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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

뿌리깊은 나무, 한글 피를 먹고 창제? 사실은 요순 뛰어넘은 성군 칭송 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뿌리깊은 나무는 그 동안의 사극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대고증을 하는 것으로서도 대단한 사극이고 명품사극의 반열에 올라도 될 만한 드라마였다. 뿌리깊은 나무 제작자 장태유는 를 시대상을 재연하는 을 표방하고 있었고 초기에는 일정하게 이를 완성하는 듯 하였다. 하지만, 후반에 갈수록 장태유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어린 세종 이도가 왕이 되고 나이가 드는 장면 하나에도 심열을 기울렸던 장태유에게는 나이가 들지 않는 한 사람이 있다. 소이역을 맡은 신세경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해례를 만들었고, 세종 이도는 이를 반포하게 한다. 그런데 소이는 세종 이도가 즉위할 때 나이가 여닐곱 정도의 아이였고, 세종 이도가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인 세종 28년 1446..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훈민정음 해례가 소이? 세종 과정 무시한 결과론자? 가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흔들리고 있다. 어떻게 마무리를 할까? 제작자나 작가나 혼란스러운가 보다. 이유는 완성된 시나리오가 아닌 그때 그 때마다 만들어진 시나리오의 한계 때문이다. 이는 어떤 연기를 해야할 지 모르는 배우에게도 치명적이지만 뿌리깊은 나무를 시청하는 시청자에게도 난감할 수 밖에 없다. 어떻게하던 극을 마무리하려는 무리수가 곳곳에 보인다. 설계도가 완성되지 않는 건축물이 있는데 공기가 있는 건축물을 보자, 설계도 없는 건축물이 모진 풍파에 견딜수가 있을까? 완공날짜만 있고 완성되지 않는 시나리오로 만든 드라마가 재대로 마무리를 하며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4대강 살리기라는 미명하에 만들어진 2년 공기의 4대강 망치기 사업을 보자. 억지로 공기는 맞추었을지는 모르지만 실제 완성은 누구도 장담..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한글 성삼문, 신숙주, 최만리 같은 이유로 반대하고 찬성했다 는 최근에 보기 드문 사극이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어서 안타깝다. 글쓴이(갓쉰동)은 뿌리깊은 나무를 하고 난 후 뿌리깊은 나무에 대해서 단 한가지 지금까지 사극에서 무시했던 무관들이나 무사들의 패검만으로도 는 역대 최고의 사극이라고 말한 적이 있고 되도록이면 비판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 하지만, 그 외 것을 제외하면 후반으로 갈수록 곳곳에서 빈틈이 보이고 있다. 물론, 무사의 고증을 제외하면 문헌사적인 고증은 김영현 사극의 맹점처럼 역사와는 무관한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 뿌리깊은 나무 18회에서 이방지와 강채윤은 지붕 위에서 술잔을 기울리며 담소를 나눈다. 그러다 하늘을 보니 휘엉청 밝은 보름달이 떠있다. 세종이 언문(소리글)인 훈민정음을 창제한 때는 세종 25년 1443년 ..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노비 과거급제 설정 세종 한글창제 명분 잃어 는 24부작 중 반환점을 돌아 17회를 넘어가고 있고 이제 7회만 남겨두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고증부분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좋은 사극인것은 분명하다. 좋은 사극이지만, 아쉬운 부분도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분명히 훈민정음 창제를 다룬 사극이지만, 당시 시대와는 맞지 않는 설정이 극의 중간중간에 너무나 많이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없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것만 뽑아 본다면, 정도전 일가의 몰살은 사실이 아니다. 정도전일가는 태종 이방원 때나 세종때도 벼슬을 하였다. 한마디로 정도전 밀본 설정은 드라마 극적 묘사를 위한 설정일 뿐이다. 또한, 집현전은 태종이 만들지 않았다. 집현전은 고려시대부터 있었고, 단지 상설기관화 된것은 세종 때이고, 집현전은 세종이 원한것이 아닌 태종..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한글창제 반대와 FTA 아전인수 해석한 이명박 뿌리깊은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세종 이도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세종 이도를 성군이라고 말을 한다. 왜 성군인지는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 없다. 단순히 예전부터 성군이라고 했으니 성군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이는 당대 유림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훈민정음)을 창제한 것 만으로도 성군이라고 말을 하고 있고, 극단적으로 조선이 생긴것은 세종대왕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로 세종 이도를 극찬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세종 이도를 역사보다는 소설로 배운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소설속 작가의 이야기가 역사의 세종이 되어 버린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종이 한글 창제을 위해서 시체해부까지 했다는 설정이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대략난감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뿌리깊..