으니 <화랑세기>는 박창화의 정교한 창작품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歆運少遊花郞文努之門 時 徒衆言及某戰死 留名至今 歆運慨然流涕 有激勵思齊之貌 同門僧轉密曰 “此人若赴敵 必不還也”

<< 당시의 무리들이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흠운이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격동하여 그와 같이 되려고 하니 동문의 승려 전밀(轉密)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당신의 무리들이>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

 

문노가 화랑으로 활동하는 시점인 538년부터 ~ 576년~582~606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노는 대가야의 외손이다. 하지만 이사부와 사다함에 의해서 외가인 대가야가 562년에 망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562년 문노의 나이 25살인 점을 고려해볼 때 사다함과 같이 출전했을 수도 있으나, 화랑세기에 의하면 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어쩌면 대가야가 힘 한번 써 보지도 못하고, 신라에 멸망한 이유는 가야제국들과 신라가 혼맥으로 이뤄져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대가야는 물론, 금관가야도 신라와 혼맥으로 이뤄져 있었다. 삼국지위지 동이전에도 변한과 진한인들이 서로 잡거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마디로 가야국들이 신라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것 같다.


<삼국사기>에도 있지만 사다함과 그 일파들을 말하는 것이고 무를 추종하는 문노의 계파로  전쟁에 나아가 백제와 고구려를 상대로 전쟁을 하고 죽은 수많은 화랑들을 말한다.



당시의 무리란?

 

655년 전 김흠운에 속한 화랑의 무리를 말한다.

 

좀더 들어가면 <화랑세기>에는 652년 김흠돌이 화랑의 부제였을 시점이니 형으로 추정되는 김흠돌에게서 위대한 화랑들에 대해서 들었을 수도 있고, 652년 26대 풍월주였던 김진공의 무리들에게 들었을 수도 있다.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한 것은 <김흠운이 어렸을 때 문노를 따르고> 하였다는 것은 문노가 추구하는 무를 숭상하고 전쟁에 나아가 공을 세우거나 죽는 것을 계승하여 따랐다는 의미 밖에는 없다.


602년 아막성 전투에서 원광법사에 사사받은 취산과 추항이 화랑으로 참전하여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장렬히 전사하였다. 김흠운 싸움에 임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화랑의 세속오계 중 하나인 <임전무퇴>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留名至今" (유명지금) : 지금까지 이름을 남기다.

흠운이 배울 시점까지 이름을 남겼다는 것은 문노와 흠운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는 의미이지 문노에게 직접 사사를 받았다는 의미는 더더욱 될 수 없다. 


해석상의 문제

  

歆運少遊花郞文努之門 時 徒衆言及某戰死

많은 사람들이 위의 내용을 “흠운이 어릴적 화랑 문노의 문하에 있었는데, 당시 따르는 화랑들이 말하길 전쟁에 나아가 전사하였다.”는 식으로 번역을 한다.

하지만, 遊花郞, 文努之門 유화랑(遊花郞)과 문노지문(文努之門) 사이를 끊어 읽어야 한다.


歆運少遊花郞, 文努之門 時 徒衆言及某戰死

흠운은 어릴적 화랑에 있었다. 문노의 화랑 때 전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따르는 무리들이 이야기를 전했다.

 

PS. 문노는 내물왕의 후손인 비조부의 아들로 나온다. 사다함도 내물왕의 6대손인 구리지의 아들이니 7대손이다. 김흠운도 내물왕7대손인 잡찬 달복의 아들인  8대손으로 나온다.

한마디로 내물왕을 빼고는 신라를 말할 수 없고, 세종대왕 만큼이나 자손을 많이도 낳았다.

