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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징비록 이순신 기대없었지만 징비록 이순신 역대 최악 이순신 이유

 

- 징비록 유성룡 당대 비난 받은 이유는

 

징비록 임진강 전투에서 신각이 일본군 선봉대를 기습공격으로 이겼지만,

 

신각은 상관의 명령불복종 누명을 쓰고 선조가 참형을 하라는 명령을 냈지만,

 

잘못된 보고라는 사실을 알고 뒤늦게 재차 참형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신각은 이미 죽은 후였다. 그래서 임진왜란 첫 승전을 한 승장 신각이 죽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되었다.

 

선조 시기 무수히 많은 의병들이 나타나서 왜군과 싸움에 임했지만, 싸움이 끝나고 나서 살아 남은 의병장이 얼마 없을 정도였다.

 

선조 시기나 일제 시기 수 많은 광복군과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지만, 광복 이후 이들의 지위는 극히 미천했고 그 후손들은 멸문에 이를 만큼 박살이 났다.

 

반면에 일제에 부역하고 친일행위를 일삼던 자들은 호위호식을 하며 살아 남았고 수 많은 독립군들을 빨갱이 누명을 씌워 도태 시켜버렸다.

 

그 후손들은 당대 부모들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천대 받았고 가지고 있던 재산은 독립운동으로 날아갔고 교육을 받지 못한 후손들은 빈민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조선 시대 선조시기나 근현대사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희생된 사람들은 재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해 빈민이 되고 친일매국노들은 교과서에도 올라 끊임없이 명예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공훈서훈을 받는 순서를 보면 전쟁터에서 전쟁을 수행한 자들보다 선조옆에서  입으로 선조의 귀를 즐겁게 했던 자들이 상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대한 민국은 친일 매국노의 나라라고 할 말 큼 대통령은 친일매국 빨갱이 자식이고 여당인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도 친일 매국노의 자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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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매국 신문인 조선일보는 친일행적을 속이고 민족지라는 거짓역사를 만들어 여전히 자신들이 언론 주도세력으로 권력을 좌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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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은 과거를 반성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국론분열을 이용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친일사관을 끊임 없이 주지시키는 역사교육을 시키려는 꼼수를 펴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들은 아베에게는 사과를 하라고 이야기를 한다. 자기들 부모들의 행위도 사과를 하지 않는 자들이 반 일본 정서를 이용해서 아베에게 만 사과를 하라고 하면 누구 그 행위를 정당하다고 하겠는가?

 

독일의 경우는 끊임없이 자국내의 나치를 처단하고 도망간 사람은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잡아와 법의 심판대에 세운다.

 

그리고 독일 침략을 당했던 프랑스를 비롯한 대다수의 국가들은 독일에 부용한 자들을 처단하였지만,

 

 

[TV&ETC] - 징비록 선조 파천 625 이승만 데자뷰? 징비록 역사왜곡심해 정통사극 맞나?

 

 

대한민국은 오히려 친일매국행위자들은 처벌되지 않고 이승만에 의해서 일본군 출신은 대한민국 군대의 최상층부를 형성하고 친일매국 경찰들은 해방 후에도 대한민국 경찰 최상층 부를 형성하여 승승장구를 거듭해서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다.

 

  

 

 

누가 조국을 위해 목숨과 재산을 들여 애국을 하려 하겠는가 성공한 사례가 없는 반면교사는 조국을 위해 나서지 말라는 교육을 암묵적으로 확산 시키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역사를 보고 배우는 이유는 역사로부터 반면교사를 받는 데 있다. 징비록도 임진왜란 시 조선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서 파탄에 처했던 조선에게 징비하기 위한 방편으로 기록한 반성문 성격이다.

 

하지만 류성룡(유성룡)의 징비록은 당대 수 많은 사람으로부터 비판과 비난을 받았다.

 

왜냐 하면 징비록은 명의 도움도 있었지만, 조선 민중의 힘 특히 이순신과 같은 조선민을 생각한 의병과 조선민관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임진왜란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 명으로부터 도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조선의 힘에 의해서 지켜졌다기 보다는

 

명의 조은에 의해서 조선이 지켜졌다고 믿었던 시대이고 명이 아니면 조선은 멸망했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니 광해군이 명과 청과 등거리 외교를 하자 수 많은 기득권들은 광해군을 포악한 군주라고 몰아 내고 인조반정을 하며 친명 정책으로 사대의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과 다를 것이 없다. 625때 미군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이 있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김대중 노무현의 부국강병과 평화 공존 등거리 외교 정책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에 의해서 남북이 분단된 것은 이들에게는 고려사항이 아니고 조선말 조선이 일본에 강점된 이유가 미국과 일본의 협상의 결과라는 사실에는 눈을 감아 버린다.

 

이승만과 선조는 시대를 다르지만 너무나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이승만과 선조와의 극명한 차이라면 이승만 625 본격 전쟁 전에는 북침을 끊임없이 노래했지만, 전혀 군비준비를 하지 않았지만,

 

선조는 최소한 방어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려고 했다는 이순신과 원균과 정발 등은 유성룡의 천거에 의해서 임진왜란 전에 일본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서 계획적으로 배치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점은 입으로 만 국가를 생각하고 애국을 말하지만 세금은 내려 하지 않고, 군대도 가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군사력을 키우지도 않고 미군에 의지해야 한다며 군통수권까지 미군에 넘겨 버렸다.

 

그러니 어짜피 미군이 도와  줄 것이라 믿으니 국방력을 키울 생각도 없고 국방비도 빼돌려 착폭 하는 행위를 할 수 있고 군인들이 훈련에 매진하기 보다는 정치권에 기대여 눈치보기나 하고 장군들은 골프나 치는 것이다.

 

자신들은 전쟁이 나도 할 일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 당연한 행동일 수 밖에 없다.

 

그들의 자녀 대다수는 미국의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서 대한민국에 전란이 있으면 가장 먼저 탈출할 수 있다.

 

한마디로 언제든지 미국이나 외국으로 탈출할 수 있는 장치를 해 두었고 전쟁이 나면 자식들이 미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어서 가장먼저 대한민국에서 구원해 줄 것이다.

 

그러니 대한민국에 세금을 낼 필요도 없고 입으로만 애국 보수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들의 뿌리를 보면 친일매국 기득권 후손인 경우가 태반이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임진왜란으로부터 배운 것이 없다. 기껏 임진왜란 하면 이순신만 떠올릴 뿐이다.

 

 [역사IN드라마] - 징비록 이순신 논란? 징비록 이순신 난중일기 아니다 유성룡 시각 존중해야

 

징비록에서 이순신이 분명히 중요한 역이기는 하지만, 징비록을 넘을 수는 없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유성룡의 징비록을 보기보다는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보길 원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KBS 징비록은 너무나 준비 부족을 들어냈다.

 

이순신의 옥포해전은 임진왜란 반전을 일으킨 최초의 전투로 임진왜란의 전황을 바꾼 획기적인 전환기다.

 

그런데 이순신 배역은 결정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징비록 방송을 하였고 너무빨리 임진왜란으로 건너뛰었다. 배역 결정이 늦어져 말로 때우거나 장난감 조각배를 띄우고 CG는 더 이상 나쁠 수 없을 만큼 조악 스러웠다.

 

징비록 내에 배우들을 보면 참으로 연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김태우는 노련한 정치꾼 선조역을 너무나 잘 소화 시키고 있다.

 

이순신 하면 김명민을 떠울리는데 김명민이 징비록 이순신역을 맡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한마디로 이순신 배역을 맡은 김석훈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징비록은 준비하지 않는 자의 말로를 이야기하여 반면교사로 삼자는 취지이지만, 징비록 연출자와 관계자들의 징비록 준비부족만 들어낸 꼴이다.

 

이제 어느정도 김석훈이 합류한 시간이 지났으니 좀더 재밌는 징비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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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IN드라마] - 징비록 이순신 논란? 징비록 이순신 난중일기 아니다 유성룡 시각 존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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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이순신 김석훈 시청자 조롱? 징비록 이순신 한계 너무했다

 

 부제) 징비록 임진왜란 첫 승장 신각 참한 선조 실책 왜 일어 났을까?

 

징비록에서 이순신이 본격 등장했다.

 

징비록에서 이순신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아서 이순신 배역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고

 

징비록 이순신 목소리에 대해서도 불멸의 이순신의 김명민이다 아니다 논쟁까지 있었다.

 

징비록 이순신 김석훈이 등장하고 기대했던 옥포 해전은 너무나 단순하게 끝나고 말아 시청자를 허탈하게 만들어 버렸다.

 

징비록 이순신은 그만큼 임진왜란 시기 이순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남달랐고

 

이순신의 임진왜란이라고 할 만큼 이순신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징비록은 류성룡(유성룡)의 난중일기가 아닌 임진왜란 끝난 후 류성룡이 쓴 임진왜란 참회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징비록은 참회록이기도 하지만, 류성룡의 변명 기록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무게 중심이 참회록 쪽에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징비록을 시청하는 사람들은 징비록을 어떻게 볼까?

 

임진왜란시기를 다룬 드라마에서 이순신을 빼고 이야기 안되고 이순신의 배역은 그만큼 이슈의 중심에 서 있을 수 밖에 없다.

 

임진강 전투에서 신각은 일본군을 무찌르고 전공을 올리지만, 그전에 전장에서 이탈했고 상관의 명령 불복종으로 참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신각은 승리는 임진왜란 초기 조선이 승리한 최초의 기록이다.

 

 

 

 

 

 

 

하지만, 신각은 선조의 잘못된 판단으로 참형되어 죽고 만다.

 

조선왕조 실록에는 신각의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신을 보내어 부원수 신각(申恪)을 참(斬)하였다. 신각은 처음에 부원수로서 김명원(金命元)을 따라 한강에서 방어했었는데, 명원의 군사가 패하자 이양원(李陽元)을 따라 양주(楊州)에 와서 흩어진 군사들을 수습하였다.


마침 응원하러 온 함경 병사(咸鏡兵使) 이혼(李渾)을 만나 군사를 합쳐 진을 결성했는데, 여염(閭閻)에 흩어져 약탈하는 왜병을 양주의 게재[蟹嶺]에서 요격(邀擊)하여 패배시키고 70급(級)을 참수하였다.


왜적이 우리 나라를 침범한 뒤로 처음 이런 승전이 있었으므로 원근에서 듣고 의기가 용동(聳動)하였다.


그런데 이양원은 당시 산골짜기에 있었으므로 상황의 보고가 끊겼고, 김명원은 신각이 양원을 따른다고 핑계대고 도망쳤다는 것으로 장계를 올려 처벌할 것을 청하였다.


이에 유홍(兪泓)이 그대로 믿고서 선전관을 보내어 현장에서 베도록 청하였다. 선전관이 떠나고 난 뒤에 첩서(捷書)가 이르렀으므로 상이 뒤따라 선전관을 보내어 중지하도록 하였으나 미치지 못하였다.


신각이 비록 무인(武人)이기는 하나 나라에 몸바쳐 일을 처리하면서 청렴하고 부지런하였는데, 죄없이 죽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원통하게 여겼다.


