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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대풍수 이성계 제왕사주 하지만 자미원국 알고보면 오마주 세종대왕? 대풍수 이성계는 제왕 사주를 타고 났다고 한다. 공민왕은 이성계의 아버지 묘자리가 제왕지지 라는데 이를 확인하려 하지만 무학은 사실이 아니라고 보고하도록 한다. 대풍수에서 공민왕은 원에서 돌아와 왕이 된다. 그리고 풍수를 보던 서운관 일관 동륜(최재웅)에게 자미원국을 찾아 보도록 한다. 자미원국은 고려의 국운을 상승시킬 땅이며 세계를 호령할 만한 인물이 태어날 땅이다. 그래서 원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동륜에게 자미원국을 찾아보도록 한다. 동륜은 자미원국을 찾았지만, 50년 뒤에 임자가 나타난다는 석판을 발견하고 봉인 한다. 대풍수에서 동륜이 찾은 자미원국은 좌청룡, 우백호, 현무, 주작이 둘러싼 명당이라고 말한다. 자미원국을 처음 발견한 이는 동륜 이전에 공민왕이 누군가를 시켜 자미원국을 찾을 것을 알고.. 더보기
신의와 다른 대풍수 무엇을 말하려하는가? 신의는 공민왕 시기 최영과 현시대에서 타임 슬립한 김희선(유은수)와의 사랑과 공민왕이 개혁군주가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대풍수는 신의와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풍수에서 자미원국을 모태로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신의에서는 공민왕를 개혁군주로 대풍수에서는 서로 다른게 그리고 있다. 같은 노국공주라도 한쪽은 비운의 주인공이지만 대의를 알고 사랑스럽게, 한쪽은 불운한 하지만 자신만 챙기는 왕비로, 신의는 최영은 대쪽같고 사랑스럽고, 대풍수는 그저 그런 정치술이 있는 장군으로 그린다. 신의에서 이성계는 죽을 운명이지만, 김희선으로 인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김희선이 사랑한 이민호(최영)을 죽이는 운명을 갖는다. 실제 죽이는 역사가 될..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광평대군 죽음으로 본 친일매국노 이광수 폐해 결국 세종.한글 사라지고 한석규만 남은 드라마 에서 드디어 밀본의 정기준이 세종 이도의 5번째 아들 광평대군을 죽이고 세종 이도에게 보낸다. 는 한글 창제 7일간을 다룬 드라마다. 그런데 기준이 애매모호한 측면이 많다. 1443년 12월 30일 창제 7일간인지, 1446년 9월 29일 반포 전 7일간인지 말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나온 기득권이 반대했다는 세법이나 최만리의 반대상소를 기준으로 하면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7일간이 맞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반포일을 기준으로 하는듯 하기도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작가 맘대로다. 한마디로 과거로 미래로 어디로 튈지모르는 타임머신을 탄것같이 멀미를 일으킬 정도다. 정기준은 세종이도와 함께 글과 백성에 대해서 경연을 펼치지만, 세종 이도는 정기준의 말이 마음속에 남고, 정기준은 세종 이도의 말이 마음속에 남는다.. 더보기
광개토태왕 담덕 태왕이면 태종 이방원은 태상황? 광개토태왕에 대해서 글을 쓰다 보면 이상한 댓글이 달린다. 대왕이 아니라 태왕이다. 이말은 사실일까? 대왕도 맞고 태왕도 맞고, 토왕도 성왕도 맞다. 고구려는 태왕이라고 했다고? 살어서 태왕을 참칭한적은 없다. 대왕이였을 뿐이다. 장수왕이 413년 광개토왕의 유명으로 자신의 무덤에 자신이 점령한 지역의 한예인으로 능을 관리할 고구려인과 수묘(능지기)할 사람들의 수효를 정한다. 그런데 그냥 수묘할 사람만 정하지 않고, 광개토태왕이 점령한 지역을 자세히 나열하고 있다. 광개토태왕비에 보면 광개토왕이 왕위에 올라 이라고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광개토태왕, 광개토왕, 광개토대왕, 영락대왕, 광개토대왕이라 해도 하나 틀리지 않는다. 후연의 모용수는 처음 왕에서 자신을 천왕(天王)이라고 했다가. 후에 황제라.. 더보기
계백, 의자왕 서자만 41명인 정자왕, 백제 비운의 마지막 태자 부여융 양자? 사실은 의 처음은 창대하게 시작하였지만, 끝은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대부분 대한민국 사극의 한계점이다. 처음에 물량공세를 하고 사전제작으로 시청자의 눈을 현혹하지만, 초반 몇편을 제외하면 실시간 시나리오에 생중계 사극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자료조사는 등한시 되고, 제작비의 고갈로 전쟁신은 20명도 안 되는 엑스트라를 동원하거나 후반부로 가면 말로 때우기 일수다. 도 여타 사극의 범주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 사극의 주류는 여성주의 사극을 표방한다. 여성 시청자를 끌어들이지 못하는 사극은 시청률에서 고생할 뿐만 아니라 여론을 주도하는 예능이나 드라마에서 이슈화 될 수가 없다. 은 최근 사극 드라마 트랜드에 따라 무왕과 사택비 무진의 3각관계를 핵심으로, 대를 이어 의자왕과 계백 그리고 은.. 더보기
