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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뿌리깊은 나무, 한글 성삼문, 신숙주, 최만리 같은 이유로 반대하고 찬성했다 는 최근에 보기 드문 사극이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어서 안타깝다. 글쓴이(갓쉰동)은 뿌리깊은 나무를 하고 난 후 뿌리깊은 나무에 대해서 단 한가지 지금까지 사극에서 무시했던 무관들이나 무사들의 패검만으로도 는 역대 최고의 사극이라고 말한 적이 있고 되도록이면 비판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 하지만, 그 외 것을 제외하면 후반으로 갈수록 곳곳에서 빈틈이 보이고 있다. 물론, 무사의 고증을 제외하면 문헌사적인 고증은 김영현 사극의 맹점처럼 역사와는 무관한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 뿌리깊은 나무 18회에서 이방지와 강채윤은 지붕 위에서 술잔을 기울리며 담소를 나눈다. 그러다 하늘을 보니 휘엉청 밝은 보름달이 떠있다. 세종이 언문(소리글)인 훈민정음을 창제한 때는 세종 25년 1443년 ..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노비 과거급제 설정 세종 한글창제 명분 잃어 는 24부작 중 반환점을 돌아 17회를 넘어가고 있고 이제 7회만 남겨두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고증부분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좋은 사극인것은 분명하다. 좋은 사극이지만, 아쉬운 부분도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분명히 훈민정음 창제를 다룬 사극이지만, 당시 시대와는 맞지 않는 설정이 극의 중간중간에 너무나 많이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없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것만 뽑아 본다면, 정도전 일가의 몰살은 사실이 아니다. 정도전일가는 태종 이방원 때나 세종때도 벼슬을 하였다. 한마디로 정도전 밀본 설정은 드라마 극적 묘사를 위한 설정일 뿐이다. 또한, 집현전은 태종이 만들지 않았다. 집현전은 고려시대부터 있었고, 단지 상설기관화 된것은 세종 때이고, 집현전은 세종이 원한것이 아닌 태종..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집현전 철폐와 한글 창제 극심한 반대했을까? 사실은 환영분위기 에서 세종 이도의 비밀 조직인 천지회에서 언문(소리글) 훈민정음이 창제 된다. 밀본은 세종 이도가 하려는 일이 글을 만드는 일인지를 알게 되지만, 글이 어떠한 형식인지 모른다. 하지만, 글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밀본과 유림은 글을 만들어 스스로 이적이 되려하느냐고 반발한다. 유림의 영수인 혜강을 필두로 성균관 집현전, 사관들 까지 들고 일어난다. 문제는 세종 이도가 만들려는 글이 얼마나 좋은지, 나쁜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강채윤은 훈민정음 28자로 반나절만에 글을 읽고 쓴다. 북촌의 어리숙한 밀본의 자객은 자신의 반나절 만에 자신의 이름를 쓰고, 어린 아이는 밀본 정기준의 말을 바로 듣고 글로 써내려 간다. 밀본 정기준은 글은 지배자와 지배하지 않는자를 가르는 기준인데 모든 백성들이 글을 알게 된..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밀본 정기준 집현전 철폐공작 자책골인 이유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는 정기준(가리온)의 시신해부를 통해서 후음(목구멍)소리에 해당하는 상형문자 “ㅇ”를 만들어 낸다. 시신해부와 천지계 문신는 극중 긴장감을 위한 도구로서 작가는 유용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선덕여왕에서 보름날 일식만큼이나 황당한 설정이다. 한마디로 당시 조선 시대의 상황을 도외시한 설정이다. 분명 세종 이도는 극중 처럼 털털한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눈물도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신하들과 논쟁을 하면서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눈물로 호소를 하기도 한다. 더불어 자신의 생각이 확고할 때는 논쟁으로 신하들의 논리를 무력화 시키기도 한다. 