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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뿌리깊은 나무>에서 무휼은 조선 제일검이라 칭하지만 젊은시절 정도전의 호위 무사였던 이방지에 패하였다.

 

그래서 무휼은 이방지를 꺾을 생각을 하고 쉼 없이 무술연마를 하고 이방지가 사라진 후 조선제일검이 된다.

 

이방지에 사사를 받은 채윤은 이방지의 적통제자로 출상술과 북방의 무예와 투박술까지 고루 익힌 숨은 고수이다.

이방지에 사사를 받은 윤평은 강채윤이나 무휼에 패하였고, 심종수에게 까지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북방의 사라진 무림고수인 개파이는 조선제일검 무휼과 비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고, 늙은 이방지를 몰아세우지만 두 사람 다 상처를 입고 이방지는 물로 피한다.

개파이는 물을 두려워하는 공수병이 있었서 계곡물로 뛰어든 이방지를 추적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항상그렇듯이 강채윤과 개파이가 싸울 때 처음 강채윤이 밀리다. 기지를 발휘하여 결국에는 강채윤이 개파이를 물속으로 끌어들여서 죽이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결론은 뿌리깊은 나무에서 조선제일의 무예를 가지고 있는자는 강채윤이 되지 않을까 한다.
강한자가 살아 남는 게 아니고 살아 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란 가장 기본적인 삶과 죽음에 대한 무인의 법칙이고 적자생존의 법칙이다.

 

 

 

 

사실 조선에서는 칼(,)는 의전용 장식의 의미가 강했다. 세종이전 시기에는 시위 무관들이 검을 패검하지도 않았다. , 창검 등 자신의 주무기를 가지고 호위를 하였었다. 세종 때에 와서 의전용 칼을 패검하도록 하였다. 정도전, 정몽주를 죽인 것도 검이 아닌 철퇴였고, 김종서를 죽인 무기도 철퇴였다.


병조에서 아뢰기를,
“내금위(內禁衛)의 상시 시위(常時侍衛)는 갑옷을 입지 말게 하고, 단지 환도(環刀)만 차게 하옵되, 대조회 때에는 모두 흰 철갑[白鐵甲]을 입게 하고, 전내에 각각 10인씩 좌우로 분립하게 하되, 그 나머지는 월대(月臺)의 동서로 나누어 서게 하옵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오죽하면 임진왜란 시기 포로로 잡힌 왜인이나 투항한 왜인들로부터 검술을 받아들였겠는가? 그런데 임진왜란 시 명나라의 검술과 왜인의 검술을 배웠지만, 근접전에서 효과는 별반 없었다고 선조가 투털거리는 장면이 수시로 목도된다.

 

그렇다면 조선 군사들의 주 무기는 무엇이었을까? 조선의 군사조직은 근접전이 아닌 원거리 전술이었다. 무협사극에서 칼들고 설치는 장면은 무협지나 무협만화나 무협영화에서나 나오는 장면일 뿐이다.


 

 

조선무기의 기본은 <>이었다. 그리고 창과 창검이 조선무기의 핵심이였고, 장거리 무기로 화포나 신기전 등 화약무기를 갖추고 있었다. 당연히 근접전인 검술에서는 왜인들에게 밀릴 수 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검술을 가르쳐 놓았더니 검을 빼어 들기보다는 활로 왜인의 검을 막았다고 선조가 푸념했겠는가?

 

조선의 활은 무인이나 문인들이나 누구나 할 수 있었고, 왕도 수시로 활쏘기를 하였다. 임진왜란에서 원거리에서 치고 빠지는 전술이 가능한 활이나 창검술을 활용했기 때문이지 검술과는 거리가 있었다.

 

왜인의 조총은 초기에는 무기의 특성을 모른 상태에서 위협적이었지만, 장전에서 걸리는 시간 때문에 조선군에게 실질적으로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근접전이 되었을 때 박투술에서 왜인의 검에 속수무책이였을 뿐이다.  그래서 접근전 자체를 배격한 척계광의 <기효신서> 전술을 활용하여 왜인을 무찌를 수가 있었다.

 

어쨌든, <뿌리깊은 나무>에서나 어떠한 사극에서도 칼을 들고 설치는 장면은 고증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 최소한 임진왜란 이후가 아니라면 말이다. 단지 멋있게 보이고자 하는 설정일 뿐이다.


 

 

문제는 칼에는 검과 도가 있는데 사극에서는 검을 쓰는 방법이나 도를 쓰는 방법이 휘두르는 형태로 동일하다. 하지만, 실제 날이 하나인 도는 휘둘러서 베는 용도의 칼이고, 검은 날이 두 개여서 찌르기 용도에 가까운 것이다. 칼이 일자로 되어 있는데 휘두른다면 무예의 기본을 무시한 행동이다. 한마디로 총을 휘두르는 용도로 쓰거나 핸드폰을 망치로 사용한다는 설정만큼 웃기는 장면이다. 도와 검을 재대로 고증한 사극영화는 서극의 <와호장룡>이였다.

