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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령공주

뿌리깊은 나무, 밀본 정기준 집현전 철폐공작 자책골인 이유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는 정기준(가리온)의 시신해부를 통해서 후음(목구멍)소리에 해당하는 상형문자 “ㅇ”를 만들어 낸다. 시신해부와 천지계 문신는 극중 긴장감을 위한 도구로서 작가는 유용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선덕여왕에서 보름날 일식만큼이나 황당한 설정이다. 한마디로 당시 조선 시대의 상황을 도외시한 설정이다. 분명 세종 이도는 극중 처럼 털털한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눈물도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신하들과 논쟁을 하면서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눈물로 호소를 하기도 한다. 더불어 자신의 생각이 확고할 때는 논쟁으로 신하들의 논리를 무력화 시키기도 한다. 신하들과 대화를 하다 대화가 안되면 일반사람들처럼 신하가 물러나면 고루하고 생각이 낡았다고 뒷담화까지도 하면서 웃기까지 한다. 세종.. 더보기
공주의 남자, 훈민정음(한글)창제 성삼문 요동밀사는 세종 모독인 이유 - 한글날 제자리찾기 에서 성삼문, 신숙주, 이개 등 한글창제에 관여한 인물이라고 알려진 사육신이 나온다. 10월 9일이 한글날이기는 한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에 대한 상식이 얼마나 잘못된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10월 9일이 훈민정음(한글)을 만든 565회 한글날이라고 한다. 이부터 잘못된 상식중에 하나다. 훈민정음(한글)이 만들어진 것과 반포일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더군다나 훈민정음 창제에 성삼문 신숙주는 훈민정음 창제에 커다란 공이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성상문과 신숙주, 이개 등 사육신을 포함한 집현전은 한글창제에 전혀 관여한적이 없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이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암기식 역사교육을 받았는지 알게될 것이다. 는 세종 이도가 훈민.. 더보기
공주의 남자 결말, 김승유 세령공주 만난 수양대군 귀신인 이유 에 관한 기사를 보면 역사와 야사와 픽션을 절묘하게 믹스한 최고의 사극이라고 칭찬을 한다. 공주의 남자 결말은 의 결말과 유사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김승유와 세령공주만의 해피엔딩이라는 것만 빼고 말이다. 김승유의 신숙주집의 신면의 노비가 된 세령구하기 프로젝트라는 철없는 사랑놀음 때문에 죽어나간 사람들을 계산하면 세조(수양대군)이 죽인자보다 많다. 친구라는 정종죽여, 금성대군 죽여, 단종도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시애의 난에 동원된 수 많은 사람들도 김승유 때문에 반란군이 되었으니 말이다. 결국에는 신면도 죽음에 이르게 했으니 말이다. 물론, 사랑으로 다 용서가 되는 멜로에서는 철이 있던 없던 김승유는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건 주인공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다. 그렇더라도 주인공으로서는 참으.. 더보기
공주의 남자 결말, 김승유 세령공주 때문에 억울한 누명 쓴 신면 에서 김승유(박시후)는 신면(송종호)의 심복 송자번(진성)을 죽였다. 김승유가 노린 것은 신면의 뒤통수다. 이를 간파한 송자번이 대신 날아온 칼을 맞아 죽는 것이다. 이전 신면이 날린 화살을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게 반칙하며 구한 세령공주(문채원)을 떠올리게 한다. 송자번의 역할은 조석주(김뢰하)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주군을 위해서 목숨까지 받치는 배역은 악역이라고 해도 환영받는다. 그래서 송자번에게 미친존재감이라고 말하는 지도 모르겠다. 김승유의 찌질한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당한 승부보다는 뒤에서 음모를 꾸미지만 언제나 실패를 하고 김승유로 인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사랑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르고 있다가 아버지 김종서와 형 김승규가 죽는다. 그리고 자신을 구원해준 빙옥.. 더보기