조선 왕조 실록, 선조 수정실록 임진년 5월 1일 

 

 

 

반면에 선조 실록 5월 18일 기사에는 신각의 기사는 수정실록과 날짜도 다르고 내용도 약간 다르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오늘날의 폐단은 장사(將士)가 많지 않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율이 엄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위엄을 아끼시어 우선은 두고보자는 고식지계(故息之計)만 일삼다가는 결국 큰일을 성공하지 못할 것이 확실합니다.


부원수 신각(申恪)은 이미 중명(重命)을 받은 처지이니 한강 싸움에서 패한 뒤에 마땅히 원수 막하로 달려가서 원수의 지휘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미의 병을 핑계로 도중에서 며칠 동안 숨어 있다가 도검찰사(都檢察使)에게로 갔습니다.


제멋대로 오가면서 조정의 명령을 무시하였으니 어찌 주장(主將)의 호령만 어긴 것이겠습니까.


심지어 도원수가 이문(移文)하여 잡아가려 하였으나 버티면서 꼼짝도 않으므로 원수(元帥)도 어쩔 도리가 없어 장계를 올려서 사실을 진달할 것입니다.


신각의 명령 불복종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부득이 군법을 엄하게 보임으로써 기율을 엄숙하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신각을 어떻게 조치하려 하는가?” 하였다. 회계(回啓)하기를,

 

“군법을 실시하려고 합니다.”
하니, 상이 허락하였다.


조선왕조 실록 선조 5월 18일 기사

 


징비록 이순신은 옥포해전을 앞두고 전투 훈련에 여념이 없다.

 

조각배 몇 척을 띄워놓고 이억기가 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공을 같이 나누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옥포 해전은 이순신의 대승으로 끝났다.

 

징비록에서 충분히 지금의 징비록 같은 형태가 보일 것을 예상했었다.

 

글쓴이는 이전글에서 징비록은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아니라는 글을 쓰고 이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했다.

 

 

[역사IN드라마] - 징비록 이순신 논란? 징비록 이순신 난중일기 아니다 유성룡 시각 존중해야

 


하지만, 징비록에서 이순신을 기대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무조건 이순신이 많이 나와야 하고 토요토미를 혼내 줄것이라고 기대를 한다.

 

이는 징비록을 제대로 보지 못한 무지이거나 시청자를 조롱하는 또다른 이유다.

 

실제 징비록은 류성룡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정권 중심부 선조와 류성룡 중신들간의 이야기가 주를 이를 수 밖에 없고,

 

 

징비록에서 이순신의 이야기를 많이 할수록 제작비를 감당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징비록에서 이순신 배역은 촬영 몇일 전에 결정되었을 만큼 해전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징비록에서 이순신 뿐만 아니라 어떠한 전투도 전투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다. 징비록에서 부산포전투 신립의 탄금대 전투, 임진강 전투 등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다.

 

앞으로도 징비록에서 전투는 그리 많이 나오질 못할 가능성이 높다. 선택과 집중으로 극히 일부만 선정해서 보여줄 가능성이 높고 말로 떼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징비록에서 이순신을 기대한 많은 사람들의 실망이 눈에 선하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징비록은 이순신은 주요인물중에서 이산해보다 못한 존재일 뿐이다. 이는 이순신이 못나서가 아니라 징비록의 주요무대의 차이다.

 

이순신과 류성룡과 시간적 공간적 지역적으로 너무나 멀리떨어저 있으니 비중이 낮을 수 밖에 없다.

 

이는 징비록을 만드는 제작자가 시청자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 아니라 작품이 주는 한계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징비록에서 이순신을 목매며 기다린 시청자를 조롱하듯 한 징비록은 비난받아도 할말은 없다.

 

옥포 해전 조각배는 글쓴이에게 한심함을 넘어 징비록 미래가 걱정되었다.

 

그리고 옥포 해전에 대해서 일본 나고야에 있는 토요토미가 조선 평양에 있는 순조보다 전황을 먼저 알고 있었다는 설정은 과한 느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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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한심 2015.04.12 2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은 없으면서 단어만 나열해놔서 검색어 순위나 올리려는 질 낮은 글이네요. 기껏 제목 보고 들어온 독자을 조롱한 겁니까?

  2. 2015.04.12 2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2015.04.17 1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징비록 이순신 김석훈 류성룡 선조 캐릭터 힘 징비록 이순신 김석훈 하기 나름 하지만

 

징비록 이순신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고 고대하던 징비록 이순신 김석훈 등장이 이슈화 되고 있다

 

징비록 마지막 10초에 이순신 김석훈을 등장시킨 징비록 제작진 언플는 나쁘지 않았고 파괴력 있었다.

 

류성룡의 징비록이냐 이순신의 난중일기냐는 실패한 역사를 보고 싶지 않은 시청자들의 당연한 욕구일 수 있다.

 

이제 본젹적으로 징비록에서 이순신이 등장하므로서 이순신 캐릭터에 대한 논쟁이 심해질 것 같다.

 

글쓴이의 경우 배우캐릭보다는 연출과 작가가 극을 어떻게 이끌고 있는가에 관심이 있고 사극의 경우는 작가가 얼마나 고증에 충실했는가?

 

역사적 사실과 팩트에 충실했는가를 주 시청포인트로 본다  그래서 이순신이 누가되었던 상관하지 않는다. 배우란 작가와 연출자의 극세계관이 투영된 연기를 하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연출과 작가가 각각의 캐릭터에서 영혼을 부여하는 방식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어쨌든 징비록에서 선조는 이산해의 파직을 요구하는 신하들의 고변에 이산해의 파직을 요구한다면 전쟁이 오지 않겠다는 자와 그를 옹호한 자들도 파직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선조는 전쟁의 책임과 전쟁을 대비하지 않은 책임은 선조 자신 뿐만 아니라 전쟁에 대비 하지 않는 대신들에게도 있다.  

 

징비록 류성룡 파직 하겠다는 선조에게 류성룡은 성은이 망극하다는 말을 하자. 선조는 나를 놀리고 비아냥 하는 것이냐고 말한다.

 

전쟁에 대비하지 않는 책임이 있는 과인이 양위를 해야 류성룡은 직성이 풀리겠느냐고 말한다.

 

실제 선조는 시시 때때로 양위론을 들고 나와 신하들이 곤욕을 치른다. 권력을 유지하고 자신에게 충성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데 이보다 좋은 방책은 당시에는 없었다. 대부분 무능한 왕이 사용하는 전가의 보도였다.

 

류성룡은 사가들이 무능한 군주라고 비난 할 것이라고 말하고 선조도 당연히 과인 또한 류성륭의 말에 동의를 하지만,

 

전쟁을 할 수 있는 있는데 도망가는 군주라면 비난을 받아야 하지만, 지금의 현실이 전쟁을 할 있는가에 대한 논쟁을 하는 것이다. 군대가 없는 군대로 싸울 수 없으니 선조의 말을 막을 수가 없다.

 

이는 6.25때의 이승만과 비교되는 이유고 선조의 예로서 이승만을 옹호하던 논리이기도 했다. 실제 6.25전에 이미 내전 상태에 있었고 38선에서 끊임없이 국지전이 있었다.

 

더불어 이승만은 능력도 없으면서 북한 평양을 점령하겠다고 지속적으로 전쟁을 도모했다.

 

한마디로 말만 번지르하고 뒤로 튄 이승만과 선조는 차이가 있다. 물론, 전쟁 이승만이 부산으로 도망한 것은 당연하다. 단지 그 과정이 선조와 다르다는 것이다.

 

 

 

 

한성에 진주한 고니시는 전령을 받는다 한성에 진주해서 조선민을 위민하고 조선민으로 하여금 군대에 징발하도록 말한다.

 

더 이상 고니시에게 선조를 추적하지 말라는 말을 하다.

 

고니시는 더 이상 진군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고니시는 선발대로 전장의 최 일선에서 전투를 하므로 힘이 빠졌고,

 

 신립과의 탄금대 전투에서 전력의 반을 잃었으니 더 이상 전투는 무의미 하다고 징비록은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고니시는 수만 군대 중에서 탄금대 전투에서 단 수백 명의 손실만 입었을 뿐이다.

 

그래서 징비록에서 고니시가 신립에 패전 같은 승리를 해서 더 이상 진군할 힘이 없다고 설정한 것은 실제 역사와는 무관하다.

 

사야가(김충선)는 오랜 내전을 끝내고 다시 동원되어 일본땅이 아닌 조선과 명의 전쟁터까지 동원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전쟁을 하고 싶지 않고 말한다.

 

하지만, 사야가는 임진왜란 시기 수 많은 전투에 참여했고 자신들이 주 무기였던 조총의 비밀에 대해서도 알려 준다.

 

사야가(김충선)이 조선에 귀부 한 이유는 문명국인 조선을 침략한 일본은 국가가 아닌 무도한  자들이 정권을 장악해서 그 밑에서는 전쟁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 이었다.

 

실제 사야가는 패전으로 다시 징발된 칼받이었기 때문에 조선에 귀부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단지 조선에 귀부 한 후 일본에 남아 있던 그의 일족들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바 없다.

 

전쟁에서 적이였던 병사들을 칼받이로 사용하는 예는 고대 전쟁에서 비일비재한 일이다.

 

징비록에서 선조는 류성룡을 불러 과인이 과연 전쟁을 할 수 있는데 전쟁을 하지 않는 비겁한 군주로 생각하느냐고 말하자 류성륭은 충분히 전쟁을 치를수 있는데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은 비겁하다고 말한다.

 

선조는 전라도에서 한성으로 진주하던 이광의 군대가 한성이 함락되었다는 말을 듣고 회군했다 보고를 받은 선조는 더 이상 개성에 머물고 있다면

 

언제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며 평양 파천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당연히 류성륭의 전투준비에 차질을 비질 수 밖에 없다.

 

 

징비록을 보던 시청자는 징비록에서 이순신이 언제 나오나 궁금했었고 징비록에서 이순신의 배역에 고민을 하다 이제 이순신의 실체가 들어났다.

 

이순신 역은 김석훈이다. 김석훈이 역대 이순신과 다른 김석훈만의 어떤 매력을 발산할 지 궁금하다.

 

 

오래전 MBC에서 한 선덕여왕에서 고현정의 미실이 선덕여왕 캐릭터보다 매력적인 이유처럼 말이다. 

 

선덕여왕의 경우는 과도하게 미실이 부각되어 제목이 선덕여왕이 아닌 미실이었야 했다는 비아냥을 받았다.  

 

임진왜란 당시 역대 이순신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수 있지만, 이순신 역을 맡은 배우들 또한 시청자들이 눈을 의식해서 고민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역대 이순신과 비교되는 배우들의 고역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배우 보다는 연출자가 얼마나 배우에게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해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징비록에서 주인공 류성룡 김상중이 별다른 부각이 되지 않고 징비록 선조 김태우가 이전과는 다른 교묘하고 능수능란한 선조 캐릭터를 만들어 지탄으로 받고 있지만,

 

김태우가 지탄을 받을 수록 배우 김태우로서는 기쁘지 않을까 한다. 국민 욕받이 선조인데 과거 무능 선조보다는 비겁하고 노회한 정치꾼 선조가 되었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조선 선조가 고구려 백제 고려 등에서 왕성을 버리고 파천한 다른 왕들에 비해서 과하게 욕을 먹는것도 사실이다.