 

어쨌든, 뿌리깊은 나무에서 주인공 강채윤은 조선제일의 무예가가 될 것이다. 그래야 주인공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정말 드라마 설정이 아닌 조선의 최고 무예가인 무과를 통해서 본 조선제일은 누구였었을까?

 

그렇다면 무과에는 어떠한 종목이 있었을까? 첫번째는 활을 서서 쏘는 입사, 두번째는 말을 타고 달리면서 여러 개의 과녁을 맞추는 활쏘기, 세번째는 말을 타고 창술.창검 겨루기, 네번째는 땅에서 창술.창검술 겨루기로 이뤄져 있다. 처음부터 칼(.) 겨루기 종목은 있지도 않았다. 그러니 조선 무인들이 칼쓰기를 잘할 수는 없었다.

 

“문신(文臣)을 선발하여 집현전(集賢殿)에 모아 문풍(文風)을 진흥시키시는 동시에, 문과는 어렵고 무과는 쉬운 때문으로, 자제(子弟)들이 많이 무과로 가니, 지금부터는 《사서(四書)를 통달한 뒤에라야 무과에 응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옵소서.

- 세종 11419
 

그런데 무과는 <무경칠서>7가지 <병법서>를 알고 있어야 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던 손자병법도 무경칠서 중 하나였다. 더불어 <사서>를 알고 있어야 했다. 문제는 무과에 급제를 하려면 한자에 능통해야 가능했다는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강채윤를 비롯한 겸사복으로 나오는 무관들이 무과를 준비할려면 한자 천자는 알고 있었야 한다고 했지만, 천자문 가지고는 택도 없었다.

 

요즘도 마찬가지이지만, 이과가 취업은 좋지만, 추후 승진에서 누락되기도 하고, 돈도 벌지 못하는 것과 같이 조선시대에도 무과에 문과 지망생들이 무과를 본 후 문과를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당시에도 무과는 문과에 비해서 승진은 잘 되지 않았지만, 최소한 취업률은 좋았기 때문이다.

 

사실 무과급제자는 무예가 제일 뛰어난 자는 아니다. 대다수 무과급제자는 문무가 겸비된 사람이지 조선제일검이나 조선제일 일수는 없다. 무과급제자는 지휘자를 뽑는 자리이고 전략을 구사하는 전략가를 뽑는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조말생이 이방지에게 같은 무인으로 이방지의 연인을 인질로 잡아 미안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말생은 무인과는 관계없다. 조말생은 문과 장원급제자 출신이다.

 

드라마만 보았던 많은 사람들이 김종서이방원, 수양대군을 무인출신인줄 안다. 하지만, 이방원이나 김종서나 수양대군은 무인이 아니였다. 어쨌든 문과 출신인 김종서 6진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이고, 문무를 겸비한 문과 출신들인 양반들이 임진왜란 시기 의병들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에서 무과가 처음 생긴 때는 태종 2 1402년이었다. 무과 최초 장원급제자는 다름 아닌 성삼문의 할아버지인 27살의 성달생이다. 단종복위 사건에서 별운검을 선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도 무과급제한 무인출신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태종 이방원이 자신의 호위무사인 무휼을 세종 이도에게 넘기며 세종 이도에 충성하라고 말한다. 무휼은 태종과 세종의 일촉측발속에서 세종의 신하임을 자인하고 태종에 칼을 겨눈다.
 
정도전이 피살된 때는 1398년으로 성달생은 23살로 혈기가 왕성할때이기도 하며, 첫출전에 이방지에게 패한것도 어린나이로 출전했다고 하니 비슷할 수 있다. 문제는 성달생은 1444년 69세로 죽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이는 세종이 등극할때 여닐곱 정도인데 세종 25년 1443년이 되었다면 32살 이상이지만, 소이역을 맡은 신세경은 20대 초반도 안되게 나온다. 그러니 성달생이던 아니던 상관이 없지 않을까?

어쨌든,  뿌리깊은 나무에서처럼 태종에 충성하고 깊은 신뢰를 받은 인물은 성달생이다. 물론, 뿌리깊은 나무에서처럼 시위장으로만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무휼에 가장 근접한 실존인물은 성달생과 유사하다.

처음에 태종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에 한 번 보고 심히 사랑하여서 항상 일컫기를, ‘호남아(好男兒)라’ 하였다. 이때부터 남달리 대우를 받았고 태종이 세자[東宮]로 책봉 되었을 때에 왕에게 아뢰어 호군(護軍)으로 뛰어 제수하였다. 임오년에 나라에서 처음으로 무과(武科)를 설치하였는데, 달생이 제1등으로 뽑혀 대호군임명되고, 나가서 흥덕진 병마사(興德鎭兵馬使)가 되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무인이니 어릴 적부터 보았던 가락으로 성삼문도 무예가 출중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극에서 성삼문은 유약한 선비로 나오고 있는 건 사실과 다름을 알 수가 있다. 오히려 뿌리깊은 나무에서 윤평을 몰아세우고 무휼보다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집현전 직제학 심종수가 성삼문의 실제 모습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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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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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azz.tistory.com BlogIcon [블루오션] 2011.12.03 1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루 왔씁니다~
    그렇군요..ㅎ
    뿌리깊은나무 잘보고 갑니다~
    손가락도 꾹누르고~ 블루 다녀가요~

  2. chrispaul3 2011.12.03 2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삼문이 유약한 선비로 나왔다는 건 금시초문입니다..