 

 

여전히 진위를 알 수 없는 화랑세기

 

글쓴이는 문노와 김춘추의 아들이 김흠운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화랑세기의 진위를 살펴보고자 했다. 하지만, 화랑세기와 삼국사기가 충돌될것 같았던 기록들이 여전히 잘 끼워 맞춘것 처럼 빈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찌되었던 신문왕비가 되는 신목왕후가 김흠운의 2녀가 된다는 기록과 <화랑세기>문노와 <삼국사기>와는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문노와 김흠운의 관계로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조한 위서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김부식이 고의이던 자료의 부족을 느꼈는지 관계없이 문노가 <삼국사기>에 이름만 남긴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자의태후는 681년 8월 <김흠돌의 난>이 있고 나서 군사 지향적인 화랑을 폐기한 것은 분명하다. 그 후 화랑의 형태는 산천 유람하고 선도와 문에 힘쓰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고 역사적 자료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미실과 덕만의 하늘살핌 대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을 죽이기 위해서 터미네이터처럼 따라다니다. 덕만에 의해서 죽은 줄 알았던 칠복이 사신단과 함께 온 상인들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들 사신단은 수나라일까? 당나라 사신단일까? 역사를 종횡무진 필요할때 마다 이동하는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보았을때 알 수 없다가 정답이다.

칠복으로 인해 덕만의 정체가 미실에 보고되니 흥미가 배가 되지 않을까한다.  김유신의 아버지 서현이 아막성 전투에서 살아난 이유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에 의해서 구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 문노를 따르는 무리이거나 덕만이 비를 내리게 해준 가야의 유민이였을 가능성이 있다. 칠복이 돌아 왔으니 문노도 나타날때가 되었다.

 

사다함이 미실에게 전해준 ‘매화’가 ‘책력’이라면, 작가는 당시 신라시대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늘에 제를 올리고, 하늘을 살피는 것은 왕에게는 필수 불가결한 사항이다. 이를 서포터즈 하는 역할이 천관의 역할이다. 미실이 하는 일이 하늘과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역할이니 책력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를 갖추게 해준 이가 사다함이라고 한 것이다. 미실이 신라의 국정에 깊이 개입하는 계기가 진흥이 기후제를 지냈지만 비가 오지 않았다. 미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니 비가 오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덕만이 만노군에서 가야의 유민들에게 잡혀 하늘에 기우제를 지낼 때 잠깐 비춰진 것이 책력이였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 같지 않는가? 드라마 <대왕세종>에서 하늘을 살피는 책력을 만들려고 했다. 이때 보조자료로 사용된 것이 회회력과 칠정산이였다. 책력은 황제(제왕)도였다. 덕만이 가져온 책력이 미실이 받은 책력보다는 우위에 서게 되는 것인가? 아무튼 미실과 덕만의 ‘하늘살핌’ 대결을 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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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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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ayinme.tistory.com BlogIcon 사용인 2009.07.07 17: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

  2.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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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4: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인 그래서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당신 발표 그러나 나와 쉬운 찾아내십시오. 그것은 저를 위해 너무 복잡하고 아주 넓게 보인다. 나는 당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첫남자 사다함과의 깊은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미실이 신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된 이유는 사다함이 전해준 '매화'때문이라고 한다.선덕여왕에서 끝없는 이야기꺼리를 내놓고 있다. 이번에는 사다함의 매화을 매개로 이야기를 전개해가고 있다. 글쓴이는 '매화'를 처음에는 최음제이지 않을까했다. 또는 환각제가 아닐까 했다. 다음편에 보면 매화가 실제 매화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를 기다리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실이 사랑했던 사다함은 누구일까? 역사기록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삼국사절요