 

반면에 징비록 김상중이 매력이 없는 이유는 캐릭터가 주는 약점도 있고 매력이 없을 수 밖에 없는 주인공 역일 뿐이다. 반면에 이순신은 누가 하던 상관없이 매력적인 캐릭터일 수 밖에 없다.

 

시청자와 배우의 관점에서 배우라면 선조와 고니시 토요토미히데요시를 해보고 싶을 것이다. 주인공 이지만, 주인공 같지 않은 징비록 김상중 류성룡은 별다른 부각도 되지 않고 배우로서 매력도 없다.

 

반면에 이순신은 부담도 있고 매력도 있고 성공하면 대박 실패하면 쪽박이 될 이중적인 캐릭으로 배우라면 도전해 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매력도를 주는 역할은 배우보다는 연출자와 작가의 능력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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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4.12 2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징비록 이순신 없고 징비록 고니시 미화 이유  현 기독교 천주교 신자들 때문 의심 일까?

 

징비록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인물은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이다.

 

징비록 고니시(소서행장)은 임진왜란 초기 최 선봉에서 조선의 국토를 유린한 인물로 초기 임진왜란을 주도한 안물이다.

 

조선 마지막 방어선을 책임진 신립과 소서행장의 전투신이 징비록에 나왔지만, 전혀 긴박감도 없이 끝나버렸다.

 

징비록에서 전투신에 집중하지 못한 이유는 전투신을 찍는데 들어가는 제작비가 충분치 못해서 일 것으로 예측된다.

 

더군다나 징비록에서 이순신의 해전 신을 제작하는데 제작비의 다수가 들어갔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육전신 보다는 해전신이 찍기도 힘들고 제작비가 더 많이 들어가는 것은 상식이다.

 

어쨌든 징비록에서 신립은 험지인 조령을 내주고 무모하다는 탄금대에서 전면승부만이 패전으로부터 사기를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신립의 군대는 기마군이 주력군이고 나머지는 남하하면서 조달한 징병들이였다. 수효는 기록마다 다른데 10만에서 8 6만 등 다양하다.

 

반면에 고니시 유키나가 군은 1 8천의 정병이었다고 한다. 숫자가 많다고 군세가 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신립의 패전원인은 신립이 조총의 위력을 간과한 것도 있지만 전술적인 묘를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징비록에서 신립은 탄금대에서 투신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은 이기긴 했어도 피해가 크다고 말한다.

 

그런데 고니시는 어떤 인물일까?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은 가톨릭 신도로 고니시 유키나가 수하 중에 가톨릭 신자들이 많았다고 하며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과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와는 앙숙 관계로 가등청정이 가톨릭 신도를 탄압했고

 

가등청정 영지내 가톨릭 신도들이 고니시 영지로 들어갔고 이런 면들이 결정적인 원인 이라고 한다.

 

징비록에서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의 깃발과 이전 임진왜란에서 보여주었던 고니시의 군기는 서로 다르다.

 

 

 

고니시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군기로 붉은 비단 장막에 하얀 십자가를 그렸다는 것이 중설이다.

 

하지만 징비록에는 하얀 십자가는 보이지 않는다. 고니시는 조선을 침략했을 때 포르투갈 신부인 세스패데스 신부가 같이 사목을 했고 밤마다 미사를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정통 사극을 추구하는 KBS 징비록에서는 고니시가 천주교 가톨릭 신자였다는 사실은 들어 나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고니시의 군기 어디에도 십자가는 보이지 않는다.

 

KBS 징비록에서 십자가 보이지 않고, 고니시가 가톨릭 신자라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단지 고니시는 전쟁을 싫어하지만, 어쩔수 없이 참전한 것으로 나와 고니시는 전쟁을 싫어하는 줄 알지만 실제 고니시는 전장에서 살아가던 전쟁광이었다.

 

KBS 징비록에서 고니시를 미화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이유는 고니시가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현재 가톨릭 신자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꼼수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고니시가 임진왜란 시 십자가 문양을 사용하지 못했다는게 정설이다. 이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7년 천주교(가토릭 금지령)을 내린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문제는 위에서 언급했지만 고니시는 가톨릭(천주고) 신부를 전장에 데리고 다니고 밤마다 미사를 지냈다는 것이 정설이니 1587년 이후 고니시가 가톨릭 문양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설도 합리적이지는 못하다.

 

 

 

문제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는 고니시가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하고 조선을 침략한 행위를 그들이 믿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있고, 고니시를 막는 행위를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무도한 행위이며 순신은 하나님의 뜻을 어긴 사악한 인물로 만들어 버렸다.

 

댓글로 구교와 신교가 다르다며 댓글을 다는 사람이 있다 구교는 우상숭배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은 다르다고 한다. 지랄도 풍년이다.

 

우상 숭배는 십자가 걸고 있는 기독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그런 의미라면 기독계열이 싫어하는 이슬람이 더 철저히 우상숭배를 하지않는다. 상징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대한민국 기독은 다르다고 말한다. 다르지 일제에 부역하는데, 철저히 순응하고 우상인 일본왕을 현인신으로 숭배했으니 말이다. 가장 질이 떨어지는 종교가 대한민국 개독들이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종교를 돈으로 생각하고 돈을 숭배하는 종교가 정상적이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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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비처럼 2015.04.05 2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교와 신교의 의밍조차 모르고 가톨릭이 개신교라고 하는 말 같군요. 현재 우리나라는 개신교는 가톨릭을 인정하지 않고있는게 보통인데 저 답변또한 코미디가 아닌지...

  2. BlogIcon 2015.04.06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 뻘소리글인지 징비록에서 조선 침략전에 고니시가 카톨릭 신자 라는게 분명히 나왔고 고니시가 우리 카톨릭 신자들을 보호해야한다고 분명히 나왔었는데 무슨 징비록에선 고니시가 카톨릭 신자라는게 전혀 안나왔단건지 드라마 제대로 보기나 한건지 그리고 현 카톨릭과 기독교 즉 개신교는 다른데 마치 둘이 동일하게 취급하며 뻘소리 하고 있네 임진왜란으로 인해 조선에 카톨릭이 들어온 기록은 전혀 없는데 순복음 쟤들도 멍청한 소리나 하고 있고

  3. 루쉰 2015.04.11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이새끼는 아무것도 모르는 선동쟁이군요 순복음교회는 카톨릭도 인정하지 않는 판국에

    카톨릭 신자라고 고니시를 추앙하고 이순신을 사탄으로 규정한다는 뻘소리나 해대고 있으니

  4. BlogIcon 여의도순복음교회 서리집사 2015.04.11 1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그랬다는 님의 글 근거를 밝혀보세요.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전혀 관련없는 사실을 적시한 님의 저의는 무엇인가요?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로써 님의 주장은 전혀 근거없슴을 다시금 밝힙니다!
    로마 카톨릭이 마리아를 우상숭배하는 하는것엥대한 한국교회의 혐오가 짙습니다!
    이글을 쓰신분은 로마 카톨릭 교도이거나,
    스님이거나 무속인이신가요?
    전혀 근거없는 글은 자제하심이 옳음을 권면드립니다!

  5. BlogIcon 여의도순복음교회 서리집사 2015.04.11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마카톨릭의 마리아숭배!
    교황 무오설및 복음의 변개와 성인및 성물숭배에 대한 반 기독교적인 로마 카톨릭을 한국교회는 인정치 않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파란색을 붉은색이라고 하는것과 같은 님의 글은 어떠한 저의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로마 카톨릭 자체를 인정치 않는 한국교회를 왜적들의 앞잡이 우두머리 소서행장의 로마 카톨릭이 감히 성스러운 십자가를 앞세워 침략과 살인과 약탈과 방화등을 즐기던 인류최대범죄집단 로마카톨릭과 한국교회를 섞지 마십시요!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오천만명이 순교를 당하면서도 지켜온 참된 그리스도인의 기독교에 대해 올바르게 아시길 바랍니다!

  6. BlogIcon 신동진 2015.04.23 0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징비록은 보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기독교가 지나친 상업화와 기업화. .종교 본연의 숭고함은 온데간데 없고 종교의 힘을 기득권을 옹호하는 기회주의적 집단으로 변질된거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극히 일부 종교의 숭고함을 실천하는 분들도 물론 계시지만 이건 뭐 미꾸라지 1마리가 물을 흐리는 수준이면 좋은데 온통 흐린물에 온통
    미꾸라지. .그런 기독교가 신천지 배척하는거보면 뭐묻은개가 뭐묻은게 나무란다는 속담이떠오르기도 하고. .천주교도 이단으로 내모는 그 오만한 입으로으로 사랑을 논하고 평화를 논하는거보면. .역겨울정도임. .

  7. BlogIcon 정승우 2015.04.26 0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 맛이 갔군.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타종교를 비난하는가? 인터넷에 글을 올릴땐 공정하게 그리고 올바르게 글을 올려야 하지 않은가? 날씨가 더워지니 맛이 갔군.

  8. BlogIcon 정신챙겨요 2015.06.07 0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정신들이 아니네요. 카톨릭이 신교를 인정해주었는데 무슨 순복음교회에서 뿌리를 인정하니 못하니 나불대시나요...사회에서 개신교의 위치와 여론을 1%만 들어도 이런 개소리 못할텐데...에어장 같은 목사님들 모셔서 좋겠습니다

징비록 이순신 논란? 징비록 이순신 난중일기 아니다 임진왜란 입체적 배역 고민 당연한 이유는

 

징비록 이순신 역에 대해서 말이 많다. 징비록은 서애 유성룡의 임진왜란 시기를 반추한 일기형식을 빌린 편년체 참회록이다.

 

KBS 역사대하 사극에서 징비록으로 임진왜란 시기 유성룡(류성룡)의 눈으로 본 임진왜란 경험담이다.

 

징비록에 기록된 내용들은 유성룡의 관점에서 본 임진왜란일수 밖에 없다.

 

그러니 징비록의 주인공은 당연히 유성룡이다. 만약,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바탕으로 했다면 이는 이순신의 눈으로 본 임진왜란이다.

 

선조실록은 선조의 관점뿐만 아니라 당시 중앙정부에서 본 임진왜란이고 그 중심에는 선조가 있다.

 

원균의 관점에서 봤다면 욕하면서 보는 사극이 되었을 것이고,

 

선조의 관점에서 봤다면 상상하기도 힘들만큼 제작자가 욕을 먹고 조기 종영을 각오하고 방영을 해야 했을 것이다.

 

징비록을 쓴 유성룡은 당시 중앙정부의 요직에 있었고, 선조와 당시 중앙정부 관료들과의 관계에서 유성룡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행동을 했었고,

 

유성룡이 생각하기에 또는 유성룡과 관계한 인물간에 어떠한 관련성이 있고, 주고 받은 내용이 있는가가 주가 되어야 한다.