  3. 나무닭 2011.12.03 2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별건 아닌데요..
    위에 개파이가 공수병이라고 쓰셨는데...
    공수병은 광견변에 걸린 개에게 물린 사람이 걸린 병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린 사람은 여러가지 증상을 보이는데 그 중 한가지가 물을 무서워한다고 하거든요..

    개파이가 환자는 아니니....공수병은 아니겠죠..^^
    아마도 북방에서 왔으니..수영을 못한다는 것 같거든요.....

  4. 손님000 2011.12.10 0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는 글을 많이 적으시는 군요.

    사실 저도 "~카더라" 통신에서 벗어나긴 힘들지만 조선시대에 제일 뛰어난 무인으로는 백동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백동수"라는 드라마도 있긴하지만 전 보지 못했습니다. 이놈의 일이 뭔지 ㅠㅠ.
    일단 백동수는 유일(한지 아닌지는 확실친 않지만 일단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다고 합니다.)한 역사에 기록된 고수입니다. 정조가 백동수에게 일본에가서 검술을 조사하고 익히고 오라는 명을 받고 갔다와서 시범을 보였는데... 그 시범이라는 것이 그냥 칼춤 추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칼춤을 추고나서 그 자리에 발자국이 남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뭐 이정도면 무협지에 나오는 허황된 이야기들보다 일단 사서(? 조선왕조실록은 사서라기보다 기록이죠...)에 기재된 인물들 중엔 최강이 아닌가 싶습니다.

  5. 지나가다가 2011.12.10 1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호장룡은 서극이 아니라 이안감독의 작품아니가요?

  6. Favicon of http://www.balloonking.co.uk BlogIcon balloons 2011.12.11 2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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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 훈민정음 해례(교본)은 세자(문종), 수양대군(세조),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박팽년 등이 세종의 지시와 교정을 받고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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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않았다고 하는군요. 뭐 이정도면 무협지에 나오는 허황된 이야기들보다 일단 사서

  10. Favicon of http://maryboshears8.livejournal.com/807.html BlogIcon katadyn combi review 2012.12.19 1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이전 원화제도가 있을때에는 나이어린 소녀가 아닌 농익은 성인 여성을 원화로 세웠을 개연성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작한 위서가 된다.

  11. Favicon of http://www.lesquotidiennes.com/print/10812 BlogIcon discount wireless pet fences 2012.12.27 1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지를 발휘하여 결국에는 강채윤이 개파이를 물속으로 끌어들여서 죽이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12. Favicon of http://www.shootwhitetaildeer.com/hunting-directory/partners.php BlogIcon medical accessories for ipad 2013.01.05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방지에 사사를 받은 강채윤은 이방지의 적통제자로 출상술과 북방의 무예와 투박술까지 고루 익힌 숨은 고수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강채윤은 광평대군의 목숨을 걸고 내기를 한다.

 

세종 이도가 글자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광평대군을 죽이겠다는 밀서를 두고 글자를 포기하는지 광평대군을 포기하는 지의 내기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왜 광평대군의 목숨을 두고 내기하는 장면을 설정하였을까?

 

밀본은 밀본의 수하들이 광평대군과 소이를 납치한줄 알고 방을 붙이지만, 나중에 자신들에게 광평대군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궁궐 내부에서 어떠한 모의가 있는지 알아본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훈민정음 창제와 보급에 깊이 관여하였던 사람은 다름이 아닌 세조 수양대군이었다.

 

수양대군은 집현전에서 언문 훈민정음을 통해서 운회를 번역하는 중추였고, 더불어 석가의 일대기를 훈민정음으로 석보상절을 직접 만들어 관여를 하였다.

 

훈민정음과 떨래야 땔 수 없었던 수양대군과 신숙주를 배격하고 성삼문과 박팽년을 전면에 내 세운 이유는 만고의 역적으로 포장되고 신숙주와 조카를 죽이고 수 많은 사람을 죽이 것으로 그려진 세조가 잘못 평가된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광평대군의 죽음은 뿌리깊은 나무에서 하나의 장치로 사용되어 질것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훈민정음 창제의 미스터리를 다룬 추리물로 집현전 학사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그만큼 훈민정음을 창제하는데 반대가 있었다는 설정으로 유효하지만, 실제 당시의 시대상과는 하등 상관이 없고 개연성이니 리얼리티가 없다.


광평대군은 일찍 죽었다. 이를 <뿌리깊은 나무>에서 밀본과 연결하여 광평대군의 죽음과 연관 시킬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예측은 벗어날 수는 있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는 당시 시대와는 다른 설정을 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세종 이도의 세법 개혁을 위한 가부조사와 태종 이방원이 정도전의 모든 식솔을 죽였다는 설정, 집현전을 세조가 만들었다는 설정, 성리학을 배척하고 불교를 궁궐에 들여왔다는 내불당 사건 등이다. 이들은 모두 있었거나 없었던 사건이지만, 선후관계가 잘못되었거나 시대가 반대적인 입장이었던 경우가 다수이다.