공주의 남자, 훈민정음(한글)창제 성삼문 요동밀사는 세종 모독인 이유 - 한글날 제자리찾기 에서 성삼문, 신숙주, 이개 등 한글창제에 관여한 인물이라고 알려진 사육신이 나온다. 10월 9일이 한글날이기는 한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에 대한 상식이 얼마나 잘못된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10월 9일이 훈민정음(한글)을 만든 565회 한글날이라고 한다. 이부터 잘못된 상식중에 하나다. 훈민정음(한글)이 만들어진 것과 반포일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더군다나 훈민정음 창제에 성삼문 신숙주는 훈민정음 창제에 커다란 공이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성상문과 신숙주, 이개 등 사육신을 포함한 집현전은 한글창제에 전혀 관여한적이 없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이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암기식 역사교육을 받았는지 알게될 것이다. 는 세종 이도가 훈민.. 더보기
세종대왕은 왜? 동해의 이어도 요도를 찾아 나섰을까? 조선시대 초기부터 끊임없이 울릉도의 공도 정책을 폅니다. 또한, 조선초 이색 등을 울릉도와 여러 섬 등으로 유배시키려 하지만 신하들의 간언으로 내지의 지방으로 유배를 보냅니다. 조선시대에 울릉도는 너무나도 먼 땅입니다. 군선으로도 하루밤낮을 지나야하는 먼 지방이였고, 세종시대에는 군선이 울릉도를 가다가 난파되어 일본까지 흘러간 기록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금과 군역을 피하려고 들어가지만 세종때에도 끊임없이 들어간 사람들을 다시 육지에 안착하도록 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울릉도에 있는 사람이 거짓으로 왜를 사칭하여 강원도 일대을 약탈하기도 하지만, 대마 도주 종정무가 평도전을 보내 울릉도에 살기를 청하나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대마도주도 이미 울릉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그런데 독도.. 더보기
선덕여왕 49회, 진흥왕(이순재) 신라의적 미실(고현정)척살 - 만화보다 못한 미실 죽음 고현정 하차 드라마 선덕여왕이 50회로 미실(고현정)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다. 그래서 미실 고현정의 아름다운 하차를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는 듯 하다. 또한, 감춰둔 미실 고현정 하차에 대한 떡밥을 유신 엄태웅을 통해서 흘리고 있다. 유신 엄태웅과 함께 찍은 고현정의 의상을 보았을 때 근.현세 서양 검은색 장례복장이다. 당시에 미실 고현정은 서양도 드나들었나 보다. 덕만이 가지도 않은 타클라마카탄 사막을 드나는 것 만큼 허황되기는 하지만, 덕만은 그나마 극중 개연성이라도 있다. 하지만 미실의 복장은 뜸금이 없다. 어찌되었던 미실의 아름다운 죽음은 처음 기획한 아들 비담(김남길)에 의한 처형에서 자살로 결론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미실은 대야성으로 숨어들었을까? 드라마의 시놉시스와 극의 내용은 있으나 마나한 것이다... 더보기
찌질남 하종(김정현)알고 보면 엄친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세종과 미실의 아들로 나오는 하종은 어리숙하면서도 아버지가 다른 나이어린 보종에 대해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또한, 미실의 정부(?)인 설원랑(전노민)에 대해서는 비호감의 감정을 스스럼 없이 분출하고 있다. 왕인 진평에게나 왕비인 마야에게도 맘에 안들면 치받아 버린다. 김정현이 하종 배역을 맡고 있는데, 어쩜저리 어리숙하고, 찌질하게 연기를 잘하는지 보는 내내 웃음을 짓게 한다.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인물중에서 미워할 수 없는 악역중에 일인이라고 하겠다. 선덕여왕에서 상천관 서리(송옥숙)이 미실(고현정)이 건낸 사약(?)을 먹고 죽는다. 그 뒤를 이어서 서리의 보조 신녀인 설매가 상천관의 지위를 계승하였다. 설매역을 맡은 조명진이 삼성 야구선수 박한이와 결혼을 예정한것 처럼, 김정현.. 더보기
사극으로 배우는 역사, 화랑세기 문노와 김흠운이 증명? 박창화가 필사했다는 김대문의 는 화랑 풍월주의 계보와 풍월주들의 활약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8대 풍월주인 문노는 화랑의 체계를 세운인물이고, 전쟁에 나아가 무수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문노의 출신은 나물왕의 후손인 비조부의 아들로 대가야국의 외손이다. 8세 문노(文弩:538생)는 비조부공(比助夫公) 아들이다. 어머니는 가야국(加耶國) 문화공주(文華公主)인데 문화공주는 야국왕(野國王)이 바친 여자(貢女)라고 한다. 공은 건복(建福) 23년(606)에 세상을 떠나니 69세였다. (윤공)낭주는 이 해에 공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선(仙)이 되었다. 공보다 10살이 적었다. 하지만, 문노에 관한 기록은 에 잠시 모습을 보일 뿐 나 에서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 에는 화랑의 계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된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