 

만약, 징비록에 이순신이 과도하게 나온다면 이는 징비록이 아닌 징비록을 빙자한 이순신 이야기 일뿐이다.

 

징비록에 억지로 끼워넣은 가상인물 매파 꾼이 있는 것도 달갑지는 않다. 당연히 징비록에서 이순신은 주변인물이지 중심인물은 될 수 없다.

 

 

징비록에서 거북선이 등장하고 이순신의 목소리가 등장해서 김명민이 아닌가 하는 의문부터 시작해서 김명민 목소리만나온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나오기 시작했다.

 

 

 

 

징비록에서 이순신의 목소리가 등장해서 누군인가 궁금증을 내었다. 그만큼 고민하고 있다는 반증이고 마케팅으로 사용하려는 의도인지도 모른다. 잘못했다가는 여론의 물매를 맞아야 할 만큼 이순신이 임진왜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찬다.

 

그런데 왜 이순신의 분량이 작다며 불만을 제기하는 것일까?

 

이순신의 명량해전이나 난중일기를 할 때 유성룡의 분량이 많았다고 보지도 않고 많아서도 안된다. 단지 참고자료이지 주자료가 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는 상식에 속한다.

 

이순신 난중일기 할 때 선조도 그리 많이 나오지 않았다. 중심 인물은 이순신이고 이순신의 관점에서 임진왜란을 보는 것이 정상적이기 때문이다.

 

나의 일기에 주변인의 이야기가 많을 수는 없다. 일기란 각자가 주인공이지 특정한 주인공을 띄우기 위해서 일기를 쓰지는 않는다.

 

다시 징비록으로 돌아가서 왜 이순신의 분량이 적냐며 또다시 선조이야기냐? 라로 묻는 것은 일기와 드라마와 자신의 보고 싶은 것만 볼 려는 극히 잘못된 생각이다.

 

만약,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글을 쓴다면 이는 잘못된 글 쓰기 방식이고 여론에 따른 글질에 불과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글을 쓸 때 조심해야 한다.

 

자기주관도 없이 이리저리 여론에 따라 글질을 하거나 여론을 호도하는 글들을 보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다.

 

징비록에서 이순신은 주변인물이고 주인공은 유성룡이다. 그리고 유성룡과 이순신과는 공간적으로 너무나 떨어져 있다.

 

 

 

 

 


그러니 이순신과 유성룡이 만나는 것도 극히 드문일이다. 오히려 현재 징비록은 과하게 이순신이 너무 많이 들어 있을 만큼 이순신에 배려를 하고 있다.

 

이 또한, KBS 사극이 여론를 살피고 있다는 반증이고 눈치보기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오히려 징비록의 유성룡이 아닌 어정쩡한 징비록이 되지 않을까 그것이 우려스럽다.

 

징비록을 기획했다면 철저히 유성룡의 관점에서 역사를 살피고 선조실록이나 주변 사료들은 징비록의 허구성이나 크로스 체크용이나 보완용이 되어야지 주가 되서는 안된다.

 

이순신 난중일기 할 때 임진왜란 시 활동했던 수 많은 의병들을 자세하게 나온 적이 없는 것 처럼 이순신도 다른 의병이나 중앙관료에 비해서 높은 비중은 아닐지라도 많이 나올 수 밖에는 없지만, 과도하게 많은 분량이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는다.

 

유성룡과 선조가 가까이 부딛히고 갈등이 있었겠는가? 아니면 이순신과 접촉이 많았겠는가? 상식적으로 판단하자.

 

어디까지나 징비록은 유성륭의 관점으로 난중일기는 이순신의 관점으로 선조실록은 주가 선조의 관점으로 나머지는 그 주제에 부가적인 데코레이션이다.

 

정도전을 하면 정도전이 주가 되지 정몽주나 세조 이방원이 주가 되어서도 안 되는 건 상식이다. 정도전에 세종이 성군이라고 해서 많이 나왔다는 말은 듣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징비록은 최소한 임진왜란 당시 중앙정부에서 임진왜란시기 어떠한 결정을 내렸고 각 지방에서 임진왜란 시기 어떠한 장계와 의병들의 활약상이 더 부각되고 임진왜란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다만 징비록을 하면서 극히 유성룡을 미화한다거나 하는 부분에 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유성룡을 살리기 위해서 당시 정계인물을 또는 적대적인 인물을 미화해서도 안되겠지만, 과도한 악역 부여나 비하도 극히 주의해야 한다.

 

 

특히 정통사극을 표방한 KBS까지 미화 사극이나 환타지 사극류가 안되길 바래본다.

 

어쨌든 징비록에서 이순신 배역이 결정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시청자의 과도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도 있지만, 과도한 신경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과도한 여론에 신경을 쓰다보면 이도 저도 아닌 징비록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그래도 징비록이 여태까지 보왔던 임진왜란 관련 사극류에서 최소한 임진왜란을 좀더 입체적으로 다방면으로 볼수 있는 기회인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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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윤 주민 2015.03.28 2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징비록을 읽어 보셨나요 ?
    이 순신은 징비록의 주변 인물 아닙니다
    징비록은 이 순신을 특별 조명하고 있습니다

  2. BlogIcon 로드러너 2015.04.01 0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소리 하는건지? 지금 징비록은 출판사에서 낸 책이 아닌 드라마다. 드라마는 시청율이 생명이고,의외로 부실한 대본과 김상중의 미스캐스팅등 징비록은 힘을 잃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이순신이 중요하지 않을구 있나? 시대적 상황이 임진왜란이고 우성룡과 이순신은 먼 관계가 아니다. 헛소리는! 쯧

  3. 푸른바위 2015.04.01 0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징비록은 유성룡이 쓴 유성룡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유성룡이 쓴 임진왜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임진왜란 이야기에서 이순신 장군이 가벼이 다뤄질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죠.

  4. 01 2015.04.03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에게 <포산 들꽃>(이상규 장편소설, 작가와비평 발행)은
    역사를 다시 되돌아보고, 역사적 평가를 어떻게 내리기보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가 있었듯이
    임진년 전쟁으로 스러져간 조선의 많은 사람들
    그중에서도 민초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결국 나라를 지켜낸 것이 훌륭한 장수 몇몇이 아니라
    수많은 죽엄으로 스러져간 의병을 비롯한 백성들이 있었음을 우리에게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과 더불어 읽어볼 만한 책이 있다.
    정진혁 대하 장편 다큐소설 <전사들과 이순신 권1: 각자의 삶>(작가와비평 발행, 후속 권2 마음)이다.
    이 책은 계속 발행될 거지만, 이 책 역시 주인공은 이순신 장군에 의해 가려진 전사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전사들과 이순신>이다.

    두 책([포산 들꽃], [전사들과 이순신])은 배경이 바로 임진년 전후의 상황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순신과 원균 등 훌륭한 장수들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름없이 죽어간 많은 하층민들과 사졸들, 그리고 전사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독자에 따라 편자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아주 재미 있게 읽었다고들 한다.

    이 책과 더불어 한 책을 더 소개해보자면
    신용우 장편소설 [명성황후는 시해 당하지 않았다](작가와비평 발행)이다.
    을미년 낭변 때 명성황후가 살해 되지 않았다는 점을 신용우 작가는 끄집어내고 있다.
    역사학계에서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베베르 보고서(2002년 1월 신동아 발표)를 비롯하여, 지난 2013년 7월에는 독일에서 발견된 증거 문서 등을 보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일본의 에조 보고서에 적힌 몇 줄 되지도 않은 시해 장면으로 명성황후가 시해 당했다고들 이야기하고 있다는 게 작가 신용우의 주장이다.

    앞에서 소개한 세 책의 공통점은 모두 사실(Fact)를 기반으로 픽션(Fiction)을 결합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즉 메타픽션이라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므로, 읽는 데는 다소 역사적 이해가 필요로 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소재가 사실을 기반으로 하므로,
    우리에게는 많은 교훈을 남겨줄 것이다.

    우리에게는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실이 있다.
    우리 역사의 치욕이야말로 역사적 발전으로 이끌어내며,
    우리에게 반성을 이끌어내
    다시는 그와 같은 일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임진년, 우리가 알지 못하는 희생에도 그들은
    나라로부터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고 하는 경북대 이상규 교수의 말을 빌어
    이제라도 그들의 용맹함과 숭고함 역시 훌륭한 장군 못지 않은 것이므로
    오래도록 기려야 할 것 같다.

    "전쟁의 역사는 죽은 이의 뼈 가루로 집을 짓고
    피로써 물을 드린 야기이다.
    사람의 죄를 뿌려 인골의 벽돌로 만들 집이 역사의 공간이고
    오늘 우리들이 쉬고 있는 쉼터가 아닌가?"(이상규)

    "아무런 죄도 없이 칼을 맞고 쓰러진 이들의 상처를,
    그 참혹한 생애를 역사를 통해서만 읽어야 할 것인가?"(이상규)

    ***이 글은 어떠한 사람도, 어떠한 목적으로도 이용 가능합니다.

설, 추석, 한가위, 중추절과 차례 상차리는 방법 감춰진 진실찾기

차례상 차리는 방법은 지방마다 시대마다 달랐다. 지금도 차례상 차리는 방법에 대해서 설왕설래한다.

그런데 차례상 차리는 방법에는 정도가 있을까? 우리민족 고유의 가장 큰 3대 명절(설,대보름,추석)인 추석을 "추석은 우리것이 아니(였)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로 부터 돌이 날라올지도 모르겠다.

차례상 차리는 방법에서 차례의 유래등 감춰진 진실을 찾아 보려 한다.

설마 추석이 우리것이 아니라니 좋은밥 먹고 헛소리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이다. 그리고 추석의 유래에 대해서 장황설을 늘여놓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나 추석의 유래를 보면 우리것이 아닌것을 설령 우리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우리의 문화에 깊숙히 스며들었으니 우리 민족의 고유의 명절이 된것이 아닌가 이야기를 할것이다.

당연히 현재의 <추석>은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겠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는 없는 특이한 제례문화이다.

 
하지만 정확한 유래를 알고 있는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추석>은 <중추절>, <한가위(가베)>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추석>과 <중추절>과 <한가위>는 서로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1번째, 한가위 유래 (추수감사제와 놀이성격)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때 조상에 감사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2번째, 중추절 유래 ( 승전기념일 + 한가위 )
 
<예기>의 <맹추>,<중추>,<계추> 중에서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유의 한가위인 가베를 중국식 작명법에 의해서 기록한것 뿐이다.<중추>와 중추절은 서로 다른다. 단지, 중추란 한자화된 용어의 차용에 불과하고 중추절은 카니발 성격의 축제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슝베이도 중추절은 신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중추절은 당나라에 유학한 일본의 구법승려 <엔닌의 일기>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서>,<구당서>,<신당서>의 기록에도 신라는 8월15일날 왕앞에서 활쏘고, 말타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한다. 이 당시 중추절은 한가위의 풍습과 전승기념일을 합한 행사가 된다.
 