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집현전 철폐와 한글 창제 극심한 반대했을까? 사실은 환영분위기 에서 세종 이도의 비밀 조직인 천지회에서 언문(소리글) 훈민정음이 창제 된다. 밀본은 세종 이도가 하려는 일이 글을 만드는 일인지를 알게 되지만, 글이 어떠한 형식인지 모른다. 하지만, 글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밀본과 유림은 글을 만들어 스스로 이적이 되려하느냐고 반발한다. 유림의 영수인 혜강을 필두로 성균관 집현전, 사관들 까지 들고 일어난다. 문제는 세종 이도가 만들려는 글이 얼마나 좋은지, 나쁜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강채윤은 훈민정음 28자로 반나절만에 글을 읽고 쓴다. 북촌의 어리숙한 밀본의 자객은 자신의 반나절 만에 자신의 이름를 쓰고, 어린 아이는 밀본 정기준의 말을 바로 듣고 글로 써내려 간다. 밀본 정기준은 글은 지배자와 지배하지 않는자를 가르는 기준인데 모든 백성들이 글을 알게 된..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밀본 정기준 집현전 철폐공작 자책골인 이유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는 정기준(가리온)의 시신해부를 통해서 후음(목구멍)소리에 해당하는 상형문자 “ㅇ”를 만들어 낸다. 시신해부와 천지계 문신는 극중 긴장감을 위한 도구로서 작가는 유용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선덕여왕에서 보름날 일식만큼이나 황당한 설정이다. 한마디로 당시 조선 시대의 상황을 도외시한 설정이다. 분명 세종 이도는 극중 처럼 털털한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눈물도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신하들과 논쟁을 하면서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눈물로 호소를 하기도 한다. 더불어 자신의 생각이 확고할 때는 논쟁으로 신하들의 논리를 무력화 시키기도 한다. 신하들과 대화를 하다 대화가 안되면 일반사람들처럼 신하가 물러나면 고루하고 생각이 낡았다고 뒷담화까지도 하면서 웃기까지 한다. 세종..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밀본 집현전 철폐? 집현전은 세종 친위조직아닌 성리학 뿌리 밀본이다 에서 이신적은 주자소로부터 활자 틀(거푸집) 하나를 얻어 밀본 본원 정기준에게 전한다. 정기준은 그 동안 집현전 학사를 죽이면서 모아둔 증거를 바탕으로 세종 이도가 하려는 비밀 프로젝트가 글을 만들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정기준은 밀본 조직을 통해서 세종 이도가 오랑캐가 되려 한다는 소문을 퍼트리고 중화를 버릴 수 없다고 유림을 꼬득인다. 정기준의 목적은 세종 이도의 논리적 바탕을 제공한 집현전의 폐쇄다. 조선 초기 성리학자들 사이에서 충분히 반대했을 것이 자명하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스스로 유교의 종주로 생각하는 기자의 후손이라는 의식이 강했고, 중국이 청나라로 교체될 때는 진정한 유교의 뿌리 성리학은 조선에 있지 중국에 있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뿌리깊은 나무에서 이..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광평대군 인질극 미래 밀본 암살 암시?, 한글 최소 160만자 에서 강채윤은 광평대군의 목숨을 걸고 내기를 한다. 세종 이도가 글자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광평대군을 죽이겠다는 밀서를 두고 글자를 포기하는지 광평대군을 포기하는 지의 내기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왜 광평대군의 목숨을 두고 내기하는 장면을 설정하였을까? 밀본은 밀본의 수하들이 광평대군과 소이를 납치한줄 알고 방을 붙이지만, 나중에 자신들에게 광평대군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궁궐 내부에서 어떠한 모의가 있는지 알아본다. 에서 훈민정음 창제와 보급에 깊이 관여하였던 사람은 다름이 아닌 세조 수양대군이었다. 수양대군은 집현전에서 언문 훈민정음을 통해서 운회를 번역하는 중추였고, 더불어 석가의 일대기를 훈민정음으로 석보상절을 직접 만들어 관여를 하였다. 훈민정음과 떨래야 땔 수 없었던 수양대군과 신숙주를 배격하고 성..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세종 세법개혁 가부조사와 FTA 직권상정 어떻게 다를까? 에서 세종 이도는 세법 개혁을 위해서 가부조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밀본 정기준은 세종 이도의 세법개혁은 기득권을 말살하려는 정책이라고 말을 하고, 세를 규합한다. 이는 단순히 에서 작가의 상상력의 범주에서 나온 설정이 아닌 실제 세종시기 있었던 사건이다. 왕의 나라인 고대 조선에서 하나의 법률을 만들기 위해서 세종은 각도의 관리자와 지주와 백성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대대적인 면대면 여론 조사를 실시하였던 것이다. 여론조사는 수개월이 걸렸지만 세종 이도는 쓰디쓴 반대에 직면하여 유보를 한다. 실제 반대보다 찬성이 많은 과반수를 넘었지만, 세종 이도는 백성의 반대가 있으니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백성이 반대한다면 시행할 수 없다고 포기한 것이다. 그런데 세종 이도가 생각하는 찬성의 비율은 얼마였을까? 이 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