562년 신라 진흥왕 23년

○9월 가야(加耶)에서 반란(叛亂)을 일으키니 신라왕이 이찬(伊)) 이사부(異斯夫)에게 명하여 토벌(討伐)하게 하였으며 사다함(斯多含)으로써 부장(副將)을 삼았다. 사다함은 내밀왕(奈密王)의 7세손(世孫)인데 나이 16세에 국선(國仙)이 되었으며, 그 무리가 1천여 인이었다. 이때에 이르러 종군(從軍)하기를 청하니 왕이 나이 어리다 하여 허락하지 않았는데 굳이 청하므로 허락하였다. 가야에 이르러 사다함이 그 휘하(麾下)의 5천 기(騎)를 거느리고 먼저 전단문(전壇門)에 들어가 백기(白旗)를 세우니 성중(城中)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이에 이사부가 대군(大軍)을 이끌고 총공격을 가하여 그 나라를 멸(滅)하였으며 그 땅으로써 대가야군(大加耶郡)을 삼았으니, 가야국은 16대(代)를 전(傳)하고 역년(歷年)이 모두 5백 20년이었다. 군사들이 돌아오니 사다함을 수공(首功)으로 논(論)하여 왕이 양전(良田)과 포로 3백 구(口)를 상(賞)으로 주었는데 사다함이 재삼 사양하다가 왕이 강권(强勸)하자 이에 받아 전지(田地)는 전사(戰士)에게 나누어 주고 다만 알천(閼川)의 척박한 토지만 받았으며 포로는 놓아주어 양인(良人)을 삼고 하나도 머물러둔 자가 없었으니, 나라 사람들이 모두 칭송하였다. 사다함이 당초에 무관랑(武官郞)과 더불어 생사(生死)를 같이하는 친구가 되기를 약속하였는데 무관랑이 죽자 7일 동안을 애절하게 통곡하다가 또한 죽었으니 나이 겨우 17세였다. 

 

삼국사기 신라

 

진흥왕 23년(562) 가을 7월에 백제가 변방의 백성을 침략하였으므로 왕이 군사를 내어 막아 1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9월에 가야가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왕이 이사부에 명하여 토벌케 하였는데, 사다함(斯多含)이 부장(副將)이 되었다. 사다함은 5천 명의 기병을 이끌고 앞서 달려가 전단문에 들어가 흰 기(旗)를 세우니 성 안의 사람들이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사부가 군사를 이끌고 거기에 다다르자 일시에 모두 항복하였다. 전공을 논함에 사다함이 으뜸이었으므로, 왕이 좋은 토지와 포로 200명을 상으로 주었으나 사다함이 세 번이나 사양하였다. 왕이 굳이 주므로 이에 받아 포로는 풀어 양인(良人)이 되게 하고 토지는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니, 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삼국사기 열전 사다함

 

 사다함(斯多含)은 진골 출신으로 나밀왕(奈密王)의 7대손이고, 아버지는 급찬 구리지(仇梨知)이다. 본래 고귀한 가문의 후예로서, 풍채가 미끈하게 빼어났으며, 뜻과 기개가 곧았다. 당시 사람들이 [그를] 화랑으로 받들기를 청하였으므로 부득이 맡았다. 그 무리가 1천 명에 다다랐으나, 그들의 환심을 다 얻었다. 진흥왕이 이찬 이사부(異斯夫)에게 명하여 가라국(加羅國)<[가라(加羅)는] 또는 가야(加耶)로도 썼다.>을 습격하게 하였다. 당시 사다함은 나이가 15∼6세였는데, 종군하기를 청하였다. 왕은 나이가 아직 어리다 하여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나 여러번 진심으로 청하고 뜻이 확고하였으므로 드디어 명하여 귀당(貴幢) 비장(裨將)으로 삼았는데, 그 낭도(郞徒) 중에서 따르는 자 또한 많았다. 그 나라 경계에 이르자 원수(元帥)에게 청하여 그 휘하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전단량(檀梁)<전단량은 성문 이름이다. 가라(加羅) 말로 문(門)을 양(梁)이라 했다고 한다.>으로 들어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뜻밖에 군사가 쳐들어옴을 보고 놀래어 막지 못하였으므로, 대군이 승세를 타서 드디어 그 나라를 멸하였다. 군사가 돌아오자, 왕은 공을 책정하여 가라(加羅) 사람 300명을 [사다함에게] 주었다. 이를 받아서 다 풀어 놓아 주고 한 사람도 남겨 놓은 것이 없었다. 또 전지(田地)를 하사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였다. 왕이 강권하므로 알천(閼川)[현재의 경주시 북천]의 쓸모없는 땅만을 주도록 청할 따름이었다.
함(含)이 전에 무관랑(武官郞)과 더불어 사우(死友)가 되기를 약속하였는데, 무관이 병으로 죽자 심히 슬프게 울다가 7일 만에 또한 죽으니, 그때 나이 17세였다.