전승기념일이다 라는 있는 근거를 2009/09/26 - [역사이야기] - 중국 중추절은 신라 진평왕의 고구려 승전기념일?  글에서 <삼국사기>를 근거로 중추절은 진평왕의 603년 8월 대고구려 북한산성전쟁이나 668년 가을 고구려의 멸망을 기념하는 전승기념일이라고 주장했다.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도 고구려가 신라의 <북한산성>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603년 음력 8월이고, 진평왕이 직접 북한산성에 진주하여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왕이 직접 전장에 나아가서 싸우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당시 수와 전쟁에서 이긴 동북아의 패자 고구려를 신라 왕이 직접 통솔하여 물리 쳤다고 하는 의미에서 신라에게는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삼한일통을 한시기도 668년 가을이다.  이때의 승리를 기념해서 축제를 벌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까지 신라로써는 한가위와 전승기념일이 충첩된 날이니 즐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3번째, 추석 유래 [춘조일(春朝日), 추석월(秋夕月)] ( 한가위 + 중추절 + 유교제례 )
 
위에 중추절과 중추는 다른 의미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형식과 내용면에서 추석은 추석제의 미미한 변형이다.
 
네이버 통합검색 화면에는 다음과 같이 추석관련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추석의 유래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추석은 중국의 유교경전인 <예기>에 천자는 이른봄에 태양에 제사를 지내고, 가을에는 저녁 달에 제사를 지낸다해서 비롯되었다. 동지는 태양이 낮은 고도에서 점차 크게 떠올라 시작을 알리는 시기이고 가을 중추에 뜨는 달이 가장 높이 크게 보이는 시기이기 때문에 <춘조일>, <추석월>같은 유래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예전 <네이버> 백과사전(두산백과사전)에서 <추석>의 유래를 검색하면 <예기>의 <조춘일>,<추석월>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달처럼 해처럼 번쩍이는 레슬러 <조춘>선생을 기념하는 날도 아니고 실제는 <춘조일>의 오기이다. 글쓴이도 오랫동안 관심이 없어서 무관심하게 지나갔지만 <조춘일>, <추석월>인줄 알았다. 그래서 추석에 관한 여러가지 자료를 조사할일이 있어서 이곳 저곳 찾다보니 <조춘일>이 <춘조일>의 오기라는 것을 알았다. 
 
네이버에 올려진 백과사전이 잘못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알고 오래전에 수정할려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이유는 예전에 솔거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솔거의 활동시기가 <진흥왕>시기(540년이후)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꼼꼼히 솔거는 <진흥왕>시기 사람이 아니고, 신라의 황금기인 경덕왕(8세기)때 활동한 사람이며, 솔거의 작품인 황룡사 <노송도>와 단속사 <유마상도>, 분황사 <천수관음보살도> 등 잘못이 있으니 수정하였으면 한다고 자세하게 논거를 제시하여 보냈지만 근 한달이 지난후에 솔거관련 기록들은 수정도 하지 않은체 <솔거>라는 항목만 수정을 하고 고맙다는 말도 없었다. 
 
솔거 관련글을 자세히 보실려면   2009/08/02 - [역사이야기] - 덕만에서 솔거까지 역사상식을 깬다
글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현재 추석은 3가지의 유래중에서 어디에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추석의 유래 중 <예기>를 인용하지 않고 있다. 있는 사실을 감추고 유래를 단지 국내에서 찾으려는 또다른 역사왜곡 사례이다.
 
<한가위>나 <중추절>의 행사와 놀이문화는 잊혀지고 단지, 제사(차례)의식만이 남아 있다. 그리고 <한가위>라는 말을 쓰기는 하지만 <추석>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또한 추석이 민족의 3대명절인 <설>,<단오>,<추석>에 진입한 시기를 보면 조선시대 중종?이후 일이다. 
  
조선시대의 추석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추석에 관한 기록은 모두 왕이 조상에 대한 제사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조에 보면 아침에 추석제를 지낸후 저녁 밤늦게까지 대신들과 왕족들을 불러 술마시고, 흥겹게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연산군때에도 추석제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연산군은 자신의 친모인 <윤씨>에게 추석제사를 지내려하나 신하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하지만 효자였던 연산군은 신하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윤씨>의 사당을 세우고 추석제사를 강행한다.

<추석제>를 지낸것은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신라 종묘의 제도에 <추석제>가 있었다고 흔적이 있다. 

37대 선덕왕이후 일년에 여섯 번 5묘에 제사지냈으니, 곧 정월 2일·5일, 5월 5일, 7월 상순, 8월 1일·15일이었다.

그러니 삼국시대부터 신라왕실에서는 추석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추석제를 지키는 것은 김춘추가 당에 구원요청하고 신라의 관제와 복식을 당나라식으로 바꾼 이후부터 일것으로 추측된다. 이때 지낸 제사의 형식은 <유교>형식의 제사일것 이다.
 
또한,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백제 편에 책부원귀를 인용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백제는 매년 네 철의 가운뎃 달[四仲之月]에 왕이 하늘과 오제(五帝)의 신에게 제사지냈다. 그 시조 구태(仇台)의 묘(廟)를 나라의 도성에 세우고 일년에 네 번 제사지냈다.』

고대의 <추석제>는 민간 백성들은 지낼수 없는 황제나 제왕들만이 지내는 제사였기 때문에 왕실에서만 지냈고 민가에 까지는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추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추석제는 기회가 된다면 따로 글을 쓰도록 하겠다. 
  
조상은 사라진 차례와 제사, 르레상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차례를 지냄에 있어서 상차림에 관한 이야기들이 설왕설래 한다. 그 근거는 <예기>일 수 밖에 없는데 <예기>을 보면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너무 많은 제사를 하지 말고, 겸약하고 겸손하게 지내라"라고 하였다.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조상이 평상시 좋아하던것으로 하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홍동백서>,<좌포우혜> 등 조상과는 무관한 형식과 절차 만이 남아 있다. 조상이 왼손잡이던 오른손잡이던 상관하지 않고 숫가락을 놓아야 한다. 왼손잡이가 귀신이 되면 갑자기 오른손잡이로 변하나? 또한, 조상이 살아생전 좋아하던 음식과는 전혀 상관하지도 않고 있다.
 
소주를 좋아하면 소주를,  탁주를 좋아하면 탁주를, 양주를 좋아하면 양주를 올리면 되는 것이 아닐가?. 바나나를 좋아하면 바나나, 파인애애플이면 어떤가?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귀신이 털달린 과일을 좋아라 하지않는다고 해서 죄악시하고, 매운음식과 고추는 귀신을 쫓아내는 벽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해서 고추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음식으로 올려야 한다.
 
실제로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임진왜란 전후라고 전해진다. 유입경로는 명/청이나 일본 양쪽으로 어느쪽이 앞선 시기인지는 아직 확실치는 않다. 조상이 매운음식을 즐기던 즐기지 않던 상관없이 귀신은 고추가루 싫어한다는 믿기지도 않는 낭설에 따라야 한다. 만약, 예기를 만들기 이전에 고추가루가 있었다면 당연히 고추가루가 들어간 음식이 제사상에 올려졌을 지도 모른다. 과일중에 붉은색 과일을 올리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제사나 차례의 주체인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과 조상은 사라지고  단지 제사 형식에 치우치고 있다. 제사 형식과 차례를 규정한 <예기>는 조상이 평상시 좋아라 하는것으로 하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제사나 차례도 중세유럽의 <르레상스>운동처럼 본류를 찾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시대에 따라 민속도, 명절도, 내용도 달라져야.. 
 
현재의 추석은 과거 우리가 알고 있는 한가위나 중추절과 다른 의미이고 <추석>,<한가위>,<중추절>은 서로 믹스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뿐이다. 현재의 추석이 다른 어떠한 민족도 하지 않는 아주 특이한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추석이 고래부터 한민족의 고유의 명절이라고 하기에는 내용도 바뀌고 성격도 바뀐 다양한 문화가 접목이 되어 있어서 문제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부처탄신일, 팔관회가 국가의 중대축제였고, 조선시대에는 유교적인 단오, 한식, 추석, 공자탄신일 등이 중대 행사였다. 현재는 단오, 한식 보다는 실제와는 다르지만 예수의 탄신일이라고 알려진 크리스마스가 중대한 명절 풍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먼훗날 크리스마스가 우리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토착화될 때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고유의 민족의 행사라고 모두들 이야기를 할것이다. 그때 무슨 소리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고유의 명절이 아니고 유대교의 선지자중 일인인 예수라는 인물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에서 유래된것이야 그리고 산타크로스는 예수의 탄생과는 전혀 관계없는 북유럽의 신화에서 나온인물이고, 산타와 산타의 붉은 복장은 코카콜라가 자신들의 상품을 선전하기 위해서 만든 허구야 한다면 벼락 맞을 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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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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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런 2010.09.17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이런!! 이렇게 내공쌓인 글을 이리 방치 하다니...
    다음이 실수 하고 있군요 ㅋㅋ
    근데 어쩜 사람들이 자극적이거나 달달한 이야기만 좋아하는 것 같으니
    다음도 당연 거기에 영합하는걸지도... 아닌가 그리 선도하는건가?? 에효

    그럼에도 이렇게 새로운 글 내 놓으라고 조르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길...

  2. Favicon of https://peter0317.tistory.com BlogIcon 제로드™ 2010.09.18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꼼꼼하고 열심히 자료를 찾아서 글을 쓰시네요~. 즐거운 추석 되시길..

  3. Favicon of https://vibary.tistory.com BlogIcon 비바리 2010.09.18 19: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명절 즐거이 지내세요.

  4. 2010.09.22 0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Favicon of http://solnebane.com BlogIcon 조용형 2012.01.02 2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팹, 훌륭한 문서입니다

  6. Favicon of http://inoline.com BlogIcon 2012.01.07 0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끌모아 태산

  7. Favicon of http://carbon21.homeunix.com BlogIcon Jordyn 2012.04.04 0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8. Favicon of http://extratime.isa-geek.com BlogIcon 빅토리아 2012.04.06 0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변호사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9. Favicon of http://zonda.is-very-evil.org BlogIcon Aaliyah 2012.05.09 0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에 영어를 하시는 분 계십니까?

  10. Favicon of http://onlyme.hobby-site.org BlogIcon Arianna 2012.05.11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11.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2.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 2012.07.14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해서 눈 속에 덮혀 있다. 그런데 이번 강릉 빙상장은 경기를 보는

  13. Favicon of http://blogskinny.com/ BlogIcon Berrong 2012.09.09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14. Favicon of http://www.frankolenko.com/blog/view/9430/what-supplies-to-enter-case-of-an-em.. BlogIcon emergency first aid guide 2012.11.26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어쩜 사람들이 자극적이거나 달달한 이야기만 좋아하는 것 같으니
    다음도 당연 거기에 영합하는걸지도... 아닌가 그리 선도하는건가?? 에효

  15. Favicon of http://mysbi.tk/blogs/viewstory/168 BlogIcon water canister camping 2012.12.04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대풍수 이성계는 제왕 사주를 타고 났다고 한다. 공민왕은 이성계의 아버지 묘자리가 제왕지지 라는데  이를 확인하려 하지만 무학은 사실이 아니라고 보고하도록 한다.