 

그러니 <뿌리깊은 나무>에서 광평대군의 죽음을 밀본의 암살에 의한 것으로 설정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

 

 

 

강채윤에 납치된 광평대군은 아버지 세종 이도 글을 포기하지 않고 글을 선택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종 이도에게는 할아버지 태종 이방의 피가 흐르고 있고 광평대군 자신도 이방원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쉬이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의를 선택하지 아들을 포기할 것이라고 한다.

 

세종 이도가 만드는 글은 너무나 쉬어 강채윤은 하루면 배울수 있다고 말하고 강채윤은 반나절 만에 한글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강채윤은 한자 오 만자의 글을 배우는데 수 많은 시간이 들어가지만 천자를 배우는데도 수 없이 많은 시간이 들었다고 한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강채윤은 한자를 술술 읽고 쓰고 한다. 그런데 겨우 천자를 깨우쳤다고 하는 설정은 과도하다. 특히 초서와 같이 흘려쓰는 글짜는 천자를 배워서는 알 수 가 없다. 평상시 쓰고 읽고를 반복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강채윤이 한자를 배우는데 힘들었다는 설정으로 유효하고 김수현의 지적이 아니더라도강채윤이 어떻게 한자를 배웠는지 알려줄 필요성 있었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는 설명에 실패한것이 아닌가 한다.
 

사실 한자는 오 만 자가 넘지만, 한글은 자모 28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종 이도가 만든 28자로 표현할 수 있는 글자수는 수 백 만 자가 넘는다. 한글만이 지구상에서 만들어진 글자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변화무쌍하다고 하겠다.

 


사실 28자로 표현 가능한 숫자를 백 육십 여 만 자라 하는 것도 잘못된 계산법에 의한 최소한의 숫자에 불과하다. 훈민정음은 가확과 확장성이 생명이다. 그러니 현재는 사용되어지거나 사용되지 않는 중모음,중초성 등
 ㄳㄵㄶㄸㄺㄻㄼㄽㄾㄿㅀㅩㅨㅴㅵ 등 뿐만 아니라 각자 쓰고 싶다면 수 없이 만들어 낼 수 가 있다.


  • 조합 가능한 한글 코드(125×96×138): 1,656,000개
  • 완성된 한글(124×95×138): 1,625,640개
  • 조합 가능한 비표준 한글: 총 16,989개
    • 채움 문자로만 구성된 한글: 1개
    • 초성, 종성만 있는 비표준 한글(124×137): 16,988개
  • ∴ 표준 한글 총 갯수(조합 가능한 한글 코드 − 비표준 한글): 1,639,011개
- 위키백과

 

손으로 쓰고, 읽기에는 한글처럼 쉬운 글자도 없다. 하지만, 활자나 조판해서 책이나 문서로만든다면 한글처럼 만들기 어려운 공정도 없다. 예전 타자기에 찍힌 한글을 본 사람이라면 한글의 모양새가 이쁘지 않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단지 현재 사용하는 글자수가 한정이 되어 있을 뿐이다. 첨단화된 현시대에도 활자나 컴퓨터에서도 한글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과학적인 원리를 가지고 만든 글자인데 현대과학으로도 재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사실 현재 완성형 글자이기 때문에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한글이다. 또한, 우리는 쉽게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만, 폰트작업이 가장 힘든 것 또한 한글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수 많은 작업이 물밑에서 필요하다.

 

단지 자판을 두드리지만, 스크린이나 책으로 보이는 것은 수 많은 물밑작업이 있었고, 결과가 쉬이 화면상으로 나오는 것 뿐이다. 세종시대 주자소에 한자 활자보다는 어쩌면 훈민정음(한글) 활자가 더 많았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완성형 형태가 아닌 조합형에 모아 쓰기가 아닌 영어의 알파벳처럼 풀어쓰기를 하자는 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는 광평을 살리는 방법보다는 밀본에게 더이상 무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를 한다. 광평이 어찌되었던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을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광평대군은 강채윤과 함께 궁궐도 돌아온다. 광평대군을 본 세종 이도는 아비의 모습이 되어 쓰러진다. 강채윤은 광평대군과의 내기에 지고 세종의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며 아비 석삼의 이름을 이도에게 주며 그의 이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어쨌든, 광평대군의 인질극과 죽음을 암시하는 장치가 들어간 이유는 광평대군이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광평대군은 세종의 5번째 아들로 1425년에 태어나 1444년 12월 7 죽었다. 사인은 창진이였다. 창진은 홍역, 마마처럼 어릴 적 걸리는 부스럼이 생기는 홍역 수포성 바이러스 역병으로 알고 있었다. 광평대군이 창진에 걸렸다고 하자. 세종 이도는 정의공주가 있는 사위 안맹담의 집으로 이어를 떠난다.