 

여러 기록을 검토하여 사다함의 내력

ㅁ 진골 출신이다. (열전)

ㅁ 나밀(내물)왕의 7대손이다. (열전)

ㅁ 아버지는 급찬 구리지이다. (열전)

ㅁ 진골출신이기 때문에 고귀한 가문의 후예다. (열전)

ㅁ 562년 사다함이 15~16세였다. (열전)

ㅁ 가야(금관가야와는 다른 대가야) 이사부의 부장으로  함께 가야를 굴복시키는데 혁혁한 공로가 있었다. (삼국사기 신라 진흥 23년, 열전)

17살의 나이에 무관랑이 죽음에 따라서 죽었다. (열전)

 

삼국사절요(조선 성종)를 보면 <삼국사기열전>과 <삼국사기 진흥왕23년> 기록과는 다르게 조금 추가된 기록이 발견되고 있다.

 

<삼국사절요>562년 기사

ㅁ 16세에 국선이 되었다. 그를 따르는 무리가 1,000여명이 였다. (삼국사 절요)

ㅁ 가야국은 16대(代)를 전(傳)하고 역년(歷年)이 모두 5백 20년이었다. (삼국사 절요)

 

잡설 0.

부가적으로 <삼국사절요>를 편찬한 조선 성종 시기까지도 최소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을 제외한 삼국시대 관련 기록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종합하면 사다함은

 

ㅁ 557년 내물왕 6대손  급찬(9급) 구리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ㅁ 고귀한 신분의 내물왕7대손이며 진골이다.

ㅁ 562년 16세에 국선화랑이 되었을때 따르는 무리가 1,000여명이 되었다. 

ㅁ 9월 대가야 정벌전에 자천으로 참였으며 이사부의 부장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나 공을 탐하지 않았다. 이해 가야는 16대 520년을 전하고, 멸망했다.

ㅁ 563년 무관랑을 따라 죽으니 나이가 17세 였다.

 

 

여기서 의문사항은 내물왕 7대손으로 고귀한 신분의 진골출신이라는 것과 구리지의 아버지는 누구이며 어머니는 누구인가하는 문제이다.

이에 대한 답은 화랑세기를 보면 16세(562년)에 5대 풍월주(국선)이 되었고, 아버지는 구리지라는 기록이 보인다.

구리지의 아버지는 비량공이고 어머니는 벽화이다.

벽화는 염신공의 딸이다. 벽화는 비처(소지)왕의 총애를 받아 16세(490)에 궁궐로 들어가 소지왕의 후비가 되었다.

비량공은 아버지가 비지이고, 어머니는 묘양이다.

 

잡설 1.

사다함의 아버지 '구리지'에서 무언가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는가? 구린내, 구리지, 화장실 냄새가 나지 않는가?

화랑세기에 의하면 구리지의 아버지인 비량공이 벽화를 사사로이 좋아 했는데, 벽화와 관계를 맺은 곳이 냄새가 나는 화장실이였다고 전한다. 그래서 그이 이름이 똥내나는 이름인 '구리지'가 된것이다. 그 당시에나 조선시대에도 똥내, 똥녀라는 이름이 있듯이 자연스런 이름같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구리지는 어릴적부터 놀림감이 되지 않았을까?

 

 

내물->실성->눌지(내물의 자)->자비(눌지의 장자)->소지왕(비처: )은 아들이 없이 490년죽어 지증(지대로:내물왕의 증손)->법흥->(입종갈문왕)->진흥 에게 왕위를 선양한다.

  

삼국사기 신라 493년

 

비처(소지)왕 15년 봄 3월 백제왕(동성왕 15년)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혼인(婚姻)을 청하니 신라왕이 이찬(伊飡) 비지(比智)의 딸을 시집보냈다.