대풍수에서 공민왕은 원에서 돌아와 왕이 된다. 그리고 풍수를 보던 서운관 일관 동륜(최재웅)에게 자미원국을 찾아 보도록 한다.

 

자미원국은 고려의 국운을 상승시킬 땅이며 세계를 호령할 만한 인물이 태어날 땅이다.

그래서 원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동륜에게 자미원국을 찾아보도록 한다.

 

동륜은 자미원국을 찾았지만, 50년 뒤에 임자가 나타난다는 석판을 발견하고 봉인 한다.

 

대풍수에서 동륜이 찾은 자미원국은 좌청룡, 우백호, 현무, 주작이 둘러싼 명당이라고 말한다.

 

자미원국을 처음 발견한 이는 동륜 이전에 공민왕이 누군가를 시켜 자미원국을 찾을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동륜이 찾기 전에 석판을 묻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륜 보다 높은 지력을 가지고 있는 대풍수가 있었다는 뜻이다.

 

어쩌면 그 대풍수는 조선의 수도를 찾은 무학일 수도 있고, 무학이 고려의 남경인 서울 목멱산(남산)에서 길지를 찾을 때 나타나 바보 같은 무학이라고 한 늙은 도사일 수도 있다.

 

하지만, 후보군에서 무학은 석판을 묻은 이가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무학은 공민왕이 고려에 돌아온 1351년 한참 후인 1356년에 비로서 원에서 유학을 마치고 고려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무학대사가 남산에서 왕도 길지를 찾을 때 땅을 파보니 땅속에서 왕십리라는 판석이 나왔다고 해서 무학이 서쪽으로가 처음 터를 잡은 곳은 종로 필운동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정도전이 왕은 북쪽에서 남면한다고 주장하여 현재의 경복궁터에 조선의 정궁이 만들어 지게 되었다.

 

대풍수에서 차용한 것은 무학과 노인의 대화와 왕십리에서 발견된 석판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사극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동륜이 찾았을 때 50년 후에 태어날 길지이니 건들지 말라고 했을까?

 

공민왕은 1351년 고려 31대 왕에 등극한다. 그러니 50년 후라면 1400년초 년이나 그 이전에 태어난 인물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며 대풍수에서 나온 이성계를 염두 해두고 이성계가 천하의 잡놈으로 그렸지만, 이성계는 이미 1335년생으로 이성계를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성계가 자미원국의 주인을 맞이할 중간자의 역할이라고 할 수가 있다.

 

대풍수에서 자미원국의 주인은 이성계를 매개로 한 인물을 찾는다면 세종대왕 이도 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농담 식으로 조선을 조선답게 만든 사람은 세종대왕 이도라고 한다. 그리고 세종/이순신 장군을 만들기 위해서 조선이 건국되었다라는 식으로 조선을 비하하기도 한다.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의 아들인 이도(세종대왕) 1397년에 태어난다. 세종은 서울에서 태어난 조선 최초의 왕이다. 세종 이도는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현재 경복궁 서편인 효자동에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대풍수에서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자미원국과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자미원국은 나라가 아니고 세계를 지배할 만한 인물이 태어날 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풍수에서 공민왕 초년에 대풍수 동륜에게 찾으라 했다는 자미원국의 주인은 세종 이도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단지 이성계는 세종 이도로 가기 위한 중계자 디딤돌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대풍수에서 자미원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세종 이도는 세계를 지배할 황제의 상은 아니니 말이다.

 

대풍수는 숙명.운명론을 말하고 있어 글쓴이(갓쉰동)가 사극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좋아하는 주제는 아니다. 영웅은 태어난다. 하늘이 점지한다는 식의 논리전개를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진 자들이 만든 자기합리화에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왕의 꿈에서 김춘추를 어릴 적부터 천재적인 모습으로 왕의 재목이라고 영웅 만들기를 하고 있는 것 보다는 대풍수에서 이성계를 실제와 다른 찌질하고 모자라고 무식한 장군으로 그런 것 까지는 기존 이성계와 다른 색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흥미롭고 어떠한 계기로 이성계가 자미원국의 비밀을 차지하고 각성을 하고 고려를 무너트리는 야심을 가지게 될까 궁금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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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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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houseinhanoi.com/apartments/properties/3/0 BlogIcon hanoi apartments for rent 2013.05.06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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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다른 정보에 대한 온라인 연구원 해요. 나는이 사이트에 게시 된 정보가 인상적인 찾아 기쁘다.

신의는 공민왕 시기 최영과 현시대에서 타임 슬립한 김희선(유은수)와의 사랑과 공민왕이 개혁군주가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대풍수는 신의와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풍수에서 자미원국을 모태로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신의에서는 공민왕를 개혁군주로 대풍수에서는 서로 다른게 그리고 있다. 같은 노국공주라도 한쪽은 비운의 주인공이지만 대의를 알고 사랑스럽게, 한쪽은 불운한 하지만 자신만 챙기는 왕비로, 신의는 최영은 대쪽같고 사랑스럽고, 대풍수는 그저 그런 정치술이 있는 장군으로 그린다.

신의에서 이성계는 죽을 운명이지만, 김희선으로 인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김희선이 사랑한 이민호(최영)을 죽이는 운명을 갖는다. 실제 죽이는 역사가 될지 안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반면에 대풍수는 확정된 역사에 순응해서 풍수가 자리잡고 있다. 대풍수와 신의가 같은 점이라면 똑같이 시청률에서 고전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점이라면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지만, 시청률과는 상관없이 신의는 신의폐인을 만들 만큼 매니아층이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반면에 대풍수는 폐인을 만들기 보다는 베드신 등의 논란으로 부터 시작한다.

현재까지는 신의는 여성주의 사극이고 대풍수는 남성주의 사극처럼 보인다. 그런데 대풍수에서 주인공들이 성인역으로 넘어가면서 출생의 비밀과 주인공들간에 사랑이 어떻게 발전할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여성주의 사극으로 변할 가능성이 놓여 있다.

대풍수가 인기가 없는 이유는 동시간대의 착한남자 때문이 아니라 극의 중심에 이성계의 존재 때문이다. 역사상 이성계와 김춘추는 사람들에게 별다른 임팩트가 없는 인물이고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원균이나 이완용과 동급으로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주인공 처럼 나온다면 인기가 있을 수 없다.

어쨌든, 대풍수 공민왕은 원에서 돌아와 왕이 된다. 그리고 풍수를 보던 서운관 일관 동륜(최재웅)에게 자미원국을 찾아 보도록 한다.

 

자미원국은 고려의 국운을 상승시킬 땅이며 세계를 호령할 만한 인물이 태어날 땅이다.

그래서 원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동륜에게 자미원국을 찾아보도록 한다.

 

동륜은 자미원국을 찾았지만, 50년 뒤에 임자가 나타난다는 석판을 발견하고 봉인을 한다.

 

대풍수에서 동륜이 찾은 자미원국은 좌청룡, 우백호, 현무, 주작이 둘러싼 명당이라고 말하다.

 

자미원국을 처음 발견한 이는 동륜 이전에 공민왕이 누군가를 시켜 자미원국을 찾을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동륜이 찾기 전에 석판을 묻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륜 보다 높은 지력을 가지고 있는 대풍수가 있었다는 뜻이다.

 

어쩌면 그 대풍수는 조선의 수도를 찾은 무학일 수도 있고, 무학이 고려의 남경인 서울 목멱산(남산)에서 길지를 찾을 때 나타나 바보 같은 무학이라고 한 늙은 도사일 수도 있다.

 

하지만, 후보군에서 무학은 석판을 묻은 이가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무학은 공민왕이 고려에 돌아온 1351년 한참 후인 1356년에 비로서 원에서 유학을 마치고 고려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무학대사가 남산에서 왕도 길지를 찾을 때 땅을 파보니 땅속에서 왕십리라는 판석이 나왔다고 해서 무학이 서쪽으로가 처음 터를 잡은 곳은 종로 필운동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정도전이 왕은 북쪽에서 남면한다고 주장하여 현재의 경복궁터에 조선의 정궁이 만들어 지게 되었다.

 

대풍수에서 차용한 것은 무학과 노인의 대화와 왕십리에서 발견된 석판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사극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동륜이 찾았을 때 50년 후에 태어날 길지이니 건들지 말라고 했을까?

 

공민왕은 1351년 고려 31대 왕에 등극한다. 그러니 50년 후라면 1400년초 년이나 그 이전에 태어난 인물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며 대풍수에서 나온 이성계를 염두 해두고 이성계가 천하의 잡놈으로 그렸지만, 이성계는 이미 1335년생으로 이성계를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성계가 자미원국의 주인을 맞이할 중간자의 역할이라고 할 수가 있다.

 

대풍수에서 자미원국의 주인은 이성계를 매개로 한 인물을 찾는다면 세종대왕 이도 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농담 식으로 조선을 조선답게 만든 사람은 세종대왕 이도라고 한다. 그리고 세종/이순신 장군을 만들기 위해서 조선이 건국되었다라는 식으로 조선을 비하하기도 한다.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의 아들인 이도(세종대왕) 1397년에 태어난다. 세종은 서울에서 태어난 조선 최초의 왕이다. 세종 이도는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현재 경복궁 서편인 효자동에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대풍수에서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자미원국과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자미원국은 나라가 아니고 세계를 지배할 만한 인물이 태어날 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풍수에서 공민왕 초년에 대풍수 동륜에게 찾으라 했다는 자미원국의 주인은 세종 이도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단지 이성계는 세종 이도로 가기 위한 중계자 디딤돌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대풍수에서 자미원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세종 이도는 세계를 지배할 황제의 상은 아니니 말이다.

 

대풍수는 숙명.운명론을 말하고 있어 글쓴이(갓쉰동)가 사극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좋아하는 주제는 아니다. 영웅은 태어난다. 하늘이 점지한다는 식의 논리전개를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진 자들이 만든 자기합리화에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왕의 꿈에서 김춘추를 어릴 적부터 천재적인 모습으로 왕의 재목이라고 영웅 만들기를 하고 있는 것 보다는 대풍수에서 이성계를 실제와 다른 찌질하고 모자라고 무식한 장군으로 그런 것 까지는 기존 이성계와 다른 색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흥미롭고 어떠한 계기로 이성계가 자미원국의 비밀을 차지하고 각성을 하고 고려를 무너트리는 야심을 가지게 될까 궁금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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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worldsay.tistory.com BlogIcon 러브멘토 2012.10.26 14: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을 세운건 이성계지만 조선을 완성한건 세종이겠죠 ㅋ
    이성계는 과연 위인에 속할까요
    잘보고 갑니다 ㅋ

  2. 음... 2012.10.27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클은 아니고 세종 이도 1397년생... 오타 있음요.