공주의 남자 결말, 단종도 죽인 김승유, 이시애와 수양대군 죽이고 왕될 기세? 가 결말로 치닫고 있다. 세령공주는 세조(수양대군)의 명으로 신면의 노비가 된다. 수양대군(세조)가 세령공주를 신면의 노비로 만든 이유는 김승유가 세령을 구하러 올 때 잡으려는 계략과 세령이 마음을 다잡기를 바라는 마음이였다. 김승유는 광주에 있던 정종으로부터 반란복위 계획이 있으니 김승유가 내려와서 도와주기를 바란다. 반란 계획은 서울의 총통위가 서울에서 내응을 하고, 정종이 있는 전라도 군사와 금성대군이 있는 경상도 군사가 수원에서 모이고, 김승유 자신이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을 모시고 서울을 공략한다면 세조(수양대군)의 세력은 무너지고, 전국의 수양대군의 반대파와 유림들이 단종을 복위하는데 찬성할것이니 실패할 수 없다고 총통위 군사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이에 총통위 반란세력은 김승유가 김종서를 닮.. 더보기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 경혜공주 똥도 먹은 효자였다. 에서 정종가 죽고 경혜공주는 복중에 아기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경혜공주는 공노비가 된다. 그런데 이는 역사와 무관하다. 경혜공주는 공노비가 된적도 없다. 그런데 왜 드라마 는 경혜공주가 관노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을까? 이는 이긍익의 열려실기술이나 수 많은 문헌에서 경혜공주가 관노비가 되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조는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자신의 저서에서 문헌고증으로 밝히고 있다. 공주의 남자에서 경혜공주가 처음 정종에서 마음을 열고 몸을 연것은 사육신 단종복위 사건이 일어나기 전 날밤으로 그리고 있다. 더군다나 정종은 죽기전에 자식의 이름을 지어주고 죽는 다는 설정이다. 그렇다면 정종이 죽을 때 경혜공주는 복중에 아기를 임신하고 있었을까? 이도 사실이 아니다. 1455년 6월.. 더보기
공주의 남자, 불쌍한 신면과 배신자 사육신 어떻게 충신 아이콘 되었나? 에서 궁을 나간 세령은 빙옥관에서 신면의 손에 이끌려 궁에 다시 돌아온다. 궁에 돌아온 세령은 세조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아버지의 죄업을 자식들에게까지 전달하겠는냐는 것이다. 에서 의경세자(숭:장)(덕종:성종의 아버지)이 피를 토하고 쓰러지자, 세조(수양대군)은 그동안 드라마에서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세조의 뒤를 이어 예종이 되는 둘째 왕자 해양대군(황)를 궁으로 불러들인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 설정으로는 정희왕후 처가에서 길러진 것으로 그리고 있다. 어쨌든 의경세자 숭(장)은 곧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의경세자는 1438년 생으로 20살이 되는 해에 죽는다. 드라마 시제는 1456는 6월 사육신의 쿠데타 실패와 의경세자(장)이 죽은 1457년 9월 2일 사이라는 것을 뜻한다. 수양대군은 악담을 퍼.. 더보기
계백, 김춘추 결혼동맹 의자왕에게 아내 팔아넘긴다? 사실은 계백에서 의자는 태자가 된다. 이때가 632년이다. 이듬해 계백은 무왕과 의자의 계략에 의해서 거열성의 군관으로 있다가 신라의 김유신의 동생 김흠순이 2천의 군사로 지키던 서곡성을 20명의 군인으로 공취하였다며 영웅이 된다. 가잠성 전투에서는 50명을 투입하고 몇 만의 군대가 있다고 뻥을 치더니 이제 아에 20명으로 2천의 군사를 무찔렀다고 대놓고 시청자를 우롱한다. 광개토태왕에서는 200여 군사로 수백이 지키고 있던 거란이 점령한 성을 빼앗었다고 사기를 치기도 한다. 시청자들이 아무리 봐도 몇십명 밖에 안되는 초등학교 교내 기마전을 보는것 같이 너무 심한 전쟁신이 아니냐고 비판을 하니 대놓고 그래 수십명 수백명이 성을 점령했다고 대놓고 사기질이다. 이때 의자는 신라 서라벌에 들어가 김춘추와 당항성을 두.. 더보기
공주의 남자, 정종 죽고 경혜공주 공노비 된건 김승유 신묘한 계책? 에서 세령공주가 신면의 노비가 되자, 정종과 반란을 모의하던 김승유는 광주로 떠나는 시점에 세령이 신면의 노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면의 집을 급습해서 세령을 구한다. 를 보고 있노라면 김승유 캐릭터가 참으로 이상하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김승유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사건 사고가 터진다. 그 중심에는 김승유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다. 아버지 김종서가 정승에서 쫓겨난 일도, 김승유와 공주가 사사로이 놀아났다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계유정란도 김승유가 세령과 사랑하는 사이이고, 수양대군이 언제 김종서를 칠지 모르는 시급한 상황에서 김승유는 세령의 연서를 받고 집안일은 돌보지 않고 있다가 아버지 김종서와 형 김승규가 죽는다. 김승유는 계유정란 시 무대포로 정종의 집에 처들어갔다가 신면의 도움으로 간신.. 더보기
공주의 남자, 정종과 경혜공주 복중 아기 정미수 유복자될까? 사실은 이산 정조가 알고 있다 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세령과 정종이 있다. 실제 의 주인공은 경혜공주와 정종일 수 밖에 없다. 정종은 문종의 사위가 되어 호위호식하였고, 단종이 왕이 되자, 어린 단종을 대신해서 수 없이 많은 재산을 불렸다. 단종은 1453년 중반 부터 계유정란이 일어나는 1453년 10월 10일 까지도 정종과 경혜공주의 집에서 이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양대군이 안평대군과 김종서, 황보인 등을 몰아내자. 정란공신이 되었지만, 점차 권력을 잃어가야 했다. 이에 정종은 금성대군과 혜빈과 함께 수양대군을 몰아낼 궁리를 하였지만, 오히려 수양대군에게 역습을 받게 된다. 이 사건으로 단종은 1455년 6월 11일(윤) 수양에게 양위를 하고 상왕이 된다. 이때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왕이였을때 권력이 있는 것이지, 왕..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