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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뿌리깊은나무, 언문 상말? 사실 세종 직접만든 "훌륭한 소리글" 에서 성삼문과 박팽년이 세종의 비밀세력 천지계의 일원으로 나온다. 천지계는 ㉤ 문신을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고, 에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의 원리를 사용하는 듯하다. 하지만, 좀더 깊숙히 들여다 보면 천지계 문신은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다. 는 언문(훈민정음) 창제를 다룬 미스터리 물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언문”의 초성만을 딴 “ㅇ + ㅁ”의 합자라야 합리적이고 개연성이 있다. 글쓴이(갓쉰동)이 훈민정음이나 한글이라는 말보다 언문을 사용하니 어떤 이들은 어째서 한글을 비하하는 말을 쓰느냐고 타박하고. 조선왕조 실록에 있는 단어 언문도 세종이 직접쓴 것이 아니고 사후 후대에 유학자가 세종실록을 만들었으니 “언문”은 비하한 말이라고 한다. 사실, 글쓴이가 꾸준히 일부러 언문이라고 쓰는 이유.. 더보기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와 정종 결혼 감정이입 안되는 이유는 KBS 드라마 에서 문종은 처음 사위(부마)로 삼으려던 김종서의 막내아들 승유를 경혜공주와 맺어주지 못하고, 수양대군의 계략으로 정충경의 아들인 정종에게 시집을 보낸다. 가례를 올리기 전 수양대군의 딸 세령(문채원)은 경혜공주(홍수현)를 찾아가 축하의 말을 전한다. 경혜는 세령에게 가례가 축하할 일이냐고 세령의 뺨을 때린다. 공주의 남자는 분명히 세령과 승유의 핏빛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현재 까지는 세령에 몰입이 되지 않는다. 이유는 세령이 승유를 사랑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가 없고, 세령의 행동에 합리성을 발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세령) 때문에 승유는 옥에 갇히고 공주인 경혜와의 혼례가 파탄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경혜공주에게 찾아가 염장을 지른다는 발상은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을 사랑한 세령이.. 더보기
공주의 남자, 결혼한 공주에게 한번더 결혼하라는 문종 정신이상인가? 최근 사극의 전성시대라고 할만큼 사극류가 방송을 점령하고 있다. 무사 백동수, 계백, 광개토태왕과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표방하는 가 사극으로 제작되고 있다. 는 자신의 아버지(김종서)를 죽인 여인(세령:문채원)을 사랑한 승유와 자신이 사랑한 남자의 아버지를 죽인 아버지(수양대군)를 둔 세령의 사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신금을 울릴 만큼 절절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치밀한 사극을 보고 싶음 마음이 절실하다. 세종의 뒤를 이어 문종이 즉위하였으나 문종은 세종 제위시절 왕세자로 있을 때부터 세종을 대신해서 대리청정을 하였었다. 하지만, 과도한 업무로 인해서 문종은 병약했다. 그래서 문종은 즉위 2년 만에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한다. 문종이 어린 단종이 왕위를 이어 조선을 다스리는데 불편함이 있을.. 더보기
추석 차례상 정종만을 올려야 한다?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제사나 명절(추석, 설) 차례t상를 올릴때 상차림에 올리는 술은 일명 정종으로 알려진 청주를 올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내 조상들은 청주를 올리지 않았다. 이는 일제시대와 그후 각 지방과 지방의 토속주와 전통주를 인위적으로 막았다. 그래서 제례에 올리는 술과 비슷한 술인 정종(청주)를 올리게 된것이다. 정종은 단순히 일본의 술 제조업체였다. 맥주하면 OB인 시절도 있었고, 소주하면 인 시절이 있었던 것 처럼, 청주하면 정종회사를 떠올린것이다. 청주(맑은술)을 올리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미료하면 이 대명사 인 시절도 있었다. 그러니 술을 올리는데 정종을 올린다는 말은 진로를 올린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잘못사용된 예이다. 그렇다면, 우리내 조상들은 차례상에 어떤 술을 올렸을.. 더보기
추석 차례 정종 올려야 한다고?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제사나 명절(추석, 설) 차례를 올릴때 상차림에 올리는 술은 일명 정종으로 알려진 청주를 올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내 조상들은 청주를 올리지 않았다. 이는 일제시대와 그후 각 지방과 지방의 토속주와 전통주를 인위적으로 막았다. 그래서 제례에 올리는 술과 비슷한 술인 정종(청주)를 올리게 된것이다. 정종은 단순히 일본의 술 제조업체였다. 맥주하면 OB인 시절도 있었고, 소주하면 인 시절이 있었던 것 처럼, 청주하면 정종회사를 떠올린것이다. 청주(맑은술)을 올리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미료하면 이 대명사 인 시절도 있었다. 그러니 술을 올리는데 정종을 올린다는 말은 진로를 올린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잘못사용된 예이다. 그렇다면, 우리내 조상들은 차례상에 어떤 술을 올렸을까?.. 더보기
경주 첨성대는 선덕여왕 2년에 세워졌다. -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편 선덕여왕 원작자 두사람은 무슨생각으로 역사소설을 쓰나? 신라에는 두개의 궁궐이 있었다. 하나는 명활성이고, 하나는 반월성(월성)이다. 이 두성은 때에 따라서 번갈아 궁궐로 사용되였다. 하지만, 진평왕시기에는 반월성(월성)이 궁궐이였다. 647년 1월 8일 덕만이 죽고나서 비담이 반란을 일으킨 장소는 명활성이다. 반란군을 진압하는 정부군의 지휘부는 궁궐인 월성이였다. 이곳에서 진덕(승만)이 10여일을 비담에 시달렸다. 김유신열전에 김유신이 로 비담의 군대의 사기를 떨어트리기도 했다. 이와관련해서는 2009/08/3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이 덕만을 배신했다고?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예전 보름날에 연을 날릴때 불을 연의 꼬리에 달고 날리는 풍습이 있었다. 액운을 하늘로 다시 보낸다는.. 더보기