  3. ㅡㅡ 2012.11.03 1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복궁이 있는 서울은 자미원국의 자리가아니고 소미원국이고 제후의자리가없다고합니다 자미원국의 명당자리는 계룡산이있는 대전이 자미원국의 자리라는 블로그글을 봤습니다

  4. 세웅 2012.11.13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처음부분 안보셨나본데요 첫장면 자막에 충혜왕 복위 3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1342년에 동륜은 자미원국을 찾았고 그후로 50년이니 1392년을 뜻합니다.
    1392년이 바로 조선 건국년이지요... 자미원국의 주인은 이성계가 맞습니다.
    자미원국이 50년후에 기능을 발휘한다는건 새왕조가 열리는것이지 세계를 지배할 지도자나
    인물의 탄생은 아니라는 겁니다. 틀린게 있다면 태클하셔도 괜찮습니다.^^

  5. 세웅 2012.11.13 1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하나 드라마에서 공민왕 원년이 시작이 될때는 동륜이 자미원국을 찾고 10년동안 감옥생활을 했을 시점입니다. 첫자막 놓치면 많은 혼동이 있을수 있겠네요ㅋㅋ 그후로 다시 11년후 지상과 정근의 아역이 나오는데 이때는 이미 무학대사가 고려땅에서 활동할 시기였죠 '대풍수' 드라마는 다른 사극에 비해 연도는 명확히 지키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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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풍수에서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자미원국과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자미원국은 나라가 아니고 세계를 지배할 만한 인물이 태어날 땅이기 때문이다.

  9. Favicon of http://wageningencns.org BlogIcon Get more info about Wagening en CNS 2014.02.12 0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민왕 원년이 시때는 동륜이 자미원국을 찾고 10년동안 감옥생

  10. Favicon of http://www.bookra.co.il/instagram-followers-cheap BlogIcon cheap instagram followers 2014.03.26 1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합된다고 할 수 있다. 자미원국은 나라가 아니고 세계를 지배할 만한 인물이 태어날 땅이기 때

  11. Favicon of http://www.bookra.co.il/instagram-followers-cheap BlogIcon cheap instagram followers 2014.03.26 1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합된다고 할 수 있다. 자미원국은 나라가 아니고 세계를 지배할 만한 인물이 태어날 땅이기 때

  12. Favicon of http://www.criminallawyerssoutherncalifornia.com/contact BlogIcon Our Location 2014.09.01 1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니고 세계를 지배할 만한 인물이 태어날 땅이기 때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가 글을 창제하자. 밀본은 한글 훈민정음 반포를 막기 위해 극렬한 반대하고 광평대군까지 죽인다.

 

사실 광평대군의 죽음과 훈민정음 반대와는 상관관계가 전혀없다.

단지 훈민정음 창제는 당대 반대가 심했을것이라는 강박관념에서 왕자까지 죽였을 만큼 반대가 있었다고 김영현이 <선덕여왕>에서 불가능한 보름날 낮의 일식을 구현한 것처럼 <뿌리깊은 나무>의 과도한 설정에 불과하다.

일식이 보름날에 일어날수도 없지만, 낮에는 보름달이 뜰수도 없다. 일식은 말,초에 일어나는 사실은 당대 상식이다. 태양 - 달 - 지구 순으로 배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현대 기본상식에 속하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훈민정음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한글에 대해 오해와 진실은 너무나도 많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당대에 훈민정음 창제를 유학자 유림들이 반대했다는 것이고 그래서 세종 이도는 몰래 훈민정음을 창제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드라마가 <뿌리깊은 나무>이다.

사실 세종 이도가 훈민정음을 창제하자 반대한 곳은 집현전의 유자중 극히 일부였다. 

 

집현전이 반대한 이유는 문자란 오랜 시간동안 배우고 익혀야 하는데 훈민정음은 너무나 쉬워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였다.

 

또한 저변에는 조선은 기자로부터 문자를 배워 유구하고 중국을 섬기는데 있어서 문자를 가지는 것은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것이라는 사대적인 모습 때문이었다.

 

그런데 훈민정음을 찬성하고 적극적이였던 성삼문, 신숙주 또한 반대한 최만리와 공통점은 훈민정음로 인해서 중국의 음을 알게 되고 문자를 쉬이 배울 수 있어서 중국에 사대를 보다 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최만리는 사대를 위해서 훈민정음이 필요없다는 논리였고, 성삼문, 신숙주는 사대를 위해서라도 훈민정음이 필요했다는 차이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훈민정음이 창제되자 유림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극렬한 반대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글을 일독하기 바랍니다. 

2011/12/02 - [역사IN드라마/뿌리깊은나무] - 뿌리깊은 나무, 한글 성삼문, 신숙주, 최만리 같은 이유로 반대하고 찬성했다
 

후대의 문집을 보더라도 훈민정음(언문)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 유학자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오히려 훈민정음은 한자뿐만 아니라 어떠한 나라의 소리도 글로 쓸수 있어서 세종은 요순보다 뛰어난 성군이란 칭송뿐이다.
 
언문이란 말 또한 마찬가지다. 언문이란 단순히 소리글이란 말이지, 양반을 제외한 여인이나 궁중나인이나 상놈들이 배우는 글이란 뜻이 아니다. 조선 후반에 비하하는 말로 바뀌지만 말이다. 언문청을 만들고 비하하는 세종이라면 세종이 정신이 이상해서 일까?

 

한마디로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훈민정음 반대는 극적인 묘사를 위한 장치에 불과하고 반대를 무릅쓰고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서 글을 창제했을 만큼 위대한 성군이라고 칭송하기 위한 것 뿐이다.

 

물론, 세종 사후 문종 초기 정음청을 없애고, 단종 시기 언문청을 없애는 시도를 하지만, 세조와 예종, 성종 시기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의 반대에 부딛혀 언문청은 살아 남았다. 중종반정이 성공한 3일후에 언문청까지 사라졌다.

 

하지만, 이미 널리 퍼진 언문(훈민정음)은 궁중에서나 일반백성 뿐만 아니라 양반들까지도 훈민정음(한글)로 편지를 주고 받는 등 활발히 사용되어졌다. 조선후기 훈민정음을 다시 국정의 일환으로 활발히 사용한 군주는 정조였다.


한글에 대한 오해는 한글 창제후의 유림이 극렬히 반대했다는 것 말고 또 하나 있는데 다름이 아닌 훈민정음의 모양이 어디서 왔느냐는 것이다.


 

특히 한글에 대한 오해중에서 일본이 퍼트렸다는 세종이 변소에서 창살모양을 보고 만든 문자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제가 한글을 비하하기 위해서 만든 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일본놈들이 한글까지 왜곡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중성의 모양을 마방진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설정한 이유도 창살설을 배격하기 위한 극중 장치일 뿐이다. 초성, 중성자들은 발성기관을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모방한 글자일 뿐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화장실 창살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한글 비하설은 일제가 퍼트린 말이 아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잘못 세뇌되어 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궁궐 화장실


한글의 기본 모양은 창살모양에서 확장하면 만들어질 수 있는 쉬운 모양이다. 방점은 한글은 쉬운 모양이고, 확장성에서 찾아야지 비하에서 찾으면 안 된다. 한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발성기관을 모방한 상형문자이다. ㅇ,, , , ㄷ, ㄹ, ㅣ, ㅏ 등 한자의 기본 글자와 비슷한 면이 많다. 그래서 옛 전자를 모방했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또한, 이는 일정하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각필이나 구결이라 해서 한자를 훈독하기 좋게 주석처럼 한자의 첫획을 표시하는 경우가 있다. 일본의 언문 가타카나는 이 구결의 첫음이 발전에서 일본문자가 되어서 일본문자는 고대 한국에서 건너가 발전된 글자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렇다면 훈민정음은 세종이 화장실에서 창살을 보고 힌트를 얻어 만들었다는 말은 누가 퍼트린 말일까? 다름 아닌 조선의 일반 백성들에게 널이 알려진 이야기다. 영.정조 시절 무인이며 문에도 조예가 깊어 무예도보통지를 만드는데 동수와 함께 혁혁한 공이 있었던 이덕무는 <청장관전서>에 훈민정음 문자의 창살설을 다음과 같이 채록하고 있다.

 

세속에 전하기를 “장헌대왕(莊憲大王 장헌은 세종대왕의 시호)이 일찍이 변소에서 문살을 배열(排列)하다가 문득 깨닫고 성삼문(成三問) 등에게 명하여 창제(創製)하였다.”한다.


 

한마디로 문살(창살)은 정조시절 조선의 일반 백성들 사이에 퍼진 이야기를 이덕무가 채록한 것이다.

 

이 당시 훈민정음에 대한 또 다른 설은 고전을 참조했다는데 어떠한 한자를 참조했을까에 대한 논의였다.
 

성현의 <용재총화>에는 훈민정음 글꼴 모양은 범자를 본써서 만들었으며 훈민정음을 한자로서는 적을 수 없는 것 까지 통하여 막힘이 없었고, 성인께서 사물을 만드신 지혜는 범인의 힘으로서는 따를 수가 없다고 세종과 훈민정음을 극찬하였다.

 

세종이 언문청(諺文)을 설치하고 신 고령(申高靈 신숙주)ㆍ성삼문(成三問) 등에 명하여 언문을 지었는데, 초종성(初終聲)이 여덟 자, 초성(初聲)이 여덟 자, 중성(中聲)이 열한 자로서 그 자체(字體)는 범자(梵字 인도글자)를 본떠서 만들었다. 우리나라와 다른 여러 나라의 말소리에 대해서 한자(漢字)로는 적을 수 없는 것까지 다 통하여 막힘이 없었으며, 《홍무정운(洪武正韻) 의 모든 글자도 언문으로 다 썼다. 드디어 5()으로 나누어 구별하였는데, 아음(牙音)ㆍ설음(舌音)ㆍ순음(脣音)ㆍ치음(齒音)ㆍ후음(喉音)이다. 순음에는 가법고 무거운 차이가 있고, 설음에는 정()과 반()의 구별이 있으며, 글자에는 또한 전청(全淸)ㆍ차청(次淸)ㆍ전탁(全濁)ㆍ불청불탁(不淸不濁)의 차이가 있어, 아무리 무식한 여인이라도 똑똑히 깨치지 못하는 이가 없었으니, 성인께서 사물을 만드신 지혜는 범인의 힘으로서는 따를 수 없는 데가 있다. 《용재총화》

 

이에 대해서 이덕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훈민정음에 초성(初聲)ㆍ종성(終聲)이 통용되는 8자는 다 고전(古篆)의 형상이다.
고문(古文)의 급()자에서 나온 것인데, 물건들이 서로 어울림을 형상한 것이다.ㆍㄴ ()자에서 나온 것인데, ()과 같이 읽는다.ㆍㄷ 물건을 담는 그릇 모양인데, ()자와 같이 읽는다.ㆍㄹ 전서(篆書)의 기()자이다.ㆍㅁ 옛날의 위()자이다.ㆍㅂ 전서의 구()자이다.ㆍㅅ 전서의 인()자이다.ㆍㅇ 옛날의 원()자이다.ㆍㅣ 위아래로 통하는 것이니, ()와 본()의 번절이다. 번절(翻切)세속에서는 언문(諺文)으로 반절(反切)이라 하여 반()자를 배반한다는 반()자로 읽고 반절(反切)의 반()자 음()이 번()인 줄은 알지 못한다. 1()에 각각 11자이다.