신하들과 대화를 하다 대화가 안되면 일반사람들처럼 신하가 물러나면 고루하고 생각이 낡았다고 뒷담화까지도 하면서 웃기까지 한다. 세종..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밀본 집현전 철폐? 집현전은 세종 친위조직아닌 성리학 뿌리 밀본이다 에서 이신적은 주자소로부터 활자 틀(거푸집) 하나를 얻어 밀본 본원 정기준에게 전한다. 정기준은 그 동안 집현전 학사를 죽이면서 모아둔 증거를 바탕으로 세종 이도가 하려는 비밀 프로젝트가 글을 만들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정기준은 밀본 조직을 통해서 세종 이도가 오랑캐가 되려 한다는 소문을 퍼트리고 중화를 버릴 수 없다고 유림을 꼬득인다. 정기준의 목적은 세종 이도의 논리적 바탕을 제공한 집현전의 폐쇄다. 조선 초기 성리학자들 사이에서 충분히 반대했을 것이 자명하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스스로 유교의 종주로 생각하는 기자의 후손이라는 의식이 강했고, 중국이 청나라로 교체될 때는 진정한 유교의 뿌리 성리학은 조선에 있지 중국에 있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뿌리깊은 나무에서 이.. 더보기
뿌리깊은나무, 군나미욕과 곤구망기 성삼문,박팽년 한글창제 무관 증명 에서 집현전 직제학 이자 밀본인 심종수는 세종 이도 성리학을 버리고 유림을 압살하려 한다는 증거를 세법과 불경과 내불당 사건을 제시한다. 그런데 세종이 하려던 세법은 공법으로 기존의 토지세보다 부담을 적게 하는 정책이였고, 가진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가는 제도였다. 그래서 1430년 당시 약 18만명의 여론조사를 하였지만, 전라. 경상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특히 함길도, 평안도에서는 압도적인 반대에 직면하고, 경기, 충청 지역은 찬반이 엇비슷했다. 전라 경상이 찬성이 많은 이유는 토질이 좋고, 물과 환경이 좋아서 소출이 많았는데 이전 세금보다 1/3이나 줄어든 세금(감세)에 환영하지 않으며 이상하지 않겠는가? 사대부 양반. 유림의 기반은 토지에 있었고, 유림의 다수는 경상. 전라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 더보기
공주의 남자, 훈민정음(한글)창제 성삼문 요동밀사는 세종 모독인 이유 - 한글날 제자리찾기 에서 성삼문, 신숙주, 이개 등 한글창제에 관여한 인물이라고 알려진 사육신이 나온다. 10월 9일이 한글날이기는 한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에 대한 상식이 얼마나 잘못된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10월 9일이 훈민정음(한글)을 만든 565회 한글날이라고 한다. 이부터 잘못된 상식중에 하나다. 훈민정음(한글)이 만들어진 것과 반포일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더군다나 훈민정음 창제에 성삼문 신숙주는 훈민정음 창제에 커다란 공이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성상문과 신숙주, 이개 등 사육신을 포함한 집현전은 한글창제에 전혀 관여한적이 없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이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암기식 역사교육을 받았는지 알게될 것이다. 는 세종 이도가 훈민.. 더보기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에서 사육신 중 한명인 이개와 사육신 등이 절대로 김승유와 한편이 될 수 없다는 글을 송고했더니 이개의 후손이나 사육신 중의 후손 이라는 사람들이 가끔 댓글을 단다. 조상을 욕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조상을 욕보이는 측은 다름이 아닌 공주의 남자 작가인데도 말이다. 목은 이색의 후손으로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하였지만, 조선에 부용하지 않고 고려에 대한 충성과 절개를 지켰다는 것이다. 조선의 왕이 삼고초려를 해서 한산 이씨들이 조선 조정에 나갔는데 정난공신이 되고자 경솔한 판단을 했겠냐는 것이 골자이다. 논리적인 모순은 과연 이색의 후손이 이색의 고려에 충정을 이어 받았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조선의 왕들이 삼고초려를 해서 정치에 참가였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충절가문이거나 이색..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