 

다른 국가(백제)의 왕에게 시집을 보낼정도의 신분이면 비지 또한 왕가의 후손임이 명확해지고 내물왕의 증손(4대손)이고 지증왕(증손)과 같은 계열이다.  

 

삼국사기 지증왕 원년(500년)

 

성(姓)은 김씨이고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이다. <지도로(智度路) 혹은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하였다.> 나물왕의 증손으로 습보갈문왕(習寶葛文王)의 아들이고 소지왕(炤知王)의 재종 동생이다. 어머니는 김씨 조생부인(鳥生夫人)으로 눌지왕의 딸이다. 왕비는 박씨 연제부인(延帝夫人)으로 이찬 등흔(登欣)의 딸이다. 당시 나이는 64세였다

 

만약, 지증이 눌지의 손자였다면 눌지의 몇대손이나 할아버지로 기록했겠지만, 그렇지 않은 관계로 지증으로 부터 부계로 가장 윗대에 왕은 내물이기 때문에 지증을 내물의 4대손으로 기록했을 것이고 전대왕(소지왕(비처))과의 관계(재종)를 표시 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다함을 내물왕 때 부터 잡아 7대손이라 했으므로, 지증왕 계보와는 별도인 방계라고 할 수 있다. 내물왕의 자식중 기록에 나타난 눌지, 복호, 미사흔 이외에 복호나 미사흔 보다 나이가 어린 또다른 형제가 지증왕계보쪽과 비지계보쪽 둘이상이거나 하나 이상은 더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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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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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hypervandervilt.tistory.com BlogIcon 네오 NEO 2009.07.07 1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갓쉰동님!^^

    아주 깔끔하게 정리를 해 주셨네요.

    어렴풋이 알고 있었거나 잊었던 부분들을 이번 기회에 다시 챙겼습니다! ^^ ㅎㅎ

    그런 의미에서 정말 잘 보았구요. ^^

    오늘 하루도 즐거운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2.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7.07 14: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인기에 연연하시는 줄은...의외입니다.
    하지만
    이토록 좋은글을 포스팅하시는데
    때가되면 가치는 자연히 빛을 발하는 것이랍니다.
    저하고 내기 한번 하시지요 ㅎㅎㅎ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3. Favicon of http://blog.daum.net/teriouswoon BlogIcon 테리우스원 2009.07.07 1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한 자료들이군요
    즐거운 마음으로 머물다 갑니다
    기쁨만 가득하시길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

  4.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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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4: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인 그래서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당신 발표 그러나 나와 쉬운 찾아내십시오. 그것은 저를 위해 너무 복잡하고 아주 넓게 보인다. 나는 당신

  6. Favicon of http://cerwintribe.typepad.com/blog/2012/04/home-office-survival-kit-meant-for.. BlogIcon n100 respirator wikipedia 2012.11.01 1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이 마흔일곱의 나이에 등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네요. 젊은 나이에 성조황고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

  7. Favicon of http://www.cdeis.com/voices_pam.html BlogIcon puppy fence indoor 2012.11.07 15: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적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수많은 새로운 브랜드 이름은 다른 가전 제품과 함께

  8. Favicon of http://eugenehind.typepad.com/blog/2012/04/survival-kit-and-what-exactly-you-n.. BlogIcon hurricane survival kit items 2012.12.10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아무리 미국이 광우병내성을 지니고 있더라도 유전적 결함으로 자연발생적으로 발견되어야 하는 광우병소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도축되기전에 소멸되었거나 도축과정에 은폐되거나 검역과정에 통과되어 전세계 식탁에 올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9. Favicon of http://tripcart.typepad.com/tripcart_the_blog/2007/04/going_to_la_boo.html BlogIcon portable invisible fence for dogs 2012.12.22 2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야 하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다. 단지, 광우병소의 총노출수와 환자수 만을 알 수 있다. 이를 기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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