 

임금이 광평 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가 창진(瘡疹)을 앓기 때문에 연창군(延昌君) 안맹담(安孟聃)의 집으로 이어(移御)하였다. 1444년 12월 6

 

그리고 광평대군 이여는 1444년 12월 7 20살의 어린나이로 죽는다. 광평대군이 처음 병이 들자 세종 이도는 식음을 전폐하였다고 한다. 광평대군이 죽고 어의에게 죄를 주어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오지만, 세종 이도는 어의의 잘못이 아니니 죄를 주지 말도록 조치 하였다.

 

성현이 지은 용재총화 에는 광평대군이 어릴적 왕자의 신분을 감춘채 무당에게 사주를 봤다고 한다. 그런데 굶어 죽는다는 이야기를 하자. 세종은 어찌 일국의 왕자로서 굶어 죽을 수가 있겠는가? 하면서 무시를 하였지만, 광평대군은 가시가 있는 고기를 먹다 목구멍에 가시가 박혀 먹지도 못하고 굶어주었다고 야사는 전한다.

 

어쨌든, 뿌리깊은 나무는 1443 12월 훈민정음 창제와 1446 9월 훈민정음 반포시기와 겹치는 광평대군이 집현전 학사처럼 정기준의 밀본 일당에게 죽임을 당한 것으로 그릴지 모른다. 광평대군은 <뿌리깊은 나무>에서 유약한 선비 같은 모습으로 나오고, 밀본에게 잡힐 정도로 무능하게 보이지만, 실제 광평대군은 격구나 말타기, 활쏘기 등 무예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성삼문도 무예는 모르는 어리버리 서생으로 그리고 있지만, 성삼문 집안은 할아버지 성달생, 세조 반정에 깊숙히 관여했지만 아들 성삼문과는 다르게 사육신으로도 오르지 못한 아버지 성승은 무인으로 무과에 급제자를 배출한 무인 집안이었다. 그런 성삼문이 무예를 모른다는 설정은 기존 소설이나 드라마의 개연성 없는 설정에서 나온 극히 성삼문을 모르는 것이 아닐가한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무예도 출중한 밀본의 심종수가 성삼문의 본모습에 가장 근접하지 않았을까?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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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송안나 2011.11.24 0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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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양대군은 집현전에서 언문 훈민정음을 통해서 운회를 번역하는 중추였고, 더불어 석가의 일대기를 훈민정음으로 석보상절을 직접 만들어 관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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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에서 집현전 직제학 이자 밀본인 종수는 세종 이도 성리학을 버리고 유림을 압살하려 한다는 증거를 세법과 불경과 내불당 사건을 제시한다.

 

그런데 세종이 하려던 세법은 공법으로 기존의 토지세보다 부담을 적게 하는 정책이였고, 가진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가는 제도였다.

 

그래서 1430년 당시 약 18만명의 여론조사를 하였지만, 전라. 경상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특히 함길도, 평안도에서는 압도적인 반대에 직면하고, 경기, 충청 지역은 찬반이 엇비슷했다.

 

전라 경상이 찬성이 많은 이유는 토질이 좋고, 물과 환경이 좋아서 소출이 많았는데 이전 세금보다 1/3이나 줄어든 세금(감세)에 환영하지 않으며 이상하지 않겠는가?

 

사대부 양반. 유림의 기반은 토지에 있었고, 유림의 다수는 경상. 전라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니 혜택은 부동산 재벌인 유림들에게 갈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세종은 반대에 직면한다. 왜냐하면, 권력을 차지하고 있던 성리학자들이 공법은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하니 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는 부자감세를 해야 한다는 이명박정부나 신자유주의에 반하는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솔선수범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워린버핏이 부자들이 세금부담을 더해야 한다는 워린버핏세는 이미 조선 세종 시대에 성리학 공직자(위정자)들에게 공론화 되었고, 실현되었다.

세종 공법(토지소득세)은 지역을 경상.전라, 충청.경기, 함경,평안.황해,강원, 제주 등 4개지역으로 나누고 지역 내 토지의 질에 때라 5등급으로 세분화 하여 차등적으로 누진세액을 부담하게 하였다. 한마디로 부유한 지역,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하고, 가난한 자에게 세금을 감면. 축소해주는 대대적인 세금정책이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다음글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2011/11/02 - [역사IN드라마/뿌리깊은나무] - 뿌리깊은 나무, 세종 세법 밀본 기득권말살 정책? 부자감세 위정자들 워린버핏세 주장

심종수가 두번째 예로든 내불당 불사 사건은 세종 때 있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 시제와는 어긋난다.

<
뿌리깊은 나무>시제는 1443년 12월 30 세종대왕이 직접 만든 언문(훈민정음) 28자를 만들었다 시점이 된다. 이를 알수 있는 증거는 심종수 13년전 세법으로 여론조사를 하였지만, 아전과 유림이 반대했다고 하였으니 공법문제는 1430년이 되니 <뿌리깊은 나무>시제는 1443년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세종은 즉위후 내불당을 없앤다. 그래서 유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세종 15 1433 1월 30 문소전(文昭殿)불당(佛堂)을 걷어 없애기를 명하고, 그 불상(佛傷)과 잡물(雜物)흥천사(興天寺)에 옮기게 하였다.