 

발성기관인 아설순치후의 모양을 철저히 본딴 상형문자이지만, 훈민정음 창제 후 200~300년이 지난 영.정조시절에는 단순히 한자에서  비슷한 글자를 찾아 등치 시키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언문(諺文)은 양반이 훈민정음을 비하시키기 위해서 만든 말이니 사용하지 말자는 말처럼 재대로 훈민정음에 대해서 알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언문이란 그냥 소리글(말글)이상의 뜻은 없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글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2011/11/02 - [역사IN드라마/뿌리깊은나무] - 뿌리깊은나무, 언문 상말? 사실 세종 직접만든 "훌륭한 소리글"


다양한 창살모양


어쨌든, 일제가 한글을 비하하기 위해서 세종이 화장실에서 만든 글자가 훈민정음이라는 비하설은 폐기되어야 한다. 오히려 훈민정음 문자는 화장실에서도 배울 수 있을 만큼 쉬웠다는 쪽으로 해석하고 훈민정음은 확장성과 규칙성이 있는 문자라는 쪽으로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동식 매화틀(화장실)


글쓴이 같은 경우 일을 하면서 풀리지 않는 경우 화장실까지 일을 가지고 간다. 가장 원초적인 상황에서  생각을 한다. 당구나 놀이에 빠진 사람들은 천장을 볼때도 당구대가 그려진다. 자다가도 생각을 하다 꿈에서도 나타나기도 하며 이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창살설은 세종 이도가 훈민정음을 만들 때 화장실에서도 고민을 할만한 일이였고, 마침 화장실 창살은 한글처럼 단순하면서도 규칙적이고 확장성이 있는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화장실의 매화틀 위에서 세종 이도가 유레카를 외쳤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조선시대 창살은 궁궐뿐만 아니라 일상사에서 땔래야 땔수 없는 문화였으니 말이다.

또하나 한글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찾아보았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이라면 한글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킬수 있지 않을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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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decorately.com/blog BlogIcon design furnishings 2012.12.16 0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지 훈민정음 창제는 당대 반대가 심했을것이라는 강박관념에서 왕자까지 죽였을 만큼 반대가 있었다고 김영현이 <선덕여왕>에서 불가능한 보름날 낮의 일식을 구현한 것처럼 <뿌리깊은 나무>의 과도한 설정에 불과하다.

  3. Favicon of http://www.damedelux.biz/ BlogIcon dame de lux 2012.12.22 2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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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는 세법 개혁을 위해서 가부조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밀본 정기준은 세종 이도의 세법개혁은 기득권을 말살하려는 정책이라고 말을 하고, 세를 규합한다.

이는 단순히 <뿌리깊은 나무>에서 작가의 상상력의 범주에서 나온 설정이 아닌 실제 세종시기 있었던 사건이다.

 

왕의 나라인 고대 조선에서 하나의 법률을 만들기 위해서 세종은 각도의 관리자와 지주와 백성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대대적인 면대면 여론 조사를 실시하였던 것이다.

여론조사는 수개월이 걸렸지만 세종 이도는 쓰디쓴 반대에 직면하여 유보를 한다.

 

실제 반대보다 찬성이 많은 과반수를 넘었지만, 세종 이도는 백성의 반대가 있으니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백성이 반대한다면 시행할 수 없다고 포기한 것이다.

그런데 세종 이도가 생각하는 찬성의 비율은 얼마였을까? 이 글을 끝까지 읽과 나면 세종의 생각을 알수가 있다.

 

최근 한미 FTA에 대해서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여론이 일부 야당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민주국가인 요즘에도 국가의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그리고 과반이 넘으면 헌법도 바꿀 수 있다.


세종이 세법 개혁인 공법은 어떤 법률이였기에 여론조사를 하였을까?

 

세종의 세법개혁은 토지소득에 따른 세법이였다. 이전 토지세법은 토지 1결에 30두의 세금을 내도록 되어 있었지만, 일괄적으로 토지 1결에 10두 만을 거두는 감세정책이었다.

더군다나 토지의 질이 좋지 않은 함길도, 평안도, 강원도 등은 토지 1결에 7두 만을 거두는 혁신적인 감세제도였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했지만, 18만의 여론조사의 결과는 찬성이 조금 더 많았지만, 시행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위정자들이 반대를 하였고, 함길도 평안도, 강원도, 황해도 등 척박한 토지를 가지고 있던 지역에서 겉보기에 이전 세법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고, 오히려 증세되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반대가 더 많았다.


하지만, 좋은 토지를 가지고 있었던 호남지역과 영남지역에서는 압도적으로 찬성이 많았다. 감세 혜택이 이들 지역에 돌아갔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된다고 생각하는 지역의 사람들이 찬성을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FT
A에 이득을 얻는 층이 찬성하는 것이 인지상정인것 처럼 말이다.  반대로 반대하는 이유도 명확하다.


세종 시기 위정자들도 세종 이도의 공법인 일괄적인 감세 평등과세에 대해서 반대를 하였다. 이유는 좋은 토지를 가진자나 많은 토지를 소유한 극소수의 부자들인 지주들에게 혜택이 가는 부익부빈익빈을 조장하는 세법이라고 생각했고 감세정책으로 인해서 국가재정이 파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토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부자나 지주나 좋은 토질을 가지고 있는 영.호남의 지역에서 감세정책은 지주를 살찌게 하지만, 빈농이나 토지를 세를 얻어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는 혜택이 없었다. 이득이 있어야 세금도 내는 데 없는 자들에겐 세금을 감면 받을 수 있는 소득조차 없었던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세종의 세법은 부자과세를 하는 정책이라 표현을 하고, 세종의 세법을 반대하는 이유를 세종 이도의 입으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유림과 관원 아전들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제는 세종 이도의 세법은 감제제도에 평균과세로 가진 자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 요즘으로 치면 소득세 과표를 축소하고, 법인세를 낮추어 혜택이 부자들에게 가는 부자감세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세종시기 상대적으로 토지를 많이 가지고 있었던 양반인 부자들과 관원들과 성리학의 유림들이 반대를 하였을까? 세금이 줄어들면 국가 재정이 파탄이 나고 복지나 국방이나 국가적인 사업을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현재도 가진 자들이 봉급생활자보다 세금을 적게 내어서 국가 재정이 파탄나서 전세계적으로 금융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워린 버핏은 부자들이 봉급생활자보다 적게 내는 소득세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사회로 부터 더 많은 혜택을 받은 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소득세 과표를 만들자는 제안을 하였다.


 

당시 조선의 위정자들은 백성들의 감세에는 찬성했지만, 일괄적인 평등 과세에는 반대를 하였고, 결국에는 공법제안을 하고 15년이 지난 후 지역과 토지질에 따른 5단계 누진 과세를 여론조사 가부에서 찬성이 2/3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던 영.호남에 시범적으로 실시한다.

세종시기 위정자들은 노블리스 오블르제를 실천하였다. 세종의 공법은 백성을 위한다는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과에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어서 세종이 틀렸고, 세종의 공법에 반대한 위정자들인 유림의 성리학 양반들이 공직자로서 재대로 갖춘 자들 이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문제점을 개선해서 시범적으로 실시를 한것이다.

 

그런데 바뀐 세법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5단계 누진 과세에는 한가지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토지의 질을 결정하는 아전들과 지주들이 결탁하여 토지의 질을 아랫단계로 속여 탈세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고소득 자영업자나 고소득자들이 세금을 탈루하는 경우와 다를바가 없었다.

 

유럽의 그리스나 이탈리아나 스페인, 포르투갈 등은 국가부채가 많은 나라로서 금융위기가 있는데 이들 국가들은 세금을 탈루하는 고소득자들이 많기로 유명한 나라들이다. 한국에서는 조중동이나 여당인 한나라당에서 이들 국가가 복지정책 때문에 국가부도의 위기에 처했다고 하지만, 실제는 고소득자들의 세금탈루가 국가재정을 망치고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어쨌든, 세종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감세정책을 세웠고, 세법을 직접적으로 대대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백성의 소리를 듣고, 위정자들은 국가와 백성들을 위해서 반대를 하고 합리적으로 국가재정확보와 백성들의 세금을 감하는 윈.윈 정책을 만들어 내었다.

 

그런데 재미 있게도 세종 시기 한해도 풍년이 든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을 요순의 현신이라 생각하고 황금기라고 하는 이유는 왕은 백성의 소리를 듣고,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본분을 다하였고, 여론이 막힘이 없었다.

 

더군다나 농사를 과학화 하고, 불모지를 개간해서 백성들은 상대적으로 예전보다 세금부담이 줄었지만, 국가는 보다 많은 세원을 확보하여 재정이 탄탄했기 때문이다.


왕이 결정하면 되는 시대에서도 세종은 아무리 백성을 위한 선한 목적의 좋은 제도이고 백성들에게 혜택이 조금이라도 가는 제도였지만, 찬성이 최소한 2/3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수정을 하고 개선된 안을 만들어 내었다.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고, 피해자와 혜택자가 명확히 구분되는 정체불명의 허점투성이 한미FTA를 일방통행식 과반수를  앞세운 직권상정 숫자놀음에 혈안이 된 여당 한나라당과 이명박과는 차원이 다른 생각을 봉건 절대왕조시대에 세종대왕은 한 것이다.

세종 시기는 요즘을 사는 대한민국이나 세계에서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만한 시대이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anywander.tistory.com BlogIcon 완더 2011.11.19 12: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애청자로써 이도의 세법개혁에 이런 의미가 있었군요...!!! 글 잘 읽고 갑니다.

  2. Favicon of http://jesussonofmary1432.blogspot.com/ BlogIcon Q3444444احمد 2011.11.20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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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세종 이도가 생각하는 찬성의 비율은 얼마였을까? 이 글을 끝까지 읽과 나면 세종의 생각을 알수가 있다.

  4. Favicon of http://www.celebswear.com BlogIcon leather jackets 2011.11.21 2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는 찬성의 비율은 얼마였을

  5. Favicon of http://wwwimbccc.tistory.com BlogIcon www.imbc.cc 2011.11.22 19: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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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2011.11.22 2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에 반면교사는 흐름상 잘못된 표현 아닌가요? 세종대왕의 일부분인 세법개혁만 보면 몰라도

  7. 고대 조선? 2011.11.25 0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4번째 문단 첫번째 문장에 고대 조선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잘못된 표현인것 같습니다. 고대는 보통 통일신라 전까지라고 학교에서 배웠구요, 근대 조선이라고 표현하는게 맞겠네요. 고조선이랑 헷갈리잖아요.

  8. 붉은비 2011.11.29 1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종 시대에 풍년이 든 적이 없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근데 쌀생산량은 조선시대 통틀어서 이 시기에 가장 증가율이 높았을텐데
    그건 모두 농경법 개선의 효과였던 건가요?

  9. Favicon of http://www.balloonking.co.uk BlogIcon balloons by post 2011.12.11 2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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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단순히 <뿌리깊은 나무>에서 작가의 상상력의 범주에서 나온 설정이 아닌 실제 세종시기 있었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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