 

하지만, 세종 17 1435년 태조가 정릉 옆에 만들었던 흥천사 사리탑을 중수하고 경찬회를 개최하려고 하지만, 유림들의 반대에 직면한다. 세종이 흥천사 사리탑 경찬회를 열려고 한 때는 세종 22 1440년부터 였다. 하지만, 끊임없이 사간원, 사헌부, 집현전, 성균관 등으로부터 상소를 받아 반대에 직면한다.
반대에는 김종서, 정인지, 황희, 최만리, 박중림(박팽년의 아버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세종은 끊임없는 상소에 승정원으로 하여금 경찬회 관련 상소는 절대 받지 말라고 명한다. 한마디로 언로가 차단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세종은 경찬회를 성삼문의 할아버지 성달생에게 맡기고 있다. 세종은 반대에 직면하자 하나의 꼼수를 내는데 세종 자신이 서울에 있지 않고, 행궁을 떠날 때 흥천사 사리각 경찬회를 한다면 상소를 할 수도 없고, 반대도 없지 않겠느냐는 계책을 내세운다.

 

결국 세종은 온정을 떠난 상태에서 세종 24 1442 3월 24 흥천사 사리각 경찬회가 개최된다. 이때 모인 중만 전국에서 1 8백명이 넘었다.

 

이 모임의 이름은 백팔공승(百八供僧)이라 하였으나, 승도(僧徒)들이 사방에서 모여서 공양한 중이 1 8 18명이고 속인(俗人) 3 87명이나 되어 그 비용이 적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리각(舍利閣) 담장 밖에는 부녀들이 늘어서서 밤낮으로 먼저 보려고 다투었다. 


2
년 넘게 질질 끌다 사리탑 경찬회가 열린 것이다. 만약, <뿌리깊은 나무>에서 성리학을 버리고 불교를 받아들이려는 것이 아니냐는 증거로 <내불당>이 아닌 흥천사 경찬회를 예로 들어야 합리적이다.

 

더군다나 세종 15년 내불당을 없애고, 불상과 잡물을 흥천사로 보내고 난 후 였다. 세종 30 1448 7월 17내불당을 문소전 서북쪽 궁궐에 만든 때는  "문소전 서북에 불당을 설치할 것을 명하자 이사철·이의홉 등이 불가함을 아뢰다"

이때 내불당을 만들자 흥천사 경찬회 때와 같이 수 없는 반대에 직면한다.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세종이 승하고 문종 즉위년, 단종 즉위 할 때 마다 내불당과 언문청, 정음청은 유자(유림,사대부)에게는 없애야 할 최대적이었다.
 
문종은 정음청을 없앴고, 단종 때는 내불당과 언문청이 없어질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세조가 들어선 이후엔 언급조차 없었다가 다시 예종, 성종 때 내불당, 언문청을 없앨 것을 청원하지만, 내불당은 연산군 10년에 흥천사로 옮겨지고, 언문청은 중종 반정 3일 후에 없어진다.

 

어쨌든, <뿌리깊은 나무>에서 내불당을 설치하여 성리학을 괴멸시키려 한다는 설정과 세법은 유림과 성리학을 말살하는 정책이라는 심종수의 말은 개연성이 없다.

 

144611월 유가들에게는 용비어천가를 언문청을 통해서 만들게 하고,
 

드디어 언문청(諺文廳)을 설치하여 사적(事迹)을 상고해서 용비시(龍飛詩)를 첨입(添入)하게 하니


사실 세종이 언문(훈민정음)을 만들고 직접한 일은 불교에 관한 일이다. 1447년 석가의 일대기를 그린 석보상절을 언문으로 세조(수양대군)에게 만들게 하고, 인쇄하여 배포한다. 석보상절을 보고 세종은 대서사시 <월인천강지곡>을 언문으로 직접 만든다.

 

<뿌리깊은나무>에서 한글창제(언문, 훈민정음)을 비밀리에 만들었다고 하지만, 실제 한글창제는 비밀스럽게 만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문자를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단지, 한글처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가 세종 혼자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 어려워서 그런것이고,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의 친위부대라고 할만한 집현전의 대장인 부제학 최만리가 반대했으니 비밀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 것 뿐이다.



<뿌리깊은 나무> 군나미욕(아설순후)이라 하여 분류 하고 있지만, 세종 28년 1446년 9월 29일 훈민정음 창제후 반포한 내용을 참고하더라도 실제는 "군규업두"나 "군탄별즉"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쉬이 알수 있다. 물론, 군나미욕은 아설순후음에서 기본글자이니 뿌리깊은 나무에서 군나미욕이라고 하는 것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ㄱ은 아음(牙音)이니 군(君)자의 첫 발성(發聲)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규(虯)자의 첫 발성(發聲)과 같고,
ㆁ은 아음(牙音)이니 업(業)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ㄷ은 설음(舌音)이니 두(斗)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담(覃)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ㅌ은 설음(舌音)이니 탄(呑)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ㄴ은 설음(舌音)이니 나(那)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ㅋ은 아음(牙音)이니 쾌(快)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ㅂ은 순음(脣音)이니 별(彆)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보(步)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ㅍ은 순음(脣音)이니 표(漂)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ㅁ은 순음(脣音)이니 미(彌)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ㅈ은 치음(齒音)이니 즉(卽)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자(慈)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ㅊ은 치음(齒音)이니 침(侵)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ㅅ은 치음(齒音)이니 술(戌)자의 첫 발성과 같는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사(邪)자의 첫 발성과 같고,
ㆆ은 후음(喉音)이니 읍(挹)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ㅎ은 후음(喉音)이니 허(虛)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홍(洪)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ㅇ은 후음(喉音)이니 욕(欲)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ㄹ은 반설음(半舌音)이니 려(閭)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ㅿ는 반치음(半齒音)이니 양(穰)자의 첫 발성과 같고,
· 은 탄(呑)자의 중성(中聲)과 같고,
ㅡ는 즉(卽)자의 중성과 같고,
ㅣ는 침(侵)자의 중성과 같고, ㅗ는 홍(洪)자의 중성과 같고, ㅏ는 담(覃)자의 중성과 같고, ㅜ는 군(君)자의 중성과 같고, ㅓ는 업(業)자의 중성과 같고, ㅛ는 욕(欲)자의 중성과 같고, ㅑ는 양(穰)자의 중성과 같고, ㅠ는 술(戌)자의 중성과 같고, ㅕ는 별(彆)자의 중성과 같으며, 종성(終聲)은 다시 초성(初聲)으로 사용하며, ㅇ을 순음(脣音) 밑에 연달아 쓰면 순경음(脣輕音)이 되고, 초성(初聲)을 합해 사용하려면 가로 나란히 붙여 쓰고, 종성(終聲)도 같다. ㅡ·ㅗ·ㅜ·ㅛ·ㅠ는 초성의 밑에 붙여 쓰고, ㅣ·ㅓ·ㅏ·ㅑ·ㅕ는 오른쪽에 붙여 쓴다.

무릇 글자는 반드시 합하여 음을 이루게 되니, 왼쪽에 1점을 가하면 거성(去聲)이 되고, 2점을 가하면 상성(上聲)이 되고, 점이 없으면 평성(平聲)이 되고, 입성(入聲)은 점을 가하는 것은 같은데 촉급(促急)하게 된다


 


어쨌든, 이미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글의 기본 캐릭터는 만들어졌다는 것을 집현전 학사의 죽음으로 한글로 곤구망기( 丨口亡己) "밀본"이라고 사자전언을 하여 이미 증명되었고, 성삼문이 한글창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라고 하겠다. 성삼문이 세종에게 우리글을 만들겠다고 했을때의 반응은 어쩌면 당시 유학자들에게 보이는 당연한 반응이지 않을까하다.
 
문제는 성삼문이 한글창제전에 집현전 학사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 성삼문은 한글이 창제된 세종 25년 1443년 12월 30일 이후에도 성삼문은 집현전 학사가 아닌 성균관쪽에 있었다. 
 

집현전 부수찬(副修撰) 신숙주(申叔舟)성균관 주부(注簿) 성삼문(成三問)행 사용(行司勇) 손수산(孫壽山)요동에 보내서 운서(韻書)를 질문하여 오게 하였다.
-세종 27년  1445년 1월 7일


사실 성삼문, 신숙주, 이개, 박팽년 등은 한글 창제가 아닌 한글이 만들어진후 응용편을 만들었다고 이미 세종실록 훈민정음 반포 서문에도 나오고 있다.
 

마침내 해석을 상세히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이해하라고 명하시니, 이에 신(臣)이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최항(崔恒), 부교리(副校理) 박팽년(朴彭年)신숙주(申叔舟), 수찬(修撰) 성삼문(成三問), 돈녕부 주부(敦寧府注簿) 강희안(姜希顔), 행 집현전 부수찬(行集賢殿副修撰) 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과 더불어 삼가 모든 해석과 범례(凡例)를 지어 그 경개(梗槪)를 서술하여, 이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 세종 28년 1446년 9월 29일


한마디로 세종의 명으로 정인지가 한글교본(훈민정음혜례)을 집현전 학사들인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이선로 그리고 돈녕부 강희안과 함께 만들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뿌리깊은 나무>는 연출자 장태유와 신경수의 조선시대 초기 고증에 이전 사극에서 볼수 없을 정도로 충실한 편이다. 그러나 작가 김영현의 스토리에는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김영현의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좀더 개연성과 리얼리티를 살렸다면 연출자의 고증에 충실하려던 노고에 방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집현전은 세종의 일에 수없이 반대를 하고, 자문을 하는 집단이었다. 훈민정음(한글)의 반대도 내불당사건이나, 흥천사 사리탑 경찬회의 반대와 마찬가지 일뿐이다. 한글 창제이면을 다빈치 코드처럼 미스터리하게 극을 이끌어 나간다면 더욱더 가치가 있을 것이고 드라마틱한 요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나온 사상력의 산물일뿐이다.

 

사실 한글은 한문을 사용하던 조선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문자다. 한문과 한글 공통점은 다른 문자와는 다르게 풀어쓰기가 아닌 모아쓰기(합쳐쓰기)이다. 그리고 부수의 개념이 있듯이 한글에도 자모의 개념에 음운학적인 초성.중성.종성의 개념은 부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더군다나 <뿌리깊은 나무>에서처럼 인간이 발성기관에서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군나미욕)이라는 아음, 설음, 순음, 후음, 치음, 반치음, 반설음으로 나누고 문자자체를 발성기관을 본떠서 만든
상형문자라는 공통점까지 있다. 사성(평성,입성,거성,상성)점을 찍어 소리의 음운율을 맞추어 중국의 발음에도 쉽게 접근하도록 만들었다.

청음, 탁음, 반청음, 반탁음, 반청반탁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확장성을 만들어 냈다. 한글의 확장성은 오히려 한자의 약 5만자 보다 많아 한글의 확장성을 제한하더라도 160만자 이상이다.

 

. l 을 천지인으로 기본으로 생각하지만  . ㅣ ㅏ ㅓ ㅡ ㅗ ㅛ ㅜ ㅠ 의 중성 문자 자체도 입의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이다. 의 경우는 입이 위아래로 벌어지고, 의 경우는 입은 위로 벌어진 상태에서 소리를 입밖으로 내보내는 형상을 본뜨고 있다. 의 경우는 입을 위아래로 열고 입안으로 들이 마시는 모양을 본뜨고 있다. ,의 경우는 잎을 가로로 벌려야 한다.

 

현재의 한글은 세종이 의도한 바의 1/100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고, 운용하지 못하고 있다. "가나다라마사.."로 시작하는 아무의미도 없는 외우기에 급급한 한글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 세종이 언문인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창제원리에 맞추어 아설순후치음과 확장성에 맞춘 교육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 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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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toyvillage.net BlogIcon 라이너스™ 2011.11.03 09: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혀연관이 없군요^^
    재미있게 잘보고갑니다.ㅎㅎ

  2. Favicon of http://www.medicalcodingandbillingschools.net/ BlogIcon medical billing and coding schools 2011.11.03 1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워린버핏세는 이미 조선 세종 시대에 성리학 공직자(위정자)들에게 공론화 되었고, 실현되었다.

  3. Favicon of https://system123.tistory.com BlogIcon 예또보 2011.11.03 1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너무 잘배우고 갑니다.
    즐거운 오후 시간 되세요 ^^

  4. 마일즈 2011.11.04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저를 기억하시겠는지요. 예전에 마일드라고 합니다. 노하우 시절에 네티즌인데요.
    일단 반갑습니다. 정말 좋은 글 많이 쓰셨네요 존경스럽고요.
    티스토리 초대장 한 장 주셨으면 합니다.

  5. 객입니다 2011.11.05 0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삼문 등이 요동으로 파견되어 운서를 갖고 온 것을 증거로 이들이 훈민정음 창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글에서 주장하신 것처럼, 훈민정음 창제에는 이러저러한 언어학적 지식이 동원되었습니다. 소리를 어떻게 분절할 것인지, 소리가 만들어지는 장소는 어디이며, 그 소리의 성질은 무엇인지 등등 음성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최첨단의 언어학이 필요합니다. 당시 동아시아 문명에서 그 정도 언어학 지식을 보유하고 있던 것은 명나라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언어학적 지식의 결정체가 <운서>입니다. 글쓴이께서는 훈민정음의 문자 체계에 비중을 두고 이 문제에 접근하시는 듯한데, 그 배경에 있는 언어학적 지식의 수입과 적용에 대해서는 돌아보시지 않으신듯 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당시 요동에 명나라 제일의 음성학자(?)가 귀양왔기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종이 성삼문 등을 여러 차례 파견하여 필요한 지식을 직접 묻고 배워오게 한 것입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또 성삼문 등에게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 발간되는 해례나 작성하게 하였다라고 하셨는데, 이 역시 이들이 훈민정음 창제에 깊히 관여하였고 새로운 문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새 문자에 대한 해설서를 써야 하는데, 아무리 배우기 쉽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학자에게 일을 맡기겠습니까? 해례 작성에 참가한 이들은 그야말로 훈민정음 창제를 최측근에서 보좌한 이들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6. Favicon of http://www.webstatsdomain.com BlogIcon website analyzer 2011.11.10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워린버핏세는 이미 조선 세종 시대에 성리학 공직자(위정자)들에게 공론화 되었고, 실현되었다.

  7. Favicon of http://www.geilekontakte.ch/waadt.php BlogIcon Parkplatzsex in CH 2011.11.14 1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재 무엇이 훌륭한 웹사이트입니다.

  8.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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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료를 읽어본 바로는 조선처럼 하지 않았습니다. 태왕이란 칭호는 추모성왕 때부터?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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